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으로 간 형사의 이야기인 영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라이프 온 마스>는 중반부에 들어서며 '귤화위지(회남(淮南)의 귤을 회북(淮北)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의 우를 범하던 '리메이크'작의 우려를 씻고, 외려 '청출어람(청색은 남색으로부터 나오지만 남색보다 푸르다)'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지난 7회 원작에서 평범한 '인질범' 에피소드는 1988년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으로 '타임슬립'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지강헌 인질극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시대의 공기를 소환했다. 수사극답게 그저 조용필과 박남정의 노래나, 선데이 서울 로 대변되던 '응답하라 1988'을 넘어  빈부 격차가 고착되던 1988년의 시대를 정확하게 포착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에 이어 우리에게 '형제 복지원' 으로 기억되는 또 하나의 '과거의 괴물'을 불러온다. 




괴물을 만든 시대, 1988년
2018년 연쇄 살인범을 쫓다 의문의 총격으로 사경을 헤매던 한태주(정경호 분), 그의 무의식 속에서 소환된 1988년에서도 그는 '현재의 연쇄 살인범'을 쫓는데 여념이 없었다. 현재의 연쇄 살인범 김민석의 과거 행적을 찾아 애초에 그의 살인을 봉쇄하려 했지만 찾을 길 없었던 그 존재는 뜻밖에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어린 태주의 곁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뜻밖에도 김민석을 조우하게 된 건 도봉리의 살인 사건, 죽은 지 오래된 김봉례네집에서 찾은 가족 사진, 그리고 그곳의 김민석, 민석의 행적을 찾아 김봉례의 남편을 찾아간 한태주는 민석이 두 사람의 친 자식이 아니라, 정부의 혜택을 받기 위해 가짜로 '입양'된 아이이며, 그로 인해 오랫동안 '학대'당했던 피해자라는 사실에 맞닦뜨린다. 그리고 김봉례의 범행 수법이 그들이 쫓는 연쇄 살인범의 수법과 동일하다는 걸 알게 되고.  경찰서 내에서 죽은 마약 중독자의 죽음을 통해 범인이 그들 주변에 암약해 있음이 드러나며 김민석의 형 현석(곽정욱 분)이 드디어 전면에 등장한다. 

윤나영(고아성 분)을 납치하며 강력계에 역습을 가하던 현석은 하지만 기억 속 집을 찾아낸 태주로 인해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현석을 찾기 위해 그의 지난 과거 행적을 쫓던 태주와 강력계 형사들은 '범죄'를 만들어 낸 88년의 오욕된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월남에서 팔을 잃고 돌아와 술과 자식들 매질로 세월을 보내던 아버지, 그런 무능한 아버지 대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술집에 나갔지만 병을 얻었던 누나,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의사'라도 될 놈이라던 현석은 '의사' 대신 연탄불로 위장하여 아버지를 죽였다. 벽에 즐비한 상장 대신 '범죄'를 손에 든 그의 변화에는 동생과 함께 외가를 찾아나섰다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다짜고짜 그를 '납치'해간 인성시의 '환경 미화 작업'과, 그 배후의 '복지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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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사랑하던 소년, 사이코패스가 되다
현석의 과거 행적 중에 추적이 불가능했던 3년, 그 3년은 동생을 보살피려 했던 소년을 사이코패스로 돌변한 막무가내의 감금과 학대의 세월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우리의 현실 속에서 튀어나오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소환이다. 

1975년 내무부 훈령 410로,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없이 구금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훈령은 70년대에는 유신 정권의, 그리고 80년대엔 독재 정권의 '유용한 수단'이 되어 '정화'라는 명목으로 죄없는 사람들에게 '영어'의 고통을 강요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형제 복지원에서의 인권 유린 사건. 특히 1988년 국가적 행사인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뤄내기 위해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가출 청소년 같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사회 정화'의 명목으로 막무가내로 잡아들였다. 

드라마는 이 '사회 정화' 작업을 상기시킨다. 현석은 그 '사회 정화'작업으로 표창장을 받은, 하지만 동생을 눈앞에 두고 자신을 무작정 잡아가 가둔 형사를,  복지원에서 자신에게 '변태적 행위'를 한 간호사를, 그리고 그 배후인 '복지원' 원장을, 동생을 학대한 김봉례씨처럼 '보복'하고자 했다. 이제는 새롭지도 않은 수사물의 단골 주범인 '사이코패스'를 <라이프 온 마스>는 1988년이라는 시대의 인물로 재탄생시키며 다시 한번 '유전무죄 무전 유죄'의 시대를 복기한다.  1988년은 자랑스러운 88올림픽의 시대가 아니라, 유전무죄의 범죄들이 연달아 터지던 오욕의 역사였다. 

by meditator 2018. 7. 23. 14:18

시청률은 보잘 것 없었다.(1회 1.8%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하지만, 첫 회가 끝나고, '티라미수 케잌'하며 달콤하게 사랑 노래를 부르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법자'(김성철)이 화제가 되었다. 아마도 편의점 알바를 하는 정민(김성철 분)과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권나라(정채연 분)의 풋풋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입혀진 음악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리라. 

대놓고 뮤직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소년과 소녀의 풋사랑에 '음악'을 입힌 시도는 kbs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사춘기 메들리(2013)>를 통해 시도된 바 있다. 제이 레빗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커피소년의 <아메리카노에게>, 불독 멘션의 <좋아요>가 한 폭의 수채화같은 고창의 여름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소년 정우(곽동연 분)와 소녀 아영(이세영 분)의 사랑을 타고 흘렀다. 허긴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거기에 그 시대를 대변하는 음악이 없었다면 '신드롬'이 되었겠는가. 그렇게 '청춘'은 언제나 '음악'을 타고 시청자의 감성을 흔들었다. 지난 7월 10일에 이어 17일 kbs2 밤 11시에 방영된 <투 제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선다. '뮤직 드라마'를 표방한 이 드라마는 기존의 작곡가의 곡이지만, 극중 '뮤지션'인 정민과 나라의 노래와 연주를 통해 '음악'을 고스란히 드라마에 입혀냈다. 




편의점 알바와 아이돌 연습생의 사운드 오브 뮤직
할 줄 아는 건 음악 밖에 없는 하지만 현실은 '편의점 알바'인 정민의 유일한 관객은 그의 열살 먹은 여동생이다. 그런 오빠를 한심하고 안타깝게 생각한 여동생은 오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sns'를 시작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방구석 '싱어송라이터'를 면치 못하는 정민 앞에 고등하교 시절 첫사랑인 나라가 나타난다. 

소리 없이 다가온/소문처럼 다가온 사람
별처럼 빛났던/너를 보게 됐고/Fall in Love
찬란했던 그 미소/두 눈에 가득했던 파도/난 너를 보면
Tiramisu Cake Tiramisu Cake/마치 넌 Tiramisu Cake  -<티라미수 케잌>


<투 제니>의 1부는  그렇게 '티라미수 케잌'처럼 달콤하게 다시 찾아온 첫사랑 나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돋보였던 나라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아이돌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나라의 '찬란했던 시절'은 그때가 끝이었다. 그녀가 '코코아'라는 그룹으로 데뷔를 했었다는 건 알지만, 이제 더는 그녀를 기억하는 동창들은 없다. 그녀의 첫 앨범을 사서 머리맡에 둔 정민 말고는. 그랬던 그녀가 어깨죽지가 꺽인 새와도 같은 모습으로 정민의 편의점을 찾고,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생, 아니 그녀의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부담감에 그만 '삑사리'를 내버렸던 학생으로 기억되는 정민은 오랜만에,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를 기억해 주는 동창으로, 그리고 재계약을 위해 소속사에 요구하는 '싱어송라이터'로의 변모를 위한 '기타 선생님'으로 나라의 곁에 자리하게 되고. 그런 정민의 도움으로 나라는 7년이라는 아이돌 연습생의 시절을 접고,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려 한다.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줄게
깜깜하면 등대가 되어줄게
And I know and I know and I know
너 슬픈 거 I know
무거운 짐 내가 들어줄게
하루하루 how do you feel today  -<your song>


1부에 이어진 2부는 정민의 이야기다. 그저 속절없이 시간을 타고 사는 편의점 알바인 줄 알았던 정민,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나라, 아니 전교생 앞에서 '음이탈'을 한 트라우마가 정민이 꾸는 '뮤지션'의 꿈을 막는다. 여동생, 아니 단 한 명의 관객이 아니라면 노래를 할 수 없는 정민, 그렇게 오랜 '불치병' 을 겼는 정민은 하지만 기꺼이 자기 앞에 나타난 첫사랑을 위한 곡을 써서 '헌정'한다. 

정민이 만든 곡으로 싱글 앨범을 약속받은 나라, 그러나 정민의 곡은 나라가 아닌 다른 소속사가 미는 가수에게 돌아가고, 나라는 자신을, 정민을 '이용'하기만 하는 소속사와의 재계약을 접고, 정민과의 인연도 끊은 채 '칩거'한다. 

그래 이제 말해야 해/변하지 않아도 돼/그대로 있어도 돼
이제는 들려줄게/나의 마음을/이 자리에 서서/노래해줄게
너에게 말해야 해/그래 이제 말해야 해/너의 모든 게/지워지기 전에
이제는 들려줄게/나의 노래를/이 자리에 서서/노래해줄게  -<to. jenny>




청춘의 이야기에, 트렌디한 음악, 그리고 실험적인 형식 
2부작의 <투 제니>는 그렇게 '음악'에의 꿈을 꾸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그 '꿈'이 가로막힌 '청춘'의 이야기를 날줄로 삼고, 그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악'을 씨줄로 삼아 엮어낸다. 또한 드라마는 기획사라는 기성 사회와 트라우마에 갇힌 청년들의 소통의 세상으로 'sns'를 등장시키며 청춘 담론의 새 가능성을 연다. 거기에 그 풋풋한 청춘의 이야기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실험적 방식을 통해 신선한 접근을 더한다. 

단 한 명이라도 관객이 늘면 노래를 못하고 도망치곤 했던 정민이 나라를 위해 관객들 앞에 서고, 나라를 찾아 피씨방의 사람들 앞에 서는, 그래서 자신도, 나라도 '구제'하는 이 '꿈'의 성장기는 편의점 알바 청년과 아이돌 연습생이 만난 그 순간 충분히 예견할 만한 결말이다. 하지만, 그 어디선가 본듯한 평범한 이야기에 '멜로망스', 최낙타, 샘김, 알고보니 혼수상태' 들의 음악이 더해지면서 그 청춘의 정서가 한껏 부풀어 오른다. 드라마 스페셜은 아니었지만(예능국 제작), 여전히 녹슬지 않은 kbs 드라마다운 신선한 시도이다. 올드 미디어가 되어가는 tv의 바람직한 청춘들과의 '협연'이다.

by meditator 2018. 7. 18. 05:09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던 날, 평양냉면을 먹으로 간 이들이 많았다. 2018년 '평양 냉면'은 그저 냉면 중에 한 종류가 아니다. '어렵사리 평양으로부터 랭면을 가져 왔습니다.'의 그 '남과 북'의 가교이다. 남북 정상 회담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 냉면을 맛본 이들의 '동정'이 화제가 되었다. 어느덧 시대의 상징이 된 음식, '평양 냉면' 그에 대해 mbc 다큐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평양 냉면, '덜덜이'라고 했단다. 황교익 평론가에 따르면 찰기가 없어 뜨거운 국물에 넣으면 풀어져 버리는 이 '메밀'을 국수로 만들어 먹기 위해 김치 국물 등의 찬 물에 담갔고, 특히 추운 겨울 밤 덜덜 떨면서 먹던 그 '밤참'의 매력 덕분에 '덜덜이'라 불리던 음식, 벼농사가 흔했던 남쪽과 달리, 척박한 밭 농사의 지역에서 흔히 수확할 수 있었던 특산물에서 비롯된 음식, '냉면'이다. 




냉면으로 하나된 민족
냉면 집에 가면 홍해 바다 갈리듯 나뉘는 취향, 함흥과 평양, 비빔과 물이라는 냉면을 마는 방식, 하지만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만나, 그 상징적 음식으로 '옥류관의 평양 냉면이 등장하면서, 이 시대 어느새 냉면의 대명사는 '평양 냉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평양 냉면'의 성지로 '옥류관'이 떠올랐다. 꼭 먹어봐야 하는 맛, 먹고 싶은 맛, 옥류관의 평양 냉면을 먹고싶어서라도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는 맛, 그게 '먹방'의 시대 떠오르는 아이콘 '평양 냉면'이다. 

다큐는 당연히 '성지', '옥류관'으로 부터 시작된다. 냉면 집이라기엔 어마어마한 규모, 1,2층 합쳐서 1,2800㎡, 장충 체육관보다 넓은 옥류관, 이곳에선  한번에 2000 명이 냉면을 먹을 수 있다.  하루에 팔리는 냉면의 양만 만 그릇이 넘는 곳. '육수물이 제일 맛있다'는 평양 냉면, 순 메밀로 만든 사리에, 김치, 무김치, 소, 돼지, 닭고기, 실지단, 달걀 반 알, 잣 세알을 띄운 음식, 꼭 사리에 식초를 쳐서 먹어야 하는 '비법'까지 곁들여지는 김일성의 지시로 1961년 평양 대동강변에 만들어진 '부심' 짱짱한 옥류관의 대표 메뉴이다. 

하지만, 냉면을 그저 '옥류관'에 가두는 건 아쉽다. 다큐는 냉면을 타고 흐르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추적한다.  북한에 옥류관이 있다면, 남한에도 '옥류관' 못지 않은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1.4 후퇴 당시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 박근성 씨의 '평양 모란봉 냉면집'.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냉면집을 하시던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대전의 피난민들이 많은 숯골에서 냉면을 말아 팔기 시작했다던 그 냉면집이 이제 아들의 대까지 이은 대전의 냉면 맛집이 되었다. 초가집 앞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먹던 냉면이 이제 한 해 무 만개, 배추 7천 포기의 소문난 맛집이 될 동안에도 부모님이 하시던 방식 그대로 메밀의 겉 껍질을 살린 거무죽죽한 면발에, 겨울 무로 담근 동치미의 전통은 변하지 않는다. 방송이 나가기 얼마 전 결국 고향을 그리워 한 채 눈을 감고 만 박근성 씨, 박근성 씨처럼 남한의 전통있는 냉면 집은 '실향'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다.

냉면으로 이어진 '민족'은 한반도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 교포인데도 워낙 냉면을 좋아해 어느 덧 냉면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된 존박과 함께 찾아간 일본 효고현 고베시, 그곳에 옥류관보다도 몇 십년 앞선 1039년에 문을 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 있다.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한 장모란 부부, 그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조선'의 국적, 아니 남도, 북도 아닌 무국적인 채 이곳에서 '냉면'의 가업을 잇고 있다. 어릴 적 아버님이 뽑던 전래의 냉면 틀을 기억하는 부부의 자손, 오늘도 평양식 물김치를 담그고, 손반죽으로 냉면을 뽑아내며 숙연한 전통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도 옥류관 평양 냉면을 맛보는 게 가능하다. 고난의 행군 시절 혹독한 북한 사회를 견디지 못했던 옥류관 요리사 윤종철 씨는 딸을 북한에 남겨두고 서울로 내려와 옥류관 시절의 맛을 되살린다. 그에게 냉면은 낯선 서울 땅에서의 안착이자, 두고 온 딸에 대한 다할 수 없는 미안함이다. 

2018년에 되살린 평양 냉면 '팝업 스토어'까지, 다큐는 냉면을 통해 남과 북을 잇고, 민족을 되살린다. 단 250그릇 한정으로 만들어진 옥류관 서울 1호점에 냉면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의 음식으로 대동단결된 민족이다. 

정말 평양 냉면이 맛있을까? 
그런데, 평양 냉면이 정말 맛있을까? 이 글을 쓰는 이도 그 유명하다던 평양 냉면들을 먹어봤다. 인터넷에 농담처럼 '걸레빤 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솔직히 호불호가 갈리는 '밍밍한 맛'이다. 비빔과 물의 취향 차이만큼이나 또 하나의 '취존'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 '밍밍한 맛'이 남기는 묘한 여운으로 인해 또 먹고 싶지만, 함께 갔던 이들이 다시 '이름값'을 넘어 '평양 냉면'의 마니아가 될 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북한 옥류관의 냉면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2010년대, 2018년에 먹은 옥류관 냉면은 맛이 달랐다고 한다. 순 메밀이라 자부했던 면에는 찰기를 살리기 위해 전분이 더해지고, 심지어 2018년의 옥류관 냉면에는 붉은 다다기까지 제공됐다고 하니,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밍밍한' 평양 냉면이 정작 그곳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결국, 평양 냉면이라는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냉면의 맛', 혹은 '이상향'이 어쩌면 또 다른 '냉면'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양 냉면이라 하여, 심심한 물에 담긴 메밀 국수에 길들여지고자 노력할 동안, 정작 본고장 냉면은 세상의 트렌드에 맞춰 간이 진해지고 있으니. 

음식이란 게 시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한다. 똑같은 평양 냉면이라도 '대전'의 평양 냉면과 , 고베의 '평양 냉면'이 다르듯이. 애초에 집집마다 긴 밤을 지내기 위해 말아먹던 '덜덜이 ' 국수에 정석이 어디 있으랴. 각 집의 손맛이 다르듯이, 김치 맛이 다를테고, 당연히 재료에 따라 냉면 맛도 달라질 테니. 늘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음식'들이 트렌드가 된다. 한때는 비빔밥이, 또 한 때는 한식이, 부디 평양 냉면이 그런 호들갑스런 잔칫상에 올려진 품목이 아니길 바란다. 냉면으로 하나된 민족을 확인하는 일은 뜨겁지만, '평양 냉면 제일일세'는 '과찬'이다. 

by meditator 2018. 7. 17. 15:24

남자 주인공의 캐스팅, 그리고 이어진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고의 나이 차, 뜻밖의 연기 논란, 그리고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배경  등등 <미스터 선샤인>을 둘러싼 논란은 마치 '두더지 잡기'와 같다. 마치 망치로 두드려대는 타이밍을 놓쳤듯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런 '논란'이 무색하게 시청률은 상승세다. 김은숙, 이병헌 이라는 화제성을 엎고 8%를 거뜬히 넘기며 시작하더니, 3회차에 10%를 넘어섰다. (1회 8.852%, 3회 10.082%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조국으로 부터 버림받은 주인공들
<미스터 선샤인>의 시작은 비감했다. 강화도 김씨 가문에서 노비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야반도주를 하다 잡혔다. 아비는 멍석말이 매타작으로 목숨을 잃었고, 어미는 유진을 살리기 위해 양반네 며느리의 목에 비녀를 그었다. 그리고 어미의 목숨값으로 던져준 노리개를 들고 유진이 눈 앞에서 사라지자 우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어린 유진은 자신을 쫓는 추노꾼들을 따돌리며 밤을 낮삼아, 생감자를 씹으며 길을 이었다. 구사일생 도공의 집에서 만난 미국인을 따라 이 땅을 떠났다. 그것만이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지키는 길이라 어린 유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낯선 이방의 땅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총이 유진초이가 된 그(이병헌 분)를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조국을 '오만원'에 팔겠다는 이완익(김의성 분)을 처단하기 위해 총을 든 의병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배신자가 있었고, 결국 그들은 총을 들어 배신자를 저격하는 대신, 그 총에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동지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남아 적들에게서 시간을 끌던 어미는 자신의 아이를 동지에게 전한다. 아비 역시 어미의 뒤를 이어 장렬하게 목숨을 잃었다. 아이는 그렇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어미, 아비 대신 완고한 학자인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랐다. 하지만 정숙한 여인으로 살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에 목숨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그녀고애신(김태리 분)을 할아버지는 의병의 아들이었으며, 그렇게 살지 않겠다더니 그 자신 역시 의병이 된 장승구(최무성 분)에게 보낸다. 

구동매라고 다를까. 그의 어미, 아비는 백정이었다. 칼을 들어 동물을 잡는 건 그들의 직업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일반 백성들조차 사람 대접하지 않는 모진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물을 잡던 칼 끝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위 세 사람 주인공들은 성별과 연령은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조선', 혹은 '대한제국'이라는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들은 '사람'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원형이라지만, 거기서 주인이 되는 이들에 '노예'와 '여성'은 해당되지 않았다. 조선에 일본이 쳐들어 왔을 때그 일본군을 인도한 이들이 조선의 '백성'이라고 하여, 과연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의 땅을, 땅에서 나는 소출을 빼앗가 가는 '양반'의 나라와, 자신들에게 쌀을 주는 왜군 사이에서 한 '백성'들의 선택을 어떤 기준의 잣대를 댈 수 있을까? 애초에 '양반'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노비'와, '백정'과,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바로 거기에서 <미스터 선샤인>의 질문은 시작된다. 지켜주지 않는 국가, 지킬 가치조차 없는 국가, 그 국가의 '구성원', 그들에게 '국가'는 어떤 것일까?



그 질문을 시작하기 위해 드라마는 가장 '낭만적'으로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조선은 비루했고 비겁했으며, 외세 앞에 무력했고 초라했다. 그에 비해 외세는 일본이든, 미국이든 영악했으며, 강력했고, 압도적이었다. 이완익을 저격했던 고애신의 어미와 아비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찾기가 희박하듯 드라마의 곳곳에서 '역사적 사실'의 불충실함과 빈약함, 심지어 왜곡을 만난다. 그 '부실'한 역사를 엮어 드라마가 도달하고자 한 것은 구한말의 역사 속에서 애초에 국가의 성원인 적 없는 세 주인공들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그래서 낭만적인' 캐릭터이다. 마치 배경에 '뽀샤시' 효과를 주어 '나'를 한껏 부풀려 드러낸 '셀카'와도 같다. 

그리고 이는 일찌기 고려의 무신이었으나 나라의 버림을 받아 칼이 꼿힌 채 천년의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도깨비'김신 과 그의 아내가 되기 위해 비극적 가족사를 감내해야 했던 지은탁의 서사와 잇닿는다. 허구의 역사를 길어 가장 비극적 낭만적으로 길어왔던 <도깨비>의 서사가 이제 가장 극적인 역사의 전환기였던 구한말로 시점을 옮겨 '사랑'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자각하는 근대적 개인, 그들의 선택 
개인에게 국가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모던'하다. 근대 이전에 '개인'의 존재와 역할, 의식이란 건, '신분'이란 틀 속에서 규정받는 개인들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신분' 속에서 살던 주인공들을 그 '신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를 도입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신분'을 부여한 부모님을 잃었다. 그저 잃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존재를 규정한 공동체가 그들을 버렸다. 거기서 그들의 첫 번째 자각이 싹튼다. 그저 노비로, 백정으로 순탄하게(?) 살아갔다면 몰랐을 '공동체'의 실체를 뼈저리게 깨달으며 자기 존재의 비감함을 통탄한다. 존재론적 깨달음음 가장 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이 몸담았던 공동체로 부터 '이반'하거나, 된다. 유진은 살아남기 위해 양반 사회인 조선을 떠나 '미국'이라는 신문명에 자신을 던진다. 구동매 역시 칼잡이였던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일본의 무사가 되었다. 고애신은 양반가의 여식이었지만, 어미, 아비의 뜨거운 피를 물려받은 그녀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조신하게 한학이나 배우다 누군가의 '지어미'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거역한다. 아녀자가 무슨 '나라 걱정'이냐는 할아버지의 걱정이 무색하다. '애기씨'라는 존재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양반이라는 사회적 신분이 무색하게 그녀가 스승으로 받드는 건 '사냥꾼'의 아비를 둔 포수이고, 바느질 대신 총을 든다. 전근대와 근대의 격동기에 그들은 그렇게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으로 각자 자신의 운명 앞에 선다.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이탈'된 그들은 그래서 '근대적 개인'으로 자각하고 그로부터 '개인'과 '국가'에 대한 질문에의 토양에 던져지게 된다. 그저 양반님네에게 당해는 게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 버림받음에 대한 '자각', 양반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무너져 가는 조국에 대한 비감함이 그들을 '자각된 개인'으로 '국가' 앞에 서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지킬 가치조차 없는 '국가'를 지켜야 하는가. 나를 지켜주지도 않는 '국가'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더 나아가 '국가'란 무엇인가? 이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김은숙 작가는 한껏 '드라마틱한' 인물들을 포진시켰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고애신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총을 선뜻 든 것과 달리, 유진과 구동매는 '자기 코가 석 자'다. 그들의 총과 칼은 자신을 버티기 위한 방패이다. 

하지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유진과 구동매는 원치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을 본다. 그리고 그 '자신'을 버렸던, 그래서 돌아올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던 '조국', 그럼에도 그 속에서 득세하는 '적'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 총을 든 고애신과 만나며 새로운 질문에 봉착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고전적이지만, 당대적이다. 우리가 지난 정권에서 던졌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4월의 바다에서 비롯된 질문들이 공동체의 존재와 의무에 대한 여러 드라마들을 탄생시켰듯이, <미스터 선샤인> 역시 그 계보에 서있는 '후일담'이다. 단지, 그 질문이 '공동체'의 당위에 대한 의문을 넘어, '나'로 바통이 넘겨졌을 뿐이다. 그러나 언제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에 재주가 뛰어났던 김은숙 작가에게는 이 새로운 도전이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그려내는 역사는 성기고, 뜻밖에도 호흡은 느리며, 연기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과연 기 '시련'을 또 한번 '극복'해 낼 것인지, 역시나 김은숙이라는 '신화'는 이번에도 가능할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8. 7. 16. 16:29

장미여관의 2013년 곡 <서울살이>는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게 이래가꼬 언제 집을 사노'란 가사로 시작된다. 이 가사에서 보여지듯 우리가 어느 곳에 터를 잡고 성공적으로 살아냈느냐의 기준이 되는 건 '집'이다. '서울'에 집 한칸 가지는 게 서울 살이의 상징이 되듯. 여전히 '서울'에서 '집'을 가지는 건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면, 아니 같은 서울이라 하더라도 '빈집'이 수두룩하다면? 한 쪽에서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빈집'이 늘어만 가고 있다. 바로 이 '집'의 불균형, '빈집'의 이야기를 7월 12일 ebs다큐 시선 <빈집의 두 얼굴>이 다룬다. 




노후되는 구도심, 늘어나는 빈집들
다큐가 시작되는 곳은 부산 영도구.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닮았다 입소문이 난 흰 여울 문화 마을에도, 아기자기한 벽화가 골목골목 해돋이 마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진 마을에서 한 블럭만 지나면, 낮에도 인기척을 찾기 힘든 '빈집'들이 즐비한 동네로 들어서게 된다. 

19세기말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가 세어진 이래 '조선소'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 하지만 조선 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곳엔 이제 그저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좌판을 벌인 노인들과 아이들이 없어 이제 곧 문을 닫게 된 교복 상점처럼 조만간 이곳을 떠날 상인들만이 남아있다. 관련 공무원들과 함께 걸어가는 골목골목엔 사람 대신 차지한 고양이들과 쓰레기들이 차지한 빈집들. '공폐가'가 즐비하다. 영도구에만 700여세대가 넘고, 아파트까지 합산하면 1000 채가 넘는다. 2015년 기준으로 부산에만 이런 '빈집'들이 4000여 채에 이른다. 

길 건너에는 고층의 아파트가 지어지는데 바로 길 건너 편에는 밤이 되도 불빛이 밝혀지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네가 공존하는 곳, 사람들이 모여드는 신도심과, 사람들이 떠나가는 구도심의 부조화, 하지만 이건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집 얻기 힘들다는 서울에도 '해방촌'이 그렇고, 도심을 떠나 전국으로 시선을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농촌과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가는 빈집, 2050년에 이르면 전체 가구의 10%에 이를 전망이라니 심각하다. 



영도구의 강정원씨, 한때는 원양 어선을 타던 선원이었지만 배를 타던 중 다리에 마비가 온 후 적절한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해 한 쪽 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처지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다섯 가구가 살던 집에 이제 홀로 남았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다른 가구들이 남긴 쓰레기와 같은 짐을 치우지도 못하고, 쓰러져 가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며 한때는 이웃으로 벅적이던 하지만 이제는 수풀이 우거진 빈집 아닌 빈집을 홀로 지키고 있다. 영도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관절염이 걸린 다리를 절둑이며 물조차 나오지 않는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며 낮에도 어두컴컴한 아파트를 지킨다. 

배에 붙은 해조류와 녹을 닦아내는 '깡깡이'로 아이를 키워냈던, 그래서 깡깡이 마을로 불리던 동네엔 이젠 다 자란 아이들은 떠나고, 늙은 어머니들만 드문드문 빈집을 지키고 있다.젊은이들은 일자리 때문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지키던 구도심, 그마저도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고양이들의 차지가 되어버리는 집들, 우리 사회의 급격한 노령화는 '공폐가'의 증가율을 급격하게 높인다. 구청 등에서 예산을 들여 정리를 하고는 있지만 한 채에 적게는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를 넘어서는 철거 비용에 늘어나는 빈집의 수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렇다고 낡은 집만 '빈집'이 되는 건 아니다. 창원 시의 경우, 신도시 전체의 규모에 맞먹는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있지만 거의 단 한 집도 분양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건축붐' 시절의 아파트 산업 논리로 우선 짓고 보자는 식의 건설 방식이 또 다른 '빈집'의 이유가 된다. 

빈집의 딜레마 
그러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 그 빈집들 놀리지 말고 세를 주거나, 농촌의 경우 귀농하는 도시인들에게 대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바로 여기에 '빈집'의 딜레마가 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 되어 쓰레기 더미가 쌓여가고 동네 고양이들의 귀곡성에 이웃 사람들이 밤잠을 설쳐도, 그 '빈집'은 '빈집'이 아니다. 즉, 현재 사는 사람은 없어도 엄연히 소유주가 있는 집들이 많다는 것이다. 때로는 주인조차 찾기 힘든 집들도 있지만, 자손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집들은 엄연히 '사유재산'이다. 

그래서 도시의 원룸을 떠나 넓은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귀농을 결심한 젊은 부부는 그 많은 '빈집'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안식처'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빈집이지만 다 소유주가 있던 집들은 막상 '귀농'을 위한 이 젊은 부부에게 매번 '거절'을 했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겨우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빈집'이지만 소유주가 있는 집들은 '방치'되었지만, 국가조차 함부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개인의 소유물'이다. 언젠가 돌아올 지도 모른다 '방치'해둔 고향집이 귀농인들에게는 넘볼 수 없는 '남의 집'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한 채 관리되지 않은 집들, 하지만 그 집에 쌓인 쓰레기와 그 곳에 모여든 고양이들의 동물과, 그들의 분면들과 거기에 몰려든 파리, 모기 등은 그저 '빈집' 이상으로 이웃들에게 '민폐'가 된다. 문제는 그런 '위생상'의 문제점만이 아니다. 부산 영도구에서 벌어졌던 성폭력 전과자였던 김길태가 여중생을 공폐가에 납치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시신을 빈집의 물탱크에 유기한 채 다시 '빈집'들을 돌아다니며 피신했던 사건처럼 이들 '빈집'들이 '범죄'의 '온상'이 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즉,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사적 재산'이 '관리'되지 않았을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변 이웃과 사회에 전가된다는 점에서, 과연 '공폐가'의 소유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를 다큐는 <빈집의 두 얼굴>을 통해 묻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 토지 공개념은 이 경우에도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토지 공개념이란, 토지의 소유, 처분에 대한 권리를 토지의 공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공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토지 공개념은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적 급등을 막기 위한 정부의 통제를 위한 '사상'으로 대두되고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공폐가의 경우처럼 개인의 사유 재산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변과, 사회가 불이익을 받을 때 또한 '공공재'로서의 '토지'의 개념을 고려해 보아야 할 지점이 된다. 실제 외국에서는 빈집이 방치되고 관리되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각종 제제 법안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급격한 노령화에, 사회적 제도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보다 더 빠르게 노령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본의 '빈집 쇼크'가 남의 일이 아니지만, '집'을 '재산'으로 여기는 우리의 사고 방식이 공폐가의 '황폐화'를 조장한다. 

실제 나주를 비롯한 지방에서는 역사적 유산이 그대로 남아있는 오래된 빈집들을 지자체가 사들여 '문화 마을'로 되살려내는 복원 계획이 현실화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대들보, 1930년식의 건축 양식 등, 각 시대 별로 지어진 집들이 그 역사를 고스란히 남긴 채 '문화'의 공간을 탈바꿈한다. 그러자 그곳에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심지어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든다.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쓰레기 더미'가 될 빈집이 유적과 문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8. 7. 14. 00:06
고교 동창생인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우리 드라마에서는 낯설지 않은 소재다. 예전 어머님들 세대에서 '여고 동창회'는 살림살이가 기반도 좀 잡고 '다이아 반지'도 끼고, '악어 핸드빽'도 들 수 있을 때쯤 나가는 곳이다. 그 곳에 나가 내가 이제는 이렇게 좀 살만하다며 살아온 역사에 대해 '자존감'을 보상받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나 교복이라는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공산품 찍어내는 듯한 획일적인 교육을 받던 그 시절 교실 안에서 동일한 존재로 취급받던 학우들의 후일담은 드라마틱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드라마에서 다시 만난 여고 동창생들의 '서사'는 잊을만 하면 다시 한번 등장하는 '익숙한 소재'이다. 



적인가!
얼마전 종영한 JTBC의 <미스티>는 여고 동창생의 애증을 적나라하게 다룬 드라마였다. 극중 주인공인 고혜란(서은주 분)의 삶에 불현듯 등장한 여고 동창생 서은주(전혜진 분)는 그때도 지금도 고혜란의 발목을 잡는다. 아니 그건 고혜란의 입장에서이다. 그때도 지금도 서은주에게 고혜란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낚아채가버리는 '연적'이었을 뿐이다. 드라마는 고등학교 시절 하명우(임태경 분)를 사이에 두고 갈등 관계였던 두 사람을 십 여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한 남자 이재영(고준 분)을 사이에 두고 조우시켜 드라마적 갈등을 극대화시킨다.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 동창생의 관계가 시간이 흘러 '연적'의 관계로 증폭시키는 경우는 빈번했다. 2007년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치명적인 멜로 <내 남자의 여자(2007)> 역시 고등학교 동창인 두 여성을 등장시킨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이화영(김희애 분)는 미국에서 이혼을 하고 피폐한 모습으로 고국에 돌아와 동창생인 김지수(배종옥 분)에게 의지하다 그녀의 남편을 유혹하게 된다는 서사야 말로 우리 사회에 고정 관념으로 자리 잡은  '여고 동창생'의 애증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같은 해 방영된 <강남 엄마 따라잡기>는 교육열을 소재로 하여 아이의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한 여고 동창생 현민주(하희라 분), 윤수미(임성민 분), 이미경(정선경 분)이 아이들을 내세워 '대리전'을 치열하게 벌인다. 이렇게 다시 만난 여고 동창생들의 갈등에서 '관건'이 되는 건 그때는 별볼일 없던, 혹은 나보다 공부도 못하던 아이가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니 나보다 '잘나가고 있더라'에서 발생하는 '시기와 질투이다. 2012년 방영된 <청담동 앨리스>에서 고등학교 시절 얼굴은 이뻤지만 능력은 없던 서윤주(소이현 분)가 청담동 며느리가 되어 '갑질'을 하자 이에 당하던 한세경(문근영 분)이 자신도 청담동에 입성하기 위해 '시계 토끼'를 잡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이들 드라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만큼 우리 사회 속 '여여 갈등'의 전형으로 여고 동창생의 관계를 '전형화'시키면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동지인가.
중년의 여성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여고 동창생의 관계가 '갈등'의 기폭제로 쓰이는 것과 달리, 그 이후 세대들이 주축이 되는 드라마에서 여고 동창생들은 '갈등'은 있되, 주로 세대의 전형으로 활용된다. 즉, 이는 이전의 드라마들이 여성들간의 관계를 '여여 갈등'의 관계로 풀어가는 반면, 이후의 세대에서 '여성의 적이 여성이 아니라 동지'라는 시각으로 '진화'되어왔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이들 드라마의 여고 동창생을 같은 시절을 공유한 같은 세대이다. 같은 시대의 음악과 놀이와 문화를 가진 세대 공감을 바탕으로, 이제 '연대'하여  '현실'의 어려움을 함께 겪어가는 '동지'들이 되었다. 



2014년 JTBC를 통해 방영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온 39살이 된 여고 동창생 세 명을 전면에 내세운다. 한때는 꿈을 나누던 한반 친구였던 소녀들은 이제 이혼한 싱글맘(윤정완- 유진 분)에, 골드 미스의 대표가 되어버린 노처녀(김선미-김유미 분)에,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전업주부(권지현-최정윤 분)가 되어 동시대 30대의 '리얼 라이프'를 구현한다. 

시한부 드라마 작가 이소혜(김현주 분)와 톱스타 류해성(주상욱 분)의 달콤 애절한 연애담을 그린 JTBC 2016년작 <판타스틱> 역시 여주인공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다. 그 시절의 첫사랑과, 그 시절 그녀의 친구들이었던 여성들이 이제 서른 중반이 되어 다시 만나 그 시절의 사랑과 우정을 되살려 시한부로 인생의 종점에 이른 그녀의 손을 잡아준다. 2017년 MBC를 통해 방영된 <이십세기 소년소녀> 역시 서른 중반이 된, 하지만 여전히 이십세기의 소녀와 같은 감성을 지닌 여고 동창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려낸다. 



웹툰 원작인 tvn의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며 순항하는 가운데, 같은 수목 드라마로 또 한편의 웹툰 원작 드라마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웹툰 플랫폼 KTOON에서 호평을 받으며 시즌 3까지 이어지고 있는 <당신의 하우스 헬퍼>가 동명의 드라마로 KBS2를 통해 방영을 시작한 것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동명의 원작 속 인물들을 그대로 살려낸 것과 달리, 남자 하우스 헬퍼라는 원작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오되, 정리가 필요한 여성들의 에피소드에 집중했던 웹툰과 달리 미니 시리즈의 호흡을 살려내기 위해 극중 여성들을 '여고 동창생'의 관계로 묶어낸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판타스틱>, <이십세기 소년소녀>가 서른 중후반의 여성들을 전면에 세운 것과 달리, <당신의 하우스 헬퍼> 속 여고 동창생들은 이제 스물 중반, 바로 우리 사회 가장 살기 힘들다는 88만원 세대의 여성들이다. '온갖 잡다한 일을 시킬 때는 가장 필요한 사람 취급하고, 정작 중요한 일에서는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며 '드라이조차 사치'인 '인턴' 임상아(보나 분)과 친구 약혼식에 반품을 가정하고 명품 옷을 입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현실은 목걸이에 비즈나 꿰며 연명하는 백수 윤상아(고원희 분), 명색이 네일샵 사장이지만 유지비에 알바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자영업자 한소미(서은아 분), 세 명이 주인공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함께 살자고 약속하던 '몽돌 삼총사'였지만 갑자기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상아의 오해로 세 사람은 서로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십여년 아버지가 남긴 집을 인턴 형편으로 지키지 못해 세를 놓은 상아의 집에서 세 여고 동창생은 다시 조우하게 되면서 이 시대 이십대 후반 여성들의 '사랑'과 '삶'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by meditator 2018. 7. 12. 20:46

월드컵을 맞이하여 '예언가'들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이전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문어, '파울'이 자연사한 이후, 연달아 4 경기의 승패를 맞춘 러시아 박물관에서 사는 청각 장애 고양이의 활약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그 외에서도 중국의 길고양이, 일본의 문어 등 세계 각국에서 '점쟁이'로 활약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들 '생물'에 도전장을 내민 '무생물'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16강전이 진행되는 초반, 독일의 도르트 문트, 뮌헨 공대, 벨기에 겐트 대학 연구팀이 AI(인공 지능)을 활용해 10만번의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가 정확하게 일치하자 동물들을 앞지른 AI의 활약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예외적인 스포츠답게 AI조차 독일의 탈락과 우리의 우승을 예측해내지는 못했었다. 여전히 '고양이만도 못한 AI일까'


그러나 미래학자 레이커즈 와일은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대략 2045년 경으로 예측한다. 특이점이 오면 로봇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는다. 그러면 과거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듯이(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벌어질까? 생전의 스티븐 호킹 박사는 경고했다. '특이점이후 AI가 지구를 지배하려 할 것이므로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바로 이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ality), 인간이 AI를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드라마'로 들어왔다. 지난 7월 9,10일에 걸쳐 방영된 <너도 인간이니?> 17회에서 20회차이다. 

특이점에 도달한 AI 남신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시아버지인 PK그룹 남건호(박영규 분)에게 빼앗긴 천재 과학자 오로라 박사는 아들의 모습을 꼭 닮은 AI 남신을 만들었다. 아들이 자라는 과정에 맞춰 업그레이드 된 남신, 드디어 성년이 된 아들의 모습을 닮은 아니 꼭 같은 남신Ⅲ를 완성했다. 그러던 중 엄마를 찾아 왔다 교통사고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아들 남신이 의식을 잃고, 엄마는 아들의 역할을 AI남신에게 맡긴다. 몇 번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 남신의 최측근이었던 지영훈(이준혁 분)의 지시를 따라 남신의 역할을 수행하던 AI 남신, 하지만 그의 앞에 경호원 강소봉(공승연 분)이 등장하면서 AI남신은 자꾸만 '통제'를 벗어난다. 

통제를 벗어나는 남신을 다시 지시의 규율 안에 가두기 위해 엄마가 선택한 건 '수동 모드', 엄마를 사랑했던(?) AI 남신은 기꺼이 엄마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기꺼이 선택했던 수동모드는 결혼식 당일 납치당한 강소봉 앞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연구실에 있는 인공 지능 차를 원격 조정하는 건 물론, 결혼식장을 박차고 뛰어나가 강소봉을 구해내기 위해 괴력으로 납치 차량을 멈추는가 하면,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오토바이 질주를 마다하지 않은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오로라 박사에게 이젠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이 모든 일을 사주한 서종길(유오성 분) 이사를 만나 자신이 확보했을 증거를 빌미로 '협박'까지 한다. 

그저 집안의 전기 시스템이나 깔짝거리며 청소 로봇과 친구 삼고, 자신이 검색한 데이터에 기초로 곤란한 결혼 계약을 피하기 위해 강소봉에게 키쓰를 할 때만 해도 그저 좀 능력있는 AI인줄 알았던 그러나 여전히 엄마와 지영훈에게 순종적이던 AI 남신Ⅲ가 이제 그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특이점'의 지점에 이른 것이다. 



인간의 지배를 받던 AI가 그 '지배'의 시스템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심지어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지점을 벗어나는 이 상황은 물론 극 초반부터 예고된 바 있다. 화염에 휩싸인 클럽에서 자신의 정체가 들킬 상황을 넘어 사람들을 구한다던가, 자율 주행 자동차 시험 주행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차의 난동을 막아선다던가 등등, 하지만 이건 애초에 AI 남신에게 주입된 인명 구조의 원칙이라던가, 엄마의 위로를 위해 울면 안아준다던가 등등의 기본 시스템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엄마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아들 AI 남신인 강소봉을 만나며 마치 인간 남자가 여성을 만나며 변화하듯 감정이 없어 느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행동들을 하며, 이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엄마마저 거스르며 독자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이 장면은 인류의 미래의 화두인 '로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그 특이점'의 '위기이다. 

그저 '로코'의 뻔한 캐릭터가 아닌 
하지만 <너도 인간이니?>는 이 인간의 위기를 '전형적인 로코'의 설정으로 넘긴다. 엄마는 '천재 과학자'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AI 남신을 불편해 한다. 그 '불편함'의 근원은 AI의 월권이 자기 아들의 자리를 위협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더구나 아들의 치료 조차 위기에 빠진 상황, 그런 엄마의 인간적인 우려로 인해 자신이 만들어 낸 AI의 '킬스위치'를 만지작거린다. 

즉, 과학적 담론과 위기에 대한 고민이어야 할 이 상황을 드라마는 전형적인 '로코'의 '관계적 위기'로 치환한다.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는가라는 화두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와, 그 AI를 사랑한 여주인공과 AI에게 친구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된 지영훈, 그 맞은 편에 질시하는 '인간 엄마'의 감정적 대응을 포진시키며 '관계'의 문제로 귀결시킨다. 차라리 과학자로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면 어땠을까? 세상이 로봇의 진화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AI를 만들어 낸 당사자 엄마와 아빠라는 데이빗의 반응은 단순하다. 

<로봇이 아니야> , <너도 인간이니?> 등 '로봇'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드라마들이 트렌드에 맞춰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은 AI가 현실이 된 세태를 반영하여 드라마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활용'의 방식에 있어 지극히 '로코적 설정'의 수준에서 머무르며 '소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AI인 자신을 '활용'하는 대상을 넘어 '인정'해주는 강소봉에 대해 '시스템 에러'를 일으킨 AI 남신Ⅲ가 그 이후 보인 기능성 로봇의 경지를 넘어선 활약은 그저 '설레는 로코 남주'의 캐릭을 넘어서,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의 대상이 되어야 할 문제다. 



<너도 인간이니?>는 '도구적 존재'인 AI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구현하며 AI를 극중 가장 감정이입되는 캐릭터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인간적 형체를 지닌 그를 모두 '이용'하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로 자처했던 데이빗(최덕문 분)마저도 알고보니 남건호의 하수인이었듯이. 하지만, 최근 AI의 연구에서 가장 고민 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AI의 '도덕성' 문제이듯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이른 AI 남신은 그저 불쌍한 로봇을 넘어, 통제를 벗어난 그가 보이는 실천적 능력들이 '딜레마'의 대상인 것이다. 그저 '뻔한 로코의 공식에 따라'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미를 '뿜뿜'하는 캐릭터로의 단선적 전개는 외려 <너도 인간이니?>라는 드라마의 설정을 스스로 한정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부디 가장 '감성적인 AI' 남신이라는 캐릭터를 그저 착한 남자의 캐릭터로 소모하지 않고, AI가 가진 딜레마를 극적으로 잘 활용하여 시청률과 상관없이 AI란 소재가 잘 소화된 드라마로 남아주길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7. 11. 15:56

나의 어머니는 종종 당신의 어머님과 아버님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리고 형제들도. 그분들과 함께 한 시절은 어머니의 삶에서 아주 오래 전, 하지만 어제인 듯 그 분들과 함께 지낸 시간을 기억해 낸다. '치매'는 아니지만, 그 순간마다 어머니는 지금의 80이 넘은 할머니가 아니라, 그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 그늘에서 살던 딸이 된 듯하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를 난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의 외로움에 대한 '반작용'인 듯해서 '도대체 언젯적인데'라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지금의 시절을 기꺼이 살아내지 못하는 노인네에 대한 아쉬움이 앞서는 거다. 아마 노인분들과 가까이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리라. 바로 그 '복잡함'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다큐가 있다. 바로 7월 8일 방영된 <sbs스페셜-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이다. 




오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정작 잊지 못하는 짐처럼 무겁게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이종민, <망각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中


전북대학교 이종민 교수는 매일 촌에서 출퇴근을 한다. 그가 현재 사는 곳은 그의 늙으신 어머님이 사시는 곳이다. 여러 형제 중 막내, 하지만 어머니 황정례씨가 치매 판정을 받자, 그는 기꺼이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형수님도, 아내도 아니고, 주 이틀 형의 도움을 받으며. '치매' 걸린 어머님 그래도 자식이 낫지 않겠냐고. 그래서 자신이 살던 본가를 놔두고 어머니가 사시는 집 옆에 새로이 머물 곳을 지었다. 언제나처럼 끼니 때가 되면 밥을 하고 상이 차려진다. 단지 예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것을 이젠 막내 아들인 이종민 교수가 할 뿐, 어머니의 공간, 어머니의 삶에 아들이 들어 앉았다. 

콩새가 된 어머니 
그의 어머니 황정례 씨는 올해 아흔 두 살이다. 하지만 누가 물어보면 그만 자신의 연세를 잊은 채 일흔 여덟이라 답하신다. 늘 도돌이표처럼 되돌아 가는 시간, 그 일흔 여덟에는 무엇이 있을까?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현재'의 시간 대신 어머니가 머물고 싶은 시간 속으로 어머니의 기억을 끌고 간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파란 대문'을 훔쳐간 도둑놈이 있고, 분홍 모시 치마를 입고 옛사랑을 만난 새댁이 있다. 다큐는 '치매'을 빌어, 어머니의 사라져가는 역사를 복기한다. 

어머니 황정례 씨는 말끝마다 자신이 이제는 그만 '콩새'가 됐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콩새는 '밥새'의 반댓말, 이제 더는 밥도 할 줄 몰라 아들이 밥을 해야 하는 처지를 어머니는 그러게 빗대어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런 '콩새' 어머니가 아들이 차를 타고 출근하자마자 바뻐지신다. 뒤주에서 쌀을 잔뜩 꺼내 언제 무기력하게 앉아계셨냐는 듯 썩썩 씻어 밥솥에 밥을 안치신다. 거기까지는 일사천리였던 밥하기, 그런데 노련한 밥새 황정례 씨의 발목을 첨단의 전기 밥솥이 잡는다. 이리 저리 눌러봐도 좀처럼 '취사' 코스로 가지 않는 밥솥, 설사 취사 코스로 간다 하더라도 예전 가마솥밥을 하던 기억을 가진 어머님은 전기 밥솥이 빠른 취사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결국 한 솥 가득 설어버린 밥,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어 기르는 개 차지. 하지만 개조차 맨날 쌓이는 설은 밥을 외면해 버린다. 

물론 어머니의 이 위험한 도발을 막기 위해 뒤주에 자물쇠를 채워도 보았다. 하지만 '열중'을 넘어 집착을 보인 어머니가 병이 나시겠다 싶어 결국 뒤주에 채운 자물쇠를 버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집을 떠나자마다 매번 밥과의 전쟁을 벌이신다. 평생 그렇게 밥을 하며 살아왔던 일상의 기억 속을 헤집어 내신다. 



어머니의, 아니 황정례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치매'는 노령화되어 가는 사회의 가장 큰 부담 중 하나다. '기억'을 잃어가는 걸 떠나서, 많은 후유증들이 노인 본인은 물론, 부양 가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의 케어에 따라 예후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연구는 밝힌다. 삶의 근거지를 잃은 도시의 치매 노인들이 증상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사례가 많은 반면, 시골에서 자신의 삶의 테두리을 벗어나지 않은 노인들의 경우 약간의 기억 상실 정도로 '치매'를 약하게 앓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큐의 황정례 씨는 자신의 나이도 매번 기억하지 못하고, 아들이 없는 사이 대책없이 설은 밥을 해대지만, 일상을 벗어나지 않은 황정례 씨의 치매는 그저 '일상의 해프닝'으로 침잠된다. 대신 아들은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은 어머니의 '미스터리한 역사'를 기록하고자 한다. 

어머니는 매번 마루 끝에 앉아 대문 참을 노려본다. 그러시며 당신이 애지중지하시는 파란 대문을 도둑놈이 훔쳐갔다며 끌탕을 하신다. '파란 대문을 훔쳐간 도둑놈'을 추적했다. 장본인은 '파랗다'라고도 할 수 없는 낡은 철대문을 멀끔한 나무 대문으로 바꿔달은 사람,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면서 아들이 바꿔 달은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겐 그 '새 대문으로의 교환'이 그저 '도둑질'로 기억될 뿐이다. 아들은 헤아려 본다. 아마도 그 '교환'이 '도둑질'이 된 착각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가 살아낸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있으리라고.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파란 철대문을 다셨던 그 '살림을 일구던 찬란한 시절'의 기억을 아마도 어머니는 '도둑맞았다'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라고. 

그렇게 다큐는 어머니 황정례 씨의 치매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아버지와 단란하게 일가를 꾸리며 살았다고 자식들이 기억한 어머니의 입에서 '공방'이란 단어다 툭 튀어 나온다. 열 여덟 친정 아버지의 대번의 결정으로 산골 마을로 시집을 오게 된 어머니. 새댁이 된 어머니는 남편을 거부하였다. 첫사랑을 물어도 그런 건 없다 하시던 어머님이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읇조리며 술술 흘러나온 이야기, 어머니의 물동이를 기꺼이 날라주던 동갑내기 동네 총각과 당연히 결혼하리라 생각했던 어머니에게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산골 마을 남정네와의 결혼은 청천벽력이었고, 그건 남편을 거부하는 몇 년의 세월로 이어졌다. 시집까지 찾아왔던 그 동갑내기 첫사랑을 다시 만나던 날 입었던 옷까지 기억하는 어머니의 묘한 기억력. 그렇게 어머니의 치매는 어머니를 '어머니'로 살아낸 시절 이전의 꽃다운 황정례의 역사를 소환한다. 

아들이 찾아가보니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축에 속했다던 집도, 주정뱅이 아버지도, 이제 어머니의 기억에선 그럴 듯한 장사치에, 번듯했던 집에 대한 기억으로 왜곡되었지만, 어머니에게 그 시절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 이전의 꿈같던 시절이다. 초등학교도 못나와 아버지에 비해 배움이 짧았다고 자식들에게 기억되었던 분이 아니라, 어릴 적 서당에서 천자문은 물론, 고문진보까지 떼시고 시집을 와서 동네 여성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줄 정도로 열정이 넘치던 분이 계신다. 지금도 한자 책으로 하루 종일 소일을 하실 정도로, 아들을 대학 교수를 만들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배움의 열정을 가진 황정례라는 '인물'의 재발견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열 여덞이란 나이를 안타깝게 읊조리시듯, 그 꽃다운 시절에 가난한 집안의 입을 줄이고자 산골 마을로 시집이 보내졌다. 그리고 결국 '공방'의 시절을 넘어 일곱 자식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매번 어머니가 자신의 나이를 일흔 여덟이라 말씀하시는 그 시절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 미웠다지만, 그래도 남편보다 오래 사는 자신이 면구스러워 매번 아흔 두살의 나이를 일흔 여덟로 착각하시는 어머니. 황정례 씨만이 아니라, 많은 '치매 노인'들의 얼토당토한 기억 속에는 이렇게 장구한 개인의 역사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치매 어머니의 기억 속을 더듬는 아들 이종민 교수의 <미스터리한 나의 어머니 황정례>를 통해 다큐는 '치매'를, 노년을 재발견하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8. 7. 9. 15:45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이 노래 가사 같은 한 마디가 플라스틱과 함께 하는 당신의 일상을 묻는 것이라면?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샴푸로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며 하루를 여는 당신, 물은 건강을 위해 생수를 마시고, 점심 식사 후엔 졸음을 쫓는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다시 오후를 버티며, 퇴근 후엔 마트에 들러 삼겹살 포장육에, 비닐 봉지에 든 마늘과 상추를 사서 푸짐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시원한 캔 맥주 한 잔과 함께 그 날의 피로를 풀어내며 하루를 마감하는,일찌기 조선 시대 어느 부인네가 반짇고리 속의 물품들을 자신의 벗이라 칭했듯, 2018년 우리의 가장 친근한 '벗'은 어느 틈에 '플라스틱'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벗'인 줄 알았던 플라스틱이 알고보니 '소리없는 암살자'였다면? 




폐기되는데 400년? 
7월 1일 방영된 < sbs스페셜- 식탁 위로 돌아온 미세 플라스틱> 과도한 사용으로 이제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더운 여름 대표적인 아이스 커피 한 잔, 이 커피를 마시는데 얼마나 걸릴까? 평균 1인당 이런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는 시간은 20여분, 그런데 이들 플라스틱 제품이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건 대부분 1분, 그런데 비해 1회용 컵이 지구에서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20~50년, 플라스틱 빨대는 200년, 비닐 포장재는 200~400년, 페트병은 450년 정도가 걸린다. 

1회용 플라스틱 용품 소비에 익숙해진 우리들, 한 해 소비되는 빨대는 5억개, 1년 동안 1회용 컵을 한 개인이 사용하는 수량은 평균 257개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포장용 플라스틱 소비는 세계 2위, 플라스틱 원료 소비량은 132톤으로 세계 1위다. 지난 66년동안 63억톤의 플라스틱을 세계는 써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만들어내고, 마구 써대며, 반면 폐기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결국 지구 전체가 '플라스틱 폐기물'로 범람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건, 지구의 마지막 정수장이라는 '바다 속 플라스틱 오염'이다. 

영덕에서 온몸이 붉은 색으로 변한 채 죽은 바다 거북이 발견되었다. 수령 30년 정도로 추정되는 바다 거북의 내장에서 발견된 건 플라스틱 비닐 봉지, 비닐 전단지, 비닐 끈 등 쓰레기 들. 바다 생물들에게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죽음의 덫이다. 바다 거북만이 아니다. 놀래미, 아귀 등 익숙하게 우리 밥상에 오르는 생선들의 몸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해조류는 어떨까? 담치를 실험용 비이커에 넣고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물을 담았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해져 있다. 그 모든 오염물을 담치가 흠입한 것이다. 



미세 플라스틱이란 5mm이하의 플라스틱을 말한다. 처음부터 미세 플라스틱으로 제조된 것들도 있고, 플라스틱 제품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부서지면서 생성되기도 한다. 이제는 너무도 쉽게 눈에 띄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생활 쓰레기들, 그리고 양식 등에 사용되는 스티로폼이 해양 생물 및 바다의 주오염원이 되고 있다. 한국 해양 과학 기술원 연구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 비해 우리 나라는 10배나 많이 해양이 오염되어 있으며 모래 사장이나 갯펄 역시 일본이나 러시아에 비해 월등히 높은 오염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 976n/ , 러시아 293n/ , 우리나라 평균 3.936n/ )

플라스틱 사회
문제는 이런 해양 오염이 결국 우리의 식탁 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먹거리는 물론, 우리가 안심하고 사먹는 생수까지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되고 있다. 물 그 자체, 대기, 용기등으로 인해 전세계 생수의 93%가 오염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10개의 생수 중 4 종에서 폴리스틸렌, 폴리카보네이트가 발견되었다. 수돗물은 다를까, 국내 정수장 10곳 중 3곳에서 역시나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먹고 마시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플라스틱'을 벗어날 수 없는 플라스틱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만지고 닿는 거의 모든 것은 플라스틱이다. 환경 호르몬의 일종인 프탈레이트가 아이들이 사용하는 리듬악깅, 사인펜, 리코더, 미니 가방에서 기준치를 한참 초과하여 검출되고 있다. (리듬악기 174.4배 초과, 사인펜 174배 초과, 리코터 232.6배 초과, 미니 가방 96.7배 초과)



해양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바다를 오염시킨 미세 플라스틱은 '역주행'을 거듭하여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 자리에 있는 인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미세 플라스틱은 그저 플라스틱보다 한층 더 위험하다. 태양이나 자외선, 파도 등으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표면적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 증가된 표면적은 바다 속에 부유하는 독성 물질의 흡착을 한결 더 쉽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 위장 기관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지만 더 나노로 쪼개진 플라스틱은 세포벽을 통과하여 몸에 머물게 되는데, 물고기의 간세포에 흡착된 미세플라스틱은 종양을 유발한다고 연구는 밝히고 있다. 

사인펜, 악기 등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제품에서 검출되는 프탈레이트는 발달 자체를 저하시키며, 자폐, 지적 장애 등의 심각한 장애의 원인으로 추측된다. 전문가는 최근 늘어가는 아동 신경계 질환이 방어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미친 미세 플라스틱에서 그 원인을 추측한다. 



일본에서 지난 1968년 단 몇 달 동안 식용유를 만드는 과정에서 폴리염화비페닐(PCB)이 흘러들어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가네미 지방 1만 4000여 명이 피부 질환 등의 이상을 호소했다. 여기서 문제는 당사자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피부가 검은 아이가 태어나기 시작했으며, 이 아이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내내 피부, 신장 , 위 등의 질환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이들의 자녀까지 이들처럼 검은 피부의 아이로 휴유증을 고스란히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3대에 걸친 비극이야말로 우리가 무심히 쓰고 버리는 미세 플라스틱이 낳은 재앙을 경고하는 시금석이다.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60년전에 금지를 해도 지금까지 그 휴유증이 대를 이어 나타나고 있는데, 지금 금지한다고 해도 반감기가 긴 이 '플라스틱의 난'에 대해 우리는 너무 무방비한 것이 아니냐고. 환경 운동가들이 예측하는 2050년의 바다는 물 반 쓰레기 반이다. 플라스틱 지구, 플라스틱 사회의 재앙이 분명해진 세상, 그러나 오늘도 점심 시간 거리의 횡단보도는 저마다 1회용 컵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찬다. 
by meditator 2018. 7. 2. 16:16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대한민국은 2018년의 시점에서 보면 마치 '화성'처럼 낯설다. 우리가 살아낸 시절임에도 저랬나 싶게 낯설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늘 '현재 진행형'이라 여겨진 시간을 되돌아 보게 한다. 


지금은 어떻게 저렇게 입을 수가 있지 라고 여겨지는 아저씨들의 펑퍼짐한 패션, 나름 멋지다고 한 그 촌스럽기 그지 없는 뽀글머리 파마, 그리고 서슴없이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 여직원에게 '양'이라 부르며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성적 농담을 실실 웃으며 흘리는 '젠더적 무지', 그리고 '범죄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치면 다짜고짜 손부터 올라가는 '일상적이었던 폭력'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었던 현상들이 그 시절에는 '일상'이며 '보편'이었던 시대였던 것이다. <라이프 온 마스>는 2018년의 관점에서 보면 '화성'처럼 낯선 80년대의 공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7화는 그런 '화성같은 80년대'에서도 영화 <홀리데이> 등으로 재연되며 또렷하게 각인된 '지강헌 인질극'을 다시 한번 불러온다.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탈주범들의 인질극, 그 과정에 강동철(ㅂㅏㄱ성웅 분) 계장 휘하 강력반 형사들이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탈주 과정 중 다친 죄수의 치료를 위해 '의사'를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간호사'인 척 윤순경(고아성 분)이 그 집에 들어간데 이어, 공명심에 눈이 먼 김과장이 경찰 기동대와 함께 무분별한 진압 작전을 개시하자,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강동철과 한태주(정경호 분)가 잠입한다. 하지만 잠입이 무색하게 탈주범들의 인질이 되고, 이렇게 주인공들을 사건의 한 가운데 던져 넣음으로써 '지강헌 탈주극'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라면 한 박스를 훔쳤는데 감옥에서 10년?
당시 죄수가 호송 중에 탈주를 하여 주택가에서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였다는 사실은 지금도 그렇겠지만 사회적으로 '충격'이 컸다. 80년대 이후 무력에 의거하여 집권한 정권답게, 사회의 불안을 안정시키고, 시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지킨다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그런 가운데 '죄수'들의 '탈주'라는 건, 그리고 그들이 일반 시민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건, 그토록 전 정권이 내세웠던 '국민들의 안녕'에 이 정권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강헌이 연상되는 극중 이강헌(주석태 분) 등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저 라면 한 박스를, 돈 500만원을 훔쳤다는 이유로, 법으로 정한 형량 외에 '보호 감호소'에서 십 여년을 썩어야 하는데 반해, 70억이 넘는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의 친동생이 풀려나는 상황에 대해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여기서 등장한 '보호 감호제', 이 제도야 말로 80년대 군사 정권이 저지른 야만적 폭력의 제도화를 상징하는 제도이다. 



1980년 제정된 사회 보호법, 이는 죄를 범한 자에 한하여 재범의 위험이 있고, 특수한 교육 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자에 대하여 보호 처분을 시행할 수 있다는 조치이다.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자의 개선과 사회 복귀를 위한다는 이 제도는 1981년 삼청 교육대에서 순화 교육을 마친 2400여 명이 청송 교도소 등에 수용되며 현실화되었다. 이 초법적 범죄자 수용 조치는 이 후 세 차례의 헌재 등의 '합헌'결정이 이루어졌음에도 천주교 인권 위원회 등에서 '인권 침해'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이의가 제기되었고, 2003년에는 청송 보호 감호소 재소자 600여 명이 이와 관련하여 단식 농성을 벌이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범들을 이 제도를 악용하여 영구적으로 사회에 격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악법'으로의 활용도가 높은 제도였다. 그리고 <라온마>의 지강헌은 자신들의 탈주 이유 중 하나를 이 '인권 침해'의 보호감호법을 들고 나온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렇게 법이 있어도 초법적 조치에 의해 감옥에서 십 여년을 썪어야 하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맞은 편에, 드라마에서 등장한 '70억의 전경환'이 있다. 대통령의 동생으로 그 후광으로 새마을 본부 중앙본부장 자리에 올랐던 전경환은 1988년 공금 76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시대 무려 대통령의 동생인데도 '구속'을 시켜야 했을 정도면 그가 저지른 '권력형 비리'가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 하지만 그는 다음 해 겨우 징역 7년에 벌금 22억원을 받았을 뿐이다. 라면 한 박스에 십 년, 돈 500에 15년에 비해, 76억원을 해먹으면 7년의 '유전무죄, 무전 유죄'



드라마 속에서 환기된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당시 사회를 뒤흔들고, 오래도록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은 건, 바로 그 80년대가 2018년 이제는 '계급'으로 고착화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넘어설 수 없는 벽이 고착화되고 실감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시대라는 점이다. 강남의 고급진 아파트, 고액의 과외을 통한 고학력, 호화 자동차와 명품들, 그리고 '재벌'이라는 경제적 권력과 '권력형 비리'는 이전의 유신 권력과 다른 결을 가진, 자본주의화한 권력의 현실을 일반 시민들에게 절감케 해주는 시간들이었다. 화성과 같은 80년대의 공기를 소환한 <라온마>에서 터져나온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마치 2018년에 도도하게 흐르는 고도로 계급화된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을 열어준 물길의 '수원'과도 같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시간, 최근 거리의 패션가에서 그 시절 여성들이 입었던 알록달록한 무늬의 스커트가 등장했다. 화장도 다시 그 시절처럼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입술은 빨갛게 대비의 색감을 소환한다. 물론 패션의 소환과 다르게, 이제는 그 시절 윤순경을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를 보고 입을 모아 '미투'라 할 정도로 '젠더적 감수성'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반면 그 시절 죽어가던 지강헌의 편지를 통해 세상에 회자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이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돈이 없어 포기하는게 익숙해진 시절, 지난 2014년 법무부는 2005년 결국 사라진 보호감호제의 변종인 보호수용제를 도입하고자 발표했다. 과연 '화성'처럼 낯선 80년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by meditator 2018. 7. 1.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