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스페셜은 지난 주에 이어 '이 남자'를 다루었다. 7월 29일 <이 남자 분노하다>에서는 '페미니즘'의 시대,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여성들과 여전히 자신들에게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기성 세대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낀 처지가 된 이십대 남자들의 '억울함'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에 이어 8월 5일 방영된 <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은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들의 고달픈 삶을 담아내고자 한다. 

 

 

오늘을 산다.
한 소주 회사, 3개월 수습 끝에 정직원 딱지를 달았던 이제 입사 2년차 최재원 씨, 정직원이지만 판촉 행사를 하기 위해 알바 생들과 같이 우주인 복장을 하고 여러 술집을 돌며 자기 회사의 상품을 홍보한다. 판촉 행사가 끝난 후에야 땀에 절어 잘 벗겨지지도 않는 우주인 복장을 벗는 재원씨,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 

그의 나이는 벌써 이십대 끝 무렵인 29살이다. 세 번 째 도전 끝에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최재원씨, 굳이 이 회사를 고집한 이유는 '연봉'이다. 구직 기간 동안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졌다던 재원씨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높은 월급은 필수이다. 

조금 더 나은 연봉을 받기 위한 도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15세에서 29세 첫 일자리 임금 수준 표에 따르면 청년 층의 34.1%가  150에서 200만원 미만의 돈을 첫 월급으로 받는다. 100에서 1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27.7%에 달한다.  우리 사회 직장의 로망이라는 대기업 직원들이 받는 300만원 이상을 받는 층은 2.4%에 불과하다. 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5.1%나 된다. 

그러다 보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긴다.  국가 대표 결승 경기가 열리던 날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를 하는 김민근 씨에게 경기 관람은 언감생심이다. 밤 10시부터 시작된 콜이 20건에서 25건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자동차 학과를 졸업한 민근씨 역시 남들처럼 직장에 취업을 한 적이 있었다. 6개월 정도 다녔지만 알바로 했던 배달 대행업보다 터무니 없이 작은 월급에 시간도 길다보니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라이더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그 때보다 서너배는 더 번다는 민근씨, 남들의 치맥 한 잔이 그에겐 나날이 쌓이는 통장의 꿈이다. 매일 오만원씩 저금한다는 그, 돈을 모아 언젠가 프랜차이즈점을 차리는게 꿈이라는 민근씨를 하지만 같은 업종의 형님들은 뭐 벌써부터 저렇게 애를 쓰고 사냐며 안쓰럽게 본다. 

하지만 민근씨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26살의 김영준씨는 한 달 째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유아 체육 교사로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기침은 쉽게 낫지 않는다. 군복무를 마치고 시작한 일이 어언 4년차에 접어든 이즈음, 처음 시작은 60만원에서 부터였다. 그래서 그때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노가다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영준씨는 지금의 유아 체육 교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젊어서야 할 만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유치원을 다니는 게 좋아 보일 것같지 않다는 그는 생활 체육 지도사를 따기 위해 시간을 쪼갠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그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담담한 대답. 아마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십대 남자들의 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이십대 남자들은 내일이 없는 듯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그걸 답해주는 건 바로 실업률이다. 2019년 4월 기준, 청년 실업률 11.5%,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8개월, 그리고 앞의 통계에서도 보여지듯이 취업을 해도 10명 중 8명은 평균 2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겐 오늘이 발등의 불이다. 취업을 했던 청년 들 중에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민근씨처럼 버는대로 돈이 되는 라이더 일도 불사하게 되고, 다시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취준'의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바로 그 취준생의 1/3이 선택한다는 '공시', 26살 배민구 씨 역시 바로 그 공시생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시생이 될 수는 없는 것. 배민구 씨 역시 30대를 공시의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그 길고도 아득한 레이스, 하지만 레이스의 종착역에 도착하여 직업을 얻는해 해도 어른들이 원하는 그 가정을 가지는 미래는 불투명하다. 

 

 

꿈이 없다고? 비판적 의식이 없다고? 
기성 세대는 이런 청년 세대에게 불만이 많다. 왜 꿈이 없느냐고. 취직에만 매몰되어 있냐고. 하지만 그런 기성 세대의 불만에 청년들은 어서 빨리 저 분들이 퇴직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우리 몫이 생길 텐데라고 생각할 뿐이다. 

88올림픽으로 상승세를 탔던 경기, 80년대 말, 90년대 학번들은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니면 언젠가는 번듯한 내 집 마련에 안락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세대였다. 당연히 '낭만'을 즐길 여유가 있었고,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질만한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한 경쟁 취업의 시대에 내몰린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꿈'이나 '비판 의식'을 운운하는 기성 세대에게 분노한다. 그들이 오늘날 청년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은 세대인데, 이제 와서 해주는 것은 없으면서 청년들에게 무리한 요구만을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페미니즘'의 시대, 청년들은 여성들은 그저 혜택받는 경쟁자이며, 자신들은 역차별을 당하는 약자라 생각한다. '남성적 특권'을 누린 건 기성 세대의 남자들인데 애먼 20대 남자가 눈덩이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복무로 사회집입조차 늦은 그들에게 사회적 이점이 없다고 항변한다. 

 

 

국민연금이라도 넣으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고달픈 경쟁에 시달리며 오늘을 살아가기도 벅찬 이십대 청년들을 위한 해법은 없을까?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의 고증에 충실하던 다큐는 중반부에 들어서서 갑자기 국민연금 관리 공단 홍보 다큐가 된다. 

국민 연금을 꾸준히 넣어서 노후가 되어서 걱정이 없다는 어르신들, 그 중에서도 부산 물류 회사의 대표 김기식씨는 1979년 제대 이후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하며 연금을 넣은 덕택에 매달 13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든든한 노년의 보장이라는 어르신들의 생각과 달리 청년들은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하지만 대학생 홍보대사까지 동원한 다큐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국민 연금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며 세게 3위 660조원의 기금으로  향후 30년간은 끄덕없다며 젊은이들의 가입을 독려한다. 

물류 회사 김기식 대표님의 따님 지영씨마저 가정을 꾸리고 보니 한달 9만원의 연금이 부담스럽다는 현실, 실업률에 직장 구하기가 힘들고, 월급을 받아도 쥐꼬리만해서 다시 라이더를 하는 게 낫다면서 국민연금을 내라니, 국가에서 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큐는 연기 지망생 김민수 씨와 박인영씨를 들어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청춘의 연가로 마무리된다. 현실로 시작해서 그래도 여전히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청춘도 있다는 이상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의 진단은 명확하지만 결국 이 시대에 다큐가 짚을 수 있는 답은 불투명한 것이다. 그건 다큐가 도달한 불투명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걸 나눠줄 의향이 없는 기성 세대, 자신들의 잣대로 청년들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프레임에서, 이남자들에게 말해줄 답은 그래도 국민연금은 넣어라 말고는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당연히 젊은 세대들은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우리가 국민연금까지 넣어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과연 그런 어설프고 안이한  '답정너'식의 동어반복으로 '이남자'들의 상흔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9. 8. 6. 16:35

도쿄대에 합격할 정도의 실력이라는 AI가 있다. 이 대학에 갈 수준이라는 AI와 우리의 고등학생들에게 같은 유형의 국어 문제를 풀도록 했다.

' 알렉스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쓰이는 애칭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라라는 여성의 애칭은 다음 중 어느 것일까?'

남자, 여자, 알렉산드라, 알렉스 등 예시의 4문항 중 정답은 알렉스이다. 이 기사를 읽은 여러분들은 맞추셨는가? 대학가는 AI는 이 문제를 비롯하여 9문제를 풀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등학생들은 어땠을까? 이런 유형의 문제를 푼 학생들의 30%가 정답을 비껴갔다. 무엇을 물어보는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학생들, 애칭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학생들, 선생님은 요즘 학생들의 경우 교과서의 글을 읽고 요약을 하라고 하면 그런 요약은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온다며 하려 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신다.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온다는 중심 내용, 거기에 있어서일까? 중심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학생들을 쉽게 찾을 수 없단다. 

 

 

독서하면 뒤쳐져요. 
실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만 되도 당당하게 밝힌다. 자신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심지어 도서관에 와서 수다를 떨면서도 책을 왜 읽느냐며 해맑게 반문한다. 다큐를 연 유치원도 아직 다니지 않을 것같은 유아들을 상대로 한 독서 수상 광경, 엄마 품에 잠든 아기에게 500권의 독서 상장이 주어진다. 아마도 지금 책을 안읽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들도 저 시절은 아니더라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과 친근했을 것이다. 집안의 서가에는 엄마가 사모은 각종 전집류가 쌓여 있었을 것이며 빈번하게 도서관에 엄마 손을 잡고 다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던 아이들이 왜?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 관심도는 저 어린 시절을 넘어서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른이 되면 더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중학교만 가도 그 '독서 교육'의 관점이 달라진다.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교과와 연결되어 가시적 교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입시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강남 국어 학원에 밤새 줄을 선 학부모의 말처럼 '독서'를 하면 뒤처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수학, 영어 문제 한 문제라도 더 읽어야지, 어디 책을 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책읽을 시간이 없는 입시 교육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자발성이 없고 반강제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했던 우리나라의 독서 교육이 문제다.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 박사, 책을 안읽어도 되는 우리의 교육 환경에서 서민 박사는 책을 읽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박사의 진단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절 많이 읽어라 하는 독서조차 숙제로 만드는 우리의 교육 환경이 아이들로 하여금 책에 학을 떼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 많이 읽어라 해서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경우 국가간 학력 비교 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2006년 읽기 영역에서 1등을 했던 한국, 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급격하게 순위가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체 순위가 아니다. 하위권 학생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의 32.9%가 하위권에 속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기 힘든 비율이 전체의 1/3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18년 수능 국어 파동같은 해프닝이 벌어진다. 당시 너무 어려워 문제가 된 국어 문제, 

 

 
일반적으로 수능 1등급 커트라인이 90점을 상회하는데 2018년에는 80점을 겨우 넘어 문제가 됐었다. 출제 기관에서는 이 정도는 충분히 풀 수 있으리라 냈던 문제, 하지만 점점 떨어지고 있는 우리 고등학생들의 독해력은 이런 문제 앞에 '멘붕'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이제 수학, 영어 외에 국어도 중요하다며 학부모들은 강남의 유명 입시 학원에 밤을 새워 줄을 선다. 훌륭한 국어 강의를 들으면 해결이 될까?

그 유명한 국어 강사의 강의 시간, 한참 한국 단편에 대해 설명하는 중, 한 학생이 진지하게 질문을 했단다. '그런데 선생님, 역마살은 어떤 부위예요?' 수능 국어는 어휘력, 이해력, 사고력, 독해력이 필요한데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이 일일이 떠먹여준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결과물은 이제 국어 학원마저 줄을 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디지털 시대의 난독증 
어른이 되면? 가끔 읽기는 읽는데 승진 등에 도움이 되는 목적형 독서를 하게 된다. 한국 성인 중1/4가 일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과학적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지만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문해력)은  OECD 평균 이하이며, 그중 22.4%는 초등학생 수준 이하이다. 

대학생인 이수민씨는 이와 관련된 고민이 있다. 책은 당연히 읽기가 힘들고, 기사문도 길어지면 이해가 안된다. 그러다 보니 세 줄 이상 넘어가면 읽지 않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당연히 쓰는 것도 힘들다. 간단한 글도 쓰다 보면 걸리고, 하다못해 자소서 등의 문항을 쓰다가도 #버튼에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이수민씨는 자신들이 책을 읽다가 안읽은 세대라 정의내린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때부터 책을 안읽은 세대, 더 이상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듣지 않은 시절부터 책으로 부터 자유로워진 세대,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세대이다. 

한때 독서광이었다먼 김귀희씨 이제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려 해보지만 좀처럼 책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시선이 머무르는 시점이나 시간을 통해 읽는 방식을 검사하는 아이 트래킹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때 책을 즐겨 읽었다던 김귀희씨는 어느덧 그녀가 즐겨보는 스마트폰을 보듯이 시선을 세로로 하여 스냅샷을 찍듯이 책을 읽고 있었다.  문장을 따라 꼼꼼하게 보지 않고 Z자형, F자형으로 건너뛰며 전형적인 디지털 읽기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을 깊게 이해살 수 없으니 당연히 책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독서는 인간의 진화적 특성에 어긋난다. 인간종으로의 진화는 20만년 전, 하지만 문자의 발명은 6천년 경, 늘 주변을 살펴야 하는 산만한 DNA를 가진 인간들에게 책읽기 자체는 쉽지 않은 미션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진화적 특성을 이겨내면서까지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미 UCLA 난독 연구 센터 매리엔 울프 박사, 하루에 5~10만 단어를 처리하는 디지털 시대, 하지만 그 디지털의 방식은 '깊은 독서'를 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씨는 우리 삶에 도움을 줄만한 한 영혼이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말을 정리해놓은 것이라 책을 정의한다.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속에서 어떤 변화가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을 통해 얻어지는 공감', 그것이 깊은 독서의 첫 번째 관건이다. 저자, 혹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 '추론'을 하며 '생각'을 하게 된다고 메이앤 박사는 주장한다. 

책을 읽는 순간 우리의 뇌는 변화한다.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사고력, 창의력, 기억력, 감정 조절 능력이 깊어진다. 이를 통해 쌓이는 배경 지식, 많이 읽을 수록 더 많은 배경 지식이 쌓이고, 이는 다음 독서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그 배경 지식와 함께 뇌의 회로는 보다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며 견고해진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말하는 뇌과학자들은 없다. 하다못해 저글링만 해도 뇌의 회로는 변화한다. 노인이 되서 굳는게 아니라, 안써서 굳는 것이다. 뇌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독서'다. 



난독의 시대, 어떻게 읽을까? 
물론 이견도 있다. 책을 사지 않을 뿐, 책을 읽지 않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웹 소설 작가 문화류씨 아예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레이아웃에 맞춰 디지털 세대의 작가로 최근 각광받는 문화류씨는 자신들의 독자의 경우 한 달에 7,8권의 웹 소설을 소비한다며 종이로 된 책을 안살 뿐 자신들의 세대는 웹 소설 등으로 다른 '독서'의 세계를 열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디지털의 시대 책은 좋고, 디지털은 나쁘다라는 이분법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다. 매리엔 박사는 5살에서 10살 시절에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고, 11살에서 15살 무렵테 책과 디지털의 세계를 접목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 권유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서'가 낯설어지는 시대, 과연 어떻게 다시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 씨는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듯 책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일년에 몇 권을 읽어치우려 하지 말고 한 권이라도 꼭꼭 씹어 먹듯이 읽으라고 권한다. 

기생충 박사 서민 박사의 주장은 파격적이다. 이미 어릴 적 반강제적인 독서 교육으로 책을 멀리하게 된 시절, 차라리 어릴 적에 '규제'를 하여 책을 읽고픈 욕망을 극대화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손승훈 교사는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교과서를 보거나 EBS 문제집을 풀면서 고단하던 눈빛이 책을 읽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게 되면 변한다며, EBS 문제집을 적당히 보고 시간을 나눠 책도 좀 읽는게 수능 성적이 향상되는 지름길이라며 팁을 제시한다. 실제 박성경 학생의 경우, 처음엔 공부 시간을 빼서 책을 읽는게 부정적이었지만 3개월 정도 꾹 참고 책을 읽다보니 문제 푸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자신의 성공 사례를 덧붙인다. 

단,  손교사는 서울대 권장 도서목록 이런건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좋아할만한 책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를 한다면 대번에 50권을 사들이는 것도 피해야 할 일 중 하나란다. 일주일에 두 권씩 사 들이면 어느 틈에 그 책들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같이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보령의 '책읽는 마을', 대전의 '백북스', 전국에 여러 독서 모임이 활동중이다. 스마트폰을 보던 지하철의 시간을 활용하여, '지하철에서 책읽기 모임'도 있다. 

홍천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독해력을 높이기 위해 독서 동아리를 장려했다. 친구랑 함께 책을 읽고 노는 시간이라고 시작한 아이들,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 어느덧 전교생의 70%가 참여하는 83개의 독서 동아리가 활동중이다. 심지어 고3이 되어서도 여전히 주말 오후에 함께 책토론을 즐긴다. 동아리의 학생은 말한다. '책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단지 좋아하는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by meditator 2019. 7. 22. 16:52

얼마 전 지인이 하소연을 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유투브를 즐겨 보길래 책을 좀 읽으라 했더니, 아들 왈, 엄마는 석기 시대의 도구를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느냐며 되레 반문을 했단다. 말문이 막힌 엄마, 그 분이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핸드폰' 사용을 둘러싼 갈등을 한번 이상 겪어보지 않은 집이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애플의 주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량이 3시간을 넘으면 자살율이 35%가 증가하고, 5시간을 넘으면 71%가 증가한다며 애플은 이런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넘어선 중독, 과연 그에 대한 해결책은 어디에서 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런 사회적 고민에 대해 <시사 기획 창>은 색다른 실험을 통해 답을 찾고자 한다. 기존의 많은 과학적 실험들이 스마트폰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해 접근했던 것과 반대의 시도를 해본 것이다. 

 

 

스마트폰 없는 3개월 
초등 저학년이 37%, 고학년이 74%, 중학생이 92%, 고등학생이 되면 93%의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가 신체의 일부처럼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30.8%), 메신저을 하거나(24.1%), 웹툰을 보며 (16.6%) 시간을 보낸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29.3%가 스마트폰 과의존 증상을 보이고 있으면 남학생 28%에 비해 여학생 30.7%로 그 비율이 높다. 

​​​​​​고양시의 덕양 중학교, 전교생이 900여 명이 넘는 이 학교 역시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골치꺼리다. 그에 따라 2016년 학교와 학생들이 모여 만든 생활 협약에 따라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기로 결정하고 매일 아침이면 학생들의 스마트폰을 걷는다. 하지만 이런 협약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은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 상태, 결국 다시 협약을 유지하기로 하였지만 학교에서 사용을 하지 못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5~6시간, 심지어 주말에는 10시간에 이르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중2 성원이의 경우, 방학이 되자 사용 시간이 부쩍 늘었다. 게임, sns, 유투브, 메신저 등의 용도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성원이, 수시로 울리는 알림을 들여다 보느라 해야할 과제를 다 못하기 했다는 성원이는 오늘도 이어폰까지 연결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가족과의 대화는 물론, 식사 시간에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친구가 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주 보며 대화는 커녕 둘이 나란히 누워 게임을 하다 간다. 

지원이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엄마가 지원이를 깨우는 시간은 오후 4시, 그나마 오늘은 빠른 편이다. 겨울 방학에 들어서면서 밤새 스마트폰을 하느라 낮밤이 바뀐 지원이, 나가는게 귀찮고 할게 없다며 스마트폰만 하느라 엄마조차 귀찮아질 지경이다. 엄마도 지원이의 상태가 심각한 건 알지만 괜히 잔소리하다 관계가 더 나빠질까 마찰을 피하다 보니 이렇다하게 제재를 못하는 상황. 

 

 

 

 

이에 <시사 기획 창>과 학교는 연세대 의대 정신 과학 교실의 도움을 얻어 3개월간 스마트폰 절제하기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전교생을 상대로 하여 이 프로그램에 참여자를 신청한 결과 다행히도 16명이 지원을 했고, 박나린, 장성원, 강산, 이찬영, 변평화, 신지원, 지준영 등 최종 7명이 참여하기로 했다. 

또한 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3개월 동안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영상 촬영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영상 촬영 그 대상은 우리의 뇌, 그 중에서도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학습 능력을 담당하는 우리가 인간으로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이성적 사고 판단을 담당하는 부위다. 전두엽 내 혈액 속 산소 포화도 변화를 측정하여  자기 조절과 억제 능력, 작업 기억 능력을 데이터화 한다. 

실험은 참가한 학생들과 부모들이 함께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스마트폰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미디어 기기 역시 평일 1시간, 주말 2시간으로 실험의 효과를 강화시키는 약속도 했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의 효율적인 실험을 위해 부모들 역시 집에서는 필요할 때만 스마트폰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 핸드폰을 '보관 상자'에 담고, 대신 전화, 문자만 가능한 이른바 효도폰을 받는 것으로 실험이 시작되었다. 

28일째 되는 4월 17일 중간 점검이 이루어졌다. 지하철 탈 때 심심하다는 등 스마트폰이 없는 생활의 불편함이 토로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서히 다른 활동을 찾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엄마가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이 한결 쉬워졌다며 웃는다. 가족끼리 스마트폰을 하는 대신 야외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났단다. 

그리고 71일이 되는 5월 30일, 그간 아이들의 전두엽 이미지 촬영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과 그냥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대조군의 학생들을 함께 촬영한 결과, 자기 조절 억제 능력에서 대조군의 학생들이 파란 색인 것과 달리,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노랑 색을 띠며 자기 조절 억제 능력이 향상되었음을 보였다. 반면 작업 기억 능력의 경우 실험군의 학생들이 파란 색, 대조군의 학생들이 노란색을 띠었다. 이는 실험군의 학생들이 머리를 덜 쓰고도 과제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정보 처리의 효율성이 증가한 것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을 뿐인데 학생들의 전두엽 기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이는 곧 우리 학부모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학업 능력의 향상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지금까지 해왔던 실험과 반대로 해본 실험, 불과 몇 달 사이에 달라지는 아이들의 뇌를 통해 지금이라도 더 늦지 않게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뇌를 향한 시도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결론은 명확해 진다. 

 

 



디지털의 격차는 접근 금지의 격차로 부터 
학자들은 사춘기가 전두엽 발달이 활발뇌가 재건축되는 시기라 정의한다. 그런 시기에 뇌발달이 불균형은 이후 학업은 물론 미래의 삶에 있어서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에 일상의 통제력을 찾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즉 정신적 항체를 키우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페북의 좋아요 기능을 만들었던 저스틴 로젠스키, 그는 바로 이런 sns의 기능이 '가짜 즐거움의 맑은 종소리'라며 반성한다. 그리고 페북을 나와 구글에서 일했던 트리스탄 해리스와 함께  '인도적 기술 센터'를 만들어 디지털 중독 사회의 해법에 앞장서고자 한다. 

트리스탄은 오늘날 우리는 우리 삶의 1/4를 인공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통탄한다. 거대 미디어 기업은 인간의 취약한 부분을 공략하여 유혹적 방식으로 붙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무작위로 오는 알림은 도박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고, 관심에 목마른 청소년은 좋아요를 통해 마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스마트 쉼 센터에 찾아온 상담 학생의 사례를 보면 전학으로 친구가 없던 청소년이 온라인 페친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려 하고 1000 명이 넘는 페친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다 그들과의 직접적 관계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반대하는 부모와 갈등을 빚다 가출까지 시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대 의대 정신건강 의학과 전홍진 교수에 따르면 2014년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상담을 한 청소년 150명의 경우 밤을 새면서 까지 확인을 해야 할 정도로 불안, 초조가 극심했고, 우울증 증상까지 드러났다고 한다. 

정작 스티브 잡스의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몰랐고, 빌 게이츠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13살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사줬다는데, IT 산업의 메카 실리콘 벨리에서는 오늘날 디지털의 격차는 '기술에 대한 접근 제한이 새로운 격차로 귀결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실리콘 벨리의 사라토가 고등학교, 공립학교 중 최상위 등급에 속하는 이 학교에서는 총기 사고 등 미연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시 알림을 위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허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교실 한 쪽에 스마트폰 포켓을 마련하여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이 그곳에 스마트폰을 보관하도록 한다. 만약에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을 포켓에 넣지 않고 보면 바로 뺏기고, 교장에게 인수되어 학칙에 의거 벌을 받게 된다.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 인병진 교사네 집 풍경은 실리콘 벨리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 제한에 대한 태도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초등학교 자녀는 아예 핸드폰이 없으면 고등학생인 아들도 핸드폰이 있지만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인교사네 집, 노트북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는 거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이집의 규칙이다.  침실에서는 전자 기기를 사용할 수 없으며, 고등학생이 되서도 다음날 학교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밤 10시면 취침을 해야 한다는 인교사네 집의 풍경은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을 어쩌지 못하는 우리네 가정의 풍경과 참 많이 다르다. 


by meditator 2019. 7. 17. 04:06

오늘날 '가족'은 해체 중에 있다. 개인의 안전판이 되어주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개인이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하지만, 그 '최후의 보루'가 흔들리고 있다. 사회면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직계 존비속으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는 우리 사회 기본 안전망이었던 '가족'이 더 이상은 보호막이 되고 있지 못함을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족만들기의 과정인 결혼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비혼'을 젊은이들은 당당하게 선택하고 있다. 

번거러워진 가족, 하지만 홀로 사는 삶도 녹록치 않다. 해결책이 있을까? 이러한 현대 사회의 고민에 대해 '대안적'인 모색을 하는 이들이 있다. 7월 14일 <sbs스페셜>이 찾아간 도봉구 안골 마을의 간헐적 가족 공동체 '은혜'가 그 주인공이다. 

 

 

엄마를 찾지 않는 아이들 
다큐를 여는 건 여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아침 기상, 엄마가 아이들을 깨운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많다. 한 층을 올라가 또 다른 가정인가 했는데, 거기서도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들이 '가족'이 아니란다. '가족' 대신 이들이 쓰는 명칭은 '부족', 이 부족에만 아이들이 9명이 있단다. 

가족도 사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석기 시대에나 있을 법한 부족이 있다. 이 '부족'의 아이들은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스스로 오늘 있을 '무수골 탐방'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를 찾지 않는다. 심지어 어른도 지치기 십상인 산길을 오르는 내내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어른들 사이를 누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이번에도 엄마가 아니다. '이모'란다.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땀에 젖은 머리를 묶어주는 유치반 아이들 4명을 오늘 보살피는 사람은 '이모',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의 이모가 되어주는 정영경씨다. 이렇게 이모가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사이 엄마는 공동체의 또래들과 여유롭게 산행을 즐긴다. 

14가구 50명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안골 마을의 소행주, 거기에는 평소에는 각자 개인의 삶을 살지만 가끔씩 서로에게 가족 역할을 하는 간헐적 가족 공동체 '은혜'가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함께 모여살았던 건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하던 모임,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들은 이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끼지 함께 모여살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혼자 오래 살다 보니 깊이 쌓이게 된 외로움, 공부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느라 친구 관계조차 깊게 맺지 못하던 현실에서 그들은 그 어려움을 세상이 요구하는 '결혼'이라는 과정 대신에 '공동체'라는 대안을 통해 풀어내고자 하였다. 

 

 

뜻을 모아 '소행주'
소규모 연합 공동체들이 모여 함께 살아보자는 결의를 하고 함께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작게 모여살았던 사람들 중 막상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자본주의적'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경제적 합의를 함께 할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 그런 경제적 난관에 대해 공동체 '은혜'는 융통성 있는 방침을 마련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돈을 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신 매달 '월세'를 내는 것으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을 마련했다.

2016년 5월 지상3층, 지하 1층의 공동체 주택 소행주가 완공되었다. 싱글들의 삶, 그 특성을 존중하는 공간, 하루 종일 일하는 엄마가 돌아와 '독박 육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공동 육아'의 시스템, 거기에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지하의 강당까지 소행주는 그렇게 '공동체'의 삶을 열었다. 

집을 짓는 것말고 난관은 또 있었다. 싱글들의 모임에서 시작된 공동체 만들기, 하지만 '소행주'를 만들며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래서 그들은 '이모'가 되었다. 한 달에 한번 싱글의 이모들이 아이들을 돌본다. 방과 후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운동을 하고, 들놀이를 보살핀다. 이젠 아이들도 유치원,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찾는 대신, 오늘은 누가 날 돌보는지 묻는다. 

그런데 아이를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지하 1층, 지상3층 나무로 된 계단을 맘껏 뛰어 다닐 수 있는 아이들에게 '소행주' 자체가 무한한 놀이 공간, 아파트에서처럼 '뛰지 마라', 잔소리 할 일도 없다. 놀 꺼리가 없어 일일이 놀아줘야 하는 고달픔도 없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다보면 어느 틈에 잘 시간이 되어버린다. 꼭 '이모'가 아니라도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지나가는 '어른'들이 끼어들어 함께 어울린다. '이모'의 역할은 그저 아이들끼리 '분쟁'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지켜봐 주는 정도,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잘 시간이다. 그러면 돌아와 그제서야 엄마와 인사를 하고, 엄마의 몫인 시간은 한 달로 치면 4시간, 엄마에게는 '천국'인 공동체다. 

엄마로서의 시간을 빼앗기는 대신, 공동체의 뜻이 맞는 사람들끼지 모여 좋아하는 일을 한다. 여자들끼지 요가를 한다. 싱글들끼리 오붓한 옥상의 족욕 타임도 빠질 수 없다. 거기에 어른에서 부터 아이까지 함께 모여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영화 제작도 하는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이 빠질 수 없다. 공동체가 함께 모이는 날은 웬만한 파티에, 행사 못지 않게 시끌벅적 '난장'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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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이혼해도 '가족'은 남아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홀로 지내던 크리에이터 최미정 씨가 찾은 공동체 '은혜',  홀로 지낸 시간이 길어 과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라는 그녀의 의문과 달리, 공동체의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맞이한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또 한 명의 이모다. 일주일을 공동체에서 보낸 공동체의 사람들이 바리바리 싸준 먹거리를 들고 떠나던 최미정씨는 '제가 생각했던 사람들과 많이 달랐어요, 여기 사람들은', 하며 결국 눈시울을 붉힌다. 

물론 처음 부터 다른 관계 맺기가 쉬운 건 아니었다. 습관의 차이는 원칙을 만들어 쉽게 고쳐졌지만, 각자 성격의 차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보던 사이가 함께 집을 짓고 사는 관계가 되었고, 이제 그런 공동체의 실험도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없던 아이가 생겨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온 부부가 이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의 이혼으로 혼란을 겪던 아이가, 다른 이모 삼촌들의 위로로 자신이 버림받은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곳, '이모'의 노릇은 쉽지 않지만, 대신 '가족'이 생겨나는 곳, '가족'조차 없어져 가는 시대에, '부족'을 만들어 사는 마을, 공동체 '은혜', 그 실험은 아직 진행중이지만 '고독 사회'가 가진 고민의 한 대안임에는 분명하다. 

by meditator 2019. 7. 15. 16:34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그루밍 성폭력', 그루밍 성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그 피해자들이 미성년자나 교회 신도등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조차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성폭력이 이루어져 사태를 심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자신이 당한 부당한 성폭력에 대해 차마 드러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하고 최근 교회 내 성폭력 사건들을 빈번하게 사회면에서 만나게 된다.

<시사 기획 창>은 이러한  그루밍 성폭력 중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다. 다큐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사례를 다룬건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시사 기획 창>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왜 성폭행 목사의 문제가 자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가 그 원인을 기독교 교단의 온정주의적인 카르텔의 문제로 짚어보고자 한다.  또한 범람하지만 통합되지 못하는 교단 내의 문제가 이러한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목사의 권위를 이용한 성추행, 성폭력 
대부도에 자리했던 요양원, 그곳은 박모 목사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그곳에 환자였던 장애인 여성은 오랫동안 박목사에 의해 성폭력을 당해왔다. 뺨 때리며 이곳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른다. 너를 봐줄 사람이 없다며 강제로 성폭행을 하던 목사, 그에게 당한 건 요양원 장애인만이 아니다. 

요양보호사로 그곳에 왔던 유모씨,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성폭행을 당한 걸 알게 되고,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목사가 가족에게 알린다는 협박으로 그로부터 8년동안 요양원에서 목사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당하며 요양원 식구들을 보살피며 살아가야 했다. '아버지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며 중얼거렸다고 발로 밟고 폭행을 하던 목사, 오죽하면 목사가 볼모다시피 데려온 노모가 그녀가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실어증에 걸리기까지 하셨다. 심지어 그녀의 통장까지 압수하여 경제적 이권까지 빼앗았다. 

목회자는 하나님 아버지가 정해주신 자리라 자신의 말을 안들으면 아들 딸까지도 멸망한다며 복종하고 순종하라며  권위적으로 굴던 박목사, 다른 목사의 도움으로 탈출한 피해자들은 그 설교를 통한 세뇌에서 놓여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소연한다. 그의 신적 권위 앞에 하나님 말씀에 따라 다 '아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폭력과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여전히 연인 관계라 주장하며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박목사.

 

 

치유하려 찾은 곳에서 성추행 
부산 광역시에서 이모 목사는 교회 상담 센터를 찾아온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하여 고소당한 상태다. 
마음이 상처를 안고 상담 센터를 찾아온 젊은 여성들, 개인적 위기를 겪으며 종교적 감화를 하는 이 목사에게 의지하게 되자, 몸이 따뜻해야 한다며 아랫배를 만지고, 애정이 필요하기에 치료한다며 스킨쉽을 하는 등 마음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이어갔다. 

심각한 건 이목사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2년전 다른 교회에서도 성추행으로 목사직을 그만둔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모가 찾아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평생 사죄하며 살겠다며 무마를 했었다는 정황, 그러나 그는 사죄 대신 다시 상담 센터를 열고 성추행을 일삼았다. 심지어 피해 여성이 문란하다는 식의 소문을 내며 명예훼손이라 반발하다 고소를 당하자 그제서야 목회 활동을 접었고 이후 징역 3년을 판결받고 수감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면직된 상태가 아니라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면직만 안되면 여전히 목사 
인천의 한 교회 매주 일요일마다 담임 목사 퇴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사태의 발단은 이 교회의 담임 목사 아들로 청년부를 맡았던 김목사가 청년부 여성들을 장기간 성폭력을 해왔다는 것, 이에 충격을 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모여 퇴진 예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이 미성년자이던 때부터 목사와 신도라는 종속 관계를 이용하여 비밀 연애라며 성적 접촉을 해왔던 김목사, 막상 그 사실이 알려지자 간통죄도 폐지된 마당에 1000 명이랑 연애를 해도 무죄라며 뻔뻔하게 주장하던 그는 심지어 피해 여성들을 꽃뱀으로 매도하기 까지 했다. 

목사라는 신뢰감을 받탕으로 심리적 지배 하에 오랜 시간 동안 인지하지 못한 채 당했던 피해자들, 중학교 때 부터 스승이라 믿고 따랐던 사랑한다, 평생 볼 사람이다라며 피해자들을 구슬렀다.  영적, 성적으로 멘토같던 그 목사로 인해 치료를 받지만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며 대인 기피를 하거나 심지어 죽고 싶다며 힘들어 한다. 피해자들 만이 아니다. 딸을 교회로 인도하고 함께 그 일이 벌어진 교회 사택을 찾기도 했다던 엄마는 자신이 딸을 그렇게 만든 것같다며 고통스러워한다. 

청소년 보호법을 비롯하여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5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당한 상태, 하지만 그 역시 목사직에서 면직 당하지 않아 처벌을 받은 후 다시 목사를 할 수도 있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그런 김목사를 방치했던 그의 아버지 담임목사인 또 다른 김목사, 퇴진 집회를 벌이는 신도들은 물러나라 하지만 정작 교회 측 신도들은 문자 메세지를 내세우며 단지 나이차이 나는 연애라 주장하며 그루밍 성폭력을 부인하며 아버지인 목사의 사임을 반대한다. 당연히 담임 목사는 끝까지 교회를 지키겠다는 입장. 

 

 

용서하고 사과하면 품어주는 교회 카르텔 
현재 교회법에 따르면 이단을 주장하거나, 불법적으로 교목 활동을 하지 않는 한 면직되지 않는다. 일반 직장들이 금고 이상의 형벌을 받았을 때 면직시키는 방침과는 다르다. 그러기에 중범죄로 징역을 살아도 목사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중대한 사안이라면 목사들의 모임인 노회에서 재판을 거쳐 면직될 수 있다. 하지만, 목회자 성범죄 중 면직된 사례는 단지 5건에 불과하다. 

2004년 상습적 성추행으로 교인들이 목사 면직 청원서를 제출하여 교회를 떠나게 된 전모 목사,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홍대 지역에서 개척 교회를 이끌고 있음이 밝혀졌다. 2012년부터 7년째 목회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 반발이 거세지자 대한 예수교 장로회 측은 목회에 지장없는 형식적인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을 뿐이다. 그러자 성추행 위로금으로 지불했던 돈에 대해 반환 소송까지 벌였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다. 한신 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술을 마시고 혼자 자던 여학생을 성폭행한 박모 교수에 대해 학교측은 진상 조사를 거쳐 징계 위원회에서 파면을 결정했고, 노회는 면직을 결정했다. 재판으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목사직'을 면직시킨 상징적이고 이례적인 사례,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면 다른 곳에서 가서 목회를 하고, 심지어 이 교단에서 면직당하면 다른 교단으로 옮겨 다시 목사가 되기도 하는 현실, 교단의 수가 너무도 많은 상황이 이러한 목회자의 부도덕한 조건을 방기한다. 

그와 함께 과거에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기독교적 온정주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온정주의의 이면에는 목사는 목사편이라는 교회 카르텔이 존재한다. 

그러나 송원영 건양대 심리 치료학과 교수는 이러한 용이한 사과와 용서의 온정주의가 오히려 성범죄자를 방조하고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위적으로 다가가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 피해자를 괴롭히는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 그에 대한 쉬운 용서는 그 자신이 스스로 합리화하는 계기가 되고,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범죄는 정교화되고 대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교단을 초월한 성범죄 등 중범죄에 대한 통합적 법안이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교단'이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 그래도 범교단적 데이터 베이스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겠냐는 자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려 900만명, 가장 많은 신도수를 가지고 있는 종교, 기독교, 과연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성범죄 목사들과 관련하여 상식적이고 사회적인 책무를 스스로 짊어질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9. 7. 10. 04:09

지인들끼리 모인 자리, 한 사람이 자랑하듯 말한다. 자신의 딸내미가 학교 앞에서 연예 기획사에서 준 명함을 받았다고.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연예인이 될 것처럼 설레인다. 그러자, 맞은 편에 앉아있던 다른 사람이 자신의 딸도 그렇게해서 연예기획사를 찾아갔는데 밑빠진 구멍에 물붓듯 끝도 없이 돈을 요구해 결국 연예인이 되기를 포기했다며 잘 알아보고 시작하라 충고했다.

그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 '명함'을 받았다는 지인은 '내 딸은 다르다'는 듯했는데, 과연 내 자식이 '연예인'이 될 만하다고 한다면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바로 이런 내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라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헌신적인 마을을 이용하는 연예 기획사들이 있다. 더구나 최근엔 E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여중생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드러나며 극단적 사례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연예 기획사의 실태를 7월 5일 <추적 60분- 돈벌이로 전락한 아이들의 꿈, 아역 연예 기획사의 실체>에서 추적한다. 

 

 

ATM이 된 연예지망생 부모들
8살 박유라(가명)는 A연예 기획사 오디션을 통해 지상파 방송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러자 A 연예 기획사는 방송 출연을 명목으로 전속비 5천만원을 요구했다. 엄청난 금액에 주저하던 엄마, 하지만 연기자가 되고 싶다며 울고불고 하는 딸의 꿈에 엄마는 깍고 깍아 집을 담보로 3천만원을 건넸고 A 소속사와 6년의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전속비'로 엄청난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2018년 방송에 출연할 당시 소속사는 이렇다할 매니지먼트를 해주지 않았다. 먼 거기를 운전하며 다니는 것도 엄마 몫이었고 의상 협찬이 안된다 하여 직접 옷을 사야만 했다. 1년이 지났지만 출연료를 못받았다. 

이런 부당한 대우에 유라 엄마는 전속 계약 해지 내용 증명을 보냈다. 그러자 도리어 A연예 기획사는 그간 유라의 연기 지도 등에 들어간 비용을 빌미로 손해 배상 1억을 걸겠다고 했으며,  심지어 전속 계약에 의거 앞으로 6년 동안 활동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놓인 유라와 엄마, 엄마는 엄마의 섣부른 결정이 딸의 발목을 잡은 셈이 되었다고 자책하고, 딸은 앞길이 막힌 상황에 좌절하며 눈물만을 흘렸다. 

이에 손성민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협회장은 A연예 기획사가 요구한 전속비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부모가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헤어, 자동차 주유비, 식대 등 이른바 활동 비용은 온전히 연예 기획사 몫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몇 년 동안을 담보로 잡은 진행비에 대해 얼마나 활동할 지도 모르고 뜰 지도 모르기에 돈을 받겠다는 건 전적으로 연예 기획사의 무능함이나 안일함을 드러낸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라만의 사례가 아니다. 지난 해 6월 한가람(가명)의 어머니를 비롯한 3명은 자신들의 아이가 소속되어 있는 연예 기획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은 각자 300에서 600까지 드라마 출연을 빌미로 기획사에 돈을 주었던 것, 그런데 알고보니 이미 그 드라마에는 다른 아이가 내정되어 있었고, 가람이를 비롯한 아이들의 출연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던 상황. 
또 다른 사례로 민철이는 상업 영화 출연을 빌미로 300여 만원이 돈을 요구당했다. 출연이 안되면 반환하겠다는 조건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돈을 뜯긴 부모들은 자신들이 '현금인출기'였다며 자조한다', 연예 기획사에게 자신들은 그저 돈을 물고 있는 물고기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진이 없어도 출연시켜주겠다며- 전속비 요구 
2017년 기준 19세 이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연예 기획사는 120여개에 이른다. 그런데 과연 이들 중 몇 곳이나 아이들이 믿고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일까? 그 실태를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제작진은 한 명의 아이를 내세워 각 연예 기획사에 프로필을 돌리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프로필을 돌린 10개의 기획사 중 무려 7개의 기획사가 연락을 해왔다. 하루 만에 연락이 온 곳도 있었고, 심지어 아이를 만나지 않고도 출연을 장담하는 소속사도 있었다. 

사진도 안보고 장담을 하는 연예 기획사를 찾아가보니 뜻밖에도 그곳은 술집이었다. 이 술집을 하는 연예 기획사에 소속되었던 한 아이, 귀티가 나서 단역이라도 바로 출연시킬 수 있다며 부모 역할을 운운하더니 소속비 2천을 요구했다고 한다. 송승헌 영화에 출연시켜 준다했는데, 출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작발표회라 했는데 알고보니 전통 궁중의상 대회였다. 

이렇게 돈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들은 연예 기획사와 학원을 동시에 운영하는 방식이다. 제작진이 내세운 아이가 오디션을 본 5곳 중 3곳도 이런 식이었다. 오디션이 끝나자 마자 연기 연습을 해야 한다며 학원에 등록을 종용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맡을 배역이 있다며 학부모를 유혹한다. 그리고 수업료 220에 소속비 88만원으로 반강제적으로 당일 계약을 할 것을 종용한다.

제작진이 만나본 이 기획사에서 일했던 직원에 따르면 마치 피라미드식 사업처럼 직원들에게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덧붙이며 아이들을 끌어오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에 100 명정도의 아이들을 직원들이 불러모았고 이 아이들을 통해 월 2~3억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출연작이 없어 부모들이 항의하는 것에 대비해 가짜 오디션까지 보기도 하며 눈속임을 했다는데. 

이렇게 아이들을 돈벌이 대상으로, 부모들을 '현금인출기'로 삼는 연예기획사들의 방식은 동일하다. 우선 가전속, 전속계약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전속'에 따른 비용을 부모들에게 요구한다. 또한 교육비 및 프로필 사진 촬영비등을 따로 부담시킨다. 거기에 더해 출연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등 각종 비용을 전적으로 부모의 몫으로 돌린다. 

심지어 부모들이 돈이 없다고 하면 '카드론'을 운운하고, 아이의 미래가 달렸다며 보험을 들었다면 약관 대출을 하라며 종용한다. 그런 방식으로 한 연예 기획사가 아역 연기지망생 15명을 상대로 5억을 편취한 혐의로 검찰에 송취되었는데, 제작진이 만나본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에 송취된 사람들 외에 2000에서 6000 만원까지 총 8억 2000만원 정도를 갈취당한 45명의 명단이 더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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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만 바꿔달고-부실한 법망
더구나 심각한 것은 이들 연예 기획사가 막상 사기 혐의로 걸리면 '바지 사장'으로 내세운 사람을 앞세워 법망을 피해간다는 것이다. 사기 혐의로 고소된 I기획사, 하지만 막상 이 기획사 사무실에서 찾은 계약서는 BIG엔터테인먼트였다. 업계에서 평판이 나빠진 BIG이 I로 간판만 바꿔단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알고보니 BIG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W, 그리고 다시 그 이전엔 N이란 이름을 가지고 사업을 했었다. 이렇게 카멜레온처럼 이름을 바꾼 기획사들의 실질적인 대표는 윤이사, 그리고 그의 남편 박대준이었다. 심지어 I 매니지먼트의 돈을 '차입 면제' 방식으로 2억 9백만원이 F매니지먼트로 흘러들어가 박대준의 딸인 박성화의 연예활동에 씌여졌다.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간판을 바꿔치기하며 페업과 창업을 밥먹듯이 하고 신분 세탁을 하는 연예 기획사들, 그러나 현실적인 단속 방법은 마땅치 않다. 

고 장자연 씨 죽음 이후 정치권을 비롯하여 연예계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일정 요건을 갖춘 기획사만 매니지먼트 사업을 할 수 있도록하는 대중 문화 예술 기획업 등록제가 실시되었다. 또한 청소년 대중문화 예술인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을 배려하고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2014년 대중 문화 예술 산업 발전법이 제정되었다. 

제작진이 프로필을 돌렸던 아역 연기자 매니지먼트 중 4군데가 미등록 상태였다. 그러나 그 단속에 대해 해당 구청은 형사적 처벌 규정을 운운하며 경찰로 떠넘겼다. 즉 '사기 ' 사건이 될 때가지는 관리나 감독이 되기가 힘든 실정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업계 진입 장벽이 높다는 항의를 받으며 관련 업계 4년 근무라는 규정을 2년에서 40시간 교육 이수로 낮췄다. 여전히 유린당하고 있는 미성년 연예인 지망생들의 꿈은 보호받을 수 있을까. 

다큐는 얼마든지 부모들의 주머니를 털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는 현 아역 연예 기획사의 실태에 촛점을 맞췄다. 하지만 과연 집을 담보로 잡아 몇 천만원을 쥐어주고서라도 자신의 아이를 '키즈 그룹'으로 데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수요가 있는 한 그 욕망의 에스컬레이터에 편승한 사기가 없어질 수 있을까? 돈을 들여서라도 뜨고 보자는 엘도라도가 된 연예계, 그 '헛점'을 노린 연예 기획사와,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이익만을 고려한 제도와 법의 현실은 악순환의 반복이다. 

by meditator 2019. 7. 6. 15:50

이제는  드라마계의 전설이 된 <응답하라> 시리즈, 그 신드롬의 시작은 <응답하라 1997>이었다. 19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에 열광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첫 수능을 치른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희생양이 된 세대, 군대 가기 전에 카세트 테이프를 듣다가 제대를 하니 MP3를 듣는 세상을 만난 세대, 바로 X세대이다.

 

 

도무지 어디로 튈 지를 몰라서 정의내릴 수 없다고 했던 당돌한 아이들, 87년 6월 항쟁과 88 올림픽을 경과하며 한층 자유로워지고 한결 풍요로워진 한국 사회 속에서 스타를 향한 팬덤 문화와 소비적 열풍에 앞장 서며 '문화 자본주의'를 만끽했던 세대 대 그 '자유'로웠던 젊은이들이 어느덧 마흔 줄의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어른'이 된 X세대의 처지가 난처하다. 한때는 어디로 튈 지 모를다는 당돌한 세대였던 이들이 이제 '윗분'들이라는 보수를 자처하는 세대와, '자신'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내세우는 '아랫것들'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6월 23일 SBS스페셜은 '지금까지 이런 다큐는 없었다'며 1800 직장인을 위로하는 초밀착 리얼 오피스 스토리, <마흔 팀장님은 왜 그럴까>를 통해 어느덧 사회의 중견이 되어버린 X세대의 고충을 다룬다. 

낀세대 팀장님의 고뇌는?
44살 이현승씨는 가구 회사의 디자인 팀장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무님의 호출, 백화점 매장 중심으로 상품을 판매하던 회사는 최근 2030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신규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제 2달 하지만 생각만큼 오르지 않는 매출로 인해 윗선에서 불만이 '하달'되었다. 하지만 이 팀장의 고뇌는 이제부터가 더 큰 산이다. 기성 세대의 관점에서 '매출이 곧 회사의 인격'이라며 '매출' 중심으로 요구된 사항을 팀원들에게 설득할 일에 이 팀장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매출'을 놓고 세대간 다른 의견, 그 사이에 낀 이 팀장은 윗선의 의견을 젊은 팀원들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해야 하고, 아랫 세대의 주장 또한 완곡하게 전달해야 하는 '동시 통역'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처지이다.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가 이 팀장까지의 세대가 일을 대하는 시각이었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피하지 못할 일이 오며 그만둬 버리니 그 세대간 달라진 입장 사이에서 낀 세대 팀장은 이쪽 설득하랴, 저쪽 의견 전달하랴 고충이 많다. 그러다 퇴근하고 돌아가면 나는 누가 위로해 주지 라며 외로움을 느낀다. 

 

 

또 다른 40대, 온라인 영업 팀장인 이규훈 팀장은 아침 일찍 출근하여 하루의 업무를 시작한다. 그보다 늦게 온 팀원, 팀장은 팀원이 일찍 오고 싶을 거라 하지만 , 정작 팀원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출근 시간도 되기 전에 일찍 나와 업무를 시작하는 팀장님이 멋지고 존경스럽지만 왜 이런 것까지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니. 말 그대로 한 회사 서로 다른 '동상이몽'이다. 

첨단의 IT를 기반으로 한 회사라고 다르지 않다. 수평 문화를 내세우는 배달앱 회사는 직제를 없애고 모두 '~님'으로 호칭을 통일했다. 40대 팀장급의 김성회 씨도, 김성회 님이요, 부사장인 박기웅 씨도 박기웅 님이다. 하지만 수평적 호칭에 사내 수평적 문화는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회사 한쪽에 나란히 앉은 김성회 님과 박기웅님, 두 사람 사이에 비어있는 한 자리처럼 두 사람 사이의 '여백'보다 더 큰 '여백'이 젊은 사원들과의 사이에 놓여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버거운 X세대 
19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의 자유분방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른바 X세대들이 어느덧 사회의 중견 세대가 되었다. 마흔 줄의 '팀장' 급이 된 세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그들은 사회에 나와 직장 생활을 하며 '나중에 저 선배처럼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꼰대 상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맘이 강하다. 그래서 '아랫 사람' 눈치도 많이 본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쉽지 않다.  '꼰대'와 '선배' 사이의 고뇌가 오늘도 그들의 주름을 한 겹 더한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X세대 팀장님들을 좌절시키는 세대는 이른바 '밀에니엄 세대'이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하여 자라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를 보고 자란 세대들, 그들은 조직에 헌신적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야근이 곧 애사심의 표현이라는 것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야근을 할 수도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남아서 좀 더 하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윗선의 지시로 억지로 해야 하는 야근은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일 뿐이라며 단호하다. 미티에서 전달되는 윗선의 지시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팔짱을 끼고 그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 셈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밀레니엄 세대'를 보면서 팀장님들은 왜  저 정도도 안할까 속이 탄다. 

 

 

이 두 세대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다. 평생 직장이 없어진 시절을 맞이한 밀레니엄 세대에게 선배 직장인들이 몸바쳐 직장에 헌신하는 자세가 받아들여 질리 없다. 외려 나만의 경계를, 나만의 시간을 회사가 침범하는 게 달갑지 않다. 일과 삶의 균형을 조율하며 살아가고 싶은 세대의 취향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소속감'과 함께 달라진 문화의 간극도 크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윗 세대의 사고방식은 '언감생심'이다. 점심 시간에 같이 식사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화합'을 위해 시작된 자리가 대부분은 결국 '근황 토크'의 딱딱한 자리로 변모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내세운 대화가 결국은 선배의 '나 때는 이러지 않았다.', 혹은 '나는 이렇게 했다'는 식의 훈계조의 이야기로 쏟아부어지고 후배는 듣고 있게만 된다. 

프랜차이즈 식당업체 새로운 메뉴 개발을 두고 세대간 간극은 다시 한번 확인된다. 막걸리 위에 생크림이 웬말이냐는 기성 세대의 반응과 달리, '비쥬얼'을 중시하며 SNS인증샷을 우선하는 젊은 세대에겐 '대박 아이템'이 되었다. 이렇게 '맛'도 중요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젊은 세대의 달라진 입맛, 나아가 가치관에 결국 한때 X세대였던 40대 중견 간부들은 그 '변화의 속도'를 버거워 한다. 과연 그 '변화의 속도'를 달라진 세상을 제대로 따라내고 있는가 라는 번민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세상, 그 방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낀 세대'로서 고군분투한다.

지금까지 이런 다큐는 없었다며 야심차게 40대 팀장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간의 '전쟁'과도 같은 조직 갈등을 다룬 <SBS스페셜> 초밀착 리얼 오피스 스토리를 내세운 만큼 생생한 '조직'내의 목소리들이 전달되었다. 한국이라는 한 사회, 한 회사에 몸담고 있지만 그저 나이가 달라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적 성장 배경과, 서로 다른 경제적 환경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빚어지는 갈등에 대해 다큐는 생생한 사례를 바탕으로 '세대 갈등'을 그려내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기성 세대가 되어가는 586 세대와 그런 기성 세대와는 다른 사회 경제적 환경으로 인해 한층 개인주의화되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젊은 세대의 전선에 더해, 그 사이에 끼인 한때 X세대였던 40대 중견 세대를 부각시키고자 한 점은 신선한 시도이다. 

by meditator 2019. 6. 25. 04:41

'아이구 죽겠다', 우리에게는 일상화된 하소연이다. 하지만 저 '빈 말'이 진짜가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면. 6월 17일 <mbc스페셜> 지난 3월 9일 고인이 된 송영균 씨의 '죽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1987년생 송영균, 스물 여덟이 되던 해, 화장실에서 피를 쏟았다. 자고 일어나니 침대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대장암 4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공익 인권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에 입학한 지 3개월만의 일이었다. 

스물 여덟의 대장암, 그리고 4년 
대장암입니다. 정액을 보관해야합니다. 불임이 될 수도 있어요. 성기능을 잃을 것 같습니다. 간에도 전이가 되었네요. 무려 열 개의 종양이 있어요. 이런 선고가 매일 내려졌다고 한다. 직장을 자르고, 간에서 폐로 전이된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다섯 번째 수술을 했다. 그렇게 4년 여가 흐르고 이제 그는 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지 않는다. 두 세달에 한번씩 찾는 병원, 이번에도 어김없이 골반이 아프더니 종양이 자랐다. 암수치도 올랐다. 수술을 거듭하면서도 다녔던 로스쿨이 이제 한 학기가 남았다. 거의 다 끝났다 싶었는데 못끝낼 것 같다. 

이렇게 증상과 상황을 나열하면 송영균씨는 그저 말기암 환자일 뿐이다. 하지만, 송영균 씨는 말한다. 그렇게 사는 것도 삶이고,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고. 다큐는 인생의 마지막 길을 최선을 다해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하는 송영균 씨의 일상을 지켜보는 제작진의 시선, 그리고 그와 함께 송영균 씨 자신의 셀프 카메라가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암으로 인해 자신이 꿈꿨던 로스쿨 이후의 삶을 실현할 수 없게 되면서 송영균 씨는 고민했다. 죽을 때까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삶을 만끼하는 사람들은 미처 생각지못한 고민, 아니 사실 결국은 누구나 같은 종착지이지만 먼 미래일 거라는 섣부른 예단으로 인해 하지 않는 고민, 하지만 송영균 씨에겐 절박한 과제,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많은 책을 섭렵했는 그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철학, 죽을 때가지 읽기'

단 한 글자도 안 읽어도 책을 읽은 거 같을 수 있도록 10p의 책 소개를 10시간 넘게 작성했다. 하지만 그는 나와주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알려줄 수 있어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줘서. 그렇게 송영균씨는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스스로 찾아냈다.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 몸이 그 지경인데 뭔 독서모임이냐고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커져갔다. 하지만 송영균씨는 호흡이 가빠지면서도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먼 미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을 일어준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쁘다고 한다.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축하받고 싶어요 
그러나 암은 늘 그를 이겼다. 그가 건강해지고 싶은데, 암이 건강해져 가고 커져만 갔다. 그의 몸의 주요한 부분을 정복해 버렸다. 더는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송영균씨는 이제 죽음을 준비한다. 

아무 생각없이 의도없이 찍었던 사진이 죽음의 자리에서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것이 싫어 친지와 함께 영정 사진을 찍기 위해 어릴 적 동네를 찾았다. 일상의 한 장면처럼 찍겠다는 포토그래퍼의 의도에 그는 늘 그랬듯이 환하게 웃는다. 

그가 31개월 되던 해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자신의 짧은 삶을 회고한다. 아버지가 없어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간,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어머니를 도와야 했던,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이제 죽어가면서 두고갈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둔다. 

그리고 10년 동안 가게 문 한번 안닫고 치열하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구두까지 챙겨신고 한껏 멋을 부린 영균씨, 어머니의 사진 속에, 기억 속에 멋들어지게 뿌듯한 아들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한껏 챙겨입은 정장으로 손수 음식을 해서 마지막 파티를 준비한다. 2018년 연말, '영균이 드리는 저녁 한 끼', 사랑했던 사람들, 그가 자신의 투병기를 올렸던 sns의 친구들과 함께, 이제는 더는 할 수 없을 한 끼를 자신에 대한 좋은 기억을 담아가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다. 2018 '영균 어워드'라는 갖가지 기지 넘치는 상들의 수상과 함께.

숨쉬기가 힘들어 쎅쎅거리면서도 이어갔던 독서 모임, 입원의 권유에도 휴대용 산소 마스크로 버틴 나날들, 하지만 결국 119가 왔다. 3월 9일 4년 9개월 동안 그를 괴롭히던 암으로 부터 송영균 씨는 자유로워졌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안락사'를 고민했던 영균씨, 우리의 실정으로 인해 대신, 그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겠습니다'라는 서명으로 대신했다.

 

 

암과의 전쟁에서는 비록 암이 승리를 거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끝내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던 사람, 송영균 씨는 그저 말기암 환자가 아니라, 삶의 끝에서 '잘 죽어갔던( well dying)'  선구자로 오래오래 귀감이 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가 바라던 대로 꽃피는 화려한 봄날 그의 추도식을 마련했다. 그가 좋아하던 와인잔을 들고 , 그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그가 쓴 글을 읽으며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수고했어, 영균 !

마지막 셀프 카메라에서 송영균 씨는 말한다. '너무 슬픈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전 참 열심히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되돌아 보니 즐거웠던 일도 많았네요.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축하받고 싶어요'

고령화, 가족 해체와 맞물려 최근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자기 주도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웰 다잉(well dying), 지난 2009년 대법원에서 인정한 '존엄사' 등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mbc스페셜이 마련한 송영균의 씨의 '웰 다잉'(well dying)은 의료적 존엄사를 넘어 삶의 한 과정으로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에 대한 자기 주도성을 부각시킨 문제적 작품이다. 

by meditator 2019. 6. 18. 05:22

평사원의 94.9%, 주임, 대리급은 98%, 과장급 89.7%, 우리 사회 직장인들의 평균 95%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한다. '타버리다, 소진하다'는 뜻의 번아웃 증후군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마치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나타내는 심리학적 용어로 2019년 세계 보건기구는 '번아웃 증후군'을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정의내렸다. 

6월 3,4일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된  ebs 다큐 프라임은 만연해 가는 번아웃 증후군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해 본다. 바로 <휴식의 기술>이다. 

 

 
당신은 일이 아니다 -번아웃 사회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던 알렉스 수정 킴밤은 일주일에 50~60시간씩을 일하다 번아웃에 이르렀다. 일하는 시간이 많기도 했지만, 업무와 관련 해도 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미처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늘 시달렸다. 무한 경쟁 사회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 그리고 고객을 응대함에 있어 최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언제든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강박이 과로를 당연하도록 만들었다. 알렉스만이 아니다. 일을 다하고 쉬어야지 하지만 일을 다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 사람들은 항상 일을 하고 있다. 

광고 대행사를 운영하고 잇는 47세의 강준구씨는 신혼 여행을 제외하고는 20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 3일 이상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휴가를 가도, 집에 있어도 늘 그는 일하는 중이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린 거 같지만 해가 바뀌면 마치 택시 미터기를 0으로 꺾듯이 마라톤이어야 할 인생 여정을 100m 달리기를 420번 하듯 달려온 시간, 결국 그의 몸이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 면역 공격'을 당하고야 만다.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시대를 달려온 이들은 자신들이 재수 학원에 붙여졌던 '오늘 쉬면 내일 뛰어야 한다'던 문구가 바로 자신들 세대를 대변한다고 입을 모으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견 직장인들. 

IT업계의 프리랜서 40세의 차경묵 씨의 책상 위에 타이머가 놓여있다. 20분 돌아가고 울리는 벨, 그는 5분을 쉬고 다시 타이머를 돌린다. 그렇게 타이머 8바퀴에서 16바퀴로 돌아가는 일상, 만약 자신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아이가 생기고 '가장'이라는 중압감이 프리랜서라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지난 몇 년간 개운하게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연달아 마시는 커피로 반 수면 상태에서 일을 해왔다. 자신의 몸에게 미안해졌던 상황, 결국 호흡 곤란이 왔다. 쉬며 자기 자신을 돌보라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17살 IT업계에 들어와 20년 동안 자신을 위해 가져본 적이 없다. 아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줄 몰랐다는 게 그만이 아니라 그와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소회이다. 

명상하는 물리학자로 알려진 미나스 카파토스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재능은 많지만 행복하지는 않다고 단언한다. 과도한 경쟁 체제 속에 놓인 사람들, 미나스는 반문한다. 그 경쟁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니냐고.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할 거 같은 강박, 목 말라 죽어가는 현대인들 앞에 물 한 컵과 1억 원이 놓여있다면,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라고 그는 묻는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 휴식을 주는 사회
과로 사회의 상징적인 나라와 같았던 일본, 저출산으로 인해 노동 인구가 줄어 상대적으로 일하는 세대의 노동 하중량이 늘어났다. 그와 함께 휴식에 대한 갈망이 다앙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도쿄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휴식법이 등장했다.  사람이 흰 보자기 위에 앉아있으면 도우미가 그를 보자기로 감싸고 동여매기 시작한다. 이른바 성인 보자기, 오토나마키이다. 따스한 엄마 자궁에서 놓여난 아기들에게 엄마 자궁과 같은 환경을 제공하려 속싸개로 꽁꽁 싸매듯 어른들을 싸매고 뉘여준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난 사람들,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고 편안해 한다. 보자기에 동여매져서야 숙면을 취하게 된 현대인들, 

이런 '휴식 산업'만이 아니다. 2019년 노동법을 개정하며 초과 근무를 제한하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제를 취하는 등 일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변화를 '법'으로 반영했다. 정부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휴가, 휴식'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무조건 많이 일해야 한다던 방침에서 변화하여 충분한 휴식과 휴가가 외려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변화의 움직임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워케이션', 업무차 간 출장 과정에서 개인에게 '휴가'의 시간을 제공하는 식으로 일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일정을 배려해 주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건설 컨설턴트로 일하던 쿠리야마 타카시, 역시나 번아웃을 경험한 그는 30살이 될 때가지 자기 삶의 연표를 그려봤다고 한다. 30살이 될 때까지 하고 싶었던 일보다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을 해오며 살아왔던 삶, 그래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해오던 일에서 벗어났다. 카이야마 밸리 위성 사무실에서 귀촌한 동료들과 함께 마을 일을 하고 이쓴ㄴ 수나다 리사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 생활에서 늘 피로감을 느끼던 그녀는 철 따라 피고지는 꽃을 보며 살아가는 지금이 바로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라, 행복이라 자부한다. 하지만, 모든 도시인들이 쿠리야마나 수나다처럼 자신이 하던 일을 그만 둘 수는 없다.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휴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 마음 챙김
자신이 하던 일로 부터 탈출할 수 없는, 혹은 탈출하고 싶지 않은 직장인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외로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다. 그저 하루 적게는 5분에서 10분만 투자하면 된다. 바로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이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40세의 김미루 씨, '빠르게 실행하라'는 슬로건의 회사에서 그녀 역시 5년 전 번아웃을 경험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MBA를 밟고, 승진을 해왔던 시간들, 남들이 보기에 좋다는 걸 얻기 위해 자신을 바쳤던 시간,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우울감에 한없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 부터 5년이 흐른 후 그녀는 달라졌다.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 일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일상화된 생활에서도 거뜬하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사내에서 직원들과 함께 '마음 챙김'의 시간을 가지며 '스트레스' 의 반복인 업무적 긴장감을 풀어낸다. 이렇게 명상으로 부터 시작된 '마음 챙김'은 이제 식생활로 이어져 건강한 삶의 토대가 되고 있다. 

어번 리저널 공원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구가야 아키라 씨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이다. 하루 10시간 환자들과의 상담 등 정신 노동에 집중하는 그에게 마라톤이라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운동은 정신적 피로를 풀어내는 과정이 된다. 또 하나 그에게 중요한 스트레스 해소의 방식은 바로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뇌를 휴식하게 만든다. 집의 기둥에 해당되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핵심 회로인 DMN(defalt mode network)는 피로가 누적되면 과열되고, 휴식을 취하면 늦어진다. '명상'과 같은 과정을 통해 뇌는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이 받아들였던 정보를 '기억'으로 축적하고 강화한다. 또한 감정 인식과 감정 기억을 좌우하는 '불안'과 '우울'도 가라앉게 된다. 

심지어 캘리포니아 대학의 앨리사 에델 박사에 의하면 명상에 의해 세포 속 염색체를 보호하고 덮개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가 길어지고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 -그런데 내가 치유됐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던 차경묵 씨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1박2일 라이프 쉐어를 하기로 했다. 함께 한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의 화두'를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던 핸드폰과의 잠시 이별인 디지털 디톡스로 시작된 모임, 익숙한 것과 거리 두는 시간을 가지고 대신 그 시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을 만나는게, 심지어 전화조차도 두렵다며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내든 차경묵씨, 얘기 나눌 상대가 마땅치 않다던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꺼내든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방에게 공감하고, 조언을 했을 뿐인데 '나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하는 참여자들,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 이유를 스탠퍼드 대학의 '연민과 이타심 연구 센터'의 제임스 도티 박사는 '연민'에서 찾는다.  일찌기 달라이 라마는 '연민을 가질 때는 이기적이어도 괜찮은 유일한 시간'이라고 했듯이, 타인을 돌보고 친절하게 대할 때 정작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민이란 무엇일까? '관계의 동물'인 인간, 나와 다른 사람 사이, 그 사이에 교감이 모자라면 '냉담'이 되고, 지나치면 '전염'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 두 상태가 지속되면 '번아웃'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는데, 나와 타인 사이의 적절한 교집합이 바로 '연민'과 '공감'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자신'이다. 우선 자신에게 친절해 지는 것,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것, 자신을 위한 휴식을 갖는 것, 스스로에 대한 저항을 멈추는 '명상'의 시간을 통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상대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하는 '연민'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휴식의 기술>은 '번아웃'을 피해갈 수 없는 사회를 사는 이들을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과학적'인 지침서이다. 또한 '번아웃'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도망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구명 보트'이자, 휴식할 줄 모르는 사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휴식할 줄 모를 것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9. 6. 12. 00:19

커피 시장 규모 11조원, 1년간 한 사람이 소비하는 평균 커피가 512잔, 대만의 72잔, 일본의 195잔을 훨씬 앞질렀다. 20대만 놓고 보면 571잔으로, 미국의 548잔보다 앞섰다. '커피 홀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커피에 빠져살까? 그 이유를 '자칭 타칭 커피 중독자' 피디가 발품을 팔아 그 원인을 찾아본다. 

 

 

생존의 각성제 
김포 공항 화물청사 트럭 운전사인 박지용씨는 밤샘 운전으로 화물을 나르는 '잠을 잊은 그대'이다. 그리고 '잠을 잊기 위'한 가장 필수템은 다름아닌 '커피'이다. 그의 트럭 한 켠 아이스박스 안에 집에서 타온 블랙 커피와 함께 캔 커피가 즐비히다. 주행중에 마땅히 차를 대고 살 곳이 마땅치 않아 언제나 '비상 식량'처럼 준비해 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비상 식량' 커피에 더해 휴게소에서 식사 후 달달한 믹스 커피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옵션이다. 

그는 왜 그렇게 수시로 커피를 마실까? 밤을 세워 속도를 내서 고속도로를 달려 빠른 시간 안에 화물을 날라야 하는 그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바로 '졸음 운전'이다. 졸음이 오면 정신이 몽롱해 질 뿐만 아니라, 반응 속도가 느려 자칫 대형 사고의 위험을 낳는다는 건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장거리 밤샘 운전이 곧 수입과도 연결되는 그의 직업적 특성이 '커피'로 이어진 시간을 만든다. 

 

 

트럭 운전사 박지용씨 만이 아니다. 야구 학원 강사를 하면서 학생들 차로 이동시키는 일도 맡아서 하는 김태완씨 역시 '커피에 중독된 남자'이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커피, 그래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깨어나는 거 같다는 김태완씨의 경우 하루 종일 커피를 달고 산다. 배우가 꿈이었지만 생활을 위해 시작했던 야구 강사, 어린 학생들을 차에 태워야 하는 상황, 거기에 계속된 훈련이 그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이를 위해 그는 습관처럼 커피를 들이킨다. 제작진의 실험 요구에  커피를 끊어보니 마치 잠이 깨지 않은 듯 하루 종일 몸이 무겁고 나른한 상태임을 호소한다. 

커피를 왜 마시는가란 이유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33%가 졸음을 쫓기 위해, 25%가 식후, 12%가 업무 집중을 위해 라는 결과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각성제'로서 커피를 선택하고 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커피, 커피의 전세계적 확산에는 바로 이 '각성제'로서의 역할이 컸다. 예멘을 통해 메카로 전파된 커피, 예배를 드릴 때 졸음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군에 잠을 쫓기 위한 수단으로 커피가 대량 공급되었고, 소총의 밑동에 그라인더가 달려 졸리면 갈아서 먹는 '잠을 쫓는 특효약'이 되었다. 

특히 1946년 인스턴트 커피 등장 이후 1,2차 세계 대전에서 커피는 군 필수품이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시간 반복 노동에 있어 커피의 카페인은 잠을 깨는 '각성제'로서 전세계적인 대중적 음료가 되었다. 

일찌기 고종이 커피를 애용하였다 했지만 해방 후 미군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커피는 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수면 시간을 줄이고 노동에 집중하기 위한 '각성 효과'에 더한 에너지원으로서 산업 현장의 필수 품목이 되었다. 특히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은 전문가가 타주는 커피에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커피로 '커피의 개별화, 대중화'를 선도하여, 커피 문화의 평등화를 이루었다. 

 

 

 

 


문화가 된 커피 
시작은 '각성제'였지만 어느덧 커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문화'가 되고 있다. 믹스 3개, 거기에 설탕 두 스픈, 피디가 마셔보니 달아도 너무 단 커피, 하지만 충북 음성 맹동면 통통리 주민들에게 이건 고단한 농사일을 이겨내게 해주었던 '꿀맛'이었다. 심지어 처음 커피가 등장했을 때 그 쓴맛때문에 회충약 대신 먹기도 했다고. 그랬던 커피가 이젠 마을 사랑방의 없어서는 안될 단골 메뉴가 되었다. 

통통리 손현수 이장님,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농약사에 들러 커피 한 잔, 어디 본인 뿐인가, 들른 김에 동네 이 형님, 저 형님 불러서 그 분들 오실 때마다 같이 한 잔, 조합 들러서 한 잔, 노인정 들러서 한 잔, 농사일하다 새참으로 한 잔, 그렇게 하루 7~8잔의 커피를 그는 '정'이라 정의한다. 

전주 한옥 마을에 아직도 생존해 있는 1952년 개업한 '삼양 다방', 그곳은 '다방' 역사의 산증인이다. 쓴 커피를 아침에 마시면 속을 버릴까봐 계란 노른자가 함께 제공되던 '모닝 커피'의 시절, 다방은 문화의 공간이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연락처'가 되었고, 그곳에서 '선'도 보고, '사업'도 하던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인스턴트 커피'의 시절을 지나 '90년대 한미 FTA의 여파로 원두 수입이 증가하고 스타벅스 등이 등장하면서 '다방'은 이제 '까페'로 그 바톤을 터치했고, take out 열풍에, 조용한 도서관보다, 너무 편한 집보다도 까페에서 공부가 잘 된다는 '카공족'에, 도시인이 즐겨찾는 나들이 명소로 우리 시대 '까페'는 자리매김된다. 

 

 

심지어 커피는 '사회 생활'의 도구가 된다. 인터넷 방송국을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는 최승구씨, 다른 사람과 달리 커피를 많이 마시면 심장이 두근대고 잠을 이루지 못해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마치 통통리 이장님이 동네 사람들 만날 때마다 커피 한 잔 하듯,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끼리 만나면 '아메리카노 한잔'이기에 '커피'를 굳이 마시지 않는 최승구 씨의 사회 생활은 매번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직장인들의 30% 이상ㅇ 점심 식사 후 함께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일상인 세상에서 사업차  '억지로' 마시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한다. 

괜찮은 커피 전문점이 하나 생기면 몇 년 안에 반경 50m 안에 전문점이 60개로 늘어날 정도로 이미 소비량이 공급량을 초과한 현실, 최근 오픈한 '스페셔티 커피' 매장에 사람들이 하루 종일 장사진을 이루는 것처럼 커피는 이제 '놀이'가 되어간다. 2007년 3조원에서 10년만인 2017년 11.7조원으로 늘어난 시장,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늘어났다고는 여전히 성인들 여가 활동의 72%가 tv 시청인 사회, 그러기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 '까페'는 우리 시대 중요한 문화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우 국산차의 가격이 내려가도 취향을 바꾸지 않겠다고 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홀릭'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by meditator 2019. 5. 24.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