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회적 문제다.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두 명의 젊은 여성 연예인들, 그들의 죽음에는 예외없이 '악플'의 책임이 대두됐다. 하지만, 그들에게 쏟아부어진 악플은 무수하되, 정작 그 죽음에 책임감을 느낄 당사자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악플은 마치 독버섯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가온, 아직 미성년자인 앳된 시골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가온이와 엄마가 보낸 지난 몇 달은 지옥과도 같았다. 시간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가온이, 핸드폰 중독?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서 혹시나 자신에 대한 악플이 달려있을까 노심초사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 시작은 한 방송국에서 매주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출연에서 부터였다. 작은 시골학교, 골든벨을 울릴것이라고 예측된 3학년 선배를 제치고 1학년 가온이가 124대 골든벨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 하지만 가온이의 방송 출연분이 캡춰되어 인터넷 공간에서 돌아다니게 되자, 특정 사이트에서는 가온이의 외모를 평가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성희롱성 댓글이 달리고, 사상 검증까지 이뤄졌다. 결국 가온이 모녀는 이에 대해 법적인 해결을 모색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집된 악플만 550여개, 본인이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악플을 직접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가온이와 엄마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이제 가온이는 밤에 자면서도 자신에게 달린 악플에 시달린다. 엄마는 차라리 시간을 돌려 그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지워져도 자신의 머릿속에 남긴 악플로 인해 괴로울 것이라는 가온이, 이렇게 악플은 그 누구라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벌금, 구속으로도 악플은 멈춰지지 않았다
베이비복스라는 그룹 시절부터 악플에 시달려 왔던 배우 심은진 씨, 3년전부터는 자신의 sns를 도배하는 한 사람의 지독한 악플로 고통받고 있다. 무려 그 한 사람이 단 악플만 1000 개, 

거듭된 고소로 벌금형은 물론 구속으로 이어진 상황에서도 악플은 멈춰지지 않았다, 심지어 고소 과정에서 심은진씨와 만난 악플러는 마치 아는 언니에게 인사하듯 '언니, 안녕'하며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어렵게 만난 악플러의 어머니는 외려 구속시켜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로 강박증이 심해진 상황이라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원종환 씨의 경우 벌금을 문 악플러가 당당하게 공연 앞자리를 차지하고 그의 공연을 봤다고 한다. 이미 벌금을 물었기에 그동안의 죄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차단을 하면 다시 계정을 만들어 악플을 다는 이들로 인해 당하는 연예인들의 고통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한 아이돌 가수에게 지속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을 추적해 보니 40대의 고시생이었다. 사법 고시를 준비하다 겪은 사회적 좌절을 악플을 달아왔던 그는 특정 연예인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자신의 화풀이를 해왔던 것. 

이렇게 한 사람, 혹은 특정의 몇몇에게 '강박증'처럼 댓글을 다는 병적인 악플러들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댓글을 단 것조차 기억을 못하는 다수의 악플러들이 있다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막상 인터넷 상에서 악플을 달던 악플러를 찾아 연락을 하면 대부분 자신이 그런 댓글을 단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멀쩡한 목소리로, '제가 쓴 건가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 '개그로 적은 건데, 별 의도가 없었어요', 라던가, ' 그 글이 문제가 되는 건가요?'라며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채 댓글을 다는 다수의 악플러가 현재의 '악플 사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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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sbs스페셜은 악플러에 대해 보다 잘 알기 위해 '악플러를 초대'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거듭된 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악플러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드디어 세 번째 어렵사리 마련된 '악플러의 밤', 악플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던 김정민과 김장훈이 호스트가 되어 세 명의 악플러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자신들이 이상 심리를 가진 사람이나 악마 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며, 그저 너무도 평화로운 세상 무료할 때 배설하는 기분으로 악플을 단다고 하는 최민지(가명), 자신의 악플에 수 백명이 추천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그래서 당연히 선플도 달아왔다는 레이용(가명), 연예인의 가식적인 모습을 못견뎌 악플을 단다는 니즈(가명)까지 다양한 악플의 이유가 등장했다. 

인간의 사냥 본능에서 부터 친구에세 카톡을 보내는 식이라던가, 재미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악플을 설명하는 악플러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상 심리를 가지거나 강박증적으로 악플을 다는 몇몇 집요한 악플러도 문제지만 바로 이렇게 그 누군가의 악플에 감정적으로 휩쓸려 자신들의 공격성을 토해놓는 80%의 악플러가 오늘의 악플 세상을 만든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어렵사리 악플러를 초대한 '악플러의 밤'의 결말은 어땠을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호스트 김정민과 김장훈, 김정민에게 악플을 달던 니즈는 알고보니 김정민이 가식적인 연예인이 아니라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인 줄 알았다며 화해의 포옹까지 나누며 화기애애한 마무리를 했다. 

악플러와의 포옹, 그러면 됐을까? 이야기 과정에서도 나왔지만 겨우 세 명, 그것도 몇 번의 초대가 무산된 가운데 등장한 세 명의 악플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자화자찬할 수 있을까? 

악플러들조차도 코웃음치는 '선플 달기' 캠페인보다는, 대화 중간 지속적으로 김장훈이 언급한 '시스템'의 문제이야말로 사실은 프로그램이 간과한 결론이 아니었을까? 똑같은 '인간'이라는 종을 놓고 어떤 철학자는 '성선설'을 또 다른 철학자는 '성악설'을 놓한 건, 결국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인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과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인간성이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 존재란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악플러의 밤에서도 등장했지만, 마치 악플을 도발하는 듯한 기사들은 그 자체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처럼 아예 '댓글'을 쓰지 않는 것이야 말로 '답정너'아닐까. 추천이나 좋아요가 없다면 어떨까? 어쩌면 답은 나와있을 지도 모른다. 그 답을 굳이 겉훑기 식으로 한번 언급하고, 김정민과 악플러의 급 화해 모드로 마무리된 <악플러의 밤>은 그저 이슈가 되니 한번 다뤄보자는 요식 행위를 넘어서기가 힘들어 보인다. 악플은 나날이 심해지지만 한편에서 조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방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악플은 결코 종식될 수 없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9. 12. 16. 15:09

정준영을 시작으로 해서 김준호, 차태현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 들은 <1박 2일> 시즌 3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1박2일> 시즌 3는 종영했고, 다음 시즌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과연 저런 상황에서 제 아무리 일요일 밤의 스테디 셀러라 해도 <1박 2일> 이 재기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시즌4의 새로운 멤버 라인업이 등장했다. 연정훈, 김선호, 딘딘, 문세윤, 라비, 그리고 김종민까지. 방위 소집 기간을 제외하고 1박 시즌 내내 생존했던 김종민은 그렇다 치고,  최근 먹방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낸 문세윤 정도?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보인 딘딘이라지만 차라리 한가인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연정훈이 익숙할까, 김선호나 라비는 거의 신인과도 같다. 중장년층이 주된 시청자인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낯선 인물들인 셈이다. 과연 저 사람들을 데리고 일요일 밤 메임 예능이 가능할까라는 우려가 앞선 라인업이었다. 

 

 

명불허전 까나리부터 
그런 우려때문이었을까? 아침 6시 반 kbs 본관 앞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에 앞서 새벽에 각자 자신의 차를 타고 출발했던 멤버들을 맞이한 건 다짜고짜 들이밀어진 미션지였다.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메이크업은 커녕 슬리퍼 바람으로 단 돈 만원을 쥐어주며 오프닝 장소까지 시간에 맞춰 오도록 하는 첫 번째 미션. 

시즌 4를 시작하는 제작진의 묘수는 바로 <1박2일>다움이다. 출연진이 그 누구건, 심지어 일반인이라도 피해갈 수 없던 그 <1박2일> 특유의 가차없는 미션, 겨울 새벽 거리를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오프닝에 맞추기 위해 '신입' 멤버들을 들입다 뛰게 만드는 <1박2일> 다움으로 멤버들 면면의 낯섬을 넘어서고자 한다. 

그리고 겨우 숨을 헐떡이며 추레한 모습으로 모인 kbs 본관 앞 조금은 쑥쓰러운 듯, 하지만 새로운 시즌에 합류했다는 뿌듯함과 잘 해보겠다는 의지로 입을 모아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1박2일!'을 외친 것도 잠시 그들의 앞에 멋진 suv가 무색하게 덜덜거리며 예의 1박2일다운 낡은 트럭 한 대가 등장하고, 두 트럭의 승차를 가를 200 개의 아메리카노와 까나리카노가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미션은 명쾌하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통과, 심지어 연달아 먹으면 두 배, 당연히 까나리가 걸리면 탈락이다. 예외는 있다. 까나리카노를 다 마시면 아메리카노와 같은 경우로 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 시즌을 다 합해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드디어 시작된 까나리 미션, 첫 번째 마신 라비는 당연하게 '본능적'으로 뱉고 만다. 그런데 반전은 두번 째 미션 멤버인 '딘딘'부터였다. 올해 하반기에 운이 좋다는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딘딘은 첫 번째 아메리카노를 순탄하게 넘기고부터 연속으로 까나리가 걸렸다. 그런데 그걸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신다? 나중에 차에 탄 그의 말처럼 아들이 1박2일에 들어가서 걱정되고 좋아서 하루 세번 기도하신다는 어머님 때문이었을까? 딘딘은 무려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에 걸쳐 까나리를 원샷하며 까나리 미션의 새 장을 연다. 제작진의 얼굴이 그가 까나리를 원샷할 때마다 굳어져 간다. 당연히  <1박2일> 역사에선 고려해 보지 않았던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름부터 낯선 '딘딘'이란 청년이 <1박2일>의 신입 멤버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난처한 처지를 뚫고 시작한 <1박2일> 시즌4의 가능성이 열린다.

<1박2일>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한도전>의 정신이 논바닥을 헤집던 <무모한 도전>이었듯이, <1박2일> 역시 혹한이든 혹서든 그 어떤 조건에서도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멤버들의 '헝그리 정신'이 아니었을까. 그게 강호동이었든 이수근이었든, 김준호였든 시즌을 상관없이 그들이 힘들고 고달퍼 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모습, 그게 바로 일요일 저녁이면 사람들이 무람없이 채널을 kbs2로 고정시킨 '본류'가 아니었을까.

바로 그 '1박'의 정신을 이제 시즌 4의 신입 멤버 딘딘이 까나리를 거뜬하게(?) 세 잔이나 원샷하며 새로이 부활시켜낸다. 과연 시즌3의 그 최악의 구설수를 저 낯선 멤버로 극복할 수 있을까란 우려를 '까나리 원샷'으로 대번에 불식시킨다. 두번 째 미션자 딘딘이 그러다 보니, 그 뒤의 멤버들도 본의 아니게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연정훈은 최연장자라 체면을 차려야 해서 마시고, 유세윤은 먹방의 대가답게 마시고, 예능 뽀시래기라는 김선호는 안절부절하다 마시고, 유일하게 시즌을 경험했던 김종민만 빼고. 모든 멤버들이 한 두, 심지어 세 잔 까지 마시며 시즌4의 새로운 공기를 만들어 낸다. 물론 까나리를 원샷한 덕분에 이어진 휴게소 화장실 레이스는 문세윤의 천연덕스런 중계와 함께 '애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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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어느덧 친근해진 멤버들
그리고 뜻밖에서 오프닝에서 데면데면하던 이들은 단 한 번의 까나리 먹방으로 동지애를 대번에 얻는다. 나이가 많다지만 어쩐지 어수룩하며 힘든 상황에서 나이 핑계대며 뒤로 물러서지 않는 연정훈에, 추임새하며 중계방송에 심지어 진행까지 능숙한 문세윤은 <맛있는 녀석들>의 먹방러 이상의 새로운 발견이다. 그와 함께 거의 '만담'에 가까운 콤비 플레이에 뭐든지 일단 '해보고' 보는 '딘딘'은 첫 회만에 정겹다. 아직 카메라가 낯선 김선호의 뽀시래기한 어색함과 초조함, 그럼에도 잘 해보려는 모습은 새 시즌의 정서를 한껏 살리고, 막내 라비의 똘끼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반전'의 묘미가 있다. 무엇보다 멤버들 각자가 예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꾀부리지 않고, 애써 웃기려 하기 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편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김종민, 왜 김종민이 거의 전 시즌에 '출석'할 수 있었는가를 첫 회에 다시 보여준다. 선배라 나서지 않고, 그러면서도 예의 까나리 먹방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느 틈에 저 새로운 멤버 중 한 명으로 낯설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놓아둔다. 그 어떤 시즌의 멤버들과도 이물감없는 어울림, 그것이야 말로 김종민의 장기가 아닐까, 그것이 시즌4의 첫 회에 다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렇게 어느 틈에 어우러진 김종민과 함께 불과 몇 십 분 만에 이 낯설었던 멤버들을 향해 익숙하고 친밀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1박2일>의 동질감이 놀랍다. 까나리를 비롯한 전통적 미션의 익숙함 때문이었을까? 면면으로 보면 하나하나 낯설지만 모두 모아놓으니 김종민을 비롯하여 모두가 그들이 '저를 아십니까' 라며 외치던 그 휴게소 인파들 가운데에 어우러져 버리는, 어쩐지 어디선가 마주쳤을 것 같은  친근한 면면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독불장군 강호동도, 이방인 김c도, 돌아이 정준영도, 머쓱대던 김주혁도, 심지어 생전 처음 본 일반인 참가자 까지 그 모두를 <1박2일>이라는 용광로 속에 잘 추스려 냈던 <1박2일> '전통'의 '제조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통은 소중하다. 하지만 전통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다. 버릴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그 경계가 늘 어렵기 때문이다. 시즌 4의 첫 회를 연 <1박2일>은 버려야 할 과거는 과감히 버리고, 낯설지만 새로운 그러나 익숙한 전통의 줄 위에 섰다. 첫 회만에 멤버들 면면이 벌써 친근해 졌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출발이다 싶다. 물론 갈 길은 멀다. 하지만 한 걸음을 잘 걸어냈으니 앞으로의 길도 기대해 볼만 하겠다. 

by meditator 2019. 12. 9. 00:31

2019년 6월 이탈리아 람페두사 해상 47명의 조난자를 실은 독일 NGO 시워치(sea-watvh) 3호는 입항 거부로 표류중이다. 이미 출항지였던 몰타에서 오랫동안 출항 보류로 인해 오랫동안 억류되었던 배, 이제 겨우 바다로 나와 '난민'을 구조했지만 그들을 반기는 항구가 없다. 

 

 

 
지중해를 떠도는 사람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난민' 문제가 낯설은 것이 아니다. 지난 해 제주도에 입국한 예맨 난민들을 둘러싸고 여론이 둘로 갈렸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갈곳없는 예맨 사람들을 기꺼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했지만, '가짜 난민', '범죄자', '테러리스트'까지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혐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우리의 문제 만이 아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난민들과 관련하여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바다 하나를 두고 삶의 질을 달리하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 사이의 지중해는 UN산하 국제 이주기구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이주자 발생지역 및 사망 지역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인종과 종교의 박해, 굶주림으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이 '보트 피플'이 되어 지중해 해상을 떠돈다. 

이른바 '유럽 난민 사태(European refugee crisis)'로 명명된,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본격적으로 지중해에 나타난 난민들,  2013년 이탈리아 람페두사 해상에서 이들을 태운 배가 좌초하여 366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이탈리아 정부는 이 지역의 군함으로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작전을 펼쳐 난민을 구했다. 하지만 이 작전으로만 구해진 난민들의 수가 무려 15만 명, 안그래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급격하게 증가한 난민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이 부담을 나누어지지 않으려는 유럽 타국가, 그에 따른 여론의 악화로 2014년 10월 작전은 종료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작전은 종료되도 지중해를 떠도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결국 시민 단체가 나섰다. 

12월 2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구조>는 유럽이 외면한 지중해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NGO 씨워스에 승선한 세계 각국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문제에 대한 화두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난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프란체스코 트리플리는 지금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시칠리아계 이민자이다. 그가 '이민자'였기에 '난민'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세계의 역사는 이주민의 역사이다.' 과연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 프란체스코. 좋은 환경에서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던 그는 그래서 이제 바다로 나선다. 

라이니니는 암스테르담에서 열쇠 수리공으로 일한다. 호출을 받고 달려가 문을 따주면 사람들이 기뻐하듯 지중해 조난 구조는 그렇게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알제리 태생이다. 4살까지 그곳에 살았다. 다행히도(?) 그는 부모가 유럽 출신이라 유럽으로 '이주'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인데 그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에 암스테르담 바다에 사람들이 빠졌다면 20척의 배가 달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국경에서 사람들은 '익사'하고 있다. 

독일에서 청소년 지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슈피 하니힐트는 난민 구조가 의무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않되는 인도적 범죄 행위라며 한 발 더 나아간다. 독일 남서쪽 숲이 있고 집집마다 정원이 있는 마을에서 자란 슈피네 근처에는 난민 수용 위원회가 있었다. 침대도 없이 현대판 감옥같았다고 그곳을 회상하는 그녀, 돈많고 럭셔리한 나라의 문 앞에서 매일 사람들이 '익사'하고 있는 현실, 거대한 묘지가 되어가는 지중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한다. 

그들이 달려간 바다, 그곳에는 도저히 지중해를 건널 수 없어보이는 20~25m의 고무 보트에 80여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거기에는 임산부도, 어린 아이도 있다. 며칠 동안 당연히 씻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며 구져져 생지옥 상태로 바다를 건넌다. 항해에 부적합한 고무 보트의 현실에서 조난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로마해상구조조정본부에서 조난 신고가 들어오면 씨워치 호는 달려간다. 순간적으로 보트의 바닥이 무너져 물에 빠진 사람들, 그들 중 상당수는 수영을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에 빠지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런 그들을 향해 구명 조끼를 던져주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게 바로 이들 볼런티어(자원 봉사), 씨워치 호의 청년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구조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2017년 11월, 배가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시체가 바다에 흘러가고 있었다. 2살 아이를 건져 심페 소생을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리비아 해안 경비대가 배를 출동시켜 구조하려 했지만 다시 리비아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기에 사람들은 그 배에 오르지 않는다. 

 

 

지중해는 누가 구하나? 
자연재해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기로 하여 생긴 일, 그래서 베를린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는 막스의 신념은 단순하다. 나치부터 난민까지 누가 되었든 인간은 모두 똑같고 중요하기 때문에 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나치를 구하듯 난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들을 죽지 않게 하는 건 쉽다. 가서 구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바다로 나서는 일이 매번 쉬운 건 아니다. 그들은 혹시라도 그들이 탄 배가 납치범에게 납치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생존 확인서'를 쓰고 배에 오른다. 난민들이 제 아무리 바다에 빠져 쓸려가도 이들 NGO 난민구조선 승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드는 건 금지사항이다. 막스는 그 금기를 깨뜨렸다. 죽어가는 임산부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다. 어렵사리 그녀를 구조하고 자신의 몸도 말리지 않은 채 두 시간여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료진과 함께 악전고투를 한 후 홀로 갑판에 나와서 울었다.

그들이 나선 어둠이 내려진 바다는 깜깜하다.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죽음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 바다에서 돌아온 후 항해사인 크라인아우트는 삶에 대한 '무지'를 잃었다. 난민들의 비참한 상황은 '추하다'. 그 혼란스럽고 미치겠는 상황을 견대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바다로 뛰어든 그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이제 스물 여섯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나이가 된 그는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의 '맹목적'이라 할만한 '인도주의'에 세상은 차갑다. 100유로면 갈 수 있는 거리, 생존을 위한 목숨을 건 마지막 항해, 그러나 난민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잣대는 냉정하다.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떠나 좀 더 돈을 벌기 쉽고 안전한 환경으로 떠나는 이들을 '기회주의자'라며, 구조하는 행위에 대해 '브로커'의 배만 살찌우는 행위라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사람을 넘기는 '인신매매'의 한 유형이라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난'에 대해 씨워치 호의 청년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그들이 난민 지위 확보를 위해 적절한 지역으로 옮겨주는 것일 뿐이라고.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사람의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그건 국가와 정치가 판단할 몫이라고. 그리고 그런 '비난'의 근저에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겁먹은 마음이 내재해 있지 않냐 묻는다. 부디 다르게 보일 뿐인 생명에 대해 '너그러움'을 가지라고. 그저 그들은 바다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목표일 뿐이라고. 

김연식 씨, 항해사로 10년을 일했다. 지금은 제주에서 7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집과 씨름 중이다. 그는 씨워치 호의 항해사이다. 자신은 그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연식 씨, 그는 그렇게 광화문 광장을 가듯 지중해로 간다. 지난 5년간 김연식 씨와 같은 500여 명의 볼런티어들이 3000 여명 이상의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by meditator 2019. 12. 3. 21:00

경상북도 23개의 시군과 경상북도 경제 진흥원에서는 경상남도의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을 통하여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청년 창업팀,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모집한다. 자격도 단순하다. 만 15세 이상 39세 이하 대한민국 국적의 청년들, 출신지, 현 거주 지역 전혀 상관없다. 2019년 기준으로 100 여명의 청년을 모집했다. 여기서 뽑히면? 개인당 3000만원의 지원금이 주어진다. 

서울에서 3000 만원이라면 월셋방 하나 겨우 얻을만한 비용이다. 가게?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그 3000만원의 돈으로, 지방에 내려가 창업을? 서울에서도 창업하는 가게보다 폐업하는 가게가 많은 현실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 '맨 땅에 헤딩'같은 일을 실제로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sbs스페셜 <시골 가게 영업 비밀>이 그들을 찾아간다. 

 

 

시골 마을 북적이는 수족관 
경북 경산시 진랑읍 버스에서 내려서도 30분을 걸어가야 하는 거리에 지난 6월 수족관이 생겼다. 할아버지 대부터 살던 집 옆에 세워진 수족관, 그 곳에 자칭 '코리 아빠' 이현우 씨가 있다.

이 외진 곳 드나드는 사람이나 있을까 싶은 곳에 휴일 주차장이 가득 찼따.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물생활', 관상어 기르기가 유행이라더니 그래서일까? 가족끼리 삼삼오오 수족관 속 신비한 열대어 관람이 한참이다. 이 먼 곳을 어떻게 찾아왔냐는 질문에 '내비'만 있으면 어디는 못가겠냐는 '현답'이 돌아온다. '온라인' 관상어 기르기 까페를 통해 난 입소문이 이곳을 '물생활 마니아의 성지'로 만들었단다. 

그래도 '조그만 물고기'나 키워서 돈이 될까? 이현우 씨가 주로 취급하는 물고기는 청소 물고기로 알려진 '코리도라스', 작은 몸집이라 얕볼 것이 아니다. 그 한 종류인 '인콜리카다'는 마리당 60만원을 호가하고, '제브리나'는 다 크면 12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니. 그러다 보니 잘 팔리면 하루 매출이 100만원이 넘는 날도 있다고. 

장장 7년의 공시 장수생이었던 이현우 씨는 어떻게 물고기 아빠가 됐을까? 오랜 취준 생활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에게 조카가 함께 잡아온 붕어를 키워보라 권유했고, 그 붕어를 키우며 수조안에 만든 나만의 세상을 통해 10년만에 느껴본 성취감이 그로 하여금 '공시생'의 길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지난 2018년 39세에 턱걸이로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통해 얻은 지원금으로 수족관을 완성해 현재 성업 중이다. 부모님께 용돈 한번 드려보지 못했다고 울먹이는 현우씨, 하지만 이젠 아들의 수족관에 필요한 재료들을 함께 마련하고 틈틈히 들여다봐주시는 부모님이 현우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허허벌판 컨테이너가 품은 야심찬 꿈
경북 경주시 강동면 허허벌판에 박송안 씨의 컨테이너가 있다. 난방이 되지 않아 조만간 겨울 추위가 닥치면 입이 돌아갈 거 같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송안 씨는 귀촌한 어머님이 여신 까페 한 귀퉁이에 디자인 가게를 친구 지민 씨와 함께 준비중이다. 

시골에서 디자인 가게라니? 송안 씨의 컨테이너가 자리한 곳은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 마을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는 이곳 마을 곳곳에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문화 유산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사람들이 와서 그냥 보고만 가는 것이 아까워 이곳에 양동 마을의 문화적 컨텐츠를 꾸려낸 복합 문화 공간을 꾸려보겠다는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세운 송안 씨, 그 계획으로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지원했던 송안 씨는 촬영 도중 합격 발표를 받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허허벌판에 펼쳐질 자신의 마스터 플랜을 자랑해 보인다. 

그래도 이런 외진 곳에서 장사가 되겠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외려 송안 씨는 '옛날 분'이라며 타박한다. 대구에서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송안 씨의 꿈은 자신의 공간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하는 것, 인스타 등을 통해 홍보가 가능하고, 지구 반대편 그 어디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고객과 연결 될 수 있는 세상에서 파는 건 문제가 안된다고 장담한다. 지금은 허허벌판에서 애벌레에 질색하면서도 푸성귀를 뜯어 끼니를 해결하고 어머니 가게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형편이지만 자신의 '사업'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그 어떤 벤처 기업가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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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 가능한 가게 
예림이네 가게는 남해 석교리에 있다. 아이들과 갯벌 체험을 왔던 예림이네는 마을이 너무 좋아 몇 번을 들르다 그만 이곳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도 농사를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아 장사를 시작했다는 예림이네. 목공이 취미인 아빠는 태풍으로 바닷가에 떠내려 온 나무로 뚝딱뚝딱 물건을 만들어 내고, 그 물건은 엄마가 주인인 가게의 유용한 소품이 된다. 

이제 3년 째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사는 이곳은 어느덧 동네 사랑방이 되었고, '빌어먹을 것이다'라는 어르신들의 우려와 달리 시골이라 투자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수익률은 최고, 가족이 먹고 살 만큼은 벌어 먹고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보다 예림이네를 만족시키는 건 한참 커가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하루 온전히 가족을 위해 충만한 시간이 된다. 

경북 성주군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는 권은아 씨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인심 덕분에 잔뜩 얻은 늙은 호박으로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실험 중이다. 보증금 천 만원에 월세 80만원인데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자체 연구 제조실에 개인 공간까지 넉넉함을 넘어선다. 

그런데 이 외진 곳에서 아이스크림이라니?  역시나 전국 어디 30시간 정도는 너끈히 냉장 보존 처리가 되는 첨단의 배달 시스템이 첨가물 없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전국구 인기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름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거저다 시피 나눠주신 참외로, 늦가을 늙은 호박 등 이 지역에서만 나는 천연 재료가 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능케 하는 원천이다. 

하지만 꼭 장사가 잘 되기만을 위해 시골을 찾는 건 아니다. 손님이 적을 것같은 아이템을 찾아 우도에서 책방을 연 이의선 씨 부부도 있다. 하루에 열 권, 아니 이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20권만 팔면 된다는 부부의 초심은 '돈을 중시하지 않겠다는 것', 우도를 찾은 관광객이 탄 페리호가 떠나는 그 시간이 되면 서점도 문을 닫는 부부의 우도 라이프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시에서 한평생을 열심히 일만 하시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셔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라는 회의가 들게 되었다는 의선씨, 외로웠던 서울 생활을 결혼과 함께 접고 아내 최영재 씨와 함께 5년전 우도로 내려와 서점을 차리게 되었다는 것. 그래도 책이 팔리는 게 희한하다는 이들 부부의 '영업 비밀'은 바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팔기 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나를 지켜내는 시간 때문에 시골로 내려온 이들도 있다. 혹은 '시골'이라 가능한 재료들을 찾아 그곳에 연 가게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라면 가게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할 그들의 '꿈'을 맘껏 풀여낸 공간이 시골이라 가능했기에 시골로 내려온 이들이 있다. 오프라인 마트가 온라인 상권에 어느덧 고심하게 되는 시절, 어쩌면 이 시골 마을의 가게들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도시의 한계를 넘어선 이 시대의 색다른 첨단 사업일 수도 있겠다. 

by meditator 2019. 11. 18. 15:21

남자와 여자, 그 '커플'의 이야기가 드라마 스페셜에서 빠질 수 없다. 올해도 변함없다. 하지만, 저마다의 삶을 짖누르는 무게가 가일층 극심해진 시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라는 젠더의 관계보다, 세상에 맞서는 '동지'로 손을 맞잡는다. 바로 <사교-땐스의 이해>와 <때빼고 광내고>이다. 

 

 

<사교- 땐스의 이해> - 꼭 남자만 여자를 들어올리란 법이 어디 있어!
언젠가부터 대학 생활은 두 단어로 정의되어 버렸다. '인싸'와 '아싸',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그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올곧이 '개인'으로 그 어떤 곳에도 '소속'됨이 없이 학교 생활을 스스로 감내한다. 바로 이 극와 극의 성향을 가진 '인싸'와 '아싸'가 본의 아니게(?) 만났다. 

병현(안승균 분)이는 자타공인 인싸다. 늘 만나는 사람마다 밝은 얼굴로 안부를 묻고 과의 일정을 홍보하는 인싸 중에서도 이른바 핵인싸. 이미 경영대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이지만 그 어떤 수업 시간이라도 학생을 대표할 그 누군가를 뽑는 자리에서 선뜻 손을 든다.  

반면, 수지(신도현 분)는 오늘도 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저어'하면 하루 일과를 보낸다. 자신의 이름이 혹시나 불러질까 두려워하고, 점심 시간 도시락도 혼자 화장실 한 칸에서 꾸역꾸역 해결해야 하는 '아싸' 라기에도 과하다 싶을 만큼 '대인 기피'의 수준이다. 

이렇게 핵인싸와 대인기피 아싸 병현과 수지가 각자의 사정으로 '사교-땐스의 이해'라는 과목에서 만났다. 심지어 시험 대신 함께 춤을 추어야 하는 커플 추첨에서 두 사람은 커플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의 신장이다. 차이가 너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차이가 수지는 보통의 여성들보다 훤칠하고, 병현이는 경영대 GD라는 별명처럼 깔창을 몇 개나 깔아 자존심을 챙기는 처지다. 신체적 컴플렉스, 하지만 그 '외양'은 그저 겉모습에 머물지 않고 두 사람의 '존재'를 규정한다. 

남들보다 작은 키로 인해 고등학교 시절 위축됐었던 병현이는 지금도 우유는 먹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작다 억지로 우유를  쏟아붓는 등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수지 역시 남들보다 훤칠한 키로 인해 모처럼 잘 차려입고 나간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병현이와 얽힌 악연으로 인해 대학 내내 그림자 같은 '아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두 사람을 얽어매는 각자의 컴플렉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규정'되어 있는 사교 댄스는 키가 작은 병현이와 키가 큰 수지가 함께 하기에는 '난감'하다. 

드라마는 키가 너무 커서 아싸가 된 여자와 키가 너무 작아 그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인싸가 된 남자를 커플로 조우하게 한다. 그리고 그걸 통해 우리 사회 젊은이들을 얽어매는 세상사의 '기준'들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당연히 인싸라 밝고 자신감이 넘칠 것같았던 병현이, 아싸라 그저 도망가기만 할거 같은 수지, 하지만 인싸니 아싸니를 넘어,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넘어 두 사람은 키가 크고 작음을 떠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상대방을 공감하며 위로한다. 그리고 비로소 그때 함께 서로의 손을 잡는다. 이 절묘한 조우, 이제  그들이 추는 춤은 지금까지 '사교 댄스'라는 이름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들었던 그 춤과는 격이 다른 춤이다.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을 넘어선 서로 위로간 된 커플의 한 판 땐스, 주제와 형식의 기가 막힌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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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빼고 광내고> - 내가 원했던 꿈은 아니지만 돈도 벌고 사건도 해결하고 
여기 또 다른 커플이 있다. 그들 역시 사교 땐스 수업에서 만난 병현이와 수지처럼 첫 만남은 악연이다. 시작은 태랑(박은석 분)이다. 만년 취준생, 오늘도 어김없이 또 떨어졌다. 질문을 잠시 놓친 자신에게 무례한 말을 퍼붓는 면접관에게 예의 결벽증으로 당신도 깔끔하지는 못하다고 대거리를 하고 나왔으나 마음이 편할 리가. 바로 그 때 어릴 적 동네 옆집 형 영배(임지규 분)에게서 연락이 온다. 

형을 따라 나선 접대 자리에서 만난 대기업 임원은 태랑이 죽은 자기 아들과 닮았다며 관심을 보이고 그 관심은 영배 형을 통한 취업 알선, 아니 취업 사기로 이어진다. 휴일도 없이 미용사로 일하며 번 돈을 기꺼이 아들의 취업을 위해 내준 어머니의 금쪽같은 돈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당연히 그 대기업 임원이 꼿아주었다는 자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믿던 형도 잃고, 직장도 잃고, 돈도 잃은 태랑은 며칠전 다짜고짜 그를 찾아와 자신과 함께 일해 보자던 안나(나혜미 분)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그가 직장에 다니는 줄 아는 어머님을 위해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태랑이 정리 결벽증이 맘에 든다며 '스카웃'한 안나의 범죄현장 청소 업체에 함께 울며 겨자먹기로 함께 하기로 한다. 

경찰고시만 붙었다면 지금쯤은 범죄 현장을 누빌 것이라며 범죄 현장에 흥건한 피 쯤이야 암껏도 아닌 안나와 그녀가 다짜고짜 집으로 쳐들어와 본 면접에서 합격점을 받은 취업사기당한 깔끔 청년 태랑은 이름조차도 생소한 범죄 현장 청소 업체의 사장과 직원으로 호흡을 맞춘다.

한때는 취준생이던 두 사람이  본의 아니게 하게 된 범죄 현장 청소 과정에서 발견한 돈 봉투, 그 돈봉투를 통해 태랑은 자신처럼 마지막 동앗줄이라 잡은 게 그만 취업 사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지후(병현 분)를 만나고, 안나와 함께 지후를 죽음으로 몰아간 취업 사기 사건에 뛰어든다. 

만년 취준생이라는 답답한 현실을 범죄 현장 청소라는 기발한 직업을 통해 풀어간 이야기, 출판사 편집주가 범죄 현장을 닦는 청소로 변했지만 그 달라진 꿈만큼 이시대 젊은이들을 억누른 현실에 대한 진폭의 궤도를 달리한다. 현실에서 길어올린 기발한 소재, 하지만 그저 가볍지만은 상상력의 조합은 궤도 위에서 막연한 젊음을 역설적으로 위로한다. 

by meditator 2019. 11. 16. 21:06

장장 5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한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6부작이 만들어진 시간이다. 1,2부  진화 심리학적으로 '증오'의 기원을 추적했던 다큐는 '증오'가 진화의 결과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정서적 기제'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 '내재되어 있는' 증오의 문을 열어제치는 건 무엇일까? <3부,증오를 부추기는 기술>은 바로 그 '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열려진 문'은 봇물처럼 증오를 키워 '극단주의'까지 흘러넘친다. 바로 <4부, 증오의 극단주의>이다.

 

 

3부. 증오를 부추기는 기술 - 누가 증오를 부추기는가? 
에돌아 갈 것도 없다.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젤라니 콥은 오늘날 사람들을 부추겨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주범으로 '카리스마적인 리더와 언론'을 손꼽는다. 특히 중립적 사실 보도를 사명으로 했던 '언론'은 이제 그 어떤 단체보다도 당파적이며 편향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극단적인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리더와 언론의 선전, 선동은 사람들에게 편향적 시각을 갖게하는 걸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우려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94년 무려 백만 명이 살해당한 르완다 학살이다. 벨기에는 르완다를 식민 지배하며 소 10마리 소유를 기준으로 투치족과 후투족을 나눴다. 15%의 소수 투치족이 85%의 다수 후투족을 지배하며 반목을 거듭, 시간이 흐르며 이들은 서로를 다른 종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후투족 언론, 그 중에서도 친정부적 어용 언론이었던 '캉구라'는 투치족을 마치 '바이러스'처럼 없애야 할 대상으로 '반투치 선전'에 열을 올렸다. 문맹자가 많았던 르완다에서 영향력이 컸던 라디오 방송국은 더했다. 투치족을 인간이 아니니 죽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며 '바퀴벌레 소탕작전'이라 부추겼다. 더구나, 지주 계급이었던 투치족을 죽이면 그들의 땅을 소유할 수 있다고, 그러니 더 많이 죽여 더 많은 땅을 가지라 선동했다. 

이렇게 언론과 방송을 통한 지속적인 선동, 거기에 투치족은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아이들과 노예들을 죽였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난 후투족 사람들은 투치족을 상대로 싸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자신들이 지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거라는 '공포'를 내재화 시키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 선전의 '핵심'은 '비인간화'이다. 유대인들에 대해 지하에 들끓는 쥐떼와 같다고 했던 나치처럼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라며 박멸해야 할 존재로 치부했다. 공격해서 죽이는 게 당연한 것이라며 대량 학살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스며들은 선전과 선동은 사회적 인지 능력인 공감 기능을 관장하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을 떨어뜨린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도표로 만들어 놓고 미국에서 342명에게 조사를 했다. 질문에 답한 미국인들 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진화의 최종 단계인 100%라 답했다. 반면 이민자인 멕시칸들은 75% 정도 밖에 진화되지 못한 존재라 여겼다. 유럽인도 마찬가지다. 무슬림에 대해 60%라, 즉 미개하고 야만적인 존재가 간주했다. 

문제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편견이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활개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찰스턴 감리교회에 들어가 성경 공부 모임을 하던 흑인들을 총기로 난사한 빌런 도프. 그는 흑인들이 매일 백인을 죽이고 백인 여자를 성폭행하고 있다는 가짜 뉴스를 인터넷을 통해 '습득'했다. 

백인에 대한 흑인들 범죄를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 빌런,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사이트는 '보수 시민 위원회'라는 백인 우월주의 선전 사이트였다. 문제는 이 사이트가 '사실'에 근거한 검색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더 내면 상위에 링크시켜주는 구글의 상업적 알고리즘의 결과였는데도, 사람들은 마치 오늘의 날씨를 검색하여 취득하는 '사실'처럼, 이들 사이트에 대한 '사실적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구글'등의 검색 사이트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증오'를 퍼뜨린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라며 사람들은 예외적인 일탈로 여기지만 다큐는 바로 그런 인간의 '증오'에 기반한 대량 학살에 이르는 행동은 인간 역사가 가진 오랜 전통의 산물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은 인간이 가진 이 전통이 산물을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기꺼이 이용한다는 것도. 

지난 2018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재선 가도에서 떨어지는 지지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반난민 정책'을 자신의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외국인 침략자가 몰려오고 있다'며 유세 내내 공포를 부추겼고, 바로 자신이 맞서 싸울 적임자라, 헝가리를 지킬 수 있다며 '증오'를 불지르며 '대중 영합적 민족주의 운동'을 조장했던 빅토르는 결국 재선에 성공했고, '반난민, 반EU' 정책을 앞세워 4선까지 기세를 몰아붙였다. 

 

 

4부. 증오의 극단주의 - 결국 리더의 조종이다 
바로 이러한 '증오'의 분위기 속에 '극단주의', 그리고 급진화된 개인이 탄생한다. 필라델피아 빈민가 출신의 청년 프랭크는 1971년 '백인 우월주의 스킨헤드'가 되었다. 다. 나치 깃발을들고 자신들이 유대인의 희생양이라 여기던 집단에서 가족과도 같은 소속감을 느꼈다. 미국이 유대인에 의해 소돔과도 같이 타락했다며 행동에 나선 그는 총기 판매, 조직원 납치 감금을 일삼다 17살에 구속되어 3년 형을 살게 되었다. 

학대받던 가정에서 16살에 도망쳐 나온 제시 모틀은 말콤 X의 자서전을 읽고 이스람교로 개종했다. 유누스 압둘라 무함마드로 개명한 그는 살라피 자하디즘에 헌신, 오사마 빈라덴을 지지하며 알카에다 조직원을 모집하여 보냈다. 

극단주의 전문가인 샤샤 하블리첵은 백인 우월주의건, 극단주의 이슬람이건 다 똑같다고 말한다. 오늘날 전세계적에서 조직적으로 부상되고 있는 극단주의 단체 이들의 1차적 목표는 편가르기이다. 

1971년 필립 짐바르도 교수에 의한 유명한 지하 감독 실험이 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니 편과 내 편을 나누고 이들을 죄수와 간수로 분하게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간수의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잔인해졌다. 쇠사슬로 죄수를 묶는가 하면, 변기 청소를 시키고 기합을 하는 등 가혹 행위까지 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은 자연스럽게 맡겨진 역할에,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되는 것일까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실험에는 '비밀'이 있었다. 2001년 BBC에서 일반 대중 15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한 것이다. 간수로 뽑힌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감옥을 운영하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1971년과 달리 간수들은 가혹 행위는 커녕 자신이 간수가 되어 죄수를 통제하는 상황을 싫어했다. 

그리고 1971년 실험에는 실험의 배후 짐바르도 교수가 간수들의 가혹 행위를 '조장'했다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인간들이 간수건, 죄수건 주어진 역할에 무조건 충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극단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가는데에는 '리더의 지시'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리더의 지시'를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이라크 전 당시 잔혹 행위가 발생했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사례이다. 

 

 

2008년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증가한 백인 우월주의, 이에 트럼프는 '나는 당신들과 같다'며 이를 부추겼다. 위험을 필요이상으로 부풀리고 행위에 대한 칭찬과 보상을 약속하며 거기에 그럴싸한 대의명분까지 더해지면, 상황에 던져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같이 되면서 극단주의적 행동을 서슴치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 정치를 이용한 정치는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극단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엄격한 법'일까? 이에 대해 한때 스킨 헤드족이었던 프랭크는 회의적이다. 그를 구속했던 법도, 그가 거리에 나설 때마다 그에게 퍼부어지던 욕도 그를 바꾸진 못했다. 외려 그를 바꾼 건 나치 문신과 스킨 헤드 복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었으며 그의 일탈을 견뎌준 유대인 상점 주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했던 이슬람 극단주의자 제시를 변화시킨 건, 그가 조직원들을 알카에다로 보냈던 모로코에서였다. 그가 미국에서 당연히 누리던 것들, 언론의 자유라던가 하는 것을 위해 모로코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며 싸우는 것을 본 제시는 지금까지 그가 투쟁했던 '극단주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모든 프랭크에게, 제시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바로 우리 인간 사회의 비극, 그 악순환을 낳는다.  





by meditator 2019. 11. 15. 19:35

시각장애인 이동우, 절단 장애인 신명진, 뇌병변 편마비 김종민, 청각 장애 김예진, 시각 장애 김민우, 이들이 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이 스튜디오에서 그들을 부르는 명칭은 '별일없이 사는 이웃', 별 일없이 산다는 이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토크쇼가 있다. 매주 월요일 밤 11시 35분 찾아오는  ebs1의 <별일없이 산다> 이다. 

 

 

mc 조우종과 함께 장애우, 비장애우가 '이웃'이란 호칭으로 모여 지난 9월부터 11월 11일까지 8회차에 걸쳐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들리지 않는 이를 위해서는 '수화' 통역사의 도움이 더해지고, 보이지 않는 이를 위해서는 옆 이웃의 친절한 해설이 곁들인다. 어색할 거 같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장애'의 벽이란 것이 막상 함께 하면 조금 에돌아 갈 뿐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시간 바로 <별일 없이 산다>이다. 

빅 데이터에서 '부질없다, 감동하다. 정확하다. 사랑, 설레다, 고맙다.' 등의 단어로 등장한 11월 11일 8회차의 주제는 바로 '결혼'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도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는 시대. 취업도 하기 힘들고 취업을 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들다고 하는 시대에 젊은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과정의 버거움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스튜디오에 모인 '별일 없이 사는 이웃'들은 어땠을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 
뇌병변 편마비 김종민 감독은 결혼은 미쳐야 하는 것같다고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그런 이 시대 상식적인 단정에 8백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8백명 구독자를 가진 유투브 크리에이터 시각 장애인 김민우 씨는 미쳐서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물들어 가다보니 결혼을 꿈꾸게 되는 것이라 '낭만적'인 반기를 든다. 

스다르가르트 병이라는 희귀 유전병 때문에 암점이 점점 커져 시력을 잃게 된 김민우 씨는 컴퓨터 화면의 글씨를 최대로 확대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의 시력이 남아있다. 안마사를 했었고 지금은 시각 장애인 골볼 선수인 그는 그의 전담 카메라맨이자 그가 하는 골볼 심판이 되어 그를 전담 마크하는 아내 한지혜 씨와 8개월 째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다. 

 

 
정상인인 이상미 씨도 막상 하려보니 희말라야 등반을 하는 마음이라는 하소연을 하는 극한 미션 결혼, 하지만 한지혜 씨는 김민우 씨와의 신혼 생활에 대해 정상인들이 10 할 수 있는 걸 4나 5해줘서 서로 갈증하게 되는 결혼 생활에 대해 정상인에 비해 겨우 6가지 밖에 해줄 수 없지만 그 6가지에 최선을 다하는 김민우 씨와의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첫 눈에 반했지만 쉽지 않았단다. 시각 장애인, 더구나 유전병이었기에 친구, 가족 모두가 반대했던 결혼, 중증 절단 장애인인 신명진 씨 역시 자신과 같은 동료 사서였던 8년 연하의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까지는 달콤했지만 막상 상견레 자리에 가니 아내 부모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는 경험담을 나눈다. 같은 청각 장애인이라지만 나라마다 수어가 달라 국제 수어로 사랑을 나누어 모로코인 칼리드와 결혼에 이르렀다는 김예진 씨는 이제 두 살배기 아들의 재롱에 한참 빠져있다고 고백한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 순간, 결혼은 필수가 된다는 이웃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가족이 바로 배우자라고 말하는 그들의 결혼은 마흔 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다 결혼 이후 '사랑의 인사', '위풍당당 행진곡' 등 수려한 명곡을 탄생시킨 작곡가 엘가의 사례와도 같다. 

결혼에 대한 비관주의가 지배한 세상에서 <별일 없이 산다> 속 결혼 이야기는 마치 편견이 가득찬 세상에서 '낙관주의'가 가득한 별일 없는 이웃들을 지향하는 <별일 없이 산다>의 정서를 이어간다. 마치 장기하가 부른 동명의 노래 제목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은 웃으며 말하지만 유전병을 이기고 결혼에 이른 김민우 씨 부부와, 장모님 앞에서 자신의 장애로 인해 한없이 부끄러웠던 위기를 극복한 신명진 씨의 웃음은 마치 가을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난 가을꽃처럼 강인한 사랑의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친구의 생생한 고민을 취재하는 코너에서 뇌병변 편마비 감독 김종민의 결혼하고 싶은 고민을 다루었지만 어쩐지 그 고민의 결이 다가오지 못한다. 조금 더 현실로 한 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이 시대 청춘들이 결혼에 대해 가장 큰 짐으로 여기는 건 바로 경제적인 문제이다. 그런 현실적인 고민들을 담아내 보면 어땠을까? 보고 있으면 궁금해 지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김예진 씨 부부는,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김민우 씨 부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지, 막상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이다. 이미 성공적으로 사랑의 성취를 이룬 부부들이 나와 아침 방송 식으로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니 결혼에 성공했어가 아니라, 장애만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이렇게 극복했어라든가, 아니면 결혼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쳐 있는 싱글 이웃이라든가,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다른 입장의 이웃들의 의견도 같이 함께 하는 자리였으면 별일 없이 사는 이야기의 내용이 좀 더 풍성해 졌을 것같다. 그저 낭만적인 결혼 성공의 후일담 식으로 전개된 <별일 없이 산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장애우 결혼 캠페인 프로그램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장기하가 그의 노래에세 별일 없이 산다고 하는 건, 정말 별일이 없어서가 아니지 않았을까? 별일이 만연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하루하루 즐겁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것이었을진대, 그런 진짜 별일 없이 살 수 있는 '현실적 공감'의 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9. 11. 12. 16:29

조선 건국, 이방원이 주도한 왕자의 난, 그리고 광해군, 인조 반정 등은 이미 사극으로 숱하게 만들어진 역사적 소재들이다.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가의 말처럼, 사극은 오늘에 발을 붙이고 '과거'의 이야기들을 늘 새롭게 '각색'한다. 바로 '조선 건국'과, '광해군' 시절의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누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 속 인물들은 때로는 영웅이 되고, 때로는 악의 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2019년 가을에 찾아온 이 '역사'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시 씌여진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이름을 가진 역사 속에서 상상력의 힘으로 탄생한 아들들은 '아비'의 나라라는 숙명에 맞서 싸운다. 

 

 

아버지와 아들, 그 애증의 관계 
<나의 나라>는 고려 말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당연히 이성계 부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극중 이성계로 분한 김영철과 그의 다섯 번째 아들인 장혁이 분한 이방원은 그간 이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사극과 달리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 개국과 그 이후 다시 벌어진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는 바로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의 '부자의 애증' 관계가 놓여있다. 

'애썼다', 그 한 마디면 됐을 거라는 이방원, 하지만 아비인 이성계는 자신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동지이자, 아들 중 가장 특출났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을 끊임없이 견제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제 왕좌를 이어받기에 차고도 넘치는 아들들을 두고 후처로 맞이한 선덕왕후 강씨에게서 난 어린 왕자 방석을 후계자로 삼았다. 결국 이런 이성계의 결정은 아버지의 신임을 얻지 못한 방원이 스스로 왕좌를 찬탈해 가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초래하고야 만다. 

이렇게 이성계와 이방원의 엇갈리는 부자의 애증 관계가 드라마의 씨실이 된다면, 그 씨실의 결을 채워가는 건 또 다른 부자의 애증관계이다. 바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앞장선 남전, 안내상이 분한 남전은 정도전과 남온을 합친 듯한 가상의 인물이다. 일찌기 고려의 실력자였고, 이제 조선의 건국에 앞장선 개국 공신, 그런 그의 위세 앞에 그림자 속에 숨어든 청년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들 남선호(우도환 분)이다. 하지만 그는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없는 노비의 아들인 '서얼'이다. 적자인 형이 물에 빠져죽자 니가 죽었어야 했다는 모진 말을 들으며 자란 남선호는 세상에 보란듯이 '입신양명'하여 아버지 남전 앞에 당당하고 떳떳한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과 시험에서도, 요동 정벌에서도 늘 운명의 고비에서 '인정' 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그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아비의 주군인 이성계에게 중용이 되었지만, 남선호는 결국 깨닫고 만다. 아비인 남전에게 자신은 그저 '권력'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었던 연이의 죽음 앞에 선호는 이제 더는 아비의 '개'가 되지 않겠다 결심한다. 아비의 추악한 뒷모습을 남김없이 확인하고나서야 비로소 아비에게서 자유로워지려한 아들, 하지만, 그 결심은 이미 늦었다. 그가 어찌해보기도 전에, 자식보다 '권력'을 탐한 아비는 가 그 '권력'의 칼날 앞에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주인공인 서휘(양세종 분)는 아버지가 없다. 이성계의 오른 팔이었던 서휘의 아버지 서검은 우연히 알게된 비밀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어린 동생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서휘, 동생을 살리기 위해 남전의 첩자가 되었고, 이방원의 칼날 앞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시련 속에서 다듬어진 서휘의 기지는 이방원의 눈에 들었고, 서검의 아들은 그를 죽음의 끝에서 건져낸다. 아비가 없었지만 적과 내 편을 알 수 없는 정쟁 속에서 어느덧 '부자'와 같은 돈독한 믿음을 가지게 된 이방원과 서휘, 불신의 부자 관계들 속에서 외려 이 '의사 부자' 관계의 믿음이 결국 역사적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서 <나의 나라>를 주목할 관전 포인트이다. 

 

 

아들을 죽여야 사는 아비 
광해군은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의인왕후 박씨에게서 소생을 얻지 못한 채 공빈 김씨 등에게서 임해군, 광해군 등 13명의 아들과 10명의 딸 본 선조, 그 자신이 후사 없이 죽은 명종의 대를 이었던 조선 최초 방계 혈통의 왕이었던 만큼 정실에 의한 왕가의 계승을 중요시여겼다. 그래서 그의 나이 51세, 선조 자신이 19살인 인목왕후를 정비로 들였다. 

하지만 이미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버리고 '파천'을 벌이는 등 권위가 떨어진 선조와 달리, 문제가 많았던 임해군 대신 세자가 된 광해군이 신하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kbs2의 <녹두전>은 바로 이런 선조와 광해군이 가진 부자의 갈등 관계를 불러온다. 임진왜란이라는 위급한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던 선조는, 그 광해군 대신 광해군이 낳은 아들을 왕으로 책봉하겠다고 했다는 역사적 상상력을 덧댄 것이다. 

이미 세자로서 전장을 누비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왕이 될 날만을 고대하던 광해군에게 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였고, 결국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차마 갓난 아이를 죽일 수 없었던 왕의 벗이자 충직한 신하였던 정윤저(이승준 분)는 허윤의 묵인 아래 외딴 섬으로 가 왕의 아들인 녹두를 자신의 아들인 양 키운다. 

 

 

그러나 좁혀져 오는 왕의 의심을 피해 녹두를 없애려는 허윤의 피습은 외려 녹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찾아 한양을 찾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과부촌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과부가 되는 여장을 해서라도 존재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 녹두는 결국 자신이 왕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조금 더 왕의 곁으로 다가가기 위해 무과에 응시하고 녹두가 자신의 아들인 줄 모르고 광해군을 그를 급제를 시켜 자신의 곁에 둔다. 

한편 일찌기 아버지로 부터 시작하여 늘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을 감출 수 없었던 광해는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했고, 아버지가 후사로 삼으려 했던 영창조차 궁에서 쫓아낸다. 그런데 이제 죽였던 아들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벗인 허윤조차 한 칼에 베어버리는 폭주를 하는 광해, 그런가 하면 정작 가장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훝날 인조 반정의 주인 율무, 그리고 광해군의 곁에서 그가 가장 믿을 만한 무관이 되어 아비의 폭거를 지켜보게 되는 녹두,  광해군의 운명이야 이미 역사적으로 판명난 것이지만 역사적 상상력으로 덧댄 뒤늦게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 광해의 아들은, 죽여야 했던 자신의 아들을 알게된 광해는 과연 어떤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 이 부자 관계의 행보가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9. 11. 11. 15:12

그 어느 때보다도 광장이 뜨거웠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으로 대립한 사람들은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만족치 않고 광장으로 뛰쳐나갔다. 그저 의견이 다르다 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극명하게 서로에 대해 '증오'에 가득한 말 폭탄을 쏟아놓는 시절, 과연 이런 '대결'의 현실이 '봉합'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당사자들은 '봉합'이 아니라 자신들의 '옳은' 의견을 '정리'되어야 한다고 '단언'할 것인다. 문제는 그 '대결'의 양자가 모두 그러하다는 것이다.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대립, 궁하면 돌아가라는 '선인'들의 지혜를 빌려봐야 하나.  kbs1이 그 지혜의 실마리를 풀어놓았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한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시리즈이다. 11월 5일과 6일에 걸쳐 방영된 1,2부는 '증오', 그 기원의 진화론적, 사회사적 의미를 파헤쳐본다. 

 

 

증오의 기원
진화심리학자 브라이언 헤어와 함께 탐구한 1부 증오의 기원, 다큐는 '증오'는 인간의 본성인가?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간과 유전자가 99% 일치한다는 보노보와 침팬지, 하지만 이 두 종은 친화적인 암컷 지배와 공격적인 수컷 지배로 전혀 다른 사회적 관계를 보여준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다큐는 지리적 원인에서 찾아본다. 기원전 6백만년 전에 콩고강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두 동물군, 먹이 걱정이 없는 보노보가 사교적이고 친화적인 공동체를 꾸린 반면, 한정된 먹이를 두고 경쟁을 해야 했던 침팬지는 다른 무리에 적대적인, 심지어 자식들이 많다고 여겨지면 어린 침팬지를 잡아먹을 정도의 공격적 성향이 높은 무리가 되었다. 이를 통해 학자들은 먹이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자연적 환경에서 동물들의 '증오'가 싹텄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친화적이며 사랑을 할 줄 아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보여주는 적대적인 모습은 인간이야말로 가장 증오가 가득한 생명체임을 유감없이 증명해 낸다. 특히 인간이 '증오'를 표명하는 방식 가운데 '집단 따돌림'은 빈번하게 보여진다.

10대의 왕따 현상을 살펴보면 따돌리는 아이들이 비주류라는 기존의 선입견과 달리 가해자들은 비주류도 아니고 따돌림은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외려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인기있는 부류들이 하는 보편적인 행태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을 에게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건 바로 '공평함'이다. 불공평한 상황에 대해 인간은 그걸 학대나 위협이라 여기며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폭력적으로 드러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국에서 벌어지는 학교 등 집단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복수인 총격 사건, 성장하는 과정에서자신이 세상에 기대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기억이 분노를 키우고, 이런 분노에 대해 인터넷 공간에서 응원을 받으며 무기와 탄약을 비축하는 등 용의주도한 준비 끝에 '폭발'한다. 또한 특정하고 제한적인 세계관의 경험이 증오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동성애 반대 시위로 유명한 미국의 원리주의 침례교 단체에서 보여지듯  스스로 내몬 '수난'으로 인해 신념은 강화된다.친족 관계로 얽혀진 이 단체에서의 탈퇴는 마치 팔다리가 잘린 채 상어가 득실거리는 바다에 던져지는 공포감을 느끼기에 쉽사리 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증오는 유전적인 소인을 가지고 사회적 배제를 통해 증폭되며, 자신이 소속된 집단적 정서로 인해 '폭력'의 정서를 수용하게 만든다.

 

 

편가르기의 기원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집단을 미워할까? 인간은 편가리기를 좋아한다. 종교, 인종, 정치 성향을 근거로 사람을 분류하고 나랑 다르구나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 편을 '극단적'으로 응원한다. 

이 원인을 인지 과학자 로리 산토스는 '부족주의(tribalism- 부족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힘을 과시하는 현상)에서 찾는다. 1950년대 사회 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오클라호마에서 15살 소년들을 모아놓고 가짜 야영 캠프 실험을 했다. 가상의 시합을 한다고 편을 가르게 된 소년들은 급기야 기를 불태우고 야영지를 습격하는 등 상대집단을 괴롭히는 등 경쟁이 과열되는 행동의 변화를 보였다. 

이를 통해 개인의 행동은 그의 성격이 아니라 직장, 가정, 지역 사회 등 이른바 그가 속한 '부족'에게서 영향을 받게됨이 증명된다. 더구나 경쟁을 벌어야 하는 상황은 집단간의 증오심을 발동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바로 특정 지역을 연고로 한 스포츠 팬들의 강한 충성심이다. 진화한 형태의 전쟁이라 정의내려진 스포츠는 승리, 전리품인 트로피 등의 전쟁의 상징적 요소들을 가지고 특별한 유대감으로 결속하게 된다. 그냥 밉다는 상대 편, 이렇게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정체성에 완전히 녹아드는 극단적 유대 관계가 바로 정체성 융합'이다. 

옆의 팬이 공격당하면 마치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느끼고, 축구가 아니라 동료 팬들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폭력'적이 되는 상황, 개인들은 적극적으로 집단을 보호하고 방어하며 마치 각자가 최전방에서 싸우는 전우처럼 서로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심정이 된다. 이런 폭력적 편가르기는  과거 부족사회에서 구성원들의 단결이 곧 생존을 보장했던, 살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심리 기제에서 비롯된다. 

이런 정체성 융합에 기반한 '부족주의'가 스포츠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에서도 극단적으로 존재 양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진보적 민주당원과 보수적 공화당원은 서로 자기 쪽만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 진영을 '악'이라 규정하며 증오한다. 심리적 매커니즘은 스포츠 부족주의와 동일하지만 그 신념과 윤리적 강도는 정치적 진영논리가 훨씬 더 심하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양극화가 사회 관계망을 파괴하고 있는 것, 성향이 다르면 가족이라도 함께하지 않으며, 타인종보다도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과 사귀는 걸 꺼려할 정도로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진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게 되었을까? 앞서 종교적 극단주의 단체가 친족에 기반하듯, 미국내 보수와 진보적 입장은 대다수 부모와 지역으로 부터 비롯된 환경적, 문화적 요인이 결정적이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유전적 요소는 강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치 우리의 지역 감정처럼. 

집단만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객관적 사실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실제 취임식에 모인 군중이 오바마에 비해 적었음에도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은 편견으로 이를 왜곡하여 '가짜 뉴스'를 만드는 지경에 이른다. 

 

 

증오의 도구가 된 기술의 발달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인터넷, 블로그 등의 기술의 변화는 이런 양극화 심화를 완화시키기는 커녕 외려 조장하고 있다. 부족주의를 이용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언론 매체는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좀 더 자극적이고 신랄하게 전달하여 수익을 올린다.

페북 등 사용자가 집단 안에서 위안과 안전함을 느끼도록 패러다임이 짜여진 각종 소셜 미디어는 생각이 다른 팔로어를 '위협'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의 교류를 배제하고 내집단 구성원들만의 대화를 나누는 밀폐된 공간이 되기 십상이다. 거기에 사용자의 관심을 오래 끌 수 있는 콘텐츠를 전달하도록 만든 알고리즘은 분노, 공포같은 부정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의 콘텐츠를 통해 부족주의를 자극하며 사고를 극단적으로 증폭시킨다. 

지난 2016년 '모든 무슬림은 극단주의자'라는 생각을 가진 극우 불교 승려 위라투는 무슬림 남성이 불교도 여성을 성폭행하는 '가짜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다. 무슬림이 다수 불교도를 위협한다고 선동하는 이 영상으로 인해 불교도의 폭동이 유발되었고, 2017년 미얀마 서부 무슬림 소수 민족 로힝야족 학살이 초래되었다.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할 페북이 추악한 인간 본성을 품어낸 결과였다. 

외부인에 대한 공포와 분보를 선동하는 것만큼 집단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건 없다. 이에 감정 이입을 한 인간들은 같은 종인 다른 인간에게 서슴없이 잔혹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임없는 갈등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미 힘의 균형점을 잃은 지 오래지만, 상대가 당한 부당함은 보지 않은 채 각자 자신들이 가진 상흔의 역사에 기반하여 자신들을 '희생자'라 여긴다. 

이러한 경쟁적 피해의식은 궁극에 가서 상대편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게 된다. 

실제와는 다른 심리적인 상태에 따른 인식은 확증 편향(자신의 신념, 가치관, 판단 따위에만 주목하고 그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가지며 정치인들은 이를 부추긴다. 

인지 심리학과 진화 심리학에 근거하여 추론해 본 '증오 사회'의 기원, 인간이 아닌 동물 실험과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의 사례들이 등장했지만, 그 '기원'에서 비롯된 '증오'가 만연한 사회는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사회는 '증오'로 분열되고 폭력적 갈등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까? 그 암담한 현상에 대한 희망을 앞서 셰리프의 실험이 전한다. 편을 갈라 싸우던 소년들, 하지만 급수하던 탱크에 돌을 넣어 당장 마실 물이 급해지자 갈등은 잠시 접어두고 '물 구하기' 합동 작전을 벌인다. 이렇듯 보다 긴급한 상위의 목표는 집단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 한때 적이 보다 더 큰 적 앞에서 손을 잡았던 세계 대전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인간 집단간의 증오는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by meditator 2019. 11. 8. 20:31

'성냥갑', '닭장', 흔히들 아파트를 낮잡아 부르는 통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홍익대 유현준 교수에 따르면 1년 365일 아파트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한 눈에 다 보이는 공간 이러한 공간은 아이들의 뇌세포를 자극할 꺼리가 없다. 그래서 정작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선택한 아파트에서 부모들은 주말이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위해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아파트에 18세 이하 미성년자 가구 중 71.6%가 산다. 마당과 마을과 골목을 잃어버린 아이들, '하우스 딜레마'다. 

 

 

<sbs스페셜>은 2달에 걸쳐 유현준 교수와 함께 '공간 여행'을 떠난다. 과연 어떤 공간에서 내 아이를 키워야 할까 하는 고민이 그 출발점이다. 성장하는 동안 1층 단독 주택에서 2층 양옥, 그리고 아파트에서 살아봤다는 유현준 교수, 그가 설계를 할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건 주택이었단다. 그래서 그는 골목이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는 주택가에 대한 예찬론을 펼친다.  불과 500m 이동할 때도 선택 가능한 길이 수십 가지에 이르는 골목은 아이의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고, 이는 곧 아이가 가진 삶의 배터리를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아파트? 주택? 도시? 자연? 
아이를 위해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서울 주택가에서 수도권의 좀 더 큰 아파트로 큰 맘 먹고 이사한 예서네 집, 하지만 정작 그 집이 짐이 되는 현실에 봉착했다. 무리를 해서 이사한 덕에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을 하게 되었고 퇴근을 해서도 남은 업무 때문에 예서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 그래도 엄마는 늦게라도 예서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출퇴근 거리가 멀어진 아빠는 예서를 만날 시간조차 없다. 좋은 아파트라지만 이사를 와서 한결 외로워진 예서, 좁고 복닦거려도 친구들이 있던 다세대 주택가를 그리워한다. 

 

 

어린 나이에 동화작가로 등단을 한 이수네, 엄마는 이수의 감성을 좀 더 키워주기 위해 인천의 아파트에서 제주로의 이사를 감행했다. 비오는 날 마당에서 하는 물놀이, 아파트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이수의 감성은 폭발했다. 때로는 놀이동산, 공방, 까페로 변신하는 이수에게 우리집은 '변신'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하지만 늘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로망을 실현하고자 남해로 이사한 윤슬이네는 딜레마에 빠졌다. 시골이 재미없다는 아이, 벌레가 없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싶단다. 여유롭고 한적한 것도 잠시 심심해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셋째 임신 사실을 알고 오은주 씨는 장성에 집을 지었다. 가운데 마당이 있는 집, 굳이 주변 이웃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든 나와서 편히 쉴 수 있는 마당에 아이들은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고 뛰어논다. 

목동에 사는 엄마들은 쉽사리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수도권에 자가로 아파트가 있지만 전세로 그 보다 좁은 목동에 살면서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학군과 교육 여건이 좋은 이곳에서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있게 된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한다.

이처럼 아파트, 주택, 도시, 자연 등 맹모삼천지교처럼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은 최선의 '공간'을 찾아 헤매지만 정답은 없다. 유현준 교수 역시 주택이 답이다가 아니라 직업을 탐방하듯 공간 역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같은 공간도 창문 밖에 커튼을 달아 공간을 확장하고, 화분을 놓아 마당처럼 꾸며도 좋다. 아파트라도 자주자주 인테리어를 바꿔 변화를 꾀하며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는 등 얼마든지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실에서 공부를
이런 고민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을 다큐는 제시하고자 한다. 아이들 공부를 위해 집을 놔두고 좋은 학군에서 전세를 사는 우리나라 학부모들, 결국 '교육'이라는 화두로 집결되는 고민을 위해 '거실 학습'이라는 공간 활용 학습법을 제시한다. 물론 기승전 '공부'로 이어지는 해법은 아쉽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교육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제는 해외에서 살기까지 감행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거실 공부법'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네 아이를 모두 일본의 명문대인 도쿄대에 보내서 '사토 마마'라 불리우는 사토 료코씨 그런데 그녀의 비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다름아닌 거실 공부법. 아이들을 공부시킬라 하면 우선 방을 주고, 요즘은 방도 부족해서 방 안을 다시 독서실처럼 꾸며주는 우리와는 달리, 그녀는 '공부하는 아이들이 외로우면 안된다'는 소신을 펼친다. 공부는 힘든 것이기에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녀, 자, 이제부터 공부하자가 아니라, 어느 틈에 손에 연필을 들고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는 분위기를 가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도쿄대생들의 74%가 초등학교 때까지 거실에서 공부를 했고, 중고등학교 때까지도 거실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는 통계, 일본 명문 아오야마 학원에 입학한 중학생 리나의 집, 리나가 거실 식탁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에서 엄마는 부엌 일을 한다. 그러다 리나가 부탁을 하면 함께 앉아 문제도 내주는 환경, 바로 이렇게 가족과 소통하며 언제든 가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실에서의 공부가 일본에서 좋은 학습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학습 방식에 대해 전문가는 굳이 조용한 도서관을 놔두고 까페를 찾아가는 요즘 청년들의 학습 방법과 유사함을 지적한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 그 환경은 오히려 외떨어진 좋은 방이 아니어도, 학습적 분위기만 갖춘 가족적인 거실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똑같은 공간인 아파트에 대한 다른 시도도 있다. 마을의 정서를 가진 아파트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들이 의기투합했다. 무려 80개가 넘는 출입구를 가진 테라스를 가진 저층, 앞마당을 가진 중간층, 그리고 다락방을 가진 복층 형태의 고층 아파트가 함께 단지를 이루는 방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업비 때문에 이런 '이상적인 시도'는 선택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시도한 것이 바로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어느 아파트에나 있는 놀이터를 아이들이 스스로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굳이 놀이터뿐이랴, 주변 동네를 주도적으로 자신의 공간으로 탐험해 가는 방식도 있다. 소유하지 않더라도 '도시의 보물 찾기'를 통해 공간은 확장할 수 있다. 단지 아이들에게 그럴 시간만 준다면. 



 

by meditator 2019. 11. 5. 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