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농촌 드라마라 하면, <대추 나무 사랑 걸렸네>등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원일기>다.

100세를 넘긴 할머니까지 모시고 사는 층층시하 대가족,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땅'을 은혜라 여기며 사는 사람들, 남의 집 밥 그릇 갯수는 물론, 속사정까지 헤아리며 덮어주는 이웃 사촌들, 산업 사회 이전의 '노스탤지어'가 가득한 농업 사회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그려내던 <전원일기>는 바로 농촌 드라마의 전형으로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현재의 농촌 현실을 배경으로 한, 보다 현실적인 농촌 드라마가 등장한다. <푸른 거탑> 시리즈에 이어, 돌아온 거탑 시리즈, <황금 거탑>이다.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을 패러디한 제목으로 등장했던 <푸른 거탑>은 병원 사회의 거대한 조직 그 이상으로 위계적 질서가 정연하게 갖춰진 군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푸른 거탑>이란 제목을 빗대어 썼다. 그 후속작으로 돌아온 <황금 거탑>은 거탑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군대나, 병원과 같이 드러난 위계적 질서는 없지만, 지도원이 계급이 되고, 땅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관계가, 선배 영농인과 후배 영농인의 처지가  마치 군대의 계급 만큼이나, 나름의 질서가 잡힌 거탑 마을을 배경으로 오늘의 농촌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원 일기>에서 주인공은, 올곧게 농촌을 지켜가는 우직한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세월이 바뀌고, 천하지대본이, 수입 개방의 파고에 맞서 힘겨운 싸움이 되어도, 신념을 가지고 땅을 지켜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4년의 농촌은 다르다. <푸른 거탑>에서 이등병으로 고생하던 이용주는 드라마가 시작되자, 이제 제대를 하고 사회인이 되었다. 하지만 '푸른 거탑'에서 놓여난 기쁨도 잠시,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알바를 해도, 직장을 다녀도, 세상은 자꾸 그를 밀어낸다.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달파 하는 그에게 친구는 귀가 솔깃한 정보를 들려준다. 즉, 농촌에 땅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부가 저리의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가 선택한 것은 농촌행. 한 일년 농사를 짓는 척하면 목돈이 굴러 들어오겠다는 심사에, 그는 농촌을 향한다. 2014년의 농촌 드라마의 주인공은, 바로 위장 귀농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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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뉴스)

그가 농촌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양하다. 다른 마을과 달리, 젊은 사람들이 많은 거탑 마을이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녹록치 않다. 장가 못간 노총각에, 우즈베키스탄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슈퍼 주인에,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 소작농에, 그것도 감투라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드는 지도원에, 실제 우리 농촌 어느 마을에선가 만날 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거기다 이 농촌 마을의 첫 번 째 에피소드는 한 술 더 뜬다. 위장 귀농인의 첫 마을 정착기인가 싶더니, 난데없이 최종훈이 파던 구덩이에서 나온 돌 한 덩이를 둘러싸고 벌이는 위성 해프닝이다. 실제 얼마전 비닐 하우스를 뚫고 떨어졌던 위성 조각 사건을 빗댄 이 해프닝을 통해 '황금'을 지향하는 거탑 마을 사람들의 맹목적 '추수주의'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거기엔 이장이고, 지도원이고, 땅을 가진 사람이고, 소작농이고가 없다. 온 마을 사람들이 너도 나도 땅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 그 자체다. 

이렇게 가장 농촌적이지 않은 주인공으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첫 회를 연 <황금 거탑>은 하지만, <푸른 거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을 유발하듯, 항상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 부대 전체를 들쑤시는 해프닝으로 번져가듯, 최종훈이 우연히 발견한 돌 한 덩이는 마을 전체를 위성 찾기라는 난리법석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푸른 거탑> 출연자들의 캐릭터는, <황금 거탑>에서도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된다. 잘난 체 젠체 하지만 기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닌 김호창이라던가, 군대 내 말년 병장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노총각 영농인의 모습으로 재현해낸 최종훈이라던가, 음험한 행동파까지, 이게 푸른 거탑 병사들이 농활을 나온게 아닌가 싶게, 캐릭터와 이야기의 구조는 <푸른 거탑>과 흡사하다. 

이렇게 신선한 듯, 익숙한 <황금 거탑>의 화룡점정은, 오히려 극 중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가 마무리 된 후 보여진, 김재우의 '농기어'에 있다. 
<탑기어>를 패러디한 '농기어'는 트랙터를 등장시켜, 김진표의 멘트를 그대로 모사한 김재우의 진행에 따라, '탑기어' 식으로 트랙터의 성능을 하나하나 검증한다. 가장 진지한 자세로 검증해 들어가는, 하지만 그래서 더 시속 20km 농기계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농기어'는 어떤 면에서는 본편보다도 더 다음 회차가 기대되는 <황금 거탑>의 매력적 요소로 대번에 자리잡았다. 


by meditator 2014. 7. 2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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