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원 작가의 <보이스3>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장르물이 시즌을 이어가는 경우가 특별한 건 아니지만, 한 작가가 일관성있게 시즌을 집필하는 경우는, 특히 3번 째 시즌까지 함께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스3>는 마진원 작가의 <보이스3>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렇게 마진원 작가와 함께,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는 <손 the guest>의 연출로 익숙한 김홍선 감독에 이어, <특수사건 전담반 ten 2>의 이승영 피디의 시즌 2, 그리고 이제 <뷰티인사이드>, <터널>의 남기훈 피디가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보다 '고어'하게 
그렇다면 시즌3의 <보이스>는 어땠을까? 
화가의 작업장인 듯 여기 저기 그림들과 작업 도구들이 있는 창고, 그 끝에 한 여성이 매달려 있다. 공중에 말 그대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건 낚시줄? 혹은 얇은 철사와 같은 줄들이다. 그녀의 마디마디를 지탱하고 있는 그 줄은 동시에 그녀의 그 마디마디를 조여가며 끊어내고 있는 중, 바닥은 그녀의 피로 흥건하다. 그리고 살려만 달라고 절규하는 그녀의 앞에서 그 죽음을 한껏 즐기고 있는  검은 망토에 하얀 마스크를 쓴 빌런,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은퇴하겠다는 여 화가의 작업장을 보러 온 부동산 업자와 손님, 그들은 질척이는 작업장을 둘러보던 중 이상한 설치 작품, 여성의 얼굴과 절단된 사지로 구성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흥건했던 것들이 바로 '피'였음을. 112를 찾으며 혼비백산하는 그들, 그렇게 '하드고어(고어(gore)는 '피, 핏덩이, 엉긴 피, 응혈'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징그럽고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심하게 들어간 잔인한 작품)'하게 <보이스3>가 시작된다. 

<보이스 1>에서 이 드라마가 다른 장르 드라마와 달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건, 사고로 인해 남다른 청각를 가지게 된 강권주 팀장(이하나 분)을 중심으로 한 범죄 현장의 골든 타임을 사수하는 112 신고 센터 팀과, 그 맞은 편에 쇠망치로 사람을 내리쳐서 잔혹하게 살해하는 모태구(김재욱 분)로 대변되는 '고어'한 범죄들이었다.

그리고 시즌 2에서는 강권주 팀장의 골든 타임 팀이 무진혁(장혁 분)에 이어 새로운 팀장 도강우(이진욱 분)을 맞이하여 체계를 갖추어 가며, 모태구의 철퇴로 내리치던  '고어'한 범죄는 방제수(권율 분)의 시신 부분 훼손 및 절단과 이의 유통인 '닥터 파르브'라는 다크 웹 사이트의 조직적 범죄로 범죄의 각을 넓혔다. 

시즌3의 <보이스>는 이런 시즌 1과 시즌2의 특징을 강화시킨다. 1회 초반 보여준 빌런의 '하드 고어'한 범죄에 이어, 일본 료칸을 배경으로 한 일본 여행을 온 한국인 여성 두 명을 납치 감금하고, 마치 컴퓨터의 리셋 버튼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의 가족을 끊임없는 납치를 통해 '리셋'하려하고 이에 반항할 때 거침없이 망치를 휘두르는 '고어'한 설정의 에피소드로 시즌의 특성을 강조한다. 

거기에, 시즌 2의  사고 현장에서 사라졌던 도강우 팀장이 8개월만에 일본에 밀항을 감행하면서 까지 추적하는 시즌2의 빌런 방제수의 배후, 시즌 2에서 방제수가 거느렸던 '닥터 파브르'는 그 일부에 불과했던 절단된 시신들을 거래하는 '블랙 마켓 시크릿넷'이라는 거악이 시즌3의 과제로 제시된다. 료칸의 납치범 스즈키(정기섭 분)도 피해자들을 강간하며 죽이는 과정을 담은 '스너프' 필림을 올렸던 것으로 도강우의 추적이 실제 사건으로 드러나며, 과연 극 초반 등장했던 '하드 고어'한 범죄를 저질렀던 최종 빌런과 이 '시크릿 넷'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보다 처절하게
시즌3가 시작될 때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건 바로 강권주의 생사였다. 방제수가 덫으로 놓은 폭탄이 설치된 지하로 들어갔던 강권주, 이후에 발생한 폭발, 과연 그 상황에서 강권주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시즌 3는 그 폭파의 현장에서 8개월을 건너뛰어 골든 타임 팀장으로 다시 복귀한 강권주로 시작한다. 폭파 현장에서 온 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그 현장에서 사라진 도강우 팀장을 찾기 위해 초인적인 힘으로 재활을 겪어낸 그녀는 다시 의연한 골든 타임 팀의 팀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그녀는 사고로 인해 치명적인 '이명'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뜻하지 않는 순간에 그녀를 엄습하는 강렬한 기계음과 같은 이명은 남들과 다른 청각으로 사건을 인도하는 골든 타임 팀장으로 강권주에게는 그 무엇보다 안타까운 핸디캡이다. 

시즌 2의 다른 제목이 필요하다면 '도강우 형사의 복권'이라고 해도 무람없을 만큼, 3년전 자신의 눈 앞에서 파트너였던 나형준 형사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도강우,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살인 사건을 눈 앞에서 목격한 이유로 '동조자' 혹은 아버지와 같은 사이코패스라 의심을 받는 그는, 더구나 종종 정신을 잃는 '블랙 아웃 증세'에, 극한의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으며 폭주하는 성향으로 인해 나형준 형사의 형인 나홍수 계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고 '형사'직에도 위기를 맞고 있는 형편이었다. 시즌 2는 바로 이런 도강우가 방제수의 음모로 인해 나형준 살해 사건의 범인이 아니며, 진짜 범인을 밝히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아버지의 범죄와 그로 인한 온 가족의 불행 이후 속죄하듯 경찰이 되고, 거기에 더해 자신의 과거와 병력으로 인해 덮어씌워진 혐의를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도강우 형사, 그러나 그는 그런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린다. 그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전담반조차 그의 과거로 인해 폐지되던 무렵, 일본으로 밀항하는 그가 골든 타임 수사망에 잡히고, 그렇게 밀항자로써 강권주와 다시 만나지만 도강우는 예의 안하무인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며 팀원들을 멀리한다. 

 

 

강권주의 폭발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은 색 자동차로 인해 방제수의 배후를 직감한 그는 지난 8개월간 은밀하게 '블랙 웹'의 존재를 추적해 오던 중, 그 실마리를 찾아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안하무인이었지만, 당장 피해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고, 거기에 그 가해자가 자신이 찾는 블랙 웹과 연관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도강우는 '료칸 납치 사건'에 뛰어들어 예의 '팀장'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마지막 범인 스즈키의 검거 과정에서 절제되지 않는 폭력적인 성향이 튀어나오고, 강권주와 대화하던 중 뛰쳐들어가 안정제 주사를 맞고 나와야 할 만큼 병이 악화된 상황, 더구나 감옥의 방제수는 도강우의 복귀를 듣고 그의 어릴 적 이름 '고우스케, 돌아왔구나'라고 하면서 시즌 2 내내 시청자들을 의혹에 빠뜨리게 했던 도강우의 정체에 대해 다시 한번 의심의 불을 지핀다. 거기에, 시즌 2의 나형수 계장에 이어, 이제 다시 그가 살인마의 아들이라며 그의 뒤를 쫓는 일본 형사 료지(박동하 분)가 등장하여 도강우의 정체에 대한 혼돈을 부추긴다. 그렇게 도강우는 심해지는 병과 싸우며 다시 한번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핸디캡을 가지게 된 강권주, 심해지는 병으로 인해 시간이 여의치 않은 도강우 이들은 첫 번째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그 누구보다도 서로 호흡이 잘 맞는 팀이라는 걸 확인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도강우는 단 두 달로 그들의 파트너 쉽을 한정시키고, 이제 함께 '하드 고어'한 거악의 범죄 단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나선다. 보다 처절한 조건에서, 보다 극악한 범죄자, 혹은 범죄 단체를 단죄하기 위해 나선 <보이스 3>, 이 흥미진진한 서막에 시청자들은 2회만에 5%를 넘보는 관심으로 호응했다. (2회 4.979% 닐슨 코리아 케이블 기준)



by meditator 2019. 5. 13. 14:45

개혁 군주 영조의 새로운 면모를 그렸던 <해치>는 비록 7%대의 시청률이지만 월화 드라마 1위의 자리를 수성한 채 마무리를 했다. 그 바톤을 이어받은 건 모처럼 개화한 mbc의 월화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다. 물만난 듯한 김동욱의 호연과 <열혈 사제>를 잇는 화끈한 '사이다' 서사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뚫어주며 7%의 벽을 뚫었다. 그렇게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순풍에 돛단듯이 순항하는 가운데, 그 아성에 도전하는 후발 드라마 두 편이 있다. 바로 '장르'가 박보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tvn의 <어비스>와 <해치>의 후속 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이다.

'장르'가 박보영이라지만 <어비스>가 '로코'인 듯 하지만 '빌런'으로서 이성재의 존재감에서 드러나듯이 '스릴러'의 요소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 반면, <초면에 사랑합니다>의 경우 드라마 초반 남자 주인공 도민익(김영광 분)이 피습을 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되며 미스터리하게 열었지만 막상 드라마의 내용은 도민익과 그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의 아웅다웅하는 '관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로코인 듯 스릴러, 스릴러인 듯 로코인 복합 장르로서 두 드라마는 비슷한 듯 다르게 심지어 시청률조차 고만고만하게 (어비스 3.858, 초면에 사랑합니다 3.6, 닐슨 코리아 5.6 기준) 후발주자로서 고전하고 있다. 

 

 

영혼으로 소생한 현대판 미녀와 야수, <어비스>
20년지기 친구인 두 남녀가 있다. 한 명은 절세 미녀에 재원으로 잘 나가는 검사가 된 고세연과 또 한 명은 반대로 길 가다가도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덜 생긴 차민, 일편단심 고세연만 바라보던 차민에게 뜻밖에도 운명의 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결혼을 약속까지 했는데 그녀가 사라졌다. 그로 인해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하던 차민은 외계인의 운전 실수로 말미암아 사망, 20년지기 절친 고세연 역시 자신의 집에 찾아온 연쇄 살인마로 인해 사망, 그렇게 두 절친은 세상을 떴고, 차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외계인이 준 생명 소생 구슬 '어비스'로 다행히 환생했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혼의 모습인 둘의 모습이 생전과 딴 판으로 평범녀와 누가 봐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잘생남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렇게 김사랑과 안세하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삶과 죽음의 기로를 넘기며 박보영과 안호섭이 바톤을 이어받았고, 그때부터 우리가 아는 예의 '박보영 표'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는 <어비스>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아직은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 풋풋한 안호섭이 이끌었던 초반을 지나 박보영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가 급 활기를 띠는 것처럼, 박보영은 그 또록또록한 발성과 똘망똘망한 연기로 대번에 드라마를 휘어잡는다.

하지만, 조금전까지만 해도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장례 치른다고 엉엉 울던 고세연이, 장면이 바뀌자 허겁지겁 해장국을 먹고,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차민의 물건들을 팔아 편의점 순례를 하고, 날짜 지난 상품으로 편의점 알바생을 눙치고, 즐펀하게 편의점 앞에서 쏘맥을 말아 수다를 떠는 지점에 이르면 이 드라마가 <오나의 귀신님>인지, <힘쎈 여자 도봉순>인지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뜻밖에도 <어비스>가 드라마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이성재'의 본격적인 등장에서 부터이다. 동료 검사도, 피해자의 아버지도 모두가 모호하고 의심스러웠던 등장이었지만, 서하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오성철의 존재가, 그의 환생이 분명해 지면서 부터 드라마는 '스릴러'로서 장르의 묘미를 살려가기 시작한다. 또한 그런 면에서 박보영의 전작 <오 나의 귀신님>과 <힘쎈 여자 도봉순> 역시 복합 장르 드라마였다는 것이 환기되며, 전작들에서처럼 박보영의 익숙한 연기를 새로운 '장르'의 서사가 융합하여 신선하게 다가올 가능성을 연다.

즉, 박보영은 그 박보영이지만, 박보영이 녹아든 이야기의 다름이 시청자들을 설득시키느냐가 <어비스>의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오 나의 귀신님>, <힘쎈 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런 박보영의 전략이 또 다시 먹힐지는. 더구나 안효섭은 박보영이 함께 했던 그 어떤 남주보다도 '신인', 이성재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박보영의 어깨가 무겁다. 

 

 

새로운 듯 익숙한 안면인식 장애 남자의 좌충우돌 해프닝, <초면에 사랑합니다> 
T&T 모바일 미디어 1본부장 도민익은 남 보기엔 완벽하고, 그래서 완벽한 만큼 까칠한 상사이다. 덕분에 의욕만 앞섰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는 결국 상사의 싸가지 없는 해고 통지를 받게 되고 만다. 하지만, 그 날 회사에서 정갈희가 짤린 날, 정작 도민익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겨우 목숨은 구하지만 어릴 적 그가 받았던 뇌수술 과정에 삽입했던 클립이 측두엽에 무리를 줘 안면인식 장애를 일으키고 만다.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이 이토록 흔한 증후군이었던가. MBN<마성의 기쁨>에서 공마성(최진혁 분)은 자고 일어나면 지난 날의 기억이 사라져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를 보였고, JTBC<뷰티 인사이드>의 서도재는 사고로 안면인식 장애를 안게 되었다.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하고, 심지어 직업도 다들 '장'이다. 뇌신경 센터 센터장, 항공 본부장에, 이제 모바일 미디어 본부장까지. 이 완벽한 조건에 완벽한 '티'가 되는 그들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후군에 완벽한 조력자가 있으니, 그녀들이다. 

이 '익숙한' 설정을 <초면에 사랑합니다>는 T&T 모바일의 후계 구도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 삼촌 간의 복잡한 집안 관계, 그리고 뜻하지 않은 피습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그리고 점점 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도민익이 유일하게 알아보는 단 한 사람 정갈희를 등장시켜, 갑과 을이 사랑하는 사이로의 전복되는 과정을, 알아보지 못하는 해프닝을 통해 도민익의 오랜 절친 기대주(구자성 분)와 베로니카 박(김재경 분)과의 사각 관계로 풀어갈 예정이다. 피습 사건으로 심각하게 시작했던 드라마는 정갈희를 찾아와 상사 면접을 진심으로 받는 도민익으로 풀어내며 '로코'로서의 특색을 강화해 간다. 

<너의 결혼식>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영광과 박보영, <퐁당퐁당 러브>에서 함께 했던 진기주와 안효섭이 이제 파트너를 바꿔 경쟁자로 만났다. 발군의 박보영, 한층 무르익은 김영광이 이끌고, 신인 진기주와 안효섭이 따르는 이 두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의 유제원 피디가 과연 박보영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지,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의 김아정 작가와 함께 입봉한 이광영 피디가 드라마에서 계속 부진했던 김영광에게 고진감래의 기쁨을 안길지, 하지만 이미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상승세를 펴고 있는 월화 드라마에서 이들 후발 주자들의 입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by meditator 2019. 5. 8. 05:33

지난 1976년 첫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주장을 하여 센센이셔널한 파급을 일으켰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는 이후 개체인 인간은 자유 의지와 문명을 통해서 이런 유전자의 독재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보완했다. 그렇다면 2019년 5월 6일 방송된 <장내 세균 혁명>을 리처드 도킨스가 봤으면 어땠을까, 세균을 또 다른 주체로 세우려 하지 않았을까? 

꾸준히 현대인의 건강과 식습관에 대한 건전한 모색을 해오고 있는 <sbs스페셜>이 이번에는 그 시선을 '장내 세균'으로 돌렸다. 

 

 

장트러블이 일상이 된 현대인
63세의 김진숙 씨 잦은 방귀, 트림에 설사를 달고 산다. 56세의 이금씨는 변비와 설사가 교대로 와서 고생 중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소식이 오면 내려서 화장실을 찾아들어가야 할 정도라 지하철 역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훤하다. 38세 강용관씨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그는 혹시나 휴게소를 지나고 나서 신호가 올까봐 휴게소마다 미리 억지로라도 볼일을 보려고 애쓰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와 한 집에 사는 그의 아내 이해일 씨는 그와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데도 변비로 고생 중이다. 심하게는 2주일 동안 화장실을 못갈 정도로. 

60대에서 부터 30대까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마도 현대인들 대다수가 겪는 불편함을 넘어선 고통들일 것이다. 도대체 왜 세대를 막론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장트러블'을 겪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몸, 그 중에서도 장내에만 100조, 많게는 400조의 세균이 산다. 그 종류만도 수 천가지가 넘는 세균, 그 세균들은 서로 견제와 균형을 맞추며 우리의 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몸에 유익한 균들도 있지만, 반대로 위의 증상에서 보여지듯이 방귀, 트림, 설사, 변비, 심하게는 복통, 궤양 등을 유발하는 유익하지 않은 균들도 있다. 결국 우리의 장은 '세균들의 '왕좌의 게임', 그 전쟁터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장을 그저 소화 기관이 아닌 면역 기관으로 보고 있다. 

출연자들의 장내 세균을 분석해 봤다. 잦은 방귀와 트림, 설사에 시달리는 김진숙 씨의 경우 이상 발효를 일으키는 퍼미큐티스 균이 많았다. 변비와 설사가 오락가락하는 이금씨의 경우 병원성 균들, 대장균,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질균등이 다른 균에 비해 활발했다. 강용관 씨의 경우 매일 밤 야식과 함께 먹는 알코올이 장내 균들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려 77%가 박테로이스균이 점령한 상태이다. 

 

 

우리 몸의 주인은 세균?
즉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도 누구는 설사를 하고, 다른 누구는 변비가 오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장내 세균총이 달라서이다.  하루에 50kg의 대변을 보는 코끼리, 엄마가 큰 일을 보자 아기 코끼리가 달려가 엄마의 똥을 먹는다. 초식 동물의 경우 아직 장내에 미생물군이 미성숙한 아기들은 이렇게 엄마의 똥을 먹음으로써 엄마의 장내 미생물을 '계승'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균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는 엄마의 산도에 정예부대로 모여있던 락토 바실라스 균 등 유산균 샤워를 시작으로  엄마의 모유를 통해 비피더스 유산균 등을 취하여 장내 미생물총을 형성해간다. 

이렇게 엄마를 통해 건강한 유산균 중심으로 장내 미생물군을 형성한 아기들은 하지만 커가면서 각종 스트레스와 인스턴트 식품, 불균형한 식습관에 음주 등을 통해 장내 세균층이 무너져 간다. 위 60대에서 30대까지의 사례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육식'을 매우 즐기며, 간식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고, 야식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데 술 까지 한 잔 하는 식의 식생활 패턴을 가졌다.

결국 평생 동안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나의 장내 세균층이다. 그런데 장내 세균층이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현대인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장트러블'때문만이 아니다. 장내 신경은 뇌 시경과 밀접하게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장내 세균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치매와 장내 세균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치매가 박테로이스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연구중인 한국인 박사 허준열 교수 부부는 대부분 자폐아들이 위장 장애를 겪고 있는 것에서 착안하여 엄마 쥐의 장내 세균인 절편 섬유상 세균이 새끼의 자폐 증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울증과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세로토닌'의 90% 이상을 장내 세균이 만든다. 그래서 오늘날 학계는 장을 '제 2의 뇌'로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장트러블'을 넘어, 인간의 뇌를 관장하는 장내 세균들, 다큐는 '호모 박테리아누스'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결국 '장 건강'을 관리하는 건 '장트러블'을 넘어 100세 시대 아이부터 노인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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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건강이 곧 뇌의 건강
그렇다면 장 건강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영양 성분'이 관건이 된다. 즉 우리 몸에 우리가 섭취하는 것에는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것과 세균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밥을 예로 들면 흰 쌀로 지어진 밥은 사람이 소화시키지만, 현미 밥의 경우 그 껍데기의 식이섬유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통곡류와 해조류 등이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들로 이런 것들을 많이 섭취해서 장을 건강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진 미생물들은 대장 점막을 자신의 먹이로 삼고, 그렇게 되면 점막이 약해져 그 틈 사이로 염증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큐 초반 12살부터 궤양성 대장염을 앓기 시작하여 19살이 된 환자는 결국 타인의 분변 미생물을 이식하여 자신의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60대부터 30대까지 각종 '장트러블'로 고생하던 사람들도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틱스 등의 유익균을 일주일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한층 상태가 호전되었다. 

장, 세균을 통해 돌고 돌아 온 길이지만, 결국 다큐가 도달한 곳은 인스턴트와 육식 위주의 편향적 식습관을 가진 오늘날 현대인들이 장은 물론 갖가지 신체적 이상 증상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이다. 건강한 장, 건강한 뇌,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는 우리 몸은 물론, 우리 몸의 어쩌면 실제적 주인일 수 있는 세균들이 좋아하는 통곡물과 해조류, 그리고 각종 유산균들이 구비된 건강한 식단을 먹어야 한다는 '원칙적'인 증명이다. 

by meditator 2019. 5. 7. 07:00

첫 번째 수업,
김수진 선생님의 5학년 교실, 오늘 수업은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은 '성평등 수업'이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서 맞은 편에 앉은 학생들에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고정 관념 대결을 제안한다. 

아이들의 의견은 봇물처럼 터진다. '무슨 남자가 울어?',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만 우는 거야', '남자 애가 소심해', '무슨 남자가 핑크색을 좋아해?' 등등 남자 편의 의견에 맞서, '여자는 꾸며야 해',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밤에 돌아다니지마', '술 자리에 여자가 있어야지'까지 여자다운 편견들이 쏟아진다. 과연 어느 편이 이겼을까. 남자아이들의 '남자답게'가 끝났는데, 여전히 '여자답게'의 의견들은 남아있다. 그러니 당연히 승리는 '여자답게' 편, 그런데 어쩐지 씁쓸하다.  이겼지만 과연 좋아할 일이냐는 반문이 나온다. '여자답게', '남자답게'라는 의견을 나누며 이미 학생들은 그 '여자다운' 것들이, '남자다운' 것들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듯하다. 

 

 

두번 째 수업.
역시나 5학년 정윤식 선생님네 반 수업이다. 선생님은 '제주도에 유채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제안한다. 술래가 앞으로 나와 칠판 쪽에 기대있는 동안, 선생님이 전달하는 사진을 나만 보고 몰래 다른 친구에게 무사히(?) 들키지 않고 전달하는 게임이다. 선생님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진 한 장, 그 사진을 아이들은 치열하게 몰래 몰래 전달하려 애쓰는 한편, 그 사진을 보지 못한 친구들은 얼른, 어떻게서라도 보고 싶어 몸살을 한다. 

물론 옷을 다 입고 있는 별 거 아닌 사진 한 장, 그저 보고나면 웃음짓게 만드는 사진이라면, 만약에 이 사진의 주인공이 나라면,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라며 게임 끝에 던져진 질문에 아이들은 창피해서 자살을 할 수도 있겠다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몰카', '디지털 성범죄'라는 답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게임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Think outside of the box
5월 3일 방영된 <거리의 만찬>은 어린이날 특집으로 학교 현장에서 'Think outside of the box'(고정 관념을 깨다) 교육을 실천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이른바 '성평등 수업', 그 시작은 젠더 이슈와 관련된 댓글에서 부터 였다.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댓글에서 함께 책을 읽던 모임을 하던 교사들은 그 주제를 수업으로 끌고 들어왔다. 

 

 

난무하는 감각적 뉴스, 사회적 사건이 있으면 언론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사건들을 계속 자극적으로 양산해내고 아이들은 그런 '뉴스'에 무분별하게 노출된다. '버닝썬' 사건 동영상,  그거 누구래 하며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자신들이 접하는 인터넷 상의 콘텐츠에서 익힌 '응 니에미', '느금마'(엄마를 혐오적으로 부르는 표현) 에서 부터 '피싸개'(생리를 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까지를 무분별하게 습득 '혐오'를 일상화시키는 아이들, 거기서 더 나아가, '선생님 가슴이 크시네요, '하고 싶어요' 등 감정적 모욕을 하고도 사과는 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 심지어 화장실에서 3000원을 받고 가슴을 보여주는 왜곡된 성의식의 현실에 교사들은 교과서를 넘어선 '성평등' 교육만이 이런 현실에 대한 '백신'이 될 거라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성평등, 인권 교육의 시작 
장난이나, 재미로 여겼던 사안들에 대해 뭔가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수업, 일본 야동에서 비롯된 '앙 기모띠'가 유투버로 부터 아이들에게 까지 자연스레 습득되는 현실에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서로 존중해야 될 인격체로서의 '남녀'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고자 한다.  가사 노동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그저 여성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아빠도 힘들고, 집에서 가사 노동만 전담하는 엄마도 힘들다는 성역할에 대한 '무게'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교육' 한번이 당장 아이들을 달라지게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게이네, 호모, 장애' 등 그간 스스럼없이 썼던 차별적 표현들에 대해 배우고 알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고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그래서 선생님들은 '백신'이라 표현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그래서 선생님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결국은 '인권'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며, 이런 작은 흐름들이 모아져 '학교 폭력 예방' 등의 좋은 에너지로 모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성평등 교육에 대한 불편한 시선들이 거칠게 반응하기에 이런 교육을 유지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토로한다. '프로불편러'란 댓글에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려면 불편했던 것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 불편러가 맞다고 하면서도, '피해 의식'이 심하다는 등의 반응에 선생님들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미개'해서 가르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선생님 스스로도 '결혼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말은 칭찬으로 듣던 시절이 가진 '함께 되묻고 반성'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이라는 소회 끝에 선생님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체육 시간,  달라진 수업에서는 공놀이를 하더라도,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열려진 가능성의 시간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 남학생보다 운동을 덜 좋아하는 여학생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고등학교만 가도 아예 체육 수업과는 담쌓게 되는 현실에서, 룰을 바꾸고, 팀 구성을 바꿔가기만 해도 여학생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게 된다고 선생님들은 전한다. 또한 지금까지 힘든 일은 남학생들에게 시킨다던가, 얼굴도 이쁜데 글씨도 좀 잘 쓰지라며 여학생에게 상투적으로 하던 표현의  관행 자체에 대해 선생님들 먼저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더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시간으로서의 '성평등' 수업, 여전히 세상의 시간은 따갑지만 다수의 인식이 바뀌려면 교육 밖에 없다는 젊은 선생님들의 5월의 신록같은 신념에 봄의 전령 딸끼 뷔페가 작은 보답을 전한다. 



by meditator 2019. 5. 4. 14:37

제주도, 여러분들은 제주도에 왜 가십니까? 아마도 <다큐 시선- 제주가 사라진다>의 리뷰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듯하다. 사람들은 왜 하고많은 대한민국의 여러 관광 명소 중에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저 제주에 가는 걸까? 거기에 길이 잘 뚫려 있어서? 잘 발달된 휴양지가 많아서? 들고 나는 공항이 편리해서? 이런 질문들 중에 여러분들이 제주에 가는 이유가 있나요?  

 



아름다운 비자림 숲을 보러 가기 위해 비자림 나무를 자르다. 
제주시 구좌읍, 거기엔 천년의 숲이라 칭해지는 비자나무 숲, 비자림 숲이 있다. 천연 기념물 374호, 수령 500년에서 800년의 비자나무 2800여 그루, 단일 수종으로 세계 최대 규모, 높이 7~ 14m,  직경 50~110cm의 나무들이 지난 3월 잘려나갈 위기에 놓였다.

'나무 자르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예요'라는 숲 지키미들의 몸을 던지는 절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 칭해지는 27.3km에 달하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하기 위해 이 '천년'의 나무들이 잘라나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논란'의 현장이 지금 제주가 앓고 있는 몸살의 현주소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를 지나고 싶어, 천년의 나무들을 보고 싶어 제주로 몰려가는데, 정작 제주에서는 그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천년의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비자림로 확장 공사, 그 궁극에는 바로 제주 재 2공항이 있다. 국내선 여객 수송 1위의 현 제주 공항, 하지만 시설 규모로는 국내 7개 공항 중 5위, 공항 시설 능력 과포화 상태, 이에 원희룡 제주 지사를 비롯한 국토부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에 제 2의 제주 공항을 만들기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제주 2공항은 곧 이를 둘러싼 제주 시민들 사이의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시작이었다. 

독자봉

정상 동편 전망대에 올라서면
온평, 난산, 수산, 일출봉, 저멀리 우도까지 지척이다. 
언제나 제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을 
내 눈 속에 깊이 박아두었다. 
오름 뒤편 공동묘지에 아버지를 묻었다. 
마을 사람들은 독자봉 건너에 저승이 있다는 것을 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높은 고향 하늘이다  -강원보 


난초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난산리', 이 작고 아담한 마을에는 300여 가구의 사람들이 산다. 난산리를 비롯한 주변 5개 마을은 제주 제 2공항이 들어서면 청사와 활주로로 인한 소음과 분진 피해를 입을 곳들이다. 이 가구 중에 원희룡 지사에게 달걀 세례를 퍼부은 김경배씨가 산다. 평범한 굴삭기 기사였던 그,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산일출봉을 닮은 조형물까지 만들어 가며 가꾼 그의 터전, 그저 지금처럼만 사는 것이 꿈인 그는 '공항 건설'과 함께 없어질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42일간의 단식을 했다. 그의 부모님 세대들이라고 다를까. 당신들은 돌아가시면 그만이라면서도 공항이 들어서면 나고 자라고 삶의 터전이었던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시름에 절로 한숨이 나오시는 어르신들. 

 

 

공항 아래 용암 동굴, 과연 안전성은? 
제주의 생명인 오름, 대수산봉을 비롯한 10개의  오름들도 제주 2 공항을 비롯한 난개발에 존망의 기로에 놓였다.  오름만이 아니다. 신공항 예정지에는 서궁굴 등 용암 동굴들이 이미 밝혀진 것 외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 자연 유산으로 권고되고 ,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수산굴은 보존해야 할 곳이지만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오름이나 숲 등의 훼손과 다르게 용암 동굴의 문제는 또 다른 면에서 문제가 있다. 문화재적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수많은 비행기가 날고 드는 공항 아래 동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안정성과 경제성 면에서도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질 파악을 위한 시추 작업을 동반한 정밀 지반 조사를 해야 하지만 어쩐일인지 2003년 문헌에 의거한 채 사업비를 전액 반납, 의혹을 남긴다. 

또한 공역 문제도 걸린다. 군 비행기가 날고드는 군 작전 지역과 맞닿아 있는 성산 지역, 하지만 이에 대해 제주시와 국토부는 이 지역의 군이 해군이라 문제가 되지 않으며, 조정 가능하다며 이해를 구한다. 심지어 최근 들어 '폭설'에 잦아지는 기상 요인은 차치하고, 바람, 강수, 강설량만으로한 모호한 선정 기준, 거기에 타 지역 10년치의 기준으로 성산의 7년치 안개 일수를 퉁쳐버린 기준 등 의혹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철새 도래지도 주변에 있다. 제주 대표 해안 습지인 하도리,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 2400마리 중 20 여 마리가 해마다 겨울을 나는 곳, 당연히 '버드 스트라이크'가 예상되지만, 비행기는 200m 이상 날기 때문에 괜찮다는 안이한 대처로 비웃음을 사고 있다. 

도대체 하나에서 부터 열 까지 안걸리는게 없는 성산읍, 그런데 왜 이곳이어야만 했을까, 이에 대해 신공항 반대 단체들 역시 의문을 제기한다. 애초에 2012년 용역에서 유력한 예정지로 선정된 곳은 제주도 유일의 평야 지대인 '신도'지역이었다. 사회적, 환경적으로 그나마 가장 유력했던 이곳이 2015년 불현듯 '성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니 환경 단체를 비롯한 반대하는 편에서는 왜 굳이 '새 공항'을 지어야 하냐고 반문한다. 기존 공항 확장을 배제하느냐는 것이다. 

 

 

신공항,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원희룡 지사는 개인 유투브인 '원더풀 tv'를 통해 2015년 국토부 타당성 용역을 토대로, '기존 공항 확장 대안은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활주로의 확장 공사로 인한 해양 환경 파괴 문제 등, 거기에 과밀한 교통 체증 등의 여러 이유를 들어 불가능하다'고 답하고 있다.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측의 입장, 지난 4월 열린 기본 계획 수립 용역 보고회에서는 비행기의 바다쪽 선행과 대수산봉을 절취하지 않겠다는 국토부의 입장이 발표되었지만 양측의 갈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반대측의 거센 질문 세례에 보고회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종료되었다. 이런 갈등만 벌서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국내 최대 인원이 들고 난다는 제주 공항, 만약 제주 제 2의 공항이 만들어 진다면 생산 유발 효과 8조 297억원, 부가가치 효과 2조 5510억원, 고용 유발 효과 3만 6040명 등을 낳는다고  한국은행이 발표했다고 한다. 한반도, 중국대륙, 일본 등 주변 인구 1천만 이상 5개 도시, 500만명 이상 13개 도시가 인접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동북아 요충지로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타당성 조사를 현재 텅텅 비어있는 무안과 양양 공항은 안했을까? 즉, 이러한 수요예측 자체가 '희망'에 근거한 고무줄 결과물 일 수 있다고 반대측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성수기에 잠깐 붐비는 제주 공항을 개선하기 위해 또 하나의 공항을 만드는 것은 마치 명절 때 서울 부산 고속도로가 붐빈다고 고속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것과 같지 않냐는 것이다. 반대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제주 제 2공항의 건설은 그저 공항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제주가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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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미래는?
이와 관련하여 좀 더 본질적으로는 지금 '개발 붐'에 있는 제주의 현주소에 대한 고민이다. 쓰레기 배출량이 한계에 이르러 필리핀으로 밀반출하다 돌려받게 되는 해프닝을 겪는가 하면, 무분별한 시설 개발로 하수 처리가 용량을 초과하여 해녀들의 밭인 바닷속 돌이 오염되고 푸석푸석해져 풀조차 점점 줄어드는 등 해양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예래 지역 휴양형 주거단지가 4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렇게 제주 곳곳은 '관광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즉 한정된 자원을 가진 섬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제주,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개발이 2,30년 후의 제주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게 할 지,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의 바램대로 더 좋은 시설을 갖춰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가 될 지, 아니면 과잉 개발로 인해 또 하나의 무안, 양양 공항의 탄생일지, 일출봉과 우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보는 게 제주의 풍광이 아니라, 비행기가 쉴새 없이 드나드는 제주 공항이게 될지, 그도 아니면 사람들이 원한 건 '힐링'인데, 더 이상 '힐링' 할 수 없어진 그저 그렇게 뻔한 우리나라 여러 관광지들 중 하나가 되어버릴 지, 제주 제 2공항 건설 문제는 바로 이런 미래 제주의 밑그림에 대한 갈등이다. 



by meditator 2019. 5. 3. 14:25

지난 3월 최악의 초미세먼지(PM2.5)가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공기로 인해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공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졌다. 하지만 그런 '공포'만큼이나 그 '원인'을 둘러싼 '갑론을박' 또한 더해만 갔다. 원인을 제공하는 중국에 대한 극심한 불만 만큼이나 그런 중국에 대해 미온적 대처를 하는 정부에 대한 불평도 늘어갔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금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80~90년대에 비하면 한층 좋아진 상태란다. 이 뿌연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이 좋아졌다니, 이렇게 혼돈스러운 '미세 먼지'의 논란의 진실을 <sbs스페셜>이 조목조목 파헤쳤다. 

 

 

미세먼지, 정말 좋아졌나? 
최근 장재연 아주대 교수의 미세먼지와 관련된 주장이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장교수의 주장은 산업화가 극에 달했던 80~90년대에 비하면 외려 최근 우리 사회의 미세먼지는 그 정도가 덜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는 직접 장교수가 주장했던 과거로 부터 지금까지 통계적 수치를 직접 조사해 봤다. 장교수의 주장이 맞았다. 초미세먼지 농도는 꾸준하게 낮아져 왔다. 고농도 미세먼지도 매해 감소하는 추세이다. 심지어 90년대의 미세 먼지 농도는 지금의 두 배 정도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점점 더 대기 환경이 나빠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사람들이 그저 막연하게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 미세먼지 측정소의 지난 4년간의 자료를 데이터화 한 결과, 지난 4년 동안 미세먼지가 극심한 1월에서 3월까지 고농도 미세먼지의 지속 시간이 2015년 12시간에서 2018년 20시간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객관적 수치상으로는 미세먼지 양은 줄어들고 있지만, 예전 같으면 오전에 잠시 혼탁하던 하늘이 이제는 하루 종일 뿌옇게 보이니 사람들에겐 당연히 지금이 더 나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정말 중국으로 부터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하루 종일 하늘을 '점거'하는 미세 먼지, 그 원인은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국민 청원에 등장할 정도로 '중국발' 미세먼지일까? 

베이징에 사는 한 시민은 오랫동안 베이징의 하늘을 매일 아침 촬영해 왔다. 그런 그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베이징의 하늘은 한결 맑아졌다고 한다. 그러면 수치상으로는 어떨까? 제작진이 직접 베이징에 가서 매일 매일 측정해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국 당국의 발표와 달리 베이징의 공기 질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나빴다. 국제 기준치에 근접한다는 발표와 딴판이었다. 그런데 왜 좋다는 결과가 나왔을까? 그건 1년 평균으로 통계를 발표하는 '데이터'의 함정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중국발 스모그의 습격과 함께 우리 사회 '음모론'으로 등장한 것이 중국 정부가 베이징의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곳에 있던 공장들을 우리나라에 좀 더 가까운 산둥성으로 대거 이전했다는 것이다. 물론 베이징에 있던 공장들을 대거 이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혹으로 삼았던 산둥성이 아니라, 베이징 외곽에 있는 '허베이성'이 그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하늘이 맑아진 대신 허베이성의 하늘은 스모그로 뿌옇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허베이성 사람들에겐 그런 공기의 질보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산업적 활력을 준 공장들이 더 반갑다. 

이렇게 다시 한번 중국으로 부터 오는 미세먼지의 유입이 확실해 졌지만 그 책임 요구는 쉽지 않다. 정진상 교수는 중국인들이 즐겨 터트리는 폭죽으로 부터 중국발 미세 먼지의 성분을 분석하여 미세먼지의 과학적 원인을 규명해 냈지만, 이게 국제적 보상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 캐나다로 부터 미국이 국제적 보상을 받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국제법의 변화에 따라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가 그런 원인의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보상을 면해줄 수 있다는 등 보상의 관례나 사례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미세 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 분야에 과학적인 투자를 집중하고 있고 그와 함께 수치 상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어 더더욱 우리나라가 보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중국만의 문제일까? 
하지만 중국만의 문제일까? 다큐를 연 건 미세먼지 측정기이다. 하루 종일 배달일을 하는 경국씨와 매일 학교를 오가는 학생의 등에 인간의 호흡과 동일하게 공기를 빨아들이는 '미세 먼지 측정기'가 매달렸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씩 이 '미세 먼지 측정기'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린피스와 함께 제작진이 직접 실험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하루 종일 배달일을 하는 경국씨의 경우 그가 하루 종일 매달고 다니는 미세 먼지 측정기의 그래프가 들쭉날쭉하다. 반면, 매일 학교로 오가는 학생의 경우 등하교시 미세먼지 농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덜 심한 날과 상관없이.

즉, 제작진이 매단 미세 먼지 측정기의 수치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관측된 미세먼지 농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다니고 있는 길, 즉 자동차들이 내뿜고 있는 배기 가스로 인한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중국'을 지켜보고 있는 사이, 우리 곁의 자동차와 공장 등에서 뿜어내고 있는 미세먼지에 우리는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장재연 교수가 주장하는 바도 일맥상통한다. 즉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저 미세먼지가 좋아졌다가 아니다.  미세먼지의 정도는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미세먼지 질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산업적 결과물'들에 대해 살펴보고 점검하며 이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가? 라는 근원적 질문이 필요한 시간이다. 

또한 미세먼지를 둘러싼 갈등은 '정책'의 스펙트럼과 효율성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당장 미세먼지가 심한 상황에서 아토피 등 각종 알레르기 성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은 시급하게 각 교실 등에 공기 정화기 설치 등을 요구하지만 이런 부모들의 긴급하고도 즉각적인 요구에 정부나 학교 당국은 '절차' 등의 문제를 내세워 미온적으로 대처하여 그 '개선의 속도'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부추겨지고 있다. 

by meditator 2019. 4. 29. 05:13

10년의 시간, 매 주 꾸준히 해왔던 게 있을까? 아마도 먹고 자는 거 말고는 찾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일이라 쳐도 10년 동안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해온 사람들이 있다.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0주년, 440 회의 시간을 달려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이 특별한 시간, 하지만 10주년을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유스케)>, 흔히 유스케라 부르는 이 프로그램, 이 약자의 본보기가 되었던 슈스케가 명멸해버린 지금도 밤 하늘 그곳에 늘 있던 그 별처럼 이번 주도 변함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요즘 유스케가 언제 하는지 아시는가. 토요일, 일요일까지 오가던 이 프로그램이 요즘은 금요일 밤 11시 20분에 한다. 12시를 훌쩍 넘은 시간에 하던 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평범 속의 진리 
그 특별한 10주년을 연 건 놀랍게도 10년의 시간동안 한번도 <유스케>에 출연한 적이 없다는 김현철이다. 유희열의 말처럼 이상하다. 몇 번은 나온 거 같은데, 언제더라  노총각 4인방이라고 하며, 윤상, 김현철, 이현우, 윤종신이 나와서 서로 놀리며 흥겹게 화음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던 게. 그게 벌써 언젠가 싶게 다들 아기, 아니 얘들 아빠들이 되었다. 그 네 명이 노총각으로 나왔던 게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였는지, <이소라의 프로포즈> 였는지,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다르고 같았던 kbs2의 계보을 이어 오늘의 <유스케>가 있으니, 그 앞서 선배들까지 따지자면 유장함 뮤직쇼의 계보이다. 

어쨋든 그렇게 10주년을 맞이했는데도 여전히 <유스케>에 출연하지 않은 가수들이 있단다. 10주년 맞이 인터뷰를 한 유희열의 오랜 '고소원'인 조용필부터, 언젠가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파릇파릇한 신인가수들까지. 

10주년을 맞이한 <유스케>가 특별했던 건, 바로 여전히 이 무대에 서야 할 가수들이 있고, 언젠가 이 무대에 설 가수들이 있다는 그 '존재감'의 확인이었다. 이제는 <복면가왕> 아저씨로 젊은 층에게 더 어필한다는 19살에 '천재' 뮤지션으로 인정받았던 <춘천가는 기차>와 <연애>의 김현철이 30주년 앨범을 기약할 수 있는 무대가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을까.

 

   

 

또한 정말 우주에서 온 음악같은 신비하고 묘한 본인들이 표현하듯 본데없고 그래서 자유로운 방송 처음이라는 우주 왕복선 사이들 미러의 '난 아마 회사에 뼈를 묻지 싶다, 가난은 나를 잡고 나는 결말을 빨리 보고 싶어, 다치기 전 내 두 눈을 감기고 싶어, 150씩 일년 계약, 거둬주신다면 작업실에 쳐박혀서, 우싸미 하나 1back 하나, 정규 하나, 잘할 자신 만만, 나같으면 투자 가' 이라는 유희열의 표현대로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이후로 모처럼 신선했던 '설마는 사람잡고 철마는 달리고 싶어'와 같은 음악을 들을 곳이 <유스케>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가 새로운 설레임이었다면, 볼빤간 사춘기는 그런 <유스케>의 '선구안'의 증명이다. 불과 몇 년 전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유스케>에서 첫 무대에 섰던 '볼빨간 사춘기', 그 이상한 그룹명과 함께 '서양 수박 1위'가 소원이 야무지다 느껴졌던 그 시간을 이제 다시 돌아온 <유스케>에서 여유롭게 자랑의 한 품목으로 펼친다. 어디 볼빨간 사춘기 뿐일까. 아이유에서 부터, 내로라하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첫 번째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유스케>였었다. 

그 어떤 화려한 팡파레와 축하 공연보다 김현철로 시작해서 우주 왕복선 사이드 미러로 마무리된 이 날의 <유스케>만큼 앞으로도 계속 유스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명해낼 수 있을까. 오래 해서 계속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래 여전히 계속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 낸 시간, 그래서 10주년 <유스케>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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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그리고 뮤지션 유희열 
또한 인터뷰에서 총무, 큐레이터라고 자신을 정의내린 유희열의 이야기가 그의 음악과 함께 10주년의 곳곳에서 직조되어 빛났다. 30주년이 된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듣고 이런 사람과는 같이 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던 고등학생 유희열이 프로듀서 김현철이 말한 자신의 작품을 성취감에 대한 지론을 듣고 토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 유희열 뮤직 월드의 시작은, 김현철 6집의 <이게 바로 나예요>이 병약하게 '술마시면 취하고 넘어지면 아파요'라고 읊조리듯 부르던 객원가수 유의열에서, 크러쉬를 객원가수로 하여  함께 부른 'you&me 수많은 사람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thar just you 너를 만난 건 믿디 못할 놀라운 기적' U&I를 거쳐, <무한도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 <그래, 우리 함께>, '너에게 나 하고 싶었던 말, 고마워, 미안해, 함께 있어서 할 수 있었어, 웃을 수 있었어'의 감사 인사로 마무리되며 mc 유희열과 그의 음악을 돋을새겼다. 

평범한 듯 했지만, 그 어떤 축하연보다 가장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빛났던 시간,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빛날 것이라고 담담하게 하지만 힘있게 강변했던 시간, 그래서 다음 중에 다시 만나러 가고 싶은 10주년의 특별한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9. 4. 27. 06:01

로맨틱 코미디의 관건은 무엇일까? 남자와 여자, 이성이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휴머니즘'이 아닐까 라고 tvn  수목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은 말한다. 언제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 대한 '오해'로 시작된 <그녀의 사생활> 속 라이언 골드와 성덕미의 관계, 그 얼크러진 실타래를 풀어가는 건 뜻밖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이다. 

 

 

오해, 사랑을 위한 배경지식?
성덕미(박민영분)는 채움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이다. 전직 관장이었던 재벌가 엄소혜가 남편의 비리와 미술관을 탈세의 수단으로 이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물러나고 새로운 관장으로 입양아 출신의 라이언 골드(김재욱 분)가 오게된다.  지난 시절 그녀가 없으면 채움 미술관이 돌아가지 않는다 할 정도로 헌신하여 차기 미술관 관장이 돼도 손색이 없다 싶었던 성덕미,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일장춘몽'은 라이언 골드의 등장과 함께 무너지는 건 물론, 엄소혜의 텃새로 인해 오해를 사며 '해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신임 관장인 라이언 골드와의 사이는 적대적일 수 밖에.

그런데 성덕미에게는 보여지는 큐레이터라는 직업 외에 또 하나의 숨겨진 직업이자 취미가 있다. 바로 아이돌 차시안의 열렬한 팬이자, 그를 위한 팬까페의 홈마스터(홈마), 차시안이 뜨면 그녀는 마스크까지 검은 색으로 자신으로 가리고 그를 담기 위해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항에서 입국하는 라이언 골드와 부딪치며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팬 다이어리를 그에게 떨어뜨리게 된다. 상심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녀와 같은 취미 생활의 동지인 이선주(박진주 분)가 시안이 머물렀던 호텔 스위트룸에서 호캉스를 보내는 것으로 위로를 해주려는데, 이미 그 방에 머물렀던 라이언 골드와 방을 바꾸는 해프닝을 벌이는 가운데 라이언은 두 사람을 동성애자라 오해하게 된다. 

언제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굳이 주인공 남자와 여자인 라이언과 성덕미가 매번 부딪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뜻하지 않은 오해까지 하며 해고와 동성애 사건을 겪게 된다. 해고의 해프닝은 그에 대한 성덕미의 얕은 복수심에서 벌어진 라이언의 카페인 알레르기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성덕미는 라이언의 생사여탈의 가해자이자 구원자가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본의 아니게 점점 더 긴밀해져 간다. 그런 가운데, 미술관 전시회를 위해 함께 차시안의 집을 찾는 과정에서 생긴 시안 팬들의 오해로 성덕미가 '테러'의 위협을 받게 되고, 이에 라이언은 스스로 그걸 막기 위해 '가짜 연애'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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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랑의 시작 
라이언이 가짜 연애를 제안한 이유는 그저 시안의 팬들을 막아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호텔에서 목격한 사실을 근거로 성덕미를 사회적 약자로 배려의 대상이라 생각한 그는 그녀의 정체성이 드러나서 고통받는 대신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어주겠다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또 다른 오랜 친구인 남은기(안보현 분)가 찾아와 '아우팅' 운운하자 그는 분노해 그와 유도 대련을 펼치며 자신이 성덕미에 대해 생각한 바를 흘리고, 그로 인해 성덕미는 라이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라이언은 자신이 그녀를 터무니없이 오해한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지만, 정작 성덕미는 그런 라이언의 배려에 마음이 울리고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그 둘의 가짜 연애를 의심하는 관장 딸이자 성덕미의 경쟁 팬홈 마스터인 신디의 눈을 돌리기 위해 함께 한 강원도 길, 그곳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노석 작가의 오랜 벗인 사진작가의 죽기 전 마지막 사진에 대한 덕미의 해석, 안녕이란 제목이 세상과의 이별을 뜻하는 '굿바이'가 아니라 사진 밖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안녕 나는 이렇게 잘 있으니 걱정하지마'라는 위로의 의미란 해석에, 이른바 라이언이 '동공 지진'하게 되는데. 엄마가 자신을 버려 어린 시절 입양이 되어 누군가의 손을 놓치는 게 싫어 타인의 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가진 라이언이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덕미의 해석에 얼어붙었던 라이언의 마음이 녹아내린다. 라이언 만이 아니다. 같은 성을 가진 사람으로 중학교 때 만나 무려 30년 동안 자신을 바라봐 왔지만 엄한 가정에서 자라 그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 상처로 남았던 노석 작가의 얼어붙은 사랑마저도 덕미의 그 따스한 해석에 마음을 돌리도록 만든다. 

그렇게 비록 사회적 약자라 오해했지만 기꺼이 자신을 지켜주려는 라이언, 오랜 아픈 사랑의 상처를 가진 노석 작가의 마음조차 돌려세운 성덕미의 따스한 시선, 결국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성 간의 연애를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건,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온기, 선의, 이런 것들이 기본이 되는게 아니냐고 <그녀의 사생활>은 말한다. 불신, 오해를 넘어, 이제 서로에 대해 온기를 느끼며 '덕질'의 초기 단계에 빠져드는 라이언과 덕미의 '덕질 연애', 그들의 '휴머니즘 러브'가 궁금해 진다. 

by meditator 2019. 4. 25. 15:12

사이다 백만 개를 주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줬던 <열혈 사제>가 떠났다. 그런 시청자들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회를 거듭할 수록 근로감독관의 활약이 열렬해 진다. 전직 국정원 대테러 전담반 요원이었던 신부님이 조절되지 않는 분노를 화끈한 액션을 앞세워 구담구 적폐 카르텔의 소탕 작전으로 돌렸다면, 조장풍으로 날렸던 전직 유도 선수 출신 선생님 역시 한 액션하시지만, 그래도 '근로 감독관'이라는 직업답게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시며 공무원도 얼마든지 '히어로'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해 보이시는 중이다.  사제님의 열일도 구원받은 구담시, 이제 근로 감독관 조진갑(김동욱 분)의 열일로 구원시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88만원 세대의 슬픔, 그 기원은?
장은미는 휴먼테크의 파견직 사원이다. 오랫동안 취직 못했던 그녀가 언니에게 잘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회사의 막내 사원인 그녀의 회사 생활은 '지옥'이었다. 2년 동안 제 시간에 퇴근을 한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 며칠 째 들어오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 그녀가 근무하는 책상 한 귀퉁이의 약병들은 그녀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례하여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오력'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다. 

견디지 못하고 나간 경력직 사원 4명 몫의 일을 해야했던 그녀, 사무실의 온갖 잡일에서 부터 기획안까지 쉴 틈이 없었다. 일만 많은 게 아니었다.  클라이언트의 변심은 그녀가 일을 못해서라고 사장을 비롯한 사원들은 그녀를 동네 북처럼 두들겨 댔다. 그래도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처럼 '여기서 못버티면 어디 가서 뭘 하겠냐'고 했고,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사장은 자기 말을 안들으면 이 바닥에 발도 못붙이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버티다 못한 그녀가 언니에게 자신을 좀 어떻게 해달라고 울며 하소연을 했다. 

동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찾은 언니, 하지만 뜻밖에 언니가 들은 말은 '노동 계약서'가 없어서 노동자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법'의 테두리를 확인했을 뿐,  결국 견디지 못한, 아니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다 못해 접대 자리까지 불려나간 동생은 다음 날 뇌진탕을 일으킨 채 발견됐다. 

 

 

노동 계약서가 없는 계약직, 파견직 사원  이 문제를 맡은 특별한 근로 감독관 조진갑은 자신들의 업무 특성상 불가피하다는 변명 반, 그런 적이 없다는 배째라 반으로 나오는 사장의 뻔뻔한 저항에 부딪친다. 

이에 조진갑 근로 감독관은 알바 노동자 소년들의 체불 임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휴먼 테크의 장시간 노동을 적발하는 한편, 휴먼 테크를 넘어 원청과 하청의 관계로 휴먼 테크에 또 다른 갑이 되는  '티에스'라는 악의 축을 저격한다. 또 한편에서 파견직이라는 이름으로 은미와 같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노동 계약서도 없이 다단계 식으로 이 기업 저 기업에 파견하는 파견직 보도방의 비리로 적발한다. 즉, 드라마는 오늘날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고통받는 '파견직', 혹은 '비정규직' 문제를 그저 한 직장 내 프레임을 넘어 사회 구조적으로 대기업에서 부터 하청, 재 하청을 해가며 결국 그 모든 사업적 부담을 최 하단의 파견직, 혹은 비정규직에게 업무적으로, 거기에 한 술 더 떠 체불 임금으로 떠맡기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액션을 조미료, 근로감독관의 이름으로 
하지만 파견직 사원의 부당한 고용을 밝히기 위해 파고 들어간 원청 티에스에 대해 파고 들어가는 조진갑에 대해 그의 상관 구원지청장 하지만(이원종 분)은 냉정하게 반대한다. 

법대로 하고자 하지만 법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조진갑, 그때 지난 상도운수 사건의 계기가 되었던 한때 제자 김선우(김선규 분)가 동앗줄을 드리워준다. 김선우가 고등학교마저 못마치도록 만들었던 왕따 사건의 주동자였던 양태수(이상이 분)가 그를 자신의 운전사로 고용하여 다시 한번 사사건건 갖은 괴롭힘과 모멸감을 주는 상황, 김선우는 이제 더는 상도 운수 때처럼 물러서거나 타협하는 대신 스스로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양태수에 대한 적극적 복수를 하고자 한다. 즉 신원을 보호해준 내부 고발자가 티에스와 고용 계약서도 쓰지 않은 장은미와 여러 차례에 걸쳐 업무 사항을 나누었다는 증거 서류를 '고발'하는 방식을 제시한 것. 

 

 

이에 '내부자 고발'이란 카드를 뽑아든 조진갑은 '내부자'가 빼낸 서류를 빼내기 위해 무단으로 티에스에 잠입, 하지만 매달 바뀌는 번호키로 인해 고전하던 중 전처 주미란(이세영 분)에게 들키고 만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무실을 방문한 우도하(류덕환 분) 덕분에 위급한 상황을 모면한 조진갑, 티에스와 명성병원의 전산 시스템 구축 협약식이 있던 날, 사경을 헤매는 동생에게 병문안은 커녕 문자로 해고 통지서를 보낸 휴먼 테크 사장에게 분노하던 언니를 진정시키는 한편, 하지만 구원지청장을 설득해 얻어낸 '체불 임금으로 인한 특별 근로 감독' 개시를 선언한다. 결국 파견직 장은미의 눈물을 근로 감독관 조진갑의 방식으로 닦아준 것이다. 


양태수로 인해 선생님직을 잃었던 조진갑, 하지만 이제 근로 감독관이 된 조진갑은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운다. 김선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양태수를 천덕구가 주먹을 날려 경찰서로 연행되었을 때도 선생님이던 시절의 분노 대신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양태수의 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 영상이란 딜을 통해 두 제자를 무사히 법의 심판으로 부터 구제하고, 이제 비록 그가 애초에 원했던 원청 폭로는 아니지만, 대신 체불 임금으로 인한 근로 감독으로 그가 하고자 했던 티에스의 손발을 묶는데 성공한다. 주먹을 쥐었지만 그걸 날리는 대신 근로 감독관으로 '준법적 방향'을 택해서 조금은 에둘러가는 길을 택한 조진갑, 한 방의 주먹보다 법이란 효율적인 승부처를 택한 그 싸움의 방식이 주는 '사이다'는 주먹 한 방과는 또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카타르시스를 준다. 

by meditator 2019. 4. 24. 05:59

똑같은 '치매' 노인이라 하더라도 '도시'와 농촌, 그 환경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농촌에 사는 분들의 경우,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공동체에서의 삶과 더불어 평생을 일궈온 '일의 현장'에서의 분리되지 않음이 그들의 치매를 중증으로 악화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도시에서 나이듦이란 평생을 종사해온 업으로부터의 '퇴직'이란 이름의 방출에서 부터 '노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음'이란 삶의 활력소 중 중요한 부분을 잃게 되는데서 오는 '상실감'을 짊어져야 '숙명'을 짊어져야 한다. 바로 그런 '나이듦'의 고민에 대해 '도발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일찌기 가회동 괴짜 할아버지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쓸모 인류; 어른의 쓸모에 대해서 묻다>란 책으로 새로운 '인간형'의 조류를 제시했던, 4월 21일 <sbs스페셜- 가회동 집사 빈센트, 쓸모있게 나이들기>의 빈센트 막시밀리안 리가 그 주인공이다. 

 

 

“집을 디자인하고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1~2년이라면 이후 그 집을 유지하는 시간은 50년이 넘어. 디자인하고 짓는 단계에서 잘만 하면 집은 1백 년도 너끈하게 유지할 수 있지.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보다 지을 때 잘 지어서 오래 사는 게 환경을 위한 일이잖아. 뭐든 한 번 설치해서 영원히 사용하면 공해가 없고 말이야. 친환경 물건을 사고 먹고 쓰는 행위보다 더 사회적이고 실질적인 에코 라이프지-  그림 그룹과의 인터뷰 


100년을 살 집을 가꾸는 68세의 청춘
이제 68세의 우리나라로 치면 '한창 노인'이다. 그런데 쉐다 못해 벗겨진 머리를 뒤로 묶어 꽁지 머리로 만들고, 거기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날마다 다른 색깔의 원색의 옷차림에 컬러플한 고무신을 챙겨신은 그의 몸놀림으로 보자면 350살까지 살 예정인 '한창 청년'이란 그의 말 그대로이다. 

이 '68세 된 청년'의 직업은 '집사'이다. 아내 우노 초이(63)를 모시고 가회동 집을 돌보는 집사, 그의 하루 일과는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굽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달걀, 우유, 물이 1:1:1 비율로 들어간 이른바 '못난이 빵' 팝오버(popover)를 심혈을 기울여 오븐에 구워낸 그는 종을 울려 아내를 깨운다. 맨발의 잠옷 차림으로 홀처럼 뚫린 가회동 집 복도를 걸어나온 아내는 기꺼이 집사 빈센트가 만든 빵의 시식자가 된다. 

가회동 집 바닥에는 그와 아내가 좋아하는 샴페인 브랜드의 꽃인 아네모네와 환대를 뜻하는 파인애플 문양과 '아폴리니아'란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다. 알바니아의 항구 도시 아폴리니아가 멀리 가회동에 와서 집사 빈센트가 만들고 싶은 따뜻한 남쪽 유럽의 도시를 상징하는 집의 이름이 되었다. 

2년 전 미국에서 은퇴한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아내가 이곳에서 한국의 사계절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내와 자신의 친지들의 '소셜 클럽'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집사'의 삶을 자처했다. 그리고 2년 동안 가회동 집을 빌려 지금의 아폴리네아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곳을 그의 손길로 고쳤다. 

"졔 집에 산다는 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주체적 주인으로서 공간을 갖는 거야" -<쓸모인류>


은퇴한 남자가 개조한 집이라 해서 <자연인>에 나오는 그런 투박한 집을 연상하면 오산이다. 겉으로 보면 한옥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견고한 스테인리스 가구에 보랏빛, 핑크색 컬러감이 더해진 이국적 디자인의 모던한 공간, 코넬데 토목 건축과를 졸업한 '공대 출신' 답게 , 하다못해 화분 받침 하나도 cm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밀한 설계도를 통해 '안전'과, '기능성', 거기에 경제성과 아름다움까지 다 갖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집사 빈센트가 2년에 걸쳐 만들어 낸 곳이다. 

 

 


환경적 삶의 실천자 
보랏빛 마감으로 모던한 화장실, 하지만 살펴보면 물때가 끼지 않게 고려된 높이의 장식장과 인체 공학적으로 가장 볼일을 편하게 볼 수 있는 높이에 마련된 변기에서 부터, 볼일을 보는 맞은 편 문을 열면 만나게 되는 호텔처럼 잘 접힌 휴지 걸이까지, '완벽한 배려'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의 집도 아닌 빌린 집, 하지만 그는 '소유'하지 않지만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퇴직', 끝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의 마감일 뿐이라 생각한 그는, 아침의 빵굽기에서 부터 시작하여 아기를 낳는 것 빼고 안하는 것이 없이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밖에서 벌어 쓰는 돈을 '소비'하는 삶을 그 삶에서 누리는 것이 삶의 최선인 양 생각해오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우리 몸의 돈이 '음식'이라던가, 우리 몸을 감싸는 피부가 '집'이니 돌보고 가꿔야 한다던가 심지어 인터넷으로 사면 12000원짜리 화분 받침을 십 여만원을 들여 설계를 하고 발품을 팔아 만드는, 아니 내 집도 아닌 집을 2년에 걸쳐 공을 들여 고쳐 쓰는  그의 삶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고 살아갈 '자본주의적 삶'과는 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도대체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국 대기업 항공업체에 입사, 1980년대 미국에서 인종 차별적 대우를 받던 그는 그런 차별에 항의했다가 강제 퇴직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부터 4년 여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만 했다. 혼자서 지구와 싸우는 것 같던 그 시절을 견디기 위해 그는 처음으로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가는 그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고, 결국 4년만에 승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재산'은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배우면서 내 스스로 내 몸으로 체득해 낸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벌어들인 돈보다 그런 밖의 것이 아닌 오랫동안 내 꺼가 될 '백 배가 아니라 천배'나 더 많고 소중한 재산을 가졌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리고 기꺼이 'just do it!'이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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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隨處作主-서는 자리마다 주인공이 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집사의 삶을 살아가는 그를 도와주는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그의 까다로운 레시피때문에 고전하는 동네 정육점 사장님에게 그가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고, 그의 견고하고 정밀한 장식장을 마련해준 을지로 뒷골목의 기름밥 장인들에게 '친지'같은 예우를 갖춘다. 그들이 그의 소셜 클럽 아폴리네아의 초대 손님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 도시에서 나이듦의 고민은 '치매' 이전에 시간과 일과 그리고 돈이다. 그리고 그건 결국 '자본주의적'으로 늘 내 밖의 무언가를 소비하기를 강제하는 삶의 궤도에 맞춰가야 하는 고민이다. 바로 그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체제에 대해 집사 빈센트의 삶은 '도발'이고 심지어 '혁명'이다.  내 몸이 , 내 몸을 움직여 쌓인 것이 재산이 되어 가는 새로운 시도, 바로 그런 시도를 빈센트는 'just do it'이라 한다. 그리고 그런 빈센트답게 집사 학교에 대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by meditator 2019. 4. 23.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