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하늘 빛이 서러워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라는 천상병 시인의 문둥이란 시로 시작되었다. 아니, 그 시의 한 구절, '애기 하나 먹고'처럼 드라마는 '아이'의 희생에 대한 사건을 '시'로 수식하여 시작되었다. 

 

 

죽음과 시, 그리고 아이
시작은 아이의 죽음이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이제 곧 세상으로 올 둘째 아이를 가진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아동 상담사 차우경, 그렇게 햇살같았던 그녀의 일상은 우연히 그녀 앞에 뛰어든 어린 소년으로 인해 어둠이 깔린다. 그렇게 우경에게 벌어진 우발적 사고와 함께 시작된 강력반에 배당된 의문의 사고들, 아동학대 치사 공범이 차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되고, 그 범인은 스스로 '자해'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고, 아내와 딸을 학대하던 남자는 차에서 역시 스스로 연탄불을 펴서 자살을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방기된 채 상담센터에서 아이를 기르던 젊은 엄마 역시 '썩어서 허물어진 살 그 죄에 무게'라는 붉은 페인트 낙서에 둘러싸여 미이라가 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미이라가 된 젊은 엄마를 발견한 계기로, 거기에 알고보니 강력반 형사 강지헌(이이경 분)의 전연인이 차우경 남편의 내연녀였던 인연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두 사람의 행보는 겹쳐진다. 그저 의아심만으로 사건에 접근해 들어가던 지헌에게 우경은 젊은 엄마 시체의 발견에서 부터, 개장수인 그 전 남편의 집 수색,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의 발견 등등 적극적인 활약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개별적인 사건들 사이에 '아이', 그것도 친부모로부터 방기되고 학대당한 아이가 있음을 밝혀낸다. 

 

 

개장수로부터 학대당하던 떠돌이 소녀 출신의 엄마는 상담 센터에 숨어 아이를 키우지만 거의 방기하다시피한다. 그리고 아이의 눈 앞에서 그 '누군가'에 의해 천식 호흡기를 빼앗긴 채 죽어 '죄의 무게'의 대가를 치룬다. 아내를 때려 탄 보험금으로 노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딸 아이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던 아빠에게는 아내가 사간 연탄불이 배달되었다. '자살'이나 '의문사'로 처리될 죽음의 속에 숨겨졌던 '붉은 울음'이 강지헌의 추궁으로 드러나며, '학대된 아이'가 매개된 사건에게 '배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천식 기침에 숨이 넘어가던 엄마의 호흡기를 치운 사람도 붉은 울음일까? 과연 붉은 울음은 누구일까? 

미친 여자 차우경, 그녀는 누구일까? 
드라마의 시작은 '아이'에게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차우경이었다. 자신의 차로 뛰어든 소년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받던 그녀, 남편이 떠나갔을 때 결국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아이를 죽인 죄의 대가라 감내하려 했던 우경,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으스스한 낡은 창고도, 위험해 보이던 개장수의 집도 마다하지 않던 우경, 그녀의 '정의'에 시청자는 함께 시선을 맞추어 <붉은 달 푸른 해>의 서사를 따라갔다. 

 

 

그런데, 동시에 그런 우경으로 인해 혼돈스럽다. 그녀의 차에 뛰어든 건 초록원피스를 입은 대여섯살 정도의 여자 아이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보다 훌쩍 더 큰 남자아이였던 그 순간부터, 시시때때로 그녀의 눈앞에 등장하는 그 '초록옷의 여자 아이'는 우경만큼 시청자들을 혼돈으로 빠뜨렸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우경은 그 '아이'가 이끄는 대로 사건의 현장에 뛰어들어 두 아이를 구했다. 미이라가 됐던 젊은 엄마의 딸과, 그녀의 차에 치어죽어간 소년의 동생, 모두 초록옷 소녀를 찾아 헤맸던 행로의 끝에서 만난 학대받고 방기된 아이들이다. 

과연 초록옷 소녀는 누구일까? 여전히 초록옷 소녀가 보이냐는 지헌의 질문에 우경은 이제 더 이상 그 아이로 인해 혼란스럽지 않다 한다. 그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을 구할 수 있던 우경, 하지만 그뿐일까? 남편의 외도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부엌에서 칼을 들고 뛰쳐갈뻔 했을 때도, 그리고 이제 자신이 치어 죽인 아이를 '돈'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채 외면하는 엄마를 차로 밀어버릴 뻔한 순간에서도 우경을 저지하고 위로한 이는 '초록옷 소녀'였다. 

그리고 12회 마지막 초록옷 소녀의 몽타주를 작성하던 우경에게 떠오르는 과거의 한 장면,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쓰러지던 그 '초록옷 소녀'. 그리고 그 순간 경찰서의 강지헌에게 떠오른 가장 유력한 사건의 배후, 붉은 울음, 그리고 차우경이다. 즉 1회에서 부터 12회까지 헌신적으로 사건을 이끌어 오던 우경은 동시에 늘 사건의 현장, 혹은 사건의 연결고리가 되어 등장했던 것이다. 심지어, 미이라가 된 젊은 엄마를 발견하기까지. 과연 우경은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그건 마치 우경이 치어 죽였지만, 그 소년에 애닮아하며 그 동생을 구한 그 정황과도 유사하다. 그 사건은 우경에 대한 또 다른 상징일까?

 

 

거기에 더해진 의미심장한 관계, 바로 우경과 우경의 새엄마(나영희 분), 그리고 뜻모를 미소를 지은 듯한 여동생(오혜원 분)이다. 우경의 자매를 살갑게 보살펴 주는 듯하지만 한 순간 얼음장처럼 돌변하는 새엄마, 그 앞에서 죄지은 아이처럼 쩔쩔매는 우경, 과연 이 세 모녀의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 있을까가 우경의 존재에 대한 키가 된다. 

그리고 그 키에 대한 힌트는 뜻밖에도 우경이 자신의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에서 등장한다. 다섯 살 딸에게 밤마다 읽어주는 동화, 첫 날 읽어주던 동화는 아기 돼지 삼형제, 다음 날 읽어주던 건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제목의 '해와달'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경의 구연을 통해, 해석을 통해 풀이된 이야기의 공통점은 바로 '형제'와 '오누이'가 있고, 그들에게 '선한 부모'인 척 다가가는 '늑대'와 '호랑이'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상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경의 기억 속에 등장한 초록옷 소녀는 학대당한 우경인가, 아니면 우경이 알고보니 가해자인가. 아니면 그저 우경이 쫓고있는 아동 학대 사건들의 상징인가. 드라마는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들을 뿌려대며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학대당한 아이의 사건들로 풀어가던 <붉은 달 푸른 해>는 이제 12화를 기점으로 초록옷 아이의 망상에 시달리던 주인공 우경에게로 다가선다. 그녀의 말처럼 '선의에 의한 악행'일까? 아니면 어릴 적 사고로 인한 이중 인격의 발현일까? 아니면 그저 어떤 사건으로 인한 피해 의식이 이제 그녀를 아동 학대의 지킴이로 만들었을 뿐일까? 아동 학대 사건의 씨실 사이로 구비구비 엮어진 차우경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사실 차우경만이 아니다. 그녀를 비롯한 등장 인물 모두가 다 의문스러운 <붉은 달 푸른 해>는 시청률은 꼴찌지만 보고 뜯고 추리하는 재미는 '대박'이다. 

by meditator 2018. 12. 7. 15:08

'드라마 왕국의 부활'을 내세웠던 mbc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포진한 마지막 작품은 바로 수목 미니시리즈 <나쁜 형사>이다. 2016년 <피리부는 사나이> 이후 2년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신하균을 주인공 나쁜 형사인 우태석 역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영드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이 자자했던 <루터>의 '리메이크' 작이다. 

 

 

또 한 편의 영드 리메이크가 왔다.
올 한 해 그간 우리나라에서 스테디 셀러가 되다시피 했던 '일드(일본 드라마-)'나 미드(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들이 <하늘에서 내린 일억개의 별>이나 <미스트리스>의 경우에서 보여지듯 부진했다. 그런 <라이프 온 마스(2018.6~8)>가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에서 성공하며 범람하는 제작 편수와 상대적으로 고질적 콘텐츠 고갈에 시달리는 드라마 시장에 '영드'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셜록> 신드롬에서 보여지듯이 이미 우리에게 '영국 드라마'는 낯선 것이 아니다. 거기에 이미 다수의 영드들이 미드로 '번안'되고 있듯이, 그 작품성과 대중성의 면에서 '영드'는 이미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2018을 마무리하는 mbc 수목 드라마로 영드 <루터>가 등장했다. <셜록>, <라이프 온 마스> 등을 통해서 보여지듯이 '영국 추리, 혹은 수사 드라마'는 독특한 설정과 서사 구성으로 이미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시즌 4를 마친 <루터>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터>를? 아니나 다를까, 공중파 10시에 하는 미니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리메이크 작 <나쁜 형사>는 19금의 딱지를 달고 방영을 시작했다. 15세가 보기에는 잔인해서? 아니 그건 태생적으로 19금의 캐릭터를 품은 한국으로 온 루터, 우태석 형사 때문이다. 

 마블의 '토르' 시리즈에서 아스가르드의 문지기인 해임달 역할로 우리에게 얼굴을 알린 이드리아스 엘바가 분한 루터는 영국의 강력범죄 수사관이다. 범죄자 심리 파악에 능하고 거기에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건 해결 능력이 뛰어난 수사관이지만,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고 때로는 '정의'의 이름으로 나쁜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고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바람에 늘 감사의 대상이 되는 골치덩어리이다. 

바로 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의 구현'을 하는 이 캐릭터가 그간 늘 '법'의 테두리 내에서 '악', 심지어 권력의 비호를 받는 '거악'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무릎을 끓어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던 우리 수사드라마 풍토에 신선한 인물 우태석으로 돌아왔다. 

 

 

신하균 맞춤의 우태석 표 나쁜 정의
우태석, 전국 강력 범죄 검거율 1위, 넥타이까지 갖춰 맨 딱 떨어지는 슈트에 멋들어지는 중년의 형사지만, '죄지은 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그의 신조로 인해 늘 그의 수사 방식은 윗선을 좌불안석에 떨게 만들며 '감사'와 '감봉'의 처지에 그를 놓이게 만들고, 그런 그가 불안하다며 아내는 '이혼' 서류를 내민 형편이다. 

'잘 할게, 처갓댁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할게'라는 그의 읍소에 아내는 반문한다. '과연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걸 놔두고 달려올 수 있겠는가'라고, 그리고 이혼하기 싫으면 '형사'를 그만두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아내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어린 아이를 놔둔 채 사라진 젊은 엄마의 실종 사건을 쫓는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초보 순경 시절 그를 좌절케 만들었던 검사 장형민(김건우 분)과 조우한다. 

그가 잡은 아이 납치범을 강압 수사라며 구속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은 검사, 하지만 단지 그 사건 이상 우태석을 오늘의 '걸어다니는 시한 폭탄'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장검사다. 

실종된 여고생을 찾아 풀숲을 수색하던 그날, 밤 늦은 시각 그곳을 배회하던 또 다른 여고생에게서 그는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다. 자신에게도 너같은 동생이 있으니 보호해주겠다며 약속을 했던 그, 하지만 그런 그날의 약속은 처참한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 우태석은 그날의 사건 현장의 목격자와 같은 어린 아이를 아무 것도 모른다며 보호하는 대신, 장형민에게 '미끼'를 던진다. 

피해자의 치아를 날로 뽑아대며 쾌감을 느끼며, 그 고문 현장의 증거를 깔끔히 인멸하는 그의 용의주도한 범죄 방식을 역으로 이용하여 사건 현장을 조작하는 듯한 인상을 줘 장형민을 사건 현장으로 불러들인 우태석,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 수사 드라마가 그러하듯 음산하고 위험한 공장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앞서 장형민이 구속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은 그 사건에서 처럼 난간을 사이에 대치하게 된다. 

난간에 매달린 장형민, 그런데 우태석은 앞서 사건보다 한 술 더 뜬다. 양 손으로 매달린 장형민의 손을 구두로 짓밟고 결국 그는 높은 난간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아마도 장형민의 손을 잡아 '법의 심판대로 갔다면 검사였던 그의 신분으로 '법망'을 유유히 피해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를 상황, 우태석은 그런 번거로운 절차 대신 이미 10년전에 죽었어야 했다며, 그랬다면 아이 엄마도 죽지 않았을거라며 스스로 '심판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이 드라마가 19금인 이유가 된다. 

 

 

'법'의 절차 대신, 스스로 '심판자'가 된 우태석,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나쁜 형사'에 시청자는 동시간대 1위, 7.1, 8.3%의 시청률로 답했다. 물론 거기엔 영드 <루터>의 이드리아스 엘바 저리가라 할 모처럼 돌아온 '나쁜 정의'의 캐릭터에 안성맞춤인 돌아온 '하균신'의 존재감이 크다. 그리고 드라마 왕국 부활의 기치를 내걸을 만한  그동안 어디 있었어?라고 할만한 연출과 극본, 음향, 조명 등의 절묘한 조합이 거들고 있다. <라이프 온 마스>에서 이미 판가름났듯 제 아무리 명작도 '탱자'가 될 수 있는 '리메이크' 시장에서 <나쁜 형사>가 된 <루터>는 손색이 없었다. 19금이란 한계가 무색하게 첫 회에 19금의 정당성을 선포한 스피디한 수사와 캐릭터 소개는 색다른 수사 드라마를 기대한 시청자의 시선을 잡았다. 그리고 거기엔 무엇보다 그간 '법'의 테두리 내에서 고전했던 수사 드라마에 갑갑함을 느끼던 시청자의 니즈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첫 술은 배불렀다. <셜록>이 소시오패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정신적 편력에 기반한 사건 수사를 배치해 나가듯,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루터>는 스스로 '나쁜 정의'를 자처하며 사이코패스와 공조수사를 펼치는 형사의 정신적 방황과 고뇌가 심도깊게 펼쳐지는 사색적인 작품이다. 과연 이런 무게감있는 작품을 <나쁜 형사>가 우리 현실에 맞게 연출자의 말처럼 한국판 '다크 히어로'로 승화시켜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8. 12. 4. 15:11

스페인의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이곳에 유진우(현빈 분)가 온 이유는 '관광'이 아니다. 간밤에 온 한 통의 전화, AR, augmented reality,  즉 증강 현실 게임의 개발자라는 사람의 전화 한 통에 그는 '밤드리' 이곳 그라나다로 날라왔다. 그리고 그 AR 게임의 유입 도구가 된 '렌즈'와 '인이어'를 끼자, 관광지 그라나다가 달라진다. 

 

 

광장에 우뚝 서있던 검을 든 무사의 동상이 뛰어내린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진우를 향해 달려든다. 무방비의 상태에서 진우는 당연히 일격을 당하고. 다음 순간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는 문구와 함께 레벨 1의 첫 번째 게임에서 그는 로그아웃당하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 그라나다의 한 광장을 배경으로, 거리의 맥주집 화장실에서 찾은 녹슨 철검으로 진우의 되풀이되는 도전이 지속된다. 매번 '로그인'을 할때마다 진우의 전투 능력은 일취월장하지만 역시 버겁다. 거리의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무사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혀 분수대에 나자빠뜨린 진우. 드디어 레벨 1의 단계를 도약한 그는 환호작약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거리 까페 시민들에게 그는 그저 혼자 미쳐 날뛰는 제 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 이게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1회의 내용이다. 

 

   

 

송재정 작가의 거침없는 도전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이 '화두'는 곧 작가 송재정의 화두인 듯하다. MADE BY 송재정의 드라마들은 곧 우리나라 드라마의 개척지가 되어왔다. 2006년에서 2007년까지 지금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순재'네 집의 아웅다웅 기록기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그 이름을 알린 송재정 작가는 2008년 알만한 사람들만 아는 문제작 <크크섬의 비밀>로 돌아왔다. 세상에 서해안 낙도에 떨어진 직장인 10명의 무인도 표류기라니. 미드 <로스트>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 코믹 시트콤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독보적 영역'으로 하지만 대중적 호응을 얻는데는 실패했던 송재정 작가는 역시나 알만한 사람들은 '힐링'작이라 손꼽는 표민수 피디와의 <커피 하우스>를 경과하여, <인현왕후의 남자>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3차원의 세계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조선 숙종 때의 선비 김붕도는 장희빈에 밀려 폐위된 인현왕후의 복위에 힘쓰던 중 뜻밖에 '타임슬립'을 하며 2012년의 드라마 <신장희빈>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최희진(유인나 분)와 조우하게 되며 운명적인 사건과 사랑에 휩쓸리게 된다. 

이처럼, 송재정의 드라마에서 남자는 휩쓸린다. 그가 머물던 세상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신비로운' 비과학적 동인에 따라 자신이 머물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결국 '표절'로 귀결된 <나인>에서 신비의 향 9개를 얻어 20년전의 과거로 돌아간 박선우(이진욱 분)이 그러했고, 2016년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인 듯 하지만 사실은 웹툰은 배경으로 한 실재와 가상 세계를 오가던 강철(이종석 분)이 그러하다(W 공간 이동의 시작은 웹툰 매니아였던  여주인공 오연주(한효주 분)이지만)그리고 이제 그라나다라는 실제적 공감을 배경으로 증강현실 게임 속으로 뛰어든 유진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송재정 작가는 과거와 현재, 웹툰을 배경으로 한 가상 세계와 현실, 그리고 이제 현실과 증강 현실로 드라마의 소재적 영역에 도전해왔다. 그러기에 현빈이 분한 유진우가 그라나다의 길거리에서 거리의 동상을 상대로 칼싸움을 하는 황당한 설정은 낯설지만, 송재정의 세계를 함께 해왔던 시청자들에게는 그리 새로울 것도 낯설것도 없는 것이며 그저 송 작가의 또 다른 도전이 반가울 뿐이다. 

하지만 송재정 작가의 도전이 그저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다.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가 방영될 당시 공중파인 SBS에서 같은 타임 슬립 소재의 <옥탑방 왕세자>가 방영되었듯 당시 '타임 슬립'은 드라마적으로 가장 '트렌디'한 소재였고, 안타까운 결론을 맺었지만 <나인>은 그 '타임 슬립물'에 있어서 최고봉으로 인정받았었다. 

또한 '웹툰'을 배경으로 한 서울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W> 역시 콘텐츠로서 '웹툰'의 활황에 힘입어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던 젊은 층조차 기꺼이 '닥본사'의 대열에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내노라하는 배우들, 심지어 외국 유명 배우들까지 RPG 게임의 모델로 하는 광고라 TV 광고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 전국 시대'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보는 이의 '이물감'을 쉬이 잦아들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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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로코의 양수겸장 
거기에 더해 송재정 작가의 작품은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그 '파격'을 풀어가는 서사의 구비구비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양식을 담아낸다. 조선에서 온 선비지만 2012년 서울에서 '킹카'를 넘어 키다리 아저씨같던 <인현왕후의 남자>가 그러했고, 죽음의 앞에서 아버지와 형,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향을 피우던 <나인>이 그러했다. JN글로벌 공동 대표에 방송국 W를 소유한 사격 국가 대표 출신의 웹툰 속 젊은 재벌 강철이라고 다를까. 만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유진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그 유진우로 등장한 현빈에게서 우리는 2010년 방영된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여주인공 정희주(박신혜 분)가 운영하는 보니끄 호스텔의 낡고 미비한 서비스에 울화통이 터진 유진우가 정희주를 향해 분노를 폭발할 때 예의 김주원이 '타임슬립'을 한듯 하다. 그렇게 현빈이 가장 잘 해내는 싸가지 재벌의 캐릭터로, 그러나 정희주의 동생이 게임 개발자인 것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180도 돌변하여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려는 설정은 익숙한 '로코'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한 정희주의 변모는 당연히 증강 현실처럼 시청자들을 드라마 속으로 흡인시킨다. 

물론 그 '익숙한 로코'의 여정은 증강현실 게임 속을 헤매이는 듯한 1년 뒤 유진우의 설정과 함께 '고난'의 여정이 될 것임을 예측시킨다. 거기에 그의 오랜 친우였다 이제는 전처의 남편이 되어 거침없이 그를 향해 칼을 뽑는 또 다른 유저이자, 경쟁자인 차형석(박훈 분)의 존재는 '갈등'의 계기로서 흥미진진하다. 

이제 2회를 마무리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과연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증강 현실 게임을 제대로 구현해 냈는가 여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현빈, 박신혜라는 스타 캐스팅을 차치하고서라도 '증강 현실 게임'이라는 낯선 소재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1위(닐슨 코리아 케이블 기준)라는 성과는 그간 우리 시청자들이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갈증이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한 반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송재정 작가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답해주고 있다. 

by meditator 2018. 12. 3. 14:26

저출산이 전 국가적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심지어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싸울지언정 나를 위해 아이를 낳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맞는 말이다. 한참 아이를 낳기에 좋을 건강한 시절엔 진학이다, 취업이다 하느라 아이 낳을 엄두를 못내는 세대, 그리고 막상 아이를 낳으려니 임신이 쉽지 않은 시대, 이 아이러니한 세태에 대해 <다큐 시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가 분석한다. 

왜 비혼주의일까?
33세 한종택씨는 안정된 직장과 함께 집을 옮겼다. 새 침대도 놓고, 전등도 새로 사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집은 오로지 그만을 위한 공간이다. 이른바 '비혼주의', 그게 결혼에 대한 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36.3%, 여성의 22.4%만이 결혼해야 한다고 한다. 즉, 결혼 적령기 남성과 여성의 2/3가 결혼은 선택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곧 '어른'이 된다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남성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을 '내면화'한 젊은이들에게 그럴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결혼은 '부담'일 뿐이다. 

 

 

이 '부담'을 현실화시켜주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고소득의 과반수 이상이, 심지어 10분위의 경우 82.5%가 결혼을 하는 반명, 1분위의 경우엔 겨우 6.9%만이 결혼을 했다. 즉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곧 '소득'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통계는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교육만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비용은 줄어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교육은 온전히 사교육에 의존한다. 또한 직업이나 주거 역시 결혼의 주된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과연 이런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결혼'을 감행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젊은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앞서 한종택씨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 까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미뤄두었단다. 이제 비로소 자신다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상황, 그래서 그가 택한 방식이 '비혼주의',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무자식 상팔자?
그런가 하면 함께 살아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도 모색된다. 공덕동에 사는 31살의 홍혜은 씨에게는 세 명의 동거인이 있다. 애인과 두 명의 동생, 하지만 이른바 '공덕동 하우스'라는 계간지까지 내는 이 공동체는 '비혼 생활'을 지향한다. 

 

 

자유롭고, 자기 계발을 위한 '비혼'만이 아니라, 더 긴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비혼'을 주창하는 이들, 우리 사회 많은 가족들의 민낯이 그러하듯 누나 동생 사이라도 서먹서먹했던 혜은과 막내 동생은 이 공동체 속에서 서로 말을 트며 누나와 동생의 권위를 넘어서는데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제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를 잘 꾸려 나가며 그 속에서 서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함께 고심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아이가 없다고 해서, 아이를 당장 낳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외면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산아 제한의 시절 5남매인 덕에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이들이, 9명으로 확대된 온, 오프라인 공덕동 하우스 일원의 아이에게는 조건없는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공동체의 일원으로 아이를 기르는 문제에 있어서는 비용과 시간의 문제를 들어 난감함을 표명한다. '아이'는 좋아도, 아이를 키우기엔 쉽지 않은 사회다. 
이런 젊은 세대의 생각을 반영하듯 결혼해야 한다가 48.1%인 반면, 결혼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는 비율이 56.6%로 결혼해야 한다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이 비혼 가정의 자녀를 기꺼이 사회의 일원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가 미비한 우리 사회에서 비혼 가족의 출산율은 저조하다. 사회는 '아이'를 원하지만, 정작 결혼한 정상 가족의 아이만을 원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 사회 낮은 출산율의 또 다른 이면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쉽지 않은 결혼 
그렇다면 그 소위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결혼한 정상 가족의 아이'는 어떨까? 
34살의 강종희씨는 오늘도 종종 걸음이다. 동네에서 늦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을 겨우 찾았지만 그마저도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 늘 조바심에 동동거린다. 

엄마를 만난 기쁨도 잠시 이미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 놀이터에서 아이는 1분만 더를 조른다. 겨우 달래서 들어온 저녁 삼교대 근무를 하느라 부재중인 남편을 대신하여 아이랑 놀아주고 씻겨주고, 다시 내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다시 새벽부터 이어지는 하루. 하지만 주변에서 은근히 부담을 주는 둘째는 언감생심이다. 엄마의 출근 시간에 쫓겨 못자고, 먹을 것도 빨리 먹어야 하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이에게 못할 짓이다 싶다. 아이를 낳으면 시댁에 맡기라는 시부모님의 말씀이 반갑기 보다, 조부모님 품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자기가 무슨 엄마 자격이 있을까 싶다. 또한 직장에서는 아이 생각, 집에서는 직장 일 생각을 하며 늘 머릿속이 복잡한 자신의 생활이 답답하다. 

그래도 낳아서 지지고 볶으면 다행일 수도 있다. 29살 김수연 씨는 오늘도 매 끼니 고가의 영양제를 한 움큼 씩 삼킨다. 아이를 갖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도한 두 번의 시술,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몇 번의 기회, 나날이 그녀는 위축되어간다. 국가에서 비용을 보조해준다고 하지만 빛좋은 개살구, 비용조차 만만치 않다.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만 정작 아이는 그녀에게 쉽게 오지 않는다. 

이건 비단 김수연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병원 간호사였던 그녀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그리고 과로는 그녀의 직장 생활을 정의하는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김수연씨와 같은 조건, 혹은 비슷한 조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임신을 할 수 있는 나이에는 결혼도 안되고 임신은 더더욱 안된다는 사회적 압력을 받으며 우리 사회 출산은 자꾸만 늦어진다. 더구나 난소 기능 검사(AMH)와 같은 조기에 치료가 중요한 난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미처 갖춰져 있지 않다. 결국 정작 아이를 가지고 싶어할 때 아이를 가지지 못하거나 힘든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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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라는 정책의 역사,
70년대 우리 정부에서는 정부 주도의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거지꼴을 못면한다'가 정부의 주요 시책이었다.  '가족 계획 어머니회'를 내세운 임신 중절을 위한 차가 마을에 까지 가서 낙태를 주도했다.  1980년대 출산율이 2.1%였다면 모집단을 통해 집계된 낙태율이 2.1%였다. 즉 국가가 앞장서서 낙태를 조장했다. 이런 정책은 8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한 자녀에게는 의료 보험 혜택과 새마을 유아원 무료 교육과 육아 보조비, 산모 요양비가 주어졌으며 다산 가족에게는 셋째부터 주민세등의 불이익이 주어졌다. 

'산아'에 대한 국가적인 개입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모성은 도구화되었고, 여성은 객체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고 다를까? 아이를 낳으면 이러저러한 이익을 보장한다는 각 지자체의 홍보성 정책은 과거 정책의 반사판 판박이이다. 여전히 사회와 국가는 여성에게, 엄마에게 매달린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의 출산과 건강, 교육 그 대부분은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어 있다. 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그 경쟁에서 승리하는 아이를 만들어 내는 건 여전히 '엄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역할을 충족시킨 자식은 1%도 못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바로 '엄마 스트레스'로 가임기의 세대에게 온전히 압박감으로 가중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해석이다. 그래서 그걸 미리 거부하면 '비혼'이요, 결혼해서 거부하면 '무자녀'이며, 한번쯤 시도해 봤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한 자녀'라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줄어든 아이들은 바로 '둘째'이다. 

결국 여전히 19세기와 20세기의 프레임 속에 갇힌 한국 사회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21세기의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만든다고 다큐는 결론내린다.  아이를 낳으면 뭘 해주겠다 하기 전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식의 변화와 조건을 만드는 거 이게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by meditator 2018. 11. 30. 18:04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 


<붉은 달 푸른 해>라, 이 역설적 제목을 가진 mbc 수목 드라마는, 그 역설적인 제목보다 더 미스터리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운동장, 달리기가 시작되고 아이는 전력질주를 한다. 1등으로 골인, 하지만 소란스러움도 잠시, 자신의 아이를 얼싸안고 돌아서는 학부모들 사이 아이는 홀로 서있다. 그런 것도 잠시, 어느덧 아이는 계단 위에 서 있고, 그곳에서 자신의 몸을 날린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
결국 아이는 상담 센터에서 우경(김선아 분)를 만난다. 햇살이란 태명의, 어린 딸이 기다리는 남동생을 가진 만삭의 우경은 자상한 IT업체 대표 남편에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상담하러 온 아이 시완이 말한다. '좋은 게 아닌데, 죽었으니까'.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동생을 일러 하는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그로부터 11월 22일 2회의 엔딩까지 우경은 아이도 잃고, 남편도 잃고, 무엇보다 자신을 잃었다. 

아이를 학대해 죽이고 그 시체를 불에 태웠다는 패륜 잔혹 범죄, '아이'를 상담하는, 아니 그 이전에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던 우경은 주변의 아는 엄마들과 함께 분노하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까지 나섰었다. 그랬던 그녀가 자동차 전용 도로로 뛰어든 아이를 그만 보지 못한 채 치어 죽이고 만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에 보인 아이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대여섯 살 또래의 여자 아이였는데, 막상 사고를 당해 죽은 아이는 남자 아이라니! 그 일로 인해 같은 또래인 자신의 딸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사고'의 진실, 아이의 정체에 집착하는 우경.

그런 가운데 우경이 1인 시위에 나섰던 그 사건의 엄마가 자동차에 탄 채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얼마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것, 출소 당일 교도소 앞을 메웠던 그녀를 지탄하는 시위대 행렬,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그렇게 드라마는 '의문의 죽음, 그것도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의 그물을 펼친다.

 

 

 



그리고 그 그 그물에, 서정주의 시 한 자락을 걸친다. 우경의 차에 죽은 소년의 운동화 깔창 아래서, 그리고 아들을 죽였다던 여자의 가족 사진 뒤에서 발견된 문구, 바로 서정주의 시 <문둥이>의 한 구절, '보리밭에 달 뜨면'이다. 그 시구의 뒤에 이어진 말은 '애기 하나 먹고', '미스터리한 아이의 죽음'은 '서정주의 시구, '아이 하나 먹고'로 이어지고, 드라마의 <붉은 달 푸른 해>의 역설적 어구는 첫 연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와 맥락이 닿는다. 그렇게 드라마의 사건은 시를 통해 상징되고, 다시 시는 의문의 사건에 '해석'의 결을 댄다. 

이렇게 시를 통해 '상징'의 나래를 편 드라마는 3,4화에 이르러 그 시적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결국 자신이 차로 친 소년에 대한 집착, 결국 해프닝이 된 딸의 실종은 우경에게 뱃속의 아이를 빼앗아 간다. 그리고 늘 든든한 보호자인 듯했던 남편도. 그렇게 우경의 가정이 부숴지는 동안,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등장한다. 고가 다리 아래 방치된 차안에서 발견된 '자살'로 추정되는 가장의 시체, 그런데 그 주은 남편에 대한 아내 동숙(김여진 분)의 태도가 수상하다. 남편의 시체를 확인하는 것보다 지금 직장의 일자리에 연연하던 아내는 죽은 남편이 남긴 돈다발에 눈이 희번덕해진다. 그리고 돌아와 온집안을 뒤집어 찾아낸 건 보험 증서, 그 증서를 들고 아내 동숙은 웃음을 토해낸다. 그런 동숙의 웃음 위로 교차되는 칼을 들고 남편을 향해 달려가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우경. 그리고 서정주의 시 <입맞춤>,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달아나고
울타리는 마구 자빠트려 놓고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의 사랑의 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산노루 떼 언덕마다 한 마리씩
개구리는 개구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강물은 서천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맞춤은 오오 몸소리친
쑥나물 지근지근 이빨이 허허옇게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


 

 

서정주의 시를 얹어 더욱 모호해진 도현정의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달 푸른 해>의 도현정 작가, 전작이 바로 sbs의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안다면 <붉은 달 푸른 해>가 뿜어내는 상징의 향연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속에 숨겨진 가족의 비밀을 찾아 그 이름부터 묘한 아치아라 마을도 들어온 한소윤(문근영 분), 그곳에서 그녀는 마을의 권력자로 행세하는 서창권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감지한다. 하지만  그녀가 찾던 언니는 정작 '백골'로 돌아오고, 그 '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건은 결국 마을이 덮고 있던 부도덕한 음모의 폭로로 이어진다. <붉은 달 푸른 해>의 서정주 시처럼, 안개에 뒤덥힌 마을과 비밀을 품은 사람들이 그 자체가 '미스터리'의 퍼즐 조각이 되어 지방 토호의 권력으로 짖뭉개진 그리고 그 속에서 춤추는 인간의 욕망을 차근차근 실밥을 풀듯 풀어나갔던 도현정 작가의 내공은 이제 조승우가 출연했던 <조감도>의 최정규 피디와 <남극의 눈물>의 송인혁 촬영 감독을 만나 다시 한번 날개를 편다. 

드라마는 한 아이의 알 수 없는 자해로 부터 시작되어, 보호받지 못한 아이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 죽음으로 부터 파생된 환영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히스테릭한 파멸에, 뜻밖에 등장한 가장의 죽음에 환호작약하는 아내로 받아치며 <붉은 달 푸른 해>가 내비치고 있는  붉지 못한 해와 푸르지 못한 달, 보호자가 되지 못하는 부모와 거기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라거나, 혹은 우리 고전 설화의 호랑이에 쫓겨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비극적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관계와 존재의 문제'를 제기한다. 거기에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 부모의 사건, 거기에 그 어머니를 다시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 아버지의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들이 엇물리며 드라마의 박진감을 더한다. 

 

 

또한 일찌기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 이래 2017년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 2018년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까지, 이제 김선아라는 배우 자체가 '장르'가 되어가는, 히스테릭하게 집착하는 모성성을 가진 우경이 되어버린 김선아의 열연 그 자체만으로도 <붉은 달 푸른 해>는 보는 재미의 충분 조건이 된다. 그에 더해 마지막 엔딩 미친듯한 웃음의 한 장면만으로도 시청자들을 꽉 잡아버린 동숙 역의 김여진 등 발군의 호흡이 더해지며 2018년을 마무리할 '명작'의 탄생을 알린다. 특히나  ocn의 <손 THE GUEST>의 종영이 아쉬웠던 장르 드라마 팬들에게는 '반색'할 소식이다. 







by meditator 2018. 11. 23. 15:49

창사 특집 대기획으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공정성' 문제를 다뤘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로 부터 시작된 질문은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과 관련된 정규직 젊은이들의 분노와, 한 해 44만 명 수능을 치룬 학생 중 3/4가 응시하는 각종 공시와 관련된 '한국형 능력주의'에 다다른다. 그리고 '시험'을 통한 경쟁은 공정한가라는 회의적 물음으로 1부는 끝을 맺는다. 

그리고 다시 11월 18일 이어진 2부는 1부에 이어, '운'과 '능력'에 대한 질문을 이어간다. 그를 위해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한국 사회에서 '대박'을 터트린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그런데 그들의 답은 한결같다. '제가 이만큼 성공한 건 운도 중요하지만 노력이 더 중요해요.' 즉,  '운'이 아니라 '노력'이란다.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한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아주 큰 규모의 성공은 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확신해요.
toss 이승건 대표 


심지어 타고난 미모가 없었다면 힘들지 않았겠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쇼핑몰 하늘 대표는 '그 조차도 노력'이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반면 거길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입을 모아 '운'을 말한다. 그 주요한 이유는 '집안 배경'은 본인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운'인가, '노력'인가 결론에 도달하기 힘든 질문, 그 답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를 찾았다. 안드레아 파사다 박사를 비롯한 세 명의 연구진은 컴퓨터 안에 1000 명이 20세에서 60세까지 살아가는 가상 세계를 만든 후 이들의 운명을 시뮬레이션해본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파레토 법칙', 즉 상위 20%가 전체 80%의 부를 소유한다는, 이른바 '운칠기삼'의 속설이 '과학적'임을 증명했다. 이들이 분석한 성공 요소는 평균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운이 좋으면 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운칠기삼'이 아니다. 이들 학자들이 주장하는 건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운이 없어서 그 능력조차 쓸모없어질 수 있는 '불운의 환경'이다. 즉, '불운을 없애주는' 사회의 역할이다. 

'인간 진화의 사회적 혁신'으로서의 '나눔' 
그 사회의 역할을 살펴보기 위해 제작진은 인도네시아의 라말레라를 찾는다. 화산섬인 람바타 섬 워낙 척박하여 국제 기구로 부터 유일한 생업인 '고래잡이'를 허용받은 이곳에서 남자들은 배를 타고 나가 '작살'로 고개를 잡는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이 작살잡이인 주르비깜인 이 곳, 말린 고래고기가 이들의 주 수입원이다.  작살 하나로 길이 20m의 향유 고래도 잡을 수 있는 작살잡이, 하지만 그가 잡아온 고래는 마을 공동체의 몫이다.

마을 남자들이 배를 타고 돌아오면 몫을 관장하는 마을 어른인 아타몰라가 '공정'하게 몫을 나눈다. 배를 조종한 사람과 배의 소유주에게 머리, 작살잡이에게는 어깨 등 역할과 능력에 따른 분배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나간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다. 참여치 않은 이들도, 심지어 배를 타다 가장을 잃은 가정에도 몫이 돌아간다. 

그것이 가능한 건 이들이 잡은 고래를 그 고래를 잡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바다의 것, 마을 사람 모두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래 고기가 없으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이 라말레라 사람들로 하여금, '나눔'을 실천하게 했다. 

 

 

진화 학자는 말한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 '행운'을 나눠, 불운에 맞서는 '나눔'은 엄청난 '사회적 혁신'이었다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몫을 더 주는 '능력주의'는 환경에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나눔'이라는 안전판을 통해 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뮤얼 보울스에 다르면 인간의 뇌는 '공정함'에 관심을 갇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최후 통첩 게임 등에서 불공정한 처사에 부딪쳤을 때 뇌에서는 뇌섬엽이 강화되면서 마치 썩은 음식을 봤을 때처럼 불쾌감이 강화된다. 즉, 인간의 뇌는 '공정함'에 대해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진화'의 시기가 수렵 채집의 소규모 사회, 오늘날 규모가 커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이 공정함의 본능이 위협받는다. 

'운'을 만들어 주는 사회 
이탈리아 학자들의 시뮬레이션 실험, 학자들인 그 가상 세계의 1000 명에게 5년마다 분배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미국식 능력주의, 랜덤 방식, 그리고 균등 배분 방식 등이다. 

미국식 능력주의는 어떻게 작동될까?  기업 'YC'의 사례를 살표본다. 대부분 사업을 할 경우 필요한 경제적 도움 등을 '인맥'에 의존하는 현실, 그 한계에 주목한 YC는 기업 활동의 엑셀레이터가 되기로 한다. 즉 성공의 '운'이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방식으로 '미미박스' 등의 업체가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미국 사회는 위계 조직화돤 한국과 달리 테트리스 게임처럼 각자 자신에 맞는 역할을 찾아내면 '기회'가 주어지는 '기회'의 국가이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의 캠핑카 대열과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LA 라라랜드의 6만여 노숙자 텐트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안타깝게도 불운은 온전히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맹점의 그늘이 깊다. 

 

 

실험의 3가지 사례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건 '균등 배분'방식이었다. 즉 자원을 재분배하여 모두에게 기회를 주었을 때 분배는 가장 성공적이었다. 다큐는 이 실험의 성공 사례를 핀란드의 보편 복지에서 찾는다. 

얼마전만 해도 실업 수당 중심의 복지 정책을 펼치던 핀란드는 기본 소득 실험 중이다. 국민 한 명, 한 명의 능력을 고양시키기 위한 기본 소득, 언론 구조 조정으로 실업 중인 무라자씨는 기본 소득 덕택에 재취업에 시달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고자 했던 책 집필을 시작했다. 기본 소득을 받는 처음 몇 달간은 '공짜' 돈을 즐기기도 했지만 곧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찾게 되었다며 기본 소득의 의미를 짚는다. 

핀란드는 이런 기본 소득 실험과 함께, 국민의 능력을 고양시키기 위해 무상 교육을 전면 실시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핀란드로 이민온 한국인 부부, 선행 학습의 필요 여부를 학교 측에 묻자, 학교 측은 당당하게 아이를 가르치는 건 '학교의 몫'이라 답했다며 자신들의 선택을 기뻐한다. 물론 이런 무상 교육과 기본 소득을 위해 핀란드 국민들은 30%~ 80%의 세금이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즉,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기업인 노키아의 몰락 이후 유럽의 병자라 칭해졌던 시절을 지났던 핀란드,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청년들의 활력 넘치는 도전이었다. 21살의 오토가 대학을 다니며 현재 두 번 째 스타트업에 도전 중이듯이, 핀란드 전역에서 수 천 개의 스타트 업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도전'이 가능한 건 바로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에 기반한 '무상 교육'과 '기본 소득' 실험이다. 

능력은 누구나 다를 수 있다. 그 각자 다른 '능력'이 성공으로 이르게 되는 데는 '운'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큐는 말한다. 그 '운'을 담당해야 하는 건, '하늘'도 아니고, '금수저'도 아니고, 이제는 '사회'여야 한다고. 적어도 젊은이들이 '능력'을 가지고도 좌절하는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2부작 '운인가 성공인가'가 도달한 결론은 결국 '운을 만들어 주는 사회다. 

by meditator 2018. 11. 19. 16:01

장르물의 본가하면 이젠 누구라도 OCN를 떠올린다. 바로 그 '장르물'이라는 수식어로 오늘날의 OCN이 있도록 만들었던 처음을 만들었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10년 '희귀병'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의학과 범죄 수사를 결합한 <신의 퀴즈> 시즌 1이 그것이다. 이즈음이야 의학과 범죄 수사의 결합이 새로울 것도 없지만, 당시만 해도 '법의학 연구소'가, 의사가 수사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은 신선하고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거기에 '희귀병'이라니. 

 

 
그런 취지에 걸맞게 시즌 1은 이런 병도 있었어?라고 할만큼 근이영양증, 포르피린증, 길랭-바레 증후군등 세상의 다양한 희귀 질병을 끌어모아 이 질병을 매개로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10가지 범죄를 다뤄내며 메디컬 수사극의 신기원을 열었다. 

그로부터 2011년, 2012년, 2014년까지 <신의 퀴즈>는 무려 4시즌을 달리며 장수 시리즈가 되었다. 그리고 오랜 공백기 후 2018년 '리부트'되어 11월 5일 화제의 < 손 THE GUEST>의 뒤를 이어 OCN의 수목을 책임지게 되었다. 

반갑다, 한진우!
무엇보다 <신의 퀴즈> 하면, 한진우, 한진우 하면 <신의 퀴즈>라고 연상되듯이, <신의 퀴즈>라는 시즌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바로 류덕환이 분한 초천재 의사 한진우다. 10세에 카이스트에 입학, 로봇 공학을 전공하다 인류 최고의 로봇인(?) 인간을 정복하기 위해 다시 한국 의대에 입학한 천재 의사이다. 그가 촉탁의로 한국 법의관 사무소에 합류하며 시즌은 시작되었다. 

 

 

희귀병을 다룬 메디컬 범죄 수사 드라마,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한진우 자신이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로 지난 시즌들을 이끌었다. 브레티즌이라는 신물질을 실험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아들의 친구인 한진우에게 투여했던 시즌2의 사이코패스 정하윤의 아버지, 그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한진우는 엄청난 고통을 받고, 스스로 병을 제어하려다 뇌의 과부하로 인해 이중인격이 되는가 하면 뇌의 절반을 잘라내야 하는 수술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시즌 4에서는 극초반 식물인간의 상태로 등장하다 기적적으로 회복하며 활약을 보인다. 그리고 이제 '리부트'의 시작은 시즌 4에서 그를 옭죄었던 음모의 위기에서 벗어나 세상과 인연을 끊은 '자연인' 한진우로 시작된다. 

케이블의 인기 예능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으로 초빙되어 등장한 한진우, 하지만 모양만 자연인이지, 그 예능의 주인공들처럼 자연을 활용한 모습은 커녕, 여전히 그의 오랜 동지이자, 연인인 강형사와 연락을 주고 받는 모습으로 '복귀'에 시동을 건다. 거기에 실제 부검 대신 인공 지능 데이터에 의존하는 '코다스'의 대두로 사무실마저 밀린 채 위기에 봉착한 법의관 사무소에 등장한 의문화 발화 시체에 자꾸 솔깃해지는데. 결국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모양새는 영락없는 '자연인'으로 법의관 사무소에 등장하고, 예의 깐족 발랄한 태도에, 자존감 만랩의 천재적 능력을 발휘하여 3개월 촉탁의로 법의관 사무소로 복귀한다. 

시즌 1,2,3,4이끌었던 박재범 작가가 프로듀서로서 총괄하는 대신, 신진 강은선, 김은희 작가가 새로이 집필을 맡은 <신의 퀴즈; 리부트>의 1,2회는 예의 '한진우스러움'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고심한다. 

 

 

<신의 퀴즈>다운, 한진우다운 
법의관 사무소를 뒷방으로 밀어내며 '인공 지능 데이터'에 의존하여 법의학적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코다스'를 새로운 맞수로 등장시키며, 그 팀장인 곽현민(김준한 분)을 내세우며 천재 한진우와 대립각을 세운다. 일찌기 로봇을 연구하다 '인간'으로 돌아선 한진우는 당연히 '수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해야지'라며 예의 한진우스러운 치기어린 호기로 '코다스'를 말로 찜쪄먹는 한편 , 발화 시체에 대해 '인간 핵폭발'이라는 곽 팀장의 발표에 사체에서 보이는 변색된 부분을 통해 외인으로 인한 발화의 근거를 잡아내며 <신의 퀴즈> 한진우의 진가를 선사하며 시즌의 진정한 개막을 열어보인다. 

또한 법의관 사무소에 갇힌 법의학자가 아니라, 언제나, 아니 시즌 3를 제외하고 호흡을 맞췄던 강형사와 함께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범인으로 추정된 용의자의 집에서 어머니의 두발을 통해 발화 시신의 이식된 신장과 일치함을 밝히는가 하면, 희귀병인 어머니가 복용할 리가 없는 신장 보호제를 통해 유학 심사에서 떨어진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어머니를 이용한 병원의 살인적 신장 이식 수술 과정을 폭로해 낸다. 그 과정에서 한진우의 과학적 관찰력과 천재적 추리력,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발로 뛰는 사건 수사의 과정이 <신의 퀴즈>의 매력을 한껏 살려낸다. 

심지어, 때론 독불장군같고, 때론 안하무인같은 한진우의 대사를 통한 통쾌한 사회 고발과, 아들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발화 살인'를 기획한 아들의 '신파적 고해'까지 이전 <신의 퀴즈>를 고스란히 빼어 박은 듯 복기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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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한진우' 그리고, 한진우의 아버지같던 장교수님은 안계시지만, 든든한 누님같은 조영실 소장(박준면 분)과 강경희 형사(윤주희 분)의 여전한 파트너쉽이 반가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시즌4로 부터 무려 4년 여, 그 시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통통 튀기는 한진우도 반가웠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삼십대 중반, 조금은 성숙해진 한진우의 차별화된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거기에 희귀병을 비롯하여 의학 범죄 수사 드라마에 난무하는 다양한 전문 용어에 대한 '자막' 서비스 등 시즌이 낯설거나 오래돼서 적응이 필요한 시청자들을 위한 전문 장르물의 친절한 정보 서비스도 아쉬웠다. 

1회 1.926%, 2회 2.566%로 모처럼 돌아온 시즌의 첫 술로서는 아직 아쉬운 성과다. 하지만 부디 시즌의 익숙함과 새로운 시도를 적절히 조화하여 다음 시즌을 기대할 수 있는 시리즈가 되길 바란다. 진심으로. 

by meditator 2018. 11. 16. 18:03

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 그 중에서도 어머니, 엄마와 '대화'를 해본 적이 있나요? 직장인 평균 부모님께 안부 전화하는 회수 1년에 37통, 한 달 평균 3통, 열흘에 한 통인 셈이다. 아니 횟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통화를 해봐야 3분을 채우기가 버거운 게 현실, 어른이 되어갈 수록, 어른이 되고 나면 점점 더 부모님과의 대화가 어색해지는 상황, mbc스페셜은 부모님, 그 중에서도 언제나 '엄마'의 자리에 머물렀던 엄마를 '한 사람의 인생'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들여다 보는' 주체는 다름아닌 어느덧 '엄마'가 되어버린 자식이다. 

 

 

시작은 엄마들의 팟 캐스트 방송이다. 45개월, 36개월 고만고만한 아이를 둔 엄마들이 모여 새삼 깨닫게 된 '엄마'를 이야기하며 다큐의 물꼬를 튼다. 김주강 씨는 자신이 아이의 생물학적인 엄마이긴 한데 정말 엄마일까 라는 회의가 든다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워킹맘인 그녀는 아이를 낳기만 했을 뿐 키우는 일은 전적으로 어머님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삼 드는 생각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사셨을까. 박경아 씨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게게 해줄 수 있는 반찬이 김과 미역국 뿐이라는 그녀에게 엄마는 '불가능한 존재'처럼 비춰진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박신애씨의 어머니는 다혈질이셨다. 왜 우리 엄마는 맨날 화만 내나 라고 답답해하며 자랐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절 엄마는 아빠한테,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받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는 것이셨다. 그러면서 이제 엄마가 된 엄마들은 입을 모은다. 이제 와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니, 지금 나같았던 엄마는 어떻게 사셨을까? 물어본 적 없는 엄마의 삶이 새삼 궁금하고 애닮다. 

그래도 물어볼 수 있을 때가 좋다. 취미가 가족 촬영인 개그맨 이홍렬 씨, 하지만 정작 어머니를 촬영할 수 없다. 마흔 아홉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기억이 추억 속 카세트 테이프로 그에게 남아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듣는다는 테이프 속 어머니는 18번인 오기택의 충청도 아줌마를 부르신다. 그리고 돌아가실 즈음 남기신 말, '엄마가 죽어도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 돼', 이제 어머니보다 훌쩍 더 나이를 먹은 아들은 닿지않을 답을 한다. '엄마 나 꿋꿋하게 살았지?'

 

 

엄마와의 인터뷰 -엄마 이전에 여자 사람의 이야기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딸들이 출동했다. 어느덧 엄마처럼 네 아이를 둔 워킹맘이 된 개그우먼 김지선씨, 남편이 정말 친엄마가 맞냐고 할 정도로 무심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엄마를 찾는다.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여 네 아이를 두고, 보험 설계사 일을 하느라 늘 바빴던 엄마, 그래서 김지선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실내화를 빠는 건 물론, 소풍 때 김밥도 스스로 싸서 갔다. 그래서 혼자 자랐다고 생각했다. 라면과 김밥과 설렁탕이 싫어질 정도로 무엇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허기를 때우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셔야 했단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날들, 돌아와 밥도 못먹고 자는 막내가 마음이 아펐던 시절, 그렇게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자식들이 무얼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 시절이 안타깝다. 스물 다섯 살에 홀로 된 어머니 슬하에서 아버지가 안계시니 다른 얘들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고, 독한 시집살이에 가난한 집안 살림을 책임지느라 자식들을 보듬어 줄 수 없었던 것이 이제야 딸에게 전해진다. 그 힘들게 살아왔던 날들, 그래도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기꺼이 지선의 엄마가 다시 되시겠다고 두말 않고 답하신다. 

정아영 씨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하시는 가게는 아영씨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별명을 따서 '아땡이네'다. 10년전 분식을 여신 어머니는 이제 50을 넘겨 중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와 미용 기술을 배워 미장원에 다니던 중, 착해보이던 29의 아빠를 만나 25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앙금빵에 우유를 먹으며 통장을 건네주며 한 청혼, 그렇게 만난 신랑과 신부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자신들이 하던 미용사 일과 그림 그리던 일을 접었다. 그리고 다시 한 여름날 튀김 기름과 씨름하며 삶의 최전선에 계신다. 분식집 주방의 엄마에게서 그 시절 예뻤던 여자 사람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고운 손을 지키고 싶었다지만 엄마의 손을 주방일에 거칠어 진 지 오래다.

최규자 씨의 어머님 유한순 씨는 살아가느라 무심해진 딸에게 엄마는 잘있다. 아무 일없다며 먼저 전화를 하시곤 한다. 그렇게 적극적인 어머니는 7순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신다. 알파벳도 배우셨다. 

 

 

'다라이 공장 억순이, 농약 공장 똑순이', 어머니가 쓰신 시에서 어머니가 정의내란 당신이시다. 학교 들어가던 해 전쟁이 나 한글을 배울 기회를 놓쳤고, 오빠와 동생들 뒷바라지에, 결혼하고서는 굳이 글을 안배워도 철 따라 씨뿌리고 거두는 농사 일을 하느라 배울 기회가 없던 어머니, 이제는 틈만 나면 책상으로 달려가 숙제도 하고, 일기도 쓰시는 어머니, 딸은 그런 어머니의 학구열이 새삼스럽고 경이롭다. 저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분이셨나?

그렇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머니가 글을 몰라 제일 서러웠던 기억은 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등록금을 부치러 우체국에 갔던 일, 창구에 써진 글을 몰라 이리저리 헤맸던 기억이 아직도 아프게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에게 가장 아픈 상처는 자신보다 먼저 둘째 딸을 떠나보낸 일, 끓어오르는 슬픔을 동물의 울부짖음처럼  토해내던 어머니는 그 딸이 다니던 교회의 성경을 며칠 만에 필사를 해내며 그리움을 달래셨다. 그럼에도 딸이 하나 밖에 없어 서운치 않냐는 큰 딸의 말에 어머니는 행여나 딸이 서운할까 생각해 봤자 내 마음만 아프다며 다독이신다. 

다큐는 이제는 엄마가 된 딸을 인터뷰어로 내세워, 이제는 엄마를 한 여자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여자 사람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고자 한다. 평범했지만 엄마로 살아냈기에 찬란했던 그 삶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반추한다. 태어나기는 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여자', 그리고 '엄마'가 되었던 분, 이제야 딸은 말한다. 엄마만큼만 했으면 좋겠어. 다시 태어나면 내 엄마가 아니라, 내가 엄마가 되어 엄마를 돌봐줄게. 

by meditator 2018. 11. 13. 05:16

<sbs스페셜>은 창사 특집으로 야심차게 2018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문제를 다룬다. 바로 운인가 능력인가라는 화두를 통한 '공정성 경쟁'이 그것이다. 

다큐의 시작은 어렵사리 카메라 앞에 선 지난 촛불의 마중물이 된 이대 여학생의 비리 제보이다. 김수경(27) 씨를 통해 우리 사회는 그저 엄마를 잘 둔 덕에 이대 학생이 되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국가 대표에 메달까지 딴 적폐의 상징이 된 정유라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말, 말, 말,  '능력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부터, '이대 딱 한번 갔다. 학점은 나도 의아해'에서, '누가 이대를 가고 싶댔나'로 '청년'들은 공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이 시대 청년들이 가장 고통받는 '아킬레스 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가고, 그런데 다시 또 죽어라 공부해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에,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요즘 청년들 말 대로 '뼈를 때렸다'. 

 

 

공정성의 딜레마 
그래서 창사 특집으로 <sbs스페셜>은 바로 이 청년들의 분노, 그 근원이 된 '공정성'을 헤집어 본다. 그리고 그걸 위해 최근 우리 사회 문제가 되었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다룬다. 

상시, 지속 비정규직을 정규직을 전환하겠다는 지난 대선의 문재인 후보의 공약, 이는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고,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하는데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공약에 따라 일선 학교와 각 공사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서울 교통공사 역시 지난 3월 무기 계약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그 '환영 받던 공약'의 결과는 달랐다. 

역차별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125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교통 공사, 그곳에 다니는 정규직 김성희(31)씨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고시촌에서 2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은 채 노력했던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얻은 능력이 부정당하는 것같다는 억울함. 자신이 '노오력'을 해서 얻은 결실을 누군가는 쉽게 얻는 것같다는 울화통에 '홧병'이 날 지경이다. 

김성희 씨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을 다니며 어렵사리 주경야독을 하며 공채를 통해 정직원이 된 자신의 노력이 허무하고, 심지어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이런 교통 공사 정직원들의 억울함은 결국 김민철 씨 등에 의한 헌법 소원과 행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내세우는 건 '공정성'이다. 자신들은 노력을 통해 금메달만큼 값진 사원증을 목에 걸었는데, 왜 누군가는 거기에 '무임승차'를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분노한다. '시험'이라도 치라며 과정의 공정성을 요구한다. 

이런 절차 상의, 과정 상의 공정성의 문제는 뜻밖에도 12년만에 복직한 ktx 해고 승무원들에게 까지 불똥이 튄다. 이들의 복직 기사에는 청년들의 불만이 폭주한다. 떼를 쓰면 복직이 되는구나'라는 비아냥이 가득하다. '다시 시험을 치라'며 야유한다. 

그런데 그 '비아냥'과 분노의 대상이 된 사람들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교통 공사의 정규직 전환에는 2016년에 벌어진 구의역 사고라는 계기가 있다. 구의역 지하철 9-4 승차장에서 끼니로 준비한 컵라면도 먹지 못한 채 스크린 도어 수리를 하다 진 꽃과 같은 김군, 그처럼 억울한 죽음이 다시 없게 하기 위해 그처럼 스크린 도어 안전 관리를 하던 외주 용역업체 직원이던 박창수(30)씨는 정직원이 되었다.

하청업체에서 최저 임금보다 못한 임금과 대우에서의 불이익을 받던 창수씨는 정직원이 된 이후 책임감이 한층 더해졌다고 답한다. 그의 말처럼 용역업체 비정규직들의 전환 이후 사고가 줄었다. 그러나, 창수 씨의 마음은 어쩐지 불편하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12년만에 복직하는 ktx 해고 승무원 오미선(39)씨 역시 자신들의 복직을 떼를 써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항변한다. 12년전 시험을 치고 인턴 근무를 하고 1년 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약속이 비로소 지켜진 것이라 항변한다. 

결국 선의에서 비롯된 정규직 전환과, 해고자 복직은 우리 사회 을 vs. 을의 불편한 동거를 낳았다. 

 

 

시험은 공정한 것인가?
이 불편한 동거의 문제를 풀기 위해 다큐는 최후 통첩 게임을 예를 든다.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 그들을 다시 제안자와 응답자로 나눈다. 그리고 제안자에게 주어진 10만원, 제안자는 임의대로 이를 응답자와 나눈다. 

첫 번째 과정, 대부분의 제안자들은 5만원씩 공평하게 나눈다. 제안자들은 그게 안전하고 공평하다 입을 모은다. 이어서 단 5분간의 공공기관 입사 시험 문제로 치룬 시험을 거친 후 다시 재개된 과정, 그런데 시험 결과 성적 순으로 나뉘어진 제안자와 응답자 그룹의 배분율이 달라진다. 줄어든 응답자의 몫, 제안자도 응답자로 이런 불평등한 배분이 공정한 것이라 입을 모은다. 

그러나 다큐는 반문한다. 겨우 5분의 시험만으로 달라지는 '시험'이 공정한 것이냐고. 즉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혹은 역차별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청년들이 내세우는 '시험'을 통한 자격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의 무용론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 사회 시험의 역사를 논한다. 한국 전쟁 이후 각자의 노력으로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등장한 시험, 그 시험은 한국 사회에서 '출세와 보상의 공정한 장치로 자리 잡아 왔다. 더구나 고도 성장기 평균 이상의 제너럴 리스트를 배출해야 하는 산업 사회에서 '시험'은 그 중요성이 더해만 갔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7년째 공시에 매달리는 33살 박승현씨처럼, 너도 나도 시험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많은데 합격율은 낮아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수능 시험자의 3/4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공시에 매달리는 현실, 1.8 %만이 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결과는 점점 더 청년들을 무한 노력 경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고 다큐는 말한다. 

더구나 그런 가운데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서는 그 촘촘하다는 그물 사이로 채용 비리가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래서 등장한 국가직무 능력 표준인 NCS, 업무 능력과 연관이 있는지 의심되는, 핀란드 대학생들이 '바보 같다는 시험'을 우리의 청년들은 50분에 50문항을 풀어 내야 한다.  시험의 문제를 또 다른 시험으로 풀어내는 악순환이다. 

<sbs스페셜>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역차별, 공정성의 문제를 그 공정성의 잣대가 된 '시험'이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 



시험이 문제가 아니다. 
우선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신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채'를 통과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치룬 '시험'이 무용한 것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이니 당신들이 주장하는 '공정성'은 의미가 없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떨까? 저 많은 시간을 시험에 '허비'하는 청춘들이 그들이 파고드는 그 '시험'이 업무와 관련되어 유용하다 믿어서일까? 왜 우리 사회에서 사시 존폐와 관련된 반발과, 입시와 관련되어 수능 절대주의가 등장하는 것일까? 과연 이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사시나 수능이 '좋아서'일까?

아니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라는 대중적 믿음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해야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다. 과연 이런 절박한 동앗줄을 선뜻 누구와 나누겠다는 사람이 쉽겠는가. 이 시대 청년들이 매달리는 시험은 그 어설픈 '최후 통첩 게임의 5분간의 시험'이 아니다. 

다큐의 초반에 등장한 정유라, 남들은 다 시험쳐서 가는 '수능'을 부모 덕에 무임 승차했다. 수능도 그런 세상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공사 정규직 전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교통 공사 정규직 전환자 중 108명이 재직자의 자녀, 배우자, 친인척이라는 현실이 말하는 건 무엇일까? 과연 이런 상황에서 다큐에서 예로 든 뉴욕 메츠에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으로 수시로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의 공정성을 우리 사회가 담보해 낼 수 있을까? 이른바 수능의 보완책으로 마련된 갖가지 수시 요강들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잘 활용하는 계층이 누구일까? 왜 사람들이 그래도 '시험'이 공정하다는 자기 포기적 반응의 속내가 무엇인지 다큐는 한번쯤 헤아려보기라도 한 것인지. 

문제는 '능력에 걸맞는 다른 시험의 형태'가 아니다. 공시을 통해 정규직이 된 사람들이 내세운 억울함의 촛점은  그들의 '시간'과 '노력'이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이 친 시험이 잘못된 것이니, 양보하라 하면 yes라 할 수 있을까? 즉, 다큐가 내세운 문제 제기 공정성의 문제, 그 사례로 든 공사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역차별 문제와 후반부에 해법으로 내세운 시험의 시대착오적 무용론은 서로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즉, 입시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에게 흡사 선생이 과연 니가 대학을 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원론적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산업 사회적 프레임의 시험 제도와 시스템은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것과 최근 우리 사회에서 청춘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역차별, 공정성의 문제는 다른 이야기다. 그들은 '시험'을 말하고 있지만, '시험'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에 반해 지극히 좁은 문 사이에서 아귀 지옥을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집단적 반발이다. 그런 청춘들의 고통에 대한 '원론적은 시험 무용론'은 안이하다 못해 비겁하다. 

 

by meditator 2018. 11. 12. 14:44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는 문구야 말로 11월 1일 막을 내린 <손 The guest>에 가장 어울리는 상찬이 아닐까. 1회, 1.575%로 시작하여 16회, 자체 최고 시청률 4.073%로 마무리지었다. 4%의 수치로만 보자면 이젠 케이블도 10%, 15%를 오르내리는 시절에 높다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르 드라마 위주의 ocn, 그 중에서도 새로이 편성된 주중 수목 밤 11시에, 도저히 무서워서 못보겠다는 사람들이 나왔던 엑소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호기롭게 풀어내어 도달한 성취로 보자면 장르물의 '도깨비' 급이라 하면 좀 과장일까. 하지만 시청률이 무색하게, 매 회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등장인물, 혹은 등장 인물과 관련된 단어가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건 여사가 된 '화제성'으로 보자면 꼭 과장은 아닌 듯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벌써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오르내리는 <손 the guest>,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호러, 그 화려한 서막 
<손 the guest>의 성취를 논하기 위해 우선 이 드라마와 나란히 호러 장르에 도전장을 낸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겠다. 올 여름 호기롭게 '호러'에 도전한 드라마들이 있었다. kbs2는 월화, 수목 야심차게 호러 장르물을 편성했다. 10월 2일 종영한 <러블리 호러블리>와 10월 31일 종영한 <오늘의 탐정>이 그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 모두 낮은 시청률로 조용히 막을 내렸다. 시청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들 두 드라마가 보여준 건 무엇보다 아직 kbs2가 장르물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즉 이는 역설적으로 <손 the guest>가 보여준 축적된 장르물의 성과를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때 김홍선 감독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일찌기 2007년 <도시 괴담 데쟈뷰 시즌2>를 시작으로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2009)>, <야차(2010)>, <무사 백동수(2011)>, <히어로(2012)>, <라이어 게임(2014)>, <피리부는 사나이(2016)>, <보이스 1(2017)>에서 이제 2018년 <손 the guest>까지 작품이 곧 우리 장르물의 역사가 된 김홍선 감독, 그가 그간 꾸준히 쌓아온 장르물의 성과가 <손 the guest>를 통해 화려하게 빛을 발한다. 

김홍선이라는 장르 
이미 < 도시 괴담 데쟈뷰>,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 <히어로> 등을 통해 호러적 영역에 대해 꾸준한 시도를 해오던 김 감독은, 그가 연출했던 장르물의 축적된 성과를 <손 the guest>를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이 찬사는 어쩌면 <손 the guest>에만 쓰기에는 무색할 지도 모른다.

 

 

이미 <무사 백동수>를 통해 거친 남성적 액션, <라이어 게임>을 통해서 리얼리티가 된 게임의 세계, 그리고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도심 테러와 그에 대응한 위기 협상, <보이스1>에서는 112 센터를 중심으로 한 소리 추격 스릴러처럼 어찌 보면 <손 the guest>의 엑소시즘은 새로운 도전이지만, 늘 장르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던 김홍선 감독이기에 당연한 것이 되었다.  늘 그의 애청자들은 <라이어 게임>에서도 제발 시즌2를, 그리고 <보이스 1>에서도 당연히 <보이스 2>를 '고소원'했지만, 김감독은 그런 애청자들의 간청을 즈려밟고 좀 더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장르물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인도했고, 그 결과물로 이제 우리는 <손 the guest>를 만나게 되었다.  즉 <손 the guest>는 새로운 장르이지만, 김홍선이라는 장르의 여정 속에서 만난 한 작품이며, 앞으로 더 무시무시한 그 무엇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바로 <손 the guest>의 성취 그 제 1요인이다.  이런 김홍선 감독의 내공을 입봉작으로 장르물을 주체하지 못한 <러블리 호러블리>나, 역시나 장르물에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오늘의 탐정>이 어찌 넘볼 수나 있었겠는가. 

그런 김홍선 감독이 있었기에, <안투라지(2016)>의 서재원 작가가 역전 만루 홈런을 날릴 수 있었고, 김동욱이, 김재욱이, 그리고 정은채가 자신의 몸에 맞는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즉, <손 the guest>는 서재원 작가를 비롯하여, 배우 김동욱, 김재욱, 정은채를 재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래도 엑소시즘에 대한 알찬 구성과 전개를 통해 전작의 오명을 거뜬히 삼키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원티드>를 통해 장르물 작가로의 기대주가 되었던 <오늘의 탐정>의 한지완 작가의 부진과 비교된다. 

 

 

배우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신과 함께>를 통해 저렇게 연기 잘 하는 배우를 왜 그동안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없었는가 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던 김동욱에게 제대로 찾아와준 기회, 그리고 이미 <보이스 1>를 통해 압도적인 존재감이 빛을 발했던 김재욱의  앙상블, 거기에 초반 연기력의 논란이 무색하게 '길영이 형'이란 애칭으로 사랑받았던 정은채까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빛난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그런 주인공들에 못지않게 그들에게 기꺼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었던 매회 혼신의 열연을 선보인 박일도에 빙의됐던 출연자들의 콜라보레이션이 <손 the guest>를 화려하게 피어오르도록 했다. 

감독, 배우, 하지만 <손 the guest>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장르 드라마를 장르 드라마답게 만드는데 주된 충분 조건이 된 음악과 음향과, 조명, 미술까지, 아니 어쩌면 출연자들보다 더 장르물다웠던 이들 기술 음향 팀의 열일이 엑소시즘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어 냈다. 우리의 전통 신앙인 샤머니즘과 외래의 엑소시즘의 결합을 굿판의 꾕과리와 결합된 ost를 통해 긴장감을 더했고, 붉은 색과 푸른색 등 보색의 절묘한 조합을 통해 장르물의 색감을 화려하게 재탄생시켰다. 즉 드라마가 종합 예술이지만 장르물의 경우 각 영역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손 the guest>의 성취는 바로 이런 축적된 성과와 제 역량을 한껏 발휘한 각 영역의 성공적 결합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이다. 

 

 

엑소시즘과 샤머니즘, 그 난제의 절묘한 해석 
시작은 바다로 간, 아니 바다로 부터 온 '손'이었다. 박일도라는 이름을 가진 귀신, 그에 빙의되어 한 세습무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만다. 그로부터 20년 그 사건으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잃고, 아버지 마저 집을 나가 떠돌게 되어버린 윤화평(김동욱 분)은 박일도를 찾아 떠돌고, 역시나 박일도로 인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사제가 된 최윤(김재욱 분), 역시나 엄마를 잃고 형사가 된 강길영(정은채 분)와 만나게 되는데. 이렇게 손 박일도로 부터 비롯된 샤머니즘은 구마 사제의 등장을 통해 엑소시즘과 접신하고, 거기에 형사와의 협업으로 수사물의 형식을 더하며 극적인 긴장감을 이끌어 낸다. 

드라마는 최윤을 걱정한 윤화평이 박수 무당 육광에게 부적을 써서 최윤의 바지 주머니에 끼워 넣고, 마지막 회 구마 의식 과정에서 전달된 십자가가 영매가 된 윤화평의 목에 걸려있듯이 전통의 샤머니즘과 외래의 엑소시즘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빙의된 박일도를 쫓기 위해서는 엑소시즘의 구마 의식이 필요하지만, 박일도, 그로 비롯된 얼키설키 악연의 계보는 '전설의 고향' 속 한 장면과도 같다. 즉 외국 영화를 통해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장르물의 소재로는 낯선 엑소시즘을 드라마는 전래의 샤머니즘적 요소와 설화와 같은 박일도 집안과 주변 인물을 통해 설득해 낸다. 

또한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에서 소외된 왕따 직장인, 계약직 사원 등을 통해 '악의 사회적 근원'을 파헤쳤으며, 나아가 양신부(안내상 분), 박홍주(김혜은 분)를 통해 '빙의'를 넘어선 '사회적 악'의 존재를 설파했다. 박일도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박일도를 불러들일 수 밖에 없는 사회를 통해 2018년의 시대적 공기를 담뿍 담아낸다. 

 

 

그렇게 낯선 엑소시즘 장르를 전통과 사회적 메시지를 통해 오늘에 맞게 재탄생시킨 <손 the guest>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역시나 16작의 호흡은 너무 길었던 것일까? 마치 양신부가 할아버지를 납치(?)하여 요양원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요양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현혹'하여 빙의자들의 피의 카니발을 벌이는 장면은 마치 할로윈 특집이나, <새벽의 저주>나, <워킹 데드>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서사적 연결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결국 최후 드러난 박일도의 존재와, 그의 그간 행적을 마지막 회에서 줄줄이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구성의 아쉬운 점도 상찬 속의 티일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반전을 위한 카드 때문이었을까, 스스로 십자가를 부정하고, 성경을 부정했으며 악의 오른 팔이 되어 그토록 많은 이들을 제물로 삼았던 신부의 '자유'에 대한 개연성은 어쩐지 고개가 갸웃해 진다. 

하지만 그 갸웃해지는 혹은 아쉬워 절레절레했던 서사와 구성 상의 단점들이, 물 속에서도 서로의 목숨을 걸고 살리기 위해 손을 잡아 애원의 구마를 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손을 놓고 스스로 자신을 죽여가는 배우들의 열연의 감동 속에 허물어져 버린다. 아쉬운 점을 접은 채 <손 the guest>와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영광의 박수로 보내며 마무리짓고 싶게 드라마는 시청자를 설득해 냈다. 

by meditator 2018. 11. 2.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