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계신 부모님들이 자식이 찾아올 때 마다 잊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있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구나!’

그 말씀의 행간에 스며있는 쓸쓸함에, 그리고 그걸 또 알면서도 그저 잠시 온기를 드리우고 떠냐야 하는 송그러움에 자식들의 고개는 절로 수그러들게 마련이다.

금요일 밤 찾아든 <사남일녀>는 부모님이 말씀하셨던 사람 사는 집의 온기, 그걸 상기시켜준다.


처음 뜬금없이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에서 배를 타고 외딴 섬으로 건너갈 때만 해도 그저 그런 여행 예능이 하나 보태지는 것만 같았다. 처음뵌 박광옥, 김복임 어르신들게 다짜고짜 ‘아빠, 엄마’ 할 때만 해도, 무리수란 생각마저도 들었다. 심지어, 스튜디오 예능만 하던 김구라에, 김민종, 김재원에 서장훈, 이하늬의 조합은 그 시너지를 감히 예측하기 힘들 정도였었다. 하지만, 이 생뚱맞은 조합에, 시골밥상 같은 컨셉의 <사남일녀>가 하루 이틀 사흘, 그들이 시골에 머무르는 시간의 증가와 함께 새로운 정을 느끼게 해주는 예능으로 탄생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맏형 역할의 김구라는 예의 그가 스튜디오에서 했던 진행 스타일이 종종 튀어나오지만, 그의 모습에서부터 풍겨나오는, 그리고 리얼리티 예능에서는 무능한 실제가, 큰 소리는 치지만 정작 별 다른 실속은 없는 여느집 큰 형의 모양새랑 비슷해 존재만으로도 재미를 준다.


일찍이 ‘살인미소’란 별칭으로 대중의 스타가 되었고, 이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김재원이 ‘저음의 깐족’이나, ‘악마 미소’란 별칭을 얻을 줄은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그런 예상 외의 캐릭터 말고도 여전히 어머님을 녹이는,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살인 미소’ 김재원의 친화력은 <사남일녀>의 접착제와도 같다.


그리고 김재원 만큼이나 그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는 딸 이하늬가 있다. 자고 일어나 부숭부숭한 얼굴을 들이 밀어도, 어떤 일을 시켜도 덜렁덜렁 잡음이 나는 캐릭터임에도, 그녀의 ‘아빠~’, ‘엄마~’ 혹은 ‘오빠’라며 부르는 해맑은 목소리와, 넘어지고 자빠져도 ‘까르르르’ 웃고 마는 밝은 심성은, 외진 시골 마을 집의 정적을 온기로 덥히고도 남는다.


그런가 하면, 그의 존재 만으로도 빛나는 김재원과 정반대로 험상궃은 얼굴에, 방 안에서 일어설 수 없는 덩치의 서장훈의 반전도 만만치 않다. 국가 대표 농구 선수였음에도 우유도 마시지 못하는 예민한 장의 소유자인데다, 어떤 일을 해도 새초롬하고 섬세하게 해내는 모습은 <사남일녀>의 또 다른 묘미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룡점정은 둘째 형을 맡고 있는 김민종이다. 자연인 그 자체로 김민종이 보여주는 모습 자체가 예능이다. 검은 가방에 잔뜩 스프며, 햄이며 온갖 가지 물품을 준비해와서, 그 어떤 일에서도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 믿는 자신감으로 오지랖을 부리지만, 정작, 나머지 형제들의 평가처럼 그 어떤 것도 시원하게 해내는 것이 없는 노총각 둘째 오빠의 역할을 그는 톡톡히 해낸다. 아직은 밋밋했던 <사남일녀>에서 온갖 예능적 재미는 김민종으로부터 빚어진다. 호시탐탐 시원찮은 형을 갈구는 김재원과의 대결 구도만이 아니라, 시골 장에 나서서 지갑을 홀라당 털리고야 마는 여린 마음에, 아버지와 형제들의 부추김에 문어가 나와도 몰래 카메라인 줄 모르는 그의 순진함이 웃음을 마구 자아낸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사남일녀>의 맛은 김민종의 어처구니 없는 강문어 몰래 카메라에 있지 않다. 처음에 아들 딸이라고 해도 낯설어 어쩔 줄 모르시던 박광옥 아버님과 김복임 어머님이, 아들 딸들의 부추김에 둘째 아들 몰래 카메라에 적극적으로 나서시고, 잘 한다, 니가 좋다 손도 잡아주고, 얼싸 안아주는 정감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가족애가 진짜 이 프로그램의 맛이다. 그래서, 김민종의 몰래 카메라 이후, 모두가 땅을 칠 정도로 웃어 제낀 후, 아버님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꺼 라는 말씀이 더 뭉클해지는 것이다. 겨우, 며칠 연예인들 몇몇이 와서 아들딸 노릇하는 게 뭐라고, 그간 얼마나 적적하셨으면 그걸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그 말씀이, 고향 집 부모님의 ‘이제야 사람 사는 집’같다는 그 말처럼 가슴에 남는다. 

by meditator 2014. 1. 18. 12:12

어느샌가 나의 친 혈육보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누나, 할배, 형들이 친숙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문 닫고 들어가버리면 남보다도 못한 우리네 가족 사이의 헛헛함을 메워주는게 사명이라도 되는 양, 텔레비젼은 열심히 '유사 가족'들을 양산해 낸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인가 부터, 예능 속 캐릭터들은 친근하게 우리의 혈육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다. <꽃보다 할배>를 통해, 고리타분한 말도 통하지 않는 노인네가 아닌 늙음이 멋스러울 수 있는 할배들에 찬탄을 하게 하고, 할머니 또래 여성들까지 과감하게 누나라 품으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꼭 명칭이 누나나 할배가 아니라도 좋다. <나 혼자 산다>라고 하지만, 그들이 함께 어울려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은 여느 가족 못지 않거나, 심지어 맨날 얼굴만 맞대면 서로의 이해타산으로 으르렁거리는 가족보다 낫다 싶다. 어디 그뿐인가, 일주일이라는 한시적인 기간이지만, 형제처럼 어룰려 사는 <인간의 조건>이 풍기는 가족애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관찰 예능'이 가장 손쉽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노하우이다. 이제 거기에 또 하나의 '유사 가족' 예능이 덧붙여지려고 한다. mbc의 <사남일녀>가 그것이다.

오늘(3일) 첫 방송 <사남일녀>, 관전 포인트는? 이미지-1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네 명의 남자 연예인과 한 명의 여자 연예인이 '호형호제'하면서 4박5일 동안 함께 부대끼는 프로그램이다. 호형호제만이 아니다. 외딴 시골로 내려가 그곳에 실제 사시는 촌부들을 부모님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 
첫 회, 김구라, 김민종, 서장훈, 김재원이 사남으로 등장하고, 이어 이하늬가 일녀로 합류한다. 이들은 강원도 인제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서, 다시 산 하나를 넘어서야 도달할 수 있는 외딴 곳에 사는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세상에서 농구가 가장 어렵다던 서장훈이 출발 몇 시간만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그리고 이하늬가 늦은 밤 화장실에 가다 결국 노상방뇨를 하고 마는 푸세식 외딴 '변소'가 있는 말 그대로 '시골집'이다. 거기서 사남일녀는 첫 날 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어거지로 맺어진' 혈육 관계, 즉, 신선한 조합의 예능의 관건은 결국 그들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호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꽃보다 할배>에서 첫 회 뜻밖에 공항에서 몰래 카메라에 무방비하게 당하고 마는 이서진의 모습은, 그간 멋지고 잘나고 집안 좋은 배우라는 타인을, 호감가는 내 안의 사람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꽃보다 누나>의 제작진이 초반, 허당 이승기 못지 않는, '짐승기'의 캐릭터에 골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새로운 멤버들을 맞이한 <1박2일> 시즌3가 전편과 다르게 쉽게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낸 것도 멀쩡하게 생겼으면서 어딘가 부실해 보이는 큰 형 김주혁의 캐릭터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방송 초반부터 시청자의 호감을 얻는 캐릭터들은 기존의 능수능란한 예능인들이 아니라, 정말 우리 가족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흔히 그러지 않는가, 가족 사이에 못볼 것이 어디있느냐고, 그렇듯, 가족처럼 그들의 허술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쉽게 경계의 끈을 늦추고, 그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 

그런 의미에서 <사남 일녀>의 구색은 아직은 어중간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일인자라 자청할 수 있지만 야생 버라이어티는 생초보나 마찬가지인 김구라는 여전히 그의 진행 방식을 버리고 못하고, 진행형 멘트를 남발한다. 대뜸 만나자 마자, '엄마, 아빠'라고 부르라고 밀어부치는 제작진의 무리수도 오그라드는 건 마찬가지다. 오히려, <사남 일녀>의 재미는 뜻밖에서 발생한다. 만화 <달려 하늬>의 주인공은 저리가라, 티없이 맑고, 따스하고, 거침없는 일녀 이하늬의 순수함이 프로그램 전체의 톤을 밝게 한다. 그녀의 모습은, 서먹서먹한 사남일녀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오빠많은 집의 막내딸 모습 그대로다. 뿐만 아니라,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덩치의 서장훈이 조금씩 빚어내는 어색한 성실함도 색다른 재미다. 허세 김민종과 살인미소를 잊지않는 김재원의 조합도 나쁘지 않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촌부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면서 빚어내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어느새 시청자로 하여금 라모컨을 다시 누르는 걸 잊게 만든다. 

책표지를 클릭하시면 창을 닫습니다.


연예인들이 시골로 내려가 생활하는 예능이라면 일찌기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있었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시골집의 주인이 잠시 집을 빌려주고, 유재석을 필두로 한 다수의 예능인들이 그곳에서 자생적으로 시골 생활을 해내야 하는 '만들어 내는' 예능이었다. 오히려, <사남 일녀>의 컨셉은, sbs<잘 먹고 잘 사는 법>에서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양희은의 시골 밥상'과 더 흡사하다. 이 프로그램은 양희은이 시골 생활을 모르는 젊은 연예인이나 외국인들과 함께 시골에 내려가 그곳에 사시는 분의 음식을 맛보고, 그곳에서 나는 재료로 한 끼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오는 방식이었다. 물론, 양희은 이후, 김혜영, 혜은이 등으로 프로그램의 흐름은 유지되고 있지만,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 밥상]이라는 책이 나왔을 정도로, '양희은의 시골 밥상'은 여전히 케이블에서 재방송되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풍모에서부터 푸근한 양희은이 시골 어른들과 자연스레 어머님, 아버님하며 대화를 하며 음식을 함께 하고, 시골 생활이 생초보인 젊은 연예인과 외국인들이 분망하게 시골집을 오가며 그곳 생활에 적응해가는 데서 빚어지는 불협화음은 이 프로그램만의 독특한 재미였다. 어쩌면 <사남일녀>의 경쟁 상대는 <패밀리가 떳다>보다는 <시골 밥상>의 푸근함일 듯 싶다. 

할배 누나들이 외국 배낭 여행을 다니고, 김병만의 병만 족이 오지라면 마다하지 않고, 최수종 하희라 부부는 아마존까지 가서 이웃을 만든다. 관찰 예능의 범람이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친숙한 코드인, 가족과, 고향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선 <사남일녀>는 뻔한 듯 하면서도 여전히 친밀하게 다가온다. <양희은의 시골 밥상>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에겐 그곳이 이젠 낯설지만, 가물가물한 어머니 자궁의 느낌처럼 안온한 그 무엇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진솔한 맛을 제대로 살려간다면, 금요 예능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 4. 10:35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