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밝은 달밤에  /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로구나.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위의 노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이 불렀다는 노래다. 여기서 아내와 함께 누워 있는 다리 두 개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의 것이고, 처용은 그런 역신의 모습을 알아차려 노래를 불러 역신을 내쫓았던 기인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제 그 설화 속 인물 '처용'이 형사가 되어 돌아왔다. 

2월 9일 밤 11시부터 ocn에서 2회 연속 <처용>이 첫 방영 되었다. 드라마 제목처럼 <처용>의 주인공 윤처용(오지호) 형사는 [삼국유사] 속 그 처용처럼 귀신을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건에 휘말려 들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것이 <처용>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간 ocn에서 제작된 수사 드라마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귀신을 본다는 기담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처용>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딘가 특수수사 전담반<TEN>과 <뱀파이어 검사>의 잔향이 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OCN표 수사드라마의 공식이 정해 졌다고 하는 편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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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새로 시작된 <처용>, 종영된 특수수사 전담반<TEN>, <뱀파이어 검사>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외로운 능력자들이다. <TEN>의 여지훈(주상욱)이 인간적 경계를 뛰어넘은 뱀파이어 민태연(연정훈)과 귀신을 보는 윤처용에 비해 인간적인 한계를 지니지만, 범죄 심리학자 출신에, 애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연쇄 살인마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내던지는 한에선, 그 능력에 있어 보통의 인간 수준을 넘는다는 점에서는 그리 뒤처지지 않는다. 즉, <TEN>의 이지훈이던, <뱀파이어 검사>의 민태연이던, 그리고 <처용>의 윤처용이든, 각자 수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할 만큼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되려 낭중지추라고, 이들은 그 능력으로 인해 외로운 처지에 놓인다. 

<뱀파이어 검사>의 민태연은 당연히 인간의 피를 공급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뱀파이어이기에, 대한민국 검사라는 번듯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늘 어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TEN>의 여지훈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그의 트라우마는, 잘 나가던 심리학 교수직 대신에 특수사건 전담팀의 외곬수 팀장직으로 귀결된다. <처용>의 윤처용 역시 마찬가지다. 귀신을 보는 그의 능력으로 인해 한때 광역 수사대에서 날아다녔지만, 그의 발군의 능력으로 인해 범죄자의 타겟이 되고, 그로 인해 아끼던 후배를 잃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경찰차를 몰고 순찰이나 다니는 처지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들 주인공의 캐리어 상의 고독함을 배가시키는 건 각자가 품고 있는 상처많은 가족력이다. 민태연의 여동생, 여지훈의 약혼자, 그리고 잠시 등장했지만 피투성이 몰골의 처용의 아버지까지, 주인공들은 시즌 내내 가족, 혹은 애인으로 인한 상흔으로 인해 고통받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고, 내몰 것이다. 드라마는, 각각 회차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사건을 끌고 나가면서, 그 사건들 아래에서 부지런히 주인공 각자의 트라우마가 얽혀진 큰 사건의 밑그림을 그려가느라 분주한 것이, 미드식 전개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OCN표 드라마의 특징이다.

(사진; 스타엔뉴스)
 

따라서 <처용>도 무리없이 단 2회만에, 병원에서 실종된 아이 엄마라는  개별 사건 해결과 함께, 윤처용과 하선우(오지은)가 얽혀 있는 과거의 사건의 흔적, 나아가 윤처용의 아버지라는 전체적 윤곽을 선보이며 OCN표 수사 드라마의 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처용>의 진가가 드러났다기에는 이젠 OCN표 수사 드라마의 공식이 너무 익숙해 졌다. 덕분에 그간 미드나, <TEN>, <뱀파이어 검사> 등을 즐겨왔던 팬이라면 무리없이 <처용>에 빠져들수 있는 반면, 또 그만큼 어딘가 본듯한 기시감 또한 떨쳐 버릴 수 없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용>은 선택한 전략은 귀신 보는 형사라는 전략에 맞춘 '빙의'를 등장시킨다. 경찰서에서 소일하던 여고생 귀신 한나경(전효성)이 극적인 순간에 하선우의 몸에 들어가 사건에 직접 개입한다는 신선한 전술이다. 극의 절정에서 빙의된 한나경의 기억에 잠시 떠올려진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 그리고 드라마의 말미 잠시 스쳐가듯 보여진 한나경과 하선우가 함께 찍힌 사건에서 한나경의 빙의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면서 <처용>이 보여주는 드라마로서의 맛은 한결 독특해 진다. 귀신을 보는 형사에, 빙의된 여형사 걸맞는 조합이다. 

OCN의 드라마는 미드식 수사 드라마로서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트렌드에 맞게 적절한 소재를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신의 퀴즈>로 메디컬 수사 드라마의 효시를 열더니, 이어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인간의 경계를 허물더니, <특수사건 전담반 TEN>을 넘어 귀신을 보는 형사<처용>까지 이르렀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오가며, 장르적 진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부디 <처용>도 그간 앞서의 드라마들이 시즌에 시즌을 거듭했듯, 충실한 스토리로 다음 시즌까지 고대할 좋은 수사 드라마로 남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2. 10.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