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늘 당신이 들른 가게에서 따로 돈을 받지 않고 물건을 비닐 봉투에 넣어주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을 지도 모른다. 공짜로 챙긴 비닐 봉투라고. 지난 2013년에 편의점에서 비닐 봉투를 놓고 실랑이하다 아르바이트 생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비닐' 인심이 후하다. 마트에서 비닐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비닐 포장 유료가 시행됐지만, 그게 얼마나 눈가리고 아웅인지는 아일랜드의 20배, 핀란드의 100배에 달하는 1년에 211억장의 비닐 봉투를 쓰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 그대로 드러난다. 2015년 기준 연간 일인당 420개의 비닐을 사용하는 나라,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비닐의 여정에 대해 우리는 무지했다. 


지난 해 7월 중국이 갑작스레 폐비닐과 종이 쓰레기 수입 중단을 발표하고, 그 여파로 비닐 수거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파장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저 분리수거라도 제대로 해서 버리면 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무한정 버렸던 비닐, 그 비닐의 여정을 다룬 한 편의 다큐가 있다. 그 다큐가 다룬 비닐의 여정은 나비의 날개짓처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버려왔던 비닐의 국가간 커넥션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속살은 결국 중국 정부로 하여금 세계의 폐비닐과 종이 쓰레기 수입 금지라는 거대한 토네이도를 몰고왔다. 



플라스틱 비닐의 여정, 그 종착지 중국
우리나라에서 <플라스틱 차이나>로 번역된 왕구량 감독의 다큐 원제는 <소료 왕국(塑料王國)>이다. 여기서 소료는 중국어로 플라스틱을 뜻한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쉽게 포장재로 사용하고 있는 비닐은 그 원료가 플라스틱이다. 석유로 부터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가공 여부에 따라 여러가지로 만들어 진다. 그 중 비닐로 만들어 지는 건 열에 강한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에틸렌이다. 폴리 에틸렌은 땅에 매립해도 잘 썩지 않고, 소각할 경우 인체에 해로운 성분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재활용율도 26%에 불과하며, 처리 비용도 많이 든다. 

영화는 컨테이너가 적재된 배의 항해로 부터 시작된다. 여러 나라 들간의 수입과 수출, 그 물류의 상징인 컨테이너, 그 중 하나가 항구에서 내려져 중국 산둥성의 작은 마을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건, 거대한 산, 페플라스틱, 비닐로 이루어진 첩첩의 산이다. 그리고 그곳에 컨네이너 안에 들어있던 폐비닐이 산 하나를 더한다. 

중국은 세계 폐플라스틱 비닐의 56%를 수입하는 쓰레기 수입 국가였다. 2016년에만 중국은 730만톤(31억 달러)의 쓰레기를 수입했다. 영국의 폐지 55%, 플라스틱 25%, 미국의 전체 쓰레기 중 78%는 중국으로 갔다. 그리고 이런 중국의 폐기물 수입이 지난 30년간 중국의 '고도 성장'을 뒷받침해왔다. 중국은 이런 고체 폐기물을 수입하여 부족한 자원으로 활용했다. 미국에서 수입된 캔은 의류와 기계 제작용 금속이 되었고, 폐지는 포장재로 재활용되었다. 



영화는 바로 이런 쓰레기 수입 국가 중국의 현실을 그대로 지켜본다. 수입된 쓰레기가 도착한 산둥성의 쓰레기 산, 그곳은 쓰촨성에서 농사를 짓던 열 한 살 소녀 '이제'네의 집이다. 이제네 아버지는 그 쓰레기 수입 업자의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 일당 7500원을 받으며 이제네 가족을 책임진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고용된 건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이제 갓 열 살 남짓한 이제도, 이제의 동생도 모두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맨 손으로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관절염으로 힘든 농사일을 견디기 힘든 아버지가 선택한 쓰레기 재활용 업장의 일은, 아버지에겐 그저 농사일보다 조금 덜 몸이 고된 일로 여겨질 뿐이다. 병원 폐기물에서 부터, 온갖 오물이 범벅이 된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 더미는 이제네 가족의 터전이다. 그곳에서 이제네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겨우 일당 7500원에, 때마다 술을 먹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느라 아이들 학교조차 보낼 혀편이 안되는 이제네 아이들은 보물창고 같은 쓰레기 더미에서 놀 거리를 찾고, 때론 배울 거리마저 찾으며 살아간다. 마치 농부가 자연에서 그 삶을 일궈내듯, 이제네 가족은 쓰레기 더미에서 가족의 삶을 일궈낸다. 그리고 그건 갑과 을의 처지라지만, 이제네 아빠를 고용한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비닐의 터전에서 삶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
보통의 사람들처럼 쓰레기 더미를 삶의 터전으로 알고,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미래를 기약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 이들은 그들의 터전인 그 플라스틱 비닐 산이 가진 '함정'에 무지하다. '갑'인 사장은 해가 갈수록 시름시름 앓지만, 혹시라도 가장인 자신이 아파서 가족을 돌보지 못할까봐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제네 아버지의 고민은 하잘 것없는 월급으로 아이들 학교는 커녕, 고향조차 갈 수 없는 가난한 처지이지, 그들이 먹고 자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태울 때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버리고, 물고기가 배를 드러내고 죽어가는 폐비닐더미가 아니다. 

영화는 담담하게 비닐 더미가 밭이 되고, 논이 되기라도 하듯, 그곳에서 삶을 일구어 가는 이제네와 수입업자인 사장네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 본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가족의 안녕과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그 폐비닐 자체가 자신들의 삶을 보장하는 '환금성 작물'일 뿐, 그곳이 자신들의, 자기 자식들의 삶을, 미래를 갉아먹을 늪과 같은 대상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바로 그런 모습이 지난 30년간 환경에 무지했던 중국, 그리고 그 무지한 국민들을 이용하여 쓰레기 산업으로 성장을 이룩해 온 중국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왕구량 감독의 주제 의식은 영화의 개봉과 함께 중국 사회를 강타했고, 그 결과 중국은 2017년 세계 무역 기구에 '고체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여전히 관성적인 우리의 플라스틱 비닐 과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시간과 장소를 바꿀 뿐, 쉬이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비닐, 그 쓰레기를 용광로처럼 집어 삼키던 중국이 더는 그 역할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자, 그건 곧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쓰레기를 외주했던 서구 및 우리나라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이런 중국의 조처에 영국은 25개년 계획을 통해 쓰레기 감소 계획을 세우고, 유럽 연합은 2018년까지 비닐 봉투의 80%를 감소하고자 한다. 즉, 자원 구조에 대한 근본적 제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쓰레기 수입 국가였다는 충격적 오명도 잠시, 그 쓰레기 대란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중국이 '소화'해 주지 않는 쓰레기는 각 지자체에서 소화 불량이 되어, 비닐 수거 거부로 나타났다. 난항 끝에 다시 재개된 비닐 분리 수거, 그저 가져가지 않던 비닐을 다시 가져갔으니 이젠 한숨을 쉴 뿐이다. 마트에서 비닐봉투를 주지 않는다지만, 코너마다 즐비하게 마련되어 있는 비닐 포장재 롤은 여전하다. 

<플라스틱 차이나>에 대한 감상은 쓰레기로 고도 성장을 이룬 중국의 이면에 대한 혀를 차는 것이서는 안된다. 여전히 우리가 '과소비'하고 있는 플라스틱 비닐 사용에 대한 경각심의 계기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자원 재활용에 대한 구조적 고민을 해야 하는 근본적 질문이 되어야 한다.
by meditator 2018. 4. 20. 05:21

군부 독재 시절, 하루 아침에 금쪽같은 아이들을 차디찬 감옥으로 빼앗긴 부모들은 아이들을 대신하여 거리에 섰었다. 1974년 민청학년 사건을 계기로 모인 부모들은 1986년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을 계리로 '민가협'을 결성하고 우리 사회 양심수 문제에 앞장서 왔다. 그렇게 우리의 민주화 역사는, 민주화에 앞장선 자식들을 둔 부모들을 아이들과 함께 그 대열에 서게 만든 역사였다. 그런데, 세월은 흐르고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는데, 이제 또 부모들은 거리로 나선다. 심지어 차가운 거리에서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는 이 부모들의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다. 다큐를 연 건, 징하게도 추웠던 지난 겨울, 안산에서 고공 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을 방문하여 응원의 노래를 부르는 416합창단으로 부터 시작된다. 2014년 4월 16일, 그로부터 4년 아이들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부모들은 그 '참척'의 고통을 '연대'로 승화시킨다. 대한민국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지만, 여전히 그 '역사'는 자식들을 제물로 삼았고, 부모들은 '세상의 정의'를 묻기 위해 여전히 거리로 나선다. 2018년에도. 




4년이나 지났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배도 어렵사리 땅 위로 올라왔고. 2014년 그 날 이래, 늘 '세월호'를 따라다니는 건, 이제 그만하면 됐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mbc스페셜>은 당사자 부모들을 만나러 간다.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꼭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일 년이 가도 십 년이 가도 
아니 더 많은 세월 흘러도 
보고픈 얼굴들 그리운 이름들 
우리 가슴에 새겨놓을게    -<잊지않을게> 중에서 

그 날의 부모들,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다 
안산의 성당 한 켠에 마련된 컨테이너 박스, 모처럼 그곳에 모인 부모들 사이에 활기가 넘친다. 세상은 이제 그만 보내주라는 시간, 세월호 학부모들과 시민 단원들이 입을 모아 만든 416 합창단에 새로운 학부모 단원 두 분이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서로 앞집뒷집 하며 소개를 하며 쑥쓰러운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단원들, 

엄마는 말한다. 숨을 쉬기 위해 이곳에 오는 것이라고. 그 날 이후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엄마는 도저히 맞물려 들어갈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함께 웃을 수도, 그렇다고 다른 표정을 지으면 티를 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집 밖으로 한 걸음 나오기가 무서운 엄마에게,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이곳은 '숨통'이다. 벌써 4년, 세상은 이제 그만 놓아주라는데 엄마는 한 달에 두번 들르는 강원도 산골 산사에서 아이의 사진을 부등켜 안고 한번만 너를 안아봤으면 좋겠다고 울음을 토해 놓는다. 아이를 생각해서 시를 지어준 시인이 눈이 오면 아이가 오는 것이라 했다고, 아빠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눈이 오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아이를 맞는다. 옴팍 쇠어버린 흰 머리로 매일 오후 4시 19분이면 자신이 하는 세월호 방송을 통해 묵념의 시간을 놓치지 않는 아버지도 있다. 세상은 무뎌가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그 날, 그 바다에 있다. 

처음부터 노래를 부르려고 한 건 아니었다. 세월호 500일 각지에서 보내주신 성원에 조금이나도 답을 해볼까 시작했던 노래다. 합창단이라고 해서 정식의 합창단과 같은 형식과 절차를 밟지 않는다. 함께 노래를 부르지만 가창력이나, 파트에 어울리는 톤이 합창단의 요건이 아니다. 그저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다면, 이곳에서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뿐이다. 하지만, 그 '마음'으로 뭉친 부모들은 이제 어디라도 간다. 고공 농성의 현장에도, 쌍용 자동차 현장에도, 그리고 각종 세월호와 관련된 집회에. 노란 파카를 입은 부모들은 그 어디라도, 어떤 영하의 혹한이라도  두렵지 않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 다> 중에서 


아버지는 안산의 합동 분향소에 딱 한번 갔었다. 그곳에 있는 304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다 불러주었었다. 그리곤 다짐했다. 그 날의 진실을 밝히고 다시 너희들을 만나러 오겠다고. 하지만 그로부터 4년, 세상은 이제 그만 놓아주라는 시간, 엄마는 말한다. 밝혀진 건 없다고. 심지어 새 정부가 들어서니, 정부가 알아서 할테니 라며 부모들이 나서는 걸 저어하는 사람들조차 생겼다고. 정부의 처분만을 바라는 '희망 고문'의 시간, 하지만 부모들은 말한다. 세월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어진 건 없다고. 이제서야 그날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무엇을 했는지가 드러나는 시간, 지치고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부모들의 심정은 그들이 4주기 추모곡으로 선정한 <너를 보내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구름낀 하늘은 왠지
네가 살고 있는 나라일 것 같아서
창문들마저도 닫지 못하고
하루종일 서성이며 있었지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했던 너에게 나는
무슨말이 하고 파서 였을까
먼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난 왜 너 닮은 목소리마저
가슴에 품고도 같이가자 하지 못했나

다큐가 보여주는 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숨을 쉬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전히 아이들만 떠올리면 눈물이 차오는 부모들, 그 모습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가 배를 바다 위로 올렸지만, 세월호와 관련하여 그 날의 진실은 물론, 피해 관련자들에 대한 어떤 치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려 피해자인 사람들이 스스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뭉쳐 거리로 나서고, 스스로 함께 다독이며 추스리는 상황, 그건 여전히 우리가 사회적 재난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되돌아 보면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다큐는 절감하게 한다. 벌써 4년이라지만. 4년 아니라, 40년이 걸려도 아버지가 다시 아이들의 이름을 당당히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부모님들의 노래가 더 이상 눈물로 적셔지지 않을 때까지, 세월호의 진실 규명은 멈춰져서는 안된다는 지긋한 목소리, 4월 16일 mbc스페셜이다. 


by meditator 2018. 4. 17. 15:09

4월 15일 <sbs스페셜>은 '먹튀 논란'에 시달리는 이소연에 대한 다큐를 방영했다. 이미 2008년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과 관련된 논란을 비로소 다룬 것이다. 하지만 다큐를 보면 안다. '비로소'가 아니라, '이제야'라는 것을. 이소연이란 개인이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 결국 한국 사회에서 '먹튀'로 '논란의 대상'이 된것은 바로 우리 사회, 아니 우리의 정권들이 해왔던 전시 행정의 또 하나의 실패 사례이자, 그 오욕을 고스란히 한 개인에게 전가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 복기를 논란의 당사자 이소연으로 부터 시작한다. 




먹튀가 된 우주인 
논란이 시작된 건 2014년부터였다. 이소연이 그녀를 우주로 보낸 주무부처였던 한국 항공 우주 연구원(항우연)을 퇴사하면서 먹튀 논란이 시작되었다. 언론들은 이 사안을 '먹튀'라는 선정적 단어를 넣어 기사화하였고, 온갖 그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구설수를 기사로 옮겼다. 마치 우리가 최근에도 흔히 보듯 연예인의 가십 기사처럼 말이다. 그 기사들의 논조가 이구동성으로 읊는 건 바로 이소연이 260억을 들인 국가적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은 후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날라버렸다는 것이다. 

그녀를 둘러싼 이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소연을 찾아가 그녀의 일상을 지켜본다. 현재 '백수'로 자신을 소개한 그녀, 논란의 가지가 되었던 남편은 그녀가 한국 최초의 우주인인 줄도 몰랐다는, 심지어 영주권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방인 이소연을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260억짜리 이벤트성 항공 우주 사업이다. 

2006년 항공 우주 사업을 시작한다는 뉴스는 센세이션했다. 당연히 36206명이라는 많은 호응이 뒤따랐다. 최종 후보로 선출된 고산씨가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탈락하고 함께 선출된 이소연씨가 대신 그 책임을 맡았고, 2008년 4월 10일 간의 우주 체험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귀환은 곧, 그녀를 우주로 보낸 사업이 '우주 관광'이며 '혈세 낭비'가 아니었느냐는 국민적 논란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이소연은 2018년에야 답한다. 그녀는 항우연이 만들어 낸 우주인 배출 사업의 상품이었다고. 2008년에 시작된 논란에 대해 2018년에야 답할 수 있는 이 상황은 무엇일까? 그 답엔 바뀐 정권, 그리고 정권에 따라 요동치는 우리의 과학 기술 사업이 있다. 우주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교신까지 했던 이소연, 현실은 주무 부서가 과학 기술부에서 교육과학 기술부로 바뀌는 정권의 변화, 그래서 우주 정거장에서 새 부서의 이름으로 패치를 바꾸어야 했던 웃픈 상황이었다. 

4월 8일에서 19일까지 러시아 소유즈-TMA12호를 타고 우주에 있던 이소연은 꿈에도 후속 사업이 없으리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그녀를 맞이한 건 후속 사업따윈 없는 단기 이벤트성 사업으로서의 그녀의 우주 여행이었다. 그리고 바뀐 정권, 변화된 시류는 전국민적 호응에 힘입어 뽑힌 그녀에게 260억 세금으로 호화 우주 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아니냐는 비ㄴㅏㄴ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는 교육 과학 기술부에 이러저러한 제안을 했지만 변화된 시류는 그런 그녀의 제안에 차갑게 반응했다. 그럼에도 이미 러시아의 기술력에 의존하여 제한된 조건에서 한 우주 여행이었음에도 나사가 '실패'라고 규정했던 위험했던 불시착 과정으로 힘들었던 몸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자신이 했던 실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한, 우주 과학을 위한 예산을 따기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했다고 이소연은 밝힌다. 당시 악화된 여론을 개선시키기 위한 항우연의 다양한 홍보성 자리와 함께. 

2년간의 복무 기간을 마친 이소연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MBA를 공부했다.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를 공부하는 그녀는 또 한번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자신이 했던 우주 실험, 우주 사업에 대한 예산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녀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심정은 다시 바뀐 정권에서 실종된 '우주 사업' 속에서 전혀 해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8년에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정권이 바뀌고, 이소연은 이제야 말문을 연다. 고국에서 계속되는 논란에 대해, 그녀는 말한다. 차라리 화재까지 났던 사고였던 그 도착 과정에서 자신이 죽어버렸다면 명예로운 우주인으로 오래 기억되지 않았을까라며 눈물짓는다. 

전문가는 말한다. 분명 이소연이 참가한 사업은 당시 국민들이 불만을 표했던 260억짜리 이벤트 성 우주 여행이 맞다고. 그렇다고 해서 그 당사자인 이소연이 그 비싼 이벤트의 대가를 치루는 것은 부당하다 덧붙인다. 이소연의 러시아 우주 사업 참가의 방식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이벤트 성'으로 우주 사업을 시작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전국민적 합의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시선을 끌어모으는 이벤트 성 사업은 비난받을 만한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이벤트 성' 사업으로 시작하여 일본이 우주 정거장을 개설하고 그곳에 자국의 우주인을 보내기까지의 지속적인 우주 사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정권의 입맛대로 우주 사업을 '실종'시키고, 그 당사자였던 우주인의 경험조차도 수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과연 이소연은 먹튀일까? 그녀는 2년간의 항우연 복무 기간을 마치고, 실망하는 마음으로 고국을 떠났지만, 최초의 우주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잊은 적 없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이 실종된 실종된 한국의 우주 사업에 대해 실망했던 것처럼, 이소연 그녀 역시 '책임'으로 복무한 그 시간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시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공인'이라 낙인 찍힌 사람들에게 '아량'이 없다. 다큐는 그 '아량'없는 세상에 이소연을 설득하기 위해 애쓴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권과, 그들이 벌인 '냄비'같은 정책의 문제라 본질을 짚고자 한다. 

아량이 없는 고국에 여전한 책임감으로 답하고자 노력했던 이소연. 한국에서는 단 한 명의 우주인이었지만, 넓은 세상으로 나오니 500여 명의 우주인 중에 한 명이 된 그녀는, 이제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국가의 시책이 아닌, 기업이 우주 여행을 하는 시대,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백수 이소연은 분주하다. 그리고 어쩌면 최초의 우주인, 그녀의 활용법은 이제 비로소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 

by meditator 2018. 4. 16. 16:13

매주 월요일 밤 11시면 입맛이 씁쓸했다. 왜 우리는 월요일 밤부터 '예능'을 보아야 할까?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도 온통 '예능'뿐이다. 도대체 왜 월요일부터? 라는 힐난에, 월요병엔 예능이라는 답이 돌아오면 할 말이 없지만, 드라마와 예능의 범람에 한숨이 쉬어질 뿐이다. 그런데 그런 월요일의 가벼움을 타개해 줄 묘책이 등장했다. 오랫동안 이리저리 치이던 <mbc스페셜>이 돌아왔다. 그렇다. 이게 원래, <mbc 스페셜>의 자리였다. 한 주의 시작, 세상사 좀 진지하게 바라보며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진심어린 시선들이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돌아온 <mbc스페셜>, 4월 9일 방영분에는 다수의 '이재용'들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vip 이재용 
우리가 아는 이재용은 그 사람이다. 맞다. 삼성전자 부회장, 얼마전 1년 만에 은근한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교도소 문을 나서던 그 사람이다. 그가 감옥에서 즐겨 보았다던 드라마 속 재벌가의 자제는 결국 자기 삶의 모토였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기 위해, 족벌 경영 체제를 일소하고, 그 자신은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재벌가를 나왔다. 하지만, '재산이나 지분, 자리 욕심이 없다'던, 그가 받은 혜택을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이 되겠다'던 부회장님은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스물 일곱 삼성전자 평사원으로 출발한 그, 그는 아버지로부터 단돈 60억(?)억을 증여받았다. 물론 이 돈에 대해서는 증여세 16억원의 증여세를 당당하게 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워렌 버핏도 울고갈 이재용의 귀신같은 투자 전략은 단 2년만에 에스원과 삼성 엔지니어링 주식을 사고 팔아 수익률 1300% 563억원을 남겼다. 심지어 그의 투자 전략을 따르지 못한 세법까지 개정시키며 투자에 투자를 거듭하여 증식된 그의 자산은 2018년 기준 9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 사람'이 아닌 이재용들도 있다. 학창 시절 벌을 받기 위해 복도에 서있으면 선생님들이 지나가며 '아니 왜 회장님이 여기 서계세요?'라 놀렸던 이름, '보험 관리사'로 명함에 이재용을 새겨넣으면 한번이라도 더 봐주던 이름, 그 이름들을 가진 또 다른 이재용들이 있다. <mbc스페셜>은 이 땅에 살아가는 '평범한(?) 이재용을 통해 무사히 감옥 밖으로 탈출에 성공한 '이재용'을 '논박'한다.  

그들에게는 '아버지'가 거저 준 60억은 없었다. 대신 16살부터 식당 알바부터 시작해서 안해본 일이 없이 도달한 이십대 중반의 청춘이 있었다. 음악적 재능은 있었지만, 음악적 재능을 버텨줄 집안이 없어서,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꿈이 있었다. 



이재용들로 이재용을 논박하다. 
다큐는 우리가 '이혁'으로 알고 있는 전 '노라조의 멤버'였던 이재용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이재용이었기에, 지난 촛불로 광장을 뜨겁게 만들었던데 기꺼이 일조한 이재용에 유독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던 그는, 그가 지켜본 이재용 재판 과정을 노래로 만들었다. '시발남아'(時發男娥)'

다 까고 말해 넌
이미 다 알고 있잖아
처음과는 다른 말로
또 소설을 쳐 써대지
주어진 시간 정확한
사실만을 모두 얘기해
소설은 그만 쳐 쓰고
뉴스를 얘기해 우리가 원하는
너 제일 잘 알잖아 뭘 잘못한 건 지

그리고 그 자신도 '돈'을 벌기 위해 활동했던 '노라조'에서 나와 조금은 배고플지도 하고자 했던 음악의 길에 섰다. 자신의 길에 선 또 다른 이재용도 있다. 서른 중반, 포크레인 시험장에 선 그는 아직 이 기계가 서툴다. 이번까지하면 열 번째 직업, 이재용이란 이름을 새겨넣은 보험 외판원에서 부터, 자동차 영업 등등 아이 둘의 아버지가 되어서도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한 채 여전히 또 새로운 길에 선 그는 이 일이 마지막 선택이기를 바래본다.  스물 다섯이라고 다를까. 16살부터 온갖 안해본 일이 없이 돈을 모으던 이재용은 스물 중반 '돈'이 아닌 자신이 하고픈 걸 하기 위해 공연 예술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치원 아이들을 상대로 한 계약직, 꿈은 그의 통장을, 그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 결국 한 달 뒤, 그와 그의 동료는 대구의 근거지를 떠난 안성에서 일당이 아까워 고향가는 돈도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그 '이재용'이 아닌 '이재용'들에겐 삶의 고비고비마다 '돈'이 발목을 잡는다. 역사학도가 되고 싶지만, 가족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다. 좋아하는 연극을 하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하루 종일 음식점 주방과 홀을 왔다갔다 하는 알바에, 밤 공연이 끝난 뒤 홀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건축 설계사 시험 준비다. 음악적 재능이 있던 이재용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음대에 갔지만, 학과 친구들이 음악적 재능을 펼칠 준비를 하는 동안 일찌감치 선생님의 길을 걸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의 길지 않은 생애동안 자신의 재산 축적으로 전력질주하며 전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과 달리, 음악 선생님 이재용은 인기쟁이다. 그가 만든 합창반에는 '특권'이 없다. 심지어 노래 실력 보다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다. 파트도 자기 선택이다. 그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음대에 진학했듯이, 선생님이 된 이재용은 그 시절 선생님처럼 가정 형편때문에 꿈을 접으려는 아이들의 꿈 도우미를 자청한다. 
다큐는 이재용 부회장과 평범한 이재용의 삶을 교차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60억을 받아 대번에 재계 순위에 오르는 동안, 평범한 이재용들은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없는 형편'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저 교차하여 보여줬을 뿐인데, 다시금 이재용 부회장이 우리 사회에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똑같은 이름의 대한민국 국민인데, 누군가는 평범한 이재용이 말하듯, '금수저'라는 이유만으로, 죄를 짓고도 감옥 밖을 유유자적하게 나오는 이 대한민국은 같은 이름이라 해서 같은 국민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이재용이 '삼성'이라는 왕국에서 자신의 부를 축적해 가는 동안, 이제 60이된 한때 삼성 중공업의 노동자였던 이재용은 여전히 직장으로 돌아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삼성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무노조'의 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말하는 '그가 받은 혜택을 사회와 나누는' 그 말에 '노조'의 자리는 없다. 

노조만이 아니다. 삼성반도체 직업병으로 뇌종양을 앓아 시력, 언어능력, 운동 능력을 잃은 채 여전히 휠체어를 타고 시위에 참가하는 전직 노동자도 있다. 삼성이니까 당연히 산재를 인정해 줄꺼라는 희망은 무참히 짓밟혔다. 동료들은 세상을 떠났다. 재판을 이어가는 한혜경씨에게 삼성은 10억을 주며 회유했다. 그러나 한혜경씨는 말한다. 차마 죽어간 사람들이 떠올라 그 돈을 받을 수 없다고. 강남역 8번 출구 앞 초라한 비닐 천막, 그곳엔 한혜경씨처럼 삼성에서 직업병을 얻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제 3월 그들이 거리로 나선지 900일이 됐다. 


평범한 이재용들과 60억으로 외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삼성의 왕좌를 차지한 이재용, 그 비유를 통해 다큐는 묻는다. 여전히 유전무죄의 대한민국, 과연 이재용은 죄가 없는 것이냐고. 그리고 그가 전 정권, 그 배후, 그리고 심지어 그 딸을 위해 퍼부은 돈들과, 산재조차 인정되지 않은 재판때문에 거기로 선 노동자들을 대비하며, 이재용, 그리고 삼성의 길을 묻는다. 물론 이재용에 촛점을 맞춘 다큐에서 '삼성'이라는 구조에 대한 조명은 아쉽다. 하지만, 이재용으로 상징되는 삼성과 평범한 사람들의 대비는 그 어느 때보다 극명했다. 그렇게 비로소 <mbc스페셜>이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by meditator 2018. 4. 10. 15:43

군주의 시대 군주에 대한 거짓말은 '역모'로 취급되어 '대역죄'로 다스려졌다고 역사학자 전우용은 증언한다. 그렇다면 나라의 주인이 군주에서 국민으로 바뀐 민주주의 사회, 국민에 대한 '거짓'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기군망상죄', 즉 대역죄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의 현대사 70년, 안타깝게도 그 역사는 권력이 국민들을 기만한 역사였다. 우리의 권력들은 끊임없이 '거짓'을 일삼으며 자신들의 권력을 지탱해 왔다.

그런데 왜 지금 '거짓'에 주목해야 하는 걸까? 4월 1일 <sbs스페셜- 권력과 거짓말(부제; 피노키오의 나라)>는 새로운 권력의 시대, 그럼에도 여전히 쉬이 '처단'되기 힘든 권력의 거짓말을 짚고 넘어감으로써 현재 진행중인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안갯속에 가려져 있던 세월호의 진실, 그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구명 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던데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며 뒤늦게 나타나 늘어놓았던 그 '거짓말'의 진실말이다. '저는 정상적으로 보고 받고 체크하고 있었다'던 그 4년 전의 거짓말, 국민들은 묻고 또 물었었다. 수백 명의 국민들이 사지에 내몰린 그 시각,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하지만 대통령은 손바닥으로 하늘를 가리듯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었다. 대통령뿐이랴, 그의 조력자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거짓말의 퍼레이드를 벌었다. 그리고 그 날의 진실은 4년이 지난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한다. '침실에 있었다고......'

진실의 기회, 그러나 거짓의 향연이 된 국회 청문회
왜 4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진실의 장막을 겨우 벗겨내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다큐는 말한다. 기회는 있었다고. 바로 국회 청문회다. 국회 청문회는 국민의 앞에 진실을 말해야 하는 기회이다. 국회에 선 증인은 선서한다. '양심에 따라 숨김이나 보탬이 없이 진실만을 말할 것을. 그리고 이것을 어겼을 때는 위증의 죄를 지겠다'고. 그러나 심지어 원세훈 전 국정원장처럼 이 '선서'부터 거부하는 증인이 등장한다.

국민 앞에 선 당시 사건의 관계자들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모릅니다', 기억이 없습니다'를 되풀이 했다. 김장수 장관도, 김기춘 비서실장도, 우병우 민정수석도, 조윤선 장관도, 조여옥 대위도, 이영선 비서도, 이임순 교수도. 누구라 가릴 것 없이. 국민을 바보 등신으로 아느냐 국회의원들이 일갈하고 분노해도,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가 거꾸로 솟아도.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우병우는 46일이나 잠적했다, 국민들이 현상금을 걸자, 마지못해 참석했다. 그러고는 '별 신경을 안썼단다'며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국민 앞에 선 그들, 하지만 그들은 60일간의 진실 게임 동안, 오로지 자신의 안전과 형량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들의 거짓말은 '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심에서 위증에 대해 유죄를 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우병우 전 민정 수석은 위증죄가 공소 자체가 기각되었다.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 역시 우병우와 마찬가지다. 이영선 비서 역시 집행 유예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지만, 정작 그들이 한 거짓의 대가는 치뤄지지 않았다.

국회 증감법은 '선서한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이나 감정에 대해 위증을 한 때에는 1년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을 명기하고 있다. 그런데 왜 저들은 '법' 앞에서 거짓의 대가를 치루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피해갔을까?

'사실에 반하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는 기억이 없다'는 식의 모르쇠 전략, 애초에 상황을 애매하게 증언하거나, 무능함을 자인하는 진술 방식은, 그 자체로 그들의 '위증죄'를 어렵게 한다고 법 관련 전문가들은 안타까워 한다. 우병우 민정 수석이 청와대의 검찰 수사 압력에 대해 증거를 들이대자 마지 못해 인정을 하면서도 의례적이란 관례를 통해 피해가는 식이다.

거기에 국회 청문회 자체가 한시적 특위라는 태생적 존재론의 한계가 발목을 잡는다. 우병우의 경우, 그가 협박을 한 사실이 윤대진 광주 지검 검사의 진술로 밝혀졌지만 이미 그때는 청문회가 끝난 이후였다. 청문회에서의 위증에 대한 고발은 재적 위원 1/3 이상 연서를 해야 가능한데, 이미 끝난 국회 청문회는 '위증죄 고발'의 효력이 없어진다. 즉 한시적 기구로서의 청문회는 시간이 지나버리면 고발 주체가 될 수 없다.

결국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높은 형략을 내세운 국회 청문회 위증죄, 그러나 현실은 '엄포'만 논 것이 되어 버린다. 출석에서 부터, 선서, 증명할 수 있는 죄명, 그리고 시한까지, 국회 청문회를 통한 위증죄의 처벌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거짓의 역사, 70년- 우리가 용서한 거짓말 
그런데 우리 국민에게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우리의 지난 70년 정치사는 곧 국민을 대표하는 리더들의 '거짓의 역사'였다 . 한강 다리가 끊기지 않았다며 북진을 하고 있다던 이승만 대통령은 피난민을 눈 앞에 두고 다리를 끊어버리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내빼버렸다. 그리곤 자신의 거짓을 덮기 위해, 다리가 끊겨 도망치지 못한 피난민들을 '부역자'로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다. 박정희의 거짓말은 그의 정권 연장의 슬로건이 되었다. 민정 이양을 하겠다더니, 총선을 하겠다더니, 더는 집권을 하지 않겠다더니, 다시는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더니, 총탄에 목숨을 잃을 때까지 그는 거짓말을 되풀이 했다. 광주학살의 주모자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나 노태우라고 다를까.




그리고 이들의 거짓말은 안타깝게도 이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도록 허용한, 우리가 용서한 거짓말이 되었다. 즉 지난 70년, 우리의 현대사는 바로 우리가 용서한 정치인들의 거짓말의 역사였다. 바로 이 지점을 다큐는 짚는다. 왜, 우리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관대한 거일까?

전 정치인 전여옥 씨는 그 '용서'의 관습을 우리의 고속 성장에서 찾는다. 즉 과정과 수단이 잘못되어도, 목표를 달성하면 용서가 되었던 고속 성장의 시대, 정치인들의 거짓말 쯤이야 눈 질끈 감고 용서해 주었던 국민들의 전반적 정서가 오늘날 두 대통령의 감독 행을 결과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인간 개인으론 하루에 10번, 많게는 200회 까지 거짓말을 한다. 이렇게 보면 거짓말은 '인간의 속성'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다큐는 주장한다. 그저 인간의 거짓말과 정치인의 거짓말은 다르다고.





거짓을 용서하는 관행에서 부터 
미국의 경우, 클린턴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은 이유는 그의 성스캔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회 에서 위증을 한, 그 거짓말이 그를 대통령직의 위기로 몰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국회, 즉 국민 앞에서의 거짓말을 국가 전복, 반란에 준거한 죄로 여긴다. 반면 일반인들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관용적이다. 그러나, 부패 범죄, 직권 남용과 관련한 거짓말에 대해서는 '관용' 대시 '기소'로 다스린다. 특히 '살림의 여왕'이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마사 스튜어트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조사 과정에서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면 기존 형량에 4년을 더하는 등 단호한 처벌이 행해진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다. 모르쇠로 일관했던 이영선 비서관에 대해 1심에서 위증을 인정했던 법원은 2심에서 집행 유예를 선고했다. 그의 거짓말을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충성심'으로, 즉 '상사의 지시에 의한 불가피한 이유'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법조인 생활을 오래했기'에, '국가 성장에 이바지했기에' 라는 식으로 그들의 거짓말에 '면죄부'를 준다. 이에 '노회찬 의원'은 반발한다. '오랫동안 노동을 해왔기에 법적으로 처벌을 완화해 준 적이 있냐? '고

다큐는 우리 현대사 비극의 시작을 '그들의 거짓말'로 부터라 본다. 부정 부패가 반복된 역사, 그 베이스가 되는 건 바로 권력자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의 거짓말'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곧,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그러해 왔던 시스템과 문화에 대한 질문이 된다. 과연 우리는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사회와 격리시켰던 적이 있는가? 심지어 유죄를 받아도 정치적 탄압이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장하는 사회, 거짓말과 한 배를 탄 권력, 처벌받지 않는 권력, 이제 우리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면, 바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권력을 유지해 갈 수 있는 관행에 대한 분명한 '징죄'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 방향을 제시한다. 어쩌면 당연한, 하지만 누구나 그러려니 했던 그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 바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그 '기초'와 시스템에 대한 제언이다.

by meditator 2018. 4. 2. 15:49

올해로 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이 되었다. 다행히도 새 정부 들어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조명이 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건 물론, 그 어느 때보다도 전국민적 관심을 받는 희생자 추념식이 될 예정이어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신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70주년이 될 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활발하게 조명을 받는 제주 4.3 사건, 그러나 이 비극의 역사는 오래도록 우리의 역사 속 행간에 드러나지지 못한 채 숨죽여 왔었다. 그저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상흔도 마음대로 드러내지 못한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들의 아픔에 대해 우리의 역사는 외면해 왔었다. 방송이라고 다를까. <알쓸신잡>을 통한 유시민 작가의 회고, 그리고 최근 70주년 기념식 사회를 맡은 이효리가 자신의 예능 <효리네 민박>에서 언급을 통해 새삼스레 '조명'받고 있지만, 재야 언론을 제외하고 예능은 물론, 다큐에서 조차 제주 4.3은 접해보기 힘든 '희귀한' 이야기였다. 

1978년 아직은 서슬이 퍼랬던 유신 시대 현기영 작가는 자신의 작품 <순이 삼촌>을 통해 4.3 사건의 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문화 영역에서의 4.3에 대한 말문을 텄다. 89년대에 들어서서 <제주 민중 항쟁>, <잠들지 않은 남도> 등의 출판 연구 분야에서의 4.3에 대한 조명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제주의 지역 신문인 '제주 일보'가 4.3에 대한 증언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사 정권이 종식된 1990년대 들어 유족 들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진상 규명에 대한 움짐임이 시작되었다. 1993년 '제주 4.3 특별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999년 제주 4.3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4.3 특별법 제정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해 12월 2일 국회의원 102인의 발의로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제출되었다. 



바로 이렇게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우리 사회에서 4.3이 행간 속에서 역사로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1999년 9월 12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첫 회로 제주 4.3 사건을 다루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된 100부작 다큐멘터리였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독재 정권 시기까지 역사의 행간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사건을 '복기'해낸 프로그램으로 실미도 사건 등을 다루며 일요일 밤 11시 30분이라는 불리한 시간대임에도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렇게 '금기의 시대'를 다룬 프로그램이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그 첫 방송으로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는 건 그만큼 이 사건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4.3 사건을 다룬 첫 번째 기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선구자'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방송을 통해 4.3을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비극의 역사 속 숨겨진 진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 봉기가 시작되었다. '탄압 중지, 단독 선거, 단독 정부 반대, 통일 정부 수립'을 내세운 이들은 12개 경찰 지서와 우익 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15명이 사살되었다.'

이것이 1999년까지 세간에 알려진 4.3사건이었다. 다큐는 바로 이 사실에 대한 검증부터 들어가기 시작한다. 4.3 사건이 일어나기 전 친일 경찰이었던 조병옥의 비호를 받은 서북 청년단의 무차별적 테러가 이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라 짚는다.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의 발포 사건으로 민간인 6명이 사망하고 이는 제주도민의 민심을 악화시켰고, 이는 총팡업에서 95%가 넘는 참여율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미군정은 도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를 외지인으로 교체하고, 서북 청년단을 파견하여 무차별적 테러, 구금, 고문으로 이어진 체포 작전이 벌어졌다. 


이렇게 '경찰이 사람 때려죽이는 게 보통'이었던 당시의 상황은 도민의 감정을 격화시켰고 이를 절대 지지 세력으로 믿은 체포 작전으로 위기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은 무장 봉기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고 결론내린다. 또한  당시 미군정이 주장하듯 이 '무장 봉기'가 남로당 중앙당의 계획적인 봉기였다는 사실에 다큐는 이의를 제기한다. 무엇보다 당시 미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잘 알고 있는 중앙당이 그런 무모한 지시를 내릴 리 없다는 것이다.
 
'사상' 보다는 매 맞지 않기 위해 가입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던 남로당 제주도당이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진압 작전에 대응한 불가피한 무장 봉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무장 봉기의 실상 조차도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의 실상이라는게 5~60명 정도의 작은 부대 단위, 당 자체는 커녕 계통의 조직체가 없었을 것으로 간주되는, 그들 대부분이 죽창이 주요 무기였으며, 소총은 겨우 한 두 자루가 있을 정도, 공격을 해서 겨우 한 사람 정도를 사살할 정도의 전투 능력을 가진 이들의 무장 봉기란 실상 그리 '가공할만한' 정도가 아니었다고 다큐는 밝힌다. 

다큐는 72시간 내 전투 중지, 점차적 무장 해지, 주모자들의 신변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의 4.28 평화 협상을 무력화시켜 버린 5.1 오라리 방화 사건을 주목한다. 무장 폭도에 의한 방화로 회담을 결렬시켰던 이 사건, 하지만 생존해 있는 오라리 주민들은 당시 폭도의 만행을 증언했던 주민들이 오라리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대동청년단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 힘을 실은 건 이미 불이 꺼져 가는 상황인데도 경찰이 와서 주민들을 쏴죽였다는 사실이다. 미 군정의 딘 소장이 제주를 극비로 방문한 이후, 귀순 작전을 펼치며 협상을 주도했던 김익렬 장군이 해임되고 초토화 작전이 본격화 된다. 

대리전의 리허설로써의 4.3
다큐가 줄기차게 질문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런 민족적 비극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이다. 그리고 다큐가 가리키고 있는 대상은 바로 미국. 후에 공개된 미군정 보고서는 당시 경찰이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을 미군정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즉, 미국은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것이다. 왜? 그건 바로 제주 도민의 70%가 좌익, 혹은 그 동조자라는 미국의 냉전주의적 시각에서 부터 비롯된다. 

5.10 선거를 앞둔 미 군정은 자신들이 주도한 단독 선거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남한 내 반공 정권에 대한 조바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 내에서 번지고 있는 반정부적 움직임에 미 군정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씨를 말려버리는 초토화 작전을 사전에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후의 미군정 문건은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군 정찰기가 제주도 상공을 수시로 정찰했으며, 함대가 제주도를 봉쇄하고 있었으며, 통신 부대의 촬영은 지극히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편집'시켰다고 다큐는 밝힌다. 

특히 5.10 총선 과정에서 전국의 200여개 선거구에서 선거가 치뤄졌는데, 제주도에서는 소요 사태로 인해 3대의 선거구 중 2개가 투표 미달로 대표적인 단독 선거 거부 지역이 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토벌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주민들을 해안선 5km 밖으로 소개하고 제주도를 횡단하여 병력을 배치한 후, 한라산을 기점으로 해안까지 빗질하든 소탕해 가는 과정에서, 농사일 등으로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즉결 처형되었고, 이미 산으로 피신한 청년들 대신, 가족을 죽이는 '대살'이 횡행했던 토벌, 사망 군인에 대한 보복으로 소개된 주민들에 대한 집단 학살, 전쟁이 터진 후에는 예비 검속이란 명분으로 또 사살, 암매장, 제주 도민 중 3만 여명이 목숨을 잃는 '집단 학살극'이 벌어졌다고 다큐는 증언한다. 



미군정은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이후 자신들은 직접적 책임은 없다고 발뺌을 하지만 이후 밝혀진 보고서에서는 49년 6월 30일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한국군과 경찰이 미군의 통제 하에 있었다는 비밀 협약이 밝혀진다. 또한 보고서는 공산주의와의 냉전 과정에서 '한국군을 훈련시키는 목적이 미군을 대신해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대리전'의 한국 전쟁, 그리고 그 대리전의 '리허설'로써, 본보기로써 '좌익, 혹은 그 '동조자'에 대한 무차별 초토화 작전을 방조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다큐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이승만 정부는 이런 책임에서 피해갈 수 있을까? 일제 하 경찰들을 그대로 이어받는 한편, 서북 청년단을 경찰로 흡수시킨 이승만 정부는 단독 선거, 이후 단독 정부 수립으로 불안정했던 정권을 지켜내기 위해, '공산주의를 심하게 탄압하면 할 수록 미국의 지원을 받기 용이하다는' 정권 이해의 차원에서 이런 '민족적 비극'에 앞장 서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발각되지 않기 위해 동굴로 피신했지만,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되지 않은 참혹한 시련, 발각되지 않기 위해 우는 아기의 입을 막다 죽이고, 만삭의 산모가 배를 드러낸 채 총살 당하고, 두 아들은 사살, 나머지 세 아들은 실종, 그 과정에서 죽어간 3만 여명의 주민들.  제주 도민 전체의 한으로 남겨진 역사, 그 누구라도,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이든, 혹은 공산주의자라도 그렇게 인간이 정당한 법질서의 영역 밖에서 '집단적으로 무차별적으로 학살'되어서는 안된다는 참혹한 교훈을 1999년 제주 4.3 특별법이 첫 삽을 뜨던 그해, 첫 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서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by meditator 2018. 3. 29. 04:41

근 10년 동안 한 자리 수에 정체되어 있는 최저임금제가 2017년 16.4% 인상, 7530원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대선 기간에 최저 임금 10000 원을 외치던 정치인들은 이 새롭게 인상된 최저임금제를 놓고 딴지를 건다. 정치인들의 딴지 만이 아니다. 실제 최저 임금은 올랐는데, 오히려 현실은 핍박하다. 경비원들을 비롯하여 최저임금제의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한편에선, 그 '최저임금제'에 압박을 당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렇다고 7530원의 최저임금제가 먹고 살만한 금액인가 하면 여전히 최저임금에 기대어 사는 삶은 궁핍하다. 도대체 올라도 '문제'인 최저 임급제 무엇이 문제일까?




16.9%나 오른 최저임금, 살만 합니까?
최저 임금제에 대해 말을 건 건 중식이 밴드의 보컬 중식이이다. 중식이 밴드가 그의 직업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그는 스무 살 시절부터 온갖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스무 살 시절 pc방 아르바이트로 해서 벌은 돈이 2000 원이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하루 12시간이 넘게 일을 했다. 늘 아르바이트로 해서 번 돈은 커피 한 잔보다, 한 끼 밥 보다 쌌다. 지금은 다를까?

최저 임금제 가이드라인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2018년 기준 300여 만명이 넘는다. 주로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들, 청년과 노년층의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최저 임금제란 노사가 결정한 임금의 최저 수준을 말한다. 법적으로 정한 최저 임금을 사용주에게 강제함으로써 노동자의 저임금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다. 지난 1953년 근로 기준법이 만들어 지면서 헌법 32조 1항에 최저 임금제가 명시되었으나 당시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 1988년에서야 시행할 수 있게 된 제도이다. 이렇게 말 그대로 최저 임금제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어야 하는 제도이다. 최저 임금을 올리면 노동자의 생활이 안정되고, 노동자들의 향상된 삶이 소비로 연결되어 내수 경기 활성화와 경제적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최저 임금제도의 취지이다. 

바로 이 '원칙'에 지금에 '많이' 올랐다는 7530원의 최저 임금이 유효한 것일까? 현장에서 마주친 7530원의 가치는 여전히 '생활'하기엔 많이 아쉬운 금액이다. 5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승연씨,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이 140만원이다. 대한민국에서 140만원이란 돈은 스물 세살 그녀가 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금액이다. 꿈인 여행을 위해 저금을 하고 나면 하다못해 동창생의 모임조차 눈물을 흘리며 포기해야 하는 돈, 그녀에게 유일한 사치는 편의점 4개 만원하는 맥주이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드는 돈이 내가 버는 돈보다 여전히 많다고. 그 '많이 올랐다는 최저 임금'은 여전히 살아가기엔 택도 없는 돈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여의치 않다. 음악을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햄버거집에서 배달 알바를 하는 윤성환 씨, 최저 임금제가 오르면 삶이 그래도 좀 넉넉해 질까 했는데, 일하는 햄버거 사장님은 형편이 어렵다며 그의 배달 시간을 줄였다. 최저임금은 올랐는데 정작 그의 밥줄은 쪼그라 들었다. 

그래도 쪼그라 들면 다행이다. 공장을 다니며 세 아이를 키우던 순주씨는 하루 아침에 일하던 부서에서 쫓겨났다. 최저 임금이 인상되면 한 20여 만원 여윳돈이 생기리라 기대하며 마음이 부풀었던 그녀의 밥그릇은 하루 아침에 걷어 차였다. 아파트 경비원들을 비롯하여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법으로 보장된 최저 임금의 인상이 외려 그들에게는 '사형 선고'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르바이트 대신 밥집 사장님이 된 중식이 밴드의 중식이도 예상했었다. 최저 임금제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빈곤층으로 내몰것이라고. 그리고 그의 예측은 '을과 을의 전쟁'이 된 최저 임금제가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현실에서 '알바'나 '최저 임금제'의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건 바로 소상공인, 영세 기업들이다. 다. 16.9%의 인상분을 고스란히 부담해야하는 게 바로 이 계층의 경제력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을'이다. 편의점에서 만난 알바생은 오히려 자신의 편의점 점주를 불쌍하게 여길 정도이다. 주말도 없이 쉬지 않고 일해야 알바생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가지고 가는 점주, 프랜차이즈 가맹점 본사와 이익을 나누어야 하는 그들은 또 다른 '을'이다. 햄버거 배달을 하는 윤성환 씨의 배달 시간을 줄여야 하는 햄버거 집 사장님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들을 압박하는 건 조금이라도 이윤이 남는다 싶으면 바로 세를 올려버리는 집주인들. 건물 임대료, 카드 수수료, 본사 로열티까지 고스란히 떠앉고 있는 소상공인들, 그들에게 부담지워진 최저임금제는 또 다른 모순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외국의 사례로 본 '해법'들
결국 '을과 을의 전쟁'이 되어 버린 현실의 최저 임금제,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다큐의 시선은 외국으로 향한다. 오랜 전통의 소상공인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웃 일본, 그곳에서 만난 세입 점주들, 그들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장사가 잘 된다는 이유만으로 세를 함부로 올릴 수 없는 '법적 제도'가 또 다른 '을'인 소상공인을 보호함으로써, 우리가 닥친 이 '모순'의 해법, 그 실마리의 열쇠를 던진다. 

하지만 일본 역시 '최저 임금'만으로 해결되지 못한 '생활'의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 최저 임금제의 부담을 안게 되는 층은 젊은 층이나 노년층들. 특히나 평생 정규직으로 살다, 나이들어 더 이상 정규직의 일을 수행할 수 없어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전직하는 노년층에게 있어, '최저 임금제'는 '생활'의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게 이웃 일본의 고민이다. 

결국 최저의 가이드 라인만으로 '보장'될 수 없는 삶의 문제, 그 해법을 다큐는 '생활 임금제'에서 찾는다. 노사 간의 합의에 의존하여 임금제를 꾸려오던 독일은 지난 2015년에서야 1시간에 1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며 1만 1000원에 해당하는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뒤늦게서야 독일의 최저 임금제는 '제도'의 문제만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영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 즉, 최소한의 임금이 아니라, 살기에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러쉬' 매장,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원들은 이제 더 이상 '생활'을 꾸리기 위해 또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의 일만으로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성동구는 이미 지난 2017년 <생활임금 심의위원회의>를 통해 201년 생활임금을 시급 9011원, 월급 158만 4400원으로 결정한 바 있다. 이는 전년 대비 13.1% 인상된 금액으로 현재의 최저임금보다 시급 1531원 높은 금액이다. 즉,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 않고 하루 8시간 일해서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 바로 이 정도라는 것이다. 특히 <미래 일자리 주식회사>까지 만들어 가며 앞장선 이 제도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쉬운 노년층에게 단비와도 같은 혜택이 된다. 

이는 결국 현재의 '최저 임금'이 아직도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아직 '생활'하기엔 한참 부족한 금액이라는 반증이고, 누군가의 노력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현실 가능한 '임금제'라는 걸 반증한다. 또한 '성동구'라는 주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을'들간의 파이 싸움이 되어가는 '최저 임금제'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갈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 것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최저 임금제가 올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 최저 임금의 인상분의 고통이 '을들간의 전쟁'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에 경주해야 할 과제, 바로 그 지점을 mbc 스페셜은 분명하게 짚는다.  
by meditator 2018. 3. 16. 17:22

광장에 촛불이 사그라들고 sns에서 벌어진 설전 중 하나는, 과연 촛불의 주역이 누구인가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 논란의 주인공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홍역을 앓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른바 386 세대, 이제 희끗희끗해져가는 머리가 무색하게 그 겨울 차가운 바닥을 버티느라 좌골 신경통이 도졌던 이 세대는 당당하게 '촛불'의 주인임을 외치지만, 그들은 바라보는 '후배' 세대의 시선은 냉랭하다. 경제 호황기에 태어나 복받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후일담 정도로 치부될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억울한 건, 그 겨울 광장을 녹였던 여전한 열정에 대한 '공치사'만이 아니다. 전통적 가족 제도에서 자라나, '서구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핵가족의 중심으로 살아낸 장년기, 그들에겐 이제 100세를 살아내야 할 '독립'의 과제가 맞부닥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가는 '논 팔고 소팔아 어떻게든 자식 대학만 보내면 되던' 그 산업 부흥기의 부모 세대들이 왜 그토록 자식에게 연연했을까? 조선으로부터 내려온 유구한 유교적 문화 전통에 입각한 고고한 정신 때문에? 박민규 작가는 모 일간지에 게재한 이런 조선 시대로부터의 '공부에 대한 집착'을 '백년 동안의 지랄'이라 일갈한다. 일찌기 흥선 대원군이 철폐한 서원이 700여개, 하지만 그 철폐한 서원까지 포함하여 그 시절 조선에는 이른바 사립 교육 기관이 줄잡아 1700 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게 100년 전이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100년이 지나 oecd 기준 25세~30세 사이 대졸자 기준 최고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그 일관된 공부에 대한 편집증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입신양명', 한 집안에서 잘 난 놈 하나가 나오면 그 부모는 물론, 그 집안 전체가 다리 뻗고 산다는 것이 지난 100년간 우리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노년, 자녀로 부터 독립하라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젊은 사람들이라면 웬만하면 '대학'을 나오는 시절, 우리 젊은이들을 비롯한 한국 사회는 '고용 불안, 일자릭 부족, 취업 대란'을 겪고 있다. 남들 하는 거 다했는데, 그 결과는 대학문을 나서도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앞가림을 못하는 아이들은 고스란히 부모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mbc 다큐 스페셜 <부모 독립 프로젝트, 쓰고 죽을까? (이하 부모 독립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세대

데뷔 40년차인 가수 박일준씨(65)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지만, 노년을 바라보는 그에겐 깊은 고민이 있다. 다름아닌 마흔을 바라보며 일가를 이룬 나이에도 여전히 '아빠'에게 의탁하여 사는 그의 아들 박형우(38)씨 때문이다. 언제 독립하냐는 아빠의 우문에, 지금의 자기 벌이로는 자기 가족 살기 힘들다며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의탁할 것을 주장하는 아들의 현답에 박일준씨는 답답하다. 

바로 이 박일준씨의 딜레를 다큐는 본격적으로 다룬다. 이제 노년에 들어선 5,60대 세대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큰 건 주택 마련 자금과 자녀의 학자금이다. 그 중에서도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은 박일준 씨나, 그 뒤에 이어진 음악 동호회 회원들의 근심깊은 토로에서도 보여지듯이 학자금, 결혼 자금, 자식 주택 마련 자금으로 이어진 굵직굵직한 부담의 행렬이다. 문제는 과연 이렇게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집까지 마련해주고 자신의 노후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부모들의 경제력이 넉넉치 않다는데 있다. 이제 노년에 들어선 세대는 더 이상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세대이다. 스스로 자신의 '늙음'을 책임져야하는 건 물론, 아직 채 독립하지 못한 자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 이중의 딜레마,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 첫 번째 답을 다큐는 옥봉수 박임순 부부에게서 찾는다. 여느 가족들처럼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부에 올인했던 박임순 씨, 그러나 그런 엄마의 교육열은 가족간의 균열만을 낳았다고 한다. 더 이상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를 하지 않는 가족을 보며, '공부' 대신 '세계 일주'를 선택했다. 그리고 여행 과정에서 엄마 아빠보다 더 해결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보며 두 부부는 아이들을 놓아 주었다. 대학 대신 검정 고시를 치고 사업을 시작한 아이들, 겨우 사무실 집기만을 사주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대기업 사원 정도의 벌이는 스스로 할 정도가 되었고, 부부는 뒤늦은 신혼 생활에 빠져 있다. 

이렇게 다큐는 딜레마에 빠진 장년의 고민을 '독립'에서 찾는다. 독립하지 않는 자식들로 부터 부모가 '솔선수범'하여 자신들의 삶을 챙기고,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경환- 이경미의 '자녀 독립 프로젝트'가 그 모범 답안이다. 수능을 마친 딸에게 일년의 기한을 주고 '독립'을 준비시키는 부부, 대학 졸업 이후엔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는 선언, 하지만 잠시 혼란스러웠던 딸은 이내 기꺼이 부모의 선언에 동참한다. 다큐는 주장한다. 자녀로 부터 부양받을 수 없는 지금의 장년들이 노년의 삶을 스스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녀를 독립'시키는 게 전제 되어야 한다고. 




부모의 독립 로망의 전제가 되어야 할 사회 안전망
'부모 독립 프로젝트'를 위한 '자녀 독립 프로젝트'의 전제는 이상적이며,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인 과정은 사실, 한정적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초반, 자식 결혼 비용이며, 집 사줄 걱정을 하는 부모들, 과연 대한민국에 자식 집 사주고, 결혼 비용 대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다큐는 철저히 중산층 이상의 장년들을 대상으로 한정시킨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램 말미, 다큐는 부모 독립 프로젝트의 이상향을 '다시 신혼처럼 사는 부부'로 잡는다. 뒤늦었지만 철이 들어 아내 대신 집안 일을 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과 함께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아내. 여전히 이혼율이 높고, 심지어 중장년의 이혼율이 젊은 층의 이혼율을 앞선 국가에서, 다큐가 보여주는 장년 부부의 현실은 '환타지적'이기 까지 하다. 자식을 독립 시키면 부부는 '신혼'이 된다는 이 맹목적 가족 중심주의는 다큐가 가진 본래의 의도조차 무안하게 만든다. 

그렇게 '가족'을 중심으로 이상적으로 부모를 독립시키며 부부의 새로운 삶의 단계를 칭송하게 됨으로써, 애초 이 다큐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역할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캥거루 족', '탕기족', '키퍼스족', '부메랑 키즈' 등은 경제적으로 여유치 않아 다시 부모의 품으로 들어오는 자녀들을 일컫는 세계 각국의 용어들이다. 세계적인 불황에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녀들은 전세계적인 문제인 것이다, 과연 이게 부모의 독립으로 해결될 일일까? 다큐도 짚는다. 부모가 책임을 져주지 않아도 사회가 자녀의 사회적 독립을 책임져 줘야 한다고. 물론 우리 사회 부모들이 '오래도록 '헬리콥터 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현실이지만, 그 현실은 개인의 입신양명만이 유일한 동앗줄인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다큐는 좀 더 명확하게 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by meditator 2018. 2. 23. 17:09

2018년은 개띠해, 그 중에서도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한 육십간지 중 서른 다섯 번째 해인 무술 년이다. 육십간지 중 십이지, 열 두 띠로 대표되는 동물의 띠는 12년마다 돌아오고, 그 중 열 한 번째 띠인 '술년', 개띠 생은 올해 육십간지를 한번 돌아낸 61에, 49, 37이 되었다. 환갑에 40대 후반, 서른 중반,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두툼한 '허리' 세대라 해도 무방하다. ebs 다큐 프라임은 설을 기점으로 새로이 시작되는 무술년을 맞이하여 특집으로 각 세대 개띠 들이 살아온 시대와 삶을 들여다 보는 '개띠 열전'을 마련하였다. 




아니 벌써?  58년 개띠
시리즈의 시작을 연건 우리 사회 '베이비 붐' 세대를 상징하는 58년 개띠다. 전쟁의 상흔이 마무리되는 시점 58년, 일본의 전후에 '베이비 부머' 단카이 세대( 團塊世代)가 등장했듯이, 대한민국에는 '58년 개띠' 세대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다큐는 대한민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를 그들이 공유했던 '문화'를 통해 정의내리고자 한다. 한국 종전 후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맞물려 '90만'의 신생아, 그 주인공 베이비 부머 세대, 그들은 전쟁 후 어려운 형편을 넘기기 위해 해먹던 부모님의 '김치죽'을 향수로 기억하는 세대이며, 최초로 이른바 '뺑뺑이 세대'라 칭해지는 '무시험 진학 추첨' 세대이며, 이른바 '얄개'로 대표되는 청소년 문화를 상징하는 세대이자, 비틀즈, 퀸, 아바 등 다양한 음악적 경험과 함께 대학 입학과 함께 '대학 가요제'등 새로운 대학 문화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했다. 88 올림픽, 86아시안 게임으로 상징되는 풍요한 경제 성장 시대, 아파트 문화를 선도했던 세대의 주역이 된 58년 개띠, 하지만 '폭발적인 출산'의 결과물로 '경쟁'이라는 사회적 논리를 표면화시켜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가난한 시대, 콩나물 교실에서 복닦이며 경쟁을 했던, 하지만 여전히 교실의 '급훈'이 '서로 돕자였던 '공동체 정서'가 팽배했던 그 시대를 살아낸 주인공들은 '환갑'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생업'의 현장을 지킨다. 십 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나 이름조차 '오순이'가 된 광장 시장의 전 가게를 운영하는 최오순 씨는 공사 현장에서 다친 남편 대신 가장으로 혹한의 추운 날씨에도 광장 시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한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구 구두 골목의 김태수 씨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의 서리를 눈감아 주던 농촌에서 태어난 김씨에겐 '제화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발전하는 산업에 밀려난 제화 골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정도가 된 대구 제화업의 증인이 되었다. 여전히 재즈무용가로 현장을 지키는 전미례 씨라고 다르지 않다. 



그것만이 내 세상 70년 개띠 
1988년 대학 가요제에서 싱그럽게 등장했던 '담다디'의 이상은 씨가 벌써 데뷔 30주년이 되었다. 그녀처럼 70년에 태어났던 개띠 들도 이제 어언 마흔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58년 개띠가 '무시험 진학 추천제'의 시대였다면 70년대 고도 성장기의 초입에 태어난 개띠들은 '교복 자율화' 세대로 교복 대신 '브랜드'를 입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그들이 경험했던 '자율화'의 문화적 경험은 그들의 삶에도 관통한다. 

배달 라이더를 구하지 못해 점주 자신이 한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배달을 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의 한동욱 씨는 어느새 '꼰대'라 불리우는 나이가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동네를 누비던 소년의 마음이 된다. 임상일 씨라고 다를까.  언더 그라운드 가수와 콜 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단칸방에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어디서든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서슴치 않고 달려가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예술혼을 불태부는 그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달리자 82년 개띠
82년 개띠를 여는 음악은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크라잉 넛이 데뷔하던 해 고등학생이던 그들은 '인디 밴드'와 함께 '얼터너테이티브 롹'을 향유하며 '문화의 해방구'를 형성한 세대이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세대, 하지만 이들은 앞선 세대처럼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은 자신들 답지 않다며 '제대로 잘 사는' 모색의 세대라 불리길 원한다. 

그런 82년 개띠를 대변하는 첫 번 째 키워드는 바로 '워라벨work and balance', 서핑이 좋아 서핑을 파다 서프 보드 제작 수리직인 쉐이퍼가 된 이상문 씨는 '사람들이 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세상이 얼마나 멋질까?'라며 반문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창한 꿈'을 쫓는 대신 '현재'를 잘 살아내는 '욜로'족이 되기로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8년을 보냈던 방준재 씨는 그 일로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과감하게 그 일을 그만두고, 대신 여행을 다니며 자신이 하고 싶던 바리스타 일을 하며 '지금 가진 것만으로 오늘을 풍성하게 만드는'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매진한다. 이들 세대에겐 가성비보단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을 사로잡는)가 우선하는 것이다. 



2017년 우리 사회를 달궜던 '82년 김지영'의 주인공인 세대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제빵 자영업 황연씨나,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문구를 디자인해낸 김효미 광고사 대표는 그럼에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삶'이 고되더라도 도전해 볼 만한 인생이라 입을 모은다. 

사람을 통해 시대를 돌아본,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그려낸 설 특집 '개띠 열전'은 베이비 붐 세대, 자율화 시대, 그리고 n포 세대라 규정되는 세대 그 이상, 그럼에도 자신의 꿈과 열정을 놓지 않고 살아왔던 사람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by meditator 2018. 2. 16. 01:55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 '사회적'이란 말이 어느덧 '인간'의 족쇄가 되는 시대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문명인 '인터넷'과 'sns'는 어느 덧 '인간'을 잠식하기에 이른다. 퇴근을 해서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전송되는 메일, 잠시라도 다른 곳에 정신을 둘라치면 몇 개, 몇 십 개, 심지어 몇 백개가 쏟아져 오는 카톡, 범람하는 페북의 언어들, 그리고 일거수 일투족 아니 그 사람 자체가 증명 사진이 되어 나열되는 '인스타', 이 많은 매체들 사이에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맺은 관계들 속에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sbs스페셜>이 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고독'이다. 





3박4일 절대 고독의 시간
'고독'의 문을 연 건 4명의 젊은이다. 임현욱(19), 박형순(22), 윤어진(21), 박소현(27) 네 사람은 3박4일의 일정으로 자신을 1.7평 방에 가둔다. 하지만 '가두는 게' 쉽지가 않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끝까지 사수하다, 그 마저 못하게 되자,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상대로 셀카 연습을 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은 영락없는 21세기형 인간이다. 

하지만 결국 핸드폰을 빼앗기고, '생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고, 혹은 '생각'을 하면 우울해 질까봐 싫어하던 이들이 '포기' 버튼의 유혹을 이겨내며 하루의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마치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들에게 던져진 화두처럼 그들에게 던져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 각자 지금 자신이 빠져있는 그 '무엇'을 털어내야 하는 관문이 있다. 

이제 막 수능 시험을 마친 현욱에게 '자아 성찰'이란 쓸데없는 것이다. 공부 못하면 노답인 세상에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건 쓸데없는 것이며, 그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4 명은 공통적이다. 현욱이 수능을 핑계로 생각을 미뤄두었다면, 소현씨는 주중에 자신이 하는 쇼핑몰 일이 끝나는 주말까지 커피 전문점 알바를 하며 홀로 생각에 빠질 시간을 피한다. 집에 와서도 늘 인터넷 동영상을 틀어놓고, 사람들의 '말소리'에 빠져있는 그녀, 그런가 하면 윤어진씨가 빠져있는 건 '셀카', 하루 종일 수백에서 천 장이 넘는 셀카를 찍고, 그것을 보정하여 인스타에 올리고 그 반응을 지켜보느라 바쁜 그녀에게 생각할 여유는 당연히 없다. 박형순씨는 잠이 부족할 정도로 '관계'와 '관계'의 사슬에 자신을 얽어매어 놓는다. 

이렇게 그 '무언가'에 빠져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는 네 사람은 본의 아니게 1.7 평의 '독방'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빠져있는 것, 그것들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니, 그곳에 자신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가,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네 사람, 그들이 마주한 자신의 역사에는 고등학교 시절 80kg이 넘는 몸무게로 상처받았던 소녀가 있고, 홀로 사는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또한 부모님이 정해주신 세상의 길을 따라, 반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것을 꿀꺽 삼켜버린 소년이, 게임만 하며 세상과 담을 쌓았던 청년이 있다. '셀카'에, 대학에, 관계에, 그리고 쉴틈없는 일상에 매몰되어 놓치고 있었던 자신을 그 누구의 권유도 아닌, '고독'을 통해 마주한 네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 누구인지 마주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20박21일
네 사람의 강제 독방 3박4일이 다큐 제작진에 의한 모의 고독 실험이었다면, 20박21일의 강제 고독을 선물로 주는 회사도 있다. 건설 설계 소프트 웨어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국내의 한 IT업체, 그곳에 면접을 보러 간 응시생은 뜻밖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워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는 건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직원 한 명당 1년치 식비가 무려 1000만원인 직원들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이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20일간의 '자기에로의 여행'을 선물한다. 

온전히 업무를 손에서 놓고 제주로 온 여행, 한라산을 등반하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매일 매일 쪽지로 전해지는 이 회사의 사관인 '나, 세상, 삶, 일'에 대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리본 더 라이프'라 칭해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주가 원하는 건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거, 매일매일의 화두에서 답을 얻은 사람도, 혹은 답을 얻어내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안에 숨겨져왔던 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고, '용기를 내서 내 삶의 질문을 대면'하는 시간이 된다. 

네 사람의 3박4일 실험적 고독, 그리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리본 더 라이프' 자기 성찰 프로그램을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고독'은 박소현씨의 말처럼 혼자 생각에 빠지다 보면 우울해지는 건, 스스로 자기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들이 범람하는 시대, 그 넘치는 '관계맺음'이 '나'를 소외시켰다 주장한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고독의 시간'! 그저 3박4일 혼자 있었을 뿐인데,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짚어보고 진단하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대면하는 사람들,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생각할 시간'을 선물하는 회사, '인간은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자기 수련의 터널을 지나 다큐가 도달한 건, '오롯이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 '오롯한 나'에는 그 누구의 가르침이나 지침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자기 회복력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있다. 
by meditator 2018. 1. 29. 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