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앵란과 신성일은 60년대의 대표적 청춘 스타이다. 60년대의 청춘의 상징이었던 두 사람은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에서처럼 사랑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축복받는 결혼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그 이후의 이야기는 결코, 우리가 흔히 보듯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을 맺지 못했다. '스타'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혹은 무색하게 전국민이 두 사람의 별거와 그에 이르기까지의 속내를 잘 알수 있도록 '가쉽'성 기사를 양산해 냈다. 




황혼 이혼이 낯설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의 뒤늦은 해후 
'황혼 이혼'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이 말의 범용화의 의미는, 더는 '백년해로'가 미덕이 되지 않는 세상을 되었다는 것이고, 결국 그 근저에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이 들어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노추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미덕이 아닌 것이 된 세상에, 2016 휴먼 다큐 사랑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40년을 별거한 엄앵란 신성일 부부의 '결합' 이야기이다. 도대체 40여년을 따로 살아왔던 이 부부가 이즈음에 굳이 함께 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에는 아내 엄앵란의 건강 상의 위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건강 검진 프로그램에서 유방암 검사를 받은 엄앵란은 수술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건강하게 가정을 지탱해 왔던 아내의 뜻하지 않은 암 통보는 바깥으로 돌았던 남편 신성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에 남편은 남은 여생 아내의 곁에서 아내를 돌보며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하지만 방탕한 남편의 귀의라는 미담으로 단순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남편의 의지는 뜻밖에도 '이제와서 무슨!'이라는 아내의 주저함이라는 벽에 봉착해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미 서로 떨어져 산지 40여년 세월, 바람에, 정치에, 그리고 영화를 한답시고 투자에, 당대 최고의 여배우란 수식어가 무색하게 신성일의 아내로 살아온 시간은 여배우 엄앵란에게는 남편이 감당하지 않는 가정을 '가장'으로 이끌어와야만 했던 고난의 시간이었다. 비록 아직도 두 딸과 아들의 아버지로서 그와 호적상으로 갈라서지 않고, 여전히 시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있지만, 부부로서의 믿음을 잃어버린지 오래, 거기에 사는 스타일마저 다른 남편과 너무 오래 떨어져 산 엄앵란은 남편의 제안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런 남편의 제안에 맞춰 두 사람의 결합을 유도하는 방송조차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고. 

하지만, 방송과 신성일은 꾸준히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한다. 별거 이후 네 번째인 신성일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하고, 며칠에 한번 아픈 아내를 위해 보양식을 싸들고 찾아오고,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위해 장모님을 모신 절에 동행한다. 

결국 이런 남편과 제작진의 지극한 성의에, 아내 엄앵란은 지난 시간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남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가는 자신에게 여전히 '기둥'이었음을 받아들이고, 의지할 의향을 보이며 방송은 마무리된다. 



'사랑'을 빙자한 노년의 환타지는 아닐까?
이날 방송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호사다마했던 신성일의 일생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는 남편 대신 가장이 되어 한 가정을 이끌어 왔던 전통적인 어머니 엄앵란이다. 
엄앵란은 여든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몸신이다> 등의 방송 패널로 활동 중이다. 심지어 다큐에서 보여진 유방암 수술을 하고서도 아직 채 완쾌되지 않은 노구를 이끌고 방송 출연을 재개한다. 그 이유는, 그녀의 일생이 남편이 돌보지 않은, 그리고 이제 여전히 자식들에게 용돈은 커녕, 집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여전히 그녀가 유일한 이유로 마음 편히 쉴 틈이 없다. 심지어 자신이 죽고 난 뒤 자식들과 남편이 거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60년대의 대표적 여배우라 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엄앵란은 방송 패널로 나온 후덕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덕한 외모와 달리, 그녀의 입을 통해 풀어지는 이야기들은 젊은 세대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주입'하다시피한 내용들이었다. 주로 종편의 이야기 쇼를 통해 활약하는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엄앵란의 이야기는 그녀가 여자임에도 여자의 편에 서기 보다는 가장과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당연시 해야 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그리고 다큐를 통해 보여진 엄앵란의 모습은 그녀가 방송을 통해 풀어냈던 이야기들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남편이 방기한 가정을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책임지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서도 다시 방송에 서야 하는 노년의 가장이었다. 여전히 그녀를 지배하는 것은 그녀가 지켜내야 하는 가정, 심지어 그녀가 죽고 재혼을 해야 할 지도 모를 남편이었다. 당대 숙명여대를 다니던 재원으로 대중들에게 인텔리로 사랑을 받던 여배우는 하지만, 몇 십년이 지난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 세대의 여성일 뿐이었다. 

단지 그녀에게 자유가 있다면, 여전히 재정적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지만, 남편과 함께 살지 않을 자유였다. 바람잘날 없는 남편과 별거 이후, 남편은 남자의 손이 없어 아프게 되었다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스타일에 맞게 편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과연, 이제와,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결초보은의 자세로 마음을 바꾼 남편과 40여년만에 한 집에 살아야 할까? 다큐는 여전히 남편을 '기둥'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아내 엄앵란의 정서를 강조하며 이 부부의 결합을 '사랑'의 미담으로 구색을 맞추지만, 오히려 '황혼 이혼'이 이상하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 눈에는 40여년을 떨어져 산 낯선 이들의 어색한 동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부부의 가정사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에는 개별성의 깊이가 있겠지만, 40여년 바람처럼 스치듯 살고, 자식과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의 곁을 지켜봐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기둥'이 될 수 있는 세상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남편의 결초보은은 꼭 이미 이혼한 딸과 손주들과 또 다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아내의 집에 들어가 사는 방식으로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인지. 아픈 아내에게 결국 은수저를 찾게 만드는 그의 잔소리와 같은 남편의 고집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별거 이후에도 행복한 부부상을 연출했던 두 사람의 지난 날처럼, 이미 허상이 되어 가는 '가족'과 부부'의 환타지를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부는 한 집, 한 방, 그리고 한 침대를 나누어야 부부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양반가에서는 부부가 담을 나누어 서로 다른 공간에 살아야 했던 것이 법도였던 시대를 살았었다. 별거 40여년의 부부를 아내의 투병, 하지만 이제는 방송 출연조차 가능한 아내를 위해 굳이 한 집에 사는 것을 '사랑'의 미덕으로 그리고자 하는 다큐에, 2016년의 '사랑'이 무엇일까?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by meditator 2016. 5. 3. 06:00

5부작으로 찾아온 <휴먼 다큐 사랑>이 마무리되었다. 지난 5월4일 고 신해철씨의 가족 이야기<단 하나의 가족>을 시작으로 <안현수,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헬로 대디>, <진실이 엄마2,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까지 네 편의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다. 

그런데, 장애를 가졌건, 고난을 거쳤건, 탄생과 성장, 그리고 가족을 이야기하던 <휴먼 다큐 사랑> 하지만 2015년이 그려낸 대한민국의 사랑은 이전과 다르다. 네 편의 이야기에 사랑은 '상실의 시대' 속 사랑이다. '가족'을 이루어 사랑하고 싶으나, 그들의 사랑은 완결되지 않는다. 완결 될 수 없다. 시대가, 세월이 그 가족의 사랑을 방해하고 있으니까. 

2014년 <휴먼 다큐 사랑>은 이역만리 캐나다까지 건너가 샴 쌍둥이 타티아나와 크리스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머리가 붙은 채 태어난 샴 쌍둥이, 하지만 그들의 엄마 펠리시아는 낙태를 권유하는 의사들의 말을 거절하고 이 아이들을 낳았다. 생존율 20% 하루하루가 신체적 불편함을 넘어 샴 쌍둥이이기에 태생적으로 가져야 할 여러 휴유증과의 싸움이지만, 엄마, 아빠, 할아버지, 언니, 동생으로 이루어진 이 샴 쌍둥이의 대가족은, 그 어려움을 사랑으로 이겨내고, 이들을 티없이 밝은 아홉살 소녀들로 키워낸다. 2014년의 <휴먼 다큐 사랑>은 이런 식이다. 거기엔 뇌성마비에, 뇌종양이 걸린 여섯 살 듬직이와 연지가 있고, 희귀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수민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병은 쉬이 낫거나, 고쳐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 혹은 가족을 대체할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그 어려움을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상실의 시대 속 사랑
하지만 그로 부터 1년, <휴먼 다큐 사랑>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그 사랑은 신체적 고통과 달리, 지울 길 없는 마음의 상처다. 

첫 회 고 신해철씨의 가족 이야기 <단 하나의 가족>, 병을 고치려고 들어간 병원에서 의료 사고로 하루 아침에 유명을 달리하게 된 가수 신해철, 그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였지만, 그 이전에 두 번의 암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씨의 사랑으로 버텨낸 아내 윤원희씨의 남편이자, 딸 지유, 그리고 아들 동원이의 아버지다. 그리고 이제 그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평생 피던 담배까지 끊은 집 밖 외출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늙으신 아버지와 그를 대신해 일하러 나간 그의 아내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돌보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휴먼 다큐 사랑>은 하루 아침에 가장을 잃은 이 가족의 이야기를 그의 49제로부터 다룬다. 가장의 부재, 아이들은 여전히 집에 돌아오면 거실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에 밝게 인사를 하고, 자신이 먹었던 맛난 군것질 거리를 나누어 주지만, 이제 아이들이 귀여워 물고 빨고 하던 아버지의 체온을 느낄 수 없다. 병마를 이겨낼 정도로 굳건한 사랑을 믿어주었던 남편 대신, 아내는 오랫동안 외국 출장을 다니며 가장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아버지가 없는 자리,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아이들을 보살피지만, 아이의 입학식 선생님에게 인도할 아버지가 없는 이 가족은 시시때때로 서럽다. 

2회에 걸쳐 방영된 <안현수,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은 그나마 훈훈한 러브 스토리이다. 러시아 선수촌에 유일한 부부 안현수, 우나리. 선수촌의 좁은 방안에서 한국 음식을 해먹이고, 좁은 화장실에서 몇 번에 걸쳐 설거지를 하는 생활을 하며 아내 우나리는 이제는 러시아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의 내조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러시아 선수촌의 유일한 부부가 되기 까지의 여정이 만만한 것만은 아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쇼트 트랙 선수였지만, 한국 쇼트 트랙 빙상계의 파벌 싸움과 텃세에 밀려, 그리고 무릎의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안현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그가 오로지 쇼트트랙을 계속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른 국적이다. 올림픽에서의 영광은 되찾았지만, 이제 안현수에겐 조국이 다르다. 그는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러시아 국가를 들으며 시상대 위에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혹사했던 안현수, 그를 재기시키기 위해 우나리의 헌신적인 사랑이 필요했다. 덕분에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러시아로부터 좋은 집까지 포상으로 얻고, 심지어 올림픽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환호까지 받았찌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빅토르 안이다. 



네 번 째 소개된 이야기는 코피노 민재의 사연이다. 코피노,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아이를 지칭하는 말 코피노. 민재 역시 다르지 않다.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려서 부터 일을 하던 엄마 크리스틴, 그러던 중 만났던 한국인 남성과의 사이에서 민재가 태어났다. 하지만, 민재의 존재를 안 아빠는 연락을 끊고 엄마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필리핀 아이, 하지만 얼굴은 할아버지가 말하듯 한국 사람의 태가 완연한 민재 코스텔로,. 아홉살이 되어서야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게 아버지의 나라에 와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할아버지, 그의 어릴적 사진을 보여주고, 잘 컸다고 안아주시지만, 민재는 결국 아빠를 만날 수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에게 '아빠 사랑해요'라고 할 밖에. 

다섯 번째의 이야기는 <휴먼 다큐 사랑>에서 낯설지 않다. 고 최진실의 두 아이, 환희와 준희의 두 번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양 팔에 매달리던 아이들은 이제 훌쩍 자라 할머니를 웃돈다. 그리고 그 키만큼이나, 이제 마음도 훌쩍 자라, 사춘기이다. 할머니가 물어봐도 단답식으로 네, 아니오만 대답하는 환희는 할머니 원대로 제주도의 국제 학교를 다니지만 여전히 마음은 연예인이다. 그래도 환희는 낫다. 초등학교 6학년 준희는 천방지축이다. 할머니와 말싸움에서 지지않고, 과제를 내주는 선생님에게 '왜?"를 연발하는 열 세살 소녀의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 먼저 간 자식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그리고 그 자식들을 대신해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려는 할머니의 욕심은 웬만한 강남 엄마 저리가라다.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생각은 그저 잔소리요, 간섭처럼 다가간다. 엄마도, 아빠도, 삼촌도 없는 하늘 아래, 할머니와 아이들, 유일한 가족이지만, 생각만큼 그 가족의 관계는 만만치 않다. 



우리 사회로 부터 기인한 상실
2014년의 가족이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의 이름 아래, 혹은 가족적 사랑으로 여전히 이 사회가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면, 2015년의 가족은 '상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어 보고자 한다. 아빠가 없고, 엄마가 없고, 조국이 없는, 이 다섯 편의 다큐 이야기는, '가족 해체 시대'의 한국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의료 사고, 무책임한 한국인 아버지, 이제는 사회적 질병이 된 우울증 등을 이겨내지 못한 부모의 부재, 그리고 한국 사회의 왜곡된 시스템 속에서 조국을 버려야 하는 천재 선수처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2015년의 '상실'이 바로 세월호 사건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가져온 상실 여파라는 걸, 네 편의 다큐를 보며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가족은 함께 모여 사랑하고 싶지만, 그것을 허락치 않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서 가족들은 함께 하지 못한 가족 구성원들의 상실감을 견디며 2015년의 대한민국을 버티어 간다. 2015년이 그린 대한민국의 사랑이다. 
by meditator 2015. 6. 2. 13:04

2015년 5월 11일, 18일 양 일에 걸쳐 방영된 <휴먼 다큐 사랑>은 5년의 침체기를 뚫고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로 하나의 동메달과 네 개의 금메달을 딴 쇼트 트랙 선수 안현수와 그의 아내 우나리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러시아 선수촌의 유일한 부부 안현수-우나리
5월 11일 방영된 첫 편 <휴먼 다큐 사랑-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을 연 것은 빡빡한 러시아 선수촌에서의 안현수 부부의 일상이다. 선수촌에 부부라니! 하지만 러시아 선수촌에 유일한 부부 커플이 바로 안현수-우나리 부부이다. 

안현수 선수의 조그만 방, 거기서 아내 우나리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운동을 하는, 하지만 러시아라는 이방의 입맛과는 다른 한국인 안현수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 조그만 선수용 냉장고가 부족하여, 동토의 러시아 날씨 베란다에서 얼어버린 김치도 꺼내고, 두 세시간 걸려 음식을 만들고, 남편을 먹이고, 하지만 운동 선수 남편에게 '설겆이'를 바라는 건 사치다. 다시 아내는 남편이 비운 그릇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한번에 설겆이조차 할 수 없는 세면대, 그곳이 아내가 설겆이를 하는 장소다. 
아내 우나리의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스케이트를 타지도 못하는 그녀가, 또 한 사람의 선수인 양, 남편의 훈련 길에 동행한다. 피곤한데 쉬어 라고 립 서비스를 하지만 훈련 중간 늘 아내를 눈길로 찾는 남편을 위해, 아내 우나리는 남편의 훈련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는다. 남편만이 아니다. 러시아 팀 공식 매니저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그녀가 찍은 동영상은 또 다른 선수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는 락카, 처음엔 들어오지도 못하다가, 들어와도 어디에 눈을 둬야 할 지 몰라 쭈볏거리다, 이젠 자연스레 선물까지 받는 처지가 되기까지, 안현수의 아내 우나리의 여정은 길었다. 아내이자, 공식 요리사이자, 개인 트레이너에서 마사지사까지, 일인 다역을 하며, 러시아에서 유일한 안현수의 '껌딱지'가 된 우나리, 이들의 사랑엔 한군 쇼트 트렉계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안현수의 비극이 숨어 있다. 



이방인 안현수에서 러시아 국민 영웅 빅토르 안이 되기까지.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부진한 성적과 달리,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을 나이에,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안현수의 소식 이후로, 한국 쇼트 트랙계에 만연했던 '인맥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세계 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쇼트트랙 선수가 된 안현수,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고질적인 쇼트 트랙계의 인맥 갈등에, 끊이지 않은 부상이었다. 결국, 그는 무릎 수술 등과 대표 선수 선발 비리 등으로 더 이상 한국에서 쇼트 트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선수로서 빙판에 서고 싶었던 안현수. 부상과, 외부의 압력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안현수는 무모하게도 '러시아 행'이라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러시아 행의 선택이 이후 소치 올림픽에서 보이듯 화려한 결과를 예정한 것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추스리지 못한 채 오로지 쇼트 트랙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떠났던 러시아, 하지만 중고등학생 수준의 러시아 대표팀에서조차 안현수는 슬럼프에 빠진 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안현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계기가 된 것이 지금의 아내 우나리. 그녀는 홀홀 단신 러시아로 갔고, 안현수를 도와 그가 소치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기 까지 '껌딱지'같은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휴먼 다큐 사랑- 두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은 이미 소치 올림픽 당시, 우리나라 선수를 제끼고 온 국민의 성원을 한 몸에 받았던 안현수, 하지만 조국을 버렸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던 안현수 선수의 그간 행적을 아내 우나리와의 사랑의 여정으로 설명한다. 

그가 쇼트 트랙계의 고질적인 인맥 싸움으로 한국 대신 러시아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하지만 러시아 행을 택하고도 5년만에 화려한 재기를 이루기 까지 결코 쉽지많은 않았던 여정들이, 안현수-우나리 커플의 애닮은 사랑의 시점으로 재탄생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천재 쇼트 트랙 선수 안현수가 아니라, '이방인'에서 '러시아 국민 영웅'이란 여정을 살아낸, 쇼트 트랙을 버릴 수 없었던 선수 안현수의 쇼트 트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여러 번의 무릎 수술로 아직 채워지지 않은 근육으로 금메달을 따기 까지, 고된 훈련 후 말할 힘조차 없어, 새우등이 된 채 구부러져 잠이 드는, 그러면서도 다시 다음 날 빙판에 서는 선수 안현수의 기적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열정어린 선수의 진심을 눈밝에 알아봐주고 지켜봐준 '진심어린 사랑', 그의 아내 우나리의 용기와 또 다른 도전 역시, '이방인' 안현수가 '영웅' 안현수가 되는 견인차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돈'이나, '국기의 색깔, 혹은 명예라는 속세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순수한 사랑의 그것말이다. 
by meditator 2015. 5. 19. 11:41

어젯밤 휴먼 다큐 사랑은 작년 늦은 가을 속절없이 유명을 달리한 고 신해철 씨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밤 11시 늦은 시간 한 시간 가량 전파를 탄 신해철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쉬이기사를 쓸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저 내가 아는, 혹은 내가 좋아했던 신해철이라는 제 3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넘어 그로 인해 기억되는 많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빈 자리 
방송 말미 한 해를 지나고 봄이 되어 신해철의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 입학식 구석에 선생님의 한 사람으로서 내 친구가 앉아있었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듯한 때꾼한 눈을 하고. 그렇게 선생님의 모습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내 친구, 하지만 그 친구의 남편 역시 신해철씨가 유명을 달리하던 그 무렵 역시나 세상을 달리했다. 신해철씨가 황망하게 세상을 등지고 같은 병원에서 장례가 치뤄졌을 때 공동체와 같은 작은 학교의 학부모님이라, 문상을 가려했으나, 차마 얼마전 남편을 보낸 그 병원에 다시 발길을 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친구였다. 그렇게 내 친구와, 친구의 두 아들도, 그리고 방송에 나왔듯이 신해철씨의 아내와 아들, 딸 두 아이들도 작년 가을, 든든한 울타리같은 아버지를 잃었다. 

<휴먼 다큐 사랑- 단 하나의 약속>은 신해철씨가 부재한 가족들의 일상을 반년 가량 다룬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집, 아버지가 함께 하지 못하는 일상이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매일매일, 아직 어린 아이들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늘 옆에서 '물고 빨고' 하던 아버지 대신, 거실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사진 앞, 아버지 영정 앞에, 늘 '아빠'한테 하던대로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군것질 중 하나를 나눠주고, 카드를 그려주고, 아빠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고한다. 

내 친구네 집도 마찬가지다. 거실에 역시나 커다란 아버지의 사진이 놓여있다. 신해철 씨 가족에 비해 아이들이 제법 큰 친구네 아이들도, 하지만, 역시나 부재하는 아버지를 있는 듯이, 스스럼없이 아빠가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남편의 죽음 이후 집을 옮긴 가족, 정리를 하고 왔다는 친구네 이삿짐에서 끝도 없이, 이제는 없는 아버지의 물건이 나온다. 하지만, 가족 중 그 누구도 이제는 '소용없는 아버지의 물건'을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꾸역꾸역 이고지고 온 그 '아버지'의 짐에, 여전히 이 집에 함께 하는 부재한 아버지의 온기를 느낀다.



남편의 부재
아이들의 일상이 '부재'에 대한 실감이라면, 남은 어른들의 몫은 부재한 아버지를 대신하려는 '임무'로 가득찬다.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졸지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신해철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신해철의 아내란 의연함으로 대신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 슬픔이 그녀의 누선을 버티게 하지 못한다. 늙으신 부모님들이 마음아파 하실까봐, 선뜻 아이들이 골라 준 옷이 막상 태워지는 걸 보면 이별을 가슴아파할까봐, 식구들이 안 보는 사이 조용히 홀로 남편의 옷을 태우는 그녀에게서, 한 가정을 함께 이끌어갈 동반자를 잃은 사람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림프암을 앓아 결혼을 기약할 수 없었던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는 사람, 결혼 5년 만에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을 얻고 자신의 포토 갤러리를 온통 딸과의 사진을 채워 아내의 시샘을 받던 사람, 그리고 다시 재발한 아내의 병에 지옥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던 남편은 그 아내를 지켜주지 못하고 먼저 갔다. 그리고 이제, 지켜주겠다던 남편 대신, 아내는 남편의 생전에 연예 활동이 뜸했던 가정 경제를 생각해 시작했던 일을 늘려간다. 출장이 잦아지고, 그런 엄마의 부재를 버텨주는 건, 남편의 부모님이다. 아들이 죽고, 80평생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는 아버님, 뇌출혈의 휴유증으로 거동이 편치 않는 아버님은, 그래도 당신이 건강하게 오래 버텨서 아들 대신 손주들을 돌보겠다고 하신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보다도, 홀로 방으로 올라가는 며느리가 안쓰러운 시어머님은 며느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하시고. 그렇게 남은 어른들은,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로서로 애를 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는 것이 있다. 해가 바뀌어 아들의 입학식 날, 특별한 예식처럼 치뤄지는 입학식에서, 아버지가 손을 잡고 선생님께 아이를 인도하는 순서가 있다. 아빠의 손을 잡고 해맑게 등장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신해철의 작은 아이는 엄마가 그것을 대신할 수 밖에 없다. 아이는 다행히 의연하게 밝게 선생님의 품으로 달려갔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리에 함께 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고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다. 제 아무리 남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애써도 함께 할 수 없는 가족의 자리는 황망하다.

며칠 전 친구 큰 아들의 생일이 있었다. 모처럼 '치킨'이나 먹자고 간 저녁, 알고 봤더니 큰 아들의 생일이란다. 친구가 가져 온 케잌의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조촐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 그 누구도 선뜻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불청객으로 함께 한 객도, 엄마와 아들들, 그 모두가 느끼는 '부재'의 한 자리를 안다. 아마도 아빠가 함께 했더라면, 굳이 객이 끼어야 할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함께 했었더라면, 케잌에, 치킨이 없더라도, 평상시와 같은 평범한 저녁이었더라도, 가득찼을 저녁이, 케잌에, 한 상 가득 음식이 있어도 어딘지 허전하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열심히 일하는 엄마, 자신의 몫을 다하고자 열심히 공부하는 큰 아들, 허전한 가족의 빈틈을 메우고자 노심초사 애쓰는 작은 아들, 그렇게 의연하게 자신의 몫을 다하며 애쓰는 가족들은 웃는 낯으로 여느 하루처럼 그날을 보낸다.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작년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며 신해철이 <snl>에 나와서 유희열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오래도록 기억의 뒷머리를 챈다. 그간 '독설'처럼 쏟아놨던 자신들의 식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유희열이 물었던가? 그에 대해 신해철은 자신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니,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니, 세상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이 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융통성있는 해석을 하게 되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풀어 놓았었다. 그렇게 '아버지'로 살아날 날을대했었는데, 그런 아버지 '신해철'의 빈자리가 여러모로 아쉽다. 

뜬금없이 <휴먼 다큐 사랑> 신해철 편을 보는데, 바로 전주까지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벌집 쑤시듯 들쑤셔 놓은 '세월호 1주기 행사'가 떠올랐다. 신해철이 살아있다면, 그 누구보다 그렇게 죽은 자들에 대해 냉정하고, 매정한 우리 사회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가슴아파하고, 엄정한 비판의 날을 견지했을 텐데.  하지만, 세월호 1년, 바다로 사라진 수 백병의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가슴아파 할 '아버지' 신해철도 이 자리에 없다. '지겹다'는 세간의 반응에 분노할 사람마저 잃었다. 사회적으로 분노하기는 세월호때나, 신해철 때나 다르지 않았지만, 1년이 되어, 반년이 되어, 어느새 그런 문제들은 저마다 자기 사는 문제에 치어 과거지사가 되었다. 심지어, 그를 수술했던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소식은 오리무중이다. 단지 그의 죽음은, 그를 아껴했던 팬들의 추억으로, 그리고 가족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다. 

by meditator 2015. 5. 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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