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우리의 현대사를 규정한 건 '전쟁'이었다. 같은 민족이 서로 적이 되어 죽이고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우리 현대사의 생존 방식에 진한 자국을 남겼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는 어떨까? 전국민이 금을 모아 2001년 예정보다 3년을 앞당겨 조기 졸업했다는 IMF, 그 '경제적 사건'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을 삶의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EBS가 특집으로 마련한 <인터뷰 대한민국>, 그 포문을 연 건 바로 1998년 IMF 생이다. (1월 20일 방영)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아빠 
오늘의 뉴스 대낮부턴 오락실엔 
이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 최준영 작사,곡, 한스밴드, 오락실 중

굳이 사전적 의미를 덧붙이지 않아도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단어,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 그 두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IMF 이후이다. 97년 1월부터 대기업 부도 사태로 시작된 외환 위기, 97년 11월 IMF에 지원을 요청한 우리 정부는 IMF의 정책에 따라 부실 기업 퇴출 및 은행 구조 조정 전면화를 시작하였다. 덕분에 국제 통화기금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고 예정보다 빨리 IMF 체제를 조기 졸업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1997년에서 98년까지 문 닫은 기업만 4만개, 1999년 8월 기준 실업자 136만 4000 명, 6.25의 상흔을 고스란히 겪어낸 선인들 못지않은 생존의 고통을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겪었다. 아니 겪고 있다. 

외환 위기 당시 IMF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일방적인 룰을 적용하고, 초긴축 정책을 취해 국민들이 필요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 2010, 7, 스트로스 칸 당시 IMF 총재 

I'm Fired 나는 해고되었다
대전에 사는 63세의 정진철 씨 그가 페인트 일을 한 지도 어언 11년이 되었다. IMF 당시만 해도 충청도에서 가장 잘 나갔던 은행 충청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그는 1998년 6월 1차 은행 퇴출 결과로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IMF 기간 중 유독 퇴출과 합병 등으로 '정리 해고'가 심했던 은행 구조 조정의 희생 당사자였다. 무너진 평생 직장의 꿈, 누군가는 이혼하고, 누군가는 자살하고, 20년이 지난 그 시절을 사람들은 애써 덮으려 한다. 살아남은 정진철 씨에게 닥친 IMF는 그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장남 하나만 잘 되면 한 집안이 일어난다던 시절, 쫓겨난 장남에 충격받으신 어머님은 결국 쓰러지셨다. 사업도 해보고, 놀기도 하다, 겨우 지인의 소개로 페인트점에서 일한 지 십 여년 여전히 그의 품안엔 예전 신분증이 남아있다. 



98년 IMF 생들의 현재는?
그렇게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를 겪으며 거리로 몰린 아버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자란 98년 생들, 2002년 올림픽 때는 5살, 2009년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신종 플루로 학교를 못가기도 했고, 2014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세월호를 겪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이 청년들의 현실은, 바로 역사 저편의 단어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는 IMF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늘엔 별이 참 많이 있구요, 난 그 별에서 제일 가깝게 살고요, 
햇살이 좋아 빨래도 잘 말라요, 그곳에서 난 꿈꾸네 
                                               - 장미 여관, 옥탑방 중


포항에서 상경해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채현진은 옥탑방에 산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방음 제로의 자취방, 야경이 이쁘고, 다리가 튼튼해 진다는 500에 35, 그곳에 살기 위해 방학에도 귀향을 하지 않고, 무서운 밤길을 견디며 알바를 한다. 

'어디나 불편함은 있는 거잖아요. 서울에 방 한 칸 있다는 사실로도 만족해요,'

기숙사 신청은 어렵고, 기숙사 신축을 놓고 주민과 갈등하는 현실, 500, 1000, 3000, 보증금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질,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누군가는 학교 주변을 몇 십 바퀴 돌아 500만원짜리를 겨우 얻는가 하면, 누군가는 부모님 돈으로 쉽게 학교 앞의 안락한 공간을 얻는, 극과 극의 삶의 조건, 

'대학 하나 다니려면 돈을 탈탈 털어서 바쳐야죠, 주거, 학비, 진로 다 얽혀서 어렵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정현진 씨는 이제 대학 1학년이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피디가 되고 싶어 신방과에 진학했고,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문구 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 재주많은 청년, 하지만, 꿈꾸고 도전하는 삶대신 안정을 택했다. 그런 그녀의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검찰청 실무관으로 있는 그녀의 어머니, 함께 직장을 다녔지만, IMF로 은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명퇴를 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른 선택을 권했다. 

실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들의 56.6%가 선택한 이유, '안정된 일자리', 실제 어머니 이은희 씨가 다니는 직장에 신입 직원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연, 고대 출신도 빈번하다. 꿈꾸고 도전하는 삶 대신 선택한 안정이 행복하지 않으면?이란 질문에 정현진 씨는 '끊임없이 생계를 걱정하는 것보단 행복하지 않을까요?'라며 반문한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기 또 다른 98년 생이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한때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 내복값이라며 10만원을 봉투에 넣어 내밀던 청춘이 있다. 2017년 1월 전주 아중 저수지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홍수연 양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특성화고 3학년 LG 유플러스 콜센터 실습 중 이었던 홍 양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 100%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불업 위장 취업을 강요하는 마이스터고, 하지만 같이 들어갔던 홍수연 양의 열 몇 명 중 결국 남은 건 두 세 명, 현장 실습에 나갔던 학생 들 중 적응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건 혹독한 징계.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컨베어벨트에 끼어 팔이 부러지고 허리와 목을 다쳤던 아버지, IMF로 대량 해고가 게속 되던 시절, 결국 아버지는 이렇다할 직장을 얻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걱정해서 취직해서 돈 벌다가 공부하고 싶으면 하겠다며 버티던 홍양은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 

콜센터, 이른바 고객 대응 노동자의 93%가 겪는 언어 폭력, 서비스업에서 요구되는 더 중요한 능력은 미소와 친절보다 말도 안되는 요구나 기분 나쁜 말에 '무뎌지기', 무뎌지지 못한 홍양은 자신을 던졌다. 비록 어려웠지만 소중했던 딸의 죽음은 부모의 삶마저 파괴했다. 눈물로 지새우던 어머니는 2011년 뇌출혈로 사망했고, 세상이 싫어진 아버지는 연고 하나 없는 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홍양만이 아니다. 2017년 11월 현장 실습생이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이민호 군은 제품 적재기에 목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하반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 실습이 전면 폐지될 때까지 꽃다운 청춘들은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다큐는 보여준다. IMF 체제를 졸업한 우리나라가 지난 20년간 얼마나 빛나는 경제적 신장을 이뤄냈는가를, 하지만, 또 다른 화면에서 보여진 건, 그 성장의 잔혹한 그림자들이다. <인터뷰 대한민국> 1부, <1998년 IMF생>을 통해 다큐는 말한다. 2018년의 대한민국, 이제 막 청춘에 첫 발을 내딛은 98년 청춘을 통해 바라본 현실은 아직 끝나지 않은 IMF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낸,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젊은 세대에게 짐지운 또 다른 전쟁터이다. 


by meditator 2018. 1. 27. 17:28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낡은 시대가 물러갔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을 마중하기 위해 분주하다. 교육이라고 다를까. 입시 체제부터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그런데, 과연 교육에 필요한 것이 새로운 입시 체제일까?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그간 꾸준히 교육과 관련된 다큐를 제작해 왔던 ebs다큐 프라임의 생각은 좀 다른 듯하다. 새해 첫 다큐로 ebs가 준비한 것이 바로 <번아웃 키즈>이기 때문이다. 지난 3,4일 그리고 8,9일에 걸쳐 4부작으로 방영된 이 다큐는 어쩌면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건 새로운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괜찮다 등을 두드리고, 그리고 그들이 맘껏 푸르를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큐의 제목 <번아웃 키즈>, 그 수식어인 번아웃(burn-out)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낯설지 않은 심리학 용어다. 그레이엄 그린의 1960년 작 소설인 <번아웃 케이스>에서 유래된 이 말을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레이덴버거가 사용하며 등장했다. 타버리다, 소진되다라는 단어적 의미 그대로 '눈 앞의 목표를 향해 그것을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해 가는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어 무기력증이나, 자기 혐오,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증상이다. 서비스 직의 감정 노동자나, 위험하거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종, 교사, 의사 등 사회적으로 높은 도덕적 요구가 기대되는 직종,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은 직종에서 걸리기 쉬운 증후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회사의 도산이나 구조 조정, 가족의 죽음 등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개인적 사회적 환경 역시 이 증후군의 배경이 된다. (다음 백과 중)

그런데, 이런 직업적이고 사회적인 원인으로 한 사람을 소진시켜 버리는 증상이 2018년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특정 학령이 아니라, 다큐에서 보여지듯이 초등학생에서 부터, 고등학생. 심지어 이제 사회에 나가 그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될 대학생들조차 이 증후군에서 자유롭지 않다. 도대체 우리 교육, 나아가 우리 사회가 '교육'이란 미명 하에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달리는 돼지와 함께 잠시 아이로 돌아간 아이들-<교실에 온 돼지>
한 선생님이 교실에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선생님은 말한다. '잘 길러서 크면 잡아먹자.' 18년전 오사카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1년간 아이들과 선생님이 돼지를 키운 이 과정은 tv 다큐로 방영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p짱은 내 친구>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까지 했다. 바로 그 다큐와 영화의 상황이 안양 평촌의 한 초등학교에 벌어졌다. 

교실에 온 애완용이 아닌 흑돼지 한 마리, 선생님은 앞으로 100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돼지를 키우겠다고 한다. 도대체 왜 선생님은 당장 돼지 똥이며 냄새에 대한 민원이 빗발치는 이 돼지를 교실에서 키우자고 한 걸까? 그 답은 아이들에게서 찾아진다. 초등학교 5학년 공부를 못하는 게 불효라는 아이들, 교실 뒤편에 아이들이 쓴 글은 우리 사회 취준생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언어들로 도배되어 있다. '난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하면 된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난 괜찮아, 내가 한 말 중에 최고의 거짓말'이 있다. 벌써 대학 입시를 걱정하고, 미래에 볼모로 잡힌 아이들 그러나 정작 수업 시간 아이들의 눈은 비어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선생님이 도발한 결정은 그저 교실에 돼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온 것, 그런데 첫 날 부터 아이들이 달라졌다. 5학년이 되었다고 말수가 적어지던 아이들이 '아이 본연의 호기심, 수다스러움, 발랄함'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저 돼지 한 마리일 뿐인데? 그래서 이 2부작 다큐는 슬프다. 그저 초등학교 5학년, 이제 겨우 12살인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뺑뺑이 도느라, 벌써 입시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교실에 찾아온 돼지 한 마리로 12살 본연의 아이스러움을 되찾았다는 것이. 우리에서 꿀꿀거리기나 하고 더러운 줄 알았던 돼지가 운동장을 신나게 달리고, 알고보니 배변을 가리는 깔끔한, 그저 인간의 편의에 의해 더러워졌던 동물인 것처럼, 12살에 공부 기계가 된 아이들은 돼지와 함께 12살의 여름을 보내며 아이다운 밝음과 자신감, 책임감, 눈물을 찾았다. 이 세 달의 과정을 마친 아이들은 자아존중감 검사에서 6.26%의 상승세를 보였다. 고학년에 올라갈 수록 과도한 학습으로 자존감이 하락세를 보인다는 우리 교육, 겨우 돼지 한 마리가 혁혁한 성과를 보이는 이 교육 현장, 우리는 교육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인가?라고 다큐는 묻는다. 

고 3도 사람이다 - <우리 여기 있어요> 
그래도 12살이면 그래도 낫다 싶다. 1, 2부 <교실에 온 돼지>에 이어 방영된 3부 <우리 여기 있어요>를 보면. 7.8, 6.5, 12.6, 7.7, 15.5? 이 숫자들은 이제 중간 고사를 3일 앞둔 고3학생들의 가방 무게다. 평균 6.5kg. 1.5 리터 생수병 4개 반이 우리나라 고3학생들의 가방 무게이다. 그런데 가방 무게에 놀랄 것도 없다. 구리 여고 이한울 외 3명의 학생들이 만든 영상 속 고 3학생들이 보여주는, 교우, 진로, 미래, 대학, 공부, 성적 등등에 대한 또래 학생들의 이야기는, 그저 부모님 이야기만으로 눈물샘이 터지는 대학 진학이란 목표를 향해 버티는 가방보다 훨씬 무거운 삶이다. 

고3인 아이들은 무기력함에 지배당한다. 자신들에게 10대란 미래를 저당잡힌 그저 견뎌야 할 인고의 시간이라 입을 모은다. 자소서라 쓰고, 대학에 맞춰 자기를 각색하는 자소설을 쓰며, 19년의 세월의 축적이 아닌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자존감의 상실을 경험한다. 심지어, 경쟁만이 남은 교실에서 자신보다 못한 타인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자신들이 변태같다고 항변한다. 이제 곧 대학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펼쳐야 하는 아이들은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살다보니 딱히 자신이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자조적으로 말한다. 아니 지난 19년의 세월, 잘 하는 걸 찾을 기회가 없었다 토로한다. 이게 입시 교육의 정점에 선 고 3의 현주소라 다큐는 말한다. 

고 3이 아니라면 다를까, 여수 여중 2학년, 매일 매일의 공부를 기록한 블로그를 통해 드러난 아이들의 상황, 공부를 하다 몸이 망가지면, 이렇게 까지라도 해서 열심히 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 안심하는, '열심 증후군'에 빠진 위태로운 현실이다. 더 심각한 건, 이제 중 2밖에 안된 학생이 그런 어려움을 주변인들이 '넌 이것 밖에 안되는 얘야?'라 할까봐,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차마 들키고 싶지 않은 절대 고독, 다큐는 우리 청소년들의 '번아웃'을 그렇게 증명한다. 

준비되지 않은 채 교육 현장으로 간 선생님들 - <비긴 어게인> 
초등 교육에서 고등 교육으로 우리 교육이 자행하는 '번아웃의 현장'을 절절하게 그려나간 다큐는 4부에 이르러 뜬금없이 교대 학생들을 보여준다. 도대체 미래의 선생님들과 번아웃이 무슨 상관? 

갓 초등학교에 부임한 교사 조영우 선생님, 그러나 첫 날 부터 선생님은 교대를 다니면 전혀 배우지 않았던 현장의 상황에 부딪쳐 정신줄을 놓게 생겼다. 점심 시간이 되었지만 이미 지쳐버린 선생님은 음식을 넘기지 못할 정도다. 그저 신입이라서라는 핑계로는 막막해 보이는 선생님의 상황, 도대체 그의 지난 4년이 어땠길래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카메라의 시선을 옮겨 지켜본 교대 학생들의 생활은 빡빡하다. 선생님 혼자서 전과목을 책임져야 하는 초등 선생님의 특성때문에, 팔이 여럿 달린 힌두 여신이 그들을 상징하듯, 미래의 선생님들이 대학 동안 받는 수업은 빠듯하다. 이렇게 수업을 받는데 왜 현장에 가면 그렇게 당황하게 되는 걸까?

현재의 교대 수업은 초등 선생님의 기능적 교육 내용에 치우쳐 있다. 신군부에 의해 4년제가 된 교대, 그러나 4년제 사범대의 교육 과정을 벤치 마킹한 현재의 교대 교육 과정은 학생들에게는 현실과 너무 멀리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장에서 선생님이 맞닦뜨리게 되는 건, 20여명이 넘는 학생들만큼이나 다양한 상황, 그러나, 정작 아동 심리라던가 현실 교육 과정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은 교과 수업 전달에 밀려 겨우 명목상의 수업이 되고 만다. 미국의 경우 학기의 시작에서 부터 학년이 마칠 때까지 이루어지는 현장 실습은 겨우 한 달 정도의 형식적 과정으로 지나가버린다. 거기에 4학년만 되면 다시 '인강'을 들으며 교원 임용 교시 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에서, 정작 '교사'로서의 제대로 된 준비는 논외가 되고 만다. 

그렇게 준비할 틈도 없이 교과 과정만을 기계적으로 익히고, 거기에 다시 달달 외우는 학습으로 임용 고시를 통과한 선생님들이 교육 현장에 선다. 당연히 학생들과 만날 상황이 아니다. 교사는 묻는다. 입시 교육에만 시달리다 자신을 잃어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현실과 아랑곳없이 교과 과목만 배우고 현장에 선 선생님들. 과연 준비 없이 교육 현장에 투입된 선생님으로 인한 시행착오는 누구의 몫이 되는 것이냐고. 

동심을 잃은 채 입시 교육으로 내몰린 초등학생들, 그리고 그런 교육을 십 여년 받다 보니 자신을 잃다못해 무기력해져버린 고등학생들, 그리고 그저 교과 내용만 달달 외우는 임용 고시라는 통과 의례를 거쳐 교육 현장에 서게 되는 선생님들, 학생들은 '번아웃' 될 정도로 공부를 하지만, 정작 그 교육을 통해 그들은 '자신'을 잃는다. 과연, 현재 우리 교육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다큐는 묻는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라고. 


by meditator 2018. 1. 10. 19:09

지난 2016년 12월 31일 ebs 장학 퀴즈는 인공 지능 엑소 브레인과 상하반기 왕중왕 김현호, 이정민 학생과 수능 만점자 윤주일,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 오현민 씨와의 대결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결과는 인공 지능 엑소 브레인이 2위와 160점이나 차이나는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이 대결의 참가자였으며 서울대에 진학한 김현호 학생에게 이날의 경험은 허망하고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 김군은 말한다. 방송 전 예비로 시험을 볼때만 해도 엑소 브레인은 학생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전 준비 과정과 몇 시간의 녹화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스스로 진화하여,학생들을 압도했다. 


이런 경험을 했기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김현호씨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은 깊을 수 밖에 없다. 경영학과 학생들이 다수 선택했던 회계사란 직업은 20년 안에 없어질 직업의 1순위이다. 동기들과 경영 하나로는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며 프로그래밍 학원이라도 다녀야 할까라며 고민을 하는 김씨와 동기들. 



도래할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는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도대체 4차 산업 혁명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가 불투명하다는 고민과 함께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의 교육 과정이 요구하는 학과 중심의 공부를 제쳐둘 수 없기 때문에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스스로 소프르웨어를 개발해 내는 중2의 과학 영재 이준서군에게 부모들이 역사 성적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이다. 

4차 산업 혁명과 혼란에 빠진 학생과 학부모들
1월 7일 방영된 <sbs 스페셜 - 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은 바로 이런 변화하는 세상에서 혼란에 빠져 있는 교육과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시작은 도대체 4차 산업 혁명이 뭐길래? 로부터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정보 통신 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4차 산업 혁명은 인공 지능과 로봇기술, 생명 과학이 주도하는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것일까?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듯 일자리, 즉 먹고사니즘의 변화이다. 1,2차 산업 혁명으로 인간의 육체적 노동 부문을 기계가 대신해갔다. 그리고 3차 산업 혁명을 시작으로 이제 4차 산업 혁명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해 가기 시작한다. 

반도체 부품 업체의 인공 지능 로봇 소이어, 기존의 사람들 200명이 하던 일을 소이어의 도움으로 이제 3명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다. 알 지 못하는 분야의 일 조차도 하루 이틀 학습을 하면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학습 능력에, 점심 시간, 브레이크 타임은 물론 오버 타임까지도 가능한 24시간 풀 가동하는 소이어의 능력은 바로 미래 사회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로봇의 현주소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호텔에서는 안내, 청소, 요리 등 기존의 사람들 30여명이 할 일을 단 7명만이 필요한 로봇 호텔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인공 지능 로봇의 대두는 한국 사회에서는 '알파고의 충격'으로 집약된다. 인간의 지적 활동,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바둑', 그러나 프로 바둑 기사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40여년전 유망 직종이었던 전화 교환원이나 버스 안내양 등이 이제 사라지고, 문선공이란 직종은 그 이름조차 낯설어진 세상처럼, 이제 수십년 내에 우리 사회 직업들은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 관련 학자 들의 공통된 진단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민은 바로 이런 미래 사회의 예측 불가능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4차 산업 혁명, 새로운 가능성이 세상. 
대부분의 4차 산업 혁명 다큐들이 미래의 불가지론에 근거한 불안함과 혼돈을 강조한 반면, 1월 7일 SBS 다큐의 시선은 이와 좀 다른 지점을 포착한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이런 변화에 내던져진 인간의 현실을 기계와 인간의 달리기에 비유한다. 1,2, 3차 산업 혁명 역시 기존의 직업들을 사라지게 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들은 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로봇 공학자 오준호씨는 오늘날 사람들의 불안을 2차 산업 혁명으로 자동차가 보급되자, 인간과 자동차의 달리기를 예로 들며 좌절했던 그 시대의 얼토당토않은 경쟁을 예로 든다. 즉,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그 자동차로 인해 인간의 생활이 보다 편리해진 것이 압도적인 만큼, 소프트 웨어의 발전에 인간은 또한 적응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막연한 불안의 대상인 인공 지능, 다큐는, 그 불안의 실체에 과감하게 접근한다. 화제의 인공 지능 로봇 소피아, 로봇으로 최초 시민권을 획득하고 토크쇼에도 출연했던 이 오드리 햅번을 닮은 로봇을 인문학자 최진기씨가 만나, 정해진 메뉴얼없이 대화를 나눠본다. 그 결과는? 최진기씨는 소피아를 '동문서답의 마법사'라 여유롭게 정의내린다. 즉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네킹을 씌워놓은 인공지능 스피커같은 소피아는 프로그래밍된 용어가 들어있지 않은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다큐의 실험에 대해 MIT에서 세계 최초 4족 보행 로봇을 만들어 낸 로봇 학자 김상진 교수는 확신을 더해준다. 그 최초의 4족 보행 로봇, 하지만, 정작 이 로봇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계단, 문턱, 좁은 골목 등 인간에게는 사소하고도 자연스러운 장애물들이다.

즉, 소피아와 4족 보행 로봇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무시하고 있는 인간의 능력, 즉 적응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인간이 세상의 주인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프로그램된 내용의 학습을 통해 인공 지능은 바둑을 이길 수는 있지만, 수세미를 쓰다, 밥풀을 긁어내는 등 다양한 적응이 필요한 접시 닦이를 인공 지능들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교육은 바로 이런 인간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했다 해서, 우리 사회에 화제가 되었던 코딩 교육이 2018년부터 중학 과정에서 의무 과정이 되었다. 



코딩의 조기 교육? 무엇이 중한디? 
컴퓨터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사고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코딩, 중학 과정에서 의무가 된 코딩은 34시간을 이수해야만 한다. 34시간은 중학교 전체 과정에서 1%에 불과한 시간, 현장에서 가르치는 김현석 선생은 1주일에 한 시간 가르치는 방식의 코딩 교육은 결국 또 한 과목의 국영수가 될 뿐이라 비관한다. 그러나 현장의 비관과 다르게 유치원에서 부터 코딩 교육은 붐을 이루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 

이런 결국 또 하나의 선행 학습이 되어가고 있는 코딩 교육 붐에 대해, 다큐는 방향을 정정한다. 그 선례로 등장한 건 바로 유투브에서 화제가 된 아빠의 샌드위치 코딩 교육. 동영상의 아빠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아이와 학습한다. 아이가 써준 메뉴얼에 따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는 아빠, 그러나 아이의 어설픈 요리 메뉴얼은 식빵 모서리에 잼을 바르는 해프닝으로 번번히 실패한다. 



코딩의 코자도 꺼내지 않는 코딩 교육, 이것이야 말로, 바로 생활 속에서 실행하는 진짜배기 4차 산업 시대의 교육이라 데이스 홍 교수는 강조한다. 코딩의 관건은, 아니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교육의 관건은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체계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논리력, 그것이야말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이라고 다큐는 결론 내린다. 

우리 시대의 4차 산업 혁명은 화두이자, 동시에 딜레마다. 교육입국을 앞세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던 그 세대의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시대의 교육에 먼저 한 발을 끼워 넣으려 애쓰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초조함에는 인류로 봤을 때는 진화이지만, 개인으로 봤을 때는 각자도생이라는 진화와 발전의 냉엄한 현실 인식이 기조로 깔려있다.  비감했던 기존의 4차 산업 혁명 다큐와 달리 <sbs스페셜-I ROBOT - 내 아이가 살아갈 로봇 세상>는 인간을 낙관한다. 그러나 그 낙관은 잘 준비된 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초조함이 또 다른 국영수 과외 식의 닥달이어서는 안된다고 다큐는 단언한다. 가장 자연스러운 하지만 현실의 교육 제도가 가장 간과하고 있는 인간의 적응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만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을 키워낸다며 고삐를 죄는 부모들의 시선을 돌린다. 

by meditator 2018. 1. 8. 16:23

1980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첫 유세 장소로 선택한 곳은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알려진 미시시피주 네쇼파 카운티였다. 1964년 흑인 인권 운동가 세 명이 kkk단에 의해 살해된 이래 민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이곳에서 레이건은 복지연금을 받으며 캐딜락을 모는 시카고의 여성을 언급하며 복지 문제를 인종 갈등으로 국면 전환을 시켜 남부 지역에서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당시 대통령 후보 레이건의 연설을 통해 사람들은 당연히 복지 무임승차한 여성을 흑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백인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화려하고 유머러스하며 신뢰할 만한 언변에 진실에대한 눈을 가리고 말았다.


레이건 쇼 ⓒ ebs
뛰어난 배우 레이건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70이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재선에 성공한 역대 가장 나이가 많았던 대통령, 8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 대통령만큼이나 익숙했던 그는, 무능과 존경이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지만,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호감도가 높은 대통령이다. eidf 개막식의 자리를 빛내준 파쵸 벨레즈 감독은 바로 이 대통령 레이건의 시대를 <레이건 쇼>라는 제목의 영화로 작품상 경쟁 작품의 대열에 올랐다.

다큐는 레이건 시대가 저물어 가는 1988년 이제 곧 대통령 직을 마무리할 레이건과의 인터뷰에서 시작된다. 인터뷰어는 질문한다. 당신이 배우였던 것이 대통령 직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해 '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라고 답한다. 바로 이 레이건이 한 답이 파쵸 벨레즈 감독의 <레이건 쇼>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레이건 취임 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미국은 핵전쟁 위기가 높어져 갔고 그런 위기에 대통령 레이건은 불을 지폈다. 다큐가 주목하는 건 레이건의 정치 행위 방식이다. '한번도 정치가가 되본 적이 없다'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대통령 레이건의 행보는 그 이전의 역대 다섯 정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영상 자료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대통령이 된 첫 해에만 무려 7번의 국정 연설을 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은 tv 쇼의 세트장으로 삼았고, 다큐는 컷 소리와 함께 국민을 향애 유려한 언변을 펼치는 대통령 레이건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담는다.

그토록 수많은 영상을 통해 국민들을 매료시킨 대통령, 그 저변의 자질은 그가 '배우' 출신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스스로 배우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배역의 소화만이 아니라, 각본까지 해야 하는 대통령 직의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로, 좋은 대통령으로 보이는 연출의 과정에 전혀 스스럼이 없었던 대통령.
비록 '조연'으로 배우로서 헐리웃 역사 에서 그 존재감은 돋보이지 않았지만,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구, 호남형의 인상을 지닌 이 배우는 헐리웃 영화에서 매번 성격좋고, 이상적인 영웅상을 맡아왔었다. 그리고 그 '배우'로서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대통령의 이미지에 치환시켰다.

레이건 쇼 ⓒ ebs
미디어프렌들리한 정치, 
차기 대통령에 나올 후보들이 일찍이 방송을 타면서 이미지 쇄신을 노리는 시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이 그의 정치적 입장만큼이나 중요해진 시절에 레이건의 미디어 프렌들리는 새삼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1/3은 정책 구상을 하는 둥하다가, 2/3는 홍보와 행사에 치중했던 대통령 레이건은 2017년에는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바로 '정치'에 있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선례를 남긴 사람이 바로 레이건이라는 점에 다큐는 주목한다.

미디어프렌들리한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는 시절, 하지만 레이건은 그 질문의 시작이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대통령이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그에게는 그가 정말 행정부의 수반인가? 하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미디어를 통해 유머러스한 모습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고, 결단력 넘치는 영웅의 모습을 견지했던 그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참모 의존적이며, 심지어 실제 대통령이 영부인이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정도의 반문이 따라 다닌 인물이고, 그 의문에 그는 이란 인질 석방  종종 자신의 정책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실언'이나 '허언'으로 증명을 해냈다.

행정부의 수반답지 못한 무지보다 더 심각한 건, 그의 맹목적인 카우보이식의 안보관이었다. 1983년 역시나 tv를 통해 중계된 대통령의 연설에서 자유 진영 시민들이 맘놓고 살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를 앞세워 '스타워즈'란 그럴 듯한 허울좋은 명목 하에, 전략 방위 계획을 발주했던 것이다. 소련의 미사일이 닻기 전 격추할 수 있는 무기 체계라고 하지만, 언제나 방아쇠를 담길 수 있는 무력 행사에 레이건은 거침없었고, 그런 영웅적 행보에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레이건 쇼 ⓒ ebs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디어 프렌들리 대통령의 발목을 건 건, 그보다 더 미디어 프렌들리한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쵸프란 사실이다. 미소의 국제적인 긴장이 세계적 화두였던 시절, 54세의 레이건보다 더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고르바쵸프의 등장은 정책보다 이미지로 정치를 해온 레이건에겐 가장 큰 위기를 불러왔다. '도베랴이 노 프로베라이(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소련어 한 마디 외에 이렇다할 이미지적 각인을 불러오지 못한 미국은 전세계인이 그토록 원하는 핵무기 동결 나아가 폐기까지를 내세운 도발적인 고르바쵸프의 제안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정했던 레이건의 냉전적 이미지는 자중지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노령의 나이에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처음 4년간 히트작만 내다 줄곧 실패작만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는 여전히 기자들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유머의 너스레를 떨지만 그 약발은 잦아져갔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대중적 호감도와 별개로 능력있는 대통령의 순위에서 레이건을 찾아보긴 힘들다.  제 아무리 '이미지 메이킹'을 해도 결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가 한 일로 결정된다는 것을 다큐는 냉정하게 지켜본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을 행위 예술가로 평가하듯, tv에서 먼저 성공해야 대선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미디어 정치의 나쁜 선례로서 다큐는 그의 행보를 반면교사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by meditator 2017. 8. 23. 23:25

도시 농업'은 우리 사회에서도 더는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귀농' 만큼이나,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건 이 시대 삶의 대안적 담론으로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러기에 8월 21일 eidf의 첫 째날 ebs를 통해 방영된 <도시 농부 프로젝트>은 그저 또 하나의 실용적 해외 도시 농업 다큐인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본 <도시 농부 프로젝트>에서는  이 영화의 원제 wild plants가 그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한다 싶게, 식물의 철학, 아니 식물을 빌어 인간의 대안적 삶을 모색해보는 삶의 화두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의 부제는 transform변화이다. 우리 시대의 변화란 기존의 것을 부수고 거기에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쌓아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큐가 말하는 변화는 전혀 다르다. 



실용적인 농업 다큐에 대한 기대는 오프닝에서 부터 머쓱해진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황량한 겨울 들판에서 부터 시작된 서정적인 영상, 그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간다. 마치 '없음'을 상징하는 듯한 겨울을 이제 더는 사람이 머물지 않는 앙상한 폐건물이 대신하고, 그렇게 다큐는 디트로이트란 공간을 설명해 들어간다. 

폐건물더미에서 건져낸 삶과 죽음의 철학 
그리고 다음, 앤드류 캠퓨가 폐허가 된 집기들 사이에서 땅을 판다. 그러면서 '자기 마당의 쓰레기들에서 멋진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 같이 일을 하는 청소년 말릭에게 말을 건넨다. 그 쓰레기들에서 생애 주기를 느끼고 삶과 죽음을 끝이 아니라, 변화로 느껴보라고. 그 흙을 대하는 과정은 종교와도 같다고. 앤드류의 잠언과도 같은 말에 청년 말릭은 래퍼처럼 답한다. 쓰레기에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를 하려하면 할 수 있지만, 거기서 삶과 죽음에 대한 경지까지는 어쩐지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이 동문서답같은 앤드류와 말릭의 대화가 바로 이 다큐가 던진 질문의 시작이다. 삶의 문화에 익숙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거기서 생략된 질문, 죽음 이후, 심지어 죽음 조차도 거창하고 장식적인 형식 속에서 휩쓸려 들어가버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이후에 대한 질문을 잃었다고 다큐는 원주민 노인 마일로 예롱우헤어의 입을 빌어 말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농업'의 의미, 도시 농업, 텃밭 가꾸기는 '자연 친화적'인 삶의 방식으로 존중받는다. 또한 기업화된 식량 생산의 사이클에 대한 대안적 방식의 모색으로도 유의미하다. 그런데 다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제네바의 혁신적 노동조합 자르댕 드 코카뉴에는 젊은 청년들이 여럿 모여 텃밭을 일군다.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잡초를 뽑는 이들, 심지어 밤에 꿈에 나올 정도라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고된 노동을 선택한 이들에게 텃밭 가꾸기는 식량을 얻는 것 이상이다. '상업적 활동'이 아니라, 도시의 소비자들과 연계하여, 필요한 만큼의 생산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 그들에게 이 일은 도시에서 원자화되었던 삶을 벗어나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요, 하늘과 생명과 나를 연결하는 과정이 된다. 그 풍성한 활동으로서의 농업은 끝나지 않는 삶의 사이클로서의 자각을 이들에게 일깨운다. 그들에게 식물은 그저 농사의 대상이 아니라, 느리게 사는 삶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다. 여리게만 보이지만 식물 역시 존재하는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생존을 위한 싸움을 쉬지 않는 존재로 이들은 이런 식물에게서 종교와도 같은 영감을 얻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제네바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식물적인 삶(?)은 정치적인 자기 표현이기도 하다. 익명성의 세상에서 협동심을 키우고, 생산과 사람간의 거리를 좁히는, 이 세상의 흐름을 혁명적으로 거스르는 정치적인 '저항'이다. 

이런 과정을 마일로 노인은 '노래'라 칭한다.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 내 피부는 흙과 같고, 내 숨결은 바람이 되며, 내 피는 흐르는 물과 같으니, 우리 인간도 하나의 식물로써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그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안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라코타 어로 노래를 부르는 노인, 그 노랫말은 우리의 할 일은 '창조'를 거듭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식물과 동지가 되어 
그 '창조'의 의미를 오랜 시간을 걸려 실천하는 이가 있다. 바로 제네바의 모리스 마기이다. 늦은 밤 제네바의 거리, 이제 노년에 이른 한 사람이 거리를 헤맨다. 가로등만 덩그러니 서있는 황량한 공간, 그곳에 모리스는 땅을 파고 무언가를 심는다. 모리스의 가방 안에 들어있는 식물의 씨앗, 키 별로 네 종류로 나뉘어진 씨앗들은 거리의 척박한 땅에서도, 심지어 콘크리트 틈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선구 식물들이다. 

선구식물을 자신의 정치적 동지라 부르는 모리스. 사향 엉컹퀴와 같은 이들 식물에게서 삭막한 취리히를 10년안에 숲이 우거진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모리스는 동지애를 느낀다. 척박한 땅과의 싸움을 통해 선구 식물들은 그 보다 순한 다른 식물들도 자랄 수 있는 토양의 개선을 이뤄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누구 하나 시키는 사람없이 홀로 취리히의 거리에 거미줄같은 식물의 지도를 만들어낸 모리스의 행보와 일치한다. 



동지애는 또 다른 도시 디트로이트의 앤드류 부부도 마찬가지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처럼 농사를 지었던 할머니 세대의 삶을 이해하게 된 앤드류의 아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 이후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가졌던 그녀는 식물의 사이클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닌, 거름으로서 새로운 순환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의 이해를 열게 된다. 우리가 버린 것에서 다시 무언가를 돌려받는 과정, 생명이 끝난 것 같던 계절 뒤의 새로운 생명의 잉태, 결국 그 과정은 우리 인간의 죽음 이후의 과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연다. 끝이 아닌 휴지기, 다시 새로운 생명을 위한 헌신. 그리하여, 삶의 단계는 서로 차별성없이 하나의 순환으로 이해되고, 살아가고 나이들어 가고 변하는 것에 기꺼이 순응하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란 등을 둘러싼 해프닝은 결국 우리 사회가 살아가고 있는 담론의 문제로 귀결된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늘 과잉된 생산물을 '소비'하는 주체로서만 자신을 증명하는 세상, 그러나 우리에게 물건으로 행복감을 주는 이 사회를,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그 인간의 수 배, 수십 배, 혹은 수 백배의 동물 등의 잔혹사와 불행을 깔고 앉은 사회라 단언한다. 그리고 그 단언의 재앙을 '계란'이라는 가장 익숙한 소비물품을 통해 확인한다. 그런 현실에대해, <도시 농업 프로젝트>는 '농사'의 기술이 아니라, 식물을 통해 벌어지는 대순환의 사이클에 대한 진득한 천착을 통해 삶의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저 숲에 들어가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도 배움을 얻는 아이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더는 두렵지 않은 부부, 그리고 땀 흘려 일하고 그것을 나누는 기쁨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된 젊은이들. 그들을 통해 얻는 건 농사의 기술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철학이다. 

by meditator 2017. 8. 22. 16:51

72주년이다. 그 어느 해보다도 '광복'이란 의미가 다가오는 올해의 광복절, 하지만 그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도 그 흔한 광복절 특집 드라마 하나 없이 영화 <암살>의 재방이 면피를 하고, 한류 뮤직뱅크로 축하를 하는 시절이 되었다. 72년이 지난 광복은 이제 그런 것일까? 세계 역사상 식민지의 기간 내내 독립 운동이 멈추지 않았던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하다는데, 과연 그 자부심을 현재의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걸까? 그 미완의 과제에 성실하게 답한 건 그래도 다큐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음악을 통해, 그리고 독립 운동가들이 쓰던 암호를 통해 독립 운동을 살펴보고자 한 ebs의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와 kbs의 <독립운동의 비밀 병기, 암호>는 주목할 만하다.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

우리는 한국 혁명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를 쳐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 <압록강 행진곡> 박영만 작사, 한유한 작곡

방송을 통해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이 노래가 나오는데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국 광복군가였다는 이 노래는 7,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회자되던 노래이기도 하였다. 정말 우렁차게 이 노래를 부르면 당장이라도 압록강을 넘어 백두산을 넘을 만큼 열정이 차오르게 했던 노래, '노래'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세월을 건너 후손이던 대학생들의 가슴마처 차오르게 했던 이 노래를 만든 주인공에 대해서는 정작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그 작업을 ebs 광복절 특집 다큐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가 <1부 망국의 노래, 깊이 생각>, <2부 중원에서 별이되다>로 다루었다. 

다큐는 이제는 기록에서조차 희미해진 그 노래를 오늘날의 노래로 되살리려는 노력과 함께 진행된다. 우리 항일 가요의 시작은 1914년 민족 정신을 담은 최신 창가집을 그 시작으로 본다. 광성 중학교에서 발행된 이 창가집은 발행 1년만에 그 일제에 의해 압수, 그 내용이 남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독립 운동의 역사 그 갈피갈피에 음악은 함께 했다. 1908년 만주로 독립 운동의 근거지를 옮긴 민족 운동 세력이 명동 학교를 설립하고 영국 국가의 곡을 차용하여 '아무런 일 겁낼 것없구나 정신은 자유요 의기가 용감한' 교가를 만들었다. 이런 민족의 의분이 담긴 교가는 1899년 약관 21세의 안창호 선생은 평안남도에 최초의 사립학교인 점진학교를 세우며 '쾌하다, 장검을 비껴들었네, 오늘날 우리 손에 잡은 칼은 요동 만주에 크게 활동하던 동명왕의 칼이 방불하구나'란 '격검가'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저기 정순이 쉬던데/ 피던 꽃 떨어지고 
뻐국 색도 울고가니/ 지났구나 봄철이   - <저기 정순이 쉬는데>, 동해 수부 작사, 외국곡

의기가 넘치는 곡만 있는건 아니다.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다 처참하게 처결당한 정순이란 여학생의 소식을 전한 미국의 민족 신문 <신한일보>는 정순의 슬픈 사연을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저기 정순이 쉬는데>를 발표했다. 당시 음악들을 보면 '항일 의식' 고취를 중요시해 가사는 우리의 손으로 짓는 반면, 곡은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외곡곡을 차용한 사례가 많았다. 이렇게 다큐는 당시 곡들의 특징과 함께, 동해수부나, 한유한 등 그 곡을 만든 이들의 흔적을 찾아간다. 또한 그런 독립 운동 시기의 음악을 꾸준히 연구해온 작년에 돌아가신 후 올해에 이르러서야 <항일음악 330곡집>을 펴낸 노동은 교수를 비롯, 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평생을 역시나 일제 하 음악 발굴에 헌신하겠다고 공언한 황선열 교사 등을 소개한다. 

그렇다면 다큐를 통해 소개된 항일 음악들의 의의는 무엇일까? 일찌기 격검가를 비롯, 최근 우리의 애국가 역시 안창호 선생님을 비롯한 임시 정부 요인들의 합작품이 아닐까 라고 추정되는 20여곡의 음악을 남기신 안창호 선생은 일찌기 음악이 정서와 감흥을 울려 독립 운동의 투쟁심을 끌어내는 건 물론, 치료 효과조차 갖는다'고 주장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이제 역사가 된 항일 음악, 그에 대해 황선열 선생은 손으로 씌여 입으로 향유된 한국 문학의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 장르라 정의내린다. 그 잊혀졌던 장르로서의 항일 문학, 그 복원으로서 <노래로 조국 광복을 염원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독립 운동의 비밀 병기, 암호>
어떤 분이 얼마나 독립 운동의 주요한 역할을 하셨는가는 독립운동사의 행간마다 만나게 되는 그분의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여곡의 작사가로 항일 음악사에서 이름을 남기셨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존함은 kbs1에서 방영된 광복절 특집 다큐<독립 운동의 비밀 병기, 암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1932년 서대문 형무소 안창호 선생이 수감되셨다. 만주와 미국으로 오랜 외국 생활을 하셨던 안창호 선생, 그러기에 조국 독립 운동가들이 감옥에서 나누던 대화에 익숙치 않으셨다. 그런 안창호 선생에게 옆 방의 김정련 선생이 감옥에서의 대화를 전수하고자 나서셨는데, 그게 바로 이 다큐가 첫 번째로 소개한 타벽 통보법이다. 자음과 모음, 숫자 등을 주먹, 손가락, 손바닥을 이용하여 벽과 벽을 통해 전달하는 이 방식은 '내일 오후 두시 만세 시위'라는 문장을 전달하기 위해 23번의 타벽이 필요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에서 이 타벽 통보법은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 안창호 선생에게 타벽 통보법을 전달하려가 걸릴 뻔한 김정련 선생은 스스로 똥물을 뒤집어 쓰고 미친 척을 하며 암호를 지켜냈지만, 독방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이렇게 일제 하 감옥에서의 눈물겨운 에피소드를 통해 다큐는 비밀 병기 암호에 대한 기록을 연다. 

그런데 독립운동의 암호 연구에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음을 다큐는 지적한다. 성공한 작전의 암호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즉 작전의 성공은 곧 암호의 비밀 보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니 암호 연구는 결구 실패한 작전, 기사 등을 통해 알려진 흔적을 통해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30년대 호서 은행 불법 금융 사기 사건. 일제는 암호 문서를 단서로 이 사기 사건을 발각하고 1만 7천원을 회수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호서 은행은 지금의 충남 예산에 있던 당시 예당 평야를 배경으로 한 충남의 대표적인 은행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은 미곡상 최석영이 서류를 위조하여 여러 은행에서 불법으로 대출을 받은 사건이지만, 그 뒤에는 고향 예산에서 독립 운동자금을 모으려고 했던 독립운동가 신현상이 있었다. 일제는 이 사건으로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신현상 외 5인을 체포하였던 것.

결국 비밀 병기로서의 암호는, 다른 한편에서 일제와의 피말리는 정보전의 양상으로 진행된을 다큐는 보여준다. 중국 텐진 화평구 일본 조계지의 정실은호 일본 은행이 대낮에 금고가 털린 사건, 이 사건에서 활약을 한건 암호 닭다리라 칭해졌던 권총이었다. 또한 1920년대 만주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우당 이회영 선생이 고국에 보낸 서신에 등장한 새우젓, 골뱅이젓은 당시 독립운동 자금을 위해 접촉할 사람들의 별명, 그렇게 당시 사람들은 친일파는 모이를 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덤빈다 하여 꿩이라 하거나, 밀정을 여우라는 식으로 빗대어 말하는 은어를 흔히 사용하곤 했음을 당시를 연구했던 연구자들의 입을 빌어 밝힌다. 



하지만 이런 은어는 1921년 일제에 의해 발간된 후 보다 체계화되어갔다. 일본 외무성에 남겨진 자료중 가장 오래된 1919년 2월 28일 자료를 통해 본 독립운동의 암호는 자음과 모음을 숫자로 표시하는 식으로 변화해 갔고, 3.1만세 운동 이후 보다 고도화되어갔다. 일본의 감시와 검거가 치열해지는 만큼 암호 체계는 서신용, 전보용으로 분화되고,  자리수가 두 자리, 세 자리로 보다 해독할 수 없는 복잡한 체계로 변화되어갔음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그 변화의 주기도 점점 짧아져 가는 것도 한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독립 운동이 다양한 계열로 분화되어가는 그 양상은 암호에도 반영되어 통일되어 있지 않은 일제에 혼돈을 준 지점이라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던 유격대원들, 일제의 공격을 대비하기 나선 어린 학생들이 방어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잇닿은 산봉오리에서 새오리, 나무통 두드리기, 깃발, 봉화 등 다양한 수단과 방식도 멀리 연길 구룡마을 현장에서 전한다. 

실패한 작전을 통해 유추해본 비밀 병기 암호는, 그 암호 자체로 한편의 첩보 영화 소개 프로그램처럼 흥미진진했다. 또한 해방의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일제에 항거했던 우리 선열들의 치열한 결과물로써 암호만큼 명확한 증거인 것도 없을 것이라는 걸 다큐는 여실하게 보여준다. 

노래와 암호, 이 전혀 다른 상징 체계, 하지만 그 극과 극의 메시지가 두 개의 다큐를 통해 항일과 광복에의 염원으로 통일된다. 그리고 역사 행간 속에서는 읽어낼 수 없었던 생생하고 치열한 독립의 현장으로 다큐는 우리를 인도한다.  
by meditator 2017. 8. 16. 15:59

아름다운 절벽으로 둘러싸인 일본 후쿠이현 시카이시 도진보 절벽, 하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목적은 두 가지로 갈린다. 그 아름다운 명소를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로 택한 사람들, 도진보 절벽은 '자살 절벽'으로 이름이 높다. 그런데 그 자살 절벽 주변에서 부지런히 순찰을 도는 사람들이 있다. 13년 째 이곳에서 순찰을 빼먹지 않는 시게 유키오 씨 등의 사람들은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 오늘도 20대 여성의 목숨을 구한다. 


이 도진보 절벽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방송을 탄 바 있다. 2013년 9월 <ebs 다큐 프라임-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즉 2013년을 기준으로 8년째 자살율이 1위인 우리의 현실을 다루었던 다큐이다. 



억눌린 감정, 가짜 감정으로 
당시 다큐에서 한 해 평균 17명의 자살 장소로 선택되었던 도진보 절벽, 이 절벽의 이야기로 <mbc스페셜-당신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짜 감정 중독(이하 가짜 감정 중독)>은 시작된다. 그렇게 자살의 대표적 예로 등장했던 도진보, 하지만 <가짜 감정 중독>은 자살을 해야하는 그 이유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 일본인들은 자살을 선택했는가? 서양과 달리, 불교와 유교 문화권의 동양에서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기 보다는 숨겨야 하는 것으로 각인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가망(がまん) 문화는 일본인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참으라고 강요한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을 숨기다 못한 일본인들은 도진보를 찾는다. 

그렇다면 일본의 문제일까? 우리나라의 감정 문제를 들여다 보기 위해 거리로 나선 정신과 의사가 등장한다. 5년차 정신과 의사 임재영씨가 거리로 나섰다. 자신의 병원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이미 상담만으론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음을 절감하게 된 그는 약물을 쓰기 이전의 상태에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거리 상담을 자처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자는 평생 3번 울어야 한다'라던가,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넣어선 안된다'는 전통적 감정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쉬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된 감정의 '쿨함' 역시 또 다른 감정의 통제 기제가 된다. 

일본이나 우리 나라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지 못하는 문화, 그로 인한 극단적 선택의 문제는 이미 새로운 문제 제기가 아니다. 하지만 8월 3일 다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가까 감정 중독'을 주목한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제된 사람들은 그 자기 강제된 감정이 왜곡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슬픔을 화로 표현하는 사람, 화를 내어야 하는데 우는 사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 자체에 무감각해져 버린 사람.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가짜 감정에 중독된 상태'라고 다큐는 진단한다.

 

슬픔을 화로, 두려움을 무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진단의 증명을 위해 두 사례자가 등장한다. 
4살과 6살을 둔 엄마 정인수 씨(34), 그녀의 가정은 조용할 날이 없다. 엄마는 그 어느 곳이든 울컥울컥 화를 내고, 그 화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쏟아진다.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정신을 차린 엄마는 후회하지만, 결국 쳇바퀴돌듯 그 '화풀이'를 되풀이한다.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면 공감할 이 장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고 정인수씨는 화라도 내지만 오현정(28)에게로 가면 더 심각하다. <비밀의 숲> 황시목처럼 외과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감정이 없다. 매사에 무표정하다. 

정인수 씨는 상담을 시작하자마다 자책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적어본 감정 노트를 채운 단어는 지친다. 외롭다. 힘들다 이다. 자신의 감정을 채워본 물병만을 봐도 눈물을 터트리는 그녀. 이른바 '독박 육아' 속에서 그녀는 마모되어 가고, 그 마모된 자아는 '화'라는 가짜 감정을 통해서만 폭발해 왔던 것이다. 기꺼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남들에게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 말을 자기 자신에게는 인색했던 그 저변엔 엄마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의 상실감으로까지 뿌리가 드리워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던 오현정 씨의 경우에는 주변으로 부터의 상흔의 결과다. 그래서 늘 관계에 두려움을 가지고 주춤거리던 그녀는 어느 새 마음을 닫고, 그 부작용은 몸으로 왔다. 하지만 울컥하지만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던 그녀가, 병을 가득 채운 자신의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 

독박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화'라는 감정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현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 외롭고 슬펐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 닫아건 마음은 사실 그 누군가의 관심이 그리운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마주한 사람들, 놀랍게도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 사례자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상담을 하고,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읽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90일간의 중독 치유 프로젝트, 놀랍게도 사례자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똑같은 사람인데, 화가 잔뜩 나있던 얼굴에 밝아졌고, 무표정했던 얼굴에 생기가 돈다. 화장법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이른바 '관상'이 변한다. 



아이와 함께 친구집에 놀러간 정인수 씨, 아이는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잔뜩 찡이 났다. 아이와 함께 조용한 곳을 찾은 엄마, 아이는 지금까지 하던대로 엄마를 때리며 투정을 부린다. 그때 엄마 정인수씨가 말한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을 테니 말해봐 라고. 그런데 그 엄마의 말이 마법처럼 울며 떼쓰던 아이의 울음을 잦아들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아이, 결국 엄마의 품에서 감정을 토해내며 풀어진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더 놀라운 건 매사에 화를 내던 정인수 씨다. 그저 화를 참았는가 싶던 정인수 씨가 아이의 서러움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준다. 정인수씨는 화를 잘 내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작은 슬픔에도 마음이 아픈 너무도 마음이 여린 엄마였던 것이다. 이게 정인수 씨가 찾은 진짜 감정이다. 

오현정 씨 마찬가지다. 늘 상처받을까 무표정에 자신을 숨겼던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흔히 '화'를 잘 내는, 혹은 항상 화가 나있다는 오늘날 한국 사회, 어쩌면 한국 사회의 '화' 역시 삶의 고난과 고통을 방어하는 가짜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말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7. 8. 4. 02:43

다큐가 시작되자 등장한 것은 한 마리의 병아리, 아니 달걀, 이제 막 그 속에서 검은 병아리 한 마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애를 쓴다. 정지된 화면 안에서 달걀 한 알이 갓 태어난 병아리로 변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고투다. 이렇게 <sbs스페셜- 알을 깨다>는 정말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병아리를 통해 마흔까지의 직장인의 삶을 거하고, 이제 철부지 50대에 도달한 미즈노 마사유키의 삶을 상징한다. 


새는 알을 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미즈노 마사유키, 그 인생의 황금기
흔히 오십 줄에 든 사람들에게 당신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였냐고 질문하면 꽃다운 20대 청춘 시절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아직 세상 그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았던 그 시절,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던 가능성을 품었던 그 시절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여기 그런 일반적인 대답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가 있다. 바로 미즈노 마사유키, 그는 말한다. 50, 이제부터가 황금기의 시작이라고. 그런데 전북 김제에 자리잡은 그의 집, 그 집에서 살아가는 그의 삶을 살펴보노라면, 그런 그의 장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도 남들처럼 살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에서 컴퓨터로 설계일을 하며 살던 그, 좋은 아파트, 좋은 차, 그리고 가족들의 풍족한 생활, 그런 것들이 그의 삶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주일 정도 걸릴 일을 삼, 사일에 해치우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 어느 날 문득 창 밖을 보니 보도의 틈 위에 민들레가 자라고 있었다.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살던 시절, 그 봄의 전령을 보고 미즈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자신을 소모하고 있는가? 라고. 

어린 시절 미즈노는 풀과 벌레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어른이 된 미즈노는, 그 어린 시절의 꿈을 잊었다. 대개의 어른들이라면, 나이가 든다는 게 그런 거지하고 넘어갔으련만, 미즈노는 달랐다.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것을 접어두고, 아내의 고향 전북 김제로 다섯 아이를 끌고 갔다. 그리고 이제 아내가 일을 나간 집에서 그는 기르고 싶던 머리도 기르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온 동네 버려진 물건을 집어다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아홉살 딸내미의 가장 친근한 벗이 되어 지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 그가 만든 네온이 은은하게 빛나는 바에서 재즈를 들으며 막걸리 한 잔에 치즈을 입에 넣을 때.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
집 앞 30년된 나무와, 100년된 나무 사이에 층층이 건들건들 매어달린 나무집, 4년 동안 지은 이 나무집이 그가 보낸 '철부지 세월'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단지 이 나무집만일까? 다큐는 직장인 미즈노가 철부지 50살 소년이 된 그 과정을 설명하는 대신, 그와 그의 자녀들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다큐가 시작하자 마자 미즈노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오늘 탄생한 검은 병아리 한 마리'는 BJ가 꿈인 막내 딸의 첫 방송 초대 손님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야무지게 무엇이든지 뚝딱 만들어제치는 아빠의 손을 빌어 집까지 만들어 줬는데, '러브 하우스' 하모니가 끝나기도 전에, 막내딸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어미 고양이가 단박에 나꿔채버렸다. 허겁지겁 고양이의 입을 벌려 구출 작전을 시도해 보지만 오늘 태어난 생명에게 새끼를 난 어미 고양이의 허기진 입은 가혹했다. 

죽은 병아리를 손 위에 놓고 망연자실해 하는 아홉 살 난 딸에게 아빠 미즈노는 담담하게 말한다. 새끼를 네 마리나 낳은 어미 고양이는 배가 고팠을 것이라고. 우리가 방심했다고. 하지만 네가 어떤 결론을 내릴 지는 너의 몫이라고. 흔히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이 하는 귀여운 병아리를 죽인 고양이가 나쁘다던가 하는 선입견에서 아빠 미즈노는 한발 물러선다. 

미즈노네 집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학생들이 있는 미즈노네 아침, 하지만 아무도 학교 가라, 아침 먹어라 독촉하는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저마다 알아서 때가 되면 일어나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다 학교로 간다. 엄마 역시 자신의 출근 준비에 바쁘다. 사진과에 다니다 잠시 휴학을 하고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딸에게도 마찬가지다. 미즈노는 말한다. 부모로써 그 짐을 조금 덜어주곤 싶지만, 그러나 딸의 인생은 딸의 것, 그런 아빠, 엄마가 지킨 경계선에서 미즈노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길을 물어 스스로 답을 얻는다. 

아홉살 난 딸은 병아리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렇다고 고양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이미 아홉 살이지만 병아리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한 단면을 이해한다. 스무 살이 넘은 딸은 스스로 새로운 자신을 향한 길을 찾아 아버지의 도움없이 라오스로 떠났다. 마흔 살 창 밖의 민들레를 보고 전북 김제로 향하기 까지 2년 아마도 미즈노도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 그와 딸들의 관계를 통해 짚어보게 된다. 풍족한 삶 대신, 때로는 득도한 스님처럼, 때로는 소년처럼 꿈꾸는 것을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찾아서 즐기는 그의 삶은 마치 잠시 도원에 든 나무꾼의 일장춘몽과도 같다. 

하지만 미즈노는 말한다. '마흔까지 가족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이라 여기며 일벌레로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보니, 가족은 행복할 지 모르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선후를 바꿨다. 그러고 나니 나도 행복하고, 가족도 또한 행복해 졌다' 이건 미즈노가 도달한 결론이고, 다큐는 보는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 병아리가 깨고 나온 알 껍질을 들고, 미즈노는 말한다. 알은 병아리를 보호해주지만, 그러나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 알은 장애라고. 그렇게 어렵사리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하지만 태어난 첫날 고양이에게 물려죽었다. 다큐는 그럴 듯한 미즈노의 트리집과 그 자녀들의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 각자의 삶을 버거워 하며 이겨내는 알을 깨는 과정은 복선처럼 깔려있다. 병아리의 죽음이 아홉살 소녀에게 화두가 되듯, 저마다 삶의 화두를 붙잡고 가야한다는 것을 철부지 50세 소년은 초연하게 웃으며 받아들인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SBS스페셜> 버전같았던 <알을 깨다>는 하지만, 가족, 사회와 괴리된 채 자연을 벗삼던 자연인들과 다르다. 50살 철부지라며 스스로 하염없이 선한 웃음을 날리는 아버지에게, 스무 살이 넘는 딸은 영원토록 철들지 않기를 소원한다. 아홉 살 딸에게는 가장 충실한 조력자이자, 경계를 넘지않는 든든한 멘토이다. 이제 남편 대신 돈을 벌러가는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의 행보에 신중한 남편이 믿음직스럽다. 나무 위에 지은 꿈의 공장같은 트리 하우스는 그저 미즈노의 자기 만족을 넘어, 새로운 일이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퇴사하겠습니다>, <성신제의 달콤한 인생>, <회사를 바꾼 괴짜 사장>에 이은 <알을 깨다>는 욜로 라이프(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주제로 꿰어질 수 있다. 이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사회, 인간성을 극한까지 밀어부치는 경쟁 사회에서, 이 시대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창되고 있는 욜로 라이프, 그 범주 안에서 다큐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알을 깨고 나온 미즈노의 즐거운 인생 역시 이 시대의 또 한 편의 새로운 선택지로 제시된다.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은 병아리를 들고 황망해 하는 딸에게 네가 고민하고 선택한다고 말하듯, sbs 스페셜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대, 당신이 살아갈 한번 뿐인 삶을 누리는 이런 방식도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 당신의 선택이라고. 


by meditator 2017. 7. 31. 15:09

2026년 인구 20%가 노인, 대한민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이른바 인류의 염원이던 100세 시대가 우리에게도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코 앞으로 다가온 이 '장수의 시대'는 마냥 오래 살아 행복할까? 마치 암초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 우리의 삶을 좌초시킬 지도 모를 '장수의 시대'를 <ebs다큐 프라임>이 발빠르게 맞이했다. 


100세를 쇼크라 진단하기 전에, 다큐는 '프롤로그'처럼 '나이듦', 즉 노화에 대해 정의내리고자 한다. 일찌기 공자께서 50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고(지천명 知天命), 60이 되면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알아들으며(이순耳順 ), 70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경지에 오른다(종심 從心)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노인'은 이런 공자님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측정하는 실험에서 젊은이도, 노인들도 모두 노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나이듦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노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산업화 사회에서의 '인간'에 대한 존재 가치 잣대가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전근대적 사회에서 '경험많은 어른'으로 대접받던 노인들은 이제 더 이상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치부받는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무능력에 더해, 나이든 사람들이 나타내는 공통적인 태도가 다른 세대에겐 소통 불능의 '고집 불통'으로 낙인 찍혀 가는게 요즘 세상이다. 왜 그럴까?

그런 노인들의 '고집'을 다큐는 '정서적 최적화'라 정의 내린다. 홀로 살아가는 100세의 할아버지 스스로 빨래를 하고 일상 생활을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옆집 아주머니는 들여다 보고 질색을 한다. 말이 빨래지 비눗물에 담궜던 옷가지를 헹구기는 커녕 짜지도 않고 걸어놓고, 방안은 씻지도 않은 젓가락이며 그릇이며 먹고남은 막걸리 통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하지만,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이 지저분하기 그지 없는 상태가 사실은 이제 100세가 되어 활동력이 현격하게 떨어진 할아버지에게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환경. 이런 것이다. 바로 나이가 드신 분들은 그분들의 '스타일'대로 자신에 맞는 최적의 상태를 추구하려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시대에 늘 '불화'한다. 



그러면 젊은이들은 말할 것이다. 좀 '시대'에 맞추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을 '인정'받고 싶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으니, 어쩌면 이 세대간 '부조화'는 '숙명적'이다. 

재앙이 되어 가는 장수 
이렇게 숙명적으로 이미 '불화'할 수 밖에 없는 노인 세대,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간다. OECD 국가 노인 빈곤율 1위, '빈곤과 질병과 고독'과 싸워야 하는 장수는 재앙이다. 

부산 쪽방촌 문에는 이름들이 쭈욱 내려 써있다.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납골당에 모셔져 있는 노인들의 이름이다. 이른바 '고독사'이다. 해마다 늘고 있는 고독사, 2016년에는 1232명, 그중 48%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사회 관계망에서 일찌감치 방출된 사람들, 특히나 일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10년 정도 평균 수명이 더 길며, 남편 사후 빈곤층 추락 가능성이 더 높은 여성 고령자의 경우 더욱 '고독사'의 위험이 높다. 한때 우리 나라 최초 사립 유치원 선생님 출신의 여성 엘리트였지만 이혼후 급격하게 추락하여 이젠 저녁 한 끼를 우유에 밥 한 술 말아 때우고 마는 조경숙씨(80)처럼, 우리 사회 노인들의 노후 문제는 곧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우리 사회 노년의 장수가 재앙이 되는 이유중에는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며 자신이 일할 수 있는 기간 동안 번 경제적 능력을 온통 자식에게 쏟아붓고마는 한국인 특수한 문화도 한 몫을 한다. 심지어 두 노년의 부부가 하루에 700원 남짓 폐지를 줏어 생활을 하면서도 8평 남짓 자신들 소유 빌라를 손주에게 상속해야 한다며 꾸역꾸역 쥐고 앉은 이 '상속'의 문화는 고질병 수준이다. 

물론 모두가 노년에 대해 무방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방비'를 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은퇴를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의 상당수가 은퇴후 일자리가 마땅치 않자, 빚을 내서 자영업에 뛰어든다. 60대 은퇴자의 52%가 창업을 하고, 그 중 2/3이 폐업을 하며 퇴직금까지 날리고 '노후 파산',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유엔이 조사한 노인 소득 90위(91개국 중, 아프가니스탄이 91위), 꼴찌의 현실이다. 

하지만 추락하는 '노년'에 날개를 달아줄 자녀는 이제 없다. 자녀세대는 이제 더 이상 부모에 대해 부양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은퇴 시기를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들에겐 아직 부양해야 할 부모님이 계시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 효'사상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은 의료 복지 시설에 대한 인식이 낮아 스스로 그 짐을 떠앉아 버리는 경우가 많아, 이중고에 시달린다. 

이런 노년의 문제에 대해 연구자는 노년의 리스크를 세 가지로 정의한다. 그 첫 번째로 무의미함, 살아온 시간, 그리고 살아갈 시간에 대한 허망함이다. 두번 째는 살아가야 할 시간에 대한 부담, 즉 삶의 지루함이다. 그리고 세 번 째, 가난, 그런데 여기서 가난이란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라, 시간적 가난도 함께 포함된다. 노인 빈곤율 OECD 1위의 현실에서 다큐가 주목하고 있는 건, 물질적 가난 보다는 '노년에 대한 인식 제고'이다. 

어쩌면 물질적 가난보다 더한 인식의 가난, 그 개선에서 부터 
서울의 한 교회, IMF 때부터 시작한 일주일에 한번씩 500원씩 주기, 거기엔 새벽부터 장사진을 친 노인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정작 인터뷰를 해보면 정말 끼니를 걸러서 나온 분들이 대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남아도는 시간 소일 거리 겸 용돈 벌이로 나온다는 분들. 대부분 노인들의 취미 생활이 TV 시청이듯, 노인들 대부분이 무료한 몇 십년씩 삶을 이어간다. 

'노년의 물질적 가난도 문제지만, 어쩌면 지금 100세 시대 더 심각한 것은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의 인식 제고라고 다큐는 지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대한 '개선'을 시도하고자 한다. 

1분에 대해 시간 측정을 해보는 실험에 참가한 노인들, 실험은 약간의 트릭을 써서, 노인분들이 생각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1분이라 답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실험에 참가한 노인분들은 이후 노년에 대한 인식 실험에서 인식이 달라진다. 즉, 남은 노년의 시간에 대해 '다 살았다'가 아니라, '그 시간이나 남았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인식의 변화는 생활의 변화를 낳는다. 경남 양산의 효암 고등학교에는 학교에서 어슬렁거리며 휴지를 줍고 다니는 노인 한 분이 있다. 아이들이랑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이 노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을 도와주는 할아버지라는 이 분, 알고보니 이 효암 학원의 이사장이다. 젊어 흥국탄광등 스무 개가 넘는 기업을 이끌었던 거부,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한 후 학교 한편 방 한 칸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어슬렁거린다. 췌장암 치료를 받지만, 그에겐 암이나 당뇨병이나 매한가지일 뿐. 그는 말한다. 노인은 늙는 것이 아니라, 젊게 산 것의 결과라고. 기자 은퇴 후 여행작가로 <나는 걷는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노년을 '완전한 자유'를 갖는 순간이라 명명한다.

물론 여전히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리는 다수의 노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그친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 '가난'한 노인들 조차도 돈 만원이 있으면 삼일을 버틸 수 있지만, 외로움은 견딜 수 없다는 '시간'의 벽에 대해 '방점'을 찍은 다큐의 시각은 의미있다. 은퇴 후 20년, 하지만 그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10만 시간이다. 생산적이지 않은 사회의 유휴 노동력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은 물론, 그 시간을 맞이한느 노인들 자신들이 '다 산 사람'이 아니라, '아직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주인공'으로 자신의 작품을 완주해야 하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 역시 100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는 절실한 '주문'이다. 

 






by meditator 2017. 7. 27. 16:04

2017년 3월 '헌법'에 의거하여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헌법'의 존재 가치를 증명시켜주었다. 하지만, 지금 일각에서는 바로 그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의 근거가 된 '헌법'이 '개헌' 논의가 불붙고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토록 한 87년 체제의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지금 필요한 것이 '개헌'일까? 그리고 '개헌'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대해 sbs스페셜은 우리 헌법의 지난 과정을 짚어보는 <헌법의 탄생>을 통해 현 시기 '개헌론자'의 속내와, 만약 개헌을 한다면 그 새로운 헌법이 담보해야 할 내용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87년 '직선제 개헌', 그건 2017년 촛불 광장의 기억처럼, 4.13 호헌 철폐에서 6월 항쟁, 그리고 6.29 선언으로 이어진 '쟁취해낸 역사'로서의 감동이 서려있다.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거리를 메웠던 넥타이 부대의 물결, 이한열 열사 등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쟁취해낸 '민주'의 기억. 4.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헌 불사 호헌'을 주장했고, 이에 사람들은 거기로 쏟아져 나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 하에 '체육관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 냈다. 



그런데 다큐는 그렇게 승리의 역사로 기록된 당시의 시대사를 다시 한번 들춰본다. 과연 '승리'만의 역사인가? 그들은 왜 '대통령 직선제'를 내주었을까? 무엇보다 가장 큰 계기가 된 건 서울 거리를 채워낸 민심이다. 서울은 광주와 같이 '고립'시킬 수 없는 '대한민국의 수도'였기에, 그 거센 민심을 쉽사리 '총칼'로 제압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심'의 요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헌의 역사, 그 진정한 의미는? 
87년 개헌의 의미를 짚어보기에 앞서 다큐는 그에 앞선 8차례 개헌 과정을 짚어본다. 과연 지난 9차례 개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역사상 첫 개헌 아직 전쟁이 채 마무리도 되지 않은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상정했다. 하지만 이에 국회가 반대를 하자, '관제 데모'등을 조작하는 한편, 국회의원 12명 등을 '공산주의 혐의'로 체포하는 등 '트루먼 대통령 등 국제 사회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국회의원안'을 발췌한 내용으로 경찰에 포위된 국회의원들의 기립 투표로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이 가능한 '개헌'을 찬성 163표, 기권 3표로 통과시켰다. 

바로 이 첫 개헌은 지난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추어 '정권 연장을 위한 개헌', 바로 이게 우리 헌법 개정의 역사인 것이다. 그 다음 2차 개헌은 더 기가 막힌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중임제 철폐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은 이른바 '사사오입'이라는 어불성설의 수학적 논리로 개헌 정족수에 1표 미달한 135 찬성을 '개헌안 가결'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밀어붙인 권력은 역시나 이때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4.19 혁명을 통해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내각책임제와 대통령 국회 간선제, 그리고 부정 선건 관련자 처벌 등의 3.4차 개헌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런 4.19 혁명의 결과문은 61년 5.16 쿠데타에 이은 5차 개헌으로 다시 대통령 직선제로 돌아서게 된다. 

박정희 정권 개헌의 역사는 더욱 자명하다. 대통령 중임제 범위를 3번으로 연장하는 6차 개헌, 통일 주체 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선출, 임기 6년의 중임 제한 철폐의 사상 최대의 '유신 헌법'의 7차 개헌이 이루어 지면 박정희 영구 독재의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헌법을 뜯어고치며 영구 집권을 획책한 박정희는 역사의 심판을 받았고, 하지만 역시나 그 역사의 심판의 결과물은 5.17을 거쳐 군화발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다시한번 체육관에서 벌어진 대통령 선거였다. 



87년 직선제 개헌은 민중 항쟁의 결과물?
이렇게 짚어본 대한민국 개헌사는 정권의 연장사요, 집권의 획책사였다. 그렇다면 6월 항쟁을 통해 얻은 8차 직선제 개헌은? 다큐는 안타깝게도 8차 개헌 역시 많은 이면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다.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지만 좀처럼 수그러들기는 커녕 나날이 거세어져 가는 민심의 이반에 대해, 당시 정권은 '직선제' 개헌 카드를 이미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마치 민심에 대한 완전 항복같았던 6.29 선언 당시, 이미 전두환, 노태우 측은 '직선제 개헌'을 해도 자신들의 정권 연장이 가능하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야권의 두 거대한 잠룡 김영상, 김대중이라는 두 세력은 결코 단일화를 이루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적중했고, 6월 항쟁은 '보통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노태우 정권으로 넘겨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노태우 정권 자체보다. 오히려 87년 개헌 협상 과정에 있다고 다큐는 짚는다. 여야 8인이 모여 합의 하에 준비한 개헌, 하지만 불과 그 준비 기간은 40일에 불과했고, 야당의 경우 오로지 '대통령 임기'등의 '잿밥'에만 눈이 어두워 87년 체제의 본질을 간파하거나,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김영상, 김대중, 노태우 등의 정권 돌려먹기에 눈독을 들인 다시 협상단은 직선제로 대통령 한번씩 돌려먹기 하는데만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다. 

즉, 시간이 쫓겨 권력 구조에만 정신이 팔렸던 87년 개헌은 박정희 대통령의 5차 개헌 내용을 거의 대부분 수용했다.  심지어 '군인 국가 배상 금지법'. '대통령 긴급 명령권', '공무원 노조 금지', '대통령 대법관 임명권' 등 유신 헌법의 잔재도 고스란히 온존한다. 이에 심용환 연구가는  여전히 우리는 '박정희가 설계한 시대, 박정희의 세계 속에 살고있다' 정의내린다. 



박정희 시대의 완전 종결을 위한 개헌 논의
그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87년 체제의 종식은 궁극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공식적 폐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개헌'일까? 이에 헌법 학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역사적으로 짚어보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는 '권력'의 정권 연장 획책의 역사이고, 그것은 곧 민심 이반의 치욕의 역사였다. 그 이유는 바로, 개헌이 매번 '권력 구조 개편'에만 눈독을 들이기 때문이었다. 또 그러기에 지금 야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권력 구조 개편으로서의 개편 역시 다시 한번 '개헌의 악몽'에 우리를 끌고 들어갈 여지가 크다고 다큐는 짚는다. 

그렇다면 과연 이제 그 수명을 다한 87년 체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서구 민주주의 사에서 '개헌'이란 민중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반면 우리 개헌의 역사는 집권자의 혹은 어떤 기득권 세력의 정권 연장 음모였다. 이런 '악몽'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권력 구조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헌이어야 하는가, 어떤 사회적 합의의 내용이 담겨야 할 내용인가에 대한 논의가 전제 되어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어떤 권력 구조라는 블랙 홀이 아니라, 누구글 위한 개헌, 이것이 개헌의 진짜 전제 조건이다. 
by meditator 2017. 7. 17.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