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뭘까. 아직 어른이 되지않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 자란 사람'이 아닐지 학교도 다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해야할 그 무언가가 없는 어른들이 참 속편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의 이런 생각에 당연히 어른들은 '밥벌이의 고달픔'에 대해 논박할 것이다. 하지만 '호구지책'만 있을까. 어른도 '숙제'를 받아든다. 그런데 그 숙제를 내주는 것이 '인생'이라 이게 고달프다. 아이들은 숙제를 해서 달려가 검사를 받고 정, 오답의 여부를 알 수 있는데 어른들이 받아든 숙제의 답은 그리 녹록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제 14회를 마친 <낭만 닥터 김사부2>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인생의 숙제'를 받아들었다. 과연 그들이 이 받아든 숙제를 어떻게 해나갈 지 그에 따라 그들 인생은 다시 한번 또 두 갈래 길 중 하나의 길로 떠나게 될 것이다. 

 

 

서우진과 임현준의 숙제 
이제는 스카우터가 되어 돌담 병원의 의료진을 넘보던 선배 임현준과 빛쟁이들이 김사부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자 서우진(안효섭 분)은 김사부를 보호하기 위해 돌담 병원을 포기하겠다고 결정을 내린다. 그런 결정에 돌담의 모든 식구들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김사부는 우진에게 '숙제'를 남긴다. 자신을 치료하며 당당하게 '주치의'라 했던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그 책임은 가깝게는 주치의답게 수술 상처를 돌보라는 것이요, 좀 더 크게는 이제는 온몸 안 아픈데 보다는 아픈데가 더 많은 김사부의 병명을 알아내라는 것이다. 

다행히 배문정 선생 등의 도움으로 무사히 '빛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 서우진은 김사부에게 달려가 그 '숙제'를 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러자 그런 서우진에게 김사부가 '힌트', 혹은 두 가지 질문 중 하나의 답으로 내준 건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엄청난 양의 파일이었다. 그래도 어쩌면 서우진은 다행일 지도 모른다. 무지막지한 양일지도 모르지만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참고서'가 있으니.

그렇게 서우진이 김사부의 숙제를 용감하게 받아들 수 있게 된 데에는 오래도록 묵혔던 숙제 하나를 겨우 제대로 끝낸 임현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우진과 함께 병원을 개업했던 임현준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리 수술을 감행하다 의사 면허가 정지되고 만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스타우터'가 된 임현준은 더 많은 돈을 미끼로 의사 등을 자신처럼 '뒤가 구린' 병원에 소개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서우진이 돌담병원에 있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내려와 그를 괴롭힌다.

결국 서우진이 돌담을 포기하게까지 만든 서우진, 그런 그를 돌담 복도에서 맞닥뜨린 김사부는 임현준에게 일갈한다. 서우진만큼이나 살기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사느라고 애썼다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던 임현준에게 날린 김사부의 '회초리'는 '양심'이다. 

'아무리 돈이 없고 화가 나고 무시당하고 자존심상해도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게 바로 양심이라는 거야. 넌 그 양심 지키기 위해서 어디까지 해봤어? 어디까지 버텨봤는데? 넌 그냥 되는대로 사는 거잖아. 네 욕심대로. 돈만 된다면 그러면 양심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다 팔아먹으면서' 


나도 억울하다 항변을 하는 임현준에게  맨날 지만 억울하다지 라며 '불쌍한 새끼'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떠난 김사부, 그렇게 그를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흔들린 현준에게 차은재가 쐐기를 박는다. 자기만 억울하다며 그 탓을 서우진에게 돌린 현준에게 서우진은 단 한번도 억울하다는 말 한 마디, 비난의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비로소 '나만 억울해'의 마법에서 깨어난 임현준, 그때서야 서우진에게 다가가 왜 그가 자신과 함께 했는지 뒤늦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가 팔아먹어 버린 양심,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쪼그라든 채 웅크리고 있었던 양심 한 조각을 꺼내 서우진을 이제야 놓아주는 것으로 그의 뒤늦은 숙제를 마무리한다. 

 

 

'두 환자의 심폐소생' - 무거운 숙제를 받아든 김사부와 박민국 
하지만 김사부답게 임현준에게 '양심'을 호통쳤지만,  이제 김사부도 그 '양심'의 숙제, 그 늪에 빠지고 만다. 14회 2부, 드라마는 숨가쁘게 목숨이 경각에 놓인 두 환자의 상황을 오고간다. 

그 중 하나는 응급실로 실려온 여운영 전 원장(김홍파 분)이다. 폐암 말기로 정신을 잃고 실려온 여원장, 김사부를 비롯한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위급한 상황에 빠진 그를 살려보려 애쓴다. 그런 와중에 심실세동, 당연히 심폐 소생을 하려하는데 김사부가 고개를 꺽는다. DNR(심폐소생거부)이었던 것. 

여기서 DNR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여원장을 보내야 하는 순간, 그만 김사부는 컴프레션을 외친다. 그리고 나서서 심폐 소생을 시도한다. 겨우 고비를 넘겨 자가 호흡을 하게 된 여원장, 하지만 병실로 옮겨진 여원장 곁에서 김사부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오명심 수간호사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내내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는 김사부, 여원장의 원칙에 따르자면 그를 보내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그 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그만 의사로서의 원칙을 어기고 만 것. 그간 <낭만 닥터> 속 김사부는 부용주란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가 된 것처럼, '살아있는 신화'와도 같은  김사부의 이야기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 14회, 그런 김사부도 '인간적인 정' 앞에서는 자신의 의료적 원칙마저 흔들리는 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의료적 원칙을 흔들린 김사부는 더 인간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게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무거운 숙제를 짊어지게 된 김사부와 달리, 또 다른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한 숙제를 짊어지게 된 한 사람, 박민국 교수가 있다. 버스 사건으로 김사부가 '이제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라고 충고를 했건만 여전히 박민국 교수는 김사부에 대한 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김사부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WPW 증후군(조기 흥분 증후군)인 환자의 수술을 마취과 심혜진(박효주 분) 선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행한다. 3년전 비슷한 경험을 한 심혜진 선생이 애를 써보지만 결과는 테이블 데쓰. 사람을 살리려는 의사의 양심에 앞선 '이기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먼 박민국 교수의 무모한 수술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두 명의 환자에게 가해진 심폐 소생, 김사부는 환자를 살려서, 그리고 박민국 교수는 죽여서 버거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그 두 사례가 모두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정'과 '욕심'이라는 '과제', 과연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두 사람은 과연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낭만 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해프닝처럼 시작되어 결국은 인간사에 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감성'을 건드리지만 결국 우리에게 '진지한 이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by meditator 2020. 2. 19. 1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