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500채 이상의 성도 보유하고 있죠.' 2008년 시작한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의 ceo 브라이언 체스키의 자부심넘치는 말이다. 2015년 3월 기준으로 전세계 190개국 3만 4000여개 도시에서 하루 평균 100만 실의 빈방을 여행객에게 연결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6000 여 곳이 등록되어 있다. 이제 어디든 여행을 가면 '에어비엔비'만 있으면 잠 잘 곳 걱정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용하는 그 숙박업소가 되는 집의 주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에어비앤비가 숙박 공유 서비스를 넘어 세계 부동산 시장의 큰 손이라면? 재개발, 철거, 그리고 이제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이런 도시화의 그늘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서 더는 낯선 것이 아니다. 몇 년전 10억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강남 집값이 이제 20억을 호가한다. 그런데 그 문제가 그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전 세계의 도시들이 급등하는 집값에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급등하는 전 세계의 집값에 '검은 손길'이 드리워져 있다면? 바로 이 문제에 대해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가 추적을 한다.
누구를 위해 도시는 존재하는가 전세게를 다니며 다양한 주택 문제를 조사하는 것이 임무인 UN주거보장 특별 보고관 레이라니 파르하는 5월 1일 집세 거부 운동을 조사하기 캐나다 토론토로 향한다. 바퀴벌레와 쥐가 수시로 출몰하고, 수리를 하지 않아 물이 줄줄새는 낡은 집, 하지만 그래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새로 이 건물을 산 집주인은 집세를 대폭 올리며 이들을 내쫓으려 한다. 이곳을 떠나면 더는 이 도시에서 갈 곳이 없다는 사람들은 집세 거부운동을 벌이지만 이에 당국은 '업무 방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한다.
지난 30년간 토론토의 주택 가격이 425% 인상됐다. 그동안 평균 가구 소득은 133%가 올랐을 뿐인데. 정체된 임금, 반면 나날이 치솟는 집값, 부동산 업자들은 낡은 건물을 사들여 리뉴얼된 새 건물을 올리고 집세를 획기적으로 올린다. 가난한 이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허덕이고 중산층들조차 도시에 살 여유가 점점 없어진다.
이게 비단 토론토만의 문제일까? 영화 한편으로 유명해진 도시 영국의 노팅힐,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영화로 인한 유명세보다는 다양한 신념과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친근한 이웃으로 어울려 지낼 수 있었던 가족같은 분위기의 노팅힐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런데 그 사람냄새 나는 노팅힐이 변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 한 곳인 '밸그레이브', 부유한 사람들은 몇 천만 파운드씩을 퍼부어 건물을 사고 그곳을 리뉴얼해서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서 내놓았다. 당연히 높아진 가격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조금씩 노팅힐에서 내쫓기고 이제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80%가 빈 거리가 된 곳 , 지방의회 의원은 당당하게 말한다. '노팅힐에서 살 여력이 없으면 노팅힐에 있으면 안된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라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던 이들이 이제 와서 내쫓겨야 하는 것일까?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라고 다를까? 토론토처럼 수리를 해주지 않은 채 기반이 내려앉아가는 집, 집주인은 어떻게든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한다. 이곳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던 병원은 철거되어 이제 고급 콘도로 거듭났다. 하지만 콘도는 비어있다. 이곳 주민들은 그곳에 살 여력이 없다. 올리브 등 각종 과실 나무가 주렁주렁 열리던 에덴 동산같던 발파라이소는 사라져간다.
뉴욕 할렘가 1700가구가 살던 건물, 건물주가 바뀌자 집세가 900달러나 폭등했다. 안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때문에 소득 대비 90%를 집값으로 내야 했던 입주민들에게 이 놀라운 폭의 집세는 어불성설이다. 아니 연봉 100000달러나 되야 감당할 수 있는 집세다.
스웨덴이라고 다를까. 스웨덴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던 주거 시스템. 하지만 스웨덴이 변했다. 부동산 자본이 스웬덴에 진출하여 스웨덴 저소등층용 주택을 마구 사들였다. 그리고 이를 보수하여 50% 이상의 집세를 인상하여 내놓았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자칭 스웨덴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라는 주부는 더 이상 집세가 올라가는 걸 감당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젖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평번한 가족들이 살던 공영 주택단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라고 다를까.
전세계적인 도시 부동산 급등의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 빈티지 옷가게가 생기고 허름한 옷을 입은 예술가들이 까페에 앉아 예술을 논할 때가 바로 그 동네를 떠날 때라는 우스개 소리는 오늘날 도시가 봉착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빗댄 말이다.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목포의 창성장으로 부터 시작된 목포 도심 재개발로 인해 벌써 목포의 집값이 두 배니 세 배니 하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현실'이 되었으니까. 방송인 홍석천이 나서서 애써보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쓴 경리단 길은 이젠 사람들이 떠난 삭막한 공간으로 전해질 뿐이다.
하지만 컬럼비아 대 세계 도시 이론 연구의 선도자 사스키아 사센은 차라리 그 정도의 초기 젠트리피케이션만 되도 라고 한숨을 내쉰다. 지금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도시 몰락은 보다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 할렘가의 건물을 사들인 회사는 대표적인 부동산 사모 펀드 회사 블랙 스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에어비앤비의 회사명도 등장한다. 2003년부터 쭉 비어 있었다는 런던 벨그레이비어의 고급 주택들. 자산이 된 건물들이 빈채로 묵혀진채 누군가의 자산이 되어 불려지고 있다. 반면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살 집이 없다. 무분별한 투자와 그들이 이용하는 금융 시스템은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법'을 활용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던 도시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렇게 주택에 투자한 부동산 사모 펀드들은 돈이 주택에 묶여 있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자를 끌어들여 자신들이 가진 10000 채의 집을 증권으로 만들어 팔고, 집이 증권이 되는 순간 쉽게 매도할 수 있는 '자본 이익'으로 변신, 1초도 안되는 시간에 35번을 사고 팔 수 있는 '극초단타 매매'의 대상이 되어 오로지 돈벌이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사스키아 사센은 오늘날 금융의 방식은 고전적 은행과 다르다고 안타까워 한다. 자신들의 고정 고객을 위해 봉사한 고전적 은행과 달리, 마치 금광을 채굴하듯 이윤이 되는 것이라면 갖은 수단을 마다하지 않고 팔고자 한다는 것이다. 채굴이 끝나면 폐허가 된 곳을 놔두고 떠나는 금광업자처럼 자신의 이익을 뽑아낸 뒤에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책임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과 달리 오늘날 부동산을 움직이는 금융에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쫓겨나고 있다.
문제는 전세계의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이 현재 217조달러, 이는 전세계의 GDP보다 많은 금액이다. 즉, 이런 자본주의적 문제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1980년대 부터 벌어진 각국 정부와 자본의 이익 간 격차로 인해 정부들의 역할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도대체 그 검은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세계에서 가장 큰 부동산 사모펀드 회사 블랙 스톤의 존 그레이 대표, 금융 위기를 기회로 아주 싼 가격에 단독 주택을 대량으로 사서 수리하여 이윤을 얻었다고 자신의 출발을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스웨덴에서처럼 한 지역을 몽땅 사들여 입주민을 내쫓고 고급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개발 방식,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정부는 손을 놓고 있거나, 외려 '법'적인 절차를 핑계로 압류를 부추기는, 혹은 규제 철폐나 완화 등 법과 제도의 이점을 이용하는 이들의 편에 서시가 십상이다. 더 많은 정보는 부도덕한 엘리트들에게 전해지고, 이들은 부를 창출하는 대신 기존의 부를 빼앗는 방식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한다.
심지어, 마약, 인신 매매 등의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역외 조세 피난처에 만들어진 회사를 통해 전세계 식당, 호텔, 콘도 등 부동산을 통해 되팔며 자연스레 합법적인 자본과 불법적인 자금을 교차시키며 돈 세탁하고 자산을 불려나간다.
어디 불법적인 자본 뿐일까. 아마존, 페북, 넷플릭스 등의 자본이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세금을 덜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에서 정직한 근로자가 60%의 세금을 내는 반면, 조 단위 수익을 내는 회사는 단 4%의 세금을 낸다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 세금을 덜 내는 방식 중의 하나가 바로 '비싼 부동산'이다. 아파트를 사재기 하며 돈을 불리는 부도덕한 방식이야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레토릭'아닌가.
거기에 이런 사모펀드에 출자하는 공공의 자금들도 있다. 부동산 사모펀드의 출처를 찾아 전세계를 유랑한 끝에 도달한 곳은 뜻밖에도 우리나라. 바로 우리나라 연기금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기꺼이 부동산 사모 펀드 등에 투자를 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토론토에서 38년 세를 내며 살아왔던 하지만 이제는 쫓겨나게 생긴 연금 수급자. 그는 자신이 낸 연금을 관리하는 연기금이 자신을 내쫓는 부동산 사모 펀드에 투자된 돈이라는 걸 알까?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까? 전세계를 돌며 부조리한 부동산 자본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은 도시가 되어가는 삶의 터전을 기록했던 레이라니 파르하가 도달한 건 바로 '인권'이다. 도시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 바로 도시가 아니냐고. 그런 의미에서 주거권은 곧 '인권의 문제가 아니냐고. 작은 동네 까페보다 스타벅스만이 북적이는 거리, 우리가 지역에서 쓰는 돈이 우리 지역이 아니라 지역을 넘어선 '자본'으로 흘러가는 것에 무심해 지는 세상. 우리가 살던 그 집의 집세를 올린 주인이 누구일까? 그 무너진 시스템이 만든 검은 돈이 다시 우리의 주거권을 위협하게 된 세상에서, 인권의 차원에서 주거권을 위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함께 힘을 모으자 호소한다.
euthanasia 안락사,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좋은 죽음(ευθανασία )이라는 뜻이다. eidf2019(2019 16회 ebs 국제 다큐 영화제)에 출품된 토마스 크루파 감독의 <우아한 죽음>의 원제 역시 The good death, 안락사를 다룬 작품이다.
안락사,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 혹은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방식이다. 안락사는 그 방식에 따라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더 이상의 의미가 없는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 공급, 약물 투여를 중단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소극적 존엄사, 그리고 안락사를 시행하는 사람이 불치병의 환자 등을 대상으로 환자의 삶을 단축시킬 것을 의도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능동적으로 하는 적극적 안락사로 크게 나뉘어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 혹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만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스위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세계적으로 '불법'으로 다뤄진다. <우아한 죽음>은 바로 이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의 종착역에서 또 하나의 선택지로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 다큐는 설득한다.
주여, 당신의 종을 떠나게 해주옵소서 자넷 버틀린, 1944년 6월 23일생, 2016년 당시 72세였다. 두 번의 결혼, 전세계를 여행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삶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앓았던 근위축증이 그녀를 찾아왔다. 불행히도 이 병은 '유전'이라 그녀는 아들에게도 그 병을 물려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들에게 자식이 없어 더 이상 그 불행한 유전을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근위축증으로 자넷의 어머니는 30년 동안 온종일 의자에 앉아 투병을 하셔야만 했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머니의 고통은 자넷에게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간다. 2년전만 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던 자넷, 이젠 잠자리에서 혼자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는 걸 자넷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목발에 의지해서야 움직일 수 있는 삶,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게 '공허'하다고 판단한 자넷은 자발적인 안락사을 선택한다. 자신에게 의식이 있을 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하겠다는 것.
하지만 자발적인 안락사가 쉬운 길은 아니다. 그녀가 사는 영국은 자발적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지역 보건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영국 현실에서 보건의는 자넷의 결정을 노인성 우울증이라 여기며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 위탁을 하려고 한다.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정신 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해야될지도 모르는 상황, 결국 자넷은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에게 정신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자식들은 엄마의 결정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그녀가 결정을 미룰 것을 종용한다. 딸은 엄마의 결정을 지지하지만 자신의 결혼식까지 미뤄주면 안되겠냐면서 정해지지도 않은 결혼식 핑계를 댄다. 아들과 딸은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려는 그녀와 함께 동행을 핑계로 차를 대절하여 어머니의 맘이 바뀔 계제를 노린다. 우선은 가서 그저 한번 알아만 보자는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요양병원에 있는 남편은 기꺼이 그녀의 선택을 존중, 하지만 눈물로 그들의 이별을 감수한다. 신이 준 생명 자신의 마음대로 끝내는 건 안된다는 사람부터, 늘 그녀에게 의지해왔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을 위해 아들이 사는 미국으로 살러간다는 여러 번의 거짓말까지 그녀가 죽음을 실행에 옮기기 까지 11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결정을 용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려 고통 속에서 계속 삶을 견뎌가는게 용기라며, 자신은 쉬운 길을, 편하게 죽음을 선택한거라고,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낼,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은 인간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렵사리 자넷이 영국을 떠나고 스위스에 도착하여 그녀를 죽음으로 인도해줄 '라이프 서클'의 의사를 만났다. 오랫동안 메일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 왔던 두 사람은 마치 자매처럼, 동지처럼 포옹을 나눈다.
자넷을 죽음으로 인도할 의사는 일주일에 단 2명만 안락사를 시행한다고 한다. 제 아무리 신념에 따라 행하는 일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의 짐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직에 임하는 그녀가 '안락사'라는 '숙명'을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을까.
기독교적 신앙이 투철했던 집안, 하지만 두 번의 뇌졸증으로 더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계속 자살 시도를 했다. 약을 먹고, 기차에 뛰어들었던 아버지, 종교적 신념이 지극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안락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선포했다.
물론 말기암 환자에게 진통제를 통하여 고통을 감소시키듯 '안락사'라는 극단적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병으로 인한 고통조차 신 앞에 인간이 감내해야 할 '시련'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반문한다. 오늘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이 과연 '신'에 의한 것이냐고. 심장 마비로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를 사람을 '소생'시키고 있지 않냐고. 외려 오늘날 인간은 자연스럽게 죽어갈 수도 있는 순간을 '인간'이 만든 기술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그녀와 그녀가 소속된 '라이프 서클'은 스위스를 넘어 더 많은 나라에서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있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안락사가 누구에게나 행해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안락사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왜 자신이 그런 과정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누군가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악화를 막을 방법이 있는 건 아닌지. 재차 확인한다.
딸은 마지막까지 엄마를 설득해 본다. 엄마를 존중하지만 안락사가 아니라도 엄마가 삶의 질을 누리며 투병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한다. 지금이 아니라도 6개월 후에 다시 올 수 있다고 멋진 차를 불러 타고 돌아가자고 제안을 한다.
To be or not to be- 오늘 당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확실합니까 하지만 자넷은 이런 과정이 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듯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담담하게 결론을 내린다. 지난 시간 동안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엄청 애를 써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게 그녀가 도달한 삶의 현실이라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두렵지 않다고. 하지만 죽음 앞에서 그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삶에 대한 열정을 포기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고. 정말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직도 알고 싶은 게 많다고.
오늘 당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확실합니까? 라는 다시금 되물어진 질문, 수면 마취 후 4분 내에 신부전이 올 수 있는 약물을 투입한다. 그리고 '2016년 9월 22일 자넷 버틀리는 운명하셨습니다'.
자넷은 자신의 유골조차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깔끔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지으려 했지만, 그녀를 기리고 싶었던 자식들은 그녀의 유골함을 가지고 가 그녀가 오래도록 애지중지 가꿨던 오래된 정원에 그녀를 뿌린다.
어머니의 죽음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이게 최선일까 의구심은 들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던 아들, 가족 중 한 사람이라고 해서 신념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던 그에게 자신과 같은 병으로 '안락사'를 선택한 어머니의 결정은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재혼으로 인해 오랫동안 어머니와 적조했던, 그러나 바로 그 어머니에게서 근위축증을 물려받은 아들은 스스로 근위축증 실험실을 만들었다. 1A형 지대형 근위축증, 근막을 지탱해줄 단백질이 손상되며 근육이 점점 무력해지는 이 불치병,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 그의 실험을 시작으로 뱀독과 같은 카디오 톡신을 주입하여 근육 재생 능력을 재생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아들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회로 지난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재건'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성화 봉송은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직선 거리로 20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출발하며, 60km 떨어진 여전히 방사능 오염된 흙이 쌓여있는 이즈마 야구장에서 야구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원전 사고로 인해 고향을 떠난 주민들에게 '부흥'을 내세우며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있다. 지난 2014년 3월 10일 cbs는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를 통해 아직 끝나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선견지명'을 밝힌 바있다. 과연 '후쿠시마'는 '재건'되었을까?
후쿠시마는 끝나지 않았다. 2011년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강진과 대형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제 1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원자력 사고 등급은 레벨 7,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중 가장 위험한 단계로 1986년 발생한 소련 체르노빌 사고와 동일한 등급이다. 사고 후 요오드, 세슘 등 다양한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었다, 4월 후쿠시마 토양에서는 골수암을 일으키는 스트론튬이 검출되는 등 토양 오염이 진행되었고, 많은 양의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었으며, 편서풍을 타고 전세계로 확산, 특히 주변국인 우리나라, 중국 등에는 직접적인 피해 사례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3년 일본 정부가 자신하고 있는 '복구'는 얼마나 진행되었나? 그걸 알아보기 위해, 다큐 제작진은 미야기현 현청 소재지인 센다이 미야쿠지 마을을 찾았다. 아직도 곳곳에서 발견된 처참한 흔적, 지난 1월부터 복귀가 시작되었지만 한쪽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파손된 집을 수리하는 등 어수선한 상태이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후네히키씨, 사고가 나자 허겁지겁 남편과 아들을 남겨둔 채 며느리, 손자들과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잠시 떠나있으면 될 줄 알았던 피난 생활은 무려 3년이나 이어지고 피난 떠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인형' 등을 만들며 지내지 않았더라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 그래서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이든 그녀야 평생 살아온 곳이라 다시 돌아왔지만 앞날이 창창한 젊은 손자들은 차마 같이 올 수 없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독려, 심지어 지원을 끊는 등의 강제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30%의 주민들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아직은 어수선한 미야쿠지 마을, 돌아온 학생들도 야외 활동을 할 수 없어 놀이터의 그네는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했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 학교는 생기를 잃었다.
이곳에서 측정해본 대기 중 방사능은 0.17μ㏜도쿄와 비슷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될까? 땅속 방사능은 대기와 달리 수치가 높았다. 0.5~0.6까지도 이르렀다. 평균 0.359μ㏜, 이 정도량이라면 일년 기준으로는 3.1m㏜에 이른다.(1m㏜ =1,000μ㏜) 연간 자연에 존재하는 방사능 기준량이 2.4m㏜라고 했을 때 높은 수치이다.
적은 방사능이라도 누적되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암 발생은 정확하게 피폭량에 정비례한다는 거이다. 안전기준치를 내세우지만, 전문가들은 피폭량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전 사고후 일본 정부의 복구에 대한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심상치않다.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에서 진료를 맡아오 요시히코 스기이 씨에 따르면 미성년자 중 갑상선암 환자가 수백 배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평균 100명 당 한 명이어야 할 갑상선암 환자가 36만 명 당 200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에 카리야 테츠라는 일본의 인기 만화가가 그의 작품 <맛의 달인>을 통해 후쿠시마를 취재했던 주인공이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묘사하며 '나는 결단코 현재의 후쿠시마에는 사람이 살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등 의식있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후쿠시마의 위험성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입장을 달리한다. 5m㏜ 이상의 방사능이 측정되는 곳에는 일반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반면, 그외의 지역에 대해서는안전하며 사람이 충분히 살 수 있다며 이주를 서두르고 있다. 세금의 감소와 산업 쇠퇴라는 지자체의 위기에 대한 두 가지 트랙의 정책적 접근 방식이다.
재건의 와중에 있는 미나미소마시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지역에 공영 주택 건설이 한창이다. 하지만 시내를 벗어나면 시 전역에서 여전히 방사능 제거 작업이 한창이다. 흘가, 나무, 돌, 풀 등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다. 안전한 상태가 될 때까지 30년 동안 안전하게 격리 보관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공기, 땅. 지하수 등 그 대상이 한정이 없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은 주민들 주거지와 주거지 근처 20km 이내로 한정되어 있다. 산림 등 그외 지역은 방치되어 있다. 비라도 내린다면, 바람이 분다면 그곳의 방사능은 언제나 도시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후쿠시마 인근의 또 다른 지역 이바라키 현 등 후쿠시마로부터 반경 200~300 km에 이르는 광번위한 15개 지역에서 15세 미만 아동 85명 중 58명에게서 세슘-137이 검출되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세슘-133과는 다른 방사능을 내뿜는 물질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아이들이 결국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음식 등을 통해 '내부 피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을 일본 전역의 70%가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미나미소마시 등에서는 무료 방사능 측정소를 마련하고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정도를 상시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후쿠시마 주변 농산물 6172건 중 588건, 약 9.7%가 방사능 오염 수치를 넘고 있다. 특히나, 사람들의 적극적인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곳에서 자라난 버섯, 산나물, 야생 죽순 등의 오염 사례는 심각하다.
후쿠시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방사능 오염이 일본 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문제가 전세계적 관심 거리가 되고 있는 가운데,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명의 여파는 저 멀리 캐나다까지 영향을 미친다.
캐나다 밴쿠버 스티브스톤 해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바다 표범이 괴사했다. 미역과 물고기에서 5배가 넘는 세슘이 검출되었다. 일본에서 수천 km난 떨어진 캐나다 해안, 하지만 후쿠시마의 수증기가 제트스트림을 타고 밴쿠버 해안에 이르러 비를 통해 이곳 해조류와 바다 생물들을 방사능 물질로 오염시켜버린 것이다.
캐나다조차 안전지대가 아니라면, 당연히 질문은 우리에게로 향한다. 더구나 일본은 스트론튬이 포함된 원전 오염수를 사고 초기 대량 배출 이후 저지대에 위치한 특성으로 인해 오염수들이 계속 축적되어 온 상황,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 100만톤을 태평양에 방류하려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런 경우 한국이 가장 위험할 것이다라는 예고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시켰던 48기의 원전을 재가동시켰다. 당장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기 부족을 겪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이라고 다를까.
필요악 원전? 원전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원전 사고에 대해 '확률은 적더라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명제를 들며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관계 기관에서는 수소발생 억제기, 피동형 방수문 설치 등 시스템 안전에 대해 보다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장담하지만 지금도 한 달에 한번 꼴로 멈추거나, 폭우로 가동 중단 사태가 빚어지는 원전은 등에 진 화약고처럼 시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불안한 건 설계 수명을 넘긴 노후 원전이다. 후쿠시마 제 1원전이 그랬듯이 고리, 월성의 원전도 설계 수명을 넘어 가동되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 '움직이는 탈핵학교'는 여성과 어린이에 더 많은 피해를 주는 원전, 그 중에서도 수명을 다한 원전의 폐쇄를 주장한다.
딸을 둔 엄마인 전선경 씨는 늘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다닌다. 가는 곳곳마다 측정기를 대보는 엄마, 또한 방사능의 위험을 알리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3아이의 엄마인 손수련씨는 엄마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걱정되는 음식을 안먹다는 소극적 자세를 넘어 방사능에 대한 적극적 대책을 위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이다.
노동 환경 건강 연구소가 운영하는 녹색 병원에서는 식품의 방사능 잔류치를 검사하고 있다. 식약처에서는 1베크렐(bq) 미만을 방사능 오염의 기준치로 잡고 있지만 식약처의 검사 과정은 시간이 너무 짧아 정확한 피폭량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0건을 검사했을 때 식약처가 0건인데 비해, 녹색 병원이 7건의 방사능 오염이 나왔듯이 민간 연구소의 검사 결과는 정부의 발표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에서는 권고치, 기준치 아래라면 문제가 될 것 없다지만, 시민들과 민간 연구소에서는 잔류 검사 기준을 강화하고 정확한 수치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쿠시마 방사능과 관련하여 대표적 위험 물질로 대두된 세슘의 경우 전체 방사능 중 1%도 안되는 비중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저 권고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발표는 결코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천시, 세종시 등은 이런 시민들의 고양된 원전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여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 등의 도시도 준비 중이다. 반면, 삼척처럼 원전 예정 지역의 시민들은 한숨이 깊어만 간다. 뜨거운 논란과 갈등에 휩싸이고 있다. 원전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재앙은 후쿠시마에서 보여지듯이 도시 전체의 생존은 물론, 한 개인의 생명과 삶을 송두리채 날려버릴 만큼 심각하다는 것에 대해 누구라도 핑계를 댈 수 없는 상황, 더구나 선정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이의 제기가 있으면서 지난 2014년 주민 투표에서 83%의 주민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새로 짓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6대 원전 국가이다. 그런데 전체 원전 개수로 보면 6위이지만 원전 밀집도로 보면 1위의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원전 국가이다. 심지어 원전을 수출까지 한다.더구나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본, 중국 등 역시 원전 의존도가 높은 국가, 이 아시아 3국만으로 보면 '화약고'가 따로 없다.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은 '필요악'이라 여겨진다. 독일 등 유럽을 중심으로 원자력에서 탈히하기 위한 노력이 개진되고 있는 상황, 우리나라 역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은 높아가지만 어느덧 여름철 에어컨이 '상비'가 된 것처럼 전력 에너지에 의존한 우리의 삶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듯 뽀족한 대책 마련이 아쉽다.
왓쳐가 마무리됐다.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과 다른 한상운 작가가 집필했지만, 검찰 내부 비리를 다뤘던 <비밀의 숲>에 이어 경찰 내부 비리를 다룬 <왓쳐>로 안길호 피디는 '권력형 비리' 2부작을 완성했다. 아니, 그냥 완성이 아니라, 2017년 최고의 드라마가 <비밀의 숲>이었듯, <왓쳐>는 아마도 별 다른 이변이 없는 한 2019년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될 듯하니 이 쯤이면 '명작 제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비밀의 숲>만한 드라마가 나올까싶었는데 <왓쳐>는 <비밀의 숲>만하게 시작해서 <비밀의 숲>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로 마무리되며 재밌고 좋은 드라마를 찾던 시청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퇴장을 했다. 무엇보다 2019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초상을 그려내며 당대성을 담보해냈다는 점에서 <왓쳐>는 장르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의란 무엇인가 2011년 우리나라는 '정의' 열풍에 휩싸였었다. 하버드 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과 함께 ebs에서 강의를 하며 그 어려운 철학 강의가 열렬한 국민적 이슈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 대통령 시절 사람들은 경제적인 각종 악재,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정치적 절망을 겪으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포기할 수 없었던 '희망'의 끈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우리는 다시 <왓쳐>를 통해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16부로 마무리된 <왓쳐>에서 최종 빌런이었던 박진우(주진모 분) 세양지방 경찰청 차장이었다. 도치광의 감찰 비리반을 유일하게 비호해 주었던 사람, 그럼에도 그는 동료 경찰들의 '비리'를 캐고 다니는 도치광에게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며 질문을 던진다. 같은 정의인데도 2011년의 정의와 2019년의 정의는 어쩐지 뉘앙스가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뉘앙스, 2011년에 열광했던 정의가 퇴색한 모습이야 말로 <왓쳐>가 주목한 이 시대의,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이다.
시작은 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2살이었던 김영군(서강준 분),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세양지방 경찰청 형사였던 그의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아들인 영군의 증언이 유력하게 채택되며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 바로 후배였던 도치광(한석규 분)가 김재명이 살인범일 거라며 조작했던 피묻은 잠바가 그런 그의 범죄를 확증시켰다.
15년 후,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진 그 사건에서 아버지가 범인이라 증언했던 영군은 교통계 순경이 되었다. '아무도 못믿으니까 경찰이 적성이죠'라는 영군은 15년 그 사건에서 정말 자신이 봤다고 했던 것이 진실인지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게 맞는지를 그 진실을 찾아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영군의 앞에 아버지의 후배이자 그를 감옥으로 보낸 도치광이 비리 감찰팀의 팀장으로 영군을 스카웃한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물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한 경찰 내 사조직 킬러를 잡기 위해 한때는 영군을 독려해 김재명을 살인죄로 기소한 검사였던 변호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합류한다. 영군도 그렇지만, 한태주도, 그리고 도치광도 15년 전 그 사건의 진범이 과연 김재명이었을까란 의심으로 부터 출발한다.
교통계 순경 영군의 눈에 우연히 띈 유괴범 손병길로 부터 시작된 사건은 장기 매매 사건으로 이 사건은 다시 선일 암매장 사건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결국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그들의 앞잡이 거북이를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비리 감찰반 세 사람 도치광, 한태주, 김영군이 얽힌 15년전 영군 어머니를 아버지 김재명이 죽였다는 사건이 있다. 각자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세 사람, 그런 그들에게,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거북이를 밝히려 드는 감찰반장 도치광에게 묻는다. '정의'가 무엇이냐고.
박진우가 묻는 의미는 그렇다. 지금 네가 '정의'를 운운하며 경찰을 털려고 다니는데 결국 그 니가 말하는 정의가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이고, 어쩌면 진짜 '정의'를 위해 했을 지도 모를 경찰들의 일을 방해하는 일 일 수도 있다고. 그런 박진우의 질문에 도치광은 이른바 '썩소'를 날린다. 그리고 반문한다. '정의? 그리고 난 정의 그런 거 몰라요. 그저 나쁜 경찰을 잡을 뿐이예요'라고 답한다. 2011년에 마이클 샌델에 열광했던 그 '정의'는 분명 '옳바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19년에 오니, 그 '정의'와 '나쁜 경찰을 잡는 옳은 일'사이의 간극이 생겼다.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들의 모임, 소년 장사를 의미하는 '장사회'였을 거라던 경찰내 사조직은 알고보니 안되면 '장사나 해야겠다'던 자조적 의미의 사조직이었다. 경찰대 출신은 맞다. 김영군의 아버지 김재명이 자신들이 애써 붙잡아 넣어도 각종 '선'을 타고 손쉽게 혹은 가볍게 감옥문을 빠져나오는 흉악범들을 '사적'으로 손봐주기 위해 혹은, 수사를 '편의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 만든 사조직이 바로 '장사회'였다.
분명 시작은 명분 상으로는 법으로 해결될 수없는, 아니 '만족'할 수 없는 '정의'였다. 하지만 그 '편의적 정의'는 칼자루를 쥐며 날개를 달자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북이'라는 킬러까지 움직이며 검경을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커넥션으로 덩치를 불려간다. 단지 이권만이었을까, 경찰대 출신의 똘똘한 광수대 엘리트 형사가 거북이가 된 게. 장해룡이야 자기 딸을 그렇게 만든 흉악범에 대한 사적 복수로 그렇게 됐다지만 그 뿐이었을까. 많은 경찰들이, 그리고 검찰들이 '정의'라는 편의적 명제 앞에 자신들을 합리화하며 야망과 이권을 누리기 위해 모여든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의'는 그들이 쓰는 '조자룡의 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칼에 장사회를 만든 장본인 김재명은 아내를 잃고 결국 자기 자신도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제 15년이 지나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감찰 비리반의 '수사대상'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장사회의 보스입네 하게 된 박진우의 입에서 '정의'라 흘러나오는 시절이 되었다. 그렇게 '정의'는 퇴락되어 간 것이다. 마치 2019년 우리 시대 부도덕한 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의'처럼.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한태주 변호사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던 거북이가 던진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거북이를 찾는 유일한 단서로 여겼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손가락을 자르며 살인을 즐기는 킬러의 정의, 그런 킬러를 운용하는, 그럼에도 '정의'를 운운하는 집단의 '인간다움'을 역설적으로 드라마는 집요하게 묻는다. 그런데 그 질문을 만든 당사자 박진우가 내린 답은 어이없다. '인간다움'이란 추상적 명제 앞에서 당황하는 피해자들, 결국 '대의명분' 앞에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그 인간적 허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박진우의 역설적 인간다움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떠도는 '정의'라거나, '인간다움'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가지는 허상의 배를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왓쳐> 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정의내릴 수 없는 인간다움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물론 궁극적을 지은이가 추구하는 '정의의 한 계파'에로의 결론을 유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정의론이 등장한다. 달려오는 열차, 철로 위에 사람, 과연 그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기차에 탄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무수한 딜레마의 서사가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그렇듯 <왓쳐>의 묘미는 바로 그런 '딜레마'를 가진 인간다움이다.
시작은 자기 딸의 손가락을 절단한 범인에 대한 사적 복수심이었으나 어느덧 괴물 거북이가 되어버린 장해룡, 사건 수사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사조직이었으나 괴물이 되어버린 조직 앞에 자신과 가족을 빼앗겨 버린 김재명, 순경 출신이라는 컴플렉스가 사조직 장사회를 통해 거침없는 야욕으로 돌변해 버린 박진우,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타협하곤 하는 도치광,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아니 자신의 인간다움을 짓밟아버린 범인을 찾기 위해 결정적 순간 자기 편을 배신할 수 있는 한태주까지 <왓쳐>는 명분을 그럴듯하게 내밀지만 저마다 딜레마를 가진 인간들의 전시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대론이기도 하다. 시작은 '정의'로우려 했지만 어느덧 자신들의 편의적 '정의'와 야욕, 야망으로 인해 '수사' 대상이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 바로 <왓쳐>는 젊은 영군 앞에 거침없이 까발려져 버린 어느 덧 아버지가 되어버린 세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영군이 젊은 거북이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 도치광과 한태주가 그 손을 잡듯이 너는 그러지 말라고, 우리처럼 편의적 정의에 물들지 말라고 경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밀의 숲>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정의'를 실천했던 이창준(유재명 분)이 자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지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스스로 단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한 세대를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왓쳐>는 시즌2를 염두에 둔 탓일 수도 있지만, 젊은 거북이였던 형사의 병실을 찾는 거북이를 등장시키며 경찰 내 비리 조직의 여운을 남긴다. 아니 무엇보다, 나쁜 형사만을 잡는다던 도치광이 감찰 비리반의 존속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염동숙 청장의 박진우 차장 살해 교사와 협상했음을 밝히면서 아직 그 '부정의'의 정의를 부르짖는 세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쉽게 끝나지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며 경계심을 촉구한다.
마지막 자신의 협잡을 눈치챈 영군에게 도치광은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영군에게 너는? 하고 묻는다. 그러자 영군은 그런 도치광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왓쳐'다. 퇴락해가지만 그러지 않으려 애쓰겠다는 정의의 세대, 그 세대를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는 영군의 세대, 그렇게 왓쳐는 2019 정의의 경계, 세대의 경계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풀어냈다. 한상훈 작가와 안길호 피디가 만든 이 세대론의 얼개 위에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단 건 다름 아닌 명불허전 한석규를 비롯하여, 김현주, 서강준 등의 배우들이었다. 드라마의 시대는 갔다지만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울리는 걸 드라마만큼 잘해낼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라는 걸 왓쳐는 스스로 증명해 냈다.
'결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성인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결합? 하지만, 이 이상적인 문구는 각 사회가 처한 '근대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만 해도 결혼은 젊은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이라 하지만, 결혼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력이나 서로의 집안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는 세계적 기준에 따르면 '불완전한' 자유 결혼'이라 평해진다. 아직까지도 자유 의지보다는 '조건'이나 '환경'이 우선하는 결혼 제도이기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결혼으로부터 자유롭고싶다는 '비혼 선언'이 등장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국가, 거기에 각 지역별로 사회, 문화적 발전의 불균등한 격차가 사회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은 어떤 고민을 겪고 있을까? 16, 7살만 되면 가족이 남편감을 찾는 유대교 전통의 압박이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쇼쉬 슐람, 힐라 메달리아 감독이 살펴본 동시대 중국의 여성들의 모습은 근대를 삶으로 겪어내야하는 여성들의 '동병상련'을 담고 있다.
성뉘; 잉여 여성 국가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1980년대 이래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해왔던 중국 정부(인구 감소에 따라 2013년 폐지), 여전히 전통적 '남아 중심 사상'이 지배한 중국 사회였기에 중국 전체 인구 비율 상 남성 인구가 3천 만명이 더 많다. 당연히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남녀의 비율이 맞지 않는 상황, 그래서 중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20대, 특히 27세 이전에 결혼할 것을 강권한다.
하지만 2012년 기준, 유엔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27~29세의 여성 중 4명 중 한 명이 미혼이며 이 추세는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 중국 정부는 이렇게 결혼하지 않는 고학력의 이른바 '골드 미스'들을 '성뉘; 잉여 여성'이라 낮잡아 부르며 국가적으로 결혼 제도 속에 편입하기 위해 '압박'하고 있다. <위기의 30대 여자들>은 이렇게 본의 아니게 '성뉘'가 되어버린 세 여성 추화메이. 쉬민, 가이치의 이야기를 다룬다.
34살 변호사가 '불리한 조건'? 결혼 중매 회사를 찾은 34살의 변호사 추화메이, 자신의 일을 존중해 주며 집안 일도 같이 해주는 남자를 찾는다는 자신의 조건을 내세우자, 중매 회사 관계자가 난색을 표한다. 34살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거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성격이 강해보이게 만들어', 좋은 조건이 아니라며 그녀의 눈높이를 낮출 것을 요구한다.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서 열린 부모들의 중매 시장을 찾은 그녀, 변호사라는 그녀의 직업에 남자 측의 어머니는 그녀가 법으로 자신의 가족을 해꼬지 할 수도 있다며 말도 못붙이게 한다.
베이징에서 차로 4~5시간 거리에 있는 산둥성의 추화메이의 집, 집에 오자마자 가족들은 '괜찮은 남자 찾았니?' 라며 그녀의 결혼 걱정에 한숨이 늘어진다. 법에 따라 20대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싫다며 먼저 결혼해서 좋냐고 언니들에게 물어보지만, 결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때가 되서 하는 거라며 가방끈이 길어 눈만 높아졌다며 외려 퉁바리를 준다. 심지어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학비까지 대줬더니 동네 사람들에게 딸 시집 못보낸 집안이라 손가락질 받게 생겼다며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바보라며 온가족이 닥달을 해댄다. 결국 눈문을 흘리고야 마는 추이메이.
결국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중매 회사를 찾은 추이메이, 같은 고향 출신의 괜찮은 조건의 남자를 만났지만, 이 남자 대놓고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산둥성의 전통을 따르겠다며 법적인 부분에서는 그녀의 조언을 따르겠지만 주도권은 자기가 쥐어야겠다며 당당하게 말해 추이메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혹시나 너무 늦은 결혼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할까 하는 우려에 산부인과를 찾은 추이메이, 35살 이상이면 노산이며 자궁 내막이 건강하지 않아 기형아 출생율이 5배나 높다며 겁을 주던 의사는 정작 정자를 보관해 주는 정자 은행은 있지만 난자를 냉동시켜 보관해 주는 난자 은행은 태국이나 미국에 가서 알아보란다.
28인데 노처녀? 베이징의 매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쉬민은 이제 28살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밸런타인 데이트 이벤트에 참석하는 그녀에게 결혼, 그리고 결혼할 남자에 대한 생각은 아직 이상적이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그녀, 하지만 고학력에 베이징에 살아야 하며, 공무원이나 엔지니어, IT계열에, 집도 가져야 하고, 키는 175 이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등 점점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조건이 그저 쉬민만의 생각이 아니다. 밸런타인 데이트에서 공무원이라는 남자를 만나서 설레이며 돌아온 집,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부모님, 특히 엄마는 속을 수도 있다면 까다롭게 따진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8살인데 늦었다며 초조해 하시면서도 무남독녀인 그녀가 남자를 만날 때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끄집어 내며 연애의 장애물이 되어왔다. 좋아해서 만나다 엄마가 반대해서 결국 계속 만나지 못했던 경우마저 있었다.
그렇게 사사건건 반대를 하며 트집을 잡는 엄마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힘들어 하던 쉬민은 결국 어머니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어머니 역시 맨날 성화인 할머니 때문에 비슷한 집안의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된 케이스, 엄마 때문에 남자 만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는 쉬민에게 엄마는 집도 사줬는데 이제 와서 엄마를 무시한다며 외려 서운해 하신다. 독립적인 성숙한 여성으로 자기 삶의 파트너를 선택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나이 28살이다.
결혼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 가이치는 36살의 영어 강사이다. 지식인 가정에 태어난 그녀, 하지만 47살에 파킨슨 병을 앓기 시작한 아버지로 인해 배우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집안이 번듯하지 않아서 그녀의 결혼에 장애물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도 결혼에 성공했다. 그 모든 악조건에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연하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의지할 수 있는 연상의 안정적인 남자가 좋다지만 그녀는 웃고만다.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광저우 대학으로 옮긴 그녀 학생들과 함께 페미니즘 영화를 보고 페미니즘과 결혼이 공존할 수 있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자신의 바뀐 결혼관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힌다.
20대에는 집있는 남자를 바랬다는 가이치, 아버지가 아프실 때는 그런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바랬었다고. 서른 살이 넘어가고 그녀가 바라던 조건의 남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미혼으로 살아갈 것인가 타협점을 찾을 것인가 고민하고.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괜찮은 연하남.
결혼 후 광저우 대학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그녀에게 아이를 낳고 싶어하던 남편은 광저우가 생활비가 적게 들어 아이 키우기에 적당할 것같다며 이직을 권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던 그녀, 이제 남편의 바램에 따라 아이를 낳고 광저우에서 직장도 구했는데, 그녀는 말한다. 재미로 따지면 결혼 전 인생이 재밌었다. 하지만 결혼 후 인생은 재밌지는 않지만 더 많은 행복감을 준다고. 결혼도 하고 자신의 삶도 누리기 위해서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결혼을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하남과의 안정적인 결혼에 성공한 가이치,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추이메이는 프랑스로의 유학을 선택한다. 결혼에 대한 편견을 전족에 빗대는 추이메이, 포부가 작은 여자는 작은 발를 가진 여자처럼 전족같은 결혼에 맞춰 살아갈 수 있지만, 큰 발처럼 자기 인생에 대한 포부가 큰 그녀는 이 나라의 결혼 제도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망망대해 거세게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홀로 맞서는 처지. 노처녀란 단어에 발목잡히고 싶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밀려오는 사회적 편견의 파도는 그녀를 질식할 것같이 만든다고 토로한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그녀는 이 나라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을 안한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녀가 아들이 없으면 무시당하던 시대를 살아왔던 자신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며 자랑스럽다며 손을 잡는다. 고향을 떠나며 아버지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추이메이, 그녀는 비록 떠돌겠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위기의 30대 여자들> 속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인 중국 여성들의 모습은 불과 한 몇 십년전 우리 여성들의 복사판같다. 아니 몇 십년 전이라 예단할 수 있을까? 노처녀라는 낙인을 피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추이메이나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져오는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비혼'을 선언하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처지는 나라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그 속에 담긴 '압박'에 대한 저항은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최근 등장한 '취집'과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쉬민이 무에 그리 다를까. 행복한 결혼을 위해 '포기'해야할 것이 있다는 가이치의 토로에 가장 공감할 사람은 우리의 '직장맘'이 아닐까. 나라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문화적 상황에 맞춰 여성들의 삶은 재단되고, 그 재단된 삶을 향해 여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뇌하고 싸운다.
<60일, 지정생존자>가 종영했다. 1회 3.383%에서 시작하여 15회 5.434%, 동시간대 공중파, 케이블 시청률 1위를 수성하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한 셈이다. 특히 최근 부진했던 tvn 드라마의 주중 성적으로 치면 발군이다. 더구나 모아니면 도라 할 수 있는 외국 드라마의 번안 실정에서 <60일, 지정 생존자>는 성공적인 '각색'의 한 사례로 기억될만하다. 과연 <60일, 지정생존자>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60일, 대통령 권한 대행 무엇보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이야기의 변주를 들 수 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지정 생존자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를 수행하도록 한다. 또한 이를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을 경우, 유사 시에 대비하여 각료 중 한 사람을 '지정 생존자'가 될 수 있도록 안전 시설에서 대비하도록 한다. 바로 이런 미국 특유의 정치적 위기 관리 해법을 모티브로 하여 넷플릭스의 <지정생존자>가 만들어 졌다. 그리고 이 미드 <지정생존자>는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로 와서, 대통령 유고시 승계자는 '권한 대행'이 되어 다음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는 60일 이내까지 대통령 직을 수행하도록 하는 설정이 되어 <60일, 지정 생존자>가 탄생되었다.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60일, 대통령 권한 대행이다.
즉, 미드 <지정 생존자> 속 대통령이 된 톰 커크먼은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으로서, 그에게 맡겨진 선출직 국가 원수로서의 '정치적 권위'를 어떻게 '달성'해가는가라는, 미국적 정치 제도 속 딜레마를 안게 된 최하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의 정치적 성장 서사이다. 반면,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 분)은 환경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소신에 따라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던질 만큼 '정치인' , 혹은 '각료'라기 보다는 '학자', 혹은 한주승 비서실장의 말처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기꺼이 자신의 학문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관철되지 않자 정치를 '이반'했던 '자연인'이었던 '개인' 박무진이 본의 아니게 국회 의사당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의 '유고'로 인해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에 떠밀려 앉게 되면서 <60일, 지정생존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 속 자주 비춰지는 그의 신발처럼, 대통령에 의해 억지로 신겨졌던 구두를 자유롭게 벗어던졌던 그가 다시 그 맞지 않는 구두를 꾸역꾸역 신어야 하는 '거북함', 불편함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하지만 어색함과 낯섬도 잠시 대통령이 '부재'한 분단 사회에 휘몰아치는 위기의 상황들에 권한 대행 박무진을 던져넣고 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고'된 양진만 대통령과 그의 정부이다. '민주'적 정부를 표방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의 민주적인 원칙과 의지는 '정치적' 과정 속에서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점점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서 '소신'은 커녕 위태로운 처지에 빠지게 된 양진만 정부,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테러는 안그래도 취약했던 정부, 정권 자체를 흔드는 야당, 군부 세력들의 '난립'으로 이어진다.
서울 시장을 이 틈을 타서 자신의 선거 운동을 노골적으로 하기 위해 귀화한 북한 동포들을 이용하여 사회적 분열을 획책하고, 군은 '평화' 정책을 추진했던 양진만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국회 의사당 테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은 대중의 영웅이 되어 청와대를 향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언론은 사건에 따라 안그래도 취약한 권한 대행의 청와대를 흔들고, 테러와의 공모 여부로 박무진은 점점 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박무진이 청와대 참모들을 믿을 수 없는 만큼, 청와대 참모들 역시 한낮 학자 나부랭이였던 박무진의 '권한 대행' 능력을 신뢰할 수 없어 한다.
또 한 사람의 영웅 대통령? 드라마는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정치를 지향했던 양진만 정부의 무기력함으로 시작하여, 테러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권한 대행이 된 박무진을 통해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인 듯 드라마를 연다. 실패한 '영웅'의 세계에 나타난 또 한 사람의 '영웅' 서사인가? 말이 삼권분립이지 사실상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제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메시아'와 같은 '희망'의 기대주였었다. 그리고 <60일, 지정생존자>도 다시 그 익숙한 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또 한 사람의 '좋은 메시아'의 도래를 선도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저 다른 정치적 조건, 제도에서 잉태된 한국적인 <60일, 지정생존자>라는 변주된 드라마를 넘어 원작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하며 드라마는 구태의연한 정치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2019년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정치'의 의미를 묻는다.
그 시작은 뜻밖에도 그가 '사표'를 던지게 된 그 사건으로부터 비롯된다. 미국과의 조약 과정에서 미국 측의 압박으로 인해 불리한 처지에 놓인 상황을 박무진은 환경학자로서 데이터를 제시하며 미국측을 수세로 몰아넣으며 회담 자체를 유리하게 끌고간다. 바로 그런 그의 '학자적 접근'은 북한 잠수함의 출몰로 군부의 무력 시위를 앞세운 군사적 충돌 상황을 다시 한번 '데이터'를 통한 접근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즉, 청와대 비서진들조차 '우리 진영'의 논리에 빠져 박무진에 대한 믿음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사실'에 근거한 설득으로 도발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박무진은 양진만 정부의 일원이었지만, 기꺼이 그 정부에게 사표를 내던질 만큼 학자적 양심이 우선한 사람이었고,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를 내던질 위기에서 한주승 비서실장의 '시민'의 권리라는 설득으로 물러서게 되는 '개인'이었다. 그에게는 소속된 '진영'이 의미가 없었고, 그가 권한 대행의 자리에서 내리는 결정은 양심적인 민주 시민으로서의 고뇌에서 비롯된 결정인 것이다.
고뇌하는 시민, 그가 잉태한 좋은 정치 그래서 드라마 속 박무진은 늘 고뇌한다. 매회 그, 그가 대행하고 있는 60일 한정의 정부를 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그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최선을 길을 찾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그래서 차영진(손석구 분)의 말처럼 기존의 정치가 해왔던 이분법적인 결정이 아닌 뜻밖의 결정을 통해 '정치'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간다. 그리고 그 길은 차별 금지법이라는 정치적 승부수조차 뒤로 미루며, 아니 이벤트가 아닌 진짜 차별 금지법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적 성장의 길로 나선다.
그런 그의 결심은 마지막 회 가장 큰 위기를 겪는다. 바로 때로는 그를 멀리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의지했던 양진만 정부의 핵심이었던 한주승 비서실장이 테러의 배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원작과 달리, <60일, 지정생존자>의 대통령 권한 대행 박무진은 자신이 괴물이 될 테니 당신은 앞서 좋은 정치를 해달라는 한주승 비서실장의 협박인지 선언인지 모를 유혹을 딛고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는 것으로 그의 정치를 완성한다.
16부의 장정 속에서 박무진의 정치는 늘 그와 다른 길을 걷는 세력들에 의해 '시험'받는다. 한반도의 위기 속에 군사적 실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군부 등 군사적 세력에 의해, 도덕적인 해결보다는 정치적 수를 우선하는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야당 , 언론들에게, 그리고 자신을 버린 국가에 대항하여 테러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으며 대중을 선동하여 정권을 잡으려 했던 오영석 등의 테러 집단에 의해,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민주적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양진만 정부의 실세였던 한주승 실장이 자신들의 정치가 외면받자 테러로 양진만 정부를 전복하고 테러 적극 가담자인 오영석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정치적 '혁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수단'을 불사하고 대중을 자의적으로 도모하고 이용하고자 했다는 것. 그런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정치적 방식에 대해 박무진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어느 편이 아닌 '민주' 사회의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의 새 길을 터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2019년 여전히 새롭지 않은 정치의 세상에서 매우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접하고 논하게 만든다. 그의 옮음은 이미 어느 편이라 완성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그래서 늘 그를 위태롭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흔들었지만, 그래서 그는 쉽게 어느 편에 서는 대신, 원칙적으로 할 수 있었다. 또한 어느 편이 아니었기에 야당의 대표라도, 그가 사퇴시킨 전직 참모 총장이라도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유연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지지율조차 야당 대표보다 10%가 넘게 이긴 상황, 이제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만 하면 대통령 자리가 굴러들어올 수 있는 상황, 이제 다시 그가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수 있다는 한주승 실장의 설득 아닌 설득에, 박무진은 민주주의가 괴물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 가는 시스템임을 선언한다. 옳다고 믿는 자기 도취의 어떤 집단에 의한 전횡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 도달해 나갈 실패와 실수의 과정이라는 '희망'을 열어준다.
미 메릴랜드 대학교의 국제 개발과 분쟁관리 연구소에 따르면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는 88개국이다. 그리고 그 중에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국가는 불과 27개국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31번째 '흠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해방 후 불과 반세기,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과정 속의 민주주의 체제에 있는 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벌써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보다는 <60일, 지정생존자> 속 많은 회의주의자들처럼 우려와 좌절에 익숙하다. 더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촛불까지 든 사람들의 마음을 얼룩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 상황에서 박무진이라는 한 사람이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어 보낸 60일의 시련기, 그리고 그가 다시 꿈꾸는 정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희망을 가지게 한다. 막연한 또 한 사람의 영웅 탄생이 아니라, 드라마 마지막 그와 함께 활짝 웃었던 젊은 보좌관들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같이 함께 고민해 볼 '민주주의적 정치'를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아들 둘만 키웠다. 아들 둘만 키우는 기자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흔히 '딸이 없어서 어쩐대요' 하고 안타깝게 혀를 찼다. 마치 세상에 행복한 순간을 놓쳐버린 사람을 보듯이, 정말 그랬을까? <sbs스페셜-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을 보면 아들을 키우는 일은 요즘 말로 '헬'이다 싶다. 슬하에 아들을 둔 엄마들 1000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아들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한 엄마가 무려 응답자의 85%에 달했다. 심지어 83%의 엄마가 아들을 키우면서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아들이 뭐길래,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아들은 비글이다. 충남 천안의 박효선 씨네는 9살, 8살, 6살 아들 셋을 키운다. 엄마의 생일날 아빠가 마련한 편의점표 미역국에 아들들이 우렁차게 엄마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생일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도 잠깐 엄마가 케잌에 불을 끈지 10분도 되지 않아 난리가 났다. 자기가 생일 케잌을 자르겠다는 아들, 잘랐는데 모양이 흐트러져서 먹지 않겠다는 아들 한 명을 겨우 달래놓으면, 다른 한 명이 방에 가서 울고 있고 으르고 달래다 남편 말로 '포악'해져야만 겨우 좀 수그러드는 아들들, 정작 생일 당사자인 엄마 입에 케잌 한 입 들어갈 틈이 없다.
목동의 주한이 엄마는 딸 둘에 아들 주한이를 키운다. 그런데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엄마 말에 따박따박 해야할 거 , 준비물을 잘 챙기는 반면, 열 살이나 된 아들 주한이 뒤치닥거리는 끝이 없다. 당장 학원에 가야 하는데 학원 숙제를 잊어먹은데서 부터 시작하여 내일 학교 갈 가방 준비는 당연히 엄마 몫이다. 겨우 공부 좀 하라고 방으로 들여보내면 귀는 온통 거실의 가족에게 쫑끗, 공부가 끝날 때까지 하세월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연년생 윤이 형제를 키우는 김수정씨라고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서 부터 먹고 싶다는 초코 과자, 엄마가 준비한 아침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 앞에 눈물 투쟁을 벌인 아들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낸다. 이런 식이다. 마음이 약한 엄마와, 엄마가 자신의 눈물에 약하다는 걸 아는 겨우 여섯 살 아들의 싸움은 언제나 아들의 승리이기가 십상이다. 한 마디해서는 엄마 말을 듣지도 않는다. 층간 소음이 민감한 엄마는 장난감을 두드리고 노는 윤이에게 그만 하라 하지만, 한 번, 두 번, 결국 엄마의 목소리가 하이데시벨에 이르러서야 놀던 것을 멈춘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아들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가방, 일기장, 핸드폰까지 뭐든 챙겨주지 않으면 않되는 부족한 존재이며,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대상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도대체 엄마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엄마들은 입을 모아 한 마디로 아들을 정의 내린다. 개 중에 이른바 '미친 개'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비글'이라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애초에 아들이 엄마의 말을 알아먹지 못하게 태어난 '하등'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가정 버정'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내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틀에 아이를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화성에서 온 아들 전문가들은 엄마 역시 '여성'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이 '존재'로써 반응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엄마들이 조금 더 이해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우선 드는 건 뇌량의 차이이다. 아들들은 흔히 엄마들이 하는 밥먹고 들어가서 문제 풀고 책가방싸고 독서해라는 식의 '지시'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딸들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 다발인 뇌량이 넓어 한꺼번에 다양한 정보를 수용하기 쉬운데 반해, 아들들은 가늘고 길어 한꺼번에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 이른바 '멀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대뇌 피질의 성격 자체가 아예 다르다. 남성이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 논리적인 접근이 취운 반면, 여성들이 언어적 학습적 능력이 뛰어난 공감적 반응에 있어 우수한 차이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다큐는 이런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실제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초등학생 남학생과 여학생 각각 3명씩 총 6명의 그룹, 문래동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함께 떠난다. 선생님과 함께 떠난 길, 선생님은 계속 아이들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주변에 관심을 돌리며 종착지에 도착하고, 거기서 부터 남자 아이들 그룹과 여자 아이들 그룹으로 나뉘어 출발지를 찾아가도록 한다.
물론 남자 아이들도, 여자 아이들도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판이하다. 여자 아이들이 출발과 동시에 자신이 어떤 길로 왔는지 헷갈려하며 이 길 저 길을 찾아보며 도착지에 도착하는 것과 달리, 남자 아이들은 자신이 왔던 길을 정확하게 기억해내며 쉽사리 출발지에 도착한다.
공간 감각 능력, 공간 지각 능력이 높은 남자 아이들에게 유리한 미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잘 찾는 게 아니라, 왜 잘 찾는가 다큐는 짚는다. 남자 아이들은 주변 환경에 대해 '시각'으로 지각을 하기에 '길찾기'에 여자 아이들보다 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는 과정에 있었던 풍경에 대한 기억도 훨씬 상세하다. 반면 여자 아이들은 '청각'적 자극에 더 예민하다. 오는 과정에 친구와 통화를 했던 내용에 대해 남자 아이들이 무심하게 반응한 것과 달리 여자 아이들은 그 세세한 내용과 함께 선생님의 감정적 상태까지 기억한다. 언어적 공감 능력이 좋은 결과물이다.
그러기에 전문가는 말한다. 남자 아이들은 청각적 예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화의 상호 작용도 떨어지고 흔히 엄마들이 말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엄마는 연속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게 한 번에 '접수'되지 않고, 결국 마지막에 엄마가 '감정적'으로 폭발할 상황에서야 '메시지'가 전달되며 '엄마가 나를 미워하나?'라는 오해를 사기가 십상이란다.
훈육? 소통이 먼저다 다큐는 '엄마 수업'을 통해 나와 다른 특성을 지닌 아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흔히 아들이니 무조건 신체적 놀이만 하면 되겠지 하는 엄마에게 '신체 놀이'와 '대화 놀이'의 균형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놀이 과정에서의 '대화'와 '소통'에 집중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규칙을 따르는 것에 익숙한 남자 아이들에게 규칙을 세분화하여 미리 정하고 협상을 통해 갈등을 줄여나갈 것을 제시힌다.
그리고 '산만'하다 한탄하기에 앞서 '시각적 자극'에 취약한 남자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시각적 유혹의 여지를 줄여나갈 것을 요구한다.
다큐가 제시한 지침을 따른 앞서 '문제의 가정'들, 한결 평화롭고 행복한 모자 관계의 단초를 마련한다. 하지만 어디 '가정' 뿐일까?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 특히 초등학교 역시 여자 선생님들이 대부분인 상황, 그곳에서 '남자 아이들'은 처지는 다르지만 '산만'하고 '말안듣는', 문제아가 되기가 십상이다. 속터지는 건 엄마만이 아니라, 사실은 많은 여자 선생님들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멀쩡한 남자 아이들을 사람을 속터지게 만드는 문제아로 만드는 사회, 어쩌면 이런 여성과 남성에 대한 오해는, 결국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젠더'에 대한 이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젠더 갈등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다큐에서도 보여지지만 한참 뛰어놀 아이들을 시간에 맞춰 학원에 보내느라 다그쳐야 하는 환경은 어떨까? 친구랑 놀고 싶다는 아이의 눈물은 그저 '떼'로만 보여지지 않았다. 한참 놀이터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아파트 방 속에서 복닦거려야 하는 상황은? 거기에 더해 출연한 엄마의 말처럼, 남의 아이는 몰라도 '내 아이는 달라야 한다'는, 혹은 내 아이는 당연히 내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오늘날 우리 사회 엄마들의 강박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닐까? 아이가 혹여 학교에 준비물이라도 안챙겨갈까 엄마가 자는 아이의 머리 밭에서 시간표를 챙기고, 연필을 깍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만드는 그 상황은 그저 내 아이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라고만 넘겨야 하는 것일까?
다큐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 졌다. 엄마가 원하는 건 '소통'일까,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일까? '엄마 수업'의 목표는 나와 다른 아이에 대한 이해일까? 엄마 말에 따라 문제도 성실하게 푸는 공부 잘하는 아이일까? '규격'에 맞추어 지지 않는 여전한 '본성'을 가진 남성적 젠더의 아이들을 아파트 숲의 환경에서 잘 길들이는 방식을 가르치는 '엄마 수업'일까?
덥다. 어김없이 올해도, 작년보다는 낫다지만 올 여름에도 '폭염' 문자를 피할 수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마저 '여름'을 엄마와 함께 시원한 까페에 가서 책도 보고 숙제를 하는 계절로 기억하게 되는 시절, 땡볕을 피해 얼른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을 '피신'을 하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마당의 평상, 나무 밑 그늘, 살랑살랑 부채바람, 그리고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는 그저 옛날의 추억일 뿐, 에어컨이 '필수'가 되어가는 시절, 하지만 우리가 이젠 당연하다 여기는 이 '에어컨' 등이 뿜어내는 '온실 가스'가 그 누군가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면? 지난 7월 25일 방영한 <다큐 시선>은 바로 우리를 습격하고 있는 '폭염', 그 공평한 햇빛 속에 숨겨진 '불평등'을 주목한다.
지난 2018년 인도에서는 심한 가뭄으로 한 농부의 아내가 목숨을 끊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여인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찾아온 혹서기로 인해 5만 9천 여 명이 죽어갔다. 하층민들은 동료들의 유골을 앞세우고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다큐 시선>이 주목한 건 바로 오늘날 지구가 봉착하고 있는 기후 변화가 지구에, 그 중에서도 취약 계층의 삶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의 하층민은 동료의 유골을 들고 시위라도 나서지만,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그 피해를 피해로 보고있지 않아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염을 피해 이사가는 멍게 양식장 경남 통영, 배 후미에 시뻘건 무언가를 매단 배가 바다를 가로 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놀러가기 좋은 곳을 넘어,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가 바로 통영이다. 배가 매달고 가는 건 양식하던 멍게, 이곳 가조도에서부터 25km 떨어진 비교적 해수온이 낮은 한산도로 멍게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름철 폭염이 거듭되며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고, 그를 견디지 못하고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 70%의 멍게가 폐사하자 특단의 조치로 '양식장'이 이사를 하게 된 것.
갈수록 양식하기가 어렵다는 25년 경력의 이종만씨, 강원도까지 가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해역 표층 수온이 지난 50년간 1.1℃ 상승했다. 전세계 평균 상승 온도보다 약 2.5배 빠른 속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고수온으로 인한 수산업 종사자들의 피해가 지난 4년 사이 10배나 늘어났다.
양식만 힘든 게 아니다. 바닷속 생태계도 변했다. 해양 생물들의 생태 주기가 달라져 기존에 살아왔던 해저 부착 생물들이 줄어들고 고기의 이동도 많아졌다. 예전에 많던 우뭇가사리 대신 따뜻한 곳에서 서식하던 다른 해양 부착 생물들이 나타났다. 조기를 잡던 어부들은 이제 난류성 어종인 멸치를 잡는다. 물반 멸치반인 바다 하지만 언제 또 무슨 변화가 생길 지 몰라 어민들은 긴장과 불안을 늦출 수 없다.
바다만이 아니다. 가업으로 대를 이어 양계장을 운용하는 박현배 씨 여름이 시작되고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땀구멍이 없어 더위에 취약한 닭, 2016년부터 폭염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하여, 작년에만 3000마리가 죽었다. 쿨링을 하고 대형 선풍기를 돌려도 35도만 넘어가면 페사가 속풀한다. 이렇게 전국 양계장에서 2018년에만 620만 마리가 죽어갔다. 그나마 냉각 장치를 가동할 수 있는 기업형 양계장은 나은 편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영세 양계농은 폭염 앞에 무방비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
온실 가스, 취약 계층에 집중된 피해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연료를 활용한 비약적인 산업의 발전은 온실 가스라는 괴물을 낳았다. 온실 가스는 속성상 수백년 동안 공기에 남아있다. 그 피해는 지구 전체에 광범위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 가난한 나라, 그 중에서도 어업과 농업 등 자연과 직접 맞닿아 있는 1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또한 야외에서 직접 햇볕을 맞으며 일해야 하는 야외 노동자, 에어컨 없이 생활해야 하는 극빈 계층, 온도 감지 능력에 취약한 어르신들 역시 피해갈 수 없다. 하나의 태양은 온 세상을 고루 덥히지만 그 피해는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특히 절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는 등 여름철이 가장 일이 많은 농사의 현장은 논, 밭, 비닐 하우스로 그 자체가 곧 '사고 현장'이 되고 만다. 경북 상주의 오르신들, 작년 여름 그만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 바람에 들깨 농사를 망쳤다며 수십년 해오던 농삿일이 점점 더 어렵다며 하소연을 하신다. 4월 가뭄, 7,8월의 폭염, 8월말 9월초의 폭우, 몇 십년 해오던 농삿일이라지만 피해갈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앞에 속수무책이다.
변화된 기후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 냉감 센서는 이제 어르신들만 남은 농촌 사회의 큰 복병이다. 지난 여름 말라가는 고추 밭을 보다 못해 물을 대다 쓰러지신 82세 오정필씨, 칠십년 농사를 지으며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거의 없다는 어르신은 아내가 없었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거라며 고개를 저으신다.
2018년 온열 질환자수 4526명, 사망 4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령화된 농어촌 사회는 특히나 취약 지역이다. 오죽하면 보건소 직원들이 마을을 돌며 혈압과 당뇨를 체크하며 '낮에 혼자 다니시면 안된다'고 당부하고, 독거 노인들이 많은 마을에서 혹시나 모를 비상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혼자 다니시지 않기를' 독려할까. 일하다 힘들면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 한 숨 자며 더위를 피하는 건 이젠 '과거'가 된 상황, 7,8월 혹서기에는 일하는 거 자체가 힘들어진 농촌, 누군가가 내뿜어댄 탄소에 농촌이 고스란히 직격탄을 맞았다.
바다가 비어간다. 직격탄은 바다라고 해서 피할 수 없다. 온실 가스의 주범인 탄소는 바다에 녹아들어 해양을 산성화 시킨다. 산성화된 바다에서 산호초는 백화되고, 갑각류와 폐류는 산호 부족으로 껍질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 채 폐사해 간다. 해녀들의 곳간이 헐거워져 가는 것이다. 한참 성게가 제철인 시절, 바닷속을 아무리 뒤져도 성게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
곳간이 비는 건 물론, 점점 올라가는 수온 때문에 해녀들을 보호해 주는 잠수복을 입고 물질하기가 쉽지 않아 아예 벗고 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단다. 그만큼 '위험'에 무방비해지는 상황. 물질 30년이 되었다는 해녀는 이 생활 최대의 위기라며 한탄한다.
해녀들만이 아니다. 근해에서 고기를 잡던 10톤 미만의 어부들 역시 이제는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십상이다. 통발 어업을 하는 지창정씨, 매일 건저 십만원씩 벌던 통발을 이젠 15일씩 놔둘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가 비어간다. 겨우 건져낸 딱게 등등 차비도 안남아 팔 것이 없다. 이런 식이니 일 년에 천 만원 벌이도 쉽지 않다. 이삼천 씩 벌어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가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나이가 드니 이제 와서 일용직으로 나갈 수도 없고 노령 연금을 받아 근근히 두 부부가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지창정씨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체 어민의 43.7%가 1천만원 미만의 벌이를 하고 있는 현재의 어업 상황, 집집마다 배를 두고 고기잡이를 나가던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고령화에 파괴된 연안으로 인해 어선 어업을 포기하는 어부들이 속출하고 있다. 결국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지역 사회는 공동화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기후 변화는 사람들에게 몇 십년씩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도록 만든다. 30년 동안 사과 농장에서 일하던 경북 문경 김법종씨, 환경 변화와 함께 '홍로' 등의 품종이 더는 옛날과 같은 맛과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사과 농사를 짓기 좋은 조거느이 강원도 양구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일조량이 적당하고 태풍 등 기후 재앙을 피해갈 만한 지리적 터전, 사과는 이제 무럭무럭 자라지만 두 부부는 34년 동안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온 우울증 등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1℃의 변화로 지금처럼 우리 농촌과 어촌의 생태계가 극심한 변화를 겪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하지만, 과연 온난화로 인한 변화가 1℃에서 그칠까. 기후 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는 21세기 말이 되면 지표면의 온도가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4℃까지 상승하리라 경고한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생태와 자연, 나아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전체 지구보다 더 심각한 건 우리나라이다. 반생태적인 삶의 조건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1위,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던 방식으로 전 지구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지구가 3.5개가 더 필요하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한반도 자체로만 봐도 8.5개의 한반도가 더 필요하다. 다큐는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온난화의 문제가 환경 이전의 삶의 문제임을 밝히고자 한다. 빨간 불이 켜진지는 오래, 내가 마구 튼 에어컨에 우리의 가장 취약한 이웃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우리의 삶의 태도와 습관이다. 무너져가고 있는 농촌과 어촌, 그 일터의 불평등에 가해자는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우리다.
하지만 에어컨을 끌 수도 없고, 온난화로 인한 폭염을 다시 온실 가스에 의존하여 해결 할 수 없는 화석연료 산업 사회의 우리, 더위가, 폭염이 그저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우리가 딛고 있는 산업 사회라는 존재론으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그리고 그 사회적 기원의 문제는 결국 기후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을 다큐는 명확하게 설득해낸다.
mbc스페셜은 지난 주에 이어 '이 남자'를 다루었다. 7월 29일 <이 남자 분노하다>에서는 '페미니즘'의 시대,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여성들과 여전히 자신들에게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기성 세대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낀 처지가 된 이십대 남자들의 '억울함'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에 이어 8월 5일 방영된 <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은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들의 고달픈 삶을 담아내고자 한다.
오늘을 산다. 한 소주 회사, 3개월 수습 끝에 정직원 딱지를 달았던 이제 입사 2년차 최재원 씨, 정직원이지만 판촉 행사를 하기 위해 알바 생들과 같이 우주인 복장을 하고 여러 술집을 돌며 자기 회사의 상품을 홍보한다. 판촉 행사가 끝난 후에야 땀에 절어 잘 벗겨지지도 않는 우주인 복장을 벗는 재원씨,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
그의 나이는 벌써 이십대 끝 무렵인 29살이다. 세 번 째 도전 끝에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최재원씨, 굳이 이 회사를 고집한 이유는 '연봉'이다. 구직 기간 동안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졌다던 재원씨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높은 월급은 필수이다.
조금 더 나은 연봉을 받기 위한 도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15세에서 29세 첫 일자리 임금 수준 표에 따르면 청년 층의 34.1%가 150에서 200만원 미만의 돈을 첫 월급으로 받는다. 100에서 1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27.7%에 달한다. 우리 사회 직장의 로망이라는 대기업 직원들이 받는 300만원 이상을 받는 층은 2.4%에 불과하다. 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5.1%나 된다.
그러다 보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긴다. 국가 대표 결승 경기가 열리던 날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를 하는 김민근 씨에게 경기 관람은 언감생심이다. 밤 10시부터 시작된 콜이 20건에서 25건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자동차 학과를 졸업한 민근씨 역시 남들처럼 직장에 취업을 한 적이 있었다. 6개월 정도 다녔지만 알바로 했던 배달 대행업보다 터무니 없이 작은 월급에 시간도 길다보니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라이더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그 때보다 서너배는 더 번다는 민근씨, 남들의 치맥 한 잔이 그에겐 나날이 쌓이는 통장의 꿈이다. 매일 오만원씩 저금한다는 그, 돈을 모아 언젠가 프랜차이즈점을 차리는게 꿈이라는 민근씨를 하지만 같은 업종의 형님들은 뭐 벌써부터 저렇게 애를 쓰고 사냐며 안쓰럽게 본다.
하지만 민근씨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26살의 김영준씨는 한 달 째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유아 체육 교사로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기침은 쉽게 낫지 않는다. 군복무를 마치고 시작한 일이 어언 4년차에 접어든 이즈음, 처음 시작은 60만원에서 부터였다. 그래서 그때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노가다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영준씨는 지금의 유아 체육 교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젊어서야 할 만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유치원을 다니는 게 좋아 보일 것같지 않다는 그는 생활 체육 지도사를 따기 위해 시간을 쪼갠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그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담담한 대답. 아마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십대 남자들의 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이십대 남자들은 내일이 없는 듯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그걸 답해주는 건 바로 실업률이다. 2019년 4월 기준, 청년 실업률 11.5%,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8개월, 그리고 앞의 통계에서도 보여지듯이 취업을 해도 10명 중 8명은 평균 2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겐 오늘이 발등의 불이다. 취업을 했던 청년 들 중에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민근씨처럼 버는대로 돈이 되는 라이더 일도 불사하게 되고, 다시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취준'의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바로 그 취준생의 1/3이 선택한다는 '공시', 26살 배민구 씨 역시 바로 그 공시생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시생이 될 수는 없는 것. 배민구 씨 역시 30대를 공시의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그 길고도 아득한 레이스, 하지만 레이스의 종착역에 도착하여 직업을 얻는해 해도 어른들이 원하는 그 가정을 가지는 미래는 불투명하다.
꿈이 없다고? 비판적 의식이 없다고? 기성 세대는 이런 청년 세대에게 불만이 많다. 왜 꿈이 없느냐고. 취직에만 매몰되어 있냐고. 하지만 그런 기성 세대의 불만에 청년들은 어서 빨리 저 분들이 퇴직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우리 몫이 생길 텐데라고 생각할 뿐이다.
88올림픽으로 상승세를 탔던 경기, 80년대 말, 90년대 학번들은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니면 언젠가는 번듯한 내 집 마련에 안락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세대였다. 당연히 '낭만'을 즐길 여유가 있었고,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질만한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한 경쟁 취업의 시대에 내몰린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꿈'이나 '비판 의식'을 운운하는 기성 세대에게 분노한다. 그들이 오늘날 청년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은 세대인데, 이제 와서 해주는 것은 없으면서 청년들에게 무리한 요구만을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페미니즘'의 시대, 청년들은 여성들은 그저 혜택받는 경쟁자이며, 자신들은 역차별을 당하는 약자라 생각한다. '남성적 특권'을 누린 건 기성 세대의 남자들인데 애먼 20대 남자가 눈덩이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복무로 사회집입조차 늦은 그들에게 사회적 이점이 없다고 항변한다.
국민연금이라도 넣으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고달픈 경쟁에 시달리며 오늘을 살아가기도 벅찬 이십대 청년들을 위한 해법은 없을까?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의 고증에 충실하던 다큐는 중반부에 들어서서 갑자기 국민연금 관리 공단 홍보 다큐가 된다.
국민 연금을 꾸준히 넣어서 노후가 되어서 걱정이 없다는 어르신들, 그 중에서도 부산 물류 회사의 대표 김기식씨는 1979년 제대 이후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하며 연금을 넣은 덕택에 매달 13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든든한 노년의 보장이라는 어르신들의 생각과 달리 청년들은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하지만 대학생 홍보대사까지 동원한 다큐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국민 연금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며 세게 3위 660조원의 기금으로 향후 30년간은 끄덕없다며 젊은이들의 가입을 독려한다.
물류 회사 김기식 대표님의 따님 지영씨마저 가정을 꾸리고 보니 한달 9만원의 연금이 부담스럽다는 현실, 실업률에 직장 구하기가 힘들고, 월급을 받아도 쥐꼬리만해서 다시 라이더를 하는 게 낫다면서 국민연금을 내라니, 국가에서 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큐는 연기 지망생 김민수 씨와 박인영씨를 들어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청춘의 연가로 마무리된다. 현실로 시작해서 그래도 여전히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청춘도 있다는 이상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의 진단은 명확하지만 결국 이 시대에 다큐가 짚을 수 있는 답은 불투명한 것이다. 그건 다큐가 도달한 불투명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걸 나눠줄 의향이 없는 기성 세대, 자신들의 잣대로 청년들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프레임에서, 이남자들에게 말해줄 답은 그래도 국민연금은 넣어라 말고는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당연히 젊은 세대들은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우리가 국민연금까지 넣어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과연 그런 어설프고 안이한 '답정너'식의 동어반복으로 '이남자'들의 상흔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한류'를 선도했다던 드라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시청률이 7%대만 되도 '선방'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 즈음, 각 방송사들은 '적자'를 이유로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방영하는 드라마보다 차라리 과거에 만들어 진 드라마를 방영하는게 시청률이 더 나올 거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최근 방영하거나 방영했던 드라마들의 완성도가 이제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비록 시청률에서 미흡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들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한결같이 '특정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가는 장르물로 시청자들은 매회 엎치락뒤치락하는 범인 찾기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이 범인?- <왓쳐> 드라마의 시작은 어린 영군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머니를 찌른 칼을 든 아버지가 있었다. 아니 영군은 그렇게 믿었다. 영군을 담당했던 의욕이 앞섰던 검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영군의 증언을 독려했고, 아버지의 후배 형사인 도치광(한석규 분)은 아버지에게 가장 불리했던 증거인 피묻은 잠바를 찾아냈다. 그리고 영군의 증언과 도치광이 찾아낸 증거로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감옥에서 15년을 살았다.
그리고 15년 후,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 도치광과 이제 경찰이 된 영군(서강준 분)이 비리 수사팀으로 만났다. 시작은 경찰의 경찰, 경찰 내부 비리 수사였지만, 그 과정에서 15년전 영군 모의 살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자신이 본 것이 과연 진실일까가 내내 미덥지 않았던 영군, 자신이 맡았던 그 사건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의혹으로 인해 손가락과 남편을 잃은 한태주, 그들은 각자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수사팀의 일원이 되거 과거를 헤집는다.
그렇게 <왓쳐>는 수면 위로 올라온 과거 사건의 범인들을 하나씩 찾아나선다. '비리'와 가장 어울릴 듯한 장해룡(허성태 분)에 대한 의혹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뜻밖에도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그 '의심'의 시선을 팀장 도치광에게로 향한다. 영군이 잊었던 그날 세탁기에 아버지의 잠바를 넣은 사람, 그리고 가장 '정의'로운 듯하지만, 비리의 핵심인 재벌 회장의 '개'라던 사람, 심지어 장해룡은 대놓고 말한다. 자신에게 향했던 그 의혹의 화살, 그 방향을 바꾸어 놓고 보면 도치광이 범인인게 자명하다고.
경찰 내부의 비리를 밝히겠다는 수사가,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덮으려는 또 다른 범행일 수 있다는 의심은 <왓쳐>에서 매혹적으로 풀어내어 진다. 그도 그럴 것이 회를 거듭할 수록, 드라마 속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하나 '단선적인 캐릭터'가 없다. 모두가 의뭉하게 보여지는 것과 다른 속내를 숨기고 있다.
10회, 비로소 백송이 사망 위장 사건을 통해 도치광의 속내가 드러나고 혐의에서 한 발 바껴선다. 하지만 도치광이 비껴서자마다 나머지 인물들이 또 다른 의뭉스런 속내를 드러내며 용의자의 선상에 줄을 선다. 이젠 영군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자 했던 한태주조차 믿을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 <왓쳐>, 결국 시청자들은 애달복달하며 다음 회를 기다린다.
원작과 다르네? - <지정 생존자> 이미 <넷플릭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 <지정생존자>가 리메이크된다 할 때 그 자체로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대통령 유고 시의 사건을 다룬 이 드라마가 과연 다른 조건의 제도를 가진 한국적 상황에 어울릴 것인가에서 부터, 시즌 1 중반부에 이르러 이미 드라마적 동인이 한결 떨어졌던 드라마를 리메이크했을 때 과연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임을 <지정 생존자>는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정치적 상황을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긴장감있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치환시키고, 거기에 미국 내 소수 인종의 이야기를 우리 나라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재외 동포의 문제로 풀어내며 '한국적'인 상황에 걸맞는 서사로 안착시키고 있다.
특히 키퍼 서덜랜드라는 배우에 의지했던 대통령 캐릭터는 지진희를 통해 때로는 답답한 듯하지만 북한 잠수함 위기에서 데이터를 차분하게 분석해 상황을 돌파하듯 학자 출신의 원칙적이면서도 강직한 모습을 부각하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거기에 이제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미드에서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얻었던 '범인'과 배후와 달리 한국판 <지정 생존자>는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국회 의사당 폭파 사건에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백령해전'에서 살아남았지만 국가와 국민들에게 응분의 '존중'을 받지 못해 뒤틀려버진 '테러 집단'으로 설정하여 개연성을 살림은 물론, 생각보다 시시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드와 달리, 그들 뒤에 합참의장의 권한 조차 좌지우지할 청와대의 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대통령의 최측근 중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드라마적 긴장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위기의 순간, 박무진 대통령 권한 대행 곁에서 헌신적으로 그를 지탱해줬던 한주승(허준호 분)과 차영진(손석구 분), 과연 그들이 테러의 배후일까? 그 의혹을 풀어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지정생존자이다.
누구도 범인일 수 있는? -미스터 기간제 상위 1%만 가는 명문 사학 천명 고등학교, 그곳에서 여고생 정수아가 살해당하고 같은 반 남학생 김한수가 용의자로 몰렸다. 수임받은 사건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송하 로펌의 에이스 기무혁은 로펌 대표로 부터 적당히 형량을 조절하라는 청탁을 받고 사건에 임한다. 하지만 로펌 대표의 말과 달리 욕심이 앞섰던 기무혁은 법정에서 김한수의 무죄를 주장, 이를 위해 정수아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스폰'을 접대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다 김한수의 반발, 이어진 자실 시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스스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간제 교사 기강제로 천명 고등학교에 잠입한 기무혁, 명문 사학이라는 번드르르한 외양과 달리, 학교 안에서는 상위 1% 학생들의 커넥션과 갑질이 횡행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사회 배려자(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 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차별이 게임처럼 벌어지는 걸 목격하게 된다.
학교 옥상에서 벌어진 시끌벅적한 사배자 안병호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폭력 게임을 시작으로 <미스터 기간제>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학폭을 둘러싼 학생들의 갑을 관계와 학교 교육은 서비스라는 마인드로 편법과 부당 학사 관리를 자행하며 돈있고 권력있는 학부모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재단의 비리가 쌍두마차처럼 벌어지는 '정글'같은 천명고를 기간제 교사로온 기강제를 통해 조명한다.
그리고 진실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그를 통해 상위 1%라는 학교 안 권위에 기대어 정수아를 괴롭혔던 학생들의 민낯을 한 명씩 파헤쳐가는 동시에, 천명고 행정실장 이태석(전석호 분)을 중심으로 정수아의 스폰, 그 실체에 다가간다. 실체에 다가갈 수록 모두가 '공범자'이자, '가해자'임이 드러나는 명문 사학, 그 전모가 드러나는 '파멸'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스카이 캐슬> 등을 통해 비리로 범벅된 명문 사학의 사례는 이제 '클리셰'와도 같지만, <미스터 기간제>는 기간제 교사가 된 변호사가 풀어내는 사건의 시점과 거기에 더해 매력적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학생과 학교 측 관계자의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장르물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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