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 때보다도 독립 운동에 대한 조명과 환기가 융성하다. 이와 관련된 영화가 제작되고 이 영화들이 박스 오피스의 상위권을 점유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받고, 다양한 사례의 다큐들이 방영되었다. kbs에서는 비록 5분 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 유공자들을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물들이 알리는 100부작의 야심찬 기획을 실행 중이다. 이렇게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다루어 지고 있는 '독립운동', 과연 이런 행사를 넘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ebs 다큐 시선- 100년만에 부르는 노래>가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적막한 가을 강산 야월에
숨어 울며 날아가는 저 기러기야
북방에 소식을 네가 아느냐
여기서 저기까지 몇 리 되는지
아차차 가슴 답답 이내 신세야
 
만주 딸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해외에 널려있는 백두산 하에
나의 일가 동포형제 저곳 있건만
나는 소식 몰라 답답하구나
 
만주 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셔라 왜놈들 죽여라.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정작 안중근 의사가 만드셔서 회자되어 일제가 치안법 위반의 금지곡으로 통제했다던 노래 <옥중가>, 당시 사람들이 안의사를 기리며 불렀던 노래가 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모른다. 감옥에 갇힌 답답한 마음으로 시작하여 전투적 항일 의지로 마무리되는 이 노래는 4분의 2박자의 민요풍의 씩씩한 리듬을 가졌다. 

 

 

항일 음악 330곡, 그러나 교과서엔 단 한 곡
이 노래가 실린 곳은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 음악 330곡집>이다.  그 시작은 2018년에 개최된 <2018 항일 음악회-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 독립군 아리랑>에서 였다. 이 음악회에 참석하게 된 <다큐 시선>의 제작진들은 왜 이런 노래들을 몰랐을까 싶게 음악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항일 음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것이 평생에 걸쳐 항일 음악을 발굴하다 돌아가신 고 노동은 교수의 <항일 음악 330곡집>이다. 

안중근 의사가 만드신 <옥중가>에 대해 우리가 이토록 무지한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제작진의 탐구는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노래를 배우면서 자라는가로 귀결된다. 과연 이런 항일 음악들이 우리 교과서에는 있는가라는 의구심에서이다. 

음악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바 있던 교원대 민경훈 교수와 학생들과 함께 찾아본 2009년, 2015년 개정 음악 교과서,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제명의 '그집앞', '희망의 나라로'가 실려있다. 최근 3.1운동 기념식장은 물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불려 논란이 된 대표적 친일 음악 '희망의 나라로', 하지만 기념식에서도 여전히 사용되듯,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 밝고 경쾌한 노래가 일제 말기 친일에 앞장섰던 현제명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에서 제 2의 국가로 불려지는 '우미 유카바(바다에 가면)'와 비슷한 정서의 노래(민족 문제 연구소)라는 것을 알 수 없다. 

현제명만이 아니다. 홍난파, 이흥렬, 조두남 등 친일 인명 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의 곡이 9곡이나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실려있다. 아니 친일 음악가의 곡만이 아니다. 다양한 음악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각국의 민요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 거기에 더해 조용필의 곡도, 장범준의 '벚꽃 엔딩' 등 유행가까지 풍성하게 실린 교과서, 하지만, 그런 교과서에 항일 음악은 2009, 2015년 음악 교과서에 '독립군가' 등 단 2곡 뿐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과서를 담당하고 있는 측에서는 현 '검인정' 교과서의 딜레마를 든다. 즉 교과서에 실리는 음악에 대해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지침, 혹은 통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제도적 한계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항일 음악보다는 친일 음악을 즐겨이, 심지어 국가적 행사에서도 듣고 연주하고 부르는 현실에 놓여있다. 

 

 

애국가 대신 국기가? 
멀리 갈 것이 뭐 있는가. 전국민이 제창하는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가 대표적인 친일 음악인에, 최근 나치 협조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이런 애국가를 계속 불러야 하는가라는 딜레마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광복군 제 2지대에서 불려졌던 '국기가'가 눈길을 끈다. 

우리 국기 높이 날리는 곳에
삼천만의 정성 쇠같이 뭉쳐
맹세하네 굳게 태극기 앞에 
빛내려고 길게 배달의 역사  -국기가, 한형석


이 노래를 만드신 분은 한형석 선생이다. 독립군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의 신화 예술대를 졸업하신 선생은 전장의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셨다. 1940년 당시의 전시적 상황에 대한 현실을 고발하고 공동체적 결의를 다지고자 우리나라 최고 가극인 '아리랑'을 만드셨던 분, 연기에서 부터 감독까지 1인 7역을 두루 해내시며 공연했던 가극 아리랑은 20여회의 공연으로 당시로서는 큰 금액인 수익금 4100원을 모금했고, 이는 광복군 등의 군자금으로 쓰였다. 한형석 선생이 만드신 곡들은 '우리는 대한의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는 80년대 운동가로도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항일 음악 중 유일하게 2003년 음악 교과서에 실린  압록강 독립군가를 비롯하여, '여명의 노래' 등 다수의 곡들이 있다. 

그러나 한형석 선생 같은 분의 항일 음악이 지금 우리 곁에서 즐겨이 불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저 현재의 교과서를 만드는 체제의 맹점때문만은 아니다. 스스로 광복군 제 7대에 소속 oss훈련까지 받았던 항일 운동가였지만, 임시 정부의 일원으로 해방된 고국에서 환영은 커녕, 독립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기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음악을 묻고, 중국어를 가르치며 전쟁 고아들을 위한 교육 사업에 나머지 일생을 바치셨다. 심지어 '한유한'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셨던 그의 기록은 묻혀져 중국의 한 교수가 그의 음악과 그에 대한 발굴을 통해서 뒤늦게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 후 역사의 격동 속에 사라져간 항일 음악가는 또 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한 정율성 선생이 그 분이다. 팔로군 행진곡으로 알려진 중국의 두 번째 국가와도 같은 곡을 만든 정율성 선생은 3대 중국 혁명 음악가이자, 중국의 100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곧 사상으로 인해 얼룩진 우리 해방 후 역사의 비극 그 자체이다. 4남매가 모두 독립 운동에 헌신했던 집안, 그 중에서도 좌파 계열의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선생은 마오쩌뚱의 군대에서 활약하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연안송','중국 청년 격동가' 등 항일 음악을 만드셨다. 

해방 후 남한으로 귀국하여 조용히 살아가셨던 한형석 선생과 달리, 그가 소속된 연안파 동지들과 북한으로 넘어가셨던 선생, 하지만 연안파는 곧 북한 정권 수립 과정에서 숙청되고 이를 피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셨지만 선생을 기다렸던 건 '문화 혁명', 결국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발 붙일 곳이 없던 선생은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리운 강남(강남제비) 가사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에 어서 가세
하늘이 푸르면 나가 일하고
별 아래 모이면 노래 부르니
이 나라 이름이 강남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 가는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 발목 상한지 오래이라네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그리운 강남, 안기영 


또 다른 선택도 있다. 일제 시대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일제 말기 일본의 극심해 지는 친일 강권에 친일을 피해 절필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칩거하셨던 '그리운 강남'의 안기영 선생의 노래는 장사익 씨의 '아리랑'으로 겨우 돌아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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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을 맞으러 가자/생사적 운명의 판가리로/나가자 나가자 굳게 뭉치여/원쑤를 소탕하러 나가자//(후렴)총칼을 메고 결전의 길로/다 앞으로 동지들아/독립의 기발은 우리 앞에 날린다/다 앞으로 동무들아//무거운 쇠줄을 풀어헤치고/뼈속에 사무친 분을 풀자/삼천만 동포여 모두 뭉치자/승리는 우리를 재촉한다//(후렴).'


조선 의용대의 대표 군가였던 '최후의 결전'은 어떤가? 의열단에 이어 조선 의용대에게 활약하다 태항산 전투에서 돌아가신 윤세주 열사가 폴란드 민요 바르샤마 노래에 가사를 입힌 곡이다. 

우리가 몰랐던 항일 음악들, 평생에 걸쳐, 혹은 자신의 천직을 때려치우고서까지 지키고 발굴하여 겨우 명맥을 이어갔던 항일 음악들, 이제 3.1운동의 100주년, 우리가 할 일은 이 음악들이 다시 회자되고, 불리울 수 있으며,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음악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조용필, 장범준과 함께 이런 음악들도 '버젓이' 실릴 수 있는 음악 교과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9. 3. 15. 13:18

대한민국 입시 교육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던 jtbc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 하지만 이 드라마의 효과는 아이를 초등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학부모들이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입시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거기서 등장한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우리의 학부모들, 그 현실은 이제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이어 아빠들의 '바짓바람'을 불러온다. 
3월 10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바람'에 대해 다뤄본다. 

 

 

아빠들의 바짓바람 
안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김현창 씨, 늦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자녀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잠시 그 역시 고된 치과 일을 마치고 온 몸을 이끌고 아이 방 책상 맞은 편에 앉는다. 그동안 내주었던 중국어 과제를 시험하는 아빠, 곧잘 대답하는 큰 아이,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 미소는 역시나 아빠가 내준 일본어를 읽지도 못하는 작은 아들로 인해 곧 지워진다. 

한때는 아이의 학업에서 아빠가 할 일은 '무관심'이란 정의가 유행했었다. 엄마가 맡아서 하는 아이의 공부, 그저 아빠는 atm 노릇만 잘 하며, 가급적 아이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잔소리는 커녕 말도 되도록이면 적게 시키는 것이 아빠 노릇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웬걸 아빠들이 달라졌다. 입시 교육 설명회에 어떤 엄마들보다 눈을 빛내며 간간히 동영상까지 촬영하며 열성적으로 집중하는 아빠들의 모습을 찾는게 더는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와 함께 마주 앉아서 모르는 걸 가르쳐 주는 걸 넘어, 김주영 쓰앵님처럼 아이의 학업 스케줄을 관리한다. 심지어 퇴근 후 한 잔 술은 옛 말, 아이들 공부에 관심있는 아빠들끼리 차를 마시며 정보를 나눈다. 

한때 유행하던 스칸디 대디, 과거의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 방법을 지양하고,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인성, 책임, 정서 등에 중점을 두고 교육했던 새로운 교육 양식의 아버지 유형 들, 가족 중심의 문화가 대두되며 어릴 적 아이와 놀아주고 캠핑도 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냈던 아버지들이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레 입시 교육에 동참하게 되는데, 아이가 커감에 따라 입시 교육에 총력을 다하는 우리 나라 가족의 특성상 아이에 관심을 가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아이의 입시 교육 전선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아빠들이 지금의 입시 위주 교육 방향을 강력하게 추종하게 되면서 이제 '바짓 바람' 아빠들이 되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를 살아가는 아빠들
그런 '바짓 바람 아빠'들의 <스카이 캐슬> 시청 소감은 그래서 남다르다. 드라마 속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거침없이 '차민혁 교수'를 꼽는다. 세상을 계급에 따라 나뉘는 피라미드로 표현한 그의 정의에 공감한다. 아빠들이 살아본 세상은 바로 차교수의 정의 그대로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란다. 그러니, 차교수처럼 아이들에게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차지하도록 독려할 수 밖에 없다고. 

사회에 잘 적응하고, 좋은 직업을 얻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아빠, 지금 고생이 그래도 적게 고생하는 거라 생각하는 아빠,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며 사는게 벼랑 끝에 선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아빠, 사회 생활을 해보니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 주의를 '절감'하고 보니 그 학벌 에스컬레이션의 보증 수표를 주고싶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아빠. 가슴에 사표를 품고 사는 삶, 아이들에게만은 이 고단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아빠. 

박재원 교육 전문가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 바람의 근원을 그저 계층 상승 욕구가 아니라 계층 하강 공포, 낙오에 대한 불안감에서 찾는다. 각자가 느꼈던 낙오 공포에 대한 체감도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매달리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 낙오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그 '안정된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올려놓기 위해 아빠들은 어떤 사다리라도 구해주고픈 마음이 '바짓 바람'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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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쉽지만 그 어려운 말
하지만 아빠 맘처럼 될까? 쉽지 않다. 김현창 씨의 경우 아이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미 좀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빡세게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 늦은 시간 붙들고 앉아 공부를 시킨다. 학습 스케줄을 짠다 1년 정도 아빠 스케줄 대로 해봤는데 외려 아이들과의 갈등만 깊어진 듯하다. 아빠는 공부를 시킨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공부를 안한다고 화만 내는 아빠로 받아들인다. 엄마는 아이들이 충분히 열심히 한다지만 아빠 눈에는 영 아니다. 그러니 자꾸 잔소리만 늘어나고. 아이들을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할 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고, 바짓바람의 딜레마다. 

혹시 아빠가 공부하는 노하우를 잘 몰라서일까? 두 아이를 각각 포항 공대와 서울대를 보낸 아빠 배은철씨, 초등 3,4학년 때부터 아빠 은행을 만들어 은행의 역할과 복리 계산법을 가르치는 등 남달랐던 공부 비법을 가진 아빠, 하지만 정작 그가 말하는 건 '공부'보다 중요한 게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 그리고 아이 스스로 자기 통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믿어줘야 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못하게 하기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이 스스로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유도해줘 그걸로 영재고를 갈 수 있게 하고, 때로는 학교를 가기 싫다는 아이를 무조건 존중해 스스로 학교를 다녀야 할 이유를 찾도록 만들었다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에게 공부 잘했니 대신 뭐하고 놀았니?를 물었다던 아빠?

이 아빠의 경우는 특별한 것일까? 160명의 서울대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조사를 해봤다. 10명의 학생 중 8명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갈등을 겪지 않고 심리적 안정을 줬다고 답했다. 또 77.2%가 성적과 입시에 대해 너그럽고 여유있는 태도롤 일관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아빠는 '자상하고, 수시로 아재 개그를 하며 아이들을 웃기려고 노력했으며,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들이 애초에 공부를 잘해서 였을까? 하지만 서울대 생이라고 다 처음부터 공부를 잘 하던 건 아니다. 가출을 밥먹듯 하기도 하고, 재수를 했으며, 내신 4,5등급이던 시절이 있거나, 애초에 대학 갈 생각이 없었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아빠들은 일관되게 '공부를 안해도 되니 뭘 하고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보라'는 식으로 독려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상한 아빠의 독력을 받은 서울대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자기 주도 학습 전문가'라는 것이다. 즉 아빠들의 따뜻한 울타리 덕에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하늘'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대 아빠들이 그토록 원하는 '공부'만이 답일까? 교육 전문가 박재원 씨 아들은 일찌기 우리 나라 교육 제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아버지가 믿어준 아들은 sky에 간 아이들이 부럽지 않다는 북유럽식 목조 주택을 짓는 목수가 되었다. 아빠는 말한다. 떄로는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평생을 잘 지내야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떠올리며 아이가 스스로 경험을 통해 체득해 나가기를 기다려 줬다고. 

교육학자인 신종호 교수는 말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에는 '죄송하다, 미안하다'가 많다고. 이미 아이들도 체감하고 있는 괜찮지 않은 세상, 화려한 지옥에 갇힌 아이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건, 이미 자신들을 위해 많은 것을 주고 있어 미안한 부모들이 먼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큐가 돌아와 던지는 질문은 아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이다. 스스로 사다리에서 떨어질 불안에 떠는 부모가 과연 아이에게 진심으로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괜찮지 않은 세상에서 어쩌면 어른들이 먼저 괜찮아지는 게 진짜 '바짓바람'의 출발점이 아닐까. <스카이 캐슬>의 결말처럼 말이다. 

by meditator 2019. 3. 11. 15:17

스테디 셀러였던 kbs2 저녁 8시 주말 드라마와 밤 10시 주말 드라마라는 두 양대 산맥 사이에서 '진퇴양난'이었던 sbs 주말 드라마,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언니가 살아있다>를 편성하며 기존의 토, 일요일에 걸쳐 방영하던 주말 드라마를 토요일 연방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보려 했지만 mbc의 맞짱 편성으로 그 야심찬 기획은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이에 전통의 가족극 중심의 주말 드라마에 대해 sbs는 스릴러 장르 <시크릿 마더>,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에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드라마 버전인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을 통해 채널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순위의 변동은 쉽지 않았다. 

이에 sbs는 배수진의 편성을 꾀한다. 금요일 밤의 효자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주말로 시간을 바꾸고 그 자리에 기존의 주말 드라마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스릴러였지만 '가족'극의 내용을 띠던 작품 대신 <귓속말>, <펀치>의 이명우 피디와 <김과장>의 박재범 작가가 의기투합한 본격 '장르물'인 <열혈 사제>를 편성했다. 그리고 이런 벼랑 끝 전술은  sbs 드라마에게 1위의 영광을 안겼다. 처음엔 <정글의 법칙> 시청자들을 이어받은 게 아닐까였지만, 이제 14회 이른 드라마는 <정글의 법칙>의 후광을 걷어내고 <열혈사제> 그 자체로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는 중이다. 

 

 

열렬히 웃겨드립니다. <극한 직업> 못지 않게.
10.4%로 시작하여 단 한 회를 빼고 계속 두 자리 수, 이제 16, 17%를 거뜬히 넘기고 있는, 최근 주중 공중파 시청률로 보자면 '대박'에 가까운 <열혈 사제> 그 성공의 요인은 무얼까? 그건 무엇보다 '웃음'이다. 사심없이 열심히 웃겨드립니다로 천만 관객을 훌쩍 넘겨버린 영화 <극한 직업>처럼, <열혈 사제>의 가장 큰 장점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한 시간 내내 '매우' 웃기다는 것이다. 도대체 웃을 일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극한 직업>이 그랬듯이, 끊임없이 웃음을 선사하는 <열혈 사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재미를 선사한다. 

10여년 전 대 테러 특수팀으로 활동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 전직 국정원 직원 김해일(김남길 분), 그는 그 사고의 트라우마로알코올 의존증에 걸려 폐인이 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던 중 이영준 신부(정동환 분)을 만나 사제의 길을 걷게 되지만 여전히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폭력적 성향'의 신부로 결국 자신의 교구에서 쫓겨나 다시 이영준 신분의 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버지같은 이영준 신부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천주교 신부로 불명예를 당하고 성당과 성당이 보살펴 온 보육 시설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상황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 놓여진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이 보이는 '행위'들은 매우 코믹하다. 다혈질에 말은 물론, 주먹조차 조절이 되지 않는 하지만, 어쩐지 그의 거친 언어와 행동들이 장르물 특유의 '하드 보일드'하기 보다는 '해프닝'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허당'미가 드라마의 톤을 '코믹'하게 만든다. 김남길이라는 배우가 가진 비극과 코믹을 자유롭게 오가는 특유의 유연한 연기, 거기에 더해진 그의 길쭉한 자태를 활용한 액션이 우선 시청자들의 시선을 이끈다. 

거기에 진지했던 이영준 신부의 죽음 이후에 김해일의 주변에 포진한 인물들이 모두 저마다 한 '코믹을 한다. 욱하면 마구 욕이 튀어나오다 스스로 '하느님'을 소환하며 자제하려고 애쓰는 김인경 수녀님(백지원 분)에서 부터 본의 아니게 그의 파트너가 된 형사 구대영은 이미 코믹한 캐릭터로 여러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은 김성균이고, 그의 파트너가 된 신참 형사 서승아(금새록 분)의 뜬금없는 '힙합' 감성에, 아직은 단역에 불과하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중국집 배달원인 외국인 노동자 쏭싹(안창환 분)과 자기 얼굴만한 모카빵을 놓치지 않는 오요한(고규필 분)의 깨알 등장 역시 빠질 수 없는 코믹 요소이다. 

김해일 측근만이 아니다. 여주인공이지만 <극한 직업>에 이어, 아니 <극한 직업>보다 본격적으로 갖은 욕을 장착하고 '스트레스~'를 연발하는 속물 검사 이하늬의 박경선이 보여주는 물만난 듯한 코믹한 모습에, 김해일의 맞상대로 조폭 우두머리인 고준의 황철범은 <극한 직업>의 신하균, 오정세에 결코 밀리지 않으며, 그가 모시는 정동자 구청장(정영주 분), 강석태 검사(김형묵 분), 경찰 서장 남석구(정인기 분)에 고준의 똘마니로 사이비 교주로 돌아온 이문식에, 카포에라 발차기 한번으로 대번에 화제가 된 음문석이 분한 장룡에, 스모키 화장만으로도 돋보이는 김원해의 어설픈 러시아 킬러까지 악당 군단의 코믹한 면면 역시 만만치 않다. 

 

 

주구장창 웃기긴 하지만
이런 '코믹' vs. 코믹의 구도는 바로 <극한 직업>을 천만으로 이끌어 낸 결정적 요소이다. 즉,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이 아직은 '을'의 처지에서 보여주는 어설픈, 혹은 부족한 코믹 캐릭터들은 바로 만년 반장에 어딘지 덜떨어져 보이던 <극한 직업> 내 강력반의 면면을 벤치 마킹한 듯하다. 아직은 다들 그 부족한 면으로 밀리고 치이며 심지어 그로 인해 발목잡히는 신세지만, 14회 '간장 공장 공장장'으로 인해 장룡에게 맞던 쏭싹이 당당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간장 공장 공장장'을 읊어 상대를 머쓱하게 하는 순간의 사이다처럼 언젠가 모래알같던 이들의 한 방이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도록 만든다. 

반면에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지만 그의 태도 하나하나가 위압적이기 보다는 조롱하고 싶게 우스꽝스러웠던 <극한직업>의 신하균이나 오정세처럼 , 14회 알고보니 구담 경찰서장이 대대로 '친일파'라는 설정 하나 만으로 그의 얍삽한 캐릭터가 한결 더 살아났던 장면에서 보여지듯, '거악'의 카르텔이지만 위협적이기 보다는 알고보면 별 거 아니게 조롱할 만한 악의 축들이 보여지는 '만만함'이 여전히 '변변찮은 선'과 우세한 악의 전선에도 시청자들이 편하게 웃으며 이 드라마를 지켜볼 수 있는 기조가 된다. 

 

 

거기에 아직은 김해일을 감시하는 처지인 구대영, 그리고 스스로 속물임을 자처하는 박경선이란 캐릭터가 가진 가능성이 이 '고구마일변도'의 코믹 서사에 또 다른 기대치가 된다.

분명 극의 전개로 보면 악의 카르텔은 견고하며 그들이 뻗어간 영역은 치밀하고, 그에 맞선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선의 세력들은 지지부진하지만, 그 지지부진한 코믹의 행력에 매회 빠지지 않는 비록 아직 성과는 없지만 김해일 신부의 '분조 조절 장애' 액션이 '단비'같은 역할을 하고,  거기에 이 지리멸렬한 캐릭터들의 연합, 그리고 구대영과 박경선의 포지션 변화 조짐들이 코믹을 넘어선 <열혈 사제>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그렇다면 <열혈 사제>의 아쉬운 점은 없을까? 수원 왕갈비 통닭? 실감나는 먹방? 아니 그보다는 장르물로 16부작을 이끌어가는 호흡의 느슨함이다. <극한 직업>이 두 시간의 런닝 타임 동안 화끈하게 웃기는 것으로 승부를 봤지만, 16부작의 드라마는 웃고만 있기에는 긴 시간이다. 수없이 날려지는 웃음의 잽들 사이를 채우는 서사의 공백이 길다.

여전히 전직 국정원 출신의 김해일 신부의 의욕을 그의 주먹만큼 앞서지만 그 주먹은 허공을 가른다. 구대영과 박경선의 포지션은 애매해서 답답하고, 쏭삭, 오유환 등의 숨겨진 능력치와 활약은 아직 저만치 있다. 이제 캐릭터가 가진 웃음 포인트가 뻔해져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결국 이를 채울 건 '장르물'로서 서사의 전개뿐, 하지만 구담시 악의 카르텔은 견고하고 해결의 기미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등장한 보육원 급식 사건이 과연 고구마 줄기처럼 코믹을 넘어선 장르물의 쾌감을 선사할지. 웃음만이 아니 장르물로서의 충실한 전개로 통쾌함을 선사해 주길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9. 3. 9. 06:10

장르물도 '트렌드'인가? <창궐>, <킹덤>에 이어 <기막힌 가족>까지 변주된 '좀비'이야기가 줄을 잇는가 하면, <손 the guest>에 이어 <프리스트>, 이제 <빙의>까지 '악령 퇴치 스릴러'가 연달아 찾아왔다. 문제는 이 '트렌드'가 서로 서로 '윈윈'이 된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승자 독식의 결과가 되기 십상이니, 수작과 그 '아류작'이라는 멍에를 비껴가는게 쉽지 않다. 바로 3월 6일 첫 방송을 시작한 <빙의>가 짊어진 숙명이다. 

 

 

시청률과 별개로 <손 the guest>는 센세이셔널했다. 우리의 토속 신앙으로 부터 시작하여, 천주교 구마 의식 이들 종교를 매개로 영매와 신부와 형사가 그들이 강력한 악령 '박일도',에 맞서는 이야기는 생소했던 '엑소시즘' 장르를 단박에 설득해 냄은 물로, 그 자신이 하나의 모범, 혹은 전통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결국 <손 the guest>이후의 '엑소시즘'을 다루는 장르물들은 자신의 서사가 <손 the guest>와 얼마나 차별성을 가지는지부터 시작해서 이 작품의 만들어 놓은 전통을 뛰어넘어야 하는 버거운 과제가 주어졌다. 

그런 과제에 대해 이미 앞서 <프리스트>는 그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의 벽 앞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 첫 회에 이미 <손 the guest>의 구마 의식 씬과 비교 하위를 점해 버리고, 서사와 연기에서 설득력 대신 복잡함과 지지부진함을 선택한 <프리스트>는 그나마의 장르물 애청자들마저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모처럼 붐이 될 수도 있는 '엑소시즘' 장르가 주저앉아버린 순간이었다. 

 

   

 

'엑소시즘'의 바통을 이어받은 <빙의>
그리고 이제 그 바통을 다시 <빙의>가 이어 받는다. <빙의> 첫 회는 전설의 시작이다. <손 the guest>가 바닷가 마을에 찾아든 악령 박일도가 그 악령에 씌인 이가 스스로 바닷물에 뛰어들어 자신의 눈을 찌르는 무시무시한 존재감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면, <빙의>의 시작은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 황대두이다. 1990년대 5년 여에 걸쳐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살해한 '신념어린 사이코패스' 황대두,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간 피해자 앞에 거울을 놓는 등 선과 악, 쾌락과 고통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범죄로 실천하고자 한다. 그런 그를 베테랑 형사 김낙진(장혁진 분)이 쫓는다.

피해자에게 도끼를 막 휘두르려는 상황, 김형사는 어떻게든 그걸 막아보려했지만 황대두의 악의가 빨랐다. 결국 김형사의 눈 앞에서 무참히 살해된 피해자, 그런 상황에서 김형사는 '황대두'에게 살의마저 느끼지만 결국 그를 법의 심판 앞에 넘겨주고 만다. 사형대 앞에서도 사형 당하는 순간의 쾌락을 강변하던 살인마, 법은 그의 생명을 거두지만, 세월이 흘러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김낙천 형사를 '황대두'가 연상되는 누군가가 잔인하게 죽인다. 

그리고 20여년, 다시 살인이 일어났다. 승용차에서 무참하게 살해된 여성, 그 시신 앞에 떨어진 백미러에 촉이 빠른 강필성(송새벽 분) 형사는 의아함을 느낀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반가이 인사를 받던 선양우(조한선 분)는 병원 로비에서 한 여성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아내를 물리치고 혼자 남겨진 서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황대두와 관련된 기사를 본다. 선양우가 아닐까 추정되는 범죄, 그리고 황대두를 무슨 이유에선지 흠모하는 외과 의사 선양우, 이렇게 <빙의>는 황대두의 '환생(?)'을 그려낸다.

 

 
악령으로 돌아온 '황대두', 그리고 그에 맏설 영매들 
물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오수혁(연정훈 분)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박일도와 그를 따르는 매회 달랐던 악령의 추종자 혹은 악령에 물든 자들로 구성되었던, 그리고 궁극적으로 과연 누가 박일도의 숙주였는가를 찾아내야 했던 <손 the guest>와 달리, <빙의>는 명확한 악의 축을 구축하며 그에 의한 연쇄 살인의 형식으로 극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과연 선양우,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오수혁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풀릴 지가 '박일도'와 '황대두'의 차별성을 가를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영매여서 박일도 마저 받아들여야 했던 윤화평(김동욱 분)은 이제 <빙의>에서 영이 맑은 형사 강필성이 된다. 어린 시절 박일도로 인해 엄마와 할머니를 잃었던 윤화평처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을 목도했던 강필성은 뜻밖에도 귀신을 무서워하는 하지만 촉이 남다른 형사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진짜 영매 홍서정(고준희 분)가 알아본다. <손 the guest>의 쎈 형, 아니 언니 강길영(정은채 분)은 이제 자신의 방안 가득한 영기들을 부적이 다닥다닥붙은 블라인드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막아내리는 막강영매가 되어 찾아온다. 

 

 

겁쟁이지만 촉이 남다른 강필성과 귀신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막강 영매 홍서정의 조합, 비록 아쉽게도 신부님이라기에 너무도 매혹적이었던 최윤은 없지만, 과연 어떤 인물이? 혹은 어떤 귀신이 그들의 조력자가 되어 악령으로 돌아온 황대두를 추적할 지 궁금해 진다. 물론 아직은 코믹인지, 직업 모드인지, 멜로인지 이 캐미의 실체가 모호하지만. 

승용차 속 여인 시신으로 부터 시작하여 강필성이 찾아낼 또 다른 사건들로 드러나게 되는 연쇄 살인 사건, 그렇게 강필성 형사와 그 팀이 수사하는 형사 사건으로 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역시 강길영의 사건 수사 모드였던 <손 the guest>를 연상케 하는 지점이다. 반면 피해자들의 연합체였던 <손 the guest>와 달리, 영매와 영매의 조합인 <빙의>의 발걸음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나의 아저씨를 통해 다시 한번 날개를 펴기 시작한 송새벽이 예의 그 허허실실한 캐릭터를 <빙의>를 통해 살려나갈 것인지 그 귀추도 주목된다. 거기에 악역을 장전하고 돌아온 연정훈, 조한선의 변신도 주목된다. 이들의 신선한 조합이 만들어갈 <빙의>, <손 the guest>의 아류작을 넘어 엑소시즘 장르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by meditator 2019. 3. 7. 14:41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조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이다. 흑인들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동등하게 타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인권'을 향해 지난한 과정을 걸어왔듯이, 여성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접받기 위해 111년의 역사가 필요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엔은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정했다. 

 

 

mbc스페셜은 이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의 대가인 윤석남을 이 시대 여성의 워너비인 모델 한혜진이 찾았다.

1939년 만주 봉천 출생, 팔순이 넘었다.  팔순이 넘은 어르신하면 떠오르는 모습들, 하지만 그 상투적인 예상은 한혜진을 맞는 윤석남 화가의 모습에서 대번에 깨어진다. 히끗히끗하지만 자유분방하게 휘날리는 퍼머넌트된 커트, 검버섯은 피었지만 팔순이 넘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의 생기가 넘치는 표정, 우리가 연상하는 '노인 패션'과는 다른 조거 팬츠에 패딩 조끼 등등 활력넘치는 화가의 작업복, 그리고 툭툭 마디가 불거져 나왔지만 웬만한 목수의 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두툼하고 단단한 그녀의 손. 한혜진을 맞이한 건 당신은 총기가 허락되는 한이라 하지만 여전히 ing 중인 작업의 세계 속에 흠뻑 빠져있는 한 예술가의 모습이다. 

 

 
핑크를 찢다.
3남3녀의 셋 째,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싶어서 석남이라 지어준 이름, 하지만 그 아버지는 가장의 자리를 다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 나이 서른 아홉, 막내가 겨우 두 살이었다. 집안을 어렵게 이끌어간 어머니를 보며 석남은 학교도 마다하고 가정일을 돌보려 했다. 하지만 학교는 마쳐야 고집하셨던 어머니,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녀는, 그녀 또래의 여성들처럼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를 키웠다. 그렇게 마흔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그림, 꽃과 풍경 대신 그녀는 어머니와 자기 주변의 여성들을 그렸다. 그저 그게 눈에 들어왔다던 윤석남, 그렇게 그린 그림이 아이 키우랴, 돈 벌려, 살림하랴 경황이 없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손이 열 개라도'였다. 그렇게 윤석남의 여성주의 화풍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대표작에는 핑크색 소파가 있다. 화가가 되기 전 그녀인듯한 화려한 자개로 장식된 여성이 앉아있는 소파, 하지만 그 형광빛 화려한 핑크색 소파 한 켠에는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는 소파, 하지만 그 소파에 앉을 때마다 그녀의 삶은 그녀에게 가시방석이 되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삶이지만 이게 과연 나의 삶인가 고민하던 그녀는 그 화려한 소파를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윤석남은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는다. 윤석남의 여성주의는 곧 그녀의 삶이었다. 

남편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들고 화방에 가서 화구를 샀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제부터 그림을 그릴 건데 그게 싫으면 이혼을 하라 선언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에 12시간 씩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를 넘어선 화가의 길을 걸었다. 3년만의 개인전 '추상화풍'이 지배하던 당시의 화단에서 '여성'을 그린 그녀의 화풍은 주목을 받았다. 그림을 그리던 것을 넘어 그녀는 '나무'를 활용하여 설치 미술 작업을 시작했고,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 등 해외 미술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유화로 시작하여 나무, 드로잉, 설치 미술까지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얼개만 남기고 종횡무진 다양한 시도를 했던 윤석남 화백, 그런 그런 그녀의 활동이 인정받아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이중섭 미술상과 국무총리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여성주의 화가로서 
하지만 그저 자기 주변의 여성, 어머니, 그리고 자기 자신에 천착해 있지 않았다. 이매창, 허난설헌, 김만덕 등 재능은 있었지만 뜻을 펼치지 못한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이 그녀 그림 속에서 살아난다. 

페니미즘 작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는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 '명예'에 대해 그녀가 고심한 결과물이다. 또한 사회적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에 화두로 드러나기 이전에 관심을 기울여 나눔의 집이 만들어 질 당시 자신의 설치 작품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을 넘어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넘어서 유기견 1025마리를 나무에 아로새기느라 허리 수술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늘 여전히 그녀는 고민한다. 혹시 자신이 세상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 만족에 빠진 미친 사람들'이라며 자신과 같은 예술가를 허심탄회하게 정의내린 윤석남 화가,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마무리 짓는다. '어쨋든 난 최선을 다했다'고. 

 

 

이제 팔순을 넘어선 작가는 다시 40년 동안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우리의 채색화를 그리느라 자신의 자화상으로 연습만 1000장을 넘게 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원처럼 매일 일정한 시각 출근해서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하는 일상. 주변에서는 하던대로 예술적 감흥이 더 큰 설치 작품을 하는게 작가의 명성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느냐며 새로운 시도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만, 그녀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생애에 기억이 남는 관계들을 남기고 싶다. 우리의 전통 그림 중 여성의 초상화가 없다는 사명감도 있다. 

그렇게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의 삶을 예술로 알려, 그 자신이 여성의 대표가 된 윤석남의 이야기는 또 다른 여성, 그리고 여성의 딸인 한혜진이라는 대상을 통해 친근하게 전달된다. 

또한 그렇게 윤석남이란 화가를 소개하는 걸 넘어, 윤석남이란 화가의 작품을 들고 찾아가는 전시회를 마련하여 세상과 소통을 도모한다. 

 

 

그녀가 그렸던 어머니의 이야기들은 전북 남원 구룡마을을 찾아들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미술 관람, 하지만 할머니들은 곧 '내 모습같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포항 공대 미술관을 '개판'으로 만든 1025마리의 '사람과 사람없이' 작품들은 고상한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대상이기에, 그들의 눈빛을 통해 곧 사람들로 하여금 버려진 생명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나무에 새겨진 서로 다른 표정의 여성들, '빛의 파종'은 청주 여성을 찾아, 이제 곧 사회에 나서야 하지만 도전보다는 제약과 한계에 고민이 많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는다. 

111주년을 맞이한 여성의 날, 선언이나 캐치프레이드, 담론이 아니라, 삶에서 부터 시작된 '여성주의'를 우리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 화가를 통해 설득한다. 

by meditator 2019. 3. 5. 15:57

한때는 암이었다. 드라마 속 해결의 만능키 말이다. kbs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황금빛 내 인생>으로 정점을 찍었다.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암이었다가 상상암이었다가, 아니었다가 다시 결국 암이라며 그 목숨을 거둘 때까지 드라마는 '암' 담보를 통해 시청률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항변하지만 '암'을 통해 시청자를 볼모로 삼았다는데 핑계를 댈 수 없다. 그렇게 상상암까지 동원해 버린 드라마, 더는 '암'만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일 꺼리가 떨어지자 이번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식'을 들고 나왔다.

 

 

문제는 그 '이식'이 한 드라마 만이 아니라는 거다. 간이식이 의학적으로 그리 흔한 사례가 아닌데, 공교롭게도 kbs의 드라마들 중 세 드라마가 '간이식'으로 극의 갈등을 점화시키고 있다. 바로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을 넘었다는 46.2%의 주말 드라마 <하나 뿐인 내 편>에 이어, kbs 주중 미니를 늪에서 구원해준 시청률 20%의 <왜 그래 풍상씨>, 그리고 지지부진하다 '간 이식'을 통해 화제성을 회복한 주중 일일 연속극 <비켜라 운명아>이다. 



간마저 주는 극진한 부정 
태생이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 하지만 하늘은 그의 착함을 돌봐주지 않았다. 부모를 모르는 고아였으며 동생같은 동철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다녀온 소년원 이후로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겨우 결혼을 하고 딸까지 얻어서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아픈 아내로 인해 살인범이 되어 오랜 감옥 생활을 했다. 여기가 드라마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종영을 10회 남겨둔 <하나뿐인 내편>은 세상에 법 없이도 살 것같은 착한 사람 강수일(최수종 분)의 시련기이다. 

애초에 감옥에 가게 된 계기도 이제 와 보니 살인 누명을 쓴 거였고, 그로 인해 드라마 내내 피해자 가족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었다. 심지어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딸은 이혼까지 당했다. 그런데 이제,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피해자의 아들이 간경화 말기이고, 그에게 맞는 간이 바로 강수일의 간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 아버지의 암-상상암- 다시 암이라는 질병 서사를 통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곡진한 부성애의 개연성을 설득하려고 했다면, <하나 뿐인 내 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간'을 떼어주고 생사의 기로에 선다. 이 두 드라마가 극단적인 질병을 통해 설득하고자 하는 건, 여전히 지금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정'의 대상들은 안타깝게도 상실된 가부장들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아버지는 한때는 사업으로 잘 나갔지만 보증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날리고 가족들을 경제적 어려움에 빠뜨려 아내가 딸 바꿔치기를 하게 만들고 큰 딸이 그런 아내의 거짓에 기꺼이 놀아나게 만든 주범이었다. <하나뿐인 내 편>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강수일은 아버지였던 적이 없다. 딸이 아버지를 인지하기도 전에 감옥에 들어가 이제 성인이 된 딸 앞에 나타난 아버지. 그렇게 가부장의 자리를 상실한 아버지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병에 걸리고, 자신의 간을 떼어주고 의식 불명이 된다. 죽음, 혹은 죽음에 버금하는 자기 희생을 통해서야만 회복될 수 있는 가부장, 실종된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부활하려는 안간힘, 그는 여전히 kbs2의 주말 드라마의 투철한 주제 의식으로 다양한 변주를 통해 드러나고 <황금빛 내 인생>에 이어, <하나뿐인 내 편>까지 시청자들의 화답을 얻고 있다. 

 

 

변주된 가부장의 부활 
그런가 하면 가부장제의 아버지는 형의 모습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바로 <왜 그래 풍상씨>의 경우이다. <왜 그래 풍상씨>의 맏형 풍상씨 역시 <하나 뿐인 내 편> 속 강수일에 버금가는 질곡어린 인생이다. 간이식이 필요했지만 차마 자식들에게 말할 염치가 없어 돌아가신 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다른 동생까지 만들며 집안에 문제만 일으킨 어머니를 그래도 어머니라 보듬으며 대신 가족들을 돌보려 애쓰며 누더기와도 같은 가족 관계을 책임지려 했던 맏형 풍상(유준상 분).

심지어 그 자신이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도 동생들 몸에 생길 흉터에서 부터 , 치료 비용 등등까지 지레 걱정을 껴안고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그런 형의 걱정과 달리, 간이식이 필요한 형, 오빠의 처지를 알게 된 동생들은 각자 친형제가 아니란 이유로, 혹은 그동안 받아왔던 가족내 차별 대우에 대한 설움 등등의 이유로 풍상에 대한 간 이식을 거부한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대가인 문영남 작가는 예의 내공으로 '간이식'을 둘러싼 콩가루 집안의 갈등을 절정으로 이끌고 있으며, 역설적으로 그 '간이식'를 통해 가족 화합이란 해피엔딩의 극적인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그 간, 내 간을 떼어준다는 건, 강수일처럼 타고나기를 착하다는 사람은 피 한 방울 안섞인 심지어 그간 자신을 가해자라며 온갖 수모를 준 가족의 일원에게도 주는 '극강의 선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왜 그래 풍상씨>에서 보듯 가족이라 하더라도 선뜻 내 간을 떼어주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비켜라 운명아>로 가면 이 '간 이식'이 가족 간의 '딜'로 등장한다. 현강 그룹이라는 재벌 그룹, 그 가계에서 승계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두 남자 양남진(박윤재 분)과 최시우(강태성 분), 그들은 이른바 첩의 자식과 본 혈통이라는 전통적 왜곡된 가족 구도 속에서 이복 형제가 된 그들은 극중 회사의 일을 두고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물론 그 갈등은 언제나 우리 드라마가 그렇듯 정통성이 약한 첩의 자식 최시우와 그 어머니에 의해 조장된 해프닝이기 십상이다. 그러던 중 최시우가 급성 간경변으로 쓰러지고 간 이식이 필요한 위기라 발생한다. 이에 최시우의 엄마 최시우(김혜리 분)는 양남진의 전 여친과 자기 자신을 정략 결혼을 시키거나 남진의 회사 내 일을 빌미로 삼아, 간 이식을 종용, 심지어 협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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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지키려는 남자들,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들 
간암에서, 간경변 등 다양한 병명, 하지만 해결책은 오로지 남자 주인공의, 혹은 남자 주인공에 대한 간 이식만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하나 뿐인 내편>, <왜 그래 풍상씨>, <비켜라 운명아>.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지점은 '간 이식'의 기로에 놓인 당사자들이 남자이며, 그들이 대부분 '가부장적 관계'의 복원, 혹은 승계자라는 지점이다. 상실된 가부장의 자리를 온갖 어려움을 뚫고서도 회복하려 했던 <하나 뿐인 내편>의 강수일, 역시나 형이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심지어 온갖 가족 내 트러블 메이커인 어머니까지 품어내며 가족을 이끌어 가려했던 <왜 그래 풍상씨>의 맏형 풍상,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현강 그룹의 유일한 적통 손자 양남진까지. 

반면에 극중에서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거나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하나 뿐인 내편> 속 소양자(임예진 분), 나홍실(이혜숙 분), 오은영(차화연 분) 등 중견 연기자들의 캐릭터에서 부터 젊은 장다야(윤진이 분), 김미란(나혜미 분)까지 그 누구도 '긍정'적 역할의 캐릭터가 없다. 그들은 모두 극중에서 강수일의 고난에 등장한 지뢰들이다.  <왜 그래 풍상씨>라고 다를까, 무엇보다 이 가족이 이토록 콩가루 집안이 된 근원이 바로 엄마, 이름부터 노양심이다. 둘째의 대학 등록금을 나꿔채고, 딸을 술집에 팔아넘기는가 하면, 아들의 합의금을 가로채 재활의 기회를 놓치도록 만든다. <비켜라 운명아> 역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임에도 첩이라는 열등감으로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며 자신의 아들을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마 최수희 역시 이 드라마 속 주된 악역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남자들, 심지어 그를 위해 동원된 극단적 설정 '간 이식', 물론 인생사 병을 피할 수는 없으니 극중 병이나 죽음이 등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 세 드라마 속 '간 이식'은 개연성없는 극중 관계들을 어거지로 봉합시킬 수 있는 '치트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객관적으로 이런 관계들에서 '간 이식'이 가능할까. 어쩌면 '간 이식'이라는 깜짝쇼를 통해서만이 구원될 가족이라면 결국 논리타당한 설정으론 불가능하다는 걸, 2019년 대한민국에서 '가부장'의 귀환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능한 설정을 통해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파편으로 흩어진 가족과 관계를 봉합하며 '해피엔딩'의 팡파레를 울릴 것이다. 그리고 그 팡파레에 여전히 시청자들이 '막장'이라면서도 시청률로 화답하니 과연 '상상암', '간이식'에 이어 또 어떤 기상천외한 병명이 등장할 지 모를 일이다. 

by meditator 2019. 3. 4. 17:56

3.1 운동 100주년이다. 유관순 열사, 그리고 일제 시대 인물인 엄복동을 독립 운동과 연관시킨 영화 등이 만들어지고 개봉되는가 하면, 방송사에서도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다큐 및 작품들이 100년의 그날을 기념하고자 한다. 100년 전 그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총칼을 뚫고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2019년의 우리, 오늘의 우리가 있도록 만들어 준 선열들의 뜨거운 독립에의 의지와 열망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동시에 과연 우리가 100년 전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되돌아 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야 당연히 내가 그 곳에 있었다면 만세를 부르고 독립운동을 하겠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켜간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깨닫게 되는 만큼, 3.1운동 100주년에 신념을 지켰던 조상들의 삶이 더욱 고귀하게 다가온다. 지난 2월 25일과 3월 1일 양일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된  <3.1주년 100주년 특집 마지막 무관 생도들 2부작>은 바로 이런 반추로 부터 시작된다. 대한 제국 마지막 무관 생도였던 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을 통해 독립 운동의 삶을 살았던 선열들의 신념어린 삶을 역설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이 다큐는 이원규 씨의 마지막 무관생도들를 기반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피를 나눈 맹세- 첫 번째 엇갈림 
1896년 대한제국은 무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대한 제국 육군 무관학교를 만들었다. 이응준, 홍사익, 지청천... 이들이 바로 무관학교의 마지막 생도들이다. 1909년 위태로워져가는 나라, 무관학교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대한 제국 무관 학교는 문을 닫게 되고 무관 생도들 중 50 명이 일본의 육군 중앙 유년 학교로 보내졌다. 그리고 1910년 강제 합병 소식이 전해지고, 일본에 남겨진 무관 생도들은 아오야마 묘지에 모였다.

다함께 천황궁 앞에서 자결하자며 울분을 토하며 이응준 등이 무조건 싸우자며 결의를 다지는데, 홍사익은 때를 기다리자 했고, 지청천 역시 홍사익의 의견에 따라 일본군과 싸우려면 지휘관이 필요하다며 이곳에서 일본의 선진 지식을 습득하며 조국이 부를 때까지 기다리자 했다. 이들은 결의를 다지기 위해 다시 육사 23기 였던 김경천의 주도 아래 '우리 민족이 떨쳐 일어나는 날 다 함께 모이자며'요코하마 한 술집에 모여 서로의 피를 나눈 술잔을 나눠 마시며 피의 맹세를 했다. 이들이 이 때 정한 암호는 '요코하마'

1919년 온 민족이 떨쳐 일어난 3.1 운동 김경천은 드디어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그래서 피를 나눈 동지들에게 '요코하마'라는 단어가 들어간 전보를 보내고. 지청천이 합류했다. 육군 현역 장교였던 두 사람의 탈출에 일제는 체포망을 좁혀갔지만 두 사람은 그 허를 찔러 무사히 조국을 탈출하여 서간도의 신흥 무관학교로 갔다. 

반면 기다려도 오지 않았던 이응준과 홍사익, 당시 홍사익은 일본 육사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고, 이응준 역시 홍사익과 다르지 않은 선택을 했다. 이렇게 피를 나눈 맹세의 길은 서로 갈라졌다.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웁시다.
싸우다 싸우다 힘이 부족할 때는 이 넓은 만주 벌판을 베게 삼아 
죽을 것을 맹세합니다. 
                            지청천 


 

 
독립군과 그 독립군을 진압하는 장교로 마주선 동지들 
1919년 6월 이회영 등이 사재를 털어 만든 무장 항일 투쟁 교육 기관 신흥 무관 학교, 여기에 육군 현역 장교 출신이 김경천, 지청천 두 사람의 합류로 독립 투쟁의 기세는 불타올랐다. 

신흥 무관 학교 출신으로 북간도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신동천과 함께 김경천, 지청천은  '남만 삼천'이라 일컬어졌으며 이들의 합류로 독립 투쟁은 한 단계 승화된다. 일본군을 나오며 군 교재와 지도를 갖춰 나온 지청천 덕분에 현대적 군사 지식과 지도를 얻게 되었으며 이런 전문적 군사 지식에 따라 신흥 무관 학교는 대한 제국 무관 학교의 편제에 따라 14시간 훈련과 학과를 병행하는 체계를 갖춰 나갔다. 

이들 졸업생은 대부분 만주 지역 독립군 부대의 교관과 장교로 활약했고 이들이 이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핵심이 되었다. 이후 이들 '남만 삼천'은 지청천은 서간도로, 김경천은 러시아 연해주로, 신동헌은 북간도로 흩어져 독립 운동의 외연을 넓혀가며 각 지역 독립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 홍사익과 이응준은 일본군이 되었다. 홍사익은 만주 사변에서 공을 세우고 관동군 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가 접한 조선 항일 조직의 서류에서 그는 한때 동지였던 지청천의 이름을 발견했다. 또한 어느날 그에게 온 인편을 통해 지청천은 '친구여 요코하마를 기억하는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라'며 그의 투항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일본군으로 승승장구하던 홍사익은 '친구여 요코하마를 기억하는 이는 더는 내가 아니네'라며 지청천의 청을 거절한다. 

장부가 응당 취하고자 하는 건
만고에 떨칠 이름인데
어찌 하찮은 망아지 구유에 기대어 .....
풍운은 아직 그치지 않고 눈보라 휘날리니
어찌 큰 민족을 세울 용사를 얻을 수 있으랴     -김경천 <경천아일록> 

 

 
소비에트 혁명으로 인한 비극적 생애- 김경천
대대로 무관을 배출한 집안, 사직동 일대에 1000 여평의 집터를 가진 집안, 하지만 가장 김경천이 독립을 위해 조국을 떠나고 남은 가솔들은 그 가옥을 처분하여 근근히 살아가야만 했다. 

러시아 연해주로 온 김경천은 수청 고려 의용대를 만들어 우리 이주민들은 물론 그 지역 토착민들을 괴롭히는 그 지역 마적들을 토벌하는 등 혁혁한 성과로 '백마탄 김장군'으로 칭송받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숨쉬기 조차 힘든 그곳의 사정'을  <경천아일록>으로 남겨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비견되는 전쟁 기록의 산 증인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강대국의 정세에 휩쓸리는 우리의 운명이 그렇듯 김경천 장군의 생애 역시 그 비극에서 비껴서지 못했다.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숙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연해주의 고려인 사회 지식인과 지도층 인사들 다수가 체포되었으며, 김경천 장군 역시 블라디보스톡에서 체포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영향에서 조선이을 분리하고자 한 소련의 정책에 따라 18만 명의 조선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하는 과정에서 김경천 장군 역시 카자흐스탄의 집단 농장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하지만 집단 농장 이주도 잠시, 1939년 다시 '인민의 적'이란 명목으로 카라간다 정치범 수용소에 8년 금고형에 처해졌고,  이어 모스크바로, 다시 시베리아 코틀러스 강제 수용소로 보내져 철도 건설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 백마탄 조선의 나폴레옹이라 불렸던 독립의 영웅 김경천 장군은 그렇게 소비에트 혁명의 희생자가 되어  1942년 러시아 북부 철도 부설 수용소 병원에서 병명은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심장 질환으로, 하지만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친일의 결말 - 이응준과 홍사익 
일본군 고위장교가 된 이응준은 가야마 다카토시로 창씨 개명을 하고 매일 신보 등의 강연회에서 '충성'을 강변하는 등 일제에 앞장선다. 용산 조선군 사령부 대좌까지 지내던 중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원산항 병참 책임자로 있던 이응준은 '조선인으로 돌아간다'며 원산을 탈출한다. 

하지만 미군정청은 해방 후 칩거하던 그에게  조선 임시 군사 위원회 군사 위원장 직을 맡긴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던 그는 하지만 '일본, 만주, 중국 등지에서 군사학을 전공하고 그 나라에서 각각 군인 노릇을 하던 그 경섬이 신생 조국에서 건국의 역군이 될 '것이란 소회로 건군의 주역이 되고 초대 육군 참모 총장 등의 직위를 역임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할 당시 필리핀 포로 수용소장으로 있었던 홍사익은 그해 12월 b급 전범이 되어 재판을 받는다. 당시 재판을 받던 22명의 장성 중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홍사익,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수재로 입신양명의 길을 걸었던 그, '조선인이 일본에 협력하면 조선인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며 이씨 왕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창씨 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조선인 권리를 지키겠다던 그의 최후는 일본군의 전범이었다. 

이응준 등, 심지어 김원봉조차 조국 건설에 필요한 인물이라며 구명 운동을 펼쳤지만 항소를 거부했던 그가 형장으로 가며 부탁한 건 '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로 시작하는 시편 51편, 그렇게 조선인으로 일본인과 동등하게 살고자 했던 일본군 대좌 홍사익은 형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응준과 홍사익은 반민족 친일행위자로 친일 인명 사전에 그 이름이 올랐다. 

 

 

마지막 무관 생도들, 그 후 
충칭 임시정부로 간 지청천은 한국 광복군 총사령관이 되어 국내 진공 작전인 독수리 작전을 주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황의 항복, 태극기, 광복군기를 앞세워 귀국하려던 지청천, 하지만 미 군정은 이를 허락치 않았다. 결국 개인 자격으로 28년에 귀국한 지청천 장군은 대동청년단을 만들어 해방 후 청년 단체 규합에 힘썼다. 

일제 합방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이건모는 퇴교 후 조선 총독부 서기가 되었다. 일본군 장교가 되었던 이종혁은 자신으로 인해 독립군 투사가 죽음에 이르는 걸 목도하고 항일 독립 투쟁에 헌신,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았다. 44명의 마지막 무관 생도들 중 단 5명만이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그리고 그 중 7명이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남은 32명, 그중 일본군 장교가 13명, 관료가 6명, 은행 직원이 3명, 교사가 4명등이다. 일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젊은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 3.1운동 100주년에 저 다섯 명의 독립 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삶, 그 지난했던 선택 더더욱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9. 3. 3. 15:04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만큼 한 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설명해줄 말이 있을까? '백년지대계'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교육은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생산'해주는 인력풀로 요구되어져 왔다. 유학자들이 모여 이상적 군주 체제를 지향했던 조선 사회는 그러기에 '과거'라는 학문의 능수능란한 익힘 정도를 '관리'의 요건으로 삼았다. 수출과 개발 입국을 내세웠던 지난 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그 '산업'의 역군을 담당할 '기술'과 '기능'을 잘 익히고 숙달한 지식인들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 '잘 알고 익힌 지식'일 필요치 않다면? 그 실재의 유무에 대한 논쟁을 차치하고 도래할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지금까지 인간이 수행했던 '지적으로 숙련된 영역'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화된 기계들이 대신할 것이라는 것은 이제 자명해 지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우스개로 시작하여 이제 체감이 되기 시작한 사라질 인간의 직업들이 회자되고 있다. 거기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 변리사, 의사 등의 직업군마저 그 역량의 상당 부분을 빼앗길 태세이다. 과연 지금까지 사람들이 책임지던 일을 일군의 AI들에게 넘기고 만다면 다은 세대에게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교육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 각국은 저마다 '교육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집'으로 마련된 <EBS다큐-교육 개혁, 성공의 조건>은 바로 이에 대한 모색이다. 

 

 

일본 교육의 20년 대계 
이제 중학생이 된 히로토는 카이세이 중학교에 다닌다. 학교 수업을 마친 그는 집에 돌아와 여유롭게 엄마와 식사를 한다. 암기하고 문제를 푸는 식으로 공부하던 형이 중학교에 다닐 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상. 

카이세이 중학교의 오전 수업, 히로토가 속한 조는 일본과 외국의 의료 제도를 비교하여 파워 포인트로 작성하는 중이다. 그런데 같은 반 다른 조는 다른 주제에 대해 토론 중이다. 사회 시간, 함께 사는 세상이란 주제를 놓고 아이들이 정보화 시대,복제양 돌리 등의 장, 단점에 대해 토론을 하는 '탐구식 수업'을 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가치관을 접하고, 다양한 테마와 문화를 발견하는데 교사 중심의 설명식 수업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가 두드러진다. 

일본은 2001년 일찌기 문부 과학성의 조직을 개편하며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수용하여 교육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 20년을 준비해온 정책은 2018년 문부성 교육 개혁안으로 결실을 맺었다.  입시에서 객관식 문항을 없애고, 논술, 서술형 시험을 확대했다. 미래형 인재를 키우기 위해 일본 교육이 선택한 건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 중심의 '탐구식 수업'이다. '덜 가르치고 더 학습하자'는 모토의 새로운 교육 방식, 스스로 생각하고 학생들 상호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하는 이 새로운 방식에 맞춰 2020년 수능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핀란드의 일관된 교육 개혁 
지금이야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통하는 핀란드이지만1970년대만 해도 그저 유럽의 변방 국가 중 한 나라에 불과했었다. 국민들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처지였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한 교육을 받는 교육 개혁을 실시했다. 물론 이런 개혁에 대한 저항은 거셌다. 하지만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교육 개혁 정책은 2000년대 국제 학업 성취도에서 핀란드를 당당하게 1위로 만들었고, 이러한 교육 정책의 변화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대열에 당당하게 한 몫을 하는 핀란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대를 선도한 교육 정책에 핀란드 국민들은 신뢰도 80%로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핀란드 교실, 학생들의 책상 모양은 5각형이다. 각자의 학습도 중요하지만, 언제든 모여 앉아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책상. 종교에 대해 배우는 학생들은 지금까지 역사를 배우는 일반적 방식이던 '시대순' 대신 종교의 성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 선생님의 역할도 다르다.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에서, 학생들 스스로 사실에 접근하는데 도움을 주는 '안내자'로 역할이 변화했다. 대신 방과 후 보다 나은 커리큘럼과 접근 방식을 위한 연구자로서의 부담은 커졌다. 

이렇게 변화된 핀란드 교육의 주역은 행정부에서 독립된 '국가 교육 위원회'이다. 정당의 정치적 결정에서 배제된 교육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국가 교육 위원회, 거기에 교사들은 개혁 대상자가 아니라 현장 지휘자이자 동반자, 그리고 전문가로 개혁 과정의 주체가 된다. 또 빠질 수 없는 주체로 학생이 있다. 요리 학교를 다니는 엠마는 현재 학교를 휴학하고 국가 교육 위원회 이사가 되어 각 실업 학교를 찾아 다니며 자신과 같은 자신과 같은 실업계 학생은 물론,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분주하다. 성적 평가 방법이 3단게에서 5단계로 바뀌는 등 현장의 목소리가 학생 이사를 통해 반영되었다. 학생, 선생을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16명의 이사진은 정치적 환경에서 자유롭게 교육 현장을 반영하여 교육 목표를 수립하고, 과정을 설계하며, 그 내용을 이행하는 교육 전반의 과정을 책임진다. 

 

 



프랑스의 새 바칼로레아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통적인 논술 시험의 전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바칼로레아를 통과해도 대학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속출, 입학생의 26%만 졸업장을 받는 게 프랑스 교육의 현실이 되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 2013년 교육 과정 최고 심의 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교육 과정을 분석하고, 41개의 새로운 과정을 설계하고, 이의 실행을 자문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비난과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6년간의 과정을 거쳤다. 

일본, 핀란드, 프랑스 등 각국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교육개혁 정책을 실시했다. 나라는 달랐지만 이들 나라 교육 개혁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촛점이 맞춰진다. 그 첫 번 째는 지금까지의 입시 위주의 암기식 지식, 그리고 그에 기반한 설명식 수업을 지양한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 방식을 마련해 가는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정책과 방식을 입안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김영삼 정부에서 수능 체제가 도입된 이래 크고 작은 교육 정책의 변화가 19번이나 이루어져 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육 개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가 십상이다. 교육 개혁의 '개'자가 나와도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오죽하면, 지난 해 교육 공론화 과정의 결과는 시대적 흐름에 위배되는 듯한 정시 확대, 수능 절대 평가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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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 교육 개혁의 현실 
그건 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새로운 시대에 부응한다는 개혁이 오늘날 우리 교육 시장에서 보여지듯, 잘 사는 학생들이 대학을 잘 가는 온갖 편법적 제도를 양산해놓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능 수시의 다양한 제도들이 애초의 취지인 다양한 교육 기회가 아니라, 이른바 자사고, 외고 등 교육 기관들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입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제도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결과 우리의 학교 교육은 외고, 과학고, 자사고가 상층 레벨을 형성하고, 그 아래 일반고 등이 자리한 신분 서열 체제가 되었다. 사람들이 보이는 교육 개혁에 대한 반발은 이러한 결과물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시대적 변화는 다시 우리 사회에 교육 개혁에 대한 요구를 한다. 과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교육 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져 할까? 이에 다큐는 '백년지 대계'를 내세운다. 실제 국가 교육 위원회 위원장인 김진경 씨 역시 조급하기 보다는 100년을 갈 수 있는 교육적 합의를 최선의 요건으로 든다. 또한 이를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절대적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일본 카이세이 중학교 학부모들은 여전히 불안해 한다. 학교의 새로운 교육이 대학에서 공부하는데는 좋은 학습 방법이지만, 대학을 가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갸웃거린다. 프랑스의 새로운 교육 정책은 마크롱 정부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과 함께 학생, 교사들로 하여금 정부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를 입는 시위 대열에 합류케 했다. 

또한 핀란드처럼 정부의 기부와 독자적인 기구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국가 교육 위원회는 취지와 달리 위원회 의원을 뽑는 과정에서 정치적 성향의 배제 여부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대두된 가운데, 교육부와 상치된 조직이 되지 않을까란 우려도 등장한다. 이런 가운데 연내 출범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다. 

by meditator 2019. 3. 1. 16:07

2019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한일 합방 이후 9년, '국치'를 견뎌내지 못한 우리 민족이 들고일어난 3.1 운동, 유학생들의 2.9 독립 선언에 이어, 일부 선각자들의 비폭력 선언은 전민족적 저항 운동을 발화시켰고, 강대국들의 아전인수격인 민족 자결주의와 일제의 폭압적 진압으로 미완의 혁명이 된 3.1운동은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독립 운동에의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런 열망의 결실로 국내외에 만들어진 7개 이상의 임시 정부가 세워졌고 1919년 9월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올해는 바로 이렇게 선열들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용트림을 했던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 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행사가 준비되는 가운데, 드라마 속 기억에 남는 독립운동가를 되살려 본다. 

 

   

  

<절정> 그리고 이육사가 된 눈이 맑은 아이 이원록 
과연 그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100주년이 되는 이 시기에 가장 기본적으로 되짚어봐야 할 질문이 아닐까. 기억의 저편 속에 사라져가는 인물이거나, 혹은 그 반대로 추앙받는 영웅이 아니라, 어쩌면 오늘 이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립 운동가가 살아가신 그 궤적의 실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실감'에 가장 근접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2011년 8.15 특집극으로 방영된 2부작 <절정>이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절정」 전문


<절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육사 시인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마흔의 생애 동안 17번의 옥고를 치룬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 이 분의 생애야 말로 우리가 일제 시대 지식인의 삶을 가장 알 수 있는 본보기가 아닐까. 

김동완이 이육사로 분한 드라마의 시작은 어린 육사로 부터이다. 퇴계 이황의 집안, 안동에서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우던 어린 시절의 육사를 드라마는 '눈이 맑은 아이'로 그린다. 

폼나게 살고 싶었던 아이, 부모님을 모시고 아메리카를 여행하고팠던 꿈에 부풀었던 아이, 형제들과는 어려서 부터 다르게 멋도 좀 알았던 아이, 무엇보다 눈이 맑아 세상을 투영하게 바라보려 했던 아이,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삶이 고달플까봐 걱정했다. 

그 눈이 맑았던 아이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시로 썼다. 드라마의 마지막 그토록 집요하게 육사를 쫓던 박이문 형사는 육사의 시에 마음을 허물고 육사를 설득한다. 자신에게 당신이 나르던 군자금의 배후를 알려주면 당신을, 당신의 시를 놓아주겠다고. 그러니 제발 살아나가서 시를 쓰라고. 당신의 시가 아깝다고. 그러자 육사는 초연하게 답한다. 내가 살아서 나가면 내가 시를 쓸 수 있을까 라고 .  이 육사의 한 마디가 바로 시인 이육사의 삶을 대변한다. 

이창동 감독이 만든 <시>라는 영화가 있다. 2015년까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이 영화는 미자라는 늦깍이 시인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지방 소도시 손자와 함께 사는 미자라는 할머니는 우연히 동네 문화원에서 '시' 강좌를 듣게 되며 삶이 변한다. 지금까지는 상투적으로 살아왔던 시간, 시를 배우며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하며 감수성을 북돋우려 했던 미자 할머니의 노력이 맞닦뜨린건 뜻밖에도 전혀 아름답지 않은 세상, 그리고 부조리한 자신의 삶, 결국 '시인'이 되어버린 할머니는 세상의 부조리, 자기 삶의 모순을 자신의 온 몸으로 감수해 내고야 만다. 

바로 이 이창동 감독 영화 속에서 정의된 시인, 그 시인의 모습이야말로 눈이 맑았던 아이 시인 이육사의 모습이 아닐까.  감옥에서도 칙칙한 수의가 싫었던 소년, 어머니는 그런 그에게 너는 일찌기 독립에 눈떴던 집안의 형제들과 달리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소년 역시 형제들과 다른 길을 가지 못했다. 

 

  

시인이기에 비타협적 독립 운동가가 된 이육사 
한학을 배우던 집안을 넘어 영천과 대구에서 신학문을 배웠고 좀 더 너른 세상을 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젊은이 원록은 그곳에서 관동 대지진의 참상을 몸소 겪게 된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처지, 그런 위기의 순간 원록의 앞에 윤세주라는 또 다른 식민지 시대의 청년 운동가가 운명처럼 등장한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이육사 


일찌기 3.1운동 만세 시위를 주동했으며 훗날 의열단원에 신간회를 거쳐 조선 의용대로 활약했던 독립투사 윤세주, 관동 대지진을 배경으로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식민지 청년의 만남이 이루어 졌다. 자신때문에 윤세주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가졌던 이육사는 관동대지진 이후 무차별적 조선인 학살의 충격으로 고향에 칩거해 있던 중 자신을 찾아온 윤세주를 반기며 기꺼이 그를 따라 독립 운동의 길에 나설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결심을 앞선 건 일제의 검속, 1926년 대구 은행 폭파 사건에 연류된 혐의로 3년 형을 받고 복역하며 17차례 징역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모진 고문의 시간을 견디며 3년 형을 살고 나온 청년 이원록, 하지만 일제의 고문과 감옥은 그의 의지를 꺽이게 만들기는 커녕, 외려 그의 의지를 강고하게 해 그를 북경으로 가도록 만든다. 

1932년 드라마에선 윤세주를 따라 갔다는 식으로 표현된 이육사가  선택한 건 조선 혁명 군사 정치학교.  간부 훈련반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은 그는 각종 훈련을 거쳐 국내로 잠입하여 활동한다. 신문사 일도 잠깐 곧 군사 학교 출신이라는 게 밝혀져 감옥으로 가게 된다. 

드라마는 고뇌하는 식민지 청년 원록으로 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청년은 관동 대지진과 의열단 윤세주를 만나며 눈맑은 청년에서 부터 세상에 눈을 감지 않으려 했던 고뇌의 지식인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고뇌는 펜 대신 총을 드는 선택으로 결단을 내렸던 청년, 자신의 이름 원록 대신 수인 번호 264번을 필명으로 선택했던 식민지 지식인의 비타협적 선택에 대해 드라마는 지긋이 천착하여 그려간다. 

그와 함께 가문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일양과의 혼인, 짧은 신혼 그리고 긴 이별, 거기에 잦은 징역으로 인한 어렵게 얻은 아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아내의 고통 등, 가정사의 슬픔을 기꺼이 감내할 수 밖에 없는 독립 운동을 선택한 한 개인의 신산스러운 삶을 드라마는 애절하게 더한다. 

동시에 극중 노윤희로 등장한 최정희, 서진섭으로 등장한 서정주와 윤태주, 강문석 등 일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그들 가운데에서 고뇌하고 그럼에도 결국 일제와의 타협보다 끝내 다시 총을 든 이육사의 선택을 보여줌으로써  독립운동가들의 비타협적 삶의 가치를 제대로 설파해 넨다. 내고향 칠월, 청포도가 익어가던 시절의 문구를 아끼던 윤태주의 선택, 일제에 의해 희생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독립의 실천으로 다했던 강문석의 또 다른 선택은 이육사의 헌신적 삶과 함께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山脈)들이 /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이육사 

 

   

   

  

이육사는 살아생전 시집 한 편 펴내지 못한 시인이었다. 그가 북경의 감옥에서 죽고, 그의 아우가 그의 유고 작품들을 모아 펴낸 시집이 오늘 회자하는 이육사의 시가 되었다. 그가 회유하는 일경에게 말했듯 그의 삶은 오롯이 그의 시가 되어 오늘날 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극 중 노윤희는 말한다. 자신은 태어나면서 부터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았다고 지금 우리가 하는 이런 독립 운동들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였던가, 극중 서진섭이었던 서정주는 해방을 맞이하며 일제가 그리 빨리 패망할 줄 몰랐다 했었다. 일제 36년 누군가에게는 나고 자랐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더구나 이기기 보다는 17차례의 끊임없는 투옥에서 처럼 일제에 의해 끝도 없을 것같은 억압의 시간, 다시 일제에 잡혀 고문을 당하는 게 싫어서 윤태주 같은 사람들도 자결할 독약을 지니고 다녀야 했던 시절, 그 시간을 견디며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실천할 수 있었다는게 얼마나 힘겹고 엄청난 일인지, 그 삶의 무게를 <절정>은 애써 표현하려 노력한다. 

by meditator 2019. 2. 26. 19:01

아직도 사극에 있어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병훈 김영현 콤비의 <대장금>, 그 기적이 가능했던 건 당시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웰빙', 그 중에서도 '먹거리 웰빙'으로 촛점이 맞추어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병훈 감독의 사극은 곧 '트렌드'였다. 동양 의학에 대한 관심이 <허준>으로 북돋아졌고, 수의의 인술 성공담 역시 21세기의 기술 혁명과  함께 였다. 남성의 대상이 아닌 여성의 독자적 삶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나 이병훈 감독의 작품들이었다. 특히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절묘하게 사극 속 시대에 조응해 내는데 있어 독보적이었다.  당연히 이병훈 감독과 함께 한 김영현, 최완규, 김이영 작가들이 바로 그러한 이병훈 감독의 사극을 구체적으로 구현해 낸 장본인들이다. 김영현 작가는 박상연 작가와 손을 잡고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으로 정치 사극이 대표가 되었고, <동이>, 이산>, <마의>를 함께 한 김이영 작가 역시 <화정>으로 그 필력을 이어갔다. 

 

 

2월 11일부터 sbs를 통해 방영된 <해치>는 바로 이러한 이병훈 사단의 사극 기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현실로 부터 역사를 길어낸다.  즉 2019년의 과제, 사법부 개혁으로 부터 시작된 적폐 청산을 드라마의 화두로 삼은 것이다. 

숙종 연간 정치 투쟁의 결과는?
숙종 연간, 우리는 사극을 통해 장희빈과 인현 왕후의 궁중 비사를 되풀이 학습하여 왔다. 하지만, 이건 두 여인의 집안 싸움이 아니라, 장희빈과 인현 왕후를 앞세운 서인과 남인의 붕당 정치의 처절한 정치 투쟁이었고, 그건 또 다른 측면에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세를 굳히기에 들어간 서인, 그 중에서도 노론을 견제하기 위한 숙종의 당쟁 정치였다. 

조선의 건국을 주도하며 기득권층으로 성장한 '훈구파'와 달리, 영남 등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던  '사림파'는 조선 중종 이후 조광조 등을 필두로 정계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당연히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정치 세력에 대해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은 '조광조'의 난 등 각종 사화 등을 겪는다. 하지만 그런 희생을 통해 조선 중앙 정치계에 자리잡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사림파는 각 집단의 학연, 지연, 그리고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인해 동인과 서인, 다시 남인과 북인, 그리고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가 가며 조선 중기 정치적 세력, 그리고 파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찌기 정도전의 이상,  플라톤의 철인 정치처럼 유학자들에 의해 이상적으로 구성된 의정부 등에 의해 왕권이 조정되고 견제받는 정치적 대의제로 구상된 조선은 곧 그 정치사가 왕권과 신권, 그리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신권 사이의 갈등의 역사가 되고 만다. 

숙종의 시대, 우리가 알고 있던 여인의 치마 품에 휩싸였던 유약한 왕이 아니라, 일찌기 왕권 강화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던 숙종은 이 문제를 인현왕후를 폐비로 만들며 당시 정계의 주축이었던 서인을 축출, 즉 노론과 소론의 힘을 약화시키며 당시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인을 등용하며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하였지만, 우리가 역사적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희빈의 폐출, 인현왕후의 복권으로 그의 정치적 모험은 서인, 그 중에서도 노론의 강화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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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가 그려내 적폐 청산, 사법 개혁 
드라마 <해치>는 바로 이런 숙종기 후반, 서인 그 중에서도 체제를 구축한 노론과, 이제 그들이 왕권 계승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통해 오늘의 '적폐'를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오늘날 사법부에 비견되는 당시의 사헌부, 관리를 감찰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이 기관은 하지만 애초의 설립 의도와 다르게 노론의 시녀가 된 처지로 드라마는  그려낸다. 

노론에 의해 다음 왕좌의 주인으로 예정된 밀풍군, 하지만 밀풍군은 훗날 왕이 될 것이라는 권력에 취해 자신의 감정조차 조절못해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파렴치한이다. 비록 장희빈의 아들이지만 엄연히 훗날의 경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밀풍군의 등장은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결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치>는 역사적 상상력으로 밀풍군을 통해 왕가의 적통마저 뭉갤 수 있는 당시 노론의 위세를 그려내고자 한다. 

이렇게 권력과 그 권력의 하수인이 된 공공의 기관들, 그리고 그걸 등에 업고 광폭하게 날뛰는 후계자, 이렇게 비관적 시절에 그 상황을 우직하게 돌파하는 사헌부, 이미 노론의 하수인이 된 조직 속에서도 조선의 궁궐을 지키는 해치처럼 자신의 원래 직무에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스스로 노론임에도 가문과 거리를 두면서 밀풍군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정석(이필모 분)과 그를 신뢰하며 따르는 다모 여지(고아라 분)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헌부의 세력들과 가난한 노론 집안의 자제로 오늘날로 치면 만년 고시생인 훗날의 그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권율 분)와 천민 출신의 어머니로 인해 왕족이지만 언제나 뒷전인 연잉군이 합세한다. 

해프닝처럼 엮인 이들이 밀풍군이라는 공통의 이해로 뭉치고, 한정석이 제기한 밀풍군의 비리에 연잉군이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제물로 삼아 증인으로 나서며, <해치>속 '사법 개혁'의 싹은 움트기 시작한다. 

왕자 연잉군이 스스로 제주 유배까지 자청하며 밀풍군의 살해 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폭군으로 예약된 밀풍군을 밀어내는데 성공했지만, 권력은 녹록치 않다. 민진헌(이경영 분)으로 대표되는 노론은 기꺼이 그들이 선택했던 밀풍군을 버리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한 한정석을 '뇌물'의 함정으로 밀어넣는다. 즉, 한 말 물러선 듯 하지만 감히 자신들의 권력에 더 이상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노론은 연잉군에 대한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권력의 위세를 휘두른다. 적폐 청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연잉군을 위시하여 여지, 박문수,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이 만났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해치> 속 영조는 우리가 알고 있든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 영조를 떠올리기 힘들다. 천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하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불우한 젊은이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노론의 시대지만, 여전히 정의를 향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역사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현재, 우리의 시대다. 우리의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 시대가, 젊은 영조가  선택되었다. 

by meditator 2019. 2. 19.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