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멈췄다. 예정된 일정이 취소됐고, 만남은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본의 아니게 '자가 격리'에 들어선 일상, 답답해서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 산책이라도 할까 나선다. 늘 동네 사람들로 붐비던 산책로, 이제는 그곳마저 사람들이 뜸하다.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다.
그런데 저만치서 사람이 온다. 나도 모르게 주춤, 옆으로 비껴서게 된다. 마치 그 사람이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처음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마스크'는 '매너'였다. 상대방을 위해 나의 '비말'을 전파하지 않는,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확진자 5000 여명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방패'가 되었고, 타인은 '혹시라도 모를 전염원'이 되었다. 어디서 마스크를 판다하면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룬다.
신영복 씨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겨울보다 여름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옆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열기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신영복씨가 느꼈던 자괴감을 바로 이제 2020년 초봄에 우리가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포옹과 키쓰마저 자제하라고 하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던져졌다. 지난 2월 29일 방영한 <시사 기획 창>은 바로 이렇게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이 격리당한 현실을 찾아간다.
격리된 도시 다큐의 제작진은 코로나 19에 강타당한 심장부를 향해 ktx를 탄다. 2월 26일 동대구역, 하루 평균 6만 5천 명이 이용하던 역은 텅 비다시피했다. 차로 꽉차던 범어 네거리에는 코로나 19의 현황을 알리는 전광판만이 바쁘다. 심지어 지하철 역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멈춰섰다.
대구에 유세를 하러 내려가는 정치인들이 단골로 찾는 서문 시장, 축구장 13개보다 더 넓은 9만 3천 m²의 면적에 5만 5천여 개의 점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곳, 그 서문 시장이 멈췄다. 점포들은 문을 닫았고 노점은 꽁꽁 싸맨 채 덮여있다. 안그래도 갈수록 재래 시장이 장사가 안되던 차에 코로나 19는 엎친 데 덮친 쳑, 불난데 기름 붙는 격이 되었다.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이곳에서 삶을 일구던 초로의 상인은 마수걸이도 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보이고 만다. 노인들로 붐비던 달성 공원도 텅비어 있고, 대형 서점들도 굳게 셔터를 내렸다.
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 하니 거의 운행을 하지 않는다. 협소한 공간을 꺼리는 사람들로 인해 운행 자체가 반 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나와도 하루 만 오천원 벌이, 돈도 돈이지만 낯선이를 태워야 한다는 공포심이 늘 부담으로 택시 운전자들의 어깨를 누른다.
시민들은 스스로 격리 생활 중이다. 학교를 다니는 딸 윤서를 키우는 김은지 씨는 개학이 9일로 미뤄졌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엄마는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맡겨야 하지만 코로나 19에 연로한 노인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니 부모님 걱정도 앞선다. 마찬가지로 워킹맘인 정민희 씨는 부부가 번갈아 휴가를 내고 이 사태를 감당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땐 어찌해야 할 지 갑갑한 상황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있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김모 씨는 자가격리 중이다. 가족 들과 같은 집에 살지만 생활은 따로 한다. 가족들과 2m 이상 따로 떨어져 지내는 그는 얘기도 못나누고, 식사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하다. 그래도 갑갑한 건 참을 수 있다. 가족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혹시라도 자신으로 인해 코로나19가 옮았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부족한 물품 문제도 심각하다. 정민희 씨의 경우 마스크를 다섯 매를 만 오천 원에 겨우 구입했다. 그래도 어른은 마스크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참지만 어린 승유는 마스크를 못견뎌 한다. 대형 마트에 가도 우유가 없다. 라면은 딱 한 번들 샀다. 어린 승유는 예전처럼 고기를 먹으러 '외식'을 하고 싶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시절 대남병원이 있는 경북 청도는 어떨까? 2월 27일 경북 청도, 주민 절반이 60대 이상인 조용한 이 도시 한 가운데 군청을 마주하고 대남병원이 있다. 매년 5월 청도을 들썩이던 소싸움 축제는 기약할 수 없게 된 가운데 힘든 시간을 이겨내자는 격려 방송만이 적막한 거리를 감싼다. 정부 특별 대책 지원단이 있는 군청 구내 식당마저도 닫고, 인근 상가도 철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우 농가들이 소독제를 지원하고, 병충해를 잡던 드론으로 병원 외벽 소독을 하는 등 청도 사람들 스스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구에 이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2월 25일 부산으로 가는 ktx, 표 구하기도 힘들던 부상행 ktx에 빈 자리가 더 많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학생들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는 엄마의 부탁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도 그 무엇도 만지지 않으려 애쓴다. 말이 귀향이지, 살던 집 위층에 확진자가 나와 집이 아닌 딴 곳으로 가야할 처지다.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온천 교회는 문 닫은 지 오래, 신도들의 신상이 드러날까 교회 홈페이지도 폐쇄되었고 신도들은 자각 격리에 들어갔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방송국 카메라에 울분을 토하고 택시 운전사들은 자신이 외려 채워넣어야 하는 사납금을 호소한다.
서울이라고 다를까. 2월 27일 서울 은평구 설아네, 어린 아이 키우는 집은 어디를 가나 '위기감'이 크다. 나갔다 들어오면 서둘러 손을 씼고, 아이와의 외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2주 넘게 집에만 있는 상황, 설아를 유치원에 보내고 재취업을 해보려던 엄마의 부푼 꿈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늘 차가 막히던 강남 도심에도 차가 드물고 '맛집' 불문 대부분의 상점들은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 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3에서 2.1%로 하향 조정했고,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코 앞의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도 비상이다. 선거 운동이 멈췄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온란인 선거 홍보 등의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심지어 총선 연기론마저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었던 중국 유학생 입국 문제, 바로 그 유학생들이 입국하는 현장인 인천 국제 공항은 비상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준 가운데 개학을 앞둔 유학생들이 입국하고 있다. 방역이 강화된 공항을 유학생들이 빠져나오면 각 학교에서 나온 직원들이 유학생들을 한 명씩 차량에 태워 기숙사로 보낸다. 지역 주민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2주간 기숙사에 격리될 학생들은 매 끼니 식사와 생필품이 제공된 가운데 매일 2 차례 씩 체온을 재는 등 만약의 사태 대비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일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 유학생을 보유하고 있는 경희대의 경우 3000 여명 중국인 유학생 중 기숙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불과 10%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는 학교 밖 주택, 원룸 등에 있는 유학생들 '자가 격리'를 요청하고 매일 이동 동선을 확인한다지만 그 실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거짓 상술도 판을 친다. 마스크 사재기에서 부터 필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불량 마스크, 코로나 19 발생지인 후베이성에서 만든 마스크가 온라인 마켓에서 유통되는가 하면, 이 틈을 타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애준다는 공기 청청기까지 갖가지 상술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전문가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확률을 줄이는 것, 스스로 사회적 격리, 거리두리만이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해법이라 입을 모은다. '일상을 찾는 것이 꿈이 되었다'는 하상욱의 짧은 시처럼, 평범해서 기억에도 남지 않았던 지난 봄을 모두가 그리워하는 시절이다.
코로나19에 점령당한 대한민국, 그런 와중에 '마스크, 방호복 등 기본적 장구의 부족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이 감염되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신이 감염되면 환자를 돌보지 못해서 걱정이라는' 대구에서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최전방의 군인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테니 불안해 하지 마시라는 그 한 마디에 백 마디의 설명보다 더한 '위로'를 얻는다.
내 주변 동기, 선배들이 어느덧 은퇴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맨날 운동화에 파카나 걸치던 선배들이 번듯한 새 양복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던 신입 사원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백이 된 그들이 '사회'로 방출되었다. 하지만 말이 '퇴직자'지, '놀기'엔 너무 멀쩡하게 젊다. 그리고 이른바 100세를 사는 게 점점 가능해 지는 시대에 그들이 '놀고 먹어야'할 시간이 그들이 직장 생활을 해왔던 시간보다도 길다. 과연, 이 '아득하게 창창한' 은퇴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최근 코로나 사태로 2월 27일 <다큐 시선>은 지난 2017년 7월 5일 방영된 <서러워말아요, 젊은 그대>를 재방영하며 어언 3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우리 사회 '늙수그레한 젊은이'들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젊은이들과 '알바'를 경합하는 노익장 동네 슈퍼가 편했던 61세의 임종석 씨는 오늘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10일 째이다. 식품 회사 부장 출신, 퇴직을 하고나서 택시 운전을 하던 그는 불규칙한 생활로 건강에 무리가 오자, 편의점에서 '알바' 인생을 시작했다.
임종석 씨가 일하는 편의점 체인에는 현재 임종석 씨와 같은 시니어 교육생이 현재 650명 연수 중이다. 점주는 임종석 씨보다 10년쯤 어린 50대, 그가 젊은이들 대신 시니어 세대를 '알바'로 고용한 건 연락두절될 일 없이 꾸준히 오래 근무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하여 그 세대 특유의 '근면 성실'함을 높이 사서이다.
하루 10시간 신용카드 계산은 척척이지만 각종 할인 카드를 내밀면 멘붕이 오는 '초보'지만 한 달 꼬박 일하면 230만원 황혼의 아버지로써 면이 선다. 이렇게 임종석 씨처럼 은퇴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니어'들이 지난 5년 새 7배나 늘었다. 이들이 선호하는 업종 1위는 바로 임종석 씨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이다. 어느새 진짜 젊은이들과 편의점 알바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여기 젊은이들과 '경쟁'을 넘어 어느덧 '선점'하게 된 또 하나의 알바가 있다. 바로 '전단지 알바'이다. 되돌아 보면 예전에는 거리에서 학생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들이 대부분 '시니어'로 바뀌었다. 10대들의 손쉬운 '알바'가 노년의 길거리 부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아마도 그건 꼬박 2시간을 서서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장당 50원꼴 500~700장의 전단지를 나눠주고 2만 5천원을 받는 '헐한 알바비'때문이 아닐까.
뜨거운 여름 햇빛이 내리쬐는 신촌의 오후 2시, 땡볕 아래에서 중무장을 한 채 쉴 새없이 미장원 할인권을 나눠주는 유영자씨가 있다. 싸늘한 시선, 익숙한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기꺼이 맡겨진 전단지를 소화해 낸다.
20년전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가장이 된 유영자씨는 전단지 아르바이크로 번 100여 만 원의 최저 생계비 수준의 돈으로 생활해 왔다. 어르신이라 더 받아주기도 하니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했어도 거절이 익숙해지지 않아 서운한 아르바이트, 신촌에서 '한 탕'을 뛰고 다시 신림동으로 자리를 옮겨 꼬박 전단지를 나눠준 유영자씨의 일과는 해질녁 6시 반이 넘어서야 마무리된다. 그까짓 몇 장 쯤 남기면 어때서 싶지만 마지막 한 장까지 성실하게 나눠주고 나서야 홀가분하게 돈 받은 만큼의 보람을 느끼며 평범한 할머니의 자리로 돌아간다.
젊은이들이 보수가 적어 떠난 자리에 대신 '알바'를 뛰는 시니어 세대,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세대가 되었다. 2017년 기준 일하는 노인 421만명, OECD 평균 2배가 넘는다. 그렇게 많은 노인들이 열악한 조건에도 말년까지 일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 노인 빈곤율 1위로 부터 비롯된다. 저임금 일자리나 자영업을 전전할 수 밖에 없는 노인 세대, 당연히 소득이 낮을 수 밖에 없어 상대적 빈곤율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려운 건 일할 곳이 없는 삶 하지만 꼭 생계때문만은 아닌 경우도 있다. 73세의 양주익 씨는 오늘도 지역 신문을 뒤적이며 일자리를 찾는다. 공무원 퇴직 후 미화원 등 임시직을 전전하다 보니 어느덧 70줄, 노인을 위한 일자리라도 70이 넘는 양주익 씨가 할 만한 곳이 드물다.
30년을 넘게 일했건만, 그래도 또 일하고 싶다는 양주익 씨, 꼭 생계 때문이 아니라, 나갈 곳이 있는 삶, 나도 일할 곳이 있는 사람이라는 '활기찬 삶'에 대한 지향이 오늘도 양주익 씨를 조바심내게 만든다. 연금으로 받는 150만 원, 그 정도면 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1년에 아내와 제주도 여행이라도 한번 가는 여유있는 삶을 살려면 한 달에 250만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경비 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심지어 '경비 지도사'란 경비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양주익 씨는 우선 그거부터라도 따고자 한다.
이제 은퇴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은 63세의 정효선씨는 벌써 4번 째 일자리를 위한 면접 준비를 한다. 대기업 부장 출신, 직장에 다닐 때만 해도 매일 매는 넥타이가 지겨워 푸는 게 소원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젠 다시 넥타이를 맬 일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은퇴 후의 삶을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은퇴는 일렀고 자녀들의 갈 길은 머니, 은퇴 후의 생활은 예상과 달랐다.
1년 계약직으로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했던 정효선 씨가 이제 면접을 보는 건 '일용직'. 경복궁 야간 경비이다. 겨우 2주 동안 하는 이 '경비' 일자리에 36명 뽑는데57명이 모였으니 정효선 씨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대기업 부장 출신이라는 그의 전직이 '경비'와 같은 일용직에는 외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다행히 뽑혀 매일 밤 관람객들의 '검표원'으로 활기차게 일하는 정효선 씨, 겨우 50만원이 좀 안되는 급여지만 보람을 느낀다. 그의 소박한 소망이라면 매일 하는 일이 있었으면 하는 것, 그것 뿐이다.
양주익 씨의 경우처럼 노인 세대에게 은퇴 후의 삶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증가하는 노인 세대를 대비하려면 국가, 사회가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마련해 가야 할 문제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 비해 활동력이 떨어지는 노인 세대에게 맞춤인 사회 서비스 일자리는 공공이 만들어야 하는 '과제'이다. 이를 위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한 지자체가 있다. 성동구에서는 서울숲 컨테이너 거리에 <엄마손 만두>를 비롯하여 까페 등 고령자 친화 기업을 만들었다. <엄마손 만두>의 경우 61살이 최연소인 시니어들이 만들어 가는 '노인을 위한 신의 직장'이다.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노인들이 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이곳, 매니저로 일하는 64세의 엄기범 씨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웃음이 늘었다고 소회를 밝힌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112명, '노인들을 위한 신의 직장'이 좀 더 많이, 여러 곳에서 만들어져야 하겠다.
시작은 매우 로맨틱했다. 법무법인 송&김의 반골 기질 가득한 파트너 변호사 윤희재(주지훈 분)는 늦은 밤 들르던 빨래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원서로 읽고 있는 미모의 한 여인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매일 밤 자신이 가는 그 시간이면 책을 읽고 있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자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그러더 중 그녀가 자신과 같은 동창 선배 김희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윤희재는 동창회에 나타난 그녀에게 다짜고짜 함께 나갈 것을 청하고, 그의 무례한 청에 기꺼이 동행한 이후부터 그녀와 그의 '로맨틱'한 시간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건 김희선이라던, 사실은 정금자(김혜수 분)의 '작전'의 일부였다. 이슘 홀딩스 대표 하찬호의 이혼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그의 변호사인 윤희재를 통해 정보를 빼내기 위한 정금자가 대표 변호사인 법률 사무소 충은 치밀하게 윤희재에게 접근하는 전략을 세웠고 그 계획은 적중했다. 덕분에 윤희재의 집에서 이슘 홀딩스 하찬호의 정신과 진료 기록을 빼낸 정금자 변호사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이혼 소송을 '승기'로 이끌었다.
정금자, 그녀는 누구인가? 바로 그렇게 <하이에나>는 재판에서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정금자의 캐릭터를 그렇게 소개한다. 아프리카 야생의 들판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과 공격력에도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다른 동물이 먹고 남은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방식을 택한 동물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그녀, 로망은 으리뻔쩍한 건물이지만 현실은 허름한 사무실 한 칸인 정금자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윤희재를 속인다. 자신 때문에 재판에 져서 이를 가는 하찬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불러만 주신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해결해 드리겠다며 '여러분'을 불러제치는 배포를 가진.
하지만 그건 '아수라 백작'같은 정금자의 한 면일 뿐이다. 자신의 변호로 인해 감옥에서 나왔지만 외려 정금자를 협박하던 의뢰인에게 외려 당장 해외로 떠나지 않으면 다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반격을 가한다. 그러나 그는 귀가 길의 정금자에게 '칼'을 들이밀고야 만다. 그러나 정금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 한번에 성공해야 해'라며 침착하게 대꾸한다. 그러면서, '아니면 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네 모든 살점들이 처참하게 물어뜯길 테니까' 덧붙인 말, 그 말처럼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거칠게 주먹을 날린 그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으며 반격을 가하고 그가 피를 철철 흘리며 나가 떨어지게 만든다.
빨래방에서 책을 읽던 이지적인 분위기의 여인, 연인과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드는 섹시한 여인, 그런가 하면 빨간 츄리닝을 입고 좌중을 휘어잡고 '여러분'을 불러젖히다 자신을 적으로 여겨 으르렁거리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읍소도 마다하지 않는,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장량같은 배포의 직업인,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현장에서 한 치의 흔들림없이 사건을 해결하는 예리하고 발빠른 대처의 변호사까지 일찌기 2013년 <직장의 신>에서 빨간 내복도 마다하지 않으며 만능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던 김혜수가 김혜수여야 가능한, '걸크러쉬'라는 단어로도 설명이 부족한 다시 한번 예의 '만능 치트키'같은 캐릭터 정금자로 돌아왔다. <하이에나> 1, 2회는 바로 그런 김혜수에 의한 정금자의 원맨쇼 한 판이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김혜수만이 가능한 '장르'를 온몸을 불사르며 설득해 낸다.
법정 판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오랜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장태유 피디가 선택한 작품 <하이에나>는 <직장의 신>에서 처럼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을 다시 한번 선보이는 김혜수를 앞세워, '승소'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대대로 판사 집안, 서울대 수석 입학에 재학 중 사시 합격에 연수원 수석 졸업의 그래서 자신의 직장 송&김에서조차 그 누구에게조차 굽신거리지 않는 콧대 높은 윤희재는 그렇게 김희선, 아니 정금자에게 보기좋게 사랑에 속고, 재판에 지는 도발을 당하면서 한껏 '전투 의지'를 불타오르게 된다.
그렇게 한때는 연인인 줄 알았다가 이제 '적'이 된 두 사람은 이슘홀딩스 이혼 재판에서 정금자가 1승을 거두고, 이제 다시 그의 숨겨진 내연녀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접전이 <하이에나>의 주된 볼거리가 될 예정이다.
그런데 화제가 되었던 전작의 시청률을 10.3%로 무난하게 이어받았던 <하이에나>는 2회에 들어서 9%로 하향 곡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혜수, 주지훈, 거기에 장태유라는 믿고 보는 보증 수표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조합들의 어울림에 종종 의문 부호가 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첫 회 윤희재를 속여 넘기는 정금자 변호사의 계략, 그의 눈 앞에서 그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그의 집에서 그의 서류를 빼돌려 재판에서 승소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정금자가 '여성'이어서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만약 반대로 그걸 윤희재가 했었다면?
그와 함께 이제는 클리셰라기에도 뻔한 '약물', '이혼' 등 재벌가의 도덕적 아노미가 두 사람의 주된 '전투'의 소재가 된 것도 <하이에나>라는 드라마가 법정을 소재로 한 남녀 변호사의 '쟁투'를 다룬 새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새롭지 않도록 느끼게 만드는 설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윤희재 정도의 변호사가 매일 밤 빨래방을 드나들다 그곳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에게 대번에 '폴인 러브'했다는 전제 조건이 부실하다. 이들의 '사랑'이 부실하게 시작되다 보니 2회까지 전개 내내에서 윤희재 정도의 인물이 그토록 정금자에게 집착하는 상황이 어설퍼 보인다. 집착남과 능력녀의 설정을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아닐까.
드라마는 '가공'의 이야기다. 하지만, '가공'의 이야기임에도 보는 시청자들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가공'의 공정이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하이에나>는 이미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만능 캐릭터 정금자가 이끄는 드라마이다. 그럴 수록 정금자가 이끌고 가는 사건은 보다 '현실적'이어야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천착할 수 있다. <직장의 신>이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같은 미스 김의 이야기가 성공했던 요인이다. <하이에나>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어른'이란 뭘까. 아직 어른이 되지않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 자란 사람'이 아닐지 학교도 다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해야할 그 무언가가 없는 어른들이 참 속편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의 이런 생각에 당연히 어른들은 '밥벌이의 고달픔'에 대해 논박할 것이다. 하지만 '호구지책'만 있을까. 어른도 '숙제'를 받아든다. 그런데 그 숙제를 내주는 것이 '인생'이라 이게 고달프다. 아이들은 숙제를 해서 달려가 검사를 받고 정, 오답의 여부를 알 수 있는데 어른들이 받아든 숙제의 답은 그리 녹록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제 14회를 마친 <낭만 닥터 김사부2>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인생의 숙제'를 받아들었다. 과연 그들이 이 받아든 숙제를 어떻게 해나갈 지 그에 따라 그들 인생은 다시 한번 또 두 갈래 길 중 하나의 길로 떠나게 될 것이다.
서우진과 임현준의 숙제 이제는 스카우터가 되어 돌담 병원의 의료진을 넘보던 선배 임현준과 빛쟁이들이 김사부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자 서우진(안효섭 분)은 김사부를 보호하기 위해 돌담 병원을 포기하겠다고 결정을 내린다. 그런 결정에 돌담의 모든 식구들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김사부는 우진에게 '숙제'를 남긴다. 자신을 치료하며 당당하게 '주치의'라 했던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그 책임은 가깝게는 주치의답게 수술 상처를 돌보라는 것이요, 좀 더 크게는 이제는 온몸 안 아픈데 보다는 아픈데가 더 많은 김사부의 병명을 알아내라는 것이다.
다행히 배문정 선생 등의 도움으로 무사히 '빛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 서우진은 김사부에게 달려가 그 '숙제'를 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러자 그런 서우진에게 김사부가 '힌트', 혹은 두 가지 질문 중 하나의 답으로 내준 건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엄청난 양의 파일이었다. 그래도 어쩌면 서우진은 다행일 지도 모른다. 무지막지한 양일지도 모르지만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참고서'가 있으니.
그렇게 서우진이 김사부의 숙제를 용감하게 받아들 수 있게 된 데에는 오래도록 묵혔던 숙제 하나를 겨우 제대로 끝낸 임현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우진과 함께 병원을 개업했던 임현준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리 수술을 감행하다 의사 면허가 정지되고 만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스타우터'가 된 임현준은 더 많은 돈을 미끼로 의사 등을 자신처럼 '뒤가 구린' 병원에 소개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서우진이 돌담병원에 있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내려와 그를 괴롭힌다.
결국 서우진이 돌담을 포기하게까지 만든 서우진, 그런 그를 돌담 복도에서 맞닥뜨린 김사부는 임현준에게 일갈한다. 서우진만큼이나 살기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사느라고 애썼다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던 임현준에게 날린 김사부의 '회초리'는 '양심'이다.
'아무리 돈이 없고 화가 나고 무시당하고 자존심상해도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게 바로 양심이라는 거야. 넌 그 양심 지키기 위해서 어디까지 해봤어? 어디까지 버텨봤는데? 넌 그냥 되는대로 사는 거잖아. 네 욕심대로. 돈만 된다면 그러면 양심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다 팔아먹으면서'
나도 억울하다 항변을 하는 임현준에게 맨날 지만 억울하다지 라며 '불쌍한 새끼'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떠난 김사부, 그렇게 그를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흔들린 현준에게 차은재가 쐐기를 박는다. 자기만 억울하다며 그 탓을 서우진에게 돌린 현준에게 서우진은 단 한번도 억울하다는 말 한 마디, 비난의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비로소 '나만 억울해'의 마법에서 깨어난 임현준, 그때서야 서우진에게 다가가 왜 그가 자신과 함께 했는지 뒤늦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가 팔아먹어 버린 양심,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쪼그라든 채 웅크리고 있었던 양심 한 조각을 꺼내 서우진을 이제야 놓아주는 것으로 그의 뒤늦은 숙제를 마무리한다.
'두 환자의 심폐소생' - 무거운 숙제를 받아든 김사부와 박민국 하지만 김사부답게 임현준에게 '양심'을 호통쳤지만, 이제 김사부도 그 '양심'의 숙제, 그 늪에 빠지고 만다. 14회 2부, 드라마는 숨가쁘게 목숨이 경각에 놓인 두 환자의 상황을 오고간다.
그 중 하나는 응급실로 실려온 여운영 전 원장(김홍파 분)이다. 폐암 말기로 정신을 잃고 실려온 여원장, 김사부를 비롯한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위급한 상황에 빠진 그를 살려보려 애쓴다. 그런 와중에 심실세동, 당연히 심폐 소생을 하려하는데 김사부가 고개를 꺽는다. DNR(심폐소생거부)이었던 것.
여기서 DNR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여원장을 보내야 하는 순간, 그만 김사부는 컴프레션을 외친다. 그리고 나서서 심폐 소생을 시도한다. 겨우 고비를 넘겨 자가 호흡을 하게 된 여원장, 하지만 병실로 옮겨진 여원장 곁에서 김사부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오명심 수간호사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내내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는 김사부, 여원장의 원칙에 따르자면 그를 보내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그 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그만 의사로서의 원칙을 어기고 만 것. 그간 <낭만 닥터> 속 김사부는 부용주란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가 된 것처럼, '살아있는 신화'와도 같은 김사부의 이야기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 14회, 그런 김사부도 '인간적인 정' 앞에서는 자신의 의료적 원칙마저 흔들리는 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의료적 원칙을 흔들린 김사부는 더 인간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게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무거운 숙제를 짊어지게 된 김사부와 달리, 또 다른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한 숙제를 짊어지게 된 한 사람, 박민국 교수가 있다. 버스 사건으로 김사부가 '이제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라고 충고를 했건만 여전히 박민국 교수는 김사부에 대한 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김사부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WPW 증후군(조기 흥분 증후군)인 환자의 수술을 마취과 심혜진(박효주 분) 선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행한다. 3년전 비슷한 경험을 한 심혜진 선생이 애를 써보지만 결과는 테이블 데쓰. 사람을 살리려는 의사의 양심에 앞선 '이기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먼 박민국 교수의 무모한 수술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두 명의 환자에게 가해진 심폐 소생, 김사부는 환자를 살려서, 그리고 박민국 교수는 죽여서 버거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그 두 사례가 모두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정'과 '욕심'이라는 '과제', 과연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두 사람은 과연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낭만 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해프닝처럼 시작되어 결국은 인간사에 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감성'을 건드리지만 결국 우리에게 '진지한 이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2월 10일 첫 선을 보인 tvn의 드라마 <방법>, 그 제목부터 생소한 악령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물인 오컬트 스릴러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저주'는 인류의 그늘에서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고 소개하는 드라마는 '저주'의 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에서 비롯된 증오를 길어올려, 그 마음을 무기로 대상이 되는 사람의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공포스런 주술을 소재로 한다.
방법하다. 여기서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그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무안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화 마지막, 중진일보 사회부 기자 임진희(엄지원 분)는 자신이 취재하던 포레스트 내부 고발자에 대해 억울한 누명을 씌운 기사를 씌워 죽음에 이르게 만든 같은 신문사 김주환 부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하지만 임기자의 항의는 외려 강압적이고도 폭력적인 김부장의 겁박으로 인해 좌절되고, 억울하고 분한 임기자는 스스로 방법사라 자처했던 백소진(정지소 분)를 찾아간다.
앞서 백소진은 임기자를 찾아와 '스스로 방법사라 소개하며 그녀가 취재하던 포레스트 기업 진종현 회장에 대해 악귀가 씌었으니 '방법'만이 그를 대항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당연히 임기자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철없는 고등학생의 헛소리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제 김주환 부장과 그가 결탁한 포레스트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맞부닥친, 특히 자신을 폭력적으로 다룬 김주환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임기자는 백소진을 시험해 볼 겸, 김주환에 대한 '방법'을 허락한다. 그의 한자 이름과, 그의 물건만으로 '방법'을 한다는, 했다는 백소진의 말에 임기자는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날 김주환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원인 불명의 이유로 스스로 손이 돌아가고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른, 그리고 다리와 허리가 꺾여 피를 흘리며 죽은 모습은 도저히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이다. 말 그대로 '손발이 오그라들어' 죽어간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 <방법>은 '저주'의 마음을 지펴서 이뤄내는 주술 '방법'을 소재로 한다. 방법사인 여주인공이 첫 회에 누군가를 사지가 꺽이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으로 서막을 연 드라마, 흔히 오컬트 장르에서 우리가 보아왔듯 악귀가 들린 누군가와 싸우는 방식으로는 매우 극단적이다.
방법할 수 밖에 없는 사회악 드라마는 그 '극단'의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한다. 우선 스스로 방법사라 자처한 백소진은 어린 시절 그녀의 눈 앞에서 지금은 포레스트의 회장이 된 진종현(성동일 분)이 사람들을 끌고 와 외딴 산속에서 신당을 꾸리고 살던 백소진의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집을 불태운다. 겨우 홀로 도망친 소진은 당연히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진종현 회장에 대해 복수를 노린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백소진의 개인적 복수에 머물지 않는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IT 기업으로 성장한 포레스트, 하지만 최첨단의 기술적 발전을 이룬 기업이 사실은 무속에 의존하여 회사 일을 처리하고 그에 의문을 품은 직원에게 폭력을 가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포레스트에 대해 '정의감'이 넘치는 기자 임진희는 기자다운 방식으로 진실을 파헤치고자 애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시도는 내부 고발자의 죽음에, 이제 그녀 자신이 겁박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며 불가항력의 상황에 빠져든다.
그때 등장한 백소진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임진희에게 진종현은 그런 정상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내림굿을 받고 그때부터 승승장구하게 된 진종현 회장에게는 악귀가 씌였다는 것. 결국 인간의 몸으로 악귀를 받아들인 진종현 회장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바로 '방법'밖에 없다며 '주술'의 불가피함을 설득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부패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이 언론 등을 마음껏 좌지우지하는 전횡, 거기에 내부 고발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불법적인 도발 등의 부도덕한 자본과 그 자본의 모태가 되는 개인적 원한을 엮으며 '극단적 주술'의 방식인 '방법'의 개연성을 설득하고자 한다. 기자는 진실을 알리고자 하지만 기업의 커넥션으로 막히고, 형사는 사건을 수사하려 하지만 역시나 그 길은 봉쇄되고 만다. 심지어 그들이 마주선 '부도덕한 자본'은 부도덕을 넘어선 악귀라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상황,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원보원(以怨報怨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의 방식으로 '방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방법>은 <부산행>, <사이비>, <염력> 등으로 오컬트적인 장르에서 독보적인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나선 작품이다. 기업의 회장이 알고보니 악귀에 씌였고, 그 초자연적인 악에 맞서는 주술 '방법'이란 이야기는 이미 그 소재만으로도 신선한 시도이다. <손 THE GUEST>처럼 OCN으로 가야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은 작품을 편성한 TVN의 장르적 도전 역시 실험적이다.
그럼에도 남는 방법의 딜레마 물론 그럼에도 딜레마는 남는다. 12부작으로 간결하고 명쾌하게 풀어가겠다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1부에서 펼쳐진 장황한 전사에 이은 늘어진 사건 전개는 과연 오컬트적인 장르에 걸맞는 전개 방식인가에 의문 부호를 붙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2부에서 김주환 부장 죽음에 이은 본격적인 사건 전개로 기대로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제 아무리 '악한 존재'에 대항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저주'를 걸어 싸우는 방식에 대해 쉽게 고개라 끄덕여 지지 않는다. 김주환 부장이 제 아무리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태도를 가진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가 '온 몸이 오그라들고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야 할'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에게 겁박을 당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방법'을 부탁한 임기자가 과연 미필적 고의의 살인 교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리고 미성년이라 하더라도 온몸이 오그라들게 만들어 죽이는 주술을 거는 주인공에 대해 과연 얼마나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방법론', 아니 그 이전의 도덕적 딜레마를 과연 이 드라마가 결국 설득해 낼 수 있을까가 2회에 이른 드라마의 무거운 숙제로 남는다.
버스 사고 현장 그 자신이 버스와 함께 굴렀으면서도 정신이 들자마자 환자들을 살피는데 헌신하는 김사부(한석규 분), 그의 앞에 만삭인 임산부가 아이를 살려달란 말을 채 마치지 못한 채 정신을 잃는다. 임산부를, 그리고 그녀가 부탁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심장 박동을 놓쳐서는 안될 일, 심폐 소생을 하려는데 팔이 말을 안듣는다. 쉴 틈없이 외상 환자가 쏟아지는 돌담 병원, 그리고 오래 전 오늘과 같은 버스 사고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다 다친 어깨, 그 휴유증과 오늘의 사고 때문이다. 하지만 임산부를 살려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김사부는 자신의 통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능하다면 팔을 부숴서라도 고정이라도 시킬 듯이 자신을 다그쳐 심폐소생을 한다. 그리고 그런 김사부에, 아니 김사부가 그 버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민국 교수는 다시 한번 열패감에 빠진다.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2ⓒ sbs
열패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때도 그랬다. 10년 전 버스 사고 현장에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차창을 빠져나가려는 박민국 그와 달리, 김사부는 환자에 매달려 있었다. 당장 자신의 목숨이 사고 버스와 함께 경각에 달려있는데도 그는 '의사'의 본분을 다했던 것이다. 최고의 외과의, 의사로서의 자신감이 철철 넘치던 그는 바로 그날 그 버스에서 그걸 잃었다. 아니 김사부에게 빼았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뺏어간 그걸 되찾기 위해 그는 더 연구하고 노력했다. 김사부보다 더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거대 병원의 전 스텝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시연된 수술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그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게 된 게 '김사부가 보내준 쪽지'였다는 것을 알게된 박민국 교수는 다시 한번 좌절한다. 그리고 그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돌담 병원 원장 직을 수락한다. 김사부가 아니라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돌담 병원은 박민국이 보기에는 모순덩어리였다. 쏟아져 들어오는 외상 환자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김사부는 원칙도 없고, 시스템 따위는 엿바꿔먹은 채 오직 김사부에 의존한 주먹구구식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듯 보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라고 박민국은 생각했다. 거대 병원 최고의 외과의답게, 거대 병원의 시스템을 돌담 병원에 정착시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직원들의 월급을 대폭 인상하며 환심을 사고 병원장으로서의 권리와 권위를 한껏 이용하여 돌담 병원을 장악해 가면서 김사부를 기꺼이 짖밟아주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버스 사고 현장이다. 그날의 '트라우마'를 떠올린 박민국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 발을 돌렸다. 하지만 서우진과 마주쳤다. 차은재도 잇달아 허겁지겁 현장을 뛰어든다. 병원장인 그가 여기서 돌아설 수는 없다.
결국 버스 안으로 들어간 박민국, 가슴에 우산이 꼿힌 환자와 버스에 다리를 짖눌린 환자를 두고 다시 한번 김사부와 의견이 갈린다. 이른바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합리적'인 관점에서 박민국은 더 살릴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10년전 그날처럼 김사부는 두 사람을 다 살리겠단다. 결국 박민국은 손을 놓고, 김사부가 매달려 두 사람을 다 살려내고야 만다. 그러곤 다시 한번 '버스의 늪'에 빠져버린 박민국에게 여유롭게 '웁스(oops)'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김사부.
기다렸다. 김사부가 살려낸 두 사람의 수술이 끝나기를. 자신도 모르게 혹시라도 두 사람을 다 살려내겠다는 김사부의 결정이 어긋나기를. 하지만 수술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김사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무시해왔던 10년 전 그 버스 현장에서 부터의 모든 일들을 낱낱이 그에게 따졌다. 왜 나를 무시하냐고. 왜 나한테 그러냐고.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2ⓒ sbs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 거대 병원 최고의 외과의 박민국, 그가 사사건건 김사부에 대해 예민하다 못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건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다. 하루 아침에 전원장 여운영을 몰아내고 돌담 병원을 장악하겠다고 들이닥친 인물이 말이다. 그런데 돌담 병원 원장으로 내려온 박민국이 움직이는 동인은 오로지 김사부이다. 그것도 김사부를 이기기 위해서, 김사부보다 나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지만 10회 그가 김사부를 찾아간 장면에서 보여지듯이 김사부는 10년 전 그날 그 사고 버스 현장에 박민국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가장 어이없는 순간이다. 그토록 집요하게 김사부에게 매달려왔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을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니. 그리고 사사건건 박민국이 자신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김사부의 행동들은 그저 환자를 살리기 위한 김사부의 시급한 판단이었을 뿐이다. 결국 김사부 앞에서 박민국 교수는 참아왔던 분통을 터트리고야 만다. 그런 박민국에게 김사부는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한 마디 말을 건넨다.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
김사부의 말처럼 10년 전 그 버스 사고 현장에서 박민국이 차창 밖으로 나간 것을 두고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 버스에 남아있던 김사부가 결국 사고를 당한 것처럼, 자신의 목숨을 담보해야 할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박민국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지난 시간 김사부보다 더 나은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 어쩌면 그건 그날 그 버스에서 헌신했던 김사부처럼 살아오지 못했던 자신을 스스로 자책했던 시간이 아닐까. 그가 마음 속 깊이 생각하는 '의사'라는 본분과 다른 궤도를 살아왔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건 아닐까.
'열폭'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비롯한 가상과 현실의 공간에서 '열폭'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열폭'에는 언제나 '열폭'하게 만드는 대상이 있다. 하지만,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2>는 바로 우리 사회 고질병처럼 된 '열폭'의 근원을 명쾌하게 짚는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 자신이 마음 속에 그어놓은 어떤 선, 혹은 어떤 진실에 스스로 다가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겠냐고. 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문제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 아니겠냐고.
최고의 스타 외과의조차 그 감정에 휘둘려 자신을 내모는 감정, 그래서 그 누군가에게 '탓'을 하고픈 감정, 하지만 그 감정의 근원을 드라마는 차분히 짚어왔다. 도대체 의사가 왜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건지, 의사가 본질이 다른 의사보다 더 나은 의사인 것이냐고. 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늘 행보 한 걸음마다 누군가를 의식하며 누군가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메뉴얼'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드라마는 김사부와 박민국의 이야기를 통해 묻는다. 의사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하지만 이건 그저 '의사'의 문제만이 아니다. 삶의 질문이다. 당신 삶의 본질이 그 누군가을 이겨서 얻어내는 그것이어야 하겠냐고.
2월 1일부터 방영된 ocn 드라마 <본대로 말하라>에는 장혁이 나온다. 그런데, 그 장혁이 '액션'을 하지 않는다. 일찌기 <추노>이래 그 스스로 절제된 생활을 절권도를 오래도록 연마해왔음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듯 몸을 써서 하는 연기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배우 장혁이다. 당연히 <본대로 말하라>에 장혁이 나온다면, 그가 출연했던 이제는 <본대로 말하라>의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김홍선 피디와 함께 한 전작 <보이스1>에서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내세워 등장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웬걸 1회 본방이 시작되고 한참 후에 등장한 장혁은 휠체어에 검은 안경을 쓰고 등장한다. 드라마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작이란 휠체어를 움직이고 하얀 실리콘 장갑을 낀 손으로 각종 기기를 조작하는 정도, 이전의 드라마에서 보았던 역동적인 장혁은 언감생심이다. 과연, 움직이지 않는 장혁이 재밌을까? 드라마는 바로 이 '반전'의 묘미를 한껏 살린다.
움직일 수 없는 장혁 <본대로 말하라>의 장혁이 분한 오현재는 사고 이전에 천재적 능력으로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했던 프로파일러였다. 그런 그가 '그놈'이라 칭해지던 연쇄살인범에게 승부를 걸고자 했던 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그의 야심찬 시도는 5년전 사고와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찰청의 공식적 발표로 오현재가 쫓던 '그놈'은 폭발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오현재는 애인을 잃고, 그 자신 역시 앞도 보지 못한 채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2017년 방영되었던 <보이스1>에서 형사 무진혁으로 등장했던 장혁은 과거로 사고로 절대 청감 능력을 지닌 강권주의 수족이 되어 사건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제, <본대로 말하라>에서는 그 반대의 처지가 되었다. 앞도 보지 못한 채 휠체어에 의지하여 경찰청 연락망을 들으며 '그놈'에 대한 '와신상담'을 하고 있는 오현재에게는 <보이스1>의 그 자신처럼 수족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처지가 된 것이다.
오현재 대신, 아니 그 이상인 두 여자 차수영, 그리고 바로 그런 오현재 앞에 <보이스1>의 절대 청감을 지닌 강권주처럼 어머니의 사고로 인해 한번 본 것은 사진처럼 기억해 내는 '픽처링 능력'을 지닌 차수영(최수영 분)이 나타났다.
초등학교 시절 비오는 날 자신을 마중나온 농아 엄마가 싫었다. 그래서 외면했다. 하지만 그 외면은 엄마와의 영영 이별이 되었다. 차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수영에게 우산을 전해줘야겠다는 맘으로 도로를 건너던 엄마는 뺑소니 차량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 수영은 그때 그 장면을 사진처럼 기억했다. 차량 번호도, 차에 탄 사람도, 그리고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우산을 쓰라던 엄마의 손짓도.
그러나 안일한 경찰은 수영의 기억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겼다. 결국 기억하고 있는 수영이 직접 나서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의욕만 앞서는 시골 순경이다. 어떻게든 광역 수사대에 가야 하는데..... 시말서 감인줄 알았던 토막 시신 사건은 그 사건을 본대로 기억해 내는 수영의 능력으로 인해 기회가 되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오현재, 그의 손발이 되어줄 차수영, 낯익은 구도다. 1997년 제프리 디바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던젤 워싱턴,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본 콜렉터>가 떠올려진다. 전신마비의 천재적 범죄학자 링컨과 의욕적인 형사 아멜리아 콤비가 손 하나만 남겨진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기시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움직이는 못하는 '두뇌'와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의욕적인 '여형사'의 클라셰를 <본대로 말하라>는 오현재와 차수영의 캐릭터로 돌파하고자 한다. 사고로 인해서인지 원래도 인지 괴팍해진 프로파일러라는 점에선 오현재와 영화 속 링컨은 유사하지만 거기에 드라마는 간발의 차로 애인을 잃은 오현재만이 가지는 통한의 복수심을 얹는다. 그리고 그런 오현재처럼 역시나 오래전이지만 오늘처럼 기억을 가지고 있는 차수영의 해원을 결합한다.
그 결합은 처음엔 삐걱거린다. 오현재는 차수영의 기억이 본질을 놓친 주변부만 기억하는 쓸데없는 것이라 하며 내쳤고, 감정적이라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런 오현재가 막상 공장 안 그 누구도 모르는 장소에 갇혔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녀에게 자신의 두뇌를 빌어 사건 현장으로 인도하고, 처음 시체들을 보고 경악하는 그녀로 하여금 현장에서 예의 픽처링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파트너 쉽은 오현재가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는 차수영의 '감정적 헌신'으로 인해 오현재의 마음을 울린다. '딱해서, 나도 딱하고 너도 딱해서'라며, 딱한 파트너쉽의 연대 기조가 마련된 것이다.
오현재와 차수영의 파트너쉽을 완성시킨 황하영 그런데 <본대로 말하라>에서 오현재와 차수영의 파트너쉽만을 말하면 아쉽다. 파트너쉽이라기 보다는 '어벤져스'라 하는 것이 정확할 황하영의 존재감이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눈밝게 수영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 그런 그녀를 오현재에게 인도한 사람, 모두가 사라졌다한 오현재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사람, 조직을 앞세운 상부의 지시 앞에서도, 어쩌면 물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이고, 사건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그래서 궁시렁거리다가도 그녀의 지시 한 마디면 기꺼이 팀원들이 그녀를 따르게 만드는 팀장 황하영, 어쩌면 <본대로 말하라>의 모든 것은 갚을 것이 있다는 그녀로 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드라마는 기존의 드라마에서 '소모'된 장혁이란 배우의 캐릭터를 역으로 활용한다. 움직이지 않는 장혁, 두뇌만 쓰는 캐릭터, 그런 반전적 재미를 완성하는 건, 이른바 '걸크러쉬'한 두 여성 황하영과 차수영이다. 걸크러쉬라 하지만 두 사람의 매력은 정반대다. 황하영이 그녀를 세상 앞에 알린 <독전>의 그 독한 캐릭터못지 않게 육두문자를 마다하지 않고 범인에 대척하며 조직 이기주의를 앞세운 상사 앞에 끔쩍도 하지 않는 걸크러쉬한 캐릭터라면, 차수영은 오현재의 분석처럼 아직은 자신감조차 없어 말끝조차 흐리는 풋내기이지만 엄마의 사건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강단 만큼은 그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성장형 캐릭터이다.
위험한 공장에서 그 누군가 그곳을 들어가야 할 때 그걸 들어가겠다고 나선 수영에게 말없이 기회를 주는 황하영,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그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이 두 여성 캐릭터, 그리고 그녀들의 뒤에서 '두뇌'를 빌어주는 오현재의 '딱한 어벤져스', 신선한 조합의 활약이 기대된다.
ebs는 지난 2010년 <학교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통해 학교 교육의 방향을 모색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 2020년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7차 교육 과정, 시험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수행 평가가 대신하고 교사에 의한 하달식 교육 대신 활동 중심프로젝트가 대신한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바람직한 교육을 받고 있는가? 그 질문으로 부터 <다시 학교> 10부작을 마련하였다.
그 이전의 기능주의적 지식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며 그 자리를 대신한 새로운 교육 과정은 안타깝게도 '학력 저하', '학력 격차', '사교육비 사상 최대'의 결과를 낳았다. '지식보다는 역량이 중요하다', '학생 주도 수업'이 '강의식 수업'을 대신해야 한다는 최근의 학교 교육 담론, 그렇게 활동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 과정에서 교사의 자리는 점점 더 사라지며 스스로 '구태'라 여기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를 학원에 가서 하는 것이라 여기는 세태, 그래서 학교는 '잠자는 교실'이 되어버린 상황, 무엇이 문제일까?
다큐는 가르치지 않는 학교, 교사의 고백, 시험을 시험하다, 최고의 수업, 창의성의 발견, 학생다움을 묻는 어른에게, 수학이 불안한 아이들, 잠자는 교실, 학교는 동사다 등 총 10부의 다큐를 를 통해 현재의 학교 교육을 점검해 본다. 그 중에서도 10부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는데 글을 읽지 못하는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문해맹의 학교 세종 대왕이 창제하신 '쉬운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 중 한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은 전체 성인 인구의 7.2%인 311만 명 정도이다. (국가 평생 교육 진흥원, 성인 문해 교육 현황) 하지만 한글만 읽고 쓰면 다일까? 전체 성인 가운데 22%에 달하는 960만 명이 한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복잡한 내용의 정보는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실질적 문맹이란 무엇일까? 가장 이해하기 쉽게는 의약품 복용량 설명서나, 각종 서비스 약관 등 공공, 경제 생활에 필요한 문서를 활용하는데 미흡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바로 등장하는게 '문해력'이다. 즉, 말 그대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떨까? 교과서 내용 중 등장한 '머리에 서리가 내린다'에 여름인데 어떻게 서리가 내려요? 라거나, '얼굴이 피다'라는 문장을 설명하라니 피범벅된 얼굴을 그려 놓는다면? 과연 문장을 이렇게 이해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국어 수업만이 아니다.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유추하여 해석할 수 없는 학생들이 하물며 사회, 역사, 과학 교과서를 혼자 읽을 수 있을까?
청주에 있는 분평초등학교 2학년 지윤이에게 받아쓰기는 가장 두려운 시간이다. 책읽기는 로봇처럼 한 자 한 자 읽어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곤 한다. 글자를 제대로 못읽으니 당연히 수업은 못따라간다. 그러니 '공부가 재미없다'.
지윤이 만의 문제일까? 초등학교 학생의 11%가 이렇게 지윤이처럼 기초적인 문해력의 수준에 못미친다. 아이들의 문해력을 조사해 보면 개별적인 특성과 경험의 차이에 따라 3세에서 8세까지의 수준 차이가 난다. 당연히 3세 수준의 아이들은 심각한 읽기 부진을 보이고 이는 학습 부진으로 이어진다.
초등학교 만의 문제일까? 읽기 진단 검사를 마친 중학교 교실, 낱말 뜻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고지식'을 높은 지식이라 생각하고, '대관절'을 큰 절이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단어 의미를 바탕으로 한 추론이 불가능하다. 교과서를 이해할 수 없고, 학습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중학교 2학년인 의담이는 학원 수업마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엄마랑 함께 공부를 한다. 하지만 문장 하나, 문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 새벽 한 두시까지 공부해도 교과서 한 두 장정도를 소화할 수 있다. 이러니 다른 과목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고 있는 현실이다. 활동 중심, 학습지 중심의 수업 형태에서 아이들은 얼마든지 글을 읽지 않아도 한 학년을 지나갈 수 있다. 글을 못읽으니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는 애초에 무리다.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이 방치되는 현실이다.
왜 아이들은 글에 집중하지 못할까? 글을 읽는 아이들의 시선을 조사해 보니 아이들의 시선은 글이 아닌 부수적 정보나 지문 외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거의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훈련 자체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더 재밌는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이 있으니 더더욱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게다가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의 읽는 메뉴얼은 책과 다른 방식이기에 아이들에게 책은 낯설다.
공교육이 해야 할 몫 -문해력 그렇다면 이렇게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개별적인 차이이니까 각자 개인과 가정의 책임일까? 다큐는 바로 여기서 '공교육'의 위상을 불러온다. 말 그대로 공공의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가 그 몫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고 나아가 국가의 책무라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트리모아나 초등학교 뉴질랜드 원주민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의 이민자들이 모인 이 학교의 학생들이 언어 발달에 격차가 큰 건 당연한 결과다. 이에 뉴질랜드에서는 공교육의 책무로 국가가 나서서 '리딩 리커버리(reading recovery) 수업'을 진행한다.
국가가 지원하는 리링 리커버리 수업에서는 읽기가 부진한 학생들을 상대로 매일 30분씩 1년간 1;1로 전문적인 교육을 수행한다. 특히나 전문간들은 만6세 정도, 초등학교 2학년 이전의, 학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기기 전의, '조기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시 청주의 분평 초등학교, 매일 바쁜 업무에도 불구하고 방과 후에 지윤이와 함께 읽기 공부를 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지윤이는 이제 친구에게 자신만만하게 '받아쓰기 하나 틀렸어, 안타까워'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계절만의 변화이다.
얼굴이 피다를 얼굴에 피범벅을 해놓던 의담이를 비롯한 동산중학교 중학생들, 역시 문해력 캠프를 마쳤다. 왜 모르는 걸 질문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질문도 아는게 있어야 하지 않냐던 포기를 먼저 말하던 아이들은 이제 친구들과 당당하게 답안지를 맞추는 수준에 이르렀다.
겨우 몇 달의 수업이 아이들의 문해력을 변화시켰다. 그저 문해력만이 아니다. '노력을 안해서 죄송해요'라며 한없이 수그러들던 아이가 웃음을 되찾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가 펴졌다. 학원이 아니다. 그저 학교에서 조금 더 신경을 쓰니 달라진 것이다. 다큐는 말한다. 바로 이것이 '공교육'의 자리가 아니겠냐고. 가장 기본을 책임지는 곳, 그곳이 바로 교육의 자리라고 '다시 학교'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성장'의 화두에 자신을 던진다. 어제보다 더 낫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어제보다 조금은 '발전'된 삶, 하지만 그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서로가 입장이 다르다. 조금 더 높은 지위, 조금 더 많은 돈, 혹은 더 조금 더 멋지거나 이쁜 모습 등등, 의사라면 어떨까? 조금 더 나은 의사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여기 그 딜레마에 빠진 두 명의 젊은 의사가 있다. 바로 <낭만 닥터 김사부2>의 서우진(안효섭 분)과 차은재(이성경 분)이다.
서우진 - 진짜 의사? 일찌기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아버지가 남긴 빚에 자신의 학자금 빚으로 인해 추심업체 조폭들에게 시달림을 받다 돌담 병원까지 밀려 들어온 서우진, 그는 자퇴서를 품에 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 누구보다 뛰어난 손기술을 가진 발군의 외과의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한 고생 덕분에 내 실속만 챙기면 된다는 그의 왜곡된 신념으로 택한 선배의 병원행이 뜻밖에도 그를 '내부 고발자'로 만들어 동료 의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그의 손기술은 겨우 '페이 닥터' 언저리를 맴돌다 그마저도 내쫓김을 당하게 되어 버렸다.
당장 빚쟁이들을 달래기 위해 단 돈 천 만원이면 기꺼이 자신을 팔겠다고 나섰지만 그런 그의 '호구지책'에 김사부는 냉랭하고, 겨우 말미로 얻어낸 1주일 동안 그가 잊고 살았던 '진짜' 사람, '진짜' 의사의 향기를 돌담 병원에서, 김사부에게서 느끼며 점차 돌담의 일원이 되어가는데, 뜻밖에도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는 그에게 들이닥친 '위기'는 바로 그를 '외톨이'로 만들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였다.
어린 자신과 함께 음독을 했던 부모님처럼 아이와 함께 약을 먹고 병원에 실려온 아버지, 그 아버지 환자를 서우진은 거부한다. 자신의 목숨은 물론,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자기 아이마저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그 아버지를,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같아서 용서할 수 없다. 겨우 목숨을 건진 채 응급실에 누워있는 그에게 '차라리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한 고모의 기억을 잊지 못한, 아니 그 고모의 한탄이 그저 지나가는 말이 아닌 듯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 이후 정말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게 아닌가 싶도록 힘들게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더더욱 자기 자식과 함께 죽음을 선택한 그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의사'였다.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온 순간, 수술실에 환자가 누운 순간, 그가 누구인가를 선택할 수 없는, 그저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이 의사의 '사명'이고 '숙명'인 그러나 서우진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 '의사'임을 순간 벗어나고 만다. 그의 거부에 박은탁 선생(김민재 분)은 그 '원칙'을 환기시킨다. 당신은 '나쁜 의사'냐며. 그리고 김사부는 그를 당연한 책무인 양 그 아버지 환자의 수술실에 부른다.
주저하고 고뇌한 끝에 수술실에 들어선 서우진, '나쁜 의사'가 되지 않기 위해, 덤덤하게 김사부 옆에서 수술을 돕고 마무리하는 그 과정은 그가 지난 시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고민했던 '진짜'를 향한 첫 걸음이요, '왜 나에게'?라며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가족사의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용기'있는 선택이다. 그리고 '마주하는 용기'만으로도 그 부모님 옆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였던 서우진은 훌쩍 자라 외과의 서우진으로 선다.
각자도생 이기적인 길 중 가장 유용한 길이라 생각해 선택한 '의사'라는 직업에서 그는 김사부를 보며 '진짜'가 아닐까 했다. 나만 잘 산면 돼 하던 그는 왜 '내부 고발자'가 되었을까. 그에게 다가온 물음표, '진짜', 어쩌면 홀로 살아남은 그가 가장 원했던 건, '더부살이'처럼 사는 인생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 '진짜'의 답을 서우진은 찾아가는 중이다.
차은재 - 의사의 재능? 차은재에게는 가난은 없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의사였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따라서 의사인 언니의 집안에서 은재 역시 '선택'의 여지없이 의사가 되었다. 물론 다른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르치던 선생님이 재능이 없으니 취미로 하라는 말에 그만 두었다. 가업을 따라 의사가 되었지만, 첫 해부학 실습에서 그만 토하며 쓰러졌다. 역시 이번에도 재능은 없는 건가?
그렇게 자신의 재능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아니 내내 의심해 왔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자기 내부의 고민을 떠올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환자를 데리고 온 부모, 하지만 어린 환자의 아빠는 아이 걱정에 애닮은 엄마를 다그치다 못해 폭력을 휘두르려 했다. 참다못한 엄마는 아버지를 향해 커터칼을 들이밀었고, 그걸 차은재는 자신의 몸으로 막았다. 그런데 그런 차은재의 '선의'는 병원장 측에 의해 왜곡되고, 외려 '가해자'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차은재의 억울함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국 아이의 엄마는 커터칼을 마저 휘둘렀고 그 아버지이자 남편은 살아남지 못했다.
나 하나 참으면 돼 하는 '타협', 혹은 김사부의 말대로 '편한 선택'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한 가정의 파멸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차은재는 자신의 재능을 떠올렸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쓰러지고, 흉부외과의임에도 제 아무리 청심환을 쏘아부어넣어도 수술실에서 견디지 못해도 악바리처럼 응급실에서라도 자신의 몫을 다하려하며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던 차은재였는데, 비로소 그날 해부학 실습실에서 쓰러졌던 자신을 복기한다. 바이올린처럼 이번에도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일까 라고.
그러나 그런 그녀의 절망에 돌담 병원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다시 불려온 응급실, 이번에는 무기수 청년이다. 오랜 투석으로 인해 혈관이 다 망가지고 거기에 설상가상 본인이 살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는 환자, 그 환자를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쓰고 나서 허탈함에 나선 복도에서 서우진을 만난다.
'살려고도 하지 않는 무기수'에게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차은재에게 그녀가 자조적으로 쏟아부었던 '재능론'을 들었던 서우진은 그게 바로 '의사의 재능'이라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 말에 은재의 얼굴에 반짝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김사부의 '니 탓이 아니라'는 덤덤한 위로가, 그리고 수쌤의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시하라는 충고가 자신의 재능을 탓하던 은재에게 비로소 자신으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인생은 묘하다. 자신에게 다가왔던 '트라우마'든 '과제'든 그걸 피해 제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다시 그 문제에 마주서게 한다. 그래서 일찌기 헤르만 헤세는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서우진과 차은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과거'의 알, 과거의 세계에서 한 걸음 나섰다.
물론 나섰다고 끝이 아니다. 서우진과 차은재는 뇌사자와 그 뇌사자의 장기 이식을 두고 예우와 기증의 적시를 두고 날카롭게 맞선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또 다른 '의사'의 길에 대한 질문과 과제를 떠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두 사람은 이제 그들을 오래도록 붙잡았던 과거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건, '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는 '데미안' 속 그 문장처럼 또 다른 나를 향한, 의사 서우진과, 의사 차은재의 길이다.
얼마전 아는 분이 아들네가 둘째를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시작은 축하한다였지만 결국은 '어떻게 해요'라며 걱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출생율은 매년 최저를 갱신하고 있는 시절, 하나라도 더 낳으면 좋은 일 아닌가 싶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집안, 그나마 좋은 직장을 다녀서 어린이집의 혜택을 받는다지만, 일찍 끝나는 어린이집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할머니'의 몫이다.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가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할머니가 그 '대타'를 하기 위해 서둘러 와야 하는 처지다. 할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면 완전 비상이다.
아이는 엄마가 낳지만 그 아이 하나를 기르기 위해 온 가족이 다 동원되어야 하는 현실, 그래도 그나마 봐줄 할머니가 있으니 낫다지만, 자식에 이어 손주까지 돌보는 할머니의 형편은 그리 녹록치 않다.
돌봄 공백을 몸으로 때우는 할머니 시작은 이제 60줄에 들어선 허정옥 씨네 집이다. 아침부터 일어나기 싫은 손주를 질질 끌다시피 이끌고 업고 하여 허정옥 씨가 출근한 곳은 같은 아파트 15층에 사는 큰 딸네 집이다. 두 명 중 한 명의 손주를 자신의 집에서 재운 정옥씨, 손주를 데려다 놓으면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그녀의 육아 전쟁이 시작된다.
두 손주와 실랑이를 벌이는 딸 대신 그 집 식구들 아침 챙기기부터 시작된 정옥 씨의 아침은 아이들을 겨우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어지러진 딸네 집안을 챙기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가 싶더니, 오후 4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와서 딸이 올 때가지 끝나지 않는 놀이 지옥 속에서 할머니의 혼을 쏙 빼놓는다. 직장에서 돌아온 딸은 힘들다고 꼼짝하지 않고 그 대신 엄마인 할머니가 동분서주 바쁘다.
2016년 큰 애를 낳으면서 시작된 황혼 육아, 딸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린다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는 자식 생각해서 해주는 일이지 돈 생각했으면 못할 일이라 고개를 내두른다. 이제는 제법 큰, 하지만 여전히 아기같은 손주들을 번쩍 번쩍 안고 업고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약을 달고 산다. 병원에서는 오래도록 쓴 육체가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며 휴식을 요구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18년 보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아이를 개인에게 맡기는 경우, 83.6%가 조부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더구나 아이를 돌보는 조부모들 중 열 명 중 한 명은 일주일에 7일 동안 아이를 돌보고 있는 과도한 황혼 육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자식이 힘들까 참여하기 시작한 황혼 육아에서 조부모들, 특히 할머니들은 손목터널 증후군, 관절염, 척추염 등 '손주병'을 얻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안은 없다. 여전히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자식 세대에게 맞벌이를 그만두거나 할머니에게 맡기거나 밖에 없는 현실, 믿을 곳이 되어주어야 하는 조부모들의 처지는 녹록치 않다.
이에 전문가는 설사 믿고 맡기는 내 부모라 하더라도 과연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즉 시간이나 조건에 있어서 명확하게 육아의 한계를 약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이제 곧 둘째 출산을 앞둔 문미예 씨 집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온 가족이 육아에 참여한다. 아침 일찍 딸네 집으로 출근한 할아버지 문정기 씨가 오전 중에 손녀를 돌보면 오후에 할머니가 와서 돌봄을 이어가는 식이다. 가족마다 2~6시간 씩 시간을 나눠 한 사람에게 '독박 육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데 이런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가족들이 어디 쉽겠는가.
마음의 벽을 쌓는 황혼 육아 하지만 애본 공은 없다고, 할머니의 황혼 육아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대구에서 김포로 9살 손자를 돌보러 오는 73세의 곽정화 씨, 그런데 먼 길을 어렵게 온 할머니를 대하는 손주의 태도가 영 석연찮다. 하교 길에 반기는 할머니한테 대뜸 '왜 할머니야'라고 볼멘 소리를 내놓고 하더니 집에 와서도 할머니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하지만 카메라에 비친 할머니도 만만치 않다. 꿀먹은 벙어리같은 손주에 대한 섭섭함을 피력하는 것도 잠깐 앉은 자세부터 연신 잔소리다. 며느리가 돌아오니 태세마저 전환하신다. 대놓고 첫 째 며느리를 본받으라 한다던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음식 만들기에 남자 아이들한테 웬 부엌 일이냐며 핀잔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참다못한 며느리는 방학을 핑계대며 할머니가 이제 먼 길을 고생하며 오시지 않아도 된다하고,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섭섭하다.
이렇게 막상 아쉬워서 부탁한 황혼 육아지만 집집마다 젊은 며느리 세대와 나이든 할머니 세대의 육아 방식의 갈등은 가족 내 위기를 조성한다.
69세 김복순 씨 역시 며느리의 부탁으로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큰 손주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할머니는 밥을 먹다 말고 라면을 먹고 싶다는 손주에게 라면을 끓여준다. 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고 싶다면 말리는 엄마한테 그게 얼마나 된다며 하며 손주 역성을 드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눈치가 빠른 아이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그런 관계에서 소외된 엄마는 자신이 귀찮은 큰 누나가 된다며 상실감을 호소한다.
실제 2015 보육 실태에 따르면 황혼 육아를 하는 세대의 50%가 양육 방식의 차이로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할머니와 엄마의 권한 사이에서 정작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아이들, 곽정화 씨의 9살 손자가 마음을 닫은 건 잔소리 많은 할머니로 인한 마음의 상처 때문이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 아무리 할머니 세대에게 육아를 맡겨도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 부모 세대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 전문가의 고언대로 될 수 있을까. 다큐 속 할머니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이해를 더하며 한 발 물러서셨지만, 자기 자식들을 키우며 평생을 살아오며 '습'처럼 익혀진 삶의 방식에서 나오는 조부모 세대의 사고 방식이 쉽게 변화되는 건 쉽지 않다.
보육 시스템의 부재, 그런 가운데 기댈 곳은 부모님 밖에 없는 현실, 하지만 정작 내 자식이 힘들까봐 시작한 황혼 육아에서 몸도, 마음도 다쳐가는 부모님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가족의 문제로 치환시킨 현상은 문제점은 명확하지만, 해결책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그 딜레마를 감수하고 굳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을까란 최저 출산율의 딜레마로 귀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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