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아온,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리라. 어릴 적 살았던 동네를 다시 찾았지만, 지명만 같을 뿐 좁은 골목과 올망졸망하던 집들 대신 들어선 쭉쭉 뻗은 넓은 도로와 그 사이를 메운 빌딩, 아파트에 자신의 어린 시절 자체가 사라진 듯한 상실감. 그 황망함은 곧 도시를 고향으로 한 이들을 '실향민'처럼 느끼게 만든다. 압축 성장으로 발빠르게 발전해온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그렇게 지난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발빠르게 지우며 21세기의 현재에 도달해 있다. 오래된 동네와 낡은 건물은 '철거'의 대상이었고, '개발'로 환산되는 '환금성' 대상일 뿐, 그곳에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6월 28일 방영된 ebs의 <다큐 시선- 수리수리 얍, 청계천 마이스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런 '개발 중심'의 도시 정책에 반문한다. 




다시 재생된 '세운 상가'
1967년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최초의 주상 복합 건물로 기공식을 한 '세운 상가'는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이는 상가'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이름답게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 한때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전설적인 명성을 날리며 '최첨단 전자기기 상가'의 메카로 그 역할을 다했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80년대 후반 컴퓨터 산업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용산 전자 상가'로 그 영광을 넘기고 '철거' 위기에 내몰렸었다. 2015년 서울시가 '다시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계천을 관통하여 세운 상가와 청계 상가, 대림 상가를 잇는 이노베이션에 착수했다. 그 결과 '현대적 토속'이라는 이노베이션의 주제에 걸맞는 옛 이름 세운 상가와 새 이름 'Makercity sewoon'이 공존하는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여전히 먼지가 쌓인 예전의 상가 공간이 한 편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반면, 세운 상가 상인들이 3d 프린터 작업으로 만든 로봇이 상징 조형물로 자리잡은 이노베이션된 상가에는 이동을 편리하도록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확 트인 연결 통로와 잘 꾸민 옥상이 새로운 세운 상가의 볼거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세운 상가' 이노베이션의 관건은 '사람들'이다. 여전히 그곳엔 몇 십년의 세월 동안 세운 상가를 지켜온 터줏대감 마이스터들이 있다. 탱크도 만들었다는 전설이 그저 전설이 아니라, 실제 탱크에 들어갈 부품을 은밀히 수리해준 적이 있다는 특허가 5개나 되는 61세의 차광수 장인, 고 백남준 아티스트의 숨은 손, 일흔이 넘은 미디어 아트 기술자 이장성 옹, 마치 환자를 돌보는 의사처럼 진공관 소리를 청진하는 역시나 일흔이 넘은 오디오 수리 기술자 이승근 옹, 한때는 남보다 앞선 기술에 자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추억의 게임이 된 게임기의 장인 주승문 장인, 전선줄이 거미줄처럼 얽혀진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에서 '로봇'을 만들어 내고 수리하는 이천일 장인 등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이들 '마이스터'란 말이 손색이 없는, 지난 발전의 대한민국의 '기술사'가 곧 그들 존재 자체가 되는 이들 기술 장인들이 여전히 먼지 쌓인 상가의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이곳의 '생존'이 '세운 상가'의 존재 이유가 된다. 왜 '철거'가 아닌 '재생'이 도시에 필요한 지를 역설하는 것이다. 
'재미'를, 그리고 '보람'을 자신의 직업에 가장 큰 이유로 삼은 이들 노익장 장인들은 그 자신들의 신념에 맞춰 몇 십년 세월 이곳을 지켰고, 그들이 바로 '이노베이션'의 핵심이다. 여전히 그곳을 지키는 장인들은 '수리수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추억을 고쳐주는' 봉사에 나선다. 그들이 있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저 멀리 신안군의 오래된 로터리 tv가 아버지 대신 추억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낡은 tv처럼 그저 '낡은 건물'에 불과한 세운 상가도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29곳의 창업 공간, 큐브, 그곳에는 선배 장인들처럼, 그러나 선배 장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래 층의 오래된 기계 가공 공장 선배와 신기술을 가진 윗층의 후배의 '콜라보'가 가능한 것이다. 매 과정 새 툴을 가지고 작업을 하던 후배는 그저 단순한 도구 하나로 그 모든 과정을 제어하는 선배 장인에 혀를 내두르고, 아날로그한 선배의 경험은 후배의 하이엔트 테크놀로지와 만나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시너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건 세대를 달리 할 뿐 '기술'에 대한 열정이다. 그 세대를 막론한 '열정'이야말로 '메이크 시티'가 된 세운 상가의 새로운 풍속도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생'된 도시의 공간이 있는 반면, 여전히 그 옆 청계 3,4지구는 '철거'의 몸삼을 앓고 있다. 정밀 기계 제작을 주로 하던 이곳은 철거 위기에 몰려 있다. 1960년대 이래 기계 공구 상가로 활성화되었던 공간이 2006년 재정비 유통 촉진 지구가 되면서 '도시 부적합' 대상이 되어 '철거'되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45년 동안 기곗밥을 먹던 김진화씨는 '대체 영업장'에 대한 대안 마련이 없는 철거는 그저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의 상실이라 강변한다.

삶의 터전이라는 항변과 보상비라는 팽팽한 맞대응은 결국 피해갈 수 없는 철거의 수순을 밟고 있는 청계 3,4지구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도시 재생의 문제를 남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과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by meditator 2018. 6. 29. 17:39

우리나라에서 전후 세대의 문학은 '아들들의 이야기'였다. 황순원, 이문열, 황석영 등 '백정'이었던 아버지, 혹은 '사상범'이었던 아버지, 혹은 부역자였던 아버지 등,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존재했지만 부재해버린, 현실적인 도움보다는 부담이 되었던, 자신의 존재를 규정지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그 아버지의 시대를 발버둥치며 극복하려 노력했던 아들들의 지난한 서사의 기록물들이다. 아니 굳이 전후 세대의 문학만이 그러겠는가. 일찌기 '오이디푸스'가 그러했고, 더 거슬러 제우스로부터 모든 '영웅'들은 '아버지'를 극복하고 나서야 그들의 존재를 온전히 증명해 낼 수 있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그 시절 종잇장을 넘기며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에 몰두하던 사람들은 대신 tv리모컨을 쥔다. 그리고 tv 속 드라마들은 아침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를 막론하고 '세대간의 전쟁'을 진행 중이다. 그 시절 '문학'의 역할을 이제 tv 등의 대중 매체가 이어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총성이 울리는 곳은 '장르물', 지난 6월 9일 시작한 ocn의 <라이프 온 마스>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tv 속 인기 드라마의 메뉴였던 역사극들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 자리를 대신하여 '현대사'의 장르들이 등장하고 있다. kbs1의 아침 드라마의 단골 메뉴였던 6.25 동란 이후의 시대극은 이제 좀 더 현대로 그 영역을 확장하여, <응답하라> 시리즈를 필두로 또 하나의 역사극의 장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 혹은 그와 유사한 현대사의 시점을 다룬 드라마들은 '사극'으로 정의내린 이유는 바로 이 드라마들의 기본적 존재 요건이 '고증'에 있다는 점이다. 일찌기 <응답하라> 시리즈를 필두로 이들 드라마들을 보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끄는 가장 첫 번째 요소가 그 시대를 얼마나 그럴 듯하게 재현해 내고 있는가 라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들을 '사극'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무리가 없다 보는 것이다. 



화성처럼 낯선 쌍팔년도 
그렇게 <라이프 온 마스>도 1988년을 소환한다. 시즌 2까지 이어갔던 영국 드라마 원작에서 주인공이 1970년대로 갔듯이, 교통사고를 당한 한태주(정경호 분)는 30년을 거슬러 88올림픽이 개최됐던 그 해로 떨어진다. 일찌기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최근 <응답하라 1988>, <시그널(2016)><터널(2017)>, 그리고 <란제리 소녀 시대(2017)> 등까지 매해 우리는 1980년대를 '드라마'로 소환해 왔으니 이젠 박남정, 소방차, 나미 등의 음악이 거리에 울려퍼지고, 펑퍼짐한 실루엣의 잠바와 통 넓은 바지를 입은 아저씨들, 그리고 원색의 의상을 입은 아가씨와, 뽀글뽀글 파마 머리의 아줌마들이, 그리고 그들이 깃들어 살던 2018년의 우리가 보기엔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도 아니었던 그 시대가 더는 낯설지 않다. 

<살인의 추억>, <터널>, <시그널>, 그리고 <라이프 온 마스>까지 모두가 80년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의 결은 다르다. 하지만, 심지어 장르물이 아니었던 <응답하라 1988>, 그리고 <란제리 소녀 시대>까지 이들 드라마들이 일관되게 '표현'해 내고자 하는 바는 바로 '야만의 시대'라는 점이다. 1960년대 박정희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유신으로 이어지는 개발 독재가 79년 김재규의 총성으로 종식되고, 그 짧았던 '봄'은 곧 무참한 살육의 계절로 이어지고, 다시 '독재'의 시대가 연장되었던 시대, 경제적으로는 급격한 자본주의적 발전을 축약해 냈지만, 사회적으로는 '전근대적 가부장적 구조가 길게 드리워져 있던 시대, 여전히 '남자'의 권력이 기세 등등했던 그 시대를 드라마들은 '야만'으로 정의내린다. 

그러기에 그 시절 여성들의 '자존'이 무시당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범죄가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시킨' 성범죄라는 사실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그런 면에서 <라이프 온 마스(이하 라온마)> 역시 그러한 시대적 해석의 궤를 함께 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좀 더 진득하게 펼쳐간다. 

30년전 과거로 떨어진(?) 한태주, 졸지에 그는 서울서 부임한 인성시 서부 경찰서 반장이 된다. 2018년의 형사였던 그가 dna 검사가 뭔지도 모르는 인성시 경찰서에서 동료 형사들과 함께 '복고'적 방식으로 수사를 하며 벌이게 되는 해프닝이 극의 주요 흐름이다. 그런 가운데, 종종 그를 괴롭히는 '한태주씨 정신 차리세요'라는 병상의 목소리들, 그는 지금 자신이 몸담은 이 '과거'가 혹시 그의 뇌내 망상이 아닌지 혼란스러워 한다. 그렇게 혼란스럽고 종종 그래서 정신까지 잃는 그의 앞에 등장한 그의 가족, 수사반장을 즐겨보며 형사가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그와 미용실을 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어머니, 그리고 사우디에 돈벌러 간 줄 알았지만 룸싸롱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룸펜 아버지가 다시 아니 그곳에 살고 있었다. 

6회 반환점을 향해가는 <라온마>는 그의 기억 속에 죽은 사람으로 기억되었던 아버지를 소환하며, 주인공 한태주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려 낸다. 인성시 골목에서 죽어간 무능력해서 가족과 이별한 아버지의 죽음과, 그 죽음을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는 소년의 사연을 통해, 드라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이야기한다. 한태주의 기억 속에는 '영웅'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아버지,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인성시로 간 성인 태주가 만난 아버지는 그 어린 시절 기억의 영웅이 아니다. 



그 시절 아버지, 그 뒷모습
이 '아버지'에 대한 드라마의 정의는 의미 심장하다. 발전의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80년대는 '찬란한 영광의 시대'이지만, 이제 역사의 돋보기로 들여다 본 그 시절은 드라마 속에서 처럼 수사라는 이름으로 다짜고짜 용의자를 때리고 부터 보는 '폭력'이 상습화된 시대였던 것이다. 마치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알고보니 거짓말만 뻔드르르했던 백수였던 것처럼. 

하지만 <라온마>는 그저 그 아버지의 뒷모습을 '폭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8년의 수사관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용의자를 폭력적으로 겁박하고, 심지어 범인으로 몰기 위해 증거 조작을 서슴치 않는 서부 경찰서 강력계 계장 강동철(박성웅 분)은 현대의 한태주와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무대뽀의 수사 방식은 시대적으로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라는 비극을 낳았지만, 일선의 경찰서에서는 그 수사 방식이 정반대로 '과학'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대의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가장 '야만적'이지만, 동시에 '전근대적인 인간미'라는 아이러니의 결을 드라마는 다루며, '아버지'의 시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드라마 속 아버지는 이제야 등장했지만, 사실 <라온마>에서 '아버지'의 세대를 상징하는 건  강동철이다. 온세상의 편법을 다 가져다 쓸 거 같은 꼼수에, 다짜고짜 손부터 올라가는 이 우격다짐의 형사 계장은, 그러나 한태주를 알뜰살뜰 챙겨주고, 이제 막 경찰로서 성장해 가는 윤나영(고아성 분)의 구겨졌던 존재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준다. 집을 나가 변사체로 발견되어 슬퍼할 겨를도 없었지만, 떨어져 있는 아들을 위해 개막전 표를 준비했던 아버지, 그리고 룸싸롱 잔심부름꾼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주방을 털고 사탕을 주머니에 쑤셔넣던 아버지들, 그리고 강동철 계장처럼, 드라마는 선과 악 그 어느 한 경계로 나눌 수 없는 80년대를 살아냈던 생동감있는, 그래서 아이러니한 모순적 존재였던 그 시절 아버지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걸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가장의 뒷모습으로,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냈던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내고자 애쓴다. 
by meditator 2018. 6. 25. 16:27
순례'의 사전적 정의는 '신앙 행위의 일환으로 종교 상의 성지나 영장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산티아고나 인도를 '종교적' 의미로만 '순례'하지 않는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길을 걷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순례'의 의미를 찾는다. 어쩌면 묵묵히 걸어가야 할 우리네 삶 자체가 '순례'일지도. 지난 2017년 kbs대기획으로 방영된 UHD <순례 4부작>은 바로 이런 '순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고자 했다. 인도 북부 라다크의 '패드 아트라'의 9개월, PCT(pacific crest trail) 6개월 등 총 450여일, 12,000km이상의 여정을 최첨단 4k 카메라를 통해 UHD 영화처럼 구현한 화면 속에 길 위에 선 인간의 오롯한 숙명을 압도적인 자연에 대비하여 풀어낸다. 이러한 영상과 서사의 획기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깊이가 돋보인 시도는 국내적으로 2018년 방송대상, 백상 예술상, 카톨릭 매스컨 대상, 해외에서는 뉴욕 페스티벌 TV&필름 상, 아시아 태평양 방송개발 기구(AIBD) 월드 TV 상 등을 받으며 극찬을 받았다. 



안녕, 나의 소년 시절이여- 살아있는 날들이 곧 '순례' 
다큐를 연 건 영하 30도 해발 5200M 희말라야 산맥 질룽카포 산을 넘는 200여 명의 승려 무리이다. 티벳 불교의 한 종파 드루크 파 승려들은 수행의 일환으로 희말라야 산맥의 여정에 나선다. 원주민들조차 고산 병에 시달리는 높은 산악지대를 자신의 짐을 진 채 묵묵히 걸어가는 승려의 무리, 조금 나은 평원이라도 나올라치면 온몸으로 던져 오체투지로 길을 지나야 하는 그 고행에 결국 가장 어린 16살 '쏘남 왕모'는 정신을 잃는다. 

종교 순례로 시작하지만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종교'가 아니다. '종교적 순례'길을 선택한 겨우 16살 소녀의 삶이다. 7개월전 소녀는 라다크 산악 지대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맏딸이었다. 보리 농사와 양을 키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빠뜻한 집안, 그 집안의 큰 딸인 '왕모'는 일찍이 7살 때 도회로 나가 가정부 살이를 해야했다. 가정부 일을 하면 학교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주인, 결국 왕모는 집으로 돌아와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왕모의 바로 아래 동생을 입을 덜기 위해 어린 시절 불교에 받쳐졌고, 그 아래 동생은 왕모처럼 가정부 일을 해야 하는 형편, 집에 돌아와 있다지만 밤중에 양을 훔쳐가는 늑대를 지키기 위해 왕모를 노숙을 해야 한다. 

잡지 속 화려한 스타들을 흠모하던 친구의 뜻밖의 선택처럼, 그리고 입 하나 덜기 위해 부처님에 귀의했던 동생처럼, 결국 '왕모'도 가난한 집안에선 불가능한 엔지니어의 꿈을 접고 가난한 산골 마을을 떠나 승려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작이 된 곳이 바로 '인내만이 요구되는 가혹한 순례길', 소녀는 말한다. '안녕, 나의 소년 시절이여, 저는 이제 하나의 여행을 끝내고, 또 하나의 새로운 여행을 떠납니다.'



신의 눈물- 힘들어도 함께 가는 '순례'
희말라야의 소녀 스님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은 건 지구 반대편 역시나 해발 5200m 안데스 산맥의 콜케푼쿠 산을 오르는 68세의 노인 우아만 노인이다. 이제는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도달하는 이곳, 다큐 제작진의 청을 받아 이제는 그저 '게임'처럼 축제를 즐기는 청년들에게 '코이요리티 축제' 본연의 의미를 되살려주기 위해 노인은 길을 나선다. 

안데스 산맥 해발 4500m 만년설이 뒤덮힌 시나카라 계곡, 200여년 전 그곳에 가난한 목동으로 '현현'하신 예수를 기리고,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만년설에 씻어내기 위해 잉카인들이 그곳에 모인다. 이제는 기후 변화로 쌓였던 눈이 점점 녹아내린 계곡, 형형색색의 깃발을 들고 지역적 특색을 살린 복장과 춤을 추며 모여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떠들썩한 마을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들고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긴 행렬을 마다하지 않는다. 

예수와 만년설 계곡의 만남, 거기엔 잉카의 슬픈 생존의 역사가 전해진다. 일찌기 태양신을 믿고 산신을 숭배하던 잉카인들, 그러나 500여 년전 잉카의 땅에 온 스페인들은 강제로 잉카의 왕을 카톨릭으로 개종한 후 처형했다. 스페인의 치하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잉카인들은 잉카의 수많은 신들 중 하나로 예수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산신으로 부터 살아갈 힘을 얻었던 잉카의 축제는 '예수'도 함께 하게 되었고, 그 축제의 현장은 우리네 마당놀이처럼 잉카의 왕에게서, 스페인 인들로, 그리고 지주로 수백년 동안 주인만 바뀌던 대농장, 탄광에서 채찍을 맞으며 '수탈'당하던 잉카인들의 슬픈 가난의 '해학적 승화'로 채워진다. 잉카의 순례는 곧 그들의 함께 버텨왔던 생존의 여정이다. 



집으로 가는 길- 인생이란 '순례'
그래도 '종교'라는 형식을 가졌던 1부와 2부와 달리, 3부 <집으로 가는 길>이야 말로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 그 자체가 곧 '순례'의 본원적 의미에 가장 가닿는다. 세네갈의 레트바 호수, 장미 호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지만, 실은 염도 90% 이상 플랑크톤 외엔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이다. 하지만 이 '죽음의 호수'는 주변 국가에서 온 이주 노동자 500여 명에게는 '생업'의 장이기도 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도 거른 채 물 속에서 소금을 건져내며 사는 이들 중에 지난 58살의 이주 노동자 '우리쌈바'가 있다. 

고향을 떠나온 지 16년 그의 '오롯한 소망'은 고향 기니로 돌아가 아버지처럼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땅이 없어 떠나온 땅,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땅을 사려면 2백만 세파,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버는 돈은 겨우 900세파(약 8000원), 그 조차도 그의 소금을 사서 이웃 나라에 열 배 정도의 폭리를 취해 파는 중간 상인이 떼어먹기 일쑤다. 

빈 통조림 깡통에 채워지지 않는 돈만이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니다. 소금 호수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눈에 이상이 생겼지만, 그는 자신의 몸보다 돌봐야 할 가족이 더 많은 가장이다. 일손이 필요해 거둔 두 명의 아내, 첫 번 째 아내에게서 난 자식이 일곱, 두 번 째 아내 사이에서 난 자식이 여섯, 심지어 두번 째 아내는 만삭이다. 이웃 나라에 돈을 벌겠다고 떠난 아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고, 아이를 낳기 위해 집을 떠나온 딸은 집에 돌아갈 비용이 없어 이곳에 1년 째 머무르는 처지다. 첫 번째 아내는 물론, 만삭의 두 번 째 아내마저 하루 800원 벌이의 소금 나르는 일을 하며 가사를 돕지만 '우라쌈바'의 형편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이 보이지도 않는 현실, 우리쌈바는 걸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평생의 소원이 소금지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라는 아내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세네갈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전망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도 않는 이 '이주 노동자'에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고행이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터벅터벅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 길은 진창 속에서 구르고 뒹굴어도 포기하지 않는 쇠똥구리의 일생과 다르지 않은 '삶의 순례'다. 



4300km 한 걸음씩 나에게로- 인생을 배우는 학교로서의 '순례'
1,2,3부가 불가피한 선택과 생존, 그리고 인생 그 자체로서 순례를 정의했다면, 4부에서 순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의 대안, 치유로서의 '순례'를 더한다. 미국 서부 지역, 멕시코 국경에서 부터, 거슬러 캐나다 국경지역까지 4279km, 매년 4~5월 시작하여, 폭설이 쏟아지기 전 10월까지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나'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순례'를 떠난다. 

크로아티아의 방송국 엔지니어로 일하는 39살의 니콜라 역시 그 길에 나섰다. 먼 타국의 낯선 행로, 일찌기 20대의 시절, 종교를 통해 자신을 찾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그는 마흔을 앞둔 나이에 홀로 다시 길에 섰다. 그리고 그가 선 길에는 그처럼 자연에 자신을 '오체투지'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30여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미뤄뒀던 소망이었기에 70넘어 늦은 퇴직과 함께 나선 이도, 걸을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라 생각해서 기꺼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온 60대도, 걷기 조차 힘들었던 릴랑바레 증후군에서 겨우 몸을 추스린 20대도 그 길 위에서 오로지 의지할 것은 자신 뿐이다. 따로 또 같이, 걸어가는 길에서 미처 한 구간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서로의 무사를 기원하는 동지가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물조차 구하기 힘들고, 단 이틀 만에 등산화가 구멍이 나버리는 폭염과, 폭우가 오가는 요세미티 국립 공원, 모하비 사막, 시에라네바다 산맥 등의 극한의 자연 속을 하루 13km씩 강행군으로 몰아쳐도 겨우 16%만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여정은 그들을 한없이 극한으로 몰아친다. 

모든 것이 다 구해지고 가능한 도시를 떠나, 20kg이 넘는 짐을 지고 배고픔과 피곤과 싸우며 걸어가노라면 가장 기본적인 필요 외에 모든 것은 기꺼이 버릴 수 있게 되고, 그 극단의 상황 속에서 걷는 이들은 자연을 마주하며 '작은 입자로 흩어져 존재하는 신의 작은 조각'과 만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도달하게 된다. '국경없는 의사회'로 콩고 내전 지역에서 활동하다 마음의 상처를 얻었던 30대의 간호사는 비로소 그곳에서 잃은 동료와 자신을 도망치듯 두고 온 그러나 도망칠 수 없었던 콩코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오직 자연만이 존재하는 그 '순수한 경지' 속에 자신을 돌아보고 비로소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치유의 시간, 마지막 한 구간을 앞두고 결국 내리는 눈 앞에 여정을 완주하지 못했다 해도, '자신'을 찾은 이들에게는 '실패'가 아니다. 그곳에서 인생을 배운 이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떠나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인간이 두 손을 땅에서 떼고 두 다리로 걷는 순간, 인간은 드디어 인간다워 졌다. 그의 자유로워진 두 손은 많은 것을 만들어 냈으며, 두 다리로 지탱하는 뇌는 동물들과 다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 '걸음',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 본연의 '인간다움'을 잊은 채 살아가는데, kbs 대기획 <UHD 순례 4부작>은 바로 그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UHD 화면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두 다리로 굳건히 버텨내는 인간의 고된 삶, 거기에 바로 우리 인간의 존재론이 있다. 

by meditator 2018. 6. 25. 06:02

'지니, 음악 좀 틀어줘'의 세상이다. 아이들의 외국어 공부를 걱정하던 엄마들의 귀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자연스런 외국어 발음, 따라나가보니 인공 지능이 선별한 외국어 영상이었다. 원하는 음악에서 부터, 아이 돌보미, 학습 도우미를 넘어 외로운 솔로들의 마음까지 달래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그러니 드라마 남자 주인공 역할을 'AI(인간이 가진 지적 능력을 컴퓨터를 통해 구현하는 기술, artificial intelligence)가 맡는다는 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바로 6월 4일 부터 시작한 kbs2의 미니 시리즈 <너도 인간이니?>의 이야기다. 




아들이 된 AI
하지만 드라마로 온 AI의 시작은 '고전'적이다. 마음씨 좋은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 토막을 깍아 자식삼아 만든 인형 '피노키오'처럼, 아들을 시아버지에게 빼앗긴 인공 지능 로봇 연구자 오로라 박사(김성령 분)는 아들과 똑닮은 '남신1'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따라 그녀의 'AI'도 '남신Ⅱ', '남신Ⅲ'로 변화해 갔다. 그렇게 AI를 아들삼아 지내려던 오로라 박사, 하지만 그녀를 찾아 공항에서 해프닝을 벌이며 체코까지 찾아온 친아들 남신(서강준 분)이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맨다. 아들의 부재가 곧 PK그룹 내 아들의 위치를, PK그룹을 서종길(유오성 분)에 의한 위기로 빠뜨릴 것이란 걸 직감한 엄마는 아들처럼 여겨왔던 '남신Ⅲ'에게 부탁한다. '엄마의 아들을 지켜줘' 

그리고 엄마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 아들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남신Ⅲ의 캐릭터는 스필버그의 역작 AI(2001)로 부터 벤치 마킹한다. '천문학적 속도로 발전한 과학 문명 AI 들의 봉사를 받고 살아가는 인간들, 그런 가운데 하비 박사가 만들어 낸 '감정이 있는 AI'는 아이가 없는 인간의 가정에 '입양'되는데....'로 시작한 영화<AI>는 인간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된 소년 로봇 데이빗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너도 인간이니?> 역시 세상에 눈을 뜬 순간, 감정이 없다면서도 엄마바래기인 AI 남신Ⅲ를 등장시킨다. 그래서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사들고 오는 길에 엄마가 늘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넘어 그리워했던 남신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남신Ⅲ는 기꺼이 남신을 대신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
<너도 인간이니?>라는 드라마는 제목처럼 이중적 질문을 던진다. 당연히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남신Ⅲ라는 AI이듯, 인간이 아닌 AI가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을 통해, AI의 인간적 딜레마를 재연해 낸다. 아들과 헤어져 위로가 필요했던 어머니가 프로그래밍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안아줘요'라는 제 1원칙에서 부터, 삭제를 시켰음에도 본능적(?)으로 발현한 재난 모드 시 인명 구조 행동 등을 통해 영화 <AI>에서 인간의 아이보다 더 귀엽고 그래서 더 가여웠던 데이비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남신Ⅲ의 존재론을 묻는다. 

그리고 프로그래밍된 AI주제에 넘치는 인간미를 보이는 남신Ⅲ와 달리, 그를 아들로 여겼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친 아들이 나타나자 그를 기꺼이 아들 대용으로 '사용'하는 어머니에서 부터, 그룹과 자신을 위해 아들과 손자를 독점하려는 할아버지 남건호 회장(박영규 분)과 그의 순종적인 하수인인 척하며 호시탐탐 그룹을 노리는 서종길 이사와 그 측근들은 흔히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에게 낮잡아 쏘아붙이는 '너도 인간이니?"의 구어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비인간적' 모습을 폭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이 아닌 이종의 존재를 통해 '인간'됨'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이미 1818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래 고전적인 주제이다. 



6%를 넘겼지만(6회 6.3%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너도 인간이니?>는 동시간대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3,4%의 시청률로 고전하던 MBC의 <로봇이 아니야>처럼 역시나 인간이 아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의 '난망'함을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또한 여주인공이었던 공승연의 전작인 <써틀; 이어진 두 세계>처럼 대중과 소통하기엔 버거운 SF물의 여정을 되풀이 하고있지는 않은까 우려도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100억 대작이라는 제작진이 내세우는 CG등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와 함께, '괴작'이었지만, 문명이 낳은 슬픈 동화로 기억되는 김규완 극본, 김용수 연출의 <아이언맨>에 버금가는 또 한편의 '현대적 동화'로 남겨지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6. 13. 02:22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젊은이들, 그러나 여전히 취업이 어려운 현실, 그에 반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 기업들, 이 취업 시장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sbs스페셜이 나섰다. 6월 10일 방영한 <취준진담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배우 조우진을 내세운 '노오력 인력 사무소'를 통해 지금까지 취업을 하기 위해 취업자가 기업의 담당자들과 면접을 보는 발상을 전환하여, 취업자들이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을 '면접'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의 '노오력'에 대해 살펴 '취업자' 중심의 구직을 시도해 본다.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이를 위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대표 혹은 담당자들이 젊은이들에게 면접을 '당'하기 위해 나섰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저비용 항공사 티** 항공 경영본부 김형이 상무, 한방차 카페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전국에 100여 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고 있고 최승윤 대표,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스타트업 회사 여기 **의 인사 총괄 맥스 이사. 이들은 각자 회사의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다던가,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에 주 4.5일 근무, 6시 정시 퇴근 독려 등 일하고 싶은 환경, 그리고 주 35시간 하루 세 끼 식사 제공에 각종 복지 정책을 자신감있게 내세우며 면접장에서 자리한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하던 자신감은 취준생 면접관들과의 몇 마디 대화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이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400여 개의 지원 서류를 작성해 본 김연재 , 취업을 위해 대학에 적을 둔지 8년차인 11학번 김은하, 장래를 위한 자신의 전공인 성악 외에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는 김희원, 인턴 2번, 정규직 1년차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32살의 중고 신입 김필립, 각종 단기 알바를 섭렵하고 이제 계약직 만료를 앞둔 서자영, 그리고 취업 준비 2년차 자소서만 155개째 작성하고 있는 김희원이다. 

면접을 하는 위치이지만 이미 그 자리에 나설 기업에 대해 조사를 다 하고 나온 이들은 예리하게 각 기업의 문제점을 파고든다. 급성장하고 있는 자부심을 피력한 티** 항공의 상무는 회사 내 잦은 퇴직에 대해 '열정'이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답을 했다가, 취준생들에게 '꼰대'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는가 하면 주 4.5일의 근무 환경에 대표 면담이라는 화려한 근무 조건을 내세운 최대표는 대표 면담이라는 게 대표만의 자의적 소통 방식이 아닌가 라는 반문에서 부터, 연봉 2000 만원이라는 낮은 급료가 혹시나 '열정 페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그만 말이 막히고 만다. '여기 **'역시 마찬가지다. '맥스'라는 생소한 외국 이름에서 부터, 1년 안에 획기적인 근무 환경 개선이라는 그의 장담은 취준생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 취준생들과 기업 담당자들 사이에 가장 큰 '간극'을 보인 건 '야근'에 대한 문제이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때로는 '야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업 측의 생각에 취준생들은 그게 바로 '열정'을 거저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 맞선다. 그리고 잦은 이직을 그 증거로 내세우며, '열정' 대신 '페이'를 요구한다. 

1박 2일에 걸친 합숙과 술자리까지 거친 심층 면접, 취준생들의 평가처럼 기업 담당자들은 면접의 요소요소에서 여전히 젊은이들의 노오력에 대해 '안이하게' 바라봤으며, 그들의 '열정'에 무임승차하려는 가치관을 숨길 수 없었다. 또한 젊은이들이 구직 시장에서 자신을 내던지며 전투에 임하는 태도와 달리, 술자리에만 가도 긴장이 풀려 예의 '꼰대'다운 훈계를 내놓고 만다. 심지어 '노오력'에 대한 마지막 정의의 과정에서 기업 담당자들은 어설픈 비누 조각이나, gps 인증, 혹은 영화 속 설정을 통해 어설픈 이벤트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으려 해 실소를 자아내고 만다. 결국 1박 2일의 노오력 면접이 보여준 건 여전한 '꼰대'들의 '열정'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사고 방식과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열정과 페이의 간극 
하지만, 정작 이 '역지사지'다큐가 보여준 건, 이 쉽게 잇닿을 수 없는 구직자와 구직 담장자의 사고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1박2일의 합숙이 끝나고 최종 선택이 있던 순간, 가장 꼰대스러워 젊은 구직자들에게 지탄을 받던 티** 항공사가 성과급을 준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룻밤을 보내던 구직자들은 그들이 면접 과정에서 지적했던 이러저러한 사안과 달리, 결국 의견을 '돈'과 '비전'으로 모은다. 그러기에 3개의 직장 중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티** 항공사와 여기 **가 취준생들의 선택을 받는다. 거기에 반해 현실적으로 가장 직원 복지가 좋고, 대표의 노력과 열의가 돋보였던 카페 프랜차이즈 회사는 단 한 명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만다. 

결국 울음을 터트린 최대표, 그는 울며 말한다. 그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이 현실이, 결국 자신과 함께 일하면서도 남들에게 자랑스레 자신의 직장에 대해 자부심을 내보일 수 없는 자기 회사 직원들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회한의 눈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준생'의 역지사지 면접으로 시작하여, 연봉 2000만원 밖에 줄 수 없는 중소기업의 비극사로 끝을 맺게 된 다큐. 

6명의 취준생들 중 그 자리에 나온 기업을 택한 3명은 '꼰대'라도 확실한 경제적 보장과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한 명은 노력가능해 보이는 미래에 투자했다. 반면 6명 중 2명은 여전히 그 어느 회사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야근 등에 대한 정당한 노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지 않으며, 수평적 인간 관계를 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8년이 넘는 구직 기간도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대한 로망을 접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과연 저 자리에 나와 여전한 '꼰대'스런 사고 방식과 어설픈 노오력(?)을 보인 기업 담당자가 대기업에 속한 사람이라도 수평적 기업 문화와 삶의 질이 선택하지 않는 핑계가 될까? 애초에 청년들의 '노오력'과 열정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드러내기 위해서 였다면 역지사지 면접에 나서야 할 사람들은 대기업 담당자들이 아니었을까? 

구직자의 3%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대기업, 그에 비해 기업 문화를 변화시키며 노력해도 구직자가 원하는 페이를 줄 수 없는 반면, '열정'이 필요한 심지어 미래조차 불투명한 중소 기업, 이 딜레마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삶의 질과 안정을 추구하려는 구직자들의 구직 행렬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서로 잇닿을 수 있는 길은 희박하지 않을까라는 '현실'을 다큐는 다시 한번 보여주고 만다. 
by meditator 2018. 6. 11. 16:32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을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과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두고. 하지만 그 누가 주인공이라고 선뜻 결론내릴 수 없는 영화. 장준환 감독은 바로 그렇게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민주 시민 모두가 만들어 낸 6.10 항쟁의 역사를 영화 <1987>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단순 사고로 묻힐 뻔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으로 전한 '비둘기', 배우 유해진이 분한 한재동씨의 이야기 <1987, 그날의 비둘기>를 tbs가 6. 10 항쟁 31주년 기념으로 방영한다.

ⓒ tbs

기적과도 같았던 진실의 폭로, 이어진 6.10항쟁 
이 다큐는 지난 1월 14일로 박종철 고문 치사 31주기에 맞춰 <뉴스 타파>가 1월 19일 방영했던 프로그램이다. 지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1987>의 상영 덕분이었을까. 올 초 31주기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식이 열린 모란공원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제야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감회를 피력하는 박종철 열사의 형님, 그리고,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선 이부영 씨.

1987년 1월 14일 22살의 박종철 씨는 가파른 나선 계단으로 끌려 올라간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걸어서 되돌아 나올 수 없었다. 조사 과정에서 과도한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그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단순 사고로 묻힐 뻔했던 사건. 그러나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경관 2명이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되고, 감옥 안에서는 그들 외에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더 있었으며, 이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 동아일보 기자 이부영 씨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하기로 결심한 이부영 씨는 그와 12,3년 동안 지기이자, 동지였던 교도관 한재동씨에게 볼펜과 종이를 청해 그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에게 바깥 세상으로 전할 것을 부탁한다. '걸리면 우리도 죽을 수도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전한 이 쪽지는 비둘기가 된 한재동 씨를 통해 세상에 '폭로'되었고. 전국은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로 화답했다. 이어진 독재 정권의 항복 선언과 직선제 개헌. 그 시절을 이부영 씨는 '그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 많은 사람들이 시계 속 톱니 바퀴처럼 자신들의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했던', '신의 오묘한 손길'이 닿은 '기적같은 사건'이라 회고한다.

ⓒ tbs

민주 교도관 한재동이기에 가능했던 비둘기 
그리고 그 '기적'이 가능케 했던 비둘기 한재동 씨, 당시 젊은 교도관이었던 그도 30여년의 세월을 건너 칠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건너 그 시절의 일을 그에 대해 한재동씨는 '공권력이 사람을 죽인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며,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며 '민주화에 보탬이 될 수 있어'외려 '행운'이었다 겸손하게 물러선다.

하지만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이 고문으로 죽어나가던 시절, 그 소식을 몰래 전하는 것이 직업적 규정의 위반은 물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전한 당사자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던 시절 용기를 낸다는 건 그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민주적 교도관'으로 투쟁해 왔던 그의 순탄치 않은 이력에서 비롯된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단체 관람'으로 <1987>을 봤다며 자랑스레 전하는 한재동 씨의 동료들, 이제는 다들 한재동 씨처럼 70줄의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한때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다. 한재동씨가 바로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 낸 비둘기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30년 동안 함구했던 이들, 한재동 씨의 헌신은 그래서 뒤늦게서야 알려져 2007년에서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감사패를 받을 수 있었다.

왜 그들은 '함구'해야 했을까? 동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 한재동 씨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비둘기 역할을 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 보다 한재동 씨 일생의 큰 투쟁은 그가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때까지 버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 '보통' 일이 아니었던 한재동 씨의 교도관 일이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는 교도관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얼마전 인기 리에 방영된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등장한 그런 인간적인 교도관? 실제 감옥을 다녀온 다수의 민주 인사들 중에는 교도관을 벗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감옥에 갇힌 이와, 그들을 지키는 이의 '우정'이라니. 바로 그곳에 민주 교도관 한재동 씨의 자리가 있다.

'비둘기'로서의 운명을 '하늘이 준 뜻이다', '이게 내 팔자자' 그리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다'라고 받아들였던 한재동 씨의 선택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한재동 씨는 퇴직할 때까지 평생 교도관으로 살았지만 교도관으로서의 그의 여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교도소내 인권 개선에 앞장 서는 바람에 지방으로 전출되기도 했고, 시국 사범, 정치범, 양심수와 친근한 관계를 맺고 이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애쓰고, 나아가 교도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 조합을 만드는데 앞장 서다 인사 조치를 당해 파면에 이은 구속까지 당한 '전력'이 '비둘기'의 숙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적극적인 동료들의 도움으로 1979년 징계에 이은 파면 조치가 1981년 10월 대법원까지 가서야 취소되고 복직 후 첫 부임지였던 곳이 바로 당시 시국사범들이 많았던 영등포 교도소. 동료들은 한재동씨의 복직이 영등포 교도소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미제 사건이 되었을 지도 모르다며 그 '우연의 기적'을 회고한다. 하지만 그 '한재동 씨의 결단'을 교도관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한재동 씨를 위해 동료들은 지난 30년 동안 함구했었다.

몰래 편지를 밖으로 나르는 일, 분명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 그러나 동료들은 '더 고매한 이상이었던 민주화'를 위한 일이었다며, 한재동 씨와의 민주적 유대 의식을 피력한다. 한재동 씨 역시 독재 정권 시대의 '정부'가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에 따라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결정한 일이라며 직업적 딜레마에 대해 정의내린다.

영화 <1987> 속 한 씬의 인물에 불과한 한재동 씨, 그리고 그 영화에 등장했던 수많은 주인공 아닌 주인공들, 그들이 그 영화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1987년 6.10 항쟁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그들의 삶이 있기에 가능했다. 직선제 개헌, 미완의 혁명, 그 이후로도 이어진 전진과 후퇴의 여정, 그 가운데에서도 한재동 씨와 같은 포기하지 않는 '민주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by meditator 2018. 6. 9. 14:19

생화를 활용한 설치 디자인 전시회에 다녀왔다. 커튼까지 쳐진 전시관, 도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 있길래? 하고 첫 발을 들여놓은 순간 흠씬 다가온 숲의 내음, 꽃의 향기. 마치 '그루누이'가 채집한 향기처럼 자연의 냄새를 채집하여 가둬 둔 그 전시회 공간에서 자연에서 '냄새'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의식하지 못하지만 '냄새'로 인해 희노애락을 겪는다. 미세 먼지로 가득한 도시가 뿜어내는 매캐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다가도 그 혼탁한 공기를 타고 오는 향긋한 커피 볶는 냄새에 어느새 마음이 풀리곤 한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집에 들어섰을 때 반기는 푸근한 김치 찌개 냄새만큼 안온한 행복의 내음이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맛은 언제나 '향'과 함께 우리의 머릿 속에 기억된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21세기의 문명이 만들어 내는 향과 맛에 기만당하고 있다면? 지난 5월 21, 22일 2회에 걸쳐 방영한 <ebs 다큐 프라임>은 바로 우리를 배신한 '문명의 맛과 향'에 대한 고발이다. 






음식도 중독이 된다. 
키만 190cm가 넘는 박영재씨는 아마도 개그맨 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덩치만큼이나 '대식'인 그의 식성이다. 단번에 3개는 끓여야 직성이 풀리는 라면, 하지만 라면이 끝이 아니다. 라면 먹고 앉기가 무섭게 초코바 두 개를 먹어치우더니 그것만으로 부족했던지 초코 아이스크림 한 통을 퍼먹는다. 그가 하루 동안 먹는 칼로리는 대략 6000, 성인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먹을 양을 한 끼마다 먹고 있다. 


박씨만이 아니다. 보기에는 날씬한 민보라 씨는 끼니마다 햄버거로 때운다. 그런데 한 개가 아니다. 무려 서너 개씩.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들지 않아 콜라 등으로 허기를 달랜다. 늦은 밤 귀가한 윤현섭 씨는 피자를 시켜 우선 콜라 부터 한 잔 벌컥벌컥 마신다. 민씨나 윤씨의 경우 햄버거나 콜라를 끊어보려 했지만 식은 땀이 나거나 울렁증이 생기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등 부작용을 겪는다.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마셔야 비로소 스트레스가 풀리는 상태, 중독이다. 



그런데 이들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음식을 대했을 때 중독과 쾌락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 중추의 혈류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중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독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이 '음식 중독'에 전세계인의 19.9%이 걸려있다. 더 심각한 건, 예일대가 만든 음식 중독 문진표를 작성한 대학생 103명 중 무려 1/4에 해당하는 26명이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아, 맛있어'하다, '다 먹어치워야 해'를 지나,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려'를 넘어 폭식의 경지에 이르는 '음식 중독', 그런데 대부분 '음식 중독'을 일으키는 건 '가공 식품'들이다. 

영양 전문가 헐먼 박사는 이렇게 중독성이 강한 패스트 푸드가 담배나 약물과 다를 바 없다 경고한다. 식품의 영양소에 등급을 매긴 ANDI 지수 (Aggregate Nutrient Density Index) 그 중 칼로리 당 미량의 영양소인 '파이토 케미컬'의 분포가 늦은 콜라, 흰 빵 등은 '과식'을 부르고, 식욕을 통제하기 힘들도록 한다. 바로 오늘날 '음식 중독'의 주범이다. 



야생 자원학 전문가인 프래드 프로벤자 교수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을 먹이의 향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향을 찾아내, 자신이 먹을만한 것을 골라 먹는 능력을 발달시켜 온 '영양 지혜'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의 '과식'과 '비만'은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향의 기만'이다. 발달한 현대의 음식 산업은 향을 통해 음식을 택하는 인간의 기호를 속인다. 과일이 아닌데 과일 향이 나는 하지만 설탕물과 불과한 음료수들처럼 합성향들이 인간의 '영양 지혜'를 뭉개버린다. 가짜 향과 가짜 맛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가공 식품이 매료시키는 향들은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다. 콜라, 아이스크림, 햄버거 등 '인공적으로 합성하거나, 도정 및 정제를 거친 곡류로 만들어진 설탕, 흰 밀가루, 백미 등의 '정제 탄수화물'과 영양없는 향을 결합 시켜 인간의 코와 입을 교란시킨다. 

맛과 향이 왜 중헌디? 
그렇다면 고유의 향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찾기 위해 다큐가 찾아간 곳은 '토종 씨앗'을 연구하는 사람들. 지난 1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600여 종의 토종 씨앗을 모은 변현단 씨, 그가 키운 토종 씨앗으로 토종의 퇴비를 써서 키운 작물들은 비롯 모양이나 수확량은 작지만 맛은 비교 불가이다. 

토종과 다품종 개량종 그건  50% 오렌지 쥬스와도 같다. 오렌지 쥬스 원액에 물을 섞어 희석시킨 50% 쥬스. 우리는 이것도 오렌지 쥬스라 부른다. 하지만 오렌지 100%의 맛과 향에 비교할 것인가. 그렇듯 더 많이, 더 크게를 지향한 농업의 발전이 낳은 건, 맛과 향이 떨어진 '본연의 향미'를 잃은 음식들이다. 



그런데 맛과 향이 뭐길래? 플로리다 주립대학은 토마토 278종을 실험했다. 토마토에는 수 백가지의 맛과 향을 지닌 화학 물질이 있고. 그 중에서 향을 내는 건 30 여종의 화학 물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이 '향'이 '필수 영양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암을 예방하고 식욕을 억제하며,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생리 활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성 화학 물질, 파이토 케미컬 성분이 '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향이 좋다는 건, '저는 당신 몸에 좋아요'라는 신호로, 많은 영양분을 품고 있는 건강한 열매라는 것을 연구 결과는 밝힌다. 

그런데 대량 생산을 위한 품종 개량은 바로 이 '파이토 케이컬'의 영양소를 지닌 향을 '희석'시킨다. 희석된 오렌지 쥬스처럼 부피는 늘고, 생산량은 증가하지만 파이토 케미컬과 미네랄이 부족해지고, 그 자리를 수분과 탄수화물이 채워 '영양'의 손실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다큐는 실험을 해본다. 똑같은 포항초, 하지만 농약을 쳐서 하우스에서 한 달 속성 재배를 한 것과 노지에서 겨울을 이겨낸 두 같은 종자의 포항초, 우리도 알다시피 겨울 바람을 이겨낸 포항초가 당도도 높고 향과 맛이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파이토 케미컬 성분의 페놀리그난과 플라노보이드 성분에서 노지의 포항초가 압도적이다. 결국 햄버거와 콜라, 피자, 라면 등을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채울 수 없는 건 바로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의 부족 때문이다. 


내 몸이 진짜로 원하는 맛과 향이 바로 다이어트 
그렇게 본연의 향기와 맛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알리는 '신호등'과도 같다. 다큐는 1부 <건강을 부르는 향>에 이어, 2부 <중독을 부르는 향>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영양 지혜'를 다룬다. 우리는 굶주리지 않지만 영양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다큐의 주장이다. 먹방을 넘어 대식 전성 시대에 대한 도전이다. 

제주시 한경면 조수 1리 9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20여 명이나 되는 장수 마을, 이곳의 노인들은 집 한 켠 우영밭(텃밭)에서 자라나는 채소와 감자, 고구마 등으로 밥상을 꾸린다. 쌀이 귀한 그 옛날부터 어르신들의 밥에는 보리 등의 잡곡과 검은 콩이 빠지지 않는다. 결국 자연에서 길러진 신선한 먹거리가 '인간의 건강'을 담보하는 것이다. 감은사 우관 스님은 '자연은 인간의 '공생' 파트너'라 정의한다. 사찰 마당에서 마구 자라나는 제철 풀, 그곳은 자연식 전문가인 스님의 보물 창고이다. 유명 셰프라고 다를까. 일식 요리사 유희영 셰프는 말한다. 좋은 재료에서 훌륭한 요리가 나온다고. 

텃밭을 만들고, 야생 풀이 자라는 자연으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중독'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른 무렵 결혼 당시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 커가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암울한 선고를 들었던 160KG의 안소니 마시엘로는 식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 50이 넘은 지금 아이들과 함께 농구 게임을 즐기는 삶을 누린다. 채식이냐, 대사 증후군에 당뇨, 고혈압 진단을 받은 개그맨 박영재씨는 한 달 정도 '재습관화'의 과정을 통해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우선 샐러드 등으로 배를 채우고, 외식을 하더라도 콩비지 등 패스트푸드가 아닌, 가급적 맛이 진하지 않은 음식으로 끼니를 꾸려간다. 

한 달이 지난 후 박영재 씨는 놀랍게도 50대의 생체 나이를 본연의 서른 중반으로 돌려놓았다. 몸무게도 줄었고. 무엇보다 채소라면 질색하던 그가 '토마토'의 다양한 맛에 눈을 떴다. 2006년 <슈퍼 차지 미 SuperCharge Me>의 주인공인 제나 노우드는 자연 생식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채식이냐 육식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공 식품을 먹어 무뎌진 내 몸의 감각을 되살려, 온 몸의 세포에 영양이 퍼져나가는 그 느낌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제나는 주장한다. '가짜'로는 만들 수 없는 느낌. 가짜 맛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 내 몸이 원하는 진짜 맛과 향을 찾아내는 '영양 지혜'의 회복. 그것이 진짜 '다이어트'의 비결이다. 

by meditator 2018. 6. 8. 00:40

구악의 상징이었던 전 대통령이 '헌법 재판소'라는 사법적 절차를 통해 '탄핵'이 결정되며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는 '개헌'이 논의 되며, 사법 정의 실현이 '적폐 청산'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세상, 그런 현실의 반영때문일까.  tvn의 <무법 변호사>, mbc의 <검법남녀>, jtbc의 <미스 함무라비>, kbs2의 <슈츠>, 그리고 얼마전 종영한 sbs의 <스위치-세상을 바꿔라(이하 스위치)> 등, 각 방송사, 각 요일대 별로 '법' 관련 드라마들이 포진되어 있다. 적어도 시청자들은 이들 드라마 중 한 드라마를 매일 만날 확률이 높다. 




범람하는 법 관련 드라마들
물론 '법'을 다룬다고 해서 천편일률적이지는 않다. tvn의 <무법 변호사>는 '법'으로 싸우는 변호사라 주인공인 봉상필(이준기 분)이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드라마를 견인하는 건, 그와 다수의 조폭들의 격투씬이요, 법정에서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한 '봉상필'의 '작전'들이다. '법'을 내세우지만, '무법'적 요소가 범람하는 아이러니한 '법' 드라마인 셈이다. 지난 5월 17일 종영한 <스위치>의 경우 '스위치'를 온오프하듯 자유롭게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사칭을 하는 사기꾼이 얼떨결에 검사가 되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무법 변호사>와 같은 변칙 플레이의 궤도에 놓여있다. 미드 원작으로 리메이크 된 kbs2의 <슈츠> 역시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전설적인 변호사와 함께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가짜'를 변호사로 등장시켜 '법정' 드라마를 변주시킨다. 

반면, 서울 동부지방 법원 부장 판사로 이미 동명의 저서를 펴낸바 있는 문유석 판사가 극본을 쓰고 있는 jtbc의 <미스 함무라비>는 앞서 두 드라마와는 정 반대로 '법원'을 무대로 '판사'들의 교과서와 같은 내용을 현장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mbc의 <검법 남녀>는 검사와, 법의관을 파트너쉽 관계로 묶어내고, 검시의 현장과, 그에 뒷받침되는 일선 법 현장을 '메르스 사태', '엄여인 사건' 등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현실감있게 풀어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설정이 다르고, 전개가 다르다 해도 매일 매일 '법' 드라마가 방영되는 현실은 제 아무리 현실을 반영한다 해도 과하다. 그건 곧 그만큼 현재 우리 드라마 계가 '범람하는'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콘텐츠의 빈곤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제 아무리 사법적 정의가 중요하다 해도 대한민국 전체 직업군 중에서 '법' 관련 직업군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 드라마 속 전문직으로 등장하는 '법' 관련 직종은 과도하다. 시대적 흐름이라 해도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드라마계의 현실이다. 사기꾼이던지, 무법 액션가이던지, 혹은 정의로운 판사던지, 법의관이던지, 결국 그 무대는 '법정'이고, 그 '정의'의 실현은 '법'을 통해 판가름나는 이들 드라마는 '법'의 중요성을 '계몽'하는 효과가 극대화되는 반면,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피로도' 역시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제 아무리 이준기가 펄펄 날고, 정재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메스를 휘두르고, 천재 박형식이 술술 법전을 읊어대도 시청자들의 눈에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이는 '자충수'를 더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의로운 여성 법관들
그런데, <슈츠>를 제외한 이들 법 관련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바로 여성 법조인들이다. 지난 1월 15일 사법 연수원 수료식, 수료한 연수생 171명 중 여성이 70명으로 40.9%를 차지한다. 지난 해에 비해 29.4%에 비해 그 증가폭이 현격하다. 그런 현실을 반영한 탓일까.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법복'을 입고 활보한다.

또한 이들 '법복'을 입은 여주인공들은 '정의'의 상징이다. 그들은 의로우며, 그 의로움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법'을 실현하고자 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들이 '자산가'의 자제(검법남녀 은솔 역의 정유미)이거나, 지역 유지 판사의 도움으로 변호사가 된 사진관 집 딸(무법 변호사 하재이 역의 서예지)이거나, 재래 시장통의 친근한 딸(미스 함무라비 박차오름 역의 고아라)이거나 상관없다. 그들은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며, 무한한 EQ를 작동하여 사건에 감정을 이입하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마다하지 않는 열혈 '법조인'들이다. 

'권위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않는 '깨시민'의 전형같은 이들은 그런 '정의감'으로 인해 사건의 중심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하지만, 그녀들의 무한 EQ와 아직 무르익지 않은 경험은 그들은 때로 그녀들을 직업적 혼돈에 빠뜨린다. 마음이 앞서는 <검법남녀>의 은솔 검사는 그로 인해 '메르스'로 추정되는 검시실에 갇히는가 하면, 사건 현장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미스 함무라비>의 박차오름은 시장통 사람들의 민원에 귀 기울이다 법원 앞 1인 시위하는 여성의 사건에서 공정성의 잣대를 놓치기도 한다. 어렵사리 공부해 겨우 변호사가 됐지만 법저에서 남편의 학대에 정당방위를 한 여성의 억울한 판결에 분노하여 주먹이 앞서는 바람에 '변호사' 자격에 위기를 겪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법'의 정의로운 실현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 그 실현의 과정에서 고뇌하고 성장한다. 그러기에 때로는 그녀들이 벌인 일들이 그녀들을 민폐로 만들기도 하고, 감정적이며 저돌적인 캐릭터의 한계 속에 가두기도 한다. 분명 드라마 속에서 그녀들은 '법복'을 입은 전문적 직업인들이지만, 그녀들의 캐릭터가 빛나는 상황은 그녀들의 '감정'을 통해서인 경우가 아직은 빈번하다. 외려 법복을 입지 않았지만 <슈츠> 속 홍다함(채정안 분)과 김지나(고성희 분)가 전문성에서는 더 빛을 발한다. 

거기에 그녀들이 '성장'하기 위해 '남성'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맹목적인 정의감에 불타던 <무법 변호사>의 하재이는 봉상필(이준기 분)을 통해 어머니 죽음의 비밀을 알고 그녀가 그토록 존경하던 차문숙 판사, 그리고 그녀가 만든 괴물 기성을 향해 법의 칼날을 겨눌 것이다. <검법남녀>의 감정만 앞서던 은솔에게 때론 배신감을 안기기도 하지만, '법'의 길에서 '바로미터'가 되는건, 그 어느 경우에서도 '법'의 진실을 향해 비켜서지 않는 법의관 백범(정재영 분)이다. 의지과 감성이 앞서는 박차오름이 전문적인 판사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노회한 한세상(성동일 분)의 경험과 선배 임바른(김명수 분)의 배려가 전제된다. 
정의로운 여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여전히 '감성적'인 여성'과 '이성적'인 남성의 구도의 드라마들이 서로 다른 드라마인데도 마치 같은 드라마인양 남여 주인공의 성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되풀이 된다는 점이 아쉽다. 
by meditator 2018. 6. 5. 16:14

<미스트리스>는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영국 BBC One에서 방영된 드라마이다. 이걸 2013년 미국 ABC에서 시즌제 드라마로 리메이크, 현재 시즌4까지 방송 완료되었다. 그리고 2018년 OCN을 통해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6월 3일까지 12부작으로 방영되었다. 현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관능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이들 드라마는 ABC 드라마의 경우 '미국판 사랑과 전쟁'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를 하였다. 그렇다면 12부작으로 완료된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어땠을까?




미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설정의 한국판 
한국판 <미스트리스>의 각 캐릭터 상 설정은 흡사했다. 알리사 밀라노가 연기한 사바나 역, 잘 나가는 변호사이며 남편이 쉐프였던 이 캐릭터는 역시나 전문직 여성이었던 한정원(최희서 분)과 역시나 쉐프인 그녀의 남편 황동석(박병은 분)으로 등장한다. 또한 이들 부부는 미드 원작에서처럼 불임으로 고민 중이며 같은 학교 선생님과 한번의 정사로 아빠를 알 수 없는 아이를 가지게 된 것 역시 동일한 설정이다. 

우리나라 배우 김윤진이 연기했던 정신과 의사 카렌 킴 역할은 한국판 <미스트리스>에서도 역시나 같은 정신과 의사이며, 환자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감정적 혼란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즐기는 부동산 중개업자 조슬린(제이스 맥클리안 분) 캐릭터 역시 비슷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로펌 사무장 캐릭터 도화영(구재이 분)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가인이 분한 장세연은 남편이 죽은 이후 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워킹맘 캐릭터이며, 그런 그녀의 앞에 남편의 여자가, 심지어 그의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는 설정 역시 원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비슷한 설정, 그리고 원작이 표방한 '관능'이라는 방점에 충실하기 위해 드라마의 초반 선정적인 베드씬을 나열하며 이 리메이크 작도 원작처럼 적나라한 성인들의 속살을 드러내는 이야기임을 가감없이 보여주려 했던 <미스트리스>, 하지만 12부작 한국판 <미스트리스>에서 미드의 흥미진진함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 설정도 비슷하고, 서사도 그리 다르지 않았는데.



여성들의 이야기란? 
그건, '여성'들의 이야기를 표방했음에도, 그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우선 미드 원작에서 드라마의 중심적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건 성공한 변호사였던 사바나 캐릭터였다. 이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뜻밖의 외도를 통해 가지게 된 아이,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설정이지만 한국판 <미스트리스>는 어땠을까? 영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가 무색하게, 드라마<미스트리스>에서 최희서가 분한 한정원은 '전문직' 여성이었지만 학교에서 그녀는 자신만만하지도 당당하지도 않은 채 늘 불안하고 일에 치이고, 학생들에 치이는 심지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여성이었다. 

우리나라 배우 김윤진이 연기했던 카렌 킴 역의 정신과 의사는 한국판에서도 같은 직업이지만 드라마 내내 신현빈이 연기한 김은수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당당한 여성이라기 보다는 불륜이었던 선생님과 그 아들 사이에서 불안에 떨며 직업정 정체성조차 모호한 캐릭터로 보여졌다.

이렇게 원작과 다르게 직업 여성의 주체적인 당당함 대신 그녀를 둘러싼 사건, 사고에 휩쓸려 어쩔줄 모르는 여성의 불안함과 불안정함이 증폭된 캐릭터들도 캐릭터들이지만, 무엇보다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여성'이라는 주체성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건, 미드에서 사바나와 카렌 킴이 주도해가는 서사와 달리, 오랜만의 복귀작이 된 한가인이 분한 장세연이 한국판 <미스트리스> 서사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은 후 아이와 함께 사는 장세연,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모, 그런데 알고보니 남편의 여자, 죽은 줄알았던 남편의 생환, 그리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역시나 정체가 모호한 딸 아이 유치원의 학부모라는 한상훈(이희준 분). 장세연은 12부작 내내 그녀가 원치 않는 사건에 본의 아니게 얽히며 자신과 딸의 운명조차 파국의 상황까지 휩쓸려 가는 인물이다. 

수동적인 캐릭터 장세연이 극의 중심에 놓여지고, 정작 주체적인 한정원과 김은수가 주변 인물로 변형되며 <미스트리스> 전체가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려 '독안에 든 쥐'가 되어버린 여성들의 양상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절대 악 김영대(오정세 분)의 보험 사기극에 휘말린 여성들의 잔혹사로 귀결되었다.



미스트리스란 단어에는 이율배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지배권을 가진 여자라는 뜻과 동시에 다른 여자의 남편과 불륜의 관계를 가진 여성이라는 양 극단의 의미이다. 미드 <미스트리스>는 이 이율배반적인 의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들의 삶을 '관능'이라는 성적 코드를 얹어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한국으로 온 <미스트리스>는 '관능'이라는 코드를 성적 자유분방함이나 주체성이라는 측면보다는 시청자를 위한 눈요기거리로 보여주려 한다. 또한 불륜 등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인 삶의 방향을 위해 고민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16부의 엔딩에 이르기까지는 안타깝게도 부각되지 않는다. 대학 동창생 4명의 굳건한 우정은 듬직했지만 함께 몰려다니던 그녀들은 사건의 주도적인 해결보다, 늘 또 다른 사건의 함정 속에 빠지기 십상이니 그녀들의 집단적 의지는 희석되어 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빛나는 장면은 있다. 전 남친과의 잠시 모호한 관계에 빠졌던 도화영이, 그와 함께 산성을 오르다, 올라올 때는 너와 함께 였지만, 이제 내려갈 때는 각자 내려가자며 자기 삶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장면이나, 누구의 아이인가 내내 혼돈에 빠져있던 한정원이 남편을 면회한 자리에서 아이의 유전자 검사지를 찢으며 아빠가 누구인가 상관없이 내 아이로 키우겠다는 장면은 내내 운명에 어찌할 줄 모르던 그녀들의 삶에서 반짝인다. 또한 한 남자의 두 아내였던 장세연과 박정심(이상희 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각하고, 특히 박정심이 자신을 옭죄고 있던 김영대의 운명적 결박을 풀어내는 장면은 그럼에도 <미스트리스>의 결정적 장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 여성들의 '연대'와 '우정'은 그 표현이 단선적이었지만 <미스트리스>라는 훈훈한 장점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6. 4. 15:21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 오랜만에 길거리에서 이지안과 박동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는다. 반갑게. 그리고 잘 지냈노라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드라마를 함께 완주해왔던 시청자들은 안다. 저 마주 잡은 손이, 그리고 눈으로 묻는 안부가, 그리고 기꺼이 답하는 서로의 안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가 다리가 되어 이 자리에 '건재'할 수 있었던 그 '곡진'한 감정이 그 짧은 안부를 통해 전해지고,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갈 길을 향한다. 후계동으로 한번 놀러오라는 당부를 더하고,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모처럼 만나 반가웠던 이지안과 박동훈처럼 <유희열의 스케치북> 400회가 6월 3일 찾아왔다. 400회라 하여 주말의 피로를 견디며 닥본사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여전히 후계동처럼 그곳에 있었다. 




400회의 여정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뒤를 이어 2009년 4월 24일부터 방영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 400회를 맞이했다. 햇수로만 9년차이다. 

100회를 맞이했던 <스케치북>은 떠들썩했다. 공중파 유일의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란 자부심을 한껏 내보이는 4주간의 특집. 국내 정상의 프로듀서들을 한 자리에 모은 1탄 '더 프로듀서', 2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고수하는 뮤지션들의 '더 레이블', 그리고 드라마의 들러리에서 당당하게 음악으로 길어낸 ost의 3탄 '더 드라마', 그리고 기타리스트 함춘호, 베이시스트 신현권, 아코디언의 거장 심성락 씨와 함께 했던 '더 뮤지션' 등을 통해 '가수'를 통해 표현되던 음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무대를 빛냈고,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자부가 빈 말이 아니었음을 한껏 드러냈다. 

200회, 정통 블루스&컨트리의 김태춘, 진보 하드록의 로맨틱 펀치, 실험적이고도 독창적인 이이언, 블루스계의 싸이 김대중, 작곡자이자 재지한 뮤지션 선우 정아까지, 당대 최고의, 혹은 인기 뮤지션으로 대접받는 '이효리, 윤도현, 장기하, 박정현, 유희열'이 자리를 바꿔 누군가의 '팬'이 되어 무대를 함께 하며, 실력파 뮤지션을 세상에 재조명했다. 



300회, <불후의 명곡>과 <나는 가수다> 등 각종 편곡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스케치북>은 이런 유행의 트렌드를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본연의 정통 프로그램으로서의 자리를 드러낸다. '선택 2015 발라드 대통령' 특집, 대통령 선거의 모양새를 내며, 유희열이 공을 뽑아 출연자를 정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결국은 남들 노래의 재편집이 아닌, 윤종신, 박정현, 거미, 김범수, 백지영, 자이언티까지 '발라드' 계의 내노라하는 가수들의 본연의 매력을 한껏 조명하는 자리를 통해 '음악'의 자리를 묻는다. 

'후계동'같던 400회, 음악의 '아버씨'가 된 유희열
그리고 400회, 이렇게 떠들썩했던 지난 특집에 비하면 400회 <스케치북>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조촐해보일 지도 모른다. 한 방청객의 말처럼 뒤늦어 버린 인생처럼 너무 늦게 시작하는 <스케치북>을 졸린 눈을 비비며 굳이 지켜낼 성의 대신, 손쉬운 '편집 영상'들이 '닥본사'를 대체한다. 스케치북하면 떠오르던 대명사였던 유희열을 사람들은 이제 <알쓸신잡>이나, <슈가맨>의 mc로 떠올려진다. <스케치북>이 아니라면 볼 수 없었던 기획이나 뮤지션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프로그램마저 떠들썩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선점하면서 굳이 그 늦은 시간을 기다릴 이유를 잃었다. 

400회는 그렇게 '희석화'되어가는 <스케치북>의 의미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윤종신, 이적, 아이유, 다이나믹 듀오, 오혁, 십cm, 멜로망스, 오연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여전히 풍미하고 있는, 그리고 이제 막 풍미하는 뮤지션들의 색다른 조합이야말로 9년 여정의 <스케치북>이 되었다. 

'땡스 투 뮤직'이라는 부제로 시작된 조촐한 무대, 뮤지션 혼자, 혹은 콜라보로 엮어지는 무대, 그리고 언제나처럼 유희열의 썰렁한 농담과도 같은 '역주행 좋니 좋아 상', '내가 니 애비다' 등의 기발한 하지만 적확했던  '땡스 투' 시상을 관통하는 건 이들 뮤지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데 일조했던 <스케치북>의 '자화자찬'이다. 2017년을 울려 퍼졌던 '좋니'를 다시 불렀던 무대, 멜로랑스라는, 십cm, 오혁, 심지어 아이유라는 신인을 자신있게 소개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여전히 '링거'를 맞은 '다이나믹 듀오'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존재감이다. 

즉, <스케치북>은 토요일 밤 자정을 넘겨 '쭈그러져'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길어올렸고, 길어올린 음악들이 이 세상 속에 화려하게 회자되고 있다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이다. 아버지같은 아저씨 유희열이 있기에 가능한. 



그래서 400회를 맞이한 <스케치북>은 마치 아저씨 세대와 젊은 세대와 정희네에서 한데 어울려 술 한 잔 하며 흔쾌히 '인생'을 나눌 수 있는 후계동과도 같았다. 그곳엔 '아버씨' 유희열이 있었고, 여전히 윤종신과 이적이 있지만, 오혁과 멜로망스, 십cm를 세상으로 인도할 여유가 있고, 이제 오연준이라는 '신인'이 그가 팬이라던 아이유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첫 무대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추억'이 생성 중이다. 우리가 세상사에 지쳤을 때 찾아가고픈 후계동처럼, 그래서 <스케치북>도 오래오래 그곳에서 '음악'의 후계동으로, 아저씨가 되어 버텨 줄 것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6. 3.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