이제는 몇 십 년 전이지만, 지금 와 되돌아 보면 청춘의 시절은 참 화사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에 와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글을 쓰는 이 사람에게 만약 다시 이십대의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글쎄,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십대란, 거리에 핀 꽃보다도 자신이 더 싱그럽고 아름다웠음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불가지론과, 불확실성의 혼돈의 시대였으니까. 다시 그 고통스러운 터널을,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름표를 달고 지나가야 한다는 건, 노회한 나이듦이 감당할 수 있는 몽매가 아니다.

그러기에, 젊음을 대상으로, 젊음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들은 엎어치건 메치건, 결국은 그 혼돈과 혼란의 젊음을 위로하는데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곤 한다. 요즘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 그리고 시즌1,2의 인기를 힘입어 야심차게 시작한 <로맨스가 필요해3>도 그런 화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진; 조선닷컴)


1. 어린 시절, 혹은 전생의 인연

청소년 시절에 재미로, 하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화자되던 놀이가 있다. 깊은 밤 불을 끄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파트너 얼굴이 보인다는. 실제로 그 놀이(?)를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한번쯤은 청소년 시절에 그런, 혹은 그와 비슷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핵심은 바로, '내 님은 누구일까?'겠다. 지금 내가 만나는 수많은 이 남자들 중 과연 누가 나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것인가, 이것만큼 청춘에게 심각한 고민은 없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의 초반, 나정이가 부르는 '여보~'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다섯 남자들, 그 누구에게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듯이, 누구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오히려 반대로, 그 누구라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청춘의 불안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안전판을 만든다. <로맨스가 필요해3>의 주완(성준 분)은 어린 시절 주연(김소연 분)을 좋아하던 주연이 보살펴 주던 꼬마 고구마이다. 주연 덕택에 음악을 알았고, 그 음악이 그의 천직이 되었듯이, 그에게 주연은 하늘이 내려준 사람과도 같다. 드라마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려가겠지만, 혈연처럼 어린 시절에 각인된 인연은 쉽게 피할 수 없다라며 시청자들을 안심시킨다.

<별에서 온 그대>는 한 술 더 뜬다. 몇 백년 전 전생의 인연으로 주인공 두 사람을 결박시켜 놓는다. 인간을 티끌처럼 여기며 사는 외계인 도준(김수현 분)의 태도가 180도 바뀌어, 천송이 해바라기를 만들기 위해, 전생과 환생으로 이어지는 필연의 고리를 만든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들이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현실의 자신들처럼 심지어 결혼이라는 서약을 거쳐서도 불가지론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안온함을 깔고 드라마를 지켜보게 만든다.


(사진; 리뷰스타)


2. 백마을 타고 온 왕자님들

어린 시절, 혹은 전생의 인연까지 들먹이며 사랑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드라마는 그것도 부족해 여주인공만을 바라봐주는 백마 탄 왕자님을 한 명,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한 명 더, 때로는 그 이상으로 보험용으로 준비해 둔다.

2014년에도 드라마 속 남자들은 아침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 할 것 없이, 직업 고하를 가리지 않고, 신데렐라 시절에 잃어버린 유리 구두를 들고 나타난 왕자님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드라마의 성패는, 그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님이 얼마나 환타지를 잘 구현해 내는가와 비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어린 시절 절친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기고 머리끄댕이를 휘어잡으려 싸우는 현장에 들어와 바닥을 친 자존심을 위로해 주며, 다친 상처조차 치료해 주고, 사회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스타의 매니저를 자청한다. <별에서 온 그대>와 <로맨스가 필요해3>는 그 핵심만을 꼭꼭 짚어주는 족집게 참고서와도 같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니다. <로맨스가 필요해3>에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회사 선배 태윤(남궁 민)이 있고, <별에서 온 그대>에는 소나기의 소년같던 시절부터 천송이만 해바라기 해온 휘경(박해진 분)이 있다. 다다익선이자, 보험이다.


현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 조차 건넬 여유가 없다는 현실의 청춘은 사랑조차도, 직장과, 마련해야 할 전셋집과, 결혼 비용에 밀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한숨을 내쉬어야 할 조건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세상에서, 드라마는 더 열심히, 더 열렬하게 환타지를 실행하고자 애쓴다. 그래서 불가지론의 사랑은 어린 시절 혹은 환생의 끈을 빌려 확신을 심어주려 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현실의 철딱서니 없는 남자들은 멋진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여주인공을 위해 헌신한다. 홈쇼핑 팀장으로서, 여배우로서의 리얼리티는, 환타지조차 현실의 일부분인양 교묘하게 포장해 낸다. 결국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에 성공하고, 일에서도 보람을 찾겠지만, 암전이 된 텔레비전 앞에 자신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이 각박할 수록, 드라마는 아름다워진다. 





by meditator 2014. 1. 15. 11:19

휘재야~!'

하는 이휘재씨 아버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이휘재의 눈물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이휘재처럼 시청자들도 뭉클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 주에 이어, 1월 13일 이번 주까지 2주에 걸친 <힐링 캠프> 동안, 이미 이휘재란 사람에게 충분히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휘재 폭풍눈물이 화제인 가운데 이휘재가 점점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 SBS 방송화면
(사진; 스포츠 서울)

마지막 <힐링 캠프> 제작진이 준 운동화 세트를 받아든 이휘재가 장인, 장모님꺼가 빠졌다며 선물 중 일부를 그분들께 드리고 자기 부부꺼는 사면 된다는 말이 굳이 덧붙이지 않았어도 <힐링 캠프> 이휘재편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성유리의 '이가정'이란 말이 얼마나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되었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 전의 지나온 시절이 '이바람'이란 단어 한 마디로 정리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그 시절조차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푸근한 미소가 지어지듯 들어줄 수 있었고, 이제는 '놀만큼 놀았다'는 그의 평가에 함께 수긍할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놀고 싶다'는 앙탈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시간이 되었다. 

2주에 걸친 그의 시간을 되돌아 보건대, 대상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지난 23년을 한결같이 대중들 옆에 존재해왔던 시간이라는 것이다. 갓 스무살이 넘긴 나이부터 스타가 되어 당대 최고의 인기남으로서 홍보 한번 하지 않은 음반이 17만장이 나갈 만큼 인기를 누렸고, 한참 인기 가도를 누릴 때 군대를 다녀와, 인기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고, 다시 거기서 치고 올라와, 가장 연애하고 싶은 남자로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 23년의 연예계 생활을 회고하며, 스트레스와 가족력으로 인한 실명 위기를 고백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고 토로하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 해 돌아가신 김열규 교수님이 마지막 까지 쓰신 글들이 모여있는 [아흔 즈음에]라는 책을 보면, 나이듦의 허무에 대한 글이 나온다.
'내가 무슨 빈 고무주머니인듯 느껴진다. 머리며 가슴만이 비는 게 아니다. 온몸이 허물 벗은 매미 껍질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의 존재 자체가 빈털터리가 된다. 내 속은 무슨 바람이 지나가도록 텅텅 비어 있다'.
독보적인 한국학자이자, 70여권이나 되는 저서를 남긴 노학자도 늙음 앞에서는 무기력했던 순간이다. 

하물며 득도의 경지에 이르른 학자가 그럴 진대, 범부는 오죽하겠는가. 하물며, 대중들의 호불호에 따라, 하루 아침에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는 연예인들의 처지는 오죽하겠는가.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은 나이듦에 대해 그 자신도 보기 싫은데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들보고 좋으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 자신도 버거운 나이듦에 대중들의 시선까지 얹고 가야 하는 연예인의 숙명이다. 그래서, 실명 위기와 정신과 상담을 토로하는 이휘재나, 그리고 그의 앞에서 공황장애와 사지 경련을 앓았다고 공감하는 이경규나 김제동의 처지는 더 안쓰럽다. 하지만 안쓰러워 하면서도 이제는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어른이 된 아이처럼 대중들은 한편 냉정하기도 하다. 그런 냉정한 잣대로 재단되는 세계에서 23년을 버틴 이휘재가, 그럼에두 불구하고 여전히 대단하기도 하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이휘재가 안쓰러운 이유는, 23년을 버텨오느라 그의 몸을 습격한 질병들 때문만이 아니다. 23년의 관록에도 불구하고 늘 대중의 호불호로 인해 뭇매를 경험하는 그의 애매한 위치때문이기도 하다. 마흔 세살의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인 이휘재는, 젊은 아내가 무색하리 만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여전히 리듬을 타는데 손색이 없고, '놀고싶다'는 그의 말이 무안하지 않은 젊음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런 느낌은 다른 한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철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철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복은 없어도 인복이 있다는 그의 평가처럼, 그는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가 아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스스럼없는 태도로 인해, 아는 사람과 덜 아는 사람들에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인하여 여전히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힐링 캠프>에서도 그렇다. 아내와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종종 그의 이야기는 수위를 찰랑 거렸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의 이야기를 하다, 그녀의 몸매 이야기까지 나갔을 때는 그의 토크의 잔은 순간 넘쳐 버렸다. <힐링 캠프> 만이 아니다. 지난 연말 sbs연기 대상에서도, 그의 진행은 다른 방송사 그 누구보다도 매끄러웠지만, 순간 순간 그가 좀 아는 연예인에게 다가가, 쓸데없다 싶은, 혹은 과하게 친한 척을 한다 싶은 이야기들로 인해, 다시 한번 이휘재라는 사람에게서 연상되는 편협함을 상기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늘 그가 하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매끄럽지만, 찰랑거리다, 때로는 넘치는 것들이, 대중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부디 한 살 더 먹은 그의 철듬이, 그 순간순간 넘치는 경계를 잘 다루어 두 아이의 아빠로서, '이가정'으로 회복한 좋은 이미지로, 오래도록 좋은 mc로 남아있도록 만들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14. 10:40

해가 바뀌었다. 2013년 말미에 새롭게 시작한 <1박2일>의 멤버들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무려 평균 연령 39.4 세, 제일 연장자 김주혁이 마흔을 훌쩍 넘긴 건 이미 예전 일이고, 막내 정준영과 무려 17살의 나이차가 난다. kbs 연예 대상에서도 보여졌듯이 이 형 슈트만 입혀 놓으면 아주 멀쩡할 뿐만 아니라, 작년 한 해 mbc에서 전설의 허준 선생으로 열연까지 하셨던 분인다. 그런데 제일 연장자이신 이분, 당신 입으로 말한다.

"1박2일 몇 회 만에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냐!"고
그리고 그의 자조적 표현 그대로, 지금 김주혁이 <1박2일>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동네 바보형'이다. 

1박2일(사진=KBS2 방송 캡처)
(사진; cnb 뉴스)

강호동이 이끌었던 1박2일의 전통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강호동이란 인물에서 연상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도력이라 할 수 있겠다. 때로는 동생들의 연합에 밀리고 치이는 순간이 있어도 어거지를 써서라도 물러서지 않는 기가 바로 시즌 1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강호동이 사라지고, 이어진 시즌2는 그의 그늘을 메우고자 제일 연장자로써 김승우를 앞세웠지만, 당연히 강호동의 빈 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시즌2는 매사에 시즌1과 비교되는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었고.
새롭게 시작된 시즌3는 그런 시즌2의 도로를 밟지 않는다. 대신 그와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그 누가 오던, 리더쉽을 앞세운 방식으로는 강호동이라는 거인과의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기에, 시즌3는 아예 리더쉽이 없는 리더쉽을 택한 것이다. 

당연히 나이 순으로 따지자면 김주혁이 시즌3에서는 리더가 되어야 할 처지다. 하지만, 지난 주 방송에서 보여지듯이, 김주혁은 가위바위보 게임 하나에서도 동생들이 단체로 짬짜미를 해 자신을 골탕 먹이는데도 매번 당하는 바보같은 형이다. 방송을 통틀어, 무려 다섯 번의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고, 그때마다 매번 보자기를 내는 동생들한테 따돌림을 당하는데도, 천연덕스럽게 내가 운이 나쁘구나 라며 순순히 벌칙을 당하는 형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형, 순진한데다가, 허당스럽기까지 하다. 
1월 12일 방송분에서, 허벅지 싸움을 하는데 동생들이 어이없이 나가 떨어지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김주혁, 보기와 달리, 세 아이의 아빠 차태현에게 대번에 나가떨어진다. 비장한 표정을 하고 나설 때만 해도, 아, 저 형 뭔가 한 건 해주겠구나 하지만, 결과는 예상 외다. 그 덕분에, 처음 셋이 함께 할 때만 해도, 구멍이다 싶은 김주혁, 김준호, 김종민 그룹에 '쓰리쥐'라는 허당 캐릭터가 만들어 졌다.  이때만이 아니다. 달고나를 만들 때도, 처음 나설 때만 해도, 이 형 이걸 잘 하는구나 했는데, 막상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영 미덥지가 않은 게 이 형의 모습이다. 형이라고 뭐든 다 잘하는 게 아니라는 어찌보면 평범한 진리를 김주혁은 몸소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궁시렁궁시렁 대면서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어떤 게임에서도 '나만 아니면 돼' 하다가도, 자신이 벌칙에서 제외되면 누구보다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다가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뒤로 물러서는 적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서도, 제일 먼저 앞장 서서 패달을 밟고, 언제부터인가 차을 몰면 운전대는 그의 차지인 경우가 많다. 1월12일 방송분, 아프리카 문화관 광고 촬영 과정을 보면, 아프리카 옷을 입고 제일 높이, 제일 그럴듯한 표정을 지으며 춤을 추는 사람도 역시나 김주혁이다. 


	1박2일 정준영
(사진; 조선닷컴)

김주혁이 가장 열심히 하면서도, 나이가 많다, 형이다 내세우지 않으며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자연스레 상황상황에 맞게 손아래 동생들이 제 역할을 하며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제작진과 딜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데프콘이 예의 그 둔중한 카리스마(?)를 내세우며 한 마디 하고, 게임을 하는 상황에선 차태현이 발군의 능력을 내보인다. 차태현만 해도 그의 재기발랄함으로 시즌2에서 누구보다 기대를 많이 받았지만, 그의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들이, 시즌3에 오면서 종종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심지어,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 도대체 저기 저 사람이 왜 있나 싶은 취급을 당하던 김종민조차도, 제 몫이 있어 보이기에 이른다. 어디 그뿐인가. 제일 막내 정준영이 광고 촬영 분량에서 추장 역할을 하며 형들을 좌지우지해도, 그 누구하나 어색하지 않게 그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사실 그런 김주혁의 모습은 몹시 인간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치는 형들이 인간적이지 않듯이, 막상 사회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나이로, 자리로 위압적인 캐릭터로 변모해 가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실수를 해도, 그것을 덮으려 하고, 그러다 보면 무리수를 저지르고, 그걸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눈을 부라리게 되는데, 그런 나이듦의 왜곡된 반응이 김주혁에게는 없다. 그가 시즌3에 새로 들어온 신참이라는 처지가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김주혁이란 인물의 캐릭터 본연이 그런 탓도, 그가 , 혹은 제작진이 설정한 시즌3의 맏형 캐릭터가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맏형 만이 아니다. 피디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누나> 마지막 회 크로아티아 바다에 입수를 해야 하는 이승기는 야심차게 나영석 피디의 수영복세트를 준비한다. 물귀신 작전으로 피디와 함께 입수를 할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바닷가 한 구석에서 피디가 가려주는 대형 수건 안에서 혹여나 자신의 맨발이 들킬카 노심초사하는 이승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1박2일>의 윤호진 피디는, 나영석 피디의 말을 빌리면 '밀당의 하수'다. 새해 첫 소망을 말하려 찬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멤버들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윤호진 피디는 주먹을 꽉 쥐고,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얼음장과도 같은 물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매번 야무지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만, 종종 멤버들의 화이팅에 밀려 그가 준비한 작전이 먹히지 않아, 혹은 자연이 도와주지 않아, 고개를 수그리는 모습을 보이는게 <1박2일> 시즌3의 새로운 매력이다. 김주혁의 동네 바보형 캐릭터에 이은, 어쩐지 만만해 보여 도와줘야 할 거 같은 피디, <1박2일>의 묘한 새로운 매력이다. 

덕분에, 아직은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없는 시청률이지만, 사실은 고난의 행군이다 싶은 혹독한 미션들이지만, 어느새 <1박2일>은 참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새삼스러운 '불통'과 '상명하복'이 리바이벌되는 분위기에서, 형답지 않은 형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는 형이 있는 <1박2일>은 정신적 휴식을 준다. 부디 이 정서를 잘 유지해 매력적인 <1박2일>이 새 전통을 만들어 가시길~


by meditator 2014. 1. 13. 11:15

2014년 새해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 오프닝에서 김준현은 자신있게 말한다. 향후 7년 정도, 작년 연말 연예 대상 시상식에서 <인간의 조건> 팀이 받은 '실험정신상'을 대신할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그도 그럴 것이 김준현의 말대로, 실험적 정신이 살아있는 프로그램은 <인간의 조건>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인데,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장르의 작품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결코 연예 대상에서 수상을 할 일 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독보적인 위치로 자부심을 내보이는 <인간의 조건>이지만, 프로그램의 성격 외, 동시간대 타 방송사와의 경쟁으로 들어가면 위축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의 <세바퀴>가 1위의 자리를 탈환하는가 싶더니, 이젠 케이블의 <히든 싱어>의 추격세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이젠 특집 <히든 싱어>에 밀리기 까지 한다.
이렇게 작품의 내용으로는 자부심을 한껏 뽐내지만, 타 방송사와의 경쟁에서는 위기를 맞이한 <인간의 조건>이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사진; tv리포트)

1월 11일 선보인 <난방비 0에 도전하기>에서 보여지듯이, <인간의 조건> 제작진이 우선 선택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강력한 미션을 내세우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촬영이 이루어지던 지난 연말, 날마다 갱신하던 한파 속에서, <인간의 조건> 팀에게 주어진 것은 10도의 냉기가 가득한 아지트였다. 영하가 아니라니 다행이라고. 게스트로 등장한 이봉원이 딱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8~10 도가 냉장고 적정 온도라고. 결국 한파주의보 속에 멤버들은 온수 역시 나오지도 않는 냉장고 집에서 1주일을 보내야만 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한 겨울 얼음 동동 띠워진 냉면을 먹으며 겨울을 만끽하듯, 추위에 떠는 <인간의 조건>을 보며 자신이 누리는 안온한 온기를 역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추운 냉골에서 서로 껴안듯 도란도란 부대끼는 멤버들과, 서로가 추울까 내복에, 수면 바지에, 심지어 군대 깔깔이 까지,  각자 바리바리 싸들고 온 훈훈함은 냉기는 커녕 따스함을 배기시킨다. <인간의 조건>의 제 맛이다. 

뿐만 아니라, 게스트도 바뀌었다. 그동안, 제 아무리 유명해도, 멤버들에게는 낯설었던, 그래서 어쩐지 함께 게임을 해도 겉도는 거 같고, 얼굴 알고, 서로 이제 친숙할 만하면 헤어져야 했던 아이돌 멤버 대신에,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개그맨 선후배가 게스트로 등장했다. 

흔히들 개그맨들이 텔레비젼에 나와서 온갖 재밌는 행동을 해서 평소에도 재밌는 사람이라는 속설과는 달리, 실제 개그맨들이 대부분 진지하고 숫기가 그다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는 건,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접해야 할 때마다 진땀을 흘리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을 통해 익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기에 잘 모르는 아이돌 멤버의 등장은 그들과 섞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본문이미지
(사진; 스타 투데이)

이제 새롭게 등장한 김기리는 이들의 <개그콘서트> 직속 후배로, 그런 시간을 압축할 수 밖에 없는 장점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이미 <개그콘서트>를 통해 연예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람이지만, 예능에서는 신선한 캐릭터이기에, 이제 1년 여 여섯 멤버의 면면이 익숙해져 가는 <인간의 조건> 자체에도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었다. 잘 아는 막내 동생을 얼르고 달래는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도 활기차 보였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없이, 그 누구랑도 함께 붙여놔도 바로 푸근한 그림이 나오는 김기리의 선택은 뻔하지않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선한 김기리를 보니, 또 다른 개그 콘서트의 익숙한, 하지만 예능에서는 신천지인 인물들의 활약을 어떨까 지레 기대를 해보게도 되는 것이다. 첫 방에 불과한 <사남 일녀>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거, 별거 없다. 정말 막내딸 같던 이하늬의 천진난만함이 다다. 부디, 광활한 <개그 콘서트>라는 풀을 <인간의 조건>이 올 한 해 제대로 써먹어 보길 바래본다.

덕분에 이 날 방송의 화룡점정은 당연히 김기리의 몰라 카메라가 되었다.
등장부터 개구장이 막내동생처럼 그리고 <인간의 조건>게스트가 되었다는 기쁨으로, 공중으로 한  1m는 부양된 듯 의기양양해 하던 김기리가 선배들이 짜고 치는 몰래 카메라에 희생되어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은 물론 가학적이었지만, 그의 순수함을 한껏 보여준 정점이었고, <인간의 조건>에 모처럼 등장한 클라이막스였다. 

<꽃보다 누나>가 왜 별 거 아닌, 길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겠는가. 이제는 다큐에서도 드라마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그간 부족했던 것은, 단타의 잽은 난무하지만 전체적 드라마를 만드는 고비가 없었는데, 친근한 후배 김기리가 등장해 단번에 그걸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어려워하고, 당황해 하고, 그리고 눈물까지 흘리고, 그런 그가 안쓰러워 선배들이 물고 빨고 하는 장면은, 그간 <인간의 조건>에서 드물었던 진심이 보여진 장면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인간의 조건>이 관록의 <세바퀴>를 이기기 위해, 또 다른 절창의 감동<히든 싱어>를 제끼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체취인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인간적인 체취'는 김기리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선배로 등장한 이봉원은, 야구 방망이를 들고 군기를 잡겠다는 모습과는 달리, 늦은 밤 돌아오지 않는, 이른 아침 밤새 추위로 잠못들다 곯아 떨어진 후배들을 위해 솔선수범 상을 차린다. 늦게 들어온 까마득한 후배 김기리를 위해 상을 차려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였기에, 그를 믿고 날뛰던 김기리가 그의 호령에 더 당황스러워 했던 것이다. 김기리의 말처럼, 선배이기 보다는 아빠같은 훈훈함으로 다가왔기에. 그런 이봉원의 재발견도 또 다른 '인간적인 체취'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선후배의 훈훈한 모습으로 시작된 '인간적인' 새해의 출발이 좋다. 부디 이 분위기를 좀더 농밀하게 끌어내, 새해에는 '실험적' 시도 이상, 보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인간의 조건>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12. 12:11

'인간이라는 종을 탄생시킨, 생물체들의 그 엄청난 뒤얽힘은 이동성, 미끄러짐, 이주, 도약,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인간의 역사가 노마드적인 것이 되기 훨씬 전에, 아메바에서 꽃으로, 생선에서 새로, 말에서 원숭이로 진화된 생명의 역사 자체가 이미 노마드적이었다'


자크 아탈리는 그의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유목하는 인간이라고 정의내린다. 심지어, 우리가 인류 문명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 농업을 통한 정주조차도, 결국, 노마드적 삶의 결과물이었다고 단정을 내린다. 그의 이론은 차치하고라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삶이 이제 지구의 전 대륙 심지어 남극에까지 그 손을 뻗치는 영역만 보더라도 노마드적 경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현실의 땅을 취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디지털 유목이라 하여, 오늘도 하염없이 인터넷의 바다를 유랑하고 있는 중이다. 실상이 이럴진대, 우리가 어찌 노마드적 성향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본성(?) 혹은 경향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늘날의 인간들은, 휴식의 영역에서 조차도 노마드적 성향을 보인다. 즉, 정주해 있는 동안 자신의 삶에서 배태되었던 노마드적 본능에의 억누름을 휴식을 통해 발산하는 것이다. 바로 여행이 그것이다. 휴식이라면 그저 편하게 쉬면 될 것인 것을, 인간들은 시간을 쪼개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우리네 영토도 모자라 고생고생을 하며 해외로 나간다. 1월 10일 방영된 <나 혼자 산다>에서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5시간이 넘는 지난한 여정 끝에 도착한 나폴리 항구나 부산항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면서도, 막상 돌아올 시간이 되자, 그곳을 떠나는 걸 아쉬워 하는 김광규처럼, 떠나고 고생하고 후회하면서도 다시 떠나는 여행의 딜레마를 반복한다. 그러니 이걸 노마드적 본능이라고 설명할 밖에.

(사진; 리뷰스타)

공교롭게도 소위 말하는 불금의 밤, 나란히 tvn과 mbc, 그리고 sbs는 어딘가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정글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와 시골집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미션을 중심으로 한 <정글의 법칙>과 <사남일녀>를 빼고서도, <꽃보다 누나>와 <나혼자 산다> 김광규, 김민준 편은 온전히 여행 그 자체다. 

물론, 여행이라고 다같은 여행은 아니다. <꽃보다 누나>가 터키에서 경유를 해야만 갈 수 있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나라 크로아티아로의 9박10일의 장정이었다면, <나 혼자 산다> 김광규의 이탈리아 여행이나, 김민준의 한라산 등반은 그 반에, 그 반에 반에도 못미치는 일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정의 길고 짧음보다는 두 여행 과정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홀로냐, 함께 하냐이다.

<꽃보다 누나>는 그토록 고된 일정에도 김희애가 밤잠을 못이룰 만큼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는, 그래서 작가 김수현의 한 마디에 그 스트레스가 눈물이 되어 쏟아지는 부담을 얹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으로 인한 부담만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되돌려 주는 선물도 만만치 않다. 데뷔한 이래 한번도 누군가에게 책잡혀본 일이 없는 바른 생활 사나이 이승기가 원점에 서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고, 덕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연예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멋진 남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관광객이 손을 꼭 잡고 이제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처지의 이미연에게, 한참 위의 선배들은 아홉 째 날이 넘을 즈음에야 진심어린 조언을 들려 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따스한 위로의, 그리고 진지한 조언들이 서울의 어느 거리 한 곳에서 였다면, 보는 사람마저 뭉클해지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고된 여행의 일정을 함께 해낸 동료애 위에 보태진 말이기에, 정말 이미연에게 절실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 OSEN)

함께 하는 여행은 결국 함께 해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덕분에 얻어지고 쌓이는 것들이 있다. 반면 홀로 하는 여행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벽부터 시작된 한라산 백록담을 향한 김민준의 강행군은 그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어 한 마디 변변히 못하는 김광규가 정말 홀홀단신 이탈리아 여행의 과정에서 빚어내는 해프닝도 다르지 않다. 그는 말 한 마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발버둥치며 외로워하지만, 덕분에 곳곳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는 외국인들과, 여행을 떠난 한국인 동료와의 뜻하지 않는 만남이란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마중 나온 매니저가 밀어주려는 가방 카트를 자신만만하게 끌고가려는 김광규의 모습에서, 홀로 여행의 성과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홀로 떠나건, 함께 하건, 자신이 머무르던 일상을 떠난 그 새로운 공간과 시간은 떠난 자에게 원컨 원치 않건 뜻밖의 선물을 건넨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노마디즘의 정신이다. 노마디즘이 그저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가 공통 집필한『천개의 고원(Mille plateux)』(혹은 '천의 고원'으로 번역)에서, 들뢰즈, 가타리가 주목한 유목적 삶은 그냥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에 달라붙어 새로운 생성(生成)의 땅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즉, 노마디즘은 제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붙박히지 않고 끊임없이 탈주선(脫走線)을 그리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행을 뜻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뉴스엔)

떠남이 지금 머무름과 다르지 않다면 무에 그리 고생을 감수하면서 떠나겠는가. 인간은 묘하다. 머무를 수 있는데도, 구태여 또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하여 떠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바꾸고, 지금 자신이 사는 자리를 벗어나 비약한다. 결국 노마디즘의 현존, 여행은 현존 삶의 노마디즘을 위한 또 하나의 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텔레지젼을 통해서라도 바라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시청자들, 그런 노마디즘의 간접 체험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성장한 이승기에,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누나들, 그리고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 여행을 홀로 해낸 김광규, 자신의 목표인 백록담에 닿은 김민준에게 매료되어 그걸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 11. 13:20

'첫사랑은 깨진다'

아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천재지변, 호환마마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이 금기의 '속설'이었다. 하지만, 이제 2014년에 이르러서는 이 속설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할 듯하다. 그건 바로 첫사랑을 다룬 드라마들이 하나같이, 소중한 첫사랑의 성공으로 드라마를 완결지었기 때문이다. 
2013년의 대미를 장식하며, 그리고 2014년 초입에 조용히 종영을 한 <응답하라 1994>와 <예쁜 남자>는 동일하게 여주인공이 첫사랑의 그 오빠를 자신의 것으로 쟁취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응답하라 1994>가 지겹워하면서도 또 낚여서 볼 수 밖에 없는 나정이 남편 신드롬을 만들어 낸 반면, <예쁜 남자>는 첫 방 시청률이 최고 시청률이 되는 불운을 겪으며 3%대의 낮은 시청률로 막을 내리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무엇이 동일하게 첫사랑 사수하기를 그린 두 드라마의 궤를 달리하게 만들었을까?

(사진; osen)

무엇보다, 첫사랑의 대상, 그 오빠의 캐릭터에서 두 드라마는 확연한 차이를 내보인다. <예쁜 남자>는 드라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그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돌릴 수 없는 천하 제일 꽃미남 오빠를 등장시킨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긴 머리를 휘날리는 꽃미남 오 마테(장근석 분)에게 한 눈에 반한 소녀 보통이(아이유 분)가 여주인공인 것이다. <예쁜 남자>의 주인공 마테는 그의 잘생김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람이다. 그의 안하무인 태도도,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너뛰며 그녀들의 도움 덕에 살아가는 백수의 삶도. 하지만, 드라마는, 그리고 여주인공은 그래도 그 오빠를 일편단심 사랑하지만, 시청자들은 외면을 했다.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처럼 만화 주인공처럼 아름답게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동안 수많은 꽃미남에 단련된 시청자들에게 그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꽃미남으로 등장한 주인공을 연기한 장근석이, 이미 그의 전작들에서 그의 꽃미남 캐릭터를 질리게 써먹은 한에서, 더더욱 그의 꽃미남 연기는 진부한 요소로 작동할 뿐이었다.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예쁜 남자>와 반대의 전략을 쓴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 명도 쓰레기(정우 분)다. 그리고 쓰레기답게 그는 옷도 안갈아 입어 여주인공이 그의 옷을 벗겨 가고, 상한 음식을 먹고, 음식을 앞에 놓고 여주인공과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기 십상이다. 그의 허술한 모습에 시청자들이 허리띠 풀고 넉넉하게 웃어제낄 때 쯤, 드라마는 반전을 시작한다. 아픈 여동생에게 '이노무 가시나야~'하고 욕을 한바탕 해제끼더니, 그녀가 원하던 과자를 잔뜩 사다 던져놓고 사라진다. 병원에 입원해서 아퍼서 잠못드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원하는 온도로 덥힌 우유를 가져와주고, 그녀의 베게를 높여주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잠재워 준다. 심지어 알고보니 이 쓰레기가 의사란다. 게다가 정말 오빠인 줄 알았는데, 죽은 오빠를 대신해 이집의 아들 노릇을 한 거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레기를 나정이의 남편으로 기대한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이미 드라마 초반, 이 집의 아들 노릇을 천연덕스럽게 한 쓰레기의 캐릭터에 있다. <응답하라 1994>는 멋진 남자를 그려내기에 앞서, 가장 친근한 남자 캐릭터를 먼저 그려 냄으로써 인간적으로 시청자들을 공략한다. 

당연히 '위로'와 '힐링'이 대세가 되었던 2013년의 시청자들이 그저 눈에 아름다운 꽃미남과, 마음을 푸근하게 녹여주는 쓰레기 중 누구를 선택했는가는 두 드라마의 성패로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이 두 캐릭터들은 여주인공을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조차 천양지차다. 

<예쁜 남자>는 말 그대로 예쁜 독고 마테의 성장기이다. 그저 자기 자신이 이쁘고 그 이쁜 것을 이용해 세상을 농락하기 바뻤던 한 남자가, 자신이 만났던 여자들을 통해 세상을 알아아고 성장해서 진정한 사랑에 도달한다는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나쁜 남자 개과천선기이다. 당연히, 첫 눈에 반해, 처음부터 자기 집 돼지 갈비를 통으로 들어다 줄 정도로 그에게 정신이 빠진 보통이의 수난기이기도 했다. <꽃보다 남자>가 성공한 이유는, 보통이만큼이나 평범하고 못난 소녀 금잔디가 꽃같은 남자들, 그것도 무려 네 명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환타지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쁜 남자>는 그 반대다. 결국 마테는 첫사랑 보통이와 사랑의 결실을 맺지만, 그 과정에서 보통이는 숱한 눈물을 흘리고, 다른 여자들은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테 성장기의 도구로 작동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전히 리모컨의 향배를 쥐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이 구박당하고,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 드라마를 참고 보아 줄 인내를 지닐 만큼 마테 역을 하는 장근석이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 이유는 장근석이 매력적이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 눈에 안경이라고 <꽃보다 남자>에서도 네 명의 남자들을 놓고, 얘가 낳느니, 쟤가 낳느니 하며 이전투구했던 취향의 다양함이, 마테 한 사람으로 만족하기엔, 선택의 폭이 좁았다. 최다비드(이장우 분)가 있었지만, 마테 중심의 이야기는 한계가 분명했다. 

반면,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는 알고보니 쓰레기가 아니라 연애의 고수였다. 수많은 여성들의 탄성을 자아냈듯이 쓰레기는 늘 나정이 일편단심이었다. 운동장에서 자신의 체취가 밴 옷을 벗어서 굳이 긴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나정이를 찾아 던져주었으며, 연인이 되고 싶은 동료에게 이 사람이 그 사람좋은 쓰레기인가 싶게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나정이가 추울까바 저만치 차를 몰고가다 다시 돌아와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나정이가 원하는 책과 나정이를 위로하는 인형을 가장 잘 알아챈다. 쓰레기처럼 무심하고, 말은 거칠지만, 언제나 여주인공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가 어렵게 얻은 직장을 위해 결혼을 취소해줄 만큼. 그런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천하의 쓰레기라도 마다치 않는게 당연하다. 게다가 쓰레기만 있는 게 아니다. 쓰레기를 위협할 만한 일편단신 칠봉이도 만만치 않다. 

(사진; 뉴스엔)

물론 두 드라마의 성패를 꼭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로만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응답하라 1994>가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뒷받침한 90년대의 향수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면, <예쁜 남자>는 결국에는 가장 평범한 사랑 이야기와 진부한 출생의 비밀이 남은 그저 그런 이야기들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타를 앞세운다 한들, 허술한 전략과 스토리텔링을 가진 드라마는 존중받을 수 없다는 진실을 입증한 셈이다. 

일렉 선녀의 키치스러운 방을 등장시킬 때만 해도, 꽃미남이지만 먹을 거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무너지는 마테를 그려낼 때만 해도, 드라마는 만화가 가지는 묘미를 살리려 애를 쓰는 듯했다. 애초에 여성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상식적으로 풀어내기 힘든 제재를 용감하게 다룰 때만 해도, 그 과정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대신하는가 싶었지만, 결국은, 만화가 다루었던 19금의 상상력도 공중파의 제동에 걸린 채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고, 이건 애인인지 멘토인지 헷갈리는 어정쩡한 이야기에, 통통 튀는 보통이의 연애 이야기도 눈물 콧물짜는 순애보로 둔갑시켜 버렸다. 차라리 어차피 시청률이 안나올 바에야 애초에 야심차게 시도했던 키치스러운 매력에 집중했다면 독특한 드라마로 기억될 가능성이라도 있었겠다 싶다. 

<예쁜 남자>가 차라리 케이블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공중파의 어중간한 도덕적 잣대에서 자유로이 좀 더 성인 만화로서의 상상력을 키워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애초에 특정한 장르에 치중한 만화를 어설프게 대중적 코드로 바꾸는 과정에서의 오류는 치명적이었다. 

종방연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해외에 나가야 할 만큼, 그런 그를 공항을 꽉 메운 채 기다려 주는 해외팬들만큼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장근석은, 국내 활동에서는 <사랑비>에 이어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좋은 수출 상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한류 드라마에 의존하는 드라마 시장이나, 장근석이라는 배우에게나 지대한 부담으로 남을 듯하다. 


by meditator 2014. 1. 10. 11:58

매주 수요일 mbc를 통해 방영되는 <라디오 스타>와 목요일 kbs2를 통해 방영되는 <해피 투게더>를 보고 있노라면 동화<해와 바람>이 떠오른다. 

동화<해와 바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이야기다. 해와 바람이 길 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내기를 했는데, 있는 힘껏 다해서 바람을 뿜어대면 댈수록 자신의 옷을 움켜쥐기만 하던 나그네가 해의 따스한 기운에 스스로 옷을 벗고 말았다는. 



	해피투게더/KBS제공
(사진; 조선닷컴)

김구라라는 '독설'의 아이콘을 중심 이미지로 한 <라디오 스타>의 mc진은 방송 도중 종종 그들의 머리에 그려지는 악마의 뿔 cg처럼 호시탐탐 어떻게 하면 게스트를 벗겨 먹을까 고심을 한다. 그것이 때로는 게스트의 원치않는 진실을 억지로 벗기려 했거나, 벗겨졌을 때 구설과 반발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바람이 불어주면 스스로 자신의 옷을 벗어주는 게스트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라디오 스타>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위해 물불 안가리고 옷을 벗어주는 게스트 정도에 따라 복불복 게임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라디오 스타>가 늘 전쟁터인 건 아니다. 원건 원치 않건 옷을 벗어던진 홀가분함, 시원함이 늘 이곳엔 존재한다. 마치 '야자 게임'을 한 판 하고 나면 부쩍 친근해 지는 관계처럼, 육박전과도 같은 시간을 통해 늘 게스트들은 걱정했지만 좋았다는 소회를 밝히곤 한다. 

반면, <해피투게더>는 해님과도 같다. '배려'의 아이콘인 유재석을 중심으로 박미선 등의 mc 진이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게스트의 토크를 유도한다. 물론, <해피투게더>에도 악마의 뿔이 돋아나올 것같은 박명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박명수는 <라디오 스타>처럼 독설을 뿜어내거나, 직설적 발언을 하면 동료 mc들이 거들기는 커녕, 오히려 힐난을 당하기 십상이다. 왜 그러냐는 식으로. 물론, 결국은 그런 박명수의 돌직구는 유재석의 완화된, 게스트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방식의 질문으로 돌려져 가기 십상이지만, 애초의 그 날카로움은 한결 완화된 채 전달되기 마련이다. 덕분에 토크쇼에 낯선 연예인들조차 <해피투게더>에선 기분 나쁘지 않게 푸근하게 그 분위기에 얹혀 즐기다 갈 수 있다. 심지어 '먹방'까지 있으니 왁자지껄 한판 잔칫집 분위기이기 십상이다. 

물론, 동화 <해와 달>에서는 해의 승리로 이야기는 끝나지만, 토크쇼 <라디오 스타>와 <해피투게더>의 경우는 승자를 논할 수는 없다. 각 프로그램의 개성이요, 등장하는 게스트를 요리하는 나름의 스타일이니까. 게스트의 성향에 따라, 그리고 홍보냐, 무존재였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냐 게스트의 필요에 따라, '나를 마구 다뤄줘' 혹은 '나에겐 따스한 도움이 필요해'의 방식을 택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시청자 역시 그런 면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사진; 파이낸셜 뉴스)


이런 특징에 입각해 1월 9일 <해피투게더>는 가장 <해피투게더>에 어울리는 특집이었다. 2013년에 두각을 나타낸 신인들 특집이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와 윤진이로 활약했던 김성균과 도희, 그리고 <왕가네 식구들>에서 최상남 역할로 kbs 연기 대상 신인상을 거머쥔 한주완, 그리고 화제의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 조역으로 시작해 주연의 자리를 거머쥔 설설희 역의 서하준 등 이제 막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네 명의 새내기들이 <해피투게더>를 빛냈다. 

첫 토크쇼의 출연인 만큼 '처음'의 느낌이 완연한 네 명과 달샤벳 멤버수빈을 대상으로 유재석은 특유의 장기를 선보인다. 누구 한 사람 결코 처지는 느낌이 없는, 등장한 네 명의 신인과, 그리고 거기에 곁다리다 싶게 얹혀져 나온 수빈까지 모두를 배려하는 토크를 진행해 간다. 이제 처음 만난 김성균과 서하준이 종종 손을 꼭 붙잡는 것까지 놓치지 않고 캐치해 내면서, 이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그들의 한 사람의 지나온 시간과 새해 소망까지 결코 누락되지 않는 토크를 꾸려나간다. 심지어, 도희가 말을 할 때마다, 함께 드라마를 했던 김성균이 '엄마 미소'를 띠고 바라보는 것까지 담음으로써, 다른 mc들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김성균의 그 표정을 복기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자연스레 끌고 갔다. 



이날 등장한 게스트들은 달샤벳을 제외하고는 신인이라지만, 이미 2013년 화제작인 <응답하라 1994>, <왕가네 식구들>, <오로라 공주>를 통해 충분한 사랑이 검증된 사람들이다. 이미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그 작품을 즐겨 봤던 시청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만한 그런 어찌보면 '공인'된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해피투게더>는 그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끌고 간다. 시청자들의 '우쭈쭈쭈'에 화답하여, 그것을 한층 더 사랑스럽게 고양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날의 <해피투게더>가 더 좋았던 것은 그 흔한 신인들의 지나온 시절을 긍정적으로 그려낸 것에 있다. 물론,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신인 중 가장 중고 신인이라 할 수 있는 김성균의 긍정적인 자세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찍을 때조차 망치 등을 들고 일을 해야 했던 고생스러운 시절을 생각 해 보면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라 정의내리는 김성균의 모습, 뿐만 아니라, 오디션 현장에서 거침없이 옷을 벗어야 했던 시절을 그저 작품만 생각했던 열정으로 말하는 한주완의 지난 시절, 거기에 여수 소녀 도희의 '운좋았다던' 상경기까지, 박명수의 눈물의 고생담이 무색하게, 고생스러웠지만, 이제는 돌아보니 소중한 그들의 이야기가, 어느새 시청자들로 하여금 '우쭈쭈쭈'하는 마음을 넘어 이제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만든 시간이었다. 덕분에 2014년 새해부터 모처럼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보는 사람들조차 힘이 생기는 시간이 되었다. 


by meditator 2014. 1. 10. 09:36

<라디오 스타>를 논하기 전에, <미스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미스코리아>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동시간대 경쟁작인 <별에서 온 그대>가 경쟁작이란 말이 무색하게 20%을 훨씬 웃도는 시청률로 쭉쭉 치고 나가고 있는데다, 그나마 만만한 경쟁작이던 <예쁜 남자>가 이번 주로 종영하고, 다음 주부터는 방학기 원작의 <감격시대>가 야심차게 대기하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할 입장인 것이다. 아마도 그러기에, 삼일 밤을 샌 주인공 이연희를 <라디오 스타> 미스코리아 특집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놓고 보자면, 과연 <라디오 스타>는 자신의 프로 앞에 방영되어 자기 프로그램의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같은 방송국 수목 드라마에 도움이 됐을까? 그 답은 글쎄다. 아니 오히려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는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사진; 한경 닷컴)

물론 시작은 이 드라마의 히로인 이연희에 대한 화려한 소개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드라마 <미스코리아>에서 화제가 되었던, 계란과 귤의 먹방을 재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삼일 밤을 새고 온 여배우 이연희는 그 자리에 앉아 눈빛을 흔들리지 않느라 애쓰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였고, 프로그램 말미 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소회를 남기기에 이른다. 

오히려 1월 8일의 <라디오 스타>를 빛낸 것은 이제는 분량도 없는 아마도 이젠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측을 하게 되는 쥬얼리의 멤버 예원이었다. 하지만 과연 예원의 독보적인 활약이 드라마 <미스 코리아>에 도움이 되었는가 라면 그녀가 <라디오 스타>의 출연으로 다시 간택되어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드라마 내의 캐릭터를 다시 재연하는 예원의 모습은 톡톡 튀었지만 그 모습을 다시 볼 이유가 없을 것 같고, 오히려 예원이 전하는 바 주인공 이연희에 대해 섭섭했던 점은, 모 신문 연예계 가쉽란에, 신인 여배우를 군기 잡으려는 못된 선배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처럼 이미 회자되었던 것이라, 주인공 이연희의 이미지를 갉아 먹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 제작진은 가쉽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굳이 또 거르지 않고 방송으로 내보냈다. 언제나 그렇듯 이연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해명은 변명을, 구설은 구설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라디오 스타>는 그걸 마다치 않는다. 

(사진; 폴리뉴스)

심지어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 예원에 이어, 서브남이라는 이기우의 분량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경지에 이르르면, 과연 <미스코리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이 드라마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라며.

물론 <미스코리아> 특집까지 마련해 주었음에도 제작진이 밝히듯이 촬영 때문에 자리를 채워주지 못한 주인공급들 때문에 애초에 원하던 바의 그림이 그려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월 8일의 방송분은 애초에 원하던 그림이 나오지 않은 <미스코리아> 특집이라기 보다는, 그래도 애써서 <미스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을 홍보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기 보다는, 시늉으로만 홍보요 하고, 그저 늘 <라디오 스타>가 하던 식의 레파토리를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식이었다면 과연 주연 여배우가 삼일 밤을 새고서도 이 프로그램에 참석할 의의가 있었나 싶게.

즉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의 강박인 것이다. 오늘도 누구 하나를 띄워야 한다는. 오늘도 출연자 중 누구 한 사람을 검색어의 수위에 올라갈 만한 이슈를 만들어 내세워야 한다는 강박이 앞 시간대 드라마<미스코리아>에 대한 지원 사격이란 명제에 앞서는 것이 1월8일의 방송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출연한 네 사람 중 스스로 열심히 주목을 받으려는 예원이 치고 나오고, 여주인공 이연희는 계란과 귤이나 먹다, 존박이 해서 유명한 '니냐니뇨'나 해주고 간 셈이 되었다. 이기우는 기면증 재연이라도 해서 빵 터져 강력한 한 방을 보였다지만, 제작진의 예언처럼 등장 인사가 마지막 멘트가 된 허태희는 마지막 인사조차 편집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기우의 배우들은 <라디오 스타>를 무서워 한다는 말처럼, 예능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감히 <라디오 스타>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할 엄두를 내선 안된다는 명제를 재연해 줄 뿐이었다. 

<라디오 스타>가 살벌한 토크 서바이벌이요, 미는 놈만 밀어준다는 스타일이라는 것은, 새삼 확인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라지만, 과연 자사 드라마의 홍보의 장을 펼쳐놓고 까지 이런 식이라면, 굳이 애써 그런 장을 열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그램 내내 드라마 <미스코리아>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는 '가슴' 등 가쉽성 소재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기우의 말 대로 정말 좋은 드라마라지만, <라디오 스타> 어디에서도 정말 좋은 드라마 혹은 그게 아니라도 재미있을 거 같은 드라마, 파스타의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드라마, 골든 타임의 배우들이 다시 한번 고군분투하는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제주도를 오가며 찍었다는 하다못해 그 흔한 촬영 에피소드조차 없었으니 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싶다. 

물론, <라디오 스타>는 <미스코리아>의 홍보건 뭐건, 늘 자신이 해오던 대로 해왔으니, 굳이 탓할 꺼리가 없다라고 하면 없을 것이다. 아니, <라디오 스타>는 <라디오 스타>지, 왜 대신 홍보를 해줘 라고 당당히 반문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신 이제 mbc프로그램이라도 자기 작품의 홍보를 위해서는 kbs2의 <해피투게더>의 한 자리를 섭외해 보는게 나을 듯하다고 말할 밖에.


by meditator 2014. 1. 9. 08:53

흔히 우리나라를 방문하거나 한동안 머무르던 외국인들이 한국, 한국 사람에 대해 가장 명료하게 정의내리는 말이 있다. 

'정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도 이런 말에 대해 동의할 뿐더러, 정이 많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이란게 무얼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情)'이란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이란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도 쉽게 내 주변의 사람처럼 쉽게 잘 받아들여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마음을 나눈다는 이 말, 정말 좋을까? 문제는 사람들이 마음만 나누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속담에도 있듯이, '정'을 무기로, '남의 젯상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식이 된다는 데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대한민국 사회의 정겨운, 하지만 알고보면 징글징글한 인간적 관계들이, 불륜이라는 도덕적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따뜻한 말 한 마디>는 고스란히 그려내 보인다. 

이미지



<따뜻한 말 한 마디>는 흡사 불륜에 대한 세밀화와도 같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불륜 이후에 게임의 다음 행로를 버튼을 눌러 선택하듯, 이혼, 복수 등 명료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과 달리,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불륜을 겪는 과정, 불륜 이후의 심리, 불륜이 미치는 파급에 대해 마치 섬세한 조사 보고서라도 되는 양 그려 내고 있다. 덕분에 그 어느 드라마보다도, '불륜'이 부부 사이의 흔해빠진 사건이나 이혼이나 간통이라는 법률적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부부 사이에 인간적 모멸과 심지어 파멸까지도 불러올 만한 심리적 트라우마을 가져올 만한 사건이라는데 공감대를 충분히 자아내고 있다. 물론, 그간 통속적으로 부부 관계를 그려냈던 타 드라마와 달리 섬세한 이런 묘사가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가 보다 대중적인 입지를 차지하는데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인간 관계를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드라마라는데 있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가는 세밀화는 이제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들의 배우자를 넘어 존속과 친지의 관계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 대한민국에서만 보여질 수 있는 이혼의 풍속도로 그 색채를 변주하고 있다. 처음 은진(한혜진 분)과 재학(지진희 분)가 만났을 때만 해도 불장난같은 사랑이었다가, 그게 재학의 아내 미경(김지수 분)이 알게 되고, 드디어 성수(이상우 분)까지 알게 되며 본격적인 불륜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두 부부 사이의 일은 언제나 주변 인간들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두 부부, 혹은 네 사람의 일로 그칠 수가 없다. 아직 모두가 자신들이 벌여놓은, 혹은 예상치도 못하게 배우자의 배신으로 겪게되는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그로인해 벌어지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터지는 폭탄 세례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깝게는 미경의 가족에서 그 사실을 알게된 재학의 어머니(박정수 분)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잘난 자신의 아들, 번듯한 집안을 내세우며 며느리 미경의 상처를 긁으며 덮을 것을 종용한다. 자기 가족에 대한 자부심을 똘똘 뭉친 은진의 엄마(고두심 분)은 딸을 불륜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지레 앞서 사위를 가족의 이름으로 가둬두려 애쓴다. 공교롭게도 양 집안의 직계 존속들은 태도 여하야 어떻든, 두 부부의 관계를 봉합하려 애쓴다. 그들의 상처와 관계가 어떻든. 여전히 어른들 세대에서 부부 사이의 믿음이라는 개인적 가치보다는 가족라는 공동체적 관계가 우선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미경을 너무 안쓰러워 하는 의붓 동생 민수(박서준 분)는 누나를 괴롭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은진 부부가 탄 차를 사고로 내몬다. 왜곡된 가족애의 전형이다. 

하지만 연예인의 가족사에조차 달려들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처럼, 정작 보탬도 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 열내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은진, 미경과 함께 쿠킹 클래스를 다니던 은진의 대학 선배 영경은 미경에게 위로와 응원의 꽃바구니를 보낸다. 그런가 하면 은진을 쿠킹 클래스로 불러내 갖은 모멸과 물세례까지 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경이 그러는 이유는 자신이 바로 미경처럼 남편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수모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남의 일과, 내 자신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지랖의 전형, 심하게는 자아분열의 예시이다. 
정작 은진의 동생들 조차, 그리고 미경의 자식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문제를 동네방네 사람들이 알고 자기 일처럼 떠들고 흥분하는 요지경 속이다. 
오지랖은 그 영역을 확장한다. 미경에 수모를 겪는 은진을 본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는 은진의 뒤에서 수근거리고, 천리를 간 은진의 불륜 사실은 동창회에 참석한 성수로 하여금 동창들에게 손찌검을 하게 만든다. 
그저 부부간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화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불륜 한번 했을 뿐인데, 은진은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얼굴을 들고 살아가기 힘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불륜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받는 고통도, 불륜으로 인해 신뢰가 깨지고 사랑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은 멀다. 쿠킹 클래스 선생이 건네 준 정신과 상담 명함을 집어 넣고 점집을 찾은 미경의 선택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인 것처럼 보이듯이. 번번히 어긋나는 미경 부부의 노력, 그리고 여전히 마음 속에서는 서로가 가져왔던 시간의 깊이에 대한 미련에도 불구하고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자꾸만 파멸로 떨어지는 은진 부부를 길어올릴 사회적 두레박은 드라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분주히 어른들 세대의 통념으로 봉합하려는 어설픈 시도거나, 자기 일인지, 남의 일인지 구분하지 못하거나, 가쉽으로 즐기려는 오지랖이 있을 뿐이다. 봉합할 도구도, 상처에 바를 약도 오로지 부부 자신들만고는 찾아낼 길이 없는 고달픈 부부들의 현실, 그것이 바로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륜이다. 


by meditator 2014. 1. 8. 09:58

공자께서 말씀하셨지.

'사람 나이(물론 공자께서는 남자, 그 중에서도 군자를 일컬으켰겠지만) 마흔은 세상 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니라'라고.
하지만, 웬걸, 사람의 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게 무색하지 않은 세상에, 마흔은 인생을 반도 못산 어정쩡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른이지만, 세상 일의 이치를 터득하기는 커녕, 오히려, 세상 모든 유혹에 갈대처럼 마구 흔들리는 나이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그렇게 마흔이 되어갈 서른 아홉의 고교 동창생 세 명이 여전히 일과 사랑과 삶에 미혹되는 이야기를 담겠다고 한다. 


이혼 1년차의 윤정완(유진 분)은 명색이 시나리오 작가라지만 그가 돈벌이를 하는 곳은 마트의 알바 자리다. 생활비에, 엄마 병원비에 시시각각 삶의 궁핍은 가중되지만, 그녀의 꿈인 시나리오 일은 풀리지 않고, 초등생인 아들은 엄마의 어려움에 지레 외국 견학의 기회조차 포기하는 처지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자신에게 미련이 남았으려니 생각했던 남편은 이제 재혼을 한다하고, 일때문에 만나러 간 제작사 대표는 이혼녀인 그녀를 쉽게 대하기 십상이니, 그녀의 상처받은 자의식은 호의로 대하는 사람마저 치한으로 모는 해프닝으로 치닫는다.

돈이 있다고 나은 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여행비조차 없어 친구 부모님이 대주시던 권지현(최정윤 분)은 이제 돈 걱정 따위는 커녕 친정조차 거둬먹일 정도의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친구들이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안하무인이 되었다 치부할 만큼. 하지만 그런 그녀가 집에 사람만 없으면 홀로 목욕탕에 들어가 냄새가 날세라 전전긍긍하며 담배를 피워대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한다. 더할 나위없는 남편에 그럴 듯한 집안이지만, 별 볼 일없는 집안의 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가정부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시어머니에, 엄마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 딸 사이에 낀 겉만 번드르르한 하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는 처지이다. 그런데, 그녀 앞에 좋은 집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버린 첫사랑이 나타났다. 

괴롭히는 시댁과 아이가 없다고 나은 건 아니다. 잘 나가는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골드 미스 김선미(김유미 분), 가진 것 넉넉하고, 주변에 심지어 남자도 많을 것 같은 그녀의 처지도 궁색하긴 마찬가지다. 결혼을 생각하던 연하남이 알고보니 집수리를 빌미로 그녀를 이용해 먹은 놈이요, 기껏 자신을 좋다고 하는 남자는 같은 사무실의 한참 어린 남자뿐. 


결혼을 했건, 결혼을 하지 않았건, 심지어 이혼만 하면 다 해결될 것 같아 뛰쳐나온 서른 아홉의 그녀들이 맞부닥친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서른 아홉이나 먹었는데도, 자신의 삶이라며 손에 쥔 것들은 모래시계처럼 주르르륵 흘러 내리려 한다. 1월 6일 방영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마흔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청춘같은 중년을 맞이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서막을 연다. 

흥미로운 것은,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들처럼,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세상 일에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 마흔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사랑도, 일도 가능태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무 살에도 마흔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고달픈 인생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서른 아홉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랑도,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꿈같은 가능성에 대한 에필로그일 수 있는 것이다. 즉, 마흔을 앞둔 서른 아홉, 여전히 인생은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릴 무엇도 남아있지 않는 고착된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도전해볼 만한 가치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렇게 새롭게 이야기가 생성될 나이이기에 서른 아홉의 그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의료 과학 기술에 뒷받침된 시대는, 청춘의 영역을 확장해 간다. 

물론 이혼녀에, 골드 미스, 그리고 모순된 주부의 삶을 사는 여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그녀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녀들이 겪는 스토리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 기대를 걸어보는 건 일찌기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올드 미스의 고뇌와 사랑을 진솔하게 파헤친 김윤철 감독과, <태희, 혜교, 지현이>, <막돼먹은 영애씨>시즌2를 통해 역시나 지긋한 나이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낸 박민정 작가에 대한 기대에 다름아니다.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첫 회부터 화무십일홍 처지의 그녀들의 삶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꿔볼 여지가 있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by meditator 2014. 1. 7.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