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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성인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결합? 하지만, 이 이상적인 문구는 각 사회가 처한 '근대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만 해도 결혼은 젊은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이라 하지만, 결혼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력이나 서로의 집안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는 세계적 기준에 따르면 '불완전한' 자유 결혼'이라 평해진다. 아직까지도 자유 의지보다는 '조건'이나 '환경'이 우선하는 결혼 제도이기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결혼으로부터 자유롭고싶다는 '비혼 선언'이 등장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국가, 거기에 각 지역별로 사회, 문화적 발전의 불균등한 격차가 사회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은 어떤 고민을 겪고 있을까? 16, 7살만 되면 가족이 남편감을 찾는 유대교 전통의 압박이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쇼쉬 슐람, 힐라 메달리아 감독이 살펴본 동시대 중국의 여성들의 모습은 근대를 삶으로 겪어내야하는 여성들의 '동병상련'을 담고 있다.
성뉘; 잉여 여성
국가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1980년대 이래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해왔던 중국 정부(인구 감소에 따라 2013년 폐지), 여전히 전통적 '남아 중심 사상'이 지배한 중국 사회였기에 중국 전체 인구 비율 상 남성 인구가 3천 만명이 더 많다. 당연히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남녀의 비율이 맞지 않는 상황, 그래서 중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20대, 특히 27세 이전에 결혼할 것을 강권한다.
하지만 2012년 기준, 유엔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27~29세의 여성 중 4명 중 한 명이 미혼이며 이 추세는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 중국 정부는 이렇게 결혼하지 않는 고학력의 이른바 '골드 미스'들을 '성뉘; 잉여 여성'이라 낮잡아 부르며 국가적으로 결혼 제도 속에 편입하기 위해 '압박'하고 있다.
<위기의 30대 여자들>은 이렇게 본의 아니게 '성뉘'가 되어버린 세 여성 추화메이. 쉬민, 가이치의 이야기를 다룬다.
34살 변호사가 '불리한 조건'?
결혼 중매 회사를 찾은 34살의 변호사 추화메이, 자신의 일을 존중해 주며 집안 일도 같이 해주는 남자를 찾는다는 자신의 조건을 내세우자, 중매 회사 관계자가 난색을 표한다. 34살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거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성격이 강해보이게 만들어', 좋은 조건이 아니라며 그녀의 눈높이를 낮출 것을 요구한다.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서 열린 부모들의 중매 시장을 찾은 그녀, 변호사라는 그녀의 직업에 남자 측의 어머니는 그녀가 법으로 자신의 가족을 해꼬지 할 수도 있다며 말도 못붙이게 한다.
베이징에서 차로 4~5시간 거리에 있는 산둥성의 추화메이의 집, 집에 오자마자 가족들은 '괜찮은 남자 찾았니?' 라며 그녀의 결혼 걱정에 한숨이 늘어진다. 법에 따라 20대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싫다며 먼저 결혼해서 좋냐고 언니들에게 물어보지만, 결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때가 되서 하는 거라며 가방끈이 길어 눈만 높아졌다며 외려 퉁바리를 준다. 심지어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학비까지 대줬더니 동네 사람들에게 딸 시집 못보낸 집안이라 손가락질 받게 생겼다며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바보라며 온가족이 닥달을 해댄다. 결국 눈문을 흘리고야 마는 추이메이.
결국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중매 회사를 찾은 추이메이, 같은 고향 출신의 괜찮은 조건의 남자를 만났지만, 이 남자 대놓고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산둥성의 전통을 따르겠다며 법적인 부분에서는 그녀의 조언을 따르겠지만 주도권은 자기가 쥐어야겠다며 당당하게 말해 추이메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혹시나 너무 늦은 결혼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할까 하는 우려에 산부인과를 찾은 추이메이, 35살 이상이면 노산이며 자궁 내막이 건강하지 않아 기형아 출생율이 5배나 높다며 겁을 주던 의사는 정작 정자를 보관해 주는 정자 은행은 있지만 난자를 냉동시켜 보관해 주는 난자 은행은 태국이나 미국에 가서 알아보란다.
28인데 노처녀?
베이징의 매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쉬민은 이제 28살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밸런타인 데이트 이벤트에 참석하는 그녀에게 결혼, 그리고 결혼할 남자에 대한 생각은 아직 이상적이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그녀, 하지만 고학력에 베이징에 살아야 하며, 공무원이나 엔지니어, IT계열에, 집도 가져야 하고, 키는 175 이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등 점점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조건이 그저 쉬민만의 생각이 아니다. 밸런타인 데이트에서 공무원이라는 남자를 만나서 설레이며 돌아온 집,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부모님, 특히 엄마는 속을 수도 있다면 까다롭게 따진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8살인데 늦었다며 초조해 하시면서도 무남독녀인 그녀가 남자를 만날 때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끄집어 내며 연애의 장애물이 되어왔다. 좋아해서 만나다 엄마가 반대해서 결국 계속 만나지 못했던 경우마저 있었다.
그렇게 사사건건 반대를 하며 트집을 잡는 엄마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힘들어 하던 쉬민은 결국 어머니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어머니 역시 맨날 성화인 할머니 때문에 비슷한 집안의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된 케이스, 엄마 때문에 남자 만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는 쉬민에게 엄마는 집도 사줬는데 이제 와서 엄마를 무시한다며 외려 서운해 하신다. 독립적인 성숙한 여성으로 자기 삶의 파트너를 선택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나이 28살이다.
결혼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
가이치는 36살의 영어 강사이다. 지식인 가정에 태어난 그녀, 하지만 47살에 파킨슨 병을 앓기 시작한 아버지로 인해 배우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집안이 번듯하지 않아서 그녀의 결혼에 장애물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도 결혼에 성공했다. 그 모든 악조건에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연하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의지할 수 있는 연상의 안정적인 남자가 좋다지만 그녀는 웃고만다.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광저우 대학으로 옮긴 그녀 학생들과 함께 페미니즘 영화를 보고 페미니즘과 결혼이 공존할 수 있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자신의 바뀐 결혼관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힌다.
20대에는 집있는 남자를 바랬다는 가이치, 아버지가 아프실 때는 그런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바랬었다고. 서른 살이 넘어가고 그녀가 바라던 조건의 남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미혼으로 살아갈 것인가 타협점을 찾을 것인가 고민하고.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괜찮은 연하남.
결혼 후 광저우 대학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그녀에게 아이를 낳고 싶어하던 남편은 광저우가 생활비가 적게 들어 아이 키우기에 적당할 것같다며 이직을 권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던 그녀, 이제 남편의 바램에 따라 아이를 낳고 광저우에서 직장도 구했는데, 그녀는 말한다. 재미로 따지면 결혼 전 인생이 재밌었다. 하지만 결혼 후 인생은 재밌지는 않지만 더 많은 행복감을 준다고. 결혼도 하고 자신의 삶도 누리기 위해서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결혼을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하남과의 안정적인 결혼에 성공한 가이치,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추이메이는 프랑스로의 유학을 선택한다. 결혼에 대한 편견을 전족에 빗대는 추이메이, 포부가 작은 여자는 작은 발를 가진 여자처럼 전족같은 결혼에 맞춰 살아갈 수 있지만, 큰 발처럼 자기 인생에 대한 포부가 큰 그녀는 이 나라의 결혼 제도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망망대해 거세게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홀로 맞서는 처지. 노처녀란 단어에 발목잡히고 싶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밀려오는 사회적 편견의 파도는 그녀를 질식할 것같이 만든다고 토로한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그녀는 이 나라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을 안한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녀가 아들이 없으면 무시당하던 시대를 살아왔던 자신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며 자랑스럽다며 손을 잡는다. 고향을 떠나며 아버지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추이메이, 그녀는 비록 떠돌겠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위기의 30대 여자들> 속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인 중국 여성들의 모습은 불과 한 몇 십년전 우리 여성들의 복사판같다. 아니 몇 십년 전이라 예단할 수 있을까? 노처녀라는 낙인을 피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추이메이나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져오는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비혼'을 선언하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처지는 나라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그 속에 담긴 '압박'에 대한 저항은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최근 등장한 '취집'과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쉬민이 무에 그리 다를까. 행복한 결혼을 위해 '포기'해야할 것이 있다는 가이치의 토로에 가장 공감할 사람은 우리의 '직장맘'이 아닐까. 나라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문화적 상황에 맞춰 여성들의 삶은 재단되고, 그 재단된 삶을 향해 여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뇌하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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