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이동우, 절단 장애인 신명진, 뇌병변 편마비 김종민, 청각 장애 김예진, 시각 장애 김민우, 이들이 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이 스튜디오에서 그들을 부르는 명칭은 '별일없이 사는 이웃', 별 일없이 산다는 이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토크쇼가 있다. 매주 월요일 밤 11시 35분 찾아오는  ebs1의 <별일없이 산다> 이다. 

 

 

mc 조우종과 함께 장애우, 비장애우가 '이웃'이란 호칭으로 모여 지난 9월부터 11월 11일까지 8회차에 걸쳐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들리지 않는 이를 위해서는 '수화' 통역사의 도움이 더해지고, 보이지 않는 이를 위해서는 옆 이웃의 친절한 해설이 곁들인다. 어색할 거 같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장애'의 벽이란 것이 막상 함께 하면 조금 에돌아 갈 뿐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시간 바로 <별일 없이 산다>이다. 

빅 데이터에서 '부질없다, 감동하다. 정확하다. 사랑, 설레다, 고맙다.' 등의 단어로 등장한 11월 11일 8회차의 주제는 바로 '결혼'이다. 장애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도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하는 시대. 취업도 하기 힘들고 취업을 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들다고 하는 시대에 젊은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과정의 버거움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스튜디오에 모인 '별일 없이 사는 이웃'들은 어땠을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 
뇌병변 편마비 김종민 감독은 결혼은 미쳐야 하는 것같다고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그런 이 시대 상식적인 단정에 8백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8백명 구독자를 가진 유투브 크리에이터 시각 장애인 김민우 씨는 미쳐서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물들어 가다보니 결혼을 꿈꾸게 되는 것이라 '낭만적'인 반기를 든다. 

스다르가르트 병이라는 희귀 유전병 때문에 암점이 점점 커져 시력을 잃게 된 김민우 씨는 컴퓨터 화면의 글씨를 최대로 확대해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의 시력이 남아있다. 안마사를 했었고 지금은 시각 장애인 골볼 선수인 그는 그의 전담 카메라맨이자 그가 하는 골볼 심판이 되어 그를 전담 마크하는 아내 한지혜 씨와 8개월 째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다. 

 

 
정상인인 이상미 씨도 막상 하려보니 희말라야 등반을 하는 마음이라는 하소연을 하는 극한 미션 결혼, 하지만 한지혜 씨는 김민우 씨와의 신혼 생활에 대해 정상인들이 10 할 수 있는 걸 4나 5해줘서 서로 갈증하게 되는 결혼 생활에 대해 정상인에 비해 겨우 6가지 밖에 해줄 수 없지만 그 6가지에 최선을 다하는 김민우 씨와의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첫 눈에 반했지만 쉽지 않았단다. 시각 장애인, 더구나 유전병이었기에 친구, 가족 모두가 반대했던 결혼, 중증 절단 장애인인 신명진 씨 역시 자신과 같은 동료 사서였던 8년 연하의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까지는 달콤했지만 막상 상견레 자리에 가니 아내 부모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는 경험담을 나눈다. 같은 청각 장애인이라지만 나라마다 수어가 달라 국제 수어로 사랑을 나누어 모로코인 칼리드와 결혼에 이르렀다는 김예진 씨는 이제 두 살배기 아들의 재롱에 한참 빠져있다고 고백한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 순간, 결혼은 필수가 된다는 이웃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가족이 바로 배우자라고 말하는 그들의 결혼은 마흔 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다 결혼 이후 '사랑의 인사', '위풍당당 행진곡' 등 수려한 명곡을 탄생시킨 작곡가 엘가의 사례와도 같다. 

결혼에 대한 비관주의가 지배한 세상에서 <별일 없이 산다> 속 결혼 이야기는 마치 편견이 가득찬 세상에서 '낙관주의'가 가득한 별일 없는 이웃들을 지향하는 <별일 없이 산다>의 정서를 이어간다. 마치 장기하가 부른 동명의 노래 제목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은 웃으며 말하지만 유전병을 이기고 결혼에 이른 김민우 씨 부부와, 장모님 앞에서 자신의 장애로 인해 한없이 부끄러웠던 위기를 극복한 신명진 씨의 웃음은 마치 가을 서리를 이겨내고 피어난 가을꽃처럼 강인한 사랑의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친구의 생생한 고민을 취재하는 코너에서 뇌병변 편마비 감독 김종민의 결혼하고 싶은 고민을 다루었지만 어쩐지 그 고민의 결이 다가오지 못한다. 조금 더 현실로 한 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이 시대 청춘들이 결혼에 대해 가장 큰 짐으로 여기는 건 바로 경제적인 문제이다. 그런 현실적인 고민들을 담아내 보면 어땠을까? 보고 있으면 궁금해 지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김예진 씨 부부는, 번듯한 아파트에 사는 김민우 씨 부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지, 막상 사랑으로 결혼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이다. 이미 성공적으로 사랑의 성취를 이룬 부부들이 나와 아침 방송 식으로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니 결혼에 성공했어가 아니라, 장애만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이렇게 극복했어라든가, 아니면 결혼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쳐 있는 싱글 이웃이라든가,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다른 입장의 이웃들의 의견도 같이 함께 하는 자리였으면 별일 없이 사는 이야기의 내용이 좀 더 풍성해 졌을 것같다. 그저 낭만적인 결혼 성공의 후일담 식으로 전개된 <별일 없이 산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장애우 결혼 캠페인 프로그램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장기하가 그의 노래에세 별일 없이 산다고 하는 건, 정말 별일이 없어서가 아니지 않았을까? 별일이 만연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하루하루 즐겁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것이었을진대, 그런 진짜 별일 없이 살 수 있는 '현실적 공감'의 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9. 11. 12.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