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2019년 6월 이탈리아 람페두사 해상 47명의 조난자를 실은 독일 NGO 시워치(sea-watvh) 3호는 입항 거부로 표류중이다. 이미 출항지였던 몰타에서 오랫동안 출항 보류로 인해 오랫동안 억류되었던 배, 이제 겨우 바다로 나와 '난민'을 구조했지만 그들을 반기는 항구가 없다.
지중해를 떠도는 사람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난민' 문제가 낯설은 것이 아니다. 지난 해 제주도에 입국한 예맨 난민들을 둘러싸고 여론이 둘로 갈렸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갈곳없는 예맨 사람들을 기꺼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했지만, '가짜 난민', '범죄자', '테러리스트'까지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혐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우리의 문제 만이 아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난민들과 관련하여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바다 하나를 두고 삶의 질을 달리하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 사이의 지중해는 UN산하 국제 이주기구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이주자 발생지역 및 사망 지역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인종과 종교의 박해, 굶주림으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이 '보트 피플'이 되어 지중해 해상을 떠돈다.
이른바 '유럽 난민 사태(European refugee crisis)'로 명명된,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본격적으로 지중해에 나타난 난민들, 2013년 이탈리아 람페두사 해상에서 이들을 태운 배가 좌초하여 366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이탈리아 정부는 이 지역의 군함으로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작전을 펼쳐 난민을 구했다. 하지만 이 작전으로만 구해진 난민들의 수가 무려 15만 명, 안그래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급격하게 증가한 난민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이 부담을 나누어지지 않으려는 유럽 타국가, 그에 따른 여론의 악화로 2014년 10월 작전은 종료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작전은 종료되도 지중해를 떠도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결국 시민 단체가 나섰다.
12월 2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구조>는 유럽이 외면한 지중해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NGO 씨워스에 승선한 세계 각국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문제에 대한 화두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난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프란체스코 트리플리는 지금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시칠리아계 이민자이다. 그가 '이민자'였기에 '난민'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세계의 역사는 이주민의 역사이다.' 과연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 프란체스코. 좋은 환경에서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던 그는 그래서 이제 바다로 나선다.
라이니니는 암스테르담에서 열쇠 수리공으로 일한다. 호출을 받고 달려가 문을 따주면 사람들이 기뻐하듯 지중해 조난 구조는 그렇게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알제리 태생이다. 4살까지 그곳에 살았다. 다행히도(?) 그는 부모가 유럽 출신이라 유럽으로 '이주'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인데 그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에 암스테르담 바다에 사람들이 빠졌다면 20척의 배가 달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국경에서 사람들은 '익사'하고 있다.
독일에서 청소년 지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슈피 하니힐트는 난민 구조가 의무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않되는 인도적 범죄 행위라며 한 발 더 나아간다. 독일 남서쪽 숲이 있고 집집마다 정원이 있는 마을에서 자란 슈피네 근처에는 난민 수용 위원회가 있었다. 침대도 없이 현대판 감옥같았다고 그곳을 회상하는 그녀, 돈많고 럭셔리한 나라의 문 앞에서 매일 사람들이 '익사'하고 있는 현실, 거대한 묘지가 되어가는 지중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한다.
그들이 달려간 바다, 그곳에는 도저히 지중해를 건널 수 없어보이는 20~25m의 고무 보트에 80여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거기에는 임산부도, 어린 아이도 있다. 며칠 동안 당연히 씻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며 구져져 생지옥 상태로 바다를 건넌다. 항해에 부적합한 고무 보트의 현실에서 조난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로마해상구조조정본부에서 조난 신고가 들어오면 씨워치 호는 달려간다. 순간적으로 보트의 바닥이 무너져 물에 빠진 사람들, 그들 중 상당수는 수영을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에 빠지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런 그들을 향해 구명 조끼를 던져주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게 바로 이들 볼런티어(자원 봉사), 씨워치 호의 청년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구조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2017년 11월, 배가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시체가 바다에 흘러가고 있었다. 2살 아이를 건져 심페 소생을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리비아 해안 경비대가 배를 출동시켜 구조하려 했지만 다시 리비아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기에 사람들은 그 배에 오르지 않는다.
지중해는 누가 구하나?
자연재해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기로 하여 생긴 일, 그래서 베를린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는 막스의 신념은 단순하다. 나치부터 난민까지 누가 되었든 인간은 모두 똑같고 중요하기 때문에 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나치를 구하듯 난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들을 죽지 않게 하는 건 쉽다. 가서 구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바다로 나서는 일이 매번 쉬운 건 아니다. 그들은 혹시라도 그들이 탄 배가 납치범에게 납치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생존 확인서'를 쓰고 배에 오른다. 난민들이 제 아무리 바다에 빠져 쓸려가도 이들 NGO 난민구조선 승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드는 건 금지사항이다. 막스는 그 금기를 깨뜨렸다. 죽어가는 임산부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다. 어렵사리 그녀를 구조하고 자신의 몸도 말리지 않은 채 두 시간여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료진과 함께 악전고투를 한 후 홀로 갑판에 나와서 울었다.
그들이 나선 어둠이 내려진 바다는 깜깜하다.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죽음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 바다에서 돌아온 후 항해사인 크라인아우트는 삶에 대한 '무지'를 잃었다. 난민들의 비참한 상황은 '추하다'. 그 혼란스럽고 미치겠는 상황을 견대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바다로 뛰어든 그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이제 스물 여섯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나이가 된 그는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의 '맹목적'이라 할만한 '인도주의'에 세상은 차갑다. 100유로면 갈 수 있는 거리, 생존을 위한 목숨을 건 마지막 항해, 그러나 난민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잣대는 냉정하다.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떠나 좀 더 돈을 벌기 쉽고 안전한 환경으로 떠나는 이들을 '기회주의자'라며, 구조하는 행위에 대해 '브로커'의 배만 살찌우는 행위라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사람을 넘기는 '인신매매'의 한 유형이라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난'에 대해 씨워치 호의 청년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그들이 난민 지위 확보를 위해 적절한 지역으로 옮겨주는 것일 뿐이라고.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사람의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그건 국가와 정치가 판단할 몫이라고. 그리고 그런 '비난'의 근저에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겁먹은 마음이 내재해 있지 않냐 묻는다. 부디 다르게 보일 뿐인 생명에 대해 '너그러움'을 가지라고. 그저 그들은 바다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목표일 뿐이라고.
김연식 씨, 항해사로 10년을 일했다. 지금은 제주에서 7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집과 씨름 중이다. 그는 씨워치 호의 항해사이다. 자신은 그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연식 씨, 그는 그렇게 광화문 광장을 가듯 지중해로 간다. 지난 5년간 김연식 씨와 같은 500여 명의 볼런티어들이 3000 여명 이상의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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