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명불허전>은 조선시대 침술의 대가로 알려져있는 허임이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환타지물이다. 국중 허임은 혜민서 의원 생활 10년만에 허준의 도움으로 겨우 왕의 편두통을 치료할 기회를 얻었지만 손을 떠는 바람에 관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던 그가 의문의 인물이 쏜 화살을 맞는데, 뜻밖에도 그가 눈을 뜬 곳은 한양, 아니 2017년의 서울 청계천 한복판이었다. 이렇게 타임슬립 드라마 <명불허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선 시대의 의원 허임이 대한민국 한 가운데 등장한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상황을 황망해 하던 허임, 하지만 그는 곧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애쓰는 대신, 이곳 서울에서 의원으로 떳떳하게 자리잡기를 원한다. 임금을 치료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조선에서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에돌고 에돌아 9월 3일 방영된 <명불허전> 8회는 그 '속없어 보이던 속물' 허임(김남길 분) 선생의 실체를 비로소 드러냈다.
왜 허임은 노비의 치료를 거부했을까?
애꿏게도 조선에서 허임의 뒤를 쫓던 건 관군만이 아니었다. 병조참판의 노비 두칠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니 관군은 허임을 잡으려 했지만 두칠은 허임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하고자 하였다. 심지어 그가 잡혀 의금부로 가자, 자기가 죽일 기회를 놓쳤다며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고, 그를 죽이러 불속을 뛰어들었었다.
그 사연의 시작은 밤이슬을 맞고 양반가의 비밀 치료를 다니던 허임의 행보에서 비롯된다. 혜민서를 찾아 자신을 치료하라 호통치던 병조참판을 거절했던 허임은 그날 밤이 깊자 병조 참판의 집을 찾는다. 높은 분을 백성들이 치료받는 혜민서에서 모실 수 없어 그랬다며 사정을 말한 허임은 병조참판의 신뢰를 얻고 돌아가는데, 그의 발목을 노비 두칠이 잡는다.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신의 어미에게 침을 한번이라도 시술해주기를 간청했던 것이다.
병조 참판 정도의 집안 노비가 왜 허임의 발목을 잡고 침 시술을 간청했을까? 이는 조선 시대의 의료 체계를 통해 그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이 달랐다. 왕실이나 관료들은 '내의원'을 통해, 일반 백성들은 '혜민서'에서, 그리고 전염병 치료나 빈민 구제 기관인 '활인서'가 있었다. <성종 실록>에 기록된 노비는 대략 35만명, 인구 대비 공노비가 10%, 사노비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으니, 조선 인구에서 노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위에서 보여지듯이 조선 시대 의료 기관 중에 '노비'를 치료하는 의료 기관은 없었다.
<명불허전>의 주인공 허임이 의원이 된 계기만 봐도 당시 노비 등 하층민들의 의료 실상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극중에서도 드러나지만 관노의 아들인 허임은 집안이 가난해 어머니 박씨가 병에 걸렸을 때 의원을 부를 수 없었다. 당시 의료 행위는 허준처럼 약을 쓰는 방법과 허임처럼 침을 통하여 고치는 방법이 있었는데, 약의 경우 약재가 비싸, 서민들이 경우 침을 놓는 방법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가난한 백성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허임 역시 어머니의 침 시술비를 갚을 수 없어 의원 집에서 일을 해주며 눈썰미로 침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 그가 의원이 된 계기였다고 역사는 밝힌다. 그러기에 성주 지방의 선비 이문건의 <묵재 일기>에서도 드러나듯서민들은 먼 의료 체계 대신 손쉬운 무당, 점쟁이, 승려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렇게 백성들에게 조차 먼 의료 체계, 그 중에서도 노비는 더욱 극악한 상황이었다. 극중 허임은 발목을 잡고 매달리는 두칠 형제의 청을 외면하고 병조 참판의 집을 떠난다. 충분히 돈만 밝히는 속물 의원이란 것이 의심되는 상황, 8회까지 <명불허전>은 '입신양명'을 노리며 2017년 서울에서도 야심을 숨기지 않는 허임에 대한 '오해'로 드라마의 주된 갈등을 이끌어 간다.
노비에게 침통을 연 허임, 그가 택한 죽음의 길
하지만, 8회 드디어 왜 허임이 두칠 형제의 간청을 거부했는지 드러난다. 덕술이 의금부 앞에서 허임을 자기 손을 없앨 기회를 잃었다는 사실에 발을 구르고 있었을 때, 그의 동료가 찾아온다. 그리고 밤이 이슥한 시간, 병조 참판의 특별 조치로 허임의 하루 방면이 허락되었다면서 덕술이 그를 찾아온다. 두칠을 따르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허임 앞에 두칠이 통곡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자신의 형을 살려달라고.
동생 바보였지만, 양반집 노비를 하기엔 조금 모자랐던 형, 병조참판 첩의 심부름 과정에서 동생에게 주려고 곳감 하나를 슬쩍한 것이 들통이 나 매타작을 맞고 죽음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형을 살려달라는 두칠, 그런 두칠에게 허임은 자신의 시술 행위가 형의 목숨은 물론, 덕술조차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경고한다. 하지만 눈물로 매달리는 두칠, 결국 허임은 침통을 연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겨우 복수로 가득찼던 두칠 형의 배를 꺼지게 만들며 그의 숨을 고르게 하는 찰라, 두칠의 방문이 열리고 병조 참판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허락없는 허임의 시침 행위에 분노하며 두칠 형의 목숨을 멍석말이로 거둔다. 결국 형은 맞아죽고야 만다.
그랬다. 허임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동막개의 눈물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고 남몰래 노비들을 치료하러 다니던 의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로운 의료 행위는 결국 동막개 어머니의 목숨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두칠 형제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그가 발을 돌렸던 건, 그들의 어머니에게 침을 놓는 순간, 두칠 형제의 목숨조차 위험해질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극중 조선으로 타임 슬립한 최연경(김아중 분)은 양반댁 아가씨로 위장해 거리를 걷던 중 천민 꼬마랑 부딪친다. 그러자 천민 꼬마와 그의 아비는 죽을 죄를 지었다며 바닥에 고개를 쳐박는다. 허임 역시 걸출한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혜민서에서 10년을 썩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신분제 사회' 조선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드라마는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두칠 형제와 그 어머니의 비극을 통해 신분제 사회의 비극 에 방점을 찍는다.
조선 시대 노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을 소유한 국가든, 개인이든 그들의 재산이었다. 양도, 매매, 상속의 대상이었다. 즉, 허임의 의료 행위는 병조참판의 사적 소유 재산을 허락도 없이 '건드린' 것이었다. 의무만이 있는 천민 중의 천민인 노비, <경국대전> 등은 여러가지로 노비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만, <노비구가장조> 등에 따른 현실은 달랐다. <명불허전> 8회에서도 드러나듯이 '만약 노비가 주인의 시키는 명령을 위범(違犯)하였으므로 법에 의거하여 형벌을 결행(決行)하다가 우연히 죽게 만든 것과 과실치사한 자는 모두 논죄하지 아니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허임은 그가 제 아무리 빼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관노 출신이라는 신분의 제약, 그리고 그가 몸담은 신분제 사회 조선이라는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없었다. <명불허전> 8회는 속물 의원 허임의 실체(?)를 드러내며 신분제 사회 속 모순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그 고발을 통해 허임이 왜 그토록 2017년 서울에서 떳떳하게 의원 생활을 하기를 갈망했는지, 설득해 낸다. 흔히 신분제 사극에서 자신의 신분적 한계에 고민하는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치료하고 싶어도 치료할 수 없는 의원의 고뇌를 극적으로 그려내며 중반을 넘어선 극에 '화력'을 더한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그를 스카웃한 신혜 한방 병원의 원장 마성태(김명곤 분)는 그를 vip 병동 전담 의사로 이용하고자 한다. 즉 신분제 사회 조선의 모순이 싫어 이곳에 안착하려는 허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신분제 벽에 봉착할 예정이다. 이렇게 <명불허전>은 그저 속물 의원 허임의 타임슬립기인듯 코믹한 외피를 벗어내던지고, 조선과 2017 대한민국 다른 듯 어쩌면 같은 신분제 사회의 모순에 맞부닥치는 의원 허임을 통해 '참의술'의 길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이런 코믹과 진지한 주제 의식을 오가는 <명불허전>을 설득해 내고 있는 건 김남길이다.
당찬 최연경의 김아중 역시 매력적이지만, 속물 허임에서 병자 앞에서 한없이 진지한 의원 허임, 그리고 병조 참판 앞에서 눈물로 읍소하며 자신이 한낯 양반네의 개새끼임을 고백하는 관노 출신 허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건 바로 김남길이다. 배우가 인상깊은 연기의 캐릭터로 불리는 것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랫동안 그는 김남길 대신 비담으로 불리웠었다. 이제 그에게는 한동안 '비담'대신 허임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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