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10시, 이 시간대 공중파 tv 채널의 선택폭은 넓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도록 스테디셀러 <정글의 법칙>의 독재 체재이다시피 했으니까. 굳이 이미 고정층이 확고한 <정글의 법칙>에 도전을 하는 악수를 둘 방송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젠 그것도 옛날 이야기다. <정글의 법칙>이 토요일로 시간을 옮기고 그 시간대에 드라마 <열혈 사제>가 편성되었다. 주말 드라마를 토요일 9시부터 연방으로 편성했지만, 김순옥 작가의 <언니가 살아있다> 이후로 이렇다하게 주목받은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던 sbs가 금토 드라마로 편성의 변화를 주며 주말 드라마 격전지에 한 시간 빠른 도전장을 냈다.

<열혈 사제>의 첫 방송, 당연히 <정글의 법칙>을 기대하며 채널을 돌렸던 고정 시청자층을 대상으로 1회 10.4%, 2회 13.8%로 그 후광 효과를 톡톡히 노렸다.  후광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3회 8.6%, 4회 11.6%로 앞서 1,2회에 비해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떨어졌다 해도 앞서 주말드라마였던 <운명과 분노>가 자체 최고 7.7%로 종영한 거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타 방송사가 색다른 편성을 하지 않는 한 당분간 금요일은 <열혈 사제>의 독주다시피 할테니 11시대의 피튀기는 전쟁을 피해 <열혈 사제>의 성공은 편성의 성공적 한 수가 될 듯하다. 

 

 

박재범 작가의 핸디캡 히어로 
그렇다면 편성의 한 수는 그렇다치고 작품으로서 <열혈 사제>는 어떤가? 우선 <굿닥터>, <신의 퀴즈 4>에서 <김과장>에 이른 박재범 작가를 주목해야 한다. 그간 박작가는 굿닥터의 박시온(주원 분), 신의 퀴즈의 한진우(류덕환 분), 그리고 김과장의 김성룡(남궁민 분)까지 신체적 장애라던가, 질병이라던가, 혹은 신분상의 오류라던가 저마다의 핸디캡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과 맞서 히어로적 활약을 보이는 내용을 주로 써왔다. 물론 <블러드>라는 예외적 사례도 있지만, 그리고 이러한 박재범 작가의 서사는 대부분 시청률과 작품성 두 가지 면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즉 대중적 장르물에 있어 가장 성공한 작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박재범 작가가 <펀치>, <귓속말>의 이명우 피디와 만났다. 이번에 박재범 작가가 내세운 히어로의 핸디캡은 '분노'이다. 

2014년 정지우 작가는 <분노 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 책을 펴낸 그 때만 해도 '분노 사회'라는 말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생경하던 때, 하지만 그로부터 5년 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분노'와 그로부터 비롯된 '증오'가 팽배해있다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 n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 '현실'이다. 사랑조차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경제적 현실, 대학을 나와도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며, 부모 세대보다 결코 잘 살기 힘든 자녀들의 세대, 그런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는 부모들, 그렇게 현실에서의 팍팍한 삶이 '사랑'을 포기한 자리에 분노를 자리하게 한다. 

그런 현실적인 분노에, 변화하지 않는 남여 차별의 가부장적 구조, 상명 하복의 위계적 질서 등 구조적인 사회적 문제들이 뒤얽혀 서로가 서로를 경원시하다 못해 '증오'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히어로라니 기가 막힌 선택이다.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었던 김해일(김남길 분), 테러 작전 중에 의도치 않은 폭파 사고로 민간인, 아이들을 살상하게 된 그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 술에 의존도도 높다. 그런 그를 이영준 신부(정동환 분)가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분노 조절 장애 안티 히어로와 흥미로운 조연진 
하지만 첫 장면, 조폭의 사주를 받아 사이비 무속인으로 동네 사람들의 돈을 긁어모으려던 무속인들을 비롯하여 그 배후인 조폭들을 거침없이 '손봐주던' 김사제는 예의 '조절되지 않는 분노'의 구원 행위(?)로 인하여 그가 속한 교구의 정의 구현을 실현했지만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결국 구담시를 찾게되고 그런 그를 피붙이처럼 이영준 신부가 피붙이처럼 따스하게 맞아주지만 그만 그 아버지같던 이영준 신부는 '자살'한 사체로 발견되고 심지어 그를 부도덕한 신분로 몰아가기 까지 한다. 

'사고치지 말아라'며 두 손을 꼭 잡고 당부하던 이영준 신부의 명을 어떻게든 거스르고 싶지 않아 노력하지만, 대신 집전한 미사 시간에 몰래 빵을 먹던 요요한(고규필 분)을 내쫓는가 싶더니, 하느님께 죄를 사해달라기 전에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찾아가 먼저 용서를 빌라는 말로 신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심지어 고해하러온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내치기까지. 

이미 <김과장>에서 사기꾼에 가깝지만 어쩐지 정이 갔던 김성룡 이래, 막무가내 분노 조절 환자지만 어쩐지 그의 분노가 공감되고, 막말이지만 그 말이 통쾌한 또 한 명의 '반영웅적(안티 히어로) 히어로'의 탄생이다. 


이렇게 2019년에 가장 공감할 만한 캐릭터로 시선을 사로잡은 <열혈 사제>는 <김과장>에서처럼 매력적인 조연진을 통해 주연의 캐릭터를 보완한다. 이준익 감독의 <변산>속 용대의 드라마 버전과도 같은 고준의 대범무역 대표 황철범, <변산>에서 용대가 조폭이지만 학수와 철천지 원수지만 어딘가 어수룩한 동네 조폭이었다면, <열혈 사제> 속 황철범은 용대처럼 어수룩하게 사투리를 쓰며 폼은 비슷한 듯하지만,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람 목숨마저 눈깜짝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인물로 김해일의 맞수다. 

거기에 이제는 천만 배우가 된 <극한 직업>을 통해 코미디가 몸에 붙기 시작한 이하늬의 박경선이 첫 회 부터 펄펄 난다. <응답하라> 이래 어쩐지 부진했던 김성균이 모처럼 몸에 맡는 옷을 입은 듯한 구대영도, 이 사람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그 사람인가 싶은 쏭삭의 안철환도, 백지원의 김인경 수녀도, 이미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이 있었던 요요한의 고규필도, 구당 청장의 정영주나, 부장검사의 김형태, 경찰 서장의 정인기까지 쟁쟁한 조연진이 포진되어 있다. 

이렇게 첫 회부터 분노 조절장애 캐릭터 김해일의 원맨쇼에 가까운 만화적 설정에, 조연진들의 개성있는 호흡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열혈 사제>, 과연 이러한 신의 한수 편성만큼이나 내용성있게 이끌어 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9. 2. 17.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