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모색하는 '특별 기획'으로 <대한민국 길을 묻다> 4부작을 마련하였다. 11일 방영된 첫 시간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의 <실업 팬데믹>을 방영하였고, 다음날에는 김연희 BCG 아시아태평양 유통부문 대표가 코로나 19로 변화된 소비 심리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진단했다. 이어 13일에는 기모란 국립 암센터 예방 의학과 교수가 코로나 19와 지금까지 바이러스와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 지, 2차 유행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지 살펴볼 예정이다. 끝으로 14일에는 이화여대 에코 과학부 최재천 석좌 교수가 바이러스 시대를 맞이하여 자연과 인간이 공존을 통해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경제 위기 코로나로 증폭되다 
그 중 첫 시간을 연 성태윤 교수는 이미 우리나라가 코로나 이전부터 경제적으로 상황이 심각했다고 진단한다. 그 예로 지난 2년간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 총생산)와 GNI(Gross National Income 국민총소득)가 연속적으로 감소해왔다는 증거를 든다. 이처럼 2년에 걸쳐 감소한 경우는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금융 위기 밖에 없었기에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왜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 경제는 위기 상황이었을까? 그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 52시간 제도 이다. 미국의 경우 주 40시간 이상을 근무할 경우 임금을 1.5배를 늘인다던가, 의사 등 특수 직종은 그런 초과 수당에서도 제외시키는 등 탄력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유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일 맥주 회사는 근로 시간 계좌 제도를 운영하여 수요가 많은 여름에 초과 근무를 하여 근로 시간을 저축하여 놓고, 일감이 없는 겨울에는 줄이는 등 역시나 탄력적 운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 52시간을 일괄적으로 법적으로 강제하다 보니 정작 노동자들이 수당 등으로 보전했던 임금이 감소하며 주 52시간만을 근무해도 충분한 월급을 받는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근로자도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무엇보다 기업이 심각하다. 적은 노동 시간으로도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시스템으로 재배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 52시간 제도를 맞이하다 보니 노동 비용은 증가하고 생산성 증가는 이루지 못하는 등 경제 적응력 자체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경제 지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외부 요인이 겹체 '존망지추(사느냐 죽느냐 하는 위급한 시기란 뜻으로, 나라가 존재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중대한 때를 일컫는 말)'의 위기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성교수는 안타까워한다. 

특히 그 직격탄은 청년 계층에게 떨어졌다. 기업들의 3/4이 예정된 채용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하다 보니 취업을 준비해왔던 청년들은 망연자실하게 되었다. 취업 만이 아니다. 자영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알바 자리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청년층만의 경우라 할 수도 없다. 그 이전 연도에 비해 19만 5천 명이 감소한 취업자 수는 60대를 제외하고 전 연령대에서 감소했고 이는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최대치이다. 

지금까지 15만6천명이 실업 급여를 신청한 상황, 호텔, 항공, 대기업 등 직종과 나이에 상관없이 실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실제 무급 휴직 등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직장인들이 160만 7천 여명으로 작년 대비 4배나 증가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규모 일자기 위기는 코로나 19가 사라지면 덜해질까? 성태윤 교수는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길고 험란한 과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과 독일의 서로 다른 해법 
그렇다면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킬 방법이 있을까? 이에 성교수는 임금을 유지하며 일자리를 지키는 건 지니의 요술 램프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며 결국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제시한 두 가지 사례, 

그 중 첫 번째는 미국 GM의 사례다. 미국은 기업이 어려울 대 즉시 해고할 수 있는 '외적 조정' 제도를 택하고 있다. 한때 미국 최고의 노동자 보유 기업으로 미국 산업을 선도하던 GM은 2009년 파산을 신청했다. 생산 공장을 폐쇄하고 강도높은 구조 조정을 진행하는 한편 노동자의 고임금을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노동자를 해고하였다. 그 결과 GM은 39일 만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GM이 한 대규모 해고의 사회적 여파는 컸다. 개별 기업으로서는 파산을 벗어나는 즉각적이고 실효성 높은 해결책이지만, 기업에서 놓여난 노동자들로 인해 전사회적 경기 불황의 여파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즉 기업은 회생했지만 기업에서 해고되어 구매력을 상실한 노동자로 인해 사회적 부담은 외려 커진 것이다. 

그와 반대의 사례다 독일 폭스바겐이다.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은 통일 휴유증 등으로 이익률이 급감하자 노조의 합의 하에 임금을 삭각한 생산 라인 '아우토 5000'을 새로 만든다. 여기서 만든 차는 가격과 품질에서 호평을 받으며 2005년 이래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되었고, 이런 생산 공정 변화의 수익을 통해 폭스바겐은 위기를 극복했다. 

폭스바겐의 사례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며 위기를 극복한 사례다. 사람을 조정하는 대신 임금을 낮춰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내적 조정'의 방식으로 우리나라는 이런 폭스바겐의 사례를 '광주형 일자리'의 형태로 도입하여 최근 노동 비용 증가와 수출 감소의 난제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미국과 달리 '내적 조정'의 사례는 2008년 금융 위기에 독일이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았듯이 사회적 여파를 줄인다. 성태윤 교수는 이런 '내적 조정'의 사례가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사회의 부담을 줄이는 '조정' 사례라고 적극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광주형 일자리가 취지와 달리 사회적 성과에 있어 여러 난제를 겪고 있듯이 경제적 이해 관계를 고려하여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개별 기업이 경기 변화에 따라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의 '조정' 방식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19 이후 달라질 기업 환경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성교수는 주장한다. 일시적 부진을 겪는 항공이나 교통 부문은 정상화될 것이지만 19세기 기계로 대체된 수공업으로 인해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자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역사적 넌센스로 기록되듯 이미 '언택트 사회'로 진행되고 있는 산업 부문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나 중소 상공인들이 코로나 19로 위협을 받고 있는 한편에서 화상 회의 서비스 기업. 새벽 배송, 코로나 진단 키트  등이 사상 초유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새로운 기업과 새로운 일자리가 등장하고 있는 점에 집중해야 새로운 일자를 보다 많이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기업들의 등장을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20세기 미국이 우편 독점권을 해제하며 다양한 우편 배송 업체가 등장할 수 있었듯이 경제 시스템 활성화를 위한 규제 환경의 조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결국 코로나 19는 4차 산업 혁명이라고 화두를 봉착했던 우리 산업의 생태계를 더욱 급격하게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던진다. 산업 혁명이 기계 산업의 발전이라는 겉모습 이면에 자유 경쟁이라는 시장 경제 논리의 사회적 확산이라는 시대적 담론과 함께 하듯이 결국 지금 우리는 정체된 산업 경제 시대, 그 이후의 시대를 급격하게 맞이하고 있다.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성태윤 교수는 선택지는 열려있지만 그 선택에 따라 사회와 기업이 맞이할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 예언한다. 

by meditator 2020. 5. 13. 17:03

또 한 편의 의학 드라마가 찾아왔다. 매주 수, 목 밤 10시, kbs2를 통해 방영되는 <영혼 수선공>이다. 안타깝게도 목요일 밤 화제작인 <슬기로운 의사 생활>과 시간대가 겹치는 바람에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신하균이 정신과 의사 이시준으로 분하여 '정신과' 분야를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 생활>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의학적 힐링을 지향한다. 

 

 

마음이 아픈 시대 
아마도 그 '힐링'의 출발점은 친구와 함께 바닷가를 찾은 정소민이 분한 여주인공 한우주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있는 힘껏 오열하고 절규하는 그 장면이 아니었을까? 또한 자신과 더블 캐스팅된 아이돌 팬들이 자신의 공연 차례에 상복을 입고 나타나 팔짱을 끼고 앞좌석을 차지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그들이 보낸 화환을 발로 차는 장면은 어떨까? 그리고 애인이라 해서 도움을 청했는데 변심한 애인은 단독 보도의 욕심에 나눈 대화를 단편적으로 편집하여 10년 고생해서 탄 신인상을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자 야구 방망이로 그의 차를 짖이겨 버리는 장면은 어떤가? 

묘하게도 이 한우주가 정신줄을 놓는 이 장면들이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들은 살아가며 저렇게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한우주 대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며 속으로 화를 꾹꾹 눌러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녀의 일탈과 분노 장애에서 공감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흔히 정신줄을 놓는다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실낫같은 경계를 두고 두고 정상과 비정상이 되어 버리고 마는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상황'을 무수히 겪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과 의사 이시준은 '미친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겁니다'라는 진단을 내린다.

'아픈거다'라고.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고통 속에서 결국 정신을 놓고 자신의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던 엄마를 괜찮다며 딸이 안아주던 장면과,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현병에 걸린 장재열을 품어주던 지해수의 사랑이 떠올려지는 '처방'이다. 이렇게 <영혼 수선공>은 앞서 노희경 작가가 다뤘던 '정신'의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정신과 병원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루고자 한다. 

극중 한우주는 안그래도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10년 만에 각고의 노력 끝에 신인상을 타게 되던 날 상을 받기 위해 나선 무대에서 그만 음주 측정 거부로 체포되고 만다. 

그런데 이 '체포'가 사실은 해프닝이었다. 이시준이 애써 지켜주고 싶었던 망상증 환자 동일이 자신이 경찰이라고 생각하며 병원을 탈주하여 벌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명으로  한우주는 모든 것을 잃는다. 언론은 지난 밤 마신 술로 그녀를 음주 운전자를 만들어 버린다. 제작사 대표는 하루 아침에 그녀의 배역을 없애 버린다. 오디션에서 나서보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신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지만 온전히 자신에게 닥쳐온 불리한 결과들, 하지만 한우주가 맞닦뜨린 사건은 억울하지만 그 '억울'함의 보편성이 <영혼 수선공>이 말하는 '아픔'의 근원이다. 한우주처럼, 혹은 한우주처럼은 아니지만 세상에 억울한 일 한번 안당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녀를 억울하게 만든 동일은 어떨까. 시상식장에서 한우주를 체포하는 무리수를 뒀지만 매일 순찰을 돌며 취객을 선도하는 등 거리 정비에 솔선수섬하고 날치기범을 향해 몸을 던지는 동일은 그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상실'의 마음이 가져온 망상증에서 헤매이고 있다. 경찰이 아니지만 경찰이고픈 자신의 '지향'이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잃어버리고 가질 수 없음, 이것이야 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매번 곱씹으며 삼켜야 하는 대부분 고통의 근원들 아닐까. 사람을, 부를, 일을, 관계를. 살아가면서 성취하는 순간보다, 그것을 가지기 위해 자신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그리고 그럼에도 가질 수 없어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 되돌아야 하는 시간들이. 그래서 사람들은 가슴 속에 저마다 스스로 빨간 약을 바르고 있고, 그것마저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극중 한우주처럼 폭발하건, 동일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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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준이 건네는 위로와 치유 
그리고 이시준은 그런 사람들에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 그네> 속 의사 이라부처럼 정신과적 조치 이상의 '치료'를 통해 치유에 다가간다. 망상 장애는 대뇌 변연기의 도파민 과다를 먹물들 주장으로 제껴버린 이시준은 가장 큰 원인을 고장난 마음에서 찾는다. 다른 사람의 잣대에 나를 가두지 말라, 칭찬도 비난도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  다 찰라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말뿐인 위로가 아니라 순찰을 하고싶은 동일과 함께 거리를 헤매듯 직적 환자의 아픔에 뛰어든다. 어떻게든 환자와의 유대를 가지고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아픈 마음을 인정하고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도록 도와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공중 그네> 속 의사 아라부가 때로는 환자보다 더 정신이 나간게 아닌가 싶듯이 이시준 역시 매일 밤 잠못들고 '살자'를 외치며 뛰는 그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아픔을 치유하는 사람과 아픈 사람의 간극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드라마 <영혼 수선공>은 우리 시대 마음의 아픔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비록 최고의 화제작은 될 수 없을 지 몰라도 그 제작 의도에 맞게 좋은 '힐링'의 기억을 가진 드라마로 남을 있도록 '완주'하기를 바래본다. 

by meditator 2020. 5. 8. 19:02

지난 4월 2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인간 수업>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진한새 작가가 고등학생이 주범이었던 범죄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저작한 이 작품은 <무법 변호사>, <개와 늑대의 시간>, <결혼 계약> 등 인기작을 만든 김진민 피디가 연출을 맡아 작품의 기대치를 높였다.

거기에 얼마전 종영한 <이태원 클라쓰>에서 장근수 역으로 출연했던 김동희가 분한 오지수가 사건을 이끈다. 1등급 성적표에 부모님 사인을 위조하는 고등학생 오지수, 그는 자의적 '아싸'이다. 그에게 삶의 목표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다. 남들처럼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남들처럼 직장도 다니는 것. 그것이 그의 삶의 소망이다. 

 

 


소년 지수의 평범한 소망 
이 평범한 소망, 하지만 그 평범함이 지수에게는 가장 힘들다. 도박 중독인 아버지, 어머니는 결국 그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버렸다. 그의 집을 찾은 배규리((박주현 분) 말대로 쓰레기장같은 집에 소라게를 벗삼아 산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데 아직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지수가 어떻게 학원까지 다니며 1등급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 

그가 돈을 벌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돈, 9000만원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자칭 '중개업'에 '보호업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가 선택한 '알바'에 대해 배규리는 '쓰레기 포주업자'라고 한다. 음성 변조로 철저히 자신을 숨긴 오지수는 성매매를 알선한다. 그리고 운전을 해주는 왕철(최민수 분)과 동업으로 혹시나 성매매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상사에 대해 '보호'를 해주는 '불법적 사업'을 한다. 

그에게 '포주'라고 일갈하는 규리에게 자신은 '알선'과 '보호'를 해주는 사업을 한다고 무표정하게 반문하는 오지수의 모습은 바로 <인간 수업>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사회문제 연구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배규리와 오지수를 어떻게든 품어주려고 하는 담임 선생님  진우, 하지만 그런 진우도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이라는 걸 시인한다. 즉, 공부 말고는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곳. 

하지만 우리 나라 청소년 들 중 공부을 하며 순탄하게 대학이라는 관문을 성실하게 넘어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반의 풍경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오로지 '공부'만으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그 평가에서 1등급으로 선망을 받는 지수이지만, 정작 그의 실상은 '방치된 미성년'이다. 

하지만 이 '방치된 미성년'은 어떻게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도덕적 일탈'을 선택한다. 그는 자신을 보호해줄 엄마도, 아빠도 없기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인데, 그것이 바로 '법'의 경계를 넘어서 버린 것이다. 제작진을 이렇게 보호받지 못한 청소년이 선택한 역설적 경계의 이탈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청소년의 문제를 폭로한다. 

 

 
보호받지 못한 미성년의 극단적 선택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 등장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특수한 암에 걸려 죽어가는 부인, 그런데 같은 마을에 약사가 개발한 약이 이 암에 특효가 있다. 병든 아내를 둔 남편 하인즈는 약사를 찾아가 약을 구하려 하지만 약값이 워낙도 비싼데, 약사는 이 부부의 사정을 알고 10배나 더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 결국 아내를 구하기 위해 하인즈는 약을 훔치고 만다. 

이 사례에 대한 판단에서 12세~ 17세 청소년들은 아무리 아내를 구하려 했어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즉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습적 판단'을 하게 된다고 한다. 나아가 18세에서 25세에 이른 청년들은 나아가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무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인간 수업>의 오지수는 위의 도덕적 발달에서 '하인즈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한 그에게 누군가의 성, 특히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미성년자가 성매매를 하는 미성년 보호의 의미는 '인지'되지 않는다. 더구나 '법과 질서' 따위. 

주목해야 할 것은 오지수에게 그런 '도덕'의 판단과 자각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지수만이 아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 모두 각자의 조건에서 도덕적 결핍을 가지고 있다. 즉, 오늘날 우리 사회, 학교는 아이들을 '길러'낸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이 사회의 성원으로 옰곳이 설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수업'은 커녕 '조건'조차도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어떻게 지수가 그런 '인간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는 오지수가 그런 일을 해서 벌은 6000만원을 보자 대뜸 들고 날라버리는 인간인데,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싫다고 지수만 홀로 두고 집을 나가버리고, 학교는 그저 1등급인 지수만을 '측정'하는데, 도대체 '보호받아야 하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지만 외려 상처만을 입은 아이가 '소라게'처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드라마 속 지수는 목소리까지 변조하며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노련한 사업가이고, 동업자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자 경찰을 불러 위기를 모면하는 기지를 발휘하는 영민함을 보이지만, 선망하던 규리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저 첫사랑에 빠져버리는 순진한  10대의 모습을 영락없이 드러내고 만다. 이 소년의 이중성이야말로 아직 채 미성숙한 10대의 불안정성을 고스란히 보이며 이 소년의 현실을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보호받지 못한 소라게같은 선택의 대가는 가혹하다. 6000 만원까지 부를 축적시켜 조만간 그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 생각하던 9000 만원을 목전에 둔 사업은 배규리의 등장으로 아버지 한탕의 희생물로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눈 앞에서 칼이 번득이지만 결국 가족이라 뒤돌아서고마는 지수, 그 '파산'의 와중에도 꼬박꼬박 학교는 나가는 지수의 모습은 그가 잡고 있는 지푸라기의 현실을 제대로 드러낸다.

배규리의 동업 제안을 어떻게서라도 피해보려 이리저리 알바를 뛰어보지만 공부와 병행이 불가능하다. 결국 중간고사를 망치고야 마는 지수는 폭발한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규리와 손을 잡겠다고 한다. 다시 한번 또 세상에 자신을 '버린' 소년 지수, 참혹하고 혹독한 '인간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10대 청소년물임에도 높은 폭력성과 선정서의 등급으로 시작된 <인간 수업>은 그간 공중파 등의 드라마가 감히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풀어내며 다시 한번 넷플릭스 콘텐츠에 대한 화제성을 이어가며 그 영향력을 확장하는 중이다. 

by meditator 2020. 5. 7. 15:06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ebs 다큐 프라임은 아시아의 가족들에 주목한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 어느덧 딸들을 결혼시킬 즈음에 이르른 아버지들,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적 환경 속에 살아온 이 아버지들의 현재를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를 그려내고자 한다. 

 

 

아버지들에게 딸들을 결혼시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결혼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식장을 들어서서 사위가 될 사람에게 까지 함께 발 맞추어 걷는 전례도 사라져간다. 딸들은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가 아니라, 동등한 동반자로서 남편과 함께 식장을 들어선다. 다큐는 전통적 의미의 결혼에서 딸의 손을 잡고 식장을 들어선 아버지의 심정에 주목한다. 관습성을 넘어, 딸을 손을 잡고 걷는 그 시간이 마치 자신이 지나온 시간 위를 걷는 듯한 그 '아버지'의 소회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베트남- 캄보디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들
베트남의 아버지 반뚜안 씨, 한 골목에서 30년을 살아온 그에게 딸은 어떤 의미일까? 매일 학교에 딸을 데려다 주던 아버지, 어느 비오는 날 오토바이가 그만 빗물에 미끄러져 웅덩이에 빠졌을 때 혹시나 딸이 다쳤을까 안아올렸던 그 기억이 여전하듯, 딸은 그에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다. 

그런 아버지도 한때는 청춘이었다. 그러나 이제 결혼을 앞두고 설레이며 빛나는 딸들처럼 청춘이 모두 아름답게 빛나는 건 안니다. 아버지 반뚜안 씨에게 청춘을 상징하는 옷은 군복이다. 캄보디아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1977년 벌어진 전쟁의 기억은 참혹하다. 특히 1976에 입대했던 동기들은, 아직 군대에 적응하기도 전에 전쟁에 참전하게 되어 목숨을 많이 잃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돌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 낳은 딸, 그래서 더 애틋했다. 그런 딸을 그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때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고 아버지는 이제야 말한다. 화가 나도 적을 다루듯이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전쟁의 기억은 오래도록 아버지의 상흔이 되었다. 

그렇다면 캄보디아의 아버지는 어떨까? 캄보디아는 11월이 결혼 시즌의 시작이다. 하지만 크레브 씨의 막내 딸 니타는 돈을 더 모아 식을 올리겠다며 조상들의 영전에 인사만 드리고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며 살아왔다는 아버지 크레브 씨, 하지만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 왔음에도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농담 한번, 장난 한번을 치지 못한다. 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역시 아버지가 경험했던 참혹한 기억에서 부터 비롯된다. 

아버지는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꿈을 꾸면 끔찍했던 기억 속으로 소환되곤 하신다. 1975년 크메르 루주에 소년병으로 징집되었던 아버지는 3년 넘게 군대에게 보냈다. 베트남과의 전쟁 기간, 전쟁의 공포와 함께 먹을 것이 없는 '기아'의 고통이 소년 크레브를 괴롭혔다. 농민 유토피아를 이루겠다며 17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크메르 루즈는 배고프다고 해도 혹은 요구되는 대답이 아닌 다른 대답을 해도 투옥을 당했고, 배고픔을 못이겨 혹 먹을 것이라도 훔치거나 하면 죽임을 당할 정도로 혹독한 군 기강을 유지했다. 그 죽음과 공포의 시간 속에서 아버지는 오로지 살아남는 법만을 배웠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참혹한 기억을 자식들은 모르길 바랬다.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말을 아낀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자식을 위해 달려온 성공 인생 
한국의 김호영 씨는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2시에 끝나고 집에 돌아와 5시에 출근을 하기도 하고, 건설 현장을 따라 지방을 떠돌며 한 달에 한번 집에 들리며 30여년을 타지를 떠돌았다. 그렇게 돈을 버느라 아빠 노릇도 못하는 사이 딸 소연이는 훌쩍 자라 어느 덧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 

쇼호스트를 준비하며 결혼을 앞둔 딸 소연씨, 결혼은 소연씨가 하는데 이제 노후의 부모님이 더 설레여하신다. 소연 씨가 결혼할 집인데 가구 배치를 놓고 부모님이 설왕설래하시는 상황, 한국적 결혼의 전형적인 상황이다. 내 결혼이니 내가 알아서 한다 하니 섭섭해하신다. 농담 반, 진담 반, 엄마 아빠 집 같다는 딸, 그래도 행복해 보이시니 참는다는 요즘 결혼의 풍속도다. 

인도는 풍속은 우리보다 한 술 더 든다. 연애 결혼을 바라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이제 결혼을 앞둔 카비타는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최선을 선택을 해주시리라 믿으며 중매 결혼을 선택했다. 아버지 라메시는 교육, 직업, 집안을 따져 알맞은 남자를 골랐다. 

그렇게 딸에게 맞는 조건의 남자를 골라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결국 아버지의 경제력이다. 일자리가 없었던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수도 파이프 사업으로 자수성하가한 아버지 라메시. 그는 자신의 여력이 되는 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주기 위해 애쓴다. 그게 그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자리이다. 25년전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왔을 때 태어난 딸, 자식이야말로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몽골의 바토그토는 대가족 집안의 맏이로 태어난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이어받아 일가를 이루었다. 사회주의 체제 시절 몽골은 집단 목축을 하여 개인 소유의 가축이 없었지만, 1992년 민주주의 이후 자기 소유의 가축을 기를 수 있게 되었고, 열심히 일했던 바토그토네 집안은 이제 300 마리의 양떼를 지니게 되었다. 

그 열심히 일한 노력의 결과로 네 딸을 모두 도시의 대학을 보냈다. 유목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둘째 딸이 도시에서 대학을 나오고서도 이웃 유목민 아들과 손주를 낳아 돌아오니 기쁘다.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선물과도 같다. 오죽하면 딸은 이웃집안으로 시집을 가도 손주는 자신이 키우고 싶다고 할까.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몽골, 그리고 한국, 서로 다른 아시아의 아버지들이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진 자리 궂은 자리 마다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이 살아왔던 원천은 나라는 달랐지만 결국 가정이었다. 

by meditator 2020. 5. 5. 22:37

<이어즈 & 이어즈(이하 이어즈)>는 BBC와 HBO가 공동으로 제작한 영국 드라마이다. 2019년에 6부작으로 방여된 이 드라마는 같은 해 가디언지가 선정한 영국 드라마 중 4위에 오르는 화제작이 되었다. 최근 왓챠 플레이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이 드라마는 2019년에서 부터 2034년까지 '미래'의 영국을 다룬다.

그런데 이 '미래'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는 건 바로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전세계가 위기를 맞이하며 혼돈에 빠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갈 것인가라는 불안함의 '가정'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어즈>는 영국의 대표적인 미니 시리즈 <닥터 후>의 러셀 T 데이비스가 각본을 맡았다. <닥터 후>는 미래에서 온 외계인 닥터 후를 주인공으로 영국의 역사와 정치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드라마로 이런 서사의 장점이 <이어즈>를 통해 영국이 맞닦뜨린 현실과 미래에 대한 담론으로 제대로 풀어내어 졌다. 

 

 

평범했던 가족에게 들이닥친 격동의 세계 
이야기의 시작은 2019년이다. 브렉시트 후의 영국, 그곳에 한 가족이 있다. 금융 설계사로 살아가는 맏형 스티브(로리 키니어 분)는 회계사인 아내 셀레스트(트니아 밀러 분)와 두 딸과 함께 천정부지로 집값이 치솟는 런던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에 반해 큰 딸인 이디스(제시카 하인스 분)는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세계를 돌아다니며 소수자의 인권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중이다.

둘째 대니얼(러셀 토비 분)은 주 정부의 공무원으로 난민들을 담당하는 주택 관리원으로 결혼까지 한 '게이'였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막내 로지(루스 메이들레이 분)는 아빠가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며 학교 식당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로지가 태어날 당시 바람이 나 집을 나간 아버지,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라이언스 가족의 '어른'은 오래된 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증조 할머니 뮤리얼이다. 

나름 특별하고 평범했던 라이언스 가족은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지만, 격동의 세기에 들어선 영국은 이들이 누리고 있는 '보통'의 삶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격동'의 한 가운데 정치인 비비언 룩(엠마 톰슨 분)이 등장한다. 

 

 

심야 토크쇼에 등장한 비비언 룩, 약칭 비브 룩은 당시 국제적인 분쟁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욕설을 섞어가며 관심도 없다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브렉시트 후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 경제적 상황에서 오로지 영국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비브 룩의 '극우적' 정치적 입장은 2025년 드론으로 목숨을 잃은 지방 의회 의원의 보궐 선거에서 아이들의 전자기기 제한을 내세우며 압도적인 관심을 끌고, 2026년 아이큐 70이상인 사람만 투표를 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총선까지 승리의 기세를 몰아간다. 

하지만 오로지 영국에만 집중하겠다는 극우적 입장이 판치는 것과 달리,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중국이 만든 인공섬 흥사다오를 둘러싼 국제적 분쟁에서 결국 미국은 핵미사일을 쏜다. 극우 정권이 들어선 우크라이나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처단하고, 결국 이런 세계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런던의 유력 은행들이 파산한다.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가족 
그 과정에서 집을 판 돈을 은행에 맡겨두었던 스티브네 일가는 금융전문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100만 파운드 이상의 돈을 하루 아침에 잃고 할머니네 집에 얹혀 택배 배달을 하는 신세가 된다. 아내 역시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 지능의 세상에서 더 이상 회계사라는 직업이 존재 이유를 잃고 실직하게 된다. 비브 룩이 오로지 영국의 이해를 내세우며 승승장구하여 총리에 이르지만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 진다. 사람들은 출근하게 해달라며 '출근하기' 운동을 펼치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은 없다. 

미국이 흥사다오에 핵미사일을 쐈을 때 그곳에서 실상을 전세계에 알리던 이디스는 그로 인해 피폭'을 당하고 자신의 생을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런 이디스에게 자신이 사랑하게 된 우크라이나 난민 빅토르의 송환을 위해 애쓰던 대니얼은 도움을 청하고, 이디스의 도움을 받아 빅토르를 안전하게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극좌정권이 장악한 스페인으로 떠난 대니얼은 위험을 무릎쓰고 난민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그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11가지 직업을 전전하던 스티브는 약물 실험 대상이 되는 바람에 고개가 제 멋대로 돌아가고, 막내 딸 로지는 직업을 잃고 대신 하던 푸드 트럭마저 여의치 않게 된다. 살던 지역은 위험 지역으로 철조망이 쳐지고 왕래조차 쉽게 할 수 없게 되고, 정권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실종되기 시작한다. 

극좌와 극우가 판치는 세계, 스티브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80년대에 태어나 살아온 자신들의 지난 시대는 잠깐 괜찮았던 세계적 위기의 휴식기였을 지도 모른다고. 결국 그들이 당연하다 믿으며 살아왔던 '민주주의는 잠깐의 이상'이었냐고. 

세상이 점점 뜨거워지고, 기후 변화는 극심해져 80일, 90일의 홍수가 일상이 되고, 나비가 멸종된 세상, 사람들의 삶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것과 달리 인공 지능의 세상은 나날이 발전한다. 어릴 적 부터 온갖 IT 문명에 접속했던 스티브 가족의 큰 딸 베서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디지털' 세계에서 찾고 트랜스 휴먼을 지향하며 손에 핸드폰을 이식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자신의 정신을 디지털로 업로드하고자 하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정부의 권한에 자신을 맡기는 조건으로 디지털 휴먼으로 거듭난다. 머릿 속에 '인터넷 세상'을 동기화환 베서니는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본다. 황반 변성을 앓아 시력을 잃을 위기의 증조 할머니는 줄기세포 수술로 다시 시력을 되찾는가 하면,  택배 배달을 하던 자전거에 치어 목숨을 잃은 라이언스 가족의 아버지는 물문자로 거듭나는 '수장'으로 세상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런 문명의 편리함이 사람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작 사람들을 가스비와 전기세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사이버 공격이란 명목으로 정전이 일상이 된 세상을 살아간다. 실종자 캠프는 고도화된 전파 방해로 핸드폰 수신마저 불가능하게 '격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전으로 손실되는 정보를 대신하기 위해 다시 종이 인쇄물이 등장한다. 

결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던 BBC가 2029년을 끝으로 방송을 끝낸 날, 창궐하는 전염병 환자들을 난민 캠프로 보내 정부는 '자연스런 난민'들의 정리를 도모하는 '파쇼적' 결정을 내린다. 

결국은 세상은 '우리가 할 탓'이다 
그렇게 2029년을 보내던 날, 함께 모여 이제 더 이상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암울함을 나누던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그렇게 '남탓', '세상 탓'을 하지만 결국 '너희들 탓'이라고 통렬하게 쏟아붓는다. 

어쩔 수 없는 작고 무기력한 존재라고 주저 앉아 있지만, 사실은 바로 그 작고 무기력한 너희들의 선택이었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목화를 생산한 농부들에게 0.01달러의 이익도 돌아가지 않는 싼 티셔츠를 보고 거저네 하며 샀던 그 선택, 슈퍼에서 일하던 여성 대신 자동 계산대에 들어섰을 때 그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 선택, 심지어 편하게 생각했던 그 '편의주의', 비브 룩을 웃고 조롱했지만, 그녀에게 선뜻 손을 들어주고 열광했던 그 '선택'이 바로 오늘의 너희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사라지게 한 것이라고. 

 

 

피폭으로 인해 생의 마지막 길에 들어선 이디스, 그녀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빅토르를 구하러 한다. 아니 빅토르만이 아니라, 난민 캠프에 전파 방해를 하던 송신탑을 파괴하고 그 실상을 전세계에 전한다.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마지막 선택이다. 자신의 아이가 철조망에 가로막혀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가족의 '호구지책'이 될 수 없는 푸드 트럭을 몰고 철조망을 향해 로지가 달린다. 빅토르가 자신의 동생 대니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여 빅토르를 실종자 캠프로 보냈던 스티브는 죽음 대신, 자신이 알고있는 비브 룩의 비리 정보를 경찰에 보낸다. 

결국 2030년 비브 룩은 현직 총리 최초로 구속되고, BBC는 다시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9년으로 부터 2030년까지 장장 20여년에 걸쳐 영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위기, 그 위기 속에서 속절없이 희생자가 되던 가족은 스스로 떨쳐 일어나 그 '위기'로 부터 영국의 민주주의를 지킨다. 

6부작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리즈 안에 숨막히게 지나가는 몇 십년의 세월을 몰아넣은 <이어즈>는 결국 그것을 통해 오늘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능태'의 현실로 그려낸다. 마치 잠수함의 토끼처럼 나비가, 바나나가  멸종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각자도생의 삶에 빠져살던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방기한 결과물은 그 어떤 '스릴러'와 '공포물'보다도 무시무시하다. 무엇보다, 그것이 가능할 것같은 미래의 모습이기에 더욱. 

물론 그렇게 공포스런 미래를 향해 질주하던 드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다. 작고 무기력하고 자신들의 삶에 묻혀 살던 그 평범했던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결단과 모험에 자신을 던지고 그것이 결국 민주주의를 잠깐의 이상이 아닐 수 있도록 만드는 지 드라마는 '극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괴물이 가고 또 하나의 괴물이 깨어났다는 에필로그의 대사처럼 언제나 '위기'는 또 다시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잠언처럼 남긴다. 드라마로 넘기기엔 엄숙했던 미래의 묵시록이다. 





by meditator 2020. 4. 21. 16:03

정재승 교수가 프리젠터로 참여한 <ebs 다큐 프라임 - 뇌로 보는 인간>은 '돈'으로 부터 시작하여, 폭력, 예술, 섹스를 거쳐, 5부 종교에 이르렀다. 정재승 교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5부 종교 편이 가장 논란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직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데 주저함이 없는 종교, 그리고 그 종교의 수장인 신에 대해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한계적 인간이 만들어 낸 신 
그 시작은 인도 갠지스 강가이다. 하루 종일 시신이 불타오르는 이 곳, 사람들은 이곳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시신을 화장한 후 갠지스 강에 그 유골의 가루를 뿌리면 그의 죄가 사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껍데기를 버린 영혼이 다른 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도인들의 생각은 육체는 헛되지만 존재는 영원하다는 힌두교로 부터 비롯된다. 종교를 가진, 신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여행의 시작으로 받아들인다. 

바로 죽음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부터 '종교'는 시작된다고 다큐는 말한다. 물론 죽은 뒤,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명료한 대답도 있었지만, 인터뷰에 응한 다수의 사람들이 죽은 뒤 천국, 극락세계, 환생 등으로 존재의 영생을 믿었다. 

초월적,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을까? 과학적으로 접근해 본다. 1987년 죽은 멜린다의 영혼이 남아있는 집으로 유명한 곳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전문가는 창밖에 어른거리는 멜린다의 환영이 사실은 방문객 자동차에 비친 손전등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그처럼, 초자연적인 많은 것들이 상상력이나 뇌가 작동한 결과물이라는 주장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걸까? 임사 체험을 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색과 빛이 화려하게 펼쳐진 천국을 봤다거나, 터널을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는 인간의 뇌가 서로 비슷하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과학적 이유를 든다. 자연법칙에 따른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상대적으로 나약한 인간들은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불가지론'을 '초월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초월적인 존재를 믿는 영역이 뇌에 '실재'할까? 이를 위해 마이클 퍼싱어 교수가 개발한 뇌의 측두엽을 자극하는 장치를 활용한다. 정재승 교수 본인을 비롯한 다수의 참가자들은 측두엽이 자극을 받자, 붕뜬 상태에서 옆에 누가 다가와 속삭이는 듯했다거나,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등 '접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에 따라 학자들은 신의 존재가 뇌가 자극을 받아 생기는 생리적 현상이라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신을 느끼는 부위 측두엽에 대한 이견도 있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앤드류 뉴버그 교수는 다양한 종교 수행자 4~500백 명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측두엽 자체보다는 마치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할 때 뇌의 여러 부분이 연결되듯이 종교 역시 마찬가지라고 반론을 편다. 즉 특정 부분의 자극이 아니라 일상 생활과도 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의 총체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의 모습은? 
왜 종교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정재승 교수는 생존 본능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예측한다. 수렵 채질 시절의 인간은 물가에 놓인 어린 아이와도 같은 신세였다. 그래서 인간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우연한 작은 사건에서도 원인을 추측해 내는 독특한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바구니 앞에서 피리를 부는 노인을 본 소년이 바구니 속에 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도망을 치듯, 인간은 설사 그 판단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의 위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겁쟁이 뇌'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겁쟁이 뇌'는 자신들이 세상에 대해 가진 의문을 풀어줄 존재가 필요했고, 여기서 '신'을 창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양 과학지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는 여기에 인간의 패턴성을 더한다. 의미 없는 무늬에서 어떤 형상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인간 뇌의 능력은 불규칙한 패턴을 가진 자연, 그 뒤에 의도를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를 유추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적, 그리고 합리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인간 뇌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전염병, 재난, 질병 등 인류에게 닥친 불가항력적인 제반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행위자'로써 신을 창조했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로써 그것들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들어낸 신은 어떤 모습일까? 인지 과학자 구형찬 교수와 종교학자 심형준 교수는 24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6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간이 어떻게 신을 기억하는가에 대해 실험한다. 

신의 대표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전지전능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고 주관하시는 조물주, 그러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신은 뜻밖에도 이곳에도 저곳에도 임하시는 능력자라기 보다는 마치 사람처럼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시며, 때로는 화를 내시며,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감정적'인 존재다. 들려준 이야기 속의 공백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의 모습으로 채워넣는다. 즉, 사람들은 마치 사람처럼 '신'을 의인화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힌두교 칼리 여신의 팔이 여러 개인 게 하나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사람들의 자의적 해석처럼, 사람들은 신을 인간과 비슷하지만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냈다.

 

 

과학이 해주지 못하는 위로
그렇다면 만들어진 신은 인간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일까? 가장 극단적인 종교적인 의례, 신을 경배키 위해 온 몸에 바늘을 꼿는 모리셔스의 의식을 통해 알아본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니, 그 고통스러운 종교 의례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은 심박수와 호흡이 동일하게 '고양'되었다. 또 다른 스페인의 종교 의례 700도가 넘는 나무 장작의 재 위를 다른 사람을 업고 뛰는 의식, 놀랍게도 이 의식에서 뛰는 사람이나, 업히는 사람이나, 심지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의 심박수가 같았다고 한다. 즉,  이러한 집단적 헌신을 통해 사람들은 동일한 심박수, 즉 일체감의 경험을 얻는다. 무려 2억명이 5ㅇ일에 걸쳐 알라하바드로 신을 찾아 떠나는 힌두교 축제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희열'도 다르지 않다. 

종교, 그리고 신은 위안과 소속감을 준다. 과학은 인간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 하더라도 신은, 종교는 인간을 하나로 단단히 묶는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말한다. 설사, 지금의 신이, 혹은 종교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또 다른 '믿음'의 대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오랫동안 배타적이고 고립된 유대인 공동체에서 자랐던 페사후 아이젠은 그 극단주의의 실체를 깨닫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천 명의 가족이 있는 것같은 든든한 소속감을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덧붙인다, 그 소속감은 규율을 잘 따를 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예술과 문화 등 또 다른 공통 분모를 만들어 지는 현대 사회의 다른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종교는 삶의 지표이다. 아니다. 유용하지 않다. 믿음과 논거는 평행선을 이룬다. 인간이 신을 만든 과학적 논거가 진행되는 한편에서 '내림굿'을 받고 이제 막 새롭게 신을 받들게 된 애기 무당의 서사가 펼쳐진다. 몸도 너무 아프고,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던 그녀는 살고 싶어서 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부르며 통곡을 하고, 작두를 오르던 그녀는 내림굿이 끝난 후 활짝 웃는 얼굴로 이제야 속이 편해졌다며 선배 무당에게 기댄다. 

여전히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한편에서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고,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의지가 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학의 세계가 도래하고, 학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종교'의 종말을 점쳤다. 하지만, 과학이 세상을 분석하면 분석할 수록 세상은 뜻밖에도 점점 더 알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과학이 발달할 수록 위태로워진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은 그 모든 불확실성을 잠재워 줄 절대자를 향한 갈망을 멈추지 않았다. 

다큐에서 보여준 '뇌의 현상'으로서, 진화의 결과물로서 '종교'는 명확했다. 하지만, 명확한들, 그 명확함이 우리에게 어떤 '앎'을 줄지언정, 어떤 '위로'를 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는 명확하다. 가슴 떨리는 일체감을 주지 못하는 차가운 과학은 결국 떨리는 가슴의 종교 앞에서 그저 한낱 명제에 불과하다. 과학적으로 진화하지 못한 한계적 인간이 탄생시킨 진화의 결과물, 아마도 종교는 인간이 존재하는 이래, 내내 과학과 평행선을 유지하며 갈 것이다. 이성과 비이성의 불합리한 혼재,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by meditator 2020. 4. 8. 15:41

이제는 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신천지로 인한 대규모 감염은 전사회적 충격이었다. 더구나 그 많은 사람들이 1인 신격화의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어 법과 질서가 만들어 놓은 테두리를 넘어 '일탈적 행동' 집단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은 과연 21세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젊은 사람들이 여전히 신천지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현상은 기이하기 까지 했다. 

2020년 3월 1일 가평의 한 연수원 앞,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려보내라'는 문구로 온 몸을 도배한 어머니들이 절규하고 있다. 아이들은 '진짜 신앙'을 찾았다며 집을 나갔다. 가족과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그런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강제로 '개종' 되어 끌려갔다며 아이들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아이들을 내놓으라 울부짖는다. 과연 무엇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가족과 생이별을 감수하면서 까지 종교에 헌신하도록 만든 것일까? 

사이비 종교를 연구해온 전문가는 이렇게 종교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과정이 그루밍 성폭력의 6가지 과정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접근한다
그 첫 번 째는 바로 대상의 선정이다. 한때 '신천지'의 일원이었던 남성이 자신의 경험을 보여준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발표를 하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라며 상냥하게 접근한다. 결코 '종교'를 들먹이지 않는다. 인턴 기자인데 인터뷰 좀 해주시겠냐고 하고, 서울대 심리학교 대학원생인데 논문 쓰는 거 좀 도와주시겠냐고도 하고, ebs를 들먹이기도 한다. 절대 종교를 입에 담지 않고 친절하고 상냥한 이웃처럼 다가온다. 

시골에서 갓 도시로 올라온 젊은이는 서울에 올라오니 ebs 같은 데서 자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며 선뜻 응했던 게 신천지로 가는 첫 걸음이었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고등학교 입시가 끝나고, 하지만 살아가야 할 방향이 아득한 젊은이들에게 '신천지'는 하느님이 다 정해주시니 힘든 거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며 유혹한다. 취업도 힘들고 앞날이 막막한데, 한 번에 그 모든 걸 정리해 주겠다니 로또 당첨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경쟁에 지친 세대에게 종교는 새로운 목적이자 대안인 듯 다가온다. 그리고 거기서 너는 이제 리셋되어 하느님을 향한 새로운 경쟁의 선두에 설 것이라 달콤하게 속삭인다. 14만 3천명의 지배 계급이 될 것이라는 말에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에 익숙한 세대는 선뜻 발을 들여놓는다. 



신뢰를 얻다 
이제 전도사가 되어 이단에 빠진 사람들 상담에 힘쓰는 김충일 씨, 그는 지난 6년 동안 신천지에 인생을 바쳤었다. 아버지가 목사였던 집안, 그런데 그를 신천지로 이끈 건 그의 형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전도 1순위라는 포교 방식에 그가 넘어간 것이다.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종교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청년 시절, 논리적으로 고민하던 것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었다. 더구나 수능을 망쳐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못해 좌절감에 시달리던 그에게 신천지 세상에서 더 많은 걸 누리게 해주겠다는 설득은 먹혔다.자라면서 엄한 아버지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충일씨, 누군가 나를 믿어줬다는 그 '신뢰'의 그물에서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신뢰를 얻는다. 주부들에게 아이들을 봐주면서 재밌는 공부를 하자면서 접근한다. 천국의 , 삶의 방향을 열어준다며 가슴 벅찬 희열을 느끼도록 해준다. 재해 영상을 보여주며 종말에 대비하라며 준비물 리스트를 제시하고, 그 준비물을 마련하기 위해 주부들은 보험을 깼다. 지상의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단다. 하지만, 2000년이 열리고, 그간 종교에서 말했던 것과 달리 너무도 평온한 세상, 사이비는 기도의 힘이라고 했지만, 배신감을 느끼게 되며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고립시키다
연우 씨의 딸은 5년전 집을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다 칭찬했을 정도로 착했던 딸,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동생들도 돌보던 듬직한 맏딸은 일하던 곳에서 만난 28살 언니가 잘해준다고 하더니, 그 언니를 따라 집을 나갔다. 최미숙 씨의 딸은 7년 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신천지 교회랑 주거 침입의 법적 공방까지 하며 전국 방방곡곡 1인 시위를 하며 딸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들. 그 어머니 앞에 나타난 딸은 예전의 그 딸이 아니었다. 가출이 아니라 신앙이라며 외려 어머니를 설득하는 딸. 그래도 안먹히자 자신의 신변보호를 신천지에 위임하고 만다. 이런 신변 보호 요청서는 조직적으로 행해진다. 조직적으로 가족 관계를 끊고 고립시켜 더욱 사이비의 상명 하복 관계에 빠져들도록 한다. 

이렇게 사이비는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그 사람을 고립 시킨다. 고립된 상태에서 집중적으로 세뇌를 시키는 성경 공부 모임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고립을 강화한다. 

협박하고 통제한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신천지는 조직원을 확보하면 자신의 단계가 상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불법적 피라미드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수갑, 테이프 등으로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제 개종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개종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한다. 

그런데 아무나 다 신천지가 될 수 있는 것 같지만, 마구잡이로 고르지 않는다. 엄격한 정식 입교 절차가 따른다. 신참자에 대한 신앙 관리 카드가 작성되는데, 거기엔 경제적 형편이 등급에 따라 나뉜다. 어느 이상 점수여야 입교할 수 있다. 대규모의 시험, 그 시험을 통해 신천지 정식 교인이 되면, 그 자체로 선택받은 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든다. 

고립된 생활, 반복된 학습을 통해 일상 생활보다 종교가 중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사이비,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변과 경쟁을 시켜 통제한다. 교주가 등장하여 14만 4천 명을 들먹이며 경쟁을 유도한다. 그 보상을 독점하기 위해 달리도록 만든다. 교리에 세뇌되고 중독되는 과정의 연속, 결국 사이비는 진리가 믿지만, 종교가 만든 터널을 달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전문가는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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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택을 부인하는 건 쉽지 않다
이렇게 고립되어 반복적으로 학습되어 세뇌되고 보니 당연히 제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사이비 교주로 성스캔들을 일으켜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정명석 교주, 그 종교에서 핵심 인물로 활약했던 김경천 씨는, 죽고 싶었다고 토로한다. 성격을 2000번 읽었다던 정명석, 그 사람이 자신에게 전해준 진실에 오랫동안 교주의 부도덕한 삶을 눈감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개종을 '호구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경천 씨,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부인하는 건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최고로 복받은 자에서 하루 아침에 바닥을 치는 선택, 그 30년의 허송세월을 스스로 부인하는 게 어려웠다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를 쫓아 3억 가량의 재산을 처분하여 낙원 피지로 가족과 함께 떠났던 김영석 씨는 2년 만에 홀로 돌아와 고향에 머문다. 귀신을 쫓는다며 '타작 마당'을 벌여 신도를 폭행하던 교주는 특수 폭행, 감금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아내와 아들은 그곳에 있다. 꿈속에서도 여전히 나타날 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김영석 씨, 누가 극복할 수 있겠어요라고 탄식한다. 지워지지 않을 거라며 후회한다. 

주기적이다 싶을 만큼 구원이란 명목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비 종교, 그럼에도 매번 젊은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 인생을 그곳에 건다. 세상이 불확실할 수록, 사람들은 어두운 밤의 등불처럼 종교를 쫓는다. 개별적인 신앙의 문제나, 교리의 문제, 혹은 실존의 문제라며 손가락질 하기 이전에 하나의 병리적 사회 현상으로 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뒤늦었지만 종교에 빠져드는 과정을 보다 심도깊게 접근하고자 한 sbs스페셜의 시도는 철지난 얘기라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by meditator 2020. 4. 6. 14:17

중국으로 부터 시작하여 이제 전세계가 그 손아귀에 사로잡히고 만 코로나 팬데믹, 우리나라는 어언 2달째 그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말이 두 달이지 거의 2년이 된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다른 차원에 빠져버린 듯한 상황, 과연 우리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저 의료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격리'라는 전무후무한 '사태'로 인하여 일상은 물론, 사회, 경제, 기술 전반에 급격한 변화의 파고를 몰고온 코로나 팬데믹. 과연 우리는 이런 '공황 상태'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현대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하여 '관점의 전환'을 모색해온 <tvn shift>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코로나 팬데믹을 진단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 
우선 코로나 팬데믹 사회가 주는 시그널을 읽기 위해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씨가 나섰다.  지난 2달간 사람들이 한 검색어를 통해 우리 삶의 변화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코로나로 인한 충격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인 식욕마저 앞섰다는 것이다. 그간 검색어 순위에서 항상 제일 앞장섰던 건 '먹는 것'에 대한 검색이었다., 그런데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이를 앞질렀다. 사람들은 무서워한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수 없다'는 불가지론(agnosticism, 不可知論)으로 부터 비롯된 불안이다. 거기에 더해 치료약이 아직 없다는 불확실성이 사람들의 공포를 '에스컬레이션' 시킨다. 

흔히 사스나 신종 플루 등 앞선 바이러스 전염병과 비교가 되곤 하지만, 그 무서웠다던 메르스가 8주에서 10주 사이였던 것과 달리,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바이러스 전염병들에 압도적이다. 

송길영 씨는 확진자, 마스크, 혼초밥 등 사람들이 많이 검색한 50가지 단어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 사회를 정의내린다. 그 첫 번 째는 '하루 종일', 아이들의 개학이 연기되어 '번아웃'에 빠진 엄마들, 60대 엄마, 아빠랑은 어떻게 놀아드려야 하냐는 질문을 올리는 자녀들처럼, '사회적 격리'로 인하여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가족들의 고민이 등장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활동하는 공간이 축소되었다. 답답함을 넘어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생겨났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친구'보다 '남편'이 중요한 관계의 대상이 되는 등 관계의 변화도 감지된다.  층간 소음 등의 갈등이 심해지는가 하면, 온라인 쇼핑몰 주문량 폭주와, 홈오피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등이 늘었다. 

손세정제, 마스크 등 이전과는 다른 물품들이 인기 품목이 되었고, 재택 근무가 권장되며 화상회의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산업', 일의 형태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코로나 이후,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는 새로운 산업 구조 혁명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빅데이터는 예측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다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열고 있는 이 코로나 팬데믹은 과연 언제가지 갈 것인가? 이에 대해 감염 내과 최원석 교수가 전망을 펼친다. 

무엇보다 날씨가 풀리고 있는 즈음에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건 바이러스가 좀 수그러드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 30도를 넘는 탄자니아에서 본격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기온과 바이러스의 상관 관계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 최교수의 판단이다.

그리고 21세기 최초의 팬데믹이었던 신종 플루가 4월에 시작하여 8월에 기승을 부렸던 전례에 비추어 봤을 때 더더욱 섣부른 기대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더욱이 북반구가 날이 풀리면서 좀 수그러든다해도 남반구가 겨울을 맞이하여 코로나가 지구의 남과 북을 순환하는 도돌이표 전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덧붙인다. 

마음의 경계를 푸는 순간 언제라도 다시 대유행할 수도 있는 코로나 팬데믹, 이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 첫 번째는 영국이 시행하려 했고, '대유행 받아들이기'이다. 자연 상태에서 몇 명까지 감염될 수 있는가라는 기초 감염 재생산자 수에 따르면 코로나가 2명에서 5명 수준, 그에 따르면 65% 정도가 감염되면 집단 면역이 생길 것이라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집단 면역이 생기면 감염 자체가 저지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총리까지 감염되며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 방식을 바꾸게 된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러시안 룰렛'과도 같은 집단 면역 방식은 의료체계와 국민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이에 반해, 최대한의 방역을 하며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방식, 여기서 문제는 바이러스는 그 성질상 완벽하게 차단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소한의 방역을 통한 집단 면역 방식의 경우 바이러스 종식 기간이 짧아지는 반면, 완벽하게 방역을 하려하면 할 수록 팬데믹은 점점 느리고 길게 오랫동안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대한의 방역을 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하지만 종식은 쉬이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굶어 죽게 생겼다는 자영업자 대표 홍석천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결국 코로나와의 장기전을 대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위기는 곧 기술의 기회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기술이 인간을 앞지는 원년이라는 2020년, 그렇다면 기술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최재붕 교수가 이에 답한다. 

비관론자들은 미, 중, 러 강대국들이 서로에게 코로나 팬데믹의 책임을 떠넘기는 음모론을 들이대는 가운데, 결국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의 무분멸한 자연 침식이 박쥐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이것이 코로나 팬데믹을 낳게 되었다며 기술 책임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데믹 쇼크의 답은 기술에서 구해야 한다고 최교수는 말한다. 일찌기 캐나다의 인공 지능 스타트업은 이미 올초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팬데믹을 예고했었다고 한다. 알파고를 만들었던 딥마인드는 코로나 분석에 돌입하였다. 이처럼 결국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술로 부터 비롯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매월 5월 10일을 회사 최대 기념일로 삼고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연다. 그런데 이 날은 바로 알리바바 직원이 사스 판정을 받은 날이다. 사스로 직겨탄을 맞았던 알리바바, 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사업을 착안한 마윈 회장은 사업의 구조를 변화시켜 온라인 시장에 전격 투자를 감행하여 아시아 1위의 그룹이 되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 재래 시장, 백화점 등 오프라인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과 달리, 마스크 판매 등으로 시작하여 코로나 사태에 발빠르게 대처한 우리나라 쿠*이 그간의 적자를 일소하고 흑자로 전환한 케이스처럼, 사재기가 성행하는 유럽 등과 달리 '온라인 산업'이 이미 기반이 닦인 우리나라는 '코로나 사태'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든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포노사피엔스, 이들에게 포스트 코로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과학 기술은 단언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방청객을 들일 수 없는 <tvn shift>방청객 대신 '사회적 격리' 중인 일반인들과 온라인 화상 공개 방송을 통해 화두를 공유한다. '랜선 파티' 등 이미 포노 사피엔스들에게는 익숙한 '온라인 문화'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보편적 문명'의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약관 39세에 장관이 된 대만의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은 마스크를 공급하기 위해 개발자 그룹에게 sns를 통해 문의한다. 그리고 단 며칠 만에 'e마스크 구매' 앱을 만들어 마스크 사태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어 나갔다. 이처럼, 4차 산업 혁명을 통해 이미 다가올 미래는 정해졌다는 것이다. 진화한 역사는 결코 거꾸로 돌아간 적이 없는 세상, 결국 그 세상의 흐름에 누가 먼저 다가가느냐가 코로나 사태, 그리고 그 이후의 세상을 끌려가지 않고 주도할 것이라고 '과학 기술'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 15~20%나 늘어난 실업, 사회의 약한 고리가 되어버린 프리랜서들은 '무급'의 시절을 견뎌내고 있다. 남들이 밥벌이 걱정할 때 잘 나간다는 '택배' 기사는 쌀, 생수 등 늘어난 생필품의 무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과학은 앞서 보라, 앞서 가라 강변하지만, 저마다 불안을 안고 버티고 있는 상황, 정작 가장 필요한 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이 요원한 한에서 마스크로 가린 채 서로가 멀찍이 떨어져야 하는 일상은 호구지책의 늪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방도가 아득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빅데이터에서 부터 감염학, 과학 기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이 진단한 코로나 팬데믹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일상을 공감케한다.  '음모론'으로 탁해졌던 눈을 밝게했으며,  당장의 어려움을 넘어 너른 시야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사자성어가 무색하게 당장의 이 고통을 끝낼 '묘수'는 보이지 않으니, 아예 문을 닫아야 겠다는 자영업자 홍석천의 답답한 하소연에 위로 말고는 해답은 없었다. 

by meditator 2020. 4. 4. 04:36

6%대(6.325% 닐슨 코리아 케이블 기준)로 시작한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하 슬의)>이 3회, 8%를 넘기며 순항 중이다. 이른바 '워노 매직'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매주 1회, 한 시간 반 정도의 방영 시간,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시도다. 밤샘 촬영 강행군에, 당일 찍어 당일 내보내는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사전 제작에, 주 1회 방영의 시도는 순조로운 시청률로 보건대, 작품이 좋다면 시청자들은 언제나 기다려 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슬의의 신선한 시도와 구성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신선한 점은 그것만은 아니다. 3회, 오랜만에 외국에서 돌아온 이익준(조정석 분)의 아내는 반가워하는 남편이 무색하게 병원으로 찾아와 이혼을 종용한다. 여느 드라마라면 어떨까? 아마도 익준의 이혼이라는 소재만을 가지고 한 회차를 충분히 울궈먹을 것이다. 이혼의 위기, 심지어 외도의 소지가 있는 아내의 이혼 요구는 친구들에 둘러싸인 익준의 에피소드를 얼마든지 구구절절 애닮게 풀어낼 수 있다. 김희애 주연의 <부부의 세계>가 단 한 회만에 3%가 넘는 시청률 상승은 물론 세간의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이혼'을 둘러싼 갈등이 드라마에 있어 얼마나 '효자' 아이템인가는 새삼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웬걸, 4회, 계절이 바뀌고 어느새 익준은 서류상으로도 돌아온 싱글남이 되어 있었다. 가정에 대한 애정이 식은 아내를 아이의 알러지조차 챙기지 못하는 에피소드로 풀어냈던 <슬의>는 4회, 엄마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면 자신도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는 익준 아들의 덧난 상처같은 한 마디로 '이혼'의 잔상을 담는다. 그렇게 '이혼'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걸 겪어내는 사람에 촛점을 맞추며 우리나라 드라마의 클리셰인 '이혼' 소재주의 를 넘어선다. 대신  <슬의>는 '사람', '인간미' 넘치는 그들의 사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제 4회차에 들어서며 그간 심할 정도로 마마보이의 모습을 보인 양석형(김대명 분)의 사연이 밝혀지며 주연 5명, 이익준, 양석형, 안정원(유연석 분), 김준환(정경호 분), 채송화(전미도 분)의 캐릭터 소개가 마무리되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거나한 신입생 환영회를 피해 창고 안에 숨어들었던 5명의 친구들, 그리고 이제 어느덧 노안이 오고, 입맛이 변하고, 꽃이 이뻐지는 마흔 줄이 될 때까지 그들이 여전히 '친구'인 이유는 무엇일까? 

글쓴이에게도 오랜 몇 십년 지기 친구가 있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대립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늘 우리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 '비슷'함이 우리를 통하게 하고, 믿게 하고 그래서 오랜 세월을 '친구'라 여기게 된 듯하다. 아마도 '우정'이 다 그렇지 않을까. 

 

 

우정의 조건; 좋은 사람들 
그렇다면 <슬의> 주인공 5 명의 우정은 어떤 것으로 부터 비롯된 것일까? 같은 직업을 가져서? 함께 밴드를 해서? 대학 시절부터 이들을 보아왔기에 이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자처하는 응급실 봉선생은 이들의 공통점을 '없는 것'이라고 한다. 5무, 싸가지가 없고, 쉴 틈이 없고, 사회성이 없고 등등 저마다 하나씩 없는 것이 있어서, 그게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4회에 이르며 5명의 캐릭터를 소개했는데 과연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이들 다섯 명이 모두 과는 달라도, 그리고 드러난 면만 본다면 싸가지가 없고, 무뚝뚝하고, 일만 하게 생겼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클럽 죽돌이임에도 수석을 따놓은 당상이었다던 이익준이야 말할 것도 없다. 병실 침대를 고쳐주는 의사, 수간호사가 밥 못먹는 걸 배려하여 퇴근도 마다하고 자질구레한 병실 수발을 들어주겠다는 의사, 그게 이익준이다. 도시락을 준비한 인턴을 배려하여 선배 의사의 밥 투정을 입막음해버리고, 주변 사람들이 의심할 정도로 정겨울의 외사랑을 지원해주는, 잔정 많기로야 이익준을 따라올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그의 이혼도 공부하러 간 아내 대신 아들을 키우며 이곳에 오래 도록 떨어져 있다 생긴 불상사다. 

그렇게 그 누구에게나 친절한 이익준의 맞은 편에 김준환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싸가지가 없는 의사, 그 싸가지 없음은 환자 보호자건, 인턴이건, 레지던트건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공평'하다. 하지만 그렇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김준환은 알고보면 '속정'이 깊은 사람이다. 결혼을 앞둔 딸을 둔 아빠가 수술을 할 처지에도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할 거냐며 냉정하게 잘라 말하던 김준환이 정작 아버지도 못간 딸의 결혼식에 제일 먼저 찾아가 인사를 한다. 심장 수술을 앞둔 미숙아의 어린 부모에 대한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 엄마의 눈물을 품어준 것 역시 김준환이다. 채송화의 실연도, 양석형의 가정사도, 언제나 제일 먼저 마음 쓰는 사람도 역시 김준환이다. 

준환 못지 않게 사람들의 눈에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석형이다. 친구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와도 함께 있으면 불안해 하는 사람, 도대체 저런 사람이 어떻게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가 됐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인데, 4회에서 무뇌아를 출산하는 엄마의 에피소드를 통해 뚱한 석형이 알고보면 얼마나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인가를 드러낸다.

어렵사리 10달을 품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의 트라우마를 배려하여 음악을 틀고,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는 의사, 그리고 출산 후 '미안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며 위로하는 석형은 그 하나의 이야기로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아버지의 외도, 여동생의 죽음, 어머니의 병이라는 과정을 겪으며 무뚝뚝했던 과거의 모습을 찾을 길 없는 '마마보이'가 되어버린 모습에서 더욱 석형이라는 사람의 '찐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안정원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장래 희망이 '신부'여서, 매해 신부가 되기 위해 '신청서'를 넣는 정원, 하지만 그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헌신적이다.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당장 병원비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그는 4회에서, 이제는 당장 월급까지 탈탈 털어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다. 돈뿐인가. 친구들이건, 함께 하는 전문의이건 그들이 먹는 칼국수건, 초코렛 간식이건 어느 틈에 그는 '남들'의 부족함을 챙긴다. 물론 편한 친구들 앞에서 자신은 못먹었다 '앙탈'을 부리지만 '배려'가 몸에 뱄다는 건 정원을 정의하는데 가장 정확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정원의 친구가 아니랄까봐, 채송화는 응급실에 들어온 외국인 환자가 당장 수술비가 없어 퇴원을 하겠다고 하자, 솔선수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키다리 할아버지'를 수소문한다. 

 

 

이런 식이다. 드러난 성격이야 까칠하기도 하고, 대인기피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좋은 사람들, 법없이도 살 사람들, 결국 '휴머니즘'의 '기본'을 갖춘 정서가 이들 다섯 명을 오래도록 '우정'이라는 울타리로 묶어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석형의 수술에 기꺼이 밥을 거르며 찾아와 '대기'를 타는 정원처럼. 그들은 늘 그렇게 선함의 연대로 따로 또 같이 '친구'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슬의>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결국 이렇게 좋은 다섯 명의 주인공들의 선함을 기반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살다보면 '생로병사', 이별도 겪고, 죽음도 겪게 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만드는 건 결국 '선한 의지', 그 선함을 가진 사람들의 기운이 아닐까 라고 <슬의>는 매회 강변한다. 

by meditator 2020. 4. 3. 03:35

ebs 다큐 프라임은 장장 2년에 걸쳐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와 함께 '뇌'를 통해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다큐를 마련했다. 돈, 폭력, 예술, 섹스, 종교의 관점에서 바라본 뇌,  3월 30일, 그 첫 회를 연 건 바로 '돈'이다. 

다큐를 연 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 교수가 고안해낸 '머니 게임'이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중 무작위로 뽑힌 두 사람들, 그들에게 정재승 교수는 10만원을 주고 게임을 제안한다. 

 

 

10만원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게임이다. 한 사람에게 10만원을 주고 다른 사람과 어떤 비율로 나누게 하는 게임이다. 상대방이 거부를 할 경우 둘 다 10만원을 가질 수 없을 때 나누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 5;5로 공평하게 나눈다. 하지만, 그 거부권이 없어졌을 때 나누는 사람의 태도는 돌변한다. 대부분 자신이 많은 비율을 가지겠다고 하고, 심지어 다 가지겠다고 까지 한다. 이른바 '독재자 게임'이라 칭해지는 이 게임에서 다니엘 키네만 교수의 표본 집단 역시 평균 72%를 자신의 몫으로 챙기는 등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에 서투른 인류 
자본주의 사회, 돈을 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은 돈을 거저 얻을 수 있다면 남의 발바닥에 뽀뽀쯤이야, 심지어 똥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20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돈이 만들어 진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인류는 20만년 전 수렵 채집 인류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문명의 산물인 '돈'을 마치 수렵 채집 인류처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돈을 사냥감으로 여긴다. 수렵 채집 시절에는 '사냥감'을 저장할 수 없었기에 눈에 사냥감이 보일 때마다 사냥을 했었다. 돈은 저장할 수도 있고, 스스로 불어나지만, 여전히 인류는 사냥하던 그 시절의 '마인드'로 '만족'을 모른다. 그래서 브레이크없는 자동차처럼 계속 돈을 '사냥'하고자 한다. 

결국 인류를 돈을 만들어 냈지만, 돈을 사용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아 끊임없이 부작용을 만든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가상 화폐 등 돈의 복잡성은 증가되는 추세인데, 인류는 그 '복잡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세일하는 기간이 되면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세일 전 가격에 비해 많은 할인을 했다는 이유로 구매를 하듯(앵커링 효과), 뇌에 닻을 내린 어떤 무의미한 요소에 낚여 돈을 향해 달린다. 

 

 

부자, 그것이 문제로소이다. 
문제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돈을 향해 달려드는데, 모두가 돈을 잘 벌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돈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아우토반' 경주에서 앞선 자들을 부자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더욱 우세한 자들이 이른바 '슈퍼 리치(super rich)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슈퍼 리치일까. 지난 14년 동안 매주 2명씩 천 명 이상을 인터뷰해 온 매경의 박수근 기자에 따르면 현금성 자산 100억 이상, 당장 10억 정도는 유동 자금으로 가지고 있는 롤스로이스 정도의 차에, 한 달에 밥 값으로 1400만원 정도는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돈을 많이 가진 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문제가 된다고 박 기자는 말한다. 오랫동안 인터뷰를 통해 박기자가 절감한 건 대다수의 슈퍼 리치들이 공감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진 자이기에 그의 주변에는 '예스맨'들로 대부분인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동등하게 만나기보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방식이 체화되었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얘기만 듣다보니 공감 대신, 자기 합리화하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이른바 우리 사회의 'ceo 갑질 사건'을 낳는 요인이 된다. 

 

 

버클리 대학의 심리학자 대커 컬트너는 이를 실험으로 증명했다. 사거리 정지 신호 시, 저가 차량 운전자의 100%가 멈춰 선 반면, 메르세데스 등 고급 차를 모는 운전자들의 45%가 그냥 지나쳐갔다는 것이다. 즉, 부자가 되면 될 수록 굳이 규범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서 '공감'을 담당하는 부분이 '미주 신경'인데 자기 기준, 자신을 만족시키는데 집중해온 부자들의 경우 타인에 대한 이해를 담당하는 '미주 신경'에 반응이 없거나 미약해 진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 뇌조차 변한다 
공감능력이 저하된 부자, 거기에 이기주의까지 겹치면 위험하다. 부자들이 더 위험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부의 피라미드는 가파르게 더욱 불공평지고, 0.9%로 세계의 부 43%를 차지한 부자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은 이제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지구적 문제이다. 사람들이 노동을 해서 버는 '노동 소득'보다 빠르게 자본 소득과 배당 소득이 늘고 있다. 

OECD 기준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홍콩, 돈 있는 사람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이 도시, 상위 10%의 사람들이 빈곤 가정의 44배의 부를 지닌다. 50명의 부자가 정부보다 1.35배 재산이 많다. 그래서일까, 홍콩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체념한다. 운수가 안좋았다 말한다. 운이 나빠서 사는 게 지옥이라, 오래 살기보다 아프지 않고 이 삶을 견뎌내기를 바란다. 

돈에 시달리는 마음이 생쥐가 되어 정해진 시간 안에 치즈을 찾는 게임에 빠진 거 같다는 사람들 정말 그럴까? 한 해 농사를 끝내고 1년 정산을 하게 되는 농부들, 그런데 이 같은 사람인데도 추수 전과, 추수 후의 '뇌의 상태'가 다르다. 논리력, 인지 조절 테스트를 했는데, 아이큐가 무려 13점 정도나 차이가 났다. 이 정도면 알콜 중독자와 정상인의 차이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이에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돈을 식욕이나 성욕처럼 생존에 필요한 걸로 취급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만큼 사람들은 돈 앞에 절박하고, 돈을 향해 위험을 무릎쓰고 내달린다. 그리고 만족할 만큼 돈을 가지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세상을 잃은 듯 크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뇌에 영향이 아이들의 뇌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빈곤층 아이들을 연구한 찰스 넬슨, 그에 따르면 하루 벌이가 1~2달러에 불과한 빈곤층 아이들은 이미 3세 무렵에 또래 아이들 평균보다 아이큐가 낮아졌다고 한다. 평균을 100으로 치면 85의 수준이다. 아니 3세까지 갈 것도 없다 생후 2달 된 아기의 뇌내 회백질 양이 적었다는 것이다. 

오염된 환경, 부족한 영양, 그리고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뇌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 결국 이렇게 뇌마저 변했다는 것은 빈곤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뇌로 대물림되는 가난, 이건 그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뇌로 보는 인간 -1부 돈>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바로, '돈'으로 인해 뇌마저 변해가고 대물림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것이다. 그저 사회면 갑질 기사로 분노했던 사실의 이유를 밝히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기 힘든 상황의 근원을 밝힌다.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가 고착되다 못해 '뇌'까지 변화시키는 현실, 그걸 다큐는 고발한다. 

불평등을 혐오하는 인간,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이, 자본주의, 아니 인간 사회의 한 현상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소득 하위 40%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체 부의 9% 정도는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0.3%에 불과하고, 그것마저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상위 20% 계층이 86%의 부를 누리고 있다. 결국 하위 계층은 아무 것도 안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런 상황을 감내할 수 있을까? 처음 시작했던 머니 게임의 참가자들, 그 중에서 앉은 자리에서 부당한 배당을 받게 된 사람들은 '꽤심'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인간만이 아니다.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의 경우도 옆 동료와 자신이 다른 대우를 받았을 때, 특히 자신이 부당하게 적은 보상을 받았을 때 분노하고 임무를 거부한다.

​​​​​​​영장류를 비롯한 인간은 공평함을 추구하는 오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사상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적당히 공평한 사회를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불공평해지고 있다. 과연, '돈'을 여전히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인류가 '지혜'를 가지고 불공평의 피라미드를 극복할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20. 4. 1. 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