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하는 오늘날 우리가 역사적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modern'의 진보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온 근대, 혹은 현대적 삶이 '인간적 삶'을 핍박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가장 대표적으로 든 것은 '시계'이다. 우리가 챨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통해 익숙해진 시계, 정확하게는 시간에 지배받는 인간의 삶이, 넉넉하게 목가적 삶을 누렸던 중세적 인간을 톱니바퀴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꿰어 맞추어지면서 '상실'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근대의 시간과 함께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노동'을 통해 꾸려지는 '가족'과 그 가족이 깃들어 사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의로 도시로 온 사람들은 매일매일 시간에 맞춰 노동을 하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음 날의 노동, 그리고 노동의 재생산을 위해 주어진 가정으로 돌아가 다음 날의 노동을 기약하게 되었다고 비관적으로 정의내린다. 



그렇게 하위징하가 정의내린 '시간', '관계', 그리고 '공간'은 오늘날 현대인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었다. 핵가족을 기본 단위로 한 자본주의적 삶은 그 '관계'를 근저로 하여, 가족이 깃들어 사는 공간을 배경으로, 시스템으로 조직된 시간 속에서 펼쳐진다. '물질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이란 막연한 희망이, 개개인의 전망을 독차지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좀 더 많은 물질적 부를 획득하게 위해 경주한다. 특히나 성장 담론을 통해 6.25이후 전쟁의 상흔을 극복해낸 개발자본주의의 성공 사례 대한민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2016년 이제 자본주의의 성장은 둔화되고, 전세계적 불황에 휩쓸려가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한 성장 담론에 치여 더 나은 삶을 경주하는 개인들의 삶은 부작용으로 그득하다. 각자가 짊어진 자본주의적 관계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짐으로 짖눌려 있다. <ebs다큐프라임>은 4월 25일부터 27일 방영된 <나를 찾아라>를 통해 이렇게 현대 사회의 삶에 질식해가는 '개인'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관계, 공간, 그리고 시간 속에 질식해 가는 개인들
이미 sbs스페셜을 통해 조명한 바 있는 황혼 이혼이 <1부 관계와 상처>를 통해 등장한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를 꺼려해 밥조차 따로 먹는 결혼 40년차의 70대 부부 한창희씨네이다. 또한 서로 얼굴을 마주치기만 하면 막말을 마다하지 않은 결혼 2년차의 정원희씨네도 '관계'로부터 상처받기는 마찬가지다. 왕따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생긴 하지연도 마찬가지다. 

2부는 나와 우리를 짖누르는 '공간'이 등장한다. 하루종일 쇼핑을 즐기지만 정작 물건이 오면 뜯어보지도 않은 채 쌓아두는 임지호씨, '거절'을 못해 쓸데없는 물건까지 받아다 잔뜩 쌓아놓은 박소연씨, 아이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장난감을 무한정으로 사들이는 전태임씨, 이들의 발 디딜 틈없는 공간이 사람을 압도하는 주인공이다. 

3부는 시간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자동차 판매왕 남상현씨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다이어리가 보여주듯 쫓기듯 시간을 쪼개 살고 있는 이들이 등장한다. 남상현씨와 같은 자동차 세일즈맨이지만 최근 슬럼프에 빠져있는 정태선씨도, 쇼호스트 일 틈틈이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군분투하는 정스라씨도 '시간'에 지배당하기는 다르지 않다. 



sbs스페셜이 황혼 이혼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집중을 하는 반면 <나를 찾아라>는 그런 위기에 봉착한 개인의 문제에 집중한다. 물론 그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진단은 전제되어 있다. 결혼 40여년이 되었지만 그저 남편은 바깥에 나가서 돈만 잘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한창희씨나, 애초에 결혼에서부터 속았다고 생각했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밥까지 굶으며 참아왔지만 이제 남편의 폭언으로 아들마저 세상과 담을 쌓게 되자 그간 쌓인 분노가 폭발한 한창희씨의 아내의 문제는 '황혼 이혼"에서 이미 본 바 있는 우리 사회 가부장제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가부장제의 흔적은 3부 시간에 쫓겨사는 남상현씨와 정태선씨에게서 여전히 그 잔재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변화하는 시대 속에 새롭게 요구되는 부부상의 엇갈림은 정원희 부부에게서 등장한다. 남창희씨나 정태선씨의 가정 속 모습도 이젠 한창희씨네처럼 인내로 해결 될 수는 없다. 아이들을 소홀히 하고 싶지않다는 정스라씨의 동동거림은 우리 사회 가족의 또 다른 모성주의의 현실이다. 

나를 돌아봐, 그리고 나를 찾아줘 
이렇게 현대 사회 속 개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총망라하며, 그것을 '관계', '공간', '시간'을 통해 풀어낸 <다큐 프라임>은 그 해법을 '개인'을 통해 해결해 가고자 한다. 

결혼 40년의 원망이 남편에게 퍼부어진 한창희씨의 아내, 하지만 다큐는 그런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자신에게 돌아보는 것으로 돌려낸다. 남편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간 나의 삶에 어떤 부재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귀결되었는지 살펴보는 '심리'적 해결방식이다. 결국 타인과의 문제 해결의 원인이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되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공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쌓여진 물건들을 함께 정리하며, 그렇게 물건을 쌓아두게되기가지 개개인에게 발생한 트라우마를 들여다보고 치료하고자 한다. 시간에 쫓긴 개인들을 핸드폰을 수거하고 홀로 남겨진 방에 두어 그들의 우울감과 스트레스 지수가 떨어지는 것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개인의 문제를 우선시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심리 실험과 부부 상담, 수면 치료 등 다양한 심리적 치유 방식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심리적 실험과 치유의 귀결점은 개인을 둘러싼 여러 상황 속에 매몰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 여정을 통해 자신과 자기 주변을 들여다보게 된 개인들은 자신에게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할 주체적 능력을 찾아간다. 한창희씨의 아내는 남편의 진심어린 사과 앞에 자신을 눙그러뜨릴 수 있게 되었고, 구제할 길 없는 쇼핑 중독은 쌓아놓은 물건과의 이별로 이어진다. 일분 일초가 아까웠던 사람들은 진짜 자신이 놓쳐서는 안될 것들을 돌아다보고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3부작 <나를 찾아라>에서 등장한 개개인 혹은 가족 간의 문제는 아마도 현대인이라면 그 누구나 하나 이상씩은 공감할 문제들이다. 다큐는 이런 누구가 공감할 문제들을, 자아 상실이라는 원인에서 찾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찾아가는 심리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물론 그런 문제들이 기저에 깔고 있는 여러 사회 경제적 혹은 사회 변화적 요인들을 '심리' 제일주의로 귀결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문제의 해결 방식을 '자아'를 통해 시작하는 방식은 주목할 만 하다. '자아'라는 말조차 생소해지는 시절에는 더더욱. 
by meditator 2016. 4. 2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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