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어머니들의 초상집 예절이란 게 별거 아니었다. 구슬프게 곡을 하는 상주를 보자마자 신발을 벗어던지고 달려가 함께 부여잡고 우는 것, 그 슬픔에의 '공감'만으로도 초상집에 참석한 의무를 다한 것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그 옛날 초상집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곡비'나, '곡재인'이란 우는 일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상주를 마주하고 가벼운 목례를 대신하는 것으로 인사 차례를 다하는 세상이 되어, 서로가 감정과 감정으로 만나는 대신, 깍뜻한 예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규격화된 사회 속에서 서로는 뒤돌아 앉아 홀로 자신의 주체하지 못하는 삶의 무게를 감당해 내야 했는데. 그 버거운 삶을 지탱하게 도와준다 하여, '멘토'가 득세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치유를 해주겠다고 '힐링'이 예능 프로그램 제목에 걸터앉아 버리고, 이제는 그 조차도 버거우니, '공감'만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공감', 하나 둘 등장하는 예능의 코드다. 




현대판 곡재인
5월25일부터 시작된 tvn의 새 예능은 제목부터 '촉촉한 오빠들'이다. 프로그램의 내용이야 그닥 새로울 것이 없다. 보통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작은 이벤트들. 하지만 이 예능에 방점을 찍는 것은 그 과정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시커먼 남자들이다. 주말 드라마로 새로운 면모를 보인 김상경이나, 최근 대세로 떠오르는 강균성, 정상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커다란 덩치에 '모냥'을 따지는 현주엽에 이르면 참 '생뚱맞다'싶은 조합이다. 그런데 이 남자들이 등장하는 사연을 보고 운다, 하염없이 운다. 하도 울어 울음 끝이 맺어지지 못해 흑흑거리고 얼굴에 흰 티슈가 눌러 붙는다. 남자는 태어나 세 번 운다는 고정 관념이 그다지 멀지 않은 세상에 남자들이 tv속 사연을 보고 함께 울며 '공감' 해주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마음 역시 어쩐지 편해진다. 아이가 아프고, 취직이 안되고, 살아가기 고달픈 우리네 인생사 고비고비마다 마주칠법한 사연들에, 시커먼 사내들의 공감어린 울음,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홀로 세상을 사는 것같지는 않다. 그러니 <촉촉한 사내들>이야 말로 현대판 '곡재인'이다. 

이렇게 대놓고 울어주는 <촉촉한 오빠들>이 있는가 하면, 또 우리는 하는 게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5월 3일부터 시작된 jtbc의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이역만리 미국에서조차 성황을 이루었던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는,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걸려 달려온 많은 사람들이 무색하게 그들을 위해 딱히 해줄 것이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대신 그저 함께 하는 시간, 서로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 주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제한된 방청시간 주제와 관련된 몇몇 사람들의 사연과 에피소드들만이 소개되고, 발언권도 몇몇에게만 주어지는데, 사람들은 그걸 마다하지 않고 땅끝마을에서, 거제도에서 <김제동의 톡투유>를 보겠다고 달려온다. 

백짓장도 맞들겠다는 '공감'의 예능
그런데 <김제동의 톡투유>의 방청석은 여느 방청석과 다르다. 5월 31일 방영분, 키가 작아 결혼을 포기해야 될 거 같다는 30대 중반 남자의 사연에, 방청석이 술렁인다. 안타까움의 물결이 일렁인다. 어쩌면 발언을 한 그 사람은, 그 안타까움의 공감만으로도 그 자리에 참석한 의미를 가지고 돌아갈 지도 모른다. 거기에 게스트로 참석한 신보라가 자존감이 없으신 거 같다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을 더하자 이번엔 호응의 물결이 인다. 심지어 아이돌들도 깔창을 까는데, 깔창 깔라는 김제동의 첨언에는 대단한 처방이나 발견한듯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 그러다 다음 사연에 한 여성이 같이 온 남성이 키가 작아 연애 상대가 될 수 없다는 말로 이전 사연의 남자를 떠올리게 만들자, 객석 모두가 그녀를 향한 '째림'이다. 

가족에게 마저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든 세상에,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는 내 편이 되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다. 키가 작으면 작은대로, 남편이 잔소리가 많으면 많은 대로, 결혼을 하면 하는대로, 하기 싫으면 싫은 대로, 그저 그대로 이 세상이 살아볼만 하다고 등을 도닥여 준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의 게스트조차도 희한하다. 어줍잖은 멘토나, '힐링'을 내세우지 않는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31일의 주제 '결혼'과 관련하여, 최근 6년간 결혼 트렌드를 분석하여, 결혼 연령이 늦어지거나, 결혼 자체가 쉽지 않은 세태를 짚어주고, 심지어 결혼 하기 힘든 세상을 데이터로 전달해 준다. 거기에 최진기 강사는 언제나 그렇듯, 짐처럼 여기는 결혼이 의무가 아닌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꼼꼼하게 짚어준다. 그저 '공감'이 아니라, 그 짐이 너만의 것이 아니고, 따지고 보면 짐처럼 여길 것도 없다고 객관적으로 콕 찝어 주는 것이다. 거기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꼭 결혼해야 하나요? 라고 반문하거나, 결혼식이 싫다고 차마 내놓고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대놓고 해주는 요조도 만만치 않다. 신보라의 자존감을 가지라며 '치열'이 곱다는 충고 정도면 발언권을 많이 얻은 축에 속한다. 그저 맞장구만 치다 가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톡투유>의 주인공은 바로 방청석을 가득 메운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민, 그들의 걱정거리가, 김제동이라는 mc를 매개로 또 다른 방청석 사람들의 공감의 물결로 밀려갔다가, 위안의 물결로 되돌아 오는 곳, 그곳이 바로 '톡투유앓이'의 현장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공감일까? 떠오르는 공감의 예능 뒤편엔 안타까운 세태가 있다. '멘토링'을 해줘도 딱히 새로울 것도 뽀족할 것도 없고, '힐링'을 해준다 해도, 살아가기 버거운 세상살이, 그칠 줄 모르는 불황과, 그 불황의 짐이 고스란히 서민의 등에 얹혀지는 세상에, '멘토링'도 힐링도 무기력하기에, 그나마 '공감'이라도 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미담인 기사에도 악성 댓글이 달리는 세상, 누군가을 폄하하고 짓밟는 사이트가 인기 사이트가 되는 세상에서, 결혼을 하자니 '돈'이 필요하고 '돈'을 가진 부모가 결혼의 갑이 되고, 그 마저도 없으면 결혼 조차도 막막한 세상에, 그저 달려와 손을 맞잡고 울어주는 '곡비'처럼 함께 울어주기라도 하는 것이 감지덕지가 되는 삭막한 세상의 대안이 '공감'인 것이다. 
by meditator 2015. 6. 1. 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