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입시 교육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던 jtbc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 하지만 이 드라마의 효과는 아이를 초등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학부모들이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입시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거기서 등장한 입시 코디를 찾아나서는 우리의 학부모들, 그 현실은 이제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이어 아빠들의 '바짓바람'을 불러온다. 
3월 10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바람'에 대해 다뤄본다. 

 

 

아빠들의 바짓바람 
안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김현창 씨, 늦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자녀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잠시 그 역시 고된 치과 일을 마치고 온 몸을 이끌고 아이 방 책상 맞은 편에 앉는다. 그동안 내주었던 중국어 과제를 시험하는 아빠, 곧잘 대답하는 큰 아이,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 미소는 역시나 아빠가 내준 일본어를 읽지도 못하는 작은 아들로 인해 곧 지워진다. 

한때는 아이의 학업에서 아빠가 할 일은 '무관심'이란 정의가 유행했었다. 엄마가 맡아서 하는 아이의 공부, 그저 아빠는 atm 노릇만 잘 하며, 가급적 아이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잔소리는 커녕 말도 되도록이면 적게 시키는 것이 아빠 노릇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웬걸 아빠들이 달라졌다. 입시 교육 설명회에 어떤 엄마들보다 눈을 빛내며 간간히 동영상까지 촬영하며 열성적으로 집중하는 아빠들의 모습을 찾는게 더는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와 함께 마주 앉아서 모르는 걸 가르쳐 주는 걸 넘어, 김주영 쓰앵님처럼 아이의 학업 스케줄을 관리한다. 심지어 퇴근 후 한 잔 술은 옛 말, 아이들 공부에 관심있는 아빠들끼리 차를 마시며 정보를 나눈다. 

한때 유행하던 스칸디 대디, 과거의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 방법을 지양하고,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인성, 책임, 정서 등에 중점을 두고 교육했던 새로운 교육 양식의 아버지 유형 들, 가족 중심의 문화가 대두되며 어릴 적 아이와 놀아주고 캠핑도 하며 아이와 시간을 보냈던 아버지들이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레 입시 교육에 동참하게 되는데, 아이가 커감에 따라 입시 교육에 총력을 다하는 우리 나라 가족의 특성상 아이에 관심을 가졌던 아빠들이 자연스레 아이의 입시 교육 전선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아빠들이 지금의 입시 위주 교육 방향을 강력하게 추종하게 되면서 이제 '바짓 바람' 아빠들이 되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를 살아가는 아빠들
그런 '바짓 바람 아빠'들의 <스카이 캐슬> 시청 소감은 그래서 남다르다. 드라마 속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거침없이 '차민혁 교수'를 꼽는다. 세상을 계급에 따라 나뉘는 피라미드로 표현한 그의 정의에 공감한다. 아빠들이 살아본 세상은 바로 차교수의 정의 그대로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의 도시'란다. 그러니, 차교수처럼 아이들에게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차지하도록 독려할 수 밖에 없다고. 

사회에 잘 적응하고, 좋은 직업을 얻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아빠, 지금 고생이 그래도 적게 고생하는 거라 생각하는 아빠,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며 사는게 벼랑 끝에 선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아빠, 사회 생활을 해보니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 주의를 '절감'하고 보니 그 학벌 에스컬레이션의 보증 수표를 주고싶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아빠. 가슴에 사표를 품고 사는 삶, 아이들에게만은 이 고단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아빠. 

박재원 교육 전문가는 우리 사회 아빠들의 바짓 바람의 근원을 그저 계층 상승 욕구가 아니라 계층 하강 공포, 낙오에 대한 불안감에서 찾는다. 각자가 느꼈던 낙오 공포에 대한 체감도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매달리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 낙오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그 '안정된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올려놓기 위해 아빠들은 어떤 사다리라도 구해주고픈 마음이 '바짓 바람'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

'괜찮아', 쉽지만 그 어려운 말
하지만 아빠 맘처럼 될까? 쉽지 않다. 김현창 씨의 경우 아이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미 좀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빡세게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온 늦은 시간 붙들고 앉아 공부를 시킨다. 학습 스케줄을 짠다 1년 정도 아빠 스케줄 대로 해봤는데 외려 아이들과의 갈등만 깊어진 듯하다. 아빠는 공부를 시킨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공부를 안한다고 화만 내는 아빠로 받아들인다. 엄마는 아이들이 충분히 열심히 한다지만 아빠 눈에는 영 아니다. 그러니 자꾸 잔소리만 늘어나고. 아이들을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할 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 같고, 바짓바람의 딜레마다. 

혹시 아빠가 공부하는 노하우를 잘 몰라서일까? 두 아이를 각각 포항 공대와 서울대를 보낸 아빠 배은철씨, 초등 3,4학년 때부터 아빠 은행을 만들어 은행의 역할과 복리 계산법을 가르치는 등 남달랐던 공부 비법을 가진 아빠, 하지만 정작 그가 말하는 건 '공부'보다 중요한 게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 그리고 아이 스스로 자기 통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믿어줘야 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못하게 하기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이 스스로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유도해줘 그걸로 영재고를 갈 수 있게 하고, 때로는 학교를 가기 싫다는 아이를 무조건 존중해 스스로 학교를 다녀야 할 이유를 찾도록 만들었다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에게 공부 잘했니 대신 뭐하고 놀았니?를 물었다던 아빠?

이 아빠의 경우는 특별한 것일까? 160명의 서울대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조사를 해봤다. 10명의 학생 중 8명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갈등을 겪지 않고 심리적 안정을 줬다고 답했다. 또 77.2%가 성적과 입시에 대해 너그럽고 여유있는 태도롤 일관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아빠는 '자상하고, 수시로 아재 개그를 하며 아이들을 웃기려고 노력했으며,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들이 애초에 공부를 잘해서 였을까? 하지만 서울대 생이라고 다 처음부터 공부를 잘 하던 건 아니다. 가출을 밥먹듯 하기도 하고, 재수를 했으며, 내신 4,5등급이던 시절이 있거나, 애초에 대학 갈 생각이 없었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아빠들은 일관되게 '공부를 안해도 되니 뭘 하고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보라'는 식으로 독려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상한 아빠의 독력을 받은 서울대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자기 주도 학습 전문가'라는 것이다. 즉 아빠들의 따뜻한 울타리 덕에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하늘'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대 아빠들이 그토록 원하는 '공부'만이 답일까? 교육 전문가 박재원 씨 아들은 일찌기 우리 나라 교육 제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아버지가 믿어준 아들은 sky에 간 아이들이 부럽지 않다는 북유럽식 목조 주택을 짓는 목수가 되었다. 아빠는 말한다. 떄로는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평생을 잘 지내야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떠올리며 아이가 스스로 경험을 통해 체득해 나가기를 기다려 줬다고. 

교육학자인 신종호 교수는 말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에는 '죄송하다, 미안하다'가 많다고. 이미 아이들도 체감하고 있는 괜찮지 않은 세상, 화려한 지옥에 갇힌 아이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건, 이미 자신들을 위해 많은 것을 주고 있어 미안한 부모들이 먼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큐가 돌아와 던지는 질문은 아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이다. 스스로 사다리에서 떨어질 불안에 떠는 부모가 과연 아이에게 진심으로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괜찮지 않은 세상에서 어쩌면 어른들이 먼저 괜찮아지는 게 진짜 '바짓바람'의 출발점이 아닐까. <스카이 캐슬>의 결말처럼 말이다. 

by meditator 2019. 3. 11.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