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캐슬>의 '쓰앵'님이 돌아왔다. 서릿발처럼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표정, 그 표정을 감싸며 들리는 낮고 저력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회복될 수 없을 것같은 깊은 상흔을 감춘 듯이 드리운 그림자, '쓰앵님'이었던 김서형이 <아무도 모른다>의 차영진으로 돌아왔다. 

 

 

김서형이 분한 차영진은 현직 형사로 강력 1팀장을 이끈다. 관내 여성들의 '로망'이자,  '우상', 하지만 그런 후배 형사들의 바램에는 아랑곳없이 불철주야 일만 파는 '워커 홀릭' 이다. 표창장을 받은 날, 하지만 최고의 찬사를 받은 처지가 무색하게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주는 사람 한 명 없다. 그녀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베란다에는 화초가 무성하지만 집에 사람의 온기가 없다. 텅빈 방 중 하나를 가득 채운 사건의 기록들, 식물을 돌보고 싶던 18살 시절의 그녀를 오늘날 형사로 만든 친구 수정의 사건을 비롯한 '성흔 연쇄 살인' 사건의 기록들이다. 18살 여름, 귀찮아서 받지 않은 수정으로부터 온 세 통의 전화가 차영진을 그 사건으로 부터 놓아주지 않고 있다. 

18살 차영진을 형사로 만든 사건 

<아무도 모른다>는 태완이 법을 계기로 지난 2015년 폐지된 살인죄에 대한 '공소 시효'가 폐지되고 그로 인해 '아직 기회가 남은 연쇄 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는 서사로 부터 시작된다. 친구가 사건의 피해자가 된 여고생, 그런데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아 그 '죄책감'에서 부터 비롯된 원죄는 여주인공을 형사가 되어 사건을 추적하도록 만든다. 

<살인의 추억>에서 처럼 당시로서는 아직 과학적 수사 방법이 발달하지 않아 불가능했던 수사가, 이제 당시의 여고생이 형사가 된 현재, 그 사건의 피해자 여동생이 가진 피해자의 유품에 남겨진 DNA를 통해 사건을 추적을 가능하는 조건을 만든다. 

그렇게 집요한 우정으로 시작된 <아무도 모른다>는 이제는 더 이상 '성흔' 사건은 없을 것이라는 범인의 장담과 달리, 과거 사건의 흔적을 찾아 간 교회에서 다시 한번 '성흔'을 남긴 채 살인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과거 성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서상원(강신일 분)을 통해 차영진의 '집착'을 넘어 현재형의 사건으로 부활한다. 

 

 

그런가 하면, 가족도 없이 지난 십여년을 친구 수정의 사건에만 매달려 온 차영진에게 유일한 '인간적 온기'를 나눠 준 아랫층 소년 고은호(안지호 분)를 통해 사건은 또 다른 각도에서 펼쳐진다. 우선은 고은호가 다니던 중학교가 과거 서상원이 헌신했던 신생명 교회 재단의 신성중학교 인데다, 은호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목숨을 잃을 뻔하던 신생명 교회 권재천 목사의 비서였던 장기호가 전해준 비밀스런 책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정적으로도 방기되고, 학교 내 폭력의 희생자였던 은호, 거기에 신발 상자 안에 숨긴 의문의 돈다발에, 이제 종교 단체와도 연루되어버린 은호는 정체모를 위협에 시달리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차영진이 놓지 않았던 과거의 연쇄 살인에서 시작된 사건은 그 범인으로 추정된 서상원의 자살,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와 연루된 은호의 자살, 혹은 살해 시도로 인해 '현재형'이 된다. 

이렇게 현재형이 된 사건은 복합적이다. 우선은 범인이 여러 명의 피해자를 연달아 살해한 연쇄 살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 연쇄 살인 사건은 피해자의 손 등에 과거 그리스도가 십자가 형을 당할 때 생긴 상처와 같은 상흔을 남긴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드라마들이 다룬 '장기 미제 연쇄 살인 사건'과는 달리 '종교적 색채'를 더하며 차별성을 갖는다.

그런데 사건 피해자의 유품에서 도출된 DNA의 당사자인 서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칫 연새 살인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 될 위기에 처해진다. 그리고 그 위기의 돌파구는 뜻밖에도 차영진이 수정이 이후로 처음 마음을 연 은호로 찾게 된다. 그런데 은호의 사건은 얽힌 실타래와도 같다. 학교 폭력? 범죄 관련? 그리고 종교 단체와의 연관? 그렇게 드라마는 은호의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펼쳐 보이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거기에 은호가 소속된 학교, 그 학교가 소속된 신생명 교회가 보이는 의문스러운 태도들, 그리고 다짜고짜 학교에 나타난 의문의, 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펼쳐보인 자칭 성공한 남자 한생명 재단의 백상호(박훈 분)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연다. 

 

 

원심력으로 펼쳐나갈 복합 장르물
이렇게 드라마는 장기 미제 사건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이비 종교로 인한 범죄의 가능성을 열어보이고, 거기에 현재 거대 교단과 관련된 모종의 부도덕한 사건의 여운을 더한다. 앞서 <조작>을 통해 언론과 검찰, 그리고 정권으로 이어진 거대한 음모의 큰 그림을 폭로했던 이정흠 피디는 이제 과거의 사건을 길어 현재의 사이비와 거대 종교 재단까지 더한 원대한 밑그림을 펼쳐보이며 보는 것이 다가 아닌 거대한 '음모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 만큼 <아무도 모른다>는 아직은 그 밑그림의 설계도를 펼쳐나가는 과정이지만, 그 윤곽과 진실이 드러내 보이면 또 한편의 거대한 스케일의 장르물로 진면목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대한 구도는 동시에 <아무도 모른다>의 발목을 잡는다. 1회 9%에서 1회 8.8%의 하락세는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그 거대한 밑그림에 진득하게 기다릴 수 없는 시청자들의 이탈을 반영한다. 차영진은 내내 진지하고 심각하며, 드라마 속 사건들은 온통 의문 투성이이지만, 그것들이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풀어내는 호흡마저 느리니 '떡밥'은 많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시청자들은 벌써 지친다. 

과연 과거로 부터 현재로 펼쳐진 거대한 '종교'의 부도덕을 폭로할 복합 장르물의 성공이냐, 그게 아니면 '도대체 아무 것도 몰라서 답답한 안개속 같은' 장르물의 '좌초'가 될 지, 그건 3,4회의 전개가 가름할 것이다. 부디 성공적인 전개로 뻔한 연쇄 살인물의 변화를 지향한 시도의 안착과 함께 여성 원탑 드라마로 돌아온 김서형의 변신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20. 3. 4. 17:44

일상이 멈췄다. 예정된 일정이 취소됐고, 만남은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본의 아니게 '자가 격리'에 들어선 일상, 답답해서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 산책이라도 할까 나선다. 늘 동네 사람들로 붐비던 산책로, 이제는 그곳마저 사람들이 뜸하다.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다. 

그런데 저만치서 사람이 온다. 나도 모르게 주춤, 옆으로 비껴서게 된다. 마치 그 사람이 '바이러스'라도 되는 양. 처음 코로나 19 환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마스크'는 '매너'였다. 상대방을 위해 나의 '비말'을 전파하지 않는,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확진자 5000 여명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방패'가 되었고, 타인은 '혹시라도 모를 전염원'이 되었다. 어디서 마스크를 판다하면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룬다. 

신영복 씨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겨울보다 여름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옆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열기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신영복씨가 느꼈던 자괴감을 바로 이제 2020년 초봄에 우리가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포옹과 키쓰마저 자제하라고 하는 세상,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던져졌다. 지난 2월 29일 방영한 <시사 기획 창>은 바로 이렇게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이 격리당한 현실을 찾아간다. 

 

 

격리된 도시 
다큐의 제작진은 코로나 19에 강타당한 심장부를 향해 ktx를 탄다. 2월 26일 동대구역, 하루 평균 6만 5천 명이 이용하던 역은 텅 비다시피했다. 차로 꽉차던 범어 네거리에는 코로나 19의 현황을 알리는 전광판만이 바쁘다. 심지어 지하철 역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멈춰섰다. 

대구에 유세를 하러 내려가는 정치인들이 단골로 찾는 서문 시장, 축구장 13개보다 더 넓은 9만 3천 m²의 면적에 5만 5천여 개의 점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던 곳, 그 서문 시장이 멈췄다. 점포들은 문을 닫았고 노점은 꽁꽁 싸맨 채 덮여있다. 안그래도 갈수록 재래 시장이 장사가 안되던 차에 코로나 19는 엎친 데 덮친 쳑, 불난데 기름 붙는 격이 되었다. 머리가 허옇게 되도록 이곳에서 삶을 일구던 초로의 상인은 마수걸이도 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보이고 만다. 노인들로 붐비던 달성 공원도 텅비어 있고, 대형 서점들도 굳게 셔터를 내렸다. 

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 하니 거의 운행을 하지 않는다. 협소한 공간을 꺼리는 사람들로 인해 운행 자체가 반 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나와도 하루 만 오천원 벌이, 돈도 돈이지만 낯선이를 태워야 한다는 공포심이 늘 부담으로 택시 운전자들의 어깨를 누른다. 

시민들은 스스로 격리 생활 중이다. 학교를 다니는 딸 윤서를 키우는 김은지 씨는 개학이 9일로 미뤄졌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엄마는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맡겨야 하지만 코로나 19에 연로한 노인들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니 부모님 걱정도 앞선다. 마찬가지로 워킹맘인 정민희 씨는 부부가 번갈아 휴가를 내고 이 사태를 감당하고 있지만 장기화될 땐 어찌해야 할 지 갑갑한 상황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있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김모 씨는 자가격리 중이다. 가족 들과 같은 집에 살지만 생활은 따로 한다. 가족들과 2m 이상 따로 떨어져 지내는 그는 얘기도 못나누고, 식사도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하다. 그래도 갑갑한 건 참을 수 있다. 가족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혹시라도 자신으로 인해 코로나19가 옮았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부족한 물품 문제도 심각하다. 정민희 씨의 경우 마스크를 다섯 매를 만 오천 원에 겨우 구입했다. 그래도 어른은 마스크 쓰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참지만 어린 승유는 마스크를 못견뎌 한다. 대형 마트에 가도 우유가 없다. 라면은 딱 한 번들 샀다. 어린 승유는 예전처럼 고기를 먹으러 '외식'을 하고 싶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는 시절 
대남병원이 있는 경북 청도는 어떨까? 2월 27일 경북 청도, 주민 절반이 60대 이상인 조용한 이 도시 한 가운데 군청을 마주하고 대남병원이 있다. 매년 5월 청도을 들썩이던 소싸움 축제는 기약할 수 없게 된 가운데 힘든 시간을 이겨내자는 격려 방송만이 적막한 거리를 감싼다. 정부 특별 대책 지원단이 있는 군청 구내 식당마저도 닫고, 인근 상가도 철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우 농가들이 소독제를 지원하고, 병충해를 잡던 드론으로 병원 외벽 소독을 하는 등 청도 사람들  스스로 자구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구에 이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2월 25일 부산으로 가는 ktx, 표 구하기도 힘들던 부상행 ktx에 빈 자리가 더 많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학생들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는 엄마의 부탁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도 그 무엇도 만지지 않으려 애쓴다. 말이 귀향이지, 살던 집 위층에 확진자가 나와 집이 아닌 딴 곳으로 가야할 처지다.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온천 교회는 문 닫은 지 오래, 신도들의 신상이 드러날까 교회 홈페이지도 폐쇄되었고 신도들은 자각 격리에 들어갔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방송국 카메라에 울분을 토하고 택시 운전사들은 자신이 외려 채워넣어야 하는 사납금을 호소한다. 

서울이라고 다를까. 2월 27일 서울 은평구 설아네, 어린 아이 키우는 집은 어디를 가나 '위기감'이 크다. 나갔다 들어오면 서둘러 손을 씼고, 아이와의 외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2주 넘게 집에만 있는 상황, 설아를 유치원에 보내고 재취업을 해보려던 엄마의 부푼 꿈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늘 차가 막히던 강남 도심에도 차가 드물고 '맛집' 불문 대부분의 상점들은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 은행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3에서 2.1%로 하향 조정했고,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코 앞의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도 비상이다. 선거 운동이 멈췄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온란인 선거 홍보 등의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심지어 총선 연기론마저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었던 중국 유학생 입국 문제, 바로 그 유학생들이 입국하는 현장인 인천 국제 공항은 비상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준 가운데 개학을 앞둔 유학생들이 입국하고 있다. 방역이 강화된 공항을 유학생들이 빠져나오면 각 학교에서 나온 직원들이 유학생들을 한 명씩 차량에 태워 기숙사로 보낸다. 지역 주민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2주간 기숙사에 격리될 학생들은 매 끼니 식사와 생필품이 제공된 가운데 매일 2 차례 씩 체온을 재는 등 만약의 사태 대비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일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 유학생을 보유하고 있는 경희대의 경우 3000 여명 중국인 유학생 중 기숙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불과 10%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는 학교 밖 주택, 원룸 등에 있는 유학생들 '자가 격리'를 요청하고 매일 이동 동선을 확인한다지만 그 실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거짓 상술도 판을 친다. 마스크 사재기에서 부터 필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불량 마스크, 코로나 19 발생지인 후베이성에서 만든 마스크가 온라인 마켓에서 유통되는가 하면, 이 틈을 타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애준다는 공기 청청기까지 갖가지 상술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전문가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확률을 줄이는 것, 스스로 사회적 격리, 거리두리만이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해법이라 입을 모은다. '일상을 찾는 것이 꿈이 되었다'는 하상욱의 짧은 시처럼, 평범해서 기억에도 남지 않았던 지난 봄을 모두가 그리워하는 시절이다. 

코로나19에 점령당한 대한민국, 그런 와중에 '마스크, 방호복 등 기본적 장구의 부족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이 감염되는 건 두렵지 않지만 자신이 감염되면 환자를 돌보지 못해서 걱정이라는' 대구에서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최전방의 군인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테니 불안해 하지 마시라는 그 한 마디에 백 마디의 설명보다 더한 '위로'를 얻는다. 

by meditator 2020. 3. 3. 19:06

내 주변 동기, 선배들이 어느덧 은퇴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맨날 운동화에 파카나 걸치던 선배들이 번듯한 새 양복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던 신입 사원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백이 된 그들이 '사회'로 방출되었다. 하지만 말이 '퇴직자'지, '놀기'엔 너무 멀쩡하게 젊다. 그리고 이른바 100세를 사는 게 점점 가능해 지는 시대에 그들이 '놀고 먹어야'할 시간이 그들이 직장 생활을 해왔던 시간보다도 길다. 과연, 이 '아득하게 창창한' 은퇴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최근 코로나 사태로 2월 27일 <다큐 시선>은 지난 2017년 7월 5일 방영된 <서러워말아요, 젊은 그대>를 재방영하며 어언 3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우리 사회 '늙수그레한 젊은이'들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젊은이들과 '알바'를 경합하는 노익장 
동네 슈퍼가 편했던 61세의 임종석 씨는 오늘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10일 째이다. 식품 회사 부장 출신, 퇴직을 하고나서 택시 운전을 하던 그는 불규칙한 생활로 건강에 무리가 오자, 편의점에서 '알바' 인생을 시작했다.

임종석 씨가 일하는 편의점 체인에는 현재 임종석 씨와 같은 시니어 교육생이 현재 650명 연수 중이다. 점주는 임종석 씨보다 10년쯤 어린 50대, 그가 젊은이들 대신 시니어 세대를 '알바'로 고용한 건 연락두절될 일 없이 꾸준히 오래 근무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하여 그 세대 특유의 '근면 성실'함을 높이 사서이다. 

하루 10시간 신용카드 계산은 척척이지만 각종 할인 카드를 내밀면 멘붕이 오는 '초보'지만 한 달 꼬박 일하면 230만원 황혼의 아버지로써 면이 선다. 이렇게 임종석 씨처럼 은퇴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니어'들이 지난 5년 새 7배나 늘었다. 이들이 선호하는 업종 1위는 바로 임종석 씨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이다. 어느새 진짜 젊은이들과 편의점 알바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여기 젊은이들과 '경쟁'을 넘어 어느덧 '선점'하게 된 또 하나의 알바가 있다. 바로 '전단지 알바'이다. 되돌아 보면 예전에는 거리에서 학생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들이 대부분 '시니어'로 바뀌었다. 10대들의 손쉬운 '알바'가 노년의 길거리 부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아마도 그건 꼬박 2시간을 서서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장당 50원꼴 500~700장의 전단지를 나눠주고 2만 5천원을 받는 '헐한 알바비'때문이 아닐까. 

뜨거운 여름 햇빛이 내리쬐는 신촌의 오후 2시, 땡볕 아래에서 중무장을 한 채 쉴 새없이 미장원 할인권을 나눠주는 유영자씨가 있다. 싸늘한 시선, 익숙한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기꺼이 맡겨진 전단지를 소화해 낸다. 

20년전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가장이 된 유영자씨는 전단지 아르바이크로 번 100여 만 원의 최저 생계비 수준의 돈으로 생활해 왔다. 어르신이라 더 받아주기도 하니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했어도 거절이 익숙해지지 않아 서운한 아르바이트, 신촌에서 '한 탕'을 뛰고 다시 신림동으로 자리를 옮겨 꼬박 전단지를 나눠준 유영자씨의 일과는 해질녁 6시 반이 넘어서야 마무리된다. 그까짓 몇 장 쯤 남기면 어때서 싶지만 마지막 한 장까지 성실하게 나눠주고 나서야 홀가분하게 돈 받은 만큼의 보람을 느끼며 평범한 할머니의 자리로 돌아간다. 

젊은이들이 보수가 적어 떠난 자리에 대신 '알바'를 뛰는 시니어 세대,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세대가 되었다. 2017년 기준 일하는 노인 421만명, OECD 평균 2배가 넘는다. 그렇게 많은 노인들이 열악한 조건에도 말년까지 일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 노인 빈곤율 1위로 부터 비롯된다. 저임금 일자리나 자영업을 전전할 수 밖에 없는 노인 세대, 당연히 소득이 낮을 수 밖에 없어 상대적 빈곤율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두려운 건 일할 곳이 없는 삶
하지만 꼭 생계때문만은 아닌 경우도 있다. 73세의 양주익 씨는 오늘도 지역 신문을 뒤적이며 일자리를 찾는다. 공무원 퇴직 후 미화원 등 임시직을 전전하다 보니 어느덧 70줄, 노인을 위한 일자리라도 70이 넘는 양주익 씨가 할 만한 곳이 드물다. 

30년을 넘게 일했건만, 그래도 또 일하고 싶다는 양주익 씨, 꼭 생계 때문이 아니라, 나갈 곳이 있는 삶, 나도 일할 곳이 있는 사람이라는 '활기찬 삶'에 대한 지향이 오늘도 양주익 씨를 조바심내게 만든다. 연금으로 받는 150만 원, 그 정도면 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1년에 아내와 제주도 여행이라도 한번 가는 여유있는 삶을 살려면 한 달에 250만원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경비 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심지어 '경비 지도사'란 경비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양주익 씨는 우선 그거부터라도 따고자 한다. 

이제 은퇴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은 63세의 정효선씨는 벌써 4번 째 일자리를 위한 면접 준비를 한다. 대기업 부장 출신, 직장에 다닐 때만 해도 매일 매는 넥타이가 지겨워 푸는 게 소원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젠 다시 넥타이를 맬 일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은퇴 후의 삶을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은퇴는 일렀고 자녀들의 갈 길은 머니, 은퇴 후의 생활은 예상과 달랐다. 

1년 계약직으로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했던 정효선 씨가 이제 면접을 보는 건 '일용직'. 경복궁 야간 경비이다. 겨우 2주 동안 하는 이 '경비' 일자리에 36명 뽑는데57명이 모였으니 정효선 씨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대기업 부장 출신이라는 그의 전직이 '경비'와 같은 일용직에는 외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다행히 뽑혀 매일 밤 관람객들의 '검표원'으로 활기차게 일하는 정효선 씨, 겨우 50만원이 좀 안되는 급여지만 보람을 느낀다. 그의 소박한 소망이라면 매일 하는 일이 있었으면 하는 것, 그것 뿐이다. 

양주익 씨의 경우처럼 노인 세대에게 은퇴 후의 삶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증가하는 노인 세대를 대비하려면 국가, 사회가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마련해 가야 할 문제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 비해 활동력이 떨어지는 노인 세대에게 맞춤인 사회 서비스 일자리는 공공이 만들어야 하는 '과제'이다. 이를 위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과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한 지자체가 있다. 성동구에서는 서울숲 컨테이너 거리에 <엄마손 만두>를 비롯하여 까페 등 고령자 친화 기업을 만들었다. <엄마손 만두>의 경우 61살이 최연소인 시니어들이 만들어 가는 '노인을 위한 신의 직장'이다.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노인들이 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이곳, 매니저로 일하는 64세의 엄기범 씨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웃음이 늘었다고 소회를 밝힌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112명, '노인들을 위한 신의 직장'이 좀 더 많이, 여러 곳에서 만들어져야 하겠다. 


by meditator 2020. 2. 29. 16:09

코로나의 시대이다. 처음에는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사태를 관망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도시에서 시작된 아니 정확하게는 한 종교 단체에서 벌인 '안이한 대처'로 인해 우리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신천지'라는 이름조차도 생소한 종교가 이토록 우리 곁에 가까이 그리고 심각할 정도로 깊게 다가와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21만이니 24만이니 하더니 이젠 31만까지 정부와 신도수를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아니 사실은 그 조차도 정확한 숫자가 아닐 수 있다는 추측이 나도는 가운데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단적으로 교주가 죽지않고 영생을 누린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당연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를 두고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도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그럴 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세간의 속설과 달리, 믿는 부모가 믿지않는 자식을 보지 않겠다고 한다는 '난센스'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내 가족보다 소중한 '종교',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맹목적'인 믿음으로 이끈 것일까. 

 

 

그런데 최근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신천지만이 아니라, 세월호 때 구원파 등 시대에 따라서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이단의 교리와 맹목적인 믿음들이 우리 사회를 전염병처럼 한바탕씩 휩쓸고 간다. 그 믿음의 시작은 무엇일까? 종교와 인간 관계에 대한 매우 신랄하고도 직설적인,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2013)>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 이 작품은 2019년 ocn을 통해 16부작의 드라마로 재탄생되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종교는 정말 '사이비'다. 수몰 예정 지역인 마을, 그곳에 나타난 자칭 장로, 그러나 사실은 사기 전과자 최경석은 젊은 목사 성철우를 앞세워 개척 교회를 연다. 보상금을 챙겼어도 지금까지 살아오던 공동체가 해체될 것이라는 '사실' 앞에 흔들리는 주민 들에게 마을이 물에 잠기는 것이 '마귀의 계략'이라며 우리만의 '기도원'을 만들자며 마을 주민들을 현혹시킨다. 당연히 그가 노리는 건 마을 주민들이 받은 '보상금', 기도원 설립 자금에서 부터, 폐병도 고치는 생명수, 천국가는 티켓까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마을 주민들의 주머니를 턴다. 

그런데, 오랜만에 마을에 돌아온 김민철의 눈에도 대번에 띈 그런 뻔한 사기 수법임에도 마을 사람들은 최경석의 '수법'에 빠져든다. 영화 <사이비>는 '사기'임에도 '사이비'에 하염없이 사람들이 빠져드는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마을에서 가장 '신실한 부부 '칠성이네', 칠성의 처는 폐병 진단을 받아 자리 보전하고 누워있던 처지, 남편 칠성이 밖으로 도는 동안에도 마을의 구멍 가게를 지키며 늙고 병들어 가던 아내, 뒤늦게 철들어 그 아내에게 미안했던 칠성. 그런 아내가 교회를 나가고 부터 웃는다. 심지어 교회에서 주는 '생명수'를 마시고 나니 폐병도 다 나은 듯이 다닌다. 칠성은 그냥 그것만으로도 교회가, 하느님이 좋았다. 아내가 천당갈 티켓을 놓친다며 그를 닥달하자 미적거리던 보상금을 기꺼이 내놓겠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사이비'
이런 식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약한 부분에 마치 '바이러스'처럼 '종교'란 이름으로 '사이비'는 기생한다. 공동체가 해체될 위기의 마을 사람들의 불안함, 병으로 인한 두려움 등등. 

더구나 안타까운 건 이 '약한 부분'이 대부분 당하는 개인에게 있어 불가항력적인 지점이라는 것이다. 폭군과도 같은 민철의 행동에 영선모는 말끝마다 '하느님 아버지'를 찾는다. 폭력적인 가장 아래서 그녀가 도망칠 곳은 그곳 밖에 없다. 

특히나 영선이 종교에 빠져드는 장면을 주목할 만하다. 김민철이 최장로를 찾아 개척 교회의 예배에 들이닥친 날, 그곳에 영선과 영선모가 있었다. 공장을 다니며 어렵게 모은 돈에, 보상금까지, 이제 그 돈으로 대학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영선, 하지만 바라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무색하게 아버지는 그 통장을 들고 날랐다.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좌절한 영선을 칠성 처는 교회로 이끈다. 

그런데 바로 그 교회에 아버지 김민철이 나타나 최장로가 사기꾼이라며 깽판을 친다. 아버지를 말리던 영선은 아버지에게 맞고, 동네 사람들 모두 서슬퍼런 아버지 민철의 기세 주눅들어 누구 하나 말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철우 목사가 아버지를 말린다. 차라리 자신을 치라며. 

살면서 그 누구하나 자신과 어머니에게 쏟아지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 막아주기는 커녕 말려주지도 않았는데 목사님이 처음으로 자기를 때리는 아버지를 말린다. 심지어 대신 맞는다. 그런 상황만으로도 영선의 마음은 이미 교회에 기운다. 그런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영선을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간 최장로는 영선에게 돈을 대줄테니 대학을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영선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다. 아버지에게는 폭력을, 어머니에게선 포기만을 강요당했던 영선이 처음으로 들은 그 말에 눈이 빛난다. 

그리고 그런 영선의 빛나던 눈빛은 영선을 맹목적인 믿음으로 이끈다. 최경석이 돈을 받고 팔아넘긴 술집에서 영선은 조금만 버티면 대학을 갈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온기'로  버틴다. 아버지가 찾아와 영선을 구해주는 데도 외려 영선은 버틴다. 놔두라고. 심지어 아버지가 데리고 가는 택시에서 뛰어내린다.

그런가 하면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성호 역시 아픈 할머니로 인해 종교적 사이비에 빠져든다. 목사님이 기도만 해주시면 나을 줄 알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반적이라면 당연히 실망을 해야 했을 상황에, 자신이 모자라서 할머니가 천당에 못가실 지도 모른다는 목사의 감언이설에 어수룩한 성호는 목사의 하수인이 되어 칼을 휘두른다. 오로지 믿고 의지해 왔던 할머니, 그를 대신하는 목사를 위해 그의 맹목적인 신념은 그를 범죄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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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앞에서도 맹목적인 믿음 
'사기극'이었던 '반석 꽃동산'은 당연히 파국으로 끝난다. 폐병이 나을 거 같았던 칠성네는 목숨을 거두고, 성호의 할머니도 돌아가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아내의 얼굴이 편하다고, 할머니가 천당에 가셔야 한다고 자신들의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오히려, 영선의 경우, 그녀를 파멸로 몰아넣는건 아버지다. 자신이 최경석의 농간으로 술집에서 일하는 처지임에도 종교적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던 그녀는 아버지가 깨뜨린 그 믿음의 현실에 세상을 놓아버린다. '아편'과도 같던 '환타지'에서 깨어난 세상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 <사이비>는  해체된 공동체에서 뿔뿔이 흩어져 나온 개인들,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희생자들을 그럴 듯한 감언이설을 통해 스스로 '사이비'의 늪에 빠져드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영화 속 '사이비'는 사기꾼에서 부터 비롯되었으니 '사기'임이 명확하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그 '사기'를 통해 '종교적 맹목성'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리얼'이다. 국가와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방기된 사람들에게, 공동체라는 기반에서 떨궈져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 그 누군가는 '구제주'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설사 '사기'라도. 그래서 칠성 처의 병색어린 웃음이, 삶의 마지막 동앗줄이라도 되는 듯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영선이의 절규가 처연하다. '사이비'라도 그것에서라도 '위로'를 받아야 하는 그 막다른 삶의 막막함에 먹먹해진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존재, 사람 인이라는 한자의 유래가 서로 기대어 사는 모습이라는 어원으로 비롯된 '공동체'적 습성을 종적 특성으로 가진 인류에게 종교는 인류의 역사만큼 유구한 '위로와 구원의 장치'이다. 그리고 그런 인류의 특성은 늘 '사이비'라는 종교의 갓길을 배태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마련한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사이비'는 존재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 이후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에게 '사이비'는 더더욱 달콤한 금단의 열매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산업화, 근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만큼 급격하게 붕괴되어가는 사회, 가정이라는 시스템에서 방출되어져 나온 개인들이 그들을 현혹시키는 '하느님'의, 혹은 그를 빙자한 그 누군가의 '복음'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집단주의적 문화가 잔존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사이비 단체의 등장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다. 

차라리 영화 <사이비>에서 처럼 대놓고 '사기'라면 손가락질하기도 쉽다. 그러나, 그럴 듯한 종교적 외피를 지니고  몇 십만의 영향력을 지닌 집단이 되어버린 사이비 종교는 '영생'을 외치고, '장풍'을 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혹세무민'의 민낯은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재산이 털리고, 내 가족과의 연을 끊어도 믿음은 버리지 않는, 하느님의 가호로 병까지 무시할 수 있는 지경이 되어버려 사회적 문제가 될 때서야 우리 앞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마치 전염병처럼 한바탕 우리 사회를 휩쓸어버린 그 사이비는 또 다른 '사이비'에게 바톤을 넘긴 채 무대 뒤로 조금 물러선다. 교주의 영생을 믿듯 민낯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누군가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by meditator 2020. 2. 28. 04:07

시작은 매우 로맨틱했다. 법무법인 송&김의 반골 기질 가득한 파트너 변호사 윤희재(주지훈 분)는 늦은 밤 들르던 빨래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원서로 읽고 있는 미모의 한 여인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매일 밤 자신이 가는 그 시간이면 책을 읽고 있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자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그러더 중 그녀가 자신과 같은 동창 선배 김희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윤희재는 동창회에 나타난 그녀에게 다짜고짜 함께 나갈 것을 청하고, 그의 무례한 청에 기꺼이 동행한 이후부터 그녀와 그의 '로맨틱'한 시간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건 김희선이라던, 사실은 정금자(김혜수 분)의 '작전'의 일부였다. 이슘 홀딩스 대표  하찬호의 이혼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그의 변호사인 윤희재를 통해 정보를 빼내기 위한 정금자가 대표 변호사인 법률 사무소 충은 치밀하게 윤희재에게 접근하는 전략을 세웠고 그 계획은 적중했다. 덕분에 윤희재의 집에서 이슘 홀딩스 하찬호의 정신과 진료 기록을 빼낸 정금자 변호사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이혼 소송을 '승기'로 이끌었다. 

 

 

정금자, 그녀는 누구인가? 
바로 그렇게 <하이에나>는 재판에서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 정금자의 캐릭터를 그렇게 소개한다. 아프리카 야생의 들판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과 공격력에도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다른 동물이 먹고 남은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방식을 택한 동물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그녀, 로망은 으리뻔쩍한 건물이지만 현실은 허름한 사무실 한 칸인 정금자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윤희재를 속인다. 자신 때문에 재판에 져서 이를 가는 하찬호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불러만 주신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해결해 드리겠다며 '여러분'을 불러제치는 배포를 가진. 

하지만 그건 '아수라 백작'같은 정금자의 한 면일 뿐이다. 자신의 변호로 인해 감옥에서 나왔지만 외려 정금자를 협박하던 의뢰인에게 외려 당장 해외로 떠나지 않으면 다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반격을 가한다. 그러나 그는 귀가 길의 정금자에게 '칼'을 들이밀고야 만다. 그러나 정금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 한번에 성공해야 해'라며 침착하게 대꾸한다. 그러면서, '아니면 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네 모든 살점들이 처참하게 물어뜯길 테니까' 덧붙인 말, 그 말처럼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거칠게 주먹을 날린 그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으며 반격을 가하고 그가 피를 철철 흘리며 나가 떨어지게 만든다. 

빨래방에서 책을 읽던 이지적인 분위기의 여인, 연인과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드는 섹시한 여인, 그런가 하면 빨간 츄리닝을 입고 좌중을 휘어잡고 '여러분'을 불러젖히다 자신을 적으로 여겨 으르렁거리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읍소도 마다하지 않는,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장량같은 배포의 직업인,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현장에서 한 치의 흔들림없이 사건을 해결하는 예리하고 발빠른 대처의 변호사까지 일찌기 2013년 <직장의 신>에서 빨간 내복도 마다하지 않으며 만능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던 김혜수가 김혜수여야 가능한,  '걸크러쉬'라는 단어로도 설명이 부족한 다시 한번 예의 '만능 치트키'같은 캐릭터 정금자로 돌아왔다. <하이에나> 1, 2회는 바로 그런 김혜수에 의한 정금자의 원맨쇼 한 판이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김혜수만이 가능한 '장르'를 온몸을 불사르며 설득해 낸다. 

 

 

법정 판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오랜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장태유 피디가 선택한 작품 <하이에나>는 <직장의 신>에서 처럼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을 다시 한번 선보이는 김혜수를 앞세워, '승소'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대대로 판사 집안, 서울대 수석 입학에 재학 중 사시 합격에 연수원 수석 졸업의 그래서 자신의 직장 송&김에서조차 그 누구에게조차 굽신거리지 않는 콧대 높은 윤희재는 그렇게 김희선, 아니 정금자에게 보기좋게 사랑에 속고, 재판에 지는 도발을 당하면서 한껏 '전투 의지'를 불타오르게 된다. 

그렇게 한때는 연인인 줄 알았다가 이제 '적'이 된 두 사람은 이슘홀딩스 이혼 재판에서 정금자가 1승을 거두고, 이제 다시 그의 숨겨진 내연녀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접전이 <하이에나>의 주된 볼거리가 될 예정이다. 

그런데 화제가 되었던 전작의 시청률을 10.3%로 무난하게 이어받았던 <하이에나>는 2회에 들어서 9%로 하향 곡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혜수, 주지훈, 거기에 장태유라는 믿고 보는 보증 수표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그 조합들의 어울림에 종종 의문 부호가 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첫 회 윤희재를 속여 넘기는 정금자 변호사의 계략, 그의 눈 앞에서 그를 사랑에 빠지게 하고 그의 집에서 그의 서류를 빼돌려 재판에서 승소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정금자가 '여성'이어서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만약 반대로 그걸 윤희재가 했었다면? 

그와 함께 이제는 클리셰라기에도 뻔한 '약물', '이혼' 등 재벌가의 도덕적 아노미가 두 사람의 주된 '전투'의 소재가 된 것도 <하이에나>라는 드라마가 법정을 소재로 한 남녀 변호사의 '쟁투'를 다룬 새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새롭지 않도록 느끼게 만드는 설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윤희재 정도의 변호사가 매일 밤 빨래방을 드나들다 그곳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에게 대번에 '폴인 러브'했다는 전제 조건이 부실하다. 이들의 '사랑'이 부실하게 시작되다 보니 2회까지 전개 내내에서 윤희재 정도의 인물이 그토록 정금자에게 집착하는 상황이 어설퍼 보인다. 집착남과 능력녀의 설정을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아닐까. 

드라마는 '가공'의 이야기다. 하지만, '가공'의 이야기임에도 보는 시청자들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가공'의 공정이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하이에나>는 이미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만능 캐릭터 정금자가 이끄는 드라마이다. 그럴 수록 정금자가 이끌고 가는 사건은 보다 '현실적'이어야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천착할 수 있다. <직장의 신>이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같은 미스 김의 이야기가 성공했던 요인이다. <하이에나>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 

by meditator 2020. 2. 23. 18:14

영화가 끝나면 전쟁의 경험담을 들려준 알프레드 H 멘더스에게 바치는 헌사의 자막이 올라간다. 바로 <1917>의 감독 샘 맨더스의 할아버지이다. 어린 시절 샘 맨더스가 본 할아버지는 몇 분에 한 번씩 손을 씻는 강박증을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 왜 그러실까 의아해 하는 샘에게, 아버지는 전쟁 중 피가 스민 참호의 진흙이 닿았던 그 기억을 평생 씻어내지 못해 그러시는 거라고 전해준다. 19세의 이제 막 성년의 문턱에 들어선 청년이 늙어 할아버지가 되도록 평생 씻어내지 못한 '참호의 피묻은흙'으로 상징된 전쟁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손자 샘 맨더스는 <1917>를 통해 인간이 일으키고 인간이 희생자가 되어버린 '전쟁의 참상'을 단 8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의 경계 안에서 그 어떤 장대한 서사 못지 않게  풀어낸다. 비록 아카데미에서는 <기생충>에 밀려 촬영상과 시각효과상, 음향 믹싱상만을 받았지만 77회 골든 글로부 작품상, 감독상, 전미 비평가 협회 올해의 영화 top10, 73회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 수상, 31회 미국 프로듀서 조합상(PGA) 작품상 수상, , 제 72회 미국 감독 조합상(DGA) 감독상 수상을 받은 이유이다. 


 

시신으로 가득찬 전쟁터 
샘 맨더스 감독이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전쟁담에 크리스티 윌슨 케인즈가 살을 붙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 두 병사의  '미션 임파서블'이 탄생한다. 그 시작은 나른하게 기대어 졸던 블레이크를 호출한 에린 무어 장군의 명령이다. 

세계 제 1차 대전은 전차, 전투 비행기, 심지어 염소 가스 등의 현대식 무기를 통해  대량의 인명 살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세계 대전이다.  '인명을 살상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효과적으로 발전한, 그러나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기엔 미흡했던 과학 기술'(존 키건, 1차 대전사)은 NYT와 인터뷰한 샘 맨더스 감독의 말처럼 '기관총으로 1000야드(914M)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불과 20야드(18.288M)에 떨어진 군인과는 교신할 수 없었던 '아이러니한 기술적 진보의 상황을 배경으로 발발한다. 

그런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퇴각하는 적군이 그나마 존재하던 통신망을 끊어버렸다면? 적군은 퇴각했고 그 적군을 쫓은 아군의 부대는 이를 틈타 대규모 공습으로 적군의 섬멸을 노리지만, 그 퇴각이 '작전상' 의도된 퇴각이라면? 그런데 그걸 알릴 방법이 없다. 그 상황에 에린 무어 장군은 '지도를 잘 보고, 동시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적진을 돌파할 의지'를 가진 병사로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 분)를 선택한다. 장군의 비밀 메시지를 단 8시간 내에 2대대에 전달하지 않으면, 외려 독일군의 공습에 꼼짝없이 대대 전원이 '몰살'될 수도 있는 상황, 형이 그곳에 있는 블레이크는 당장 장군의 메시지를 들고 달린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블레이크의 동료라는 이유만으로 같이 차출된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도 함께.

단 한 장면에서도 OST를 넣지 않음으로써 2차 대전 고립된 전장의 실감을 드러낸 <덩케르크>와 달리, 장중한 토마스 뉴먼의 오케스트라 OST와 음향이 독일군이 떠났다지만 그 정보의 진위조차 의심스러운 상황, 어디서 적의 총알이 날라올 지 모르는 '무지' 혹은 '미지'의 여건 속에서도 그저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 하는 두 병사의 상황을 '스릴러' 혹은 '공포물' 못지 않은 긴박감으로 몰아넣는다. 또한 모든 씬을 따로 찍었지만 편집하여 하나의 여정으로 보이도록 하는 '원 컨티뉴어스 컷(one continuous shot )이란 기술적 도전이 단 하루 8시간 안에 목적지인 2대대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적 제약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그런데 이런 '기술'적 '음향'적 성취를 통해 불가능한 작전의 실행에 내몰려진 두 병사의 여정을 통해 <1917>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건 바로 '전쟁' 그 자체이다. 

북해에서 부터 스위스까지 이어졌다던 1차 세계 대전의 상징인 '참호'로 시작된 영화는 블레이크처럼 신부가 되고 싶었지만 끼니 걱정은 없겠어서, 혹은 '국가의 부름'에 독려되어 '자원'한 병사들로 넘쳐났다. 1차 대전 당시 민족주의 등의 영향으로 자원군 열풍이 불었다. 심지어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린치를 당하기도 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젊은 청년들이라면 당연히 군대에 자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렇게 자원한 병사들로 끊임없이 조달된 전장은 우리 영화 <고지전>에서 처럼 한 치의 땅을 빼앗기 위한 연합군과 독일군의 공방으로 이어졌고,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의 말처럼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만 같은 길고 지리한 교전과 상대측의 참호를 빼앗기 위한 일전일퇴가 지속됐다.

<덩케르크>가 마치 내가 전장의 군인이 되어 싸우는 듯한 '체감'을 통해 전쟁의 무시무시함을 알렸다면, <1917>은 제한 시간 내에 장군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 달리는 두 병사들이 택한 길 위에서 만난 무수한 시신들과 전쟁의 상흔을 통해 이 전쟁이 얼마나 많은 '목숨'을 마구 '희생'하고 있는가, 많은 것을 파괴하고 있는가를 드러내 보인다. 한때는 싱그러웠을 그들이 철망에 걸리어, 길 곳곳에서 발에 치일 정도로 널브러져, 퉁퉁 불어 물에 둥둥 떠다니며 그곳이 '젊은 목숨'을 제물로 삼는 전쟁터임을 드러내 보인다.  아직도 어머니 농장의 체리를 기억하는 블레이크와 달리, 돌아갈 것조차 두려워하는 스코필드가 공을 세워 받은 훈장을 '엿바꿔' 먹은 듯한 태도에서 전장에서 세운 '공'의 허상을 엿보게 한다. 굳이 대사로 구사하지 않아도 '전쟁'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문명이 그 구성원인 인간을 '대의'라는 이름 하에  어떻게 '낭비'하고 '소모'하고 있는 가를 영화는 런닝 타임 내내 진득하게 화면 가득히 채운다. 


 

병사는 누구를 위하여 달리나
그 발에 채이는 시신들, 비록 퇴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부비 트랩, 혹은 함께 퇴각하지못한 패잔병들의 총구, 그리고 지도조차도 무력해져 버린 상황에서 막연한 도착지, 그곳을 병사들은, 그리고 병사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뛴다. 

왜? 시작은 명령이었고, 그 명령의 당위는 내 피붙이와 그 피붙이같은 1600 명(공교롭게도 1차 대전 전사자를 연상케 하는) 대대원들의 목숨이다. 그들이 이 길에 나뒹구는 시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병사들은 달린다. 보급품이나 받을 줄 알고, 동료가 불러서 아무 생각없이 시작된 행보는 목숨을 던진 고행길의 '영웅담'이 되어간다. 

하지만 <1917>은 그들의 헌신을 전쟁하면 빠질 수 없는 '영웅담' 대신 '휴머니즘'이라는 갈래로 끌어들인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하는 행위의 그 '본원'을 짚는 것이다. 막연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라는 추상적 명제 대신, 내 혈육, 그리고 그 혈육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이유로 구현된다. 그리고 이는 절박하게 내달렸으나 완수하지 못한  동료의 '의지'마저 사명감으로 부여안으며 절박함에 박차를 가한다.

전쟁터의 '휴머니즘'이란 결국 죽지 않는 것이다. 병사들을 죽지 않도록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 혈육'이, '우리 병사'들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장군은 퇴각을 명령했고, 중령은 공습을 감행하고자 했고, 병사는 목숨을 던져 달려 내 혈육의, 동료 병사들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그 전쟁은 1600만 명 젊은이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서야 끝났다. 



by meditator 2020. 2. 23. 14:57

'어른'이란 뭘까. 아직 어른이 되지않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 자란 사람'이 아닐지 학교도 다녀야 하고, 시험도 봐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해야할 그 무언가가 없는 어른들이 참 속편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의 이런 생각에 당연히 어른들은 '밥벌이의 고달픔'에 대해 논박할 것이다. 하지만 '호구지책'만 있을까. 어른도 '숙제'를 받아든다. 그런데 그 숙제를 내주는 것이 '인생'이라 이게 고달프다. 아이들은 숙제를 해서 달려가 검사를 받고 정, 오답의 여부를 알 수 있는데 어른들이 받아든 숙제의 답은 그리 녹록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제 14회를 마친 <낭만 닥터 김사부2>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인생의 숙제'를 받아들었다. 과연 그들이 이 받아든 숙제를 어떻게 해나갈 지 그에 따라 그들 인생은 다시 한번 또 두 갈래 길 중 하나의 길로 떠나게 될 것이다. 

 

 

서우진과 임현준의 숙제 
이제는 스카우터가 되어 돌담 병원의 의료진을 넘보던 선배 임현준과 빛쟁이들이 김사부를 들먹이며 협박을 하자 서우진(안효섭 분)은 김사부를 보호하기 위해 돌담 병원을 포기하겠다고 결정을 내린다. 그런 결정에 돌담의 모든 식구들이 의아해 하는 가운데, 김사부는 우진에게 '숙제'를 남긴다. 자신을 치료하며 당당하게 '주치의'라 했던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그 책임은 가깝게는 주치의답게 수술 상처를 돌보라는 것이요, 좀 더 크게는 이제는 온몸 안 아픈데 보다는 아픈데가 더 많은 김사부의 병명을 알아내라는 것이다. 

다행히 배문정 선생 등의 도움으로 무사히 '빛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 서우진은 김사부에게 달려가 그 '숙제'를 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러자 그런 서우진에게 김사부가 '힌트', 혹은 두 가지 질문 중 하나의 답으로 내준 건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엄청난 양의 파일이었다. 그래도 어쩌면 서우진은 다행일 지도 모른다. 무지막지한 양일지도 모르지만 '모난 돌 프로젝트'라는 '참고서'가 있으니.

그렇게 서우진이 김사부의 숙제를 용감하게 받아들 수 있게 된 데에는 오래도록 묵혔던 숙제 하나를 겨우 제대로 끝낸 임현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우진과 함께 병원을 개업했던 임현준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리 수술을 감행하다 의사 면허가 정지되고 만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스타우터'가 된 임현준은 더 많은 돈을 미끼로 의사 등을 자신처럼 '뒤가 구린' 병원에 소개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중, 서우진이 돌담병원에 있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내려와 그를 괴롭힌다.

결국 서우진이 돌담을 포기하게까지 만든 서우진, 그런 그를 돌담 복도에서 맞닥뜨린 김사부는 임현준에게 일갈한다. 서우진만큼이나 살기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사느라고 애썼다고 자기 연민에만 빠져있던 임현준에게 날린 김사부의 '회초리'는 '양심'이다. 

'아무리 돈이 없고 화가 나고 무시당하고 자존심상해도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게 바로 양심이라는 거야. 넌 그 양심 지키기 위해서 어디까지 해봤어? 어디까지 버텨봤는데? 넌 그냥 되는대로 사는 거잖아. 네 욕심대로. 돈만 된다면 그러면 양심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다 팔아먹으면서' 


나도 억울하다 항변을 하는 임현준에게  맨날 지만 억울하다지 라며 '불쌍한 새끼'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떠난 김사부, 그렇게 그를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흔들린 현준에게 차은재가 쐐기를 박는다. 자기만 억울하다며 그 탓을 서우진에게 돌린 현준에게 서우진은 단 한번도 억울하다는 말 한 마디, 비난의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비로소 '나만 억울해'의 마법에서 깨어난 임현준, 그때서야 서우진에게 다가가 왜 그가 자신과 함께 했는지 뒤늦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가 팔아먹어 버린 양심,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마음 한 구석에 쪼그라든 채 웅크리고 있었던 양심 한 조각을 꺼내 서우진을 이제야 놓아주는 것으로 그의 뒤늦은 숙제를 마무리한다. 

 

 

'두 환자의 심폐소생' - 무거운 숙제를 받아든 김사부와 박민국 
하지만 김사부답게 임현준에게 '양심'을 호통쳤지만,  이제 김사부도 그 '양심'의 숙제, 그 늪에 빠지고 만다. 14회 2부, 드라마는 숨가쁘게 목숨이 경각에 놓인 두 환자의 상황을 오고간다. 

그 중 하나는 응급실로 실려온 여운영 전 원장(김홍파 분)이다. 폐암 말기로 정신을 잃고 실려온 여원장, 김사부를 비롯한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위급한 상황에 빠진 그를 살려보려 애쓴다. 그런 와중에 심실세동, 당연히 심폐 소생을 하려하는데 김사부가 고개를 꺽는다. DNR(심폐소생거부)이었던 것. 

여기서 DNR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여원장을 보내야 하는 순간, 그만 김사부는 컴프레션을 외친다. 그리고 나서서 심폐 소생을 시도한다. 겨우 고비를 넘겨 자가 호흡을 하게 된 여원장, 하지만 병실로 옮겨진 여원장 곁에서 김사부는 깊은 고뇌에 빠진다. 

오명심 수간호사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내내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는 김사부, 여원장의 원칙에 따르자면 그를 보내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그 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그만 의사로서의 원칙을 어기고 만 것. 그간 <낭만 닥터> 속 김사부는 부용주란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가 된 것처럼, '살아있는 신화'와도 같은  김사부의 이야기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 14회, 그런 김사부도 '인간적인 정' 앞에서는 자신의 의료적 원칙마저 흔들리는 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의료적 원칙을 흔들린 김사부는 더 인간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게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무거운 숙제를 짊어지게 된 김사부와 달리, 또 다른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한 숙제를 짊어지게 된 한 사람, 박민국 교수가 있다. 버스 사건으로 김사부가 '이제 그만 그 버스에서 내려요'라고 충고를 했건만 여전히 박민국 교수는 김사부에 대한 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김사부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WPW 증후군(조기 흥분 증후군)인 환자의 수술을 마취과 심혜진(박효주 분) 선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행한다. 3년전 비슷한 경험을 한 심혜진 선생이 애를 써보지만 결과는 테이블 데쓰. 사람을 살리려는 의사의 양심에 앞선 '이기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먼 박민국 교수의 무모한 수술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두 명의 환자에게 가해진 심폐 소생, 김사부는 환자를 살려서, 그리고 박민국 교수는 죽여서 버거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그 두 사례가 모두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정'과 '욕심'이라는 '과제', 과연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두 사람은 과연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낭만 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해프닝처럼 시작되어 결국은 인간사에 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감성'을 건드리지만 결국 우리에게 '진지한 이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by meditator 2020. 2. 19. 15:54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감독작 <내가 사는 피부(2011)>,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그녀에게(2002)>, <나쁜 교육(2004)>에서 부터 제작한 <클랜(2015)> 등에 이르기 까지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다양한 주제 의식을 독보적인 '컬트'적 방식을 통해 구현해 온 세계적인 감독이다. 늘 그의 작품은 그 해의 대표적인 화제작이 되었고 새로운 화두를 제시해 왔었다.

그러나 시간은 이 세계적인 명감독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나이가 들었고, 병마가 그를 찾아왔다. 2019년작 <페인 앤 글로리>는 바로 그 자신을 덮친 세월의 무게를 감독이 어떻게 극복해냈는가에 대한 '자전적인 고백록'이다. 

'한 손에 막대잡고 또 한 손에 가시 들고 오는 백발을 막으려니 세월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세월을 이겨낼 수 없음을 단호하게 그려낸 이 한시, 그런데 세월은 그저 백발만을 얹어 오는게 아니다. 머리만 하얗게 세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쇄락을 함께 한다. 세계적인 감독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페인 앤 글로리>는 극중 주인공인 감독 살바도르 말로가 얼마나 육신의 고통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의학적 설명으로 장황하게 서막을 연다. 

 

 

'영화를 못찍는다면 내 인생은 의미가 없어'
살바도르에게 세월의 무게를 얹은 육체적 고통은 그를 그로써 존재하게 하는 일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니 그렇다고 감독은 생각했다. 육체적 강행군으로 이어지는 촬영장, 거기서 앉아있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된 감독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자포자기한 채 스스로를, 시간을 좀먹어가던 그에게 그의 영화가 손짓을 해왔다. 과거 그가 만들었던 작품이 리마스터링되어 재상영되며 그와 주연배우였던 알베르토를 초대한 것. 자신의 디렉팅대로 연기를 하지 않았다 하여 시사회에도 초대하지 않았던 알베르토, 살바도르는 재상영회를 위해 본의 아니게 그와의 '화해'를 청하러 간다. 

자신의 디렉팅대로 하지 않았다하여 주연 배우를 부르지도 않았을 정도로 괴팍했던, 아니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영화관에 철저했던 감독은 이제 그를 찾아온 '병'으로 인해 시간과 타협한다. 그리고 그 타협은 그저 주연 배우였던 알베르토와의 인간적 화해를 넘어 그가 오래도록 넘지 않았던 '선'을 넘도록 만든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으로는 두통과 불면에 이겨내지 못했던 그는 알베르토가 하던 헤로인에 취하게 된다. 

또한 약물로 인해 물러진 경계는  그로 하여금 저만치 밀쳐두었던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가난했던 지지리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알베르토가 그의 컴퓨터 속 작품으로 환기시킨 그의 사랑, 그가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스멀스멀 연기처럼 그를 감싸고 돈다. 

 

 

무엇이 나를 만들었나? 
그곳에는 4년전 돌아가신, 그토록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셨으나 결국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신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있다. 어린 그를 데리고 아버지에게 달려간 젊은 어머니는 동굴같은 집에 좌절하는 것도 잠시 그 집을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아갈 그럴 듯한 '스위트 홈'으로 만들어 보려 애쓰셨다. 그리고 거기엔 또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벌써 글을 떼서 동네 청년에게 글을 가르쳐 줄 정도로 똑똑했던 어린 날의 살바도르를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로 보내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악착같던 모성이 있었다. 

돈이 없어 학교를 보낼 수 없자 학비가 면제되는 신학교에라도 보내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신부가 되기 싫다며 뛰쳐나가던 어린 살바도르, 그러나 결국 신학교에 간 아이는 뛰어난 미성으로 학교 공부 대신 성가대의 솔로로 몇 년을 보냈다. 

영화는 살바도르가 취한 환각을 통해 단편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올리며 감독의 지난 날을 편집해 간다. 늙고 병든 현재와는 전혀 달랐던 그 동굴같은 집을 밝히던 햇빛같던 어린 살바도르의 시간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가 환각에 취한 사이 그의 컴퓨터에서 알베르토가 발견한 그의 원고 '중독'을 통해 그의 또 다른 시절, 젊은 날의 사랑이 소환된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랑해서 놓아줄 수 밖에 없었던 동성의 연인, 그 사랑의 방해물은 바로 지금 늙은 감독이 천착해 있는 바로 약물, 헤로인이다. 그 약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젊은 연인을 위해 여행도 해보았지만 결국 그를 약물이 없는 곳으로 보내줄 수 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살바도르. 그런데 그는 그렇게 젊은 연인이 약물에 탐닉하는 그 시간, 단 한번도 그에 대한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온전히 영화에 심취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만든 영화가 그를 오랜 시간이 흘러도 관객들이 잊지않는 명감독으로 만들었다. 

죽음의 체취를 맡으며 길어낸 삶 
태국 사람들은 '카핀 의식'을 통해 '간접적 임사 체험'을 한다. 하룻밤동안 관속에 들어가 죽음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태국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 '관속에 미리 들어가 보기, 유서 작성하기, 장례식 미리 체험해 보기'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대비를 해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태국의 카핀 의식을 하면 사람들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 과정을 통해 병이 낫거나, 묵은 업보가 해소되어 희망차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죽음을 대비한다는 것은 결국 아직 남은 삶에 대한 '화두'를 끌어안는 것이다. 

첫 장면 물 속에서 죽은 사람처럼 시작된 <페인 앤 글로리>는 결국 알모도바르식의 '임사 체험'이다.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감독, 살아있어도 살아있음을 절감할 수 없었던 감독은 그가 한번도 미혹되지 않았던 약물에 까지 손을 대며 삶의 나락으로 자신을 끌어내린다. 그리고 마치 관에서의 하룻밤처럼 죽음과도 같은 약물의 나락에서 그는 가장 '사적인' 역사들을 마주한다. 그를 살아오게 만들었던 어머니, 연인, 그들은 이제 그의 곁에 없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그에게 생생한 '이야기'로 남겨져 있다.

늙고 병들고 지친 육신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샘솟는다. 어떻게든 아들을 교육시키려 했던 어머니의 악다구니, 자신에게 존경을 바치며 자신을 한 편의 명작으로 남겨준 채 청년, 그리고 중독같은 사랑 속에서도 불태웠던 영화에 대한 열정 등등,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한 개인의 죽음으로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찬란했던 시절들이다. 

바로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에게 헌사로 바쳤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그 명언을 역설적으로 알모바도르 감독은 죽음의 체취 곁에서 마주한다. 그리고 비로소 그를 살아있게 만드는 찬란한 과거가 존재함을, 그래서 그가 살아있음을 그는 비로소 수긍한다. 그리고 그 '수긍'이 병마에 짖눌렸던 그를 일으킨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사적인 끄적거림이 알베르토의 연기를 덧입힌 1인극으로 되살아 나듯, 병과 마주할 용기를 얻은 그는 촬영장으로 돌아온다. 그런 알모바도르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는 또 다른 삶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by meditator 2020. 2. 14. 17:26

2월 10일 첫 선을 보인 tvn의 드라마 <방법>, 그 제목부터 생소한 악령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물인 오컬트 스릴러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저주'는 인류의 그늘에서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고 소개하는 드라마는 '저주'의 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에서 비롯된 증오를 길어올려, 그 마음을 무기로 대상이 되는 사람의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공포스런 주술을 소재로 한다. 

 

 

방법하다. 
여기서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건,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그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무안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화 마지막, 중진일보 사회부 기자 임진희(엄지원 분)는 자신이 취재하던 포레스트 내부 고발자에 대해 억울한 누명을 씌운 기사를 씌워 죽음에 이르게 만든 같은 신문사 김주환 부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하지만 임기자의 항의는 외려 강압적이고도 폭력적인 김부장의 겁박으로 인해 좌절되고, 억울하고 분한 임기자는  스스로 방법사라 자처했던 백소진(정지소 분)를 찾아간다. 

앞서 백소진은 임기자를 찾아와 '스스로 방법사라 소개하며 그녀가 취재하던 포레스트 기업 진종현 회장에 대해 악귀가 씌었으니 '방법'만이 그를 대항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당연히 임기자는 그런 그녀의 의견을 철없는 고등학생의 헛소리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제 김주환 부장과 그가 결탁한 포레스트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맞부닥친, 특히 자신을 폭력적으로 다룬 김주환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임기자는 백소진을 시험해 볼 겸, 김주환에 대한 '방법'을 허락한다. 그의 한자 이름과, 그의 물건만으로 '방법'을 한다는, 했다는 백소진의 말에 임기자는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날 김주환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원인 불명의 이유로 스스로 손이 돌아가고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른, 그리고 다리와 허리가 꺾여 피를 흘리며 죽은 모습은 도저히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이다. 말 그대로 '손발이 오그라들어' 죽어간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 <방법>은 '저주'의 마음을 지펴서 이뤄내는 주술 '방법'을 소재로 한다. 방법사인 여주인공이 첫 회에 누군가를 사지가 꺽이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으로 서막을 연 드라마, 흔히 오컬트 장르에서 우리가 보아왔듯 악귀가 들린 누군가와 싸우는 방식으로는 매우 극단적이다. 

 

 


방법할 수 밖에 없는 사회악
드라마는 그 '극단'의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한다. 우선 스스로 방법사라 자처한 백소진은 어린 시절 그녀의 눈 앞에서 지금은 포레스트의 회장이 된 진종현(성동일 분)이 사람들을 끌고 와 외딴 산속에서 신당을 꾸리고 살던 백소진의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집을 불태운다. 겨우 홀로 도망친 소진은 당연히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진종현 회장에 대해 복수를 노린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저 백소진의 개인적 복수에 머물지 않는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IT 기업으로 성장한 포레스트, 하지만 최첨단의 기술적 발전을 이룬 기업이 사실은 무속에 의존하여 회사 일을 처리하고 그에 의문을 품은 직원에게 폭력을 가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포레스트에 대해 '정의감'이 넘치는 기자 임진희는 기자다운 방식으로 진실을 파헤치고자 애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시도는 내부 고발자의 죽음에, 이제 그녀 자신이 겁박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며 불가항력의 상황에 빠져든다.

그때 등장한 백소진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임진희에게 진종현은 그런 정상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내림굿을 받고 그때부터 승승장구하게 된 진종현 회장에게는 악귀가 씌였다는 것. 결국 인간의 몸으로 악귀를 받아들인 진종현 회장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바로 '방법'밖에 없다며 '주술'의 불가피함을 설득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부패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이 언론 등을 마음껏 좌지우지하는 전횡, 거기에 내부 고발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불법적인 도발 등의 부도덕한 자본과 그 자본의 모태가 되는 개인적 원한을 엮으며 '극단적 주술'의 방식인 '방법'의 개연성을 설득하고자 한다.  기자는 진실을 알리고자 하지만 기업의 커넥션으로 막히고, 형사는 사건을 수사하려 하지만 역시나 그 길은 봉쇄되고 만다. 심지어 그들이 마주선 '부도덕한 자본'은 부도덕을 넘어선 악귀라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상황,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원보원(以怨報怨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의 방식으로 '방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방법>은 <부산행>, <사이비>, <염력> 등으로 오컬트적인 장르에서 독보적인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나선 작품이다. 기업의 회장이 알고보니 악귀에 씌였고, 그 초자연적인 악에 맞서는 주술 '방법'이란 이야기는 이미 그 소재만으로도 신선한 시도이다. <손 THE GUEST>처럼 OCN으로 가야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은 작품을 편성한 TVN의 장르적 도전 역시 실험적이다. 

 

 

그럼에도 남는 방법의 딜레마 
물론 그럼에도 딜레마는 남는다. 12부작으로 간결하고 명쾌하게 풀어가겠다는 포부에도 불구하고, 1부에서 펼쳐진 장황한 전사에 이은 늘어진 사건 전개는 과연 오컬트적인 장르에 걸맞는 전개 방식인가에 의문 부호를 붙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2부에서 김주환 부장 죽음에 이은 본격적인 사건 전개로 기대로 돌아서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제 아무리 '악한 존재'에 대항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저주'를 걸어 싸우는 방식에 대해 쉽게 고개라 끄덕여 지지 않는다. 김주환 부장이 제 아무리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태도를 가진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가 '온 몸이 오그라들고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야 할'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에게 겁박을 당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방법'을 부탁한 임기자가 과연 미필적 고의의 살인 교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리고 미성년이라 하더라도 온몸이 오그라들게 만들어 죽이는 주술을 거는 주인공에 대해 과연 얼마나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방법론', 아니 그 이전의 도덕적 딜레마를 과연 이 드라마가 결국 설득해 낼 수 있을까가 2회에 이른 드라마의 무거운 숙제로 남는다. 

by meditator 2020. 2. 12. 04:58

'히어로들이 할 수 없는 특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된 범죄자들의 특공대'라 이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적 소재가 있을까. 거기에 명불허전 윌 스미스에, 조커 역의 자레드 레토, 그리고 할리 퀸의 마고 로비  등 출연진의 나열만으로도 이 영화는 이미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영화라 보여졌다. 그런데, 막상 개봉 후 매우 영화적인 소재와 스타급 출연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혹평이 이어졌다. 결국 제 아무리 좋은 소재와 출연진을 데려다 놓아도 그것을 '영화적'으로 잘 꿰어내지 못한다면 망할 수 밖에 없다는 DC의 한계를 드러낸 또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이구동성 강렬했던 '할리퀸'에 대한 인상을 피력했다. 정신과 의사였던 여성이 조커라는 인물을 만난 조커 못지 않은 '이 동네 미친 년'으로 거듭나 감옥에서든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온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당당한 '미친' 포스를 굽히지 않는 모습은 마고 로비의 연기와 함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영화적으로 실패한 데는 바로 이 할리퀸이라는 캐릭터를 잘못해석했다는 점이 컸다.  경찰이건 또 다른 범죄자건 그 누구 앞에서도 이토록 당당한 '이 동네 미친 년'이 조커라는 한 남자에 그토록 절대적인 순애보를 바치는 순정녀라니! (심지어 그녀가 순정을 바치는 조커가 그 순정을 바칠 만큼 '매력적'인지도 의문스러웠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수용한 독립적인 할리퀸의 캐릭터의 자기 부정과도 같은 설정은 결국 서사의 개연성을 갉아먹었고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할리퀸, 사랑에서 해방되다 
그래서일까? 2월 5일 개봉한 <버즈 오브 플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은 바로 이 전작의 '딜레마'를 극복한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조커'에 대한 순정녀라는 할리퀸을 얽어매었던 딜레마를 '실연'이라는 인간사 관계의 결말로 자연스레 할리퀸을 풀어준다. 안 그래도 '이 동네 미친 년'인 할리퀸은 실연의 상처를 한껏 드러내며 더욱 미친년스러운 행태를 보이며 황홀한, 아니 지옥같은 해방의 서막을 연다. 

그런데 할리 퀸이 누구인가? 조커를 흠모하여 그와 같이 되기 위해 스스로 화학 공장 용광로같은 화약품 저장시설에 뛰어든 여성 아닌가. 그렇게 사랑도 제 정신이 아니게 시작했듯이 사랑의 마침표 역시 할리퀸스럽게 그 사랑을 시작했던 추억의 장소를 화끈하게 절단내면서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 마침표는 동시에  조커의 연인이었던 할리퀸에 대한 방패막이 사라짐을 뜻했다. 지금까지 조커때문에 할리퀸의 만행을 참아주었던 그 동네 양아치들과 그녀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다같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할리퀸은 '사랑'으로 그녀를 한정짓고 보호하던 그 방패막으로부터 스스로 튀어나오면서 사랑을 주체적으로 극복해가게 된다. 

말이 주체적이지 결국 조커의 방패막이 사라진 할리퀸, '동네에서 제일 거추장스러운 년'이 되어버린 할리퀸은 동네 클럽 대표이자 나름 동네 짱을 먹으려는 로만 시오니스(이완 맥그리거 분)의 타깃이 되고 그 위기를 한때 정신과 의사 좀 했던 예의 기지로 '딜'을 하며 돌파한다.

 

 

그녀들 '연대'하다
로만과의 '딜'을 해결하기 위해 홀홀단신 경찰서로 들이닥친 할리퀸에서 부터 사랑에서 헤어나 본래의 매력을 되찾은 할리퀸의 활약이 시작된다. 그리고 '딜'의 대상인 카산드라(엘라 제이 바스코 분)와의 조우, 그러면서 '연대'의 싹이 튼다. 

할리퀸과 그녀들, 몬토야 형사(로지 페레즈 분), 블랙 카나리(저니 스몰렛 분), 헌트리스(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분)는 그렇게 그들의 공적인 로만과 그가 찾는 아직 미성년인 카산드라라는 공통 분모를 통해 만나진다. 

할리퀸, 그리고 할리퀸을 쫓던 형사, 로만이 운영하던 클럽의 전속 가수였다 숨겨진 재능으로 인해 로만의 전속 운전기사가 되어 할리퀸을 쫓게 된 블랙 카나리, 거기에 온 가문이 몰살당한 마피아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헌트리스, 서로 엇갈린 이해 관계를 가진 생면부지의 이들이 아직 미성년인 카산드라를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제휴를 하고 그 '제휴'가 로만 일당에 대항한 '연대'로 성장해 가며 '실연'의 아픔은 한층 성숙한 여성들의 '동지애'를 낳는다. 

버즈 오브 플레이(birds of prey)는 육식을 하는 맹금류의 새를 뜻하고, 영화 속 남성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싸우는 할리퀸과 그녀들을 상징하는 문구이다. 그런데 이 버즈 오브 플레이는 이번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2년부터 2003년까지 tv드라마로 wb채널을 통해 13회에 걸쳐 방영된 바 있다. 

dc코믹스의 배트맨 스핀 오프 시리즈로 시작된 <버즈 오프 프레이>는 고든 총경의 딸이자 캣우먼이었던 바바라 고든이 조커의 총탄에 하반신 마비가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액션 대신 지적인 리더로 거듭난 바바라를 중심으로 원작에서는 배트맨과 캣우먼의 딸이었던 헌트리스가 마피아의 딸로 캐릭터 수정되며 드라마화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할리퀸이 빌런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조기종영 비슷하게 13부작으로 마무리되었던 드라마는  이제 <수어사이드 스쿠드>에서 홀로 살아남아 단독 시리즈로 돌아온 할리퀸의 '동지'들로 거듭났다. 원작의 바바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공을 남성 동료들에게 빼앗긴 채 만년 형사를 전전하는 몬토야 형사로, 목소리 하나 만으로 사람들을 기절시킬 수도 있는 절대적 고성의 소유자 블랙 카나리는 로만의 기세 아래 전전긍긍하는 클럽 가수로, 그리고 가족들을 모두 잃은 채 홀로 살아남아 복수를 꿈꾸는 헌트리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들은 카산드라라는 어린 소녀를 구하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한계를 돌파한다. 동네 그저 미친 년이던 할리퀸도, 무능하다 치부되던 여형사도, 로만의 똘마닝였던 블랙 카나리도, 복수 이후의 감정 조절 장애를 겪던 헌트리스도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확신과 여성 동지들에 대한 연대에 대한 믿음과 쾌감을 얻는다. 각자 저 마다 이제는 이 동네 자타공인  '난' 년들이 되겠다고 선언한 그녀들의 서막, 그것이 바로 <버즈 오브 프레이>이다. 

<버즈 오브 프레이>는 <저스티스 리그>의 여성판과도 같다.  아니 그보다는 영화의 마지막 여전히 그녀의 공을 가로챈 경찰을 기꺼이 때려치고 나온 후 버즈 오프 프레이를 결성한 몬타나 형사와 블랙 카나리, 헌트리스 의 조합을 보면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페미니즘 판이 더 어울릴까. 영화는  할리 퀸을 비롯하여 몬타나 형사, 블랙 카나리, 헌트리스 까지 등장 캐릭터들의 일관성을 수미일관하게 유지했다는 점에서 <버즈 오브 플레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전절을 극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한때 정신과 의사까지 했던 할리 퀸의 캐릭터을 지나치게 동네 '미친 년'의 단선적인 캐릭터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드라마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는 헌트리스와 할리퀸은 마피아에게 온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와 의사로 만나게 된다. 드라마 속 빌런인 할리퀸과 그녀를 마주해 싸우게 되는 헌트리스라는 복잡 미묘한 캐릭터의 관계는 영화 속에서 그저 복수 후 분노 조절 장애를 보이는 헌트리스에 대한 할리 퀸은 지나가는 듯한 충고 한 마디로 퉁친다. 충분히 <어벤져스> 급의 깊이를 가질 수 있는 캐릭터들을 지나치게 오락 영화 속 단선적 캐릭터로 해석한 점들이 아쉽다.

이런 지적은 빌런으로 등장한 로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할리퀸 못지 않은 이 동네 미친 놈으로 등장한 로만은 그의 잔혹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이완 맥그리거의 존재가 아깝다 싶을 만큼 단순한 악역에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하수인으로 등장하여 할리퀸을 비롯하여 버즈 오브 프레이들을 뒤쫓는 동네 양야치들은 그녀들의 타격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쾌감을 선사할 지언정, 제대로 된 '적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뚜드려 패고 나가 떨어지는 남성들만으로 '페미니즘' 영화의 쾌감을 완성할 수는 없다. 여성들의 진가를 드러내기 위한 좀 더 제대로된 악역의 구성, 이것 역시 남겨진 과제이다. 





by meditator 2020. 2. 7.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