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몇 십 년 전이지만, 지금 와 되돌아 보면 청춘의 시절은 참 화사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에 와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글을 쓰는 이 사람에게 만약 다시 이십대의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글쎄,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십대란, 거리에 핀 꽃보다도 자신이 더 싱그럽고 아름다웠음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불가지론과, 불확실성의 혼돈의 시대였으니까. 다시 그 고통스러운 터널을,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름표를 달고 지나가야 한다는 건, 노회한 나이듦이 감당할 수 있는 몽매가 아니다.

그러기에, 젊음을 대상으로, 젊음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들은 엎어치건 메치건, 결국은 그 혼돈과 혼란의 젊음을 위로하는데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곤 한다. 요즘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 그리고 시즌1,2의 인기를 힘입어 야심차게 시작한 <로맨스가 필요해3>도 그런 화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진; 조선닷컴)


1. 어린 시절, 혹은 전생의 인연

청소년 시절에 재미로, 하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화자되던 놀이가 있다. 깊은 밤 불을 끄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파트너 얼굴이 보인다는. 실제로 그 놀이(?)를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한번쯤은 청소년 시절에 그런, 혹은 그와 비슷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핵심은 바로, '내 님은 누구일까?'겠다. 지금 내가 만나는 수많은 이 남자들 중 과연 누가 나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것인가, 이것만큼 청춘에게 심각한 고민은 없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의 초반, 나정이가 부르는 '여보~'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다섯 남자들, 그 누구에게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듯이, 누구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오히려 반대로, 그 누구라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청춘의 불안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안전판을 만든다. <로맨스가 필요해3>의 주완(성준 분)은 어린 시절 주연(김소연 분)을 좋아하던 주연이 보살펴 주던 꼬마 고구마이다. 주연 덕택에 음악을 알았고, 그 음악이 그의 천직이 되었듯이, 그에게 주연은 하늘이 내려준 사람과도 같다. 드라마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려가겠지만, 혈연처럼 어린 시절에 각인된 인연은 쉽게 피할 수 없다라며 시청자들을 안심시킨다.

<별에서 온 그대>는 한 술 더 뜬다. 몇 백년 전 전생의 인연으로 주인공 두 사람을 결박시켜 놓는다. 인간을 티끌처럼 여기며 사는 외계인 도준(김수현 분)의 태도가 180도 바뀌어, 천송이 해바라기를 만들기 위해, 전생과 환생으로 이어지는 필연의 고리를 만든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들이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현실의 자신들처럼 심지어 결혼이라는 서약을 거쳐서도 불가지론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안온함을 깔고 드라마를 지켜보게 만든다.


(사진; 리뷰스타)


2. 백마을 타고 온 왕자님들

어린 시절, 혹은 전생의 인연까지 들먹이며 사랑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드라마는 그것도 부족해 여주인공만을 바라봐주는 백마 탄 왕자님을 한 명,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한 명 더, 때로는 그 이상으로 보험용으로 준비해 둔다.

2014년에도 드라마 속 남자들은 아침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 시리즈 할 것 없이, 직업 고하를 가리지 않고, 신데렐라 시절에 잃어버린 유리 구두를 들고 나타난 왕자님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드라마의 성패는, 그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님이 얼마나 환타지를 잘 구현해 내는가와 비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어린 시절 절친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기고 머리끄댕이를 휘어잡으려 싸우는 현장에 들어와 바닥을 친 자존심을 위로해 주며, 다친 상처조차 치료해 주고, 사회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스타의 매니저를 자청한다. <별에서 온 그대>와 <로맨스가 필요해3>는 그 핵심만을 꼭꼭 짚어주는 족집게 참고서와도 같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니다. <로맨스가 필요해3>에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회사 선배 태윤(남궁 민)이 있고, <별에서 온 그대>에는 소나기의 소년같던 시절부터 천송이만 해바라기 해온 휘경(박해진 분)이 있다. 다다익선이자, 보험이다.


현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 조차 건넬 여유가 없다는 현실의 청춘은 사랑조차도, 직장과, 마련해야 할 전셋집과, 결혼 비용에 밀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한숨을 내쉬어야 할 조건으로 밀려나기 십상인 세상에서, 드라마는 더 열심히, 더 열렬하게 환타지를 실행하고자 애쓴다. 그래서 불가지론의 사랑은 어린 시절 혹은 환생의 끈을 빌려 확신을 심어주려 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현실의 철딱서니 없는 남자들은 멋진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여주인공을 위해 헌신한다. 홈쇼핑 팀장으로서, 여배우로서의 리얼리티는, 환타지조차 현실의 일부분인양 교묘하게 포장해 낸다. 결국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에 성공하고, 일에서도 보람을 찾겠지만, 암전이 된 텔레비전 앞에 자신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이 각박할 수록, 드라마는 아름다워진다. 





by meditator 2014. 1. 15.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