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킹스맨>에서 이 말을 마친 해리는 음식점의 문을 잠근 후 자신들에게 무례했던 불량배들에게 혹독하게 다룬다. 물론 시작은 해리와 그 일행이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대들었던 불량배들이었지만, 그들의 도발에 비해 열 배 혹은 백 배의 대가를 치르는 결과를 낳았다. 딱 떨어지는 정장, 그 정장에 걸맞는 폼나는 무기들, 그리고 그와 어우러지는 '우아한' 말투와 에티튜드, 그러면서 화룡점정으로 등장하는 '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혹시나 그런 의문들 드는 관객들은 없었는지, 그 '매너'라는게 막상 실전에 들어서면 참 '매너스럽지' 않은 처참하고도 잔인한 폭력을 수반하게 된다고. 

뭐 꼭 <킹스맨> 뿐인가. <007>의 여러 시리즈도 그렇고 주인공인 스파이는 멋들어진 옷 맵시에, 그 보다 더 매력적인 에티듀드를 자랑하며 등장하지만 막상 그가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다할 때는 '매너' 무소용에, '자비'없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기에, 당연히 그가 '처단'의 대상은 언제나 '복수'를 각오하고 다음 시리즈를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이 중단없는 폭력의 악순환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더욱 폭력적인 악인의 등장으로 증폭되고 그에 대한 '정의'의 실현 역시 가차없어진다. 폭력과,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 이 '순환'을 우리는 스파이물로서 소비하지만 그 '근원'은 회의적이다. 그런데, 이 '회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스파이물'이 등장했다.

 

 

폭력적이지 않은 스파이물?
바로 1월 22일 개봉한 <스파이 지니어스> 이다. 윌 스미스와 톰 홀랜드와 목소리로 분한 이 스파이물은 두 사람의 출연으로, 그리고 윌 스미스가 연기한 스파이 랜스 스털링이 '새'가 되는 해프닝을 겪으며 천재 월터와 만나 악당에 대적하는 액션 어드벤쳐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런 소개가 틀린 건 아니지만, 정말 <스파이 지니어스>의 장점은 어쩌면 실사 스파이 영화로써는 시도해 볼 수 없는 '스파이' 업계의 관점의 전환을, 아니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대한 야무진 담론을 구현해 냈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엄마와 세상에 둘도 없는 콤비를 자랑하던 한 소년 월터 베캣으로 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나의 파트너라 다정하게 불러주던 엄마는 경찰로써 직분을 다하던 중 순직했다. 외톨이가 된 소년, 그러나 그 소년은 천재였다. 15살에 MIT를 졸업하고 스파이 에이전트 기술 연구소에 배치되지만 현실은 화장실 옆 한 귀퉁이에서 모두가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는 천덕꾸러기 과학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당대 최고의 스파이 랜스, 랜스는 다짜고짜 화를 낸다. 왜냐하면 불법 무기 거래 현장에서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일본 야쿠자들을 상대로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는데 그게 바로 월터가 만든 '고양이 홀로그램'이었던 것. 무지개 색 가루와 함께 등장한 고양이 홀로그램에 사람들이 넋을 놓은 사이 무사히 탈출을 했지만 언제나 '폭력'적인 방식을 써왔던 랜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전술'이었던 것. 결국 그 일로 월터는 해고당하게 된다. 

그런데, 고향 집에 돌아와 연구를 계속하는 월터 앞에 랜스가 찾아온다. 그가, 아니 그의 얼굴을 한채 불법 무기를 나꿔챈 악당 킬리언 덕분에 랜스가 쫓기는 신세가 된 것. 랜스임을 숨기기 위해, 아니 숨기고 싶어하다 해프닝으로 월터가 만든 액체를 마신 랜스는 그만 비둘기가 되고. 이제 혼자서는 차 문 조차 열 수 없는 랜스는 본의 아니게 월터의 도움을 받게 된다. 

스파이 에니전트 연구소에서 랜스를 쫓아 엘리베이터를 탄 월터는 자신의 발명품 '고무 인간'을 스스로 실현해 보이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파이 전술'을 피력한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이길 수 있는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이며, 하지만 그런 월터의 생각에 랜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제 비둘기가 되어 킬리언을 쫓는 랜스는 본의 아니게 웥터가 발명한 고무인간처럼 만들어 버리는 멀티 펜에서 부터 허그 보호막, 고양이 홀로그램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된다. 아이들 장난같다고 웃어넘긴 그 월터의 발명품들이 적재적소에서 랜스와 월터를 구하는 묘수가 된 것이다. 다른 스파이 영화에서처럼 꼭 자신들을 쫓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다치지 않게 해도 얼마든지 '스파이'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월터의 생각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월터의 도움을 받은 랜스가 고군분투해도 결국 킬리언은 전세계 스파이들의 신상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걸 되찾기 위해 북해의 연구소로 찾아간 랜스, 월터의 빠른 연구 덕에 비둘기에서 다시 원래 스파이의 모습을 되찾은 랜스, 그러나 이미 그의 도발을 예측한 킬리언에게 랜스는 붙잡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랜스에게 킬리언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랜스가 킬리언이 보는 앞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의 악순환, 그것이 '킬리언'이라는 악당을 '초래'했고, 이제 랜스 동료들의 목숨이 위험하게 된 것이다. 

세계 평화의 방법론을 모색하다 
<스파이 지이어스>는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스파이' 그 방법론의 문제,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 서로를 규정한 채 되풀이 되는 '폭력'의 문제를 짚는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수단'으로서의 '폭력' 조차, 그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는 '폭력'일 뿐, 그건 다시 중단없는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명확한,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결코 실천하지 못했던 명제를 짚는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한껏 살린 <스파이 지니어스>는 적에 대해 잔인하고도 가차없는 폭력 대신, '평화'를 사랑하는 천재 과학자 월터의 발명품을 빌어, 린치 대신 고무인간으로 만들어 자백하게 만들어 버리는 만능 펜에, 상대방을 공격하는 대신 허그해 버리는 보호막에, 공격 본능을 무력화시키는 고양이 홀로그램으로 그 대안을 모색한다. 

그저 재밌는 애니메이션이라 치부하기에 월터와 랜스가 벌이는 설전의 세계는 깊다. 킬리언의 수족인 드론이 각자 스파이 에이전트 연구소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이미 우리가 이미  '드론'의 폭력성을 경험했기에 더욱 실감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잃고 싶어하지 않기는 랜스도, 월터도, 킬리언도 모두 같다는 지점도 시사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방식이 다른 것도. 월터의 도움, 그리고 비둘기들의 도움으로 '개과천선'한 랜스는 그 이전과 다른 대사를 말한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다고, 그저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도시의 무법자처럼 피해다니던 비둘기가 가장 사랑스러운 별동대처럼 여겨지도록 만들듯, <스파이 지니어스>는 우리가 생각해 오던 '스파이' 영화의 고정 관념을 변화시킨다. 아니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질문과 함께. 그래서 월터와 랜스가 함께 세상을 구하는 방식이 더욱 의미가 깊다. 

by meditator 2020. 2. 1.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