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없어서 어쩐대요. 나이 들어 마음 알아주는 딸도 없고, 함께 수다 떨 딸도 없어서', 아들만 둘을 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소리다. 마치 딸을 두지 않은 것이 가장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벗이 없는 것인 양 말을 해댄다. 그렇게 딸 가진 것을 유세하고, 딸의 효용 가치를 논하던 사람들, 하지만 현실의 딸들은 그렇게 엄마 마음을 알아주고, 엄마의 따스한 말벗이 되는 '딸'의 역할에 비명을 지른다. 7월 4일과 11일에 걸쳐 방영된 <mbc다큐 스페셜>의 이야기다. 


<mbc다큐 스페셜>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이 가깝다고 하는 사이 엄마와 딸에 대해 입을 뗐다. 하지만, 사랑과 헌신의 관계이자, 화기애애한 사이인 줄 알았던 우리 사회 모녀 사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갈등을 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부, <착한 내 딸의 반란>과 2부, <엄마처럼 안 살아>이다. 



착한 내 딸? 엄마가 미워요.
젊은 사람들 중에는 자식을 하나만 낳아야 한다면 '딸'을 낳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식에 의한 노후 봉양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렇다면 기왕이면 키우는 재미가 있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딸을 가지고 싶다는 변화이다. 

하지만 '친구 같은 딸'의 현실은 다르다. 익명을 빌어 인터넷 게시판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모녀 갈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올라온다. 부모가 자식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 '불효'라고 손가락질 받는 한국 사회에서, 모녀 갈들이 '정신과'에 갈 정도의 사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엄마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 같이 착한 딸에 대한 기대치는 '딸'들을 짖누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모녀 간에 빚어지는 갈등은 '컴플렉스'의 수위를 넘고 있다. 다큐의 1부는 우리 사회에 보여진 화기애애한 모녀 관계 이면에 숨겨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갈등의 현주소를 낱낱이 다룬다. 

천사 엄마, 현모양처 은정씨에게 엄마는 그녀가 극복해낸 암보다도 더 위협적인 존재이다. 엄마만 보면 솟구쳐오르는 화를 주체할 길이 없다. 그리고 엄마에게 화를 내는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상담 전문가 현아씨, 가정 불화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를 위로해주던 그녀가 언제부턴가 자꾸 엄마에게 신경질만 내고 있다. 좋은 학벌, 좋은 직업으로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지영씨는 이제 엄마와 인연을 끊으려 한다. 그녀에게 엄마는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었다. 그녀의 지난 인생은 그저 엄마의 꼭두각시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엄마로 인해 고통받는 딸들, 그런 딸들이 서운한 엄마들, 그리고 나아가, 그래서 인연을 끊고 싶어 하는 딸들, 유령 취급을 받는 70대 노모, 엄마에 대한 분노로 섭식 장애를 겪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 들, 이렇게 모녀 관계에서 문제를 빚고 있는 엄마와 딸들이 모여 2016 모녀 힐링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저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로 설득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를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불행의 대물림, 그 근저엔
엄마와의 갈등을 겪는 대부분의 딸들은 '난 엄마처럼 안 살아'라고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 아예 엄마처럼 될까봐, 자식을 낳는 것을 두려워하기 까지 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모녀 관계의 근저엔, 엄마들의 '딸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혹은 소망으로 부터 비롯된 왜곡된 기대, 그리고 엄마의 굴곡진 삶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큐는, 현실의 굴곡진 모녀 관계로 부터, 그 갈등의 근원을 유추해 들어가고자 한다. 수십년 전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여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던 미하 씨, 그녀는 이제 그간 보험까지 하며 가정을 돌보느라 분주했던 지난 시간 못다했던 엄마 노릇을 다하기 위해 딸의 산구완을 해주려 했지만, 딸과 얼굴만 마주치면 갈등을 빚는 처지가 되었다. 오죽하면 딸은 한 달을 다 채우지 않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여덟 남매의 막내로 자란 지현씨는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안아줘'라며 매달리는 딸이 귀엽기는 커녕 부담스럽다. 심지어, 몇 년전 딸에게 모질게 매질한 기억이 그녀를 내내 괴롭힌다.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홈스쿨링'까지 했던 엄마에게 딸은 엄마와 딸의 관계가 상전과 시종의 관계였다고 단언한다. 

다큐가 주목한 것을 현재의 불행이 아니다. 현재 엄마와 딸의 갈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현재의 갈등을 불러오게 만든, 엄마의 히스토리, 즉, 엄마가 그 엄마와 가졌던 관계, 그리고 나아가 우리 한국 사회의 가족의 역사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것은, 현재의 가족 관계까지도 짖누르고 있는 '가부장제'의 그늘이다. 

딸의 산구완조차 미처 마치지 못한 엄마 미하씨는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다. 8개월의 만삭으로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끓여대며 시누이 산구완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아이를 낳고 받은 것은 미역 몇 줄기가 들어간 멀건 국물이었다. 그렇게 모질게 시집살이를 겪은 그녀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딸, 하지만 그렇게 엄마의 학대를 지켜본 딸은 괴로웠다. 그 학대의 가해자 역시 그녀의 피붙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엄마의 고통스런 역사에 대한 배설구가 온전히 자기 밖에 없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거기에 생계을 위해 외면받은 자신의 시간에 대한 불만도 켜켜이 얹혀진다. 

경우는 달라도 근원은 비슷하다. 딸의 스킨쉽이 부담스러웠던 엄마의 기억 속엔 8남매를 키우느라 늘 자신에게 냉랭했던 엄마가 남아있다. 고된 생활에 지쳐 종종 부지깽이를 집어들던 매질의 기억과 함께, 결국 지금 자신의 냉랭함과 모진 매질의 유래가 자신의 엄마에게서 부터 기인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딸과의 관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문제가, 그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모녀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감정의 끈을 풀어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처럼, 자신의 어머니도 힘들게 살아왔음을 '역지사지'로 헤아리며 눈물마저 흘린다. 



하지만, 다큐는 이런 모녀 관계의 해소에 만족하지 않는다. '착한 딸, 친구같은 딸'이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가부장제의 상흔이, 온전히 딸을 통해 감정적으로 해소되고 있는 우리 사회 왜곡된 관계의 구조가 현실의 모녀 갈등을 빚는다고 짚는다. 즉 지난 시절 가부장제로 인해 고통받은 어머니들의 고통을 사회가 알아주고 풀어주지 않으니, 엄마들은 딸에게 매달리고, 결국 자신의 삶도 살기에 버거운 딸들은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그런 어머니를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부장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왔던 우리 사회 모녀 관계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오늘날의 모녀 갈등인 것이다. 

모녀 갈등을 다루고 있는 2부작 <mbc다큐 스페셜>에서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박완(고현정 분)과 난희(고두심 분)의 모녀 갈등이 떠올려 진다. 두 모녀는 16부의 드라마 내내 참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심지어 딸 완이는 자신의 삶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 엄마 앞에서 자해를 하며 난리를 쳤고, 엄마는 그런 딸을 부등켜 안고, 때리며 울부짖는다. 물론 이 모녀 관계의 갈등은 엄마 난희의 암으로 인해 극적으로 해소되었고, 친구같이 서로가 이해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도 사사건건 손아귀에 쥐려 했던 완이를 그렇게도 반대했던 장애인 애인이 있는 곳으로 떠나보낸다. 딸 완이는 다큐가 주장하듯, 나의 엄마를 넘어, 불행했던 여성, 그리고 이제 암 앞에서 한없이 약한 사람 난희를 한 인간으로 직시한다. 서로가 나의 엄마, 나의 딸이라는 '소유적' 관계를 넘어, 한 '인간'으로 객관화시킨다. 더 나아가 마지막 회 훌훌 떠나는 어르신들처럼, 결국은 부모 자식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잔인하지만(?) 서로의 삶에 충실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제 아무리 착한 딸이라도, 딸이 지난한 엄마 삶의 피난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7. 12.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