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건물 옥상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서정후(지창욱 분)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높은 곳에서 이렇게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이제야 싸워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자를 도망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싸울 것이다.' 채영신(박민영 분)도 다르지 않다. 그녀 역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 남태평양에 있는 섬 하나를 사서 편안하게 살겠다던 서정후는 채영신과 함께 도망가는 대신, 이곳에서,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길을 택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그들을 괴롭히는 '어르신'이란 상징되는 삿된 세력과 마주 서 싸우는 것이다.

 

 

 

 

 

송지나 작가의 화두

돌아온 <모래 시계>의 작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시작한 송지나 작가의 <힐러>, 송지나 작가는, 그 수식어가 그녀에게 얹은 부담감을 저버리지 않고, <모래 시계>로 시작된 우리 시대의 비극을, 그 세대가,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화두로 삼았다.

 

<모래 시계>에서 사회적 정의에 눈밝은 젊은이로 등장했던 배우 박상원이 <힐러>에서 자신의 개인적 입신양명을 위해, 친구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심지어 그것을 이용하는 변절자로 등장한 것처럼, 80년대를 이끌었던 세대의 명멸을 진득하게 주시했다.

또한, 김문식의 동생, 김문호로 대표되는, 그 이후의 세대가, 서정후의 말처럼, 생각만 가득한, 하지만 막상 현실에 있어서는 주춤거리는 존재였음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나, 최근 젊은 세대들이, 각자 자신만의 실존적 문제에 빠져, 사회적 문제에 중지를 모을 수 없음을 작가는 고민의 중심에 둔 듯하다.

이렇게 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를 구성하는, 여러 세대가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작가는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80년대 이후의 세대만이 아니다. 이른바 어르신(최종원)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악의 실체를 고발한다.

80년, 총칼로 무장한채 명확하게 드러난 악은 이후, '자본'의 이름으로, 자신을 무장한 채, 산업 현장으로 시작해서, 정관계, 언론까지, 그 마수를 샅샅이 펼친다. 김문식을 힘으로 협박하고, 그의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자신들의 비리를 덮고 확장하기 위한 정치 자금 현장을 무마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사과 박스에 담은 검은 돈을 퍼나르면서, 멀쩡한 다리를 무너뜨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스러져간 기업들을 잠식하며, 어르신으로 상징되는 세력들을 힘을 키워나간다. 드라마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처럼, 그 과정에서,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을 편의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며,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마을의 생명조차 실험대상으로 삼는, 탈국가적  만행을 저지른다. 한 편에서 기영재(오광록 분)같은 인물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김문호와 같이 대중적 인물은 성과 관련된 스캔들로 제거하고자 하는 '통치방식'의 세련됨을 구가한다. 심지어 한 마을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며, '민영화'라는 국가 자본에까지 문어발을 확장하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무기력해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렇다면 이렇게 전지전능해져 가는 어르신에 대해 무기력해진 우리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그에 대해 송지나 작가가 내세운 해법은, 세대간의 '연대'이다.

변절한 김문호가 있는 반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그 시절의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어른들이 앞장서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옥에서 나온 기영재가 언젠가 먼 훗날을 기약하며 서정후를 힐러로 훈련시켰듯이 말이다. 김문식의 사랑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자유 언론'의 일원 최명희(도지원 분)도, '돈'만 아는 해커가 아니라,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공적 권력에 대한 회한을 가진 조민자(김미경 분)가 그들이다.

이렇게 여전히 밝은 눈을 가진 어른들과 함께, 어른이 되어가는 김문호의 세대가,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넘어서면, 서정후와, 채영신같은 젊은 세대들도 그들의 손을 맞잡고 싸울 수 있을 것이라 송지나 작가는 20부를 통해 강변한다.

 

특히나 그저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등으로 외로움에 사무쳐 살던 그래서 돈이나 벌자고 하던 서정후, 버려진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기자라는 막연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채영신, 그들은 뜻밖에 마주친 개인사의 이면에 고민하고 고뇌한다. 이렇게 돈이던 명예던, 각자의 실존적 이상을 향해 치닫던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이 마주친 고민들이 어쩌면 각각 역사적, 사회적 근원을 가진 것들이라는 것을, 서정후와 채영신을 사연을 통해 작가는 풀어가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개인사의 이면을 고민하다, 사회적 부조리에 닿는 것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들 역시, 실존적 틀을 넘어, 사회적 프레임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으면 하는 소원을 드라마를 빌어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옥죄어 오는 현실적 어려움의 그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밝은 어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회, 어르신의 비리를 만천하에 폭로할 증거를 가지고 공항에 도착한 연구원을 마중하러, 나란히 어깨를 겯고 공항을 걷는, 서정후, 채영신, 그리고 김문호, 조민자의 모습이 바로 송지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의 현실태이다.

또한 그렇게 그런 그들과 함께 뜻을 함께 하게 된 썸데이의 장병세(박원상 분), 형사 윤동원(조한철 분) 등의 존재에서, 세상은 암울하고 우리의 힘은 미약하지만, 싸우고자 한다면, 여전히 함께 할 누군가가 존재함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힐러의 성취, 그리고

이렇게 힐러라는 액션 어드밴춰물의 주인공같은 존재를 등장하여 대중의 구미를 당긴 드라마 <힐러>는 여전히 시대적 고민을 놓치지 않은 송지나 작가의 야심작이다. 그러기에, 드러나는 스토리 너머, 숱한 상징들이 드라마를 채우고, 그 행간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약점도 있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펀치>가, 통수에 통수를 거듭하며 권력의 명멸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 것에 반해, 상징적 화두로 가득찬 힐러는 상징은 풍부하지만, 그 상징을 풀어내는 장치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세련된 권력으로 성장한 어르신의 해법은 종종 오비서와 배상수 집단의 폭력적 방식을 통해 안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어르신이 장악한 사법, 경찰들의 권력은 쟁쟁하지마 정작 해결 방식들은 뻔하달까? 마지막 회, 고성철이 가지고 온 동영상 속 어르신의 비리 장면을 증명해 줄 연구원의 폭로와 그를 둘러싼 접점은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단순해 드라마적 재미가 반감되었다.

 

거기에, 언제나 그렇듯, 송지나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운명적인 사랑이, 과연, 세대간 연대를 지향하는 이 드라마의 균형점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짚어볼 지점이다. 서정후와 채영신의 사랑은 극적이고, 갸륵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운명을 잊을 만큼, 농후하기도 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흐트러 트린 지점이 있었던 점이 옥의 티라며 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한이 없다'는 송지나 작가의 소감처럼, <모래 시계>로 시작하여, 여전히 시대적, 역사적 혜안을 놓치지 않은 작가는 <힐러>를 통해 이 시대 우리가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흔들림없이 그려내었다. 여전히 시대적 책임감을 놓치지 않은 제대로 된 어른으로 최선을 고민한 20부의 과정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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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2.11 06:21

제2의 모래시계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월화 공중파 3사 드라마 중 송지나 작가의 <힐러>는 제일 후속작 <빛나거나 미치거나>에도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이제 종영 단 2회를 남겨두고, 80년대에 얽힌 과거사가 모두 밝혀지고, 김문호(유지태 분)는, 썸데이를 통해, 그 진실을 폭로하였건만, 어쩐지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맥이 뚝뚝 끊긴다. 분명 심각하고 진지한 것인데, 그 심각함의 톤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이렇게, 80년대의 악연이 풀어지는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두 남녀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 서준석(지일주 분)이 사랑하게 된 채영신(박민영 분)의 아버지 오길한(오종혁 분)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서정후(지창욱 분)는 괴로워한다. 역시나 자신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 자책한다. 하지만, 김문호의 도움으로, 그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자도 비겁한 사람도 아니었다는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역시나 그저 버림받은 줄로만 알았던 채영신 역시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서정후처럼 한때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나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한다. 
그런데, 바로 이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 문제다. 
극 초반, <힐러>라는 작품명답게, 스파이처럼 동분서주 신출귀몰하던 서정후는, 자신이 힐러라는 걸 채영신이 알게 되고, 그녀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자, 힐러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대신, 채영신 지킴이로써, 그녀의 곁에 머물고자 한다. 

80년대 부모들의 얽힌 인연이 낳은 서정후와, 채영신의 슬픈 운명,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분명, 그 사랑이 역사성까지 지니며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역사적 명제를 풀어가고 있는 극의 사명을 잊은 채 종종 '로맨틱'물이 아닌가 싶게 전혀 다른 드라마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사부의 죽음을 맞이하고 사부가 만들어 준 아지트에 칩거한 서정후, 힐러를 찾아간 영신, 거기까지는 구원의 여인으로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아지트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애정 행각은, 극의 흐름을 끊은 채 마치 무릉도원에 간 사람들처럼, 세상에 없는 행복한 애정씬을 보인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심각한 사명을 띠고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거침이 없다. 심지어, 2월 3일 자 방영 분에서는, 어르신의 집에서 잠이 든 서정후를 찾아 다짜고짜 어르신의 집으로 뛰쳐 들어간 영신이, 졸고 있는 정후를 자기 무릎에 뉜 채 한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거기가 어딘가, 목숨이 촌각을 다툴 수 있는 사지인데, 거기서 한가롭게 잠에 취한 서정후를 무릎에 눕히고, 영신은 애정에 겨운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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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송지나 작가는, 심각한 역사적 이슈를 드라마로 풀어내는 무게감을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완화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힐러>에서, 서정후, 채영신의 사랑 이야기는 그런 완충적 역할을 넘어서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볼 정도가 되고 있다.
마치 드라마는 '미드' 등에서 , 전형적으로는 <007> 시리즈에서 흔히 보이듯, 적나라한 남녀의 애정씬을 염두에 둔 듯, 두 사람의 애정씬을 소모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흔히 '미드'의 소모적 눈요기씬이라기엔, 지금 <힐러>라는 드라마에서 서정후와 채영신의 애정씬은, 부모 세대의 비극으로 인한 극적인 사랑의 운명을 넘어서,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 2월 3일 18회, 드라마는, 과거, 서정후의 부 서준석과, 채영신의 부 오길한이 함께 정치자금이 오가는 현장을 취재하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오길한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그것을 보고, 서준석은 그것을 알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희생되었는지을 밝혔다. 서정후와 채영신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었던 비극의 전사가 18부에 이르러서야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과정의 목격자, 김문식이, 처음엔 잡혀가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그것을 자신의 입신양명에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이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 냈었다. 오늘날 서울 시장 후보로 나와서, 80년대 자신이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며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김문식의 전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동생 김문호는, 그런 형의 이면을, 그리고 형의 비겁으로, 억울한 죽음이 된 형의 친구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형들의 죽음을, 게릴라 형식으로, 썸데이를 통해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결정적 사건들이, 드라마에서는, 서정후와 채영신의 사랑 이야기에 눌려 조역처럼 작용한다. 마치, 그런 과거의 사건들은 두 사람의 애정을 가렸던 한 점 구름처럼만 여겨진다. 

그리고 <힐러>의 진짜 딜레마는 이것이다. 송지나 작가는, 80년대 이 땅을 뒤덥은 비극적 역사와, 거기에 임했던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 그들의 동생,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 등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역사가 오늘에 있어서도 어떤 질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를 풀어내고자 하는데, 정작 드라마는, 방점을 어디에 찍을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가 내세운 주인공은, 20대의 젊은 남녀들이고, 그리고 그들이야 말로, 어른들 세대의 질곡을 해결할 세대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그것을 풀어내는데, 젊다보니 사랑도 해야 하고, 뭐 그런 처지다. 그렇게 젊은 세대를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정작, 지금 과거의 질곡을 풀어내기 위해, 메이저 방송사의 앵커직마저 때려치우고 나와서, 찌라시 언론이었던 썸데이를 통해, 형들이 하던 방송으로 21세기판 해적 방송을 하는 김문호의 도전은 항상 한 켠으로 밀려나곤 한다. 정작, 드라마가 벌이는 싸움은, 거대 언론의 수구가 된 형 김문식과, 그런 형에 대해, 또 다른 방식의 언론을 통해, 실현 가능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문호의 게릴라전인데, 그런 주된 싸움의 방식이, 주인공이 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의 들러리가 되는 느낌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종 들곤 한다. 차라리, 김문호가 주인공이 되어, 싸우고, 두 남녀 주인공이 거기에 양념처럼 버무려진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면 좀 더 극의 주제가 살아날 텐데, 번연히 드라마는, 갈 길을 헤맨다. 

거기에 덧붙여, 이른바 '어르신'이라는 상징적 악의 존재도 피상적이다. 어르신(최종원 분)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80년대도 그렇고, 21세기가 된 현재에도 그렇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어르신으로 존재하는,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권력의 파워가 몇 번을 명멸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피상적인 '어르신'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규정하는 것 역시 <힐러>의 딜레마이다. 18회, 드디어 썸데이에 대한 검찰 , 세무, 심지어 썸데이 대표 부인이 하는 치킨집에 대한 세금 폭탄 등의 구체적인 제제가 등장하지만, 그 이전에는 맘에 들지 않으면 없애 버리는 원천적인 응징이 드라마의 주를 이루었다. 현대 세계의 시스템화된 악에 대해 드라마는 피상적으로 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그러니, 결국, 다시 18회 마지막, 영신 앞에 등장한 해결사 킬러로 극의 돌파구를 해결하려 든다. 이제 세상은 킬러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한 사람 정도는 없앨 수 있는 조직화된 악의 시스템을 갖춘 세상에서, 여전히 <힐러>는 그 예전의 원초적 해결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고자 한다. 역사를 논하고자 하면서, 정작 역사의 변화에 대해 둔감하다고나 할까. 이런 점들이, 드라마 <힐러>를 어딘가 붕 뜬 사회 고발극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서 부터 이어진 대한민국의 비리 권력의 역사, 그리고, 거기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그리고 지금도 도전 가능한 언론의 기능, 그리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시도하고자 한 송지나 작가의 열정이 무색해 지지는 않는다. 부디, 마지막까지 그 본진을 잃지 않고, 훌륭한 마무리를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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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2.04 11:11

기영재(오광록 분)가 죽었다.

해적 방송을 한 이유로 정치범이 되어 12년의 감옥살이를 한 그가, '힐러'라는 의심을 받고(아니 스스로 힐러라 자청하며)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의문의 독살을 당했다.

기영재의 시신이 모셔져 있는 장례식장, 한때 그와 함께 '언론의 자유'를 위해 해적 방송을 불사했던 친구 김문식(박상원 분)이 찾아와 오열한다. 그리고 오비서(정규수 분 )에게 가장 비싼 비용을 들여 그를 보내줄 것을 주문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족 한 사람없는 오랜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서럽게 추모해주는 유일한 친구, 더할 나위없는 우정이다.

 

하지만, 김문식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그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가장 슬프게 눈물을 흘리지만, 그런 김문식과,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오비서를 두고, 동생 김문호(유지태 분)는 동전 앞 뒤처럼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내린다. 김문식이 양지에서 그 분의 하수인으로 그럴 듯한 언론의 대표로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동안, 오비서는 음지에서, 김문식이 할 수 없는 온갖 불법적인 뒤치닥거리를 한다. 기영재의 죽음도 오비서의 사주를 받은 박형사의 범행이다. 김문호는 말한다. 과연, 김문식이, 오비서가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모르겠냐고.

 

그렇다면, 김문식의 추모가, 위선, 심지어 위악이라면, 기영재의 억울한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하얀 보자기가 씌워진 상자에 담긴 기영재, 그 상자는, 슬며시 바꿔치기당한다. 김문식이 가장 슬픈 표정을 짓고 가짜 기영재의 유골함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설 때, 또 한 사람 기영재를 사부로 모셨던 진짜 힐러, 서정후(지창욱 분)가 진짜 기영재를 들고 그곳을 떠난다.

 

처음 기영재가 자기 대신 힐러임을 자청하고 경찰서로 잡혀가 심문을 받다 죽었다는 사실을 안 후, 서정후는, 모든 통신기기를 끊고, 기영재가 남겨 준 아지트에 칩거, 세상과의 소통을 끊었다. 늘 밉다고 했지만, 그 누구보다 그리워했고, 믿었던 어쩌면 그의 유일한 가족, 사부, 기영재가 자기 대신 죽어갔다는 사실을 서정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서정후와 소통하던 동업자 조민자(김미경 분)가 그녀의 아지트를 나선다. 그리고 채영신(박민영 분)을 찾아가 서정후의 아지트 위치를 가르쳐 준다. 지금의 서정후를 그곳에서 구출해 낼 유일한 사람이 채영신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판단이 틀리지 않게, 채영신은 서정후를 구출해 냈고, 다시 기운을 차린 서정후는 김문호를 찾아간다.

 

기영재의 제자 서영후, 그리고 늘 기영재를 낯도깨비라 불렀던 조민자, 그리고 기영재를 형이라 불렀던 김문호는 그리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영재를 추모한다.

 

뉴스1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그저 골방에서 죽은 기영재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짓거나, 그의 죽음을 억울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채영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경찰서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그 죽음의 복수를 가장 멋지게 해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 서정후는 위험을 무릎쓰고 경찰서에 들어가, 조민자를 위해 경찰서 보안 망을 뚫고, 다시 박형사의 집으로 찾아가 숨겨진 그의 대포 통장과 기영재를 죽이는데 사용한 독극물을 찾아낸다.

그리고 힐러인 서정후와, 조민자가 함께, 밝혀낸 박형사의 비리와, 그 배후 오비서가 함께 찍힌 사진을, 김문호는 사이버 대응센터 팀장 윤동원(조한철 분)에게 전달하는 한편, 박형사를 검거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취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썸데이'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공개한다.

 

박형사 사건의 말미, 김문호의 앵커 멘트는 비장하다.

 '세상에는 언론에서 다루어 지지 않는 숱한 억울한 죽음들이 있다. 그 모든 사건을 다룰 수는 없더라도, 단 하나의 억울한 죽음이라도 거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게 김문호와 서정후, 조민자의 합작으로, 기영재의 죽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드디어  그간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던 오비서가 경찰에 연행된다.

<힐러>를 통해 송지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추도의 방식이다. 죽은 자를 그저 그리워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방식은, <힐러>에서 보여지듯이, 그 억울한 속내를 샅샅이 밝혀내는 것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있는 추도의 방식은, 2014년 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작가의 발언이기도 하다.

같은 날 jtbc 뉴스는,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 유족과 생존자들의 대장정을 보도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그저, 세월호를 인양하여, 숱한 억울한 죽음의 속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달라는 것! 그리고 손석희 앵커는, '부끄러움'에 대한 논평을 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그것을 이념 논쟁의 먹잇감으로 던져버린 악폐가, 사회 전반적으로 후안무치한 범죄들을 잇달아 벌어지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힐러>에서, 사부를 잃고 분노하며 달려가는 서정후를 붙잡아 세운 것은, 그래서 함께 복수를 하자고 달랜 것은 김문호이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실의에 빠진 서정후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채영신을 찾아간 것은 조민자였다. 젊은 세대들이, 다시 힘을 얻고 싸울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김문호와, 조민자같은, 어른다운 어른들의, 부끄러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듯한 기자로, 유능한 음지의 해커로 살아왔던 그들이,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반성과 회한,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 대한 실천이 선행될 때, 젊은 세대들은 좌절에서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그런 그들의 자각과 실천은, 그 반대편에서 쉽게 항복하고, 그 항복을 통해 자신의 입신양명을 얻어낸 김문식의 후안무치함과 비교된다. 비록 김문식이 느네들이 겨우, 몇몇의 느네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비웃었지만, 김문호의 말처럼, 억울한 한 사람의 죽음을 밝혀냈다. 그 끝마저 창대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의 뒷받침으로 이제 막 힘을 얻기 시작한 젊은이들, 이들이 함께,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추모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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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1.27 05:45

공교롭게도, 2015년 새해 벽두부터, 공중파 3사의 월화 드라마는, 비리와 권력으로 더렵혀진 세상을 향해 전쟁중이다. 물론, 3사  드라마 각자가 싸우는 대상도 다르고, 싸움의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드라마가 굳굳하게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것만은 같다. 포기하지 말고 싸우자!


sbs <펀치>의 등장인물들은 피터지께 싸우는 중이다. 처음에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싸우더니, 이제 그 형의 비리를 들고 싸우고, 그리고 그 형이 원죄를 뒤집어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 형의 복수와, 거기에 얽힌 관계를 놓고 대결한다. 그런 싸움 속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법'과 '정의'도 있지만, 아들의 병역 비리, 입지전적 성공에의 갈망과, 사업하는 형의 정경유착 비리, 그리고, 구속된 아내를 풀려내기 위한 타협과 협박 등 각자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법'으로 굴러가야 할 사법 체계를 일그러뜨리는 동안, 여주인공인 신하경(김아중 분)만이 줄곧 우직하게 '법' 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 

서울경제

아이를 사고로 몰아넣은 진짜 범인, 이태준(조재현 분)의 형 이태섭을 잡으려 하다가, 검사로서 직을 던지고 스스로 청문회장에 서기도 하고, 결국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된다. 남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태섭 회장의 자술서로 타협을 한 줄 알게 된 신하경은, 자신을 구하기위해서라는 걸 알면서도, 애초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큰 그림인 오션 캐피탈 김회장과 이태준의 밀착 관계를 밝히기 위해 뛰어든다. 심지어 그토록 믿고 따르던 윤지숙(최명길 분) 장관의 수사 종료 지시에도 따르기 힘들다. 

우직한 검사들은 또 있다.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최진혁 분)와 한열무(백진희 분)가 그들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놓쳐버린 유괴범 때문에, 그리고 유괴로 인해 죽임을 당한 동생 때문에 검사가 된 두 사람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못해 용의자까지 되고 마는 민생 안정팀의 팀장 문희만의 회유와, 드러내놓고 위협을 마다하지 않는 실체, 그리고 그 하수인인 검찰국장등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15년전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속해있는 민생 안정팀이 해체되는 위기에 빠져도, 그 자신들이 신체적 위해 등의 위협을 당해도, 그리고 검사로서의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우직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을 향해 '정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구동치 자신은, 15년전 그날, 자신이 백곰의 살인범일 지도 모른다는 혐의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15년전 사건 현장으로 다시 한번 뛰어든다. 

이렇게 <펀치>의 신하경이, 그리고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와 한열무가 우직하게 '정의'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굽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그 '법'적인 정의를 실천할 도구를 가진 검사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검사들이, 그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법적'인 정의가 바로 세워질 수 있음을 밝힌다. 물론, 그 과정은 갖은 협박과 위협과, 회유가 반복되는 과정이지만, '법'이라는 수단을 구현하는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어렵게 밝혀가는 중이다.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늘 만만한 건 아니다. <힐러>의 김문호 기자는 그가 진행하던 뉴스에서, 방송국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직구를 하고, 결국 자신이 진행하던 데스크를 박차고 나오기에 이른다. 상위 1%의 기자이지만, 이제 그가 세상을 향해 소리치던 '마이크'를 잃었다. 하지만,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늘 '언론'의 정의를 실현하려던 자신을 회유하고 방해하던 거대 언론대신, 비록 '찌라시'의 수준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올곧이 전할 수 있는 언론사를 꾸려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서울 시장 후보자 언론 인터뷰 현장에서 허락된 기자들만이 출입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김문호 기자가 몸담고 있는 '썸데이' 는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정공법'이 안된다면, '게릴라'식으로 허를 찌르는 방식을 택한다. 바로 옆 약혼식장의 측근으로 위장한 서정후(지창욱 분)와 채영신(박민영 분) 커플이 화려한 복장으로 봉쇄 라인을 뚫고 들어가고, 채영신이 도발적 의상으로 인터뷰 장 한 가운데로 뛰어나가 서울 시장 후보자에게 그와 관련된 섹스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이어, '썸데이' 뉴스의 김문호 앵커의 그와 관련된 멘트가 이어진다. 세상에서 주어진 방식이 진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캐가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들이 비리를 밝히고자 하는 하며 싸우는 대상, 혹은 그런 그들과 부딪치는 대상들과, 이들의 차이점은 사실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한 발자국' 바로 거기에서, 지금의 현격한 차이가 만들어 진다. 
이른바 '어르신'의 집안으로 들어가다, 김문호의 형이자, 메이저 언론사 사주이며, 권력의 '개'로 살아왔던, 김문식(박상원 분)은 자신의 그 첫 '한 발자국'을 회상한다. 한때 자유 언론의 수호자로 개조된 트럭을 몰고, 서울 하늘 곳곳에 진실을 알리기에 용기를 냈었던 김문식은, 그 자신과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정의'를 외면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만과 편견>의 끊임없이 정의와 타협의 길을 오고가는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 역시, 수사를 하던 과정에 저지른 뺑소니 사고, 그것을 덮기 위한 한 걸음이, 그를 '화영'의 개로 만들었다. 
<펀치>에서, 우직하게 '정의'의 편에 섰던 윤지숙 장관의 한 걸음은 바로 병역 비리를 저리른 아들이었다.
기성 세대가, 일신상의 이유로, '정의'의 편에서 물러서서, 세상과 타협하는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그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무너져 내렸던 것을 알기에, 아니, 그 실체를 모르더라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에, 젊은 그들은 우직하게, 자신들의 정의를 고수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 수록, 그들의 정의가 위태위태하고, 때론 안타깝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펀치>에서 유일하게 강직한 인물을 여주인공 신하경이지만, 보는 시청자는 그런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때론 그 고지식한 정의가 안타까울 정도로 '융통성 없어 보일'뿐이다. 
그런 그녀보다는, 때론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때론 입신 양명을 위해, 때론 모시는 분을 위해,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 박정환(김래원 분)에게서 인간적 향기를 맡는다. 
<오만과 편견>도 마찬가지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직한 구동치와 원론적 질문을 던지는 한열무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를 저울질하면서, 그래도 차악을 선택하려 애쓰는 문희만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그녀의 아이를 외면하고, 평생 그것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김문식의 사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젊은 그들의 정의는 어쩐지 불안하고 어설픈데, 노회한, 그래서 '타협'이 익숙한 저들의 편의는 익숙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화법'이 거기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오만과편견
tv데일리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들은, <펀치>에서도,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리고 <힐러>에서도 밝혀지는 권력층의 비리, 섹스 스캔들을 비롯한, 온갖 협잡과 권력형 비리들이, 결국, 누군가의 개인적 이해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들이다. 인간적이어 보이는, 그들의 '한 발자국'이 결국, 이렇게 갈짓자, 흐트러진, 썩은내 나는 권력형 비리와 스캔들로 이어진게 된다는 것을, 각종 사건들로 드라마는 상징적으로 설명해 낸다. 

그래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정의'가 주는 울림은 강하고 깊다. 어렵게 다시 마련된 앵커의 자리, 좁은 스튜디오, 단 한 대의 카메라, 그것을 앞에 두고, 김문호는 말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썸데이'의 뉴스가 계속될지, 이번 한번이 될지, 혹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썸데이'는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말을 맺는다. 그저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여운이 오래 간다. 이 희박하고도, 어려운 '진실'을 말하기 위해, <힐러>, <펀치>, <오만과 편견>은 고군분투 중이다. '희망'으로 시작되는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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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1.07 12:37

윤지숙 법무부 장관(최명길 분)이 커피에 프림을 탄다. 탁해지는 커피, 그리고 그렇게 탁해지는 커피를 빗대 공안판사를 하던 이태준(조재현 분)이 검찰총장이 되면, 검찰의 물이 흐려질 것이라 자신의 반대 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그런 법무장관의 반대에, 이태준은 설탕을 한 숟가락 퍼서 그걸 라이타로 달군다. 검게 변한 설탕, 그걸 먹으며 '아이고 달다'며, 검으나, 희나 설탕이기는 마찬가지라 당당하게 주장한다. 검찰총장의 자격에 '공안 검사' 출신이 무슨 문제냐 는 것이다. 이렇게, <힐러>의 주인공 검찰총장 내정자가 된 이태준은 검은 설탕으로 비유된 자신의 삶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펀치 김래원 조재현

텐아시아


아니 오히려, 당당하다. 자동차 회사 오너인 그의 형이 경비를 착복하기 위해 불량 부품을 써서 급발진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검찰에 소환당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걸 자신의 심복인 박정환(김래원 분)에게 뒤집어 씌우려 할때 그를 수몰당한 자기 부모 무덤이 있는 강가로 부른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 이장하라고 준 정부의 보조금으로 자신과 형이 대학 등록금을 냈었다며 과거를 회고한다. 그렇게 부모를 물에 잠기게 하고 달려온 자신의 길이, 결국 이렇게 멈추게 되었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입지전적 자수성가의 이태준,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제 검찰 총장을 바라본다.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상대 후보자 아들의 뒤를 캐는 정도는 약과이고, 후보자 청문회에서 드러날 온갖 잡음들, 이제 그것조차 불리해 지자, 도마뱀 꼬리 자르듯 왼팔 격인 박정환에게 떠밀고 검찰총장으로 금의환양하고자 한다. '법'의 수장으로 가기위해, 그가 택한 수단들은 지극히 '탈법'적이지만, 어렵게 자수성가 해온 그에게, 검찰총장도 하고, 법무부 장관까지 하고 싶었던 그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태준 정도의 거물은 아니지만, 자신의 성공 때문에 '비리'를 눈감은 '법조인'은 또 한 사람있다.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최민수 분), 그의 부하 직원인 구동치(최진혁 분), 한열무(백진희 분), 강수(이태환 분)의 뒤얽힌 인연은 결국 문희만이 저지른 교통사고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재건 그룹을 잡기 위해, 자신이 저질렀던 교통사고를 덮었던 그, 하지만, 구동치에게 그가 밝힌 진실은, 재건 그룹을 잡으려고 했던, 그래서 뺑소니를 쳤던 자신이, 재건 그룹을 무너뜨리려 했던 화영 그룹의 '장기판의 말'같은 존재였다고 토로한다. 그가 저지른 '뺑소니' 사건은 재건 그룹 붕괴 커넥션의 일부였던 셈. 하지만 문희만은 살아남기 위해, 그런 '비리'를 눈감는다. 그리고 이제, 후배 검사에게 말한다. '진짜 센 놈을 잡기 위해선, 다른 힘센 놈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그것이 '이곳의 역사'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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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이렇게, <펀치>의 이태준과, <오만과 편견>의 문희만이 법조계 비리에 일조하고 있는 가운데, <힐러>의 악의 축으로 등장한 김문식(김문식 분)은 메이저 언론 제일신문의 회장이다.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사람 목숨쯤이야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물론 그 역시 한때는 해적 방송의 일원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권력의 시녀로써, 아니 적극적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일원이 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펀치> 이태준 역의 조재현, <힐러> 김문식 역의 박상원, 그리고 <오만과 편견> 문희만 역의 최민수는, 당대 내노라하던 청춘의 꿈과 열정을 연기하던 청춘 연기자들이었다. 조재현이란 이름을 처음 알린 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의 선장에 반항하던 젊은 어부였다. 박상원과 최민수, 그들은 더 거들 것도 없이, 80년대를 상징하는 드라마, <모래 시계>의 두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중후한 나이가 되어, 아버지 세대의 역할을 한다. 그들이 연기하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때를 묻혀간다. 모래 시계의 세상과 타협하지 않던 젊은 검사는 이제,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권력을 뒷배로 삼아 세상을 주무르려는 언론사 회장이 되었다. 박상원이 연기했던 모래 시계 원 주인공의 모델이었다던 홍준표 검사가, 이제, 젊은이들 앞에서 비웃음을 사는 기성 세대가 되었듯이. 그리고 그 과정은, 부모님의 이장비로 등록금을 내던 이태준이, 비리 기업을 법의 심판대로 세우고자 예각을 세웠던 문희만이, 해적 방송을 통해 진실을 알리고자 애썼던 김문식이, 자신의 야망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나아가 권력에 편승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런 자신의 삶을, 검으나 희나 설탕이라 합리화하거나, 더 큰 세력의 농간에 휩쓸리는 것이 역사라 자조한다. 심지어,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자부하거나. 

한경 와우스타

그들이 편승한 권력의 수단이 주목할 만 하다. 법과 언론,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혀주어야 하는 잣대와 등대들이, 스스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권력과 한 배를 탄다. 그리고, 야망을 위해, '법'과 '권력'을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 '권력'이 되고자 하는 기성 세대가 된, 한때는 소나무같은 젊은이였던 이들이 월화 드라마의 악의 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우리 시대, '권력'이 된 한때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의 야망의 수단이 된, 이제 그저 '권력'의 한 편인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애꿏은 모자의 운명을 가르고, 7000여 노동자의 목숨줄 정도는 즈려 밟고, 그런 진실들이 은폐되게 만드는 '법'과 '언론'의 수호자가 된다. 그래서, <펀치>, <힐러>, <오만과 편견>에서 처럼, 이 시대의 법과 언론은, '정의'와 '진실'의 수호자대신, 권력의 시녀, 정권의 나팔수 역을 자임한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기꺼이 맡은, 야망의 세대는, 추한 기성세대가 되어, 다시 한때 그처럼 열정에 불타오르는 젊은이들과 일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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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12.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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