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아직 볕이 따갑다지만 아침저녁 쓸쓸하다 못해 쌀쌀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계절, 그 더웠던 여름이 다 지나가는 이 계절에 뒤늦게 '서늘함'을 무기로 장착한 두 편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그것도 같은 방송사 kbs2의 월화 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와 수목 드라마 <오늘의 탐정>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흐르지도 않는 땀을 얼어붙게 하면 어떠랴, 신선한 소재, 새로운 캐릭터들의 향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뻔하지 않음'으로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열렬한 지지자들을 양산할 태세다. 하지만, '호러'라고 해서 두 드라마를 뭉뚱그려 묶으면 아쉽다. '호러'라 해도 두 드라마가 보여주는 '호러'의 경지는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지고 시청자의 일주일을 떨게 만들테니까. 


 




정말 '호러블'한 건 '사람'이야 - <러블리 호러블리> 
드라마는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운명적으로 엮인 두 남녀 유필립(유을축 박시후 분), 오을순(송지효 분)에게 벌어지는  '미스테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시작된다.  마치 세상의 모든 행운을 다 가진 듯했던 '우주대스타' 유필립은  1회부터 칼에 맞을 뻔하지 않나, 산사태에 생매장을 당할 뻔하지 않나, 심지어 8년전 연인이 귀신으로 나타나는 등 운명의 판도가 '불운'을 향한다. 그런데 그런 필립의 불운이 드라마을 쓰는 을순에게 '영적'으로 계시되어 대본으로 씌여지게 됨은 물론, 필립이 위기에 빠지는 순간마다 을순이 필립을 구해주며 두 사람은 엮이게 된다. 

스타 유필립의 과거와 현재가 얽혀진 이러저러한 사건, '귀신의 사랑'이란 대본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사건들로 복잡해 보이는 드라마,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건, 뜻밖에도 인간의 욕망이다. 


 




애초에 죽을 운명이었던 아들, 그 연약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는 을순의 행운을 '도둑질'했다. 거기서부터 어긋난 두 주인공의 운명, 그 어긋난 운명은 현재 또 다른 이들의 '욕망'으로 인해 '사건'으로 분출된다. 그 다른 이는 바로 필립과 함께 아이돌 그룹을 했던 동철과 기은영 작가이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필립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필립으로 인해 자신이 불행해 졌다 생각한 동철은 필립을 없애는 것으로 자신에게 온 불행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필립의 왜곡된 운명론을 을순에 대해 '샬리에르 증후군'을 가진 기은영 작가가 부채질하고. 그 두 사람의 욕망은 결국 보조 작가 살해와 필립 저격이라는 범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벌인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을순의 목걸이인 줄 알면서도 행운을 빼앗기기 싫어 그 사실을 숨긴 필립이나, 8년전 필립의 전 애인이 죽어간 화제 현장 사건에서 공모의 혐의가 있는 필립 소속사 사장이나, 필립의 현재 여자 친구인 신윤아 등이 움직이는 동인이 모두가 각자의 욕망과 이기심이다. 즉, 주어진 운명이라는 씨줄도 있겠지만 그 운명을 직조해가는 건 결국 '인간의 욕망'이라는 날실이라고 드라마는 얽히고 설킨 사건을 통해 강변한다. 즉, 이 드라마에서 진짜 호러블한 건 미스테리한 현상이 아니라, 거기에 영합하고 이용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다. 

미스테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얽히고 설킨 <러블리 호러블리>에서 '러블리'한 지점은 신선하고 매력적인 두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이마의 상처 때문에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닐 만큼 우중충해보이는 여주인공 오을순은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캔디나, 하니보다 한 수 위인 캐릭터이다. 을축이 아니 필립이에게 목걸이를 넘겨준 이후로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칼을 든 강도 앞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배포를 가졌으며, 위기에 빠진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삽질은 물론, 엎어치기 메치기도 거침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빛나던 순간은 바로 16회 엔딩, '운명 따위'하면서 자신들을 얽어맸던 목걸이를 바다로 던져버리는 진취적인 적극성이다. 

백마탄 왕자님처럼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주인공,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은 '신데렐라'일까? '백설공주'일까? 뜻밖에도 쫄보에 겁쟁이다. 자신의 신상이 밝혀질까봐 검은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쓸 정도로 비겁하고 쫄보인 유필립,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그 '진정성'이 그로 하여금 을순을, 드라마에 대한 을순의 열정을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행운까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성장의 서사를 써내려가게 한다.  결국 '호러블'한 욕망, 그리고 주어진 운명의 굴레에 맞서는 건, 두 주인공의 '역동적인고 적극적인 러브'이다.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 중 가장 맞춤 캐릭으로 돌아온 송지효, 그리고 황금빛의 여운을 지워버리는 발군의  박시후 표 코믹과 진지를 오가는 연기가 어수선한 호러블한 사건 속에서 두 주인공의 러블리한 사건에 몰입하도록 한다. 


 




죽어도 주인공이야 -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와 <오늘의 탐정>, 이 두 드라마가 '호러'라는 장르 외에 공통점을 들자며,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다짜고짜 남자 주인공을 땅에다 묻어 버린다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가 자칭 헐리우드 스케일로 산사태를 일으키며 주인공이 타고가던 차채 땅에 묻어버렸다면, <오늘의 탐정>은 한 술 더 떠서 남자 주인공을 망치로 쳐 죽여 무연고 사망자로 만들어 버린다. 

시니컬한 하지만 차를 타고 들어오는 의뢰인의 면면만 봐도 그가 지나가는 사람인지, 사건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 맞추는 경지로 봐서는 거의 셜록 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이다일(최다니엘 분)과 그의 조수, 아니 그를 일찌기 알아보고 그와 함께 '어퓨굿맨'을 차린 한상섭(김원해 분)가 드라마를 열 때만 해도 남자 버전의 <추리의 여왕>인가 했다. 

그런데 사건만 해결하면 당장 쫓겨나게 생긴 사무실 임대료를 평생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뛰어든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 뛰어든 이다일이 현장에 만난 건 뜻밖에도 범인과 사건 그 뒤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채 서있는 빨간 원피스, 그리고 그 빨간 원피스의 사주를 받은 범인은 이다일의 목숨조차 앗아가 버린다. 남자 주인공이 1회만에 죽어버린 것이다. 


 


​​​​​​​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비오는 풀숲 진흙탕에서 솟아오른 손 하나, 그는 그렇게 돌아왔다. 단지, 살아있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있지 않은 그를 여느 때처럼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이다일처럼, 자신의 여동생을 빨간 원피스의 사주로 잃은 정여울(박은빈 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빨간 원피스를 본 것처럼, 다을을 알아봤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일이 필요하다. 

<오늘의 탐정>은 <셜록>처럼 사건 해결에 능력이 있는 이다일을 앞세운 범죄 수사물이다. 그런데, 그 범죄가 격이 다르다. 드러난 사건은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레스토랑 직원 자살 사건이지만, 그 사건들 뒤에는 빨간 원피스라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미스터리한 존재에 맞설만한 또 다른 미스터리한 존재, 즉 죽어서 살아온 남자 주인공 이다일로 사건의 격을 맞췄다. 이렇게 미스터리와 범죄의 조합으로, <김과정>의 이재훈 피디와 <원티드>의 한지완 작가가 합을 이뤘다. 거기에 셜록보다 더 셜록같은 최다니엘 표 이다일과 <청춘시대>의 송지원못지 않게 똘망한 박은빈 표 정여울의 조합은 절묘하다. 





by meditator 2018. 9. 7. 17:28

현대가에 의한, 현대가의, 현대가를 위한 현대 축구 협회, 지난 26년간 축구 협회의 '견제받지 않은 권력'인 '현대'가의 연이은 협회장 연임에 대해 축구에 조금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 새로울 것도 없는,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은 권력에 <추적 60분>이 칼날을 겨눴다. 


 




지난 2017년 카타르 전에 패한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됐다. 그리고 곧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이었던 신태용 감독이 선임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석연치않은 사건이 터졌다.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이었던 히딩크 감독이 은퇴를 앞두고 무보수라도 한국의 대표팀을 맡아 자신의 감독 생활에 유종의 미를 남기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지난10월 국정감사 자리에 나온 축구 협회 노재호 사무국장은 러시아에서 이 소식을 전해듣고 황급히 sns를 통해 김호곤 기술위원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고 증언했다. 히딩크 전감독과 김호곤 기술위원장, 그리고 축구 협회 사이의 진실 게임을 둘러싼 잡음들. 결국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사퇴했지만, 결국 대표팀 감독은 히딩크가 아닌 신태용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선수 선발과 '트릭 발언'(포지션에 맞지 않은 선수 선발과 관련된 신태용 감독의 전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신태용감독은 트릭이었다고 답했다) 대변되는 전술 부재 논란. 


 




감독들의 무덤이 된 대표팀 
하지만 축구 협회에서 감독 경질과 새 감독 선임의 논란은 새로운 사건도 아니다. 히딩크 감독 이후 10명의 감독이 대표팀을 거쳐갔다. 평균 1년 6개월 정도만 감독직을 맡은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히딩크만큼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감독을 자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협회가 자신들의 책임을 덮고, 가리기 위해 감독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임만이 아니다. 1994년 당시 미국 월드컵을 이끌었던 김호 감독은 선수 선발과 기용에 있어서 김독의 자율성이 침해되었으며 이에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건 '경질'이라며 협회의 감독 권한 침범을 증언한다. 
또한 2011년 레바논 전에 패한 후 조광래 감독은 하루 아침에 감독 직을 잃었다. 당시의 정황은 조광래 감독의 경질이 경기의 패배보다는 당시 협회장 선거를 둘러싼 파벌에서 조광래 감독이 협회 내 야권에 해당하는 인사와 가깝다는 이유였음을 보여준다.
히딩크 감독을 제치고 대표팀 감독이 된 신태용 감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월드컵 기간 내내 논란이 되었던 선수 기용, 전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그 자리에 중국 리그에서 아시아권 선수들에 대한 이해 부족, 부진 등의 이유로 경질된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 이번에도 그 과정에 대해 협회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팀은 '감독들의 무덤'이라 칭해진다고 다큐는 말한다. 

'우리의 축구 수준이 여기까지라고 저는 판단내려지고요. 
우리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에게 능력을 키우라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축구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보이는 것만 바꿔서 내보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두운 것을 털어내고
벽을 깨고 앞으로 나가기를 원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박지성



파벌을 둘러싼 감독 선임과 경질, 이른바 모 대학 동문 중심의 선수 기용 등에 대해서는 이미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일반인들 조차 기정 사실로 치부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오죽하면 지난 월드컵 경기를 관전한 각 방송사의 지난 2002 월드컵에 참여했던 선수 출신의 해설가(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등)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축협의 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후배들의 엄정한 요구에 대해 축구협회 이사가 된 홍명보 전 감독은 '경기를 얕게 해석'했으며, 후배들이 선수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없다'고 폄하하며 축협에 대한 비판을 일축했다. 


 





왜 현대는 축협을 놓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고질병이 된 축협의 문제 그 실마리를 다큐는 2013년 정몽준 회장에 이어 대한 축구 협회장이 된 현대 산업 개발 회장으로 부터 풀어가고자 한다. 
다큐는 질문한다. 도대체 왜 현대가는 26년 동안 축협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한 해 천억원의 예산을 가진 축구 협회, 지난 2013년  축구 협회장 선거 과정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억원의 돈이 오간다는 소문 끝에 정몽규 회장이 당선되었다. 당선된 정몽규 회장의 첫 사업은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는 반대를 불식하고 '축협 회관 리모델링'이었다. 

당연히 협회 사람들은 새로이 당선된 현대 산업 계발 회장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급작스런 이사 등 번거로운 리모델링 과정을 거치고 돌아온 후 알게된 사실은 십 몇 억이 든 리모델링 사업이 올곧이 협회 예산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심각한 건 이 과정에 현대 산업 개발 계열사가 참여했으며 특히 동생 정유경 씨의 실질적 송유주로 짐작되는 업체가 인테리어를 맡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업체는 <추적 60분>이 추적해 들어가자 홈피의 사진을 지우는 등 황급하게 소규모 행사를 했을 뿐이라 발뺌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년도에 비해 26배나 많은 54억의 현금 수익을 챙기는 '특혜성 공사'를 한 것으로 다큐는 짚는다.

이뿐이 아니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시기에 만들어진 B스포츠 마케팅 업체는 현대 산하 금강 기획 출신들이 주축으로 만들어진 마케팅 업체로 협회의 마케팅 업무를 독점해왔다.  
다큐 제작진의 질문에 경쟁 입찰에 따른 공정한 참여였다고 답했지만, 이 업체보다 서너배나 돈을 많이 쓴 타 업체조차 입찰 과정에서 튕겨져 나가는, '협회에 대해 잘 아는'이라는 모호한 선정 방식에 대해 전문가는 전형적인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라 단정한다. 하지만, 이른바 오랫동안 현대, 현대 산하 기업에 몸을 담아온  '현대맨'에의한 회사는 이른바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이 아니기에 '법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절묘한  수법이기에 '법적 처벌'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역대 축구 협회 임원에 대해 전수 조사를 한 다큐 제작진, 191명의 역대 협회 임원 중 현대에서 일한 사람은 53명에 달했다. 더구나 2017년 조중연 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등에서 법인 카드를 쓴 공금 유용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등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한 상태다. 심지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비리 임직원 중 6명이 여전히 축구 협회 임원등으로 재직하는 등 '협회 카르텔'은 공고했다. 현대 맨들이 장악되었다는 조직과, 그 조직에 의한 현대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다큐는 협회에 투자한 현대의 돈보다, 협회로 인해 얻은 현대가의 이익이 훨씬 크지 않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1000억원의 규모를 3000억원의 규모로 확장시키겠다는 슬로건으로 전폭적 지지를 얻어 당선한 정몽규 회장, 하지만 대표팀을 제외한 한국 축구의 현실은 초라하다, 대표팀의 베이스가 되어야 할 유소년 축구, 하지만 지원은 커녕, 고교 축구 연맹전은 학부모들의 품앗이로 진행된다. 지원이 부족한 프로 축구는 수익성이 나날이 떨어지며 고전 중이다.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우리의 축구 행정을 잘 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구 협회는 국민들의 것일까? 아니면 현대의 또 다른 계열사 중 한 곳일까? 


 


​​​​​​​

누구를 위한 축구협회여야 할까? 
물론 축구 협회는 사단법인이다. 재벌이라는 금권에 기반한 스폰서의 경제적 지원에 의한 단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게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큐는 이의를 제기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다면, 국가대표 팀의 경기라도 있을라치면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국민적 호응이 없다면 축구 협회의 존립이 가능하겠는가라고. 

재벌 기업의 사재를 털었다지만, 공적 기금이 들어갔음은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각종 시설 등을 사용하고 있는 축구 협회는 '공공재'로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끈 덕에 국민적 호응을 얻어 대선 후보까지 나섰던 정몽준 후보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그저 재벌 회장과 달리, 축협 회장이라는 '왕관'의 무게로 인해 얻는 이익은 경제적 수치 그 이상이라 다큐는 단언한다. 

이미 준정부적인 조직으로 거대화된 축구 협회,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라는 개별 기업에 의해 장악된 조직,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공적 역할에 걸맞은 책임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다큐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조직이 스스로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법적 개입조차 필요하다 덧붙인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 축구인들이 힘을 합쳐서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4년마다  매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지성










9월 5일 <추적 60분>에서 현대에 의한 축구 협회에 대한 비판적인 방송이 방영되자, 6일 협회는 반박문을 발표했다. 그 반박문은 다음과 같다. 

<추적60분> 방송에 대한 대한축구협회 반박문

 
1. 대한축구협회가 희생양을 위해 대표팀 감독 경질만 되풀이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릅니다. 최근 몇년전부터 대한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철저히 신뢰하고 최대한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감독 선임 기구도 새로 정비하고 선임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최상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2. 축구회관 인테리어 공사를 현대산업개발 관련 회사가 시행했다는 주장에 대해
 
2013년 시행한 축구회관 인테리어 공사는 입찰을 통해 정상적으로 시공사를 선정했으며, 현대산업개발 관련 회사가 아닙니다. 정몽규 회장의 여동생이 지분을 가진 모 회사는 이 시공사에 납품을 한 여러 회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3. 대한축구협회가 ‘현대가’의 특정 마케팅 대행사와 유착했다는 주장에 대해
 
2015년까지 대한축구협회 마케팅 대행사는 독점이 아니라 여러 회사가 자유롭게 참여할수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의혹이 제기된 모 회사는 오랜 경험과 실적으로 협회와의 거래가 상대적으로 많았을 뿐이며, 현대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습니다.  2015년말 실시한 통합 마케팅 대행사 선정 역시 공정한 절차에 따라 능력과 실적을 겸비한 회사를 선정한 것이므로 유착이라 할 수 없습니다. 
 
4. ‘현대가’가 막대한 이익을 위해 대한축구협회를 장기집권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릅니다.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현대 관련 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로, 성인팀만 4개(울산현대, 전북현대, 부산아이파크, 인천현대제철)이며, 초등부터 대학까지 합치면 총 18개의 남녀 축구팀이 있습니다. 최근 5년간 18개팀의 운영비로 투입된 금액만 총 3,900억원입니다. 현대 관련 기업이 지난 2010년부터 7년동안 K리그의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낸 후원금이 200억이 넘습니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FIFA, 현대중공업이 AFC의 후원사로 참여해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도 높인바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시 정몽규 회장이 당선을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 선거에는 100명 이상의 선거인단이 참여하기 때문에 압력을 넣거나 불법 로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대한축구협회장의 임기를 3회로 제한한 것은 FIFA나 AFC의 방식을 참고한 것입니다. 국내 다른 종목 단체의 회장은 기본으로 2회를 연임할 수 있고, 대한체육회 승인을 받으면 추가로 얼마든지 연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축구협회가 정한 3회 임기 제한이 오히려 회장의 임기를 제한한 것입니다.
 
5. 대한축구협회는 유소년 지원에 관심없고 대표팀 성적에만 치중한다는 주장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에서 나오는 주장입니다. 학원 축구 리그제 정착, 동호인 축구 디비전 제도 도입, 골든 에이지 훈련, 8 대 8 도입 등 유소년과 아마추어 축구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8년 한해 유소년 축구에 투입되는 비용만 144억원입니다. 열악한 환경의 유소년 축구 사정은 잘 알고 있으나,  특정 팀과 지도자, 선수 개인을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6.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임직원의 징계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6~7년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협회 징계위원회에 상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검찰 수사 발표가 안되고 있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수사 결과가 나오는대로 필요한 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할 예정입니다. 2013년부터 클린카드 실명제 등 회계 시스템을 도입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by meditator 2018. 9. 6. 16:09

결핵은 결핵균(미코 박테리움)에 의해 감염되는 질환이다. 기원전 7천년 경 석기 시대 화석에서 발견됐을 정도로 인류와 함께 해온 질병이며 가장 많이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기도 하다. 결핵 환자에게서 나온 미세한 침방울 혹은 비말핵(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결핵균이 들어있는 입자가 공기 중으로 나와 수분이 적어지면서 날아다니기 쉬운 형태로 된 것)에 의해 감염된다. 하지만 감염된다고 해서 모두 결핵에 걸리는 건 아니다. 대개 접촉자의 30%가 감염이 되며, 그 중 10%가 결핵 환자가 되며 나머지 90%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발병하는 사람들의 경우 감염 내 1~2년내 발병하고, 나머지는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저하되는 때에 발병하게 된다. 그러기에 결핵의 발병에는 면역력이 약화되는 조건, 즉 영양의 부족 등의 상황이 주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북한의 경우, 생활고로 인해 영양 상태의 부족으로 인해 결핵 감염율이 높다. 인구 10만명 당 결핵 환자가 550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통계 조차도 정확하지 않다. 심각한 건 기존의 결핵 약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운 슈퍼 결핵, 다제내성 결핵 (Multi Drug Resistant Tuberculosis, MDR-TB)환자가 6000 여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9월 3일 방송의 날 특집으로 방영된 mbc스페셜은 이 '다제내성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6개월에 한번씩 북한을 방문하는 유진벨 재단의 여정을 그린다. 




주적 미국과 남한, 그리고 북한이 함께 하는 
이 여정을 함께 한 사람들은 각별하다. 우선 이 다큐는 북한 출신의 외조부모를 둔 석해인 감독의 <out of breath>의 한국어 판이다. 봉사단과 함께 2년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여 완성된 다큐는 이미 일본에서도 방영되었고, 조만간 영국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오로지 외조부모들이 북한 출신이라지만 북한을 떠난 이후로 단 한번도 다시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했던 분들의,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던 '이방인' 석감독의 눈으로 본 북한, 그리고 봉사의 여정은 그래서 담담하고 객관적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북한은 그녀가 보았던 1950년대 남한의 풍경과도 같다. 민둥산 비포장 도로, 그곳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함경도 시골 마을, 그곳에 북한의 결핵 요양원이 있다. 하지만 말이 요양원이지. 수용 시설에 가까웠다. 겨우 일반 결핵 환자들을 위한 약이 있을 뿐 다제내성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나마 약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마치 경제 금수 조치를 당한 쿠바에 1960년대 클래식 카가 활보하듯, 말이 뢴트겐이지, 작동되는 자체가 기적이라 할 폴란드에서 1950년대 제작된 기계가 환자들의 x선 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그곳에서 북한 사람들이 주적이라 여기는 미국인이 유창하게 북한 사람들에게 '동무'라며 자신들의 방문에 대해 소개를 한다. 스티브 린튼 박사, 한국에 왔던 선교사의 자손, 그는 성경을 손에 들고 온 할아버지처럼, 성경 대신 결핵 약을 바리바리 싣고 북한 함경도 골짜기를 찾았다. 세계 보건 기구(WHO) 에서 다제내성 결핵 치료 지침서를 작성한 전문가이자 세계적인 결핵 전문의 한국계 미국인 승권준 박사도 함께 한다. 말이 결핵 약이지, 봉사단의 북한 행을 일행은 '외계와의 조우'에 빗댄다. '아무 것도 없다'란 전제 하에 그곳에서 봉사를 펼칠 '모든 것'을 준비해 가야 하는 여정. 그곳엔 숨쉬기 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기꺼이 쉽지 않은 치료에 합류하고자 하는 환자들이 있다. 




봉사단이 아니면 불가능한 치료, 그러나 쉽지 않은 
키 169 센티, 하지만 몸무게는 46kg에 불과한 김태성 씨, 그는 묻는 말에 대답하기조차 숨차한다. 휠체어에 실려온 젊은 청년은 잠시 몸무게를 재기 위해 홀로 서는 것조차 쉽지 않다. 먼길을 아내가 끄는 리어카에 실려온 중년의 환자도 있다. 그들은 모두 '포기된' 사람들이었다. 심각한 건 환자를 건사하다 주변의 가족들이 감염되어 아빠와 어린 딸, 엄마와 어린 아들이 함께 찾아오는 사례이다. 마치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에서 어머니 북촌 댁의 폐결핵을 전쟁 통에 끼니조차 챙기기 힘들던 몽실 언니의 동생 난남이가 이어받듯이 말이다. 그래서 승권준 박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옮기는 결핵이 가장 치료하기 힘들고 어려운 질병이라 정의한다. 그렇게 갖가지 증상과 상태로 모인 기존의 결핵 약으로는 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한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 그들에겐  진단을 위한 객담 조사조차 버겁다. 

봉사단은 그들과 함께 한 북한의 결핵 전문가, 그리고 현지의 의료진과 함께 환자들의 실태와 상태 조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전기조차 여의치 않은 요양원의 처지로 인해 발전기까지 구비해야 하는 진료 과정, 그 과정과정은 늘 예기치 않은 변수와의 실랑이이다. 하지만, 그 변수들을 극복해 내며 봉사단이 애를 쓰는 건 바로, 북한 내에서는 약조차 구할 수 없는 다제내성 환자들에 대한 치료와 교육이다. 

봉사단이 약을 가져가지만, 약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기존의 결핵 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약은 '치료'만큼 '독성'도 강하다.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고, 청력을 잃을 수도 있고, 신부전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약 자체를 먹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환자들이 그 어려운 투약 과정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정신 무장'도 방문단의 주요한 일정이다. 하지만, 6개월에 한번씩이라는 짧은, 그리고 가끔씩의 여정은 '6개월 후에 만나요'라는 기약할 수 없는 인사를 남겨야 하는 안타까운 여정이다. 




6개월, 하지만 기약할 수 없는 
이 봉사단의 여정이 기약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중 전제가 되는 건, 바로 언제나 요동치는 한반도의 정세이다. 그저 북한의 치료받지 못한 결핵 환자들을 돕고자 하는 이 인도주의적인 여정은 언제나 남북한의 정치 정세게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무슨 충돌이 있더라도 환자는 같이 살리자.' 그래서  '성숙된 인도주의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스티브 박사는 강변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6개월에 한번이라는 이 상시적이지않은 인도주의적 봉사가 북한의 환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보살핌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6개월 후에 꼭 봤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곳을 떠나는 봉사단을 그 말이 얼마나 기약할 수 없는 단어인 줄 안다. 분명 차도가 있고 열의가 있던 환자였지만, 봉사단이 6개월 후에 그곳을 찾았을 때 그 환자가 유명을 달리하거나, 더는 양의 효험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요양원을 떠나는 사람들은 두 부류이다. 더는 이곳에서 조차 치료의 기대를 할 수 없어, 혹은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여 떠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가 하면, 어려운 치료 과정을 거뜬히 이겨내고 건강인으로 다시 사회에 복귀하는 경우이다. 그들은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종이학 목걸이를 걸고 그곳을 떠난다. 몇 번의 방문에서 정이 든 봉사단은 완치가 못되어 떠나는 이들에겐 포기하지 말라는 간곡한 인사와, 건강해서 떠나는 이들에겐 앞날의 행복을 기원하며 그간의 정을 다한다. 

다시 돌아온 남한, 봉사단을 다시 분주하게 자신들의 인도주의적 봉사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고,  북한의 환자들을 위한 약과 의료 기기를 준비하고 그들의 방문에 맞춰 서둘러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기기조차 '방북'이 쉽지 않은 상황, 인도주의적 봉사의 여정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현재 북한의 결핵은 해마다 4,5천명 규모로 발생하는 상황, 공식적으로 집계된 환자 수는 11만 명 하지만, 이 공식 집계는 비공식적 집계의 10%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해마다 2백만 명 가량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그 중 상당수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어린 시절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크리스마스 씰이라는 기념 우표를 샀던 기억이 있다. 그 크리스마시 씰을 처음 발행한 사람은 1928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결핵 요양소를 세운 캐나다의 선교사 셔우드 홀이다. 그렇게 남한의 결핵 퇴치에 앞장섰던 선교사들처럼, 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북한의 결핵 퇴치와 치료에 힘쓰고 있다. 유진 벨 재단의 스티븐 역시 그런 사람이고, 그의 활동은 그의 선인들의 활동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우리나라에 와서 결핵 퇴치에 앞장섰던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듯, 이제 북한 결핵 봉사에 대해서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너그러운 아량과 베품을 나눌 때가 아닐까. 

by meditator 2018. 9. 4. 04:16

인생의 1/3에 해당하는 시간을 보내는 잠, 길지도 않은 인생에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자는 그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인생의 어떤 시기에서 이런 생각을 안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큐에 나온 고 3 수험생은 계산한다. 하루에 한 시간, 그게 24일이 모이면 하루, 그 시간 동안 내가 자고, 내가 자는 시간 그 누군가가 깨어서 공부를 한다는게 두렵다고. 이른바 그 예전 시절 4당5락이라 말하던 '입시 괴담'의 2018년 버전이리라. 

그런데 입시만 끝나면 실컷 잠을 잘 수 있다던 '로망'은 이 시대에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oecd 회원국 중 수면 시간 우리나라는 평균 7시간 49분으로 꼴찌, 그런데 이 평균 수면 시간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든 생각은 '세상에 7시간이나 잔다고?'가 아닐까? 직장인들 10명 중 8명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 내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학교에서, 직장에서 잠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균 7시간조차 꿈의 수면시간 처럼 보이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게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 이어지며 이제는 잠을 자는 시간조차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잠이 '사치'가 된 세상에서 막상 잠을 자려 해도 '숙면'을 취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쓰는 불면 일기>를 기획한 작가 최성우씨, 그는 늘 졸음에 시달린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그를 '포근한 잠자리' 대신, 자판 위의 끄덕이는 졸음으로 대신하게 하고, 정작 잠을 자려 해도 잠이 쉽게 들지 않고, 잠을 자도 개운치 않다. 

잠보다 무서운 수면 장애 
이렇게 '잠'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오지용씨는 늘 졸립다. 운전 중에도 졸음과의 전쟁을 벌이는 그, 하루 7시간 정도 자는데도 그는 졸립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 운동까지 하지만, 그의 '수면'과의 전쟁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늘 졸리기야 방송국 피디만한 사람이 있을까? 오학준 피디는 자타공인 잠보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미래를 위해 잠을 강탈해야 하는 처지, 겨우 밤을 새워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자신이 즐겨하는 게임을 위해 잠을 양보한다. 그래서 일까, 그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우려할 정도로 현격한 기억력 감퇴에 시달린다. 
5번째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조하영씨는 겨우 잠자리에 들어서도 불면의 밤을 보낸다. 잠을 줄여 공부에 보탠 시간은 그녀에게 수능 성적으로 보상을 해왔었다. 그게 습관이 되어버린 이제, 잠은 그녀에게서 멀리멀리 달아났다. 




자신의 삶에서 '잠'을 빼앗아 자신의 꿈을 위해 썼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건 작건 수면 부족에서 부터, '수면 장애'에까지 잠과 관련된 각종 스트레스와 질환에  시달린다. 그래서일까 어느덧 대한민국에서 잠과 관련된 산업의 시장이 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잠(sleep)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등장했다. 잠이 부족한 직장인들을 위한 수면 카페가 등장하고, 숙면을 위한 각종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목침 하나 궤면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던 옛사람들의 여유는 저리 가고, 침대는 과학에 이어, 베개의 과학까지 우리의 지갑을 열도록 만든다. 

이렇게 다큐는 부족한 잠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부터, 그 잠을 줄이도록 강요된 사회에서 결국 수면 장애까지 앓게 된 현대인들의 사정을 사례별로 다룬다. 그렇다면 이제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게된 현대인들에 대한 해법은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시대가 현대인들의 부족한 잠을 해결해 줄 수 없듯이, 다큐의 처방은 또 다른 '침대의 과학'으로 귀결된다. 

과학이 숙면을 인도하리라? 
다큐는 등장했던 사람들을 수면 검사실로 인도한다. 수면 다원 검사를 통해 다양한 수면의 내용을 들여다 본다. 너무도 잠을 잘자서 활동명조차도 슬리피가 된 가수 슬리피, 검사 결과 그는 잠을 잘 자는 게 아니었다. 심한 코콜이로 인한 수면 무호흡증, 그리고 부정맥, 그것들이 그를 자도 자도 또 잠을 자도록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수면 장애를 보이던 출연자들은 대부분 검사 과정에서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길었다. 또한 수면 과정 중 깨어나는 각성도 빈번했다. 반면 하루 4시간만 자도 20시간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다던 이른바 나폴레옹 수면법의 김쌍규 씨는 입면도 쉬웠으며, 수면 도중 깨는 각성도 없이 깔끔하게 수면의 사이클에 몰입했다. 

사람이 잠을 자는 과정은 총 4단계로 나뉘어 진다고 한다. 그 중 1, 2 단계는 주변의 소음에 무뎌지면서 잠에 빠져드는 단계, 대부분 수면 장애에서 잠이 드는데 힘이 들어 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 문제가 있다. 다음 3단계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단계, 이 과정에서 몸과 뇌가 휴식을 취하며 손상된 세포가 복귀가 되고, 노폐물들을 배출하여 새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몸의 상태를 이루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순조롭게 되지 않았을 때 면역성이 저하되어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나 각종 암, 감염 등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한다. 잠을 자는 도중 자꾸 깨는 경우, 이 3단계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
다큐는 김쌍규 씨와 같은 깔끔한 입면과 각성없는 잠의 이상적 상태를 위해 '과학'을 제시한다. 우선 슬리피나 직장인 오지용씨의 경우에서 처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는 수면 무호흡증의 사례를 살펴보고, 작가 최성우 씨 사례의 이갈이 치료법도 소개한다. 더불어 암막 커튼과 가습기, 안락하고 적절한 침구들의 환경을 제시한다. 결국, 슬리포노믹스의 범주이다. 

과연 자본 2조원의 슬리포노믹스는 우리를 수면 장애에서 구할 수 있을까. 밤샘 작업이 필요한 방송국의 작업 환경, 다섯 번째 도전해야 하는 수능, 그리고 남보다 한 시간 더 자는 게 불안으로 이어지는 고3의 시간, 4시간 자면 개운하다는 사장님 앞에서 조금 더 자는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고개를 수그려야 하는 회사 생활, 과연 이런 현실의 스트레스가 암막 커튼과 푸근한 잠자리가 구원해 줄 수 있을까? 혹 그 무엇도 해결해 줄 수 없는 현대인을 위한 당의정같은 플라시보 해법이 아니었을까. 

by meditator 2018. 9. 3. 16:14

지난 29일 소상공인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최저 임금 제도 개선 국민 촉구 대회'를 열었다. 소상공인 총궐기의 날로 정한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백여 업종, 지역별 소상공인 3만 여명(경찰 측 추산 1만 5000 명)들은 최근 결정된 최저 임금제 결정과 관련 소상공인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최저 임금 차등 적용 등 생존권 위기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밝히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운 정부는 그에 맞춰 '최저 임금제'를 인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저 임금제'의 인상은 낮은 알바 시급 등에 의존하여 근근히 영업을 해온 자영업자들에게 타격을 주게 되었다고 소상공인들은 주장한다.  결국 이들이 '생존 보장'을 외치며 거리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올 한 해 폐업하는 자영업자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전년보다 10% 뛰어 역대 최대치인 87.9%를 기록했다. 2년도 안돼 폐업하는 사례가 늘고, 10곳 중 4곳이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자영업자의 폐업 속출은 '최저 임금제'때문만일까? 지난 8월 30일 방영한 <다큐 시선- 당신의 음식값, 만족하십니까>는 최저 임금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소상공인의 딜레마를 설득한다. 




560만 자영업자들이 빠진 블랙홀
족발집을 6년 째 운영하는 석희철씨는 요즘 하루에도 12번 씩 가게를 접을까 고민한다. 그만이 아니다. 석씨 가게 주변에 2~30년 정도 자영업을 하던 분들도 입을 모아 '이런 경기는 없었다'라고 혀를 내두른다고 전한다. 작년부터 내리막길이던 가게 운뎡은 이제 반토막이 났다. 두 솥 가득 끓여대던 족발은 이제 겨우 한 솥, 그 마저도 최근엔 하루 2만원치기 장사, 아니 그보다도 못할 때도 있다. 최저 임금제를 떠나, 장사가 안되니 인건비가 감당이 안돼서 알바는 주말에만 쓴다. 불금, 불토가 없어진지 오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돈이 된다던 자영업의 장점은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몸을 움직여 돈을 벌던 기쁨을 누린 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프렌차이즈는 좀 나을까? 
피자 브랜드를 운영하는 최은자씨와 함께 매장을 운영하던 남편은 매장을 아내에게 맡긴 채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대출까지 받아 운영비를 마련하는 상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자영업자들을 블랙홀에 빠뜨린 원인은 무엇일까? 어느 한 가지가 아니다. 물론 소상공인들을 거리로 내몬 최저 임금제도 있다. 하지만, 나날이 치솟는 임대료, 올해와 같은 폭염에는 청전부지로 치솟는 채소값처럼 감당할 수 없는 자재 구입비, 그리고 프렌차이즈의 경우 가맹비, 거기에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배달 앱으로 인한 비용 들이 몸을 움직인 만큼 돈을 벌던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찢어발겨 나누어 가져간다. 다큐는 우리가 음식값으로 지불하는 비용 속에 숨겨져 있는 '알수 없는 비용', 그 중에서도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배달 앱 시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배달의 화려한 리바이벌, 배달앱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배달을 시작한 된 구한말이다. 상상이 되는가, 거리에 해장국과 설렁탕이 배달되는 풍경이. 그 설렁탕 그릇을 대체한 건, 짜장면의 철가방이다. 하지만, 테이크 아웃의 경제성이 등장하면서 '배달'은 주춤하는가 싶었다. 그랬는데, 최근 1인 가구의 확산과, 배달 앱의 활성화와 함께, '딜리버리', 배달 산업이 다시금 활성화되고 있다. 

어느 덧 한 해 15조원에 육박한 배달 앱 시장. 배달 앱을 띄우고 화면에 클릭 한번만 하면 내 집 앞까지 먹고 싶은 걸 배달해 주는 이 '편리한 신기술'이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자영업자들에겐 더 많은 이득을 줄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 '신기술'의 앱은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줬을 지는 몰라도, 자영업자에게는 '비용의 파이' 그 지분을 더 쪼개버렸다. 

앱에 자신의 가게를 올리는데 필요한 수수료, 매달 나가는 회비, 거기에 요구되는 '박리'에, 배달로 인한 매출 감소는 자영업자들에게는 결국 '영업 이익의 감소라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배달로 인해 많이 팔게 되었는데 손해가 나다니. 거기엔 '배달앱'이라는 중간 마진 과정이 고스란히 자영업자의 부담으로 얹혀지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 

최근 배달앱 활성화와 함께 부흥된 배달 시장은 예전의 배달 중심 시장과는 질을 달리한다. 중국집마다 고용된 철가방은 옛일이 되었다. 더 이상 배달원을 각 업소가 고용할 수 없는 고비용 인건비 시장에서 이젠 배달은 배달 전문업체의 일이 되었다. 즉 신종 직업군으로서 어플 노동자, 배달 라이더들이 등장한 것이다. 

10년째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세창씨. 프랜차이즈 업체에 내는 수수료가 15%이다. 인건비를 빼고 나면 마진이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배달앱이 활성화되면서 운영 비용이 추가되었다. 예전처럼 전단지를 돌려서 직접 가게에 주문을 하던 시절이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배달앱이 고약하다. 배달앱에 자신의 가게를 올리기 위해 경매비를 내고 입찰을 해야 한다. 인기 지역의 경우 50만원에 육박한다. 2011년에 본격화된 배달앱은 메이저 3사의 독과점 사업이 되었다. 그 중 가장 잘 나가는 1위 업체는 경쟁 입찰 방식을 취하고, 나머지 업체들도 수수료를 받는다. 결국 돈 놓고 돈 먹기가 되는 현상, 영세 사업자에게 그 비용은 언감생심이 되고, 정작 정보를 통해 편리함을 얻고자 했던 소비자에게는 왜곡된 정보를 전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심리 상, 최초 로딩된 7개 업체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십상인 앱, 결국 더 많은 돈을 들여 홍보하거나, 이 시장에서도 방치되는 게 자영업자들의 숙명이 되었다. 

변화된 산업 구조, 뒤따르지 못하는 제도적 보호 
하지만, 너도 나도 배달앱을 켜는 세상에서 이 시장을 외면하는 건 쉽지 않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경우 애초에 계약 당시 설정된 마진율은 고정적이다. 그런데 배달앱 등 시장 상황이 변화하면서 운영 비용이 추가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종진 한국 노동사회 연구원 부소장은 지난 30여년 간 우리 사회의 산업 구조가 IT 정보 기술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산업 구조의 중심이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했다고 정리한다. 개인 사업자인 자영업자들이 산업 구조의 중심이 되었는데, 문제는 여전히 2차 산업 구조에 기반한 법제도는 근로 기준법, 최저 임금제, 산재 비용 등에서 이런 산업 구조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최근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짚었다. 즉, 자영업자들이 가장 활성화된 산업의 중심인데도 전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산업 구조 환경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영업자들만이 아니다. 바로 그들의 손발이 되어 배달을 하는 배달 앱 노동자들 역시 법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다. 

하루 종일 진수성찬을 배달해주다 오후 다섯시가 되어서 첫 끼를 때우는 이용훈씨. 그는 이제 4년차 배달 대행 라이더이다. 배달 대행업체 소속, 1.5km 미만의 배달지에는 건당 3000원에 배달을 대행해주는 노동자. 



​​​​​​​
그의 배달은 '위험'과의 동침이다. 같은 지역에서 배달을 하는 30여 명의 배달원들, 그들은 콜이 오면 그걸 잡아서 배달을 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주행 중에도 늘 스마트폰을 켜고 콜을 잡아야 하는 위험을 감수한다. 위험은 그것만이 아니다. 40 분이내 배달을 마쳐야 하는 앱배달의 '덕목'은 당연히 교통 법규를 지킬 수 없게 만든다. '빠른 시간 안에 목표달성'이라는 대한민국의 신조가 가장 극적으로 실현되는 직종 배달 라이더, 그는 한 시간안에 7개의 콜을 수행해 내며 2.8000원을 번다.

평균 근속 6개월, 근로 계약서는 없다. 1년에 두 세번 사고가 나는게 일상화되는 위험한 작업 환경을 감수하고 산재 보험을 드는 배달 대행업체는 없다. 사고가 나면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청약 철회', 배달 사고가 날 경우, 앱, 자영업자, 배달 대행업체로 나뉘어진 책임 소재는 종종 그 책임이 배달 라이더들에게 뒤집어 씌워진다. 

앱에 의한 배달은 통신 판매법에 의거한다. 하지만 결제는 전자 상거래 법에 속한다. 이런 식이다. 배달 앱의 등장, 그 수족이 되는 배달 대행업체와 배달 라이더들, 그리고 그로 인해 운영 비용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플랫폼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자영업자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손실 증가는 이런 변화된 산업 구조와 그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미 수직화된 산업 구조로 독과점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배달앱 사업체 들에 대한 경제적 법적 장치의 미흡한 가운데, 이미 기존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불공정한 계약 관계에 놓인 자영업자들은 다시 한번 이 새로운 플랫폼 기반 사업에서 '을'이 되어 이익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안그래도 저성장으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이익의 파이는 원자재, 가맹점비, 배달앱, 카드 수수료, 건물 임대료, 인건비 등으로 쪼개어 지니 자영업자들이 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영업자 만이 아니다. 한때는 청소년들의 주된 알바였던 배달 라이더가 이젠 30대 가장들의 일터가 되어간다. 새로운 산업 구조에서 등장한 이 신종 노동자들은 하지만 여전히 '알바' 수준으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결국 사회, 산업은 변하는데, 자본은 그에 맞춰 발빠르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데, 법과 제도는 그를 쫓아가지 못한 채 개인인 자영업자들과 배달 라이더들에게 책임을 온전히 지우고 있는 것이, 바로 광화문 광장으로 나선 소상공인들의 뒷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저 임금제'를 어찌한다고 해서 폐업율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무인 주문기, 중국에서 활성화된 스맛폰 결제 시스템 등 온라인과 오프 라인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환경에 맞는 제도적, 법적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by meditator 2018. 9. 1. 16:16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을 ,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같은 것.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서로를 조립하고 있다
                                             -     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

자본주의 사회는 '물화'의 세계이다. 모든 인간은 '사물'을 통해 관계맺고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어가면서 그 '물화'의 체계가 변화되어지고 심화되어졌을 뿐, 여전히 우리 관계 맺음의 근간에는 '사물'이 있다. 하지만, 거기서 본질은 그 '사물'과 '사물'로 맺어지는 체계의 핵심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찌기 맑스 선생은 이 '물화된 세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의 소외'를 일갈했다. 지난 27일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는 가장 흔한 사물인 '운동화'를 통해, 그 속에 소외되어 있던  '인간의 세계'를 한껏 드러낸다. 





사물의 이야기, 곧 인간의 이야기 
'사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도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1986년 일본의 공장을 삽화가 안자이 미즈마루와 함께 견학하여 당시 일본의 산업을 생생하게 그려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뜨는 나라의 공장>이 그러했고, 2014년 한겨레 신문을 통해 써내려간 칼럼을 출간한 김중혁 작가의 < 메이드 인 공장> 역시 공장이란 공간을 통해 사람과 시대와 공간을 복기해내었다.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건져내는데 탁월한 알랭 드 보통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일', 즉 노동의 현장의 생생함을 삶의 철학으로 설파한 바 있다. 물건이 드나드는 항구에서 시작된 '화물선 관찰하기'로 부터 시작되는 그의 시선은, 이내 물류로, 그리고 그 물류의 흐름을 타고 퍼져나가는 통조림, 그리고 우리가 하찮게 지나치던 그 통조림의 라벨이며, 그리고 간과되기 쉬운 사무의 자잘한 업무들, 회계, 창업 등등, 말 그대로 '일'의 전반적인 영역에 세심한 관찰과 촌철살인의 혜안을 내보인 바 있다. 거친 바다에서 잡힌 펄떡이던 참치가 어떻게 '사람들의 손'을 통해 통조림 캔으로 변신하게 되는가, 그 과정에 채곡채곡 쌓인 '직업'의 여정은 새삼 그 결결이 쌓인 사람들의 행보에 전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ebs  다큐 프라임 -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는 tv로 온 알랭 드 보통 판 <일의 기쁨과 슬픔>과도 같다. 우리가 매장에서 자신의 개성과 패션을 따라 선택하는 운동화 속에 담겨진 사람들, 그들의 일이 한 시간 여의 다큐를 통해 묵직하게 전달되어져 온다. 




내 운동화는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
시작은 마치 남태평양의 참치 잡이처럼, 운동화의 원료가 생산(?)되는 말레이지아 열대 우림으로부터이다. 

마이딘 빈 안실, 67세, 255mm의 신발을 신는 그는 말레이시아 뚜아란  숲에서 운동화 밑창의 원재료인 고무를 채취한다. 18세가 영국 식민지가 된 이래 독립 이후까지 말레이지아의 주요 산업이 된 고무 채취 산업의 종사자이다. 허리에 모기향을 매고, 고무 나무에 칼집을 내서 고무액을 채취하는 작업을 1분에 다섯 그루, 그와 같은 일꾼들이 하루에 500그루 분량을 채취한다. kg당 만원을 받는 오로지 손으로만 해야 하는 작업, 70~80 링긴, 하루 20만원 정도의 벌이, 젊은 시절 한때는 도시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6명의 자녀와 12명의 손주를 키워낸 이 일이 혹시라도 고무 신발을 신은 관광객이라도 마주치면 반가움이 앞설 정도로 이젠 '자부심'이 되었다. 

마이딘이 채취한 고무는 모아져서 화학 약품으로 세척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얇고 부드러운 고무로 만드는 과정은 195명의 말레이시아원주민이 주축이 된 사바의 가공 공장에서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 카트리나 빈티 와시(45)가 있다. 일찌기 중학교를 마치자 마자 인도네이사인 남편과 결혼한 후 좀 더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사바 지역까지 온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35kg 단위로 만들어진 고무 블록을 포장하는 일,  대부분의 원주민이 그렇듯이 농사일과 공장 일을 병행하는 그녀와 남편의 맞벌이는 '자식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지금보다 더 성공한 '고무 공장 홍보' 일과 같은 사무직으로 전향을 꿈꾸는 그녀에게 '고무'는 풍족한 삶의 근원이다. 

다른 이의 삶과 얽혀있는 한 사람의 삶, 
말레이시아에서 채취되어 1차 가공된 고무는 멀리 슬로바키아까지 여행을 떠난다. 슬로바키아 파르티잔스케는 1930년대 후반 신발 공장이 생기며 형성된 도시, 그곳에 도착한 고무는 본격적으로 운동화로의 변신을 시작한다. 

요제프 샤레이와 얀 쿠노하는 10대 후반부터  이 공장에서만 48년, 40여년을 일했다. 퇴직을 했었지만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 두 사람, 여전히 기계의 소음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거대한 롤러로 고무를 펴서 신발에 맞춰 재단하고 운동화 갑피에 얹는 일. 1939년에 만들어진 공장 1년에 4백만 컬레를 생산하며 만 오천명의 노동자가 북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슬로바키아의 올림픽 영웅 요제프가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운동화를 신고 트랙을 내달리던 88년, 그 시절을 정점으로 더는 공장의 기계는, 공장의 공정은 새로워지지 않았다.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운동화 산업. 퇴직했던 요제프나 얀이 다시 돌아와서 일해야 될 정도로 일손이 귀해진 공장, 이들은 자신들이 나이먹어가듯, 자신들의 시대가 이 낡은 공장과 함께 저물어 가는 걸 실감하며 슬퍼한다.
신발과 함께 경력 30년 그녀의 손에서 운동화 패션이 완성되는 갑피 제작에 종사하는 마리아 아담 초바(57)에게 역시 공장은 나의 집, 그녀의 인생이다.



가장 일상적인 운동화를 전해주는 가장 일상과 먼 삶을 사는 사람들 
저물어가도 여전히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운동화는 슬로바키아의 공장에서 탄생하여, 비로소 운동화로서 첫 여정을 떠난다. 슬로바키아에서 독일 함부르크로, 그리고 다시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남중국해 싱가폴과 홍콩을 지나, 부산까지 9800컬레의 동료들과 함께 컨테이너 박스 안에 담겨 5주간의 여행에 몸을 싣는다. 

그 여정에는 이제 갓 신혼의 일등 항해사 35세의 한국인 권태수씨와, 12년 경력의 갑판원 36살 미얀마 인 묘 코 코우 씨가 함께 한다. 선실에서 화물을 관리하고 선체를 정비하는 일을 '사무'하는 항해사와, 직접 몸을 움직여 컨테이너를 고정하고 청소하는 갑판원의 '협업'을 통해, 그들이 모르는 컨테이너 속의 신발들은 안전하게 부산에 도착하여 거리를 누빌 수 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는 1억 8000만 컬레의 신발을 수입했다. 말레이시아, 슬로바키아, 무심코 신은 내 컨버스 운동화 한 컬레가 그리 오래 여행의 산물이었다니, 그리고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던 말레이시아의 고무 채취 인부와 가공 공장의 아줌마 노동자, 그리고 운동화가 평생의 열정이라는 슬로바키아의 노익장 노동자, 그리고 컨테이너 선의 한국인 항해사와 미얀마인 갑판원 등이 내가 신는 운동화 한 컬레에 담겨 있다. 아니 함부르크 항에서 컨테이너 선을 옮긴 부두 노역 노동자와, 함부르크까지 옮긴 트럭 운전수와, 말레이시아에서 바다 건너 슬로바키아까지 옮긴 선원들은 또 어떻고, 물류만이 아니다. 고무로부터 시작했지만, 운동화 갑피가 되는 천과 가죽의 원료로 부터 시작되면 또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더해져야 하는 건지, 내게 운동화를 건넸던 그 가게의 아르바이트 생 또한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세상은, 세상 사람들은  내 운동화 한 컬레를 통해 서로 이어지고 있다. 운동화는 그저 운동화가 아니라, 그들의 '노동'이며 '열정'이요, 삶이다. 일찌기 어느 시인이 니가 뜨거워 본 적이 있느냐며 연탄재 함부로 발길질 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젠 뜨거워졌던 연탄재 때문이 아니라, 운동화가, 그 운동화에 담긴 연탄만큼 활활 타올랐던 수많은 삶이 무거워 함부로 발길질을 못하지 않을까 싶다. 



by meditator 2018. 8. 29. 16:24

'듣기만 해도 볼 수 있어',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이 극대화된 강권주(이하나 분), 보통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능력은 20Hz~ 20KHz, 그에 반해 강권주는 22khz 정도라는 돌고래 급이다. 이는 120m 떨어진 곳에서 작은 공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 덕분에 119신고 센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현장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119 신고 요원에 불과했던 강권주가 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던 사건. 그래서 강권주는 그 '소리'를 증명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소리를 기반으로 하여 범죄 유형을 분석하는 '보이스 프로파일러'가 되어 돌아왔다.  '듣기만 해도 볼 수 있는', 거기에 그 들었던 소리를 기반으로 사건 현장의 미세한 단서마저 포착함은 물론, 피해자나 범인의 상황이나 심리 상태까지 축측할 수 있는 강권주 팀장을 필두로 하여 119 신고 체계를 업그레이드한  '골든 타임팀'이 꾸려진다. 




강력한 사이코패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시즌
강권주와 골든 타임팀은 119 신고 센터를 중심으로 하여 포진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현장의 귀가 된 그들의 수족이 되어 현장으로 달려가 사건을 수습하고 범인을 체포할 '수족'의 파트너 쉽이 필수적이다.  <보이스 시즌1>에서 그 '수족'의 중심에 강권주 팀장의 아버지와 같은 사건에서 아내를 잃은 '미친 개' 괴물 형사 무진혁(장혁 분)이 있었다. 드라마는 초반 이하나가 분한 강권주는 그 목소리는 물론 보이스 프로파일러라는 설정조차 생경했으며 반면 그녀의 파트너 무진혁의 장혁은 일찌기 <추노(2010)>의 대길이 이래 익숙해도 너무 익숙했었다. 이런 부조화는 모태구(김재욱 분)라는 깔끔한 슈트를 입고 철공을 휘두르는 극단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사이코패스와 매회 잔혹하면서도 퍼즐이 기막혔던 범죄 사건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보이스 시즌1>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그리고 겨울의 찬바람과 함께 그래서 더 에렸던 2017년 초 <보이스 시즌1>이 찌다못해 숨통을 죄이는 듯한 2018 여름, 시즌2로 찾아왔다, 그런데, 팀장 무진혁이 사라졌다. 매일 사건을 쫓아다니느라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나왔다 참변을 당한 아내를 죽인 범인을 쫓아 미친 개처럼 동분서주했던 무진혁 형사가 시즌 1내내 병원에 있던 아들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시즌 1을 이끌던 사건, 강권주 아버지와 무진혁 아내의 죽음을 범인 모태구와 그를 집요하게 추격하던 무진혁 팀장과 함께 털어지고, 모태구 못지 않은 강력한 사이코패스의 등장으로 시즌2의 서막을 연다. 

<보이스 시즌2>는 마치 <보이스>라는 시리즈의 특장점이 '잔혹 범죄'에 있기라도 한듯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 배 위에서 벌어지는 형사 나형준에 대한 사이코패스와 그 하수인의 살해 및 시신 일부를 절단하는 잔혹한 사건으로 연다. 그런데 이 현장에는 범인과 공모자, 그리고 피해자 외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시즌2에서 출동팀 팀장이 될 형사 도강우(이진욱 분)이다. 




시즌2의 통일성, 변주, 그리고 확장 
도강우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건, 시즌 2의 가장 큰 변수가 된다. 경찰대 출신 시즌 1의 무진혁 못지 않게 범인을 쫓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또라이 형사, 하지만 파트너 형사의 죽음은 뜻밖에도 그에게 '동료 형사 살인범'이라는 '함정'을 만든다. '팀'의 존재를 거추장스러워하는 반사회적 인물이자, 살인범인지, 정의를 쫓는 형사인지 모호한 도강우의 존재는 오로지 사건 해결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던 무진혁이란 시즌 1의 캐릭터를 새롭게 변주해 내며 시즌2의 볼 거리를 확장시킨다. 

또한 시즌 1의 모태구 사건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목소리'에 기반한 119 응급구조 팀, 골든 타임 팀을 확고부동하게 안착시킨 강권주 팀장은 이제 팀원들을 새로이 정비하며 활약을 펼치려고 할 즈음, 무진혁 팀장의 공석을 이어받은 장경학 팀장의 사망 사건으로 시즌 1에 이어 다시 한번 강권주 팀장 이하 팀원들에게 숙명의 적을 탄생시킨다. 

팀원을 잃은 골든 타임팀과 동료 형사를 잃은 도강우의 출동 팀장으로서의 합류, 그렇게 시즌2의 조합이 꾸려진 가운데, 자신이 사망한 시신의 일부를 '수집'하는가 하면, 배후의 조정자이자 공모자, 그리고 음모자로서 방제수(권율 분)를 6회 전면에 등장시키며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의 각을 세운다. 거기에 일찌기 도강우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의심을 품은 나형준의 형이자 풍산지청 강력계장, 그러나  그 역시 승진에서 누락된 의혹이 있는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나홍수(유승목 분)를 더하며 인물 구도를 확장시킨다. 


​​​​​​​

시즌 2의 관전 포인트? 
<보이스 시즌 1>이 그랬듯이 시즌 2 역시 골든 타임팀의 119 신고 체계에 기반한 긴급 출동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매회를 이끈다. 스스로 보호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 범죄는 시즌 2의 어린이 성폭행 범죄로, 최종 보스에 의해 조장되는 카피 캣 범죄는 시즌 2에서는 종범들의 급발진 사건 등으로 시즌의 연속성을 환기시킨다. 또한 시즌 1에서 무진혁 팀장에게 도시락을 들고 가다 살해당한 '은형동 형사 아내 살해 사건'은 시즌 2에서 역시나 강권주 팀장을 위해 오이 소배기를 싸들고 가다 보이스 피싱 범죄에 연루된 박중기 형사 아내의 사건으로 변주된다. 이렇게 마진원 작가에 의해 이어지는 시즌 1과 시즌2는 시즌의 연계성을 가지며 시즌을 이어보는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배기시킨다.

물론 그럼에도 시즌 1과 시즌 2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여전히 은형동에서 풍산동으로 지역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 지역을 배경으로 경찰을 쥐락펴락하며 무시무시하게 암약하는 사이코패스의 존재이다. 모태구보다 더한 괴물이 나올 수 있는가 싶었지만, 첫 회 자신이 훼손한 시신을 찍고, 그 일부를 기념품으로 챙기는 살인마의 등장은 이미 '모태구'를 잊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시즌의 일관성 외에 규정을 어기고 나홍수 과정의 정보를 해킹한 진서율 팀원의 과오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강권주와 그런 그녀를 엄호하는 도강우, 박중기 형사의 아내를 몸을 던져 구하는 도강우 등 팀을 무시하는 듯하지만 헌신적으로 사건에 임하는 도강우 팀장으로 인해 팀원들 사이의 결속력이 더해지는 한편,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는 도강우, 과거 도강우의 기억 상실을 형에게 고백하는 나윤수, 그에 더해 보이스 피싱 조직 총책의 검거 과정에서 보인 죽음을 방조하는 듯한 행동에 화룡점정으로 강권주 팀장에세 배달된 나윤수 사건의 공모자라는 메시지는 도강우에 대한 '진실'을 혼돈에 빠뜨리며 <보이스 시즌2>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낯설었던 이진욱은 모호한 도강우라는 캐릭터 덕에 어느 틈에 극의 중심에 서있는다. 

시즌 1은 성운시라는 지역성의 특성을 강조했다. 월남하여 성운시에서 버스 사업을 시작으로 이제 성운시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재벌과 그의  사이코패스 아들이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 재벌 족벌 체제의 암울한 부분을 극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제 풍산시로 자리를 옮긴 <보이스2>는 의문의 존재 도강우와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방제수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 범죄의 해결 이상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또한 시즌 2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8. 27. 15:42

eidf 페스티벌 경쟁 부문에는 세계 각국에서 출품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 중에서 <마지 도리스>와 <모리야마 씨>는 한 사람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그저 일인이 아니다. 그 '개인'을 통해 '사회'와 '문화'를 바라본다. 우리가 아는 세상 너머에 여전히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향유하고 지키고자 하는, 혹은 즐기고자 하는 '문화'를 통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지평은 넓혀져 간다. 




74살에도 건재한 순록지기이자, 예술가 마지 도리스 
어릴 적 읽었던 북유럽 동화책에서 '라플란드'는 하얀 자작나무가 자라고 오로라가 빛나는 신비한 북극의 땅이었다. 순록과 눈썰매가 있어야 그곳에 갈 수 있는. 동화 속에서 만난 그곳이 실존이라기 보다는 환타지였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스웨덴의 1/4을 차지하는 노르웨이와 핀란드와 국경을 마주한 이곳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가 쉽겠는가. 하물며 그곳에 일찌기 석기시대부터 순록을 키우며 살던 원주민 사미족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 것이다. 

<마지 도리스>는 바로 그 라플란드의 원주민 사미족의 대표적 예술가이다. 1970년대부터 사미족의 전통적 공간인 라플란드의 정서가 담뿍 담긴 목공예, 그림 등으로, 연극으로 예술 활동을 해오던 마지,  2017년의 겨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웨덴 북부 파렌자르카에서 사는 그녀에겐 그녀의 예술 활동만큼이나 겨울을 맞이하여 그녀의 농장으로 내려온 순록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녀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거의 다섯 시간을 걸려 이끼를 씻고 분류하여 순록에게 먹이는 일이다. 혹시나 솔잎이 섞이면 배탈이라도 날까 섬세하게 비벼대는 손길의 분류, 하지만 나누고 씻고 나누어주는 일상이 매일 매일 오다시피한 한 걸음 떼는 것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하는 눈 속에서는 큰 일이 된다. 하지만 이 쉽지 않은 일을 마지는 지난 20여년간 해왔다. 그녀의 부모님이, 또 그 부모님이 해왔던 전통대로. 봄이 되어 순록이 산으로 떠나면 2주 동안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할 만큼, 순록은 그녀의 가장 최측근이 되었다. 순록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젊은 시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지. 

다큐는 찌글찌글한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이 무색하게 긴 장화와 두터운 옷을 입고, 묵묵히 지붕에 올라 삽으로 눈을 치우고, 눈 속을 뚜벅뚜벅 걸어 순록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는 마지의 일상을 통해 전통적 삶을 끈질기게 지켜내는 강인한 한 사람을 그려낸다. 오로지 눈과 순록과 광활한 북극의 하늘만이 채우는 그 곳에서 알바를 하러 온 아프가니스탄인의 물음처럼 '외로운' 일상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엄숙'하다. 그리고 그 엄숙함의 행간을 채우는 건, 촉박한 전시회의 일정에 맞춘 예술 작업, 음악들. 순록의 형상을 한 목공들, 그리고 라플란드의 자연을 닮은 그림은 그 자체로 마지의 삶이다. 

일찌기 파리, 캐나다 전 세계를 돌며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살던 젊은 날, 그리고 기나 긴 칩거, 이제 다시 그녀는 라플란드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 탄광과 모피를 위해 침략당했던 땅, 갱도에서 신음했던 동포들의 역사를 호소하며 자신들의 전통과 언어의 공존을 호소한다. 74살의 나이에 순록을 돌보고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게 쉽지않다지만 다음 겨울 순록과의 해후를 기대하는 여전히 꿋꿋한 라플란드의 대표적 예술가, 마지의 일상을 통해 라플란드가 빛난다. 

내게 집은 보다 사적인 공간이며 의미있는 곳이며 
완벽하지 않은 곳이고 최신 유행을 따라가려 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며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아등바등대지 않는 곳이다. 
집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줄리 포인터 애담스, <와비사비 라이프> 



노이즈뮤직처럼 편안함은 상대적- 모리야마 씨가 만든 도시의 숲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더는 모리야마 씨에게 '집'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허물었다. 그리고 그곳에 숲을 만들었다. 그리고 숲 사이에 하얀 블럭이 점점이 박혔다. 층고에 따라 확장된 정육면체, 그곳에 뚫린 창문, 창문에 펄럭이는 하얀 커튼, 그리고 하얀 건물과 파아란 하늘은 커튼을 이웃하여 혼연일체가 된다. 가장 직선적인 공간이 가장 자연친화적인 듯 느껴진다. 아마도 거기엔 '집' 대신 그저 나무 사이의 '공간(큐브)'이 있기 때문일 듯.

모리야마 씨의 집은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니시자와 류에가 지은 모리야마 하우스는 그렇게 동경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건축물이다. 하지만, 그 집은 만든 건 니시자와 류에이지만, 모리야마 하우스에 '문화적 향취'를 더한 건 바로 모리야마 자신이다. 마치 오래전 옛집의 마당처럼 나무 아래에 마련된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이 '공간과 저 공간을 옮겨다니며 대청 마루처럼 건물 창 밖으로 발을 늘어뜨리기도 하고, 창문에 거의 머리가 나오다시피 드러눕기도 하고, 하늘이 보이는 창가 소파에 다리를 걸치기도 하면서 가장 편한 자세로 그가 가장 사랑하는 '독서'를 하는 일상, 그리고 그만의 비밀 공간인 지하 음악실을 찾아 경청하는 음악이 된 소음들(노이즈 뮤직), 

이탈리아에서 온 감독 일라 베카와 루이즈 르모안은 일본의 대표적 노이즈 뮤지션인 오모토 요시히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전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 독특한 인물이 궁금해져 그와 일주일을 보내고, 그 시간은 작품이 되었다. 창문 여닫는 소리, 별 거 아닌 잡음들이 모여 하나의 음악이 되듯, 모리야마 씨는 '편안함은 상대적'이라 한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그대로 그의 공간 속을 관통한다. 열 개의 큐브 중 그가 사용하는 네 개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은 대여되었고, 대여된 건 그저 직육면체의 하얀 벽과 창문들 뿐, 그 안의 공간은 소유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세계로 존중된다. 하지만, 그들은 나무 사이, 건물 사이 틈인듯, 마당인듯, 골목길인 듯한 공간에서 종종 만나 이방인과 조우하고,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고, 빛나는 불꽃을 태운다. 

감독이 찾아가기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났다는 모리야마 씨의 애완견, 그 애완견은 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다. 그곳을 지키는 작은 조각상, 그 조각상의 의미를 묻자, 모리야마 씨는 짧은 영어로 난감해 하며 설명한다. 예수와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종교가 없으니, 그건 이 물병이랑 다르지 않다고. 모리야마 씨의 이 짧은 설명은, 마치 소음이 모여 음악이 된 노이즈 음악처럼, 그저 하얀 큐브에 불과한 공간이 나무 사이에 자리 잡아, 그곳에 사람이 깃들여 살며 따로 또 같이 삶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집이 아닌 집이 된 공간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곳에 깃들여 유유자적 음악과 책으로 공간을 채우는 최근 트렌드로 대두된  '빠름에서 느림으로', '홀로에서 함께로', 그리고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변화시키는 '와비사비'적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와비 사비 (Wabi-sabi, わび・さび)일본의 문화적 전통 미의식,미적관념의 하나이다.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를 가리킨다.)






by meditator 2018. 8. 23. 20:57

 아버지에게 딸이란? 그런 속담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이라고. 아들 딸 차별이 아니라, 아들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단 말은 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딸은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존재다. 그렇게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면'? 아버지를 잃고 거리로 나선 소녀가 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희망'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이집트 소녀 아말이다. 아말은 아버지의 바램대로 '희망'찬 삶을 살았을까?

2010년 튀니지에서 일어난 시위를 계기로 '아랍 민중들은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아랍의 봄'이라 명명된 이 민주화 운동은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으로 퍼져나갔다.  우리에게는 피라미드의 나라로만 막연하게 알려진 관광국, 하지만 국민의 40% 이상이 빈곤선 아래의 삶을 유지하는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 그곳에서는 이미 2008년 야권 지도자들과 노조를 중심으로 시민 불복종과 파업으로 시발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를 잃고 거리로 나선 소녀 
그리고 구타와 고문으로 사망한 청년 칼리드 사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이집트 사람들은 무바라크 정권의 인권 유린 행위에 항거하여 전국적인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평화적 시위를 주장하며 시위대는 행진을 했지만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제 막 십대에 들어선 소녀 아말의 아버지 역시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시위에서 진압하던 경찰들의 맞은 편에 섰다. 그리고 이제 소녀 아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거리로 나선다. 

다큐는 혁명 당시 14살이던 아말을 그녀가 19살 성인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쫓는다. 14살의 소녀 아말은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정부에 대한 분노로 승화시키며 거리로 나선다. 짧은 머리, 후드 차림의 소녀는 또래의 소년들과 함께 거리를 지킨다. 

그리고 그렇게 거리에 선 아말의 현재 사이에 간간이 아버지가 찍었던 어린 시절 아말의, 이제 막 앉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티없이 밝기만 했던 화목했던 가정의 딸 아말과 그 가족의 특별한 날 찍었던 홈 비디오를 끼워 넣으며, '민주화 운동'이 아말의 가정에, 아말에게 가져온 비극을 대비 시킨다. 


​​​​​​​

투사, 그리고 여자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 하지만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에서 '소녀'인 아말이 거리의 투사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늦은 밤 함께 시위를 벌이던 동료들은 그녀에게 더 늦기 전에 집에 돌아가라 타이른다. 반발하는 아말, 나도 너희랑 똑같은 동지인데, 왜 나만 돌아가라고 하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너가 여자이니까.' 

그 동지의 대답은 아말은 좌절시킨다. 하지만, 또래로 보이는 남자들과 축구를 하며 밝게 웃으면서도, 때로는 그들이 자신을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지 않고, 아니 남자처럼 대했을 때, 역시 아말은 혼란스럽다. 그러면서도 늘 아말은 당당하게 자신은 여자이지만 너희와 똑같은 동지라 주장한다. 

14살, 15살, 16살, 거리의 투사로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아말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동지는 2013년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아버지처럼 사라졌다. 아말은 진압하는 경찰들에게 머리채를 질질 끌려다녔다. 그리고 혼돈의 과정은 그녀의 팔목에 몇 개의 상흔을 남긴다. 

거리에서 그녀가 목격한 진실에 의거, 선거를 통한 덜 나쁜 사람을 뽑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선택적 정의에 분노하던 아말,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미성년자인 그녀에게는 선거권이 없다. 그저 편의적 선택을 하는 엄마와의 설전 뿐. 그리고 동지이자 새로운 연인이 된 친구는 그녀를 '여성'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하는데. 

1981년부터 장기 집권했던 무바라크 대통령을 시민들의 힘으로 권좌에서 내몰 때만 해도 이집트에는 민주화의 서광이 비춰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14살 소녀 아말이 19살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기 까지, 이집트는 선거를 통해 집권했던 이슬람 형제단 소속의 무르시 대통령이 전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종교독재'를 하다 결국 1년 여 만에 군부에게 감금당하고 만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  2014년 시위도중 잡힌 사람들에게 무더기 사형 선고를 비롯하여, 자신을 비판한 앵커 추방 및 길거리에서 시민 인터뷰한 기자 체포 등의 언론 탄압 등으로 민주화 세력을 짓밟는 한편,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여 2018년 현재까지 정권을 연장하고 있다. 아랍의 봄은 이게 끝이 안보이는 겨울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거리로 나섰던 소녀 아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와의 설전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소녀는, 여자라 해서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던 당찬 소녀는 이제 히잡을 곱게 쓰고, 대학 시험 준비를 하는 소년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래 거리로 나서 '공부'라는 것과 담쌓고 지냈던 시간, 약학을 공부하고 싶던 소녀는 대신, 판사인 엄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학을 전공하고자 한다. 너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가던 그 경찰이 되는게 괜찮겠느냐는 친구의 질문, 그 질문은 아말에게 숙제로 남는다. 스스로 체제의 일부분이 되어 가는가, 아니면 그 체제의 내부에서 새로운 흐름이 될 것인가. 낙오자가 될 것인가. 실패한 혁명, 아버지와 연인, 사랑하는 이를 잃어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소녀는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섰다. 

by meditator 2018. 8. 21. 17:56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를 야심차게 다룬 <미스터 선샤인>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자 주인공인 유진 초이(이병헌 분) 및 주요 인물 구동매(유연석 분)을 '국외자'로 설정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무리 어린 시절 조국의 은혜를 받지 못해 고국을 떠난 노비의 아들이나, 백정의 자식이라도 그들이 이제 '미국인'이 되어, 혹은 일본의 낭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설정은 제 아무리 그들의 극적인 '자각'을 예정한다 했어도, 그들의 역사적 존재로 인해 쉽사리 두 남자 주인공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국외자'였던, 그래서 늘 '경계'에 섰던, 아니 스스로 경계 밖의 존재라 자신을 규정했던 두 사람에게 스스로 경계를 넘어올 수 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인 유진, 의병의 저격 대상이 되다. 

유진은 노비였다. 아비가 노비였고, 어미 또한 그러했다. 어미의 미색을 탐한 외부대신 이세훈과 그에게 잘 보이려던 희성의 조부가 억울한 누명을 씌워 유진이 보는 앞에서 아비를 멍석말이로 죽였다. 어미는 유진을 살리기 위해 희성의 어미를 겁박했고, 유진이 무사히 그 집에서 도망치는 걸 보고 우물에 몸을 던졌다. 추노꾼을 피해 어미의 유언에 따라 유진은 조국에서 가장 먼곳 미국행을 택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조선의 어린 소년은 이방인의 놀림을 피하기 위해 총을 잡았고, 그 총이 그를 미국 시민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총'의 덕택에 그는 조국에 미국의 장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연히 그에게 자신을 버린 조국은 없다. 그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 그를 조선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부른다. 경계에 선 유진, 하지만 그는 철썩같이 자신을 미국인이라 생각하려 한다. 


유진은 조선의 왕 앞에서도 미국인이었다. 유진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외부대신 이세훈을 조선의 정부와 '협력'하여 제거하자, 그에 호감을 가진 고종은 '한국인'인 그를 조선의 '군사' 고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오로지 이세훈을 역모죄로 몰기 위해 '의병'과 '정부'와 협력했던 그에게 고종의 청은 '논외'의 문제였다. 어디까지나 그는 '미국인'이었고, 미 영사관 주둔 장교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철옹성'에 돌을 던지기 시작한 건, '사랑'이었다. 남자의 양복을 입고, 총을 들고 담 위에서 만났던 고씨댁 영애 고애신(김태리 분)은 어느 틈에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자신과 같이 총을 들었던 그녀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신분의 여성이었다는 그 다름이었을까, 대나무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더 꼿꼿해지는 그녀의 품성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그런 꼿꼿함 뒤에 숨겨진 자신과 같은 냄새를 풍기는 '고독' 때문이었을까, 유진이 한글을 배워가고, 애신이 알파벳을 한 자 한 자 익혀가는 속도를 추월하여 두 사람의 마음은 깊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유진의 국적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외려 거리에서 총격을 벌이던 애신 대신 자신의 팔에 총상을 입어가면서 까지 대신 총을 들고 나서는 유진은 미국인 장교였기에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인'이라는 존재가 그에게는 '애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 

그러나, 도자기를 담은 나무 상자 안의 소년을 기꺼이 한 달 여의 기간 동안 배 아래 칸에 숨겨 함께 미국으로 동행했던 선교사 요셉의 죽음은 '미국'이란 울타리 안에 있던 유진을 흔든다. 그저 아버지같은 선교사인줄 알았던 요셉, 하지만 그는 고종의 밀서를 품에 안고 이완익이 보낸 자의 저격으로 죽음에 이른다. 미국인이었지만 조선을 위해 일하다 죽은 '아버지'같은 요셉, 유진은 그런 그의 죽음을 덮으려는 조선 정부 등의 처사에 반발한다. 그에게는 지금 요셉의 죽음을 덮으려는 조선 정부나, 그의 죽음을 사주한 이완익이나 차별성이 없다. 

요셉의 죽음을 파헤쳐가던 유진, 그 과정에서 그가 알게된 사실은 정문 휘하 '의병단'에게는 위기였다. 그들에게 유진이 파헤쳐들어가는 건 그저 사건이 아니라, 의병의 전모였으니까. 그러기에 '미국인'인, '이방인'인 유진은 의병에게는 위험한 인물이었고, '제거' 대상이 되고 만다. 이는 역으로, 유진에게는 이제 '이방인'이 될 지, '의병'의 동지가 되어야 할 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건 앞서 군사 고문관이 되어달라는 고종의 청탁과는 결을 달리한 선택이다. 애신 앞에서 노비의 신분이었던 자신의 '전존재'를 밝히던 그 순간과도 다른 것이다. 드라마는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인이었던 유진을 선택의 벼랑으로 몬다. 더구나 총을 들고 그를 저격하려 올 사람은 애신이다. 이제 더는 '미국인'이라는 존재가 그의 '안전 장치'가 될 수 없다. 




일본의 개, 구동매, 버림받다. 

조선에서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조차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으며, 매질은 일상이었으며 백정의 여인인 게 들통나면 욕보이는 게 하등 이상하지 않을 존재, 그런 백정은 조선의 신민이 아니었다. 부모들이 조리돌림을 당하며 죽어가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동매를 애신이 자신의 가마로 구해주었다. 겨우 목숨만 보전한 채 조국을 떠난 동매를 품어준 건 일본이었다. 조선에서 매질과 놀림의 대상이었던 그의 칼은 일본에서 그를 출세하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기꺼이 일본인이 되었다. 기꺼이 그곳에서 짐승을 잡던 칼을 사람에게 겨누었고, 그게 동매를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행세'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일본'을 등에 업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양반도 아니지만 그가 '행차'하면 사람들을 고개를 조아리며 뒷걸음질 친다. 그의 칼 앞에 일본인들조차 움찔한다. 그는 그렇게 '무신회' 한성지부장으로 호가호위했다. 

하지만 그의 위세는 '일본'이라는 그늘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서로 일본의 앞잡이이었지만, 그들의 뜻의 서로 달라진 순간, 같은 일본의 개였던 이완익과 동매는 '적'이 된다. 마치 사냥개가 사냥이 끝나자 '개고기'용으로 바뀌듯이, 덩치가 커져 손아귀가 잡히지 않은 낭인 동매는 이제 고애신의 조부 고사홍을 잡을 '개'일 뿐이었다. 살기 위해서 기꺼이 일본을 위해 칼을 잡은 동매, 이제 그는 자신의 주인이었던 일본이 그를 버리자 선택의 기로에 선다. 마치 매타작을 당하다 도망치던 개가 주인이 부르자 쪼르르 달려오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 것인지, 그게 아니면 주인을 물 것인지, 거기엔 갖은 고문에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던 애신의 조부, 아니 죽어도 될 목숨을 귀하다 살려준 애신이 있다. 


​​​​​​​


그렇게 이방인이던 유진과 동매는 경계인으로서 안온했던 존재의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건, <미스터 선샤인>이 그리고자 하는 '의병 항쟁'의 큰 흐름과 맞물린다. 이방인이었던, 그리고 노비이자, 백정, 조선의 신민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그들마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드는 순간, '의병 항쟁'은 극적이 된다. 그러기 위해, 유진은 미국인임에도 조선을 위해 일하던 선교사 양아버지를 잃게 됐고,  동매는 그가 의탁하던 일본과 또 다른 일본의 앞잡이의 배신에 봉착하게 된다.  가장 그들이 믿던 것들을 잃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게 될 것이다. 




그간 드라마에서 강력한 열강의 시민이었던 유진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 연루 논란이 까지 일었던 일본의 낭인인 동매는 '역사적으로 불편한 존재'였다. 그들의 극적인 자각을 위한 장치였음에도, 사실 그들의 존재는 <베르샤이유 장미>의 오스칼이나, <성균관 스캔들>의 이선준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대 국가의 경기에서 한일전은 '필승'해야만 하는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듯, 역사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는 미국인과 일본인의 그늘에서 호가호위하는 주인공들의 존재를 편안하게 즐길 수 없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이제 GDP 1조 5608달러 그 전해보다 떨어졌다는데 그 전에 11위, 지난 해 12위의 국제적 위상의 국가에서 구한말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침탈 속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그리고 그 무력했던 국가의 상황 속에서 일본의 앞잡이들이 판치는 상황을 지켜보는 건 편치 않은 것이다. '이완익'으로 대표되는 일본 앞잡이가 조선의 정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더더욱 불편하다. 하지만, 허구인 '이완익' 만큼이나, 사실 궁내부 대신 정문에서, 도공 황은산, 포수 장승구로 이어지는, 나아가 해외 지부까지 준비되는 의병의 상황 역시 '픽션'이다. 과연 구한말 우리는 그렇게 조직적으로, 신분 제도를 넘나들며 양반과 천민이 손을 잡고집요하게 저들의 침탈에 대비했었을까? 픽션의 한계, 픽션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여유를 줄 수 있는가 그 문제이지만, 여전히 일본이라 하면 곤두세워지는 우리의 신경은 드라마를 편하게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라면 영국 드라마 <닥터 후>에서 영국 여왕을 괴물 외계인으로 표현한 설정은 불가능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구한말의 시대 상황에 대한 우리의 '무지'이다. 국사 시험에서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의 이름에 모 배우의 이름을 쓸 정도는 아니라지만,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여유롭게 시청할 만큼 우리의 역사적 지식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롭지 않게 만들 정도로 현실의 국사 교육이 일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미스터 선샤인>을 보고, 구한말 우리의 무기력함을 지배적으로 아이들이 인식할까 우려할 만큼, 아이들은 학교에서 겨우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달달 외는 식으로 우리 역사는 배우는, 그렇다고 어른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은 우리의 '리얼'이 사실 더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경계인에 서, 이제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 주 이방인 주인공의 선택, 그 픽션의 울림이 커진다. 드라마를 통해 실감하는 역사이다. 


by meditator 2018. 8. 20.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