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을 쓰기 전에 누군가의 엄마인 내가 가진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싶다. 

누군가의 엄마인 나는 <신의 선물>을 보면, 묘한 이중적인 감상에 휩싸인다. 
딸을 살리고자 시간을 거슬러 온 엄마 수현(이보영 분)에게 그다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기에 그럴 수록,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범인은 찾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엄마 수현의 맹목성이 그 누구보다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에서는 또 엄마인 수현이 와닿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온 수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딸이 여전히 과거의 시간 속에 생존해 있음을 확인하자마자 최선을 다해 딸과 함께 도망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제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마치 운명처럼, 수현과 수현의 딸은 사건을 향해 멈출 수 없는 행보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현은 딸과 함께 도망치는 대신 스스로 범인을 찾는데 나선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24일 방영분에서도 보여지듯이 수현이 범인을 잡는 과정은, 그녀 스스로가 짚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듯한 위기의 순간들 뿐이다. 앞서 범인으로 추측되었던 신봉섭(강성진 분)을 잡기 위해 변장에 육박전까지 불사했다. 하지만 그런 수현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신봉섭이 예상치 못한 오토바이를 탄  남자에 의해 살해 당하자, 그 오토바이 탄 남자로 추측되는 장문수(오태경 분)의 집을 탐색하기 위해 들어갔던 수현은 예상치 못하게 장문수에게 사로 잡혀 입막음에 포박을 당하는가 하면, 결국 또 염산 병이 난무하는 육박전을 벌이게 된다. 이렇게 살벌한 범인 색출 작전인데, 제 아무리 아이를 사랑한다 한들 아이와 함께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온 수현은, 샛별이가 죽기 전보다도 더 딸인 샛별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비상이 걸려 뛰쳐나가는 형사들처럼, 수현은 어디선가 범인과 관련된 정보를 들으면, 그 누구라도 좋으니, 아이를 맡기고 뛰쳐나간다. 그것이 남편(김태우 분)인 것은 당연지사요, 때로는 동찬의 사무실의 여직원 제니(한선화 분)이기도 하고, 후배 작가인 주민아(김진희 분)요, 옆집에서 일 돌봐주는 할머니(정혜선 분)이기도 하다. 

(사진; 리뷰스타)

그리고 6회와 7회를 거쳐 새롭게 등장 인물들의 사연이 밝혀지면서 연쇄 살인범이나, 아동 강간 살해범이 아니라, 오히려 수현이 무방비하게 아이를 맡기는 인물들에게서 수상한 점들이 발견되어 가고 있다. 알고 봤더니 샛별이의 아버지는 과거 동찬의 형 사건의 담당 검사였으며, 믿음직스런 후배는 남편의 내연의 애인이었다. 하지만, 집 바깥으로 돌며 사건을 해결하려 고군분투 중인 수현을 그 사실을 모른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식이다. 아이를 구한다며, 아이를 방치하는 수현의 모성이 영 불편하다. 

더구나 수현의 아이 샛별이는 남편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말던 자신이 궁금하다고 대뜸 남편의 멱살부터 잡아채는 수현처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상황을 돌아보지 않고 덥석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에서 똑같다. 그래서 쉽게 사라지고, 쉽게 누군가를 쫓아가 엄마인 수현은 물론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운다. 


과연 이런 수현의 딜레마, 범인을 쫓기 위해 아이를 방치해야 하는 모성의 편향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를 유괴한 범인을 쫓는 엄마라는 캐릭터로 인해 불가피하게 아이를 방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신의 선물>이 가진 구조적인 패착이 되겠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또 하나의 복선이라면?

되돌아 보건대, 과거에도, 수현은 첫사랑과 잠시 만나기 위해 샛별이를 누군가에게 맡겼었다. 그런 수현의 사소한, 하지만 결국은 결정적인 무신경이 딸 샛별이의 유괴로 이어졌었다. 그런데, 자살 시도 끝에 시간을 거슬러 온 수현은 다시 범인을 찾겠다며 자신의 딸을 누군가에게 덥석덥석 맡긴다. 더구나, 그때 그 사건이 났을 당시 맡겼던 후배 작가에게, 전혀 의심도 없이, 샛별이이 손을 넘겨준다. 정작, 사건을 쫓느라,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오류를 되짚어보는 반성이 없는 것이다. 

7회 기동찬은 함께 일하는 병태(연제욱 분)에게 눈으로 보여지는 사건의 이면에 대한 경구를 듣는다. 동찬을 그 후배의 말을 통해, 형의 사건을 의심해 본다. 하지만, 오히려 후배의 말은 수현에게 더 어울린다. 가장 그녀가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제 7회에 본격적으로 의심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샛별이의 사건이 남편이 검사였던 시절에 있었을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정작 사건의 발단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주변에 무신경했던,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믿었거니 했던, 그녀의 무신경, 막연한 신뢰에서 비롯되고 있다. 수현은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7회 엔딩에서 후배에게 손을 잡혀 가다 자동차와 부딪치게 되는 샛별이처럼, 어떤 면에서 수현은 사건이 일어나도록 조장하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신의 선물>의 모정은 불편하다. 열렬히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기엔 어쩐지 껄쩍지근하다. 심지어 수현의 열성적인, 하지만 맹목적인 모정의 여정이 가혹한 댓가를 치를 것 같아 불안하기 까지 하다. 시간을 거슬러서도 여전한 수현의 맹목성, 그리고 역시나 시간을 거슬러서도 자신이 본 것만을 믿겠다는 기동찬의 또 다른 맹목성이 부서져 나가는 시간, 그래서 진실 앞에 오열하게 되는 비극의 시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 삶의 위선과 마주서는 시간, 그것이 <신의 선물>이 남긴 이야기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25. 02:03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건 어떨까? 

더구나 그 아이가 첫 아이라면 아마 처음 부모가 된 누구라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내 아이에게 다 해주고픈 마음이야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늘 그런 바닷물이라도 다 퍼줄 수 있을 거 같은 부모의 마음을 가로 막는 건 현실이라는 장애다. 마음은 세상 모든 것을 다해주고 싶어도, 살아가는 형편이, 생활에 빼앗겨야 하는 시간들이 내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고픈 부모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늘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자신의 형편껏 해줘야 하는 처지가 한스럽고, 남들만큼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런 죄책감을 달고 살게 된다. 해줄 수 있는 절대치의 한계를 그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겠는가마는, 대신 부모들은 죄책감의 기준을 남들 해주는 만큼으로 부지불식간에 정하게 된다. 남들이 해주는 만큼은 해줘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많은 부모들에게, 참 남들 해주는 만큼 해주지 못해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마구마구 들게 하는 죄책감 양산 프로그램이다. 

몇 주째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ppl의 문제로 시끄러웠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휘재의 아내가 광고하는 화장품이 프로그램 중에 노골적으로 등장하고, 뜬금없이 놀이공원에서 갈아신는 신발이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그런 ppl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더 심각한 것이 있다. 아이들 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령별 가족들이 보여주는 교육 혹은 양육 과정이 자꾸 사행심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루의 바이올린 선생님으로 규현의 친누나가 등장해 누리꾼의 시선을 모았다./KBS 2TV슈퍼맨이 돌아왔다
(사진; 스포츠 서울)

23일 방송에서 이휘재는 그의 아기 서언이를 데리고 오감을 체험하는 교육 과정에 참여했다. 
그 오감 체험 교육 과정의 내용이란게 밀가루를 만져보고,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 보고, 뻥튀기를 만져보며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밀가루와 뻥튀기라니! 굳이 그걸 문화센터에 가서 돌도 안된 아기가 직접 배워야 하는 과정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라면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집에서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더구나, 교육 과정에서도 나왔듯이, 서언이 또래 아이들은 육아 발달 단계 상 '구강기', 즉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서 확인하는 단계라 그것이 밀가루이든, 뻥튀기이든 우선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오감 체험이란 명목으로 밀가루나 밀가루 반죽을 쥐어주고, 그걸 입에 가져 간다고, 수십 번을 '안돼'라고 제지하는 걸 과연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어린 시절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따끔하게 제지하는 것은 원칙적 방식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 끊임없이 안돼라는 부정적 단어에 노출된 아이는 심리적으로도 위축된다는 교육적 입장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명한 결론은 부모된 입장에서 필요한 자세는 가급적 '안돼'라고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굳이 밀가루를 쥐어주고 끊임없이 '안돼'라고 하는 식의 방식이 교육적인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충분히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오감 체험이나, 체조들을 아직 사회성이 발달되지 않은 아기들을 모아놓고 하는 교육이 과연 효과적일까도 의문이 든다. 그것 역시 우리 사회에서더 어린 나이로 자꾸 자꾸 내려가고 있는 조기 교육의 과열 증상의 한 예가 아닐까 싶은 우려가 드는 것이다. 

조금 더 큰 하루네도 마찬가지다. 
매주 하루와 하루 아빠는 하루의 장래 희망 찾기 프로젝트라는 명목 하에 온갖 프로그램을 찾아다닌다. 발레를 배우는가 하면, 마술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다가, 이젠 바이얼린을 사줬다. 연어 낚시나, 딸기 따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뭐 하나 지긋이 하는 것도 없이 이번 주는 이거 해보다가, 다음 주는 저거 해보는 식이 과연 하루란 어린 아이의 교육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 의심이 든다. 더우기 보기가 불편한 건, 하루와 하루 아빠가 돌아다니며 하는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평범한 부모가 아이들이 관심있어 한다고 덥석 바이얼린을 사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전공으로 하려고 배우는 학생조차 그 비용이 비싸서 임대해 쓰는 것이 바이얼린 등의 악기인데 말이다. 

이휘재의 아기들이 자주 찾아다니는 교육 과정, 그리고 하루와 하루 아빠가 참가하는 프로그램으로 보자면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문화 센터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 체험 학습의 모든 것들을 섭렵할 야심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돌도 안된 아기나 이제 서너 살 된 아이와 아빠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예능 프로그램화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매주 새로운 내용으로 그것을 채워가야 한다는 부담도 크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매주 이곳 저곳을 섭렵하는 그런 시도들이, 그 방송을 보는 어떤 부모들에게는, 우리도 내 자식에게 저 정도의 경험을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배려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겨우 너무 없는 듯이 보인다. 

(사진; 엑스포츠 뉴스)

게다가 정작 한참 교육을 스폰지처럼 받아들일 나이의 준우, 준서네 부자가 대부분의 시간을 아빠가 직접 요리를 해주고,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여행을 다니는 식으로 보내고 있다.그런데 그에 비하면 그보다 어린 아직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엔 어려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배우러 다니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올바른 방식인가란 생각도 들뿐만 아니라, 과잉이란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가 한글을 배우거나, 놀이방을 가는 것 외에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보면, 부모들의 교육적 입장의 차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아빠 어디가>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현실에 비하면 과분한 아빠와 아이들의 사치스런 여행이 문제제기 된 바 있었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또 여전히 그런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매주 바뀌는 교육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휘재네 가족과 하루네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그 또래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요 라는 식의 고도의 교육 ppl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재롱과,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아빠의 순수한 모습에 행복해 할 수 있는 시간을, 내 아이도 저런 걸 시켜줘야 하는 건가라는 부담의 시간으로 전가시키는 일이 적어지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3. 24. 02:33

시즌 2에 이르르며 금요일 밤 고정 시청자 층을 확보하고 있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2>의 결론은 언제나 이혼이다. 온갖 문제에 휩싸이던 부부들은 결국 이혼 재판정에 나가 자신들의 결혼을 심판받는 것으로 드라마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4주 간의 숙의 과정을 거쳐 그들이 이혼을 하지 않던, 이혼을 하던, 일단 그들의 부부 생활은, 이혼이 종착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tv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결혼이 인륜지대사인 만큼, 그 인생 최대의 과제인 결혼을 '쫑'내는 이혼은 마침표 그 자체였었다. 하지만, 이제 시즌2에 이를만큼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결혼과 육아가 권장해야 할 미덕인 지에 대해 의문 부호가 슬며시 붙여지기 시작한 것처럼, 이제 더 이상 이혼이 우리 사회에서 가슴아픈 일이지만, 보기 드물거나 이상한 사례가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부쩍 드라마에서 이혼 후의 후일담을 다루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드라마 제목에서 부터 이혼을 전제로 하고 들어가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억압적 시집살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 부부의 재혼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병원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응급남녀>는 제목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이야기들을 우리 나라 드라마들이 늘 그래왔듯이,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병원에서 다시 조우하게 된 이혼 부부의 갈등에 촛점을 맞춘다. 벌써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드라마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 <앙큼한 돌싱녀>의 경우 역시 이혼을 한 부부가 한 직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그 주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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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하면 끝이었던 지금까지의 드라마들과 달리 <세번 결혼하는 여자>, <응급남녀>, <앙큼한 돌싱녀>는 이혼이 끝이 될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그것이 단 1년이 되었건(응급남녀), 지긋지긋하게 싸우다 원수가 되어 헤어졌건(응급남녀, 앙큼한 돌싱녀), 주변 가족으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건(응급남녀, 세번 결혼한 여자) 그들이 함께 한 시간들이 결코 무위의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가 있어서, 아니 아이가 없어도 두 사람이 함께 살을 부대끼며, 한 공간을 공유했던 시간들이 결코 끝난다고 끝나지는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세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줄곧 이야기한다. 

이혼이 빈번한 사회적 현상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인생의 실패로 자리매김하는 사건으로 다루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혼이란 사건이 드라마로 들어오면서 결국 복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헤어졌지만 함께 낳은 아이로 인해 어쩔수 없이 자꾸 얽히게 되고 (세번 결혼하는 여자), 함께 한 시간때문에 만들어진 인연들로 인해 또 다시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되고, 그래서 상처받고, 때로는 그래서 더 상대방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세번 결혼하는 여자, 응급남녀), 아니다 했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미쳤던 영향력을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실감하게 되면서(앙큼한 돌싱녀) 지난 시간을 복기한다. 

그러면서 지난 결혼의 시간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가 깊지 않았음을, 혹은 자기 중심적이었음을 반성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방식은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개인의 성장과 관련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아직 철없던 시절에 이혼을 하고, 철이 없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실수로 이혼을 한 것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이혼이 아니라, 개인의 실수와 실책으로 이혼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런 경우의 진단에 있어서는, 그렇다면, 지나간 과오를 반성하고, 그것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리고 반성에 대한 실천의 차원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여지가 크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세번 결혼하는 여자>나, <응급남녀>, <앙큼한 돌싱녀>에 모두 이런 방식의 사고가 들어있다. 


물론, 실제 결혼과 이혼에 있어서는 인간과 인간의 감정이 첨예하게 맞붙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이런 식의 해석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첨예화된 사회적 갈등 속에서 고사되어 가는 사람들을 '힐링'이나 '심리적'요인만으로 해석하고 치유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시즌을 거듭할 정도로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이혼이 가지는 수많은 사회 경제적 이유를 획일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리적 기제만으로서 이혼을 치유하고자 하는 측면에서도 최근의 드라마들이 보다 나은 성취를 보인다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두 부부의 해후와 해프닝과 되살아나는 사랑에 촛점을 맞추는 <응급남녀>와 <앙큼한 돌싱녀>가 2006년에 만들어진 <연애 시대>가 가졌던 이혼 후의 부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행보로는 회의적이다. 


심리적 해석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여전히 어른들 세대의 사랑보다는 '정'이라는 전통적 인정주의가 스며들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때는 지긋지긋해 했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익숙하고,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그의 사정을 잘 알고, 더 이해하는,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되면 더 쉽게 그에게 경도될 수 있는 인지상정이 이혼을 하고도 그들의 발목을 여전히 함께 묶어 두고 있다. 외로운 개인보다는 서로 어깨를 겯고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부부가 우선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목을 묶어 두는 것에는 그 두 사람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도 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나, <응급남녀>에서 처럼 이혼을 하게 된 계기 중 가장 큰 것이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있는 시어머니의 억압이 큰 요인을 차지한다. 즉 이 말은 돌려보면, 이혼의 주체가 부부이되, 그 원인이 부부가 아님으로써 오히려 부부는 그 이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혼을 했지만 계기만 있다면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뿐만 아니다. 이혼을 하고 독자적인 개인이 됐음에도 이혼 전의 가족이었을 때의 가족 관계들이 이혼 후의 개인을 독립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도 이혼의 후일담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정부모, 그리고 시부모는 갈등 요인이자, 동시에 그들을 여전히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게끔 헷갈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족과 개인이 혼재되어 분리되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사진; 서울신문)

하지만 한때는 이혼이 결혼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식이나, 심지어 한 개인의 해방까지도 여겨졌던 트렌드가 최근에 있어서 그 반대의 조류로 등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한번 쯤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최근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도 이혼 위기의 부부들은 결국 이혼 도장을 찍지 않았다. 그리고 이혼을 한 부부들조차, 자신들의 이혼을 되돌아 보며, 과거의 인연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가족들은 한때 그들이 이혼에 이르게 할 만큼 딜레마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들은 보호받고, 갈등을 해결하고, 그래서  다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을 이루고자 애쓴다. 

한때는 성취와 해방의 상징이었던 개인의 독립이 사회적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고, 사회적 안전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한에서, 취약할 뿐더러, 결국 믿을 건 다시 가족 밖에 없다는 복고적 결론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뛰쳐나갔던 양이 스스로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듯, 갈등을 겪던 부부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봉합하고, 이혼을 하고 개인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조차,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가족을 다시 꾸린다. 그리고 그것이 이혼 후 후일담을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새로운 조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23. 12:16

<라디오 스타>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채널을 케이블 m.net으로 돌리면 김구라가 거기에도 앉아있다. <라디오 스타>와 비슷한 크기의 스튜디오에, 테이블을 놓고(알고보면 커다란 변기이지만) 거기에 몇 사람이 삥 둘러 앉아있는 것이 <라디오 스타>의 판박이다. 어라, 게다가 김구라 옆에서는, 자발적으로 <라디오 스타>를 떠난 전 mc 유세윤까지 터억 하니 앉아있다. 심지어, 대놓고 자신들을 고품격이라 줄곧 주창해오는 <라디오 스타>를 의식이라도 한듯, 일관되게 저품격 음악 방송이란다. 마치 b급 패러디 영화처럼, <音담패설>은 대놓고 <라디오 스타>를 연상시키며, 이제는 공중파의 평범한 토크쇼가 되어가던, <라디오 스타>의 b급 정서를 야무지게 차용하며 등장한다. 


<音담패설>이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음악과 관련된 뒷담화를 지향한다. 그런 프로그램의 성격을 화장실 컨셉의 스튜디오, 변기로 설정된 테이블에,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비롯한 각종 화면의 등장이 변기 테이블 안의 배설물처럼 등장했다가 배경에 달린 변기 레버나, 위에서 내려온 줄을 당겨 사라짐으로써, 이 프로그램의 '배설'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音담패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도 가쉽성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제일 먼저 등장한 첫 번째 주제가 kpop의 실체를 다루는 것에서 부터 이 프로그램이 가지는 음악 평론적 성격이 그다지 만만치 않음을 드러난다. 그간 음악 방송을 비롯하여 뉴스에서까지 일방적인 칭송에 머무르던, kpop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간 뉴스 및 각종 기사 등에서 다루어진 kpop기사가 모두 한 사람에 의해서 씌여진 것이었으며, 그 기사가 그저 각국의 음악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정도라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소 평가할 필요는 없는 것이 빌보드 지에서 그 기사를 쓴 기자와 직접 인터뷰를 통해, 미국 내에서 유트브 등을 통해 기성 세대까지는 아니지만 젊은 층에게는 kpop에 대한 인지도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것을 검증받음으로써 객관적인 kpop의 실체에 접근한다.

이어서 다루어진 꼭지는 과연 마이클 잭슨과 아이돌 그룹 exo중 누가 춤을 잘 추는가 였다. 다분히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낚시성 주제인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제작진은 둘을 모르는 노인층과 유치원 생들에게 둘의 영상을 보여주며 앙케이트 조사를 한다. 물론 결론은 exo의 완승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音담패설>은 안이하게 시류의 흐름에 안주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춤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시대적 변화라던가, 그리고 독무와 군무가 가지는 차이 등을 드러내 보이려 애쓰며, 결국 춤을 좋아하는 젊은이를 통한 평가로 객관적인 공정성에 다가가고자 애쓴다. 

그 다음에는 음악 방송인 <音담패설>의 첫 회다운 기획으로 소녀 시대 등 기라성 같은 기존 가수들을 제치고 몇 달간 음원 챠트 등을 석권하고 있는 정기고를 직접 스튜디오에 초대한다. 몇 명의 정기고를 등장시킴으로써 노래를 알려졌지만 정작 얼굴은 아직 낯선 정기고를 인지시키고, 그간 그의 약력 등을 소개하는 것에 존박 등의 언급을 더해, 정기고의 인기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시킴으로써, 첫 회다운 진가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몇명 신곡들에 대한 검증, 샤이니 키와 인피티트 우현, 오렌지 카랴멜, 윤종신의 상념 등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 과연 이 음악이, 이 뮤직 비디오가 들고 볼만한 것인지라는 기본에서 시작하여 별점 평가까지 내린다.

전체적으로 <音담패설>은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했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음악 평론적 성격을 띠면서도 그것을 그저 음악을 매개로 한 뒷담화인양 토크쇼인양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형식을 띤다. 하지만, m.net의 일부 프로그램에서 하고 있는 신곡 평가를 도입한다던가, 음악적 화제인 kpo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리려 한다던가, 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의 등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론적 성격의 프로그램을 이유식처럼 보다 접근하기 쉽게 만들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때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던 김구라를 비롯해서, 룰라 등의 프로듀서 이상민에,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평가받는 이단 옆차기, 거기에 개가수인 유세윤까지, 전문가와 대중성의 경계에 선 듯한 인물들의 면면만 보아도 이 프로그램의 성격이 드러난다. 예상 외로 마이클 잭슨과 exo의 평가에서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보이고, 윤종신의 '상념'이 가진 뜻밖의 중의성을 찾아내는 센스를 지닌 유세윤과 이상민의 활약이 기대된다. 

(사진; tv리포트)

저품격 음악 방송임을 공공연하게 내세운 1회만을 놓고 봤을 때, 아직 이 프로그램을 단언할 수는 없다. 심지어  몇 가지 우려가 되는 지점이 보이기도 한다.

우선은 그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김구라 식으로 만드는 메인 mc 김구라의 존재다. 
정기고를 초대해 놓고 그의 음악 보다는 그가 음악을 하도록 배경이 되어준 그의 부모님이 하는 족발집 이야기나 잔뜩 하는 식이라면 과연 이 프로그램이 <라디오 스타>와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식이다. 그 어떤 대상을 가져다 놔도 사십대 아저씨의 속물적 기준으로 해체해 버리는 김구라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과연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인가가 이 프로그램의 색깔을 살릴 수 있는가의 첫번 째 관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김구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음악 프로그램이란 곳에 나와서도 다른 곳에서와 똑같은 이야기만 해대는 김구라라면, 한때 음악 칼럼니스트인 것이 무색하게 노력하지 않는 그의 한계가 너무도 분명해 지는 것이다. 그나마 첫 회, <썰전>에서 정기고를 다루었기 때문에 정기고 맞추는 정도로 면피하기엔 조금 더 음악 프로그램의 mc다운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kpop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다루기 위한 시도는 좋았지만, 무수히 인용되는 빌보드 기사의 정체,  그 칼럼니스트의 실체를 밝히는 것만으로 그것을 다 보여주었다기엔 어쩐지 긁다 만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이클 잭슨과 exo의 춤 대결을 주제로 내걸어 놓고, 정작 mc들이 팬을 비롯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다하지 못하는 느낌은 어쩔 것인가, 결국 자신들이 내려야 할 냉정한 평가를 춤통령이라는 한 젊은이에게 맡긴 모습은 어쩐지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결구 저품격이든, 고품격이든, 이제는 꽤 눈이 높은 시청자들에게 음악적 '배설'의 대린 만족을 시켜주기 위해서는 초창기 <썰전>의 이철희나, 허지웅 정도의 속시원한 직론이 있어야 정체성이 살아날 것이다. 대놓고 첫 회부터 신곡을 놓고 동업자 정신을 운운하기 시작하고, 뭐 눈치 보고, 뭐 빼는 식이라면,  굳이 밤 늦은 시간 이 프로그램에 눈을 맞출 필요성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치, 문화, 심지어 남녀 관계까지 도마 위에 올려놓고 토론을 일삼는 이 시점에 음악이 그대상이 되는 건 음악 전문 방송인 m.net에서는 심지어 조금 늦지 않았나 싶은 당연한 시도이다. 부디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살려 오래 장수하는 프로그램으로 남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3. 22. 12:30

믹키 유천은 아이돌 시절부터 감성이 남달랐다. 그 또래 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그 아버지 세대처럼 일생에 세번 울어야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울음이 남들 앞에 쉽게 드러내놓기엔 어쩐지 나약해 보이는 감정 기제로 받아들여 지는 것과 달리, 그는 쉽게 잘 울곤 했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1등을 했을 때도, 그룹이 위기에 빠졌을 때도, 길고 힘들었던 일본 활동 후에 도쿄돔에 섰을 때도, 그는 자신의 소감을 맑은 눈물로 대신했고, 그의 눈물을 소녀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이제, 배우가 된 박유천은 울지 않는다. 대신 그의 눈물은 tv속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들이 대신 흘려주고, 소녀팬들 대신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박유천의 전작 <보고싶다>에서도 그랬다. 흔히 드라마에서 눈물은 여주인공의 몫이거늘, 드라마 <보고싶다>에서 눈물로 화제를 끈 것은 한정우 역의 박유천이었다. 14년 만에 처음 수연이인 듯한 여자를 보고 빗속에서 흘리던 눈물, 그녀가 자기라면 너부터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그녀의 엄마가 싸다 준 도시락을 먹으며 토해내던 눈물이 화제가 되었었다. 마치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 그가 아이돌 시절부터 박유천의 감성이 무엇인지를 조사하기로 한 것처럼 그의 눈물을 적재적소에 써먹고 있다. <쓰리데이즈>도 다르지 않다. 

(사진; 시사 포커스)

1회,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한태경이 된 박유천은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대통령 경호관으로써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대통령의 시장 방문 수행에 나섰던 한태경은 VIP의 포인트를 놓치는, 즉 대통령을 몸으로 막아야 하는 경호관의 기본도 놓치고,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뒤로 미루고 경위서를 작성하고 나오던 한태경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눈물을 흘린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 하지만 한태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듯 말듯하며 그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5회, 다시 한태경이 눈물을 흘린다. 
이번엔 흑흑거리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절규한다. 아니라고 말해달라며 보호를 받으며 가는 대통령을 쫓으려 한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경호실장을 경호관이라는 신념에 따라 쏘고,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에 대통령이 양진리 사건과 관련된 특검의 수사가 틀리지 않다는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1회 한태경이 흘린 눈물은 담백한 슬픔이다. 아버지를 여의 아들의 슬픔, 그리고 아버지로 인한 걱정 때문에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그럼에도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회한의 눈물이다. 정류장에 앉아, 한 방울 흘러내리기도 전에 닦아내는, 하지만 보는 사람은 저 사람이 지금 얼마나 침통해 하는 가를 공감하기에 충분한 눈물이었다. 엄밀하게 1회의 눈물은 그저 슬픔이다. 직무를 다하지 못했지만, 대통령은 그저 밀가루 세례를 받았을 뿐이고, 자신은 경위서만 작성하면 되는 정도의 실수이고, 아버지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에게 아버지는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하지만 5회 그는 자신의 손으로 경호실장을 쏘았다. 한태경이 행동을 할 때마다 함께 오버랩되는 경호실장의 지시 사항에서도 알수 있듯이, 경호실장은 그의 또 다른 아버지다. 경호관이라는 직무에 들어선 그를 보살펴 주고, 방향을 제시해준 정신적 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런 사람을, 한태경은 스스로 쏘았다. 그는 이미 그 전에 알았다. 자신의 아버지와 대통령이 양진리 학살 사건에 주모자임을 하지만 경호관으로 훈련된 그는 대통령이 누군인지 상관없이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경호실장이 가르쳐 준 메뉴얼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 다음 대통령에게 들은 대답은 그에게 안그래도 자기 스스로 정신적 아버지 같았던 사람을 스스로 쏘았다는 충격에 빠진 한태경을 또 한번 흔든다. 자신이 존경했던 친아버지의 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태경은 통곡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의 세계는 온전히 남아 한태경을 지켜주던 1회와 달리, 5회 한태경에게는 친아버지의 정신적 유산도, 그리고 신념을 만들어 준 경호실장도 이젠 그에겐 혼돈의 그것일 뿐이다. 자신이 의지해 왔던, 자신을 떠받치던 세상이 무너진 것이다. 

장르물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쓰리데이즈>의 한 축은 지탱하고 있는 것은, 눈물어린 한태경의 정서이다. 대뜸 1회부터 눈물을 흘리며 시청자들을 한태경의 시선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5회에 이르러, 그의 통곡을 통해 어찌보면 억울한 경호실장 함봉수의 죽음을 애도한다. 드라마는 한 축에서 대통령과 그의 정적들 사이에 피튀기는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 한태경의 슬픔과 고뇌의 흐름을 병존하여 가고, 여타 장르 드라마와 달리 감정적 공감대를 진하게 불러들인다. 슬픔과 고뇌가 현실태로 드러나는 액션씬은 액션을 위한 액션을 넘어 하나의 감정씬처럼 시청자들에게 전율을 일으킨다. 말간 눈물을 흘리던 믹키 유천은 이제 그저 배우 박유천이 되어, 한태경으로 깊은 감성 연기를 보인다. 

(사진; 무비조이)

신화 속 영웅 들은 아버지가 없다고 한다.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떠난 주인공들은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때로는 아버지를 죽이곤 한다. 신화학에서, 이런 살부의 메시지를, 성장으로 해석한다. 아버지의 세계에 발목이 붙들려서는 아들은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며 아버지의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준비하고 만들어 간다. 

그런 신화 속 주인공들 처럼, <쓰리데이즈>의 한태경의 아버지들은 죽었다.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는 죽고, 그가 만들어놓은 세계는 파괴되었으며, 경호관으로서 정신적 아버지였던 경호실장은 경호관으로서 그가 신념처럼 믿었던 세계를 뒤흔들고 그의 손에 죽어갔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상징적 아버지가 한 사람 더 남았다. 대통령, 그가 지켜야 하는 대통령, 세대적 상징인 아버지이다. 결국 그 아버지를 뛰어넘어 자신의 세계를 만들며 성장하는 이야기, 그것이  <쓰리데이즈>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21. 01:35
자, 다음 두 드라마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쓰리데이즈> 1회,  시장 순시를 나간 대통령(손현주 분)은 한 시민으로부터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곧 그 밀가루 세례는 대통령을 음해하려하던 시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측근 양대호 대령이 그 소란스런 과정을 통해 비밀리에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과정이었음이 밝혀진다. 단 한 회만에 사건과 사건의 결과가 드러난다. 1회만이 아니다. 1회 말 세 발의 총성과 함께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음모는, 곧 경호관 한태경에 의해 범인이 경호실장 함봉수였음이 밝혀진다. 어디 그뿐인가. 3회,4회에 걸쳐서 98년 양진리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졌음이 알려지게 되고, 그 배후로 특검은 대통령을 지목한다. 하지만, 4회 말, 병실에서 혼수상태에서 가까스로 깨어나기 시작한 대통령의 입에선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말이 힘들게 흘러나온다. 


<신의 선물> 1회 말미, 부녀자 연쇄 살인범에게 납치당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 샛별을 따라 자살을 시도했던 혜원은 딸이 죽기 2주 전으로 돌아와, 딸을 살리기 위해 부녀자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에 몰두하고, 곧 범인이 밝혀진다. 바로 그 자신이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자신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보며 그 아이들의 엄마를 찾아다니며 죽인 차봉섭(강성진 분)이었다. 혜원의 남편이 증거 불충분으로 차봉섭을 풀어주었음에도 집요한 혜원과 기동찬의 합동 작전으로 연쇄 살인범 차봉섭은 검거되기에 이르지만, 범행 현장을 보고 오는 도중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차봉섭이 죽었음에도 사진 속의 딸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혜원과 기동찬은 다시 혹시나 있을 지 모를 공범을 찾는데 주력하고, 10년 전 검사였던 혜원의 남편에 의해 사형을 당했던 사형수의 아들 장문수(오태경 분)를 쫓는다. 드디어 그의 방 안에서 샛별의 사진과, 즐비한 납치에 사용되었던 물품을 발견한 혜원, 이렇게 6회는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신의 선물> 6회에서 등장한 장문수는 샛별을 죽인 범인일까? 물론 다음 주를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건대, 이렇게 일찌기 범인의 면모를 드러낸 장문수는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신의 선물>도, <쓰리데이즈>도 드라마의 초반부터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의 범인들이 밝혀지지만, 정작 그 등장한 범인들은 진짜 범인들이 아니다. 

<신의 선물>의 경우, 결정적 사건은 하나다. 주인공 혜원의 딸인 샛별이 납치당해 죽은 사건이 그것이다. 하지만, 샛별의 엄마 혜원이 샛별의 사건을 해결하여 가면 갈수록, 혜원은 정작 엉뚱한 사건의 범인을 진짜 범인이라 착각한 것이 되고, 샛별이 납치 사건은 전혀 다른 파장으로 번져나간다. 
<쓰리데이즈>의 경우는 결정적 사건인가 했는데, 보다 더 결정적인 사건이 계속 등장하는 반전에, 반전의 연속이다. 대통령이 밀가루 세례도 센세이널한 이슈인데, 한 술 더 떠 암살에, 이제 탄핵감인 양진리 사건 은폐까지 등장한다. 게다가 대통령은 죽어갈 측근들에게 말한다. 한 나라의 수장인 자기 자신보다더 더 거대한 암흑의 세력이 존재한다고.

비록 사건의 양상은 달라도 <신의 선물>이나, <쓰리데이즈>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방식은 보다 본질적이고, 본원적인 문제 제기를 향해 나아간다. 그저 한 어린 소녀의 납치 사건인 줄 알았던 사건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사이코패스의 범죄 행각을 거쳐, 이제 툭 튀어난 범행 공모자를 통해 10년 전 누군가의 원죄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현듯 등장한 대통령과 측근들의 대사들로, 이것이 혜원 가족의 문제 그 이상임을 암시한다. 
<쓰리데이즈>도 마찬가지다. 젊은 경호관 아버지의 죽음에서 촉발되어, 경호실장의 해원에서 시작된 암살 시도는 16년 전 동안 묵혀왔던 대통령의 치부를 꺼내들었고, 그건 다시 대통령조차 없애 버릴 수 있는 거대한 어둠의 존재를 드러낸다. 

벌써 범인이 밝혀지면 어쩌냐는 우려의 목소리에 그건 빙상의 일각이라는 제작진의 큰소리처럼, 시청자들의 추리를 뛰어넘는 반전의 연속은, 결국 이 두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18일 중간 제작보고회에서, <쓰리데이즈> 출연진들이 5회에서 부터 '이제 시작'이라며, '맛없는 밥상은 권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마치 얕은 수를 가진 노름판의 초짜처럼 자신이 알아낸 패에 희희낙락하다, 다음 주 제작진이 던진 또 다른 떡밥에 농락당하기를 반복한다. 분명, 케이블의 수사 드라마들처럼 에피소드식이 아님에도, <신의 선물>과 <쓰리데이즈>는 긴 호흡의 스토리에 지치지 않도록, 매회 이 드라마에 빠진 시청자들과 즐거운 힘겨루기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 힘겨루기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 두 드라마에 감탄하는 시청자층의 증가로 보건대 제작진의 승리고 판가름나고 있다. 하지만, 분명 겨우 저 멀리 가물가물한 불빛 하나에 의지하고 가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물>과 <쓰리데이즈>의 시청자들은, 그 가물가물한 불빛만으로도, 환호작약하고, 다가가 그것이 원래 자신이 찾던 곳이 아니었음을 알고도  기꺼이 농락을 당해준다

그간 시청자들은 뻔히 아는데도, 주인공만 모른채, 마치 환한 방안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듯한 스토리에 지친 시청자들은 자신들을 매회 기만하며, 또 매회 새로운 떡밥을 던지며 유혹하는 이 두 드라마에 그간 참았던 갈증들을 마음껏 해갈하고 있는 중이다. 비단 그것은 우리나라 시청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된 드라마의 댓글 중한국 드라마가 뻔한 로코나, 막장이 아닌 이런 드라마도 있었냐는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드라마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새 장을 열고 있는 중인 것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시청률 따위'라며 이른바 '부심'를 내세우며 드라마를 옹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4. 3. 19. 01:41

Ladies in Lavender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된 '라벤더의 연인'이라는 제목이 있지만, 어쩐지 대놓고 연인이라는 제목보다는 이 영화에는 원제가 어울리는 듯하다)

영국의 작은 마을 황혼의 삶을 안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두 자매 쟈넷(매기 스미스 분)과 우슬라(주디 덴치 분)의 집 앞 해변에 한 젊은 남자(다니엘 브륄 분)가 폭풍우에 휩쓸려 쓰러진 채 발견된다. 기억을 잃은 이 남자는 두 자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자매 중 우슬라는 활기를 넘어 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사랑하게 된다. 젊은 청년을 사랑하는 할머니라, 얼토당토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소녀같은 감성을 지닌 우슬라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청량제가 되어주는 이 젊은이를 사랑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영화를 보면 사랑은 결국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를 불문하고, 그 사람과 내가 조우하게 되는 그 감정의 어느 지점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는 일흔 살의 할머니도 앳된 젊은이를 사랑하는데 마흔 무렵의 사랑이 뭐 어떻겠는가. <밀회>는 대담하게 마흔 무렵의 사랑을 내세운다.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선재(유아인 분)가 보여지는 것도 잠시, 화면은 줄곧 정신없는 스케줄에 빽빽하게 돌아가는 혜원(김희애 분)의 일상을 담는다. 예술 재단의 기획실장으로 마사지를 받는 이사장 곁에서 오늘의 일정을 프레젠테이션하고, 당장 있을 연주회는 나 몰라라 젊은 애인과 호텔 방에 머무는 아트 센터 대표를 찾아가 온갖 모멸 섞인 투정에 뺨 싸다귀까지맞으면서도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기 몫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내뱉는 남편의 지청구까지 사무적으로 능수능란하게 해결해 내는 능력자이다. 하지만 친구이자 상사인 영우(김혜은 분)의 독기어린 말처럼, 서한 재단 이사장의 마작 게임까지 불려다니는 실세이지만, 결국 서한 재단과 혈연으로 얽혀 있지 않아, 자신의 것이라고는 확실하게 없는 고달픈 '마름' 신세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 만난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청년에게 간곡하게 치료를 권해주는 슬픈 과거의 트라우마가 있다. 

이렇게 드라마 <밀회>는 언뜻 보면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여성 혜원의 삶에 숨겨진 틈을 열어보이며 이 여성이 충분히 자신의 삶에서 흔들릴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기에 공들인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이해 관계에 충실한 위선자들의 사회 속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혹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빠듯하게 살아가는 혜원의 모습은, 그리고 그 속에 갇혀진 그녀의 또 다른 삶의 욕망은, 연주회 리허설을 엿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고 마는 천재 청년 선재의 숨겨진 욕망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이물감이 없다는 것을 단 1회만에 <밀회>는 설득해 내고 있다. 그렇게 드라마는 혜원을 중심으로 그려냄으로써, 이 드라마가 중년의 삶에 밀려 들어온 사랑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출거라는 걸 밝힌다. 마치 파도에 휩쓸려 할머니들 집 앞 해변에 나타난 젊은 청년처럼, 혜원의 삶의 울타리 안에 선재란 청년이 던져진다. 

그렇다면 사랑하기 나쁘지 않은 나이 중년의 조건이 되는 건 무엇일까. 역시나 <밀회>는 그에 앞서 종영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주인공들처럼 중년의 나이임에도 전혀 삶의 현장에서 물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첫 장면부터 그 누구보다도 정력적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의 마흔을 넘은 나이가 전혀 사랑하는데 문제가 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꽃보다 누나>를 통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김희애가 만들어낸 혜원은 더 이상 적역이 없다 싶을 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중년이 그것이다. 드라마는 속옷 차림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혜원이 된 김희애의 젊음을 충분히 부각하며, 중년이란 나이를 잊게 만들고자 분투한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일찌기 치맛바람 강남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부담스럽지 않은 중년의 사랑으로 인기를 얻었던 전작 <아내의 자격>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녀의 사랑이 무리가 없을 거란 기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사진; osen)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밀회>는 이른바 멜로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휘황찬란하게 눈요기가 되는 재벌가에, 그들 사이의 암투에, 그에 못지 않은 음대를 중심으로 한 입시 비리, 거기에 한 술 더 얹어, 고급스런 클래식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드라마는, 맛깔나는 이야깃거리와,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멜로에, 치정에,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까지, 이만하면 고품격 멜로다 하고 내놓을만 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와 조카 같은 혜원과 선재의 사랑을 얼마나 공감가게 그려낼 것인가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제 아무리 중년의 사랑이라지만, <아내의 자격>에서 동년배의 사랑을 넘어,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서, 젊은 청년과의 사랑까지 우리 사회에서 어디까지용인 될 수 있는가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덧붙이자면,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라벤더의 연인의 우슬라 할머니는 천재 청년을 고이(?) 보내준다. 그리고 청년의 첫 데뷔 연주를 보고 나온 할머니는 언니에게 말한다. 우리는 여기 까지라고. 물론 꼭 혜원의 사랑이 이루어지는가만이 이 드라마의 관건은 아닐 것이다. 선재와의 사랑을 통한 껍데기같은 삶을 벗어던지는 혜원의 자아 찾기, 그것의 지향점이 어디가 될 지, 그것을 얼마나 공감가게 그려낼 지가 아마도 <밀회>의 본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3. 18. 02:03

공교롭게도 kbs2의 대표적 예능 두 편에서 금연을 실천 중이다. <인간의 조건>과 <1박2일>이 그것이다.

지난 주부터 금연을 다루고 있는 <1박2일>의 경우, 이번 미션이 꼭 필요한 20가지 물건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게스트 박성관을 포함해 일곱 멤버 중 담배를 피는 김준현, 김준호, 양상국이 담배를 포기해야 해서 불가피하게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금연을 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 <1박2일>은 차태현을 제외한 그래서 대신 합류한 홍경민, 김주혁, 김종민, 김준호, 데프콘, 정준영 등이 담배를 피기 때문에 아예 작정하고 금연 섬이 증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금연을 주제로 내걸었다. 

피치 못한 선택이었든, 작정하고 내세운 주제였든 <인간의 조건>과 <1박2일>은 4박5일이라는 시간과 1박2일 동안 멤버들의 금연을 다룬다. 


	1박2일 방송 화면 캡처, 가위로 담배를 자르고 있는 사진
(사진; 1박2일; 조선일보)

삶에 밀착한 그리고 <1박2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기간을 금연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은 외압에 의해 금연을 하게 된 멤버들의 모습이 시시각각으로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을 택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거부감, 그리고 당장 담배를 빼앗기고 난 후의 공허감과 분노,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자신이 의존하던 담배가 없어 보여지는 아노미 상태들이 고스란히 담긴다.
<인간의 조건>에 비해 짧은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이 20가지 삶의 물품을 위해 포기하는 심리적 포기의 절차도 없이 다짜고짜 금연을 강권당한 <1박2일>의 멤버들의 반응은 보다 예능적이다. 마지막으로 담배 한 모금을 피기 위해 질주한다던가, 담배 한 가치를 사수하기 위해 갖가지 꼼수를 피우는 모습이라던가, 그것을 지키지 못해 입수를 하고, 재판을 통해 흡연을 단죄하는 과정 자체가 그들은 절박한데 우리는 웃긴 전형적인 코미디의 모습을 지닌다. 

말 그래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묘미는 '리얼리티'이듯이, 즐겨하던 담배를 졸지에 빼앗긴 멤버들의 외압에 의한 금연 만큼 실감나는 상황은 없다. 담배를 피고 싶어하고, 어떻게라도 한 모금이라도 피려고 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들이 절박할 수록, 그 절박함이 '리얼'하게 공감되기에 더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조건>이나, <1박2일>이나 그 어느 때보다 자신들이 의존하던 니코틴 성분이 떨어져 의욕도 없고, 무기력한 멤버들의 모습이 비춰지는데, 그것이 무능이나, 나태함이 아니라, 절박함으로 여겨져 수긍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게임이라도 해서 흡연 욕구를 잊으려는 멤버들의 절박함이 안쓰럽기도 하고, 이기면 담배 한 가치를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까짓 담배가 뭐라고 저러는가 싶어 안쓰러운데 우스운 상황이 날 것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런데 문득, 과연 <인간의 조건>과 <1박2일>의 4박5일, 1박2일을 통해 금연을 일상에서도 실천하게 된 멤버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던져지는 것이다. 물론 단 12시간만 담배를 피지 않아도 몸에 니코틴이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과, 운동을 하면 담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교훈이 누군가의 금연 의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조건>이나, <1박2일>의 금연 프로그램이라는게, 전혀 자의적이지 않았으며, 그 과정이 강권적이었다는데서 그것이 자발적 금연으로까지 이어질까 회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조건>에서는 선택의 과정이 있었으며, 미션 자체가 대리 체험이라는 방식이기에 <1박2일>과 같이 분류하기는 어패가 있을 수 있다. 

'금연'을 처음 예능 프로그램으로 도입한 것은 <남자의 자격>이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과제 중 아니 101가지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금연을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금연은 지금 <인간의 조건>이나 <1박2일>의 금연과는 달랐다. 다짜고짜 금연을 해! 라는 외적 강권이 아니라, 평균 연령 40세를 넘은 멤버들의 건강 검진을 통해, 금연이 얼마나 그들에게 절실한 과제인가 공감을 통해 담배를 끊을 결심을 유도했다. 물론 그 과정에 지금 <인간의 조건>이나, <1박2일>에서 보여지는 제작진과 출연진 사이에 담배를 둘러싼 술래잡기 식 해프닝도 있었고, 역시나 몰래 담배를 핀 이윤석의 한겨울 입수 식의 '단죄'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담배에 의존해 온 멤버들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금연침도 맞고, 향후에도 금연을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장치들이 조심스레 마련되었었다. 

(사진; 인간의 조건; osen)

그런 <남자의 자격>식의 금연에 비교하자면, <인간의 조건>과 <1박2일>의 금연 프로그램은 금연의 과정이 타율적일 뿐만 아니라, 금연에 대한 배려는 적고, 금연 과정의 괴로움이나 고통, 발버둥을 예능적 대상으로만 삼는 가학성에 치중된 듯이 보인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제 담배를 피는 건 나쁜 일이다. 담뱃값에 수백 가지의 화학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암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문구가 새겨질 만큼 담배가 나쁘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전히 담배를 '담배인삼공사', 이제는 이름도 멋들어 지게 'kt&g'를 통해 공공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상황에서, 담배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기호품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역시 또한 사실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즐기던 기호품을 빼앗긴 멤버들의 모습은 흡사 문을 잃어버린 채 우왕좌왕하는 실험실 쥐를 연상케 되는 불편함이 한편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타율에 의해 자유 의지가 강탈된 상황을 보며 즐기는 가학성의 껄쩍지근함이랄까. 

물론 피지 못하게 선택해야 할 물품에도 들지 못하는 담배 없이 4박5일을 견딘, 혹은 격하게 운동을 하며 1박2일을 버틴 멤버들은 혼돈 속에서 결국 담배 없이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유호진 피디의 말대로 금연이란 것이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결국 담배를 끊어야 하는 것이기에, 때로는 그 어떤 설득보다 단칼에 끊는 과정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이 지나도록 여전히 호시탐탐 담배를 피울 계기를 찾는 멤버들의 모습에서 마치 게임이 나쁘니까 게임 그만해 라고 야단치는 부모님과, 그것을 피해 어떻게든 게임을 해보려고 전전긍긍하는 타율적 금기식의 훈육 방식을 보는 듯한 불편함이 남는다. 

중독된 게임이든, 화학 성분의 흡연 습관이든 분명 나쁜 것이다. 하지만 나쁜다고 해서 무조건 단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금연이라는 주제는 나쁘지 않았지만, <남자의 자격>에 비해 다짜고짜 던져진 과제에 우왕좌왕하는 하는 과정을 시청자가 즐기게만 만드는 <1박2일>의 그것은 조금 더 멤버들에 대한 진지한 배려가 아쉬운 과정이었다. 


by meditator 2014. 3. 17. 11:03

드라마의 재방송이란 어떤 의미일까?

주말 혹은 일요일 한 나절 무료하게 거실을 뒹굴다 손에 잡힌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다 어쩌다 눈을 맞추게 되는 그래서 시간 때우기 식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아니 그 조차도 이젠 자기가 보고 싶은 시간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젊은 층들에게는 별 의미가 닿지 않는 시간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주말과 일요일, 약속을 차치하고라도 자리를 지키며 텔레비젼 앞을 사수해야 할 이유가 생길 지도 모른다. 본방 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재방송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바로 <신의 선물>과 <쓰리데이즈>의 재방송이 그것이다. 

<쓰리데이즈>는 5,6일 본방에 이어 9일 1시 5분부터 시작된 재방송을 회 별로 종결 없이, 광고도 없이, 1,2회를 연달아 방송하는 연방을 했다. 본방 방영 당시, 1회가 드라마의 도입부라 친절한 설명을 위해 극의 흐름이 늘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2회는 그에 비해 장르극으로서의 박진감이 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던 <쓰리데이즈>는 일반적으로 드라마들이 재방 시간을 위해 편의적으로 그래서 때로는 흐름이 끊길 정도로 장면을 들어내는 성의없는 편집을 하는 것과 달리, 연방을 위한 1,2회의 톤을 맞춘 편집을 해냄으로써, 재방 그 자체로 마치 한 편의 완결된 스토리를 가진 영화와도 같았다는 호의적 평가를 얻었다.

(사진;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스포츠 월드)

그런 성의를 다한 재방송 덕분인지 그 다음 주 상승세를 이어간 쓰리데이즈는 결국 13일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쾌거를 달성했다. 그런 <쓰리데이즈>를 벤치마킹이라도 하듯이 같은 장르물임에도 불구하고, <쓰리데이즈>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10%에 못미치는 시청률에 고전하고 있던 <신의 선물>도 15일 3,4회를 연방으로 방송하기에 이른다.

물론 연방이 모든 드라마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중간에 광고도 없이 한 호흡으로 드라마를 끌고 간다는 것은 자칫 드라마가 별 내용이 없거나, 지루해질 경우 오히려 이어진 다음 회까지 시청자들을 끌고가기는 커녕, 중간에 이탈하는 숫자를 배가시키는 위험성을 가지기도 한다. 즉,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의 '연방'이란 일정 정도 제작진의 입장에서 드라마의 내용 자체로 시청자들을 설득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실제로 <신의 선물>이나, <쓰리데이즈>의 경우, 장르물을 좋아하거나, 드라마를 즐기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방영이 되기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기대작들이었으며, 매회, 드라마의 수준과 퍼즐같은 내용을 두고 수많은 리뷰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던, 단지 그에 비해 대중적 관심만이 부족한 그런 드라마들이었기에 연방이 가능했던 것이다. 

더구나 장르물의 경우, 추리에 추리를 거듭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중간 유입이 어려운 난점을 가지고 있는데, <쓰리데이즈>의 경우, 재방송 연방을 통해 극을 사건 중심으로 보다 명확하게 편집해 냄으로써, 중간 유입층의 증대를 가져왔다. 또한 지금까지 지난 회의 설명이나, 앞으로의 사건 전개를 위한 포석으로 상대적으로 늘어진 홀수 차와, 그에 반해,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상대적으로 스릴 넘치는 짝수 회차를 함께 이어붙여,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가짐으로써, 본방을 본 사람들 조차 재방이 본 것을 또 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맛을 가진 작품으로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여,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드라마란 입소문을 만드는데 일조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신의 선물; 한겨레 신문)

또한, <쓰리데이즈>나, <신의 선물>의 경우, 장르물의 특성상 남여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급박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와중에, 섣부른 감정 양산을 오히려 드라마의 독이 되는 상황에서 본방에서 어설프게 끼어든 남녀 주인공 사이의 발라드 ost가 재방에서는 가차없이 삭제된 처럼, 이미 본방을 통해 방영되었지만, 다양한 사이트를 통해 올라왔던 시청자들의 요구 사항을 수용, 노력하는 제작진의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그저 보는 시청자층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시청자층으로 시청자들을 적극적으로 견인해 내는 자세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본방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들이 해결되어짐을 보임으로써 드라마적 완성도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줘 시청자들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렇게 <신의 선물>과 <쓰리데이즈>의 재편집된 연방으로써의 재방은, 방송 트렌드에 있어서의 획기적인 시도이다. 그저 시간 때우기 용 재방이 아니라, 재방이 그 자체로 새로운 재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등장한 것은, 방송가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본방 시간조차 맞추기 빠듯한 제작 환경에서, 그리고 안이하게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트렌디한 작품들이 반복 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용기있게 장르극을 편성하고, 또 그 장르극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본방에 이은, 재편집된 연방이라는 시도는 장르극의 발전을 위해 노력의 일환으로 고맙기 까지 하다. 부디 <신의 선물>과 <쓰리데이즈>가 좋은 성과를 거둬서, 그에 뒤이은 야심찬 시도를 하는 드라마들이 많이 제작되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3. 16. 16:25
제목부터 생소했다. 근대 가요사라, 근대라는 말에서 쉽게 머리에 떠올려지는 건, 우리 역사의 근대, 그러니까,구한말에서 부터 시작해서 6.25 전쟁전이랄까, 그 시기가 떠올려 졌다. 하지만, <근대가요사 방자전>의 시점은 우리나라에 가요가 도입된 그 시점부터 거슬러 올라가니, 방송에서의 표현대로, 이미자, 남진 세대를 고대, 그리고, 90년대 이후를 현대로 잡고, 그 중간 세대, 좀 더 정확하게는 이선희가 등장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에서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91년도 사이의 지점을 말한다. <가요 무대>를 통해 고정 시청자 층을 확보하고 있는 세대와,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재발견되는 90년대 음악들 사이의 풍성했으나, 이제는 <불후의 명곡>을 통해서나 가끔 들을 수 있었던 시대의 것들이 주인공이다. 

물론 이미 kbs의 <콘서트 7080>이 있다.  엄밀하게 70년대의 음악과, 80년대의 음악들은 이른바 70년대의 음악들을 '통기타 세대'라 통칭하여 부르는 것처럼, 음악적 부류에 있어 궤도를 달리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거기서 <근대 가요사 방자전>은 70년대 음악과 도맷금으로 합류되어지는 음악이 아닌 '젊음의 행진', '대학 가요제' '강변 가요제'로 대변되는 시절의 음악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되돌아 보면 프로그램의 mc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고 앉은 발라드의 변진섭, 댄스의 김완선, 소방차의 정원관을 비롯하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젊은 가수들의 멘토로, 그리고 여전히 그 자신의 음악적 위엄을 자랑하는 이승철, 올 봄 새로운 앨범으로 기지개를 펴겠다는 이선희 등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의 면면 만으로도 풍성함을 넘어, 화려한 면모일진대, 90년대 음악이 '레전드'로 대접받는 상황에서, 그들의 음악을 배려하는 자리가옹색하다 못해 이벤트 성이 아니고서는 존재치 않았던 상황에서, 그 시대의 이야기와 음악을 길어올리겠다는 의도는 그 시도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현명한 선택이다. 더구나, 공중파가 아닌, tvn에서, 그것도 금요일 시간대에, <꽃보다 할배>에 이어, <근대 가요사 방자전>의 편성은, 그저 젊은이들의 방송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시청자층을 '수거'해 가겠다는 tvn의 야심차고 영리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첫 방송을 마친 <근대 가요사 방자전>은 과연 애초에 의도한 그 시대의 공감대를 회복하는데 성공했을까?
80년대의 대표적 개그맨으로 평가되는 주병진을 중심으로, 박미선, 변진섭, 정원관, 김완선 등이 한 자리에 앉아 그 시대의 대표적 방송 연예 잡지 [tv가이드]를 화제에 올리며, 자신들의 데뷔 시절, 전성기를 통해 mc진을 소개하는 방식은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후일담'으로서의 프로그램의 성격이 분명해 진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술자리 군대 이야기처럼, 그 세대를 통과한 그 누구라면 익숙하게 고개를 들이밀 그런 공감 혹은 이제와 이야기 할 수 있어 새삼 솔깃해 지는 그런 이야기들인 것이다. 
더구나, '근대 가요 톱10'을 통해 그 자리에 mc로 자리한 변진섭이 무려 10위의 곡중에서 '희망 사항', '너에게로 또 다시', 그리고 '숙녀에게' 까지 세 곡을 올린 해의 가요 들 면면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풀어낼 이야기가 생각보다 풍성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근대 가요사 방자전>은 과거에 고착된 자신들의 위치를 면구스럽다는 듯이, '지금, 그리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는 코너를 통해 현재와 과거 자신들의 활동 시기의 접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지금 못지 않은 부산 역에 내리면 3000 여명의 팬들이 기다렸다는 그 시대의 아이돌 소방차의 시절을 확인하는 놀라움과 달리, 선배라고 해서, 이제 와, 굳이 후배 개그맨들이나, 아이돌 그룹 들의 순위를 매겨 보는 것은 그저 선배연하는 의미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더구나 아직 그 존개감이 검증되지도 않은 이 시대의 수많은 아이돌 그룹 중 유일하게 exo를 내세워 이미 레전드라 이름지을 수 있는 선배 사이에 끼워넣기 식의, 그 순위의 공정성 여부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 코너에서 보다, 다른 코너에서 중간 중간, 그 시대의 이선희를 음색과 가창력에서 지금의 에일리에 비교하는 사례들이, 더 지금과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이었다. 

(사진; bnt뉴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다는 점에서, 이 시도는, 선배 가수와 후배 가수가 한 자리에 모여 공감을 찾고 쌓아가는 <비틀즈 코드>와 비슷하다. 단지 <비틀즈 코드>와 다른 점이라면, 그 시점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 맞춰지는 것과 달리, <근대 가요사 방자전>은 mc 진이 그 시대 사람인 만큼 그 시대의 시각에서 지금을 평가한다는 것을 달리할 뿐이다. 하지만 이미 첫 회에서 부터 덜컹거렸듯이, 과거의 인물들이 지금의 이야기를 하는 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첫 방송을 한 <근대 가요사 방자전>은 주병진을 가운데 자리 잡게 하고 메인 mc인양 하지만, 기실 방송을 이끌어 가는 것은 박미선이요, 거기에 살을 붙이는 건 정원관, 정원관이 보낸 토스를 받아 한 방씩 쳐주는 건 변진섭에, 잽을 날려주는 건 김완선이었다. 아직도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주병진은 중심이 되어 방송을 끌어간다기 보다는, 그 시대의 상징적 존재로 거들 뿐이었다. 앞으로 김태원의 합류가 예정될 이 프로그램의 mc의 면면은 그 시대 각장르를 대변할 사람들이다. 또한 구성 양식으로 보자면, <썰전> 의 후반부 '예능 심판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결국 이 프로그램의 관건도 예능 심판자의 그것과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과연 흘러간 그 시대의 이야기를 어느 만큼, 적나라하게 '심판'할 수 있느냐인 것이다. 그저 그런 자기들끼리 우리는 그때 좋았지 라는 식이라면 익숙하지만 새로운 그 무엇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요, 친근한 이야기 속에서도 신선한 그 무엇을 전해준다면, 진짜 주병진의 방송 복귀작으로 남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3. 15.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