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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간 책정된 적은 예산으로 드라마가 만들어 지기에 2013년 12월 8일 <진진>으로 마무리 되었던 드라마스페셜이 2014년 단막극으로 돌아왔다. 비록 모두가 새로 시작할 한 주를 버거워 하며 잠자리에 들고도 남을 다음날을 5분 앞둔 11시55분이지만. 그렇게 의욕적으로 시작된 2014 단막극의 첫 작품은 <학교 2013>의 프로듀서인 한상우 피디와, 지난 해 드라마 스페셜 <그렇고 그런 사이>로 그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홍정희 작가의 <카레의 맛>이다.
<카레의 맛>은 홍정희 작가의 전작이 그랬듯 화면과, 배경과, 그리고 작품의 내용까지 삼위일체로 단편 드라마의 맛을 제대로 살렸던 <그렇고 그런 사이>처럼 역시나 또 한번 단편 드마라로서의 묘미를 뽐낸 2014 단막극의 시작을 알리기에 손색이 없는 드라마이다.
홍정희 작가의 전작 <그렇고 그런 사이>로 가보자.
이 드라마의 주된 축은 죽은 남편과, 그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아내 은하(예지원)와 그녀 앞에 불쑥 등장한 남편의 후배 준희(송하윤)의 갈등이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그를 놓지 못해 그의 블로그 이웃들을 불러모을 만큼 남편을 믿고 사랑했지만, 알고보니 그는 잠시 후배를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에 아내는 혼란스러워 한다. 한 술 더 떠 후배 역시 그를 잊지 못해 그의 집까지 찾아들어오는 것이다.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삼각관계이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남편이 사랑했던 후배, 하지만, 두 여자가 사랑한 대상 남편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진다. 그렇게 드라마는 지극히 통속적인 부부 사이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다.
<카레의 맛>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몽땅 쏟아부어 음식 솜씨도 없으면서 식당을 연 유미(전혜빈)가 식당의 메뉴를 카레로 정한 것은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해주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 앞에 청년 경표(현우)가 등장한다. 식당 앞에 누워있단 그녀때문에 기억을 잃었다 주장하며 그녀 식당에 기생하며 무임금 알바를 자청한 청년은 묘하게도 그녀와 비슷한 식습관 등으로 그녀의 주의를 끈다. 게다가 대담하게 그녀 식당의 주메뉴인 카레가 맛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고 그녀에게 은근슬쩍 비법을 전수하기도 하는 것으로 그녀의 맘을 끌어당긴다. 자꾸 그가 신경쓰이는 유미는 그런 그에 대한 관심을 '남자'에 대한 그것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이 청년, 평생을 바람으로 어머니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하지만 다른 씨는 남기지 않았다는 자존심마저 무색하게 만든 아버지가 남긴 배다른 동생이었다. <그렇고 그런 사이>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통속극에 어울릴 애증의 가족 관계의 등장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 애증의 대상이 된 아버지는 죽고 없고, 그저 유미가 그의 맛을 그리워하며 식당을 열 만큼 추억의 대상으로만 남아있다. 그러기에, 유미와 그녀의 배다른 동생은 통속극에서 재산 싸움 대신에, 애증의 갈등 대신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공감대로 유대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 지극히 통속적인 우리네 가족 관계를 비틀어 생각할 수 있는 단막극 <카레의 맛>의 묘미가 시작된다.
단편 소설처럼, 단막극도 우리가 세상을 살며 조우하게 되는 모든 사건들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진부해진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해결했던 문제들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쉼표와도 같은 시간인 것이다. 죽은 남편의 바람도, 죽은 아버지의 바람도, 그저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해지는 상처만이 아니라, 홀로 기억해야 할 추억의 더하기, 그리고 홀로 남은 외로움의 완충재로 더해질 수 있음을 단막극은 말해준다. 그래서, 단막극이기에, 그를 사랑해서 머리끄댕이라도 잡아야 했던 그녀들을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유대하고, 아버지를 나누었던 누나 동생은 함께 밥을 먹는다. 단막극에서라면 통념의 관계들이 전복되고, 그것은 우리가 견고하게 버텨왔던 경징된 관계들에 숨쉴 여유를 주는 것이다.
홍정희 작가의 전작 <그렇고 그런 사이>처럼, 이번 <카레의 맛>의 묘미는 극의 주제을 풀어내는 데만 있지 않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주연을 제외한 인물들이 제공하는 온기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고 그런 사이>에서 남편의 블로그 이웃으로 등장한 사람들처럼, <카레의 맛>에서 식당을 드나드는 사람들 역시 따스한 이웃 그 자체다. 등장은 가게세를 닥달하는 미용실 원장에, 스토커같은 손님, 그리고 그저 평범한 동네 경찰 아저씨였지만, 그들은 유미가 가게를 닫고 사라졌을 때, 그녀의 부재를 걱정해 주고, 결국 그녀에게 돌아올 힘을 내도록 견인해준 진짜 이웃이 되었다. 그렇게 드라마는 우리가 이제는 이웃 사람하면 범죄자가 주인공이 된 영화 제목을 떠올리듯, 남이거나, 심지어 남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게 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따스한 그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살포시 자신의 생각을 얹는다. 가족으로 인한 상처조차 스멀스멀 치유될 만큼. 이 역시 굳이 리얼리티를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단막극의 묘미라면 묘미랄까.
또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단편 드라마에는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연출과 그외 스태프가 공들인 티가 역력한 화면과 음악이 있다. <그렇고 그런 사이>에 남편이 딸을 위해 고집했던 한옥의 맛을 고스란히 살린 연출이 있었다면, <카레의 맛>에는 홍대 앞 자그마한 식당의 소박함이 들어가 있다. 고고한 빌딩 숲이 세력을 떨치는 서울 하늘 아래, 그래도 사람들이 모여 숨쉴 틈이 되는 듯한, 고즈넉한 한옥, 훈훈한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목재로 마감된 가게가 드라마의 주제를 한결 돋보이게 만든다. 거기에 얹혀진 음악은 주인공들의 정서를 가장 로맨틱하게 대변한다. 늦은 밤 나 혼자 만끽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그래서 또 늦은 밤 나 혼자 보는 게 안타까운 작품이기도 하고. 마치 외딴 골목에서 만난 조그만 화랑의 아름다운 그림을 누군가 같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카레의 맛>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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