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포세대, 5포세대, 젊은 층을 상징하는 저 '포기'의 규정 안에 꼭 들어가는 요소가 있다. 바로 결혼! 인구 1000명당 결혼하는 사람 5.9건, 남성 40%, 여성 58%가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라고 답하는 시대, 결혼이 미친 짓이 되어버린 시대, '비혼'이 사회 문제가 되고, '결혼 고시'라는 말이 등장하는 시대, 결혼적령기에 달한 28살의 피디가 직접 발로 뛰어 청춘들의 결혼 실태 보고서를 작성했다. 바로 <mbc 다큐 스페셜-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다. 




결혼은 언감생심, 청춘의 사라진 봄날
결혼식장 예약은 차고 넘치고, 청첩장은 이제 진화를 거듭하여 카톡으로 전송되는 세상, 하지만 과연 누가 결혼을 하는 것일까? 피디 5년차, 이제 막 정규직이 된 피디가 만나본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 청춘의 봄날조차 막연한다. 24일 방영된 1부는 그 청춘들의 결혼은 커녕, 연애조차 꿈꾸기 힘든 현실을 다룬다.

통계청 발표 2016년 청년 실업률 12%, 그러나 체감 실업률은 34%, 입시를 통과하여, 대학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청년들은 여전히 '시험 준비' 중, 혹은 구직 중이다. 그런 청년들에겐 '결혼'은 먼 나라의 일, 심지어 연애조차 사치가 되었다. 결혼을 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취업을 해야 결혼도 꿈이라도 꿔보지, 하지만 사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청년들에게 결혼은 먼 미래의 일, 당장 연애조차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 먹어도 쉽지 않다. 한국의 결혼 비용 2억 7천만원, 장갑을 만들어 파는 28살 예비 신부가 잠도 안자고 50살까지 만들어야 댈 수 있는 금액이다.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불황을 이제 넘어서고 있다는 일본, 하지만 장기간 경기 침체가 낳은 것은 젊은이들의 '결혼 포기' 풍속도, 이제 일본의 젊은이들은 '러브 호텔'이 폐업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거나, 그 욕구를 아예 봉쇄한 '신족속'으로 일본이란 사회의 재생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연애를 학원에서 배우기에 이르렀을까. 

중국이라고 다를까? 경제 성장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부국 중국, 하지만 그 경제 성장의 열매가 모두에게 고루 나뉘어 지는 것은 아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차별적 성과는 중국의 젊은이들의 결혼 풍속도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북경 출신의 있는 집안 자제들은 '돈을 뿌리는 결혼 이벤트를 벌인다. 하지만, 그런 부의 그늘 속에서 북경으로 올라온 지방의 젊은이들은 부동산 시장의 버블 현상 속에 4차 독신 혁명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에 놓여있다. 

결국 중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자본주의 사회는 고도화되어가지만, 그 속에서 그 경제의 성과물이 젊은이들에게 고루 배분되어지지 않고, 오히려 이제 '결혼'과 연애를 사치로 여길 정도로 '젊은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음을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보여주고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래도 하늘 아래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이런 현실을 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결혼에 도전하는 '용자'가 있을 텐데, 10월 31일 방영된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2부는 바로 '결혼의 용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그 용자 중 한 명은 이 당돌한 다큐를 발로 뛴 피디 자신이다. 

이제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에 안착하게 된 피디, 연하의 남친도 생겼다. 당연히 결혼 말도 나올만, 두 사람은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의 여정에 함께 돌입해 본다. 하지만, 그 첫 여정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돈', 전셋집을 알아보려니 엊그제 1억이라던 전셋집이 며칠 뒤에 1억에 4천을 얹어줘도 없단다. 결국 서울에서 집 구하기를 포기하고 길을 떠난 두 사람, 경기도 언저리의 아파트, 아니 빌라는 얻으려 하니, 1층의 식당 들에서 흘러오는 고기 굽는 냄새를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주거 조건이 열악하다. 그러면 우선 집은 뒤로 미루고, 결혼식 비용은? 겨우 골랐다는 드레스는 제일 비싼 거고, 그 남들 다간다는 몰디브 신혼 여행 비용은 1인당 천만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겨우 대학 등록금 융자를 다갚고 다시 빚을 얻어 결혼을 하려 하니, 빚만 갚다 마는 청춘이란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난다. 과연 이렇게라도 해서 결혼을 해야 할까?

그런 피디의 회의는 결혼이란 제도를 다르게 통과하고 있는 커플에 시선이 돌려진다. 중식이 밴드의 리더 중식씨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여성, 그 두 사람은 결혼이란 형식에 소비되는 비용이 너무 아깝단다. 결혼을 해도 헤어지는 것이 비일비재한 세상에, 당장 자기 앞가림도 힘든데, 돈을 들여 결혼을 하다니, 그래서 두 사람은 짐을 합치고, 아기 대신 아기같은 강아지 두 마리와 산다. 향후 5년, 아니 최소한 3년은 이 생활을 책임질만 하단다. 

아기가 없는 부부는 또 있다. 각각 직장 생활을 하는 박준모-박미정 부부, 두 사람의 명절은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하는 대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불효 캠핑을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서로를 집이라는 직장의 동료라 칭하는 두 사람은 아기 대신 고양이를 키우고, 육아 대신 자기 계발을 위해 기꺼이 2년간의 해외 근무를 자원한다. 

물론 결혼도 하고, 아기를 낳은 부부도 있다. 만화가 김영석-전정미씨 부부, 그들은 서울 살이 대신 부모님이 계시는 지방으로 내려와 아이를 낳았다. 함께 아이를 돌보는 두 사람의 일상을 채우는 것은 그들의 이쁜 아들, 그래도 남편은 만화 연재를 계속하지만, 아내는 아버지가 아이를 돌보아 주기 시작한 최근에 이르러서야 다시 만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단돈 500만원으로 결혼하기 란 만화로 이름을 알렸던 부부, 하지만 부부는 입을 모아 말한다. 결혼은 돈을 안들이고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무조건 주변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아이러니하게도 2부의 다큐에 등장한 세 쌍의 부부, 그 세 커플 중 인간의 아이는 오로지 한 커플에게만 있다. 나머지 커플의 아이는 개와 고양이, 인간의 아이보다, 동물들이 '아이' 노릇을 하는, 결혼을 어찌어찌 했지만, 아이는 부담스러운 현실을 다큐는 의도적이지 않게 증명하고 만다. 

물론 다큐는 이제 막 불투명한 앞날에도 불구하고 , '사랑'이란 이름만으로 결혼을 감행한 부부의 인터뷰를 끝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1부에 이어, 2부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2부 마지막의 그 희망적인 언급이 마치 인지 부조화처럼 느껴진다. 아직 남편이 학생이라는 부부는 그 평균 2억 7천만원이라는 결혼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결국 '북경 토박이'의 화려한 결혼식처럼 부모님이라는 뒷배가 없었다면 그렇게 '사랑'이란 이름을 내걸고 결혼을 감행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 육아의 도움을 받는 만화가 부부는 또 어떻고. 야심차게 이제 직장도 생겼으니 결혼을 해볼까 하다가, 실제 결혼 준비 과정에서 멘붕에 멘붕을 거듭하다, 졸업하자 마자 등록금 융자를 갚다가, 그게 끝나니 주택 융자, 그게 또 끝나면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없을 현실과 미래의 삶에 눈물을 보이고 만 피디처럼 2부작 <우리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는 청춘들을 자발적 비혼으로 떠밀어 버린 사회, 결혼이 미친 짓이 된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들고 있던 건강한 노동의 기본 단위였던 '가정'을 제도 자체가 파괴하는 딜레마를 증명한다. 과연 청춘들의 건강한 재생산조차 보장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 가치가 있을까? 


by meditator 2016. 11. 1. 05:52

구글에서 '길거리'를 검색하면 어떤 것들이 뜰까? 영어(street)나 일어(‘通り)로 검색하면 일반적인 길거리 사진들이 뜬다. 하지만 한국어로 '길거리'를 검색하면, '맙소사!', 거리의 풍경 대신 짧은 치마나 반바지, 스키니를 입은 여성들의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촬영한 '몰카'사진들이 대거 뜬다( 10, 16일 여성신문 보도)


이는 대한민국이 몰카의 왕국임을 증명한다고 '여성신문'은 결론내린다. 이에 덧붙여,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관음적 행위'의 결과물인 '몰카'에 대해 대다수의 남성들이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우스개처럼 혹은 마치 훈장인 양 여성을 훔쳐보는 것을 관행화시킨다. 그래서 수영 선수로 부터 의대생, 의사, 경찰 등 평범한 사람들이 몰카를 찍은 혐의로 법적인 수사 대상이 된다. 



관음이 일상화된 대한민국 
이러한 우리 사회의 '관행적'인 관음적 범죄를 통해 드러난 것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공간 '길거리'가 사실은 여성들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요, 심지어 그녀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범법 장소'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0월 30일 방영된 <sbs스페셜-불안한 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여성들이 안심할 수 없는 '일상의 공간'에 시선을 돌린다. 

여성 중 70%가 넘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잠재적으로 범죄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왜? 남성과는 다른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혹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받은 교육때문에. 하지만 다큐는 바로 그 여성들의 공포의 근원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공간의 공포로 부터 비롯된 바 크다고 주장한다.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치안의 질서가 안정되어 있다는 대한민국, 그러나 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실존은 드러난 치안율의 수치와 다르다. 실제 강력 범죄 희생자 중 84%가 여성, 전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살해되는 몇몇 나라에 속하는 대한민국, 그것이 바로 여성들이 안심하고 '거리'를 나다닐 수 없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공포가 된 일상적 공간 
이런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다큐는 실제 사례로 접근한다. 바쁜 일과에 틈을 내어 자신의 몸을 단련하는 여성, 그러나 그 여성의 속내는 복잡하다.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잠시 찾아간 화장실, 거기서 만난 취객은 다짜고짜 그녀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다. 다행히 동료들의 제지로 더 이상 폭력은 없었다지만, 그녀에게 그 남성의 억센 손길과, 폭력적인 태도와 눈빛은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다. 가장 대중적인 장소인 화장실, 하지만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곳은 여기 뿐만이 아니다. 

이 글의 처음에서 등장한 길거리는 '몰카'를 넘어 여성들에게는 언제라도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공간'이다. 해가 진 거리에서, 그리고 조금이라도 으슥한 골목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같은 장소를 향해 가는 오빠와 누이 동생, 하지만 그들의 행보는 다르다. 지름길이라는 이유로 일직선상의 어두운 골목을 덤덤하게 향하는 오빠와 달리, 여동생은 큰 길을 에돌라 약속 장소로 온다. 외향적인 성격임에도 늦은 밤 귀가가 두려워 일찍일찍 집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여동생은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거리에 식구들의 마중을 받는다. 

거리만이 아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이동수단이 된 지하철, 그리고 건물 내의 이동수단이 엘리베이터에서도 늘 여성은 '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홀로 탄 엘리베이터, 그리고 사람으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늘 여성은 긴장하고 두려움에 떤다. 

그렇다고 집이라고 안심이 되는 건 아니다. 홑가구가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 홀로 사는 여성들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너무나도 많다. 집앞에 몰래 달아놓은 몰카를 통해 비밀 번호를 알아내, 늦은 밤 도어락을 여는 검은 손, 그리고 혹시나 거리에서 부터 쫓아온 괴한이 혹시라도 집까지 쫓아올까 집에 들어서도 한 동안 불을 켜지 못하는 안슬픈 상황이 우리 여성들의 현실이다. 



이렇게 일상의 공포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공포심은 실제 공포 영화를 볼 때보다도 더 극심했다. 더욱이 언젠가 단 한번이라도 겪은데서 잠재되어 있는 트라우마는 언제나 비슷한 상황이면 공포를 되살려 낸다. 

여성학자들은 인류 역사의 지난 2000여년간을 남성 지배의 역사라 규정한다. 남성이 지배하는 구조에서 약자로서, 을로써 언제나 그 존재를 보장받기 힘들었던, 그래서 자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 그나마 당당해졌던 여성. 거기에 한국 사회가 가진 전근대성은 그런 남성 중심 사회의 퇴행적 모습을 강화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관행화되었던 '성적인 관례'들이 앞다투어 고발되어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들은 여전히 육체적 약자로서, 그런 여성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분노를 투영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키는 남성들에 의해 여전히 삶의 공간 곳곳에서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을 다큐는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여성들의 존재론적 공포감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by meditator 2016. 10. 31. 05:48

2010년 기준 한국의 다이어트 관련 산업은 3조원에 육박한다. 그 '다이어트'의 강박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국내 비만 인구는 오히려 1.6배 늘어났고, 그중 초고도 비만 인구도 2배 넘게 증가했다. 2025년이 되면 인구 17명 중 한 명이 비만이 될꺼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비만'과 '비만'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의 부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오죽하면 '비만은 전염병'이며, '비만세' 도입이 현실화되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여러 시사 프로그램이 '건강' 혹은 '다이어트'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1년 사이 여러 다큐 프로그램들이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방영했지만 그 중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은 <mbc스페셜>과 <sbs스페셜>이다. 이들 다큐는 기존 우리가 건강과 건강 관리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 건강이데올로기의 새 장을 열었다. 첫 포문을 연 것은 sbs였다. 



비만의 주범, 얼굴이 바뀌다.
2015년 9월 <콜레스테롤을 허하라>라는 획기적인 기획으로 기존 건강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렸다. 기존 건강에 대한 상식은 단적으로 '기름진 음식에 대한 극단적 터부'였다. 건강 검진 기록부에 등장하는 총콜레스테롤, HDL, LDL, 중성 지방 등은 비만의 지표였고, 그로 인한 부작용의 증거였다. 하지만, 미국 식생활지침 자문위원회가 콜레스테롤을 우려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발표에 근거하여, 이 다큐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콜레스테롤과 혈중 콜레스테롤 사이에는 연관이 없음을 주장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콜레스테롤의 주범으로 몰린 '계란, 버터' 등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했다. 
이렇게 포문을 연 SBS에 맞대응한 것은 11월 <MBC스페셜-채식의 두 얼굴>이다. 역시나 비만을 피하기 위해 선호되는 '채식'에 대해 '건강식'이 아니며 오히려 몸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주장을 방영했다. 
이렇게 기존의 건강관에 의문을 제기한 다큐는 2016년 4월 <SBS스페셜-설탕 전쟁>과 마찬가지로 4월에 방영한 <MBC스페셜-밥상을 뒤집다. 탄수화물의 경고>로 이어지면, 기존 비만의 주범이라 여겨졌던 콜레스테롤 등 대신 '탄수화물'과 '당'이라는 새로운 주범을 찾아냈다. 이들 다큐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비만의 원인은 바로 혈중에서 지방으로 전환되는 '당'에 있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가 '과다'하게 섭취하는 당은 몸안에서 뇌와 에너지를 위해 쓰여지는 약간의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방이나 콜레스테롤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과중한 '당'의 섭취를 소화해 내기 위해 과도한 인슐린 분비 등의 몸의 호르몬 체계가 무너지고, 그 결과 당뇨 등의 합병증이 생겨난다고 이들 다큐는 밝히고 있다. 즉 그동안 우리가 알던 비만의 주범, 그 얼굴이 바뀌는 순간이다.  



호르몬이 문제라는데
다큐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지난 7월 방영된 <SBS스페셜-다이어트의 종말, 마인드 풀 이팅>은 호르몬에 집중한다. 즉 과도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몸의 호르몬 체계를 파괴하여 제 아무리 식단을 조절해도 살이 찌는 최악의 요요를 불러오며, 결국 자신의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신체의 균형을 맞춰가는 호르몬 조절 다이어트를 주장한다. 이런 몸의 균형, 나아가 먹는 것 자체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한 SBS와 달리, 지난 19일에 이어 26일 방영된 < MBC스페셜-밥상 상식을 뒤집다, 지방의 누명 1,2부>는 역시나 파괴된 호르몬 체계를 되돌리는 다이어트 방식으로 '고지방 식이요법'을 주장한다. 

이 다큐가 주장하고 있는 다이어트 방식은 스웨덴 국민 20%가 실천하고 있다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식(LCHF)이다. 즉 몸에서 지방으로 축적되는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거나 먹지 않고, 그 반대로 유일하게 먹어도 혈당이 변화하지 않는 지방을 통해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이다. 이 다이어트의 장점은 그간 '다이어트'라면 굶거나 식단을 조절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동반했던 것과 달리,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것 외에는, 버터를 듬뿍 넣어 고기를 볶고, 국에 치즈를 더하는 등 포만감을 충족시키는 다이어트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난 1년간 양 방송사를 통해 방여되었던 다큐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신봉시되었던 콜레스테롤에 대한 신앙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비만의 원인에 대한 새로운 조명,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서의 몸의 균형, 호르몬의 균형과 조절을 내걸며, 탄수화물이나, 지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고하고자 한다. 



백가쟁명의 귀결점, 그 아쉬움
이를 위해 다큐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에 의거하여 비만한 사례자들의 다이어트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 제기 방식이 옳았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한결같은 방식을 전파한다. 심지어 <밥상을 뒤집다>는 그간 신봉되어왔던 심장병 발병 원인 데이터가 편의적 결과물이었음을 밝히고, <콜레스테롤을 허하라>는 세계적 의약품 1,2위를 다투는 심장병약 스타딘의 음모론을 제시하며 기존의 '건강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짚는다. 

문제 제기와 해결책 제시, 그 해결책에 따른 사례자의 성공이라는 방식을 공통적으로 답보하는 건강 다큐들이 이제 도달한 '호르몬 균형 및 조절'을 위한 심리 치료나 고지방식이라는 지점은 신선하지만, 그 역시 되돌아 보면 또 다른 다이어트의 도정이다. '콜레스테롤을 허라라'라는 문제 제기에서부터 '고지방식'까지 불과 1년의 과정에서 의견은 일취월장하고, 그 해결책은 '백가쟁명'이다. 어찌보면 건강한 문제 제기이지만, 하버드식 건강 식단에서부터, 호르몬 조절 요업, 그리고 이제 고기를 기름에 찍어먹는 과격한 고지방식까지 저마다 유일한 해법인 양 제시하는 것들이 완벽한 마침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날씬한 건강'을 원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건강 요법'을 제시하는 다이어트가 등장할 때마다 솔깃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점, 결국 문제는 탄수화물, 혹은 당의 과도한 섭취로 인한 비만이라는데, 과연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풍족한 식생활과 그로 인한 비만을 '탄수화물'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옳을까?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년에 고기 한 두번이나 먹을까 말까 하던 식생활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떡 벌어진 진수성찬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탄수화물' 탓이라는 지적은 어쩐지 자가당착이란 물음표가 뒤따른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사나바의 원시인을 운운하기 전에, 무엇을 먹더라도 '과잉'이 된 현대인의 딜레마가 문제가 아닌 건지. 

뿐만 아니라, <지방의 누명> 등에서 제시된 새로운 식이요법의 방식도 그렇다. 추어탕에 밥 대신 집어넣는 치즈 몇 장, 그리고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녹아내리는 버터 등, 외국에서 실용화되고 있는 식재료들을 '다이어트'의 명약인 양 보여주는 그 '무신경'이 안타깝다. 최근에야 우리에게 알려진 카카오닙스니 코코넛오일에서 부터, 브로콜리, 버터, 치즈 등, 우리 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들기름 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이 먹던 먹거리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식재료들이 오늘의 비만을 구하는 전도사들이라니, 어쩐지 또 따른 '황제 다이어트'를 보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담론, 그것을 발빠르게 소개해야 하는 사명감, 그리고 그에 발맞춰 변화하는 검색어, 하지만 이제 추어탕에 치즈를 넣어먹는 방식을 권장하는 기괴한 만병통치식 식이요법 대신,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가 쉬이 찾을 수 있는 것들에서 건강의 전도사를 찾아봄이 어떨까? 스웨덴이나, 미국의 명성에 기대기전에. 


by meditator 2016. 9. 27. 12:48

캥거루족, 어미의 육아낭 속에서 1년 여를 보내는 캥거루에 빗대, 부모에게 경제적 이유 등으로 얹혀사는 젊은이들을 뜻하는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을 이웃 일본을 통해서이다.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 늘어나며 나이가 들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격세지감이라고 그로부터 미처 십년이 되기도 전에 일본이 맞닦뜨린 그 '불황'은 이제 한국 사회를 덮쳤고. 우리 사회에도 '신(新) 캥거루 족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낯설지 않은 신 캥거루 족에 대해 9월 4일 <sbs스페셜-우리 집에 신 캥거루가 산다>가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웃 일본의 캥거루 족, 그리고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생소하지 않은 신 캥거루 족이지만, 전세계적 불황 속에 이런 독립할 수 없는 젊은 세대는 전세계적 고민이 되고 있다. 미국에는 대학 졸업 후 경제적 독립을 못해 결혼도 못한 채 부모에게 얹혀사는 트윅스터(Twixter) 족이 있고, 눈치없는 자식과 부모 사이의 내전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에서 유래된 탕기족이 프랑스에는 있다. 영국에는 부모의 은퇴 수당을 좀먹는 키퍼스가 있고, 중국에도 일정한 수입이나 직업없이 부모를 '갉아먹고'사는 컨라오 족이 있다. 

평생 엄마 아빠 그늘 아래 쉬고 싶다-효도가 최고의 재테그 
프랑스 영화 <탕기>의 주인공 탕기의 말처럼 캥거루 족은 '평생 엄마 아빠 그늘 아래 쉬고 싶'은 자식들이다.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985 9.1%에 비해 2010년 26.4%로 부모와 같이 사는 미혼 자녀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미혼 자녀만이 아니다. 경제적, 혹은 육아의 이유로 부모와 같이 사는 기혼 자녀의 비중도 4.2%나 늘었다. 물론 이 통계 안에 자녀의 편의가 아니라, 부모를 모시는 전통적인 '관례'가 있음을 감안한다 해도 급격한 증가율이다. 2016년 대한민국 청년 실업률 12.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저임금 고용불안 등으로 대졸 청년들 가운데 51%가 여전히 부모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캥거루 족에 대해 신 캥거루 족의 원래 의미는 결혼 한 뒤에도 부모와 같이 사는 자식들을 뜻하는 말이지만, 9월 4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결혼한 자녀는 물론, 결혼할 나이의 자녀들이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사는 사례를 '신캥거루족'의 범주에 넣어 다루고 있다. 



다큐는 여러 유형의 신 캥거루 족을 보여준다. 대기업 협력 회사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안덕호 씨 정년이 2년 남은 그지만 최근 그가 종사하는 산업의 불황 여파로 그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아직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 아빠가 되어 25살이 된 현재 세 아이를 둔 핸드폰 업체에 근무하는 큰 아들 내외와 대학원 다니는 딸까지 그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직장은 다닌다지만 한 달 벌이가 150만원 여, 하지만 안덕호씨네 한 달 생활비는 300만원이 넘고, 그건 온전히 아버지 안덕호 씨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은퇴 후 귀농을 하고 싶지만 후에 봉양을 할테니 집을 두고 가라는 아들 내외, 아버지가 능력이 되는 한 아버지 그늘에서 버티고 싶다는 아들의 의지에 아버지는 불가항력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서른 다섯이 되도록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인디 밴드 로맨틱 펀치의 기타리스트 강호윤 씨도 아버지가 여유 자금을 털어 실용 음악 학원까지 내주며 아들을 뒷바라지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끼니를 책임진다. 그런가 하면 서른이 되도록 직장을 잡지 못한 취업 준비생 아들 김경한 씨와 김은정씨의 딸도 당연히 부모의 책임이다.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대신해서 목욕탕에서 일하는 가장 어머니에게 딸은 밀린 핸드폰비라도 내달라 '애걸'하는 신세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와주자니 끝이 없고, 외면하자니 능력이 없는 딸 앞에서 언제까지 너를 보살펴야 하냐고 오히려 읍소한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81세의 고충진씨 노부부는 곰팡이가 핀 낡은 지하 전셋집에 산다. 마흔이 넘은 아들이 있지만 이집엔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중동 공사 현장에서 일해 번듯한 아파트까지 마련했던 아버지, 하지만 대학원까지 나와 사업을 했던 아들은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아버지 집까지 날려 버렸다. 이제 노부부는 자신의 집도 없이 남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할 현실에 안타까워하지만 희망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자식 몰입 사회 한국, 하지만 결국 문제는 개인이 독립할 수 없는 사회
세계적 불황, 거기서 비껴가지 않는 한국 사회에 신캥거루 족은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이기에 더 특별한 이유도 있다. 6,25전쟁 이후 자식 교육만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을 담보한다 생각했던 그 후 현대사에게 온전히 자식에게 몰입했다. 그래서 전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자식에 대한 헌신은 화려한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일구었지만, 그 결과 2016년 대한민국 현실에서 보여지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그리고 그 반대 급부로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은 자식을 여전히 '아기'처럼 여기는 '독립'하지 못한 부모와 자식이라는 성숙되지 못한 '가족 관계'를 낳는다. 다큐는 이런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가족적 인식을 '노후에 봉양할 테니 지금은 가능한한 부모의 도움을 받겠다'며 당당히 손을 내미는 자식들과, 심지어 '아기'라 부르며 끼니에서부터 벌이까지 노심초사 뒷바라지를 하는 , 그러면서도 독립할 능력도 되지 않는 자식에게 결혼과 아이를 바라는 부모들을 통해 다큐는 보여준다. 



하지만, 그저 한국적 특수한 가족 관계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런 '전근대적 가족' 관계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넘어, 현재 한국 사회가 '신캥거루 족'을 배태한 원인을 다큐는 '사회'로 귀결시킨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일찌기 독립하여 병원에서 일하게 된 김현두씨 계약직으로 전국을 전전했던 그녀는 이제 또 '해고'도 못되는 '계약 해지'의 현실에서 절망한다. 돈을 벌면 부모님을 도와줄 수 있으려니 했지만, 계약직으로 전전한 그녀가 결국 향하게 되는 것은 고향 집이다. 

청년층이 첫 직장을 잡는데 걸리는 기간 평균 12개월, 하지만 그 조차도 상당수가 계약직인 고용 불안이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녀들에게 '경제적 독립'은 먼 꿈과도 같은 일이다. 또한 한 개인의 경제적 실패를 온전히 그 개인, 그리고 가족이 짊어져야 하는 '가족 책임'의 사회에서 부모는 책임의 수레바퀴에서 쉬이 벗어날 수 없다. 4,50대의 70%, 그리고 6,70대의 53%가 은퇴 준비 대신 자녀를 우선 지원하겠다는 부모 세대의 인식은 이런 한국 사회의 불안정한 구조를 견디는 버팀막이 되고 있고, 그 현실이 '신캥거루 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다큐는 강조하고 있다. 
by meditator 2016. 9. 5. 06:53

2016년 광복절 특집 방송은 리우 올림픽덕분에 몇몇 다큐를 빼고는 그래도 구색맞추기라도 한 편씩은 있던 특집 드라마조차도 이젠 찾아볼 길 없다. 그나마 다큐도 kbs1이 공영방송으로서의 구색을 맞춰 다각도의 특집 다큐를 마련한 반면, mbc는 한 편으로 면피한 반면, 그나마 sbs는 광복절 경축식 외에는 별도로 마련된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없다. 한 연예인의 일본 전범기 관련 논란이 sns로 부터 시작하여 검색어 1위로 '광복절'의 해프닝을 톡톡히 벌인 반면, 정작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외국인 타일러도 '노는 날' 이상의 '자주적 권리와 자유를 되찾은'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상황에서 정작 리우 올림픽 중계에 열을 올리는 방송은 면피용 다큐 외에는 이렇다 할 '광복'의 경축을 할애하지 않는다.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다큐들 
그런 가운데에도 다큐는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71주년 광복절에 기릴만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광복절 특집 다큐를 마련한 kbs1은 2부작으로 구한말 항일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의병과 유학자들을 2부작으로 다루었다. 그 첫 번째 13일 방영된 <발굴 추적>은 106년만에 처음 공개되는 서구 결사록을 통해 서간도로 망명한 유학자들이 주축이 된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다. 이어 15일에는 무장 항일 투쟁을 하다 사형당한 병법 전문가이자, 시인인 이강년 의병장의 생애를 다룬다. 그런가 하면, 오전 11시에는 여성 저격수 남지현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항일 투쟁의 흔적을 다룬 <독립군의 길을 가다, 1,129km의 기록>를 방영한다. 

이렇게 그간 알려지지 않았거나, 새롭게 조명되는 항일 독립 투쟁을 다룬 다큐들과 함께, 올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일제에 의해 '경계인'의 삶을 강요받은 재일 동포 등의 삶을 다룬 다큐들이다. mbc는 광복절 특집 다큐로 <아버지와 나, 시베리아, 1945년>를 통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젊은이들이 일본 패망이후 전쟁 포로로 넘겨져 소련 수용소에서 수용되었던 방기된 역사, 하지만 2003년 일본에 의해 보상 청구가 기각된 끝나지 않은 고통의 기록을 다룬다. kbs1은 8월 14일 <자이니치, 김수진 직진하다>를 통해 재일동포 2세의 삶을 다룬데 이어, 15일 당일에는 <kbs스페셜-빼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 회>를 통해 재일동포 1세들의 현재를 기록한다.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가 경직되어 가는 시점에서, 일본에 의해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이 외면하고 하고 있는 역사의 상흔을 폭로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15일 방영된 <kbs스페셜-빼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회>는 주목할 만하다. <자이니치, 김수진 직진하다>가 경계인의 도전을 그렸다면, <빼앗긴 날들의 기억>은 일본 한 구석에서 조용히 쓸쓸하게 늙어가는 대신, 거리로 나와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목소리를 높이는 재일동포 1세 할머니들의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재일 동포 1세대 할머니들의 화양연화 
다큐의 시작은 지난 6월 가와사키 공원의 집회이다. 예정되었던 반한 헤이트 스피치(인종 차별 발언), 하지만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뜻있는 사람들의 반 헤이트 스피치로 인해 헤이트 스피치는 무산되었다. 그 반 헤이트 스피치 집회의 스타는 다름아닌, 올해 79살이 되신 조양엽 할머니였다. 노년의 재일동포 할머니가 반 헤이트 스피치 집회까지 나서서 '전쟁 반대'를 외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양엽 할머니의 '전쟁 반대'는 그녀의 삶이 증명한다. 

가와사키는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사쿠라모토는 대표적인 재일 한인촌이다. 그곳의 복지법인 세이큐사에는 매주 화요일 재일 한국인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일명 '도라지 회', 할머니들은 이곳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함께 춤을 배우고, 글을 배우며 친목을 다져왔다. 한인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그들의 끈끈한 정에 기반한 여러 단체들이 있었지만, 이제 재일동포 1세들이 태반 세상을 뜨고, 그 2세들이 일본 사회에 '귀화'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단체들이 사라졌다. 가와사키에 남아있는 건, 도라지 회가 거의 유일할 정도로. 도라지 회의 할머니들은 이제사 이곳에서 글을 배운다. 일본어도 배우고, 한글도 배우고, 그  어렵게 배운 글로,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며 뼈저리게 느낀 바대로, '전쟁 반대' 피켓을 만들어 들고 거리로 나선다. 

할머니들의 삶은, 나라를 빼앗긴 자의 삶에, 가부장제 그늘에 갇힌 여성의 삶, 그리고 가난한 자의 고통이라는 삼중고로 점철된 생애였다. 낡을대로 낡은 저고리 뒤에 교통편을 적은 채, 홀홀단신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온 열 댓살 먹었던 아이, 아버지는 딸을 만난다는 기쁨에 항구로 나갔지만, 정작 거지꼴인 딸을 보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식이다. 일본에 돈벌러 가서 소식없는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온 다섯살 배기 딸이라거나, 오빠 손에 이끌러 돈 벌러 온 열 두살 먹은 아이라던가, 할머니들의 일본 생활의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아버지가 새로 옷을 사입힌 소녀의 삶은 그렇다고 그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남자들도 들어가기 꺼리는 탄광 일에서부터, 할머니들의 지난 세월은 가족을 지키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안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상급 학교를 진학하라 했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에 꿈도 꾸기 힘들었던 소녀, 아니 일찌감치 돈을 벌러 나가다 보니, 일본어도, 한국어도 배우지 못했던 소녀들, 그녀들은 자식조차 떠나보내고, 홀로남은 이제서야 글을 배운다. 패망하기전 한인들을 그토록 혹독하게 일을 시켰던 일제는 정작, 패망 이후 한인들을 그들이 하던 일로부터 방출한다. 다니던 공장에서, 탄광에서 밀려난 한인들, 결국 가족들을 위해 일본인들이 안먹는 내장을 구워팔고, 밀주는 만들어 팔기 시작한 건, 역시나 여인들. 그렇게 할머니들은 '몇 번을 지더라도 녹슬지 않'는 저력으로 한인 사회의 견인차가 되어왔다. 

하지만, '녹슬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삶은 없었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어미로, 정작 자신은 피어볼 새도 없이, 어느덧 허리가 굽었다. 다큐는, 도라지회의 활동을 통해 이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자신을 찾아가며, 반헤이트 스피치에 나서서 자신의 살아온 삶의 이력에서 우러난 소신으로 '전쟁 반대'를 외치는 자기 주관을 가진 할머니들의 활동과 함께, 할머니들 각자의 인생 역정을 들려줌으로써, 할머니들의 삶과 그 주장의 울림을 깊게 한다. 그저, 살아온 이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이 거리에 선 이유가 충분히 공감될 만큼. 쟁동포 2세가 경계인이라면, 1세대 할머니들은 몇 십년을 일본에서 살아, 이젠 한국말조차 서툴지만, 한글을 배워 자신을 확인하는 여전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이었다. 

by meditator 2016. 8. 16. 06:57

광복절이 71주년이다, 벌써. 하지만, 7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우리 국회의원들의 독도 입성이 '정치적 행위'가 되어야 하고, 그 상대편인 일본은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정치적 긴장감은 미국의 동아시아 벨트라는 전략적 군사적 연합에도 불구하고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광복한 지 70년이 지나도록 두 나라 사이의 알력이 쉬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은 어떨까? 8월 14일 방영한 <다큐 공감>은 자이니치 연출가 김수진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그 경계에서 쉬이 자유롭지 않은 재일동포들의 삶을 다룬다. 




자이니치, 경계인의 삶
'자이니치'(在日, ざいにち) 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통칭하는 표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재일 한국인들을 뜻한다. 재일 한국인, 그들은 일본에 살며, 여전히 종종 일본인들에게 '조센징'이라 놀림을 받는 처지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일본에 온 사람들이 아니다. 대부분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 등으로 '끌려온' 사람들, 그러다 발붙이고 살다보니 이제 2세, 3세까지 일본에 살게 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귀화'하지 않는 한 '자이니치'로 여전히 '국외자'로 취급받는 경계인들이다. 

경계인들의 삶은 어떨까? 도쿄케이자이 법학부 교수가 된 자이니치 서경식은 그 경계의 삶을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라는 학문의 영역으로 풀어낸다. 조선, 대한민국, 일본 그 어디에서도 정체성을 확인받을 수 없는 그의 존재가, 역사와 사회의 경계성으로 확산된 것이다. 와세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나가노 데쓰오였던 강상중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한국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그 되찾은 한국 이름으론 일본 사회 진출이 어려워 독일로 유학을 가야만 했다. 그렇게 독일에서 공부한 정치학, 그는 일본의 근대화와 전후 정치사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을 가차없이 하며, 비판적 지식인이 되었다. 그의 '경계'가 그의 '비판'의 토대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내노라하는, 책만 내놓았다 하면 베스트 셀러가 되는 학자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경계'라는 그 모호한 정체성 위에 놓여있다. 일본인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 일본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국에서도 환영받는 존재도 아니다.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한국 이름을 지키고 살자니, 일본 사회 내에서 삶은 고달프다. 이것이 여전한 '자이니치'들의 삶이다. 

그들 중 김수진은 대부격인 사람이다. 그의 일본인 아내는, 만약에 그가 '귀화'를 한다면 많은 자이니치들이 실망할 것이다라며 눈물짓는다. 재일 한국인의 대부, 대표적 연출가. 그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유학왔다가 일가를 이룬 아버지가 물려준 이름 김수진을 고집하며, 30년째 연극 활동중이다. 그가 꾸려가고 있는 신주쿠 양산박은 일본인과 자이니치 단원들이 혼재되어 있는 극단으로, '자이니치'의 이해와 공감을 높일 수 있는 작품들을 주고 공연해 왔다. 

나날이 경직되어 가고 있는 한, 일 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한국의 연극인들을 찾은 김수진, 그들과의 술자리에 그는 '조센징'이라 놀림받던 젊은 시절, 연극이 없었다면, 테러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라며 토로한다. 그렇게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고통받는 김수진은 무기 대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백년, 바람의 동료들>, <두 도시 이야기> 등을 통해 조국을 떠나 일본에서 떠도는 자이니치들의 삶과 애환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일본 내에서도 큰 상을 휩쓸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연출가이지만, 그는 공연이 있을 때면, 직접 견인차를 운전하며 무대를 꾸민다. 그뿐이 아니다. 때론 할머니 분장도 마다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그뿐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극단의 재정을 맡고, 또 다른 단원들을 무대 의상이며, 무대 장치까지 품앗이를 한다. 하루 7000원 짜리 방에서 단돈 33만원으로 한국에서의 며칠을 보내는 그와, 신입 단원을 뽑기조차 힘든 형편의 극단, 하지만 그와 단원들의 열정은 쉬이 지치지 않는다. 가난한 극단의 처지는, 난파선에 휩쓸리는 자이니치의 고단한 삶을 구현하기 위해 무대에 물을 퍼붓는 그의 파격적 연출을 실현하는 '천막 극장'이라는 차별화된 공연 방식으로 실현된다. 덕분에 그와 단원들은 천막이 펼칠 수 있는 곳이면, 일본 신주쿠의 신사든, 한국의 왕십리 역이든, 그 어디서든 자신들의 무대를 펼친다. 



경계인으로서 살아남기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60줄의 그는 아직 어린 두 아이의 아버지다. 스스로 충실치 못한 아버지라 자신을 평하듯, 그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인 학교를 다니는 그의 아이들은 인삿말을 제외하고는 한국어가 낯설다. 뒤늦게라도 아이들에게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려는 그, 하지만 그도 안다. 지금은 한국인이기도, 일본인이기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20살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한다. 

그가 서두르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도 자신처럼 경계인이기 때문이다. 경계인으로서 부대끼며 살아가려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그들처럼, 가야인으로 태어나 신라의 명장이 된 김유신을 빗대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명해 들어간다. 일본 사회에서 살기 위해, 일본인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일본 사회에서 버틸 수 있다는 그의 교육관은, 곧 그의 신념이다. 그리고 그 신념에 따라, 그는 지난 30여년간 자이니치의 삶을 연극으로 구현해 왔으며, 그래서 이제 자이니치들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그것이 그가 일본에서 온전히 살아남는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6. 8. 15. 06:05

우리나라에는 종묘, 해인사 대장경판, 석굴암 등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훌륭한 조상들의 문화 유적이 많다. 조상들이 물려주신 유산이 세계인들 사이에서 어깨를 당당히 펴고 한 자리 차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우리 시대는? 우리 시대의 것중, '유산'이 되어 세계인은 둘째치고, 후손들에게 남겨 줄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대답엔 그 누구도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건설 입국'의 나라에서, '오래된' 것의 가치를 기리기 전에, '오래된' 것은 곧, '철거 대상'이 공식인 나라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는 세대가 될 지로 모를 일이다. 그런 우리의 풍토에서, 7월 24일 방영된 kbs1 <다큐 공감>을 통해 방영된 <낙원 상가 살리기, 내 인생의 콘서트>는 바로, 이런 우리 시대 문화 유산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현답'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40년 된 세계최대의 악기 상가, 낙원 상가 
낙원상가는 1968년에 지어진 곳이다. 5층의 상가에 15층짜리 아파트가 함께 하는 이 곳은 지어질 당시 한국 최초의 주상 복합 건물이었다. 1960년대식 한 글자가 실종된 '낙원삘'이란 건물 명패가 남겨져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아직도 건재한 채 오늘에 이른다. 처음 다양한 상품을 팔던 이곳은 '악기 상가'들이 하나 둘씩 자리잡으면서 이제는 300여 개의 악기상들이 모여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상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물론 '낙원 상가'라고 해서 '세월'을 순조롭게 넘기지는 못했다. '건설 입국'의 재개발 열풍이 이곳에도 휘몰아쳐, 2000년대 '도심 재창조' 명목으로 '철거' 위기가 닥친 것이다. 하지만, '건물 안전 진단' 결과, 한강의 모래와 자갈돌이 뒤섞여져 만든 이 건물은 여전히 못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100년은 끄떡없다는 진단으로 '철거'의 광품을 피해갔다. 무엇보다 '철거'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여(?) 이곳의 '악기 상인'들이, 악기상의 메카인 낙원 상가를 지키려는 꿋꿋한 의지가 시대의 얄팍한 욕심을 이겨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서울 중심의 '낙원 상가'처럼 곳곳의 특색있는 거리들이, 정부의 '도심 재창조'를 통해 전통이 무색하게 건물의 일부로 그 존재감을 상실하거나, 아예 둥지를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과는 다른 '거주민 의지'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세월을 거스르기는 힘든 법, 한때 도심의 중심 번듯한 주상 복합 건물은 종로 3가 도심의 한 구석에 웅크린 채, '최대 규모의 악기 상가'라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행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는 것이다. '통키타'붐이 일었던 시대에는 '기타'를 사기 위해 젊은이들이 뻔질나게 발길을 하던 곳, 그리고 '피아노' 열풍이 불던 때, '조율'과 '수리'의 메카였던 곳이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낙원 상가는 '낙후된 건물'이나, 추억의 장소로 여겨질 뿐이다. '낙원 상가'의 상인들은, '악기'가 필요한 사람들만 찾는 특수한 곳인 '낙원 상가'가 다시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민이 깊어진다. 

낙원 상가가 나이들어 가는 법
그 고민의 결과물은 '문화 유산으로서의 '낙원 상가'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활동이다. '중고 악기 기부 캠페인'을 통해, 이전에 악기를 사용했던 시민이나, 음악인들에게 악기를 기부 받아, 낙원 상가의 기술력을 통해 그 악기를 '소생'시켜, 악기가 필요한 꿈나무나, 학교, 직장들에 악기를 나눠주어, '음악'하는 문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또한, '반려 악기'캠페인을 통해 은퇴한 음악인이나 대중 음악인들의 품앗이를 통해, '음악하는 문화'의 저변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낙원 상가'는 그저 악기를 팔고, 수리하는 '상점'이 아닌, '문화 유산'으로서의 존재감을 새로이 정립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7월 24일 다큐가 다루고 있는 것은 7~80년대 인기를 끌었던 통기타 동아리 상투스 초기 멤버들의 콘서트이다. 낙원 상가에서 악기를 샀던 유명인들도 많다는 데 왜 상투스였을까? 1968년에 세워진 '낙원 상가', 그 상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의 통기타 붐과 함께 였다. 그리고 통기타 동아리 상투스는 70년대 만들어진 대학생들의 통기타 동아리로, 당시 대학생이었던 젊은이들은 통기타를 사기 위해 낙원 상가를 들렀고, 당시 산 기타와 함께 이젠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노년들이 되었다. 바로, 그들이 '낙원 상가'를 있게 한 음악의 향유자들이었고, 그런 그들과 함께 낙원 상가도 나이들었기에, 이 40년지기 벗들이 함께 한 공연의 의미는 남다르다. 기타를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기타'로 밥을 벌어먹고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기타'로 인해 인생이 행복하다는 사람들, 바로 그들의 존재가, 낙원 상가가 40여년을 버텨오고, 100년을 버텨갈 힘이 되는 것이다. 바로 악기를 나누어 주고, 평생 악기를 함께 할 문화를 만들 듯, 그렇게 '악기'와 함께 살아온 벗들의 공연이 바로 '낙원 상가'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을 끌기 위해 낙원 상가 4층 야외에 마련된 공연장, 거기에서 어스름 저녁에서 시작하여, 어둠을 밝히며 진행된 공연, 한때 장발의 머리로, 나팔 바지를 휩쓸며 기타를 둘러맨 젊은이들은 여전히 청바지를 입었지만 이젠 아들과 손자가 있을 정도로 희끗희끗한 머리를 숨길 수 없다. 그러나, 그 노년들이 무대에 서서, 서로가 눈빛을 교환하며 화음을 맞춰, 통기타 시절에 유행하던 팝송들을 다시 입을 모아 부를 때, 그들은 여전히 젊음이다. 그리고, 그 젊음을 소환해낸 낙원 상가는 '이 시대의 문화 유산'으로 멋지게 늙어가는 모습을 증명해 낸다. 

물론 콘서트는 조촐했다. 하지만, 도심의 한 구석에서 낙후된 건물로 늙어가는 대신, 그 늙음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부단히 모색하는 낙원 상가의 모습은, 이 시대 우리의 문화 유산의 방향을 제시한다. 영국의 오래된 서점 거리 '헤이 온 와이(hay on wye)가 이제 영국에 가면 들러봐야 할 유명 여행지가 된 이유는, 그곳을 즐겨 찾는 영국인들의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국의 부커상이 전 세계에 중계될 정도로 '책'이 문화가 된 풍토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러기에 '세계 최대'라는 악기 상가의 이름표 대신, '문화 공간'으로서 '낙원 상가'를 모색하고자 하는 모습을 다룬 <다큐 공감>은 소소한 도전이지만, 소중하다. 
by meditator 2016. 7. 25. 15:42

'딸이 없어서 어쩐대요. 나이 들어 마음 알아주는 딸도 없고, 함께 수다 떨 딸도 없어서', 아들만 둘을 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소리다. 마치 딸을 두지 않은 것이 가장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벗이 없는 것인 양 말을 해댄다. 그렇게 딸 가진 것을 유세하고, 딸의 효용 가치를 논하던 사람들, 하지만 현실의 딸들은 그렇게 엄마 마음을 알아주고, 엄마의 따스한 말벗이 되는 '딸'의 역할에 비명을 지른다. 7월 4일과 11일에 걸쳐 방영된 <mbc다큐 스페셜>의 이야기다. 


<mbc다큐 스페셜>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이 가깝다고 하는 사이 엄마와 딸에 대해 입을 뗐다. 하지만, 사랑과 헌신의 관계이자, 화기애애한 사이인 줄 알았던 우리 사회 모녀 사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갈등을 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부, <착한 내 딸의 반란>과 2부, <엄마처럼 안 살아>이다. 



착한 내 딸? 엄마가 미워요.
젊은 사람들 중에는 자식을 하나만 낳아야 한다면 '딸'을 낳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식에 의한 노후 봉양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렇다면 기왕이면 키우는 재미가 있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딸을 가지고 싶다는 변화이다. 

하지만 '친구 같은 딸'의 현실은 다르다. 익명을 빌어 인터넷 게시판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모녀 갈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올라온다. 부모가 자식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 '불효'라고 손가락질 받는 한국 사회에서, 모녀 갈들이 '정신과'에 갈 정도의 사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엄마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 같이 착한 딸에 대한 기대치는 '딸'들을 짖누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모녀 간에 빚어지는 갈등은 '컴플렉스'의 수위를 넘고 있다. 다큐의 1부는 우리 사회에 보여진 화기애애한 모녀 관계 이면에 숨겨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갈등의 현주소를 낱낱이 다룬다. 

천사 엄마, 현모양처 은정씨에게 엄마는 그녀가 극복해낸 암보다도 더 위협적인 존재이다. 엄마만 보면 솟구쳐오르는 화를 주체할 길이 없다. 그리고 엄마에게 화를 내는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상담 전문가 현아씨, 가정 불화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를 위로해주던 그녀가 언제부턴가 자꾸 엄마에게 신경질만 내고 있다. 좋은 학벌, 좋은 직업으로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지영씨는 이제 엄마와 인연을 끊으려 한다. 그녀에게 엄마는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었다. 그녀의 지난 인생은 그저 엄마의 꼭두각시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엄마로 인해 고통받는 딸들, 그런 딸들이 서운한 엄마들, 그리고 나아가, 그래서 인연을 끊고 싶어 하는 딸들, 유령 취급을 받는 70대 노모, 엄마에 대한 분노로 섭식 장애를 겪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 들, 이렇게 모녀 관계에서 문제를 빚고 있는 엄마와 딸들이 모여 2016 모녀 힐링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저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로 설득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를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불행의 대물림, 그 근저엔
엄마와의 갈등을 겪는 대부분의 딸들은 '난 엄마처럼 안 살아'라고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 아예 엄마처럼 될까봐, 자식을 낳는 것을 두려워하기 까지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모녀 관계의 근저엔, 엄마들의 '딸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혹은 소망으로 부터 비롯된 왜곡된 기대, 그리고 엄마의 굴곡진 삶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는, 현실의 굴곡진 모녀 관계로 부터, 그 갈등의 근원을 유추해 들어가고자 한다. 수십년 전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여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던 미하 씨, 그녀는 이제 그간 보험까지 하며 가정을 돌보느라 분주했던 지난 시간 못다했던 엄마 노릇을 다하기 위해 딸의 산구완을 해주려 했지만, 딸과 얼굴만 마주치면 갈등을 빚는 처지가 되었다. 오죽하면 딸은 한 달을 다 채우지 않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덟 남매의 막내로 자란 지현씨는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안아줘'라며 매달리는 딸이 귀엽기는 커녕 부담스럽다. 심지어, 몇 년전 딸에게 모질게 매질한 기억이 그녀를 내내 괴롭힌다.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홈스쿨링'까지 했던 엄마에게 딸은 엄마와 딸의 관계가 상전과 시종의 관계였다고 단언한다. 

다큐가 주목한 것을 현재의 불행이 아니다. 현재 엄마와 딸의 갈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현재의 갈등을 불러오게 만든, 엄마의 히스토리, 즉, 엄마가 그 엄마와 가졌던 관계, 그리고 나아가 우리 한국 사회의 가족의 역사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것은, 현재의 가족 관계까지도 짖누르고 있는 '가부장제'의 그늘이다. 

딸의 산구완조차 미처 마치지 못한 엄마 미하씨는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다. 8개월의 만삭으로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끓여대며 시누이 산구완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아이를 낳고 받은 것은 미역 몇 줄기가 들어간 멀건 국물이었다. 그렇게 모질게 시집살이를 겪은 그녀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딸, 하지만 그렇게 엄마의 학대를 지켜본 딸은 괴로웠다. 그 학대의 가해자 역시 그녀의 피붙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엄마의 고통스런 역사에 대한 배설구가 온전히 자기 밖에 없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거기에 생계을 위해 외면받은 자신의 시간에 대한 불만도 켜켜이 얹혀진다. 

경우는 달라도 근원은 비슷하다. 딸의 스킨쉽이 부담스러웠던 엄마의 기억 속엔 8남매를 키우느라 늘 자신에게 냉랭했던 엄마가 남아있다. 고된 생활에 지쳐 종종 부지깽이를 집어들던 매질의 기억과 함께, 결국 지금 자신의 냉랭함과 모진 매질의 유래가 자신의 엄마에게서 부터 기인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딸과의 관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문제가, 그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모녀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감정의 끈을 풀어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처럼, 자신의 어머니도 힘들게 살아왔음을 '역지사지'로 헤아리며 눈물마저 흘린다. 



하지만, 다큐는 이런 모녀 관계의 해소에 만족하지 않는다. '착한 딸, 친구같은 딸'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가부장제의 상흔이, 온전히 딸을 통해 감정적으로 해소되고 있는 우리 사회 왜곡된 관계의 구조가 현실의 모녀 갈등을 빚는다고 짚는다. 즉 지난 시절 가부장제로 인해 고통받은 어머니들의 고통을 사회가 알아주고 풀어주지 않으니, 엄마들은 딸에게 매달리고, 결국 자신의 삶도 살기에 버거운 딸들은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그런 어머니를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부장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왔던 우리 사회 모녀 관계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오늘날의 모녀 갈등인 것이다. 

모녀 갈등을 다루고 있는 2부작 <mbc다큐 스페셜>에서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박완(고현정 분)과 난희(고두심 분)의 모녀 갈등이 떠올려 진다. 두 모녀는 16부의 드라마 내내 참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심지어 딸 완이는 자신의 삶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 엄마 앞에서 자해를 하며 난리를 쳤고, 엄마는 그런 딸을 부등켜 안고, 때리며 울부짖는다. 물론 이 모녀 관계의 갈등은 엄마 난희의 암으로 인해 극적으로 해소되었고, 친구같이 서로가 이해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도 사사건건 손아귀에 쥐려 했던 완이를 그렇게도 반대했던 장애인 애인이 있는 곳으로 떠나보낸다. 딸 완이는 다큐가 주장하듯, 나의 엄마를 넘어, 불행했던 여성, 그리고 이제 암 앞에서 한없이 약한 사람 난희를 한 인간으로 직시한다. 서로가 나의 엄마, 나의 딸이라는 '소유적' 관계를 넘어, 한 '인간'으로 객관화시킨다. 더 나아가 마지막 회 훌훌 떠나는 어르신들처럼, 결국은 부모 자식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잔인하지만(?) 서로의 삶에 충실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제 아무리 착한 딸이라도, 딸이 지난한 엄마 삶의 피난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7. 12. 16:16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00세 시대라는 것은 그저 100세 까지 오래 산다는 것을 우리 사회 전반에,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삶에 대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즉, 오래 산다는 것은, 오래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고, 거기엔 오래 활동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가 따라붙는다. 그래서, 100세 시대를 맞이한 나이들어가는 삶은 그래서 녹록치 않다. 중년을 넘긴, 혹은 초로의 나이들어 가는 이들에게 이 후의 삶은 안락한 노후가 아니라, 또 다른 선택과 고민의 시간이 된다. 바로 이런 나이들어 가는 삶에 대한 선택에 대해 공교롭게도 7월 10일 밤 두 다큐가 길을 제시한다. 바로 kbs1의 <다큐 공감>과 <sbs스페셜>이다.


하루는 혜화동 고갯마루에 앉아있는데 마을 버스가 그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거예요. 평생을 혜화 전철 역에서 대학로 거리만을 오가며 쳇바퀴처럼 살아왔던 은수나 저희나 황혼기에 접어들도록 삶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충분히 뛸 수 있는데도 은퇴 위기에 놓인 마을 버스의 모습이 저희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마을 버스와 세 남자, 세계를 가다
7월 10일 <다큐 공감>은 '은수 교통' 출신의 마을 버스 '은수'를 타고 2014년부터 지난 2년간 페루에서 출발하여 중남미를 거쳐, 유럽을 지나, 이제 아시아 일주 중인 '중년'의 세 남자를 만난다. 

평생을 가장으로 '일벌레'임을 자임하며 살아왔던 임택(57세)씨, 그는 자신과 같은 운명이라 느껴진 마을 버스 은수와 함께 평생의 버킷리스트인 세계 일주를 계획한다. 그런 임택씨와 동행한 것은 IT회사에서 23년간 우직하게 일해왔던, 가정과 일밖에 몰랐던 정인수(47세), 하지만 그의 성실함에 아랑곳없이 2년 전 회사는 문을 닫았다. 하루 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 그는 '여행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고, 여행작가 모임에서 만난 임택씨와 함께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이제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위태로운 아시아 지역을 일주하기 위해, 그들의 '페친'이자 팬인 호주에서 온 실업자 총각 임성택(40세)가 합류했다. 

꿈을 찾아 떠난 여행이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9년6개월을 대학로를 오가면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늙은 버스 은수는 종종 불협화음을 냈고, 이제는 여유롭게 빨래를 하지 않고 오래 옷을 입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전파하기까지 여정은 험란했다. '쌀이 떨어졌다'던 아내의 말을 접어두고, 은수에서 자고, 밥을 해먹으로 한 달에 60여만으로 유럽을 일주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당장 가장으로 호구지책 대신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선택했다. 규정속도 60KM에 묶여있던 은수는 그 속도를 처음 넘어섰을 때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제 고속도로에서 유유히 화물트럭을 앞지를 정도로 능력자가 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70 정도의 은수가 해내었듯이, 세 사람의 여정도 그렇다. 돈을 벌어다 주는 가장 대신, 세계 곳곳에서 만난 우리의, 혹은 이방의 젊은이들이 그들을 '아부지'라 부르며, 그들을 통해자신의 꿈에 대한 의지를 얻는다. 이제 마지막 여정, 그들은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도전과 도전을 하려는 의지가 살아있고, 실행에만 옮긴다면 아직 청춘이다.'



젊음도 성형할 수 있나요?
이렇게 쳇바퀴같은 삶의 공간을 박차고, 새로운 도전을 한 '중년들이 있는가 하면, 7월 10일 방영한 <SBS스페셜>의 중, 노년들이 '젊음'을 추구하는 방법은 젊어지는 인위적 방식을 통해서이다. 

”젊었을 땐 사는 게 바빠서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는 게 돈 벌어야 되고 애들 길러야 되고, 나라는 존재가 나를 잊어버리고 살다가 딱 보니까 내가 너무 늙어가지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우울하고 마음이, 이거 아닌데. 나 10년만 좀 약간만 댕겨가지고 10년만 즐겁게 해피하게 (살고 싶어요)“ (석현자씨 대화 中)

다큐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수술대위에 눞는 '어르신'들을 찾는다. 2008년 서울시에서 4만8천 명의 가구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40대 이상의 가구원들 중 40%가 성형 수술에 대해 긍정했다. 33.4%, 24.1%의 2,30대에 비해 높은 수치이다. 과연 나이든 사람들에게 성형 수술은 어떤 의미일까?

위의 석현자씨(57세)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젊음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인 경우가 그 하나다. 이들에겐 '젊음' 자체가 인생의 목표요, 자신을 '사랑'하며, '존재감'을 회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석현자씨의 말처럼 이제는 그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자신을, 앨범 속 젊은 모습을 통해 보상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조금 더 절실한 욕구도 있다. '어르신'이란 소리가 싫었던 최홍선씨(70세)는 눈 성형을 비롯한 몇 번의 성형으로 자신의 평가론 해운대 백사장을 당당하게 활보할 젊음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늙은 자신의 프로필만 보고 외면했던 직장이 성형 수술 이후에 생겼다는 것이다. 몇 번을 더 성형 수술을 해서라도 젊음을 유지하여, 80까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이렇게 최홍선씨처럼, '젊음 예찬 사회'에서 나이 먹음은 곧, 사회적 퇴출로 여기며, 사회적 기회를 얻기 위한 절박한 선택으로 성형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무모한 도전' 역시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성형 수술 후 젊어진 자신의 모습에 거울을 놓칠세랴 만족을 표하는 석현자씨와 달리, 그녀의 남편은 주름을 당기기 위해 찢어진 눈매가 낯설다. 그나마 낯설기만 하면 다행, 조금 더 젊어지려는 도전들이 때로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안면 리프팅과 코 수술을 함께 받았던 이윤정씨는 수술 후 차오르는 고름과 함께 '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젠 마스크가 없이는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최근 범람하는 성형외과들로 인해, 이윤정씨 처럼, 애초 의도와 달리, 과도한 성형 권유가 빈번해지며 부작용의 위험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것보다는 젊어지고 싶은 욕구가 컸다는 석현자씨처럼, 2014년 12월 기준 성형 시장의 규모는 7조 5천억에 도달했다. 그 중 주름 제거, 필러, 보톡스 등은 2010년 31.6%에서, 2014년 48.6%로 4년 사이 17%나 증가 추세에 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하지만 100세 시대는 젊지 않음을 용인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명퇴를 해도, 살아갈 세월은 창창하고, 부양할 가족은 여전하다. 그 남은 세월을 어떤 삶으로 살 것인가, 우리 시대의 그 방식에 대해, <다큐 공감>과 <SBS 스페셜>은 서로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공통점은 늙음에 안주하지 않고, 청춘에의 욕망에 기꺼이 답한다는 것이다. 답은 쉽지 않다. 쌀이 떨어진 가족을 두고 떠나는 가장의 길도, 기꺼이 수술대에 올라 젊음을 되찾는 방식도. 그들의 꿈에 쉬이 박수를 쳐주기에 우리 사회의 현실은 각박하고, 성형 수술로 젊음을 되찾으려는 노년을 비웃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젊음'을 숭배한다. 노년의 바람직한 문화, 아니 사회 전체적으로 건강한 삶에 대한 공감이 없는 사회에서, 결국은 나이들어가는 각자가 선택할 몫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우리 사회 중, 노년의 삶, 그리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다. 

by meditator 2016. 7. 11. 17:32

28일 밤 당신은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하셨습니까? 아, 인기리에 방송 중인 월화 드라마 <닥터스>가 있으니 그걸 보셨겠군요,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또 오해영>도 있으니 이걸 보셨나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볼까요? 혹시나 이들 프로그램이 아닌 동시간대 다른 프로그램을 보신 분이라면 어떤 걸 보셨나요? <시사 기획 창>을 보셨나요? 아니면 <피디 수첩>? 또 다른 질문을 해볼까요? 29일 당신이 클릭할 기사는 어떤 것일까요? <피디 수첩>에서 방영한 박유천씨 관련 기사일까요? 아니면 <시사 기획 창>에서 방영한 대우 해양 조선 구조 조정과 관련된 기사일까요? 


하루 하루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바쁜 당신이지만, 그래도 '고소녀 인터뷰'라고 잔뜩 홍보를 했던  박유천 씨 관련 기사는 놓칠 수 없었다구요? 아닙니다. 이 또한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28일 방영된 <피디 수첩>은 방영 전부터 이날 프로그램과 관련된 홍보 기사를 다수 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방송 시간을 전후로 해서, 이날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내용은 캡춰 본과 함께 '무수한' 기사로 재양산됩니다. 물론 당신은 흥미로웠다고 했지만, 이 '흥미'는 다분히 '조장'된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 도시와, 그 도시에 살던 수만의 사람들, 그리고 그 일가들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생긴, 그리하여, 차후 한국 경제의 진앙지가 될 대우 해양 조선을 다룬 <시사 기획 창>에 대한 후발 기사는 단 한 줄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난다 하더라도 '박유천'씨의 기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일 겁니다. 이 상황이야 말로 <곡성>의 '무엇이 중하냐고? 무엇이 중한디?'라는 대사가 딱입니다. 



길을 잃은 조선업, 그리고 갈 곳을 잃은 사람들
6월 28일 <시사 기획 창>은 '긴급 르뽀, 구조 조정 현장에서 길을 묻다'를 방영했다. 프로그램 제목에서 '긴급'이란 수식어가 들어갔듯이 최근 한국 사회 전체를 위기롤 몰아넣을 진원지가 될 조선업의 구조 조정 위기를 다룬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1972년 조선소도 지어지지 않은 울산 백사장에서 현대 조선 기공식으로 첫 삽을 떴던 우리나라의 조선업, 1989년  대우 조선 직장 폐쇄라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2000년 세계 1위의 혁혁한 성과를 이루었던 한국의 대표적 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 

카메라가 처음 향한 곳은 거제의 인력소개소이다. 새벽 인력 시장, 거기서 만난 것은 'dsme'라는 대우 해양 조선 이니셜이 새겨진 작업복을 아직도 입고 있는 한때 그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다. 이 새벽 인력 시장을 찾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60%에 해당하던 이들은 대부분 '물량팀'이라는 이름으로 대우 조선 인력의 7~89%를 채웠던  협력업체 직원들이거나, 재하청 계약직들이다. '구조조정'의 파고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들이닥쳐 이제 이들은 조선소에서 일하던 그 복장으로 새벽 인력 시장을 찾는다. 거리로 내몰린 것은 하청업체 직원들만이 아니다.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피해를 감당했던 하청업체들도 휘청거리거나 연쇄 도산 중이다. 그들이 머물던 주거지와 상가 거리는 이제 네온 사인 불빛만 적막하게 빛난다. 정규직이라고 안심할 것은 아니다. '솔선수범'을 외쳐보지만, 하반기부터 들이닥칠 구조조정으로 위기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조선업계의 불황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시사 기획 창>의 진단은 다르다. 이미 <썰전>을 통해 '해먹어도 너무 해먹었다'는 주인없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은 총체적 부실은 물론, 근본적으로 '해양 플랜트'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술력 부족'등으로 빚어진 경영 전략의 부재 혹은 판단 미스는 '분식 회계'를 불가피하게 만들 정도로 '불황'을 핑계 대기엔 너무나 치명적이란 분석이다. 그리고 그런 말 그대로 '부실' 경영은 고스란히 '경영 손실'로 이어지고 이제 '구조 조정'이란 이름 하에 조선업계 노동자들과 그 일가족, 그리고 한국 경제의 몫으로 귀착된다고 다큐는 밝힌다. 

심각한 것은 이런 대우 해양 조선의 침체가 그저 한 도시 '거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큐는 거제를 떠나 전남 광양으로 카메라를 돌려, 조선업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하지만 역시나 낙하산 경영진의 무책임한 경영이 문제가 되었던 전남 광양의 포스코로 전해진 여파를 전한다. IMF 시절에도 불황을 몰랐던 포스코, 하지만 779만톤의 생산 능력을 가진 포스코는 작년 자체 생산량을 577만톤으로 줄여 생산하며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체감 온도는 그 지역의 경기로 곧장 전해진다. 하지만 그런 포스코와 달리, 선제적인 구조 조정을 한 '동국제강'은 조선업계의 불황에도 4분기 연속 흑자를 내며, 불황의 늪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결국 세계적 불황이 조선업계 구조 조정의 '면피'가 될수 없음을 다큐는 밝힌다. 나아가 현재 조선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감당하기 힘든 '해양 플랜트 사업'에 대한 향후 전략과 경영 방식이 현 조선업계의 불황 해소의 관건이 될 것임을 다큐는 밝힌다. 덧붙여, 현재 정부가 '능사'로 삼고 있는 '인력 감축' 등의 구조 조정 방식이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법보다 앞선 가십 
이렇게 거제 현장에서 새벽 인력 시장으로 내몰린 대우 해양 조선 노동자의 모습을 담으며 거제, 그리고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조선업계 구조 조정을 생생하게, 하지만 차분한 분석과 대안까지 마련하려 애썼던 <시사 기획 창>과 달리, 28일 방영된 <피디 수첩>은 그야말로 '가십'의 결정판이다. 

그간 <피디 수첩>은 연예인과 관련된 사건은 다루지 않았지만 박유천씨 사건은 워낙 중한 사건이라 다루었다 라고 스스로 밝혔지만, 아직 '법률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이 사건이 왜 '시급한'지 이날의 피디 수첩은 설득하지 못했다. 박유천씨와 그의 소속사가 법률적 판단 이전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또 한 명의 피해자를 앞세워 박유천이란 연예인의 '관뚜껑'을 덮기에 급급했던 이날의 방송이 과연 필요했는지 여러모로 의문스럽다. 

이미 '민언련'을 통해 박유천씨의 고소 사건이 드러난 후 종편 방송 분량의 70%가 여기에 할애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통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피디 수첩>이 철저하게 한쪽의 입장에 의거하여, 자신들이 밝히듯이 '한류 스타'라는 연예인을 파렴치범으로 단죄하는 방송을 했는지 의문스럽다. 

최근 박유천씨의 국내외 팬클럽 등이 밝힌 성명서에 따르면, 아직 법률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보도로 박유천씨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28일의 <피디 수첩>은 종편의 방식을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마치 법률적으로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가십'성 폭로로 연예인 박유천의 '생명'을 끊어놓아야 겠다고 작심이라도 한듯이. 해외의 한류 팬들조차 불공정한 한국의 언론을 개탄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디 수첩>은 같은 양상을 반복한다. 이미 박유천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일말의 범죄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될 경우 '은퇴'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며, 그게 아니라도 범죄가 성사될 경우 '처벌'을 받게 될 것인데 방송들은 서로 앞다투어 '여론의 뭇매질'을 선동하기에 급급한다. 




문제는 <시사 기획 창>에서 다룬 정말 우리가 심각하게 지켜보아야 할 대우 해양 조선 등 조선업계의 구조 조정이 이런 일련의 '가십'성 기사로 인해 묻히거나, 아예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희한한 일은 한국 사회의 '위기'라 할만한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는 가운데, 마치 작정이라도 한듯이 연일 '연예인'들의 '가십'성 기사가 함께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유천씨의 고서 사건 이래, 종편의 방송분 70%가 그것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물론, 수천 건의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양산된다. 마치 사람들이 시들해져서 관심이 딴데로 돌려질까봐, 종편에 이어, 이젠 공중파까지 '가십' 보도에 가세한다. 어디 그뿐인가? 박유천에 이어, 이미 법적으로 의미가 없는 홍상수-김민희의 불륜이 가세한다. 대중들이 신선해 하지 않자, 홍상수 감독 부인과 김민희 어머니의 카톡 내용까지 만천하에 공개된다. 이미 '김현중과 그의 약혼녀 사이, 그리고 이병헌과 그의 고소녀들 사이의 '카톡' 내용에 이어 같은 방식이다. '정보 공개법'이나 '사생활 침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것도 시들하자, 이젠 주식 투자와 관련된 아이돌 경제사범까지. 

인류는 진화론적으로 '풍문'에 약하다고 한다. 일찌기 '언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신석기 시절' 생존을 위해 '소문'에 귀기울였던 유전자 정보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여전히 그 신석기적 유전자로 살아가고 있다지만, 우리에겐 언론이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 대중의 언론은 '정론' 대신, '가십'으로 연명한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진실'에 대한 예리한 시선 대신, '유병언'과 관련된 '가십'으로 대중을 인도했다. 그 결과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그 당시 세월호에 실려있던 것이 제주 해군 기지로 가는 철근 400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조차도 제대로 보도되지 못한 채 여전히 세월호 가족들은 청와대로 시위를 하다 잡혀가는 신세가 될 뿐이다. '박유천으로 인해 덮인 7가지 사건'이라고 하자, 누군가는 박유천이 아니라도 다 볼 건 찾아본다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수천 건의 박유천 가십을 뚫고, 세월호 400톤 선적을 찾아볼 눈밝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세월호 승객을 구조하기 위해 애쓰던 잠수사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찬가지다. 한 건도 제대로 기사화되지 않는 대우 해양 조선 구조 조정에 대한 르뽀를 역시나 쏟아져 나오는 박유천 기사를 뚫고 찾아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다시 정치의 세월이 돌아와 그 구조 조정조차 '정치'의 흥정거리로 뒷방에서 거래가 된다 한들, 사람들은 또 누군가의 '가십'에 정신팔려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처럼. '가십'에 길들여 지는 사회, 그것이 바로 '박유천'과 관련된 기사를 클릭하는 우리의 현주소다. 
by meditator 2016. 6. 29. 0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