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대머리'란 글자만 봐도 웃음을 터트린다. tv 속 개그맨들의 대머리 분장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주된 웃음 코드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머리'란 한 마디로 '웃음거리'다. 그렇다면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살아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어떨까? 그 대한민국에서 대머리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9월 14일 <mbc다큐 스페셜>이 다루었다. 


국민건강 보험 공단에 따르면 전국민의 14%, 탈모 인구 1000만 시대이다.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탈모'의 고민을 앓아가고 있는 시대, 하지만, 그 '일상'이 된 '탈모'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차라리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없는 게 더 나은 '고통'과 '치부'의 상징이 된다. 





뒤집어쓰거나, 이식하거나, 대머리의 삶

<mbc다큐 스페셜>은 이제는 일상이 되어가는 '탈모'의 현상, 하지만 여전히 사회 속 타자로, 그 '다름'으로 인해 손가락질 당하고 고통받는 사회 속 '타자'로서의 '대머리'의 삶을 지켜본다.


그 시작은 '대머리'와 관련된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하여 '대머리' 연예인들의 섭외이다. 하지만, 자타공인 대머리인 연예인들이 막상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 출연에 미온적이거나, 외면을 한다. 결국 또 의탁하게 된 것은, '게이'로 커밍 아웃을 한 홍석천, 그의 말대로, 자신이 게이인 것 다음으로, 자신을 힘들게 한 것이 '대머리'라는 사실인데, 여기서 또 '총대'를 매라는 말이냐는 볼멘 소리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용감한' 홍석천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렇게 '대머리'인 홍석천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프로그램, 카메라는 머리숱이 풍성한 한 남자의 일상을 따라간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로 들어간 그 남자, 조심스레 머리의 중앙 부분을 들어낸다. 대머리였다! 하지만, 그도 잠깐, 헤어스타일링이 가지런히 된 가발을 벗어놓은 그는, 조금 더 편한 스타일의 다른 가발을 집어든다. 집에서도 '가발'을 쓰는 것이다. 심지어, 들키기 전까지, 그가 가발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내도, 가족 중 누구도 몰랐었다는 것이다. 대머리가 유전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고민, 하지만, 그것은 '가족'과도 나눌 수 없는 그가 짊어져야 할 '개인'만의 고통이었다. 심지어, 첫 아들 탄생의 반가움마저, 유전적 형질이 계승될까 하는 두려움이 상쇄시키는 무시무시한 고통이다. 





제작진이 만난 대부분의 대머리들은 가발을 사용했다. 그게 아니면 이식을 준비 중이거나, 이식을 했다. 홍석천의 민머리는, 그의 말 그대로, 게이에 이은 또 하나의 커밍 아웃같은 상징처럼 보인다. 왜 대한민국 사회는 대머리로 사는 걸 부끄럽게 만들까?


하지만 대머리가 바다를 건너면 사정은 달라진다. 남성 호르몬의 과잉으로 생겨난 대머리는 서양에서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래서 근육질의 대머리 연예인들이 액션 영화에서 자신들의 민머리를 드러낸 채 한껏 남성성을 뽐낸다. 실제 동양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의 대머리들이 있는 서양에서, 대머리가 숨겨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러나, 동양으로 건너오면 달라진다. '관계 지향 사회'인 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에서, 대머리는, 남과 다른, 특이하고 이상한, 심지어 우스운 그 어떤 것이 된다. 똑같은 사람의 머리가 있고 없는 모습을 본 여성들의 반응이 그랬고, 몰래 카메라로 대머리 가발을 씌운 젊은 남성의 태도의 변화가 그걸 여실히 증명한다. 더구나 세계 남성 화장품 소비 1위인 한국,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대머리'는 경쟁력이 젬병이다. 한때는 '사장님'같다던 '대머리'가 어떻게든 숨겨야 하는 치부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렇게 '다름'이 '틀림'이 되어가는 '대머리'의 삶을 다큐는 주목한다. 





<mbc 다큐 스페셜-대머리라도 괜찮아>는 그저 '대머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상징적 단면이다. 또한, 나와 다름을 쉽게 '타자화'시키는 '관계 지향 사회'의 잔인한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 함몰된 사람들은 쉽게 그 '다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아니, '개인'의 짐인 자신의 모습을 홀로 감당하기엔 '사회'의 편견은 깊다. 


하지만, 우리나라 못지 않게 관계 지향적인 일본에서, '대머리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겠다며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는 '대머리'클럽은 희망적이다. 홍석천의 자신의 딜레마를 넘어섰을 때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용기를 준다. '대머리'들의 이야기는, 그저 대머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 지향 사회' 속에서 누구나 하나씩 자신의 '다름'으로 인해 고민하는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한번씩 생각해 볼만한 지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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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9.15 15:18

6월 15일 sbs의 <힐링 캠프>의 초대 손님은 요즘 대세 쉐프인 이연복, 최현석 두 명의 쉐프이다. 중식과 양식의 대표적 쉐프테이너인 두 사람은 각자 자기 분야의 요리를 다양하며 선보이며, 자신들이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mbc다큐 스페셜 <별에서 온 쉐프>에도 두 사람이 출연한다. 쿡방(cook과 방송의 합성어) 전성시대 그 중심에 놓인 남자 쉐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게 격돌을 벌인 두 방송중 굳이 한 쪽의 손을 들어준다면, 사람좋은 미소로 일관했던 <힐링 캠프>에 비해, 아내를 따라 유기견 보호소를 들렀다 오랫동안 길렀던 반려견을 잃고 힘들어 했던 아내의 속내를 그제서야 깨닫고 눈물을 쏟아버린 이연복 쉐프의 뜻밖의 순간을 다룬 <mbc다큐 스페셜>에 한 표를 던진다. 준비된 토크의 초대손님보다, 민낯의 쉐프들이 더 진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다큐의 맛이다. 6월 14일, 15일 sbs와 mbc의 두 '스페셜'한 다큐는 요즘 대세라는 '요리하는 남자'를 다뤘다. <sbs스페셜>이 '요리하는 남자'가 트렌드가 된 시대에, 요리와 남자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mbc다큐 스페셜>은 그 트렌드의 중심의 민낯을 그려보고자 한다. 




남자, 요리를 만나다- <sbs스페셜-요리, 남자를 바꾸다>
쿡방 전성시대, 그리고 그 흐름을 이끌고 있는 훈남 쉐프 전성시대에 이 시대 남자들에게 '요리'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에 대해 <sbs스페셜>은 접근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70이 넘도록 요리라고는 해보지도 않은, 심지어 자기 집 주방 불조차 제대로 켤 줄 모르는 조영남을 내세운다. 또한 현역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펄펄 날던 공직 생활 30년 이후 여전히 아내가 매 끼니를 챙겨줘야 하는 윤건중씨에게 요리를 배우도록 한다. 

소설가 최인호 등 또래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후배들은 그 조차 떠날까 우려하며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는 조영남, 그는 그렇게 자신을 걱정해 주는 후배와 친구들을 위해 한 상을 차리기 위해 요리를 배운다. 늘 누군가 해주는 요리를 먹거나, 그게 안되면 시켜 먹거나, 사먹으며 요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그, 고기를 굽고, 거기에 맞는 스스로 만들어 곁들이며 새로운 세계를 맛본기 시작한다. 윤건중씨도 마찬가지다. 쌀도 씻을 줄 모르던 그가 아내의 친구들을 위해 한 상 차림을 마련하게 되면서,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 남자들에게 요리란 어떤 존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 남편과 단 둘이 사는 윤건중씨의 아내는, 주변에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가며 음식을 할 줄 몰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혹시나 있을 상황을 걱정한다. 그렇게 현실적 필요에서 시작된 요리지만, 다큐 중 등장한 샘킴의 확언처럼, '누군가를 생각하며 요리를 하고, 그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요리의 맛을 느끼는 순간, 이들 남자들에게 요리는 그들이 맛보지 못한 희열의 세계를 선사한다. 

아내의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그 친구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윤건중씨에서부터, 요리 교실에서 배워 온 요리를 통해 사춘기 자녀와의 사이가 한결 가까워졌다는 김승용 요리 교실의 수강자, 그리고 아들 은규의 거센 사춘기 반항을 매 끼니 소박하게 차려내는 밥상으로 순화시킨 이충노씨의 요리는 변화 이상의 그 무엇이다. 특히, 잘 나가던 건축업계 ceo를 접고 아들과 단 둘이 아들이 전학해온 양평으로 내려 와 오로지 매 끼니 밥상을 차리며 튕겨져 나갈 아들을 품으로 끌어들인 이충노씨의 밥상은, 사랑의 상징이다. 그렇게, 이 시대 남자들은, 비록 전문 쉐프는 아니지만, 멋들어진 상차림 속에 숨겨진 진짜 요리의 맛과 멋을 체득해 가는 중이다. 



엔터테이너가 된 쉐프들의 민낯-<mbc다큐 스페셜-별에서 온 쉐프>
mbc다큐 스페셜은 쉐프전성시대를 직시한다. 그리고, 이제는 쉐프테이너가 된 그늘의 명과 암을 찬찬히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른바 '쿡방'의 시대사로 부터 시작된다. 이제는 국민 엄마가 된 고두심씨가 진행하던 요리 프로에서 부터 시작하여, 방송사와 함께 명맥을 이어가던 요리 프로그램, 한때는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여성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던 여성 요리사가 인기가 있던 시절이 무색하게, 이제 tv 속 요리는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연복, 최현석, 샘킴들의 쉐프테이너들이 있다. 

<별에서 온 쉐프>는 요리 평론가 황교익, 요리하는 기자 박준우를 등장시켜 현 쉐프 전성시대를 진단한다. 한때 우리 방송가의 대세였던 운동선수들처럼, 그렇게 트렌드로서 '끝물'로 쉐프 전성시대를 진단하는 박준우와 달리, 황교익은 불황의 늪이 깊은 현 시대, 대리 먹방은 오래 지속될 것이라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린다. 그렇게 냉정한 분석에서 시작된 쉐프 전성시대, 거기에 '맹기용쉐프논란'과 같은 잡음에 대해서도, 겨우 4년차의 쉐프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부추기게 되는 '방송이기에' 만들어 지는 해프닝을 짚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짜 쉐프들의 삶은 어떨까?

르 코르동 블루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제는 50대가 넘은 쉐프는 그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을 지휘한다. 쉐프의 길이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짐이 덜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78세의 냉면의 장인은 냉면 육수의 맛을 내기 위해 여전히 새벽녘 집을 나선다. 쉐프테이너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그들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하는 최현석 쉐프의 말처럼 그들은 여전히 전쟁터와 같은 주방을 진두 지휘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제 아무리 바쁘다 한 들 주방을 떠날 수 없는 이들이, 그래서 가족과 여행 한번 가보지 못하고, 아픈 아내의 마음조차 돌아보지 못해 눈물을 쏟고 마는 이들이 쉐프테이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연복 쉐프와 같이 중식 쉐프는 이연복 쉐프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한다. 그간 각종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불량식품'처럼 이미지가 박혀있던 중식에 대해 이연복 쉐프가 이미지 전환을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황교익 평론가는 이미 예약 손님들로 꽉 찼던 이연복 쉐프의 식당이었음에도 굳이 방송 출연을 하는 이연복 쉐프를 두고 '심심하셨는가봐요'라고 우스개를 던지지만, 먹고 살기 위해 중식 쉐프가 되고 그 길을 평생 걸어온 이연복 쉐프 자신도 세상 사람들에게 요리 하는 자신을 떳떳이 내세우고픈 인정 욕구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식당들이 파리를 날리는 불황기에도 서로 매상을 비교하며 뿌듯하게 성업 중인 샘킴과 최현석의 레스토랑에서도 보여지듯, 방송 출연이 곧 '매상'이라는 생업의 향상으로 직결되는 현실을 그려낸다. 

하지만 몇 달 후까지 예약이 차있는, 밀려드는 손님, 예정된 방송 활동 가운데, 쉐프테이너들은 지쳐간다. 코스 요리 중심이었던 이연복 쉐프 중식 레스토랑은 매출이 줄어들 정도로, 탕수육 등 단일 품목만이 인기를 끈다. 예능 출연 중에 부상을 입었던 샘킴 쉐프는 결국 병원을 찾고야 만다. 190을 넘는 건장한 체격의 최현석도 체력 충전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도 한 말 또 하고 또 하게 만드는 방송 생리를 잘 몰랐다고 토크쇼 출연을 자제해야 하겠다고 말하는 이연복 쉐프의 말처럼 몇몇 인기 쉐프들 중심으로 돌려막기식의 쉐프 전성 시대는 방송 스스로 '끝물'을 조장한다. 하지만 쉐프테이너건 아니건 여전히 주방을 지키는 남자들은 오늘도 뜨거운 불앞에서 굵은 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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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6.16 12:04

건반 악기 하나 공명 상자 안에 85 이상 강철선 망치 설치하고건반 발판으로 연주한다음역 넓고 표현력 풍부하다.


피아노를 설명하는 사전의 항목이다. 하지만 18세기 초에 만들어져, 1900년대 선교사를 통해 이 땅에 첫 발을 들인 피아노란 악기가 우리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지평은 남다르다. 그 현대사의 문화적 상징이자 추억인 피아노가 거리로 나선다.

여유있는 문화의 상징으로 '피아노'
중년이 넘은 기자에게도, 노오란 피아노 가방을 들고 피아노 교실을 다니던 언니는 선망의 상징이었다. 그 언니가 흑백의 건반을 눌러 '음악'을 만드는 장면은 일찌기 보지 못한 신기료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후에, 나에게도 그 신기료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계적 연습의 반복에 질리면서도, 환타지같은 '연주'의 실마리를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 '벽돌로 지은 이층집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라는 광고의 문구와도 같은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아노'는 당시 서민들로서는 부담하기 힘든 가격의 이 악기를 집에 들이고, 매달 배우게 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의 상징이었다. 즉, '피아노'라는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여유의 필수품이 되어갔다. 나 역시 고학년이 되어서 공부를 하라했지만, 사실은 집안 형편이 매달 피아노 학원을 보내 줄 형편이 되지 못해서였다. 

거리로 나선 피아노에 노인들은 멀찍하니 앉아있다. 차마 다가서지 못한다. 그리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달걀 열 알을 온전하게 살 수 없었던 그 때 형편으론 꿈도 꾸지 못할 이야기였다고. 그 반대편의 이야기도 있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중동에 가서 돈을 벌어왔던, 하지만 이제는 몰락한 아버지는, 구룡마을 철거전 비닐 하우스 집 구석에서 온갖 물건들을 떠받치며 견디고 있는 낡은 피아노를 버리지 못한다. 왜 피아노를 버리지 못하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아버지는 '미련'이라고 답한다. 딸들의 성화에 못이겨 비싼 피아노를 무리해서 월부로 샀던 늙은 어머니는 이제 딸들조차 가져가지 않는 피아노를 집을 옮길 때가 되어서야 버린다. 

피아노 키드의 탄생
피아노란 악기는 묘하다. 조금만 연습하면 완결된 곡을 연주할 것 같지만, 막상 한 곡을 그럴 듯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계적인 연습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피아노가 발명된 18세기 이래, 집안에서 아이들의 피아노 소리를 듣기 위해 무수한 연주법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피아노가 문화적 여유의 상징으로 우리 사회 속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피아노 학원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여유를 피아노를 통해 증명하기 시작하였고, 그 여유를 누리지 못한 자식들은, '포한이라도 풀듯이, 자신이 커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래서 언제인가 부터 피아노는 초등학교 무렵 아이들이 거쳐가야 할 필수 학원 코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여의도 증권가 그곳에 피아노가 놓이자, 뜻밖에도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둘러 맨 남자들이 피아노를 친다. 그것도 제법. 바로 피아노 학원을 전전했던 세대이다. 거기서 만난 한 보험맨, 그는 한때 앨범까지 낸 전직 가수였지만 몇 년 전 보험맨으로 이직했다. 잠자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그는 1조를 목표로 보험맨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제는 악기를 만진지 오래 되어 피아노 코드조차 헷갈리는 그는 기타를 둘러맨 거리의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단다. 그 시절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 지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신입 사원 교육에서,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답이 없다'고. 

그런가 하면,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던 피아노를 유일한 밥벌이의 동아줄로 여긴 사람도 있다. 이 다큐의 나레이션을 맡은 유희열은 청소년 시절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피아노에까지 붙인 빨간 딱지에서 자기 집안의 몰락을 읽었다고 한다. 종이 피아노로 대학 실기 준비를 했던 그는 하다못해 나이트 클럽에 가서라도 피아노 연주를 하여 자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하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여전하 모토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삶의 행복은, 어린 시절 자신과 형이 치던 피아노에 행복해 하던 엄마의 모습처럼, 사진 한 장처럼 소중하게 기억되는 찰라의 감정이라며, 그 감정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자 한다. 피아노는 이렇게 엇갈린 두 욕망의 교차점이 되어 우리에게로 온다. 

그런가하면 그 욕망은 대를 이어간다. 어린 시절 집이 어려워 피아노를 꿈도 꿀 수 없었던 엄마는 아이를 낳은 후 아이들에게 무조건 피아노를 가르쳤다. 경포대 바닷가를 배경으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익숙한, 하지만 기계적인 피아노 연주. 엄마는 계면쩍게 웃는다. 엄마의 열망이 아이들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것같지는 않다고. 그런가 하면 은행잎이 노오랗게 깔리는 산책길에서 만난 아기 엄마는 아이를 키우던 그 손으로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한다.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뒷바라지 해주던 아버지, 하지만 그녀에게 아버지는 늘 미흡한 부모였었다고, 이제야 눈물짓는다. 또 이제 막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을 부모들은, 자신들의 부모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아이들에게 '피아노 정도는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진다. 

거리의 피아노, 거리의 삶
거리로 나선 피아노에서는 퍽퍽한 현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붕대를 감고, 커피 찌꺼기가 낀 손톱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명동의 젊은이, 한때 호른을 전공했던 그녀는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이제는 바리스타를 하다 인대까지 늘어난 처지에 놓여있다.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실까봐 집에선 호른조차 꺼내지 못한다는 그녀에게 피아노는 유보된, 아니, 어쩌면 영영 조우하지 못할 '꿈'의 상징이다. 

우리 사회로 쏟아져 들어 온 조선족들의 집단 거주처 가리봉동에서 만난 중년의 여인은 낯설게 그러면서도 애증의 대상으로 피아노를 대한다. 연변 방송국 pd로 오십 평생 '선생님' 소리를 듣고 살았던 그녀, 하지만 이젠 서울의 한 집 가사 도우미로 날마다 피아노를 닦아야 한다. 닦아도 닦아도 닦은 티가 나지 않는 피아노가 그녀는 이제 싫다. 하지만, 그 피아노를 닦아 모은 돈이 연변의 아파트 한 채이기에, 과거의 흔적을 지운 채 오늘도 '아줌마'로 살아간다. 

단 한 시간, 거리로 나선 피아노를 통해 만난 우리들의 삶은  지난 1년간 거리로 나선 피아노를 통해 완성된 이야기이다. 한때 문화적 여유의 삶이었던 피아노는, 이제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피아노 배달'만 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던 중개상은 이제 낡은 피아노를 중국으로 옮기는 일을 한다. 공장 안을 가득 채운 허름한 피아노들, 그것은 마치 경제 부흥기를 겪고 지쳐버린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다. 그저 피아노 한 대, 하지만 그 피아노를 통해 산업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 삶을 꿰뚫어 보고자 했던 <거리의 피아노>, 그 시간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피아노 연주에 맞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주제가와도 같았다. 서정적이었지만, 결코 서사가 숨겨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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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4.14 11:15
2014년 9월 1일 정부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였다. '규제 완화', '청약 제도 개편', '서민 주거 안정화'를 목적으로, 재건축 기준 합리화, 대출 금리 완화, 1주택자 청약 자격 완화 등의 정책이 마련되었다. 실세 총리라 불리워진 최경환 경제 부총리에 의해 마련된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마련된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한 마디로 경제 살리기였다. 그리고 그런 경제 살리기 정책의 실효라되는 양 2015년의 봄은, 전세값 상승에 따른 또 한번의 전세 대란으로 시작되었다. <썰전>의 이철희 소장이 예견하였듯이, 대출 금리 완화로 서민들은 보다 많은 돈을 빛을 내어 집을 구하려고 했고, 그것은 다시 전셋값 상을 촉발한 것이다. 결국, 9.1 부동산 대책을 통해 이 정부가 구하고자 한 것은 '집'을 가진 집주인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을 이 봄 더 오를 것 없는데 오르는 전세 대란이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봄 치솟는 전셋값에 대처하는 서민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런 바로 3월 16일 방영된 <mbc다큐 스페셜-2시간째 출근 중, 길 위의 미생>이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16일 방영된 <mbc다큐 스페셜>은 왕복 하루 네 시간, 일년이면 꼬박 42일은 출퇴근에 써야 하는 아빠와, 1년 동안의 출퇴근 거리를 거리를 더하면 지구 두 바퀴 반이 되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달픈 길위의 미생
길 위의 미생이라는 제목처럼, 우리 나라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직장을 다니기 위해 오랜 시간 길 위에서 보내는 현상을 다룬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자가 433만명이다. 심지어 5년 전에 비해 1시간반이 넘게 출퇴근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이 44%가 넘었다. 출 퇴근에 걸리는 시간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도 아니요, 집에 있는 시간도 아닌, 그 과정 중에 놓인, 속되게 '버리는 시간'이다. 자신의 차를 이용해서, 혹은 전철, 버스, 심지어 ktx 까지 각종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오랜 시간을 출근을 하는데 허비한 직장인들은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전쟁을 벌인다. 자신 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다그쳐 이른 새벽부터 서두르는 출근 길, 한번의 차를 놓쳐도 곧 그게 '지각'이 되는 초를 다투는 시간과의 전쟁에 시달려 직장인들은 이미 일을 시작하기 전에 파김치가 된다. 매일 출근에 두 시간을 쓰는 사람은 30분을 쓰는 사람에 비해 일년에 약 753시간을 더 쓰는 셈이다. 수면 등의 기본적 활동은 물론, 가족과의 관계, 사회 생활에 있어서도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다큐는 밝힌다. 

강고한 노동의 강도에 있어서는 언제나 세계 일류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출퇴근 시간 역시 예외가 없다. 일본을 비롯한 미국, 유럽 등 다수의 oecd 국가들이 출퇴근에 30분 남짓의 시간을 허비하는데 비해, 한국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50분이 넘는다. '30 정도'의 출퇴근이 가장 적당하다며 커피를 들고 여유롭게 직장을 들어서는 외국의 직장인에 허겁지겁 회사문을 향해 치달리는 우리의 직장인들의 여유없는 모습은 대조적이다. 

이렇게 '살인적인' 출퇴근 전쟁에 대해 다큐는 언급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개인을 짖누르는 모든 사회적 압박은 온전히 개인의 능력이나, 몫으로 치부된다고. 그리고 그런 사회가 짖누르는 압박에 힘겨워 하는 출퇴근 전쟁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들여다 본다. 아침에 허겁지겁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아내, 하지만 정작 아내의 전쟁은 출근 길만이 아니다. 저녁 7시가 넘엇야 퇴근한 아내는 가장 늦게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와, 그때부터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을 준비하랴, 하루 종일 못본 아이와 말이라도 한 마디 나눠주랴, 정신없이 마련된 저녁, 하지만 저녁상을 받은 사람은 아이와 엄마 둘 뿐이다. 아빠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의 저녁을 먹이고 재운 엄마, 하지만 엄마의 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밀린 빨래며 집안일을 겨우 마치고 아내는 힘겹게 자리에 누운다. 아내마저 잠든 조용한 집, 뒤늦게 아빠는 들어온다. 아내가 잠들어 불 꺼진 안방, 하지만 겨우 씻은 아빠가 잠을 청하는 건, 안방의 침대가 아니라, 건너방의 대충 편 이부자리이다. 내일 아침의 이른 출근을 위한 '각방'이다. 이 집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보다 헐한 집을 구하기 위해 수도권에서 더 멀리, 멀리 멀어진 상당수의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기업의 배려로는 해결할 길이 요원한 현실
그렇다면 이렇게 불을 보듯 뻔한 현실에 대해 <mbc다큐 스페셜>이 내놓은 해법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 직장인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오랜 출퇴근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이직'을 감행했다. 덕분에, 이른 시간 집에 돌아온 그는 가족을 위해 두 시간이나 걸리는 파키스탄 전통 요리를 만든다. 또 다른 사례, 인천이 집인 또 다른 직장인은 퇴근 후 집 대신에 직장이 그들을 위해 마련해 준 회사 근처의 사택으로 향한다. 사택에 사는, 그리고 먼 집에서 출퇴근하는 같은 직장의 두 사람이 여유롭고, 허겁지겁 시간에 시달리는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의 모습이 비교된다. 또한 집은 비록 멀더라도, 매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 근처에 마련된 회사일을 볼 수 있는 공간에 가서 회사일을 처리하는 사례도 있다. 또한 자율 출퇴근제를 통해 여유롭게 아이들을 돌보고 난 후 직장에 출근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물론, 직장이 마련해 중 사택이라던가, 자율 출퇴근제, 집 근처에 마련된 회사일을 볼 수 있는 공간은 당연히 우리 사회가 마련해 가야 할 다양한 복지 제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위의 미생'이라면서 처연하게 시작된 오랜 출퇴근 시간에 대한 문제 제기에 비해, 해결 방법이라고 제시된 것들은 어쩐지 '새발의 피'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제시된 방법들은 각 기업이 기업 차원에서 마련해야 할 복지 정책들이다. 하지만, 이 봄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거세게 불어닥치는 '전세 대란'의 핵심은 무엇일까? 집 가진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부동산 대책, 그에 힘입어 다시 한번 치솟아 오르는 전셋값, 거기에 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집값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엄청난 전세가격에 서민들은, 다시 또 더 멀리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쌀 수 밖에 없다. 가장 본질은 우리 사회 전체를 짖누르고 있는, 가진 사람들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주는 방식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경제 정책인데, 다큐를 통해 제시된 정책들은 취지는 나쁘지 않은데 어쩐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이다. 

'길위의 미생'처럼, mbc다큐 스페셜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다루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3월 16일 방송처럼, 본질인 정부의 정책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 회사의 복지 차원에서, 또 다시 한번 이직 등 개인의 결단 차원에서만 다룬다면, 또 한번의 '외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9.11 부동산 대책, 2015년 봄 다시 한번 불어닥친 전세대란, 그것들이 한번 언급되지 않는 출퇴근 전쟁, 그건 공허한 외침이나 어설픈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완화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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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3.17 12:58

mbc다큐 스페셜은 새해를 맞이하여 신년특집으로 광복 70주년 대한민국 3부작을 마련했다. 1부, 아버지가 세운 나라, 2부, 어머니가 지은 나라, 3부, 자식들이 만들어 갈 나라,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유교 경전의 한 문구가 떠오르듯, 3부작 대한민국은 제목만으로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는 다큐들이다. 


제목에 걸맞게 이야기도 진행된다. 1부, 국민배우 최불암, 반도체 신화의 주역 진대제, 현대 문학계의 거장 김홍신, 가수 김도향,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등이 모여, 광복이 되던 해 태어나, 산업 역군으로 대한민국을 일궜던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천만을 달성한 영화<국제 시장>에서 구구절절 설명되었던 그 이야기이다. 나라는 일본으로 부터 해방되었지만 6.25를 거치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동생의 학비를 벌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버지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전으로, 지하 수백 미터의 독일 땅 속으로, 태양이 작렬하는 중동 땅으로 떠났고, 그들이 벌어온 외화가, 가장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을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2부 어머니가 지은 나라도 다르지 않다. 1부가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를 다큐로 다시 복원했다면, 2부가 그려낸 어머니 상은 신경숙 작가의 베스트 셀러 <엄마를 부탁해>의 그 어머니이다. 광복 후 70여년을 자식에게 배고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가발공장에서, 청계천 봉제 공장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던,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면서도,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냈던 '장한 어머니' 바로 그들의 이야기이다. 

국제시장

영화 <국제 시장>이 논란 속에서, 아니 오히려 감독의 말처럼 논란이 밑거름이 되어 천만 달성을 수월하게 하였듯이, 다시 다큐<대한민국>은 영화 <국제 시장>의 서사를 고스란히 되풀이 한다. 이렇게 잘 사는 대한민국을 너희들에게 물려 주었다며 자랑스레 말한다. 
그런데, 정말 자랑스럽기만 한 대한민국이었을까?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를 만들어 낸 부모 대의 성과는 정말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구나, 전세계적으로 불황기에 들어선 경제 기류에서, 정체기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그런 경제적 기적은 더더욱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의 반쪽 자리 역사이다. 마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집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온갖 자기 자랑을 하는 그런 식의 역사 서술인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이 집안이 들썩거리게 손님 초대를 해서, 집안 자랑을 하고 있을 때, 골방에선, 신음소리를 내며 또 다른 자식들이 숨죽여 울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독일은 전후, 히틀러 치하에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전쟁 범죄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가해자였음에도,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를 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쪽일까?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6.25의 상흔을 겪고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던 대한민국의 시작은 철저히 피해자의 그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였던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유수의 잘 사는 국가가 되기 위해 거쳐왔던 과정에 대해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왜 베트남 민족의 피의 역사인 베트남전이 우리에겐 그저 총알을 뚫고 외화벌이를 해온 자랑스런 추억담이 되어야 할까? 그 외화를 벌어오고 '고엽제'에 시달리는 군인들은 왜 화려한 잔칫상에 끼일 수 없을까?  해외로 까지 나아가 외화를 벌어온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화려학 복원하면서, 가발공장에서, 청계천 봉제 공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업 역군으로 일한 여공들의 이야기는 하면서,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자신의 몸을 불태운 전태일과, 극악한 노동 조건을 견디지 못해 떨쳐 일어났던 여공들의 노동조합 운동은 왜 한 줄도 끼어들지 못하는가 말이다. 축약된 경제 성장의 과정을 거치느라, 결국은 드러나고 말았던 성수대교 붕괴에서 시작하여, 삼풍 백화점을 거쳐, 결국 세월호에 이르고야 말았던 부실한 대한민국 경제의 흔적은 왜 애써 그려내지 않은 것인지.

허긴, 남들에게 내 살아온 역사를 이야기 할 때 구차히 내 속의 구질구질한 것들을 끄집어 내기 싫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로지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잘 살기 위해, '경제적 동물'로 살아온 지난 날의 역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생각해 보았는가? 결국, 아비가, 어미가 니들을 키우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으니, 이제 너희들도 국민소득 4만불의 시대를 향해 발에서 땀나게 다시 뛰어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뛰고 싶어도 뛸 곳이 없다는 젊은이들과, 뛰어보니 돌아오는 건 명퇴요, 폐업이라는 중년의 절망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물론 다큐는 3부 자식들이 만들어 갈 나라에서, 계층간 갈등이 심각해진 현재를 짚어보고, 이 해결책을 위해 독일의 사례를 끌어온다. 그리고 그 이유를 급격한 경제 성장이라고도 짚는다. 하지만, 그 경제 성장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극단적 갈등의 늪에 빠졌는지 짚어보지 않는다. 그저 부모들은 열심히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 애썼는데, 왜 이제와 너희들은 그러니? 라는 식이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잘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말한다. 한 치의 반성도 없는 세대와, 그런 세대를 비판하는 세대 사이에, 무슨 대화가 이루어 질까?

그 좋다는 대화와 타협이 공허한 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럴듯한 해결 사례로 제시한 독일 비행장 활주로 건설, 결국 비행장 측은 소음 공해에 시달리는 주민들 각자에게 방음창과 방음 온실을 제공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 수십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법원의 판결이 바뀌지 않는 사회에서 선택지는 높은 굴뚝 밖에 없는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그런 사회에서도, 아비, 어미는 열심히 돈을 벌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공치사만 하고 있을텐가 말이다. 대화와 타협을 하라며, 강정 마을 해군 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벌금 폭탄을 
때리는 나라에서 도대체 대화와 타협은 어떤 식이어야 하는 것인지. 

만약에, <국제 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베트남에 돈을 벌러 간 것이 아니라, 참전 용사이고, 그곳에서 고엽제로 인해 평생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면, 그 영화가 천만 관객이 들었을까? 보고 싶은 역사, 양지의 역사만으로는, 2015년 대한민국을 양분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말이 좋아 국민소득 4만불이지, 젊은이들은 결혼과, 집과, 아이를 포기하는 3無시대, 계층격차가 심화되어 가는 시대에 대한 설명을 이룰 길이 없다. 다시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살면 국민소득 4만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입에 발린 희망과 타협과 대화로는 불가능한 미래이다. 

'아버지가 만들고, 어머니가 지어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의 잘 사는 국가가 된 경제적 논리 이면에, 정치적으로 독재로 점철되었던 핍박의 역사와, 그 가운데에서 가치를 외면받은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도 정확히 짚어야만 한다. 부모의 세대가 천착해 왔던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그들이 무지하고, 외면했던 '인간적 가치'에 대해 논하고 재정립해야, 저성장의 시대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용비어천가'식으로 노래하면 할 수록, 아이러니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존재가 무의미해지고, 고달파지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만들고 어머니가 지은 나라'의 공허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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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1.20 12:20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게
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나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오네

월세내랴 굶고 안해본게 없네
이래 힘들라꼬 집 떠나온 것은 아닌데
점점 더 지친다 이놈에 서울살이


11월 11일  mbc 다큐 스페셜에서 <전, 월세 대란, 서민은 서럽다> 편이 방영되었다. '62주 연속 ' 등 주식 상한가를 치듯이 천정부지로 오른 채 내려오지 않는 전세 대란은 또 한편에서, 월세의 확산을 포함한다. 
집주인은 30%가 되었든 40%가 되었든 마음대로 전세를 올리고, 하지만 전셋값 상승에도 불구하고 결국 낮은 은행 금리 등으로 인해 그 돈이 더 이상 황금알을 낳지 못하자, 이젠 적극적으로 월세로 전환해 가는 중이다. 가진 것 없는 세입자들은 주인들의 입맛에 따라 바뀌어가는 월세에,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올려달라는 전세에 맞출 수가 없어서 또 월세로, 지상의 방 한 칸 얻기가 버거워져만 간다. 


9월 28일 <무한도전>에서는 노홍철이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장미 여관의 육중완의 집을 찾아가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방 하나는 작업실로, 또 하나는 침실 겸 의상실로 이루어져 있다는 육중완의 집은 이른바 옥탑방이었다. 방송에서는 서울 살이 5년 만에, 빛을 다 갚고 마련한 옥탑방을 자랑스레 선보이는 육중완을 그려내 보였다. 
하지만, 그 자랑스레 선보인 옥탑방은, 그의 집이 아니다. 그의 노래 '서울 살이'에서처럼, '월세내랴, 굶고 안해본 게 없네'의 바로 그 '월세'이다. 육중완 만이 아니다. '장미 여관'의 멤버 전원이 형편이 다르지 않다. '이래 힘들라꼬 집 떠나온 것은 아닌데'라지만, 그들의 서울 살이는 버겁다.
장미여관만이 아니다. <전, 월세 대란, 서민은 서럽다>에 등장한 서민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게 고시원이냐, 단 칸 월셋방이냐, 옥탑방이냐의 차이일뿐, 기껏해야 섭취하는 단백질이 계란후라이가 되는 삶을 지탱하며 사람들은 월세를 버텨낸다. 하루에 삼백 건이 넘는 올린 전셋값을 내라는 주인의 문자 폭탄, 정신적 고문을 버티어 낸다. 
무한도전 가요제 말미 소감을 피력하는 장면에서, 장미여관의 멤버는, 우리네 같은 밴드에게 무한도전의 기회란 소중한 것이라며 울먹인다. '월세 내랴 굶고 안해본 게 없는' 장미여관 멤버들에게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의 출연은 하늘에게 내려온 두레박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점점 집을 줄이고, 옥탑으로 올라간 가정의 아내가 바라본 서울 하늘은 먹먹하다. 한참 꿈을 펼쳐야 할 청춘은 월세에 짓눌린 삶을 호소한다. 그들을 길어올려줄 두레박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장미여관의 서울 살이 1절의 마지막 가사 '점점 더 지친다 서울살이'는 그들 모두의 돌림노래가 되어간다. 

<전, 월세 대란, 서민은 서럽다> 편에서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전세 중심이었던 주택 시장이 급격하게 월세로 바뀌어 가면서 사람들이 채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월세를 매달 따박따박 낼 만큼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부유'와 같아 지는데, 매달 지불할 월세는 저승사자처럼 변함없이 버티고 서있다. 
거기에 한 술 더떠서, <전, 월세 대란, 서민이 서럽다> 제작진이 서울 시내 대학가 및 주요 주거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원룸, 빌라, 아파트, 주상복합 그리고 고시원까지 총 다섯 가지의 주거 형태를 방문 및 전화 조사한  결과 '1 제곱미터 당 가장 비싼 월세를 내고 있는 곳은 고시원으로 나타났다. 고시원의 1 제곱미터 당 월세 가격은 62,500원으로 주상 복합 아파트의 34,300원보다 두 배 가까이에 달했다. 또 같은 주거 형태라 할지라도 월세가 전세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원룸 전세의 경우 1 제곱미터당 11,700원이었지만, 원룸 월세의 경우에는 25,500원으로 두 배 이상의 가격 차이를 보였다' 가난할 수록, 더 비싼 집에 살고 있는 현실이다. 여전히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아니 '안한다는' 원칙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월세에 쫓기다 못해 밥을 굶고, 연애는 꿈도 못꾸고, 결혼조차 엄두도 내지 못할 서민의 삶을 구제할 방법은 '공공 임대' 주택 밖에 없다는 해결 방법은 인지상정일 수 밖에 없다.  <전, 월세 대란, 서민은 서럽다>뿐만이 아니라, <sbs스페셜> 등 타 다큐 프로그램에서도 언제나 도달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결론이 oecd국가는 물론, 이웃 홍콩조차 30%에 달한다는 공공임대 주택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대통령 선거의 주된 정책이었지만, 결과는 미비했다. 다큐 스페셜 제작진이 밝히듯이, 그간 선거 유세동안 자신만만하게 외쳤던 공공임대 주택만 제대로 지어졌어도, 이런 전, 월세 대란이 없었을 것이란 분석처럼, 대한민국의 현실은 집 가진자, 그리고 그 집 값의 반등으로 이익을 보려는 자들의 이해의 척도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채 다시, 박근혜 정부의 행복 아파트 정책까지 도달했다. 당장 요즘 이슈가 되는 감사원장 후보자의 위장 전입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나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치고 위장전입 한 번 안해본 사람이 없는 정부에서 과연, 전, 월세 대란에 서러운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 아파트가 제대로 지어질 수 있을까?

데이비드 스터클러의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라는 책에서는, 1929년 ~1933년 미국 대공황기 사람들의 소득은 1/3로 떨어졌지만 사망률은 물론, 질병 감염률도 떨어지고, 자살률조차도 감소로 돌아섰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즉 대공황기 미국 국민은 한층 살기 어려워졌지만, 프랭클린 루브벨트 정부가 제시한 뉴딜 정책으로 인해, 일자리와, 공중 보건 프로그램 등으로 국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이 통계의 메시지는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경제난 그 자체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mbc 다큐 스페셜의 결론에도 부합한다. 우리 시대 여전히 사람들을 서럽게 만들고, 자살율 1위 등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누군가의 이익에서 자생적으로 빚어진 듯한 '전, 월세 대란'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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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11.12 10:29

요즘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방영된 사건은 거의 매번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주인공이 된 인물의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행각에 다같이 공분한다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 행각에 공포 영화를 본듯 두려움을 공유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하는 사건이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신문의 사회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건이,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방송 포맷을 통해 재탄생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몇 배로 끌어 올리는 전형적인 엔터테인먼트화 된 다큐의 극대화된 모습이다. 
다큐멘터리(이하 다큐)의 사실성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영화 <워낭 소리>와 <아마존의 눈물>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다큐를 통해 보여지는 '사실'의 질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사실은 사실이되, 그 사실이 그 이면의 진실과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인식 역시 늘 함께 병립하게 되는 것이 다큐 세계의 진실이 되었다. 

<mbc다큐 스페셜>이 인물을 다루는 방식 역시 이런 의심을 피해갈 수 없다. 602회 '지금 다시 김광석을 부른다' 편은 1996년에 운명을 달리한 김광석을 오늘의 문화 트렌드가 된 입장에서 회고하는 자리였기에, 정말 김광석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느낄 아쉬움을 뒤로하고, 김광석이란 그 사람 자체를 다시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감회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2013 인물'의 첫 회로 등장한 봉준호를 다루는 방식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603회 <mbc다큐 스페셜> 2013 인물, 첫 회 봉준호 편은 봉준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또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한 구석에 꿍친 혹은, 듣고 싶은 이야기의 포인트가 서로 달랐던 동문서답같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단 네 편의 작품 만에 세계적 감독이 된 봉준호, <괴물>을 통해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마더>등을 통해 세계적 평론가의 찬사를 받는 상업성과 예술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감독, <설국 열차>를 통해 이 시대의 한껏 뜨거운 화두로 올라 선 봉준호를 <mbc다큐 스페셜>은 2013 인물의 첫 번째 인물로 초대했다. 

당연히 화제가 되는 <설국 열차>인 만큼 다큐의 초반은 당연히 <설국 열차>란 영화를 통해 봉준호를 설명하고자 한다. 세계적 배우인 틸다 스윌튼이 그의 전 작품에서의 촬영 태도를 지양하고 늘 현장을 지키게 만들었던 매력적인 감독 봉준호,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로 떠오른 크리스 에반스가 천리길을 마다않고 직접 오디션에 참가하게 만든 대단한 감독 봉준호를 그리는데 치중했다. 
그리고 그런 봉준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혀간다. 감독이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회학과 출신이 어떻게 감독이 되어가는지의 과정과, <플란더스의 개>의 실패를 딛고 <살인의 추억>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낸 '봉테일'이라는 특징을 잡아내는데 다큐는 집중한다. 또한, 프랑스의 영화 잡지에서 '삑사리의 미학'이란 제목으로까지 소개된 봉준호 영화의 매력도 놓치지 않는다.
어떤가, 이 정도면 봉준호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겠는가?

<mbc다큐 스페셜>은 묘하다. 그의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이력을 훑고, 그의 영화적 특징과 매력을 샅샅이 설명해 가는데, 정작 다 보고 나면,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 이유를 다큐 속에서 <설국 열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홍대 앞 책방에서<설국 열차>의 원작을 찾아낸 봉준호는 꼬리칸 사람들이 끝없이 이어진 열차의 엔진 칸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빼놓고는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열차라는 공간의 현실감을 위해 트레일러 위에 세트를 놓고 흔들리는 열차의 공간감을 창조해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점은 <설국 열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아니다. 과연 설국 열차에서 꼬리칸 사람들이 엔진 칸을 향해 나아가는 지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를 두고, 봉준호가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열차라는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냉정하게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고, 허지웅은 꼬리칸을 민주당, 머릿칸을 새누리당에 비교하는 것에 반대하며, 오히려 새누리당은 열차를 둘러싼 세계적 재앙이고, 굳이 비교하자면 꼬리칸은 진보 세력, 머릿칸은 민주당에 가깝다는 정의를 내려 논란에 불을 붙였다. 

봉준호 다큐
(사진; tv데일리)

모두들, 봉준호가 <설국 열차>를 만든 진의를 궁금해 하는 가운데, 봉준호를 다루는, 그의 작품을 다루는 다큐에서, 그런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디테일이 강한, 예측하지 못한 돌발적 운명을 강조한 감독이라는 식으로 봉준호를 정의내리고 있다. 
과연 <살인의 추억>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것이 범인이 잡히지 못해서, 80년대를 천연덕스럽게 되살려 냈기 때문만일까? 국민 엄마 김혜자를 굳이 자식 사랑에 살인도 불사하는 파렴치한 모성으로 되살려낸 영화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mbc 다큐 스페셜>은 마치 서울 소개 다큐가 서울에 가면 광화문도 있고, 경복궁도 있고 하는 식의 겉훒기식 소개를 하듯, 봉준호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봉준호는 이런 사람이예요 라는 소박한 소개는 될 수 있을 지언정, 봉준호의 영화를 보고, 그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갈시켜 주는데는 역부족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핫한 배우 김수현의 나레이션까지 얹어, 흥행 감독 봉준호를 그럴싸하게 보이게는 했지만, 외국의 유명 배우들이 달려와 함깨 하는 세계적 감독이 된 봉준호의 세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것이 2013 인물의 첫 회라는 점이다. 2013년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을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그것은 인물의 개략적인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에 대해서는 그 논란에 대해 눈 질끈감고, 화제가 되는 부분만 조명하는 왜곡의 가능성 조차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부디 2013의 인물 시리즈가 어릴 적 우리가 읽던 번드르르한 위인전의 수준을 뛰어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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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8.2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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