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평범했던 어머니가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아들을 따라 '혁명가'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며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삶에 지쳐 배웠던 글조차 잊었던 닐로브나, 그녀에게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정작 그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그녀가 아들이 '헌신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되고 우려와 걱정을 넘어 '동지'가 되어가는 '비등점'을 한 여성이자, 한 사람의 어머니의 관점에서 막심 고리끼는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먹고사니즘'의 승화, 그 과정은 언제나 숭고하지만 그 질적인 비등점을 설명하는 건 막상 쉽지 않다. 캠페인이나 계몽적 선언이나 명구가 되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러기에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명작이 된 것일 터이다.
<열혈 사제>는 이미 김남길의 몸이 부서져라 작두를 타는 듯한 혼신의 연기로 시청률이라는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열혈 사제>를 김해일 신부로 분한 김남길만으로 정의내리는 건 섭섭하다. 충분 조건이 되고도 넘치는 많은 이들의 열연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중반부를 넘어선 <열혈 사제> 그 화려한 조연진들 중에서 이제 김해일 신부와 함께 '어벤져스'로 활약할 캐릭터들의 '비등점'을 다루며 영웅기 그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구대영, 다시 열혈 형사가 되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모처럼 몸에 맞는 캐릭터로 돌아온 김성균의 구대영 형사이다. 그도 한때는 열혈 형사였다. 하지만 이제 그를 '호구, 모지리, 쫄보, 쪼다' 취급을 한다. 오죽하면 그가 소속된 형사팀이 현장을 급습할 때 그는 홍보 요원이 되어 거리를 헤매게 할까. 그 과정에서 조폭들에게 옷을 빼앗기고 웃음거리가 되고 그에게 그런 '수모'가 새삼스럽지 않다. 그는 나체가 되어 거리를 헤매도, 조폭들에게 얻어터져도 참는다. 왜냐하면 그의 파트너였던 후배 형사가 죽어가며 그에게 어떻게 하든 살아남으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수모를 겪을 수록 그 후배 형사의 아내와 아이들은 안전할 것이라 그는 믿는다.
그런데 그의 앞에 그의 그런 신념을 흐트러뜨리는 인물이 등장했다. 이영준 신부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김해일 신부가 그에게 골칫덩어리이다. 팀장은 어수룩하고 만만한 그에게 김해일 신부를 '커버'하라 하지만, 어느 틈에 김해일 신부는 그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라 강권하고 있다. 그 '입장', 매일밤 집에 돌아오면 뒤척이며 모처럼 찾아간 후배의 납골당에서 몸은 편한데 마음이 안편하다던 구대영 형사는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어느 틈에 자신도 모르게 김해일 신부의 '뒷배'가 되고 있다. 황철범에게 맞는 김해일 신부를 위해 119 구급대를 부르는 것에서 부터 바야바 분장을 하고 함께 별장을 찾아든다. 신경 쓰임이, 마음 쓰임으로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김해일 신부의 안위를 걱정하던 그가 김해일 신부가 후배 형사를 죽어가게 했던 러시아 조폭 무리가 연루된 라이징 썬을 향해 돌격하려 하자, 자신이 짊어졌던 짐을 고백하고 예전의 구대영 형사로 돌아가고자 한다.
부장검사의 '꼬붕'에서 김해일 신부와의 '공조'로
이영준 신부님을 존경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그런 종교적 신념이 박경선 검사(이하늬 분)의 '성공을 향한 광녀 모드'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영준 신부님의 죽음이 석연치 않았지만 그보다는 이제야 검찰 내에서 윗선의 눈에 들어 양 날개를 달 듯한 자신의 입지가 먼저였다. 다시 고향에 돌아가느니 차라리 강석태 검사 앞에 무릎을 끓고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는 해결사가 되는 길을 기꺼이 택하려 했다.
그런데 등장부터 그녀의 남다른 '얼빠' 감각을 홀리더니 그녀의 고해 성사를 거부하는가 하면 대놓고 신자인 그녀의 성당 출입마저 거부하는 김해일 신부에게 그 누구라도 그녀의 앞길을 막는 자 욕부터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제쳐버리던 그녀가 자꾸 머뭇거린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의 끝에는 여전히 그녀의 집 탁자 위에 여전히 인자한 웃음으로 그녀를 지켜보는 이영준 신부님이 계시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그녀에게 암살자를 보냈다.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다던 그녀였지만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킬러 앞에서는 한낮 바람 앞에 촛불 신세였다. 그런데 그 순간 신부님이 나타났다.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한다더니, 이젠 목숨까지 구해줬다. 자신의 뒷배가 된다던 부장 검사가 자신을 고향으로 좌천시킨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도 다르다. 말로는 한껏 으르렁거리지만, 김해일 신부에게 자꾸 믿음이 간다. 말로는 자신을 죽이려던 그 세력이라면 그 누구라도 라며 '복수'를 내세웠다. 그녀가 살아왔던 방식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신부님은 그녀의 허를 찌른다. 그녀가 해왔던 비겁함과 오욕의 시간에 대한 '회개'의 한 방식이 아니냐고. 회개면 어떻고, 고해면 어떻고, 혹은 복수면 어떠리. 이제 박경선 검사는 그 누구도 감히 손대려 하지 않은 라이징 썬으로 대변되는 '부도덕의 카르텔'에 뛰어들고자 한다. 그녀에겐 김해일이라는 든든한 '동지'가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오요한과 쏭샥, 사랑보다 더한 커플의 동지애
시작은 악연이었다. 김해일 신부가 이영준 신부를 대신해 미사를 집도한 날 배가 고파서 자기 얼굴만한 모카빵을 먹던 오요한(고규필 분)은 성당에서 쫓겨났다. 배가 고프면 잘 안들린다는 변명 아닌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는 없지만 독실한 신도였던 그는 성당도 날선 훈계를 하는 김해일 신부도 멀리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성정답게 그 누구도 그는 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팠던 천체 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불철주야 어떤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 오요한이 밤마다 지키는 편의점을 찾는 태국에서 온 쏭삭마저 그에게 '친구'였다. 서로 남은 삼각 김밥과 식은 군만두를 나누어 주는.
김해일 신부의 청으로 자신의 장기를 살려 왕맛 푸드의 비밀 장부를 꺼내오는 임무를 함께 하는 작전에서도 몸이 무거운 오요한을 도운 건 쏭삭이었다. 생전 처음 그런 임무를 맡아 '도움'을 실천한 오요한은 생전 처음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고백한 것도 쏭삭이었다. 하지만 쏭삭은 그런 오요한의 고백에도, 그로 인해 오요한이 장룡 무리에게 심하게 매타작을 당할 때도 쏭삭은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다. 그저 늘 장룡 무리에게 '간장 공장 공장장은' 하며 조리 돌림을 당해던 그 '태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요한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고백에도 쏭삭은 자신이 지켜야 할 태국의 가족이 그를 주저앉혔다. 오요한이 뜨거워져도 쏭삭은 냉정했지만 막상 오요한이 '냉담'해지자, 그런 그에게 찾아와 '우정'의 뜨거운 눈물로 그 마음을 녹여준 건 쏭삭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더는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다 고백한다.
그 '고백의 실천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가슴에 '돼지 새끼'와 '옹박'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라이징 썬의 알바가 된 두 사람, 그곳을 덮친 김해일 신부와 박경선 검사의 공조팀이 공격을 당하고, 구대영이 쓰러지고, 서승아가 쓰러지고 박경선 검사를 향해 야구 방망이가 날아갈 때 박경선 검사를 흠모하던 오요한이 그 방망이를 자신의 몸으로 막고 쓰러지자, 쏭삭은 그동안 자신을 숨겼던 만만한 동네 배달맨의 꺼풀을 벗어던진다. 왕을 지키던 옹박 저리가라할 고수의 실력으로 말 그대로 일당 백의 무술인으로서의 진정한 풍모를 드러냈다.
구대영, 박경선, 오요한, 그리고 쏭삭, 그들 모두는 '먹고사니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혹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그리고 혹은 순탄한 재외 외국인으로서의 생활을 위해 그들은 '비겁'을 눈감으며 '불의'를 감수했다. 하지만 비록 단단한 무쇠로 만들어진 듯했지만 그래도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김해일 신부의 '열혈' 투신이 그들을 변화시켜 나간다.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을 한결같이 보다듬었던 이영준 신부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자꾸 들쑤셨다.
결국 그들은 한 걸음이 자신을 주저앉혔던 먹고 사니즘의 장막을 걷어제치고 나선다. 박경선이 복수를 핑계로 '누구라도 나와'라며 호기롭게 '주님'못지않다는 검사로서의 본분에 나서고, 구대영이 과거의 짐을 덜고 비로소 형사로서의 거침없이 떨쳐일어서고, 쏭삭이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숨겨두었던 무공을 뽐내는 25,6회야 말로 그간 은근히 지펴졌던 <열혈 사제>의 비등점이 끓어오르며 폭발했다. 김해일 신부의 분노와 그 분노로 추동되었던 헌신이 불쏘시개가 되어 이들을 일으켜 세우며 <열혈 사제>를 끓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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