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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멈췄다. 예정된 일정이 취소됐고, 만남은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본의 아니게 '자가 격리'에 들어선 일상, 답답해서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 산책이라도 할까 나선다. 늘 동네 사람들로 붐비던 산책로, 이제는 그곳마저 사람들이 뜸하다.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다.
그런데 저만치서 사람이 온다. 나도 모르게 주춤, 옆으로 비껴서게 된다. 마치 그 사람이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처음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마스크'는 '매너'였다. 상대방을 위해 나의 '비말'을 전파하지 않는,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확진자 5000 여명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방패'가 되었고, 타인은 '혹시라도 모를 전염원'이 되었다. 어디서 마스크를 판다하면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룬다.
신영복 씨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겨울보다 여름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옆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열기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신영복씨가 느꼈던 자괴감을 바로 이제 2020년 초봄에 우리가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포옹과 키쓰마저 자제하라고 하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던져졌다. 지난 2월 29일 방영한 <시사 기획 창>은 바로 이렇게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이 격리당한 현실을 찾아간다.
격리된 도시
다큐의 제작진은 코로나 19에 강타당한 심장부를 향해 ktx를 탄다. 2월 26일 동대구역, 하루 평균 6만 5천 명이 이용하던 역은 텅 비다시피했다. 차로 꽉차던 범어 네거리에는 코로나 19의 현황을 알리는 전광판만이 바쁘다. 심지어 지하철 역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멈춰섰다.
대구에 유세를 하러 내려가는 정치인들이 단골로 찾는 서문 시장, 축구장 13개보다 더 넓은 9만 3천 m²의 면적에 5만 5천여 개의 점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곳, 그 서문 시장이 멈췄다. 점포들은 문을 닫았고 노점은 꽁꽁 싸맨 채 덮여있다. 안그래도 갈수록 재래 시장이 장사가 안되던 차에 코로나 19는 엎친 데 덮친 쳑, 불난데 기름 붙는 격이 되었다.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이곳에서 삶을 일구던 초로의 상인은 마수걸이도 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보이고 만다. 노인들로 붐비던 달성 공원도 텅비어 있고, 대형 서점들도 굳게 셔터를 내렸다.
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 하니 거의 운행을 하지 않는다. 협소한 공간을 꺼리는 사람들로 인해 운행 자체가 반 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나와도 하루 만 오천원 벌이, 돈도 돈이지만 낯선이를 태워야 한다는 공포심이 늘 부담으로 택시 운전자들의 어깨를 누른다.
시민들은 스스로 격리 생활 중이다. 학교를 다니는 딸 윤서를 키우는 김은지 씨는 개학이 9일로 미뤄졌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엄마는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맡겨야 하지만 코로나 19에 연로한 노인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니 부모님 걱정도 앞선다. 마찬가지로 워킹맘인 정민희 씨는 부부가 번갈아 휴가를 내고 이 사태를 감당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땐 어찌해야 할 지 갑갑한 상황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있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김모 씨는 자가격리 중이다. 가족 들과 같은 집에 살지만 생활은 따로 한다. 가족들과 2m 이상 따로 떨어져 지내는 그는 얘기도 못나누고, 식사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하다. 그래도 갑갑한 건 참을 수 있다. 가족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혹시라도 자신으로 인해 코로나19가 옮았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부족한 물품 문제도 심각하다. 정민희 씨의 경우 마스크를 다섯 매를 만 오천 원에 겨우 구입했다. 그래도 어른은 마스크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참지만 어린 승유는 마스크를 못견뎌 한다. 대형 마트에 가도 우유가 없다. 라면은 딱 한 번들 샀다. 어린 승유는 예전처럼 고기를 먹으러 '외식'을 하고 싶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시절
대남병원이 있는 경북 청도는 어떨까? 2월 27일 경북 청도, 주민 절반이 60대 이상인 조용한 이 도시 한 가운데 군청을 마주하고 대남병원이 있다. 매년 5월 청도을 들썩이던 소싸움 축제는 기약할 수 없게 된 가운데 힘든 시간을 이겨내자는 격려 방송만이 적막한 거리를 감싼다. 정부 특별 대책 지원단이 있는 군청 구내 식당마저도 닫고, 인근 상가도 철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우 농가들이 소독제를 지원하고, 병충해를 잡던 드론으로 병원 외벽 소독을 하는 등 청도 사람들 스스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구에 이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2월 25일 부산으로 가는 ktx, 표 구하기도 힘들던 부상행 ktx에 빈 자리가 더 많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학생들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는 엄마의 부탁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도 그 무엇도 만지지 않으려 애쓴다. 말이 귀향이지, 살던 집 위층에 확진자가 나와 집이 아닌 딴 곳으로 가야할 처지다.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온천 교회는 문 닫은 지 오래, 신도들의 신상이 드러날까 교회 홈페이지도 폐쇄되었고 신도들은 자각 격리에 들어갔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방송국 카메라에 울분을 토하고 택시 운전사들은 자신이 외려 채워넣어야 하는 사납금을 호소한다.
서울이라고 다를까. 2월 27일 서울 은평구 설아네, 어린 아이 키우는 집은 어디를 가나 '위기감'이 크다. 나갔다 들어오면 서둘러 손을 씼고, 아이와의 외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2주 넘게 집에만 있는 상황, 설아를 유치원에 보내고 재취업을 해보려던 엄마의 부푼 꿈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늘 차가 막히던 강남 도심에도 차가 드물고 '맛집' 불문 대부분의 상점들은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 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3에서 2.1%로 하향 조정했고,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코 앞의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도 비상이다. 선거 운동이 멈췄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온란인 선거 홍보 등의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심지어 총선 연기론마저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었던 중국 유학생 입국 문제, 바로 그 유학생들이 입국하는 현장인 인천 국제 공항은 비상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준 가운데 개학을 앞둔 유학생들이 입국하고 있다. 방역이 강화된 공항을 유학생들이 빠져나오면 각 학교에서 나온 직원들이 유학생들을 한 명씩 차량에 태워 기숙사로 보낸다. 지역 주민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2주간 기숙사에 격리될 학생들은 매 끼니 식사와 생필품이 제공된 가운데 매일 2 차례 씩 체온을 재는 등 만약의 사태 대비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일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 유학생을 보유하고 있는 경희대의 경우 3000 여명 중국인 유학생 중 기숙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불과 10%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는 학교 밖 주택, 원룸 등에 있는 유학생들 '자가 격리'를 요청하고 매일 이동 동선을 확인한다지만 그 실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거짓 상술도 판을 친다. 마스크 사재기에서 부터 필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불량 마스크, 코로나 19 발생지인 후베이성에서 만든 마스크가 온라인 마켓에서 유통되는가 하면, 이 틈을 타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애준다는 공기 청청기까지 갖가지 상술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전문가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확률을 줄이는 것, 스스로 사회적 격리, 거리두리만이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해법이라 입을 모은다. '일상을 찾는 것이 꿈이 되었다'는 하상욱의 짧은 시처럼, 평범해서 기억에도 남지 않았던 지난 봄을 모두가 그리워하는 시절이다.
코로나19에 점령당한 대한민국, 그런 와중에 '마스크, 방호복 등 기본적 장구의 부족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이 감염되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신이 감염되면 환자를 돌보지 못해서 걱정이라는' 대구에서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최전방의 군인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테니 불안해 하지 마시라는 그 한 마디에 백 마디의 설명보다 더한 '위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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