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받침이었다. 프레디 머큐리를 처음 만난 건 학창 시절, 그 시절에 '우상'들은 책받침에 도배되어 있었다. 국내의 아이돌이 아직 등장하기 전이던 그 시절에 '레이프 가렛'과 '숀 캐시디'에 소녀들은 열광했었고, 그들의 얼굴은 학교 앞 문구점에 이른바 '굿즈'같은 책받침 등으로 걸려 있었다.


 

그렇게 외국의 아이돌들이 도배한 사이에 이질적인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프레디 머큐리, 그 친구는 자칭 '퀸'의 열성 팬이었고, 그의 말에 따르면 프레디 머큐리가 이끄는 퀸은 미국의 아이돌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뮤지션'이라는 것이다.  '포스 넘치는 태도로 마이크를 들고 대중을 내려보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은 그렇게 책받침을 통해, 열성적인 한 소녀 팬을 통해 각인되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들이 주된 음악적 통로인 '라디오'를 통해 만나는 '퀸'의음악은 그저 one of them, 여러 좋은 음악 들 중 하나 일 뿐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프레디의 죽음, 언제나 많은 아티스트들을 소비하는 방식이 그러했듯, 그의 음악보다는 그의 병명이 우리를 더 솔깃하게 했다.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느덧 퀸은 예능과 스포츠 등 다양한 미디어의 배경음악으로 친숙한 존재가 되어갔다.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팬이 아니었던 많은 이들에게 퀸은 그렇게 몇 십년의 세월동안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리고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했다. 두 말 않고 달려갔다. 1970년대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부터 지금 2018년까지 몇 수십 년의 세월을 두고 내 귀에, 내 머릿 속에, 내 기억에 저장된 퀸이 나를 그곳으로 불려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제대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을 만났다.  


 

   
보헤미안 프레디 머큐리
그저 영국의 록 밴드였기에, 당연히 영국인이라(?) 생각했던 프레디 머큐리, 하지만 영화 속에서 만난 프레디는 퀸의 무대를 장악한 카리스마 프레디가 아니라 비행기 수화물을 나르는 파로크 불사라(라미 말렉 분)였다. 8세기 경 무슬림에게 쫓겨 인도로 망명한 조로아스토 교를 믿는 페르시아인 집안, 영국령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공무원을 하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에 의해 인도 뭄바이에서 보낸 10년, 다시 1964년 벌어진 아랍인과 인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운동으로 인한 영국 이주, 1969년 대학 졸업 무렵에야 얻은 영국 시민권, 이 장황한 프레디와 그의 가족의 여정은 그 자체로 '보헤미안'이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 분)과 결혼 약속을 했으면서도 또 다른 성적 정체성으로 연인을 떠나보내야 하고, 성적인 혼돈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또 다른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적 특성을 얹으며 폴, 그리고 짐 허튼에 이르기까지 방황하던 그의 사생활을 통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방점을 찍는다. 


 

팀 스타펠이 탈퇴한 스마일 밴드, 그 밴드의 보컬로 자신을 자신만만하게 추천한 프레디는 변경된 보컬, 거기에 이방인의 외모를 지닌 그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클럽 관객들을 4옥타브를 자유롭게 오가는 가창력에 화려한 무대 매너로 대번에 사로잡는다. 영국에 살지만 자신의 뿌리를 소중하게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거침없이 이름도, 성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했듯 자신만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려 무대를 빛낸 프레디. 그때이 후로  그는 거침없었다. 존 디콘을 베이시스트로 영입한 스마일 밴드는 1973년 앨범 발매와 함께 퀸이 되었고.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받침에서 각인된 남성적이고 교주와 흡사했던 프레디 머큐리를 기억하고 있는 글쓴이에게 라미 말렉이 분한 프레디 머큐리는 처음에 흡사 '희화화'된 듯이 보였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를 횽내낸 게 아니라, 연기했다는 그의 말처럼 그 왜소하고 심하게 툭 튀어나온 치아 분장을 한 라미 말렉의 연기를 통해 영국인이 아니면서 영국인으로 살아야 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헷갈리는, 그리고 수만 관중이 환호하는 무대를 내려오면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감당할 길이 없는 한 사람의 고독을, 무대에선 교주같았지만 마치 악마와 거래를 한 듯 무대 아래에서는 자신을 소진시켜 버리고 마는, 행운인 재능과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한 비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프레디 머큐리만이 아닌 밴드 퀸
물론 프레디 머큐리, 그 중에서도 그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고독'에 방점이 찍힌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다른 퀸 멤버들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물론, 퀸이라는 밴드 자체가 프레디라는 압도적인 스타에 근거한 그룹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18세기의 나무로 만든 수제 기타를 피크 대신 동전으로 그만이 가능한 연주는 물론, 프레디와 함께 작사, 작곡을 했던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 분)의 존재감이라던가, 영화 속에서는 그의 '갈릴레오'하는 고음만이 소개되었을 뿐이지만 일찌기 15살부터 드럼치는 보컬로 활동했던 로저 테일러(벤 하디 분), 그리고 2명의 베이시스트를 갈아치고 나서야 비로소 퀸다운 베이시스트로 낙점된 존 디콘(에이단 길렌 분)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불친절했다. 

하지만 개별 캐릭터에 대한 불성실한 설명 대신, 왜 프레디 머큐리가 아닌 밴드 퀸이어야 했는가에 대해 영화는 명쾌하게 정의내린다. 눈밝게 프레디를 밴드의 보컬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오페라 형식'을 과감하게 도입하려는 프레디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그에 퀸다운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호응함은 물론, 자유분방한 사생활로 밴드가 정체되었을 때 관객과 호흡하는 신선한 시도로 돌파구를 마련하며, 불협화음이었으나 그게 결국은 외골수 프레디의 안전 장치이자, 보완책이었다는 결론, 거기에 병에 걸린 프레디를 기꺼이 품어 안는 동지애까지 왜 프레디가 아닌 밴드 퀸이었는가를 영화는 정의내린다.

또한 연기로 커버한 프레디와 달리, 실제 브라이언인지, 로저인지, 존인지 헷갈릴 만큼 싱크로율 100%의 캐스팅에, 캐스팅 못지 않은 브라이언의 독주나, 맥주를 튀기며 연주하는 로저, 그리고 결코 화려하지는 않지만 베이스다웠던 존 까지 배우들의 연주 장면은 퀸 멤버의 존재감을 구구절절 설명 없이도 드러내보인다.

무엇보다 락에서 부터 디스코, 그리고 술이 질펀하게 튕겨나가는 무대에서 선정적 뮤직 비디오까지, 몸에 딱 달라붙는 발레 의상에서부터 여장 등 음악적 장르에서 부터 엔터테이너적인 측면에서 선구적이며 독보적인 면에서만은 더할 나위없이 호흡이 좋았던 그룹 퀸의 눈 밝은 면면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세대가 달라 퀸이 낯설었던 함께 본 젊은 친구 역시 오래도록 퀸을 알았지만 정작 퀸을 겉핥기식으로 알았던 오래된 세대인 글쓴이와 함께 퀸을, 퀸의 음악을 공감하고 감동했다. 세기의 밴드 퀸, 그거면 되지 않을까. 세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퀸은 현재형으로 다가온다는 그 존재감만으로. 



by meditator 2018. 11. 9. 13:42
7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미래의 사자상, 두 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다. 19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도 매진 사례를 이루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능가한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감정적 경험', '현실적인 후려침과 충격' 이라는 평가가 잇달았다. 바로 자비에르 르그랑의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이룬 성취이자 찬사이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야기의 시작은 가정 법원의 일과로 부터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판시네마
 

폭력의 공기 
하루에 20건을 처리한다는 가정 법원, 판사는 분주한 걸음으로 법정에 들어선다. 법정이라야,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남편이었던 앙투완(데니스 메노체트 분), 그의 아내였던 미리암(레아 드루케 분)과 그들의 변호사들이다.  집착과 폭력으로 인해 이혼한 부부, 현재 엄마와 함께 살고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면접권을 조정하기 위해 부부는 한 자리에 앉았다. 큰 딸 조세핀(마틸드 오드뵈 분)은 18세를 지나 더 이상 아버지를 만나야 할 의무가 없지만, 이제 열 살인 아들 줄리앙(토미 지오리아 분)이 문제이다. 

판사가 꺼내든 편지 한 장, 그곳엔 줄리앙의 친필로 아버지 앙투완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연이 적혀있다.  엄마에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학원을 빼먹었다고 딸의 손목을 꺾어버린 아버지, 심지어 이혼 후 먼저 살던 곳을 떠나 외갓집으로 옮겨 왔는데,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그곳으로 옮겨와 그 주변에서 서성이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아들 줄리앙은 만나고 싶지 않다 구구절절 하소연한다. 

하지만 아들의 편지에 대해 남편 측 변호사는 목소리를 높인다. 엄마와 함께 사는 아들, 충분히 엄마나 그 주변 어른들에 의해 강요되거나 생각이 주입될 수 있다고.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집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직장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두 자녀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서툴렀을 뿐, 결코 폭력적이지 않으며, 아들을 몹시 보고 싶어한다고. 

이에 대해 엄마 측 변호사는 항변했지만, 두 변호사의 공방전만으로 판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결국 법적인 권리에 따라 아빠는 2주에 한번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러 외갓집으로 온 아버지, 아들은 그런 아빠를 따라가기 싫어 누워있고, 엄마는 아들이 배가 아프다며 전화를 한다. 하지만 결국 그럴 경우 법적인 불이익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반 협박에,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아빠 차에 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판시네마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판시네마
 

부부가 이혼을 하고, 아빠가 법으로 정해진 권리에 따라 아들을 만난다는 이 권리의 시간,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바로 이런 '평범한 만남' 자체가 '공포'이자 '스릴러'가 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들이 마지못해 아빠 차에 타고, 그렇게 아빠와 떠나가는 아들을 엄마와 딸은 숨죽이며 창문에 숨어 지켜보고, 아빠의 다그치는 질문에 마지못해 아들은 대답을 하고, 그 일상적인 이혼 부부와 그 아이들의 관계가 품은 함의, '폭력'이 공기처럼 온통 영화를 감싼다. 마치 단 한 대의 곤장만으로도 죄인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는 그 옛날 우화처럼. 실행된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폭력을 자아낼 수도 있는 그 상황이 이 가족을 휩싼다. 

그 어떤 공포 스릴러 못지 않게 그 '공기'가 주는 긴장감이 정말 관객들을 객석에 붙잡아 둔다. 그리고 그를 통해 관객이 깨닫게 된 것은 법정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어떤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저 일상을 짖누르는 '폭력의 공기', 그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분명하게 말한다. '폭력적 사건'이 폭력이 아니라, 바로 '폭력'을 예감하고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이 '공기' 자체가 폭력이라고. 바로 이것이 '가정 폭력'의 실체라고. 

가정, 사적이어서 위험한 관계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 하지만 부부와 자녀들로 이루어진 관계는 하지만 '사적 영역'으로 취급된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위계와 관계들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들은 그 문제들이 '사건'이 되기 전에는 '법적'인 조치나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내', '나의'라는 소유격의 문제이다. 내 아내, 내 아이들이라는 '나의 영역'에 해당되는 인식들이 '폭력'의 원인이 된다. 거기서 문제를 발생하는 건, 대부분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서 면면히 잔존해온 '가부장제'의 잔해들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서 아버지 앙투완은 이미 이혼을 한 사이임에도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을 '나'의 영역 속에서 풀어놓지 않는다.  여전히 나의 아내이기에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한다. 아들을 핑계댔지만 친정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아내를 따라 자신 역시 직장을 옮겼다. 아내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그 주변을 서성인다. 아들을 사랑해서 만나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아들의 노트를 뒤지고, 아들을 윽박질러서 알아내려 하는 건 현재 아내의 거처요, 동정이다. 그의 분노는 바로 이런 '내 것'을 빼앗겼다는, '내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상실'에서 비롯된다. 

아들은 그래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아빠는 우연히 부모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알게 된 친정이 아닌 이사간 동네를 알게 되면서 폭발한다. 아들을 윽박지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폭력, 아니 폭력적 분위기의 강요로 인해 지금 살고있는 동네로 아버지를 인도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한 아들의 기지는 잘못된 주소를 가르쳐 주는 것. 아들에게서 뺏은 열쇠로 다른 집의 벨를 누르는 순간, 아들은 도망친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잠시, 결국은 회유하는 아버지로 인해 다시 돌아온 아들, 결국 진짜 집 주소를 '토로'하고 만다. 자기 자신, 그리고 엄마를 어른인,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 앞에서 지키기에 얼마나 무기력한 지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면 아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폭력적 분위기의 조성에서부터, 회유와 협박, 보호자가 돌변한 가정이라는 위계 질서가 가진 '노골적인 폭력성'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판시네마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판사의 상투적인 결정, 그것은 결국 모자를 생명의 위기에 빠지게 만든다. 아들을 보고싶다는 아버지의 읍소는 아들을 이용해 '나의 아내'에게 다가갈 빌미가 되고, 그런 상황에서 열 살 소년의 자기 방어적 '거짓말'은 역부족이다. 결국 아들을 통해 아내의 집을 알고, 그 집에 들이닥쳤던 남편은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만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아내와 아들, 이 모자의 위기는 어디서 부터 해명되어야 할까? 판사의 안이한 결정? 폭력적인 가부장에 대한 사회적 제재의 미봉책? 가부장의 인식적 한계? 우리 사회에서 최근 드러나고 있는 가정 폭력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사건'이 나기 전까지는 '집안 문제'에 불과한 가정 폭력,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공포스럽고, 스릴러물보다도 보는 이를 경악스럽게 만드는 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상황', 그는 결코 '개인적 관계'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영화는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형'을 청원한 우리 사회 사건에서도 보여지듯이 관계가 존재하는 한 쉬이 마무리되기 힘들다는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잡혀간 엔딩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제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다. 

by meditator 2018. 11. 7. 04:14

4일 배우 신성일 씨가 폐암으로 별세했다. 1962년 첫 주연작 <아낌없이 주련다>를 시작으로 주연작만 506편,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은 그대로 한국 영화사가 되었으며, 그와 함께한 감독과 배우들은 그대로 한국 영화사를 쓴 주인공들이었다. 즉, 신성일의 이력이 곧 한국 영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족적을 남긴 배우, 그의 영전에는 같은 시대 활동했던 송해 선생을 비롯하여, 신영균, 최불암, 이순재, 안성기, 문희, 이창동, 조인성 등 다수의 영화계 동료, 후배들이 다녀갔고, 영화인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또한 한때 정치에 몸담았던 그의 경력답게 이회창, 김병준, 유승민 등 유력한 정치인들이 조문을 했다. 

하지만 한때 은막을, 아니 한국 영화사를 대표했던 배우였지만, 말년에 대중들에게 각인된 신성일 씨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아내인 엄앵란 씨의 아침 방송 가쉽거리였고, 그 가쉽을 본인의 인터뷰를 통해 확산시켜 노배우의 말년을 일그러뜨렸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영화에 대한 애착이 무색하게 덕분에 2013년 출연한 작품은 노년의 열정이 아니라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중들에게 한때를 풍미했던 아티스트가 아니라 어느덧 '가쉽'이 되어버린 스타, 인터뷰어 지승호 씨가 신성일씨의 진솔한 목소리를 옮긴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를 통해 소모된 이미지가 아닌 진정한 영화인 신성일을 알아보자. 

 

 

호떡 장수 청년 라이징 스타로 떠오르다. 
대구시 중구 인교동 한옥 마을에서 태어났다. 공무원이던 홀어머니 밑에서 '애비없다는 소리듣지 말고 얼굴값 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당시 명문 경북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대로였다면 서울대를 갔었을 거라는 시절, 하지만 어머니가 계가 깨져 야반도주를 하고 대구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던 청년 신성일을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에도 떨어지고 호떡 장사를 하던 시절, 어머니는 부끄러워 하셨지만 노배우는 그 시절을 '주위 눈치보지 않고 나를 키워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던 시절이라 회고한다. 가수가 된 동향 친구가 자신을 무시한 채 지나가버리자 '자존심'이 센 청년은 '너보다 잘 난 내가'하며 눈 앞에 띈 '한국 배우 전문학원'을 다짜고짜 찾았다. 그곳에서 이제는 누렇게 빛바랜 그의 50년 보물 양광남 감독이 처음으로 번역한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수업>을 얻었고, 김기영, 김수용 등 당대 최고 감독들에게 배움을 얻었다. 꿈이 원대했던 청년은 엑스트라 배우를 전전하는 대신 당당하게 2640명이 몰린 신상옥 감독의 신필림 신인 배우 모집을 찾아갔고, 대번에 신감독에게 '나하고 함께 일해보자'는 소리를 듣고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신감독의 성까지 받아,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말을 풀어 새로울 신, 스타별 성, 넘버원 한 일이라는 예명까지 지어받은 신인 배우 신성일의 시작이 첨부터 떠오르지는 않았다. 30kg이 넘는 자동차 배터리를 들어나르며 현장을 전전했고, 감독님 책상 옆 전화 받는 일이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승마와 검도로 몸을 만들며 때를 기다렸고,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은희 배우 중심의 신필름의 시스템에서 젊은 배우 신성일의 자리는 드물었다. 그러던 중 이제 중년에 접어든 김진규, 최무룡을 대신할 젊은 배우를 찾던 극동 흥업의 대본을 보고, 그는 따귀 한 대를 맞고 기꺼이 군 입대전 마지막 배수진으로 이 작품을 택했다. 그리고 드디어  1962년 당시 인기있던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화한 <아낌없이 주련다>를 통해 라이징 청춘 스타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일본판 <에덴의 동쪽>이라 할 수 있는 대중 소설의 한국판 <가정교사>에 출연했고, 64년 드디어 당시 6대 신문이 입을 모아 '새로운 배우'의 탄생을 알렸던 <맨발의 청춘>에 출연, 최고의 청춘 스타가 되었다. 

배우 신성일의 시대 60년대
60년대는 한 해 200여 편이 넘게 영화가 만들어지던 영화의 전성기였다. 해방, 6.25. 4.19, 5.16의 격동기를 거친 대중들, 라디오 말고는 이렇다할 오락 거리가 없던 그 시대에 잘 생기고 이쁜 남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는 열광할 만한 것이었다. 냉난방은 커녕, 화장실에선 악취가 나고, 찢어지지 않은 의자가 드물었고, 화면에서는 비가 오듯 줄이 죽죽 갔지만 사람들은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대표적 언론이었던 조선일보는 1960년 태평로 사옥이 있던 옆에 아카데미 극장을 열었다. 당시 극장과는 차별된 분위기에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그런 젊은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개봉된 영화가 바로 <맨발의 청춘>이었다. 불과 18일만에 만들어졌던 이 영화로 인해 당시 조선일보가 제정한 청룡 영화상, 신문에 인쇄된 배우의 사진을 오려 엽서에 붙여 응모해야 했던 인기상에서 두 주연배우 신성일, 엄앵란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그  10년 뒤인 1973년까지 인기상은 배우 신성일의 몫이었다. 그렇게 그 10년은 스타 신성일의 시대였다. 

 

 

1965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 단편 소설 당선작이었던 <흑맥>으로 이만희 감독을 만난다. 그리고 다음 해 <만추>를 하게 되는데, 신성일은 이만희 감독을 머릿 속에 콘티가 다 들어있는 훌륭한 감독이라 평하며, <만추>는 구성, 배우들의 연기, 작품의 짜임새, 영상, 연출 기법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그가 출연했던 작품 중 최고의 예술작품이었다 회고한다. 

1967년에  47편, 67년에 51편 등 다작을 하는 가운데 <안개>, 신춘 문예 당선작 <무진 기행> 등을 컷백(cut back) 기법 등 새로운 연출 기법을 도입한 김수용 감독과 함께 한다.  개정된 영화법으로 우수 작품을 제작하면 외화 수입 쿼터가 주어져 너도 나도 '문예 작품'을 영화화하던 시절, 신성일은 황순원, 김동인, 심훈 등 한국 문학 전집에 나오는 소설가들의 작품 모두의 주인공이 되었다. 

1970년대 '반공'이 국시가 되며 '반공 영화'의 의무 제작 등 사회적 분위기에 짖눌리고 거기에 더해 외국 영화 쿼터제와 엄격한 검열로 전체적인 질적 저하를 가져오며, 검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호스티스' 영화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67년 <별들의 고향>, 1977년 <겨울 여자>로 46만명, 58만명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지만,1976년 134편 제작 영화 중 7편, 77년 9편, 78년 4편 등으로 신성일이 출연한 영화는 급격하게 줄어들며 배우 신성일의 시대는 저물어 갔다. 

 

 

 


 출연할 영화도 마땅치 않았고, 영화 정책에 대한 그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풀려했지만, 아내 엄앵란의 만류로 제작, 감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1971년 3편을 72년 한 편을 감독했고, 그러나 결국 '강신성일'로 세 번 출마, 그중 한번 당선되었지만, 결국 뇌물 수수 혐의로 실형을 사는 '오욕'으로 끝나고 만다. 

배우 신성일, 그의 연기
배우 신성일이 말하는 연기론, 그가 든 자신의 첫 번 째 덕목은 '자기 관리'이다. 안타깝게도 말년의 그가 가쉽성 스캔들로 소비되었지만, 한참 활동할 당시에는 이렇다할 스캔들이 없었다. 아니, 스캔들이 날 시간이 없었다는 게 정확하달까. 한 해에 수십 편이 만들어 지던 시대,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작품이 동시에 진행되어야만 했다. 24시간을 4등분해서 어떤 날을 8편을 찍기도 하면서 10년 이상을 보냈다. 차에서 다음 촬영 현장까지 쪽잠을 자던 시간이 가장 달콤했다던, 그는 그 시대의 여느 아버지들처럼 '일'을 하며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일찌기 배우 학원 시절부터 단련했던 체력 관리. 몸 관리였다. 최무룡, 김진규 등 이미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형성되어 있던 60년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던 그의 경쟁력은 젊음, 그리고 단련된 몸이었다. 알랭 들롱이나, 제임스 딘같은 되고 싶었던 그는, 걸음걸이부터 고치는 등 그에 걸맞는 몸을 만들었고, 돋보이는 패션에 만들어 당대 최고의 '무비 스타'가 되었다. 젊은 시절뿐만이 아니었다. 82년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한 <길소뜸> 촬영 당시에는 운동만으로 82kg에서 68kg으로 감량을 해냈다. 

 

 

대종상 연기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한 <이상의 날개>로 남우 주연상을 타고, 이후 <길소뜸>, <위기의 여자>, <레테의 연가> 등에서 계속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을 하여 '더빙 시대'의 스타라는 한계를 넘어섰다. 

또한 청춘 스타로 출발했지만, 60년대 후반 문예 영화로, 다시 <내시> 등의 사극으로 액션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로의 변신을 거듭했다. 이에 대해 신성일 씨는 '나 대로 신성일을 가지고 있'되, 작품의 패턴이 바뀔 때마다 내 몸을 그 속에 던져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고 회고한다. 이를 위해 나이가 들어서도 당당한 모습이었듯 늘 긴장하며 사는 삶을 늦추지 않았다 자부했다. 

 

 

 



무엇보다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인 배우가 되었던 이유를 신성일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에서 찾는다. 신상옥 감독의 68년작 <내시>, 영화 속 윤정희의 노출 장면으로 법정에 까지 서게 되었다. 이 영화의 출연자에는 남궁원, 박노식 등이 있었지만 신상옥 감독과 함께 법정에 출두한 사람은 신성일 씨가 유일했다. 또한 감독이 시켜서가 아니라 작품 해석에 따라 노출을 감행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소신있는 배우이기도 했다. 맹장 수술, 한여름 땡볕에 액션씬을 찍다 쓰러지고 며칠, 신인 시절 깁스를 한 때를 빼고 그는 폭탄이 터져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던 미련스레 성실한 배우였다.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일하는 것이 행복했던, 그리고 후시 녹음이라는 당시의 영화 현장의 특성으로 인해 몇 작품을 함께 촬영하며 다작의 전성기를 보냈던 신성일, 하지만 자신들과 같은 선배 영화인들의 전례가 '노예 문서'가 되어 후배들의 환경에 족쇄가 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태어난다면 그런 다작을 하지는 않겠다 토로한다. 

호떡 장수를 하면서도 당당하던 청년, 스텝이나 다름없는 영화사 시절에도 미래의 배우를 준비하던 신인 배우는 그후로 6,7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다.  시대를 냉철히 분석하고, 그 시절의 영화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내리고, 감독과 배우들에 대해 애정을 놓치지 않던 배우, 하지만 치욕으로 남은 정치인 생활, 그는 후배 영화인들 중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며 아쉬워하는 노년을 보냈고 이제 유명을 달리했다. 박찬욱 감독 말처럼 프랑스의 알랭 들롱이나, 미국의 그레고리 펙, 이탈리아의 마스트로얀니 같다는 신성일, 하지만 우리는 고인을 과연 저들 외국의 배우들만큼 '스타'로, '배우'로, '아티스트'로 인정하고 대접했을까? 그의 인터뷰를 통해 진솔하고 성실했던 배우 신성일의 존재를 되살리는 것으로  '추모의 념'을 대신하는 건 어떨까. 

by meditator 2018. 11. 6. 05:08

이 영화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저 여느 모녀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모녀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이자, 동시에 모녀가 살아왔던 세상의 이야기이고, 활동가였던 모녀가 gmo에 대항하여 싸워왔던 투쟁의 기록이다. 

 

 

gmo 세상, 그 기록의 시작 
그 시작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모습을 담은 홈비디오에서 시작된다. 엄마의 정원을 위태로운 걸음으로 누비는 아기, 갓 수확한 콩깍지의 콩을 맛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유독 먹을 것을 좋아하던 아기는 그렇게 '식료품점'이라는 뒤뜰 정원에서 엄마가 기른 맛난 재료들로 만든 풍성한 음식들을 먹으며 자라났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음식을 좋아하고 그래서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이는 음식을 만드는 블로그를 꾸리고 그 영상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그 재료가 문제였다. 엄마는 수천년 동안 우리의 농부들이 그래왔듯이 뒤뜰 정원에서 한 해 동안 키워낸 농산물의 씨앗을 저장하여 다음 해 농사를 지어왔다. 하지만 도시로 나온 딸이 만난 재료들은 어머니가 키웠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에게로 왔다. 그 수상한 식재료의 의문이 어머니가 보내주신 gmo 관련 서적에서 풀려나갔다. 

195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사회 정의에 앞장섰으며 환경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난 이후에는 유기농 농사일을 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레이더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었다. 그리고 그 열려진 레이더에서 발사한 날카로운 비판의 전파는 고스란히 딸에게 전달되었고, 그 어머니의 그 딸은 그걸 기록했다. 

1996년 캐나다에 처음으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변형 생물)가 도입되었을 때부터 어머니는 반대을 하셨다. 그 이유는 뒤뜰에서 수확한 씨앗과 달리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씨앗이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gmo, 유전자 조작의 책임질 수 없는 결과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딸인 오브 지룩스 감독은 우선 gmo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 들을 찾아 나선다. 대표적인 gmo 농산물에는 옥수수, 콩 등 가공 식품의 70 % 이상을 차지하는 식물군들이다. 이들은 곤충과 잡초에 잘 견디는 제초제에 내성이 있거나, 살충 물질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변형시킨다. 즉 결국은 유전자를 변형한 이들 식물들로 인해 농사는 보다 용이해지고, 각종 병해로 부터 안전해지고, 많은 수확량을 낼 수 있다는 것이 gmo 농산물을 확산시키는 쪽의 입장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바로 GMO의 다면 발현성 효과이다. 즉 우리의 과학 기술은 아직 GMO가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대해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실험실에서야 콩에 돼지 유전자를 결합하든 어떻게 하든 얼마든지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그걸 먹이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반대자들은 주장한다. 이런 무리한 유전자의 변형이 심각하게는 우리 인간 생명체 고유의 유전적 특징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장기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은 발암 물질로 판명된 글리포세이트처럼. 따라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이 GMO에 대해 소비자들의 주장은 기본적이다. 자신들에게 GMO에 대한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다. 즉 대부분 가공 식품의 재료가 되는 GMO, 자신들이 사는 물건들에 GMO가 들어있는지 알고 선택할 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GMO를 도입한 정부 등은 그런 '알 권리'가 대중들 사이에 외려 있지도 않은 공포를 조성한다며 GMO 사용 여부 공개를 반대해 왔다. 

GMO와 관련된 국제 기구의 53개 권고 사항 조차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미국과 캐나다가 GMO 표시제에 대해 완고한 반대의 입장을 고수한 반면, 2000년대 광우병 사태를 겪은 유럽은 그 여파로 분위기가 달랐다.  프랑스에서는 발바리안 농부들의 시위를 기점으로 gmo 표시제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를 확산해 갔으며 그건 딸의 영상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11살의 나이로 '아이들의 알권리'라는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이 먹는 음식에 알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 운동을 벌인 미국 소녀 레이첼이 어른이 될 때까지의 활동도 담겼다. 모유에서 검출된 글리포세이트(제초제의 한 종류)에 분노하여 EPA(미국 환경 보호청) 앞에서 시위하는 1만명의 엄마들도 취재했다. 오브 지룩스 감독의 <조작된 밥상>은  캐나다와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 벌어진 GMO 반대 운동의 10년을 꾸준히 담아낸다. 

오브 감독의 어머니처럼 해마다 자신이 기른 농산물 중에 씨앗을 저장하여 다음 해 농사를 짓던 농가들은 다국적 종자 기업과 그에 기반한 정책에 의거 대량 생산을 빌미로 gmo 씨앗을 '기술 사용 동의서' 등을 빌미 삼아 기르도록 강제된다. 이런 압박에 버티며 전래의 품종을 고수하려는 소규모 농가는 점점 발을 붙이기 힘들게 된다. 결국 수 마일에 걸친 옥수수 밭으로 상징되는 농촌 사회의 붕괴, 생물 다양성의 파괴만이 오늘날 대부분의 농촌의 모습이다.

오브 감독이 찾아나선 양봉 농가, 놀라운 것은  gmo 종자를 이용해 농사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키우던 벌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수집한 꿀에서 gmo 성분이 발견된 것. 즉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 해도 주변 농장에서 gmo 작물을 키운다면 얼마든지 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벌의 활동을 통해 보여준다. 이런 오브 감독의 추측은 뜻밖에도 감독의 어머니에게서 '비극적' 결과로 도출된다. 평생 유기농 정원을 꾸려 그곳에서 난 건강한 식단만을 고집해오신 어머니,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뇌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감독은 안타까워한다. 어머니는 유기농을 고집하셨지만, 어머니의 주변 농장들로 부터 날아온 gmo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또한 암은 어머니가 유기농 농사를 시작하기 이전 2~3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발병의 원인을 가질 수도 있음을. 지룩스 감독 어머니의 비극은 결국 우리는 그 누구도 gmo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른바 '대량 생산'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종자라 선전해댔던 GMO 종자가 '자연의 위대한 저력'으로 인해 좌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로 제초제 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저비용의 장점을 강조했던 GMO.  이른바 유전자 조작을 통한 잡초 제거 프로그램은 유전자 조작조차 저항해내는 잡초와 병충해들로 인해 오히려 그 전 보다 더 강력하고 많은 비료 등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고비용'의 농산물이 되었음을 <조작된 밥상>은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 gmo 농산물을 고집하는 측에서는 gmo 농산물이 다수의 인구를 기아로 부터 구해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지룩스 감독의 어머니처럼 뒤뜰 식품점을 통해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소농'이 세계적 생산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반전의 사실도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10년의 기록, 빛나는 성취는 아니지만 
영화 속 지룩스 감독은 영화가 진행되는 그 10년 동안 꾸준히 캐나다 정부와 통화를 시도한다. 그 내용은 캐나다 정부에서 공인한 GMO에 대해 과연 책임감있는 답변을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한 이래, 끝날 때까지 그 10년 동안 일관되게 캐나다 정부는 대답을 회피한다. 

캐나다만이 아니다. 2016년 미국의 버몬트 주에서는 미국내 최초로 GMO 라벨을 붙이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시민들이 깨어가는 과정만큼이나 몬산토 등 거대 기업의 자본을 통한 로비는 치열하고 집요했다. 덕분에 우세하던 입장은 결국 거대 기업이 장악한 미디어의 광고 등을 통해 매번 현혹되고 몇 년에 걸친 시도 끝에 어렵사리 민주주의적 성취를 이뤄냈다. 그러나 어둠의 힘은 결국 이 결정을 뒤집고 만다. 

<조작된 밥상>이 귀결되는 곳은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이다. 제인 구달은 결국 이런 gmo의 문제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 즉 거대 기업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정책, 돈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국민의 생명권이 전혀 미래 세대를 고려치 않는 현실을 과연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거대 기업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들이 과연 우리의 대표자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10년을 경과하며 64개국에서 GMO 표시제가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버몬트 주의 결정이 뒤집혀 지듯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아직 자신들이 먹는 먹거리의 실체를 알 수 없다.  

또한 문화의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하자는 GMO 농산물의 수확이 과연 '인간적'이냐고 묻는다. 저비용도 아니고, 몇 가지의 획일적 품종 생산으로 다품종의 풍성한 농사 체계를 망가뜨리고, 나아가 농촌 사회를 해체시키고, 유기농조차 여의치않은 '금권'의 제국이 되어버린 전세계의 GMO 생산 체제, 그곳에  '인간'이 낄 여지는 없다는 것을 발로 뛰는 '취재'를 통해 밝혀낸다. 

감독이 영화를 완성하기 전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의 딸처럼 커다란 안경을 쓰고 어린 딸들과 함께 유쾌하게 정원을 가꾸시던 싱그러운 젊음의 어머니, 그 어머니는 결국 암으로 사랑하던 자신의 정원을 떠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정원에서 키운 노란 완두콩으로 엄마의 레시피에 따라 만들어진 스프를 통해 어머니의 존재는 되살아나고, 어머니와 딸은 이어진다. 누구든 음식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해 기꺼이 싸워야 한다던 어머니 잘리 지로, 그녀의 유지는 아직 미완의 투쟁이지만 중단없는 여정이었던 10년의 기록을 통해 '모전 여전'을 증명해 낸다. 그렇게 조작된 밥상은 어머니와 딸의 중단없는 싸움의 기록이자, 전세계 GMO 반대 투쟁의 기록이다. 지난한 싸움은 이렇게 같은 곳을 바라본 모녀로 부터 시작되었다. 



by meditator 2018. 11. 3. 06:23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는 문구야 말로 11월 1일 막을 내린 <손 The guest>에 가장 어울리는 상찬이 아닐까. 1회, 1.575%로 시작하여 16회, 자체 최고 시청률 4.073%로 마무리지었다. 4%의 수치로만 보자면 이젠 케이블도 10%, 15%를 오르내리는 시절에 높다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르 드라마 위주의 ocn, 그 중에서도 새로이 편성된 주중 수목 밤 11시에, 도저히 무서워서 못보겠다는 사람들이 나왔던 엑소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호기롭게 풀어내어 도달한 성취로 보자면 장르물의 '도깨비' 급이라 하면 좀 과장일까. 하지만 시청률이 무색하게, 매 회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등장인물, 혹은 등장 인물과 관련된 단어가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건 여사가 된 '화제성'으로 보자면 꼭 과장은 아닌 듯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벌써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오르내리는 <손 the guest>,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호러, 그 화려한 서막 
<손 the guest>의 성취를 논하기 위해 우선 이 드라마와 나란히 호러 장르에 도전장을 낸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겠다. 올 여름 호기롭게 '호러'에 도전한 드라마들이 있었다. kbs2는 월화, 수목 야심차게 호러 장르물을 편성했다. 10월 2일 종영한 <러블리 호러블리>와 10월 31일 종영한 <오늘의 탐정>이 그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 모두 낮은 시청률로 조용히 막을 내렸다. 시청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들 두 드라마가 보여준 건 무엇보다 아직 kbs2가 장르물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즉 이는 역설적으로 <손 the guest>가 보여준 축적된 장르물의 성과를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때 김홍선 감독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일찌기 2007년 <도시 괴담 데쟈뷰 시즌2>를 시작으로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2009)>, <야차(2010)>, <무사 백동수(2011)>, <히어로(2012)>, <라이어 게임(2014)>, <피리부는 사나이(2016)>, <보이스 1(2017)>에서 이제 2018년 <손 the guest>까지 작품이 곧 우리 장르물의 역사가 된 김홍선 감독, 그가 그간 꾸준히 쌓아온 장르물의 성과가 <손 the guest>를 통해 화려하게 빛을 발한다. 

김홍선이라는 장르 
이미 < 도시 괴담 데쟈뷰>,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 <히어로> 등을 통해 호러적 영역에 대해 꾸준한 시도를 해오던 김 감독은, 그가 연출했던 장르물의 축적된 성과를 <손 the guest>를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이 찬사는 어쩌면 <손 the guest>에만 쓰기에는 무색할 지도 모른다.

 

 

이미 <무사 백동수>를 통해 거친 남성적 액션, <라이어 게임>을 통해서 리얼리티가 된 게임의 세계, 그리고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도심 테러와 그에 대응한 위기 협상, <보이스1>에서는 112 센터를 중심으로 한 소리 추격 스릴러처럼 어찌 보면 <손 the guest>의 엑소시즘은 새로운 도전이지만, 늘 장르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던 김홍선 감독이기에 당연한 것이 되었다.  늘 그의 애청자들은 <라이어 게임>에서도 제발 시즌2를, 그리고 <보이스 1>에서도 당연히 <보이스 2>를 '고소원'했지만, 김감독은 그런 애청자들의 간청을 즈려밟고 좀 더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장르물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인도했고, 그 결과물로 이제 우리는 <손 the guest>를 만나게 되었다.  즉 <손 the guest>는 새로운 장르이지만, 김홍선이라는 장르의 여정 속에서 만난 한 작품이며, 앞으로 더 무시무시한 그 무엇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바로 <손 the guest>의 성취 그 제 1요인이다.  이런 김홍선 감독의 내공을 입봉작으로 장르물을 주체하지 못한 <러블리 호러블리>나, 역시나 장르물에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오늘의 탐정>이 어찌 넘볼 수나 있었겠는가. 

그런 김홍선 감독이 있었기에, <안투라지(2016)>의 서재원 작가가 역전 만루 홈런을 날릴 수 있었고, 김동욱이, 김재욱이, 그리고 정은채가 자신의 몸에 맞는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즉, <손 the guest>는 서재원 작가를 비롯하여, 배우 김동욱, 김재욱, 정은채를 재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래도 엑소시즘에 대한 알찬 구성과 전개를 통해 전작의 오명을 거뜬히 삼키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원티드>를 통해 장르물 작가로의 기대주가 되었던 <오늘의 탐정>의 한지완 작가의 부진과 비교된다. 

 

 

배우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신과 함께>를 통해 저렇게 연기 잘 하는 배우를 왜 그동안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없었는가 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던 김동욱에게 제대로 찾아와준 기회, 그리고 이미 <보이스 1>를 통해 압도적인 존재감이 빛을 발했던 김재욱의  앙상블, 거기에 초반 연기력의 논란이 무색하게 '길영이 형'이란 애칭으로 사랑받았던 정은채까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빛난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그런 주인공들에 못지않게 그들에게 기꺼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었던 매회 혼신의 열연을 선보인 박일도에 빙의됐던 출연자들의 콜라보레이션이 <손 the guest>를 화려하게 피어오르도록 했다. 

감독, 배우, 하지만 <손 the guest>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장르 드라마를 장르 드라마답게 만드는데 주된 충분 조건이 된 음악과 음향과, 조명, 미술까지, 아니 어쩌면 출연자들보다 더 장르물다웠던 이들 기술 음향 팀의 열일이 엑소시즘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어 냈다. 우리의 전통 신앙인 샤머니즘과 외래의 엑소시즘의 결합을 굿판의 꾕과리와 결합된 ost를 통해 긴장감을 더했고, 붉은 색과 푸른색 등 보색의 절묘한 조합을 통해 장르물의 색감을 화려하게 재탄생시켰다. 즉 드라마가 종합 예술이지만 장르물의 경우 각 영역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손 the guest>의 성취는 바로 이런 축적된 성과와 제 역량을 한껏 발휘한 각 영역의 성공적 결합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이다. 

 

 

엑소시즘과 샤머니즘, 그 난제의 절묘한 해석 
시작은 바다로 간, 아니 바다로 부터 온 '손'이었다. 박일도라는 이름을 가진 귀신, 그에 빙의되어 한 세습무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만다. 그로부터 20년 그 사건으로 어머니와 할머니를 잃고, 아버지 마저 집을 나가 떠돌게 되어버린 윤화평(김동욱 분)은 박일도를 찾아 떠돌고, 역시나 박일도로 인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사제가 된 최윤(김재욱 분), 역시나 엄마를 잃고 형사가 된 강길영(정은채 분)와 만나게 되는데. 이렇게 손 박일도로 부터 비롯된 샤머니즘은 구마 사제의 등장을 통해 엑소시즘과 접신하고, 거기에 형사와의 협업으로 수사물의 형식을 더하며 극적인 긴장감을 이끌어 낸다. 

드라마는 최윤을 걱정한 윤화평이 박수 무당 육광에게 부적을 써서 최윤의 바지 주머니에 끼워 넣고, 마지막 회 구마 의식 과정에서 전달된 십자가가 영매가 된 윤화평의 목에 걸려있듯이 전통의 샤머니즘과 외래의 엑소시즘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빙의된 박일도를 쫓기 위해서는 엑소시즘의 구마 의식이 필요하지만, 박일도, 그로 비롯된 얼키설키 악연의 계보는 '전설의 고향' 속 한 장면과도 같다. 즉 외국 영화를 통해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장르물의 소재로는 낯선 엑소시즘을 드라마는 전래의 샤머니즘적 요소와 설화와 같은 박일도 집안과 주변 인물을 통해 설득해 낸다. 

또한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에서 소외된 왕따 직장인, 계약직 사원 등을 통해 '악의 사회적 근원'을 파헤쳤으며, 나아가 양신부(안내상 분), 박홍주(김혜은 분)를 통해 '빙의'를 넘어선 '사회적 악'의 존재를 설파했다. 박일도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박일도를 불러들일 수 밖에 없는 사회를 통해 2018년의 시대적 공기를 담뿍 담아낸다. 

 

 

그렇게 낯선 엑소시즘 장르를 전통과 사회적 메시지를 통해 오늘에 맞게 재탄생시킨 <손 the guest>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역시나 16작의 호흡은 너무 길었던 것일까? 마치 양신부가 할아버지를 납치(?)하여 요양원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요양원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현혹'하여 빙의자들의 피의 카니발을 벌이는 장면은 마치 할로윈 특집이나, <새벽의 저주>나, <워킹 데드>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서사적 연결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결국 최후 드러난 박일도의 존재와, 그의 그간 행적을 마지막 회에서 줄줄이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구성의 아쉬운 점도 상찬 속의 티일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반전을 위한 카드 때문이었을까, 스스로 십자가를 부정하고, 성경을 부정했으며 악의 오른 팔이 되어 그토록 많은 이들을 제물로 삼았던 신부의 '자유'에 대한 개연성은 어쩐지 고개가 갸웃해 진다. 

하지만 그 갸웃해지는 혹은 아쉬워 절레절레했던 서사와 구성 상의 단점들이, 물 속에서도 서로의 목숨을 걸고 살리기 위해 손을 잡아 애원의 구마를 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손을 놓고 스스로 자신을 죽여가는 배우들의 열연의 감동 속에 허물어져 버린다. 아쉬운 점을 접은 채 <손 the guest>와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영광의 박수로 보내며 마무리짓고 싶게 드라마는 시청자를 설득해 냈다. 

by meditator 2018. 11. 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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