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리아라는 거 알아?"

"그럼, 그걸 왜 몰라?"

""너도 빵 안에 쨈이랑, 다른 거랑 막 섞어 넣어서 먹어?"

"어휴, 아무리 군대라도 난 그건 못먹겠더라."

"우유에다 적셔 먹기도 하던데?"

"응, 그건 맛있어."

그렇다. 이 대화는 군대 간 아들과 엄마가 <진짜 사나이> 매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아들이 군대 간지 어언, 5개월이 지나가고, 야, 이제 16개월만 더 하면 돼! 하고 저도 나도 화이팅을 외치지만, 올 한 해를 보내고도, 고스란히 내년을 헌납해야 민간인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안쓰러움과 달리, 군대의 생활을 잘 모르는 에미는 매주 엄마를 생각하며 전화를 걸어주는 아들과 이야깃꺼리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맨날 해봐야 휴가 언제 나오냐? 아프지는 않냐? 그러던 엄마였는데, <진짜 사나이>를 보고 나서 자꾸자꾸 할 이야기가 생긴다. 엊저녁에도 아들 녀석이 전화를 했을 때 마치 <진짜 사나이>에서 유격 훈려을 할 때라 졸지에 작은 아들 녀석은 전화통에 대고 텔레비젼 중계를 하고, 군대에 간 녀석은 그 틈을 타서 자신의 유격 경험을 뽐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대화가 가능했겠는가.

 

하지만, 이제 와서 이 프로그램 덕분에 아들과의 대화가 풍성해 졌다고 해서 처음부터 <진짜 사나이>를 즐겨 보았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386세대인 이 사람은 고등학교 다닐 때 여차하면 선착순부터 시키거나 출석부가 반으로 부러져라 두들겨 패는 선생님한테 교련 수업도 좀 받아봤었고, 대학에 들어와, 남학생들의 이른바 '병영집체 훈련' 반대를 지켜보기도 했었던 세대다. 그러기에, 군사적 훈련 시스템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목도한 세대로, '군'자가 들어간 그 무엇에도 저항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세대인 것이다.

그러기에, tvn의 <푸른 거탑>을 시작으로 해서, mbc에서 <진짜 사나이>를 방영한다고 했을 때, 그 잠재되어 있는 거부감이 불쾌감의 형태로 우선 드러났던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이성을 가장 느슨하게 만드는 예능의 형태로 '군사 문화'가 '침투'한다는 사실에 막연한 분노조차 느꼈었다. 게다가, <푸른 거탑>이 흥하자, 얼른 그 과실을 따먹기랃 하듯 만들어진 <진짜 사나이>란 프로그램에는 더더욱 '아류'이상의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386이니, 민주화 세대니 버팅겨도, 세월은 가고, 정작 내 아들조차도 군대를 가는 상황은, 언제나 그래왔듯, 내 아들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해 다르게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고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자꾸 <진짜 사나이>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사진; 동아일보)

 

물론, <진짜 사나이>를 함께 보는 고3짜리 우리 아들이, 군대 가서 유격 훈련을 잘 하려면 어느 정도 체력은 키워야 겠다고 다짐을 하듯,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진 병영 생활은 생소하고, 때로는 저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데 어느 틈에 우리는 그걸 보고 웃고 있다.

'강제 징집'이라는, 군대가 대학생 제재의 한 형태이던 시대로 부터, 이제 군대가, 군대 생활이 희화화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다.

6월16일 <진짜 사나이>에서 유격 훈련 중 웅덩이에 꼿힌 상대방의 깃발을 쟁취하기 위해 서로 다른 팀의 아홉 명의 군인들이 아비규환의 육박전을 벌이는 모습은 생소하지만 전혀 이질적인 정서는 아니다. 이제 이 사회에서 무언가를 쟁취하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번번히 뉴스에서 여름방학 때마다 해병대 훈련에 합류하는 수험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을 보여주겠는가. 해병대 정신 정도는 있어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상징 아니었는가 말이다.

번번이 훈련만 하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몸이 따라주지 못해 낙오를 하는 샘 해밍턴의 모습 역시 낯설지만은 않다. 전체가 '갑을 컴퍼니'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을'의 존재는 시간이 가도 진급하지 않는 이등병이나 마찬가지니까. 훈련을 제대로 숙지하지못해 머리를 박는 샘 해밍턴이나, 잘 할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신병 박형식의 모습은, 그래도 언젠가 고참이 될 수 있는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의 신>에서, '내가 왜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는지 알아?'라며 장규직에게 모멸을 받았던 정주리의 삶은 오히려 보장된 진급이 대기하고 있는 군대보다도 못하지 않나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제 맘 편하게 주말 저녁 <진짜 사나이>를 시청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군대가 우리 곁으로 친근하게 다가와서가 아니라,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삶이 군대 곁으로 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기에 군대로 간 연예인들을 마치 내 사회 생활의 동료처럼 호불호를 가지고 재단하고 있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장담한다. 남자가 군대 다녀오면 사회 생활은 잘 할 꺼라고.

<정글의 법칙>으로 부터, 이제 <진짜 사나이>까지, 이른바 '야생 리얼 체험 버라이어티'는 한편에선 보다 자극적인 것을 찾아가는 예능 모색의 극한치이지만, 또 한편에선 그 정도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야생'보다 더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글픈 오락거리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3. 6. 17. 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