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라는 말이 이젠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그런데 7월 8일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과로 자살'을 조명한다. 과로가 심해서 자살을 한다고? 그러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하기 쉽다. '그만두면 돼지, 뭐하러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냐'고. 하지만 프로그램은 답한다. 과로사의 한 영역으로서 '과로 자살'을 인정해야 한다고. 




인간 무한 요금제, 과로 자살을 부르다. 
명문 카이스트를 나와 대기업인 삼성중공업의 과장인 이창헌씨는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결혼 한 지 일년여, 두 달된 딸내미를 둔 가장의 결정이라기엔 너무도 참혹하다. 자상한 가장이었던 남편의 죽음을,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아들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어 가족은 회사에 항의를 하지만 '개인적 결정'인 자살 앞에 대기업인 회사나, 직장 상사들은 냉담하다. 

하지만 삼십대의 젊은 나이에도 체력이 딸려 간호사였던 아내가 수액을 놔줘야 할 만큼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던 그의 일상, 심지어 연구직 출신이지만 사업부로 보직이 변경되어 희망 퇴직의 위협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의 마지막 선택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대로 이런 선택이 이창헌씨만이 선택이었다면 '개인적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입사 1년만에 꺼리는 베트남 지사에 홀로 배치되어 새벽까지 업무를 보던 젊은 사원이나, 실적이 날 때까지 근무하는 '크런치 모드'의 와중에 지난 해 한 해에만 4명이 자살한 잘 나간다는 게임 업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사망자 70여명 중 돌연사 15명에, 자살 15명의 집배원등, 밥먹듯하는 야근과 과중한 업무 사이에서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직장인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업계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한 일이라는데 <그것이 알고싶다>의 문제 의식이 있다.

똑같이 주는 월급, 한도 끝도 없이 부려먹는 직장인의 현실을 '인간 무제한 요금제'라 스스로 자조하는 현실, 특히 1961년 생긴 근로시간 특례 제도 법은 통신, 의료, 광고, 운수 등 집배원을 포함한 26개 업종의 경우 사업자가 근로자와 합의만 되면 법정 근로 시간과 상관없이 초과 근무를 시킬 수 있는 법적 현실 속에 설사 이곳을 떠난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감과 과로로 인한 판단력 상실, 우울증 등이 극단적 결정으로 오늘의 직장인들을 이끈다.

 

과연 이렇게 인간을 마지막까지 몰아붙이며 일을 시키는 관행과 적폐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그것이 알고싶다>가 제시한 것은 대형 광고 회사 덴츠에서 하루 20시간씩 일을 하다 '자살'을 한 다카하시 미츠리로 부터 시작된 문제 의식이 <과로사 방지법>(2014)으로 이어진 일본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그렇게 <그것이 알고싶다>가 '법'을 통해 최악의 노동 현실을 돌파하려 했다면, 다음 날 방영된 <sbs스페셜-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은 사용자의 의식 혹은 태세 전환으로서의 '일터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일터 민주주의의 선두주자, 괴짜 사장님들
프랜차이즈 업주의 갑질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법정 구속까지 가는 요즈음 그 정반대의 '사장님'들을 <sbs스페셜>이 다룬다. 그 첫 번째 인물은 직원에 의해 '사장' 자리에서 쫓져나 동거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오늘은 북유럽으로, 어제는 중국으로 다니는 여행사 사장님 신창연 대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불황의 여행 업계에서 해마다 뛰는 매출 실적을 자랑하는 회사의 사장님이었던 신창연 대표, 직원들을 위한 갖가지 복지 제도를 마련하다, 2013년 80%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사장 자리를 내놓겠다는 과욕을 부렸고, 단 한 명이 부족해 사장 자리에서 짤리는 처지가 되었다. 처음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고 잠시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는 그였지만, 곧 진정한 회사 내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놓았고, 그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고, 지금은 세계를 오가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주'가 사라진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고, 그의 후임 사장 역시 지금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영업 본부장으로 현직을 이어나가는 등, 자리가 아닌 일로써 '사장' 자리와 '사장'이 없어도 자율적으로 자신의 일을 즐기는 기업 문화를 정착시켜냈다. 



신창연 대표만 괴짜가 아니다. 한때 몇 개의 요식업소를 운영하던 '갑'이었던 사장님은 이제 수유동 작은 일식당의 '해피님'이 되어있다. 커다란 식당 대신 사람 몇 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식당, 수많은 직원 대신 이 식당이 열던 그 시절부터 함께 하던 직원 대신 사람들, 그리고 화장실 청소부터 온갖 허드렛일은 '해피님'이 도맡아 하고, 식당의 대소사는 모두 직원 회의를 거쳐 결정되는 이곳은 '해피님'이 원하던 진짜 일터이다. 이곳엔 알바 대신, 이익금을 나눠받는 직원이 있고, 언젠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직원 대신,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가 되어있는 주인들이 있다. 

한 술 더 떠서 일주일에 4일만 근무하는 직장도 있다. 돈을 주면 무제한으로 부려먹는 것이 관행이 된 대한민국에서 불금을 회사 대신 가정에서 맞이하는 직장, 오후 6시만 되면 뒤도 안돌아 보고 모든 직원이 회사를 비우는 직장, 그래서 아내의 말을 듣고, 남편의 인도로 사내 커플이 증가하는 직장,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주 4일 근무한 이래 이 회사의 실적이 비약적 발전을 해낸 직장 역시 그 결단은 사장님으로부터 이다. 밤 거리를 빛내는 건물의 불빛, 그 불빛을 보고 직장인들은 '상사의 눈치로 인한 불가피한 태업'이라고 자조한다. 즉 그 시간까지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근대적 업무 관행으로 인해 할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켜야 하는 관행이 늦은 퇴근과 '그로 인한 피로의 축적, 업무 효율의 저하를 낳는다고 것을 회사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창의성'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화두가 되고 있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과연 우리의 전근대적 업무 관행이 우리 산업을 계속 승승장구하게 할 것인지, 다큐가 찾아간 미국 it 업계 신생 기업의 자유로운 사내 문화가 제시하고 있는 바가 크다. 



결국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이 내세운 것은 '갑'의 변화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30년동안 이끌었던 회사를 퇴임하는 회장님, 퇴임하는 회장님이라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율배반으로 들리는 이 정의를 실천하는 회장님을 통해, 회사는 새로운 전통을 일궈나간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말하고자 한 것도 그것이다. 법과 제도가 있더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유용하고자' 마음 먹는다면, 인간을 돈을 주면 무제한 부리는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과로사와 과로 자살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과로사처럼 과로 자살 역시 '산재'로 인정하는 사회적 경각심도 필요하지만, 일을 하다하다 자신이 도피할 곳은 죽음 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과로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법적 방지와 인식의 제고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하나로써 <sbs스페셜>의 괴짜 사장님들이 제시된다. 
by meditator 2017. 7. 10. 15:44

7월 2일 방영한 <sbs스페셜-성선제의 달콤한 인생>은 지난 4월 14일 방영한 <나의 빛나는 흑역사>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나의 빛나는 흑역사>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실패'의 전사를 훑어보았던 프로그램은 그 중 특히나 이목을 끌었던 성선제 씨의 이야기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실패주의자 성선제
이제 성선제 씨는 기업에 강의를 다닌다. 그가 하는 강의의 주제는 '나만큼 실패해 본 사람 있는가?'이다. 지금까지 아홉 번 실패를 하고, 그는 지금까지 실패를 밑거름삼아 성공할 일만 남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열 번 째 실패를 할 지도 모를(?) 그가 잘 나가는 기업이 한참 열의를 가지고 일을 하는 직원들을 상대로 '실패'를 강의한다. 왜?

방영 과정에서 * 처리를 했지만, 그 시그널과 로고만 봐도 피자를 먹어봤던 사람이라면 다 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피자 브랜드의 첫 한국 지사장이었다. 서른의 성선제씨는. 하루 일과가 지나고 집에 지폐 세는 기계를 놔두고 돈을 세어야만 하루 매출을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긁어모았다던 그, 방송에 나가 100억 정도라 웃으며 말을 하던 것이 그 시절의 그였다. 





그렇게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피자가 선풍적 인기를 모으자, 본사에서는 그 대신 본사 직영으로 그 브랜드를 넘기도록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비록 얼마간 보상을 받았지만 하루 아침에 자신이 애써 일구던 사업을 송두리째 넘겨야 했던 그는, 보란듯이 해외 유명 브랜드의 덕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또 다시 성공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단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당시 한국에서는 역시나 드문 로스팅 기법의 치킨, 케니 로저스란 해외 유명 가수를 내세웠지만 모험이었다. 그 모험의 발목을 잡은 건, 뜻밖에도 국가의 경제 상황, IMF는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한 그를 다시 실패의 늪으로 몰았다. 그렇게 다시 두 번째의 실패를 하고 자신이 살던 궁궐같은 집을 헐값에 넘기고, 높은 빌딩에 올라 죽을까도 해보다,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각종 암에 병에 수술을 몇 번씩 하고, 그렇게 이제 일흔 줄이 되었다. 

예전 우리 소설에 '아버지'란 존재의 단골 캐릭터, 이른바 사업을 한답시고 땅 팔고, 집 팔고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을 거덜내던 그 '아버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심지어 일흔 줄 지금도 여전히 사업을 한다고 얼마전 역시나 해외 브랜드 덕을 볼까싶어 넓은 건물을 얻어 시작했다 망한 컵케이크를 아직도 붙들고 있다.

그렇게 사업하다 다 말아먹은 아버지 성선제씨가 왜 기업에 강의를 나갈 정도가 되었을까? 실패도 하다보니 이골이 나서? 이제는 마음을 비웠다 했지만 예전에 자신들이 살던 동네에 간 일흔의 성선제씨 부부는 결국 눈시울을 적시고 만다. 남들이 쉽게 말하는 아홉 번의 실패가 그리 쉽게 아무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화제가 된 이상민 씨가 7월 2일 다큐의 나레이션을 맡았다. 이상민 씨도 아직 나이가 성선제씨만큼 안되서 그렇지, 실패의 경력으로 치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상민과 성선제, 이 두 사람, 묘하게도 닮았다.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이상민에 대해 사람들이 호의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가 과거에 벌였던 일들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성선제씨 역시 집기들을 다 놔두고 이제는 월세를 내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좋아서 그를 다시 조명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 아름다운 꿈, 그리고 여전히 현재형인 삶
지난 4월 14일 <나의 빛나는 흑역사>에서 어쩌면 진짜 짚어야 했지만, 미처 짚지 못했던 지점을 이상민 나레이션의 <성선제의 달콤한 인생>을 통해 다큐는 제대로 짚고자 하는 것이다. 다년간의 투병과 수술로 인해 옷이 남아도는 마른 몸으로 그는 여전히 상호도 없는 개장하지 않은 점포를 지키며 날마다 컵케이크와 씨름한다. 보기에 그럴 듯해 보이는데 이건 아니라고 다 만든 컵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쑤셔 넣는다. 그가 요식업에 종사한 이래, 그의 좌우명은'나 자신이 먹을 만한가'였고, 아홉 번의 실패를 겪었어도 그런 그의 좌우명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새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아홉 번의 실패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초심,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려는 도전, 그 순간 성선제씨는 아홉 번의 실패자가 아니라,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희망에 찬 도전자이다.

아홉 번이나 실패를 한 남편, 그런 남편의 열 번 째 사업에서 컵 케이크 셔틀을 담당한 건 그의 늙은 아내와, 그 부부만큼 오래된 자가용이다. 부자였던 이 아니라, 잠깐 부자였던 시절을 스쳤다고 말하는 의연한 아내는 아홉 번이나 실패를 한 남편을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며 퉁수를 주지만, 여전히 형형한 그의 눈빛에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아내는 말한다. 수술을 하고 투병을 하고 그러고 퇴원을 하면 다시 일터로 가서 자신의 일과 씨름하는 남편, 성선제씨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기업의 강연이 있는 날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준비하는 늙은 남편을 저 사람이, 저 사람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면 자랑스러워 한다. 

그렇다. <나의 빛나는 흑역사>가 빼먹은 것이 그거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성선제 씨는 말한다. 꿈을 꿔라, 하지만 당신이 꿈을 꾸는 건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말한다. 그렇다고 꿈을 접어두고 그냥 살아가기엔 인생은 너무 길다고. 그런 그의 생각대로, 그는 일흔이 된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라며 시간을 보내는 또래의 친구들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성선제 씨, 그가 멋있는 건, 무언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이다. 그가 대기업의 직장인들에게 당당하게 실패를 말할 수 있는 건, 실패 끝에 성공을 성취해서가 아니라, 실패를 했지만, 그 실패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아서이다. 이상민 나레이터가 요즘 세상에 다시 조명을 받는 것 역시 그것이다. 여전히 많은 빚이 있지만,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리고 역시 열 번 째 실패를 앞두고 있을 지도 모를 성선제 씨가 당당한 이유이다. 

by meditator 2017. 7. 3. 14:11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 유전자 변형 식품으로 일반적으로 생산량 증대 또는 유통 가공 상의 편의를 위해 유전 공학 기술을 기존의 육종 방법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형질이나 유전자를 지니도록 개발한 농산물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제초제에 강한 작물을 만들기 위해 제초제에 강한 바이러스를 식물의 유전자에 결합시키는 식이다. 국내에서는 2001년부터 콩, 옥수수, 감자 등에 '유전자 변형 농산물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특정 작물을 인위적으로 변형 GMO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결론을 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GMO다>라는 책을 펴낸 최낙언 박사의 경우 'GMO가 위험하지 않다'고 하며,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경우 '과학적으로 GMO 논쟁이 부질없으며 이에 반대를 하면 할 수록 우리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자금력, 기술력이 준비된 대기업들이 이들을 본다'며 논쟁 자체를 부질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GMO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선입견'에 기름을 부을 또 한 편의 다큐가 등장했다. 6월 25일 방영된 <SBS스페셜- 밥상 디톡스-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그것이다. 


아이들의 발달 장애, 그 원인은?
다큐의 시작은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 주변의 한 가정이다. 미국에서 두 번 째로 큰 오렌지와 레몬 농장이 있는 캘리포니아 툴레어 카운티, 이상하게도 이 농장 주변 마을에는 'ADHD', 자폐증 등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다른 곳에 비해 유독 많다. 그 이유를 UC데이비드 마인드 연구소를 '유기계 살충제'에서 찾는다. 오렌지와 레몬 농장, 대규모로 키워지는 과실수들의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살충제'들은 '차량'을 이용하여 거의 '비'처럼 뿌려진다. 그리고 그런 농장의 자녀들에게서 더 많은 발달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의 발병이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농장과 상관없는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의 모발 검사를 한 결과, 놀랍게도 아이들의 머리칼에서 살충제 등이 성분이 여러 종 발견되었다. 왜? 근처에 농장도 없는데. 바로 아이들이 먹는 음식물에 '잔존'해 있는 살충제 잔류 농약 등의 성분이 고스란히 아이들 몸에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그 살충제  등의 잔류 농약 성분은 알레르기 증상을 비롯하여, 앞서 캘리포니아 농장의 경우처럼 각종 발달 장애, 심지어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농약만이 문제일까? 



16살인 제이콥은 학교를 가지 않는다. 학교는 물론, 외출도 쉽지 않다.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먹으며 발진, 구토, 발작, 그리고 기억 장애까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랜 검사 끝에 의사는 그 원인을 '옥수수'에서 찾았다. 옥수수가 왜? 오늘날 미국에서 키우는 대부분의 옥수수는 이 글의 서두에서 문제 제기된 GMO  옥수수이다. 우리나라는 GMO 방식으로 키우는 옥수수를 허용치 않고 있다. 그러면 다행일까? 그저 옥수수를 먹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왜 제이콥은 학교에 가지 않을까? 문제는 이 GMO옥수수의 사용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옥수수 자체로 만든 음식은 물론, 옥수수에서 추출한 과당으로 들어간 각종 시럽, 기름 등등,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옥수수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사료'다. 곡물 사료를 먹고 자란 동물들로 만들어진 각종 고기류, 육가공품, 아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장품, 의약품까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옥수수'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할 정도로 옥수수의 활약은 무궁무진하다. 이 '무궁무진'한 활약을 위해 대량의 옥수수가 필요하고, 그러니 'GMO'를 통해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을 하는 것이 오늘날 '곡물 자본주의'의 순리가 되는 것이다. 

밥상 디톡스가 기적을 만들다 
설마 옥수수? 하지만 제이콥의 어머니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인스턴트 식품과, 가공 식품들로 도배된 외부와의 '연'을 끊고, 옥수수와의 접촉 면을 제거하자, 놀랍게도 제이콥의 증세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제이콥만이 아니다. 완화는 될 지언정, 치유는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자폐의 경우도 변화가 왔다. 세살 때 자폐 판정을 받고, 8살까지 말을 하지 못하던 스티븐도 농약업는 유기농 식재료로 밥상을 변화시키자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밥상을 바꾸고 2년 뒤 스티븐은 자폐 완치 판정을 받고 이제는 우수한 학생이 되었다. 심한 알레르기로 거리에서 '괴물' 소리를 듣던 남은영 씨 역시 밥상을 바꾸고 나서부터 놀랍게도 알레르기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SBS의 이런 '밥상 디톡스'는 어쩌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2월과 3월에 걸쳐 방영된 <바디 버든> 2부작에서 이미 우리,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의 자궁에서 벌어지는 각종 질병들이 음식 등을 통해 우리 몸에 축적된 '독'에 의해 그렇다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치료의 방법으로 '유기농 식단'과 각종 발암 물질이 발생하는 그릇, 옷, 생리대 등의 격리였었다. 
이제 6월 25일 방영한 <밥상 디톡스>는 그 일상의 독성에 대한 문제 제기의 일환에서 '밥상'에 보다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각종 잔류 농약들과 GMO농산물들이 우리 아이들의 몸에 일으키고 있는 변화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밥상 디톡스'는 쉽지 않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우리 나라에서 최근 가장 '인기있는', 거의 대표적인 음식 칼럼니스트 조차 GMO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단언'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독성 물질로서 잔류 농약이나 GMO 제품을 환기 시키는 것은 또 한번의 '소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다큐 속 제이콥이 결국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세상으로 부터 자신을 격리했듯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잔류 농약과 GMO 제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란 어쩌면 환타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쓴다. 유기농 제품, 무농약 제품은 물론,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마트에서 사온 채소 등을 베이킹 소다, 식초, 혹은 적절한 야채 세제를 이용하여 씻고 먹인다. 하지만, 그 조차도 여의치 않다. 우선 유기농 제품과 무농약 제품의 경우 매장이 많지 않거나, 그런 제품의 경우 우리가 마트에서 쉽게 사먹는 제품에 비해 값이 비싸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거나 바쁜 서민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진다. 베이킹 소다, 식초, 야채 전용 세제 역시 수용성 잔류 농약은 제거되지만 지용성 농약의 경우는 불가능하다. 다큐를 통한 '밥상 디톡스'의 문제 제기는 건강하다. 하지만 그 '건강한 문제 제기'가 사회적 공론이 되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소비'는 너무 지천이고, 경각심은 짧다. 
by meditator 2017. 6. 26. 14:59

'yolo(욜로)'족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you only live once(한번 뿐인 인생), carpe diem(까르페디엠, 인생을 즐겨라)!! 2010년 래퍼 드레이크의 <the motto>속 노래 가사로 등장한 '욜로'는 어느덧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2,30대 젊은이들 삶의 모토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한번뿐인 인생 즐기고 싶은데, 밥벌이가 발목을 잡네! 그래서 'tvn이 새로이 선보인 <주말엔 숲으로>라는 예능에 등장한 욜로족들은 기꺼이 그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밥벌이'의 고달픈 일상에서 뛰쳐나와 자신이 원하는 자연의 삶을 기꺼이 보여준다. 




<퇴사하겠습니다>가 베스트 셀러가 되는 사회 
일본이라고 다를까, <퇴사하겠습니다>가 연신 베스트 셀러로 등극하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리고 <sbs스페셜-퇴사하겠습니다>는 바로 그 책의 주인공 이나가키 에미코로부터 시작된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아사히 신문사의 기자였던 에미코 51살이 되던 해 스스로 직장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퇴직 이후의 삶을 걱정하기도 전에 쓴 <퇴사하겠습니다>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직장 대신 몰려드는 인터뷰니 강연 요청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녀를 베스트 셀러 작가로 만든 퇴사, 그게 하루 아침에 때려 치운 일이었을까? 아니 그것만이었다면 아마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에미코는 '퇴사'를 하기 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처음 '퇴사'의 고민이 시작된 건 잘 나가던 승진에서 밀려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이다. 밀려났다는 자괴감과 승진 등에서 배제된 공포감에 휩싸였던 그녀는 '퇴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대번에 사표를 내던진 대신, 그 이후로 10년의 시간을 두고, '회사적 인간'이었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신이 중심에 선 삶으로 재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회사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삶에 준비가 되었을 때 그녀는 '퇴사'를 하였고, 그 경험을 책으로 써, 전 일본인이 공감하는 베스트 셀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쓴 책의 내용을 씨줄로, 우리 현실의 이야기로 다큐는 접근해 들어간다. 잘 나가는 it 기업의 매니저 김상기 씨, 그는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 it기업 평균 퇴직 연령 48.2세, 그 멀지않은 은퇴의 시기를 자기 주도적으로 맞이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에 아내는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 양육비가 한 달에 150만원이나 든다며 펄쩍 뛴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해서는 '견디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상기씨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퇴사' 이후의 삶을 고려해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퇴사'를 결정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무엇일까? 아내가 아이들 교육비를 들고 나오듯이 경제적인 생활의 유지가 우선일 듯하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 아니라도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그 무엇, 그리고 단지 먹고 사는 이상,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 그 무엇. 

제 2의 인생, 그 이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인생의 화두는
그것을 위해 다큐는 퇴직 이후 제 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난다. 한 명의 퇴직자, 그는 출판 관련 일을 하다 퇴직하여 동네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퇴직 이후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질문에 그는 오히려 '먹고사니즘'의 필요충분 조건을 반문한다. 물론 또 다른 케이스도 있다. 회사를 다닐 때부터 차근차근 퇴사를 준비했던 다른 퇴직자의 경우, 현재 식당 두 개를 운영하며 웬만한 대기업 직장인 월급을 훨씬 넘는 수익을 내고 있다. 퇴직 이후 치킨집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자영업자 패망론의 세상에 그는 각자 준비하기 나름이라는 대안을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퇴직' = 자영업자의 삶, 혹은 성공적인 아이템이 화두가 되는 트렌드와 달리, 책방 주인아저씨가 된 출판사 퇴직자의 질문처럼, <퇴직하겠습니다>의 이나가키 씨가 주장하는 건 '과연 당신이 먹고사는데 얼마가 필요한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책방을 경영하니 당연히 회사의 월급보다 버는 돈이 적어진 책방 주인, 하지만 그는 오히려 버는 돈에 따라 소비의 규모가 커져가는 우리의 삶을 되살펴 보게 되었다고 한다. 보다 큰 집,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교육비, 여행 등등. 이나가키 씨도 마찬가지다.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명함이 무색하게 그녀의 삶은 '청빈'하다 못해 궁상스럽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 버리는 음식을 최소화하기 위한 식재료, 최소한의 화장품, 목욕 정도는 동네 목욕탕 쿠폰으로 대신한 삶으로 인해 그녀는 오히려 줄지않는 통장의 돈을 고민할 정도다. 

이나가키는 장식장을 다 채우고도 넘쳤던 화장품을 버리는 대신, 그 자리를 그녀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채웠다. 애써 돈을 버는 대신, 그 시간에 그녀가 하고 싶은 동네 주민들을 위한 무료 요가 교실로 채우는 식이다. 그러면서 '소비'를 즐겼던 자신의 삶을 '소비하지 않아' 즐거운 삶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그처럼 김상기 씨도 퇴직을 준비해 본다. 자신의 집을 채웠던 '소비'의 부산물들을 치우는 것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과중한 빚을 안고 얻었던 전셋집 탈출을 도모하며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정병수 씨네. 극심한 야근과 출장으로 몸에 이상이 왔던 엔지니어 정병수 씨는 무조건 퇴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퇴직금이 떨어질 때까지 여해을 하고 양평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그 과정에서 생겨난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직장으로 돌아갔단다.

다시 직장으로? 하지만 정병수 씨의 재직장행은 이전의 직장 생활과는 다르다. 직장에 목을 매고 승진과 성공에 자신을 달리게 했다면, 이제 정병수 씨의 직장은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녕을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회사를 위해 일하고 남는 시간에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보이는 것은 똑같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라 해도 정병수 씨는 달라져 있다. 




결국 다큐가 돌고 돌아 찾아낸 결론은 '퇴사'를 해라가 아니다. '욜로'족의 시대, 어차피 피라미드 식의 조직에서 살아남아 생존하는 자의 숫자는 정해진 레이스에 놓인 회사원들이, 그 성공과 승진의 레이스에서 '행복해지는' 방식에 대한 방법 모색이다. 자신을 회사에 일치하는 대신, 회사적 동물이 되는 대신, 자신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면 굳이 퇴사를 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삶을 달리 살 수 있다는 제안이다. 결국 퇴사를 준비했던 김상기 씨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게임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 회사에 들어왔다는 초심을 살려낸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애를 상기한다. 그래서 그는 퇴직을 하는 대신, 기꺼이 회사에 남기를 택한다. 이나가키 씨의 <퇴사하겠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다. 힘들어, 때려쳐가 아니라, 행복한 직장 생활과, 인생 1막의 졸업으로서의 퇴사다. 그리고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소비'하면서 살아왔던 삶의 반추이다. 결국 조직과 사회에 넘겼던 자기 주도권의 수복이다. 

<퇴직하겠습니다>를 통해 다큐가 제안하고 싶은 건, 성공 중심 사회, 조직 중심 사회 속에서 '자신'을 잃고 상실되어 가는 '개인'의 복구이다. 그리고 이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몸담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회사와 더불어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진 사회, 조직과 함께 자신의 삶을 일체화할 수 없는 사회, 그 속에서 등장하는 해법은 결국 '한번 뿐인 내 인생'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안긴 '화려한 성취와 소비'의 삶에 대한 질문이다. 그건 회사에 있느냐, 퇴직을 하느냐의 방식이 아니라, 결국 삶의 스타일과 방식의 문제다. 
by meditator 2017. 6. 12. 14:56

tvn의 월화 드라마 <써클> 속에 등장한 대한민국 2030년은 이른바 스마트 도시와 일반 지구로 지역이 나뉘어져 있다. 말 그대로 '스마트'한 외관을 자랑하는 첨단 도시와, 마치 철거 예정지처럼 허름한 일반 지구를 가르는 건 이 '번드르르한' 건물들 외에 결정적으로 '공기'다. 청량한 하늘을 자랑하는 스마트 지구와 달리, 상시적으로 뿌연 미세 먼지에 휘감싸인 일반 지구. 입을 막고 연방 콜록거리는 일반 지구를 보며, 어휴, 저기서 어떻게 살아? 하게 되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라고 다를까? 바로 어느덧 '미세 먼지 주의보'에도 무감각해져가는 그러나 애국가에도 나와있는 맑고 청량한 하늘이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청량한 하늘'을 잃은 현실을 4일 <sbs스페셜-공기의 종말>이 다룬다.




에어 노마드 족이 된 사람들
아토피가 심했던 혜성이네는 양평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의 아토피가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양평으로 이사를 오기만 했는데도 호전된 걸 보면서 새삼 공기 오염에 대해 실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공기 난민, 에어 노마드 족이다. 한 술 더 떠, 제주도로 간 가족도 있다. 자라나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졸지에 아빠는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이사를 가지 못한다면 '극성'이라도 부려야 한다. 공기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민감한 유치원, 바깥 활동이 잡힌 날, 하필이면 미세 먼지가 심해졌다.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아이들이 향한 곳은 실내 박물관, 바깥 놀이를 기대했던 아이는 풀이 죽었지만, 엄마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집이라고 다를까. 도시에 사는 엄마들은 바쁘다. 아이들 기관지에 좋은 온갖 음식을 해먹이라, 자동차용 필터를 환풍기에 달아 집안 공기를 정화시키랴, 창문 곳곳에 강력한 필터를 메우랴, 혹시라도 집안에 침입한 미세 먼지를 없애느라 쓸고 닦고. '전쟁'이 따로없다.

정부나 기상청의 발표를 믿지 못해 스스로 미세 먼지를 측정하고 이웃이나 동호회 회원들과 공유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공기 좋아 이사한다는 제주도도 형편이 예전만 못하다. 한라산이 맑게 보이는 날이 줄었다. 지난 5월 24일 뜻을 모은 91명의 시민들은 환경 단체와 함께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에 환경 오염 소송을 제기했다. 



미세 먼지, 당신 집 마당의 독가스 
극성이라고? 오바라고? 미세 먼지를 그냥 먼지가 조금 더 '미세'한 수준이라고 얕봐서는 안된다. 

중국 한 tv의 여성 아나운서, 이 아나운서는 취재를 위해 중국 곳곳의 미세 먼지가 심한 곳을 다녔었다. 취재를 마치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여성, 그러나 여성의 아이는 이미 태아의 상태에서 종양을 가지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게 된 여성 아나운서의 아이. 이 아나운서는 자신의 아이에게 생겨난 종양이 '미세 먼지' 때문이라 말한다. 

또 하나의 사례, 중국 베이징 병원의 전도유망했던 소아 심장 전문의. 공기 오염이 심한 곳의 아이들을 수술하며 아이들 폐에 생긴 회색 점들을 보며 의아했던 그가, 정작 가족력도 없는데 '폐암'에 걸리고 말았다. 자신의 폐 중 겨우 1/6을 유지한 채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폐암이 베이징의 공기 오염 때문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설사 회복이 되더라도,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다시는 베이징에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한다. 

미세먼지(particulate matter)는 아황산 가스, 질소, 납, 오존, 일산화 탄소 등 유독성 성분을 포함한 대기 오염 물질이다. 대부분의 오염된 물질들이 코 등을 통과하며 걸러지는 것과 달리, 10 이하의 오염 물질들은 걸러지지 않은 채 폐 등 우리 몸에 고스란히 축적되며 각종 신체적 병변의 원인이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천식, 아토피, 각종 피부병, 호흡기 질환의 수준을 넘어 미세 먼지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덴마크 암학회 연구센터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상승할 때마다 폐암 발생 위험은 18%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기사망위험도 커졌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롭 비렌 박사팀이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Lancet)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5㎍/㎥ 증가할 때마다 조기사망 확률이 7%씩 증가하였다.

무엇보다 이런 미세 먼지에 취약한 계층은 폐기능이 약한 노인과 아이들이다. 특히 어른에 비해 호흡 수가 잦은 아이들의 경우 더 치명적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0㎍/㎥ 증가할 때 호흡기 질환 입원환자 수는 1.06% 늘었다. 노인층은 더욱 취약하다. 지름이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는 협심증,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암학회의 자료에서도 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10㎍ 증가하면 심혈관과 호흡기 질환자의 사망률이 12%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이화영 , <미세 먼지가 건강을 위협한다> 중)  



다큐가 짚고 있는 건 정부의 안이한 대처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6년 미세 먼지 평균 일수는 15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낀 미세 먼지의 현실적 일수는 2016년 한 지자체가 발표한 미세먼지 일수 119일에 가깝다. 무엇보다 정부의 미세 먼지 기준이 who의 기준에 비해 너무 높은 '안이한' 현실이다. 거기에 2016년 1~3월의 초미세먼지 나쁨 2일에 비해, 7배가 늘어난 올해 14일에서 보여지는 급격한 증가가 우려된다고 다큐는 짚는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 미세 먼지의 주범은 '중국'이다. 음모론이 작동될 만큼, 중국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공단들, 그들이  뿜어내는 대기 오염 물질은 '편성풍'을 타고 우리의 미세먼지가 된다. 그러기에 환경 단체와 시민들의 소송 대상에 중국이 들어간다. 그러면서 중국의 눈치를 보는 정부의 자세에 아쉬움을 전하는 것에서 그친다. 

하지만, 중국만이 문제일까? 새 정부 들어 미세 먼지 대책을 발빠르게 움직인 정부는 노후한 석탄 화력 발전소의 운행을 중지했다. 하지만, 전체 발전 비율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는 몇몇 화력 발전소의 중단은 미세 먼지 대책의 첫 발로써는 상징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심각하다. 중국의 핑계만을 대기엔 현재 우리나라 화력 발전소의 증가율은 심각하다. 

3월 29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대기오염 정보사이트 에어비쥬얼의 정보를 인용해, 3월 말 서울은, 중국 베이징과 인도의 델리와 함께 세계 3대 대기오염 도시였으며,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최악의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OECD보고서 내용도 인용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15년, 한국의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를 제기하며 초미세 먼지를 뿜어내는 석탄 화력 발전소로 인해 매년 1100명이 조기사망하고 있으며 앞으로, 조기사망자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2025년까지 모든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영국, 심지어 중국도 최근, 백사 기(104기)의 화력 발전소 신규 계획을 취소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2016년 2월 기준 총 오십삼기의 화력발전소는 2030년엔 칠십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그 결과가 우려되고 있다, (4,14, ebs  뉴스 중) 

또한 정부가 밝히고 있는 2030년 경차 운행 중지 입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리를 메우는 경차들의 행렬 또한 미세먼지의 또 다른 주범이다. 그런 면에서 <공기의 종말>은 미세먼지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을 조명한 것에는  의의가 있지만, 막연히 '중국'이 주범이단 식의 원인이나 대처 방식에 있어서는 '주먹구구식'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미 정부가 노후 화력 발전소 중지나 경차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촘촘한 대책이었다면 심각성의 경고와 함께 프로그램의 의의가 더 살았을 듯싶다. 




by meditator 2017. 6. 5. 15:09

새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그 기대에 걸맞게 ebs 다큐 프라임은 새 시대에 시급하게 해야 할 교육적 과제로 '대학 입시'를 들고 나선다. 바로 지난 5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6부작에 걸쳐 방영되었던 <대학 입시의 진실>이 그것이다. 


왜 대학 입시였을까? 
<1부; 학생부의 두께>, <2부; 복잡성의 함정>, <3부; 엄마들의 대리 전쟁>, <4부; 진짜 인재, 가짜 인재>, <5부; 교육 불평등 연대기>, <6부; 불편한 진실을 넘어서>를 통해 <ebs 다큐 프라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대학 입시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아니라, 이미 고착화된 대한민국의 계층 고착화와 그나마 있는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희망없는 닫힌 통과 의례라는 것이다. 즉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격차 세습'을 통해 '꿈'과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기에 새 정부가 가장 앞서서 이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큐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몇 가지 사례,
그 첫 번 째, 장관 후보자들 몇몇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위장 전입',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바는 무엇일까? 자식 교육을 위한 '생계형' 위장 전입이었다는데, 도대체 왜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 '위장 전입'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그 두 번 째, 글을 쓰는 기자의 자녀들은 경기도 한 도시의 일반고 출신들이다. 그 도시의 대표적 명문고라 자부하던 고등학교, 하지만 학교의 위상은 해를 거듭할 수록 초라해져만 간다. 한때는 가난한 도시에서 '개천에서 용'을 만들어 내던 전설은 이제는 아이들이 벌써 중학교만 들어가도 신도시로 '전입'하고, 그나마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 좀 공부 좀 한다하는 아이들은 '과학고, 외고, 자사고'로 이동하고, 남은(?) 아이들이 진학하다 보니, 제 아무리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부'에 힘을 실어주어도 이른바 '명문'대학 진학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 역시 갈수록 저하되는 중이고 선생님들의 의욕 역시 마찬가지라 전해진다. 



교육 불평등의 현실
이런 극과 극의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서울대 입학생에 대한 통계 조사를 통해 다큐는 그 진실에 접근해 들어간다.(5부; 교육 불평등 연대기)
서울대 입학생 중 자사고, 특목고는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비율로만 보면, 일반고와 자사고, 특목고는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통계의 장난이 있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듯이 전국 수능 응시생 비율 중 자사고, 특목고의 비율은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즉 90 대 10의 싸움에서 결과가 반반으로 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공부 잘 하는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이 서울대 가는 걸 가지고 무슨 이의를 제기하냐고? 그렇다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자사고와 특목고에는 어떤 학생들이 갈까? 학생들 부모님의 직업의 차이를 살펴보면 그 '이의'의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감지된다. 



아래 표에서 보여지듯이 상위층 비율이 외고와 일반고의 경우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자사고, 특목고의 편중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과 지방의 대비에서 서울, 경기, 그 중에서도 강남 8학군을 중심으로 한 교육 특구의 학생 층에 '편중'된 결과를 보인다. 지방의 경우 설사 특목고라 하더라도 주소지는 그 지방이 아닌 학생들인 경우가 빈번하다. 이 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건, 서울대를 대표적 사례로 했을 때, 서울에 사는 돈 많은 부모들의 자녀들이 주로 서울대에 진학한다. 전국민의 20%에 해당하는 소득 1,2분위의 학생들 중 이른바 상위권이라 할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0%' 남짓하다. 더 이상 '대학'은 꿈의 사다리가 아니다. 

꿈의 사다리를 걷어찬 대학 입시 
왜 대학은 꿈의 사다리가 될 수 없을까? 공부만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보면 되지 않나? 라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뭘 잘 모르는 사람'이다. 

2019년 대학 입시 요강, 수시 모집을 통해 정원의 76%를 선발, 정시 모집 인원이 그만큼 줄었다. 수시 모집 중 학생주 전형 비중이 늘었다. 전체적으로 학생부 교과 비중이 늘었지만, 학생부 종합 전형도 전체 모집 인원의 24.3%로 늘었다. 논술 고사 대학별 모집 인원은 전체적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서울 소재 주요 대학에서 논술은 주요 전형이다. 

자, 만약 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저 전형 중 당신의 자녀에게 맞는 전형을 고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몇 줄의 글로 현재의 대학 입시를 설명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저 단어의 행간, 행간에 숨어있는 수많은 전형, 현재 대학을 가는 전형 방법은 실제 7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2부; 복잡성의 함정, 1부; 학생부의 두께)



그래서 실제 설문을 해보면 대다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대학 입시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이 바로 '다양성'을 핑계로 세분화된 대입 전형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복잡성의 미로를 더욱 꼬이게 만드는 것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이른바 학생부 전형이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학적부, 생활 기록부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31번의 변화를 거쳐온 학생부. 2017년 현재 진로 탐색 과정을 담은 학생부는 총 24장이 기록 가능한 방대한 '자료'가 되었다. 그런데 이 '기록'이 문제다. 학생부를 보여주자, 선배들은 '그 엄청난 양에 놀라는 반면, 너무 주관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외국의 교육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고, 모호하며, 학생에 대해 결정적으로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 보여주기 식'이라 평가한다. 외국의 '수치화'한 학생부와 너무 큰 차이다. 


하지만 이 학생부로 인해 학생들의 희미가 엇갈린다. 실제 지방의 한 학교에서는 학생부 조작으로 물의를 빚었다. 등급에 따라 페이지 수가 달라지는 학생부, 등급이 낮은 학생들에게는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각종 '몰아주기 혜택'. 하지만, 오히려 조작의 당사자인 선생님은 반발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방 일반고 학생들은 그나마 '대학' 갈 기회조차 없다고.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반문은 사실이다. 학교를 신뢰하지 않는 '재력있는 학부모'들은 학생부 관리를 위해 각종 컨설팅 업체로 달려간다. 아니, 이미 '정보전'이 된 대학 입시 강남 초등학교 학생들은 이미 6학년 무렵이면 고등학교 과정을 완료한다는 상황에서 정보와 재력을 가진 부모들의 아이들이 일찌기 교육의 기회를 선점하고 길러져 자사고, 특목고 등의 기회를 가지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관리된' 아이들과 고등학교 자녀들의 전형 방법조차 먹고 사느라 제대로 알 수 없는 부모, 기백만원의 학비는 물론 학생부를 채울 각종 스펙을 채울 재력이 든든한 부모와 학비도 빠듯한 학부모의 경쟁은 이미 달리기도 전에 결과가 나온 게임이다. (3부; 엄마들의 대리 전쟁)



강남에서 떠도는 웃픈 교육의 지표, 이른바 텐텐 학습법(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학습 방식), 아이가 잠시 힘들어도 '하이웨이'에서 내려서서는 안된다는 강박적 '모정', 아이대신 학생부 봉사 활동을 채워주는 열혈 모정은 우리 사회 '관리 가족'의 그늘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정말 '인재'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카이스트의 이 그래프는 왜곡된 교육의 실체를 드러낸다. 


일반고 출신 학생들은 선행 학습이 부족한 2학년까지는 고전하지만 그 이후에는 숨겨져 있는 잠재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관리'되어진 우리의 학생들에게선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의 기쁨이란 어불성설이다. '목표 주사'를 맞고 버텨온 학생들은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 되어있다. 

걷어차진 사다리를 돌려주어야 나라가 살고, 아이들이 산다
예일대 윌리엄 데러저위츠 교수는 이런 학생들의 미래를 그의 저서 <똑똑한 양떼들>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부모들의 정보와 돈으로 명문대에 들어간 엘리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고민이 없는 것은 물론, 부모들이 제시한 방향으로만 자신의 미래를 반응하고, 창의적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는 그들은 이후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서 '늘 안전한' 선택만을 하는 '안이하고 무능력한 지배 그룹'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안이하고 무능한 지배 그룹'이 미래를 책임 질 수 있을까? 미래 학자 토마스 프레이가가 주장하는 바 20년대 대학의 상당수가 문을 닫을 '탄력적이며 유연하며 투지가 넘치는' 미래 인재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디자인 베이비'들은 미래를 책임질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사다리'에서 걷어차여진 대다수의 학생들이다. 일본의 교육 학자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 일본 사회'를 이미 그의 책 '격차 세습'을 통해 경고한 바 있다. '하류의 자녀는 하류'가 되는 사회, 1억 명이 빈곤 계층인 사회, 이른바 버는 돈 없이 빠찡꼬 게임으로 딴 돈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즐기는 것으로 연명하는 식의 '현재를 즐겁게 지내자는 '니트족'들은 계층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자구책으로 드러나는 한 예이다. 특히 '개천에서 난 용'들의 '인적 자본'에 의해 급격한 성장 주도의 경제를 근간으로 해온 대한민국에서 '격차 세습'으로 인한 계층 고착화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심각한 문제이다. 

EBS의 <대학 입시의 진실>은 최근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학생부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부터 시작하여, 대학 입시 그 자체를 낱낱이 해부하여 들어간다. 그리고 통계의 장난 속에 숨겨져 있는 결국 가진 자, 아는 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계층 세습'의 도구가 되는 대학 입시의 민낯을 세세하게 밝힌다. 



문제 제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방향도 제시한다. 단순한다.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님들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그 '복잡'한 대학 입시 정책을 '단순'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돈과 정보에 의해 '선점'하는 그 방식을 뜯어 고쳐서, '열심히 공부하면' 갈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면 된다. 

6부작에 걸쳐 방영된 <다큐 프라임- 대학 입시의 진실>은 현행 대학 입시 제도의 모순과 그 원인을 심층깊게 진단했다. 그리고 그 대안까지 제시했다, 새 정부를 맞이한 '교육 방송'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교육 정책처럼, 꼭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변화되는 교육 정책 속에서도 여전히 상위를 독점하고 있는 강남 8학군처럼 상위 계층의 카멜레온보다 더 빠른 적응력을 따라잡을 지도 문제다. 무엇보다 부모들의 마음을 다스려 주지 않으면 교육 정책은 실패한다는 학자의 말처럼 '내 아이는'하면 사회 지도층이라도 위장 전입을 마다하지 않는 '이기적' 자녀애의 욕망을 과연 어떻게 순치시켜 나갈지도 미지수다. 그러기에 총체적인 진단이었던 <대학 입시의 진실>이 더 의미가 있다. 공은 던져졌다. 과연 이 '로드맵'이 어떤 결과물로 나올 지는 전적으로 새 정부의 몫이다. 그리고 그건 일자수 몇 개 이상의 진정한 '꿈의 사다리'를 마련해 주는 해결책이다. 

by meditator 2017. 6. 1. 16:30

1977년 출간된 고 박완서 작가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수필집 중 한 꼭지에 해당하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마라톤 대회로 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손을 모아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선두 그룹이 지나고, 마라톤 대회를 지켜보던 사람들조차 관심이 흩어질 무렵 여전한 교통 통제에 짜증이 나던 참에 푸른 색 옷의 마라토너가 등장한다. 그의 모습이 좀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꼈던 작가,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에서 '정직한 고통'을 본 순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차도로 뛰어들어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그런 작가의 독려에 힘입어 거리의 시민들도. 


지금이라면 다를까? 처음 이 책을 접했던 70년대 후반, 이 글은 충격적이었다. 꼴찌는 말 그대로 꼴찌였던 세상 속에서 '낙오하지 않는 이'를 향한 격려의 박수라니! 그건 그저 한 편의 수필이 아니라, 성장 지상주의 대한민국을 울리는 경종이었다. 그리고 이제 5월 28일 sbs스페셜은 어쩌면 그 시절 박완서 작가처럼 이번 대선에서 꼴찌를 한 심상정을 복기한다. 



찌 심상정, 하지만 여전한 심블리
'어대문'의 선거판이었다. '촛불'의 후원을 얻은 '어대문'에 도전한 후보들은 이제 '정계 은퇴'가 운운될만큼 역부족의 선거판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거 중반 토론 과정에서 그래도 우리 편 '어대문'에 흠집을 내는데 동조했다는 이유로 당원들을 잃는 해프닝을 겪으면서도 완주를 했다. 아쉽게도 원하던 10%를 넘기는 커녕 6.2%라는 여전히 넘기 힘든 진보 세력의 현실을 경험했다. 그런데 왜 다큐는 심상정을 주목할까?

시작은 이제는 돌아와 주방 앞에 선 서툰 주부 심상정으로 시작한다. 가사 일을 14년 째 남편에게 맡기고 바깥 사람이 된 심상정, 모처럼 돌아와 아들이 원하는 '닭볶음탕'을 하려하는데, 도무지 부엌이 낯설다. 장보러 간 마트에서는 여전히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 낙선한 대통령 후보 맞는지? 인기가 좋다. 어른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돌 스타급이다. 거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6.2%의 득표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놈의 인기'말이다. 

바로 그 점이다.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선거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있었다. 바로 왜 유승민 후보가 바른 정당인 것과, 또 한 사람 심상정 후보가 정의당이라는 것이다. 선거 과정 후보자들의 토론을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여, 야의 편견없이 보자면 두 사람이 제일 잘 했다. 말이 앞뒤가 맞았고, 자신의 논리가 있었고, 객관적인 설득력을 가졌었다. 사전 선거 지지율에서 심상정 후보는 11.4%의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 선거도 '토론'과 '결과'는 별 개의 것이었다. 물론 '토론'을 못해서 망한 후보도 있다. 하지만 '토론'을 잘 해서 잘 된 후보도 없다. 

하지만 또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정의당이 바른 정당에도 못미친 6.2%의 득표를 얻었지만 역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진보 세력 후보 중 가장 다수의 득표를 했다. 14대 대선 당시 민중후보 백기완 선생은 0.9%를,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3.0%를 득표했다. 그에 비하면 심상정 후보의 득표수는 무려 두 배나 는 것이다. 

득표수만이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3억의 빛이 무색하게 선거가 끝나고 정의당에는 성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못미 심상정' 등 비록 선거에서 심상정을 지지하지는 못했지만 심상정의 완주를 지지하는 성금들이었다. 2억 8천만원이 모였다. 선거에 지면 '정계 은퇴'하라는 정치판에서 낙선 후보에게 성금이라니!



심상정에 대해 지지의 의미
그렇게 선거에서 지고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는 심상정 후보에게는 별명도 많다. 심블리에서부터 2초 김고은, 심크러쉬까지. 그 별명의 면면에서도 느껴지듯이 '트렌디함'이 심상정과 함께 한다. 이런 '트렌디한 별명'에 대해 정치학자는 물론 별명의 시작은 정의당 홍보팀이었을지 모르나, 그 별명이 '대중'적이 되는 과정에는 '대중의 적극적인 호응'이 뒤따랐을 것이라 분석한다. 일찌기 국회에서부터 '적폐'의 수구 세력에게는 '걸크러쉬'하기를 마다하지 않지만, 홍보 영상을 비롯한 평소의 그 모습에서는 2초 김고은을 수긍하게 할 만큼 '심블리'한 심상정. 아마도 본인이 우기지 않아도 2초 김고은이란 별명이 '욕'이나 '어불성설'이 아닌 웃고 넘어갈 수 있게 만든 건, 심상정이 선거 기간 보인 '노력'의 결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똑같이 대선 토론 과정에서 혁혁한 성과를 보인 두 사람이지만, 유승민과 심상정이 보인 토론의 결은 달랐다. 일찌기 유시민 작가와 100분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경제학자이자 관료 출신의 유승민 후보가 논리적인 토론가였다면, 심상정 후보는 정의당 후보로서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살아온 삶이 일치된 실천가로서의 그 모습에 더 힘이 실린다. 선거 과정 여성과 관련한 실언을 한 홍준표 후보에게 따끔하게 짚고 넘어가는 모습이나, 굳이 나설 필요없는 민주당 후보의 대북 송금 문제를 나서서 언젯적 대북 송금이냐며 그 자리에 있는 모두 후보들을 뜨끔하게 하는 장면은 홍준표 후보와는 또 다른 의미로 토론을 보는 이들을 속시원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거기에 우리 사회의 약자로서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에 대한 그녀의 일관된 입장은 그저 군소 정당으로서의 '선거 결과'를 의식하지 않는 '프로파간다'를 넘어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속시원한 이야기를 해준 사람으로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한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경기 고양 갑의 심상정 후보와 경남 창원 성산 노회찬 후보를 제외하고는 한 자리 수의 지지율을 넘지 못했다. 심상정이라는 개인이 보인 성과가 정의당, 혹은 진보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명망성의 한계를 넘어, 그 지지 속에 숨겨진 의미를 짚고자 한다. 심상정의 입을 통해,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통해 그녀가 주장하고자 하는 '노동'이 제 목소리를 내고, 제대로 대접을 받는 사회에 대한 여전한 열망이 6.2%의 수치로 가늠할 수 없는 심상정 개인에 대한 열렬한, 그리고 여젼한 인기의 요인이라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상회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50%를 넘는 지금, 그럼에도 잊지말아야 할 것은, 그리고 '미래 지향적'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심상정의 지지율에 담겨있는 간절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제 목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sbs스페셜>이 짚는다. 





by meditator 2017. 5. 29. 14:41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대한민국, 당연히 우리의 문맹률이 0%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OECD 가입국 문서 해독 능력 비교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전 국민의 75% 이상이 새로운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일상 문서 해독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2014, 3, 7 국민 일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글을 읽을 수는 있을 정도인데, 65세 이상 노인 연령 층으로 가면 상태는 더 심각해 진다. 65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문맹률은 절반에 가깝고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어르신들이 30%에나 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 어르신들의 '봉건적 사고'의 잔재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기회조차 놓친 '어르신들 문맹'의 소산일 지도 모를 일이다. 




시집 세 편의 어엿한 시인, 칠곡군 할머니들
그래서 다수의 지방 자치 단체는 고령화 시대 이런 심각한 어르신들의 문맹률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인 복지 회관, 마을 회관, 경로당을 중심으로 한글 인문학 수업을 늘려가고 있다. 그런 인문학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글'을 배우는 것을 넘어, 그것이 '작품'으로 빛을 발한 기적의 사례가 있다. 바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다. 

대구와 구미 사이의, 유명 농산물도, 유명 관광지도 없는 이곳, 주변 사람들이 아니면 그 지명조차 낯선 이곳 22개 마을의 할머니들은 2013년부터 '문해 교육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를 통해 할머니들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써볼 수 있게 되었고, 꾸깃꾸깃한 그 옛날 자신에게 보내온 연애 편지에서부터, 자식들의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할머니들이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여전히 '한글'이 어렵다는 할머니들, 그러나 할머니들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을 넘어 '작품'을 창작해 냈다. 사투리로, 맞춤법이 틀린 한글, 하지만 그 속에 인생이 담긴 '詩'가 바로 그것이다. 

시가 뭐고?      소화자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 시간이라 일도 놓고 헛둥지둥 나왔는데 시를 쓰라하네/ 시가 뭐고?/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2015년 그런 할머니들의 작품이 <시가 뭐고?>로 출간되었다. 출판 기념회도 했고, 북콘서트도 했다. 그 여세를 몰아 1년 뒤 119명 할머니들의 <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가 연이어 발표되었고, 81명 할머니들의 87편의 시가 <작대기가 꼬꼬장 꼬꼬장해>가 지난 3월 23일 세 번 째로 출간되었다. 바로 이런 이제는 어엿한 세번 째 시집을 가진 시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SBS스페셜이 다룬다. 

다큐의 시작은 '詩에 대한 질문이다. 광화문 거리에 만들어진 간이 천막, 들른 사람들은 자기 앞에 펼쳐진 백지에 시를 쓰라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시, 그건 너무 어렵단다. 화면이 바뀌고, 한낮의 볕이 바른 양지, 칠곡군 할머니들이 앉아계시고, 시를 묻자, 할머니들 입에서 흥타령처럼 시가 흘러나온다. 쉽게 쓰여진, 아니 불려진 시?



여전히 한글 맞춤법이 너무 어렵다시는 할머니들, 그런데 시는 참 술술 잘도 나온다. 타고난 시인이셨나? 하지만 할머니들이 쓴 시를 보면 느껴진다. 그들의 지난 80년 삶이 그대로 시가 되어 흘러나왔음을. 자신을 표현할 길 없던 그 몇 십년의 세월이 뒤늦게 한글을 배워 물꼬가 터지고, 그 인생인 '시'라는 매개를 얻어 응축되어 표현된다. 

영감 / 칠곡시인 조덕자 할머니
젊은 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 주막에 있는 시간이 드 만낫다
호호백발 할배 대니 갈 곳이 없어 집박계 모르네 이재사 할마이가 제일 좋다 하네


철이 들기도 전에 결혼을 하고 어려운 살림살이 허리 한번 못 펴보고 산 세월, 이제 남편이 있어도 바람처럼 돌아다닐 여력도 없이 병든 동반자, 자식들 다 여의고 이제사 여유가 생긴 할머니들은 '신이 나서', 늦게 분 '시'바람에 밥수저만 놓으면 마을 회관으로 달려가신다


인생, 시가 되다,
할머니들이 쓰는 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 <詩>이다. 경기도 인근의 작은 도시에 사는 미자 할머니, 그 나이에도 여전히 중학생인 손자를 부양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못할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지만, 화사한 색감의 옷과 머리의 꽃장식처럼 소녀 감성을 잃지 않았다. 그런 미자 할머니가 '시' 강좌를 듣고,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되며, 영화는 미자 할머니가 만난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 목도한 아름답지 않은 현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의 시이야기란 이창동 감독의 술회처럼, 영화 속 미자 할머니는 결국 자신의 몸으로 시대를 울리는 시가 되는 슬픈 마무리를 한다. 

작약꽃 / 칠곡시인 이쇠건 할머니
자야자야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올해도 여전히 연분홍 작약이 아름답게 피였네
나는 나는 시집온 지 육십 오년 되었구나 
그래서 내 나이는 팔십육세란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옃다네

하지만 그렇게 시대를, 자신이 결국 눈감아버릴 수 없는 삶을 '시'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했던 영화와 달리, 할매 詩트콤 속 할머니들의 삶은 마치 온갖 세월의 풍파를 겪고 의연해진 거목과도 같다. 잦은 바람 따윈 거뜬히 품어 버리는. 젊어 주막을 들락거리는 남편도, 농삿일보다 바깥일에 더 정신 팔렸던 남정네도,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자식도, 삶은 고난했지만, 그 고난한 삶을 결코 한 시도 허투루 살지 않은, 온 몸으로 생을 짊어온 낙천성과 여유로움, 그리고 인생에 대해 그 어떤 철학자도 따라갈 수 없는 해탈이 이 칠곡 할머니들의 시엔 담겨있다. 그런 할머니들의 시처럼, 다큐 역시 詩트콤이라며 그런 늙었지만 여유로운 노년의 삶을 밝게 그려내려 애쓴다. 

동네 청년이랑 몰래 동구밖 나무 아래서 연애를 하던 갈래머리 소녀는 이제 자식들 거둬먹이려 농삿일을 하며 한 평생을 보내느라 나무 막대기처럼 굵직해진 손으로, 그럼에도 여전히 놓치지 않은 사랑을 노래한다. 먼저 보낸 자식의 무덤 앞에서 허물어지는 엄마는 하지만 여전히 건사해야 할 식구들은 물론 외지인에게 조차 밥 한끼를 걱정하며 미소를 보낸다. 어쩌면 할머니들이 이룬 기적은 '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되돌아 보면 한 줄의 시로 마치기엔 '고생'보따리였던 인생,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그 '신산스러운' 삶의 무게 대신, 또박또박 시랑 씨름하는 열정으로 오늘을 채워간다. 할머니들의 삶은 과거형이 아니라, 네 번 째 시집을 기대하기에 충분할 현재, 혹은 미래형이다. 
by meditator 2017. 5. 22. 16:10

mbc 스페셜은 해마다 5월이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휴먼 다큐 사랑>이라는 특집 시리즈를 방영해 왔다. 2006년 시한부 삶을 사는 영란씨와 그녀의 1분 대기조였던 남편 창원씨의 순애보로 시작된 시리즈, 2007년 <엄지 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2009년 <풀빵 엄마>, 2011년 <진실이 엄마> 등을 통해 2016년까지 45편의 다큐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2006년에서 이제 2016년, 그리고 올해 2017년 해마다 같은 이름으로 돌아온 <휴먼 다큐 사랑>이지만 해를 거듭하며 이 다큐를 통해 조명하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며 다른 감동과, 다른 질문을 던진다. 두 편에 걸쳐 방영되었던 <진실이 엄마>를 통해 고 최진실 씨의 환희와 준희는 아이에서 사춘기 청소년으로 자라났고, <너는 내 운명>의 1분 대기조였던 창원씨는 이제 홀로 아내를 그리며 살아간다. 2009년에는 로봇 다리 세진이를 통해 '장애우'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2014년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삼혜원에서 생활하는 듬직이를 통해 '사랑'과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짚었다. 2015년에는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신해철씨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2015년의 사랑의 의미를 묻고, 역시나 같은 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일상을 통해 더 큰 가족으로서의 국가의 의미에 대해 물음표를 남긴다. 201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 가족의 그늘을 <러브 미 텐더>를 통해, 탈북자의 문제를 <내딸 미향이> 등으로 '가족'에 대한 질문의 넓이와 깊이를 더해간다. 그 해의 <휴먼 다큐 사랑>을 보면 그 시대 우리 사회 '가족'의 정의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인지할 수 있게 되듯, 지난 10여년간 <휴먼 다큐 사랑>은 우리 사회 가족의 바로 미터로 자리 매김해 왔다.



고아 수출국의 민낯, 신성혁이 된 아담 크랩서 
그렇다면 이제 2017년에 찾아온 <휴먼 다큐 사랑>에서 보여진 이 시대의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나의 이름은 신성혁>이다. 5월 8일, 15일 2부에 걸쳐 방영된 이 다큐는 '고아 수출국' 대한민국의 민낯을 밝힌다. 

고아 수출국, 몇 십년전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단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1956년부터 무려 1998년까지 38년간 해외 입양 1위의 국가였다. 심지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고아 수출국'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로 '미국'으로의 고아 수출이 대부분이었다. 80년에서부터 98년까지의 미국 이민 자료를 보면 미국의 전체 고아 입양 대상자 중 한국은 36.8%, 즉 미국 고아 입양자 세 명 중 한 명이 한국인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간 아이들은 다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되었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가족의 달 첫 번째 휴먼 다큐 사랑이 밝힌다. 

그의 이름은 신성혁,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한국말로 하는 것이 어눌하다. 오히려 40년동안 써온 아담 크랩서란 이름이 입에 익다. 당연히 그의 첫 번째 언어는 영어다. 그러나 1부에서 만난 그는 이민국의 재판 과정에 있다. 심지어 결국 그 재판에서 져서 수용소에서 건강을 잃어가며 하루 하루 한국으로의 송환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십년 전 그의 어머니는 침을 잘못맞아 못쓰는 다리를 끌고 집을 나간 남편 대신 두 아이를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기만 하면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꿈의 나라 미국으로 두 아이를 생이별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의 미국 생활은 지하실에서 숟가락이나 벨트로 맞는 학대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그 학대조차도 파양으로 인해, 정부 보조금을 받고 아이들을 못박는 기계로 쏘며 13명의 아이들을 더 심하게 학대한 새 부모로의 이전이었다.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 집을 찾아올 때까지.

하지만 학대의 끝은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모라고 호의적으로 증언을 했던 그를 양부모는 거리로 내쫓았다. 16살 어린 나이에 쓰레기통에서 남이 버린 버거를 줏어 먹으며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입양 당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성경책등을 가지러 몰래 양부모의 집에 들어갔다 신고되는 바람에 25개월의 교도소 생활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 '범죄'는 그를 '추방'할 유효한 조건이 되었다. 

왜 미국에서 십여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는 미국인이 될 수 없었을까? 그건 바로 '고아 수출'에만 연연한 채, 그들의 권리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우리 정부 때문이었다. 한국 정부는 '고아'만 수출했지, 그들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권한에는 눈을 감았다. 그래서 미국으로 온 한국의 고아들은 18살이전에 양부모가 시민권을 취득시켜 줘야만 미국 시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담처럼 18살이 되기 전에 쫓겨난 아이들, 혹은 설사 18살이 되더라도 양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아이들, 심지어 교도소라도 다녀오기라도 했다면 영원히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 



아들의 귀향, 뒤늦은 어머니의 모성 
냉정한 재판, 그리고 한국으로의 송환을 인정하기 전에는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수용소 생활, 결국 아담은 신성혁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미국인, 당연히 한국어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는 그는 졸지에 한국인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에겐 다리가 불편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2부는 그 어머니와 이젠 신성혁이 된 아담의 40년만의 모자 상봉을 그려낸다. 40년만에 돌아올 아들을 위해 며칠 동안 음식 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그만 아들을 보자 눈물을 터트리다 못해 정신줄을 놓아 버린다. 아들이 왔다는 것 외엔 잠시 기억을 잃을 정도로. 대화는 안통하지만 지난 40년간 늘 학대를 당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눈물만으로 오랜 외로움이 풀려간다. 그러나 다리를 못쓰는 어머니, 마찬가지로 몸이 성치 않은 새 아버지에게 자신을 의탁할 수는 없는 아들은 서울로 올라와 귀환 입양아들을 위한 시설로 들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역시 그에게는 좀처럼 쉽게 '정착'을 허용치 않는다. 주민등록증은 주어졌지만 오물이 나오는 지하 방과 쉽게 늘지 않는 한국어, 그리고 그 보다 더 어려운 밥벌이가 그를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긴 그를 한없이 외롭게만 했던 미국이 아니다. 이제 그의 생일날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그를 찾아오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휴먼 다큐 사랑>은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자신의 40년 생애에 고스란히 새긴 신성혁 씨와 그 어머니의 뒤늦은 모성을 2017년의 가족, 그 자화상으로 그려낸다. 
by meditator 2017. 5. 16. 02:44

이제는 과거의 인물이 된 오바마 대통령,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바마 케어'라고 칭해지는 미국 의료 보험 체제를 개편으로 부터 상징되는 '진보적'인 업적으로 칭송되는가 하면, 결국 '오바마 때문이다'라는 평가처럼,  오늘날 미국 시민들이 '트럼프'를 선택하도록 만든 경제적 불안감에 대해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평가도 등장한다. 임기 중 전용기를 타고 열심히 놀러다니고 농구 경기를 보러 다녔다는 '한 일이 없는 이미지'만의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어디든지 달려갔던 기동력 뛰어난 현장가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할 당시에 이르기까지 무려 55%의 높은 지지도를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의 대통령들이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던 것과 달리, 퇴임식을 맞이하기도 전에 탄핵을 받아 감옥에 가있거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고개를 수그리고 청와대를 나서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아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따지더라도 놀라운 지지율이다. 과연 그의 공과를 차치하고 퇴임에 이르러서까지도 여전히 높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오바마, 그 이유가 뭘까를 <sbs스페셜>이 찾아본다. 




남의 나라 대통령 인기 높은 이유를 찾아보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같은 대통령 제를 운영하는 우리 나라의 새 대통령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무사히 퇴임하는 건 물론, 퇴임에 이르러서까지 환호를 받는 대통령, 어쩌면 우리가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가장 소박한 희망은 그것이 아닐까? 박수받으면 떠날 수 있는 대통령,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해낸 오바마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2920일 동안 오바마를 지켜 본 오마바 전속 비디오 작가의 지난 5년간의 기록을 들춰본다. 

오바마를 통해 새 대통령에 바란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즐기는 대통령이었다. 그에겐 2009년 취임에서 부터 퇴임까지의 시간을 따라다니며 기록한 공식 미디어 작가 차운드 하리를 비롯한 미디어 참모들이 있었다. 현대의 정치가 마치 '아이돌 탄생기'처럼 '이미지네이션'이 중요해지고, 언론에 의해 취합된 정보에 따라 대통령의 선택 여부가 판가름나는 시절에, 가장 발빠르게 그런 '트렌드'에 앞서 간 대통령으로 오바마는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공식 작가 차운드 하리는 그런 '미디어 프렌들리'라는 지점만으로 오바마를 기억하는 것에 고개를 젓는다. 역대 대통령 그 누구보다 오바마는 카메라의 온 오프의 경계가 없었던 인물이라 강조한다. 그는 그 누구보다 카메라에 많이 노출되었지만, 그 노출된 그의 모습은 '가공된 이미지'가 아니라, 카메라가 꺼진 순간에도 이어진 오바마 그 자신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렇게 진솔한 오바마란 인물은 미국 시민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오바마는 다인종 국가 미국의 전형처럼 복잡한 가계를 가진 인물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지닌 인물로써 입지전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오바마는 그런 자신을 규정지었던 그 모든 것을 넘어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합'시켜 나가는데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한 인물로 비디오는 기록한다. 

경선 과정에서 자신의 상대방이었던 힐러리를 국무 장관으로 임명했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국방 전문가 조셉 바이든을 런닝 메이트로 임기 내내 함께 했다. 무엇보다 그가 걸출했던 것은 미국이 위기를 맞이한 그 순간 순간이라 비디오는 기록한다. 우리에게도 기억으로 남는 백인의 흑인 교회 난입사건, 그 추도식에 선 오바마는 자신의 피부색 또한 흑인 임을 드러내지 않고, 'amazing grace'를 부르며 온 국가를 열광적인 통합의 분위기로 흘러갔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이 선거 기간은 물론, 취임 과정에서 위기에 몰릴 때 아와 타를 구분함으로써 자신의 편을 결집시키는 것으로 전열을 가다듬어 위기를 돌파했던 것과 달리, 미국 내 인종 갈등을 정점으로 이끌었던 그 사건의 현장에서 노예선 선장으로 자신이 과거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며 만들었던 그 노래를 부르며, 흑백 인종 갈등을 봉합하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연설회장에서 자신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반대론자의 목소리에 그는 무시하는 대신, 준비해온 자신의 연설을 접고, 비록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전향적 자세를 보인다. 

현대 정치학이 결국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건 '통합'이다. 다양한 인종, 층위가 나는 계층, 그리고 그들 각각의 요구라는 복잡하게 서로의 이해 관계가 얽힌 사회에서, 그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로서 '통합'하는 것이 오늘날 정치 체제와 리더의 가장 큰 숙제인 것이다. 그리고 다큐가 주목한 성공적인 지도자로서 오바마는 바로 그것을 퇴임의 그 순간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오바마가 통합을 이루어 간 포인트는 바로 '아버지'이다.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바로 그 '아버지'로서의 자세로 국가의 모든 일에 접근해 들어간다. '각하'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다. 자신도 남들처럼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써 국민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현장으로 달려가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은 함께 나눈다. 그의 초대로 백악관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이 마치 우리 친근한 이웃의 초대처럼 반가운 일인 듯. 

또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허물어 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드러낸다. 딸이 평가한 웃긴 것과 창피한 것의 중간에 있다는 '코믹'한 모습을 정치적 긴장의 요소로 적절하게 활용하며,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실수에 관대하다. 그런 소박하지만 거리낌없는 그의 모습들이 그의 퇴임 과정에서 지난 시간의 동반자의 눈물과 수많은 이들의 굿바이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업적보다 중요한 건? 
그런 오바마를 두고 미국의 대통령 연구자는 슬픔의 사령관(commander of grief)라 칭한다. 일반적으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전시 최고 사령관(commander in chief),  하지만 오바마는 '공감'을 통해 '국민'을 통합해 나가며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어루만지며 새로운 지도자상을 이루어 냈다. 이는 지난 대통령 시절, '불통'으로 인해 내내 고통받았던 우리에게는 몹시 부러운 덕목이기도 하다. 



오바마 비디오는 오바마가 퇴임 한 후 5년이 지난 2021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작가의 허락을 받아 취합한 한 시간 여의 영상에는 카메라가 켜지던 꺼지던 진지하게, 혹은 때론 가볍게 자신을 내보이기에 서슴없었던 한 대통령의 모습이 담겨있다. 물론 '미디어 프렌들리'한 그의 입장처럼, 그런 비디오 속 모습은 오바마라는 정체 세력이 지향했던 바 '이미지네이션'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네이션'을 넘어, 지금 새 대통령을 맞이하는 우리가 '고소원'인 것은 바로 '이미지'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세대, 그보다 더 극과 극의 입장으로 치달아 가는 이 대선 정국 속의 국가와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 기꺼이 솔선수범하는, 그래서 박수 받으며 청와대를 떠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대통령이다. 다큐에서 보여지듯이 그의 업무 실적으로 보면 오바마는 잘 한 것만큼, 잘하지 못한 것도 많은 대통령이다. 그 누군가의 평가처럼 그로 인해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대통령이었던 한에서 많은 국민들이 그를 통해 위로받고, 그를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일원으로 자신을 정의내릴 수 있도록 만든 그 '리더쉽'이라고 다큐는 말하고 있다. 부디 새 대통령도 그 누구들의 대통령이 아닌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되길~
by meditator 2017. 5. 8.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