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계 부채 1500조가 되었다. 한 가구당 7,022만원인 셈이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울리는 대출을 해주겠다는 각종 정보성 알림들, 우리는 어쩌면 24시간 빚의 유혹 속에 놓여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자금 대출, 결혼을 하며 집 장만을 위한 융자,  그리고 나이가 들어 사업을 하기 위한 대출 등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빚은 우리 삶의 '레버리지(지렛대)'가 되고 있다. 긍정적으로 정의하자면 빚은 소득, 수입이 발생하는 시점과 돈이 필요한 시점 간의 갭을 미래 소득이나 수입을 담보로 미리 당겨서 쓰는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 '긍정'적 수단의 증가폭이 심상찮다. ebs다큐 프라임은 지난 12월 3일 부터 <부채 사회>, <빚의 역습>, <미래의 빚> 3부작으로 <경제 대기획 빚>에 대해 다루며 급증하는 우리 사회 빚의 현실과 대안에 대해 고민한다. 
 


부채사회
한 가구당 7000만원이 넘는 가계 부채라지만 빚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태도는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만화 작가인 허안나씨는 대학 1학년 2학기부터 받았던 학자금 대출을 졸업과 동시에 갚지 않으면 월급에서 원천징수하겠다는 문자를 받고서야 비로소 그 무게를 실감했다. 그리고 '만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갚기 위해 직장을 10여년간 다녀야 했다. 

최춘근-박금순씨 부부는 빚 권하는 사회의 천연기념물 같은 부부이다. '저축 장려 시대'를 살아온 부부는 융자 없이 당시로는 1억 2천만원 짜리 집을 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런데 이제 빚없이 살아온 삶에 대해 부부와 자녀의 생각은 '다시 태어나도 빚을 지지 않겠다'부터, '그 돈이었으면 사업적으로 투자를 해서 더 큰 이익을 보았을 텐데', 그리고 '내 돈 대신 할부로 차를 사는게 편하다'까지, '동상이몽'이다.   

그런가 하면 택시 운전 25년차의 김강수 씨에게 '빚'이란 어쩌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를 그의 재산 목록 1호 택시와 집을 가지게 해준 고마운 수단이다. 2700만원을 대출 받아 개인 택시를 사고, 그 빚을 3년만에 갚았고, 15년거치 주택 대출은 아직도 한 달에 70만원씩 갚고 있지만, 그 빚이 없었다면 택시를 사고, 집을 가지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 장담한다. 

한 술 더 뜨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업자 박정수 씨는 빚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케이스다. 수원에만 150채, 전국적으로는 300여 채, 거기에 아내 소유의 300채를 더하면 600여 채의 아파트를 소유한 그는 자기 돈 18억에 1300억의 빚을 사업의 동력으로 활용한 케이스다. 이렇게 박정수 씨처럼 '사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집을 가지기 위해 월세을 적극활용하는 케이스도 있고, 편의점을 하는 이우성 씨처럼 이율을 활용하기 위해 부채 상환을 미뤄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어깨를 짖누르는 무거운 짐, 또 누군가에게는 기회, 혹은 삶을 업그레이드 시킬 지렛대, 심지어 사업 수완이 되는 빚, 저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빚을 지는 것이 이상해 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빚의 역습
그런데 빚은 참 묘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경매에 돈을거는데 묘하게도 현금과 카드의 금액이 차이가 5~10% 정도 차이가 났다. 3개월 할부를 염두에 두었다고도 하지만, 사람들은 '외상'일 경우 더 쉽게 돈을 쓰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현금으론 까다롭던 사람들이 분명 자신의 돈이 지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카드 등 빚의 경우 한결 조건에 있어 너그러워진다. 그리고 물건을 파는 회사들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요즘 트렌드가 되는 정말 무이자가 아니라, 할부를 할 것을 감안하여 이미 애초의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는 '무이자 할부', 하지만 사람들은 그 문구에 쉽게 지갑을 연다. 

이렇게 빚에 너그러운 사람들, 심지어 사람들의 경우 빚을 지고도 무감각하다. 지금 당신의 빚이 얼마입니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사거나 사업을 하기 위해 은행권 등에서 빌린 돈의 금액을 댄다. 하지만 할부로 산 핸드폰, 집안을 온통 채운 가전제품, 마이너스 통장, 심지어 아직 고지서가 날아오지 않은 이번 달 카드 요금에는 무감하다. 자동차는 어떻고. 이렇게 사람들은 빚을 지고서도 빚에 무감해져 간다. 

 

 

그럼에도 무던해 질 수 없는 것이 그 중에서도 주택 대출 등이다. 무리해서라도 빚을 내서 집을 사놓아야 한다는 의식은 1936년 이래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부동산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1969 강남 개발 시작, 1977년 반포 2단지, 압구정 현대 아파트로 부터, 여의도 목화 아파트 분양은 45;1의 경쟁이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첨만 되면 웃돈이 얹어지고 순식간에 3배로 뛰는, 심지어 한 해 40%가 오르기도 했다는  '신기루'같은 시절에 그 누가 그 한 '몫'에 뛰어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건 IMF때 까지였다. 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부동산 신기루에 뛰어든 가족의 허망한 역사를 마민지 감독은  <버블 패밀리>를 통해 실감나게 설명한다.  50%의 융자를 받아 집 장사를 했던 마감독의 어머니, 아버지는 IMF 후 금리 인상을 감당하지 못했다.  땅을 사서 집을 지어 건물세를 받자는 부모님, 여전히 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신다. 

IMF를 지나 2008년 부동산 불패 신화는 다시 한번 이자 폭탄을 맞고 만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하우스 푸어', 일산에서 6천만원으로 분양을 받아 그걸 다시 1억 4천에 팔고 하는 식으로 집으로 돈을 좀 만졌던 이동훈 씨, 2008년 당시 10억을 빌려 13억 짜리 집을 샀다. 하지만 부동산 시세가 폭락하여 10억에 그 집을 팔아야만 했고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부동산 버블'이 낳은 결과다. 

이런 '부동산 버블'이 가져온 파산은 우리나라만의 사례가 아니다. KDI 박정호 교수에 따르면 도쿄에는 한때 평당 100억 짜리 집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을 넘어 하와이와 미국으로 까지 번져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그럴 듯한 녹지를 사들이는 식의 부동산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하지만 91년에서 2005년까지 무려 15년간의 경기 하락 과정에서 오피스는 40%, 주택은 반토막이 되었고, 일본인들이 많이 사들였다는 미시시피 주 경우 카타리나가 강타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최근 역사에서 부동산 버블과 관련하여 전세계적으로 충격적 교훈의 사례가 된 건 뭐니뭐니 해도 미국 서브 프라임 사태이다. 집값의 1%만 내도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구조, 2000년대 초저금리 상황에서 넘치는 유동 자산이 신용도가 취약한 서브 프라임 계층에게 까지 대출이 됐다.  이 대출을 받아 대규모로 집에 투자를 하며 생겨난 부동산 버블, 결국 2004년 이자율이 오르자 결국 원금과 이자 등 집값을 갚지 못해 파산에 이르른다. 그 '파산의 도미노'는 158년 전통의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한 금융권으로 이어지고,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까지 흔들었다. 

고스란히 채무자에게 짊어지는 부담, 하지만 문제는 채무자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채무 불이행은  그 지역의 소비 생활을 위축시키고, 이는 주변 산업 도시의 불황으로 이어지면 부메랑처럼 나라전체에 번져나간다. 즉 부채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서브 프라임 사태 이후로 10여 년 캘리포니아 스톡튼 거리에는 여전히 방치된 집들이 남아있고, 상권은 회복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 사태를 겪은 미국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미국 전체의 경기는 좋아졌을 지 몰라도 개인의 고통은 진행중이라고. 

 

 

미래의 빚
그렇다면 빚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 그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지난 10월 27일 서울 청계천에서는 쥬빌리 은행의 10년 이상된 연체 채권 소각 행사가 이루어 졌다. 3개월이 지난 부실 채권은 그 원금의 10%가 안되는 가격으로 추심업체로 넘어가고 그때부터 빚을 갚지 못하는 개인의 지옥같은 고통은 시작된다. 바로 이런 채권, 그 중에서도 10년 이상된 죽은 빚을 탕감해주는 행사. 하지만 빚의 탕감에는 도덕적 논의가 따른다. 

유엔에서는 개도국 등에서 빚을 갚지 못해 노예와 같은 삶을 누리는 일회용 사람들이 있다고 선포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파산'이다. 1962년 법적으로 파산이 명문화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첫 번째 파산자가 등장한 건 IMF 때인 1997년에 이르러서 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파산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법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도덕적 해이, 하지만 빚을 졌어도 아이를 교육시키고 멀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자는 것이 '파산'의 취지이다.

빚을 진 상태와 빚으로 부터 자유로운 심리 상태 사이에 인지적 능력조차 차이가 나는 부담, 다큐는 여기서 역설적으로 빚은 그렇다면 채무자만의 책임인가를 반문한다. 즉, 현재의 신용 평가 제도는 공정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3년전 처음 하는 사업이라 은행권 대출을 받지 못한 채 어렵게 사업을 시작한 사장님, 다행히 사업은 궤도에 올랐지만, 카드 연체가 없는데도 2년 8개월동안 겨우 신용 등급이 한 등급만이 올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기존의 신용 평가 방식, 지금까지 잘 갚았으니 다음에도 잘 갚을 것이라는 전통적 방식은 주부나 사회 초년생, 신생업체 등 정작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각 지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손길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미국에서 13년전 은퇴한 간판 디자이너 채스 페리씨, 아들과 함께 다시 한번 사업에 도전하고자 했지만 그 역시 신생업체라는 조건이 은행 대출의 발목을 잡았다. 채스 페리 씨에게 희망을 제시한 건 대안 금융이었다. 기존의 은행권이 카드 사용 빈도 수 등 구식 알고리즘에 근거하여 신용 평가를 한 것과 달리, SNS를 통한 홍보 등 사업 활동 내용을 '핀테크(금융과 IT의 융합을 통한 금융서비스 및 산업의 변화)'에 근건하여 새롭게 평가받아 사업 자금을 대출 받은 것이다. 

이런 방식은 어떨까? 미국의 클라크슨 대학교에는 리사 프로그램이 있다. 졸업 후 직장을 찾는 시간으로 6개월 동안 학자금 상환을 유예한 후 취업 후 세금 신고서를 제출하면 그때부터 10년간 갚는 방식이다. 그런데 취업한 학생들은 모두 소득의 6.2%를 갚는다. 즉, 많이 버는 학생은 많이, 적게 버는 학생은 적게, 학자금 상환이지만 그 자체가 졸업생 기부 활동이 되며, 빚에서 새로운 소득이 창출되어, 장학금이 만들어 지는 제도이다. 

이런 방식을 우리의 채무 관계에 적응해 보면 어떨까? 금리나 높건 낮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지금의 방식에 채권자가 그 부담을 나누어 져 금리에 따라 채무 비율이 달라진다면? 모두가 100%는 아니지만 조금 더 만족할 수 있는 방법에 다가가는 건 아닐까? 가계 부채의 부담이 사회적, 국가적 부담이 되고 있는 시대, 과연 그 부담은 온전한 것인가? 신용의 사각 지대에 놓은 사람들을  2금융, 사금융으로 내몰고 있는 제도로 부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신용 평가 제도는 무엇일까? 다큐는 모두가 만족하는 빚의 가능성을 열어보이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9. 1. 4. 05:36

과연 올 한 해 가장 화제가 된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세밑의 sbs스폐셜은 그 주제를 2018년의 시작을 떠들썩하게 시작하여, 귀신처럼 사라져 버린 열풍, 암호 화폐, 비트코인 열풍을 추적한다. 

안하면 바보였다. 누구라도 발 빠르게 시작한 사람은 돈을 만졌다는데, 몇 분 만에 일확천금을 벌었다 하고, 그 돈 번 '인증샷'이 빈번하게 올라왔던, 곧 더 이상 우리가 쓰는 지폐나 카드 대신 새로운 금융 시스템과 화폐 질서가 등장할 것이라던 전망이 등장하고, 혹여 나만 그 빠른 물결에 뒤처져있는 건 아닌가 하고 자조적인 생각을 한 게 엊그제 같았는데, 2018년이 저무는 이즈음 그 열풍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마치 '볼드모트'처럼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린 열풍, 그 많던 돈 벌었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큐는 그 '돈 벌었다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젊어 투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문주용 씨, 비트코인 데이 트레이더인 그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낸바 있는 이른바 슈퍼 개미다.  3000만원으로 시작하여 한 때는 2분 만에 4000만원을 벌기도 했던, 그게 아니라도 1억 5천만원을 들여 장비를 갖춰 이른바 '채굴(거래 내용을 암호화한 걸 수많은 수의 조합을 맞춰 풀어 그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얻는 방식이 금을 캐는 방식과 유사하다 하여 붙인 이름)'을 해서 순수익이 1억이 넘게 벌었던, 그랬던 그도 연일 계속되는 하락장에 맥을 못춘다. '채굴'을 위해 갖췄던 장비도 전기세를 감당못해 처분했다. 그도 말한다. 정작 수익을 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대신 돈 잃었다는 사람들만 난무한다고. 

일확천금에의 일장춘몽
2009년 1월 처음 등장한 암호 화폐 비트코인, 그로 부터 10년 만에 2000%나 상승했다. 비트코인이 오르자 다른 코인들도 더불어 들썩였다. 하루에 300에서 3000%까지 상승하며 하룻밤에 수억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인증샷'을 올리자, 대출받아 뛰어든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때 뛰어든 대학생 3인이 있었다. 이성묵, 김동운 등,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다. 주식 시장과 달리 24시간 장이 열리는 암호 화폐 시장, 쉽게 접근이 가능한 그곳에 젊은 층과 초보 투자자들이 열광했다. 중독성이 강한 그 시장,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는 그들은 비트 코인을 '내 손안의 카지노'라 정의내린다. 

그 '내 손안의 카지노'에서 일장춘몽을 꾼 사람이 있다. 보험을 해약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뛰어든 차형민 씨, 일주일만에 다섯 배를 벌고, 4억 가까이 수익을 냈다. 이게 '로또'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2주만에 끝났다. 1억이 759만 원이 되어버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수억을 주무르던 그는 1억의 손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1억을 잃고 은행에서 독촉전화를 받는 지금에서야 자신이 꾼 게 일장춘몽이었음을 실감한다. 

27살의 김민석 씨는 1년을 뼈빠지게 고생하여 7천만원을 벌고, 그 돈을 1년만에 다 날렸다. 돈만 날린 게 아니다. 삶의 의미도 잃었다. 33살의 나민영 씨는 수익이 생길 때마다 현금화하여 시계니. 차니, 카메라니 '소확행'을 즐겼다. 하지만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초조함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외줄타기'하는 기분이라 호소한다. 

 

 

비트코인이 뭐길래? 
지금까지 거래는 '은행'이라는 기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져 왔었다. 이런 중앙 집중 기관 없이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으로 거래 정보를 기록 , 검증, 보관하는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분산 장부' 기술을 '블록 체인;이라 하고, 이 블록 체인에 참여하는 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암호 화폐'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올 한 해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비트 코인'이다. 

비트코인 열풍에 발맞춰 지난 1월 18일 jtbc 뉴스룸에서는 유시민,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을 초빙하여 토론을 벌였고 이 토론 자체가 비트 코인 열풍과 함께 화제가 된 바 있다. 일찌기 유시민 작가는 tvn의 알쓸신잡에서 비트코인 열풍을 17세기 튤립 버블의 21세기 글로벌 버전이라 정의내린바 있다. 실물 경제를 잘 모르는 엔지니어들이 만들어 낸 아이디어에 전 세계 사기꾼들이 다 모여들어 장난을 쳐서 돈을 뺏어먹는 과정에 불과하니 정부가 나서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단정지었다. 

그런 유시민 장관의 의견에 궤를 같이하듯 그로 부터 1년여 12월 15일 정부는 가상 화폐 실명제 추진을 밝히며 시세 조작 자금 세탁 탈세 등 거래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검찰 경찰 금융 당국의 합동 조사를 통해 엄격히 대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인 홍기훈 씨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서 시작된 버블에 불과하다며 유시민 작가의 의견에 동조한다. 이리저리 포장하지만 결국 고위험, 고수익의 고변동성 전자 자산에 대한 투기일 뿐이라고 단정짓는다. 당연히 도박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홍기훈 교수의 의견은 비트 코인 거래를 하는 대형 거래소의 속임수 등의 범법 행위로 증명된 바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대형 거래소는 승인받지 않은 코인을 상장하고 그걸 자신들이 샀다 팔았다 사는 방식으로 가격을 올려간다. 그 상승세에 투자자들이 몰리면 한번에 팔고 사라지는 '먹튀'를 하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개미 투자자들 몫이 되고 만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거래소만 100여개가 넘지만 심사나 허가가 없으며, 규제조차도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른바 '먹튀'는 비일비재하다.

5억만 있으면 만들 수 잇는 거래소, 이렇게 위험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실패했던 사업을 만회하기 위해 뛰어든 이성규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동산의 100배, 1000배를 벌수 있다며 그를 유혹한 건 다른 곳도 아닌 보물섬 인양 해프닝을 벌여 투자금을 모아 '먹튀'했던 신일 그룹이 모태가 된 신일 골드 코인, 얼마되지 않는 투자금에 대번에 감투까지 씌워준 그룹에 이성규씨는 헌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그는 떼인 돈을 어떻게라도 일부라도 받아내기 위해 사라진 코인 업체의 주소를 수소문하여 이리저리 헤매이는 중이다. 이성규씨와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30만원을 출금하는데 50억의 수수료를 떼는 비현실적인 조항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덥석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가상 화폐 시장의 봉이 김선달들은 활개를 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가상 화폐 사업에 감투를 쓰고 오프 라인에서 투자자를 모으는데 앞장서는 이성규 씨 등처럼 자신들이 피해자인 줄도 모르는 채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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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 vs. 사기성 도박
과연 지난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유튜브에서 암호 화폐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항력을 주는 개인)로 활약하는 황규호 씨는 현재의 암호 화폐 시장을 피바다라 정의내린다. 하지만 그는 장기적인 기술의 가능성을 믿는다며 자신의 신념을 접지는 않았다.  

신기술에 대한 믿음과 일확천금의 비현실적인 사기성 도박이라는 두 의견이 팽팽한 상황, 1월의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에게 완패를 당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던 정재승 교수, 하지만 그는 지난 12월 29일 중앙일보 칼럼 '4차 산업 혁명은 어떻게 오는가'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번 펼친다. 

'내년에 전 세계적으로 블록 체인과 암호 화폐에 기반한 생활 체감형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제도적으로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혁신의 열매을 만끽할 기회를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된다. 지금처럼 거래소를 겁박만 하지 말고, 블록 체인 회사들이 혁신에 도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재승 교수도 국민들이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거래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관리 제도와 규정 등 발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데 이견은 없다.  즉 비트코인 등 비정상적인 가상 퐈혜 광풍은 제어하되, 블록 체인 기술은 암호 화폐 뿐만 아니라, 전세계 경제,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중요한 기술이므로 적극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블록 체인 선구자 박창기 씨 역시 회의적인 의견에 99년에 인터넷 버블이나, 2008년 부동산 버블처럼 2018년의 비트코인 버블은 신기술의 통과 의례라는 입장이다. 과도하게 투자되었다가 거품이 꺼지면 그때 비로소 새로운 금융 제도가 만들어 질 꺼라는 낙관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술에 대한 긍정적 접근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린 맹목적 투자와 그로 인한 피해의 '버블'이다. 이에 중앙일보 고성일 기자는 암호 화폐로 인한 부작용이 계속 되풀이 되는 이유를 '비트 코인'처럼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심리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심리'는 어쩌면 바로 한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심리이기도 하다. 전후 똑같이 못먹고 못살던 시절, 그 중 누군가는 더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라, 더 좋은 줄을 잡아서, 더 좋은 껀수를 잡아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부동산 투기를 통해 일궈진 부의 역사, 투자라고 쓰고 투기라고 읽지만, 기꺼이 그 '투기'의 기회를 잡지 못한 게 무능이 되어버린 사회, 그 역사를 보고 배운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는 흙수저를 면치 못할 거 같아서 시작했다는 데이 트레이더의 자조적인 한 마디, 과연 이런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돈밝히는 책읽기>와 같은 돈공부, 마음 다스림을 통해 그 광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8. 12. 31. 12:27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이 지나면 드라마 시청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는 긴장감이 돈다. 마치 황야의 결투를 벌인 두 총잡이의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된 후 누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관람객들처럼, sbs <황후의 품격>과 tvn의 <남자 친구> 중 이번 주 시청률의 승자에 주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캐스팅에서 부터 송혜교에 박보검라는 두 쟁쟁한 스타의 만남으로 화제성에서 당연 압도적이었던 <남자 친구>에 이른바 '막장' 장르의 대가 김순옥 작가와 <리턴> 주동민 피디의 만남으로 대항마를 내세운 sbs의 <황후의 품격>, 과연 '스타캐스팅'과 '스타 작가'의 승부의 귀추가 당연히 궁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불문율에서 이번 수목 대전의 승부도 벗어나지 않았다. 
11월 28일 30분 빠른 방송 시간, 거기에 송혜교, 박보검이라는 두 스타, 그리고 쿠바의 풍광까지 얹으며 첫 회 <남자 친구>는 케이블과 공중파라는 플랫폼의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6.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황후의 품격>을 8.8635로 너끈히 제압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남자 친구>의 승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1월 29일 10.329%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던 <남자 친구>는 그 이후 시청률이 주춤하거나 조금씩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김순옥 작가도 미니 시리즈는 힘든가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며 <황후의 품격>은 12월 12일 단 두 주만에 8.513%의 <남자 친구>를 9.85%로 너끈히 제압하며 수목 대전의 강자로 등극했고, 그리고 12월 20일 13%로 <남자 친구(9.166%)>와 4% 정도의 격차를 벌이며 수목 대전의 넘볼 수 없는 승자가 되었다. 

1위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황후의 품격>의 승리는 주목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황후의 품격>이 파죽지세로 치고 나가서 그렇지, 그간 tvn 드라마들의 기준에서 %꾸준히 8~9%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남자 친구>의 성과를 지레 무시해서는 안된다. 거기에 '시청률 지상주의'의 색안경을 빼고 보면 수목 드라마 중 작품성으로 보자면 mbc 수목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를 따라올 드라마가 있을까? 오피스물의 애청자들을 위한 kbs2의 <죽어도 좋아>는 어떻고. 누가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요일과 목요일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12월 수목 드라마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있다. 물론 그 선택의 기준은 각각 다르다. 

막장의 품격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저는 드라마 작가로서 대단한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거나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안 오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런 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거예요. 제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그 분들에게 삶의 낙이 된다면 제겐 더없는 보람이죠. 위대하고 훌륭한 좋은 작품을 쓰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불행한 누군가가 죽으려고 하다가 ‘이 드라마 내일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 드라마를 통해 슬픔을 잊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왜 막장을 쓰는가에 대한 김순옥 작가의 답이다. 

 

  

그리고 이 김순옥 작가의 말이야 말로 <황후의 품격>을 정확하게 정의내린 글이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 글에 대한 호응처럼, <황후의 품격> 기사 댓글에는 담주가 궁금해서 어떻게 1주일을 보내냐, 심지어 김순옥 작가 당신이 성공했소,  다음 주가 보고 싶어 이번 주를 버틸 것 같소. 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즐비하다.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은 남편과 시댁에게 버림받고 점찍고 복수하던 <아내의 유혹>의 서사적 전통을 잇는다. 거기에 현존하는 황실이라는 배경이 막장 드라마 속 막가파 시댁을 업그레이드했으며, 장나라, 신은경, 신성록, 심지어 아역인 오아린까지 출연진의 호연과 성형 수술로 업그레이드 된 나왕식(최진혁 분)이 오써니(장나라 분)를 <보디가드>의 케빈 코스트너처럼 보호해 주나 싶었는데, 다음 회에 외려 오써니를 함정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듯 내일을 알 수 없는 전개로 시청자를 붙잡아 놓는다. 기존 로코의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예상할 수 있는 기대치를 산산히 무너뜨리는데서 오는 쾌감, 그럼에도 일관된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무엇보다 김순옥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장기이다. 

이런 김순옥 작가의 <황후의 품격>을 사람들은 '막장'이라 칭한다.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의 드라마.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다(다음 사전)'는 막장은 우리나라 주말, 아침 드라마의 주된 소재였다. 그리고 주중 미니 시리즈의 부진으로 고심하던 sbs가 김순옥 작가를 초빙하고, 그에 뒤질세라 kbs2 역시 수목극이 주인공으로 또 다른 막장의 대가 문영남 작가를 초빙한다.

'막장'은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는 질이 낮은 드라마라는 평판을 얻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위기의 주부들> 역시 크게 막장의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화이트 캐슬> 속 가족 관계 역시 '막장'의 장르적 속성을 품고 있다. <남자 친구> 속 차수현(송혜교 분) 주변 관계라고 다를까. 막장의 정의는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게 인기를 끄는 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제도가 가진 모순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시청자들은 가장 '현실적'이라 열광하고 있는 지도. 그러기에 이 '모순'이 노정되는 한 '막장'은 존재할 것이며, 미니 시리즈의 구원 투수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잠자던 연애 세포 자극제 
가끔 배우가 개연성인 드라마가 있다. 주말을 책임지는 현빈과 박신혜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러하고, 수목 드라마 대전에서 일찌감치 앞서갔던 송혜교, 박보검의 <남자 친구>가 그러하다. 

내용이 무슨 문제인가, 그저 아름다운 송혜교가 이쁜 옷을 입고 고운 립스틱을 바르고 나와서 설레이면, 당장 나도 가서 저렇게 단발이라도 잘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그런데 그 송혜교가 보면서 설레이는 대상이, 아줌마같은 단발 머리를 해도 '청포도'처럼 싱그러운 박보검이라니, 가기도 힘든 쿠바의 풍광 아래서  구 시댁과 친정, 전남편, 그리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일에 치여 자신을 돌아보기도 힘들던 차수현을 '전도사'님처럼 김진혁(박보검 분)이 위로해 주더니, 이젠 신입 사원으로 들어와 '라면'먹고 싶단 한 마디에 대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없이 득달같이 라면을 끓여 대령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시간은 3회까지 였을까. 여전히 두 배우를 통한 시선 호강은 여전하지만 <버디 버디>, <예쁜 남자>, <딴따라>까지 일관되게 '개연성'이 부족했던 그래서 몰입하기엔 여백이 많은 유영아의 극본과 쿠바를 떠나오며 풍광과 함께 감정의 해석조차도 두고 와버린 듯한 박신우의 어쩐지 감정 이입이 아쉬운 연출은 자꾸 시청자들에게 그저 보고는 있지만 어쩐지 아쉬운 드라마로 <남자 친구>를 만들어 버린다. 

 

  

한 편의 문학 작품 
그것도 사건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스릴러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천착하는 심리서같은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문학 작품처럼 서정주의 '문둥이', '입맞춤'은 천상병의 '무명전사', '내가 구원하지 못할 너'의 시구로 이어지며 드라마 속 아동 학대로 인한 죽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 문구로 상징되는 죽음, 그 실마리를 쫓아서 뛰어든 주인공 차우경(김선아 분), 강지헌(이이경 분) 등, 하지만 드라마는 과연 이 모든 사건의 배후인 붉은 울음이 누구인가, 차우경의 눈 앞에 자꾸 나타나서 사건을 인도하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누구인가를 발 빠르게 추적하는 대신, 사건 속에 주인공들이 함몰되며, 그 사건 속에서 헤매이는 주인공들을 통해, 과연 우리 사회 벌어지는 많은 아동 학대 사건에서 당신들은, 즉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어느 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지, 폐부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건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소외된 사람들, 그 소외를 방조하는 사회,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드라마, 당연히 요즘처럼 'LTE'급 속도가 아니면 못견뎌하는 세상에서 <붉은 달 푸른 해>의 호흡을 따라가기에 애청자조차 버겁다. 

하지만 그러기에 <붉은 달 푸른 해>는 그저 '스릴러'의 경지를 넘어선다. 일찌기 <늪(2006)> <케세라 세라(2007)>,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2015)> 등 가물에 콩 나듯 시청자를 찾아오는 도현정 작가이며, 늘 '시청률'과는 인연이 없는, 아니 마치 작가 스스로 시청률을 저만치 밀어내는 듯한 작품으로,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작가의 작품은 첫 작품 단편 <늪>이래 늘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아마도 시청률면에서는 끝까지 고전을 면치 못할 테지만 지금의 수목 드라마 중 좋은 드라마로 가장 오래 기억될 작품은 <붉은 달 푸른 해>일 것이다. 

 

  

오피스물이 스테디셀러? 
kbs2의 <죽어도 좋아>는 kbs2의 장기 장르인 <김과장(2017)>, <저글러스(2017) 등 오피스 물들의 연장 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물론 내용과 설정은 다르다. 매번 죽음의 기로에 놓인 백진상의 '환타지'적인 설정은 기존 오피스물과 다른 차별성으로 이 드라마를 알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오 갑의 mk치킨의 우스꽝스런 중역진이라던가, 갑질로 비호감의 캐릭터로 시작하는 남자 주인공은 색채만 다를 뿐 <저글러스>와 <김과장>의 여러 요소를 모아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기에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어제 본듯 익숙한 강지환은 무엇을 해도 차태현인 차태현의 연기를 보는 듯하다. <저글러스>에 이어 또 다시 상사 갱생의 주역이 되어 돌아온 백진희는 안그래도 익숙한 오피스물 <죽어도 좋아>를 더욱 진부하게 만든다. 분명 드라마가 보면 재미없는 것도 아니고,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재방송을 보는 듯한 <죽어도 좋아>를 찾아볼 시청자들은 많지 않다. 

by meditator 2018. 12. 26. 19:41

조선업이 휘청거리던 시절, 조선업의 메카 거제시에 취재하러 내려갔던 이승문 피디, 우연히 지도를 보고 거제 여상을 찾았고, 그곳에서 '땐뽀걸즈'라는 동아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아리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빠져 카메라를 돌리기 시작한 지 어언 1년, 그렇게 다큐 <땐뽀걸즈>가 탄생되었다. 

 

 

'완뚜쓰리뽀, 완뚜쓰리뽀', 자이브와 차차차를 추는 열 여덟 소녀들의 기록은 <KBS스페셜>을 통해 방영되었고, 이후 영화 버전으로 개봉하여 2017 박찬욱 감독이 뽑은 올해의 독립 영화, 2017 푸른 미디어 청소년 부문 상, 그리고 2018년 54회 백상 예술 대상 TV교양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작품이 8부작 드라마로 각색되어 12월 3일부터 방영되었다. 

만년 9등급, 시험 시간엔 올5로 찍고 풀잠, 학교에서 요구하는 공부가, 아니 학교 생활이라는게 자신의 의미와 목적이 아닌 지 한참인 학생들, 심지어 이미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가버려 알바하다 잠을 자는 곳이 되어버린 아이, 부모라고 이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런 아이들 앞에 춤을 들고 이규호 선생님이 나타났다. 밥을 먹여주고, 심지어 숙취 음료까지 챙겨주며 살뜰히 아이들을 챙겨주며 '춤바람'을 독려하는 선생님, 이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되어 찾아온 것이다. 

 

 

조선소가 있는 거제로 다시 돌아간 드라마
이승문 피디가 그리고 싶었던 조선소의 현실은 드라마 속 주인공 시은(박세완 분)이를 통해 그려진다. 시은이에겐 중학교 친구가 없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끝내 아버지가 과로로 실족사 하셨다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아버지를 '자살'이라며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재판을 하며 엄마 자신도 해고해 버린 회사의 하청 물량 팀으로 버티는 엄마, 자신의 방에 온통 영화 포스터로 도배한 꿈많은 소녀 시은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려워진 형편에 여상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 취업하라는 엄마와 갈등 중이다. 

어떻게든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에 동아리 수상 경력이 대학 지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친한, 아니 여상에 편하게 다니기 위해 친한 척하는 친구들을 꼬드겨 댄스 스포츠 대회를 앞둔 땐뽀걸즈 동아리에 가입한다. 시은이의 친구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꼬시는 시은이에게 넘어간 척 했지만, 한때 유도 유망주였지만 부상 후 '루저'가 되어버린 이예지(신도현 분)도, 자칭 여신이라지만 성형 수술을 고민하며 학교 인기 동아리인 힙합반을 기웃대다 타이밍을 놓쳐버린 양나영(주해영 분)도 땐뽀가 좋아서 동아리에 든 건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 학교에서 방출될 위기에 놓인 시은이 옆자리지만 말 한번 섞기 무서운 쎈캐 박혜진(이주영 분)이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합류했고, 이 동아리를 견제하기 위해 보내진 일진 꼬붕 김도연(이유미 분)과 심영지(김수현 분)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땐뽀반에 인원을 채우기 위해 합류됐다. 

 

 

하필이면 왜 땐뽀걸즈?
최근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가 <화이트 캐슬>이듯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을 다루는 주된 이야기는 '입시'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학교에서 상당수의 학생들이 실업계로 진학하는 게 현실인 세상, 실업계가 아니더라도 일반고를 가더라도 이미 1학년 때부터 시험 시간을 찍고 잠을 자는 시간이 되어버린 학생들이 꽤 되는 세상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는 어쩌면 소수의 선택받은 대학 진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제에만 골몰해 있다. 그런 현실에서 <땐뽀걸즈>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빛을 잃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모처럼 '공영 방송'의 수신료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얘들이 공부를 안해서 못하는 거지,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업 시간에 자는 건 관심이 없어서 자는 거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탈렌트가 오면 자겠습니까. 저는 춤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춤을 매개로 아이들이랑 친해졌어요. 댄스를 가르쳐서 선수 만들고 대학 보내는 거 전혀 생각 안해요.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소속감을 가지고 즐겁게 다니기를 원합니다. -이규호 선생님 


위의 이규호 선생님의 생각은 드라마 속 이규호 선생님의 행동으로 그래도 옮겨진다. 가정이 방치한, 학교도 더불어 방치한 부서져 버린 울타리를 넘나들던 아이들은 '땐뽀걸즈'를 통해 저마다 자신의 문제를 씨름하겨 각자의 성장통을 이겨나간다. 

친구들까지 '포섭'하여 동아리에 들어왔지만 그 친구들을 한번도 진짜 친구라 생각한 적이 없는 시은이. 자신이 가고 싶었던 인문계, 그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으로만 도는 자기 중심적 세계에 빠져있던 시은이는 땐뽀 반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가정사에 얽힌 사건에 끼어들며 혹독한 통과 의례를 겪는다. 

 

 

드라마는 다큐와 다르게 남자 아이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어린 시절 시은이와 함깨 자랐던 아이, 하지만 이제는 훌쩍 자라 시은이를 '연모'하게 된 권승찬(장동윤 분), 하지만 승찬은 그저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아니다. 시은이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한때는 시은이 아버지를 형이라 불렀던 조선소 인사담당 사무직, 권동석이 바로 승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선소 노조 쟁의와 관련하여 생긴 비극적 사건에 결부된 두 집안의 승찬과 시은, 이 두 사람은 정리 해고가 난무하는 위기의 조선업이 낳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드라마는 그렇게 풋사랑조차 현실 속에 그려넣고 그걸 각자 성장통의 매개로 삼는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한때는 잘 나가는 유망주였지만 사고를 핑계로 꿈에서 도망쳤던 예지의 속깊이 숨겨놓은 슬픔도, 일찌기 울타리가 없었던 가정에서 자라, 학교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는 혜진의 의지가지 없는 고독도, 술만 마시는 아버지의, 어린 동생들과 힘겹게 안되는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그늘 속에서 버티는 도연이와 영지의 무게도 땐뽀걸즈의 울타리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꿈이 이미 정해진 여상이라는 공간, 저마다 버거운 가정 환경, 거제라는 꿈이 없어져 버린 듯한 외딴 도시, 그럼에도 그곳에서도 여전히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 꿈은 누군가에겐 영화이고, 무용이고, 그리고 대학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포기하지 않는 일상이며 생활이기도, 혹은 막다른 골목에서 애써 한 발자국 물러섬이라도. 그들의 선택이 누군가는 대학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취업이라도, 혹은 누군가에겐 그저 나쁜 길로 가지 않는 것이라도,  그 선택의 기로에서 그들 각자는 저마다의 성장통을 견녀내고 그 자리에 섰다고 드라마는 당당하게 '땐뽀걸즈'들을 정의내린다. 빛나지 않아도 빛났던 청춘의 기록이다. 

 

 

'입시'나 '학교 비리', 혹은 '로맨스'가 아니고서는 말한 적이 없는 어쩌면 진짜 이 시대 아이들의 이야기와 각자가 짊어진 성장의 무게에 대해, 그리고 무겁지만 기꺼이 짊어지고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땐뽀걸즈'와 이규호 선생님의 자리에 대해 결코 길지 않은 8부의 시간을 통해 다큐와는 또 다른 대학 영화과 입시 면접에서 시은이의 말처럼 가짜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8부의 시간만큼은 진짜배기였던 감동을 전한다.

물론 시청률은 2%를 오르내리며 고전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거침없이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로 이 드라마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듯싶다. 그리고 시청률이 비록 낮더라도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해내기 위해 2019년에도 KBS가 가야 할 방향이야말로 바로 <땐뽀걸즈>의 길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8. 12. 26. 05:25

kbs2의 단막극의 시리즈는 유구하다. 1984년 <드라마 게임(~1997)>을 시작으로 <테마 드라마(1997)>, <tv문학관(198~2011)>, <금요극장(1987)>, 일요베스트(199~2000)>, <드라마 시티(2000~ 2008)을 경과하여 2010년 <드라마 스페셜>로 정착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말이 정착이지 '시청률 지상주의'의 tv 시장에서 일부 단막극 애청자들만의 선택을 받는 <드라마 스페셜>의 운명은 애처로웠다. 토요일 밤과 일요일 밤 늦은 시간을 전전했으며, '연작'의 모색을 거쳐, 2014년, 2015년에는 상반기, 하반기로 나뉘어  27편, 15편이 방영되었고, 2016년부터 올 해 까지 해마다 10편의 작품들이 <드라마 스페셜>의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그러나 '애처로운 운명'에 저항하는 드라마 스페셜의 방식은 '도전'이었다. 2010년 <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 <위대한 계춘빈>, 2011년 <영덕 우먼스 씨름단>, <터미널>, 2012년 <환향-쥐불놀이>, <칼잡이 이발사>, 2013년 <마귀>, <엄마의 섬>, 2014년 <들었다 놨다>, <간서치 열전>, 2015년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붉은 달>, 2016년 <빨간 선생님>, <전설의 셔틀>, 2017년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강덕순 애정변천사> 등 낮은 시청률이 무색하게 장편 혹은 미니 시리즈에서 시도할 수 없었던 드라마의 주제와 형식, 서사 등을 다루면서 kbs2의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는 드라마는 평가를 받으며 몇 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명작들을 남겼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2018년 <드라마 스페셜>은 아쉽다. 

 

   

  

드라마 스페셜의 경쟁작은 '웹드'?
올 한 해 잔잔하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웹드'가 인기를 끌었다. tv가 중장년층이 주고객이 된 올드 미디어가 되어가는 반면 바쁜 일상의 틈틈이 즐길 수 있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젊은 층들이 향유하는 주력 매체가 되어가면서 '드라마'의 유통 방식에 변화를 모색한 것이 웹드라마이다. 기존 드라마와 달리 15분에서 30분 정도의 짧은 분량의 이들 웹드라마들은 네이버 등의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활발히 소비되어가며 <퐁당퐁당 love>처럼 공중파 tv로 역진출하는 성공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젊은 층이 주향유층인 만큼 이들 드라마는 대부분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연애와 사회 생활 속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하여,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담아내며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이미 <간서치 열전>을 웹드라마의 형식으로 방영한 바 있는 <드라마스페셜>은 2018년 시리즈에서는 젊은 층을 주 타깃층으로 설정했는지 첫 작품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에서 부터 <닿을 듯 말듯>까지 총 10편의 이야기 모두 젊은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심지어 <엄마의 세 번 째 결혼>처럼 모녀간의 갈등조차도 그 촛점을 딸과 딸이 도발한 연애 사건을 극의 중심으로 끌어오며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당연히 2018년 시리즈에서는 사도 세자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붉은 달>이나 파발꾼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귀>같은 '새로운 시각의 사극'의 형식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스릴러의 형식으로 해체된 가족 관계를 다룬 <엄마의 섬>이나 노인 느와르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 지역 정치 장기판의 졸이 되어버린 소시민의 해프닝을 다룬<서경시 체육회 구조조정 스토리>  같은 신선한 소재와 형식의 이야기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kbs2 드라마 부진, 그 원인은?
올 한 해 kbs2의 드라마들은 부진했다. 하지만 그 '부진'의 이유를 그저 시청률의 면에서만 질타하는 건 결과론적이다. 시청률은 부진했지만 호러와 로코의 조합을 시도했던 <러블리 호러블리>나, 귀신이 된 탐정의 수사극 <오늘의 탐정>, 하우스 헬퍼를 매개로 한 인생 정리인 <당신의 하우스 헬퍼>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시도조차 묻혀서는 안될 일이다. 시청률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평가한다면 최근 미니 시리즈로 귀환하고 있는 김순옥, 문영남 등 이른바 '막장' 장르 등이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비슷한 시기에 출격했음에도 우리의 토속 신앙과 엑소시즘의 콜라보인 ocn의 장르물 <손 the guest>가 올해의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는 것과 달리, <러블리 호러블리>나 <오늘의 탐정> 등이 심지어 출연진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시도했던 '장르'적 특성이나 주제 의식을 스스로 휘발한 채 쓸쓸히 퇴장할 수 밖에 없었던 어설프고 안이한  완성도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어설픈 완성도는 <드라마 스페셜> 시리즈에서도 이어지며 2018 kbs2 드라마 부진의 특성이 되고만다. 

 

   

  
2017년 30회 tv 드라마 단막극 공모전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가 열어제친 서막은 산뜻했다. 
수능 출제 의원으로 연수원에 입소한 '도도혜(전소민 분)'가 '감금'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첫사랑과 전남편과 엮이며 다시 한번 '흑역사'를 재연하는 기발한 설정의 '로코'를 선보였다. 올 한 해 드라마 스페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이 된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황승기 연출, 배수영 극본)>, 하지만 대중적인 만큼 솔직하고 발랄하다 못해 때론 지나친 도도혜의 캐릭터나 전남편, 첫사랑의 캐릭터는  수능 출제 연수원이라는 배경의 신선함과 달리 전형성을 벗어나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갸웃해지는 지점을 남긴다.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나, 전개, 연기 모든 면에서 무람없는 작품이었지만 과연 공모전 최우수라는 기준에서 보면 평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특별하게 단점이 두드러지지않는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와 달리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방관'하는 현대인들의 딜레마를 다룬  <잊혀진 계절(김민태 연출, 김성준 극본)>이나, 자살 문제를 다룬 <도피자들(유영은 연출, 백소연 극본)>의 경우는 작품이 다루는 주제 의식에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주제는 무겁지만 과연 이 주제를 한 시간 여의 단막극을 통해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했는가, 외려 그 '주제' 의식이 역설적으로 범죄나, 자살을 합리화하거나 방조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건 아닌가 아쉬움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일드 정도는 낯설지 않은 풍토에서 어디선가 본듯한 구성이라는 후일담을 피해갈 수 없다. 

 

   

  

또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시대적 공감을 얻으려 했던 <너무 한 낮의 연애(유영은 연출, 김금희 극본)>는 이미 김금희 작가의 소설로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에, 최강희의 출연 등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남녀간의 이별이라기엔 무지하고 비겁해서 아팠던 19년이라는 시간의 간극, 그리고 여전한 현실에 대한 공감을 한 시간여의 영상미로 설득해 내었는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유려한 영상미, 그러나 
<참치와 돌고래(송민엽 연출, 이정연 극본)>나, <닿을 듯 말듯(황승기 연출, 배수연 극본)>은 수영과 컬링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남녀 주인공을 엮었다는 점에서 신선했지만, 과연 각 종목을 '소재' 이상으로 극에 어울려 냈는가에 대해서는 안타깝다. 특히 <닿을 듯 말듯>은 여주인공의 청력 이상을 과거 아버지에 대한 강제 진압에 역시나 차출된 처지인 전경 출신의 선배에게 돌리는 방식이나 그 책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안이한 화해는  과거사라는 묵직한 해원에 대한 해법으로 설득력을 가졌는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남녀 사이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이토록 오랜 이별(송민엽 극본, 김주희 연출>은 도돌이표가 반복되는 돌림 노래를 보듯 느슨했고 <너와 나의 유효기간(김민태 연출, 정미희 김민태 연출)>은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90년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해 보였다. 또한 모녀 사이의 관계를 다룬 <엄마의 세 번 째 결혼(김영진 연출, 정미희 극본)>은 김영진 연출의 은퇴작이라는 기념비적 작품이었지만 시한부의 환자로 결혼을 통해 한 몫 챙겨 딸에게 주겠다는 엄마의 이기적인 사랑과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결혼할 아저씨의 아들에 대한 딸의 무책임한 도발을 그저 모녀 간의 해프닝과 화해로 퉁쳐 버리기엔 사안이 녹록치 않다. 

kbs2 드라마의 장기 중 하나인 오피스물인 <미스 김의 미스터리>는 산업 스파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다루고자 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김과장>, <저글러스>에서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방식의 답습이 아닌가라는 의문만을 남겼다. 이런 상투적 접근은 결국 최근 역시나 신선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죽어도 좋아>까지 이어지며 장기가 함정이 되어버리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그럼에도 2018 드라마 스페셜 10편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영상미이다. 하지만 거듭된 영상의 미학이 주제의 천착과 구성의 아쉬움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영상'만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안이함'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게 된다. 또한 필요 이상의 필터링된 뿌연 화면에 대한 피로감까지 등장하며 최근 <땐뽀걸즈>에서 제기되고 있듯 과연 필요한 영상적 구현인가라는 의문까지 등장하게 된다. 

물론 살펴본 2018 드라마 스페셜은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냈지만 다양한 주제와 구성 방식을 배치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 드라마 스페셜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담하다. 그리고 이 냉담함은 올 한 해 kbs2 미니 시리즈에 대한 시청자의 냉담함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주제에의 접근, 아름다운 영상미,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의도와 기술도, 그것이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시청자를 설득해 낼 수 있는 기승전결의 개연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해 내기엔 미흡하다. 과연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2019년의 드라마 스페셜의 존립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 스페셜의 운명이 걱정되는 2018년이다. 

by meditator 2018. 12. 25. 12:30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언니는 벌써 몇 년 전부터 딸내미 시집 보낼 걱정을 만날 때마다 한다. 심지어 서른을 넘어서면 결혼 정보 회사에 등록할 테니 알아서하라고 엄포까지 놓았단다. 하지만 웬걸 언니가 목을 매는 그 딸내미는 엄마의 마음이 무색하게 당장 결혼 생각이 없단다. 심지어 사촌 동생이 해주겠다는 소개팅도 단칼에 자른다. 아직 남자 만날 생각이 없단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등등등 조카의 눈이 높아서일까? 엄마랑 동생이랑 시간 날때마다 여행 다니고 맛집 찾아다니는 것으로 만족해서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이른바 '결혼 적령기'라는 어른 세대가 만들어 놓은 그 '프레임'에 자신을 꿰어 맞추는 것이 싫어서가 아닐까? 그래서일까? 조카처럼 '비타협적 저항'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작정하고 '결혼'을 안하겠다고 한다. '비혼주의자'이다. 

 

 

얼마전 동창 모임, 이제는 늙수구레한 나이에 아이들 결혼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결혼 하기 힘든 세상의 이야기가 오가다 요즘 결혼하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화두에 올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우리 집 얘기다. 하지만 아이들을 애써 키웠고,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친구는 세상에 태어나서 아이를 기르는 일만큼 가치있고 보람있고, 행복한 일이 없다며 자신은 아이들에게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라고 하겠다고 한다. 설왕설래하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우습다. 우리 아이들의 삶인데, 마치 우리들의 인생인 것 마냥 진지하게 서로의 입장을 내세웠던 것이. 그렇다 어쩌면 우리 사회 '비혼'이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우리처럼 아이들의 삶인데, 그 삶에 우리가 감놔라 배놔라 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빠의 오지랖, 딸의 비혼 선언, 그 세대적 간극
다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가장으로서 온갖 고생을 겪으며 번듯하게 삼남매를 키워낸 오현춘 씨(50), 어려운 인생 고비고비에서도 가족을 놓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게 그의 자부심이듯 당연히 '결혼'을 인생의 통과 의례로 여긴다. 그런 그이기에 이제 26살, 결혼 적령기가 된 큰 딸에 대한 고민이 크다. 하지만 웬걸 오화진씨는 그런 아빠의 요구에 '나 결혼 안해'란다. 청천벽력이다. 

화진 씨는 자신은 비혼주의자라 선언한다. 물론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났지만, 자신이 자라오면서 본 어머니의 삶은 늘 가사 일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건축 구조사로서 자신의 일에서 경력 단절을 가지고 싶지 않은 화진씨, 어머니가 일궈낸 가정을 꾸려나갈 자신이 없다. 아이는 입양 등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없지만 남편과 시댁이 그녀의 삶에 들어올 여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다. 

그런데 그런 화진씨의 생각에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동조한다. 사랑에 빠져서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서두른 결혼, 남편은 이혼이 여사인 세상에 이혼하지 않고 이날까지 살아온 것이 자랑이지만, 화진씨의 어머니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결혼하지 않을 꺼라 '후회'의 념을 꺼낸다. 

 

 
비혼 권하는 사회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이 그 이유로 든 건 크게 두 가지, 우리 사회가 경력 단절 여성에게 가하는 부당한 대우를 감수해가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는 것과, 또 하나,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100 명의 인간 관계를 감수해야 하듯,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자신이 받아들여 할 '시댁' 등의 새로운 인간 관계를 굳이 감당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라고 다를까. 분양을 받은 아파트에 개를 몇 마리 더 들여놓을 지언정 여자 사람을 들여놓을 생각은 없다는 남성은, 이제 결혼 적령기를 맞은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그런 결혼식 자리마다 넌 언제 결혼하냐는 친구들의 인사가 번거롭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막상 결혼을 한 친구들, 주변 남성들이 그의 눈에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과 아이의 생산이 '애국'의 문제로까지 격화되며 '세대 갈등'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이 즈음, 어른들은 태연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도리'라 하지만 젊은이들은 단호하다. 그저 결혼은 삶의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만을 '정상'으로 만들어 놓은 어른들이 문제라고.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는 외적으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개인적인 결합으로 정의내려지지만, 막상 그 과정에 들어서면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으로 여겨진다. 그러기에 결혼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내가 전혀 새로운 한 집안의 조직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전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2018년의 '현대'를 살지만, 사회의 기본 단위는 여전히 '가정', 심지어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발언권이 고양되었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 제도의 근간은 공고하다. 그러기에 엄마들은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너는 이렇게 살 필요가 없다 하고, 딸들은, 아들들은 엄마처럼, 아빠처럼 살 자신이, 아니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거기에 결혼 비용이 '2억'이니 하는 세태에, 한 가정을 이루는 데 드는 '비용'이란 측면에서 젊은이들의 경제적 독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은 더더욱 결혼이란 제도를 버겁게 만든다.  제 아무리 독립적으로 살고자 하지만 이미 출발부터 부모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시작하는 결혼 생활에서 과연 얼마나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할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 지자체마다 아이를 낳으면 레이스를 벌이듯 아이를 낳으면 돈을 얼마를 주겠다고 하지만, 당장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의 하소연은 나아질 길이 없는 사회, 하나는 겨우 낳지만 둘을 낳으면 미친 짓이라는 워킹 맘의 하소연이 울리는 세상에서 과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무모한 선택을 하는 이들이 해마다 줄어드는 건 당연지사가 되는데, 그런 학습 효과를 겪은 젊은이들이 굳이 그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비혼, 존중받아야 할 권리 
그러저러한 이유로 결혼을 굳이 선택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삶의 하나의 선택지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결혼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을 '비정상'으로 낮잡아 보지 말아 달라 요구한다. 인간의 삶을 동물의 번식과 동일시하며 가임 연령 내의 결혼을 안하기라도 하면 금단의 선이라도 넘은 듯이 여기지 말아달라 한다. 

결국 '비혼주의'는 어른 세대가 일궈오고 가꿔왔던 '가족 신화'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과연 한국 사회 내에 안전판이자, 유일무이한 보호막이었던 '가족'이란 제도가 오늘날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거기에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정상적이라 쓰고, 가부장적 가족 제도라 읽어지는 그 '가족' 제도에 대한 반기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면 또 다른 집안에 강제적으로 편입되어야 하는 그 공동체적 삶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출산의 숫자만을 고민하는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이 내놓은 답안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획일적 삶'만이 정답이 되어온 대한민국이란 체제에 대한 거부이다. 

그러기에 왜 결혼을 안하냐고 다그치기 이전에, 어른 세대가 만들어 놓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성하고 개선하는 것이 먼저가 될 것이다. 애국 운운하며 결혼은 천부적 권리며 의무이며 행복이라고 해봤자, 개풀 뜯어 먹는 소리 취급만 받을 뿐이다. 

지구 인구가 72억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 세기 안에 40억이 더 늘어날 것을 전망하고 있다. 과연 지구는 이런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까? 국제 생태발자국 네트워크에 따르면 프랑스 인 정도의 삶을 유지하며 살려면 30억 명이 적정 인구 수준이라 한다. 미국인이 수준 정도는 40억 명,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려면 22억 정도란다. 그렇게 지구 포화, 혹은 폭발이란 측면에서 보면 어쩌면 오늘날 '비혼주의자'들은 인간의 숙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저 '하나 낳아 잘 기르자'와 '셋이라서 행복해요' 사이를 오가는 정책의 변덕이 문제일 뿐. 

by meditator 2018. 12. 24. 13:32

하나의 드라마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때 주목받는 건 주로 주연배우들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잘 될 수록 이른바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라는 후일담이 전해지듯, 몇 달의 짧은 시간 동안 잠을 줄여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해 가는 '특공작전'처럼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협업'의 시스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기꺼이 주연배우들의 꽃받침이 되어 그들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에 매진하는 조연배우들이야말로 어쩌면 드라마의 진짜 실력자일 수도. 2018년 수많은 드라마들이 명멸하고, 그 속에서 스타들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 스타들만큼 올 한 해 우리가 드라마를 만끽하도록 해준 이들이 있으니 바로 누군가의 엄마, 아내, 유모로 등장했던 '그녀들'이다. 

 

 

선과 악, 그 경계가 자유로운  - 김혜은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에서 주인공의 엄마 차매화로 출연중인 김혜은, 커다란 덩치의 아들을 둔 엄마답지 않게(?) '모델'같은 외모와 몸매의 '신세대 엄마'이다. 여주인공의 '이쁘다'는 말 한 마디에 냉랭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이 차매화 엄마는 자신이 어쩌지못하는 아들 앞에서 '너같은 애를 누가 좋아하겠냐'며 이율배반적인 모성을 토해 놓는다. '허당'과 아들에게 다하지 못한 모정의 안타까움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성, 다시 한번 김혜은이 빛난다. 

올 한 해 김혜은은 분주했다. <라디오 로맨스>로 부터 시작하여, <너도 인간이니?>, <미스터 선샤인>, <손 the guest>,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남자 친구>까지 '열일'중이다. 

그런 가운데 김혜은의 존재를 부각시킨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미스터 선샤인>과 <손 the guest>이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어린 유진의 부모님을 죽인 양반집 며느리였던 그녀는 이후 조선 최대 갑부의 안주인이자 김희성의 모친 강호선으로 등장한다. 유진의 엄마가 죽어가며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들이댔던 비녀의 흉터를 영원히 목에 간직한 호선은 그 흉터만큼 묵은 마음의 부채를 지닌다. 하지만 그 부채만큼 깊은 것이 아들 희성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 이 '부채감'과 '모성'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 하던 호선, 화려하게 차려입은 외양과 달리, 아들 앞에서는 혼비백산하는 마음 약한, 그리고 유진 앞에서 한없는 죄책감을 숨길 수 없는 이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화려한 외모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거 같은 큰 눈의 김혜은이 설득해 낸다. 

하지만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와 <미스터 선샤인>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모성의 딜레마를 설득해 내던 김혜은이 <손 the guest>로 오면 돌변한다. 등장부터 당연히 박일도의 제물이려니 했던 국회의원 박홍주, 이미 젊은 시절 가족 집안 재단 학교의 선생으로 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력'이 의심되는 그녀는 지역구 시민들 앞에서 한껏 자애로운 미소를 띤 것과 달리,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닥치는 터져나오는 분노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시청자들은 또 다른 '박일도'를 떠올리게 된다.

연민에 못이겨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던 엄마에서 핏발이 서린 눈빛으로 악에 치받혀 자신을 거스른 사람을 때려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악마의 핏줄까지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김혜은이란 배우는 각인되었다.  

 

 
모성의 여러 얼굴- 김선영
우리에게 김선영이란 배우가 '엄마'로 처음 등장한 건 아무래도 <응답하라 1988>의 선우 엄마일 터이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 뽀글머리 파마에 동네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천상 아줌마이지만, 아빠없이 두 아이 선우와 진주를 키우는 가정사에, 택이 아버지와의 순애보까지 파노라마와도 같은 인생사의 그곳에 김선영 배우가 있었다. 

하지만 김선영 배우를 그저 '엄마' 역으로만 한정하는 건 아쉽다. 2016년작 <원티드>에서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화장기 없는 얼굴의 프로파일러로 등장하는가 하면, 같은 해 <쇼핑왕 루이>에서는 부산 쌍도끼 출신의 집사로 냉철과 허당의 썸녀가 되기도 하였고, 2017년 <파수꾼>에서는 엄마 형사로서의 모성과 경찰로서의 사명감 앞에서 갈등하면서도 여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인 포지션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선영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역시 '엄마'일 때이다. 하지만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가 아니다.  2017년작 <란제리 소녀 시대>에서는 <응답하라 1988>과 같은 80년대의 엄마였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의 바람과 차별받는 아들과 딸, 그리고 메리야스 공장 식솔까지 품어내는 여장부이면서도 여자로서의 아픔을 삼켜내는 또 다른 80년대의 어머니 상을 재연해 냈다. 또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나, <은주의 방>에서는 언뜻 보기엔 억척스런 엄마이지만  88만원 세대로서 꿈을 찾아 고민하는 딸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분한다.

그리고 이제 <땐뽀걸즈>에서는 투박한 작업복의 엄마로 돌아왔다.  조선소 용접공이었지만 정리 해고 당하고 남편 없이 두 딸을 키우는 가장으로 '하청 물량팀'으로 자신을 자른 회사에 가서 수모를 감수하며 일하는 엄마, 바람같은 딸을 지키는 그녀의 방식은 작업복처럼 투박하지만, 어떻게든 학교의, 가정의 품에서 지켜내려는 그녀의 시선은 딸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자신때문에 다시 한번 해고 위기에 몰린 동료들을 위해서는 무릎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의리'의 엄마, 이 거칠고 정깊은 엄마 김선영이 청춘 드라마의 중심을 잡으며 시청자의 마음에 연민어린 감동을 전한다. 

 

 

듬직한 어른- 이정은
연극과 영화에서 이미 중견이었던 이정은 배우가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첫 작품은 아마도 <오 나의 귀신님>일 것이다. '서빙고 보살'로 등장한 이정은은 생활형 점쟁이로 고객과의 만남이었던 선우의 엄마(신은경 분)와 코믹스런 캐미로 극의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예의 신기로 나봉선과 신순애의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하며 시선을 끌었다. 

그 이후 2015년  <송곳>에서 푸르미 마트 야채 청과 직원으로 주인공의 든든한 노조 동지 김정미였다가, <리멤버>에서 역시 주인공들이 만든 변두리 로펌의 듬직한 사무장이었으며, 2016년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남편을 잃고도 여전히 112종합 상황실을 지키는 여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월계수 양복점>의 공방을 지키던 금촌댁이라고 달랐을까. <도둑놈 도둑님>의 쿵푸 달인이던 권정희도, <쌈, 마이웨이>의 설희 엄마 금복도, 모두 믿음직스런 이정은의 변신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든든했던 이정은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엄마가 아닌, <미스터 선샤인>의 유모 함안댁을 통해서이다. 핏덩이로 '배달'된 애기씨, 그 애기씨 고애신을 품어 키운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유모 함안댁, 하지만 함안댁은 그저 유모가 아니었다. 의병을 하다 목숨을 잃은 부모님의 뒤를 따라 기꺼이 의병 활동에 헌신한 애기씨의 숨은 동지였고, 보호자였으며, 끝내 그녀를 지킨 '은인'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손 한번 못잡은 행랑아범과의 로맨스는 웃다가 설레이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그 모든 '씬'이 설득되었던 건 이정은이라는 배우의 내공이었다. 그녀의 눈빛 하나로 송곳의 노조도, 의병의 신념도 설명시켜내고, 그녀의 어수룩한 표정 하나로 시청자를 해제시켰으며, 넉넉한 품새로 품어주는가 하면,  그녀가 입맛다셨던 짜장면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둔갑시켜버린 그 순간순간에 이정은이 있었다. 

 

 

미워도 밉지 않은 - 염혜란
미웠다. <도깨비>의 어떤 악역보다도 미움을 받았다. 동생이 남긴 유일한 딸, 하지만 이모인 지연숙에게는 그 조카가 그저 보험금으로 보인다. 남편보다도, 딸보다도 돈이 좋은 여자, 그래서 처절하게 몰락해가는 그 '이모'만큼 실감나게 우리 시대의 속물의 끝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미움의 원횽은 끝내 이승에서 그 '벌'을 톡톡히 받으며 카타르시스의 산증인이 되었다. 그렇게 지연숙을 실감나게 밉게 그려내며 염혜란은 시청자 곁으로 훌쩍 다가왔다. 

하지만 염혜란이란 이름보다 먼저, 작품 속의 캐릭터로 우리는 그녀를 이미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6년 <디어 마이 프렌드>에서 결혼 생활 내내 골병이 들도록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정아 이모네 애증의 큰 딸로 마음을 후비며 등장했었다. <7일의 왕비>에서는 맛갈스런 사투리와 그 보다 더 맛갈스런 연기의 유모로 '신스틸러'임을 증명해 내고, <라이브>에서는 우리 옆집에 살 것 같은 '아들 바보' 엄마로 분한다. 그리고 한양이 만큼 잊을 수 없었던, 돈버느라 아들을 놓친 하지만 그래서 엄마 손으로 아들을 잡아 넣을 수 밖에 없어 가슴에 대못이 박힌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한양이 엄마로 우리는 다시 염혜란을 기억하게 된다. 

염혜란이 늘 '우리 이웃'에만 머물렀던 건 아니다. <무법 변호사>에서는 온갖 귀금속을 주렁주렁 매달고 기성 시의 보이지 않는 손 차문숙의 오른 팔로 고군분투했고, <라이프>에서는 조승우가 분한 상국대학 병원 총괄 사장의 오랜 측근으로 '전문직' 혹은 '고위직'의 옷을 갈아 입으며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하지만 염혜란이 우리네 이웃의 그 누군가가 되어도 저 높은 지위의 그 누가 되어도 변함이 없는 건, 세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너무도 실감나는 그녀의 연기다. 
 

by meditator 2018. 12. 14. 04:55

공중파, 케이블, 종편, 심지어 웹드까지 범람하는 드라마 시장, '이런 드라마가 있었어? 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들, 10%가 넘으면 대박,  애국가 시청률인 1%도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의 제작 편수는 늘어났지만 과연 그 양만큼 질을 담보해 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2018년, 그래도 이들 드라마가 있어 드라마 볼 맛이 났다는 몇몇 드라마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선보였다. 

여전히 왕좌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은 '명불허전'이었고, <또 오해영>의 박해영 작가에게 <나의 아저씨>는 '환골탈퇴'였으며, <안투라지> 서재원 작가의 <손 the guest>에 이르면 '개과천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제 아무리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지만 이들 드라마를 작가들의 이름만으로 설명하자니 어딘가 아쉽다. 그건 바로 올 한 해 '명품'이었던 이들 드라마들에서 작가만큼, 아니 때로는 작가보다 더욱 빛났던 피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에게 날개를 달아준  이응복
일찌기 <파리의 연인(2004)>이래 김은숙 작가는 '로코'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그녀에게 찾아온 위기는 뜻밖에도 바로 지금의 동지 이응복 연출때문이었다. 2014년 동시간대 kbs2의 <비밀>에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은 고전했고, 당연히 김은숙 작가의 한계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한계는 2016년 '적과의 동침', 이응복과 김은숙의 만남으로 통해 극복되었다. 

아니 극복이 아니라 날개를 달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무엇을 써도 '로코'였던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서사성은 물론 서정적으로도 탁월하고 웅장한 스케일을 펼쳐내는데 거침이 없는 이응복 연출을 만나 시대성을 담은 문제작으로 거듭났다.  그리스의 풍광을 배경으로 낯선 땅 그곳에서 '조국'의 사명감을 안고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젊은 의사와 군인들의 이야기 <태양의 후예(2016)>에 과연 이응복의 터치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마찬가지다. 고려를 연상케 하는 과거와 동유럽의 이국적 정서, 그리고 현실과 도깨비의 세계를 오가는 시공초월 러브스토리였던 <도깨비(2017)> 역시 첫 회부터 비극적 정서를 한껏 뿜어내던 김신의 캐릭터 설정과 지은탁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두 남신의 미학적 장치가 아니었다면 과연 설득력을 지녔을까 싶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18년 김은숙 작가는 '사극'에 도전한다. 그것도 드라마계에서 승률이 언제나 불리했던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를. 김은숙 작가의 이야기는 <토지>의 어느 장에선가 본 듯했고, 여전히 김작가만의 '로코'적 대사와 전형성을 그리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스토리와 관계의 행간을 이응복 연출의 비장하고도 장엄한 구한말 조선의 재연을 통해 메워냈고  시청자들은 거기에 다시 한번 감응했다. 이응복의 연출은 성당을 가득메운 구비구비 이야기가 담긴 예술적 벽화와 천장화처럼, 심지어 창문을 빼곡하게 채운 스테인드글라스의 조합까지 놓치지 않고 채색해가며 드라마를 완결시킨다. <태양의 후예>에서, <도깨비>, 그리고 이제 <미스터 선샤인>을 경과하며 어느덧 김은숙의 이응복이 아니라, 이응복의 김은숙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격조가 다른 드라마의 장을 펼쳐냈다. 이 압도적인 윈윈 조합이 과연 2019년에도 이어질 지 두 사람의 파트터쉽의 귀추가 주목된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이 이응복 연출 스케일을 통해 여타 드라마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드라마로 거듭남으로 2018년 드라마계에서 독보적이었다면, <나의 아저씨>는 올 한 해 시청자들을 이른바 '힐링'이란 차원에서 압도했던 드라마이다. 

 

 

우리 시대의  '나저씨' 김원석
이미 <또 오해영>을 통해 '로코'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던 박해영 작가,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이 작품이 <또 오해영> 작가 꺼야 라는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다른 색채의 작품이다. 회사 내 권력 싸움 와중에 건축 구조 기술사로서의 직업적 자부심이 무색하게 밀려나고 또 밀려날 처지의 아저씨 박동훈과 그의 회사 일개 비정규직 사원으로 인연을 맺게 된 밑바닥 청춘 이지안이 '회사'와 사회를 배경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또 오해영>보다는 김원석 피디의 <미생>에 더 가닿는다. 

일찌기 <성균관 스캔들(2010)>로 조선시대 빛나는 청춘들의 성장담을 그렸던 김원석 피디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2013년 그 청춘의 성장담을 '음악'을 매개로 하여 그리려 했던 <몬스타>을 경유한 후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대의 공감과 위로를 담았던 <미생>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미생>에 열광했던 시청자들은 시즌2를 기대했지만, 김원석 피디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에 응답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손을 잡으며 과거과 현재의 인물이 무전기를 매개로 '시대를 관통하는 적폐'의 상징적 사건을 해결하는데 돌진함으로써 2016년 '적폐' 시대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마치 <미생>2처럼, 세상사에 치인 사람들에게 기댈 '내력'이 되어준다. 김원석 피디는 민감하게 시대에 반응하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선함과 그를 향한 의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긍정'의 미학을 일관되게 작품을 통해 그려내왔다. 그리고 그 '절정'이라 할만한 작품이 바로 <나의 아저씨>이다. <미생>에서 오상식과 장그래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은 2018년 박동훈과 이지안을 응원했다. 아니 열광하고 응원하도록 김원석 피디가 그려냈다. 

김규완, 김태희, 정윤정, 김은희, 그리고 박해영, 그간 김원석 피디와 함께 했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이들 작가는 김원석 피디와 함께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났으며, 김원석 피디는 이들 작품을 통해 예의 김원석 표 휴머니즘, 따뜻하지만,  나약하지 않고, 흔들리되 꺽이지 않는, 그리고 언제나 세상사에 눈감지 않고, 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이야기들을 끈질기게 펼쳐낸다. 과연 2019년 김원석이 그려낼 시대 정신은 어떤 것일지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엑소시즘까지, 장르의 개척자 김홍선 
<보이스1>을 연출했던 김홍선 피디가 한국적 엑소시즘 드라마를 만든다 했을 때 그 작가가 <안투라지>의 작가라는 발표에 다들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만큼 미드 <안투라지>를 바다 건너 '탱자'로 만들어 버린 작가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 우려는 <손 the guest>의 세계가 열리면서 '기우'가 되어버렸다. 

엑소시즘은 외국 영화로는 여러 시리즈로 호평을 받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이질적인 장르이다. 하지만 김홍선 피디에게 '이질적'이란 수식어는 '도전'이란 말로 치환되는 듯하다. 일찌기 <도시 괴담2>를 시작으로 <야차>, <무사 백동수>,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 <라이어 게임>, <피리부는 사나이>, <보이스>에서 이제 2018년 <손 the guest>까지 그의 작품은 곧 장르물의 개척지가 되었다. 게임이 드라마로 들어왔고, 니고시에이터, 보이스프로파일러 등 드라마에서 생소했던 직업들이 장르물의 주인공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제 귀신들린 이에게서 악령을 내쫓는 구마 사제와 전통의 무당이 바다로 부터 온 박일도라는 바다로부터 온 '거악'을 없애기 위해 콜라보를 하기에 이른다. 

장르물의 개척자답게 늘 김홍선 피디의 작품에서는 '스토리'보다 '액션'이 앞서나가는 경향이 있어왔다. 장르의 설정은 그럴 듯하지만 막상 펼쳐놓으면 '액션'에 방점이 찍히며 서사는 저만치 밀려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라이어 게임>, <보이스>를 경과하며 김홍선 피디의 작품 역시 서사의 미흡함을 채워나갔다. 물론 <손 the guest> 에서도 15회에서 '좀비'들의 뜬금없는 향연으로 시청자를 의아하게 했지만 마지막 회 처절한 최윤의 윤화평에 대한 혈투와도 같은 바닷속 구마 의식으로 절정의 대미를 장식해냈다. 

서사만이 아니다. 묻힐 뻔했던 서재원 작가의 장기를 살려낸 것부터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이 보색의 절묘한 배합으로 공포감을 극대화시켰던 조명, 전래의 꽹과리를 협연시키며 긴장감을 배가시켰던 음악과 음향까지, 어느 부분하다 비워진 틈없는 종합 예술로서 <손 the guest>를 완성했다.

 

 

하지만 2018년에 빛을 발한 연출력에는 이들 세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연출'의 역할이 눈에 띄는 한 해였다. <손 the guest>에 앞서 장르물의 화제가 되었던 <라이프 온 마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다수의 리메이크작들이 '바다 건너 탱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70년대로 타임슬립한 영국의 수사극이었던 <라이프 온 마스>를 당시의 맨체스터와 비슷한 1988년 인성시를 통해 재현해 냈다. 이것이 진짜 '응답하라 1988'이었다는 평가처럼, 당시 최고의 유행가였던 조용필의 미지와의 조우 등을 배경으로 여전히 법과 과학 수사보다, 주먹과 우격다짐과 편법이 득세하던 80년대 지방 도시의 공기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외려 원작보다 더 원작의 주제 의식을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박보검, 송혜교의 스타 캐스팅인 동시간대 tvn의 <남자 친구>를 무색케 하는 <황후의 품격>의 주동민 피디가 2018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미 주연배우의 하차라는 악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낸 <리턴>에서 인정받았던 '포르테시모(매우 세게)'한 주동민 피디의 연출력은 '막장의 대가'라는 김순옥 작가의 작품을 에니메니션 기법 등 화려한 변주를 통해 안정적으로 미니 시리즈로 안착시켜내며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들 외에도 예단하기엔 이르다 하겠지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돌아온 <비밀의 숲>의 안길호 피디, <스카이 캐슬>의 조현탁 피디 등도 2018년을 빛낸 장인의 대열에 이름을 올리는데 손색이 없지 않을까. 풍성했던 피디들의 연출력으로 인해 작품들이 더 돋보였던 한 해 과연 2019년에는 또 어떤 장인들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까, 풍성한 수확으로 다음 해의 기대가 부풀어진다. 

by meditator 2018. 12. 12. 04:50

내가 힘들고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아 비슷한 처지나,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는게 솔직한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른바 '동병상련', 저러고도 사는데, 혹은 나와 비슷하다는 연민으로 뜻밖에도 내 삶을 버텨낼 에너지를 얻는다. 얍삽하다고? 아니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고 살아온 '인간'이기에 불가피한 감정이라고 하는게 더 맞다.

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류적 존재인 우리들은 그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가 늘 나보다 잘 살고 있다면, 내 삶의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 터이니. 그러기에 '성장 시대'를 일궈낸 '부모' 세대는 이미 그들보다 더 잘살기 힘들다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확증된 '자식'세대에게 어쩌면 '넘지 못할 산'과도 같은 부담일 뿐이다. '거산'에 막히고 전쟁과도 같은 현실속에서 버둥거리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뜻밖에도 이들이 '공감'을 길어올린 건 '전쟁' 시대를 살아낸 '조부' 세대이다. 12월 9일 방영된 <빛나라! 할머니>는 그 '전후 세대'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의 당위성을 길어올리고자 하는 이 시대 젊은 세대의 '역설적 존재론'이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할머니의 생애
이금순 씨는 올해 82세이시다. 열 여덟에 시집와서 다섯 자녀를 키우시고 또 그 자녀들의 손주까지 보신 일가의 할머니다. 인생의 여든 고개, 그녀가 맞이한 건 '알츠하이머', 모처럼 찾아온 손주에게 정수기에서 나오는 온수따위 믿을 수 없다며 가스렌지에 펄펄 물을 끓여 맛난 커피를 타주고 싶은데 정작 커피가 놓인 자리를 찾지 못하는 처지, 당연히 지나온 삶의 구비구비 쌓였던 사여들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런 이금순씨가 말끝마다 신나게 부르는 노래의 한 구절,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아싸, 야로~!', 젊어 애청했다던 '여자의 일생'도 기억이 안난다는 할머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이 구절의 사연이 궁금해 손자 김빛나라 씨가 할머니가 살아온 곳을 더듬는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여전히 젖이 부족해 자신의 가슴을 들이받던 아이들에게 보리죽조차 넉넉하게 먹이지 못했던 그 시절이 아픈 할머니, 군에서 제대한 할아버지와 함께 정미소를 운영했다면서도 자식들 배를 곯렸던 시절, 그래도 할머니는 찾아온 동네 사람들에게 저녁을 나눠먹이던 넉넉한 품을 지니신 분이셨다. 어디 젊은 시절 뿐일까. 여전히 자식들 가까이 사는 지금의 집보다, 이제는 살림살이 하나 없는 예전 집이 더 익숙한 그 동네, 동네 사람들을 보자 할머니의 안색이 빛난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내, '쨍하고 해뜰날', 해마다 봄이면 마을 회관 사람들이랑 다녔던 봄놀이에서 불렀다던 그 노래,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할머니는 내년 봄의 봄놀이를 기약하신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다 자신도 모르게 울컥한 손자, 서른 둘, 직장을 다니다 길을 잃어 그 길을 찾아 해외 배낭 여행을 다니던 손자, 여전히 길은 막연한데, 가난하고 고생스런 삶을 버텨오신 할머니를 보며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다짐해 본다. 

 

 

그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던 할머니의 식혜
여기 할머니의 일생을 더듬어보는 또 다른 손자가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 개업을 준비하는 손자 정요한 씨, 그는 서점의 색다른 아이템으로 밥알이 탱탱하게 살아있는 할머니의 식혜를 떠올린다. 

그 식혜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들른 할머니의 집, 쌀을 불리고 찌고, 엿기름물을 만들고 밥통에 띄우기까지 '시간'의 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걸 그 옛날에 밥통도 없이 쌀을 몇 말씩이나 하셨단다. 또 다른 할머니의 장기인 팥 양갱을 배우려는데 가마솥 불피우기부터 젬병이다.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나뭇가지를 잘 정렬하여 불을 피우고 팥을 끓이고 그걸 다시 몇 번에 걸쳐 거르고 한천과 함께 만들어 낸 양갱, 배우긴 배우는데 공이 이만저만 아니여서 요한씨는 연신 놀라는 중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자라면서 식혜를 먹고, 양갱을 먹을 때 그저 할머니가 심심풀이로 만드셨는 줄 알았는데 학교 다니는 고등학생 할아버지를 만나 시할아버지에, 세 분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층층시하 밥 먹을 새도 없이 살던 그 시절 고모님이 만드신 걸 보고 어깨너머로 만들어 내셨다는 열의는 학교 근처에 가보지도 않고 시집살이 틈틈이 한글을 익히신 향학열로 이어지셨다고. 

그 할머니의 열의와 열정 앞에 서른 셋의 나이에 새로운 길에 선 요한 씨는 새삼 고개가 조아려진다. 그리고 할머니처럼 견디며 버티고 그 속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선택한 새 길에서도 어떤 희망이 있지 않을까 각오를 다져본다.

 

 

손때가 묻은 60권의 가계부
허나영 씨에게는 유명 스타와의 기념 사진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홍보일을 하던 시절 정신없이 바빴지만 어느덧 그 속에서 자신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설치 미술'을 하고 있는 어엿한 작가, 그녀의 '미술적 재능'은 어디로 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 '예술적 DNA'는 뜻밖에도 할머니에게서 찾아진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 할머니는 고운 무늬가 있는 종이를 모았다가 봉투를 만들어 명절 때 손주들 '세뱃돈' 등을 넣어 주셨다. 지금 봐서도 예술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무니며 만듬새, 그 작품의 주인공은 이제 93이 되신 오영순 할머니시다. 

하지만 할머니의 진짜 작품은 이 봉투가 아니라, 할머니가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신 세월과 맞먹는 60권의 가계부이다. 학교 선생님이셨으나 동료 선생님이셨던 남편과 가정을 꾸리시면서 가정주부로 살아오신 시절, 박봉의 선생님 월급으로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고심하며 살아온 그 시절이 고스란히 가계부에 담겨있다. 하지만, 그저 할머니가 사들인 물품 목록과 가격만이 아니다. 그 가계부의 비고난에 빽빽이 적어내려간 그 시절의 일기, 사건들, 그 속에 90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난한 살림, 그 속에서도 세상사에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도 가족을 꾸려가느라 '곤란'했지만 애써 견디며 노력했던 할머니의 삶은 작가의 길에 들어선 손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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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를 조명하는 다큐들이 늘었다. <미운 우리 새끼>와 새로 시작한 <아모르 파티> 등 예능에서 새로이 조명되는 세대와 같은 연장선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얼마전 MBC 스페셜 <엄마와의 인터뷰>, <기막힌 내 인생 누가 알랑가?>와 이제 SBS스페셜 <빛나라! 우리 할머니>는 그저 그 세대에게 조명을 비추는 걸 넘어, 할머니, 어머니라는 가족 내 일원이 아닌 '한 사람', 그것도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자기 극복의 표본으로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주목'의 시선에는 바로 현재, 그들만큼 힘들다 느끼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있다. 그러기에 시작은 '할머니', '어머니' 세대이지만 그 다큐의 끝엔 여기가 있다. 전쟁통에, 가난한 시절을 그렇게 버텨낸 것이 '승리'라고 말하는 다큐는 결국, 그러니 우리도 버텨보자, 살아내 보자며 다독인다. '고생'의 연대이다. 

by meditator 2018. 12. 10. 16:18

ocn에서 처음으로 편성한 수목 밤 11시,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손 theguest>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는 말을 증명했다. 1.575%(닐슨 코리아 전국 케이블 기준)로 시작했던 드라마, 하지만 드라마에 잠시 출연했던 배우의 sns에 궁금증의 댓글이 달리고,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드라마 중 악의 절대 세력을 상징했던 '박일도'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고, 심지어 그 정체가 밝혀졌음에도 외려 드라마의 긴장감이 더해지며 끝까지 시청자들을 흡인시키며 주인공 세 사람 '김동욱, 김재욱, 정은채'에 대한 열화와 같은 지지와 함께 4.073%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엑소시즘'을 내건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종영 전부터 예고가 되었던 같은 방송사의 주말 <프리스트>로 이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열기가 식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5회를 경과하고 있는 <프리스트> 기대와 달리 1,2%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주제 드라마의 연속 방송이 주는 피로감?
아마도 편성을 하는 입장에서는 <손the guset>로 불붙은 '엑소시즘'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관심'은 이미 첫 회를 보는 과정에서 무너지기 시작해 버렸다. 

<손the guest>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건 어느 한 요소때문만이 아니다. 연기, 연출, 심지어 조명에 이르기까지 '엑소시즘'의 분위기와 긴장감을 한껏 불러일으켜 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드라마 장르에서 생소했던 '엑소시즘'이란 낯선 주제가 거부감없이 수용될 수 있었다. 반면 <프리스트>는 바로 그 대척점의 지점에서 드라마를 시작한다. 

드라마는 '남부 카톨릭 병원'이 배경이 된다. 긴박한 응급실, 그곳에 여주인공 함은호(정유미 분)가 있다. 때로는 병원 시스템이 요구하는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도 환자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정의감'이 앞서는 의사, 어린 꼬마 환자 우주, 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응급수술에 돌입하지만 안타깝게도 목숨을 살려내지 못한다. 하지만 고개를 조아린 채 환자의 가족 앞에 선 것도 잠시, 꼬마의 심전도 그래프가 다시 움직인다. 그리고 기적처럼 살아난 환자, 심지어 생명의 기로를 오가던 그 상처는 기적처럼 회복이 빠르다. 그리고 병원 장례식장에서 쓰레기를 주워먹는 등 '구마'된 상태로 돌아다니던 우주와 젊은 구마 사제 오수민(연우진 분)이 마주치게 되고, 오수민은 결국 꼬마의 몸에 들어간 악령을 구마하기 위해 소년을 납치하여 이제는 쓰지 않는 오래된 폐병원 건물로 가 구마 의식을 한다. 

 

 

이렇게 1회에서 '구마'에 이르기까지의 장황한 과정에서 드라마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하고자 한다. 양 손을 다 쓸 정도로 능력자이며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는 융통성이 만랩이던 여주인공 함은호는 정작 이상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두고 '악령' 운운하는 사제 오수민과 필요 이상의 실랑이를 벌이며 사건의 진행을 막는다. 그런가 하면 아직 '구마'를 할 만큼 경험과 능력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오수민은 스승이자 또 다른 구마 사제인 문신부의 허락도 없이 대뜸 우주의 구마를 시도한다. 막는 의사와 열혈 젊은 사제의 실랑이 속에서 압도적으로 드러나는 소년 속의 악령의 존재, 하지만 그 '악령'을 만나기 까지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1회를 본 시청자들은 당연히 <프리스트(신부)>란 제목과 달리 이 드라마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즉,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의학 드라마'인가, 아니면 사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엑소시즘 드라마인가 이다. 물론 드라마는 이 둘을 합친 '메디컬 엑소시즘'이라 하지만 정작 본 시청자들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이제 5회에 이른 드라마는 계속 남부 카톨릭 병원을 배경으로 환자에 이어 전문의, 간호 조무사 등 이 병원과 관련된 사람들이 악령에 씌임으로써 배경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이른바 드라마가 내걸고 있는 메디컬 엑소시즘이라는 콜라보 장르의 의미는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 

 

 

신부의 키스?
그렇게 '메디컬'도 '엑소시즘'도 어정쩡하게 시작된 드라마,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미 1회에서 부터 '구마' 의식에 걸림돌 역할을 하던 여주인공은 이후 조력자가 되었지만, 정작 엑소시즘의  과정에서 매번 중요한 계기가 됨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함은호는 착하고 헌신적이지만 그냥 그럴 뿐이다.

그런데 4회에서는 '최면 과정'에서 젊은 신부 오수민과 함은호의 '과거'와 관련된 사연이 복선으로 등장하며 '키쓰'까지 하며 외려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논란'은 '신부의 키스'가 아니라 결국 4회에 이르기까지 시청자들에게 조력자임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도 다가서지 못한 함은호나 오수민의 캐릭터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심지어 이제 6회를 앞두고 그녀 주변에서 벌어지던 사건들이 그녀를 가르키고 있으면서 신부와의 키스 이상 '사연'이 등장할 예정이지만 그다지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게 <프리스트>의 안타까운 지점이다. 길영이 형이라고 까지 불리며 든든하게 드라마의 한 축이 되었던 <손the guest>의 강길영을 그리워한 이전 드라마의 호청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거기다 이제 5회차에 이른 드라마에서 어쩌면 가장 큰 의문은 정작 드라마에서 이렇다할 비중있는 활약을 하지 않음에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문기선(박용우 분)을 차치하고 왜 모든 '구마 의식'의 중심에 아직 이렇다할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오수민이 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오수민은 비롯한 634레지아라고 하는 '구마' 레지스탕스를 만들고 그 대표인 듯한 문기선이지만, 늘 사건의 중심, 그리고 구마의 중심에는 어설퍼보이는, 그래서 최면 속에서 어머니의 환영에 고통받는 오수민을 내세워야 하는가 라는 '합리적 질문'에 드라마는 이렇다할 타당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즉, 선배 구마 사제의 갈등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형을 찾아서, 그리고 그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박일도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구마하려고 했던 <손theguest> 최윤(김재욱 분)에게 마음이 가닿았던 시청자들에게 오수민은 어설프고, 문기선은 무게만 잡는 그런 존재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엑소시즘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시청자들이 흥미을 가질 만한 구마 과정이나 의식에 대한 긴장감을 드라마가 제대로 유지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희생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박일도의 정체를 따라가던 <손the guest>처럼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악령과의 '악연'을 가진 이들이 '레지스탕스'처럼 조직을 만들어 구마 의식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프리스트>는 동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화평과 최윤, 강길영이 가졌던 처연하고도 비극적인 악령과의 악연은 <프리스트>에서 어쩐지 실감나지 않는다.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얕으니 그들의 비극적 사연조차 그저 한 에피소드처럼 스쳐지나가 버린다. 

물론 섣부르게 예단 할 것은 아니다. 아동 학대의 희생양이었던 우주, 그에 이어 번아웃 증세를 보이던 견습의, 그리고 이제 직업적으로 소외된 간호 조무사의 악령들림을 통해 병원이란 배경 속 캐릭터들을 활용해 나가고 있다. 또한, 최면과 폴터가이스트 현상 등 다양한 악령과 구마 의식의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거기에 구마 레지스탕스의 사연과 활약도 기대해 볼 만하다. 안타깝게도 초반에 시선을 잡지 못하고 캐릭터의 어설픔으로 인해 관심을 놓쳤지만 오수민과 함은호, 그리고 문기선 등의 관계에서  매회 풀어놓는 사연의 곡진함은 유장하다. 부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 '창대'한 결말에 이를 수 있도록 <프리스트>의 건투를 빈다. 

by meditator 2018. 12. 9.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