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말씀하셨지.

'사람 나이(물론 공자께서는 남자, 그 중에서도 군자를 일컬으켰겠지만) 마흔은 세상 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니라'라고.
하지만, 웬걸, 사람의 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게 무색하지 않은 세상에, 마흔은 인생을 반도 못산 어정쩡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른이지만, 세상 일의 이치를 터득하기는 커녕, 오히려, 세상 모든 유혹에 갈대처럼 마구 흔들리는 나이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그렇게 마흔이 되어갈 서른 아홉의 고교 동창생 세 명이 여전히 일과 사랑과 삶에 미혹되는 이야기를 담겠다고 한다. 


이혼 1년차의 윤정완(유진 분)은 명색이 시나리오 작가라지만 그가 돈벌이를 하는 곳은 마트의 알바 자리다. 생활비에, 엄마 병원비에 시시각각 삶의 궁핍은 가중되지만, 그녀의 꿈인 시나리오 일은 풀리지 않고, 초등생인 아들은 엄마의 어려움에 지레 외국 견학의 기회조차 포기하는 처지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자신에게 미련이 남았으려니 생각했던 남편은 이제 재혼을 한다하고, 일때문에 만나러 간 제작사 대표는 이혼녀인 그녀를 쉽게 대하기 십상이니, 그녀의 상처받은 자의식은 호의로 대하는 사람마저 치한으로 모는 해프닝으로 치닫는다.

돈이 있다고 나은 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여행비조차 없어 친구 부모님이 대주시던 권지현(최정윤 분)은 이제 돈 걱정 따위는 커녕 친정조차 거둬먹일 정도의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친구들이 부잣집 며느리가 되어 안하무인이 되었다 치부할 만큼. 하지만 그런 그녀가 집에 사람만 없으면 홀로 목욕탕에 들어가 냄새가 날세라 전전긍긍하며 담배를 피워대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한다. 더할 나위없는 남편에 그럴 듯한 집안이지만, 별 볼 일없는 집안의 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가정부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시어머니에, 엄마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는 딸 사이에 낀 겉만 번드르르한 하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는 처지이다. 그런데, 그녀 앞에 좋은 집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버린 첫사랑이 나타났다. 

괴롭히는 시댁과 아이가 없다고 나은 건 아니다. 잘 나가는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골드 미스 김선미(김유미 분), 가진 것 넉넉하고, 주변에 심지어 남자도 많을 것 같은 그녀의 처지도 궁색하긴 마찬가지다. 결혼을 생각하던 연하남이 알고보니 집수리를 빌미로 그녀를 이용해 먹은 놈이요, 기껏 자신을 좋다고 하는 남자는 같은 사무실의 한참 어린 남자뿐. 


결혼을 했건, 결혼을 하지 않았건, 심지어 이혼만 하면 다 해결될 것 같아 뛰쳐나온 서른 아홉의 그녀들이 맞부닥친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서른 아홉이나 먹었는데도, 자신의 삶이라며 손에 쥔 것들은 모래시계처럼 주르르륵 흘러 내리려 한다. 1월 6일 방영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마흔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청춘같은 중년을 맞이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서막을 연다. 

흥미로운 것은,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들처럼,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세상 일에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 마흔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사랑도, 일도 가능태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무 살에도 마흔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고달픈 인생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서른 아홉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랑도,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꿈같은 가능성에 대한 에필로그일 수 있는 것이다. 즉, 마흔을 앞둔 서른 아홉, 여전히 인생은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릴 무엇도 남아있지 않는 고착된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도전해볼 만한 가치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렇게 새롭게 이야기가 생성될 나이이기에 서른 아홉의 그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의료 과학 기술에 뒷받침된 시대는, 청춘의 영역을 확장해 간다. 

물론 이혼녀에, 골드 미스, 그리고 모순된 주부의 삶을 사는 여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그녀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녀들이 겪는 스토리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 기대를 걸어보는 건 일찌기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올드 미스의 고뇌와 사랑을 진솔하게 파헤친 김윤철 감독과, <태희, 혜교, 지현이>, <막돼먹은 영애씨>시즌2를 통해 역시나 지긋한 나이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낸 박민정 작가에 대한 기대에 다름아니다.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첫 회부터 화무십일홍 처지의 그녀들의 삶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꿔볼 여지가 있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by meditator 2014. 1. 7.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