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사전적 정의는 '신앙 행위의 일환으로 종교 상의 성지나 영장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산티아고나 인도를 '종교적' 의미로만 '순례'하지 않는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길을 걷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순례'의 의미를 찾는다. 어쩌면 묵묵히 걸어가야 할 우리네 삶 자체가 '순례'일지도. 지난 2017년 kbs대기획으로 방영된 UHD <순례 4부작>은 바로 이런 '순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고자 했다. 인도 북부 라다크의 '패드 아트라'의 9개월, PCT(pacific crest trail) 6개월 등 총 450여일, 12,000km이상의 여정을 최첨단 4k 카메라를 통해 UHD 영화처럼 구현한 화면 속에 길 위에 선 인간의 오롯한 숙명을 압도적인 자연에 대비하여 풀어낸다. 이러한 영상과 서사의 획기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깊이가 돋보인 시도는 국내적으로 2018년 방송대상, 백상 예술상, 카톨릭 매스컨 대상, 해외에서는 뉴욕 페스티벌 TV&필름 상, 아시아 태평양 방송개발 기구(AIBD) 월드 TV 상 등을 받으며 극찬을 받았다.
안녕, 나의 소년 시절이여- 살아있는 날들이 곧 '순례'
다큐를 연 건 영하 30도 해발 5200M 희말라야 산맥 질룽카포 산을 넘는 200여 명의 승려 무리이다. 티벳 불교의 한 종파 드루크 파 승려들은 수행의 일환으로 희말라야 산맥의 여정에 나선다. 원주민들조차 고산 병에 시달리는 높은 산악지대를 자신의 짐을 진 채 묵묵히 걸어가는 승려의 무리, 조금 나은 평원이라도 나올라치면 온몸으로 던져 오체투지로 길을 지나야 하는 그 고행에 결국 가장 어린 16살 '쏘남 왕모'는 정신을 잃는다.
종교 순례로 시작하지만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종교'가 아니다. '종교적 순례'길을 선택한 겨우 16살 소녀의 삶이다. 7개월전 소녀는 라다크 산악 지대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맏딸이었다. 보리 농사와 양을 키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빠뜻한 집안, 그 집안의 큰 딸인 '왕모'는 일찍이 7살 때 도회로 나가 가정부 살이를 해야했다. 가정부 일을 하면 학교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주인, 결국 왕모는 집으로 돌아와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왕모의 바로 아래 동생을 입을 덜기 위해 어린 시절 불교에 받쳐졌고, 그 아래 동생은 왕모처럼 가정부 일을 해야 하는 형편, 집에 돌아와 있다지만 밤중에 양을 훔쳐가는 늑대를 지키기 위해 왕모를 노숙을 해야 한다.
잡지 속 화려한 스타들을 흠모하던 친구의 뜻밖의 선택처럼, 그리고 입 하나 덜기 위해 부처님에 귀의했던 동생처럼, 결국 '왕모'도 가난한 집안에선 불가능한 엔지니어의 꿈을 접고 가난한 산골 마을을 떠나 승려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작이 된 곳이 바로 '인내만이 요구되는 가혹한 순례길', 소녀는 말한다. '안녕, 나의 소년 시절이여, 저는 이제 하나의 여행을 끝내고, 또 하나의 새로운 여행을 떠납니다.'
신의 눈물- 힘들어도 함께 가는 '순례'
희말라야의 소녀 스님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은 건 지구 반대편 역시나 해발 5200m 안데스 산맥의 콜케푼쿠 산을 오르는 68세의 노인 우아만 노인이다. 이제는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도달하는 이곳, 다큐 제작진의 청을 받아 이제는 그저 '게임'처럼 축제를 즐기는 청년들에게 '코이요리티 축제' 본연의 의미를 되살려주기 위해 노인은 길을 나선다.
안데스 산맥 해발 4500m 만년설이 뒤덮힌 시나카라 계곡, 200여년 전 그곳에 가난한 목동으로 '현현'하신 예수를 기리고,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만년설에 씻어내기 위해 잉카인들이 그곳에 모인다. 이제는 기후 변화로 쌓였던 눈이 점점 녹아내린 계곡, 형형색색의 깃발을 들고 지역적 특색을 살린 복장과 춤을 추며 모여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떠들썩한 마을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들고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긴 행렬을 마다하지 않는다.
예수와 만년설 계곡의 만남, 거기엔 잉카의 슬픈 생존의 역사가 전해진다. 일찌기 태양신을 믿고 산신을 숭배하던 잉카인들, 그러나 500여 년전 잉카의 땅에 온 스페인들은 강제로 잉카의 왕을 카톨릭으로 개종한 후 처형했다. 스페인의 치하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잉카인들은 잉카의 수많은 신들 중 하나로 예수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산신으로 부터 살아갈 힘을 얻었던 잉카의 축제는 '예수'도 함께 하게 되었고, 그 축제의 현장은 우리네 마당놀이처럼 잉카의 왕에게서, 스페인 인들로, 그리고 지주로 수백년 동안 주인만 바뀌던 대농장, 탄광에서 채찍을 맞으며 '수탈'당하던 잉카인들의 슬픈 가난의 '해학적 승화'로 채워진다. 잉카의 순례는 곧 그들의 함께 버텨왔던 생존의 여정이다.
집으로 가는 길- 인생이란 '순례'
그래도 '종교'라는 형식을 가졌던 1부와 2부와 달리, 3부 <집으로 가는 길>이야 말로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인생 그 자체가 곧 '순례'의 본원적 의미에 가장 가닿는다. 세네갈의 레트바 호수, 장미 호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지만, 실은 염도 90% 이상 플랑크톤 외엔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이다. 하지만 이 '죽음의 호수'는 주변 국가에서 온 이주 노동자 500여 명에게는 '생업'의 장이기도 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도 거른 채 물 속에서 소금을 건져내며 사는 이들 중에 지난 58살의 이주 노동자 '우리쌈바'가 있다.
고향을 떠나온 지 16년 그의 '오롯한 소망'은 고향 기니로 돌아가 아버지처럼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땅이 없어 떠나온 땅, 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땅을 사려면 2백만 세파,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버는 돈은 겨우 900세파(약 8000원), 그 조차도 그의 소금을 사서 이웃 나라에 열 배 정도의 폭리를 취해 파는 중간 상인이 떼어먹기 일쑤다.
빈 통조림 깡통에 채워지지 않는 돈만이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니다. 소금 호수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수술을 해야할 정도로 눈에 이상이 생겼지만, 그는 자신의 몸보다 돌봐야 할 가족이 더 많은 가장이다. 일손이 필요해 거둔 두 명의 아내, 첫 번 째 아내에게서 난 자식이 일곱, 두 번 째 아내 사이에서 난 자식이 여섯, 심지어 두번 째 아내는 만삭이다. 이웃 나라에 돈을 벌겠다고 떠난 아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고, 아이를 낳기 위해 집을 떠나온 딸은 집에 돌아갈 비용이 없어 이곳에 1년 째 머무르는 처지다. 첫 번째 아내는 물론, 만삭의 두 번 째 아내마저 하루 800원 벌이의 소금 나르는 일을 하며 가사를 돕지만 '우라쌈바'의 형편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이 보이지도 않는 현실, 우리쌈바는 걸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평생의 소원이 소금지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라는 아내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세네갈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전망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도 않는 이 '이주 노동자'에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고행이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터벅터벅 호수를 향해 걸어가는 길은 진창 속에서 구르고 뒹굴어도 포기하지 않는 쇠똥구리의 일생과 다르지 않은 '삶의 순례'다.
4300km 한 걸음씩 나에게로- 인생을 배우는 학교로서의 '순례'
1,2,3부가 불가피한 선택과 생존, 그리고 인생 그 자체로서 순례를 정의했다면, 4부에서 순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의 대안, 치유로서의 '순례'를 더한다. 미국 서부 지역, 멕시코 국경에서 부터, 거슬러 캐나다 국경지역까지 4279km, 매년 4~5월 시작하여, 폭설이 쏟아지기 전 10월까지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나'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순례'를 떠난다.
크로아티아의 방송국 엔지니어로 일하는 39살의 니콜라 역시 그 길에 나섰다. 먼 타국의 낯선 행로, 일찌기 20대의 시절, 종교를 통해 자신을 찾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그는 마흔을 앞둔 나이에 홀로 다시 길에 섰다. 그리고 그가 선 길에는 그처럼 자연에 자신을 '오체투지'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30여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미뤄뒀던 소망이었기에 70넘어 늦은 퇴직과 함께 나선 이도, 걸을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라 생각해서 기꺼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온 60대도, 걷기 조차 힘들었던 릴랑바레 증후군에서 겨우 몸을 추스린 20대도 그 길 위에서 오로지 의지할 것은 자신 뿐이다. 따로 또 같이, 걸어가는 길에서 미처 한 구간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서로의 무사를 기원하는 동지가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물조차 구하기 힘들고, 단 이틀 만에 등산화가 구멍이 나버리는 폭염과, 폭우가 오가는 요세미티 국립 공원, 모하비 사막, 시에라네바다 산맥 등의 극한의 자연 속을 하루 13km씩 강행군으로 몰아쳐도 겨우 16%만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여정은 그들을 한없이 극한으로 몰아친다.
모든 것이 다 구해지고 가능한 도시를 떠나, 20kg이 넘는 짐을 지고 배고픔과 피곤과 싸우며 걸어가노라면 가장 기본적인 필요 외에 모든 것은 기꺼이 버릴 수 있게 되고, 그 극단의 상황 속에서 걷는 이들은 자연을 마주하며 '작은 입자로 흩어져 존재하는 신의 작은 조각'과 만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도달하게 된다. '국경없는 의사회'로 콩고 내전 지역에서 활동하다 마음의 상처를 얻었던 30대의 간호사는 비로소 그곳에서 잃은 동료와 자신을 도망치듯 두고 온 그러나 도망칠 수 없었던 콩코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오직 자연만이 존재하는 그 '순수한 경지' 속에 자신을 돌아보고 비로소 자신을 인정하게 되는 치유의 시간, 마지막 한 구간을 앞두고 결국 내리는 눈 앞에 여정을 완주하지 못했다 해도, '자신'을 찾은 이들에게는 '실패'가 아니다. 그곳에서 인생을 배운 이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떠나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인간이 두 손을 땅에서 떼고 두 다리로 걷는 순간, 인간은 드디어 인간다워 졌다. 그의 자유로워진 두 손은 많은 것을 만들어 냈으며, 두 다리로 지탱하는 뇌는 동물들과 다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 '걸음',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 본연의 '인간다움'을 잊은 채 살아가는데, kbs 대기획 <UHD 순례 4부작>은 바로 그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UHD 화면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두 다리로 굳건히 버텨내는 인간의 고된 삶, 거기에 바로 우리 인간의 존재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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