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 시대의 대표적 권력이다. 민주주의의 세 축 중 하나, 그 중에서도 사법 권력 중 다시 한 부분을 담당해야 할 일부가 어느 틈에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이 추상과도 같은 '검찰'의 시절에 드라마나 영화 속 검사의 모습은 둘 중 하나였다.
'반드시 잡겠습니다. 실패하면 검사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파면당하겠습니다. 그 안에 제 모든 걸 걸고 반드시 범인을 검거하겠습니다'라는 <비밀의 숲> 황시목(조승우 분)같은 정의파이거나, '내 얘기 똑바로 들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던 <부당거래>의 주양(류승범 분)같은 권력의 떡고물을 탐하는 검사였다. 정의이거나, 불의, 그렇게 양자 택일하듯 갈리는 검사 캐릭터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검사였다. 그런데, 진지하게 회의를 한다며 점심 시간에 갈 식당을 놓고 토론을 하는 검사들은 어떨까? 12월 16일 첫 방송을 한 jtbc <검사 내전>에서는 그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검사들이 등장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청춘의 빛과 그늘을 사실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내 젊은층들에게 전폭적인 호응을 얻었던 <청춘시대>의 이태곤 피디와 박연선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박연선 작가가 직접 대본을 쓰는 것이 아니라 '크리에이터'로 합류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이전 작품과 다르게 원작이 있다. 현직 부장 검사인 김웅 검사가 지나온 18년간의 검사 생활을 에세이 형식으로 쓴 <검사 내전>이다. 김웅 검사는 사법 연수원 29기 출신, 인천 지검 공안 부장을 거쳐 미래 기획, 형사정책단 단장으로 있는 현직 검사이다. 2018년 발간되어 베스트 셀러가 된 <검사 내전>, 이 책의 부제는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이다. jtbc는 <미스 함부라비>에 이어 다시 한번 현장 법조인의 에세이를 드라마화하며 법정 장르물의 새 전통을 이어간다.
생활인에 방점이 찍혀있는 베스트 셀러 <검사 내전>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검사 내전>의 이야기는 진영지청으로 부터 시작된다. 물론 우리나라 실제 지명이 아니다. 통영인듯 바닷가 풍경이 드러나 보이지만, 드라마는 사법 연수원에서 실력으로 검사들을 배치하여 제일 성적이 안좋은 검사들을 배치한다는 풍문 아닌 풍문의 장소, 그래서 사법 연수원 수석 졸업에 특수부만 오가던 차명주(정려원 분)가 발령받았을 때 진영 지청 모두가 좌천이라 입을 모아 말하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형사 1부에 일도 밀리고, 사람으로도 밀리는 형사 2부가 극의 중심에 있다. 멋들어진 양복 간지의 조민호 부장님(이성재 분), 하지만 309호의 귀신 유래를 듣고 점쟁이를 찾아가 부적을 받아 그 방 책상 밑에 붙여 놓는 귀가 얇은 분이다. 부장님이 그러시니 다른 부서원들이라고 다를까. 진지하게 회의를 하자 해놓고서는 신참 검사 김정우(전성우 분)에게 보드에 적게 만드는 것이 점심 시간에 갈 식당 목록인 식이다.
그 중에서도 지청장님과의 낚시 해프닝을 기꺼이 스스로 떠안고 눙치듯 넘어가는 이선웅(이선균 분) 검사가 있다. 동네에서 벌어진 소똥 투척 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인 노인 두 분을 불러 그들의 '치정'을 기꺼이 귀기울여 듣고, 그도 안되니 그 '치정'의 당사자인 할머니까지 불러 사건을 '무마'하려는 오지랖넓은 검사, 하지만 또 다른 동네에서 벌어진 잦은 사건 사고의 와중에서 점쟁이에서부터 피해자의 병원까지 찾아가 그들의 하소연을 다 듣는 가운데 예리하게 신통력을 내세운 점쟁이의 음모를 찾아내는 꼼꼼한 혜안도 지녔다.
이선웅이 그렇고, 형사 2부가 그렇듯이 모양새만 보면 딱 직장인, 외진 진양지청에서 벌어지는 인간사 만화경 같은 사건들을 붙들고 오늘도 씨름하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히어로이거나, 메피스토였던 지금까지의 검사 이야기와 달라 그래서 새롭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말로 진짜배기 검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이선웅과 차명주, 악연일까? 하지만 이 느슨한 오피스물같던 형사 2부에 서울에서 잘 나가던 엘리트 검사 차명주가 등장하며 분위기는 달라진다. 우선 진양 지청 사람들은 차명주가 왜 이곳에 오는가가 궁금하다. 이선웅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차명주 부임 원인 찾기, 그건 여느 엘리트 검사라면 당연히 서울에서 '물을 먹으면', 진양까지 내려오는 대신 검사를 그만두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개업을 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차명주 전임으로 오자마다 당일로 조명호 부장의 성대한 접대만 받고 사라졌던 검사처럼 말이다.
그런 예상을 깨고 차명주는 부임한다. 심지어 부임 첫 주니 배당없이 돌아가는 형편을 살피라는 지청장의 말이 무색하게 형사 2부 배당 사건의 반, 거기에 그동안 형사 2부 검사들의 미제 사건까지 떠맡겠다고 나선다. 그간 형사 2부의 '관행'과는 어쩐지 엇물리는 듯한 차명주의 '솔선수범'에 형사 2부 사람들은 어쩐지 떨떠름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차명주에게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이선웅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던 상습적 체불임금 기업이 미제 사건으로 차명주에게 넘어간 것, 이선웅은 다시 돌려달라 하지만 차명주는 피해자들 보기에도 안좋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차명주보다 한 기수 아래인 이선웅에게 사건 보고를 하란다.
여기서 문제는 이선웅과 차명주의 꼬인 족보다. 분명 사법 연수원 기수로는 차명주가 한 기수 선배지만, 같은 대학 출신인 두 사람은 학번으로는 이선웅이 선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학 시절 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먹을 정도의 안면이, 아니 아직 나오지 않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부터 줄기차게 차명주는 이선웅에 대해 '안면을 몰수'하고, 그런 차명주가 이선웅은 불편하다 못해 대놓고 나도 싫다라며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악연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선웅이 공들였던 사건을 차명주에게 가기가 바쁘게 '합의'로 마무리되고 만다. 이에 불같이 화를 내며 차명주에게 달려간 이선웅, 지난 5년간 상습적으로 체불한 기업을 그렇게 합의를 해주면 어떻게 하냐는 이선웅에게 미제 사건이 될 정도로 그동안 제대로 증거로 마련하지 못하고 뭐했냐는 차명주, 여기서 합의를 해주면 피해자는 정작 체불임금을 못받을 수도 있다는 이선웅에, 피해자가 내린 결정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그런 처지까지 검사가 신경써야 하느냐며 대꾸하며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야 만다.
엘리트 검사로 늘 속전속결로 결과와 실적을 중시하는 차명주와 조금 느리더라도 이쪽 저쪽 사정을 살펴 혹시나 피해보는 사람이 없게 돌다리도 짚어보는 식으로 해왔던 이선웅의 대결, 이는 결국 사건을 대하는 '검사'의 시각, 세계관의 갈등으로 사사건건 부딪칠게 뻔하다. 또한 드러나지 않은 있는 집 도련님이라며 대번에 이선웅을 규정하면서도 그의 존재만으로 진영지청을 선택한 차명주와의 과거의 인연? 악연 또한 복병이 될 듯하다. 그러기에 단 2회만에 첨예해진 이 두 사람의 갈등은 권력의 비리도 음모도 없지만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전쟁'이 선포됐다. 이선웅과 차명주의 전쟁은 과연? 다음 주를 기약한다.
악플,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회적 문제다.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두 명의 젊은 여성 연예인들, 그들의 죽음에는 예외없이 '악플'의 책임이 대두됐다. 하지만, 그들에게 쏟아부어진 악플은 무수하되, 정작 그 죽음에 책임감을 느낄 당사자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악플은 마치 독버섯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가온, 아직 미성년자인 앳된 시골 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가온이와 엄마가 보낸 지난 몇 달은 지옥과도 같았다. 시간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가온이, 핸드폰 중독?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서 혹시나 자신에 대한 악플이 달려있을까 노심초사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 시작은 한 방송국에서 매주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출연에서 부터였다. 작은 시골학교, 골든벨을 울릴것이라고 예측된 3학년 선배를 제치고 1학년 가온이가 124대 골든벨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 하지만 가온이의 방송 출연분이 캡춰되어 인터넷 공간에서 돌아다니게 되자, 특정 사이트에서는 가온이의 외모를 평가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성희롱성 댓글이 달리고, 사상 검증까지 이뤄졌다. 결국 가온이 모녀는 이에 대해 법적인 해결을 모색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집된 악플만 550여개, 본인이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악플을 직접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가온이와 엄마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이제 가온이는 밤에 자면서도 자신에게 달린 악플에 시달린다. 엄마는 차라리 시간을 돌려 그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지워져도 자신의 머릿속에 남긴 악플로 인해 괴로울 것이라는 가온이, 이렇게 악플은 그 누구라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벌금, 구속으로도 악플은 멈춰지지 않았다 베이비복스라는 그룹 시절부터 악플에 시달려 왔던 배우 심은진 씨, 3년전부터는 자신의 sns를 도배하는 한 사람의 지독한 악플로 고통받고 있다. 무려 그 한 사람이 단 악플만 1000 개,
거듭된 고소로 벌금형은 물론 구속으로 이어진 상황에서도 악플은 멈춰지지 않았다, 심지어 고소 과정에서 심은진씨와 만난 악플러는 마치 아는 언니에게 인사하듯 '언니, 안녕'하며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어렵게 만난 악플러의 어머니는 외려 구속시켜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로 강박증이 심해진 상황이라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원종환 씨의 경우 벌금을 문 악플러가 당당하게 공연 앞자리를 차지하고 그의 공연을 봤다고 한다. 이미 벌금을 물었기에 그동안의 죄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차단을 하면 다시 계정을 만들어 악플을 다는 이들로 인해 당하는 연예인들의 고통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한 아이돌 가수에게 지속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을 추적해 보니 40대의 고시생이었다. 사법 고시를 준비하다 겪은 사회적 좌절을 악플을 달아왔던 그는 특정 연예인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에게 자신의 화풀이를 해왔던 것.
이렇게 한 사람, 혹은 특정의 몇몇에게 '강박증'처럼 댓글을 다는 병적인 악플러들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댓글을 단 것조차 기억을 못하는 다수의 악플러들이 있다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막상 인터넷 상에서 악플을 달던 악플러를 찾아 연락을 하면 대부분 자신이 그런 댓글을 단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멀쩡한 목소리로, '제가 쓴 건가요?'라고 반문하는 사람들, '개그로 적은 건데, 별 의도가 없었어요', 라던가, ' 그 글이 문제가 되는 건가요?'라며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채 댓글을 다는 다수의 악플러가 현재의 '악플 사회'를 만든다.
악플러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sbs스페셜은 악플러에 대해 보다 잘 알기 위해 '악플러를 초대'했다. 하지만, 제작진의 거듭된 청에도 불구하고 매번 악플러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드디어 세 번째 어렵사리 마련된 '악플러의 밤', 악플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던 김정민과 김장훈이 호스트가 되어 세 명의 악플러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자신들이 이상 심리를 가진 사람이나 악마 본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며, 그저 너무도 평화로운 세상 무료할 때 배설하는 기분으로 악플을 단다고 하는 최민지(가명), 자신의 악플에 수 백명이 추천을 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그래서 당연히 선플도 달아왔다는 레이용(가명), 연예인의 가식적인 모습을 못견뎌 악플을 단다는 니즈(가명)까지 다양한 악플의 이유가 등장했다.
인간의 사냥 본능에서 부터 친구에세 카톡을 보내는 식이라던가, 재미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악플을 설명하는 악플러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상 심리를 가지거나 강박증적으로 악플을 다는 몇몇 집요한 악플러도 문제지만 바로 이렇게 그 누군가의 악플에 감정적으로 휩쓸려 자신들의 공격성을 토해놓는 80%의 악플러가 오늘의 악플 세상을 만든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어렵사리 악플러를 초대한 '악플러의 밤'의 결말은 어땠을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호스트 김정민과 김장훈, 김정민에게 악플을 달던 니즈는 알고보니 김정민이 가식적인 연예인이 아니라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인 줄 알았다며 화해의 포옹까지 나누며 화기애애한 마무리를 했다.
악플러와의 포옹, 그러면 됐을까? 이야기 과정에서도 나왔지만 겨우 세 명, 그것도 몇 번의 초대가 무산된 가운데 등장한 세 명의 악플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자화자찬할 수 있을까?
악플러들조차도 코웃음치는 '선플 달기' 캠페인보다는, 대화 중간 지속적으로 김장훈이 언급한 '시스템'의 문제이야말로 사실은 프로그램이 간과한 결론이 아니었을까? 똑같은 '인간'이라는 종을 놓고 어떤 철학자는 '성선설'을 또 다른 철학자는 '성악설'을 놓한 건, 결국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인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과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인간성이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 존재란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악플러의 밤에서도 등장했지만, 마치 악플을 도발하는 듯한 기사들은 그 자체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판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처럼 아예 '댓글'을 쓰지 않는 것이야 말로 '답정너'아닐까. 추천이나 좋아요가 없다면 어떨까? 어쩌면 답은 나와있을 지도 모른다. 그 답을 굳이 겉훑기 식으로 한번 언급하고, 김정민과 악플러의 급 화해 모드로 마무리된 <악플러의 밤>은 그저 이슈가 되니 한번 다뤄보자는 요식 행위를 넘어서기가 힘들어 보인다. 악플은 나날이 심해지지만 한편에서 조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방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악플은 결코 종식될 수 없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제 그의 이름만으로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세계적인 감독이다. 매번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그이지만 고레에다 감독만큼 '일본'의 이야기를, 일본의 정서를 풍성하게 그려내는 감독이 있을까 싶은데.
고레에다 감독의 이야기에는 1991년 <그러나....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등 그가 다큐로 담았던 시대 이래 일본의 그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그늘은 그곳에 드리워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발적으로 재현'되어 삶의 현실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복지 사회 일본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연금, 하지만 그와 달리 연금을 받지 못한 채 무능력한 자식 세대라는 전후 일본 복지 사회가 낳은 그늘은 때로는 <어느 가족(2018)>의 서늘한 동화가 되기도 하고, <태풍이 지나가고(2016)>의 페이소스가 되기도 한다. 복지 사각 지대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처연한 삶을 그린 <아무도 모른다(2004)>의 충격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세계를 삶의 자발적 재현이라 규정한다)
그렇게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야기를 길어내었던 고레에다 감독이 이방의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이다. 이방의 공간 '프랑스'가 감독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과연 프랑스에서 그가 만난 '삶의 자발적 재현'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까지 고레에다 감독이 해왔던 이야기들 중 상당한 부분이 '가족'에 대한 것이다. 그의 찬란한 데뷔작 <환상의 빛(1995)>은 아들과 함께 홀로 남겨진 유미코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그건 자신을 남겨둔 채 세상을 저버린 남편 이쿠오와의 완성되지 못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속 가족은 늘 이빠진 동그라미와도 같다. <걸어도 걸어도>의 가족은 10년 전 죽은 형이라는 빈틈을 두고 쉽사리 서로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반면, 진짜 가족이 서로에게 머뭇거리며 주저하는 사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느 가족>은 사회가 그들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진짜 가족보다 가족같다, 나의 아들이 아닌 내 아들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속 가족은 완성된다. 죽은 아버지가 남긴 의붓딸을 자신들의 품으로 안은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그렇다. 그렇게 고레에다 감독은 가장 가족적이면서도, 가장 가족에 대해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실 속에서 가족을 길어내고 질문한다.
회고록, 봉인을 열다. 프랑스로 온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에도 화두를 '가족'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하지만 엄마라는 호칭보다 여배우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전설적인 여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분), 이제 막 그녀는 그 전설의 결과물인 회고록을 완성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던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 분)가 남편과 딸과 함께 그녀의 회고록 출간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축하'의 시간을 길지 않다. 어쩐지 회고록을 읽어보고 싶다는 딸의 말에 자꾸만 말꼬리를 자르는 수상한 엄마의 태도, 그럼에도 결국 회고록을 읽게 된 딸은 폭발한다. "엄마, 이 책에는 진실이라고는 없네요."
회고록 속 엄마는 당대의 전설이 되어 온 바쁜 배우 생활 속에서도 딸의 학교로 마중을 나가는 자상하고 따뜻한 엄마로 그려진다. 하지만 딸 뤼미르는 반박한다. 언제 엄마가 내가 다니던 학교를 한번 찾아온 적이 있냐고. 그러게 오랫동안 꾹꾹 눌러왔던 부모 자식 관계의 봉인, 그 빗장이 엄마의 회고록을 통해 열려지는 상황,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랫동안 엄마의 일을 돌봐주던 뤼크(알랭 리볼트 분)가 역시나 회고록에 자신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며 당장에 일을 그만둬버리고 집을 나간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는 차 한 잔 타마시지 못하는 '천상 여배우' 엄마의 뒤치닥거리를 뤼미르가 맡게 되며 엄마의 촬영장에 따라 나서게 된다.
엄마는 엄마다 이제는 회고록을 쓰는 '전설'이 되었지만, 현장에서의 엄마는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 채 젊은 여배우의 나이든 역을 맡아야 하는 처지, 그럼에도 여전히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접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거나 흡연에 음주에 습이 되어버린 삶의 태도로 인해 촬영은 여의치 않다.
돈이 떨어져 찾아온 뤼미르의 아버지 삐에르, 그런 삐에르가 영화 속 캐릭터처럼 마법을 걸어버린 거북이의 현신인 줄 아는 순진한 뤼미르의 딸 샤를로트(클레망틴 그르니에 분), 전설인 엄마 앞에서는 배우라 하기에도 겸연쩍은 얼마전까지 알콜릭 치료를 받았던 뤼미르의 남편 등등 영화는 뤼미르가 본의 아니게 함께 한 엄마의 촬영 현장과 파미안느의 집을 배경으로 한 편의 소동극처럼 그려진다.
또한 영화는 '액자식'으로 파미안느가 노년의 딸로 분한 영화 속 이야기와 함께 파미안느와 뤼미의 모녀 관계를 대비시킨다. 불치병으로 지구에서 산다면 몇 년을 살 수 없었던 엄마는 어린 딸을 놔둔 채 7년마다 한번씩 지구를 방문하게 된다는 영화 속 영화의 이야기. 훌쩍 떠나갔듯이 다시 훌쩍 찾아오는 엄마, 그때마다 딸은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다른 연령의 사람이 되어있다. 손님처럼 찾아와 사춘기의 딸을, 어느덧 엄마의 나이가 되어버린 딸을, 그리고 나이가 들어 어느덧 엄마를 잊어버린 정도가 되어버린 노년의 딸을 '엄마'로 위무하는 엄마.
단절적으로 그려지는 sf영화 속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저렇게 7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엄마도 엄말까? 라고. 그리고 이 질문은 파미안느와 뤼미르의 관계에도 등치된다.
엄마의 회고록을 읽고 진실은 하나도 없다고 화를 내는 딸 뤼미르, 그녀가 자라는 동안 여배우 파미안느는 화려하게 세상의 조명을 받았지만 딸을 위한 여지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채워준 건 두 모녀의 애증이었던 파비안느의 동료 여배우였다. 뤼미르는 그녀를 흠모했고 사랑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랑만큼 엄마를 경원시해왔다.
영화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질문하는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한다. 자신이 살아왔던 그래서 믿었던 개인의 과거가 사실은 그 개인이 기억하고 싶은 '오류'일 수도 있지 않냐고 영화는 반문한다. 그리고 그 반문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걸어도 걸어도> 속 부모와 아들은 어쩌면 늦어버린 시간을 다시 걷는다. <세 번째 살인>은 뒤늦어 버린 관계의 상흔을 짚는다. 그렇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속 가족들은 그들이 어긋나버린 '과거'를 현재로 부터 길어올린다. 그것이 때로는 늦고, 때로는 늦지 않게 현재의 관계 그 틈을 메운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어땠을까?
때맞춰 사의를 표명하며 뤼미르에게 시간을 준 그 누구보다 어머니를 잘 아는 뤼크 덕분에 뤼미르는 본의 아니게 배우 파미안느의 시간을 함께 한다. 한때는 전설이었으되 이제는 나이 들어 조연의 자리에서 여전히 주연의 존재감을 욕심내는 천상 배우 파미안느, 이제는 나이들어 버린 어머니가 무사히 또 한 편의 영화를 마무리하는 걸 함께 하며 모녀간에도 이해를 할 수 있는 틈이 마련된다.
돈이 필요하면 찾아드는 아버지를 거뜬히 감수하는 엄마, 엄마이자 가장인 파비안느는 동시에 동시대 최고의 여배우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감수했다. 그리고 그 감수한 것에는 딸을 위한 자상한 어머니의 자리도 있다. 그리고 그건 고레에다 감독이 일관되게 그려왔던 '가족'에 대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이건, 일본이건, 이제 장소를 바꿔 프랑스 건 세계 각국 그 어느나라에서건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면서 동시에 인간 개개인의 '갈등'을 유발하는 진원지였다. 많은 이들이 '가족'으로 부터 배태된 '갈등'을 짊어진 채 평생을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곤 한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이 추구하는 가족의 '화해'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치 않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만나 또 다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내 가족이라 부등켜 안는 <어느 가족>에서 보여지듯이 '가족다움'의 전제란 무색하다. 그래서 <파비안느에 대한 진실> 속 두 이야기 sf속 엄마와, 파비안느는 역설적으로 '엄마됨'을 묻는다. 가족됨을 사색한다.
자신을 학교로 한번도 마중나오지 않았던 엄마, 자신의 학예회에 왔어도 그 예의 입바른 성정 때문에 딸에게 상처를 줄까 차라리 안온 걸로 오랜 시간 원망을 들을 것을 감수했던 엄마, 자신보다 더 딸이 따르는 동료 여배우를 기꺼이 감수해낸 엄마, 그 엄마를 오랫동안 엄마의 그늘에서 허우적거리던 딸이 비로소 안는다. 늦지 않게. 그리고 그건 내 자식이 아닌 아들을 품었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의 아버지, 의붓 동생을 기꺼이 받아들인 <바닷 마을 다이어리(2015)>의 세 자매, 철들지 않은 늙수구레한 아들을 품어주는 <폭풍이 지나가고(2016)>의 어머니 요시코의 그것과 통한다. 가족다워서 가족인 것이 아니라, 가족이어서 '가족'이 되는 '이해의 절정'이다. 딸을 안는 그 순간, 영화 속 자신이 놓친 캐릭터에 안타까워하는 그 엄마까지도 기꺼이 이젠 웃으며 이해하는 그 넉넉한 가족적 이해의 품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뤼미르가 다시 엄마가 되는, 파미안느가 사실은 뤼미르를 독접했던 자신의 동료 배우를 애증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히 파미안느와 뤼미르는 더 늦지 않게 포옹한다.
프랑스로 간 고레에다 감독은, 그가 줄기차게 천착해 온 이야기가 그저 '일본'이라는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화두'일 수 있음을 증명해 낸다. 파미안느라는 전설의 여배우라는 풍모에 딱이었던 카트린느 드뇌브, 그녀의 재발견이라 해도 좋을 법한 아름다웠던 줄리엣 비노쉬, 그리고 기꺼이 가교 역할을 감수한 에단 호크, 그리고 다른 프랑스 영화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청량하게 아름다웠던 파비안느의 정원과 그곳에 어루러졌던 낭랑한 ost 속에 어우려저 고레에다 월드는 그 깊이를 더한다.
셜록 홈즈, 아가사 크리스티, 탐정 김전일 등등 추리 장르는 늘 '마니아'적인 일군의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과거의 셜록이 영드 2부작 <셜록>으로 돌아왔을 때 추리 마니아들이 환호한 건 스타일리쉬한 구성만이 아니라, 과거의 서사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그 '신선한 퍼즐'에 있었다.
12월 4일 개봉한 <나이브스 아웃>은 모던한 아가사 크리스티라고 하면 어울릴까? 성과도 같은 외딴 저택에 사는 당대 최고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의 죽음과 용의선상에 오른 많은 가족들은 등장인물 모두가 의심스러웠던 <쥐덫>,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삐뚤어진 집> 등의 저택을 배경으로 했던 작품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심지어 007의 다니엘 크레이크,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돈 존슨, <할로윈>의 제이미 리 커티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아나 디 아르마스, <그것>의 제이든 마텔, <올 더 머니>의 크리스토퍼 플러머 등의 화려한 출연진이라면 더더욱 그 누가 범인일 지 예측불가다.
모두에게 '살인'의 이유가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스스로 자신의 10대 걸작 중 하나라 칭한 <삐뚤어진 집>은 음산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의 저택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진 대부호의 죽음. 그렇게 <삐뚤어진 집>처럼 <나이브스 아웃> 역시 곳곳에 마치 공포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인형과 그림과 장식품들이 즐비한 저택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저택의 거실에 자리한 둥근 바퀴 모양으로 꼿혀진 그 자리에서 빼어들면 바로 무기가 될 것 같은 칼들이다.
그리고 그곳에 1년에 2권씩 평생 동안 미스터리 스릴러를 써온 85세의 노익장 소설가가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 분)과 그의 자손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스타일즈 저택>에서 용의자 모두가 죽은 노부인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해 왔듯이, 말이 대가의 자식들답게 저마다 제 앞가림을 하고 산다지만, 그 허울좋은 자녀들의 한 껍데기를 끄집어 내보면 아버지의 돈으로 부동산 사업을 한다지만 바람을 피는 남편 리처드(돈 존슨 분)에, 돈 한번 번 적이 없이 고급 차를 몰며 세월을 보내는 아들 랜섬(크리스 에반스 분)을 가진 큰 딸, 명색이 아버지 책을 내는 출판사 사장이라지만 아버지 작품 tv각색 사업의 권한조차 없는 둘째 아들 월트(마이클 새넌 분), 그리고 말이 좋아 '트렌드 세터'지 남편이 죽은 이후로 시아버지가 돈을 대준 딸의 학비마저 유용하여 자신의 사치스러운 삶을 투자하는 며느리,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손주, 손녀가 있다.
할란(크리스토퍼 플러머 분), 하지만 그는 85세 생일을 맞이하여 중대 결심을 한다. 자신이 평생 글을 써서 모은 돈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한 것이 외려 자식들의 앞길을 망쳐온 것이 아닐까란 후회를 한 그는 생일을 기점으로 더는 아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결심은 실행되지 않았다. 아니 실행될 수 없었다. 생일 다음 날 그는 칼로 목을 그은 채 발견되었고, 느닷없이 그 누군가의 촉탁으로 경찰과 함께 등장한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리에그 분)은 가족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타살'의 혐의를 좀처럼 거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할란의 죽음을 두고 그에게 '촉탁'한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의심스럽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늘에서 비껴선 반전 가족들은 슬퍼하면서도 안도한다. 할란이 죽은 덕분에 사위는 아내 몰래 바람피는 걸 들킬 염려가 없어졌고, 하룻밤 사이에 출판사에서 쫓겨날 뻔 했던 둘째 아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당연히 할란의 어마어마한 유산이 자기들 몫이 되리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류층 가족의 부도덕한 모습은 역시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삐뚤어진 집>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고전적 설정'에서 한 발씩 비껴서며 새로운 추리의 퍼즐을 만들어 간다. 편지 한 장으로 저택에 등장한 탐정 브누아 블랑이 그러하고, 그와 함께 '왓슨' 역할을 하게된 거짓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토하는 '결벽증'을 지닌 할란의 전담 간호사였던 마르타(아나 드 아르마스 분)의 캐릭터가 추리 장르가 가진 전형성의 벽을 허문다
그리고 할란의 생전, 그리고 사후의 시간을 오가며 사건을 드러내 보이던 영화는 이민자 간호사인 마르타와 할란 사이의 '비밀'이 드러나며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추리' 장르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거짓을 하면 토하는, 하지만 지켜야 할 비밀이 있는 마르타와, 그런 마르타의 비밀을 알게된 랜섬(크리스 에반스 분), 그녀의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인간 거짓말탐지기 증상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착한 사람'이라는 심성에 대한 믿음인지 마르타를 자신의 수사 보조로 함께 하고자 하는 브누아 블랑의 엇갈리는 관계가 <나이브스 아웃>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된다.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장르였던 영화는 문득 셜록 홈즈였다가, 마르타의 시점에서 전개되면서 서스펜스 스릴러가 되기도 한다.
드디어 가족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던 할란의 유언이 발표되고, 오로지 할란에 기대어 살아왔던 가족들의 진짜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동시에, 말끝마다 '가족'이라 했던 '이민자' 마르타에 대한 이중적인 속내도 가감없이 드러난다. 거기엔 정치적 입장이 무색하게 그저 자신들의 가진 것만이 '전부'였던 할란이 그토록 걱정했던 오로지 아버지의 '돈'으로 포장되어온, 그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란마저도 죽일 수 있는 부도덕하면서도 이기적인 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의 첫 등장처럼 뒤에 앉아 지켜보는 듯 하면서도 흔들림없이 도넛의 뚫린 구멍처럼 의문스러웠던 할란 죽음을 추적하던 브누아 블랑은 드디어 진실에 다가선다. 범인이 예리하게 겨눴던 할란의 목숨, 하지만 계획된 범죄가 뜻밖의 '오류'를 통해 전혀 다른 죽음의 진실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 즉 영화 제목인 '나이브스 아웃'이 곧 '스포'였던 결말, 그 과정에서 영화는 뜻밖에도 '권선징악'의 교훈으로 마무리된다. 마치 착한 사람은 자다가도 떡을 얻고, 뒤로 넘어도는 코가 깨지기는 커녕 두 손 가득 횡재를 한다는 동화같은, 하지만 할란네 가족의 입장에서는 '잔혹 동화'의 결말에 도달한다.
정준영을 시작으로 해서 김준호, 차태현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 들은 <1박 2일> 시즌 3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1박2일> 시즌 3는 종영했고, 다음 시즌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과연 저런 상황에서 제 아무리 일요일 밤의 스테디 셀러라 해도 <1박 2일> 이 재기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시즌4의 새로운 멤버 라인업이 등장했다. 연정훈, 김선호, 딘딘, 문세윤, 라비, 그리고 김종민까지. 방위 소집 기간을 제외하고 1박 시즌 내내 생존했던 김종민은 그렇다 치고, 최근 먹방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낸 문세윤 정도?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보인 딘딘이라지만 차라리 한가인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연정훈이 익숙할까, 김선호나 라비는 거의 신인과도 같다. 중장년층이 주된 시청자인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낯선 인물들인 셈이다. 과연 저 사람들을 데리고 일요일 밤 메임 예능이 가능할까라는 우려가 앞선 라인업이었다.
명불허전 까나리부터 그런 우려때문이었을까? 아침 6시 반 kbs 본관 앞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에 앞서 새벽에 각자 자신의 차를 타고 출발했던 멤버들을 맞이한 건 다짜고짜 들이밀어진 미션지였다.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메이크업은 커녕 슬리퍼 바람으로 단 돈 만원을 쥐어주며 오프닝 장소까지 시간에 맞춰 오도록 하는 첫 번째 미션.
시즌 4를 시작하는 제작진의 묘수는 바로 <1박2일>다움이다. 출연진이 그 누구건, 심지어 일반인이라도 피해갈 수 없던 그 <1박2일> 특유의 가차없는 미션, 겨울 새벽 거리를 그리 오래 남지 않은 오프닝에 맞추기 위해 '신입' 멤버들을 들입다 뛰게 만드는 <1박2일> 다움으로 멤버들 면면의 낯섬을 넘어서고자 한다.
그리고 겨우 숨을 헐떡이며 추레한 모습으로 모인 kbs 본관 앞 조금은 쑥쓰러운 듯, 하지만 새로운 시즌에 합류했다는 뿌듯함과 잘 해보겠다는 의지로 입을 모아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1박2일!'을 외친 것도 잠시 그들의 앞에 멋진 suv가 무색하게 덜덜거리며 예의 1박2일다운 낡은 트럭 한 대가 등장하고, 두 트럭의 승차를 가를 200 개의 아메리카노와 까나리카노가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미션은 명쾌하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통과, 심지어 연달아 먹으면 두 배, 당연히 까나리가 걸리면 탈락이다. 예외는 있다. 까나리카노를 다 마시면 아메리카노와 같은 경우로 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 시즌을 다 합해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드디어 시작된 까나리 미션, 첫 번째 마신 라비는 당연하게 '본능적'으로 뱉고 만다. 그런데 반전은 두번 째 미션 멤버인 '딘딘'부터였다. 올해 하반기에 운이 좋다는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딘딘은 첫 번째 아메리카노를 순탄하게 넘기고부터 연속으로 까나리가 걸렸다. 그런데 그걸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신다? 나중에 차에 탄 그의 말처럼 아들이 1박2일에 들어가서 걱정되고 좋아서 하루 세번 기도하신다는 어머님 때문이었을까? 딘딘은 무려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에 걸쳐 까나리를 원샷하며 까나리 미션의 새 장을 연다. 제작진의 얼굴이 그가 까나리를 원샷할 때마다 굳어져 간다. 당연히 <1박2일> 역사에선 고려해 보지 않았던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름부터 낯선 '딘딘'이란 청년이 <1박2일>의 신입 멤버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난처한 처지를 뚫고 시작한 <1박2일> 시즌4의 가능성이 열린다.
<1박2일>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한도전>의 정신이 논바닥을 헤집던 <무모한 도전>이었듯이, <1박2일> 역시 혹한이든 혹서든 그 어떤 조건에서도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멤버들의 '헝그리 정신'이 아니었을까. 그게 강호동이었든 이수근이었든, 김준호였든 시즌을 상관없이 그들이 힘들고 고달퍼 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모습, 그게 바로 일요일 저녁이면 사람들이 무람없이 채널을 kbs2로 고정시킨 '본류'가 아니었을까.
바로 그 '1박'의 정신을 이제 시즌 4의 신입 멤버 딘딘이 까나리를 거뜬하게(?) 세 잔이나 원샷하며 새로이 부활시켜낸다. 과연 시즌3의 그 최악의 구설수를 저 낯선 멤버로 극복할 수 있을까란 우려를 '까나리 원샷'으로 대번에 불식시킨다. 두번 째 미션자 딘딘이 그러다 보니, 그 뒤의 멤버들도 본의 아니게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연정훈은 최연장자라 체면을 차려야 해서 마시고, 유세윤은 먹방의 대가답게 마시고, 예능 뽀시래기라는 김선호는 안절부절하다 마시고, 유일하게 시즌을 경험했던 김종민만 빼고. 모든 멤버들이 한 두, 심지어 세 잔 까지 마시며 시즌4의 새로운 공기를 만들어 낸다. 물론 까나리를 원샷한 덕분에 이어진 휴게소 화장실 레이스는 문세윤의 천연덕스런 중계와 함께 '애교'가 되었다.
낯설지만 어느덧 친근해진 멤버들 그리고 뜻밖에서 오프닝에서 데면데면하던 이들은 단 한 번의 까나리 먹방으로 동지애를 대번에 얻는다. 나이가 많다지만 어쩐지 어수룩하며 힘든 상황에서 나이 핑계대며 뒤로 물러서지 않는 연정훈에, 추임새하며 중계방송에 심지어 진행까지 능숙한 문세윤은 <맛있는 녀석들>의 먹방러 이상의 새로운 발견이다. 그와 함께 거의 '만담'에 가까운 콤비 플레이에 뭐든지 일단 '해보고' 보는 '딘딘'은 첫 회만에 정겹다. 아직 카메라가 낯선 김선호의 뽀시래기한 어색함과 초조함, 그럼에도 잘 해보려는 모습은 새 시즌의 정서를 한껏 살리고, 막내 라비의 똘끼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반전'의 묘미가 있다. 무엇보다 멤버들 각자가 예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꾀부리지 않고, 애써 웃기려 하기 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편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김종민, 왜 김종민이 거의 전 시즌에 '출석'할 수 있었는가를 첫 회에 다시 보여준다. 선배라 나서지 않고, 그러면서도 예의 까나리 먹방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어느 틈에 저 새로운 멤버 중 한 명으로 낯설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놓아둔다. 그 어떤 시즌의 멤버들과도 이물감없는 어울림, 그것이야 말로 김종민의 장기가 아닐까, 그것이 시즌4의 첫 회에 다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렇게 어느 틈에 어우러진 김종민과 함께 불과 몇 십 분 만에 이 낯설었던 멤버들을 향해 익숙하고 친밀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1박2일>의 동질감이 놀랍다. 까나리를 비롯한 전통적 미션의 익숙함 때문이었을까? 면면으로 보면 하나하나 낯설지만 모두 모아놓으니 김종민을 비롯하여 모두가 그들이 '저를 아십니까' 라며 외치던 그 휴게소 인파들 가운데에 어우러져 버리는, 어쩐지 어디선가 마주쳤을 것 같은 친근한 면면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독불장군 강호동도, 이방인 김c도, 돌아이 정준영도, 머쓱대던 김주혁도, 심지어 생전 처음 본 일반인 참가자 까지 그 모두를 <1박2일>이라는 용광로 속에 잘 추스려 냈던 <1박2일> '전통'의 '제조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통은 소중하다. 하지만 전통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다. 버릴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그 경계가 늘 어렵기 때문이다. 시즌 4의 첫 회를 연 <1박2일>은 버려야 할 과거는 과감히 버리고, 낯설지만 새로운 그러나 익숙한 전통의 줄 위에 섰다. 첫 회만에 멤버들 면면이 벌써 친근해 졌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출발이다 싶다. 물론 갈 길은 멀다. 하지만 한 걸음을 잘 걸어냈으니 앞으로의 길도 기대해 볼만 하겠다.
헬렌 미렌과 이안 맥켈런, 이 노익장 배우 두 사람이 주연으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굿 라이어>는 봐야할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두 배우를 '조련'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빌 콘돈이라면?
빌 콘돈 감독과 함께 한 헬렌 미렌과 이안 맥켈런,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도무지 예측이 안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작품상을 안긴 <브레이킹 던(2012)>에서부터 골든 글로부 작품상을 안긴 <드림걸즈(2007)>, 그리고 <미녀와 야수(2017)>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종횡무진하다. 그 중에는 이안 맥켈런과 함께 한 노년의 홈즈를 그려낸 <미스터 홈즈(2016)>도 있다. 아마도 <굿 라이어>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미스터 홈즈> 속 30년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미궁 속 사건의 진실이 가장 근접하겠다. 바로 그 과거의 사건으로 부터 오늘의 '굿 라이어'는 탄생되었으니까.
'라이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건 어떤 일일까? 아니 그 반대로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포기할 수 없는 복수란? 80대 노익장 두 배우의 깊이있는 열연이 담긴 영화 <굿 라이어>를 보고 나면 도달하게 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들이 아직 세상을 모르던 10대의 시절로 관객을 이끈다.
<굿 라이어>가 주목할 만한 지점은 흔히 2차 대전 시기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면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하 '주제'를 길어내는 것과 달리, 전쟁에 휩쓸린 독일에서 살아갔던 10대의 소년과 소녀의 비극적 삶을 조명해 낸다.
<폭풍의 언덕>으로 온 히드클리프는 그를 '모멸'하는 주인의 아들 힌들리에 대해 2대에 걸친 처절한 보복을 한다. 이제 막 '자아'를 형성해 가는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인격적 모욕'은 평생의 '트라우마'와도 같다. <폭풍의 언덕>만이 아니라 많은 소설들이 그런 '소년'의 엇나간 자존심을 문학적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소년이 있다.
한스, 겨우 15살 나이에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딸에게 영어를 가르칠 만큼 똑똑했지만 그는 가진 것이 없다. 전쟁 통에 이쁜 옷을 입어도 갈 무도회가 없는 사업가의 딸들은 자신들의 눈에 띈 한스를 상대하여 춤판을 벌이지만 '하인'같은 한스의 도발적인 키스는 감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상처받은 소년의 치기는 자신을 흠모하는 제자인 막내 딸 릴리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상흔를 결과한다. 그리고 그날로 소년의 밥줄은 끊겼다.
그게 시작이었다. 자신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소년을 흠모했지만, 그 흠모의 대가로 씻을 수 없는 성폭력과 그에 이은 상처입은 자존심을 끝내 참지못한 소년의 '밀고'로 인해 부유했던 가정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한 소녀의 삶이 땅바닥에 쳐박히게 된 것은. 그래서 온통 흰 머리가 된 2009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없게 된 것이. 소녀는 내가 먼저 나가서 선생님을 맞이했다면 어땠을까 라고 오랜 시간동안 되물었지만, 더는 하얀 백합과 같은 소녀의 순결함도, 고결함도 지켜낼 수 없었다.
동시에, 그건 흔히 영어에서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를 지칭하는 'liar'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 지를 배운 소년은 다시 자라서, 이제는 부모조차 없는 처지의 자신을 영국인으로 거뜬히 '위조'했고, 15살 소년이 영국인 '로이'가 되어가며 살아왔던 방식은 해를 거듭할 수록 '업그레이드' 되어 이제 노년에 이르러서 30억이 넘는 재산을 모은 '프로페셔널한 라이어'가 되어 있었다. 영화는 명확하게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한스라는 인물이 사기꾼 로이로 살아내기 위해 그의 고국 독일에서 '전범'의 역할 마다하지 않았음을 드러내 보인다. 굳이 '홀로코스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쟁'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생존과 편의를 위해 '악'과 손을 잡게 되는가를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15살 자신에게 '모멸감'을 안겨주었던 '릴리'네 집안을 '파멸'시키듯이 노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 누구라도 손을 짖이겨 버리고, 머리통을 나꿔채 달려오는 지하철로 던져버리며 장애물을 없애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우연히 데이트 상대를 만나기 위해 드나들던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부유한 미망인 베티를 통해 겨우 1억 나부랭이나 사기치던 사업의 '40억 짜리 마지막 큰 한 판'을 용의주도하게 준비한다.
누가 굿 라이어인가? 노년의 사랑을 '로맨틱'하게 다뤘던 영화 <북클럽>에서 오랫동안 독신 생활을 해왔던 연방 판사 샤론(캔디스 버겐 분)이 뒤늦게 '연인'을 만나게 되는 창구였던 인터넷 만남 사이트는 이제 <굿 라이어>에서는 자신의 본명을 숨기는 등 조금은 거짓말을 했다는 '로이(이안 맥컬런 분)'와 '베티(헬렌 미렌 분)'가 만나는 계기가 된다. 같은 사이트가 매개하는 '사랑'과 '복수', 현대 문명의 아이러니한 몰가치성이다.
영화를 내내 이끌어 가는 건 부유한 미망인에 전직 옥스포드 교수였다는 베티를 상대로 한 로이의 사기 한 판이다. 동시에 로이는 부동산 사기 한 판을 벌이고 있다. 베티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릎이 안좋다며 절둑이던 로이가 거의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급으로 멀쩡하다 못해 달리다시피 찾아간 바에서 만난 동료 사기꾼들, 로이와 함께 했던 베스트와 함께 새로이 합류한 2명, 이렇게 총 4명의 사기꾼들은 러시아 투자자를 상대로 한 '투자 사기'를 준비한다.
어수룩한 동료의 썰렁한 한 마디로 엎어져 버릴 뻔한 판이 우여곡절 끝에 로이 측의 투자금을 올려 겨우 러시아 측의 12억의 배팅이 순조롭게 끝난 순간, 반가워 덥석 안은 러시아 투자자 등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된다. 그와 함께 들이닥친 경찰, 그때 로이는 심장마비가 온 듯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동료들은 우선 급한 마음에 로이를 놔둔 채 자리를 뜬다.
이렇게 주인공의 심장마비로 끝나버리는가 싶은데 그 상황을 깬건 뜻밖에도 쓰러진 줄 알았던 로이의 호쾌한 웃음이다. 알고보니 '사기'의 대상은 '러시아 투자자'가 아니라, 그를 속아넘기려 했던 '로이'와 짜고 쳤다 생각한 두 명의 동료였던 것던 것. 이 장황하게 전개된 로이의 사기극은 <굿 라이어>의 결정적 '스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속고 다시 속이는, 그래서 '사기'의 주체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사기'를 당하는 측이 되는 이 사건은 이후 로이와 베티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된다. 단지 그 '설계자'가 '로이'가 아니라는 것만 빼면.
아니 애초에 가장 결정적인 '스포'는 제목 <굿 라이어>이다. '라이어'라는 말이 그냥 우리나라의 '거짓말쟁이' 정도가 아니라 queen의 노래 'liar' 가사 내용처럼 밥먹듯이 거짓말을 하는 욕에 가까운 명칭이다. 그런데 그런 'liar'가 Good하다니, 언뜻보면 노회한 사기꾼인 로이를 지칭하는 단어같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여주인공인 '베티'의 평생에 걸친 숙원을 '상징적'으로 뜻하는 단어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마치 게임처럼 두 주인공의 '거짓말'을 둘러싼 치명적인 스릴러같지만, 그 '거짓말' 게임의 궁극에서 만나게 되는 건 '전쟁' 속에서 피폐해지고 상흔에 너덜너덜해진 '인간성 말살'의 표상들이다. 두 배우의 무게감만큼 이야기가 전해주는 역사적 울림이 깊다.
2019년 6월 이탈리아 람페두사 해상 47명의 조난자를 실은 독일 NGO 시워치(sea-watvh) 3호는 입항 거부로 표류중이다. 이미 출항지였던 몰타에서 오랫동안 출항 보류로 인해 오랫동안 억류되었던 배, 이제 겨우 바다로 나와 '난민'을 구조했지만 그들을 반기는 항구가 없다.
지중해를 떠도는 사람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난민' 문제가 낯설은 것이 아니다. 지난 해 제주도에 입국한 예맨 난민들을 둘러싸고 여론이 둘로 갈렸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갈곳없는 예맨 사람들을 기꺼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했지만, '가짜 난민', '범죄자', '테러리스트'까지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혐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우리의 문제 만이 아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난민들과 관련하여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바다 하나를 두고 삶의 질을 달리하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 사이의 지중해는 UN산하 국제 이주기구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이주자 발생지역 및 사망 지역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내전과 분쟁, 인종과 종교의 박해, 굶주림으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이 '보트 피플'이 되어 지중해 해상을 떠돈다.
이른바 '유럽 난민 사태(European refugee crisis)'로 명명된,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본격적으로 지중해에 나타난 난민들, 2013년 이탈리아 람페두사 해상에서 이들을 태운 배가 좌초하여 366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이탈리아 정부는 이 지역의 군함으로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작전을 펼쳐 난민을 구했다. 하지만 이 작전으로만 구해진 난민들의 수가 무려 15만 명, 안그래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급격하게 증가한 난민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이 부담을 나누어지지 않으려는 유럽 타국가, 그에 따른 여론의 악화로 2014년 10월 작전은 종료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작전은 종료되도 지중해를 떠도는 사람들은 줄지 않았다. 결국 시민 단체가 나섰다.
12월 2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구조>는 유럽이 외면한 지중해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NGO 씨워스에 승선한 세계 각국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난민'문제에 대한 화두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난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프란체스코 트리플리는 지금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시칠리아계 이민자이다. 그가 '이민자'였기에 '난민'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세계의 역사는 이주민의 역사이다.' 과연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 프란체스코. 좋은 환경에서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던 그는 그래서 이제 바다로 나선다.
라이니니는 암스테르담에서 열쇠 수리공으로 일한다. 호출을 받고 달려가 문을 따주면 사람들이 기뻐하듯 지중해 조난 구조는 그렇게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알제리 태생이다. 4살까지 그곳에 살았다. 다행히도(?) 그는 부모가 유럽 출신이라 유럽으로 '이주'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인데 그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만약에 암스테르담 바다에 사람들이 빠졌다면 20척의 배가 달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국경에서 사람들은 '익사'하고 있다.
독일에서 청소년 지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슈피 하니힐트는 난민 구조가 의무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않되는 인도적 범죄 행위라며 한 발 더 나아간다. 독일 남서쪽 숲이 있고 집집마다 정원이 있는 마을에서 자란 슈피네 근처에는 난민 수용 위원회가 있었다. 침대도 없이 현대판 감옥같았다고 그곳을 회상하는 그녀, 돈많고 럭셔리한 나라의 문 앞에서 매일 사람들이 '익사'하고 있는 현실, 거대한 묘지가 되어가는 지중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한다.
그들이 달려간 바다, 그곳에는 도저히 지중해를 건널 수 없어보이는 20~25m의 고무 보트에 80여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거기에는 임산부도, 어린 아이도 있다. 며칠 동안 당연히 씻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며 구져져 생지옥 상태로 바다를 건넌다. 항해에 부적합한 고무 보트의 현실에서 조난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로마해상구조조정본부에서 조난 신고가 들어오면 씨워치 호는 달려간다. 순간적으로 보트의 바닥이 무너져 물에 빠진 사람들, 그들 중 상당수는 수영을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에 빠지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런 그들을 향해 구명 조끼를 던져주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게 바로 이들 볼런티어(자원 봉사), 씨워치 호의 청년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구조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2017년 11월, 배가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시체가 바다에 흘러가고 있었다. 2살 아이를 건져 심페 소생을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리비아 해안 경비대가 배를 출동시켜 구조하려 했지만 다시 리비아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기에 사람들은 그 배에 오르지 않는다.
지중해는 누가 구하나? 자연재해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기로 하여 생긴 일, 그래서 베를린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는 막스의 신념은 단순하다. 나치부터 난민까지 누가 되었든 인간은 모두 똑같고 중요하기 때문에 구할 것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나치를 구하듯 난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들을 죽지 않게 하는 건 쉽다. 가서 구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바다로 나서는 일이 매번 쉬운 건 아니다. 그들은 혹시라도 그들이 탄 배가 납치범에게 납치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생존 확인서'를 쓰고 배에 오른다. 난민들이 제 아무리 바다에 빠져 쓸려가도 이들 NGO 난민구조선 승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드는 건 금지사항이다. 막스는 그 금기를 깨뜨렸다. 죽어가는 임산부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다. 어렵사리 그녀를 구조하고 자신의 몸도 말리지 않은 채 두 시간여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료진과 함께 악전고투를 한 후 홀로 갑판에 나와서 울었다.
그들이 나선 어둠이 내려진 바다는 깜깜하다.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죽음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 그 바다에서 돌아온 후 항해사인 크라인아우트는 삶에 대한 '무지'를 잃었다. 난민들의 비참한 상황은 '추하다'. 그 혼란스럽고 미치겠는 상황을 견대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바다로 뛰어든 그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이제 스물 여섯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나이가 된 그는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의 '맹목적'이라 할만한 '인도주의'에 세상은 차갑다. 100유로면 갈 수 있는 거리, 생존을 위한 목숨을 건 마지막 항해, 그러나 난민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잣대는 냉정하다.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떠나 좀 더 돈을 벌기 쉽고 안전한 환경으로 떠나는 이들을 '기회주의자'라며, 구조하는 행위에 대해 '브로커'의 배만 살찌우는 행위라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사람을 넘기는 '인신매매'의 한 유형이라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난'에 대해 씨워치 호의 청년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그들이 난민 지위 확보를 위해 적절한 지역으로 옮겨주는 것일 뿐이라고.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사람의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그건 국가와 정치가 판단할 몫이라고. 그리고 그런 '비난'의 근저에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겁먹은 마음이 내재해 있지 않냐 묻는다. 부디 다르게 보일 뿐인 생명에 대해 '너그러움'을 가지라고. 그저 그들은 바다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목표일 뿐이라고.
김연식 씨, 항해사로 10년을 일했다. 지금은 제주에서 7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집과 씨름 중이다. 그는 씨워치 호의 항해사이다. 자신은 그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연식 씨, 그는 그렇게 광화문 광장을 가듯 지중해로 간다. 지난 5년간 김연식 씨와 같은 500여 명의 볼런티어들이 3000 여명 이상의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후회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에는 쌍생아처럼 '후회'란 단어가 수반된다. 사랑하기에 함께 하고자 했던 시간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에 늘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복병들이 일찌기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수많은 사랑 이야기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이들이 맞아야 하는 '이별'의 파국', 그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 '후회'를 막기 위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신선한 '장치'들을 고안해 낸다.
2004년 개봉하여 '자기 희생'적인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2017년 재개봉한 <이프 온리>는 죽은 줄 알았던 아내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이트 분)가 잠을 깨보니 다시 남편인 이안(폴 니콜스 분) 옆에 있다는 '기적'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그런가 하면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가 된 <어바웃 타임>에서는 모태 솔로인 팀((도놀 글리슨 분)에게 알고보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가계'의 비밀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옷장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엇갈린 연인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와 인연의 끈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기적도 발생했고, 시간을 돌리는 기적도 써먹었고, 이제 더는 사랑의 기적을 위해 써먹을 것이 있는가 싶었는데 <러브 앳>이 '평행 세계 이론'을 들고 나왔다. SF물에서 흔한 설정이 된 '평행 세계'가 이제 '사랑'의 묘약으로 등장한다. 잠을 깬 주인공라파엘(프랑스와 시빌 분)은 하룻밤 사이에 평행 세계의 또 다른 공간에 와있다.
같지만 다른 공간 속으로 떨어진 남자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전혀 다른 공간, 어젯밤 그는 늦게 들어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자신의 일과 작업에만 몰두하다 아내 올리비아(조세핀 자피 분)와 싸웠다. 한때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꿨지만 그 꿈을 접은 채 아이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하고 있는, 그래서 싸우기만 하면 남편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하는 그 말을 오늘도 어김없이 끄집어 내는 아내의 말에 화를 내며 물건을 집어 던졌고, 집을 나와 홀로 술을 마셨었다. 그리고 자는 아내 곁에서 잠들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아내가 없다. 하지만 아내의 부재 대신 오늘 있을 중학교 강연에 온통 신경이 쏠린 그는 학교로 향하고 그곳에서야 자신이 같지만 다른 공간에 와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있었던 세계에서 <졸탄과 새도우>라는 SF소설 한 편으로 잘 나가는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어 인터뷰와 강연으로 이어진 나날을 보내던 라파엘, 작가는 커녕 몰래 카메라인 줄 알았던 중학교가 이곳 세계에서 문학 교사로서 그가 일하는 직장이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이곳의 그에게는 아내가 없다. 우연히 거리에서 발견한 아내는 저쪽 세계와 달리 꿈을 이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있다.
라파엘은 긴가민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오랜 벗이자 같은 학교 선생님이 되어있는 펠빅스(프랑스와 시빌 분)의 도움을 받아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고자 갖가지 해프닝을 벌인다. 그가 생각한 방법이란 이곳에서 다시 올리비아의 사랑을 얻는다면 그래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저쪽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인데, 아내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니 우선 무엇보다 아내의 눈에 띄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라파엘의 갖가지 해프닝이 프랑스 영화다운 화법으로 <러브 앳>을 채운다.
당신이 사랑하는 건? 최첨단 과학 이론을 들고 나온 작품답게 영화를 여는 건 가상의 세계 속 치열한 전투 장면이다. 적들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겨우 피하는가 싶은 주인공, 알고보니 그 장면은 아직 다 써지지 않은 라파엘의 습작 노트 속 내용이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인 라파엘, 하지만 오로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건 가상 세계 속 졸탄의 활약을 그린 SF물, 친구인 펠릭스가 걱정을 하건 말건 그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작품의 다음 장이 고민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들려온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학교 구석의 창고같은 방에 발을 들여놓은 라파엘은 그곳에 숨어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올리비아(조세핀 자피 분)에게 첫 눈에 반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연주를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올리비아의 수줍은 고백은 바로 습작을 들켜 왈칵 화를 내버리며 교실을 뛰쳐나왔던 라파엘의 심정, 그렇게 피아니스트와 작가의 꿈을 가진 소녀 올리비아와 소년 라파엘은 첫 만남의 긴장으로 '졸도'하며 사랑의 레이스에 돌입한다.
영화는 소년과 소녀로 만났던 이들의 10년 후, 그리고 평행 세계 속 공간에서의 조우를 그린다. 로맨틱 코미디답게 그곳에 있던 아내가 지금은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짜고짜 다시 아내와의 사랑 만들기가 이전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해법이라 결론을 내린 라파엘의 구애는 맹목적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문득 의문이 생긴다. 과연 라파엘이 얻고 싶은 건 이곳에서 자신을 남처럼 여기는 아내의 사랑을 얻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저쪽 세계에서 베스트 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 후 벽을 때려 부숴 집을 넓히고 TV에도 출연하고 여기저기 싸인을 하고 다녔던 그 '명망'의 시간이 그리운 것일까? 이곳에서 라파엘에게 인기란 학교 문학 교사로서의 그것뿐이고, 친구의 썰렁한 농담을 들으며 함께 탁구를 치며 벽을 넓히지 않은 좁은 집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못견디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러브 앳>은 같은 공간, 다른 차원의 설정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을 풀어나가지만, 뜻밖에도 그 '사랑'의 해프닝을 통해 관객은 다른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건 맹목적인 라파엘만이 아니라, '사랑'의 이름으로 진통을 겪는 많은 남녀의 관계들 사이에 숨겨진 '퍼즐'일 지도. 우리 역시 사랑이라 쓰지만 다른 것들을 그 속에서 찾아 헤매다 갈등을 일으키니 말이다.
하지만 라파엘은 자신이 '사랑'하는 게 아내인지, 과거의 삶인지에 대한 고민, 고뇌 없이 저쪽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올리비아에게 다시 저돌적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운명처럼 팬이었다가, 스토커였다가,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자원봉사자였다가, 올리비아 전기의 유령작가로 신출귀몰한 라파엘은 드디어 그녀에게 '남자'로 다가서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을 얻기만 하면 되는 것같던 '평행 세계'의 퍼즐은 수업 시간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진짜 실마리를 얻게 되고, 그녀의 연주회에 간 라파엘은 마지막 열쇠를 그녀에게 넘긴다. 그리고 그녀의 배려 덕분에 마지막 연주회라 생각하며 입장한 그곳에서 라파엘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에 맞춰 비로소 자신이 놓쳤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뒤늦었지만 비로소 사랑을 깨닫게 된 라파엘은 <이프 온리>의 이안에 버금가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라파엘의 결단은 훈훈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영화가 엔딩을 맞이한 후 돌아가는 길의 관객에게 여운으로 남는다. 과연 사랑을 위해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라며. <러브 앳>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화법에 충실한다. 하지만 그저 '사랑'의 기승전결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는 외려 그 '사랑'의 질감을 묻는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꿈조차 사랑할 수 있습니까? 아니 그 사람의 꿈을, 삶을 존중하고 있나요? 그 사랑하는 이를 위해 당신의 꿈을, 당신의 명망을 포기할 수 있나요?라고.
이제는 노익장이 되었지만 굳이 그의 이름 앞에 작품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는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가 한 작품에서 만났다. <아이리시맨>은 어쩌면 이 두 사람의 배우 만으로도 '영화사'적 가치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하물며 그 두 사람을 한 화면에 잡은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라면 더더욱.
영화를 보고 나오면 문득 여러 작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알 파치노의 이름을 알린 <대부>에서 부터, 로버트 드 니로의 역작 <원스어폰어 타임 인 어메리카>, 그리고 <갱스 오브 뉴욕> 등등, 프랜시스 코폴라, 세르지오 레오네, 마틴 스콜세지 등 만든 사람들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 영화가 그려내는 건 '아메리카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이다. 역사 책에서 말해주지 않은 '아메리카'를 만든 사람들, 이제 2019년 넷플릭스판으로 만들어진 <아이리시 맨>은 그 완결판과도 같다. '지미 호파 실종 사건'으로 귀결되는 20세기 미국의 완성, 역시 마틴 스콜세지답게 영화는 웅장한 영웅적 서사나 장렬한 성장담 대신, 비감한 회고담에 도달한다. 당신 손에 묻힌 그 피는 무엇을 위해서였냐고.
페인트공이 된 남자, 프랭크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실존의 그 누구를 떠올리게 하지만 딱히 그 누구랄 것도 없는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 남성, 영화는 그가 뉴욕 마피아의 거물 러셀(조 페시 분)을 만나게 된 이야기로 부터 시작된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그가 어떻게 페인트공이 되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페인트공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남자, 하지만 영화는 자신에게 벽에 피칠겁을 하는 그 일이 맡겨졌을 때 소회에 대해 그저 그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이상의 감상을 덧붙이지 않는다. 전쟁 당시 상사의 다그치는 명령에 맞춰 포로들을 데리고 숲속에 가듯이, 그리고 미국으로 와서 정육 트럭을 몰다 재판에 까지 회부되는 그런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웠듯이, 그냥 그렇게 그는 페인트공이 되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정을 꾸려 살아가기 위해. 아이가 태어나 돈이 더 필요하자 세탁산업의 이권 쟁투의 배후에서 다이나마이트 사용까지 마다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잡화점에서 '물의'를 빚은 딸을 이끌고 가서 '사과' 대신 잡화점 주인의 손모가지를 짖이겨 버리고 돌아온 아버지 프랭크의 사는 방식이었다. 그런 그가 살아온 방식은 마치 막부 시대 일본의 하급 사무라이처럼 철저히 자신의 '주군'에 충직한 '페인트공'이 되는 것이다. 하급 사무라이가 주군에 뜻에 따라 자신의 배를 가르거나 전쟁터에서 생을 마치기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하기 십상지만, 그와 함께 등장했던 인물들이 대부분 어딘가에서 총을 맞아 죽은 것과 달리 운이 좋게도 그는 그를 '페인트공' 이상으로 '친구'로 대해줬던 그의 두번 째 '주군'이었던 '지미'의 '실종'을 책임지는 것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노조는 내 것'이라는 지미를 설득했지만 자신이 처음 섬긴 주군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
실종된 노조 지도자, 지미 호퍼 그렇게 그에게 '실종' 당한 프랭크의 벗이자 또 다른 '주군', 지미 호파가 있다. 발전에 가속이 붙은 자본주의 미 대륙을 잇는 움직이는 가교였던 '트럭', 그 트럭 노동조합 운동에 일찌기 스물 살 무렵부터 헌신했던 지미 호파, 1957년 전미트럭 운송 노조의 위원장으로 선출된 이래 14년간 그만의 카리스마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그리고 그런 지미 호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근간' 중 하나는 자기 자신과 노조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었고, 그 '수단'과 '방법' 중 하나에 프랭크와 그의 뒷배들이 있었다.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소년이 어느덧 그가 재임하는 동안 10만 명에서 230만명으로 불어난 노조원들의 조합을 '내 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모습, 그리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프랭크'를 그림자처럼 '사용'하는 모습을 통해 20세기 자본주의 사회로 성장해온 '미국'의 그림자를 영화는 드러낸다. 이권 세력으로 성장한 노동조합, 그 정점에서 자신의 왕국처럼 노조를 생각하는 지미 호파, 감옥에 갔다온 그가 무리하게 자신의 권좌를 탐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의 철지난 '권력욕'을 '정리'시켜준 건 그와 '협잡'했던 프랭크 일당, 그의 최후는 미 최대의 장기 미제 사건이 되었지만, '내 노조'를 남발하던 그는 살아남아 역사의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었을까?
퇴락한 노조 위원장과, 기꺼이 그를 '정리'시키는 마피아 세력, 그리고 그들의 수족이 되어 자신을 벗이라 여기는 지미를 '실종'시킨 프랭크, 20세기 미국을 만들어간 사람들이다. 열렬한 조합원의 지지로 얻은 막대한 조합의 재산이 '카지노'와 같은 이권 사업이 되고, 그 이권 사업을 지키기 위해 마피아 세력이 노조의 지부장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시절, 그리고 그 '이권'을 위한 이합집산의 와중에 굳이 지미 호퍼가 아니더라도 시절을 주름잡겠다 하면 등장한 인물 중의 상당수가 뒷골목에서, 거리에서, 혹은 외딴 집에서 프랭크와 같은 페인트공들의 '작업' 대상으로 생을 마친다. 호구지책으로 트럭이나 몰던 아일랜드 이민자 프랭크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미국의 20세기를 만든 사람들 결국에 살아남은 프랭크와 러셀의 삶이 뭐 그리 다를까? <아이리시 맨>은 반문한다. 가장 든든했던 벗이었던 지미 마저 기꺼이 손털어 버린 러셀과 프랭크의 남은 생이라고 다를까. 아버지가 잡화점 주인의 손을 짖이겨 버린 이래 아버지와 거리를 두었던 프랭크의 딸 페기는 지미의 실종 이후로 아버지를 떠났다. 가족을 위해서라며 기꺼이 손에 피를 묻혔지만 결국 프랭크에게 남은 건 병든 몸과 홀로 떠들어야 하는 요양 병동뿐이다. 다른 이라고 다를까. 총맞아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그렇게 '미국'을 '전횡'했던 이들의 최후이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내 보니,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고 '부귀'와 영화를 누려보니 무엇이 남느냐고 <아이리쉬맨>은 묻는다. 하지만 그저 '일장춘몽'이라 퉁칠 수 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질문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6부작 다큐,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 5부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하급 군인으로 일했던 사람을 등장시킨다. 지극히 평범한 남성, 그는 자신은 그 '참극'의 실체를 몰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큐는 냉엄하다. 과연 몰랐을까? 그가 보초를 섰던 그 초소에서 보여지던 엄연한 유대인 학살의 징후들을 과연 몰랐을까? 아니 알았다 하더라도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이 유효할까?
흔히 역사의 참극, 혹은 역행의 현장에서 본의 아니게 함께 했던 평범한 이들은 신의 피치못한 상황을 핑계로 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들 역시 그 역사의 책임에서 비껴설 수 없다 비판의 날을 세운다.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21세기의 미국을 만든 건 바로 <아이리쉬 맨> 속 20세기의 인물들이다. 노조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었던 노조 지도자도, 그런 지도자의 실체에 무지한 채 단지 그의 세 치 혀에서 비롯된 카리스마에 열광했던 노조원들도, 자신의 가족을 위해 혹은 자신의 보스를 위해 꺼리낌없이 벽에 피칠겁을 한 페인트공도, 그리고 조직의 이권을 위해 노조 지도자도 실종시키듯 수많은 이들을 '정리'시킨 이면의 실세들과 그들의 조력자가 된 법률가, 행정가들이 만들어 낸 오늘이 바로 우리가 보는 미국이다. <아이리쉬맨>이 그린 20세기 미국사다.
경상북도 23개의 시군과 경상북도 경제 진흥원에서는 경상남도의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을 통하여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청년 창업팀,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모집한다. 자격도 단순하다. 만 15세 이상 39세 이하 대한민국 국적의 청년들, 출신지, 현 거주 지역 전혀 상관없다. 2019년 기준으로 100 여명의 청년을 모집했다. 여기서 뽑히면? 개인당 3000만원의 지원금이 주어진다.
서울에서 3000 만원이라면 월셋방 하나 겨우 얻을만한 비용이다. 가게?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그 3000만원의 돈으로, 지방에 내려가 창업을? 서울에서도 창업하는 가게보다 폐업하는 가게가 많은 현실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 '맨 땅에 헤딩'같은 일을 실제로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sbs스페셜 <시골 가게 영업 비밀>이 그들을 찾아간다.
시골 마을 북적이는 수족관 경북 경산시 진랑읍 버스에서 내려서도 30분을 걸어가야 하는 거리에 지난 6월 수족관이 생겼다. 할아버지 대부터 살던 집 옆에 세워진 수족관, 그 곳에 자칭 '코리 아빠' 이현우 씨가 있다.
이 외진 곳 드나드는 사람이나 있을까 싶은 곳에 휴일 주차장이 가득 찼따.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물생활', 관상어 기르기가 유행이라더니 그래서일까? 가족끼리 삼삼오오 수족관 속 신비한 열대어 관람이 한참이다. 이 먼 곳을 어떻게 찾아왔냐는 질문에 '내비'만 있으면 어디는 못가겠냐는 '현답'이 돌아온다. '온라인' 관상어 기르기 까페를 통해 난 입소문이 이곳을 '물생활 마니아의 성지'로 만들었단다.
그래도 '조그만 물고기'나 키워서 돈이 될까? 이현우 씨가 주로 취급하는 물고기는 청소 물고기로 알려진 '코리도라스', 작은 몸집이라 얕볼 것이 아니다. 그 한 종류인 '인콜리카다'는 마리당 60만원을 호가하고, '제브리나'는 다 크면 12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니. 그러다 보니 잘 팔리면 하루 매출이 100만원이 넘는 날도 있다고.
장장 7년의 공시 장수생이었던 이현우 씨는 어떻게 물고기 아빠가 됐을까? 오랜 취준 생활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에게 조카가 함께 잡아온 붕어를 키워보라 권유했고, 그 붕어를 키우며 수조안에 만든 나만의 세상을 통해 10년만에 느껴본 성취감이 그로 하여금 '공시생'의 길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지난 2018년 39세에 턱걸이로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통해 얻은 지원금으로 수족관을 완성해 현재 성업 중이다. 부모님께 용돈 한번 드려보지 못했다고 울먹이는 현우씨, 하지만 이젠 아들의 수족관에 필요한 재료들을 함께 마련하고 틈틈히 들여다봐주시는 부모님이 현우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허허벌판 컨테이너가 품은 야심찬 꿈 경북 경주시 강동면 허허벌판에 박송안 씨의 컨테이너가 있다. 난방이 되지 않아 조만간 겨울 추위가 닥치면 입이 돌아갈 거 같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송안 씨는 귀촌한 어머님이 여신 까페 한 귀퉁이에 디자인 가게를 친구 지민 씨와 함께 준비중이다.
시골에서 디자인 가게라니? 송안 씨의 컨테이너가 자리한 곳은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 마을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는 이곳 마을 곳곳에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문화 유산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사람들이 와서 그냥 보고만 가는 것이 아까워 이곳에 양동 마을의 문화적 컨텐츠를 꾸려낸 복합 문화 공간을 꾸려보겠다는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세운 송안 씨, 그 계획으로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지원했던 송안 씨는 촬영 도중 합격 발표를 받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허허벌판에 펼쳐질 자신의 마스터 플랜을 자랑해 보인다.
그래도 이런 외진 곳에서 장사가 되겠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외려 송안 씨는 '옛날 분'이라며 타박한다. 대구에서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송안 씨의 꿈은 자신의 공간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하는 것, 인스타 등을 통해 홍보가 가능하고, 지구 반대편 그 어디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고객과 연결 될 수 있는 세상에서 파는 건 문제가 안된다고 장담한다. 지금은 허허벌판에서 애벌레에 질색하면서도 푸성귀를 뜯어 끼니를 해결하고 어머니 가게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형편이지만 자신의 '사업'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그 어떤 벤처 기업가 못지 않다.
시골이라 가능한 가게 예림이네 가게는 남해 석교리에 있다. 아이들과 갯벌 체험을 왔던 예림이네는 마을이 너무 좋아 몇 번을 들르다 그만 이곳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도 농사를 지을 엄두가 나지 않아 장사를 시작했다는 예림이네. 목공이 취미인 아빠는 태풍으로 바닷가에 떠내려 온 나무로 뚝딱뚝딱 물건을 만들어 내고, 그 물건은 엄마가 주인인 가게의 유용한 소품이 된다.
이제 3년 째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사는 이곳은 어느덧 동네 사랑방이 되었고, '빌어먹을 것이다'라는 어르신들의 우려와 달리 시골이라 투자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수익률은 최고, 가족이 먹고 살 만큼은 벌어 먹고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보다 예림이네를 만족시키는 건 한참 커가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하루 온전히 가족을 위해 충만한 시간이 된다.
경북 성주군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는 권은아 씨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인심 덕분에 잔뜩 얻은 늙은 호박으로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실험 중이다. 보증금 천 만원에 월세 80만원인데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자체 연구 제조실에 개인 공간까지 넉넉함을 넘어선다.
그런데 이 외진 곳에서 아이스크림이라니? 역시나 전국 어디 30시간 정도는 너끈히 냉장 보존 처리가 되는 첨단의 배달 시스템이 첨가물 없는 수제 아이스크림을 전국구 인기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름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거저다 시피 나눠주신 참외로, 늦가을 늙은 호박 등 이 지역에서만 나는 천연 재료가 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가능케 하는 원천이다.
하지만 꼭 장사가 잘 되기만을 위해 시골을 찾는 건 아니다. 손님이 적을 것같은 아이템을 찾아 우도에서 책방을 연 이의선 씨 부부도 있다. 하루에 열 권, 아니 이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20권만 팔면 된다는 부부의 초심은 '돈을 중시하지 않겠다는 것', 우도를 찾은 관광객이 탄 페리호가 떠나는 그 시간이 되면 서점도 문을 닫는 부부의 우도 라이프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도시에서 한평생을 열심히 일만 하시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셔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라는 회의가 들게 되었다는 의선씨, 외로웠던 서울 생활을 결혼과 함께 접고 아내 최영재 씨와 함께 5년전 우도로 내려와 서점을 차리게 되었다는 것. 그래도 책이 팔리는 게 희한하다는 이들 부부의 '영업 비밀'은 바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팔기 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나를 지켜내는 시간 때문에 시골로 내려온 이들도 있다. 혹은 '시골'이라 가능한 재료들을 찾아 그곳에 연 가게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라면 가게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할 그들의 '꿈'을 맘껏 풀여낸 공간이 시골이라 가능했기에 시골로 내려온 이들이 있다. 오프라인 마트가 온라인 상권에 어느덧 고심하게 되는 시절, 어쩌면 이 시골 마을의 가게들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도시의 한계를 넘어선 이 시대의 색다른 첨단 사업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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