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처 전 총리가 사망하자, 탄광 노조는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었다.

‘대처 이후 계속된 보수당 정부의 정책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대처는 자유로운 시장의 상징이었지만 이들이 취한 이익은 소수에게만 돌아갔다. 그가 땅에 묻히며 대처의 정책들도 함께 사라지길 기대할 뿐이다’

얼마나 대처리즘의 영국 내에서 탄광 노동자로서의 팍팍한 삶의 지난했으면 그의 죽음 앞에서조차 형식적 애도조차 할 수 없었을까. 하지만, 역사는 흔히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한숨에는 무심한 채 평가의 실적 셈하기에만 급급하다. 아니, 역사까지 갈 것도 없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민영화’등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늘 셈법은 ‘효율’과 ‘논리’인 경우가 많다.


다른 종편의 일방적인 정부측 의견 선전과 달리, 12월 26일 <썰전>은 그나마 서로 격돌되는 상반된 입장을 제시하는데 있어 편견이 없다고 하는 프로그램이다. 항공기의 예를 들어, 합리적 경쟁과 효율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강용석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이철희도 그 논리에 의거한 답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 국민 세금 낭비라는 선명한 사안에, ‘사대강 혈세 낭비’라는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과도한 비용 낭비라는 점에선 어찔할 수 없는 공감대가 작동하고 있었다. 산간벽지의 군소 노선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당장 죽어 넘어질 것 같은 철도 공사의 방만함은 부각되었지만, ‘민영화’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추려질 인력의 향배에 대해서는 간과하거나 당연시해버린다. 그저 몇 푼의 돈이 새어나가는데 쩔쩔 맨다. 돈을 받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팔 다리 몇 개 부러뜨리는 건 예사로 여겨야 하는 조폭처럼.

언제나 경영 합리화의 성배는 직원 감축으로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야 한다. 영국 탄광 노조의 파업을 배경으로 했던 <빌리 엘리어트>에서 거리에 서성이던 그 노조원들이 바로 얼마 후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무도 함께 조금 참으며 잘 살아 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다리를 끊어 내서라도 우리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세상에, 언제나 거리로 나뒹굴어 떨어지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제일 우선이라며 사람을 내모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사진; tv리포트)


그렇게 누구도 사람의 사람다운 가치에 대해 논하지 않는 중에, <미스코리아>는 처연하게 삶의 벼랑에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첫 회 공장을 때려 부수는 조폭들에 휩싸인 형준과, 달걀을 꿀떡 삼키고 윗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던 지영보다, 이제 미스 제주 감귤 대회에서 1등을 하겠다고 고군분투하는 형준과 지영에게서 ‘루저’로서의 내음이 더욱 진하게 올라온다. 그들이 무엇을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사사건건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해볼 여지가 적은 사람들임을 자각한다. 그러니 두 사람은, 그리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더 벼랑 끝으로 물러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형준은 첫사랑 지영을 접대를 위해 호텔로 데리고 가고, 지영은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참으며 웃음을 잃지 않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지영의 의상비를 위해 동료는 매장에 걸린 옷을 벗기고, 형준의 회사 동료들은 조폭 목의 목걸이을 낚아챈다.


할아버지가 몰래 마시기 위해 물통에 담아 두었던 소주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지만, 그 소주를 물인줄 알고 마시며 홀짝이다, 얼굴이 벌개져서 지영에게 입을 맞추던 순순하던 소년 형준은 사라지고, 그녀를 망해가는 자기 사업의 제물로 바치고서야 눈물 한 방울을 흘리는 무능력한 젊은 사업가 형준이 있을 뿐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첫 사랑의 추억이 아련한 것과 달리, 지영과 형준의 첫 입맞춤이 다른 의미에서 아찔한 이유가 그것이다. 세월이 그들에게서 빼앗은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공부 못해서 무식해도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하던 지영의 말이, 서울대를 나와도 돈을 못벌게 되도 외면하지 말라던 형준의 말이, 빈말처럼 던졌던 그들의 대사가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 그들을 짓누르고, 사랑 앞에 비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미스코리아>의 사랑은 현실에 발을 깊게 담고 있다.


늘 합리적인 양, 사실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것을 논하면 할수록, 가진 자의 손을 들어주기가 십상인 세상에서, 새우등 터지면서도, 아직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스코리아>는 들려주려는 듯하다. 당연히 그들의 행보는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고, 찌질하고 무모할 뿐이다. 그래서 <별에서 온 남자>가 더 재미있어도, 어딘가 허술한 듯한 <미스코리아>를 놓지 못한다. 

by meditator 2013. 12. 27. 10:19

매주말 9시 55분 sbs를 방영되는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제는 거장이라 칭송받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이다. 하지만, 천하의 김수현 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동시간대 방영되는 mbc의 <황금 무지개>에 밀려 한 자리 수의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애초에 캐스팅 과정에서 여러 배우가 번복되는 해프닝성 화제와 달리, 오히려 방영되고 있는 이즈음에서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물론, 내용조차도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시청률이 높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김상중, 도지원, 조민기 등의 열연에 힘입은, 극적인 스토리 탓이 클 것이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미 재혼을 한 은수(이지아 분)에, 일편단심 친구 안광모(조한선 분)를 외사랑하는 현수(엄지원 분)의 스토리가 별다른 기복 없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은수의 아이를 둘러싼 실랑이요, 큰 사건이라야 광모의 결혼식장 도피 행각 정도? 그 마저도 은수와 현수는 자신의 자존심을 손상 받지 않으려 쿨하게 자신의 속으로 삼켜낸다. 하지만, 이 쿨하고 자존심 센 여자들에게 더 이상 자존의 울타리 속에 숨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미친 놈’이라 구박했지만 오매불망 놓지 못했던 광모가 드디어 현수를 여자로 보기 시작했으며, 아이조차 포기한 채 한 재혼의 남편이 바람을 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사진; 텐아시아)


현수와 은수는 자매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천양지차다.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포기할 줄 모르던 은수는 시어머니를 보고 기함을 해 말리던 첫 결혼을 당차게 해치워버렸다. 하지만, 그 과단성있는 결심의 마무리는 이혼이었다. 그리고 다시, 명망있는 시댁에, 외아들이 버겁지 않냐는 언니의 말을 사사건건 나한테는 좋은 소리를 안해준다는 시기로만 잡아채 버리고는 아이도 나몰라라 뛰어든 결혼에서 다시 남편의 외도와,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거짓말을 목도하고야 만다. 그렇다고 현수가 나은 건 아니다. 일찍이 철들기 시작해서부터 마음에 품은 친구지만, 그 친구가 자신의 친구와 결혼을 올리려 할 때까지 그가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자신의 사랑을 혼자 삼켜왔다. 덕분에, 광모를 여전히 사랑하는 자신과, 광모를 놓지 못하는 절친과, 이제 드디어 자신을 여자로 보기 시작한 광모 사이에 우정은 지저분한 행보가 예상될 뿐이다.


현수든, 은수든 배울만큼 배우고 보기엔 야무지고, 어디 가서 남한테 한 소리 듣지 않을 정도로 똑똑해 보이는 여자들이다. 심지어 사리분별마저 똑부러진다. 그런데, 이제와 은수가 내가 잘못산 것이 아닐까 라고 자신에게 되묻고 되물을 정도로 삶의 딜레마에 빠져들게 된다. 두 사람 만이 아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또 한 사람의 야무진 여성이 나온다. 은수의 전 남편 태원(송창의 분)과 결혼한 채린(손여은 분)이다. 이 여성 역시 참 야무지다. 시누이 태희(김정난 분)가 일찍이 간파했듯 만만치가 않다. 태원이 못하겠다고 나온 결혼을 시어머니의 실력 행사(?)를 통해 이루어 낼 만큼 추진력이 있다. ‘굴러들어 온 돌’이란 시누이의 평가에 참지 못하며, 자신의 맘에 들지 않은 일하는 아줌마 정도는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 생각하고, 식구들이 하나같이 물고 뜯고 빠는 전처 소생 슬기(김지영 분)에 대한 자신의 교육관을 피력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렇게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 등장하는 이른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야무지고 똑똑하다.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삶에 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려고 한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이 똑똑한 여성들이 ‘헛똑똑이’ 같다. 그토록 늘 자신의 삶에 주체적이려고 애썼던 은수가 궁극적으로 맞부닥치는 삶의 현실은 남편의 외도요, 그것을 덮으려 거짓에 거짓을 더하는 남편의 비겁함이다. 그런가하면, 현수는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지 않는다며 감내해온 첫사랑의 남자는 여자라면 사죽을 못쓰는 바람둥이다. 그런데도 그 남자를 놓지 못한다. 자신의 동생에게 아이를 버리고 갔다며 상처를 팍팍 주면서, 정작, 자신은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천하의 불한당을 마음에서 지우지 못한다. 채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선택이란 이유만으로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태원과 결혼하고, 그와의 결혼 생활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못하는 것에 안절부절 못한다.


(사진; tv리포트)


마치 70넘은 작가는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나 잘 났소 해봐야, 다들 헤맹이 빠진 헛똑똑이들이라고. 아니 그렇게 자존감을 내세워 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여자들이 마주치는 현실은 그녀의 엄마 세대가 살아낸 그 시절과 다르지 않다고 냉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댁의 갖은 학대를 이겨내지 못한 은수가 재혼을 통해 마주한 현실은, 시댁은 지극히 이상적이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또 다른 결박이요, 첫 결혼에서는 결코 꿈도 꾸지 못했던 불성실한 남편이다. 은수가 비난하듯,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지 않는다 숨겨온 사랑 때문에, 절친과의 연적이 될 지저분한 인간 관계의 늪에 빠져들 뿐이다. 그녀들이 자신의 자존을 위해 선택한 삶의 기회들이 또 다른 함정으로 그녀들을 빠뜨릴 뿐이다. 결국 ‘최선의 선택’이란 말이 유명무실해진다. 아니 작가는 애초에 삶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란 없다는 것을 냉소적으로 단정짓거나, 자신의 선택이란 함정에 빠져 삶의 우연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요즘 여자들의 청맹과니짓을 비웃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4회에 이르기 까지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의지로 헤쳐나가려 했던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릅 보여주기에 진력한다. 그러기에 드라마는 지긋이 그녀들의 삶을 쏘아보는 작가의 시선처럼 냉랭하고 관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의 외도와 그에 이은 거짓말을 알게 된 은수와, 이제 와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기 시작한 첫사랑을 마주한 현수는 더 이상 그녀들이 자신을 철벽처럼 쌓아왔던 자존의 벽 속에 숨어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런 그녀들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는 70넘은 김수현 작가의 몫이다.


과연 그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자존을 보존할 삶의 선택을 할 것인가, 그녀의 엄마들과 다르지 않은 두루뭉수리한 행복의 선택을 할 것인가는 결국 김수현 작가가 바라본 여성의 행복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이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3. 12. 23. 10:47

연말 시상식만큼 화려하고, 하지만 연말 시상식만큼 썰렁한 자리도 없다. 한 해를 빛낸 별들이 한 자리에 모인 풍성한 자리이지만, 객석의 출연자 면면만 봐도 올해 누가 상을 탈지를 알 수 있을 만큼, 상을 받는 사람들만이 자리를 채우는 자리가 대부분의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각 방송사만의 시상식이 논란에 오르지만, jtbc<썰전>에서 분석하듯, 많은 광고가 붙는 이 노른자위를 포기할 어리석은(?) 방송사는 여전히 없다. 그래서 화려한 별들의 출동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을 사람만 출연하는 연말 시상식은 그들만의 리그인 양 어쩐지 궁색하다.

하지만 늘 그런 연말 시상식들 가운데서 볼거리가 든든한 시상식이 있다. 시상식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시상식의 과정만으로도 풍성한, 하지만 정작 다른 분야에 밀려 언제나 일찌거니 방영되는, kbs 연예 대상이 그것이다. 

KBS연예대상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kbs 연예 대상이 빛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개그 콘서트> 덕분이다.
여전히 다른 공중파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늦은 밤 시간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화제의 중심에서 빗겨나 변죽만 울리고 있고, 케이블에서 의욕적으로 시작된 snlkorea 등이 시사나, 19금 등의 제약을 넘어서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와 달리, <개그콘서트>는 일요일밤 인기리에 방영되는 주말 드라마와의 경쟁에서도 당당하게 1위 자리를 꿰어차는 등 <개그콘서트>를 보고나면 주말이 마무리되는 익숙한 일상의 궤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리고 그 <개그콘서트>가 독보적인 빛을 발하는 시간이 바로 연말 연예 대상이다. 

마치 <개그 콘서트> 특집 편을 보는 듯, kbs 연예 대상의 면면들은 늘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와 인기 개그맨들의 변주와 변신으로 짜여졌다. 개그 콘서트의 코너를 고스란히 옮겨온 박지선, 오나미의 '있다 없으니까'는 물론, '놈놈놈'의 멋진 네 남자 개그맨들의 군무가 이어진, 그 못지않게 개그도 멋지지만, 그보다는 '덩치'로서의 존재감이 더 큰, 유민상, 김준현 등의 아이돌 exo의 퍼포먼스는 물론, 김민경의 선민의 '24시간이 모자라'를 버전업(?)한 24인분이 모자라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심지어, 마지막 대상 수상자 호명 전에 특별 공연을 한 '트러블 메이커'가 개그맨들의 변주가 아니라, 원곡의 장현승, 현아가 나오는 게 시시할 만큼. 

어디 그뿐인가, 중고 신인상, 먹방상 등의 발표와 시상은 물론, 대상 후보자의 소개까지, <개그콘서트> 출신 mc들과, 지금도 자신의 유행어로 활약중인 <개그 콘서트>의 개그맨들이 장기를 살려 웃음을 이끌어 내며 살려낸다. 특히나, 이제는 거장이 되어야 할, 하지만, 그들의 활약에 비추어, 상을 주기에는 미흡했던 강호동이나 유재석을 예우 차원에서, 중고 신인상이나 먹방상이라는 어찌보면 우습지만, 그럼에도 개그맨이기에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는 상을 통해 예우해 주는 시간은 그 과정이 충분히 썰렁할 수 있었음에도 서로가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연예 대상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진; 뉴스웨이)

하지만 역시 시상식이니 만큼 시상식의 간극을 메우는 특별한 퍼포먼스 못지 않게 과연 수상의 성과가 어떠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실제 어떤 시상식이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신인들의 수상 시간이다. 이제 막 시작한 그들의 초심이 보상을 받았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울려나온 그들의 소감은, 그 어떤 명곡보다도 순수하게 감동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 코미디 부분은 쇼 오락 부분을 압도한다. 겨우 몇 개월의 경험으로 신인상을 거머쥔 보라와 존박의 수상 소감은 쑥쓰럽지만, 2009년에 개그맨이 되어 이제야 신인상을 받은 안소미와, 그 보다 2년 후배지만, 13번이나 개그맨 시험에 떨어졌다는 이문재의 수상 소감은 뭉클하다. 그들이 지난 1년간 <개그 콘서트>를 통해 흘린 땀이 공감되었기에 더더욱 그들의 수상에 보내는 박수가 뜨거울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이제야 드디어 상을 받게 되는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유민상과 김민경의 수상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더욱 상을 받게 되는 순간 조차도 개그맨이라는 본분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철저한 직업 정신이 더 감동을 배가시킨다. 

쇼, 오락 부분의 시상자들이 몇몇 인기 진행자들의 돌려막기 식으로 인력풀의 한계가 뚜렷한 것과 달리, 코미디 부분 시상자들은 김준현의 인기상 재수상을 제외하고는 매년 신선한 면모를 보이는 것도 kbs 연예 대상의 볼거리이다. 한 해 동안 <개그콘서트>를 통해 한껏 겨루었던 그들의 노력이 성과를 얻는 그 시간은, 어찌보면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고지식한 노력의 열매가 열리는 시간 같아서 흐뭇하다. 무엇보다, 그 누가 수상자가 되었든 마치 <개그 콘서트>의 축제인 양 많은 개그맨들이 한껏 차려입고 객석을 빛내고, 동료 개그맨의 수상을 돌려막기 식 꽃다발이나마 아낌없이 축하해 주고, 그, 혹은 그녀의 수상 소감이 마치 자신의 것인양 눈물흘려주는 동료애는 kbs 연예 대상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박미선 같은 여자 선배가 꾸준히 활동하여 후배 여자 개그맨들의 귀감이 되겠다는 수상 소감이 빈말이 아니라, 공감이 되어 객석에 울려퍼지는 것 역시 kbs연예 대상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2013 KBS 연예대상' 스틸
(사진; 텐아시아)

그러기에 김준호의 대상 수상은 특별하다. 그의 대상은 그저 인기있는 한 개그맨의 수상이 아니다. 지나온 몇 년 동안 <개그콘서트> 팀은 연말 시상식을 빛내고, 자신의 프로그램을 빛냈지만, 늘 가장 큰 성과는 쇼 오락 부분의 명망있는 스타급 누군가의 몫이었다. 그것은 <개그 콘서트> 인력 풀이 여전히 <개그 콘서트>라는 우물 속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그 콘서트>는 그 프로그램만으로 물론 독야청청 독보적 가치를 가지지만, 거기서 매년 배출되는 수많은 개그맨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재활용하는 것은, <개그콘서트>가 가지는 또 다른 숙제였던 것이다. 물론 이수근, 김병만 등을 비롯하여 많은 개그맨들이 <개그콘서트>를 통해 배출되었지만, 그들의 활동이 빛나는 순간, 이미 그들에게서 <개그콘서트>라는 탯줄은 끊어지고 없었기에 그저 '스타'로서 받는 성과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준호는 다르다. 현재 그는 여전히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있자나~'라는 인기 유행어를 만들면서 '뿜엔터테인먼트'에서 한물 간 배우 역을 맡고 있고, 또 다른 코너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좀비로 역시나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그를 비롯한 <개그 콘서트> 출신의, 그리고 지금도 거기서 활약하고 있는 멤버들 여섯 명을 모아 만든 <인간의 조건>이 순항 중이다. 뿐만 아니라, <개그콘서트>만큼 주말 예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1박2일>까지 진출했다.  이것은 그 일개인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영역 확장의 성과인 셈이다. 곧, 그 대상은 김준호 개인이 아니라, <개그 콘서트>의 성취인 셈이다. 그러기에 그가 상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그의 후배, 동료 개그맨들이 승리의 '김준호'를 신이 나서 연호할 수 있었고, 그의 수상에 그의 선배이자, 동료인 김대희가 그보다 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김준호 개인을 놓고 보자면, 몇 년 전에 일신상의 불미스러운 일까지 있었지만, 새옹지마라고, 개그맨 개인에 열심임은 물론, 올 한 해 '부산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까지 이끌어 내며 코미디의 위상을 높이고자 의욕적으로 활동해 왔다. 그 누구도 해보라고 하지 않았던 일을 구태여 애써 해내려는 그의 노력에 정당한 대가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해의 대상과 달리, 그의 수상에, 마치 그 방금 전에 최고의 프로그램에 <개그콘서트>가 뽑힐 때처럼 수많은 <개그콘서트>의 식구들이 연단에 올라 자신의 일인양 기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논란없이 '대상'을 거머쥘 자격이 있다. 


by meditator 2013. 12. 22. 10:00

<1박2일> 시즌3가 시작과 동시에 시청률 1위를 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자, 상대적으로 비교를 당하는 건 시즌2이다. 겨우 그 정도 시청률은 시즌1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라거나, 시즌2가 잃어버린 시청률을 이만큼 찾아온 것이 어디냐는둥, 시즌2 초반에도 이 정도 시청률은 나왔다거나, 그게 어디 시즌2때문이냐, 시즌1 후광 때문이지. 하지만 그 어떤 논의가 반복되면 될 수록, <1박2일>의 역사에서 시즌2는 점점 시즌1의 영광을 말아먹은, 이제 막 시작한 시즌3보다도 못한 '흑역사'의 늪으로 한 발 한 발 빠져들어 가게 된다. 무엇이 어찌되었건 실패했다는 게 시청률을 담보로 한 냉혹한 평가의 기준이다. 


바로 그 실패했다는 시즌2의 최재형 피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돌아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가 <1박2일> 시즌2의 피디로 들어가기 전 원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피디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오락프로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음악 프로그램이나 하던 피디가 어찌 1박2을 감당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패전장군'이 되어 다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복귀하였다. 어라,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던데, 오히려, 최재형 피디는 탱자가 회수를 건너서 귤이 된 듯, <유희열의 스케티치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박2일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랄까?!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을 해왔다. '무엇을 기대하던 그 이하'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며 '대반전 쇼'라 면서, 성시경이 시퍼런 외계인 분장을 하고, 루시드 폴이 치마를 입고 양 갈래 머리를 나풀거리며 춤을 추고, 정재형이 깃털을 잔뜩 단 무희들에 둘러 싸여 가슴에 X자 테이프 표시가 역력히 드러나는 시스루 와이셔츠를 입고 무대를 꾸민다. 야한 포즈의 가인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유희열의 코에서 코피가 나는 건 예사다. 당연히 올해도 크리스마스 특집을 한다니, 또 어떤 '썰렁한' 유머 코드가 등장할까 기대를 안한 건 아니다. 물론, 첫 회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분장을 하고 유치한 모습을 선보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다음 해엔, 올해는 또 누가 그럴까 싶어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썰렁함' 만으로 몇 년을 더 이끌어 가기엔 무리다 싶었다. 그리고 더 기상천외한 새로운 모습을 보일 인맥이 있을까도 싶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KBS제공
(사진; 조선닷컴)

그런데, <1박2일>이란 회수를 건너 온 최재형 피디는 실패했던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가져와 2013년판 크리스마스 특집을 꾸몄다. 1박2일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시청자들의 소원을 받아, 그 중 몇몇을 추려, 그들에게 직접 캐롤을 배달한다는 이벤트이다. 음악 프로의 성격을 살리는 캐롤를 배달한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1박2일에서 봤던 것들이다. 심지어 방문 지역을 추천하는 커다란 판도, 작은 판도 다 1박2일 재활용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유희열의 스케치북~ 하며 단체 구호도 외친다. 손으로 스케치북에 뭔가를 쓰는 제스쳐도 해가며, 심지어 나중에 저녁을 먹는데,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은 남자' 스티커를 붙여 복불복 메뉴를 정한다. MC유희열을 비롯한 윤종신, 이적, 육중완 등은 대놓고 <1박2일>의 실패한 피디라고 조롱하며, 이렇게라도 재활용을 해야하냐며 비아냥거린다. 그때마다 화면은 피디의 난감한 표정을 잡는다. 철저한 '자기 디스'다.

'루저'가 된 피디에, 함께 '루저'가 되어버린 소품이지만, 그것으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 특집은 이상하게 지금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해온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의 연장인 양 이물감이 없다. 언제나 썰렁하고 이상해 왔기에, 이제 와 새삼 루저가 되어버린 그것들이 여기서 접목된다 한 들 하등 이상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1박2일의 영광을 깍아먹었다 욕을 먹던 것들이 이렇게라도 재활용되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그렇게 1박2일의 형식을 차용한 2013년판 크리스마스 특집이 내세운 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가 캐롤을 불러주는 것이다. 건물의 1층 로비 한 켠에서 공익 변호사로 열심히 생활하는 다섯 살 연상의 애인을 위한 '메리크리스마스 온리유'가 퍼지고, 이어서 몰려든 사람들의 '우우우우우~'라는 후렴 합창과 함께 '본능적으로'가 더해진다. 앰프도 없고, 제대로 된 세션도 없지만, 그래도 이건 공연에 가깝다. 다음에 찾아간 아파트 복도에서는 남편없이 홀로 아이도 낳고, 전문의 시험도 치뤄야 하는 아내를 위해 하지만 이웃에 불편을 줄까 조바심을 하며 소리 죽여 '고요한 밤'를 부른다. 이어진 장미 여관의 히트곡 '봉숙이'는 민망함에 몇 마디를 못 넘기고 결국 태교를 위해 중지되고 만다. 마지막 공연은 늦은 밤 어린이 놀이터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놀이터에서 74번의 시험에서 떨어지고 마지막 한번의 결과를 앞둔 취직 준비생을 위해 '징글벨'과 '말하는 대로'가  하모니카 하나, 기타 반주 하나에 의지해 말 그대로 날 것으로 불리워진다. 

마지막에 이적이 평가하듯이, 음악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방송이다. 집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본 시청자들에게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음색의 노래를 전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적은 덧붙인다. 그러나 그 음악을 듣는 사람과의 교감으로만 따진다면 최고의 방송이었다고. 애인의 따스한 맘을 받은 공익 변호사 여자 친구도, 홀로 남겨진 아내를 걱정하는 군의관 남편의 노심초사를 받아든 만삭의 아내도 캐롤 선물을 받아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결국 75번째의 입사 시험도 실패했다는 자막을 남긴 입시 준비생도, 어쩐지 마냥 주저앉아 있을 것만 같지는 않았다. 시간에 쫓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조심스레 날 것으로 전달된 캐롤 선물이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크리스마스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전해진 선물같은 방송이었다.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1발2일> 시즌2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불복 등의 미션을 하면서, 멤버들에게 마음이 약해 휘돌리고 마는 피디를 보면서, 독한 예능 <1박2일>의 앞날이 순탄치 않으리란 예감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오늘날의 시즌2의 평가에서 보여지듯이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독하지 못한 피디가, 다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돌아와 보여준 1박2일의 잔향이 남은 크리스마스 특집은 성공적인 듯 싶다. 1빅2일 인듯 싶지만, 피디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따스함이 묻어난다. 자신의 실패를 여유롭게 디스해 가며 만들어 낸 크리스마스 특집에서, 실패가 아닌 경험이 된 자산이 보여진다. 그리고 혹독한 경험 속에서도 잃지 않은 피디의 훈훈한 노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기에, 74번 떨어진 취업 준비생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생경하지 않다. 이렇게 실패조차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여유, 그게 2013년 <유희열의 크리스마스 > 특집의 코드이자, 성과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생뚱맞은 모험을 한 크리스마스 특집이 이제는 유희열의 솔직뻔번한 입담에만 의지해 조금은 뻔해져 가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을 계속 볼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3. 12. 21. 10:24

12월 20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 밀레니엄의 전날 신촌 하숙집 우연찮게 나정이만 남겨지고 모든 하숙생들과 식구들이 외출을 하게 되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하다 <꽃보다 누나>는 안하려나? 벌써 10시가 되어가는데? 했는데, 중간 광고를 하는가 싶었더니, 뜬금없이 화면은 <코미디 빅리그>의 한 코너로 옮겨진다. 비가 나오는 프로그램의 예고편으로 또 옮겨진다.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다. 다른 때 같으면 8시 40분이면 일찌감치 시작했을 <응답하라 1994>가 50분이 되도록 시작되지 않은 채 시청자들은 <코미디 빅리그>와 <렛츠고 시간 탐험대>, <레인이펙트>의 예고 방송이 이미 나왔었기 때문이다. 18화 편집이 지연됨에 따른 의도적인 방송 지연이었다고 한다. 그간 <응답하라 1994>를 보아왔던 사람들이라면 20일의 이런 방송 사고가 놀짜증은 나지만 어쩌면 놀랍지는 않을 듯도 싶다. 오히려 '사필귀정이라' 공감할 듯도 싶다. 우연찮은 제작지연이 아니라는 것을. 고무줄 늘이듯 마음대로 방송 시간을 늘려 방송하던 <응답하라 1994>가 맞이할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이다. 


앞서 인기를 끌던 <응답하라 1997>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에 한 번 40분짜리 두 편을 연달아 방영하였다. 후반에 이르러서야 회차에 따라 방영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미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업은데다, 시작하자 마자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한 <응답하라 1994>의 방영 시간은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 였다. 40분쯤 시작하겠거니 하고 텔레비젼을 켜보면 벌써 하고 있을 때가 있다거나, 이즈음엔 끝나겠지 하고 공중파의 다음 프로를 보려고 하면, 10시는 저리 가라 도무지 언제 끝날 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채널을 돌릴 수 조차 없다. 방송 사고가 발생한 20일 방영분에서 기어코 다시 나정이와 칠봉이를 결국은 다시 밀레니엄을 빙자해 한 자리에 앉히고 여전히 감정이 사라지지 않은 듯한 시선을 오고가는 장면을 오랜 지연 뒤에 내보내고야 마는데, 그저 낚여서 파닥파닥 거리는 처지의 시청자들이야 욕을 하면서 기다릴 밖에 무슨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사진; TV리포트)

덕분에 <응답하라 1994>의 방송 시간은 제작진만 아는 것이 되었고, 공중파의 미니 시리즈 시간 72분룰은 저리 가라, 종종 90분을 넘는 경우 조차 빈번했다. 공중파의 미니 시리즈 방영 시간이 최근에 72분에서 다시 67분으로 줄어 들었다. 이것은 실제 광고를 빼면 순수 방송 시간으로 65분에서 59분으로 줄어든 것이다. 왜 이렇게 줄였을까? 일주일에 두 편을 방영하는 미니 시리즈라면 결국 일주일에 영화 한 편 분량을 찍게 되는 셈이다. 제작진도, 연기자도, 작가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밤샘 촬영이요, 쪽대본이라는 관행이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시청자들의 촌각의 관심을 끌려는 꼼수로 인해 서로 조금씩 조금씩 늦게 끝나다 보니 결국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파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공중파는 서로 협정을 맺어 72분 룰이니, 67분 룰이니를 만들어 낸 것이다. 케이블의 장점은 바로 그런 공중파를 제약하는 방송 시간의 룰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4>는 마음대로 방영 시간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만용'을 부렸다. 하지만 제 아무리 드림팀의 제작진이라 하더라도, 늘어진 방송 시간은 고스란히 제작진과 출연진의 몫이다. 그러니 결국 20일의 방송 사고는 예정된 것인 셈이다. 이미 방송 사고가 나기 전 <응답하라 1994>의 방영 시간은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이 15분 정도 방영된 이후, 다시 <응답하라 1994>가 15분 정도 방영되었다. 여전히 과유불급이다. 

과연 그렇게 과욕을 부릴 만큼 <응답하라 1994>가 흥미진진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방송 사고가 나기 전 시간은 IMF의 여파와 특별했던 연인들 나정이(고아라 분)와 쓰레기(유연석 분)의 특별하지 않은 짧은 이별과, 장황한 해태의 첫사랑 다시 만나기로 채워졌다. 그리고 결국은 누구나 다 예상 했듯이, 나정이와 칠봉이의 해후가 이루어 졌다. 

그렇다. 드라마에 깔리던 나정이의 나레이션처럼,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다 헤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나정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결혼조차 미룰 수 있는 쓰레기(정우 분)(보통 사랑 얘기에서 이쯤되면 결혼을 미루는 게 아니라, 결혼을 먼저 한다)를 그저 보통의 연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은 성의가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마치 칠봉이와 재회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적인 극적 장치인 것 마냥. 죽은 오빠로 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끈끈한 인연이 단 2년 동안의 물리적 공간의 확장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게 이해를 하려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간 두 사람이 보여준 정신적 유대의 깊이에 비하면 작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랄까? 

오히려 다시 만나게 된 나정이와 칠봉이를 보면서 든 생각은 저렇게 어거지로 낚지 말고 그냥 깔끔하게 16부작 정도로 이야기를 끝내 버리지 하는 아쉬움이다. 2년 동안 안본다고 헤어지는 나정이와 쓰레기 커플에, 더 오랫동안 나정이를 잊지 못하는 칠봉이라, 이제 누가 나정이의 남편이 되도, 공감이 가지 않을 듯 싶은거다. 과연 이 제작진이 그려내고 싶은 것이, IMF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 휘말린 청춘의 이야기인지, 도돌이펴 나정이 남편 떡밥 게임인지, 그 순수성에 자꾸 의혹의 눈길이 보내진다. 

부디 남은 몇 회 동안 시청자 낚기 게임 대신,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충실한 늘어진 방송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전개시켜 마무리 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3. 12. 21. 08:56

<골든 타임>의 기적을 이뤘던 권석장 사단이 <파스타>의 서숙향 작가와 재회해 만든 <미스코리아>가 12월 19일로 방영 2회를 맞이했다. <골든 타임>을 굳이 기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의학 드라마로는 드물게(이제는 메디컬 탑팀으로 인해 드물게도 아니지만) 한 자리수 시청률로 시작하여 고전을 거듭하다가, 세간에 최인혁 교수 신드롬을 이끌며 창대한 종영을 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미스코리아>는 마치 전작의 족적을 따르듯, 다시 한 자리수의 시청률로 테이프를 끊고 있다. 그렇다면, <미스코리아> 역시 골든 타임의 기적을 성취할 수 있을까?


<미스코리아>의 시대적 공간은 온국민이 불황의 늪에 빠져들던 1997년 IMF이후이다. 남자 주인공인 김형준(이선균 분)은 친구들과 함께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화장품 사업이 빚에 시달리다 못해 조폭들이 사업장을 뒤집어 엎고, 보디가드랍시고 따라붙는 처지에 놓여있다. 여주인공인 오지영(이연희 분)도 다르지 않다. 가장 아름다운 엘리베이터걸이지만, 가장 말 안듣는 엘리베이터 걸로 해직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의 시대적 정서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이제는 '어른'이 된 형준과 지영의 '첫사랑' 시절을 회고하며 현실로 오가는 방식은 심지어 <응답하라>와 동일하다. 동네 남자 아이들의 '담배질'의 원흉이었던 담배 가게 아가씨 지영과 꺼먹머리 목용탕집 범생이 형준의 그 시절은 충분히 향수를 자아낼 만 하다. 학교 교정을 나풀거리며 걸어가던 지영을 향해 날아가던 형준의 노란 종이 비행기가, 이제 다시 엘리베이터 걸인 지영의 어깨 위로 나리는 수미쌍관의 인연은 절묘하다.  


하지만, 형준과 지영이 만들어내는 <응답하라>는 우리를 주말마다 나정이의 남편은 누구일까 라며 낚는 그 시리즈와는 다르다. 마치 <응답하라> 다크 버전과도 같다. IMF에도 까닥없이 찬란한 청춘의 빛을 발산하던 <응답하라>의 주인공들과 달리, 1997년에 어른이 이미 되어버린 형준과 지영은, IMF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아낸다.  생날라리 같던 <응답하라 1997>의 시원(정은지 분)이 자신이 썼던 팬픽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영은 엘리베이터 걸인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첫사랑인 형준에게 들킨 채 '그때 공부 좀 할 걸'이라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처지일 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청춘의 환타지를 다루었다면, <미스코리아>는 <응답하라>가 말하지 않은 청춘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첫사랑 소녀를 통해 담배를 배웠던 그 소년은 그렇게 동화처럼  멋진 청춘이 되지 못했다. 그건 소녀도 마찬가지다 라고. <미스코리아>는 시작한다. 

그래서 <미스코리아>는 흡인력이 있다. 상암동의 근사한 주상복합 건물에 의사, 공무원, 대기업 직원 등 그 직위만으로도 혀가 내둘러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된 주인공들이 주는 해피엔딩의 기쁨 속에서 빚어지는 위화감과 다르게 , <미스코리아>의 형준과 지영의 현실태는 마치 2013년의 찌질한 청춘의 그것과 더 닮았다. 거기에 끼어든 조폭에서마저도 밀려난 정선생(이성민 분)까지 덧붙여지면 궁상이 극에 이른다. 하지만, 권석장과 서숙향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늘 한끝이 처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가져오는 현실적 공감대가, 그리고 처짐에도 나가떨어지지 않는 묘한 끈기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지애를 불러 일으킨다. 재밌건 재밌지 않건 보아주겠어! 라는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다, 넘어져도 얼굴에 미처 닦지 못한 눈물 자욱이 있어도 씩씩하게 다시 뛰어가는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어진달까. 

아직 <미스코리아>는 애매모호하다. <파스타>에서 좋은 요리사가 되는 것과, 미스코리아가 되는 것은 질감이 다르다. 좋은 요리사는 공감할 만한, 손에 잡히는 그 무엇이지만, 궁지에 몰린 형준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지영이 선택한 미스코리아는 '신기루'이다. 더구나, 이제 2013년에는 공중파에서는 중계도 해주지 않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일 뿐이다. 그런데 그 신기루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들이 어쩐지 허황하다. 그 허황함을 견디기 위해 마애리 원장이 끊임없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미스코리아'를 만들어 줄게, 세상의 모든 남자가 너를 볼 거야 라고 하지만, 동물원에서 활짝 날개를 편 공작을 보듯, 어쩐지 처연하다. 그래서 서울대를 나온 먹물 형준과, 실직 위기에 몰린 엘리베이터 걸 지영이 택한 마지막 카드가 '미스코리아'라는 것이 더더욱 '신기루' 같고, 짠하다. 덕분에,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의 마지막 선택임에도, '신기루'같은 미스코리아가 그들의 행보를 허공의 헷짓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분명 개연성이 있음에도, 어쩐지 '훵~'하다. 하지만, 이 잡을 수 없는 신기루에 대한 감상 마저도 권석장, 서숙향의 의도일 지 모른다고 지레 생각해 보게도 된다. 마치 로맨스 타운의 쓰지 못한 채 묵혀둘 수 밖에 없었던 복권처럼. 

<미스코리아>가 <골든 타임>의 기적을 다시 이루어 내기에는 상대작 <별에서 온 남자>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우월함이 돋보인다. 여주인공 전지현의 독보적 매력도 강하고. 하지만, <미스코리아>가 기적을 이루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 2013년의 마지막을 보내며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는 남겨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by meditator 2013. 12. 20. 10:16

역시나 <라디오 스타>의 칼은 녹슬지 않았다. 

12월 18일 회차의 방송을 본 소감이다. 장진 감독이 그 특유의 입담으로 자신과 함께 나온, 자신이 연출한 뮤지컬의 출연자 박건형과 김슬기를 들었다 놨다 하며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것을, 그저 네 명의 mc는 추임새를 넣으며, 국수 배우라 일컬어지던 박건형을 멋진 남자로, 욕쟁이로만 각인되었던 김슬기를 이제는 욕이 지겨운, 하지만 욕이 아니고도 매력이 충분한 여배우로 살려냈다. 특히나 많은 말을 하지 않아서, 자신을 속내를 밝히기에 수줍어 하는 김슬기를 말 한 마디 못한다고 답답해 하는 장진과 달리, 어떻게든 그녀의 말 한 마디를 얻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mc의 모습은 그래서 더더욱 거침없이 욕이나 즐길 거 같은 김슬기란 사람의 색다른 모습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한 회차였다. '집착하는 사람들'이라는, 김연우까지 합친 네 명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어거지로 붙인 주제와 상관없이, 방송 초반, <디셈버>라는 뮤지컬을 하는 세 명은 장진 감독이 대놓고 '디스'하듯 박건형 편의 티켓이 남아돌고, 김연우 역시 관록있는 단독 공연의 티켓이 역시나 남아있어 나왔다 해도, 장진, 박건형, 김슬기 세 사람에게 드리운 또 다른 한 사람의 그림자는 <디셈버>라는 뮤지컬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18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뮤지컬 디셈버의 연출자인 장진 감독과 배우 박건형, 김슬기, 가수 김연우(왼쪽부터)가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MBC 라디오스타 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말 그대로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되는 뮤지컬<디셈버>에서 언제나 아이돌 뮤지컬 배우로써 티켓 오프닝과 더불어 수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는 김준수와 달리, 박건형 편의 티켓이 남아있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JYJ의 김준수라는 특수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것만으로 18일의 방송을 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뮤지컬을 홍보하러 나온 대부분의 팀은 대부분 A팀에 해당되는 출연자들이 <라디오 스타>를 찾아왔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셈버>라고 하면 김준수가 출연한다고 라고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디셈버>는 30여회를 출연하는 김준수보다 적은 19회차의 박건형을 내세웠다. 이미 김준수의 표는 매진되었기에? 아니 김준수는 홍보를 할 필요도 없이 매진될 테니까?

김연우의 방송 출연 결정은 불과 며칠 전에 이루어 졌다고 한다. 분명 <디셈버> 팀에 낀 김연우는 말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대화에 섣부르게 끼어들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연우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박건형의 말처럼, 김연우는 자신이 준비해온 모든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심지어 실패한 농구 점프까지. 그리고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네 명의  MC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말 한 마디라도 더해서 김연우를 살려보고자 노심초사하는 윤종신이 눈에 띤다. 김연우 소속사 사장이다. 과연, 윤종신 소속사의 김연우가 아니었다면, 불과 방송 며칠 전에 출연하고 싶다고 출연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또 다른 MC인 규현의 소속사 SM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 한 해 <라디오 스타>는 규현의 소속사 SM과, SMC&C소속의 연예인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윤종신 소속사인 미스틱89의 소속 연예인들이 내집 드나들듯 출연했었다. 장진 감독이 그 역시 홍보를 위해 나왔음에도 민망해 했듯, SMC&C 소속의 김수로는 자신이 연출한 연극의 배우들을 데리고 나와 장진 감독 표현대로 '노골적인 앵벌이'를 하기도 했었다. 물론 출연과 그것이 곧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홍보'가 만능인 세상에서 마음놓고 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는, 첫 출연에 감격해 마지 않던 슬리피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세련된 장진 감독은 김수로처럼 노골적인 홍보를 하지 않고도, 오히려 자신과 함께 출연한 박건형과 김슬기를 '셀프 디스'하는 식으로 이들의 장점을 충분히 발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쉽다. 아니, 오히려 한 해가 저무는 마당에, 2013년이 다가도록, 심지어 올해에는 법원의 판결조차 명확하게 난 마당에도 출연은 커녕, 그의 이름이 언급되기 조차 조심스러운 김준수, 그리고 그가 멤버로 되어있는 JYJ의 방송 출연이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을 짚어보고자 한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들의 방송 출연이 용이치 않다. 그리고 이제 문제는, 어쩌면 그런 것이 당연시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 뮤지컬을 만든 멤버임에도, 감독도, 그와 함께 한 출연진조차도, 그의 이름조차 언급하기가 힘든 방송이 여전하고, 그것이 당연시되어가는 건 정상이 아니다. <라디오 스타>가 제 아무리 공평부당함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이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한, 규현과 윤종신 소속의 연예인들의 출연 역시 편협한 사시로 재단될 수 밖에 없는 요소 역시 항존하게 되는 것이니까. 


by meditator 2013. 12. 19. 10:12

<어바웃 타임>을 아들과 함께 봤다. 아름다운 여성과의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기대했던 아들에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영화가 어떻게 다가갔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아들은 참 좋았단다. 그리고 덧붙인다. 영화 속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깊었다고. 우리 사회의 어른들 모습과 너무 달랐다고.



영화 속 아버지는 자신의 암에 대해 담담하게 맞이한다. 암에 걸리지 않은 시절로 돌아가라는 아들의 권유에, 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어서 니 엄마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만약 지금의 암을 없애려면 수십년을 함께 해온 아내와, 사랑하는 자식들의 없어져야 한다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우리가 늘 갈구하는 진정 '쿨한' 삶의 태도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애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아들과 탁구를 치면서 오만 입방정을 다 떨 정도로 친근하지만, 정작 인생의 고비고비 아버지는 의연하고 담대하다. 아들의 삶에 조언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어린 아들이 보기에도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보여진 모습과는 무척이나 달랐던 것이 다가온다. 

12월 17일 6회를 맞이한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엔딩은 유재학의 어머니인 추여사(박정수 분)의 한바탕 굿판이었다. 송미경의 의붓 동생 송민수의 울분에 찬 말들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밤 늦게까지 하루 24시간을 48시간으로 살아온 며느리가, 자신에게는 입 속의 혀처럼, 뭐가 먹고싶다 말 하기도 전에 알아서 대령하는 며느리가, 바람난 아들에게 술 한 잔하고 숨겨진 분노를 내뱉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호령을 한다. 본데없는 며느리의 집안을 들먹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간 이룬 것이 뭐있냐는 식의 시어머니들의 전통적 레파토리이다. 

추 여사

아마도 이 장면을 드라마의 엔딩으로 설정한 것은, 시어머니의 그 폭언들이 진부한 클리셰들임에도, 여전히 고부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 덕분이었는지, <총리와 나>에 밀려 3위로 떨어졌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시청률은 다시 2위의 자리를 회복했다.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시어머니 추여사는 돌출적 캐릭터이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심리에 근거한 행동을 하는 예측 가능한, 즉 이해가능한 인물들이라면, 그녀만이 잘난 자기 아들과, 그보다 더 잘난 자기 집안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관되게 며느리를 '학대'하는 비이성적이고, 탈논리적인 막가파이다. 바람 핀 남자와 여자도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도록 그려지고, 바람난 남편때문에 흥신소를 부르고, 상대방의 여자를 스토킹하는 아내의 모습이 절절하게 공감되게 그려내는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아들의 잘못을 '포악'으로 해결하려는 유일하게 막돼먹은 사람이다. 

추여사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 <세번 결혼한 여자>의 정태원의 엄마 최여사(김용림 분)이다. 재혼을 미루는 아들의 결혼을 밀어붙이기 위해 이미 재가한 전 며느리의 시댁에 전화를 걸어 당신의 며느리가 우리 아들을 만나고 다닌다며 무고를 하는 식이다. 그녀의 친정에 쳐들어가 한바탕 하는 건 예사다. 새초롬한 시누이조차,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자신의 아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에는 상식도, 예의 따위는 밥 말아 먹는다. 

최여사

재밌다. 두 분 다, 이름도, 추여사, 최여사다. 그들의 이름은 없다. 그들 또한 한때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였을 터이지만, 이제 그런 흔적은 지워버리고, 한 집안의 상징적 어른이자, 아들의 어머니로서만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그걸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란 그녀의 앞에 그녀의 아들은 십중팔구 무기력하고, 며느리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이름도 없이 어머니란 존재만으로 굳어진 이들 캐릭터가, 드라마에서는, 결정적 용병처럼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는 부부의 불륜을 다루되, 그것을 <사랑과 전쟁> 수준으로 풀어내는 대신, 그들의 사연과 심리에 천착하여, 시청자들이 함께 고민해 볼 여지를 만드는 드라마이다. <세번 결혼한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김수현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요즘 드라마에 보기 드물게, 여자의 이혼과 재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이다. 

그러기에,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공감하고 풀어가는 방식에 동조하는 시청자라면 깊이 빠져들며 함께 고민을 나누어 가지만, 그 코드에 맞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나쁜 년하면 되는데, 뭐 그렇게 시시콜콜 이해를 시켜 하면서 시쿤둥하거나, 재혼을 하던가 말던가, 얼른 남편 바람핀 거 들키기나 해라 하며 심심해 하는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관심이 나른해 질때, 이분들 여사님이 등장한다. 등장과 함께 짜~하게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욕을 들어주신다. 하지만 그러면서 드라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필요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드라마뿐이 아니다. 인기를 끈다 싶은 드라마에는 이들 여사님같은 캐릭터가 꼭 있다. 인기리에 종영된 <황금 무지개>에서 며느리를 쫓아다니며 포악을 떨던 강정심 여사(박원숙 분)가 그분이며, 요즘 가장 인기가 좋다는 <왕가네 식구들>의 박살라 여사(이보희 분) 또한 만만치 않다. 어디 그뿐인가, <오로라 공주>에서는, 시어머니는 아니지만, 시누이 삼종셋트가 시어머니 캐릭터를 톡톡히 해냈다. 

용병의 역할이자, 필요악으로 자리매김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분명 현실의 어머니들과는 차이가 분명한 그 이기심이 극대화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번번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이들 어머니들의 모습은, 그저 작가의 편의주의라기엔, 존경할 어른이 없다는 우리 사회의 '어른'을 상징화 시켰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12월 14일자 [한겨레 신문]의 오길영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지금 한국 정치는 청년 세대는 과소 대표된다. 반면 기성 세대는 과잉 대표된다. 그들 마음대로 정치,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기성 세대의 시각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된다'고 안타까워 한다. 바로 그 과잉되고, 자의적인 기성 세대의 반영이, 드라마 속 시어머니들의 캐릭터가 아닌가 싶은 거다. 소통할 수 없는 논리로, 오로지 자신의 것만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성 세대, 그것이 바로 드라마 속 우리 사회 어른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더 그 시어머니들이 무섭다. 


by meditator 2013. 12. 18. 10:51

<감자별2013QR3(이하 감자별)>의 첫째 딸 노보영(최송현 분)은 셜록 홈즈가 저리 가라할 만큼 남다른 관찰력으로 추리의 일가견을 보인다. 남편이 화장실 변기의 뚜겅을 내리지 않은 것도, 큰 아이가 세수를 하지 않은 것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척~보면 알아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 똑부러지는 주부인 그녀에게 시련이 닥쳤다. 그것은 바로 큰아들 규영(김단율 분)이 반에서 기르는 방울 토마토를 따먹었다는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나 나는 아들 규영을 붙잡고 추궁해 보지만, 그녀의 예리한 눈에도 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보인다. 아들의 결백을 믿은 그녀는 아들의 혐의를 풀어주고자 셜록 홈즈의 복장을 한 채 학교에 나타난다. 그리고 세심한 추리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웃반 토끼가 범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그녀의 말을 아들의 혐의를 덮기위한 무리한 속단이라 치부한다. 그녀 스스스로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자신없어 하던 그녀는 돌아서는 아들의 바지에 묻은 붉은 얼룩을 보고 아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리가 틀렸음을, 선생님에게 거짓맛을 하게되어버린 자신을 자책한다. 침대에서 뒹구는 아내의 화면으로 남편(김정민 분)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그토록 완벽했던 아내가 추리를 틀리게 된 건 바로 엄마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허술한 그녀에게서 사람 냄새가 남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감자별>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면은 규영의 반 교실 문쪽으로 바뀌고, 조금 열린 문 사이로 토끼인 듯한 물체가 보인다. 

흔히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우리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한다. 노보영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한 첫 실수를 모성의 착시라고 정의내린 것처럼, 하지만, 냉소적 시각의 <감자별>은 아니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지는 '불온한' 역설을 논한다. 사랑하기에 믿을 수 없는 거라고. 

노보영은 평소 자신의 큰 아들을 늘 못미더워 했다. 이성적인 그녀와 다르게 허무맹랑한 별 이야기 따위나 즐기고, 하는 짓이라고는 헐랭이인 규영의 말을 늘 그녀는 '거짓말이지?'하고 의심부터 하곤 했다. 만약 아들의 말을 철썩같이 맏는 엄마였다면 아들의 거짓말을 판별하는 따위의 노하우는 필요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였기에 아들의 결백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내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 녀석의 도발을 의심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자신이 내린 이성적 결론에 그녀 자신도 미덥지 않아했다. 평소같으면 아들의 엉덩이의 붉은 자국을 의심해 볼만도 하건만, 아들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힌 그녀는 대번에 그 자국을 아들이 깔고 앉아 으깬 방울 토마토라 믿어버린다. 사랑이 내지른 정신적 폭력이다. 시트콤 <감자별>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었지만 대부분 자녀들은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내지르는 사랑이란 이름의 불신과 정신적 폭력을 감내해야 어른이 된다. 

(사진;따뜻한 말 한 마디; tv리포트)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송미경(김지수분) 말 대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녀의 남편 유재학(지진희 분)이다. 16일 방송된 5회에서 이 부부의 역학 관계는 미묘하게 변화된다. 남편의 밥상을 쓸어버릴 호기를 부리던, 자는 그의 얼굴에 베개를 덮어 누를 만큼 분노를 발산하던 미경은 당신을 믿었다던 남편의 말 한 마디에 허물어 진다. 비록 자신은 잠시 바람을 피웠을 망정, 그 순간에도 당신을 택했다, 당신을 믿었다고 남편은 말한다. 괴변과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남편을 사랑하던 미경은, 남편의 미묘한 변화에 '바람'을 감지하고 남편을 감시하는 흥신소를 붙였다. 평소 자신을 덜 사랑해 준다는 불안이 그녀로 하여금 넘지 말아야 할 부부의 믿음을 깨뜨린 것이다. 

분명 그 선을 먼저 깬 것은 남편이지만, 5회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보면, 부부 관계의 신뢰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작가의 이런 서술이, 바람핀 놈이 나쁜 놈이라는 우리사회의 선험적 명제에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흔히 부부 싸움을 칼로 물베기라던가,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한가 드라마는 논하고 있다. 이제 5회에 들어선 작가는 묻고 있다. 정말 부부를 이끌어 가는 것은, 한 가정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라고. 그래서 은진(한혜진 분)은 남편에게 선택하라고 말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진흙탕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인지, 그게 아니면, 막연한 믿음으로 부부 관계를 이어갈 것인지. 하지만, 이미 교통 사고 종료 건으로 은진의 남편 성수(이상우 분)는 판도라의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진; 감자별; osen)

16일 <감자별>에서 백설공주가 되어 광고 촬영을 하러 간 나진아(하연수 분)에 대한 노민혁 형제의 반응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이제 막 나진아를 여자로 좋아하기 시작한 노민혁(고경표 분)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회사 대표의 호의를 빙자해, 첫 광고 현장에서 자신없어 하던 그녀를 북돋아 주고, 자신의 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는 등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한 이미 산꼭대기 허름한 나진아네 집에서 부터 나진아를 마음에 두고 있던 준혁(여진구 분)은 사랑의 마음을 '못생겼다'는 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더 사랑하지만 더 괴롭히는 사랑의 역설이다.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라고 하지만, 그 약자가 늘 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에 의심하고, 사랑하기에 불신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주체치 못해 괴롭힌다. 그래서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by meditator 2013. 12. 17. 10:35

이번 <인간의 조건> 미션은 스트레스없이 살기이다. 시간과 일에 쫓겨사는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없는 삶이라니!  스트레스없이 살기라는 미션를 받아든 순간, 스트레스의 불가피함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는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미션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여섯 명의 개그맨들을 차근차근 스트레스학의 개론부터 시작해 간다.


스트레스없이 살기 미션을 풀어내기 위해 멤버들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이 스트레스 받는 것들을 써보고,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이 스트레스 받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한다. 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어떤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놀라웠던 것은 늘 멤버 중 엄마 노릇을 자청했던 정태호, 내세울 것이 없다 생각하여 늘 남보다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열심히 일을 하려 했던 정태호에게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말하듯,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결국 정태호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과정에서 등장한 '감정 노동'이란 단어는 요즘 현대 산업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자살, 우울증' 등의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형의 산업 재해를 낳으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큰 공감을 낳았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직업인 사람에게, 그 반대 급부로 감정 노동으로 인한 마음의 병이 생긴다는 이면의 진실이 시사적이다. 

(사진; 스타투데이)


당연히 스트레스를 탐구한 미션은 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미션으로 이어진다. 착한 엄마 노릇을 하던 정태호는 이번 미션에서만은 아지트의 요리사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요리를 안하는 것만으로도 정태호는 한결 편안해 한다. 그런 정태호의 모습에서 우리네 가정의 주부들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언제나 다른 멤버들이 부산하게 미션을 향해 움직일 때 그 둔중한 덩치 만큼이나, 조금 느리게 한발 비껴서서 미션을 맞이하는 김준현은 이번에도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열중하는 멤버들과 달리, 느긋하게 스트레스를 피해가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 더 자고, 조금 더 즐겁게 먹고, 심지어, 스트레스에 덜 시달리기 위해 일도 줄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일탈'을 즐기기 위해 나선 곳은 공원 벤치이다. 통기타 하나를 튕기며 노래를 부른다.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르고~' 김광석과 이상은의 노래가 그의 입에서 나직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신기한듯,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먹거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노래를 마친 김준현은 그의 노래의 값으로 받은 핫바를 물며 말한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의 자신도 이렇게 거리에 나와 노래를 불렀었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았었다고, 그러면서, 일탈은 과거의 자기를, 이제는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불러내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뿐만 아니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을 넘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을 찾아 위로도 해주어야 한다. 직업적인 스트레스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박성호는 며칠간 냉전 중이었던 아내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김준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세 아이의 아빠 김대희를 찾는다. 박성호와 김대희의 시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장의 고뇌이다. 함께 나누려는 가족과, 그것을 혼자 감당할 짐이라고 생각하는 가장의 딜레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쉬러 가고 싶지만, 그것이 제 2의 직장이 되어버리고 마는 육아의 딜레마,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현대인의 참회록같은 스트레스없이 살기 미션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돌아보는 미션을 행간의 한 줄로 다룬다. 대부분 함께 어울려 짜하게 게임을 하고, 벌칙을 수행하는 시끌벅적한 시간들로 채워진다. 지난 번 광희에 이어, 합류한 택연으로 인해, 안그래도 여섯 멤버로도 중구난방으로 채워진 듯한 미션은 과부하가 걸린 듯 달려간다. 미션의 내용은 스트레스없이 살기인데, 한 시간 남짓한 시청 시간의 감상은 떠들썩한 잔칫집을 보고 난 느낌이다. 거기로 나가 웃통을 벗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프리 허그를 하고, 심지어 볼 뽀뽀를 해달라고 애걸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결했다고 한다. 즉자적이고, 감각적인 일탈이, 관조적이고 철학적인 일탈의 잔향조차 날려버린다. 

되돌아 보면 <인간의 조건>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젼 없이 살기라는 단순 미션을 '아날로그한 삶'으로 승화시켰을 때였다. 말 그대로 <인간의 조건>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여섯 멤버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이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인간의 조건>은 스스로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인간의 조건>의 본향을 지켜 가는 것과,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그래서 <인간의 조건> 팀이 선택한 것은 광희, 택연 등 아이돌 자원의 유입으로,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의 참여와, 본향의 목적이 잘 어우러진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최근 <인간의 조검>은 '아날로그한 인간의 향취'와 오락 프로그램 사이에서 늘 줄타기를 하거나, 오락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에 함몰된 듯한 느낌이 든다. 

(사진; 스포츠 월드)

과연 토요일 늦은 밤 떠들썩한 <세바퀴> 대신 <인간의 조건>으로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정태호는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같은 모습이다. 그의 고민과 그의 고민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가사에서 해방되려고 하는 발버둥과, 몸에 문신을 하면서까지 착한 사람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일련의 과정을 조금 더 이번 스트레스 없이 살기의 중심 스토리로 엮어 갔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조금 더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훌륭한 주제와 좋은 자원을 <인간의 조건>은 산화시켜 버린다. 

아이돌 게스트를 초대한 <인간의 조건>은 정태호의 스토리를 차근차근 보여줄 여력이 없다. 그는 열외로 밀려난 채 택연을 중심으로 한 오락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욕심만 드러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뻔한 개그맨들의 웃기려고 애쓰는 쇼가 될 뿐이다. 웃음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처음 시청자들이 눈길을 돌린 게 여섯 멤버가 웃겨서가 아니다. 웃음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과정의 양념일 뿐이다. 양념이 센 음식은 쉬이 물린다. 


by meditator 2013. 12. 15.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