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들고 구체제를 물리치고 '적폐청산'을 내걸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도 어언 3년 여가 지났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의 슬로건은 무색하게 연일 가쉽성 사건들만 난무하고 그 사건들의 이른바 실체는 갈수록 오리무중인 채, 정국은 다음 선거를 둘러싼 세 싸움의 양상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적폐 청산'이란 말 자체가 구태의연해져 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 '임무'를 꾸준히 가열차게 실천하는 분야가 있다. 뜻밖에도 그건 시청자들의 밤을 밝히는 드라마들이다. 월화수목금토, 우리는 매일 저녁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드라마로 만난다. 현실이 되어야 할 이야기들, 그렇게라도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달랜다.
분노는 정의로 치환된다-<열혈 사제> 시작은 본당에서 쫓겨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사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통에 대뜸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는 트라우마에 절어 폐인이 되어가던 그를 거둬주었던 이영준 신부의 구담 성당으로 오지만, 그가 맞딱뜨린건 이영준 신부의 죽음이다.
이영준 신부 자살 위장 사건 그 뒤에는 구담 구청장, 경찰서, 구담시 국회의원, 그리고 특수 수사부 부장 검사 등 구담구 지역 카르텔이 있었다. 당연히 김해일 신부는 '분노'하고 홀홀단신 이 사건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전직 국정요원답게 거침없는 그의 액션은 <정글의 법칙>이 떠난 빈 자리를 꽉꽉 메운 채 답없는 세상에 답답해 하던 시청자들의 가슴을 속시원하게 뚫어주며 시청률로 보답을 받기 시작한다.
구담구 지역 카르텔로 시작했던 사건을 '왕맛 푸드 사건'을 거쳐, '버닝 썬'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무렵 절묘하게 구담구 내의 사교 클럽 라이징 썬 사건으로 연역해내며 드라마의 현실성을 증폭시켜나가는 한편, 김해일이라는 독고다이 분노 조절장애 사제의 헌신적 분노를 구대영 형사(김성균 분),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하여, 서승아 형사(금새록 분), 한성규 사제(전성우 분), 김인경 수녀(백지원 분), 오요환 편의점 직원(고규필 분), 쏭싹 중국집 배달원(안창환 분)까지 구담구의 정의로운 시민들을 구담구 카르텔에 대항하는 구담구 어벤져스로 재편하며 드라마의 전선을 살려냈다.
현실에서 지지부진한 '버닝썬'은 드라마 <열혈 사제>로 오면 '라이징 썬'의 실질적 소유주였던 문홀딩스의 차명 사업자들, 아들을 문홀딩스 대표로 내세운 박신우 의원, 구담구청장 정동자, 구담 경찰서장 남석구, 검사 강석태 등을 속시원하게 까발리고, 이들이 구담구 어벤져스의 작전에 따라 서로 이전투구하며 몰락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과정을 통쾌하게 그려내며 박수를 받는다.
통수 위에 외통수 - <닥터 프리즈너> <닥터 프리즈너>를 여는 건 태강 병원 응급 의학센터 에이스였던 의사 나이제(남궁민 분)이다. 자신의 월급을 털어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를 도왔던 고지식한 의사였던 그는, 태강 그룹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으로 인해 아끼던 환자 부부를 잃는 건 물론, 의사 까운을 벗고 감옥에 가는 처지가 된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자신이 투옥되었던 서서울 교도소의 의무 과장으로 부임하고자 한다.
왜 교도소 의무 과장이었을까? 여기엔 바로 나이제가 의사직을 잃게된 깊은 원한의 이유가 있다. 형사 소송법 471조에 의거하면, 형 집행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염려가 있을 때 이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 해당 교도소 과장의 동의를 받아서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조항때문에 일개 교도소 의료 과장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서서울 교도소에서 그 권력을 누려온 것이 바로 선민식(김병철 분)이었다. 그는 이런 교도소 의무 과장의 재량에 의거 재벌, 정치인 등에게 형 집행 정지를 이용해 돈과 권력을 누려왔었고, 그 과정에서 나이제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기에 나이제의 선민식을 향한 복수는 곧 그가 누려왔던 교도소라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져 왔던 부도덕한 정, 재계 카르텔에 대해 칼을 겨누는 것이 된다. 교도소 의무 과장 자리에서 부터, 출자자 명부, 하은 병원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선민식과 나이제의 '통수'에 통수는 결국 복수와 정의를 향한 나이제의 외통수 앞에 선민식이 무릎을 끓고 만다. 자신의 목적을 향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하지만 결국 '정의'의 목적에 충실한 '다크 히어로' 나이제의 방식은 <열혈 사제>의 분노 액션과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이제의 복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진 하은 병원을 선민식으로 부터 받아내어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야심차게 내보인다. 결국 카르텔의 허브였던 선민식을 제친 나이제가 궁극적으로 상대해야 할 대상은 태강 그룹이라는 재벌, 그 중에서도 자신의 승계를 위해 '살부'도 불사하고, 정민제 의원마저 살해 사주한 이재주(최원영 분)과의 본격 한판 승이다. 과연 재벌 회장을 상대로 한 외통수 나이제의 통수 작전이 이번에도 먹힐 지, 엎치닥뒤치락하며 선과 악의 롤러코스터가 주는 마력이야 말로 <닥터 프리즈너>의 결정적 매력이다.
금권 카르텔에 대항하는 고지식한 선의 - <더 뱅커> 매회 끝을 알 수 없는 통수의 향연인 <닥터 프리즈너>의 가장 큰 희생양은 아마도 동시간대 수목 드라마인 mbc의 <더 뱅커>일 것이다. kbs2 드라마의 부진을 깨끗이 잊게 만드는 <닥터 프리즈너>가 20% 시청률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김상중, 유동근, 채시라 등 쟁쟁한 출연진의 호연에 잘 짜인 대본으로 승부스를 건 <더 뱅커>는 안타깝게도 4% 대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더 뱅커>를 평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만화는 물론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감사역 노자키>의 리메이크작인 <더 뱅커>는 대한 은행이라는 금융계의 절대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정의의 드라마틱한 전개로 열혈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직이었던 공주 지점장이었던 노대호(김상중 분)는 지점 폐쇄라는 불운을 겪지만 뜻밖에도 행장 강삼도(유동근 분)에 의해 감사로 위촉된다. 벌써 3번이나 행장을 연임한 강삼도는 어수룩한 노대호를 감사 자리에 앉혀 그의 공명정대한 감사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던 '배임 행위'로 육관식 부행장을 밀어내는데 이어, kt 부정 취업이 연상되는 국회의원, 국정경제 자문회의 부의장, 금감원장의 압력인 채용 비리 사건으로 도전무(서이숙 분)를 토사구팽하며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새로이 등장한 부행장 이해곤(김태우 분)이 은행을 개혁할 꺼라며 자신의 편에 서라는 회유에, 그건 부행장님의 권력욕일 수 있다며 돌아선 노대호 감사, 드라마는 이합집산하는 대한 은행과 그를 둘러싼 정재계 카르텔 속에서도 꿋꿋히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의 길을 고지식하게 고수하는 감사의 정점이 어딘가 궁금하게 만든다. 더구나 지금까지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행장 강삼도가 그가 꺼내든 은행 개혁과 관련된 D1보고서를 덮으라 하며 노대호의 동지였던 한수지(채시라 분)까지 부행장으로 회유하며 <더 뱅커>는 본격적인 노대호 대 강삼도의, 일개 감사와 대한 은행을 배경으로 한 금융 카르텔의 권력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이제이, 적을 이용하여 적을 제거하는데 그 누구보다 교활한 강삼도 앞에 우직한 노대호 감사의 칼날이 먹힐지 거기에 이해곤과, 한수지의 욕망의 끝은 어딜지, 그 욕망과 정의의 파노라마, 그 귀결점이 궁금하다.
근로 감독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무한하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 근로 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의 실시 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근로 감독관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그걸 믿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에서 보여지듯이 각종 정치적 외풍과 거기에 더해 금권을 전횡하는 기업주에 맞서 일개 공무원이 근로 기준법을 법대로 구현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MBC월화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바로 이 법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현실로 부터 '법대로'하는 히어로가 된 근로 감독관 조장풍을 길어낸다.
일찌기 유도 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던 시절 학교 폭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덕분에 폭력 교사로 낙인이 찍혀 직장과 가정을 잃은 바 있었던 조진갑은 어렵사리 얻은 근로 감독관이란 직분을 복지부동으로 버텨가고자 한다. 하지만 선생직을 잃게 만들었던 그 학폭 사건의 희생자였던 소년이 이제 다시 상도여객의 운수 노동자로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예의 불의를 참지 못하던 '조장풍'의 기질을 살려낸다.
유도 선수 출신으로 그 어떤 조폭이 떼를 지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배포에, 눈 앞에서 깐죽대며 쳐보라는 구대길 이사장(오대환 분)을 향해 대뜸 주먹을 날려버리는 대책없는 용기, 하지만 이번에는 고등학교 때처럼 그저 당하지만은 않는다. 그 시절 그의 은혜를 입었던 천덕구(김경남 분)가 운영하는 갑을 기획의 특출난 사업 능력을 뒷배로 하여, 구원시 노동지청은 물론, 검찰까지 회유한 구대길이 몇 천의 벌금으로 법망을 피해 나가려 하자, 약간의 트릭을 거쳐 운행 정지라는 법적 조치를 통해 벌금을 메꾸려 밤낮없이 혹사당하던 버스와 운수 노동자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묘수를 통해 근로 감독관으로서의 법적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조진갑의 법적 해결은 뜻밖에도 시민의 발을 정지시켰다는 역풍을 맞고 조진갑은 진상조사위에 회부된다. 좋게 좋게 해결하자는 조사위원들에게 '꼭 사고가 나고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까'라며 당차게 반문한 조진갑, 그런 가운데 구대길은 고의 파산을 통해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하고. 조진갑에게 넘겨진 가짜 정보의 압수 수색과 구대길의 해외 도피, 그 간발의 차이를 넘어 결국은 구대길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해내며 근로 감독관으로의 첫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열혈 사제>에서 부터,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까지> 주중, 주말을 휩쓸며 답답한 현실 대신 시청자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드라마들,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모두 '아재'들이 주인공이다. 마흔 줄의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게 자신의 직분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아재들, 그들은 자신을, 혹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는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그 사건 이면에 숨겨진 우리 사회 카르텔에 도전한다. 드라마는 이 평범한 시민의 각성과 실천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도전'의 키가 되는 건 뜻밖에도 그들의 직업이다. 열혈 사제의 김해일 신부는 신부라는 특별한 위치이지만 그 이전에 그가 속했던 국정원이라는 직업이 지금 그가 해결해 가는 사건에 주된 '마스터 키'가 된다. 나이제 역시 의사였던 그의 과거가 지금 그를 서서울 교도소 의무 과장에의 도전에서 부터 선민식, 이재준에 대한 복수의 길에 가장 유리한 방패이자 칼이다. <더 뱅커>의 감사 노대호나,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근로 감독관 조진갑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고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직업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건들로 인하여 그들의 '정의'가 불지펴진다.
이렇게 아재들의 투철한 적폐청산,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핏대를 올리며 '정의'를 목놓아 외치지 않는다. 분노 조절장애 김해일 신부는 외려 때론 그의 분노가 귀엽게 느껴질 만큼 순수하며, 그래서 그의 분노는 중독성있게 주변 사람들을 '오염(?)시켜 전선을 확장키켜 나간다. 시니컬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는 나이제의 여유와, 아재 개그를 남발하며 썰렁해서 어느덧 정기 가버린 노대호의 아재스러움, 거기에 몸무게를 불려 그 덩치만큼 넉넉한 조진갑의 넉살이 이들 드라마의 날선 경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짓게 만든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았다던 그 전설의 복서처럼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매료시켜 내 편의 긴장을 풀어주되, 결코 정의의 전선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투철함으로 이 시대 넉넉한 히어로의 모습을 구현한다. '넉넉함'과 '투철함' , 어쩌면 이들 드라마의 환영받는 주인공으로 부터 사람들이 그리는 히어로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이가 6살 때였나, 이웃에 또래 친구가 이사를 왔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나이'를 까보니, 그 '또래' 친구는 아이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런데 또 이 또래 친구는 2월이 생일이라 이른바 '빠른'으로 아이와 같은 학년에 입학할 처지였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했다. 과연 이 두 아이들은 '친구'가 되어야 할까? '형, 동생'이 되어야 할까? 그저 동네 친구 하나 만드는 일인데 당사자의 엄마들은 물론, 그 주변 '아줌마'들까지 심각하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어 버렸다. 결론은 이십 여년이 지난 지금도 두 아이들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두 아이가 그 때 형 동생이 되었다면 지금도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거기엔 '형'뻘인 아이와 엄마의 '혜량'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나이' 등을 둘러싼 호칭과 관계의 문제는 녹록치 않다. sbs스페셜은 바로 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언어'와 '권위'의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바로 <왜 반말하세요>이다.
말로 부터 시작된 관계의 해체 다큐의 시작은 '도발적'이다. 방송국에 견학온 고등학교 방송반 학생들과 선생님, 그런데 학생들은 흰 머리가 히끗히끗한 마흔 줄의 선생님을 대놓고 '이윤승'이라 부른다. 이름만 부르는 게 아니다.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놓는다. 도대체 이 방송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윤승 선생님이 이윤승이 되기 까지 '사연'이 있다. 학교 안에서도 군기가 세기로 소문났던 방송반, 후배들은 저만치 선배가 가는 게 보이면 달려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십니까 선배님하고 복창을 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한다. 당연히 방송반의 모든 일들은 그에 따라 '상명하복'. 선생님은 오죽했을까? 새로이 방송반을 맡은 이윤승 선생님은 이런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방송반의 관례를 깨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바로 '내가 먼저 권위를 내려놓는 방식', 그래서 이윤승 선생님은 이윤승이 되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자신에게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이 '나 이거 하기 싫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이 좋다고 한다.
호원이가 된 도련님의 사례도 있다. 이미 sbs <b급 며느리>를 통해 방영된 김진영 씨의 사례다. 결혼을 하기 전부터 친해서 '호원'이라 불렀던 남편의 동생,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댁에서는 편하게 불렀던 시동생에 대해 '도련님'이나 '삼촌'이라는 호칭을 요구하며 형수와 시동생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형수의 여동생들에 대해 남편은 자연스레 이름을 부르는데 왜 남편의 동생에게는 호칭을 불러야 하는 것일까? 주변에서는 그냥 잠깐인데 참으면 된다지만 형수는 이런 호칭에서 부터의 차별이 '여자의 삶'을 어그러뜨리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된다.
당신을 당신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 가족에서 부터 사회까지 우리 사회에서 '호칭'으로 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문제는 복잡하다. 그 이유를 전문가는 '너, 당신'이라는 직접적 호칭의 부재에서 찾는다. 207개의 언어 중 '너, 당신'을 직접적으로 부르지 않는 7개의 언어, 그 중 하나가 한국어라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너와 당신을 부를 수 없기에 새로운 호칭을 찾아야 했고, 그를 위해서 당신은 누군인가를 알기 위한 신상 정보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
그런 언어의 특수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다큐는 그 이유를 '상명하복'이 내재화된 우리 사회의 위계 질서에서 찾는다. 5,6살 아이들의 키즈 까페에서도 '너 몇 살이냐'로 시작되는 위계의 파악, 위계가 파악되면 바로 '형', '동생'이 되고, 동생 뻘의 아이에게 당장 '니라고 하지 마라'며 , '형이니 내가 먼저할게'가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의 권위적 질서 체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시작을 조선 시대의 장유유서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다큐의 생각은 다르다. 고미숙 고전 인문학자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 달리 조선 시대 서당은 나이 차를 두지 않는 '통교육 체제'였음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은 나이에 대해 관대하여 25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서신으로 학문을 논했던 기대승과 이황처럼 나이를 막론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례가 흔했다고 전한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적으로 나이에 대해 '관대'했던 조선의 전통이 일제 강점기를 통해 오늘날과 같은 '민증부터 까고 보는' 연령별 위계 질서로 고착되었다고 오성철 교수는 지적한다. 모리 아리노리에 의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군국주의 일본의 사상으로 채택되고 일본을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의 사범 학교를 군대식으로 재편했다. 이른바 '사범형 인간'은 상급생을 '신'으로 받들게 하며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을 퍼뜨렸고, 군대 내 상명하복의 질서를 고스란히 근대 교육 제도화한데서 오늘날의 권위주의적 위계 질서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민주의의 잔재는 오늘날의 위계 질서를 만든 50%의 책임이 있다고 다큐는 부연 설명을 한다. 즉, 식민지의 유산이 절반의 책임이라면 학도 호국단, 국민 교육 헌장 등 일제의 관행을 고스란히 부활시킨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 교육이 오늘날 우리 사회 권위주의적 질서의 또 다른 한 축이라 다큐는 정의내린다. 사회 구조와 맞물려진 언어, 결국 정치적 권위주의가 일상의 권위주의가 되었고,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관행에 대한 성찰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제기한 것이 바로 '수평적 사회를 향한 수평적 언어'에 대한 고찰이다.
일제 식민주의와 독재 정권의 권위주의만의 문제일까? 단 몇 개월의 차이라도 형, 동생이 되는 우리 사회의 '연령별 수직 구조'에 대한 인식은 예리하다. 더구나 그 원인을 '식민주의와 독재 시대의 권위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바는 진일보된 신선한 접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획일적일 수도 있다. 다큐에서 사례로 등장한 <대리 사회>의 소설가 김민섭씨의 사례처럼, 대학원생이던 그가 대리 운전 기사가 되자, 당장 '아저씨'에서 부터 '야, 너'로 호칭의 급격한 '전락'에서 보여지듯이, 과연 우리 사회 권위적 호칭의 문제가 '나이'의 장벽만의 문제일까?
다큐는 독일 68세대에 의한 나치 잔재 세력에 대한 일소를 통한 정치적 권위주의 해소 사례를 예로 들었듯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뒤늦게 대두되고 있는 일제 잔채 청산, 그리고 나아가 독재 잔재 청산에 대한 일련의 흐름에서 '권위주의적 언어'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과연 몇몇 사례로만 제시한 조선시대를 덜 권위적 사회라 예단할 수 있을까? 대리 운전 기사에게, 콜센터 직원에게 다짜고짜 '야'하고 하대하고 보는 그 의식은 외려 조선시대의 반상제도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닐까? 또한, 우리 사회의 완고한 가부장적 권위 주의의 기원 역시 조선 시대 유교를 차치하고서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대학원 내에서 교수와 대학원생간의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한 것이 수평적 언어 관계가 아니기 때문일까?
다큐를 도발적으로 연 이윤승 선생님 역시 수평적 언어의 관계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우선 그의 혁명적 관계 시도가 동료 교사들의 불편함에 대한 토로로 고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아이들과 말을 놓는 건 권위주의적 관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지 진짜 친구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고자 하는 건 아닌데 수평적 언어가 때론 관계의 혼돈을 낳기도 한다고 고민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다큐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it기업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붐처럼 일었던 수평적 언어 관행으로서의 '별명' 혹은 '외국 이름' 부르기와 같은 움직임이 상당수의 경우 이름만 '수평'적이며 실제 관계는 수직적인 '웃픈'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다큐가 새로운 움직임으로 제시한 수평적 언어 모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을 묻지 않는 이 모임을 통해, 자신들이 권위적인 사회 속에서 느꼈던 갑갑함을 풀어낸다. 하지만 대표적 권위주의적 집단으로 제시된 해병대 전우회처럼, 우리 사회의 다수, 그 중에서도 남자 중 상당수가 '군대'라는 일정 기간 동안 '상명하복'에 대한 고강도의 훈련을 겪고 그 논리를 내재화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탈권위적 사회를 향한 출발점으로서 수평적 언어에 대한 모색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4월 11일은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임시 정부 100년을 맞이하여 이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임시 정부'에 대한 '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그런데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리고자 하는 '임시 정부'는 제대로 '조명'되고 있을까? 혹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로서의 '임시 정부'는 몇 사람의 역사가 아닐까?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전 의원이 기억하고 있는 임시 정부를 거쳐간 사람들은 어림잡아도 2000 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몇몇 사람의 임시정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저 2000 여 명 중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선열들은 몇 분이나 될까? 바로 이 '기억되지 않은, 하지만 기억해야 할 독립 운동사, 독립운동가'에 대해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시리즈로 방영되고 있는 <역사의 빛 청년>는 간절하게 문제 제기를 한다. 그래서 시작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겨져 있지 않은 하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한 축이었던 '하와이 독립운동'으로 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5부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려면>에서는 '조명하 의사'를 잊혀진 기억에서 떠올린다.
일본 육군 대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의거 1928년 5월 14일 일본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대만, 구미노미야 구미요시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일본 육군 대장의 환송식이 있었다. 무개차를 타고 환송 인파들 사이를 서서히 지나가던 구미노미야, 그때 인파 가운데에서 뛰쳐나온 청년 조명하가 단도로 그를 찔렀다. 이 사건으로 당시 대만 총독은 해임이 되었고, 결국 구미노미야는 8개월 뒤 복막염으로 사망하였다.
1905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조명하 의사, 군청 서기로 근무하던 중 1926년 좀 더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야간 학교를 다니며 고학을 하던 중 송학선이 사이토 총독 암살 시도하려 했던 금호문 사건, 나석주의 동양 척식회사 폭파 사건 등을 겪으며 독립 운동에 헌신하고자 마음먹었다. 이에 임시정부로 가고자 했던 조 의사, 상해로 가기 위해 대만에 들러 찻집에서 일하던 중 일본 육군 대장이 대만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척살을 결심했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조명하 의사는 '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한스러울 뿐이며 죽어 저승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유언을 남기신 채 10월 10일 타이페이 형무소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꽃보다 할배>에 출연했던 이순재 배우가 조명하 의사를 기리기 위해 대만을 다시 찾았다.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서 먹는다는 맛집 거리, 우리나라에서 대만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빠짐없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그 거리 맞은 편에 조명하 의사의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대만 여행기를 다뤘던 <꽃보다 할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맛집 거리의 맞은 편에는 타이페이 형무소의 벽이 남아있다. 죽은 미군 병사의 기념비가 있어 길가던 외국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돌아가신 조명하 의사의 기록은 없다.
기억되기 위한 조건 그 이유를 다큐는 찾아간다. 조명하 의사에 대한 기록은 단 두 장의 사진, 의사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끝머리에 늘 태워라라고 덧붙이셨다. 그래서 남겨지지 않은 기록, 기록으로 남겨져야 기억되는 역사에서 자신을 지워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결의는 역사의 행간 저편으로 흩어지기 십상이었다. '이대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윤봉길 의사의 편지를 받고 윤봉길 의사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안방 천장 위에 숨기고, 피란 길에도 품에서 놓지 않았던 윤봉길 의사의 동생 윤남의 씨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윤봉길 의사가 있었듯이 '기록의 소실'이 많은 독립 운동가를 오늘의 우리가 기억하기 힘든 첫 번째 이유이다.
거기에 더해 왜곡된 기억이 독립 운동가들을 역사 저편에 묻는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 뒤 무려 한 달 만에 대만 일일신보는 조명하 의사의 의거를 다뤘다. 하지만 내용은 딴 판이었다. 모르핀 중독자, 세상을 비관하여 자살을 결심하고 충동적으로 사건을 벌였다는 식이다. 이봉창 열사의 의거를 취업이 어려웠다는 식으로 폄하했던 그 방식이다. 이러한 '의도를 가진 역사의 왜곡'의 여파는 길다. 대만 타이중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조명하 의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김상호 교수는 오늘날 대만 만 역사 사전에 여전히 일본의 왜곡된 기사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통해 대만에 대한 안정적 통치와 자국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일본의 저열한 정책을 복기한다.
재조명에 성공한 독립 운동가의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남겨진 사진은 겨우 두 장, 기록도 없이 은밀하게 활동했던 이회영 선생, 그런 이회영 선생에 대한 기록을 부인 이은숙 여사의 수기 <서간도 시종기>가 되살려 냈다. 그리고 이회영 선생을 받들었던 후배 독립 운동가들의 증언도 더해졌다.
그렇다면 조명하 의사에게는 후손이 없었을까? 아니 후손이 있다. 단지 저 멀리 호주 시드니에 있다. 얼굴도 몰랐던 아버지, '이게 네 아버지의 유골이란다'는 어머님이 보여주신 유골로 만난 아버지를 우리 사회가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아들 조혁래씨는 선양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8년 10월 10일 서울대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달림은 심각했다. 감사 계통 사람들에게 뇌물까지 줘야 했다. 아들이 못나서 아버지를 큰 사람을 못만들어 드렸다는 죄책감만을 짊어진 채 조혁래씨는 눈을 감았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남은 가족들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건가 라는 자괴감을 안고 손자는 조국을 떠났다.
왜 똑같이 독립 운동을 하셨는데 기억되는 분들과 그렇지 못한 분들이 계실까? 여기엔 '시대적 변화'라는 외인도 무시할 수 없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했다. 윤봉길 의사의 후손은 수교 이전에도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홍커우 공원에 기념관을 세우고자 했다. 중국 정부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국교가 정상화되자 윤봉길 의사의 흉상이 세워지고 기념관이 만들어 졌다. 수교 이후 이회영 선생에게는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유공자 증서인 '혁명 열사 증서'가 수여됐다. 가족들도 몰랐는데 중국 정부가 나서서 이회영 선생이 돌아가신 여순 감옥에 안중근, 신채호 선생과 함께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을 만들어 줬다. 반면 동시에 그간 수교 상태에 있었던 대만과 단교 상태가 되어 버렸다. 대만의 입장에서는 우리 나라가 대만을 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조명하 의사는 배신자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된 것이다. 대만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조명하 의사는 주목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니 외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는 이승만과 가까운 사람들만 독립 운동가로 인정받아 국가 유공자가 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좌익 계역 운동가들'이 주목받았다. 최근 모 정치인의 아버지가 독립 운동을 한 이유로 국가 유공자가 된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독립 유공자들의 인정과 등급이 달라져 왔다. 그런 가운데 아나키스트들은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다. 조명하 의사는 그 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명하 의사만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조명하 의사들이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조명하 의사를 대만에 있는 한국 교포들은 해마다 잊지 않고 기린다. 타이페이 한국 학교에는 조명하 의사 흉상이 있다. 매년 추도식을 하고, 조명하 의사를 기리는 글짓기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조명하 의사 의거 90주년 이제서야 조명하 의사 연구회가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 졌다. 손자 조경환씨도 참여했다. 고국에 돌아온 조경환 씨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의 유지를 뒤늦게라도 받들어 할아버지의 의거를 살아있는 역사로 만드리라 다짐했다.
기록이 없어서, 아니면 기록이 왜곡돼서, 기억해줄 후손이 없어서, 혹은 있어도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좌절해서, 그리고 그 기억에 시대와 정권의 변덕스런 흐름이 있어서, 이런 여러 이유로 우리의 수많은 조명하 의사들이 제대로 된 독립 운동가로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임시 정부 100년 임시 공휴일제정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당당한 우리의 독립 운동사로 소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 프라임 역사의 빛 청년이 개척하는 길은 반갑고 소중하다.
그가 공무원이 된 목적은 '무사안일'이었다. 그래서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려 했다. 그렇게 6년을 보냈다. 자신을 찾아와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니 서로들 말로 해결을 해보시라고 했다. 알바생의 시급을 떼어먹은 점주를 '감독'하는 대신, 알바 생에게 봉투를 주며 어차피 돈 받기 힘들다며 억울하면 공부 열심히 해서 이런 대접 받지 않게 살라는 계면쩍은 핑계를 댔다.
그런데 딸 아이가 '아빠가 부끄럽다'고 했다. 하필이면 그가 감독해야 할 운수 회사에서 이제는 운수 노동자가 된 오래 전 제자를 만났다. 돈 3000원 때문에 '버스비 횡령'으로 해고될 처지의 제자는 그간 못받은 돈도 돈이지만 억울하다 했다. 두 눈 질끈 감고 살려고 했는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아니 애초에 '복지부동'으로 살기엔 그의 피가 너무 뜨거운 탓이 아닐까? 한때 조장풍으로 날렸던 전직 유도 선수에 전직 선생님이었던 근로 감독관 조진갑말이다.
적폐 청산의 주역이 된 감사와 근로 감독관 mbc 주중 미니시리즈는 '적폐 청산'의 시대다. 월화 드라마 < 더 뱅커>가 '대한은행'을 배경으로 '정재계의 카르텔'에 날을 세우더니, 그에 이어 수목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명성 그룹을 주축으로 미리내 재단, 성도 운수 등 재계의 카르텔을 저격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바로 그 '적폐 청산'의 선봉에 선 당사자들이다. <더 뱅커>가 전직 사격 선수에 별정직 사원으로 은행에 입사한 고지식한 은행원이었다가 행장의 복심으로 감사가 된 노대호(김상중 분)라면,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조진갑은 공교롭게도 전직 유도 선수에 의협심이 강해서 선생을 그만 두게 된 공무원 조진갑이다.
말끝마다 아재 개그를 남발하는 자타공인 썰렁한 아재 노대호나, 전작인 <손 the guest>와의 캐릭터 차별성을 위해 장장 10kg를 찌워서 돌아온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까지 둔 조진갑은 말 그대로 '아재'들이다. 그리고 그저 맡은 바 일을 '충실하게' 해내며 자신의 직업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픈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먹고사니즘'의 근원이 된 바로 그 '일'이 그들을 '정의'의 선봉으로 밀어버린다.
은행의 감사가 회계에서 부터 업무 전반에 걸쳐 '감사'를 하는 일의 성격적 특성으로 부터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과정에서 '적폐의 카르텔'과 맞부닥치게 된다면, 조진갑의 직업인 '근로 감독관' 역시 직업적 특성으로 부터 '정의'가 도출된다. 즉, 두 드라마는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내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적폐 청산'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 주축이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근로 감독관이 된 한때 조장풍 선생이던 조진갑 근로 감독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근로 기준법'에 명시된 내용의 실시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고용노동부 소속 공무원이다. 일찌기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며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고 한 게 1970년, 하지만 이 근로 기준법의 실시 여부를 감독 지도하는 공무원인 근로 감독관은 드라마에서 그린 대로 과도한 업무에 밀려, 또한 '갑'인 업주가 가진 '재력'의 위세와 권능에 밀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에는 늘 역부족이라 평가받는 직업이다. 이 직업을 가진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했다면 우리 현대사의 구비구비을 채운 그 수많은 쟁의와 투쟁들은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법'과 그 직업의 현실의 행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진갑의 후배 이동영(강서분 분)의 말처럼 자긍심보다는 자괴감이 앞서는 직업, 안타깝게도 '복지 부동'과 '무사 안일'을 모토로 하여 6년을 버티던 조진갑 역시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딸은 부끄럽다고 하고, 그것도 어떻게 눈을 질끈 감아보려 했는데, 6년 전 그로 하여금 선생직을 그만두게 했던 그 사건의 피해자 선우(김민규 분)가 체불 임금 노동자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실화'에서 부터 출발한다. 현금 승차 승객이 낸 3100원으로 인해 해고를 당하게 된 버스 기사의 사연, 거기서 부터 주인공 조진갑과 선우의 만남이 시작된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6년전 유도 선수 출신으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 선도에 앞장서던 조 선생이던 시절, 선우는 학교 이사장 아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다, 그만 손에 잡힌 시멘트 블럭을 휘둘러 학창 시절을 미처 다 마치지 못하게 된 조선생의 아픈 손가락이다.
2015년 학창 시절 좀 놀았다던 엄마의 사연과,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그 딸의 겪는 교육의 문제를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사건을 절묘하게 직조하여 '교육 문제'에 '메스'를 들이댔던 김반디 작가는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을 통해 다시 한번 '과거'가 매개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 적폐'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명성 학원이라는 사학 재단을 중심으로 왕따를 선동했던 재단 이사장 아들과, 그의 하수인으로 불가피하게 폭력을 행사했던 천덕구(김경남 분)과 왕따의 피해자였던 선우, 그리고 그 사건에서 중재하려 애썼지만 그 자신 역시 선생직을 잃게 되며 가정까지 놓쳤던 선생 조진갑의 '과거 악연'은 이제 명성 그룹이라는 재계 카르텔과 그 계열사 상도 여객에서 부당 해고를 당한 선우, 근로 감독관이 되어 선우를 만나게 된 조진갑, 그리고 흥신소 직원이 되어 돌아온 덕구를 통해 새로운 '현재'으로 조우하게 된다. 즉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악연이 결국 부메랑처럼 다시 '현재'의 사건으로 등장하며 '적폐'를 실감케 한다.
과거 왕따 폭력 사건으로 인해 오지랖에 '욱함'과 '개도 안물어갈 정의감'의 3종 세트로 인해 직업도 잃고 가정도 잃었던 조진갑, 한때 조장풍 선생은 공무원을 준비하며 그 반대의 삶,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의 삶을 살겠다 다짐했었다. 하지만 아픈 손가락이었던 선우가 다시 목숨마저 위협을 받는 처지에 이르자, 그는 다시 한번 예의 '욱'을 발동하며 근로 감독관으로서의 오지랖을 펴기 시작한다.
4회를 마친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은 이렇게 한때 조장풍이었던 조진갑의 과거를 풀어내며 악연의 역사를 드러내고 성도 운수를 중심으로 미리내 재단을 이끄는 구대길(오대환 분)을 등장시키며 '악의 축'을 구축하고, 그에 대응하여 어떻게든 복지부동하려 했지만 과거의 조장풍으로 돌아간 조진갑의 활약상을 그려낸다. 근로 감독관이라는 '법'의 테두리와, 흥신소 덕구를 활용한 법의 경계를 넘어선 '조력', 거기에 끝내 주먹이 앞서는 조장품의 욱함은 <손 the gust>의 윤화평을 잊게 만드는 김동욱을 비롯한 출연진의 호연과 김반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는 대본을 절묘하게 풀어내는 박원국 피디의 적절한 조율로 선배 <더 뱅커>을 훌쩍 넘어 월화 드라마의 강자로 등극할 기세다.
섬, 사월의 바람은 / 수의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들의 울음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중략)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살같을 싸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이하 생략) -바람의 집, 이종형
제주도는 전국민적인 관광지이다. 최근에는 '올레' 길이 각광을 받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고 있다. 그런데 제주의 마을 구비구비를 찾아드는 올레 길, 그 마을들, 특히 북제주쪽 마을들의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건 죽은 이들의 명패, 놀러온 관광객들이 밟고 지나서는 그 땅은 70여 년 전 그 마을 사람들의 피로 물든 땅이었다.
2018년 10월 18일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짚고 부축을 받으며 평균 연령 90세인 18명의 노인들이 제주 지방 법원에 들어섰다. 수용인 명부가 있을 뿐 이제는 기록조차, 아니 그 당시에도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던 군사 재판을 통해 국방 경비법 위반에서 부터 내란죄까지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옥고를 치뤘던 이들의 재심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죽기 전에 명예를 회복시려 달라'라며 절박한 호소에 대해 재판부는 '공소 기각'으로 답했다.
세월도 덮을 수 없는 이들의 억울함, 아니 억울함조차 호소하지도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 과연 70여 년 전 제주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bs 다큐프라임은 생존자 5인의 증언과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제주 4.3 사건을 '재연'한다. 배우 고두심의 나레이션과 제주도의 방언을 그대로 살려낸 입말의 생생함을 더한 '재연드라마' <바람의 집>을 통해 해방 공간 제주의 비극이 되살아 난다.
들끓는 민심, 그리고 한라산 무장대와 서북 청년단 1947년 이제는 아흔이 넘은 부원휴 옹 등은 당시 중학생이었다. 한 마을에서 중학교를 보내는 집이 몇 안되던 시절의 중학생, 중학교를 졸업하면 서울로 올라가 출세를 하겠다는 꿈에 부풀던 시절이었다. 3월 1일 여느 때와 같이 학교로 향하던 부언휴 학생은 당시 제주시의 중심이었던 관덕정을 중심으로 '신탁 통치 반대', '미국 과자 반대' 등의 슬로건을 내건 가두 시위 행렬을 목격한다. 시위대열을 지켜보는 것도 잠시 오후 2시 45분 경찰의 발포로 거리는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기마 경찰과 시위대열이 뒤엉키며 발생한 소요에 대한 경찰의 발포로 아이를 업은 엄마, 어린 학생 등 6명이 희생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발포라 해명했지만 이는 외려 민심을 들끓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947년 3월 10일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에 해당하는 166개 기관 4만 명의 사람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제주도민의 궐기를 남로당의 선동으로 몰고갔다.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서북 청년단이 바다를 건너왔다. '공산주의 박살내고 통일 조국 건설하라'는 과격한 반공주의를 내세운 단체, 북에서 부모와 재산을 잃고 홀홀단신 내려온 이들은 경찰, 경비대 작전에 가담하여 무자비한 '좌익 사냥'에 앞장섰다. 선거를 앞두고 단독 선거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조속히 정리하고자 하는 정부와 미군정의 의도가 서북 청년단의 횡포와 폭거를 조장했다.
이렇게 경찰의 가혹한 수색과 탄압이 계속되며 제주도의 좌익 세력은 위기를 느낀다. 이에 한라산에 은신해 있던 무장대는 4.3일 '전국민이여 궐기하라', '단독 선거 결사 반대'를 주장하며 오름에 봉홧불을 올리고 화북면 경찰지서 등 12개 경찰서를 습격하고 경찰과 우익 인사를 공격, 이 과정에서 12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2명이 행방 불명이 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전국에서 선거가 실시됐다. 전국 평균 투표율 95.5%, 하지만 제주도 전체 투표율은 62.8%, 그 중에서도 북제주는 46.6%로 과반수에 미달, 제주도 세 개의 선거구 중 두 개가 무효화되었다. 전국의 선거구 중 유일하게 5.10 단독 선거를 '보이코트'한 지역이 되었다. 단독 선거를 반대한 후폭풍은 거셌다.
배반의 땅 제주, 가혹한 댓가 제주도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점거되어 조속한 진압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부와 미군정은 부산, 대구, 여수의 3개 대대 병력을 증파했다. 10월 17일 포고령이 내려졌다. 해안선으로부 부터 5km이상 들어간 중간산 지역의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지역 주민들의 소개령이 내려졌다.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잔혹한 초토화 작전이 진행되었다. 11월 중순부터 해가 바뀐 다음 해 2월까지 중간산 마을을 불에 탔고, 남아있던 주민들은 학살되었다. 해안에 피신한 주민들 중에도 무장대의 가족이란 이유로, 혹은 무장대를 도왔다고 즉결 처분의 대상이 되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 갈곳없는 사람들, 밭고랑에 시체가 수북했고 피가 흥건했다. 이런 포악한 진압 작전으로 인해 주민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산으로 도망치려 했고, 그럴 수록 작전의 애꿏은 희생자는 늘어만 갔다. 4개월 동안 중간산 지역의 마을 95%가 방화로 소실되었고, 1949년 6월까지 10,761명이 희생되었다. 이들 중 10% 이상이 노약자였다. 2만5천에서 3만으로 추정되는 제주도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희생되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폭도'로 체포되었다.
그렇게 폭도로 체포된 이들에게는 가혹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장대에 쌀을 조금 준 것 밖에 없다는 호소에도 경찰과 서북 청년단은 전깃줄로 묶어 감전을 시키고, 오물을 먹이며 무장대를 불으라 했다. 포승줄에 묶어 산지축항(제주항)을 통해 육지로 호송되던 이들은 정식 재판도 거치지 않고 증인이나 증거도 없이 내란죄 등의 죄를 물어 징역 1년에서부터 7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바로 2019년에서야 '공소 기각'이 된 그 판결이다.
이제는 아흔이 넘거나 아흔 줄의 조병태, 박내은, 박동수, 부원휴 등 당시를 증인이 된 이들은 70년의 세월 동안 그 '내란'의 족쇄를 지고 살아왔다. 제주도에서 드문 중학생이 되어 뽐내던 소년, 서울로 올라가 출세하겠다던 포부를 지녔던 아이, 심지어 외삼촌이 선거 위원이란 이유만으로 무장대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며 집에서 식구들과 밥을 먹다 자신의 눈 앞에서 형과 형수가 죽임을 당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동생, 이 평범했던 제주도민들이 무차별적인 초토화 작전 와중에 가족과 세월을 잃었다. 70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려진 사건번호 2017의 '공소 기각', 그러나 4.3 희생자들은 여전히 '명예 회복'의 길이 이제 첫 삽을 떠졌을 뿐이라며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써 제주 4.3에 대한 제대로 된 규명이 끝까지 이루어 져야 한다 주장한다. <ebs 다큐 프라임- 바람의 집> 2부작은 민간인 희생자였던 증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공권력의 폭압과 희생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했다.
70주년을 맞이한 제주 4.3 추념식에는 뮤지컬 <화순 칸데라 1946>가 초대 받았다. 왜 제주에 '화순'의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이? 이에 대해 제주 4.3 추념식 본부는 '화순 광부 학살 사건'으로 기억되는 화순 10월 항쟁이야 말로 4.3 이전의 4.3, 4.3의 시작이라 정의를 내렸다. 왜 '화순 사건'이 4.3의 시작인 것일까? kbs1에서 <특집 다큐 화순 칸데라 1946>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화순에 해방은 어떻게 왔는가? 해방 무렵 전남 화순 지역에는 남한에서 세번 째로 큰 탄광이 있었다. 수 천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터전을 일구며 살던 이 곳에도 해방은 찾아왔다. 일제가 남기고 간 탄광, 노동자들은 '자주 관리' 체계를 통해 나라의 석탄 자원을 원활한 공급을 위해 노력했고, 나아가 노동조합 조직인 '전국 평의회'가 이의 관리를 이어 받았다. 해방된 나라의 노동자가 할 일은 열심히 '생산'하는 것이라는 모토 하에 의기투합한 노동자들, 일제 강점기 2500여 노동자가 한달 기준 7,8000 천 톤 정도를 생산하던 석탄을 1300여 노동자가 13000톤을 초과 생산하는 획기적인 생산 증가의 기적을 일구어 냈다.
하지만 그 '기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45년 10월 일본군 대신 동남아시아에서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보병 부대가 '또 다른 점령군'으로 능주 초등학교에 주둔했다. 왜 '능주'였을가? 능주 치안대가 미처 후퇴하지 못한 채 오합지졸이 된 일본군에 대해 무장 해제한 일 등으로 '미군'은 이 '화순' 지역을 관심 지역, 혹은 위험 지역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앞서 1945년 10월 일본이 남긴 재산, '적산'은 조선 군정청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던 미군, 당연히 '화순 탄광'처럼 우리가 스스로 '관리'에 들어간 공장, 탄광 등에 대해 '불법'으로 여겼다. 1945년 11월 미군은 탄광 접수를 공표했고,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24시간 이내 떠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임금 투쟁 등을 할 시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살게 될거라 협박하며, 인원 감축을 핑계로 100 여 명을 해고했다.
이러한 미군의 태도는 당시 미군정청의 책임자로 부임한 하지 장군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당시 남한을 '불만 대면 터질 화약통'이라며 '자신이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의 가장 자리에' 있다는 식의 표현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노동자와 노동 조합은 반발한다. 해방 후 비로소 우리의 나라, 우리의 공장이라는 '해방 공간'이 하루 아침에 '또 다른 점령군'에게 빼앗기게 생긴 것이다. 이에 1946년 2월 '최저 생활 확보 임금제를 실시하라' 등을 내걸고 싸웠다.
해방 1주년, 피로 물든 너릿재 그렇게 싸움을 지속해 나가던 중 1946년 8월 해방 1주년이 다가왔다. 화순 탄광의 노동자들은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너릿재'를 넘어가고자 했다. 탄광 노동자와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와 아이들까지 1000 명이 '해방'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광주로 향하는 대열, 미군과 경찰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총검 등으로 이 대역을 저지, 30 여 명이 '머리가 잘리는' 등의 학살을 당하고 500 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미군과 경찰의 무차별적 탄압에 맞선 화순 탄광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자신들의 탄광이었던 그곳에 '일본의 앞잡이'였던 이들이 다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해방 이전'의 상황을 그 누구라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점령'이 되어버린 '해방'을 수긍할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거기에 더해 당시의 심각한 식량 사정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울 불살랐다. 미군은 통치를 시작하며 일제가 하던 '쌀 공출' 제도를 폐지했다.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방식에 맞춰 쌀의 자유 시장화를 위해 1945년 10월 '조선 미곡 자유 판매'를 실시했다. 대혼란이 빚어졌다. 당시 자유 시장 제도에 부응할 수 있었던 건 일제에 협력했던 대지주나, 중급 이상의 지주, 미곡상들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매점매석이 이루어졌다. 몇 개월 만에 쌀값이 두 배 이상 폭등했다. 결국 미군은 다시 공출, 배급제로 회귀했지만 <뮤지컬 화순 칸데라 1946>의 ' 네 홉 주던 걸 세홉으로 줄이다니, 하루도 못버틸 양으로 닷새를 버티라니, 배때지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니 못살겠어'라는 대사처럼 이번에는 배급량이 문제였다.
농민이든, 노동자이든 그 누구라도 이런 식이라면 당장 굶어 죽을 것같다는 절박함으로 '쌀을 달라'며 노동조합 탄압을 규탄하며 1946년 10월 다시 광주로 향해 나섰다. 그리고 이런 화순의 10월 항쟁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그 들불의 최종 귀착지는 제주도였다.
1946년 11월 4일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당했고 화순 탄광 폐쇄령이 떨어졌다. 6일에는 75명의 노동자가 체포되고, 11일에 경찰서를 공격하던 노동자들 중 3명이 사망했다. 결국 46년말 화순 탄광을 중심으로 했던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군의 노동자들이 산을 향했다. 그들은 화순 주변 지역 산에 '웅거'하여 '화탄 부대'가 되었고, 이들이 바로 빨치산의 시초라 추측된다. 또한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산으로 가 '소년 부대'가 되었다. 결국 조정래의 대하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난 빨치산,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자신들의 자본주의를 섣부르게 이식하려 했던 '점령군' 미국이었다.
서울대의 정근식 교수는 화순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을 촛불 항쟁에 비유한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과연 모두 좌파였을까? 마찬가지다. 1987년 시청 앞 광장을 메웠던 넥타이 부대는 어떤가? 이런 정부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촛불을 들고 나선 사람들처럼 아마도 1946년 너릿재를 넘던 노동자, 농민과 그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 마음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상, 이즘에 앞서 해방된 나라를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가고 싶었던 마음,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받고 싶었던 마음, 먹고 살게 해달라는 생존의 절규가 바로 너릿재 고개를 넘던 대부분의 이들의 마음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화순, 그리고 이어진 여순, 그리고 제주 4.3까지 우리의 역사는 그 모든 것을 묻어 버렸다. 2009년 자신의 큰아버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오봉옥 시인이 <붉은 산 검은 피>를 통해 비로소 역사의 행간에 묻혔던 화순 사건이 드러났다. 그러나 오봉옥 시인은 '이적 출간물 출간'으로 인한 '국가 보안법' 실형을 살아야 했다. 이제 4.3 70주년을 경과한 시간, 늦었지만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역사의 행간 속에 묻혀져 있던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복기해 내야 할 것이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평범했던 어머니가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아들을 따라 '혁명가'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며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삶에 지쳐 배웠던 글조차 잊었던 닐로브나, 그녀에게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정작 그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가 아들이 '헌신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되고 우려와 걱정을 넘어 '동지'가 되어가는 '비등점'을 한 여성이자, 한 사람의 어머니의 관점에서 막심 고리끼는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먹고사니즘'의 승화, 그 과정은 언제나 숭고하지만 그 질적인 비등점을 설명하는 건 막상 쉽지 않다. 캠페인이나 계몽적 선언이나 명구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러기에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작이 된 것일 터이다.
<열혈 사제>는 이미 김남길의 몸이 부서져라 작두를 타는 듯한 혼신의 연기로 시청률이라는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열혈 사제>를 김해일 신부로 분한 김남길만으로 정의내리는 건 섭섭하다. 충분 조건이 되고도 넘치는 많은 이들의 열연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중반부를 넘어선 <열혈 사제> 그 화려한 조연진들 중에서 이제 김해일 신부와 함께 '어벤져스'로 활약할 캐릭터들의 '비등점'을 다루며 영웅기 그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구대영, 다시 열혈 형사가 되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모처럼 몸에 맞는 캐릭터로 돌아온 김성균의 구대영 형사이다. 그도 한때는 열혈 형사였다. 하지만 이제 그를 '호구, 모지리, 쫄보, 쪼다' 취급을 한다. 오죽하면 그가 소속된 형사팀이 현장을 급습할 때 그는 홍보 요원이 되어 거리를 헤매게 할까. 그 과정에서 조폭들에게 옷을 빼앗기고 웃음거리가 되고 그에게 그런 '수모'가 새삼스럽지 않다. 그는 나체가 되어 거리를 헤매도, 조폭들에게 얻어터져도 참는다. 왜냐하면 그의 파트너였던 후배 형사가 죽어가며 그에게 어떻게 하든 살아남으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수모를 겪을 수록 그 후배 형사의 아내와 아이들은 안전할 것이라 그는 믿는다.
그런데 그의 앞에 그의 그런 신념을 흐트러뜨리는 인물이 등장했다. 이영준 신부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김해일 신부가 그에게 골칫덩어리이다. 팀장은 어수룩하고 만만한 그에게 김해일 신부를 '커버'하라 하지만, 어느 틈에 김해일 신부는 그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라 강권하고 있다. 그 '입장', 매일밤 집에 돌아오면 뒤척이며 모처럼 찾아간 후배의 납골당에서 몸은 편한데 마음이 안편하다던 구대영 형사는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어느 틈에 자신도 모르게 김해일 신부의 '뒷배'가 되고 있다. 황철범에게 맞는 김해일 신부를 위해 119 구급대를 부르는 것에서 부터 바야바 분장을 하고 함께 별장을 찾아든다. 신경 쓰임이, 마음 쓰임으로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김해일 신부의 안위를 걱정하던 그가 김해일 신부가 후배 형사를 죽어가게 했던 러시아 조폭 무리가 연루된 라이징 썬을 향해 돌격하려 하자, 자신이 짊어졌던 짐을 고백하고 예전의 구대영 형사로 돌아가고자 한다.
부장검사의 '꼬붕'에서 김해일 신부와의 '공조'로 이영준 신부님을 존경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그런 종교적 신념이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의 '성공을 향한 광녀 모드'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영준 신부님의 죽음이 석연치 않았지만 그보다는 이제야 검찰 내에서 윗선의 눈에 들어 양 날개를 달 듯한 자신의 입지가 먼저였다. 다시 고향에 돌아가느니 차라리 강석태 검사 앞에 무릎을 끓고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는 해결사가 되는 길을 기꺼이 택하려 했다.
그런데 등장부터 그녀의 남다른 '얼빠' 감각을 홀리더니 그녀의 고해 성사를 거부하는가 하면 대놓고 신자인 그녀의 성당 출입마저 거부하는 김해일 신부에게 그 누구라도 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 욕부터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제쳐버리던 그녀가 자꾸 머뭇거린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의 끝에는 여전히 그녀의 집 탁자 위에 여전히 인자한 웃음으로 그녀를 지켜보는 이영준 신부님이 계시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그녀에게 암살자를 보냈다.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다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 앞에서는 한낮 바람 앞에 촛불 신세였다. 그런데 그 순간 신부님이 나타났다.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한다더니, 이젠 목숨까지 구해줬다. 자신의 뒷배가 된다던 부장 검사가 자신을 고향으로 좌천시킨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도 다르다. 말로는 한껏 으르렁거리지만, 김해일 신부에게 자꾸 믿음이 간다. 말로는 자신을 죽이려던 그 세력이라면 그 누구라도 라며 '복수'를 내세웠다. 그녀가 살아왔던 방식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신부님은 그녀의 허를 찌른다. 그녀가 해왔던 비겁함과 오욕의 시간에 대한 '회개'의 한 방식이 아니냐고. 회개면 어떻고, 고해면 어떻고, 혹은 복수면 어떠리. 이제 박경선 검사는 그 누구도 감히 손대려 하지 않은 라이징 썬으로 대변되는 '부도덕의 카르텔'에 뛰어들고자 한다. 그녀에겐 김해일이라는 든든한 '동지'가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오요한과 쏭샥, 사랑보다 더한 커플의 동지애 시작은 악연이었다. 김해일 신부가 이영준 신부를 대신해 미사를 집도한 날 배가 고파서 자기 얼굴만한 모카빵을 먹던 오요한(고규필 분)은 성당에서 쫓겨났다. 배가 고프면 잘 안들린다는 변명 아닌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는 없지만 독실한 신도였던 그는 성당도 날선 훈계를 하는 김해일 신부도 멀리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성정답게 그 누구도 그는 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팠던 천체 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불철주야 어떤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 오요한이 밤마다 지키는 편의점을 찾는 태국에서 온 쏭삭마저 그에게 '친구'였다. 서로 남은 삼각 김밥과 식은 군만두를 나누어 주는.
김해일 신부의 청으로 자신의 장기를 살려 왕맛 푸드의 비밀 장부를 꺼내오는 임무를 함께 하는 작전에서도 몸이 무거운 오요한을 도운 건 쏭삭이었다. 생전 처음 그런 임무를 맡아 '도움'을 실천한 오요한은 생전 처음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고백한 것도 쏭삭이었다. 하지만 쏭삭은 그런 오요한의 고백에도, 그로 인해 오요한이 장룡 무리에게 심하게 매타작을 당할 때도 쏭삭은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다. 그저 늘 장룡 무리에게 '간장 공장 공장장은' 하며 조리 돌림을 당해던 그 '태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요한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고백에도 쏭삭은 자신이 지켜야 할 태국의 가족이 그를 주저앉혔다. 오요한이 뜨거워져도 쏭삭은 냉정했지만 막상 오요한이 '냉담'해지자, 그런 그에게 찾아와 '우정'의 뜨거운 눈물로 그 마음을 녹여준 건 쏭삭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더는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다 고백한다.
그 '고백의 실천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가슴에 '돼지 새끼'와 '옹박'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라이징 썬의 알바가 된 두 사람, 그곳을 덮친 김해일 신부와 박경선 검사의 공조팀이 공격을 당하고, 구대영이 쓰러지고, 서승아가 쓰러지고 박경선 검사를 향해 야구 방망이가 날아갈 때 박경선 검사를 흠모하던 오요한이 그 방망이를 자신의 몸으로 막고 쓰러지자, 쏭삭은 그동안 자신을 숨겼던 만만한 동네 배달맨의 꺼풀을 벗어던진다. 왕을 지키던 옹박 저리가라할 고수의 실력으로 말 그대로 일당 백의 무술인으로서의 진정한 풍모를 드러냈다.
구대영, 박경선, 오요한, 그리고 쏭삭, 그들 모두는 '먹고사니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혹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그리고 혹은 순탄한 재외 외국인으로서의 생활을 위해 그들은 '비겁'을 눈감으며 '불의'를 감수했다. 하지만 비록 단단한 무쇠로 만들어진 듯했지만 그래도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김해일 신부의 '열혈' 투신이 그들을 변화시켜 나간다.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을 한결같이 보다듬었던 이영준 신부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자꾸 들쑤셨다.
결국 그들은 한 걸음이 자신을 주저앉혔던 먹고 사니즘의 장막을 걷어제치고 나선다. 박경선이 복수를 핑계로 '누구라도 나와'라며 호기롭게 '주님'못지않다는 검사로서의 본분에 나서고, 구대영이 과거의 짐을 덜고 비로소 형사로서의 거침없이 떨쳐일어서고, 쏭삭이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숨겨두었던 무공을 뽐내는 25,6회야 말로 그간 은근히 지펴졌던 <열혈 사제>의 비등점이 끓어오르며 폭발했다. 김해일 신부의 분노와 그 분노로 추동되었던 헌신이 불쏘시개가 되어 이들을 일으켜 세우며 <열혈 사제>를 끓어 올렸다.
김상중, 채시라, 유동근, 안내상, 서이숙, 출연진의 면면만 봐도 <천추태후>, <정도전> 쯤 되는 대하 사극인가 싶다. 그런데 mbc 수목 미니 시리즈다. 거기다 사극이 아니라 '금융권' 이야기를 다루는 일본 만화 리메이크작이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건 이런 쟁쟁한 출연진으로 이미 '대박'이라는 이 드라마의 출발이 4.5,6%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심지어 이 '쟁쟁한' 출연진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타 방송사 경쟁작은 외려 시청률이 상승했다. 그러나 예단은 금물이다. 1,2회 아기자기한 농촌 휴먼 스토리인가 드라마는 2회 말 공주 지점이 폐쇄된 후 주변에서 앞날을 걱정해 주던 노대호 공주 지점장이 대한은행 감사로 승진하게 돼 본점으로 들어오며 이야기의 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버블 경제가 무너지던 일본의 1990년대 일본의 금융계는 '금융 빅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정이 넘쳐 지역의 대소사까지 챙기던 오오조라 은행의 지조도리 지점장 노자키 슈헤이는 지점 폐쇄를 맞닦뜨리게 된다. 이렇게 <감사역 노자키>는 시작되고, <더 뱅커>는 이런 설정을 공주 지점의 노대호 캐릭터로 그대로 들여온다.
지방 지점장에서 하루 아침에 감사가 된 '노대호' 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출신,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해지고, 그가 속한 사격단이 해체되며 그는 '별정직 사원으로 은행에 특채되었다. 운동 선수 출신이라는 우려 속에 뜻밖에도 '주산'부터 배우기 시작해 강삼도 은행장의 기억에 자신을 새겼던 노대호(김상중 분), 그는 '성실하게 충실히' 대한은행맨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성실한 은행원으로 살아온 시절이 그에게 보상한 건 가족의 붕괴였다. 리먼 사태의 여파로 그의 적극적인 권유로 '대한 은행'과 거래했던 장인은 그의 눈 앞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낸 아내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그 역시 지방으로 좌천되고, 하지만 그는 '공주'에서도 여전히 충실한 '대한은행맨'으로 살아간다.
<더 뱅커>는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속도전 대신, 1,2회에 걸쳐 진득하게 노대호를 설명한다. 은메달리스트의 사격 실력으로 잡아준 멧돼지, 폐점 위기의 은행도 구하고, 귀농인과 농민들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협동 조합 개설 등 흡사 농촌 계몽 드라마라도 보는 듯한 '고지식한' 설정으로 노대호를 설명하는데 공들인다. 거기에 이미 이혼한 사인지만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의 병원비마저 기꺼이 감당하는 책임감까지. 실소를 자아내는 아재 개그는 덤이다.
시청률 대신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득하기에 고심한 <더 뱅커>만의 방식은 바로 노대호란 인물이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는 '은행, 그 중에서도 육관식(안내상 분), 도정자(서이숙 분) 등 첨예하게 대립되는 파벌과 그 파벌을 노련하게 운영하며 3번째 행장직을 연임하고 있는 강삼도(유동근 분)의 성채와도 같은 대한 은행 속에서 '강직한 감사'가 될 기초를 쌓아올리는 시간이었다.
마치 <그것이 알고싶다>의 공주 버전과도 같이 충청도 사투리가 아닐까 싶은 느릿느릿한 말투로 아재 개그를 남발하는 노대호 캐릭터를 지켜보는 건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그런 그였기에 3회 초반 감사가 된 그가 비싼 연회로 이루어진 주주들의 모임에서 값비싼 포도주를 힐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데 어색함이 없었다. 또한 감사가 된 후에도 공주 지점의 직원의 곤란한 처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한은행 옥상에서 돈을 뿌리며 자살을 기도하는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끝내 애쓰는 노대호의 캐리터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벌이는 '공명정대하고 원칙적인 감사'의 여정에 믿음이 가게 되는 것이다.
대한 은행, 그 복마전에 뛰어든 감사 노대호 그렇다면 노대호에게 '전가보도'가 된 감사란 무엇일까? 주식회사의 감사는 조직의 업무 상황을 감독하고 조사하는 '감사'를 주요한 직무 권한으로 하는 '상설 기관'으로 이를 위해 회계 및 영업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거나 각종 업무와 재산 상태를 조사할 수 있는 직책이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 회장직을 내려놓은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그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아시아나 항공의 '감사' 보고서였다.
하지만 꼭 이렇게 순기능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뱅커>에서 보여지듯이 노대호를 감사로 뽑은 사람은 다름아닌 행장 강삼도이다. 강삼도는 첫 출근한 노대호에게 공명정대한 감사 업무를 부탁한다. 이에 노대호는 그 대상이 그 누구라도 괜찮겠느냐며 반문하자 멈칫한다. 이렇게 대주주, 혹은 <더 뱅커>에서처럼 최고 경영자의 손에 의해 뽑힌 '감사'는 자칫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세력'이 되기가 십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더 뱅커>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노대호, 그가 속했던 대한 은행의 공주 지점을 폐점으로 이끈건 바로 육관식 부행장과 정치인간의 불법 비자금 커넥션이었다. 부행장은 호시탐탐 강삼도 행장의 자리를 노리며, 또 도정자 전무와 파벌 싸움 중이다. 말로는 '공명정대'함을 요구했지만 과연 강삼도 행장은 그런 '순수한' 목적만으로 노대호를 발탁했을까? 이렇게 이해가 충돌되는 세력 들 사이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간 '원칙적이며 정의로운 휴머니스트' 노대호의 행보가 바로 <더 뱅커>의 주목할 만한 지점이 된다. 즉 우리의 사회 속에서도 그 위치가 모호한 '감사'와 '은행'을 배경으로 '공명정대'한 사회를 향한 싸움의 여정 그 자체가 아마도 그 무엇보다 <더 뱅커>의 주요한 배경이 된다.
노대호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 바로 '마녀'라 불리는 한수지(채시라 분)의 존재이다. 고지식한 노대호의 오랜 동료로 여상을 나와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부장, 본부장을 거쳐 이제 강삼도에 의해 임원으로 발탁된 한수지, 부행장의 라인이면서, 동시에 강삼도 행장을 존경하는 그녀가 '성공'과 '멋들어진 대한은행원'으로써의 길에서 겪는 딜레마와 선택 역시 노대호와 다른 지점에서 <더 뱅커>의 볼거리가 된다.
일본 만화 혹은 일본 드라마 특유의 '계몽주의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시작된 <더 뱅커>, 금융이라는 우리 드라마계에서는 생소한 분야를 소개하기 위해 드라마는 노대호란 '인간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유동근, 채시라, 안내상 등 중견 배우들의 굵직굵직하고 힘있는 연기에 기대어 '드라마'를 추동하고자 한다. 하지만 '연기신'이라 불리는 김상중의 캐릭터 설정조차도 아직은 <그것이 알고 싶다>의 또 다른 버건같다거나, 어색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 상황, 거기에 요즘은 드라마의 한 축으로 확고해진 ost마저 생뚱맞게 튀어나오고, 배우들의 쟁쟁한 연기마저도 때로는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진행이 과연 애초의 의도대로 이 드라마를 이끌어 갈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틀리지 않게 3,4회에 들어서며 그 어색했던 나른한 말투하며 어설픈 아재 개그마저 친숙해 져가는 가운데 역시나 위기 상황에서 빛나는 김상중의 발군의 연기와 못지 않은 채시라 등의 기세가 <더 뱅커>의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마르세이유 출신의 젊은 선원 에드몽 당테스, 겨우 스무 살에 그는 선주의 눈에 들어 선장이 되고 약혼녀와의 결혼식을 앞둔 꿈에 부푼 청년이었다. 하지만 가장 행복해야 할 약혼식 장에서 음모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무려 14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에서 만난 신부의 도움으로 갖은 지식을 얻고 천신만고 끝에 감옥을 빠져나온 그는 숨겨진 재산으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신분 세탁을 한 후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
이 '복수'를 위해 자신을 지우고 새롭게 거듭난 복수의 화신이 2019년 우리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로 '열일'한다. 자신이 당한 만큼 되갚아 주기 위해 자신을 지우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이 '복수'의 클리셰가 21세기의 봄에 우리 사회에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노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로망'으로서일까? 과연 그들이 '복수'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복수를 위해서라면 감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 <닥터 프리즈너> 나이제 태강 병원 응급의학센터 나이제(남궁 민 분), 그는 고지식한 의사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만으로 버틴 그곳에서 자신의 월급을 털어 노숙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가난한 농아 부부에게 직원 할인이란 핑계로 도움을 주는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올곧은 의술은 가난한 농아 부부를 사고로 내몰고도 자신의 동생 이마에 난 상처를 치료하라 길길이 날뛰는 태강 그룹의 아들 이재환(박은석 분)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농아 부부는 골든 타임을 놓쳐 죽음에 이르렀고 자신의 말을 안들었다는 이유로 이재환의 농간에 나이제는 의료 면허가 취소된 채 감옥에서 3년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가 3년 후 자신이 머무렀던 서서울 교도소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번에는 죄수가 아니라 교도소 의무 과장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곳엔 곧 그에게서 의사 면허를 뺏고 두 부부와 뱃속에 든 한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던 이재환이 마약 복용 혐의로 수용될 예정이다. 그가 감옥으로 들어오는 날 차량 전복 사고가 나고, 그 현장에 나타난 나이제는 이재환의 어머니가 기획한 형 집행 정지 판정으로 이끌 이재환의 부상을 치료한다. 그 과정에서 이재환과 그의 어머니 모이라의 적대적 세력인 이재준(최원영 분)의 신임까지 얻는다.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던 전직 교도소 의무과장 선민식(김병철 분)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며. 죽어가는 이재환에게 이제야 너때문에 죽어가던 이의 마음을 알겠냐고, 그러면서 그를 살린다. 그리고 그냥 죽이는게 아니라, 이재환이 생각하는 가장 끔찍한 장소 감옥에서 차근차근 그를 괴롭히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복수라, 나이제 식의 '눈눈이이'다.
병원장의 회유와 재벌의 강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돌아섰던 강직하고 고지식했던 의사 나이제,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형집행정지를 바라는 여죄수의 없는 병도 만들어 주고, 자신의 자리에 예정되어 있던 의료과장 후보자를 납치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감옥의 죄수들 재벌이든 그 누구라도 손을 잡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정의로운 의술을 펼치려던 그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술을 잃고, 자신이 보살피던 환자들마저 잃게 되며, 마치 '착한 사람이 돌변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닥터 프리즈너>는 4회에 걸쳐 나이제란 인물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서울 교도소 의무 과장이 되는 과정을 그려내며 분노하지만 차마 복수하지 못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시청자들의 통쾌한 탄성을 자아낸다.
참회의 길이 복수의 길로 - <열혈 사제> 김해일 이번에는 본의 아니게 신분 세탁이 된 케이스다.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었던 김해일(김남일 분)은 위르키스탄 반군들에게 붙잡힌 한국 봉사원들을 구하던 도중 그가 던진 폭탄에 어린이들을 살상하게 된 사건을 겪게 된다. 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해일은 국정원을 나와 이영준 신부의 인도를 받아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전력은 기록 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구담구 카르텔의 이권을 위해 성당을 차지하고자 한 세력들이 이영준 신부를 살해하고, 신부님이 애써 보살폈던 복지원마저 저들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분노 조절 장애 신부님이었던 김해일은 자신의 전력을 활용하여 수사에 돌입한다. 그는 구담구 신부이지만, 본의 아니게 그가 신부라는 존재가 그의 지난 전력을 숨기는 방패가 된다. 자신을 숨긴 채 하지만 가장 예리한 국정원 요원의 자세로 존경했던 신부님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의 분노는 조절 장애가 아니라, 가장 성스러운 수단이 된다.
신부님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신부님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간 '증인'들을 찾기 위해 국정원 시절 알았는 해커를 다그쳐 그들이 숨어있는 아지트를 터는가 하면, 국정원 시절의 수사 능력으로 구담구 카르텔의 약한 고리였던 복지원 급식 업체 왕맛푸드의 비밀 장부를 입수하고, 국정원 요원의 실력으로 그를 막아섰던 공무원과 황철범의 똘마니들을 압도한다.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를 비롯한 구담구 쪽에서는 그의 정체를 궁금해 하지만 기록에서 삭제된 그의 과거는 오리무중이다. 이제 사건 당일 황철범의 별장에 이영준 신부님이 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해일은 신부복을 벗는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오게 될 일이 없기를 기도해 왔다'던 자신이 국정원 시절 장비들로 무장한 채 바이크를 타고 결전의 그곳으로 향한다.
복수의 딜레마 - <바벨> 차우혁 어린 그의 앞에 다정했던 아버지는 차가운 시체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찾아온 거산 회장이 전해준 무언가를 보더니 다음 날 아침 목을 맸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차우혁(박시후 분)은 '복수'로 돌렸다. 거산을 쓰러뜨리기 위해 기자가 되었다. 거산의 비리를 파헤쳤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신문사의 가장 큰 광고주였던 거산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연예부 좌천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포장마차에서 거산가 둘째 아들과 여배우 한정원의 밀회를 목격했다. 연예부 기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자극적인 형태로 '스폰서' 운운하며 기사를 써제꼈다. 데스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그리고 그날 신문사에도 사표를 던졌다. 거산을 무너뜨릴 수 없는 도구가 되지 않는 기자직에 미련이 없었다.
대신 검사가 되었다. 서부 지검 칼잡이가 되었고, 인도적인 정보를 통해 거산가의 둘째 딸 태유라의 마음을 샀다. 덕분에 거산 태회장의 눈에 들어 거산 변호사가 될 기회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때 헬기 사고로 태회장이 사경을 헤매고, 둘째 아들인 태민호가 살해당했다. 그 수사가 차우혁에게 배당됐다. 거산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자가 되고,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려던 그의 오랜 '복수'의 집념이 스스로 파열음을 낸 거산 덕에 탄탄대로를 걸을 일만 남은 듯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태민호의 아내다. 그가 살아돌아온 태민호로 인해 오열하던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입을 맞추었던.
<바벨>의 서사는 여느 복수극과 톤을 달리한다. 드라마는 부도덕한 재벌의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한 복수극을 향해 질주하지만, 그 질주의 속도를 제어하는 건 뜻밖에도 '복수의 딜레마'이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를 거산이라 생각했던 차우혁은 복수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 기자가 되고, 검사가 되고,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방법들이 이제 그를 옭죈다. 자신의 기사로 인해 태민호와 결혼했던 한정원의 불행한 처지를 알게된 차우혁은 그만 마음이 흔들린다. 자신의 서류에 '접근하기 용이할 것'이라던 그 대상 한정원에게 '복수의 대상' 이상으로 마음을 줘 버린 것, 스스로 '죄책감인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말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재벌 가의 희생양이 되고만 한정원을 두고 볼 수 없다.
자신의 복수가 낳은 도덕적 '딜레마'는 '사랑'으로 치환되어 차우혁을 고뇌에 빠뜨린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했던 행위들이 낳은 불행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사랑'을 매개로 논한다. 그런 차우혁의 맞은 편에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사랑하는 이에게 마저 칼을 꼿는 신현숙(김혜숙 분)이 있다. 드라마는 그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사랑의 도덕적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그가 달려왔던 복수가 흔들린다. 아버지가 했던 사업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아버지는 태회장과 신여사와의 치정의 피해자였던 것, 과연 그럼에도 거산을 향해 계속 칼을 겨누어야 할까? 이렇게 <바벨>은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부도덕한' 이슈로 문제가 되고 있는 tvchosun을 통해 '의도와 행위의 도덕적 딜레마'를 논한다.
스페인이 축구의 나라라는 건 이른바 '축알못'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스페인에서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외인 구단'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면?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실제 이루어 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스페인 7부 리그 소속인 꿈 fc가 그 주인공이다. 이 신기한 스페인의 외인구단을 이영표 선수가 소개한다.
7부 리그? 3부 리그까지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한국 축구가 인프라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7부 리그라니, 하지만 축구 선수만 80만 명 우리나라의 40배인 스페인은 7부 리그까지 지역 주민의 호응을 받으며 활성화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축구'하면 유명한 지역이 카스티야 라만차, 그곳의 작은 도시 이에스까스의 7부 리그 팀 꿈 fc는 현재 7부 리그 1위를 질주 중이다.
꿈을 찾아 스페인으로 온 한국인들 그런데 이 이에스까스의 Qum(꿈) fc의 구성이 선수 19면 전원이 한국인이다. 감독과 코치진만 스페인이다.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는 운동장, 페드로 벨라스코 감독은 말한다. 선수들의 강점이 한국어, 상대가 못알아 들으니 시합 도중 얼마든지 서로 소통하라고. 이렇듯 전원 한국인인 이들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를 따라 만리타국 스페인까지 왔다.
2017년 여름 올라온 sns 공지, '꿈을 이루고 싶은 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분'이란 문구 하나로 모여든 선수들, 구혁균 선수는 치킨 집 주방에서 닭을 튀기다 왔다. 고현철 선수는 브라질 유소년 리그 출신이다. 21살의 원승현은 신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과 꿈 fc의 두 길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26살의 구성은은 축구를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이 없다. 25살의 허준호는 프로로 활동했지만 경기에 나서본 적이 없다. 한국이라면 애초에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을 법한 사람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거미줄을 뚫기조차 힘든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인정해준 이역만리 스페인 이에스까스로 날아와 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무모한 도전을 벌인 사람은 누굴까? 선수들이 운동하는 곳 한 켠의 작은 방, 태극기가 덩그러니 달린 그곳에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이는 46살의 김대호 씨, 그는 폭발물 전문가로 한때 토목 현장을 누볐던 사람이다. 축구라고는 남들 다 그렇듯이 국가 대표 경기가 보던, 알고 있는 축구 상식이라 봐야 '오프 사이드' 정도였던 그가 이 구단을 이끄는 주인공이다.
스페인 유소년 1부 리그에서 활약 중인 아들, 스페인에서는 18세 이하 미성년의 경우 스페인의 체류 시 부모 중 한 사람이 케어를 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회계사인 아내 대신 아들을 케어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온 김대호 씨는, 아들과 같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부푼 꿈을 안고 스페인에 왔지만 낯선 이국 땅에서의 적응 문제로 자신의 꿈조차 접게 되는 사례를 빈번하게 접하게 된다. 같은 한국인들끼리 어울려 지내면 '적응'이 좀 더 쉽지 않을까라고 해법을 떠올리게 된 김대오씨, 딸의 평가처럼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무모했던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낯선 스페인 땅에 한국인 외인 구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의 노후 자금은 이제 선수들의 용돈과 숙식비, 훈련비가 되고 있는 중이다.
전설의 시작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캐치프레이드를 내건 꿈fc는 한국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만으로 똘똘 뭉친, 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던 19명의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왔고 함께 합숙하며 지금 그들에게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얼차려 등 군기 잡기에 익숙했던 선수들, 납조끼를 입고 새벽부터 구보를 했던 선수들, 중앙 수비수로 칭찬보다는 욕 먹는 게 일상이었더 선수들,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큰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던 선수들은, 스페인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축구는 선수들의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구랑 공도 선수들도 챙겨주며 선수들을 훈련에만 집중하도록 해주는 감독과 코치진의 한국과는 다른 '케어'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갔다.
그저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스페인 어학원도 빠질 수 없는 이들의 일과다, 스페인 유소년 아이들을 만나 그들이 축구를 매개로 꿈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접하기도 한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한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다. 맘껏 드리블하다. 공을 빼앗기면 다시 뺏으면 된다. 한 골을 먹으면 한 골을 넣으면 된다'는 축구란 꿈을 찾아온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축구만을 바라보는 꿈은 위험하다며 인생에는 사랑도, 가족도 여러 가지 다른 꿈이 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런 새로운 사고 방식들이 그간 이들을 짖눌렀던 '축구', 혹은 '꿈'에 대한 강압적 의식을 해제하자 이들은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나날이 승승장구, 7부 리그 기간 동안 안타깝게도 마지막 경기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진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스페인의 공포의 외인 구단이다. 아직도 인조 잔디 구장용 축구화가 따로 없어 가혹하게 실격을 당하지만 원정 경기의 일방적 홈팀 응원이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위축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7부 리그 1,2위를 다투고 6부 리그 승격을 결정지었다. 4부 리그의 팀들이 '스타웃'할 인재를 물색하는 팀, 이제는 이에스까스 사람 누구나 알아보고 격려 해주는 팀, '예의 바르다'며 선수도 동네 사람들도 칭찬해 주는 팀, 자칭 '국뽕' 김대호 구단주의 말처럼 이곳 스페인의 한국 대표팀인 이들은 현재 승승장구, 4부 리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스페인 국왕 컵 참가를 팀의 목표가 어쩌면 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꿈을 찾아 다시 한번 뛰는 19명 선수들이 일궈내고 있는 '기적'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왜 젊은이들의 꿈이 여의치 않는가를 점검해 주는 시간이 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돈과 학벌과 지연과 인맥이 없으면 무엇인가를 해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공정한 기회, 정직한 결과'라는 저 단순한 문구가 왜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작은 도시에서 가능한 것인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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