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은 9월 평양 공동 선언을 통해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빠른 시일에 개소하고 이를 위해 면회소 시설을 조속히 복구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이산 가족 상봉의 정례화, 그 물꼬가 터졌다. 그에 앞서 8월 20일에서 26일에는 2015년 10월로 부터 무려 2년 10개월만에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 졌다. 양국 정상의 상시적 이산 가족 상봉에 대한 '선언', 그에 앞서 모처럼의 이산 가족 상봉 행사, 이렇게 모처럼 남북 이산 가족의 오랜 해원이 정치적 해빙에 발 맞추어 풀려나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런 즈음에 ebs 다큐 시선은 왜 우리가 더 늦기 전에 이산 가족 상봉을 서둘러야 하는 가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들어간다. 바로 2%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상봉 가족들의 또 다른 아픔을 통해서다. 

 

 

조속한 이산 가족 상봉이 필요한 이유는? 
교동도, 강화도 북서부에 있는 섬, 이곳은 북으로부터 불과 2~3km 떨어진 섬이다. 갓난아기의 엄마는 시체들이 즐비한 북을 도망해 수심이 낮은 때 배도 없이 이 섬 저 섬을 건너 이곳으로 왔다. 배를 타면 10이면 북에 닿는 곳이다. 그 '조금' 떨어진 이곳으로 '잠깐' 피신해온 것이 70년의 세월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피란온 소년은 고향집에 숨겨둔 놋그릇을 가져오겠다며 다니러 간 어머니와 누님을 그때이후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들과 헤어진,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동도에 남겨져 있다. 고향이 그리워 '북'으로 창을 내고 그곳으로 머리를 두고 잠이 들어도 영 꿈에서 조차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그리워 다 큰 아들은 여전히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부르며 그 일곱 살 아이처럼 뒹군다. 하지만, 이제 낼 모레 팔십을 바라보는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향이 바라보이는 망향대에 올라서는 일.

 

 
 

 

이렇게 잠깐인 줄 알았던 세월이 70여년이 흐르는 동안 이산 가족 1세대들은 많이 세상을 떠났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자로 정해졌던 사람들은 93명, 하지만 그중 4명이 고령의 나이로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7월말 기준 생존해 있는 이산 가족들은 5만 6000여 명., 그런데 생존해 있는 이산 가족들 중 85% 이상이 70대가 넘는 고령들이시다. 현재 한 회에 90~100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 상봉 인원수, 이 인원대로 한다면 600회 가까이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져야 남은 생존자들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시간'을 고령의 생존자들이 견딜 수 있을까? 그러기에 이분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고향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조속히'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져야 한다. 



2%의 기적, 그 휴유증
보통 이산 가족 상봉을 2%의 기적이라 한다. 신청한 사람들 중 2%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상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기적'을 이룬 사람들은 여한이 없을까? 하지만 막상 다시 찾아본 상봉 가족들에게는 뜻밖에 휴유증이 심각했다. 

누님은 원산 방직 공장에 돈을 벌러 떠났다. 그리고는 삼팔선이 막혔다. 칠월 칠석이 생일이던 누님, 늘 어머님은 살아만 있으라 정한수를 떠놓고 비셨다. 그 누님이 돈 벌러 떠나던 때 황보우영 씬(69)는 어머니 등에 업힌 갓난쟁이였다. 당연히 어머니의 기억을 통해서만 전해진 누님. 그런 누님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만났다. 기억도 없던 누님, 하지만 그렇게 누님을 만나고 돌아와 황보우영씨는 살이 몇 kg이나 빠졌다. 찰라와 같은 만남의 아쉬움이, 다시 볼 수 없다는 그리움이, 누님에 대한 걱정과 함께 황보우영 씨를 우울증에 빠져들도록 했다. 

 

 

그해 스무 살의 새신부였던 이순규 할머니(87), 겨우 7개월 남짓의 결혼 생활, 남편은 몇 달간만이라던 말이 무색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순규 할머니의 뱃속엔 당시 3개월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아이는 기특하게도 7살 무렵 왜 아버지는 오시지 않냐는 질문 한번을 끝으로 아버지를 묻지 않은 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제사도 지냈다. 한 켤레의 구두로만 남은 남편과 아버지의 추억, 그런데 기적처럼 북쪽의 아버지 오인세 씨의 생존이 전해졌다. 그리고 며칠 간의 만남, 돌아온 아들은 헤어나올 길 없는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한번도 보지 않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자신만의 생각으로 그렸던 아들은 막상 눈 앞에서 만난 쪼그라든 노인인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40년간 그리워했던 마음은 '홧병'처럼 돌아왔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기적의 시간을 가진 이산 가족 상봉자들, 하지만 그 결과는 '기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안부조차 제대로 물을 수 없는 '행사'의 시간들, 그 시간을 꿈처럼 겪어낸 가족들은 대비하지 못한 만남의 휴유증을 앓는다. 불면증, 무력감, 건강 악화, 우울증 등 상봉 후 후유증을 앓는 가족들이 24%에 달한다. 상봉 후 기쁘지 않다는 답을 한 가족들도 39%에 달한다. 그 이유는 자신은 그래도 남한에서 편하게 사는데 고생하며 사는 것같은 모습에, 안부조차 제대로 물을 수 없었던 짧은 만남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이별의 아픔이 상봉 가족들을 다시 고통 속에 빠뜨린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그저 '이벤트성 행사'를 넘어 사전에 상실감 등 휴유증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만으로 다시 생이별의 아픔을 감내할 수 있을까? 결국 답은 하나다. '정치적 목적'으로 치뤄졌던 이산 가족 상봉, 이제 1세대 상봉자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는 현실에서 더는 미루지 않고 '인도적' 차원에서의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며칠의 만남이 아니라, 보고싶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그런 상설적인 만남이 시급하다. 그러기에 이산 가족 상봉 정례화는 더 늦기 전에 구체화되어야 한다. 

by meditator 2018. 10. 26. 18:38

피곤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다. 늘 눕고만 싶다'. 아마도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증상은 심해진다. 마흔 줄에 들면, 상습적인 고질병이다. 그러면 생각하게 된다. '나도 늙었구나',하고, 정말 그럴까? 

원래는 진짜 (체력이) 좋았어요
몸에 근력도 많은 편이고 해서 (체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40대 들어가면서 부터 계속 안좋다고 하더라구요. 
                               -생존 체력 도전자 임창묵 씨 아내 인터뷰 중


피로 사회의 원인은? 
다큐의 주인공들은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마흔 줄의 남성과 여성들이다. 단숨에 지하철 노선도를 외워제끼던 마흔 중반의 강성범씨, 당연히 이젠 이호선만 외우는 것도 벅차다.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숨이 딸린다. 그의 일상은 스케줄이 없으면 '침대', 모닝 커피도 아내가 대령할 정도로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딸 둘의 아빠 임청묵씨, 이제는 부쩍 자라 활동성이 많아진 아이들과 놀아주는게 여간 곤욕이 아니다. 결국 조금 놀아주다 리모컨을 쥐어주고, 소파에서 숙면을 취해버리는게 그의 일상이 된 이른바 '1회용 체력'이다.

내년이면 마흔, 프리랜서 통번역 전문가이자 대학 강사인 서지연씨 하루 네 시간의 출퇴근은 물론, 서울, 경기를 종횡무진하던 거칠 것없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던 별명이 무색하게 이젠 열일을 제치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버린다. 학창 시절 선생님 등에 업혀 겨우 등산을 한 이래 산을 가본 적이 없으며, 윗몸 일으키기 같은 건 꿈도 꿀수 없는 이른바 '모태 저질 체력'의 김보라씨, 이제 겨우 마흔이지만 앉을 자리를 위해 지하철을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한 현장 학습에서 돌아오면 앓기가 일수이다.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고 지치며 늘 피곤에 시달린다는 것. 불혹의 나이 마흔이 이들을 이들의 체력을 '방전' 시켰을까? 다큐는 이들에게 '국민 체력 테스트'를 시켜보았다. 

 

 
그 결과 네 명 모두 3등급에도 들지 못하는 등급 외 판정, 결국 그들의 '피로'는 '나이'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였다.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약해진 걸까? 흔히 방송에도 등장하는 '신체 나이'처럼 '나이'와 '체력'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다큐 후반에 등장한 올해 60의 의사 선생님은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헬스' 등을 했지만 여전히 '피로'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운동법을 변화시켜 '기초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통해 이젠 나이 운운이 무색하게 '피로'를 느낄 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운동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운동'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자존감' 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바로 이 개인의 정신 건강도 '체력'이 따라줘야 한다고 다큐는 말한다. 즉, 자신의 일상 생활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삶의 자존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버텨야 하는 삶, 버티는 힘이 나오는 건 정신력이 아니라, 체력이라 다큐는 강조한다. 

아기 엄마들한테는 아기를 잘 돌볼 수 있는 체력이 먼저 필요하죠. 
무거운 무게를 들고 강하게 펀치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허리가 아프지 않게 아이를 안을 수 있는 체력.
직장인이라면 회의에서 버티고 야근에서 견딜 수 있는 체력.
수험생이라면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서 버틸 수 있는 체력.
절실한 것들은 다를 거예요. 
그런 절실한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밑바닥의 체력들,
그걸 '생존 체력'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
                             -생존 체력 운동 이주라 트레이너 인터뷰 중 


다큐에서 실제 김보라 씨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전업 주부이지만 그 일상이 버거웠다. 아이들과 외출이라도 하고 나갔다 들어오면 방전된 체력으로 아이들에게 '폭발'하기가 십상이었고, 건조기에서 꺼내온 빨래는 몇 푼의 용돈으로 아이들 몫이 되었다. 그렇게 일상을 버틸 수 없는 체력은 그녀의 성격조차 신경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런 김보라씨에게 생존 체력을 키워주기 위해 등장한 트레이너 이주라씨, 하지만 그녀도 처음부터 생존체력 지도자가 된 건 아니었다, 외국 생활 중 견디기 힘든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무조건 걷기 시작했다던 그녀는 '운동'이 정신은 물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생존 체력' 전도사가 되었다. 

 

 

그런 이주라 씨의 지도 아래, 네 명의 출연자들은 각자 체력 조건에 맞춰 생존 체력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이 즐거워야 하는 거라며 운동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던 개그맨 강성범씨에게는 제대로 된 자세로 단 한번이라도 해내는 푸쉬업, 일회용 체력의 임창묵 씨는 두 팔 벌려 지탱하여 엎드렸다 일어서 박수치기를 반복하는 버피 운동, 같은 버피 운동이라도 서지연씨는 강도와 자세를 완화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 자체가 생소한 김보라씨에게는 바른 자세의 스퀏의 시도부터,  하루 단 10분에서 15분의 운동을 한 달간 꾸준히 시도하고, 그걸 영상으로 기록하도록 하였다. 

겨우 10분 남짓의 운동, 과연 정말 생존 체력은 변화했을까? 약속한 운동을 지키기 위해 공연의 틈틈이, 일상의 틈새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예의 익숙한 '으~'하는 신음 소리로 알 수 있게된 하루 일과의 시작으로, 그리고 과연 엄마가 하며 딸들도 동참한 한 달간의 체력 운동은 놀랍게도 출연자들을 변화시켰다. 그저 10분 정도 운동을 했을 뿐인데 서지연 씨는 4kg이나 살이 빠졌다. 임성묵 씨는 소파에 '프렌들리'한 대신 두 딸과 열심히 놀 수 있게 되었다. 김보라 씨는 이사 온 지 몇 년 동안 가볼 생각이 없던 아파트 뒷 산을 올랐다. 

하루 10분의 운동, 기초 체력을 끌어올리는 몸의 코어 근육을 살려내는 '스퀏, 팔굽혀 펴기, 플랭크, 버피 운동'등으로 나이를 핑례로 했던 '피로'가 사라졌다. 결국 문제는 '체력'이었던 것이다. 건강한 신체가 건강한 삶을 돌려줬다. 

체력을 기우자는 이 다큐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하다. 운동이 범람하는 거 같지만, '운동'과는 담을 쌓은 사회. 일찌기 학창 시절부터 그저 학습 과정의 형식적 요건으로 따라가는 운동도 어느덧 입시 위주의 교육 과정에서 '영어' 등 다른 과목에게 시간을 빼앗기기 십상이거나, 체육 시간이라 해도 공부에 지친 신체를 단련시켜 주기 보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양지바른 곳에 앉아 햇빛이나 쬐는 시간이 되기 십상인 사회.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체력'이라는 말과 무관한 삶의 스케줄을 짜도록 강제하는 사회 속에서 마흔 줄만 들어도 체력이 방전되고 마는 사회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운동을 한다면 헬스 클럽이나 수영장을 가야 하는 거라 생각해거 그게 귀찮아서 운동을 못하게 되는 사회에서 운동은 더더욱 일부 운동 마니아 들의 몫이 되곤 했을 뿐이고. 그러기에 이 기본의 체력을 강조한 다큐가 의미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기자가 고관절에 좋다는 스퀏 몇 번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기사를 쓰는 지금 허리가 짱짱한 거 같은 건 그저 플라시보 효과만은 아닐 것이다. 아, 중요한 건 시간이나 회차가 아니라, 바른 운동 자세이다. 한번이라도. 




by meditator 2018. 10. 23. 16:05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해(?) 호러물들이 떼를 지어 찾아왔다. 심지어 kbs2tv는 월화수목을 다 호러물 시리즈로 편성했다. ocn 역시 수목 밤 11시에 <보이스>의 연출 김홍선 감독의 호러물 <손 the guest>를 편성했다. 야심찬 시도, 하지만 받아든 성적표는 시원찮다. 앞서 종영한 <러블리 호러블리>가 6%에서 1%까지 러블리와 호러블한 시청률을 오갔는가 하면, <오늘의 탐정>은 3,4%의 산뜻했던 출발과 달리 좀처럼 2%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손 the guest(이하 손더게스트)> 역시 '박일도'가 누구일까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2,3%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지부진한 '호러' 장르물, 장르의 한계일까? 만듬새의 부실일까?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속성에 기대어 만들어진 장르가 '호러'다. 주인공 캐릭터가 맞닥뜨린 공포와 그걸 지켜보는 긴장감이라는 이율배반적 감정을 절묘하게 구성함으로써 시청자의 자극을 극대화시킨다.(네이버 지식 백과) 그래서 대부분 호러물이 납럅 특집물로서 편성되는 이유가 무더위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공포를 공감각적으로 대리 만족시킴으로써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게 해주려는 배려(?)에서 이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그에 맞선 인간들 
호러물의 핵심 내러티브는 크게 귀신이나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인 영역을 다루는 것과 연쇄 살인마나 살인 짐승과 관련 실존했을 법한 이야기에 기댄 두 가지로 나뉜다. 늦여름 찾아온 <러블리 호러블리>, <오늘의 탐정>, <손더게스트> 세 작품은 모두 이 핵심적 내러티브의 두 가지 면을 절충하여 현대적 관점에서 '호러'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다. 

우선 <손더게스트>의 경우, 11회에서 비로서 드러난 박일도의 정체에서 보여지듯이 박일도는 '실존 인물'이다. 일제 하 지방의 유지였던 한 집안, 그 집안에서 태어난 기괴한 살인마, 박일도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실존인물이었다던 박일도는 집안의 식솔은 물론 사촌 여동생, 자신의 처와 아들까지 무참히 살해하고, 스스로 '인간'의 굴레를 끊고 큰 귀신이 되고자 스스로 눈을 찌르고 바다로 뛰어들어 영계의 존재로 질적 승화된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포섭'하여 박일도에 빙의되어 살인을 빈발하는 인간들을 발생시킨다. 시작은 '살인 사건'이며, 인물은 '실존'이지만, 그들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들은 '초현실'적이다. 그에 맞서 현직 형사 강길영(정은채 분)과 구마 사제 최윤(김재욱 분), 그리고 한때는 빙의된 희생자였다가 이젠 영매가 된 윤화평(김동욱 분)의 합동 작전을 필연적이다. 

<오늘의 탐정> 역시 시작은 유치원 원아 실종 사건이다. 하지만 그 배후에 등장하는 빨간 옷을 입은 의문의 여인, 알고보니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식물 인간이 된 살아있지만 죽은 '생령', 선우혜(이지아 분)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뒤쫓다 죽음에 이르게 된 탐정 이다일(최다이엘 분) 역시 귀신이었다가, 다시 생령이 되어 그녀를 뒤쫓는다. 역시나 <오늘의 탐정> 역시 벌어지는 사건은 이지아가 자신의 하수인이 된 인간들을 시켜 벌인 갖가지 사건들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 초인간적인 힘을 가진 생령이 있고, 이를 수사하기 위해 또 다른 생령과 인간들이 연합 작전을 펼친다. 

<러블리 호러블리>의 시작은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작가 오을순(송지효 분)으로 부터 시작된다. 자신도 모르게 들리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씌여진 대본, 그런데 그 대본의 내용이 고스란히 스타 유필립(박시후 분)에게 사건 사고로 벌어지며 두 사람이 엮이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두 명의 귀신, 10년전 한 호텔의 레지던스 화재 사건에서 죽어간 유필립의 전 여친 김라연(황선희 분)과 엄마 김옥희(장영남 분)이 이제 귀신이 되어 운명적으로 엮인 오을순과 유필립 주변을 배회하며 사건을 벌이고, 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얽혀들어간다. 시작은 '귀신'이지만,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얽히며 살인과 음모, 각종 사고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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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작, '호러의 긴장감'으로 이끌기엔 
이들 세 작품 중 이미 장르물에서 잔뼈가 굵은 김홍선 피디의 작품답게, 거기에 이미 오랫동안 각종 장르물에 매진해왔던 ocn의 내공이 더해져  <손더게스트>가 화제성에서 앞선다. 전래의 귀신을 '손'이라 했던 그 이질적 존재에 대한 네이밍과 바다로부터 온 귀신의 절묘한 캐릭터 구축과 악령과 그에 대응하는 구마 의식의 긴장감이 매회 '화제'를 불러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10회를 넘어서면서까지 <손더 게스트>를 이끈 건 과연 박일도가 누구인가? 누구에게 빙의되어 있는가가 가장 큰 궁금증이며, 작품은 각회의 빙의된 인물에서, 배후의 그 누군가로, 거기서 더 나아가 주인공인 윤화평의 가족, 그리고 이제 윤화평에게 까지 의심에 의심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며 작품의 흥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시청률은 '공포'를 주메뉴로 즐기는 시청자층의 한계로 볼 수 있다. <손더게스트>는 재밌지만 도저히 밤 11시에는 볼 자신이 없다는 애청자층들이 있듯이. 무서움 자체가 작품의 한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더해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은 16부작의 호흡이다. 과연 끊임없이 공포와 그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긴장감으로 끌고 가야 하는 '호러' 장르의 특성상 16부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지점이다. 차라리 8부나, 10부, 혹은 12부의 보다 짧은 호흡이었다면 좀 더 폭발적인 에너지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미니 시리즈'와 '호러'라는 장르의 조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바로 이 호흡이라는 면에서 <오늘의 탐정>은 더욱 안타깝다. 구성면에서 따라가자면 생령으로 인해 귀신이 된 탐정, 그가 귀신을 보는 정여울(박은빈 분)과 영매인 길채원(이주영 분)등과의 연합 작전, 하지만 역부족을 느낀 이다일이 악령과의 악수, 그리고 알고보니 생령이었다는 전개는 나름 논리적이지만, 호흡이 딸린다. 이지아가 분한 선우혜의 악령은 매혹적이고  파괴적이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도돌이표같은 느낌이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가고,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자신들을 죽이려 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충격적이지만, 군중 참사을 도발할 만큼의 악령인가에 대해서는 힘이 딸린다. <선암여고 탐정단>, <원티드>에 이은 <오늘의 탐정>까지 장르물에서 한지완 작가의 능력은 걸출하지만 매번 16 미니 시리즈의 호흡이 작가의 장점마저 상쇄하고 만다. 

<러블리 호러블리>의 경우 역시 안타깝다. 드라마 극본 공모작인 이 작품이 과연 16부를 위한 대본이었는가가 의심스러울 만큼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애초에 작가 자신이 설정했던 두 사람의 운명이라던가, 두 주인공의 캐릭터, 심지어 애초 귀신의 등장 이유까지 그 모든 것이 방향을 잃고 만다. 마지막 회 천둥 번개가 쳐도 사랑을 하겠다는 두 주인공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인공을 사랑해서 귀신으로 나타났던 귀신의 집착이 무색하게 엄마 귀신의 과도한 욕심이 부른 참사란 생각 밖에 들지 않게 만든다. 무엇보다 연출의 호러 장르에 대한 일천한 이해와 불친절한 편집, 심지어 거기에 코믹까지 곁들인 옥상옥의 과욕이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호러'물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복합 장르로서 로코물로서의 공감성조차 갉아먹고 만다. 

 

 

물론 공포 영화를 찾아 극장에 가는 관객이 정해져 있듯, '호러물'이라는 장르에 대한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 접근성의 한계를 '미니 시리즈'의 이름으로 찾아온 드라마들은 '수사물'이라든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복합 장르의 이종 교합으로 돌파하고자 한다. 상대적으로 <손더게스트>의 화제성에서도 보여지듯이 '호러'는 호러다울 때 가장 흡인력이 있다. 조미료를 잔뜩 끼얹은 들 본래의 메뉴가 가진 맛이 없다면 시청자들은 이미 간파한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스테디 셀러였던 <전설의 고향>의 지긋한 교훈을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기억하다시피 <전설의 고향>은 단막극이었다. 16부작으로 호러의 긴장감이 끊겨 버리며 자충수에 빠지기 보다 '호러'에 맞는 형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늦은 여름 찾아온 세 작품, <손더 게스트>,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로 인해 장르물의 애청자는 행복했다. 부디 내년 여름 땀을 쫘악 식혀줄 보다 품질 좋은 호러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아니, 그러고 보니 ocn의 <프리스트>가 대기하고 있다. 이래저래 호러 장르물 애청자들에겐 올 한 해는 풍성한 잔칫상이다. 


by meditator 2018. 10. 18. 17:00

강남이 배밭이었던 시절부터 살아왔던 토박이 어르신들은 도깨비 같은 세상이라 혀를 내두른다. 25평이 15억, 16억을 호가하는 세상이다. 7개월만에 2억이 올랐단다. 3.3 ㎡가 1억이랬다가 그게 시세 조작이랬다가. 신기루가 따로 없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데 그 누군가는 '아파트'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앉아서 하루가 다르게 '불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임금 몇 천 원에 한 사람의 일자리가 오락가락 하는 세상에. sbs 스페셜은 저 요지경 신기루의 복판 강남을 들여다 본다. 

 

 

여전한 꿈의 땅? 
다큐를 연 건 2018년 머슬 마니아 대회. 건강한 육체가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되며 '머슬 마니가'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이 즈음, 2018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작년 머슬퀸 이연화 씨를 주목한다. 머슬퀸, 하지만 그녀의 이력은 화려하다. 패션 디렉터, 의상 디자이너이자 거기에 머슬 퀸까지. 이른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말하는 '자기 관리'이 표본이다. 그런 그녀가 강남에 산다. 늘 새로운 트렌드에 목말라 하는 그녀에게 강남은 딱 어울리는 곳이다. 

어디 이연화씨 뿐일까. 군 제대 후 고향인 강남에서 홀홀단신 상경하여 8~9년 만에 부동산 사업 등을 하며 강남에 집을 마련한 진수현 씨,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대치동의 길을 걷는 그 순간, 자신의 집 옥탑에서 홀로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그 순간, '강남'을 만끽하는 그 순간 그는 가장 행복하다. 그에게 강남은 '미래'이다. 

하지만 '미래'와 '트렌드'가 늘 보장되는 건 아니다. 배우 지망생인 이한나 씨는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로 잡혔다.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그녀가 머무는 곳은 강남의 한 고시원, 그녀 역시 하루의 시작과 끝이 강남이고, 그곳은 그녀에게 기회의 땅이지만 현실은 고달프다. 

 

 

지난 11년간 이곳에 머무르며 한국에 대한 글을 써왔던 영국의 칼럼니스트 팀 알퍼는 한국의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강남을 정의한다. 아로마 오일을 파는 한 회사는 비싼 임대료와 수익도 나지 않는 강남의 매장을 포기할 수 없다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부과 고급스러움의 상징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강남 불패의 부동산 신화를 이루는 그 저변에 저렇게 '미래'를 담보로 잡히며 꿈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의 로망이 기저를 이룰까? 다큐는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의 꿈을 말하지만, 그 꿈의 실체를 짚지는 않는다. 그들의 성공과, 성공의 댓가로 얻은 강남의 부동산을 '로망'으로 제시하지만, 그 부작용과 그림자는 짚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한나 씨의 기약할 길 없는 고시원 정도가 다큐가 보여준 한계이다. 과연 그럴까? 강남에서 열렬하게 꿈을 향해 살면 누구나 이연화가 되고, 진수현이 될까? 그들이 이룬 꿈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여전히 강남은 트렌디한 1번지일까? 무엇보다 그 트렌디의 실체는?  이연화씨가 트렌디해서 좋다던 그 '아는 언니' 역시 고급스러움을 놓칠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강남에 매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저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이 정말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기는 한 건가? 마치 불을 향해 모여든 나방을 부각하면서, 그 불의 실체를 말하지 않듯, 다큐는 강남에 모여든 '막연한 꿈'만을 조명한다.  모름지기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던 그 옛 속담에서 한 치도 나가지 못한 인식이다. 

 

 

강남, 그 불평등의 역사 
그렇게 강남에 모여든 사람들의 로망을 통해 왜 강남인가를 짚어보려하던 다큐는 강남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이 맑아 청담동, 서울로 가던 나룻터가 있던 동네, 당시 서울은 뚝섬 건너 4대문안이었다. 1963년 강동구의 한 구역으로 서울레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곳. 

1979년 혜은이의 노래 <제 3 한강교>의 유행과 함께 강남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경부 고속 도로와 연결된 제 3한강교처럼, 강남은 북한의 위협을 내세운 정권의 의도적인 배려(?)와 특혜로  각종 정부 기관들이 이전하고, 도시 기반 시설이 자리잡으며 1963년에서 1970년 사이에 이미 땅값 차이에서 강북을 훨씬 넘어서기 시작했다. 

거기에 1976년 강북의 명문고들이 이전하고, 노량진의 학원가들이 대치동으로 옮겨가면서 대치동 인근에만 학원 1200여개, 명실상부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9년전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온 하린이는 이미 어릴 적부터 스펙이 차곡차곡 적립된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한 시간 걸리는 강북의 대안 학교로 옮겼다. 강남에서 3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던 박순이마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할 만큼 거침없이 오르는 강남의 임대료는 곳곳에 비어있는 상가에서 보여지듯이 강남 상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폐업률이 창업률을 앞지는 지는 오래되었다. 지난 20년간 대치동에서 떡집을 운영해오는 손영주씨는 말한다. 그 신화의 강남 사람들, 사실 거대한 집 한 채 만이 그들이 가진 자부심의 전부라고. 하지만, 그런 영주씨도 강남에 한번 살아보는 게 여전한 로망이다. 

 

 

길지 않은 강남의 역사는 새롭지 않다. 옛날에 그랬지 라는 식처럼 강남에 대한 다큐에서 매번 등장했던 회고담이다. 거기에 덧붙인 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 과연 이런 강남살이의 분석이 작금의 '도깨비같은 강남 집값'의 실체를 밝히는 것일까? 그저 '강남'이 떠들썩하자 구색맞춰 만든 건 아닐까?

다큐에서 가장 솔깃했던 부분은 바로  그곳에 사는 그 '엘리트 층'들이다. 정권이 바껴도 여전히 고위 공직자 33%, 국회의원의 29%가 사는 곳, 부동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자기가 사는 곳의 집값에 합리적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어느 보수 신문이 청와대 경제통에게 거칠 것없는 강남 아파트 값을 두고 우선 당신의 집부터 옮겨 보라는 어깃장이 차라리 속시원해 보이는 시절. 비정상을 넘은 지 한참되는 강남 불패의 신화에 대한 다큐의 접근은 철지난 가요의 도돌이표처럼 평이하다 못해 안이했다. 

by meditator 2018. 10. 15. 15:12

경단녀, 이건 또 무슨 신종 여성 비하적 용언가 싶다. 아니다.  '된장녀'같은 어감의 경단녀는 '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이다. 하지만 이 '경단녀'들이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어쩌면 '된장녀'보다도 못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어쩌다 보니 직업을 얻은 게 감지덕지, 직장 내 눈총도, 아이들도, 집안 일도 혼자 '버텨내야'하는 게 버거워 눈물 흘려도 그 흘린 눈물도 혼자 쓱쓱 훔치고 다시 씩씩하게 삶의 전쟁터로 나아서야 하는 여성들,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10월 11일 <다큐 시선-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가 담았다.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 경단녀는 181만 2천 여명에 이른다. 그 중 30대가 92만 8천명, 30대 중 3명에 1명 꼴이다.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이란 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부'로 전업하지 않겠다는 다시 '직장'을 구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한 공기업의 나이와 경력을 묻지 않고 뽑는다는 '블라인드 면접',  50명을 모집하는데 590명이 지원했다. 12;1, 이들 중 상당수가 이른바 '경단녀'다. 이렇게 나이와 경력을 묻지 않는 조건이 흔치 않기에 몰릴 수 밖에 없단다. 이 엄청난 경쟁률에서 보여지듯이 '경단녀'들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직업을 구하는 이들 중 46%만이 취업에 성공한다. 

 

 

재취업을 위한 조건 
마흔 아홉 주수연 씨는 취업 상담도 해주고 구직도 지원해주는 직업 상담사가 되고 싶어 1년간 공부하여 지난 5월 자격증을 땄다. 시청 콜센터에서 7년간 일을 했고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2년간 경력이 단절되었다. 좀 더 보람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선택한 직업 상담사, 하지만 초졸 경력도 없는 그녀에게 새로운 직업의 길은 쉽지 않다. 20곳을 지원했지만 아직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직접 발로 뛴다. 소규모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 일자리 정보, 채용 의뢰를 '스펙'으로 얻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알바'부터 '직업 상담사'의 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전문적인 자격증'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많다. 주수연 씨가 선택한 '직업 상담사'나 요즘 뜨는 '코딩 지도사'등이 여성들이 찾는 새로운 전문직이다.

38세의 김미란 씨는 코딩을 배우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자격증도 있고, 국내외에서 프로그래머로 활약했고, 학교에서 강의도 했던 그녀지만 9년간의 경력 단절 후 다시 경력을 살리긴 쉽지 않았다. 직장은 그녀에게 무능력이란 '트라우마'를 안겼다. 지각, 조퇴, 잔업 불가는 기혼 여성들에게 따라붙는 이름표같은 것이었다. 아이 컨트롤도 못하는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란 낙인이 찍힌 채 위축되었던 기억만을 남겼다. 그녀는 말한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결국 이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과거 자신이 갔던 그 대학, 그 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 주변엔 '소싯적에 한 가락했던'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그녀들이 20대때 경주했던 그 노력과 노력의 결과물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재활용도 안된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그래서 그녀도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코딩'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경력 단절'로 인한 손실은 195조원에 달한다. 그 중 임금 손실이 184억원으로 94.3%에 달한다. 단절된 경력을 회복하기 위해 하지만 이전의 경력을 다시 되살리지 못한 여성들의 상당수가 '사회 서비스 업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직업의 특징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임금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들은 불안정성을 띠고 있으며 지속적이기가 쉽지 않다. 

23년 경력이 단절된 정인화 씨는 매일 6시면 출근을 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노인 요양원의 '청소'업무. 취미가 회화이고, 사회 봉사도 했고, 강의도 했었지만, 막상 남들 다 따놓은 요양 보호사나, 사회 복지사 자격증 하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도 무기 계약직이 되어 64세 정년도 보장된다. 그러나 '일이 밑바닥이지 사람도 밑바닥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김 할 정도로, 취업 과정에서 그녀가 겪은 좌절감은 컸다. 결국 정인화 씨와 같은 설움을 겪지 않기 위해 다수의 여성들이 각종 자격증 시험으로 몰려든다. 

 

 

경단녀라서 
그런데 '경단녀'를 선호하는 곳도 있다. 성실하고, 결근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긍정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닌 경우도 있다. 

김우희씨는 아픈 작은 아이를 위한 갖가지 약봉투를 챙기고 오늘도 출근 길에 나선다. 10년간 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녀, 매일 10시에 끝나는 강사 일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6년간 두 아이를 낳고 돌보고, 그래서 이제 다시 그녀가 직장을 얻은 곳은 인터넷 기반의 회사. 10시 출근 7시 퇴근, 하지만 아이의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을 하고, 조금 일찍 퇴근을 한다. 12시간 교대를 하는 남편은 집안 일을 도와줄 수 없는 형편, 이른바 '독박 육아'의 처지. 그래서 160만원의 박봉이라도 지금의 직장이 감지덕지다. 

그녀가 제일 힘든 건, 그런 그녀의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친정 엄마표 밑반찬으로 때우는 한 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회사에 죄송해하며 버티는 생활, 그래도 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위로'가 필요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3자녀를 둔 미영 씨도 그리 다른 처지가 아니다. 2년간의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웹 디자이너'가 된 그녀, 오전 10시에서 4시 30분, 한 달에 겨우 130만원 남짓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족하단다. 

이처럼 경력 단절 여성을 고용한 직장은 그녀들의 '약점'을 활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라는 약점, 그녀들의 '시간'이라는 약점이라는 틈새를 파고들어 출퇴근을 보장하며 낮은 임금,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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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자체들이 출산지원금을 주니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국감에서 보고가 됐다고 한다(연합뉴스). 그러나 '자화자찬'과 달리, 출산율의 감소세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02년에서 2016년까지 40만명이던 출생아 수가, 2017년에는 35만명, 올해는 32만 명이 될 것이라 예측된다(중앙일보 시평, 식상한 인구 이야기 중). 젊은이들 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은 이들을 드물다. 

전문가는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장된 육아 휴직과 공보육이라고. 정규직이나, 안정적 일자리에만 국한된, 그조차도 일부 직업군에만 보장된 육아 휴직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것이 곧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헬게이트'의 시작이 된다. 그에 이은 전혀 양질이지 않은 공보육. 

상대적으로 보장된 육아 휴직 제도를 가진 여성 군인들의 경우, 우리 나라 평균 출산율인 1.17%보다 높은 1.15%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군 보육 시설 대기 인원만 3606명, 60 개소의 어린이집이 필요하지만 군은 2022년까지 겨우 27소를 확충할 예정이다.(베이비 뉴스, 10, 11) 그나마 낳은 조건이라는 여군이 이런 상황인대 대다수 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을 거인가는 불을 보듯 훤하다. 어설픈 환심성 정책이 아니라, 진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낮밤으로 홀로 감내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 출산율은 나아질 수가 없다. 



by meditator 2018. 10. 12. 15:45

한글은 언제부더 나랏말이 되었을까? 조선의 국문은 '한문'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양반들은 백성들과 소통할 때 어떤 글을 썼을까? 사대부 남편은 아내와 자식에게 어떤 글로 편지를 썼을까? 한글, 언문은 정말 아녀자들만의 언어였을까? 그 의문으로부터 ebs 다큐 프라임 한글날 특집은 시작된다. 

'임금이 이르되 너희가 처음에 왜에게 후리어(잡히어서) 인하여 다니는 것은 너희의 본마음이 아니라, 나오다 왜에게 들키어 죽을까도 여기며 도리어 의심하되 왜에게 편들었던 것이니, 나라에서 죽일까 두려워 나오지 아니하니, 이제 그런 의심을 먹지 말고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너희를 각별히 죄주지 아니할 뿐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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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언문으로 백성에게 내린 글 
1492년 부산포로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점령해 갔다. 5월에는 한양이 함락되었고, 6월에는 평양이 넘어갔다. 7월에는 함경도에서 두 왕자가 잡혔다. 일본군은 관아를 장악하고 마치 고을 수령인 양 백성들에게 쌀을 풀어 회유하며 백성들을 다스리려 했다. 일본군의 서슬퍼런 조총 등의 무력에,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쌀에 점점 다수의 백성들이 투항했다. 더구나 나랏님도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버린 나라에서 백성들이 택한 자구책이었다. 의주의 선조는 다급해졌다. 전장에서 도망친 군주의 면을 세우기 위해 조정은 고심했다. 그 고심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 바로 위의 '선조 국문 유서'이다. 

한글날 특집으로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은 이 '선조 국문 유서'에 주목한다. 72주년 한글날 다큐는 그 특집으로 '암글', 언서', '언문', '속문'이라 낮잡아 취급되었다 여겨졌던 '한글'의 존재를 다시 살핀다. 선조가 국문으로 유서를 내린 1593년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150여년이 흐른 뒤였다. 아녀자들이나 배우는 언문으로 취급받은 줄 알았는데,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다다르는 위급한 상황에 나랏님이 한글로 백성들에게 '유서'를 남겼다. 이는 이미 다수의 백성들에게 '한글'이 '소통'의 도구가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다큐는 전문가의 증언을 통해 말한다.

15세기 한글이 창제된 이후 중앙 정부는 <월인석보>등의 불경 출판물을 통해 한글을 보급하였다. 그런 노력과 함께 후에 발견된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한문 독본 '언문 반절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은 금세 실용적인 언어로 조선에 퍼져나간다. 그래서 16세기가 되면 사찰은 물론,  각 지방 관아 등에서 실용 언어로 한글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그 실례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조의 국문 유서이다. 또 다른 예로, 1592년 진주 대첩 과정에서 초유사로 김시민을 목사로 세우고, 병력 모집 등에 힘쓴 학봉 김성일이 아내에게 보낸 서신이 있다. 경남 산청에서 본가가 있는 안동에 보낸 이 편지에는 다가오는 설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이 없어도 잘 지낼 것을 당부하며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토로한다. 김성일은 이 편지를 끝으로 결국 타지에서 생을 다한다. 결국 이 한 장의 언문 편지가 그의 유서가 된 것이다. 

백성들간의 소통의 문자, 언문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은 계층을 뛰어넘는 소통의 문자였다. 학봉 김성일의 경우처럼 남편이 아내에게, 자식에게, 주인이 노비에게, 혹은 관가의 아전들의 기록과 소통에 두루두루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언문의 대중화'는 언제부터 이루어졌을까? 다큐는 그 예를 '언문 편지'를 통해 살펴본다. 대부분 죽은 이와 함께 매장되었다가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언문 편지는 편짓글이라는  특수성으로 당시의 일상어에 대한 가장 살아있는 자료로, 당시 언문의 대중화 정도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료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는 1490년대로 추정되는 신창 맹씨의 남편 군관 나신걸이 그의 아내에게 보낸 언문 편지이다. 대전 회덕이 집이었던 군관 나신걸, 하지만 그는 본가에 들리지도 못한 채 함경도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의 조선 상황에서 한번 부임을 하면 해을 넘겨야 돌아올 수 있는 처지, 아내와 갓난 아이 한번 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편지로 남겼다. 

1490년이라면 한글이 창제된 지 불과 5~60년 후다. 그런데 벌써 그 당시에 군관이 자신의 아내에게 언문 편지를 썼다는 건, 당시 지방의 여성들조차 한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이 빠르게 보편화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조선시대 대중적 언어, 한글 

역시나 이장 작업을 하다 발견된 17세기의 곽주의 편지에는 '자식들이 여럿 갔으니 ...... 수고스러우시겠으나 언문을 가르쳐 보내시옵소서'라며 장모에게 당부한다. 자식들에게는 '언문'을 배워 아비에게 편지를 쓰라 재촉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대부들 사이에 '언문'은 필수요, 그에 대한 교육열조차 엿볼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밝히고 있다. 

 

 
초성, 종성에 씌인 자음과 중성에 씌인 모음을 결합한 글자들을 배열해 놓은 '언문 반절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서당이나 사가에서 언문을 배울 때 널리 씌였던 한글 교재로 장터에서 인쇄하여 팔 정도로 당시 '언문'은 대중적인 언어였다. 

언문의 위력은 어떠했을까? 앞서 선조 국문 유서가 오늘날 사료로 남게지게 된 건 권탁의 공이 크다. 선조의 유서를 받아 본 권탁은 당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상태입에도 칼을 들고 김해로 갔다. 당시 김해는 왜군들이 득실거리는 지역으로 기피 지역이 되어 지방관이 공석이다시피 한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권탁은 스스로 김해 수성장이 되었다. 그리고 왜군 진영에서 부역을 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임금의 유서를 보여주고 회유, 탈출 작전을 펼친다. 권탁의 의기로 100명의 백성이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권탁은 죽고 만다. 이처럼 나랏님이 쓴 언문 교서는 초야의 선비를 움직였고, 백성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일부 사대부들만의 전유물이었던 한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당시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통 수단이 된 언문, 한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문'이 나라의 글이 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894년 고종은 갑오개혁의 공문식 1호로 국문을 사용할 것을 명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50년만에 나랏말이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8. 10. 10. 04:52

sbs스페셜은 지난 1월 4명의 청년을 방에 가두었었다. 이른바 '고독'연습, 공부와 취업, 취직에 내몰린 청년들, 거기에 일상을 사로잡은 sns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청춘들이 강제된 '고독'의 공간 속에서 3박4일을 보내면서 자기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다큐를 통한 젊은이들의 '자기 성찰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두 젊은이를 '산사'로 유폐했다. 다름아닌 '인생 단어'를 찾기 위해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 프랑스 작가 


'인생 단어'라니? - 현실과 꿈의 딜레마를 겪는 청춘들
서강대 기계 공학과 이준우군 ,경희대 역사학과의 유현기 학생,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는 이 청년들은 각자 나름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준우 군은 마술사다. 한강 고수부지에 나가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마술 버스킹'을 하는 한편 각종 생일 잔치나 파티에서 활약 중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료된 마술, 하지만 이제 사회 진출을 앞둔 그는 자신의 전공인 기계 공학과 마술 사이에서 고뇌한다. 마술을 좋아하지만 그걸로 먹고살기엔 미흡하고, 공학도로 취업을 하자니 어쩐지 삶이 무미건조할 듯하고, 그런 그가 '인생 단어'를 매개로 산사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실패를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꿈은 직업보다 윗단계이다. 나에겐 '요리사', '마술사', '디자이너' 등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다. 
                                      -데니스 홍, 기계공학 박사 


그런가 하면 유현기 학생은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한참 <해리 포터>가 인기를 끌 무렵 탄 지하철에서 그곳 승객들 모두가 <해리 포터>를 읽고 있는 모습에서 '글'의 위력을 느낀 이래, 자신의 길을 '글쓰기'로 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비싼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니 비싼 술을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과 '글쟁이'의 현실에서 그는 갈등하는 중이다. 

이렇게 두 젊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유현기 학생의 친구들이 말하는 바, 요즘 젊은이들의 이상, '덕업일치'를 꿈꾸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다. 바로 그런 '딜레마'의 청춘들이 고독한 산사에서 자신의 '인생 단어'를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은 큰 짐이다. 하지만 그 짐을 기꺼이, 흔쾌히 지고 나며 성취감과 행복이 따른다. 
                                                  -이승엽, 국민타자 


 

 

인생 단어를 통해 길어올린 나

산사의 방, 두 청춘에게 주어진 건 이른바 '인생 사전'이라 꾸며진 국어 사전 한 권 뿐이다.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고 산사의 일정 외에는 혼자 사전을 뒤적이며 그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를 '화두'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청춘을 인도할 인생 단어를 찾기에 앞서, 우선 그들이 지나온 날들을 규정할 수 있는 인생 단어를 찾게 한다. 그런게 길지 않지만 지나온 인생의 단어를 찾으며 뜻밖에도 두 젊은이는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공부하고, 또 대학에 와서도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느라 생각하는 것, 더구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익숙치 않다 못해 낯설다는 준우 군이 선택한 지나온 날을 규정하는 단어는 '관심'이다. 

내 인생의 단어는 '탐구'이다. 2006년 사고가 나기 전 나는 자연 과학자로 바다를 탐구해왔다. 이제 장애인이 된 나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탐구한다. 
                           -이상묵, 서울대 해양과학과 교수 


고등학교 시절 관심받고 싶어 일부러 질문하기도 했었다고 자신을 돌아보는 준우군, 그가 좋아하는 마술 역시 관심받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짚는다. '관심'으로 부터 시작한 단어는 '인정', '칭찬', '관계, '자존감', '타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어'로 부터 이준우란 존재가 길어진다. 

그렇게 '관계'에 천착한 준우군과 달리, 현기 군이 길어올린 '과거'의 단어는 '외동'이다. 외동으로 자라 '관계'맺기가 서툴렀던 그는 왕따가 된 적이 있다. '외돌다', 외딸다 등 외로 시작하던 단어의 세계를 헤매던 그가 찾아낸 지나온 시간의 단어는 '부빙'. 물위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을 이르는 부빙으로 자신을 정의한 현기 군은, 얼음이 떠다니며 깍아지듯, 자신도 살아오며 깎여나가며 고유의 장점이 녹아내리기도 했다며 토로한다. 

믿고 싶지 않다.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 
                             -칼 세이건, 천문학자 


 

 

인생의 나침반- 인생 단어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달리, 마치 무에서 유를 만들듯 앞으로의 삶을 이끌 '나침반'같은 단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이에 두 청춘이 머무는 월정사의 도연 스님은 '인생 단어'라는 거창한 명제에 가로막힌 두 젊은이들에게 기본의 전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왜 당신의 인생 단어를 찾아야 하는가부터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그 자신 물리학도로 카이스트에 입학 후 1년 만에 도반의 생활에 든 경험이 있던 바, 그의 인생 단어는 '자유', 그가 말한 자유는 스스로 자신이 찾아낸 이유라는 뜻의 자유이다. 남들은 왜 전도유망한 물리학도를 팽개치고 도반의 길에 올랐는가 지금도 의아해 하지만, 그는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낸 자유의 길이었다며 두 젊은이에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라 충고한다. 

그러자 현기 군이 떠올린 건 학교 선배 진남현씨, 전남 오나주 고남면에서 농사를 짓는 서른 살 진남현 씨, 그는 남들처럼 출퇴근을 하며 살아갈 생각은 없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다 '농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 농터에 이제 2회 째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너멍굴 영화제'를 개최한다. 진남현이 말한 행복은 '포기'의 과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과정. 

준우군과 현기군과 함께는 아니지만 인생 단어를 찾는 여정에 동참한 또 한 명의 젊은이 안은섭군은 그 방식을 친구들의 인생 단어 수집으로 부터 시작한다. 서울대에 들어왔다는 성취감도 잠시 한 학기만에 그를 엄습한 건 공허감과 허탈감이었다. imf로 어려워졌던 집안 형편, ceo가 되고 싶어 선택했던 경영학과, 하지만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건지, 되야 했던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연 내 꿈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그 역시 인생 단어를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결정의 기준은 나, 인생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이현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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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 꿈도 부등켜 안고 
세 명의 젊은이는 결국 각자 자신의 인생 단어를 찾는데 성공한다. 제일 먼저 결정한 건 현기군이다. 비싼 술도 좋지만, 생각해 보니 '무위도식'을 바라진 않았다. 고달파도 자신의 글로 먹고 사는 삶의 보람을 그렸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단어는 '꺼리낌없이 주장되고 발휘된다'는 '창달'이다. 마술과 공학도의 길에서 헤매이던 준우군이 선택한 단어는 뜻밖에도 '책임'과, '중도'이다. 되돌아보니 자신이 소소하게 책임을 다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더라는 준우 군, 왜 그런 자신을 몰랐을까 신기하더던 준우 군은 그 '책임'을 다하는 삶을 위해 마술과 공학도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도를 해보겠다며 산사를 떠난다. 은섭군 역시 '공감각'이란 단어를 통해 자신이 하고픈 '디자인'과 현재 자신이 공부하는 '경영'의 '조화'를 찾는다. 

가장 피상적인 단어'를 통해 접근해 들어간 젊은이들의 인생 나침반 찾기. 자신의 과거로 부터 길어진 단어를 통해, 뜻밖에도 처음과는 다른 자신을 '직시'해가는 과정이 의미있다. 그리고 그로 부터 세상과 함께 살아갈 '나침반'을 찾아가는 여정은 어렵지만 '꿈'도, '현실'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by meditator 2018. 10. 8. 16:19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은 오랫동안 미드에서 활약을 펼치던 김윤진 씨의 모처럽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에서의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제치고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니만큼 과연 김윤진의 선택을 받을만한 작품인가에 대한 촛점이 맞춰진다. 

김윤진 배우는 그 선택의 주된 박진우 작가를 들었다.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 중 여전히 명작으로 회자되는 <한성별곡>의 박진우 작가, 이후 <닥터 이방인(2014)>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천재 탈북의사라는 신선한 시도는 인정받았다. 그런데 모처럼 돌아온 박진우 작가가 선택한 건 뜻밖에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추리 소설가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탐정 중 한 명인 '미스 마플'이다. 

 

 

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영국의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는 80여편의 작품으로 전세계 103개의 언어로 번역, 40억부 이상이 팔려 기네스북에 등재된 베스트 셀러 추리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소설은 물론, 영화, 연극, tv 시리즈로 재가공되어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활약' 중이다.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을 이끄는 탐정은 늘 프랑스인이라 오해받는 벨기에인 에르큘 포와롱와, 수더분한 동네 할머닌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예리한 미스 마플 두 사람이다. 에르큘 포와로가 1914년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부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까지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리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질 때까지를 이끈 인물이었다면, 1930년대 이후 추리 소설가로서 정점을 이루던 시기에 <목사관 살인 사건>으로 미스 마플을 등장하여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의 후반부를 빛낸다. 

그렇다면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에르큘 포와로가 등장한 대표작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나일 살인 사건>이듯이 포와로 탐정은 유럽을 횡단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라던가, 나일강을 유람하는 배처럼 공간의 역동성이 작품의 배경이 된다. 이방의 공간, 지역에 모여든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인물들, 그들이 숨겨온 이력들이 날카로운 포와로 탐정을 통해 해부되고, 그들의 과거의 인연을 통해 사건이 풀어헤쳐진다.

그에 반해, 미스 마플은 영국의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평생을 살아온 독신 노인 제인 마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조용한 시골마을, 그곳에서 뜨개질이나 하며 동네 사람들과 수다나 떠는 할머니, 하지만 그 '동네 사람들'과의 친교 과정에서 얻어진 그녀 특유의 '직관'과 '관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할 열쇠를 얻어낸다. 

바로 이 '마을'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여성 탐정을 박진우 작가는 <미스 마>의 주인공으로 초빙한다. '마을'은 그간 sbs장르 드라마가 그간 잘 활용해 왔던 공간이다.  2015년 방영한 <아치아라의 비밀> 에서도, 얼마전 종영한 <시크릿 마더>에서도 '사건'의 중심은 '마을'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마을, 하지만 그곳에 인간의 본능과 관계들이 엮어낸 사건이 벌어지고, 그곳에서 인간 관계의 복잡한 애증이 그것들을 증폭시켜나가는데 sbs의 장르 드라마는 이런 것을 남다르게 주목해 왔고, <미스마 복수의 여신> 역시 한국으로 온 미스 마를 통해 이 '장점'을 신도시 중산층 단지의 '무지개 마을'로 살려낸다.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질 복수극
하지만 박진우 작가는 마을 탐정 미스 마플을 '무지개 마을'로 되살려 낸 것에 더해, 거기에 '복수'라는 요소를 가미한다. 영국 시골 마을의 노처녀 할머니 탐정 미스 마플은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는 혐의로 복역 중 탈주에 성공하여 진범을 찾으려 한 엄마로 재해석되었다. 

덕분에 드라마는 한 편에서는 미스 마플 시리즈 특유의 마을에서 벌어진 갖가지 인간 관계로 부터 빚어진 사건을 한 축으로 하며, 거기에 탈주범 미스 마의 진범찾기와, 그런 미스마를 추격하는 한태규(정웅인 분)와 양미희 검사(김영아 분)의 쫓고 쫓기는 스릴러의 묘미를 더한다. 

10월 6일 방영된 1~4회 중 1,2회는 보호 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던 미스마의 탈옥 과정을 박진감있게 그려내었고, 3,4회는 탈옥에 성공한 미스마가 무지개 마을에 노처녀 추리 소설가로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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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미스 마플의 전반부는 김윤진의 헌신적인 호연과 정웅인, 김영아의 안정적인, 혹은 강렬한 연기, 그런 연기와 스릴러적 상황을 잘 버무려 낸 제작진의 협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에 반해, 3,4회 무지개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진 미스 마플 특유의, 혹은 sbs특유의 공간 장르물은, 앞서 1,2회의 박진감 넘치던 스릴러의 톤과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별화된다.

결국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의 성공은 아기자기한(?) 무지개 마을의 사건과 미스 마의 탈주 사건은 적절히 조화해 낼 수 있는가에 달릴 것이다. 거기에  우리나라 장르물들이 가지는 특유의 B급 정서를 과연 주말 드라마로서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이 얼마나 극복해 낼 수 있는가 여부도 더해진다. 또한 아직까지도  미스 마의 대사를 통해 등장하는 '인간의 본능' 운운하는 날선 대사와, '추리'를 명목으로 안갯속처럼 시청자들을 모호하게 이끌어가는 서사의 딜레마를 과연 <미스마 복수의 여신>은 조절해 나갈 수 있는가도 관건이 된다.  전작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을 통해 기존의 주말 드라마와는 차별적인 '장르'적 특성을 가진 드라마로 일정 정도 승부수를 띄운 SBS주말극이 안착할 수 있을지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의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8. 10. 7. 16:58


사랑의 모든 언어는 과도한 사용으로 훼손되었다. 내가 차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때면 내 사랑은 우연히 흘러나오는 사랑의 노래들로부터 아주 수월하게 힘을 얻었다. 내가 끌로이에 대해 느끼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런 노래에 영향을 받았을까? 사랑한다는 나의 느낌은 그저 특정한 문화적 시기를 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일주일 동안 드라마가 범람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들 대부분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이 아닌 이야기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과연 드라마들이 말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사람을 변모시킨다. 집에선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던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새벽같이 도시락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에서 부터 '호르몬의 화학적 변이'의 폭은 무궁무진하다. 사랑의 완성는 결혼일까? '결혼 '이 선택인 시대,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예전에 노래를 시키면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사랑하며 애절한 유행가로 자신의 사랑을 기억했던 선배가 있었다. 철 모르던 그 시절엔 웃으며 넘겼지만 마치 남자에게 사랑은 유행가 한번 불러제껴버리면 될 것이었나 싶어 뒤늦게 씁쓸하다.  여기 '사랑'으로 인해 '삶'자체가 변화된 남자들이 있다. 사랑은 그들이 가졌던 것들, 국가, 재산, 지위, 그리고 목숨까지 버리게 했다. 사랑으로 인해 '성숙'된 남자들을 통해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를 짚어본다. 


 

 

나라를 버렸다-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 
유진 초이(이병헌 분), 그는 이방인이었다. 검은 머리 미국인. 명령에 따라 조선에 주둔한 것일 뿐이었다. 그에게 조선은 망해도 상관없는, 아니 자신의 부모님을 죽이고 자신을 먼 타국으로 쫓아낸 사람들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이 나라는 망하는 게 당연한 나라였다. 

해병대 장교로서 임무에 따라 미 공사를 처리하고자 담위에 올랐던 유진은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총을 겨누던 한 여인을 만난다. 두건을 쓴 '스나이퍼'가 여인이었다는, 그리고 그 여인이 조선 명문가의 여성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 취조를 당해도 부족할 판에 공사관 자신의 자신에 떠억하지 앉아 이방의 군인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당당한 태도에 그 호기심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걸어들어간 사랑, 거기엔 그가 사랑했던 고애신(김태리 분)가 당연히 목숨조차 던지겠다고 하는 바람 앞에 촛불같은 조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애신의 곁에는 생면부지의 어린 그를 구해주어 미국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도공 황은산(김갑수 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 은인이 목숨받쳐 지키고 싶다는 나라 조선, 그런 그들로 인해 '조선'이, 부질없는 짓이던 '의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유진은 '사랑'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버린 조선에 냉소적이었다. 대한제국의 왕이 명한 신식 군대 고문조차 걷어찰 만큼. 그런 그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신병의 입대를 기꺼이 눈을 감아준다. 그들이 저지른 무모한 작전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선다. 사랑하는 이로 부터 시작된 그의 '행보'가 '사랑하는 이들'로 넓혀져 간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록 그의 분노도 깊어진다. 모리 타카시를 스스로 총으로 정죄할 만큼. 

유진은 마치 서부 영화 속 남자 주인공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장교라는 공적인 직위를 가졌지만 그 공적인 지위는 어떤 사명감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다 보니 얻어진 '생존'의 대가, 총을 들어 자신을 지켜왔고, 그 대가로 '미국인'이라는 특권(?)까지 챙긴 그가 자신의 생존이 아닌 다른 이유로 총을 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나라가 조금 더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어머니가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졌듯,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몸을 던져 구하려는 조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초개'처럼 던진다. 그는 죽어갔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검은 머리 고독한 이방인이 아니다. 조선 의병 4소대 소대장 유진 초이이다. 충만한 사랑의 완성이다. 

 

 

'재벌'을 버렸다 - <황금빛 내 인생> 최도경
드라마 속 '재벌'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환타지같은 재벌남과의 연애사'에 이의를 제기한다. 드라마 방영 당시 과연 누구의 황금빛 내 인생이었을까로 시청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88만원 세대에서 하루 아침에 재벌가의 딸이 된 서지안(신혜선 분)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해성가를 물려받을 최도경(박시후 분)의 '본투비 재벌 인생'이었을까? 하지만, 드라마는 그 '황금빛 인생'하면 'Gold'와 함께라는 우리들의 고정 관념에 발을 건다. 

그 시작은 롤러코스터같던 재벌가 딸 데뷔를 마친 날 저녁 '맥주'를 외치는 동생 서지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 찾은 편의점에서 였다.  아직 오빠인 최도경에게 서지안은 어릴 적 꿈을 묻는다. '사장, 사장, 회장'이라며 당연한 그걸 왜 묻냐는 오빠 최도경에게 지안은 '불쌍하다'했다. 세상에 재벌가 회장이 될 사람에게 불쌍하다니. 그런데 지안은 말했다. 꿈꿔보지 못한 삶, 나면서 부터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오빠의 삶이 안됐다고. 처음으로 도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88만원 세대의 고군분투기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중반부를 들어서며 최도경의 '스토커처럼 집요한' 사랑, 아니 재벌가 최도경의 '사랑'을 빙자한 자아찾기로 변해간다. 그와 약혼할 뻔했던 장소라처럼 야무지게 주식과 예금을 챙기며 해성가를 나서려했던 최도경은 창업주 할아버지에게 들켜 명품시계까지 끌르고 홀홀단신 해성가를 떠나게 된다. 며칠이면 두 손 들고 백기 투항할 꺼라던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최도경은 예의 '긍정적 마인드'로 갖은 알바 자리를 전전하며 쉐어하우스에 머물며 호시탐탐 서지안과의 사랑을 노린다. 

하지만 그 '사랑'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재벌가의 실상을 처절하게 알아챈 연인 지안이 그를 거부했고, 해성가 사람들이 그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해성을 떠나 알바를 전전해도 '해성'이라는 세계로 지안과 함께 손잡고 돌아갈 날을 기약하는 도경의 본투비 재벌 의식이 그의 사랑에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지안을 사랑한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곳, 여전히 한 귀퉁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려놓지 않은 그의 안이한 사랑법은 끝내 상처만 남긴다. 이미 가진 자와 못가진 사이의 '계급'이 형성된 사회에서 안이한 환타지는 존재치 않는다고 드라마는 대못을 박는다. 

'사랑'이란 매개를 통해 드라마는 재벌 최도경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드라마는 낭만적인 재벌가와 평범한 여성의 사랑에 대한 환타지 그 허상을 집요하게 반박한다. 최도경이란 인물을 통해 '재벌가의 승계'라는 정해진 삶이 최선이냐 묻는다. 당신의 안이한 사랑이, 적선하듯 던져진 호혜가 얼마나 많은 상처로 돌아올 줄 아느냐 반문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최도경은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고단하고 혹독하지만 진짜 신나는 진짜 황금빛 내 인생을 열어보인다.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랑은 '양수겸장'이다. 사랑도 하고, 자신의 꿈도 찾는다.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 덕분에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나무로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는 마지막 회 최도경의 '사랑 고백', 이것이야말로 소현경 작가가 말하고픈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이다. 




집을 버렸다. -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남세희

세희에게 집은 무덤이었다. 이십대 시절 사랑했던 연인을 지켜주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그 사랑이 끝남과 함께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시간을 담당하는 뇌의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가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매일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하지 않아하듯이, 그는 고양이와 함께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했다. 아직 갚아야 할 융자가 많이 남아있는 집에서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며 시간을, 자신의 감정을 죽여갔다.  그렇게 집은 그에게 죽어갈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던 여자 윤지호를 우연찮게 하우스 메이트로 만난다. 서른 살의 실패로 슬퍼하던  그녀에게 이번 생은 그 누구도 처음이라며 건투를 빌어주던 그가 조금씩 마음의 틈을 열어주기 시작한다. 편의적으로 시작한 '동거'가, 편의적인 '결혼'이 되어가며, 그녀의 깔끔한 정리정돈과 청소가 좋았던 것이 어느덧 그녀와 함께 한 공간의 온기에 익숙해지게 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를 보며 함께 마시던 한 캔의 맥주가 홀로 즐기던 유일한 취미에서 둘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감으로 바뀐다. 감정이 없을 것같던 그가 그녀로 인해 흥분하고 분노하며 분출한다. 십여 년을 자신의 속에 봉인했던 숙제를 직시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달팽이처럼 자신의 집에 웅크렸던 남세희는 윤지호를 통해 이십대 시절 단절했던 관계와 세상에 본의 아니게 자꾸 한 발씩 내딛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던 유일무이한 담보였던 집, 세상 밖으로 나온 남세희에게 이제 사랑하는 이가 없는 집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가 없는 집이 그에겐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에겐 그에게 집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무덤'이 아니라, 옥상의 단칸 방이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픈 '스위트 홈'이 되었으니까. 



공교롭게도 위의 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물의를 일으켜 한동안 '자숙'을 했던 배우들이다. 그들이 돌아와 택한 캐릭터들은 뜻밖에도 목숨도, 재산도, 가진 것을 모두 던져 여성을 사랑하는 '순애보'의 주인공, 여전히 그들의 순애보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따르는 '잡음'이 깨끗이 일소됐다고 할 수는 없다. 과연 연기를 통해 승부수를 던진 이들, 그들에 대한 용서와 인정은 결국 대중들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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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8. 10. 4. 17:07

올해 들어 벌써 3번째 한진 조양호 회장이 소환됐다. 압수 수색은 18회,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부사장, '물벼락 갑질' 전 조현민 진에어 이사장, '운전기사 폭행' 이명희 일우 재단 이사장까지 구속영장만 다섯 번 발부되었다. 그런데,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고, 조양호 회장은 건재하다. 심지어 땅콩 회황으로 잠시 배제된 조현아 부사장은 3년 4개월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sbs스페셜>은 총수 중심의 경영, 각종 갑질과 인성 논란이 반복되는 '오너 중심'의 우리 기업 문화에 대한 화두를 내건다. 바로 <ceo, 사표를 쓰다> 이런 오너 일가 중심의 황제경영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법적 시도는 이루어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확고한 경영 체제, 책임지지 않는 경영, 그에 대해 다큐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목소리를 높인다. 

 

 

쫓겨나는 미국의 ceo들
이제는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하지만 우리는 그 '신화'의 여정에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의 과거 이력이 있음을 기억한다. 과연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아이폰'의 신화는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황제' 경영은 그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한 '경제 전반'의 적폐, 나아가 경제의 적체, 바로 그 지점을 다큐는 꼬집는다. 

우리 나라에서도 잠시 화제가 되었던 '우버 택시', 이 화제의 우버 택시 사주는 이제 '실업자'다. 108개국에 우버 택시 앱을 개설하여 80조원의 이익을 남겼던 스타트업 기업의 신화, 그는 지난 2017년 사퇴했다. 

포춘지의 기자 아담 라신스키가 취재한 우버 택시를 만든 트래비스 갈라익은 강렬한 개성과 전투적인 리더쉽을 가진 인물이다. 우버 택시로 전세계적 슈퍼 ceo로 우뚝 섰지만 그 스스로 '실패의 선구자'라 칭할 만큼 4번의 사업 실패 끝에 우버 택시를 전세계적 기업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실패의 아이콘이던 그는 우버 택시의 성공으로 인기와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전투적인 리더쉽과 강렬한 리더쉽의 그림자는 그를 ceo 자리에 머무를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다. ceo로서는 부적절한 사내 메일의 여성 차별적 발언들, 여성을 배려치 않는 사내 문화 등은 우버 엔지니어였던 수전 파울러가 미투 운동의 촉발자가 되도록 했으며, 무인 차량 개발을 위해 타사의 사내 비밀을 훔쳤다는 등 불법적이며 비도적적인 경영 방식에 대한 비난은 '우버 앱 삭제 운동'으로 이어지며 '악몽같은 ceo'라는 평판의 주인공이 되었다. 

탁월한 ceo와 비행을 저지르는 청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평가를 받던 트래비스에 대해 이사회는 트래비스에 대한 사임을 결정했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 문제로 인해 그가 더 이상 집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건 그의 비행이 원인이 아니었어요. 그를 둘러싼 많은 논란, 그의 비행과 태도가 그로 하여금 직무에 집중하고 잘 해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하루를 다른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는데 보낸다면, 어떻게 CEO로서 해야 할 업무를 볼 수 있겠어요. 그것 때문에 그가 해고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담 라신스키, 우버 인사이드, 


 

 
ceo도 자르는 미국의 이사회 
여기서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ceo도 자를 수 있는 미국의 '이사회' 제도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사외 이사 제도가 있다. 하지만, 종종 사외 이사들이 과도한 '수당'을 챙겼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듯이 우리의 사외 이사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뿐만 아니라, 사외 이사의 비중이 크지도 않고, 기업 임원들로 채워진 이사진에 비해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오너 일가와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로 채워져 독립성 보장은 커녕 오너 일가 권익 보장에 힘을 보태기가 십상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이사회는 권력의 중심이다. 이 이사회에는 외부 인사들로 이루어진 독립 이사들이 있다. 우버 택시에서 트래비스에게 사퇴 결정을 내린 이사진들 중  에릭 홀더 전 법무부 장관 등의 독립 이사진의 역할이 텄다. 

이들의 입장은 단 하나다. '남의 자본을 끌어 들여 사업'을 하는데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 문화에서 경영은 스포츠 팀과 같다. ceo는 황제가 아니다. 스포츠 팀의 감독과 같은 역할일 뿐이다. 잘 나갈 때 감독은 칭송받지만 팀이 패배하면 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듯이, 경영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언제든 ceo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파존스 피자의 존 슈내터, 직접 광고에 출연하는 등 역시나 입지전적으로 이 피자 브랜드를 성공시켜낸 인물, 하지만 전화 회의 중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켜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이유로 사임당했다.

 

 

한 개인의 독단이어서는 안되는 경영 

이렇게 미국은 ceo의 독단적 경영을 제어하기 위해 이사회란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 같은 이사회지만 독일의 경우는 성격이 다르다. 독일 최대의 드럭스토어 로스만, 아버지에 이어 아들로 이어진 이 가족 기업, 아버지와 아들은 공동 경영을 한다. 하지만 경영 체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유럽의 3500여개 100억 달러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비가족 ceo  두 명과 함께 공동 경영 체제를 갖춘다. 거기에 다시 외부 고문단에 더해지고, 이사회에는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 또 다른 독일 기업 지멘스 역시 감독 위원회를 두고 거기에 전문 경영인을 참여 시킨다. 

알리바바는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나는 영원히 알리바바에 속할 것입니다.” 
                                                     - 마윈



그런가 하면 중국의 대표적 기업이자 세계적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10일 알리바바 창설 19주년이 되던 날 은퇴를 선언했다. 중국 시장 점유율 1위, 시가 총액 4000억 달러의 회사를 물려받은 이는 그의 아들도, 손자도 아닌 11년전 알리바바에 합류해 능력을 인정받은 조력자 장융이었다. 

1999년 항저우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마윈 회장.  그는 회사가 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한 2005년부터 승계를 준비해 왔따. 승계에 앞서 그는 한 개인의 역량이 지배하는 조직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집단 지도 체제인 '파트너쉽' 제도를 만들었다. 6명의 대표가 1인 1표를 행사하는 이 집단 경영 체제는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워내며, 동시에 조직의 신선함을 유지시킨다. 이를 위해 일정 나이가 되면 파트너에서 물러나도록 제도화하여 현재는 70년 이후 출생자들로 이 조직이 채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파트너쉽 참여를 적극 독려한다. 

미국, 독일, 중국 등 이들 나라의 세계적 기업이 보여주는 경영의 유연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마윈이 말하듯 한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영의 위험성이 가장 크다. 알리바바의 파트너쉽 체제가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 맞추어 가고자 계속 젊은 세대로 물갈이를 하는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세계적 기업들은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조직적 변화를 꾀한다. 뿐만 아니라, 우버 택시에서 보여지듯, 기업이 한 개인이 만들었다 해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자본이 유입된 경우 더 이상 개인에 의존한 기업이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세계 유수의 국가들, 그곳의 세계적 기업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경영 방식을 변화시켜가고 있다. 과연 이런 세계적 기업의 흐름에서 황제 경영 방식을 고집하며 오너 일가와 관련된 부도덕한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우리의 기업들은 경쟁력이 있을까? 자본은 변화요, 흐름이다. 과연 그 흐름에서 우리의 기업들은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 거일까. 다큐는 묻는다. 

by meditator 2018. 10. 2.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