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에서 신성록이 맡고 있는 이재경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쩡한, 유능한 비지니스맨. 그러나 철저한 가면 속에 가려진 전형적인 소시오패스. 
누군가 한 사람을 괴롭혀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소름끼칠 정도의 집요함으로 그를 조여 온다. 상대가 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까지.' 

사이코패스라면 배트맨의 조커처럼 흔히 영화 등을 통해 쉽게 조우할 수 있는 '미친 놈'이라면, 소시오패스라면 좀 생소하다. 가장 최근에 대표적인 소시오패스로 각광(?)받기 시작한 인물이라면, 영국 미니시리즈 <셜록>의 주인공 셜록이랄 수 있다. 작품에서, 셜록은, 자기 스스로가 '소시오패스'임을 공언한다. 아니,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주인공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니! 바로 <셜록>의 매력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그 어떤 의무감도 느끼지 않는 주인공이 사회적 문제들을 처지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함, 뒤틀림을 극의 주요한 재미로 삼아, 원작의 셜록과는 또 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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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소시오패스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정의부터 알고 보자.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성 인격 장애의 일종이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인격장애 중 하나로, 성격이나 행동이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벗어나 편향된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 사회적 규범이 없는 사람으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하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으며 그것이 잘못인지를 인정하지 못한다.(다음 지식백과) 그에 덧붙여,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흔히 게임의 일종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며, 그를 위해서는 냉정한 두뇌를 활용해 자유자재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하기에 사람들은 그의 본 모습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렇게 장황한 소시오패스의 정의에서 알 수 있는 건, 한 마디로 소시오패스는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나쁜 놈'이기 십상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천송이가 그 소시오패스의 손아귀에 걸려 들었다는 것이고!

2013년의 대표적 악인이, 연말 시상식에서 조차 그 존재를 뽐낸,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민준국(정웅인 분)이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악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잃은데 대한 복수로 수하의 아버지를 죽였고, 그 과정을 목격하고, 재판에서 자신의 죄를 낱낱이 폭로한 혜성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칼을 가는 존재다.
그에 비해, 아마도 2014년을 대표할 악인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인물이 <별에서 온 그대>의 이재경이다. 그는 이미 제작진의 홈페이지의 소개에서도 표명되었다 시피 '소시오패스'이다. 그의 발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묻지도 않고 따지지지도 않고, 자신의 앞을 가리는 장애물들 따위를 없애버리는데 거침이 없는 인격 장애이다. 

민준국이나, 이재경이나 자신이 목적한 바 범죄를 저지르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그 근원에 있어, 가족적 원한에 한 맺힌 민준국과, 소시오패스인 이재경은 다르다. 민준국의 범죄가 악랄한 만큼, 그의 사연만큼 뜨겁다면, 이재경의 범죄는 스텐레스 스틸의 그것처럼 마냥 차갑다. 그래서 민준국과 관련된 혜성(이보영 분)과 수하(이종석 분)의 쟁투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그의 해원을 넘을 만큼 간절하고 진솔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했고, 바로 그 지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감동은 배가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소시오패스 이재경과 천송이의 조우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재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혜성이 우연히 민준국의 범죄를 목격한 것 역시 재수없는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은 혜성의 목적의식적인 재판 참여로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와 이재경의 만남은 말 그대로 우연을 넘지 않는다. 우연히 천송이는 그날 이재경과 내연 관계에 있는 한유라(유인영 분)과 싸웠고, 이재경과 한유라의 다툼을 목격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 천송이는 몰락하기 시작하고, 이제 이재경의 재물이 되어갈 것이다. 말 그대로 재수없어 살인마에게 걸린 셈인 것이다. 공포 영화에 등장하여 재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과 다른 처지가 아니다. 그저 이재경의 발 밑에서 굴러다니다 그의 행보를 막은 재수없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는 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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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수없는' 천송이의 불행은 하지만 공교롭게도, 도민준의 도움을 자연스레 만드는 계기가 된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게임으로 치면 절대 최강의 능력치를 가진 '넘사벽' 캐릭터이다. 말 그대로 '백마탄 왕자'이다. 축지법에 버금가는 공간 이동은 물론이요, 소머즈가 저리 가라할 듣기 능력을 가졌다. 심지어, 400년을 산 그의 내공은 강남의 금싸라기 땅을 고스란히 손에 쥘 정도의 경제력 까지 겸비하게 만들었다. 단지 그런 그에게 단 하나의 단점이라면 인간을 믿지 않아 외로움을 자처한다는 정도? 그런 그가 천송이를 돕는다는 건,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듯, 이미 끝난 싱거운 게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애초에 능력치로 보자면, 천송이바라기인 이휘경은 도민준에게 잽도 안된다. 그를 상대로는 '질투'말고는 도민준이 내보일 장기가 없다. 아니 없는게 아니라, 지고지순한 그를 상대로 능력자 도민준은 비겁해 보이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게 시시해질 극에 도민준에 걸맞는 상대가 등장한다. 그게 바로 이재경, 소시오패스이다. 모든 것을 게임처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며, 하지만 한 치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 철두철미한 이 범죄자야 말로, 사실, 도민준의 '만랩'의 능력치를 뽐내기 위한 가장 적절한 장치이다. 앞으로도 도민준은 재수없게 이재경에게 덜미를 잡힌 천송이를 구해내기 위해 갖가지 장기를 선보일 것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재수없어 걸린 소시오패스와, 400년을 산 외계인의 대항전이라, 이보다 더 허무맹랑한 환타지가 어디 있겠는가 싶다. 하지만 다시 또 곰곰히 생각해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자를 위해 헌신하는 백마 탄 왕자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등장하는 거, 어쩌면 그게 더 허무맹랑할 지도. 하지만, 그런 들 어떻고, 저런 들 어떻겠는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게 그런 것인 걸. 


by meditator 2014. 1. 3. 0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