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 셀러였던 kbs2 저녁 8시 주말 드라마와 밤 10시 주말 드라마라는 두 양대 산맥 사이에서 '진퇴양난'이었던 sbs 주말 드라마,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언니가 살아있다>를 편성하며 기존의 토, 일요일에 걸쳐 방영하던 주말 드라마를 토요일 연방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보려 했지만 mbc의 맞짱 편성으로 그 야심찬 기획은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이에 전통의 가족극 중심의 주말 드라마에 대해 sbs는 스릴러 장르 <시크릿 마더>,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에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의 드라마 버전인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을 통해 채널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순위의 변동은 쉽지 않았다. 

이에 sbs는 배수진의 편성을 꾀한다. 금요일 밤의 효자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주말로 시간을 바꾸고 그 자리에 기존의 주말 드라마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스릴러였지만 '가족'극의 내용을 띠던 작품 대신 <귓속말>, <펀치>의 이명우 피디와 <김과장>의 박재범 작가가 의기투합한 본격 '장르물'인 <열혈 사제>를 편성했다. 그리고 이런 벼랑 끝 전술은  sbs 드라마에게 1위의 영광을 안겼다. 처음엔 <정글의 법칙> 시청자들을 이어받은 게 아닐까였지만, 이제 14회 이른 드라마는 <정글의 법칙>의 후광을 걷어내고 <열혈사제> 그 자체로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는 중이다. 

 

 

열렬히 웃겨드립니다. <극한 직업> 못지 않게.
10.4%로 시작하여 단 한 회를 빼고 계속 두 자리 수, 이제 16, 17%를 거뜬히 넘기고 있는, 최근 주중 공중파 시청률로 보자면 '대박'에 가까운 <열혈 사제> 그 성공의 요인은 무얼까? 그건 무엇보다 '웃음'이다. 사심없이 열심히 웃겨드립니다로 천만 관객을 훌쩍 넘겨버린 영화 <극한 직업>처럼, <열혈 사제>의 가장 큰 장점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한 시간 내내 '매우' 웃기다는 것이다. 도대체 웃을 일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극한 직업>이 그랬듯이, 끊임없이 웃음을 선사하는 <열혈 사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재미를 선사한다. 

10여년 전 대 테러 특수팀으로 활동 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 전직 국정원 직원 김해일(김남길 분), 그는 그 사고의 트라우마로알코올 의존증에 걸려 폐인이 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던 중 이영준 신부(정동환 분)을 만나 사제의 길을 걷게 되지만 여전히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폭력적 성향'의 신부로 결국 자신의 교구에서 쫓겨나 다시 이영준 신분의 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버지같은 이영준 신부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천주교 신부로 불명예를 당하고 성당과 성당이 보살펴 온 보육 시설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상황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 놓여진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이 보이는 '행위'들은 매우 코믹하다. 다혈질에 말은 물론, 주먹조차 조절이 되지 않는 하지만, 어쩐지 그의 거친 언어와 행동들이 장르물 특유의 '하드 보일드'하기 보다는 '해프닝'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허당'미가 드라마의 톤을 '코믹'하게 만든다. 김남길이라는 배우가 가진 비극과 코믹을 자유롭게 오가는 특유의 유연한 연기, 거기에 더해진 그의 길쭉한 자태를 활용한 액션이 우선 시청자들의 시선을 이끈다. 

거기에 진지했던 이영준 신부의 죽음 이후에 김해일의 주변에 포진한 인물들이 모두 저마다 한 '코믹을 한다. 욱하면 마구 욕이 튀어나오다 스스로 '하느님'을 소환하며 자제하려고 애쓰는 김인경 수녀님(백지원 분)에서 부터 본의 아니게 그의 파트너가 된 형사 구대영은 이미 코믹한 캐릭터로 여러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은 김성균이고, 그의 파트너가 된 신참 형사 서승아(금새록 분)의 뜬금없는 '힙합' 감성에, 아직은 단역에 불과하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중국집 배달원인 외국인 노동자 쏭싹(안창환 분)과 자기 얼굴만한 모카빵을 놓치지 않는 오요한(고규필 분)의 깨알 등장 역시 빠질 수 없는 코믹 요소이다. 

김해일 측근만이 아니다. 여주인공이지만 <극한 직업>에 이어, 아니 <극한 직업>보다 본격적으로 갖은 욕을 장착하고 '스트레스~'를 연발하는 속물 검사 이하늬의 박경선이 보여주는 물만난 듯한 코믹한 모습에, 김해일의 맞상대로 조폭 우두머리인 고준의 황철범은 <극한 직업>의 신하균, 오정세에 결코 밀리지 않으며, 그가 모시는 정동자 구청장(정영주 분), 강석태 검사(김형묵 분), 경찰 서장 남석구(정인기 분)에 고준의 똘마니로 사이비 교주로 돌아온 이문식에, 카포에라 발차기 한번으로 대번에 화제가 된 음문석이 분한 장룡에, 스모키 화장만으로도 돋보이는 김원해의 어설픈 러시아 킬러까지 악당 군단의 코믹한 면면 역시 만만치 않다. 

 

 

주구장창 웃기긴 하지만
이런 '코믹' vs. 코믹의 구도는 바로 <극한 직업>을 천만으로 이끌어 낸 결정적 요소이다. 즉,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이 아직은 '을'의 처지에서 보여주는 어설픈, 혹은 부족한 코믹 캐릭터들은 바로 만년 반장에 어딘지 덜떨어져 보이던 <극한 직업> 내 강력반의 면면을 벤치 마킹한 듯하다. 아직은 다들 그 부족한 면으로 밀리고 치이며 심지어 그로 인해 발목잡히는 신세지만, 14회 '간장 공장 공장장'으로 인해 장룡에게 맞던 쏭싹이 당당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간장 공장 공장장'을 읊어 상대를 머쓱하게 하는 순간의 사이다처럼 언젠가 모래알같던 이들의 한 방이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도록 만든다. 

반면에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지만 그의 태도 하나하나가 위압적이기 보다는 조롱하고 싶게 우스꽝스러웠던 <극한직업>의 신하균이나 오정세처럼 , 14회 알고보니 구담 경찰서장이 대대로 '친일파'라는 설정 하나 만으로 그의 얍삽한 캐릭터가 한결 더 살아났던 장면에서 보여지듯, '거악'의 카르텔이지만 위협적이기 보다는 알고보면 별 거 아니게 조롱할 만한 악의 축들이 보여지는 '만만함'이 여전히 '변변찮은 선'과 우세한 악의 전선에도 시청자들이 편하게 웃으며 이 드라마를 지켜볼 수 있는 기조가 된다. 

 

 

거기에 아직은 김해일을 감시하는 처지인 구대영, 그리고 스스로 속물임을 자처하는 박경선이란 캐릭터가 가진 가능성이 이 '고구마일변도'의 코믹 서사에 또 다른 기대치가 된다.

분명 극의 전개로 보면 악의 카르텔은 견고하며 그들이 뻗어간 영역은 치밀하고, 그에 맞선 김해일 신부를 비롯한 선의 세력들은 지지부진하지만, 그 지지부진한 코믹의 행력에 매회 빠지지 않는 비록 아직 성과는 없지만 김해일 신부의 '분조 조절 장애' 액션이 '단비'같은 역할을 하고,  거기에 이 지리멸렬한 캐릭터들의 연합, 그리고 구대영과 박경선의 포지션 변화 조짐들이 코믹을 넘어선 <열혈 사제>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그렇다면 <열혈 사제>의 아쉬운 점은 없을까? 수원 왕갈비 통닭? 실감나는 먹방? 아니 그보다는 장르물로 16부작을 이끌어가는 호흡의 느슨함이다. <극한 직업>이 두 시간의 런닝 타임 동안 화끈하게 웃기는 것으로 승부를 봤지만, 16부작의 드라마는 웃고만 있기에는 긴 시간이다. 수없이 날려지는 웃음의 잽들 사이를 채우는 서사의 공백이 길다.

여전히 전직 국정원 출신의 김해일 신부의 의욕을 그의 주먹만큼 앞서지만 그 주먹은 허공을 가른다. 구대영과 박경선의 포지션은 애매해서 답답하고, 쏭삭, 오유환 등의 숨겨진 능력치와 활약은 아직 저만치 있다. 이제 캐릭터가 가진 웃음 포인트가 뻔해져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결국 이를 채울 건 '장르물'로서 서사의 전개뿐, 하지만 구담시 악의 카르텔은 견고하고 해결의 기미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등장한 보육원 급식 사건이 과연 고구마 줄기처럼 코믹을 넘어선 장르물의 쾌감을 선사할지. 웃음만이 아니 장르물로서의 충실한 전개로 통쾌함을 선사해 주길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9. 3. 9. 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